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86권
법원주림 제86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6. 참회편(懺悔篇)[여기에는 6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위순부(違順部)
회의부(會意部) 의식부(儀式部) 세참부(洗懺部)
(1) 술의부(述意部)
공손히 생각건대, 불일(佛日)이 빛을 숨기면서 정법(正法)이 상법(像法)으로 점차 변했으며 인정(人情)은 험악해지고 세상 질서는 경박해졌다. 우러러보건대 큰 스승[大事]을 결별한 지도 1,700년이 지났다. 중생은 완고한 소경이라서 선근(善根)이 박약하며 정법이 이미 쇠한지라 삿된 소견은 더욱 커졌으니, 안으로는 수승한 견해가 없는지라 항상 5개(蓋)가 스스로 얽어매고 밖으로는 좋은 인연을 잃은지라 네 가지 악마[四魔]가 짬을 얻는다. 그러므로 3독(毒)에 멋대로 놀고 6진(塵)에 내달으면서 밤낮으로 반연하여 화(禍)를 부르지 아니함이 없으니, 재앙이 되는 허물을 초래하여 죄를 쌓음이 더욱더 많아진다.
이제 이를 깨달았다면 정성을 다하여 참회해야 하지만 그러나 참회하는 의식은 모름지기 성인의 가르침에 의거해야 한다. 가르침에는 크고 작음이 있고 죄에는 경하고 중함이 있어서 통함과 막힘이 같지 않고 열음과 닫음에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제1편에서는 널리 성인의 가르침을 끌어와서 참회할 것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니, 마치 7중(衆)의 사람들이 일찍이 5계ㆍ8계ㆍ10계ㆍ구족계(具足戒) 및 3취(聚) 등의 계를 받고 얻은 것과 같다. 만일 소승의 처음 네 가지 무거운 계율을 범했어도 덮어 감추지 않으면, 계율에 의거해 목숨이 다하도록 참회를 배우도록 허락하는데 시절을 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덮어 감추면 비록 참회함이 있다 하더라도 계율에 의거하여 허락하지 않는다.
제2편(篇) 이하는 범한 것에 따라서 경하고 중함, 감춤과 감추지 않음, 그리고 다만 이름과 종류를 알아서 계율에 의거하여 제거할 수 있을 뿐이며, 큰 가르침을 갖추어서 밝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대승의 3취 등의 계를 범하면, 대승을
비방한 삿된 소견의 무거운 인연과 업(業)을 제외하고서도 생각이 극히 엄중하므로 계체(戒體)가 온전하지 않다. 비록 좋은 마음으로 큰 재난을 범한 것을 참회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간절한 뜻으로 마음을 써서 끝까지 관철하는 데에 이르러야 한다. 그 밖의 가벼운 것을 범하면 참회로써 통할 수 있다.
이제 『방등경(方等經)』과 『불명경(佛名經)』 등에 의거하여 재가(在家)와 출가(出家)를 불문하고 대승ㆍ소승계에 범함이 있으면 이름과 종류를 밝히지 않고 참회해야 하는데, 그 까닭은 오직 이 참회만이 죄의 장애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업의 잘못[業非]을 면하기 바라고, 청정한 오름[淸昇]을 기꺼이 사모하며, 멀리 큰 성인을 구하고, 생각이 큰 일에 이르는 것은 용이한 일일 수가 없다. 스스로 성인의 가르침에 익숙하지 않으면 마땅히 적멸을 얻지 못할 것이다. 죄의 진실과 허망을 알면 물들음과 깨끗함이 녹아 없어지고 마음과 경계가 열리면서 합하리니, 모름지기 뜻을 짓되 반연을 일으키지 않아야 죄는 비로소 조복되고 제거된다.
