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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76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13권

by Kay/케이 202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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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13

 


별역잡아함경 제13권

역자 미상


25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어떤 장자가 부처님과 스님네들을 초청하여 큰 모임을 베풀었는데, 세존께서는 여러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그 장자의 집에 가셨다.
그때 존자 바기사(婆耆奢)가 차례가 돌아와서 스님네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많은 여인들이 그 절에 왔는데, 그 여인들 중에서 얼굴이 단정하여 아름다운 이가 하나 있었다.
바기사는 그 여인을 보자 여색에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욕정이 일어났으나, 다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허망한 생각으로 큰 이익을 잃고 이익되지 않은 것을 기대했다.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려우며 목숨도 마침내 또한 그러하니, 만약 그러한 마음을 내면 착하지 못하다고 하리라.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애욕에 대한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출가한 사람이라고 칭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한창 젊고 단정한 여인을 보자 스스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욕정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것이 싫어할 근심거리란 걸 말하리라.’
그리고는 즉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속의 누추함을 버리고
출가의 법에 머무르고 있는데
무명(無明)과 애욕에 쫓기어서
하마터면 본래의 착한 마음 잃을 뻔했네.

소가 남의 밭의 싹을 먹을 때
그 맛을 좋아하고 금하지 않듯이
5욕락도 또한 그와 같아서
탐내고 즐기면서도 부끄러워 않으니
만약 금하거나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착한 법의 싹을 해치리라.

비유컨대 찰리(刹利)의 자식이
온갖 기예를 갖추어 익혔다면
설령 활 쏘는 기술이 뛰어난 자가
1천 사람이 된다 하여도
이러한 찰리의 자식의
전투하는 힘이 그보다 더 나으리.

비구도 생각[念]을 구족하기를
저 찰리의 자식처럼 함으로써
항상 지혜의 힘을 지니고서
애욕에 대한 생각 없애야 하리.
이미 애욕의 생각을 없애고 나면

쾌락하여 항상 적멸(寂滅)하리라.

나는 친히 부처님 앞에서
두 가지의 친한 벗을 들었나니
열반의 도에 나아가는 것만이
내 마음이 즐기는 것일세.

나는 방일하지 않음을 닦으며
숲 속에 살면서 고요함에 머물렀고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찬양했으니
이를 이름하여 정법을 세웠다고 하네.

이 다음 반드시 죽음에 나아갈 때만
열반을 얻는 때라고 한다면
이는 나쁜 마음임을 알아야 하니
어떻게 나를 볼 수 있으랴.

25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존자 바기사가 덕이 있는 이와 겸손하고 부드러운 비구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내었다가, 이윽고 스스로 깨닫고서 자기 자신을 꾸짖었다.
‘나는 지극한 이익을 잃어서 도무지 풍요로움이 없구나.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렵고 출가하는 것도 만나기 어렵거늘,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으면서도 근신하질 못해서 출가를 소홀히 여기고 몸 받은 것도 소홀히 여겼으며, 자기의 지혜로 저 겸손하고 부드럽고 덕이 있는 비구들을 경멸하였다. 나는 지금 마땅히 교만한 마음을 싫어한다고 말하리라.’
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는 모든 교만 버리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으로 스스로 후퇴하지 말 것이니
나중에 후회하여도 따를 수 없으리.

온갖 모든 중생들이
모두 교만의 해침을 당하며
그 해독으로 지옥에 떨어지나니
그러므로 나는 지금
말재주만을 믿고서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네.

만약 교만을 멀리한다면
능히 모든 장애를 없애고
깨끗한 마음으로 공경함을 지니어
3명(明)을 얻게 되리니
그와 같이 겸손하고 낮추는 자를
생각[念] 얻은 비구라고 칭한다네.

교진여와 사리불
용협(龍脇)과 자자(自恣)는
애욕의 결박을 즐기지 않고
교만함 그것을 벗어났다네.

25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존자 바기사가 혼자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몸을 잘 닦고 정진을 부지런히 하여 끝내 방일하지 않고, 그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서
3명(明)을 얻게 되었다.
존자 바기사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혼자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3명을 얻게 되었으니, 나는 내가 얻은 3명(明)을 찬탄해야겠다.’
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옛적에 크게 술취한 것처럼
온 성 안과 읍을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유행하다가 부처님 만나서
크나큰 복과 이익을 받게 되었네.

구담께서 크게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위해 바른 법 말씀하시니
나는 그 바른 법을 듣고 나서
즉시 청정한 믿음 얻게 되어
출가를 생각하였네.

세상을 인도하시는 위대한 스승께서는
교화와 인도가 모두 두루하시어
남자와 여인, 어른과 젊은이
중년과 늙고 병든 이까지 고루 미치시네.

불일(佛日)은 친한 벗이어서
훌륭한 방향과 처소를 보여 주시나니
중생이 무명(無明)으로 어두워졌기에
장차 인도하려고 그 문을 보이셨네.

무엇을 이름하여 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진리이니
원인[因]으로부터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 때문에 출가를 하네.

그리하여 여덟 가지 바른 도를 보여서
온갖 중생을 건져 내어서
편안히 열반에 나아가도록 하셨네.
나는 숲 속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방일하지 않고 닦음으로써
3명을 증득하게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끝내었네.

25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네 구절 게송의 법을 말하리니, 그대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듣고 잘 들어라. 내가 지금 무엇을 네 구절의 법이라고 칭하는지 말하리라.”

착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최상이니
성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네.
사랑스럽게 말하고 거칠게 말하지 않는 것을
둘째 번의 것이라고 말하네.

진실한 말만 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셋째 번의 것이라고 말하네.
법다운 말만 하고 법 아닌 말은 하지 않는 것을
넷째 번의 것이라고 말하네.
이 네 구절을 이름하여
네 구절 게송의 법이라 하네.

그때 바기사가 대중의 모임 속에 있다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지금 네 구절의 법을 연설하셨으니, 나는 지금 그 한 구절에 한 게송으로 칭찬하리라.’
그리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 바기사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노라.”
그러나 바기사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말하는 것이 모두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남까지 해치지 않음을 착한 말이라 하며
항상 사랑스러운 말로 남을 기쁘게 하고
또한 모든 악을 짓지 않아야 하리.

부처님 말씀대로 말을 한다면
반드시 안락을 얻어서 열반에 나아가고
온갖 괴로움 끊고서 착한 말을 칭찬하리라.
진실한 말인 단 이슬로서 가장 최상이니
진실한 말은 마땅히 큰 이익 얻을 것이요
진실한 말에 서 있으면 착한 대장부라고 하리.

25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의 훌륭한 의원이 능히 네 가지 병을 고치면 마땅히 왕의 스승이 될 것이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병을 잘 아는 것이며, 둘째는 병이 생긴 원인을 잘 아는 것이며, 셋째는 병이 생겼으면 치유할 줄 아는 것이며, 넷째는 이미 나은 병을 다시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능히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의 훌륭한 의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도 또한 네 가지 법을 성취하셨나니,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의원께서는 또한 중생의 네 가지 독한 화살을 뽑아 주신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과 괴로움의 쌓임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과 같은 독한 화살은 이 세상 의원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태어남의 괴로움에 대한 인연과 태어남의 괴로움을 끊는 것도 능히 알지 못하며, 또한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의 인연과 그것을 능히 끊는 법도 알지 못하고, 오직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인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의원만이 태어남의 괴로움에 대한 인연과 그 괴로움 끊는 법을 알고, 나아가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의 인연과 그것을 끊는 법을 안다.
그러므로 여래는 네 가지 독한 화살을 뽑아 버리니 이 때문에 여래를 더할 나위 없는 의원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때 존자 바기사가 그 모임에 앉아 있다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마땅히 여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독한 화살을 뽑아 버리신다는 비유에 대하여 칭찬하리라.’
그리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최상으로 제일 높으신 어른으로서
능히 독한 화살을 뽑아 버리시는
부처님께 나는 지금 귀의합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의원이
능히 네 가지 병을 고치나니
이른바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
어린이 눈에 박힌 독 화살을 제거함이네.

여래께서 눈 병을 치료하심은
저 세상의 의원보다 뛰어나시니
능히 지혜를 돕는 것으로써
무명(無明)의 안막(眼膜) 베껴 주시네.

여래께서 몸의 병을 치료하심은
저 세상의 의원보다 뛰어났으니
세상 의원이 치료한 것은
오직 네 요소[四大]만 치료하거니와

여래께서는 6계(界)와
18계(界)를 잘 분별하셔서
이 법으로 3독(毒)에 걸린 몸의
중한 병을 잘 고치시며

어리석음의 병까지 잘 고치셔서
가장 수승하여 더할 나위 없으니
그러므로 나는 지금에
구담 큰 스승께 귀의하나이다.

의왕(醫王) 가류(迦留)라고 하는 이는
사람들에게 약을 많이 보시하고
또 밝은 의원이 한 명 있었는데
바호로(婆呼盧)라 하였네.
첨비(瞻毘)와 기바(耆婆) 등
그와 같은 의왕(醫王)들은
모두가 온갖 병을 잘 고칩니다.

그들 네 분의 의사들이
치료만 하면 반드시 낫지만
비록 낫게 되어도 병은 재발하며
또한 죽는 것을 면치 못합니다.

더할 나위 없는 의원이신 여래께서는
치료를 받는 이들마다
독을 뽑아서 고통을 다 없애며
마침내는 생사를 여의게 해서
다시는 그 고통 받지 않게 하십니다.

한량없는 나유타(那由他)인
아승기(阿憎祇)의 중생들을
부처님은 치료해서 고통 없애고
끝내는 재발하지 않게 하셨네.

나는 지금 대중에게 아뢰옵나니
이 모임에 있는 현자들께서는
감로(甘露)의 죽지 않는 약을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복용하소서.

최상으로 눈병을 고치시며
몸을 치료하고 독 화살 뽑으셔서
여러 의원도 견줄 수 없다는 걸
여러 사람은 마땅히 믿어야 하리.
그러므로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구담 어른께 귀의해야 합니다.

25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당시 니구타겁파(尼拘陀劫波) 비구가 저 첫째 가는 광야(曠野) 숲 속에 있었으며, 이 숲 속에는 또 하나의 숲이 있었는데, 이 비구가 거기서 병을 얻었다.
존자 바기사가 병든 니구타겁파 비구를 간호하였으나, 그는 그 병으로 말미암아 곧 열반에 들고 말았다. 존자 바기사는 화상 니구타겁파를 공양하고는 차츰 유행하다가 왕사성 가란타 죽림까지 왔었다.
바기사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였으며, 먹기를 마치고는 발우를 씻고 방석을 거두고서 부처님 처소에 나와 의복을 정돈하며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는 지금 부처님께 묻겠사오니
한량없는 견해와 지혜로써
현재에 의혹을 끊어 주소서.

광야의 성(城) 안에서
비구가 열반에 들었는데
나면서부터 복과 덕 있었으며
몸과 입과 뜻을 수호하여 껴잡고
겸하여 큰 명성이 있었습니다.

니구타겁파(尼拘陀劫波)라고
부처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 주셨으며
부처님께서 그 바라문을 위하시어
그와 같은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25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위대한 성문(聲聞)인 장로들이 부처님의 좌편 우편에다 각기 암자와 토굴을 만들고 그 안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즉,교진여(憍陳如)ㆍ파발기(頗發耆)ㆍ현발구(賢跋溝)ㆍ마하남(摩訶南)ㆍ야사(耶舍)ㆍ나비마라(那毘摩羅)ㆍ우시(牛齝)ㆍ존자사리불(舍利弗)ㆍ마하목련(摩訶目連)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ㆍ마하겁빈나(摩訶劫賓那)ㆍ존자 아나율(阿那律)ㆍ존자 난타(難陀)ㆍ존자 겸비라(鉗比囉)ㆍ야사사라(耶舍賖羅)ㆍ구비하(俱毘訶)ㆍ부나구비라(富那拘毘羅)ㆍ구바니니가타비라(拘婆尼泥迦他毘羅)
같은 이들과 그 밖의 위대한 성문들이 각기 암자와 토굴 속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 달 15일에 포살(布薩)하게 되자, 여래께서는 여러 스님들 앞에서 자리를 정하고 앉으셨다.
존자 바기사도 역시 그 모임에 있었는데,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말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네가 말함을 허락하노라.”
그러자 바기사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러 위대한 비구들은
반드시 애욕을 말라붙게 하고
온갖 쌓임을 버리고
용감하여 두려움 없고