(2) 인증부(引證部)
『최묘초교경(最妙初敎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하건대, 옛날에 한 비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흔경(欣慶)이었다. 네 가지 무거운 금계(禁戒)를 범하고 승가에게 와서 99일의 밤 동안 참회하면서 자신을 책망하였으므로 죄업이 소멸되고 계의 뿌리[戒根]가 생기게 되었는데, 마치 처음 계를 받을 때와 다름이 없었느니라. 가령 사람이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때는 더욱더 북돋아 주어야 나무가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파계한 뒤에 참회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그때 파계한 비구는 스스로 죄를 범한 것을 알고는 마음에 부끄러움을 내면서 한층 더 고행을 하였으므로 7년을 지나서야 아라한이 되었느니라.’
이 품(品)을 말씀하실 때에 5백 명의 파계 비구는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계의 뿌리가 도로 회복되었다.”
또 『대장엄경론(大莊嚴經論)』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학문을 익히다가 비록 그 행을 훼손했다 하더라도 학문의 힘으로써 곧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학문에 힘써야 한다. 나는 옛날 이렇게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한 다문(多聞) 비구가
아련야 처소에 머물러 있었는데, 한 과부가 이 비구 처소에 자주 왕래하면서 그의 설법을 들었다. 그때 학문을 익히던 비구가 이 과부에 대하여 염착(染著)하는 마음을 내었으며, 염착했기 때문에 온갖 착한 법은 점차로 약해지면서 범부의 마음이 되었다. 결국 번뇌의 부림을 받아서 이 아낙네와 언약까지 하게 되었다. 그 아낙네가 말하였다.
‘당신이 이제 수도를 그만두고 속인으로 돌아온다면 내가 당신을 따르면서 살겠습니다.’
그러자 비구는 곧 수도를 그만두어버렸다. 수도를 그만둔 뒤에는 세간의 고뇌를 견뎌 낼 수 없어서 몸은 점차 파리해졌고, 생활하는 일을 잘 모르는 터라 적은 일을 하면서 크게 재물을 얻는 법을 몰랐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어떠한 방도를 쓰면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는 다시 생각하였다.
‘남에게 붙어서 양(羊)을 죽여 주면 공력도 적게 들뿐만 아니라 적은 이익도 받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뒤에는 그러한 곳을 물색하였으니, 범부의 마음이란 썩기 쉬운 것이므로 이런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백정과 함께 친우가 되어서 고기를 팔고 있을 때였다. 어느 한 걸식 도인이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머리털이 쑥대장이같이 흐트러진 채 청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몸 위의 피투성이는 마치 저승의 나찰과 같았다. 그리고 고기 다는 저울도 모두 피로 더럽혀져 있었으며, 그 저울에 있는 고기도 남에게 팔려고 한 것이었다.
비구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길이 탄식하면서 생각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이구나. 범부의 마음은 경박해서 가만히 있지 않고 극히 쉽게 돌고 돈다고 했으니 말이다. 먼저 이 사람을 볼 때에는 부지런히 학문을 닦았고 금계(禁戒)도 잘 지켰었는데, 어찌하여 오늘날에는 갑자기 이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이냐?’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말을 잘 길들이지 않으면
방일하면서 뭇 악을 지으리라.
어찌하여 부끄러움[慚愧]을 여의고서
조복하는 법을 버렸단 말이오.
위의와 그리고 행동 거지가
남에게 좋게 보일 수 있어야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이
그를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수행할 적엔 개미라도 상할까 두려워서
자비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더니
이와 같은 가엾이 여기던 마음
지금은 어디에 있단 말이오.
범부는 그 마음이 일정하지 않지만, 만일 진리를 보게 되면 그것을 사문이요 바라문이라 하는 것이므로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용감하고도 사납게 굴면서
자기가 진짜 사문이라 칭하더니
실제로는 마음을 조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갑자기 이런 큰 악을 짓는구료.
이 게송을 말한 뒤에 곧 생각하였다.
‘나 이제 무슨 방편을 써서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할까? 부처님께서 ≺만일 사람을 교화할 때에는 먼저 그로 하여금 네 가지 진리를 관(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듯이, 이제 그를 위하여 업을 짓는 근본을 말해 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저울질을 아주 잘하십니다.’