때를 알고 양(量)을 조절할 줄 알며
5욕(欲)을 즐기면서 탐내지 않고
온갖 더러운 때를 여의었으며
깊은 마음에서 슬기가 있사오니
그와 같은 일이 있기 때문에
위대한 비구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25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존자 바기사가 비사가(毘舍佉)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왔을 때 병을 얻어 병세가 위독하였는데, 부닉(富匿)이 그 존자의 병을 간호하고 있었다.
존자 바기사가 부닉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세존의 처소에 가서 나를 대신하여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세존께 문안하되, ‘병이나 괴로움이 적고 행동거지는 가뿐하셔서 고통이 없으십니까?’라고 하라.”
부닉은 존자의 분부를 받고는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기사 비구가 비사가 강당에서 병이 들어 위독한데, 저에게 말하기를, ‘세존의 처소에 가서 나의 이름을 말하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세존께 문안드리되, 〈병이나 괴로움이 적고 행동거지는 가뿐하셔서 고통이 없으십니까〉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닉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바기사가 병세가 위독하여
곧 열반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그곳에 왕림하십시오.”
여래께서는 잠자코 부닉의 말을 받아들이셨다.
그러자 부닉은 곧 존자 바기사가 있는 처소에 가서 아뢰었다.
“화상이시여! 제가 문안을 마치고 나서 세존께 여쭙기를, ‘바기사가 혹시 병세가 위독하여 열반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세존께서는 잠자코 저의 말을 받아 주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선정에서 일어나 곧 비사가 강당에 있는 바기사의 처소로 가셨는데, 바기사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자기 힘으로 일어나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날 필요가 없느니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따로 자리를 정하신 후 바기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몸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느냐? 음식을 잘 먹기도 하느냐?”
바기사가 아뢰었다.
“이 고통이 더욱 심해서 낫거나 덜하질 않습니다. 지금 저는 마치 힘이 센 사람이 파리한 사람의 머리털을 잡아당겨서 비트는 것처럼 저의 머리가 아픈 것도 그와 같습니다. 또 소를 잡는 힘센 사람이 칼로 배를 찌르고 그 창자를 베는 것처럼 저의 배가 아픈 고통도 그와 같습니다. 또 수척한 사람을 힘이 센 이가 강제로 잡아다가 그 몸을 지지면 몸이 타는 것처럼 저의 몸이 고통스러움도 그와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열반에 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칭찬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것을 따르겠노라.”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원문에 게송이 없다.]1)

본래 술취함과 같다는 것과 네 구절 게송으로 칭찬함
용협과 독한 화살 뽑는 것
니구타겁파가 열반에 들어감
위대한 성문들을 칭찬함
바기사가 열반한 것이었네.

25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俱薩羅)에서 유행하시다가 다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이르셨다.
당시 극만(極慢)이라는 마납(摩納)이 있었는데,
그의 집안은 7대를 내려오면서 부모가 참되고 바르며 박식하고 많이 배웠었다.
그는 이미 스스로 외우고 읽었으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배운 것을 가르쳤으며, 들은 것은 지닐 수 있었고, 네 위타(圍陀)의 경전에 대해서는 그 뜻을 통달하였으며, 사라건타론(娑羅乾陀論)과 성론(聲論)과 비가라론(毘伽羅論)과 희소론(戱笑論)과 비타라론(毘陀羅論)의 의취(義趣)와 법구(法句)를 잘 이해했으며, 그와 같은 갖가지 논을 모두 통달하였다.
용모가 단정하며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서 짝할 이가 없었다. 게다가 호족으로 태어난 데다가 부귀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의 재주와 힘을 믿고 큰 교만심을 내었으며, 부모에게도 공경을 하거나 순종하지 않았고, 화상(和上)과 아사리(阿闍梨)와 스승ㆍ어른ㆍ친속에게도 공경을 하거나 예배하지 않았다.
극만 마납은 “부처님께서 구살라로부터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는 부처님 처소에 오려고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사문 구담께서 나를 대접하면 나는 마땅히 문안을 드리겠지만, 만일 나에게 묻지 않으면 잠자코 돌아오리라.’
마납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부처님 처소에 왔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는데, 극만 마납이 그곳에 왔는데도 부처님께서는 그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마납은 말없이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사문 구담이 나에게 전연 관심을 두지 않으니 곧 되돌아가야겠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법을 위해 여기에 왔으면서
얻지도 못하고 돌아가려고 하는가?
여기 오게 된 마음을 칭함으로써
어찌하여 얻으려고 하지 않는가?

극만 마납은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사문 구담께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아시는구나.’
그리고는 곧 믿는 마음을 내어 부처님 발에 예배하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반드시 예배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으로 족하다.”
대중들은 이러한 일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 여기면서 모두 이러한 말을 하였다.
“사문 구담께서는 위대한 신통이 있습니다. 이 극만 마납은 자기 부모와 화상과 아사리도 오히려 공경하지 않는데, 지금 구담을 보고는 능히 스스로를 낮추면서 순순히 공경합니다.”
극만 마납은 대중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서 잠시 한쪽에 앉아 있다가 몸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르게 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떠한 곳에서 마땅히
교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또다시 어떠한 곳에서
마땅히 겸손하고 공경해야 합니까?

누가 능히 온갖 고통을 없애며
어떤 이가 이익과 안락을 줍니까?
누구에게 공양함이 가장 수승하기에
어진 이에게 칭찬받게 됩니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밝고 둥근 달 같은 마음씨로
부모에게 공양을 해야 하며
형과 모든 친척에게 공경을 하고
화상과 그리고 아사리와
그 밖의 높은 어른들에게도
마땅히 교만하지 않아야 하니
마땅히 스스로를 낮추어서
마땅히 모두 다 공경해야 하리.

근심하거나 괴로운 이를 보면
마땅히 그 괴로움을 없애 줘야 하고
또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두루 다 공양해야 하네.

만약 탐욕과 성냄 끊으며
또 어리석음까지 떠나서
바른 지혜로 해탈 얻고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있으면

그와 같은 훌륭한 사람에게는
교만을 버리고 높은 체하지 말며
마땅히 그이에게 귀의하여
합장하고 공경하고 예배해야 하리.

이처럼 세존께서 극만을 위해서 온갖 요긴한 법을 말씀하시니, 그는 후생 몸[後有]을 받지 않기에 이르렀다.
그 밖의 자세한 것은 『파라밀사경(波羅蜜闍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5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에서 유행하시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셨다.
당시 우갈제사리(優竭提舍利) 바라문이
큰 제사를 마련하려고 7백 마리 황소를 기둥에 매어 두었으며, 암소와 송아지와 암염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갖가지 가축들을 제사하는 마당 여기저기에다 매어 두었으며, 온갖 반찬과 여러 가지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는 바라문들도 그가 제사한다는 말을 듣고 모두 와서 운집하였다.
그때 우갈제사리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구살라로부터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 처소에 오려고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제사를 마련하는데, 그 모임에 쓸 물건에 대하여 마땅히 구담에게 적지나 않은지 물어 보아야겠다.’
바라문은 우보(羽葆) 수레를 탔으며, 입었던 의복은 위아래가 모두 흰색이었으며, 세 갈래진 금 지팡이를 짚고 금으로 아로새긴 물 병을 가졌는데, 그 속에는 깨끗한 물이 가득하였고, 여러 마납들이 좌우를 둘러싸고 다른 나라의 각종 바라문들도 곁에서 수행했는데, 그는 그러한 차림으로 부처님 처소에 와서 문안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큰 제사를 마련하기 위해서 7백 마리 황소와 각종 가축들을 매어 놓았으며, 나아가 다른 나라의 바라문들까지 모두 와서 운집했으니, 준비를 끝내고서 큰 제사를 베풀려고 합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모든 것이 만족하여 남음이 있고 조금도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제사를 주재하여 크게 보시함으로써 복을 구하지만 도리어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세 가지 칼을 세우면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데, 괴로움의 원인만 짓기에 또한 괴로움의 과보를 얻으며, 괴로움의 이익을 얻기에 과보를 받는 것도 또한 괴로움이다.
무엇을 세 가지 칼이라고 하는가? 뜻과 입과 몸의 칼이다.
무엇을 뜻의 칼이라고 하는가? 그대가 제사할 적에 뜻의 업이 착하지 못해서 온갖 가축들을 죽이는 것을 큰 제사로 여긴다면, 이것을 뜻의 칼을 세운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입의 칼인가? 그대가 제사를 지낼 때
‘내가 내일 마땅히 갖가지 생명을 죽이겠다.’고 하면, 이는 입의 칼을 세운다고 말한다.
어떤 것을 몸의 칼이라고 하는가? 그대가 제사할 때 손으로 황소와 여러 축생들을 끌면서 주원(呪願)을 받도록 하면, 이는 몸의 칼을 세운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또 세 가지 불이 가장 수승하고 가장 미묘하나니, 마땅히 삼가하고 공경해야 하는 것으로서 그대가 섬기는 삿된 견해의 불이 아니다.
무엇을 셋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공경의 불이요, 둘째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울린 불이요, 셋째는 복밭의 불이다.
무엇을 공경의 불이라고 하는가? 마땅히 부모를 공양하면서 존중하고 옹호해야 한다. 왜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구할 적에 신명에게 빌고 제사한 후에 자식을 얻었기 때문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수와 피가 화합함으로써 몸을 이루고 태어나고 길러지고 자라났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공경의 불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불[火]은 마땅히 바르게 공양하고 온갖 쾌락으로 받들어서 조금도 모자람이나 괴로움이 없게 해야 한다.
어떤 것을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울린 불이라고 하는가? 만일 족성자(族姓子)라면 부지런히 노력하여 돈과 재산을 모아서 그 처자와 권속과 종들과 친우와 돕는 이와 모든 친척에게 마땅히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이익과 안락을 줌으로써 그들과 함께 괴로움과 즐거움을 같이하나니, 이것을 괴로움과 즐거움이 함께 어울린 불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복밭의 불이라고 하는가?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능히 탐욕을 끊어서 탐욕을 해탈하고, 성냄을 끊어서 성냄을 해탈하고, 어리석음을 끊어서 어리석음을 해탈하면, 그와 같은 사문과 바라문을 복밭의 불이라고 하는데, 위로 모든 하늘에 태어나서 능히 쾌락의 과보를 얻기에 이를 복밭의 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족성자는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쾌락을 얻게 해야 한다.
또 세 가지 불[火]이 있으니 반드시 꺼야 한다. 무엇이 세 가지의 불인가? 이른바
탐욕과 어리석음과 성냄의 불이니, 이 불은 어느 때에는 타고 어느 때에는 꺼지기도 하는 세간의 불과는 같지 않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공경의 불과 함께 어울린 불과
복밭의 불 이 세 가지 불에게
제사하여 부지런히 공양한다면
세 가지의 낙을 얻게 되리라.

무엇이 세 가지 낙인가?
보시와 계율과 선정을 닦음이네.
그 세 가지의 과보는
인간과 천상과 열반의 낙이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체에 대해서
그 방도와 법을 잘 이해하면
제사하는 그 때에도
그 권속을 잘 기를 수 있으며

응공(應供)에게 공양하는 자가
능히 응공에게 공양할 수 있다면
재앙과 환란의 처소를 여의는 것을
마침내 반드시 얻게 되리라.