그러자 고기를 팔던 사람이 생각하였다.
‘이 분은 비구라서 고기도 사지 않을 터인데, 무엇 때문에 나에게 저울질을 잘한다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분은 틀림없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곳에 와서 나를 구제하려 하는구나.
이러한 비구는 오래 전에
시장의 장사하는 법을 여의었으니 말이다.
내가 악업을 짓는 것을 보자
일부러 와서 구제하려 하는구나.
실로 이 분은 성현이시다.
나를 위해 이익 되게 하니 말이다.
이 게송을 말한 뒤에 곧 옛날 비구였을 적에 지었던 모든 행이 기억에 떠올랐고, 또 옛날에 외웠던 『고취욕과욕미경(苦聚欲過欲味經)』의 이름도 생각났다. 그는 즉시 곧 고기 달던 저울을 땅에다 멀리 던져버리고는 생사에 대하여 깊이 싫증을 내면서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대덕이여.’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욕심의 맛[欲味]과 욕심의 허물[欲過]은
어느 것이 더 많은 것입니까.
저는 부끄러움[慚愧]의 굴레로써
지혜의 저울을 꼭 잡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헤아리고 나매
마음이 이미 통달하였으므로
그 이익 있는 것을 보지 않나니
둔한 이는 욕심에 근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마땅히 욕심을 버리고
승방(僧坊)으로 나아가서
도로 다시 출가하여야겠습니다.
그 때 수도를 그만 둔 비구는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곧 악업을 버리고 출가하여 부지런히 힘쓰다가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글로 증험하건대, 계를 깨뜨리고 중한 죄를 범했다 해도 마음을 돌이켜 도를 배우면서 부지런히 닦기만 하면 벗어나게 된다. 비록 또 이런 이치에 의거할지라도 반드시 전일한 정성과 용맹한 마음을 일으키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 반성하면서 삿된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큰 서원을 세우되 겁수(劫數)를 한정하지 않고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모두 제도시키고자 할 것이며 동등한 중생 세계에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마음의 허망한 동요를 알아서 앞의 경계를 멀리 여의면 새로운 업이 일어나지 않고 옛 번뇌가 조복되고 제거되는 것이니, 비록 무거운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곧 경미해지며 업이 악하고 중하다 하더라도 착한 마음만큼은 못하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무명의 꽃이 비록 천 근 있을지라도 끝내 순금 한 냥보다 못하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항하의 물 속에 한 되의 소금을 던져 넣어도 물에 짠맛이 없어서 마시는 이가 깨닫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는 마음을 관찰함이 강하면 곧 중한 죄도 소멸된다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또 『허공장경(虛空藏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우바새ㆍ우바이 등이 5계를 깨뜨리고 8계재(戒齋)를 범하거나 출가한 비구ㆍ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식차마나가 네 가지 중대한 금기를 범하거나 재가(在家) 보살이 여섯 가지 중대한 금기를 헐면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을 세존께서는 먼저 비니(毘尼) 가운데서 결정코 내쫓으셨으니 마치 큰 돌이 깨진 것과 같았나이다. 지금 이 경에서는 대비 허공장보살이 모든 고통을 구제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주문으로 허물 제거하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설령 이런 사람이 있다 해도 어떻게 증험하오리까?
부처님께서 우바리(優婆離)에게 말씀하셨다.
‘서른 다섯 분의 부처님께서 세간 구제하는 대비를 가르치셨으니 너는 공경하고 예배해야 한다. 그 때 부끄러움의 옷[慚愧衣]을 품은 것이 마치 눈에
종기 난 이가 몹시 부끄러워하고 또 문둥이가 좋은 의사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너도 그와 같이 의당 부끄러움을 내어야 한다. 이미 부끄러워하고 나서는 1일 내지 7일 동안 시방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데, 따로 대비 허공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되 몸을 깨끗이 목욕하고 온갖 유명한 향과 굳고 검은 침수향(沈水香)을 사르면서 샛별이 돋을 때에 높이 무릎 꿇고 합장하면서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며 허공장보살의 명호를 부르고는 아뢴다.