그때 우갈제사리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곧 오답(烏答) 마납에게 말하였다.
“너는 저 제사하는 장소에 가서 저번에 제사에 쓰려고 매어 두고 기르던 축생들을 지금 모두 석방해서 물과 풀에다 놓아 주고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잡거나 구속하지 말도록 하라.”
오답 마납이 말하였다.
“화상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저는 실행(實行)하겠습니다.”
그는 곧 제사하는 장소에 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는 우갈제사리의 지시를 받았으니, 온갖 축생들을 모두 다 석방하여 마음대로 가게 하라”고 하였다.
오답 마납이 제사하는 장소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서 여래께서는 우갈제사리 바라문을 위하여 부처님의 법대로 요긴한 법을 말씀하여 보여 주시며, 가르쳐 주시며, 이롭게 하시며,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곧 계(戒)를 받고 진리를 보기에 이르렀다.
(그 밖에 자세한 것은 「돌라사품(突羅闍品)」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마침내 우갈제사리 바라문은 곧 의복을 정돈하고는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디 내일 여러 대중과 함께 제사하는 마당에 오셔서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잠자코 그의 청을 받아 주셨다.
그러자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아울러 자기의 청을 받아 주시는 것을 보자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바라문은 제사하는 곳에 가서 밤새도록 갖가지 음식과 나아가 깔 자리를 마련하고 깨끗한 물도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래께서는 대중과 함께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제사하는 마당에 가셔서 대중 스님 앞에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바라문은 부처님과 대중이 고요히 좌정하신 것을 보고는 손수 깨끗한 물을 돌리고 갖가지 반찬과 음식을 차려 놓고 잡수시는 것이 끝나자 발우를 거두었다.
그리고는 세존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법문 듣기를 원하였다.
그때 여래께서는 그에게 주원(呪願)을 하셨다.

온갖 큰 제사 중에는
불[火]에게 제사함이 으뜸이요
바라문의 서적 중에는
살바저(薩婆底)가 최상이네.

온갖 국토 중에서는
임금이 가장 최상이며
온갖 흐르는 냇물 중에는
바닷물이 가장 으뜸이네.

하늘에 있는 별들 중에는
달의 광명이 가장 으뜸이고
온갖 밝음 중에는
해의 광명이 가장 최상이며
시방 세계 중에서는
부처가 제일 높다네.

그리고 세존께서는 바라문을 위하여 갖가지로 설법하시며, 가르쳐 주시며, 이롭게 하시며, 기쁘게 하시고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26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승가라(僧伽羅)라는 바라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착하지 못한 장부(丈夫)를 어떻게 관찰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달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그가 또 물었다.
“착하고 훌륭한 장부는 어떻게 관찰합니까?”
부처님께서 또 대답하셨다.
“역시 달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그러자 마납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착하지 못한 장부에 대하여 달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지 못한
장부는 16일 날의 달빛이 차츰차츰 줄어들면서 둥근 것이 이지러지다가 끝내는 모두 줄어들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다. 불법에서 믿는 마음으로 능히 계율을 받아 지니지 않고, 경을 외우고 읽거나 보시를 닦는 것을 조금은 하더라도 그 후에는 게으르고 부지런하지 않아서 차츰 믿는 마음을 버리고 계율을 범하며, 다시는 보시하지 않고 악한 벗을 가까이하며, 절에 가서 법을 받아 듣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법을 듣지 않으므로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만 지으며, 나쁜 짓을 짓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목숨을 마치면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악한 장부(丈夫)는 마치 저 달이 차츰차츰 줄어들다가 아주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마납이 또 물었다.
“‘착하고 훌륭한 장부를 대해서도 달과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초생달의 광명이 치성하여 차츰차츰 더 증가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아주 둥근 것과 같은 것이다.
불법 중에서 능히 믿는 마음을 가지고 계율을 수행하며, 많은 학문을 닦고 보시를 행하며, 삿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닦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불법 중에서 순일하게 믿는 마음을 얻어서 계율을 굳게 지키고, 많은 학문을 잘 닦으며, 능히 보시하여 인색하지 않으며, 바른 소견을 갖추면 믿는 마음으로 계율을 지님과 학문을 닦음과 보시를 하는 것이 차츰 더 증가한다. 이러한 착한 장부는 몸과 입과 뜻이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온갖 착한 것을 갖추어 닦으니, 이 때문에 몸이 망가지고 목숨을 마친 후에는 천상에 나게 된다. 그러므로 착한 장부도 역시 달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저 둥근 달이
허공에 떠 있으면서
원만한 광명이 찬란히 빛나면
온갖 별이 비추어 가리듯이

또한 믿음을 갖춘 사람도
계율과 배움으로 탐냄과 질투 버리니
온갖 질투하는 자에 대해서
달이 뭇 별의 빛을 가리듯 하네.

승가라 마납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떠나갔으며,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6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생청(生聽)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즉, 세존께서 ‘다만 나에게만 보시하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보시하지 말며, 다만 나의 제자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제자에게는 보시하지 말 것이니, 만약 나와 나의 제자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지만 다른 사람과 다른 제자에게 보시하면 과보를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실로 그러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는 말을 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실로 허망한 말이며 나를 비방하는 말이다. 나는 전혀 그러한 말을 하지 않았다.
만일 그와 같이 말하면 반드시 두 가지 힐난을 당할 것이니, 첫째는 그럴 리 없다는 힐난이요, 둘째는 받는 이가 손실을 당한다는 힐난이다. 만약 그와 같이 말한다면 큰 손실이 있게 되어서 몸이 망가지거나 목숨을 마치면 세 갈래 나쁜 길에 떨어질 것이다.
그대는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발우를 씻은 물조차도 나는 오히려 ‘벌레와 개미에게 그 물을 보시하면 큰 복의 과보를 얻는다’고 말했는데, 하물며 나에게 보시함이랴. 실제로 한 말은 ‘계율을 지니는 이에게 보시하면 복을 얻는 것이 매우 많고, 계율을 깨뜨린 이에게 보시하면 복을 얻는 것이 매우 적다’고 하였느니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온갖 보시를 하는 곳에서
나는 항상 그를 찬탄하나니
계율을 깨뜨리면 복 얻는 것 적고
계율을 지니면 큰 과보 얻는다고 하였네.

검고 희고 붉고 푸른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은 각각 다르나
멍에를 씌워서 그 힘만 취할 뿐
그 낳은 종류는 가리지 않네.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찰리(刹利)나 바라문
비사(毘舍)와 수타(首陀)와
진타라(眞陀羅)와 부단(富旦)이라도

깨끗한 계율을 능히 지닌다면
그에게 보시해도 큰 과보 얻나니
삼[麻] 짐을 지고 가다가도
그것을 버리고 보배를 취하는 것과 같네.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이는
일찍이 법도 들은 적도 없고
범행을 잘 닦지 않나니
그에게 보시하면 적은 과보 얻으리.

성현과 바르게 깨친 이와
성문(聲聞)을 가까이하고

부처님을 능히 믿어서
마음의 뿌리가 견고하면
항상 존귀한 곳에 태어나고
최후에는 열반을 얻으리라.

생청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6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는데, 어떤 바라문이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갖고 다니면서 걸식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지금 아주 늙었는데 어찌하여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들고서 걸식합니까?”
바라문이 말하였다.
“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사온데 각각 장가를 들여서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지금 그 몫이 없어서 아들에게 쫓겨났기 때문에 걸식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당신을 위하여 게송을 말해 줄 테니, 당신은 대중 속에서 이 게송을 말할 수 있겠는가?”
늙은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들을 낳고서 아주 기뻐하며
그를 위해 재산을 모으고
각각 모두 장가를 들였는데
문득 나를 버리고 내쫓는구나.

이들은 효심과 인정 없어서
입으로만 부모를 위한다고 말할 뿐
저 나찰의 아들과 같아서
죽을 무렵엔 나를 버리는구나.

마치 말 구유와 마판 안에
보리와 곡식이 가득한데도
젊은 말들이 양보하는 마음이 없어
늙은 말을 쫓고 밟는 것과 같네.

이 자식들도 역시 마찬가지라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를 버리고 구걸하게 만드니
지팡이가 나를 사랑함만 못하네.

나는 지금 이 지팡이 가지고
개와 염소와 말을 다루니
다닐 적엔 나를 도와 주고
어둔 밤에는 나의 벗이 되네.

물을 짚으면 깊고 얕음 알아내고
자빠지면 지팡이를 붙잡고 일어나서
지팡이가 많이 배운 것보다 나으니
이 지팡이만이 나를 아껴 주고 생각하네.

바라문은 그 게송을 받아 들고 읽고 외우기를 능란하게 하였다.
그때 일곱 아들이 큰 모임 속에 있었는데, 그 바라문은 대중 속에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 주겠습니까?”
대중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바라문은 곧 위에서 말씀하신 게송을 말하였다. 그러자 일곱 아들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일어나 아버지를 안으면서 각각 인사를 하고 난 후,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돌아가서 본래 앉던 자리에 앉히고, 여러 아들들이 각기 두 장의 좋은 담요를 아버지께 올렸다.
그러자 바라문은 곧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안락을 얻게 된 것은 이 구담의 힘이니, 구담은 바로 나의 아사리이시다. 바라문의 법으로는 마땅히 화상과 아사리에게 공양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가장 좋은 옷을 골라 가지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집에서 온갖 호강과 안락을 얻게 된 것은 바로 당신의 은혜입니다. 우리 경서(經書)에서 말하기를, ‘아사리의 것이면 마땅히 아사리의 몫을 주어야 하고, 화상의 것이면 마땅히 화상의 몫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당신은 지금 바로 저의 아사리이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이 옷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 옷을 받으시니,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뛸 듯이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26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세존께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는데, 어떤 늙은 바라문이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갖고 걸식하다가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 처소에 와서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내가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갖고서 남에게 걸식하는데, 당신도 또한 걸식하니, 나와 당신은 모두 비구입니까?”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반드시 남에게 걸식하는 것만으로
비구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비록 재가(在家)에 있더라도
범행을 바르게 닦으며

복의 과보와 나쁜 과보에 대해서도
모두 다 끊고 집착 두지 않으며
온갖 번뇌를 다 끊어 없애면
이것을 비구의 법이라고 칭한다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6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당시 왕사성 북쪽에 밭을 가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두라사(豆羅闍)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그가 있는 곳으로 가셨는데, 그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즉시 부처님 처소에 와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농사 짓는 사람으로서 밭을 갈고 심고 먹기 때문에 남에게 구걸하지 않습니다.
구담이시여! 당신도 지금 또한 갈고 심으면서 생활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갈고 심으면서 먹느니라.”
그러자 두라사 바라문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당신 스스로는 밭 가는 법을 안다고 말씀하시나
당신이 밭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만약 밭 가는 법을 아신다면
나에게 밭 가는 법을 설명하소서.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믿음으로 종자를 삼고
온갖 착함으로 좋은 밭을 삼으며
정진함으로 길들인 소를 삼고
지혜로 멍에를 씌우고

남 부끄러움과 제 부끄러움으로 도구를 삼고
생각[念]으로 쟁기질 하는 것을 삼으며
몸과 입과 뜻을 순조로히 조복하고
계율 지니는 것으로 굴레를 삼아서
번뇌의 더러움을 갈아 버리나니
단비가 때를 맞추어 내리네.

김매는 것으로 착한 마음 삼아서
좋은 곡식을 크게 수확하나니
그 결과 편안한 곳에 나아가서
영원한 안락을 누릴 수 있네.

나의 밭 가는 것도 그와 같아서
단 이슬의 과보를 얻게 되며
삼계를 뛰쳐나 여의어서
온갖 존재[有]에 들어오지 아니하네.

바라문이 말하였다.
“당신께서 밭을 가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수승하게 간 것입니다.”
바라문은 게송을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자, 발우에다 음식을 가득 담아 와서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으나 부처님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 밖의 자세한 것은 위의 두라사 바라문이 말한 것과 같으며, 나아가 후생의 몸[後有]을 받지 않았다.)

26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범천(梵天)이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앙가국(央伽國)에서 유행하다가 첨파(瞻波)까지 와서 건가(健伽)못 가에 이르렀다.
그는 훗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첨파성에 들어가 차례로 걸식하다가 본가(本家)에 이르렀다.
그때 존자 범천의 어머니는 문 안에서 소(蘇)와 쌀과 참깨를 구덩이 속에 던지면서 범천에 태어나기를 기원하였다. 하지만 존자 범천이 문에 서 있었는데도 어머니는 알지 못하였다.
그때 비사문(毘沙門)천왕(天王)이 존자 범천을 공경하고 믿기 때문에 무수한 야차(夜叉) 무리들과 함께 허공을 날아와서 범천의 어머니가 불에 제사하느라고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오직 도 닦는 사람으로만 여기는 것을 보고는 즉시 어머니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바라문 집에 태어난 여인이시여!
범천 하늘은 여기서 아주 먼데
불에게 제사하여 범천에 나기를 바라니
그것은 범천에 나는 길이 아닙니다.