≺대덕이여, 대비 보살이여, 저를 가엾이 여기셔서 저를 위해 몸을 나타내소서.≻
그리고는 그 때 이런 생각을 내야 한다.
≺이 허공장보살의 정수리 위에는 여의주(如意珠)가 있으며 그 여의주는 황금빛이다. 만일 여의주를 보면 곧 천관(天冠)을 보는 것이니, 이 천관 중에는 서른다섯 분의 불상이 나타나고 여의주 안에서는 시방의 부처님의 형상이 나타난다. 허공장보살의 키는 20유순이다. 만일 이 큰 몸과 관세음(觀世音) 등이 나타나면, 이 보살은 가부좌하고 앉아서 손에 여의주를 가졌으리니, 그 여의주에서는 뭇 법음을 연설할 터인데 비니(毘尼)와 합치되리라.≻
만일 이 보살이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 비구의 형상이나 온갖 다른 형상으로 꿈속에서나 또는 좌선할 때에 마니주(摩尼珠)의 도장으로 그의 팔에 도장을 찍을 것이며, 그 도장 무늬 위에는 ‘죄를 없앤다[除罪]는 글자가 있으리라. 이 글자를 얻은 뒤에는 도로 대중[僧] 안에 들어가서 본래와 같이 계를 설하면 된다. 만일 우바새로서 이 글자를 얻으면 출가하는 데에 장애가 없으며, 설령 이 글자를 얻지 못한다 해도 문득 공중에서 소리가 나면서 ≺죄가 소멸되었도다. 죄가 소멸되었도다≻라고 부르짖는다. 만일 공중에서 비니를 알게 하는 소리가 없으면 꿈에 허공장이 나타나서 말한다.
≺비니보살은 아무개 비구(또는 아무개 우바새)에게 다시 참회하게 하노라. 1일 내지 7일 동안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과 허공장보살에게 예배하면
그 힘 때문에 너의 죄는 경미해지니라.≻
그리고 법을 아는 이는 다시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변소를 칠하고 지우고 깨끗이 하게 하되 8백 일 동안 날마다 말한다.
≺너는 깨끗하지 않은 일을 하라. 너는 이제 일심으로 온갖 변소를 깨끗이 하되 남이 알지 못하게 하라. 청소 후에 목욕을 하고는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허공장을 부르면서 12부 경전을 향하여 온몸을 땅에 던지고서 네가 지은 허물을 말하라.≻
이렇게 참회하기를 다시 3ㆍ7일을 지내야 할 것이니 그 때 지혜 있는 이는 친한 이들을 모아 불상 앞에서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 명호와 허공장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문수사리와 현겁(賢劫)의 보살들이 함께 증명을 하리니, 다시 갈마(羯磨)를 아뢰고 전과 같이 계를 받으라. 이 사람의 고행의 힘 때문에 죄보는 영원히 제거되며 세 가지의 보살의 업에 장애가 없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허공장을 관하는 법을 지니고서 미래 세상의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중생으로서 악을 많이 범한 이들을 위하여 널리 분별하여 해설하라.’
이 말씀을 하실 때 허공장보살이 가부좌하고 앉아서 금빛 광명을 놓아 여의주 안에서 서른다섯 분의 부처님을 나타낸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여의주 보배로써 수릉엄(首楞嚴)을 해설하며 앉아 있나이다. 이 때문에 이 여의주를 보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뜻대로 자유자재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 때 세존께서 우바리에게 명하셨다.
‘너는 이 경을 지녀라. 설사 여러 중생에게 널리 연설하지 못한다해도 다만 한 사람만이라도 비니를 지닌 이를 위할 것이며, 미래 세상에 눈이 없는 중생의 안목이 되기 위해서도 부디 잊지 말지니라.’
그러자 우바리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또 『불명경(佛名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으로서 아뇩보리를 구하는 이면 먼저 온갖 죄를 참회해야 하느니라. 비구가 네 가지 중대한 금기를 범하고, 비구니가
여덟 가지 중대한 계율을 범하고,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가 출가의 근본을 범하고, 또 우바새가 우바이의 중계를 범하고, 우바이가 우바새의 중계를 범하고서 참회를 비는 이라면 반드시 깨끗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새 옷을 입고, 마늘ㆍ파 같은 냄새나는 채소와 고추 같은 매운 채소를 먹지말고 고요한 곳에서 방안을 잘 청소한 뒤에 좋은 꽃과 번기로써 도량을 장엄하고 향을 이겨 땅에 바른다. 그리고는 49매(枚)의 번기를 달고 부처님 자리를 장엄한 뒤에 불상을 모셔 놓고 갖가지 향을 사르고 갖가지 꽃을 뿌리면서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킴으로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고통 받는 중생이 제도되기를 원하고 일체 중생에 대하여 마음을 낮추기를 마치 하인의 마음가짐과 같이 할지니라.
만일 비구가 네 가지 중대한 금기를 범하면 이와 같이 밤낮으로 49일 동안 할 것이며, 여덟 분의 청정한 스님을 모셔 놓고 7일에 한 번씩 그가 범한 죄를 들추어 아뢰되 지극한 마음으로 은근하고 정중하게 먼저 지은 바를 뉘우친다. 그리고 일심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명하면서 명호를 부르고 예배한다. 이렇게 능력과 분수를 따라 지극한 마음으로 49일을 채우면 죄는 반드시 없어질 것이며 이 사람은 청정하게 된다. 이 때에는 반드시 어떤 조짐이 나타나는데, 그가 깨어 있을 때나 꿈속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에게 수기(授記)를 주시며, 혹은 보살이 나타나 그에게 수기를 준 뒤에 도량(道場)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벗이 되기도 한다. 혹은 정수리를 어루만지면서 영원히 죄의 형상을 소멸시켜 주시기도 하고, 혹은 자기 몸이 큰 모임 안의 대중속에 있기도 하며, 혹은 그의 몸이 대중에 있으면서 설법을 하기도 하고, 혹은 법사와 행이 청정한 사문이 도량으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모든 부처님을 뵙게 하기도 하느니라. 사리불아, 비구가 죄를 참회할 때에 만일 이러한 조짐을 보면, 이 사람은 죄의 때가 소멸하였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다만 지극한 마음으로 하지 않은 이만은 제외되느니라. 비구니가 여덟 가지 무거운 죄를 참회할 때에도 비구의 법처럼
49일을 채워야 청정하게 될 것이며, 다만 지극한 마음으로 하지 않은 이만은 제외되느니라.
우바새와 우바이가 중계(重戒)를 참회할 때에는 응당 지극한 마음으로 3보를 공경해야 하며, 또 사문을 만나거든 공경 예배하고는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면서 도량으로 나아가 갖가지 공양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는 한 비구를 청하여 그에게 스스로 범한 모든 죄를 들추어내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할 것이다. 그리고 일심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명하면서 명호를 부르고 예배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7일 동안 하면 반드시 청정하게 되는데, 다만 지극한 마음으로 하지 않는 이만은 제외되느니라.