범천에 나는 길을 알지 못하니
애써 불을 섬긴들 무엇합니까?
범천 중에서도 참범천이
당신의 문에 서 있습니다.

그는 도무지 집착이 없으며
또한 양육된 바도 없어서
모든 나쁜 길을 멀리 떠났고
번뇌와 티끌이 붙지 않으며
모든 욕구를 멀리 떠나서
세상 법에 물들지 않습니다.

마치 용과 코끼리가 잘 조복되어서
함부로 떠받거나 대들지 않듯이
수승한 생각을 지닌 비구도
그 마음이 잘 해탈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아라한께서
지금 공양을 받으려고 왔으니
당신은 마땅히 마음의 등불 켜고서
깨끗한 마음으로 빨리 보시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비사문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마음으로 곧 깨달아서 범천에게 음식을 주었다. 범천은 그 음식을 받아 먹고서 어머니에게 후세의 안락한 인연을 밝혀 주었다.

26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당시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문안하고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불타(佛陀)라고 말하는데, 그와 같은 이름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바라문은 곧 게송으로 물었다.

불타는 바로 수승한 명호로서
그 이름은 나루터를 건네 준다는 뜻인데
부모께서 그 이름 지었으므로
당신을 부처라고 이름한 것입니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이제 내가 그대를 불쌍히 여겨서
그러한 명칭이 있게 된 것을
마땅히 분별하여 말해 줄 터이니
그대는 지금 잘 들을지어다.

부처는 과거의 세상을 알며
미래의 세상도 또한 알고
온갖 행(行)의 무너져 소멸하는 모양도
현재에 두루 다 아네.

온갖 법을 밝게 통달하여서
닦아야 할 것은 다 닦았으며
끊어야 할 것은 모두 끊었나니
이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였네.

전체적인 모양과 개별적인 모양을
분별하여 완전히 알고 이해해서
온갖 것을 모두 알아 보나니
이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였네.

바라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한량없는 겁(劫) 동안 관찰하여도
온갖 법칙의 고통과 괴로움 때문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된다네.

티끌을 멀리하고 번뇌를 떠나며
독의 화살인 번뇌 뽑아 버리고
나고 죽음의 맨 끝까지 다했나니
이 때문에 부처라고 이름하였네.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6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에서 유행하다가 사림(娑林) 마을에 이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가시는 것을 멈추고는 어느 나무 밑에서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아서 생각을 모으고 계셨다.
당시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의 성은 연씨(煙氏)였다. 그는 부처님 뒤에서 따라오다가 부처님 발자국 속에 천 개의 바퀴살 모양이 있는 것을 보고는 전에 없던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면서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런 발자국이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마땅히 어떤 사람의 발자국인지 찾아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그 발자국을 따라 부처님 처소에 와서 거룩하신 얼굴을 우러러보았는데, 그 얼굴빛은 평화롭고 기쁨에 차서 보는 이마다 믿고 공경할 만했으며, 온갖 모습도 고요하며 안정되고
마음과 뜻도 안정되었으며, 최상으로 조복된 마음은 적멸하고 고요했으며, 몸은 순금의 빛깔로서 마치 금으로 된 누각과 같았다.
바라문은 그 모습을 보고는 즉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하늘이 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나는 하늘이 되지 않았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아수라(阿修羅)가 되셨습니까? 아니면 용왕ㆍ건달바(乾闥婆)ㆍ야차(夜叉)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가 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모두 다 되지 않았다.”
바라문은 말하였다.
“당신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하늘이나 용왕ㆍ아수라ㆍ건달바ㆍ야차ㆍ긴나라ㆍ마후라가와 사람이 되셨습니까? 라고 물었는데도, 당신은 ‘모두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무엇이 되신 것입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ㆍ용ㆍ아수라ㆍ긴나라와
마후라가와 건달바가 아니며
또한 야차와 사람도 아니니
나는 샘[漏]이 다하여 번뇌를 끊었네.

나는 큰 코끼리처럼 잘 조복되었어도
끝내 남에게 제어받지를 않으며
남에게 제어받지 않고 의심 끊었기에
애욕을 끊고 해탈해서 모든 갈래 여의었고
온갖 것 다 알아서 후생(後生)을 끊었네.

마치 분타리(芬陀利)꽃이 잘 피어서
물 속에서 잘 자라나게 되면서도
끝내 물이 묻지를 않아서
청정하고 향기로움을 사람들이 즐기듯이

8법(法)에 더럽히지 않음이 연꽃 같아서
나 역시 그렇게 세상에 태어나
세상 법과 어울리나 물들지 아니하네.

온갖 행(行)에 얽매여 고통 받으며
태어난 모든 것은 다 없어진다고
나는 한량없는 겁 동안 늘 관찰함으로써
티끌과 때 멀리하고 뭇 번뇌 끊으며
독한 화살도 뽑고 번뇌도 끊어서
나고 죽음의 맨 끝까지 다해 버렸으니
이 때문에 그 명호를 부처라고 한다네.

연씨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극만과 우갈제사리 바라문
승가라와 생청 바라문과 아주 늙은 이와
비구와 심고 농사 지음과 범천과
불타와 바퀴 모양인 그것이 열 번째이네.

26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당시 세존께서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화성(火姓)인 달뢰수(達賴殊) 바라문의 집에 이르는데, 화성 달뢰수는 문 안에서 불에게 제사하다가 부처님께서 문에 이르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말하였다.
“거기 멈추시오! 전타라(旃陀羅)는 여기 오지 마시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전타라를 알며 전타라의 법을 아는가?”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전타라와 전타라의 법을 모릅니다. 당신은 전타라와 전타라의 법을 아십니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전타라와 전타라의 법을 아느니라.”
그러자 바라문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깔아 드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당신은 나에게 전타라의 법을 말해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곧 그 자리에 앉으셔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쁜 성질로 잘 성내고 오랫동안 혐오하고 원망하며
사람됨이 경직되고 고약해서 교만을 품고
뒤바뀐 소견을 행해서 허깨비에 미혹되면
그는 바로 전타라라고 알아야 하리.

분노와 질투를 품고 애욕을 좋아해서
조복하여 교화하기 어렵고 부끄러움 없으면
그와 같은 짓을 행하는 자는 전타라이네.

태에서 태어나고 알에서 나는 생명 해치며
마음에 자비심 없어서 생명을 살해하니
이 같은 4생(生)을 짓밟거나 해치면
그는 바로 전타라라고 알아야 하리.

어떤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길을 가거나
마을의 빈 곳에 재물이 있어서
모두 겁탈하거나 생명을 해치면
그와 같은 짓을 행하는 자는 전타라이네.

온갖 나쁜 짓을 행하면서 뉘우칠 줄 모르면
그를 바로 전타라라고 말하며
자기의 아내와 음녀를 놓아 두고서

남의 부인과 간통하기를 기피하지 않으면
그도 또한 전타라라고 말하네.

자기의 친척과 또 친한 벗이 있는
그러한 자리에서 못된 짓 저지르며
좋고 나쁨 가리지 않고 간음하면
이것도 또한 전타라라고 말하며
이치로써 의(義)를 묻는데 거꾸로 말하면
그와 같음 또한 전타라라고 말하네.

자기의 덕만 칭찬하고 남을 헐뜯으며
젠 체함과 아주 천한 짓에 집착하면
그와 같은 것도 역시 전타라라고 말하네.

멋대로 비방을 가하고 몹시 어리석으며
작은 이익 때문에 비방을 일삼는다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자기에게 있는 허물 남에게 씌우고
전적으로 속임수를 써서 남을 헐뜯으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재물이 많이 있는데도 친족만 주며
자기는 좋은 것 먹고 남에겐 나쁜 것 주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자기는 남의 집에서 좋은 것 먹었으면서
남이 올 적에는 나쁜 것 준다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부모가 젊음이 지나 노쇠하였는데
효도로 받들고 공양하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부모ㆍ형제 그리고 자매에게
나쁜 말로 꾸짖고 우애롭지 않으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사문과 그리고 바라문들이
먹을 때에 왔는데도 주지 아니하며
더구나 꾸짖고 성을 낸다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사문과 그리고 바라문들이
빈궁하여 집에 와서 구걸하는데
음식도 주지 않고 보시도 않는다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부처님과 성문들을 헐뜯고 꾸짖으며
출가한 이와 집에 있는 이를 꾸짖으면
그와 같은 것도 전타라라고 말하네.

아라한이 아니면서 아라한이라고 사칭해서
하늘과 사람들의 못된 도적이 되며
큰 가문의 바라문으로 태어나
위타(韋陀:베다) 경전을 모두 잘 알면서
자주자주 나쁜 짓만 짓는다면

훌륭한 종족이라도 비난을 면치 못하고

또한 지옥의 과보도 막지 못해서
현세에는 사람들에게 꾸짖음을 당하고
미래 세상에는 나쁜 갈래에 떨어지리라.

전타라와 수타연(首陀延)으로 났어도
훌륭한 명성을 얻으면 어디나 들리고
수승한 낙을 얻어서 범천에 나게 되리니
종성(種性)도 범천에 나는 것을 막지 못하고
현재에 칭찬 받고 죽어서는 천상에 나리라.

내가 그대를 위해 알도록 말했나니
그와 같은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
종성 그 자체가 바라문이 아니며
종성 그 자체가 전타라가 아니니
청정한 업을 지으면 바라문이 되고
나쁜 업을 지으면 전타라가 되네.

바라문은 그 게송을 듣고 칭찬하면서 말하였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크게 정진하시는 이시여! 실로 그 말씀과 같습니다.
위대하신 모니(牟尼)시여, 그 종성을 가지고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 아니며, 그 종성을 가지고 전타라라고 할 것이 아니니, 수행을 능히 잘하면 바라문이 되고 나쁜 행위를 하면 전타라가 됩니다.”
바라문은 게송을 듣고 나서 기뻐하면서 믿고 이해하였다. 그는 발우에 가득 담은 음식을 부처님께 바쳤는데,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셨다. 왜냐 하면 이것으로 법다운 음식[法食]을 말씀하시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음식을 누구에게 보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문과 바라문과 천인과 악마와 범천으로서 이 음식을 삭일 만한 이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이 음식을 마땅히 벌레가 없는 깨끗한 물 속에 넣어라.”
바라문이 곧 그 음식을 벌레가 없는 깨끗한 물 속에 넣었더니, 연기와 불이 함께 일어나면서 요란한 큰 소리가 났다.
그때 바라문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오히려 음식에 대해서도 큰 신통을 내시는구나.’
그래서 바라문은 도로 부처님 처소에 와서 아뢰었다.
“부디 세존께서는 제가 출가하여 도를 닦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면서 곧 구족계를 얻게 되었다. 그는 출가의 법대로 고요한 곳에서 혼자 부지런히 수행하였다.

이른바 족성자(族姓子)로서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법복을 입은 까닭은 위없는 범행을 바르게 닦기 위한 것이었다. 그 족성자는 범행이 이미 이룩되어서 할 일을 마쳤으며, 후생의 몸을 받지 않고 아라한이 되어 해탈의 낙을 얻고서 게송을 말하였다.

나는 옛적에 바른 진리 모르고
어리석고 미혹해서 삿된 행만 지었고
청정한 도를 알지 못했고
또 죽음의 길도 알지 못했네.

허망한 생각으로 멋대로 계교(計較)해서
수고롭게 불만을 받들어 섬기고
공연히 허망한 일만 하여서
손해만 보고 아무 소득 없었네.

이제는 하늘 중의 하늘을 만나서
암흑 속에서 은혜로운 광명 입었으며
낙 중의 최상 낙을 얻게 되었으니
계율을 갖추며 3명을 얻게 됨으로써
부처님의 교법 중에서
할 일을 모두 이미 마쳤네.

비록 본래는 바라문이었으나
실제로는 전타라였으니
오늘에야 참으로 진실하고
깨끗이 수행하는 바라문으로서
진흙의 더러움을 멀리 떠나고
깨끗이 씻고 목욕함으로써
위타의 저 언덕 지나쳤네.

『극만(極慢)』 이하 열한 경은 모두 단장(丹藏)에는 없고 대본경(大本經)에도 동본이역(同本異譯)이 없다. 그러나 그 글은 서로 다르지 않고 경의 전후(前後)에 해당하니, 단장(丹藏)에 없는 것은 빠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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