사리불아,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모든 죄를 참회하고자 하면 깨끗이 목욕하고 깨끗한 새옷을 입고 방안을 잘 청소한 뒤에 좋고 높은 자리를 펴서 불상을 모셔 놓고는 49매(枚)의 번기를 달고 갖가지 꽃과 향으로 공양하면서 서른다섯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며 밤낮으로 여섯 때[六時] 동안 참회하기를 25일 동안 하면 네 가지 무거운 죄와 여덟 가지 무거운 등의 죄가 소멸된다.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 등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대방등다라니경(大方等陀羅尼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세존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 네 가지 무거운 금기를 깨뜨렸거나, 비구니가 여덟 가지 무거운 금기를 깨뜨렸거나, 보살 또는 사미ㆍ사미니와 우바새ㆍ우바이가 이와 같은 낱낱의 모든 계를 깨뜨렸다면, 어떻게 하여야 이와 같은 죄과들을 소멸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도다, 문수여. 이러한 일을 청해 묻는구나. 그대는 자비가 뛰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도다. 그대가 만일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내 그런 악을 말하지 않았으리라.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만일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어떤 비구가
네 가지 무거운 금기를 깨뜨리고도 묵묵히 공양을 받으면서 고치거나 참회하지 않으면, 그 비구야말로 반드시 지옥의 고통을 받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제 좋은 약을 말하여 그런 비구를 구제하리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그대를 위하여 말하리라.
니바니바제 구하구하뎨 다라니뎨 니하라뎨 비마리제 사바하
離婆離婆諦 仇呵仇呵帝 陀羅離帝 尼呵羅帝 毘摩離帝 莎 呵
문수사리여, 이 다라니는 과거의 7불(佛)께서 말씀하신 바인데, 이와 같은 7불은 헤아릴 수도 없고 또한 말로도 설명할 수조차 없는 분들로서 이 다라니로써 중생을 구제하고 섭수하셨느니라. 현재의 시방의 헤아릴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7불께서도 역시 이 다라니를 독송해서 중생을 구제하고 섭수하시므로 말세에 계율을 지키지 않는 비구들로 하여금 견고하고 청정한 자리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네 가지 무거운 금기를 깨뜨렸으면 지극한 마음으로 이 다라니를 기억하여 1,400번을 외운 뒤에 한번씩 참회하되 증인이 될 수 있는 한 비구를 청하여 놓고 스스로 그의 죄를 불상을 향해 그 앞에서 진술한다. 이렇게 87일 동안 참회하면 이 모든 계의 뿌리가 도로 생기나니, 그렇지 않은 일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뇩보리의 마음이 견고하게 되지 않는 일도 있을 수 없느니라.
또 문수사리여, 어떻게 청정한 계율을 얻었는 줄 아느냐? 선남자야, 그의 꿈속에서 어떤 스승이 그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또는 부모나 바라문이나 노숙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해 주기도 하며, 혹은 음식과 의복과 침구와 탕약을 주기도 하리니, 이런 사람이면 청정한 계율에 머물고 있다고 알아야 한다. 만일 이와 같은 조짐을 보면 의당 스승에게 법답게 말해 주어야 이와 같은 죄의 허물이 없어지게 되느니라.
또 비구니로서 여덟 가지 무거운 금기를 깨뜨린 이가 그 여덟 가지 무거운 금기를 범한 죄를 없애고자 하면, 먼저 안팎의 율법을 잘 아는 한 비구를 청하여 그의 허물을 그 비구 앞에서 진술할 것이며, 그 비구는 법답게 이 안팎의 계율에서 말한 바를 가르쳐 줄지니라.
아례니바구라뎨 라뎨바 마라뎨 하마라뎨 사바하
阿隸離婆具羅帝 羅帝婆 摩羅帝 呵摩羅帝 莎 呵
선남자여, 이 다라니를 어떤 이가 독송하고 받아 지녀서 법답게 97일 동안 수행하면서 49번을 외운 뒤에 한 번씩 참회하되 스승을 따라 수행하면 이 모든 악업이 소멸될 것이니, 이렇게 하고서도 죄가 소멸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꿈속에서 위와 같은 일을 보게 되면, 그 비구니는 청정한 자리에 머물렀고 청정한 계율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또 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모든 금계를 깨뜨렸으면 역시 안팎의 율법을 잘 아는 한 비구를 청한 뒤에 불상 앞에서나 존중하는 『반야경(般若經)』 앞에서 스스로 그의 허물을 진술할 것이며, 이 비구를 향해 참회하면 이 비구는 응당 청정한 율법에서 말한 바를 가르쳐 줄지니라.
이가라뎨 가라뎨 아뎨마라뎨욱가라뎨 바라뎨바 자라가마뎨 두라자아뎨 비
伊伽羅帝 伽羅帝 阿帝摩羅帝郁伽羅帝 婆羅帝婆 座羅伽竭帝 豆羅奢竭帝 毘
자아뎨 리바아뎨 비라례아례 구라례아례 라례아례 구라례아례 뎨라례아례
奢竭帝 離婆竭帝 婆羅隸阿隸 具羅隸阿隸 羅隸阿隸 具蘭隸阿隸 提蘭隸阿隸
비라례아례 사바하
毘羅隸阿隸 莎 呵
선남자여, 나는 일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이
다라니를 말하는 것이니라. 만일 어떤 하열한 사미ㆍ사미니와 우바새ㆍ우바이가 역시 이 다라니를 독송하고 수행한다면 4백 번을 외우고 나서 한 번씩 참회하되 이렇게 차례로 47일 동안을 할 것이니, 참회할 때에는 스스로 그 허물을 진술하면서 그의 귀에 들리게 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꿈속에서 낱낱의 일을 보게 되면 이 사미 등은 청정한 자리에 머물렀고 청정한 계율을 갖추게 되었다고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또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기억했듯이 수행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 일을 닦아야 모든 계율의 경계를 지니는 것이니, 이른바 다라니의 이치를 범하지 않고, 『방등경(方等經)』을 비방하지 않으며, 남의 허물을 보지 않고, 대승을 헐뜯지 않으며, 소승을 헐뜯지 않는 것이니라.
착한 벗을 여의지 않고 항상 중생에게 묘한 행을 말하는 데에도 다섯 가지 일이 있나니, 천상 세계에서 본 바를 말하지 않고, 행한 바의 좋고 추한 일들을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날마다 세 때[三時]로 땅을 고르게 해야 하고, 또한 날마다 한 번씩 외워야 하며, 날마다 한 번씩 참회해야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을 바로 행하는 이는 그의 업으로 계율을 범하지 않느니라.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비구는 이 법을 행하는 속인[白衣]과 더불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 것이요, 또한 귀신을 가벼이 여기지도 말 것이며, 귀신의 묘(廟)를 파괴하지도 말 것이며, 가령 어떤 사람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해도 역시 업신여기지 말 것이며, 또한 그 사람과는 왕래하지도 말 것이니라.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을 바로 행하는 이는 그의 업으로 계율의 경계를 보호하느니라.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방등경』을 비방하는 이와는 왕래하지 말 것이요, 계율을 깨뜨린 비구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5계(戒)를 깨뜨린 우바새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요, 사냥꾼과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늘 비구의 허물을 말하는 사람과도 왕래하지 말 것이니라.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가죽을 벗기는[腦皮] 이와는 왕래하지 말 것이요, 쪽으로 물들이는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누에를 치는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요. 기름 짜는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쥐의 집을 파는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니라.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남의 것을 빼앗는 이와는 왕래하지 말 것이요, 남의 것을 훔치는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승방(僧坊)을 태운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요, 승기물(僧祇物)을 훔친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나아가 비구의 물건을 훔친 이와도 왕래하지 말 것이니라.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돼지ㆍ양ㆍ닭ㆍ개를 기르는 집에는 왕래하지 말 것이요, 별을 보고 점치는 집에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음녀(婬女)의 집에도 왕래하지 말 것이요, 과부의 집에도 왕래하지 말 것이며, 술 파는 집에도 왕래하지 말 것이니라.
이와 같은 일곱 종류의 다섯 가지 일을 바로 행하는 이는 그의 업으로 경계를 보호하느니라.’”
(3) 위순부(違順部)
대저, 네 가지 무거운 죄와 다섯 가지 역죄(逆罪)는 부처 바다의 죽은 시체요 소승의 경률(經律)은 마치 목을 베는 것과 같다. 이미 계율에서 열어 주는 인연이 없으면 참회해도 본래대로 회복되지 않지만 『대승경(大乘經)』에 의거하여 씻어버리는 것을 허락하였으니 마치 말라죽은 나무에 주문을 외워서 도리어 꽃과 열매를 맺게 한 것과 같다. 비록 이런 참회를 허락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큰마음을 내어 가르침을 따라서 봉행하기를 마치 죽은 이가 도로 살아난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보살[大士]의 큰 행은 그 이치가 헛되지 않나니, 몸의 계율과 마음의 지혜로 항상 닦아 익힐 것을 지향한 것이다. 이미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해서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격려하면, 그 마음의 생각조차도 오히려 비거늘 죄가 어찌 일정한 성품이 있겠는가? 이제 과약(科約)과 행업(行業)과 조례(條例)의 순종과 어김에는 선ㆍ악과 죄ㆍ복의 두 가지를 다 갖춰 겸했으므로 먼저 악한 업에 나아가 어김과 순종을 논한다면 열반을 어기고 생사에 순종하려 하는 것이다. 이 어김과 순함을 가리는 데는 간략하게 열 가지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니, 죄가 있어서 수행하는 이는 모름지기 업의 모양과 분량과 일을 알아서 행하여야 한다.
첫째, 무명(無名)의 뒤바뀜으로 번뇌에 취하고 헷갈리면 경계를 접촉하면서 집착을 내고 흐리멍덩해져서 깨닫지 못하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둘째, 안으로 이미 어리석어서 취했고 밖으로 나쁜 벗에게 헷갈림을 받았으면 그릇된 법을 따르기 때문에 나쁜 마음이 더욱 치성하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셋째, 안팎의 인연이 갖추어져서 스스로 자기의 선행을 깨뜨리고 또한 남의 선행도 깨뜨리면 모든 착한 일에 대해 따라 기뻐하는 마음이 없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넷째, 이미 선을 닦지 않고 악만을 따르고 있으면 3업(業)을 멋대로 지으면서 나쁜 일마다 하지 않음이 없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다섯째, 지은 바 악한 일이 비록 넓고 많지 않을지라도 나쁜 마음이 두루하여 있으면 온갖 즐거움을 빼앗고 온갖 괴로움을 부여하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여섯째, 나쁜 생각이 계속되어 밤낮으로 끊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순전히 악만 생각하는지라 애초부터 쉬는 일이 없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일곱째, 결점을 숨기고 죄과를 감추면 속으로는 간사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밖으로는 어질고 착한 척하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여덟째, 몸과 형색이 강건해서 ‘나는 언제나 생존할 것이다’라고 여기면 형상을 더하여 죄를 지으면서 나쁜 길[惡道]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아홉째, 완악하고 사납고 미련하고 저돌적이면 스스로 부끄러워함도 없고 남에게 부끄러워함도 없어서 행에 수치심이 없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열째, 인과(因果)를 부정하여 선근(善根)을 믿지 않으면 모든 선근을 끊은 일천제(一闡提)가 되어서 구제할 수 없나니, 그 까닭에 죄를 짓는 것이다.
위와 같은 열 가지 마음은 무명이 근본이 되어 끝없이 증가하다가 마지막에는 일천제가 되어서 나고 죽음에 따라 들어가는데, 어두움으로부터 어두움으로 들어가서 번뇌의 업을 지어 해탈할 기약이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명의 어기고 순종하는 마음이라 한다. 이미 나고 죽음에 있는
죄악을 범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부처님께서 큰 자비로 더욱 보살펴 주셨으니, 허물 고치는 법을 세우고 해탈하는 문을 열어서 나로 하여금 선근이 거듭 자라날 수 있게 하셨다. 마치 임금이 왕위에 올라서 죄를 용서하고 형벌을 완화해 주는 것과 같으니, 장차 참회로 제거하여 선을 닦고 악을 고치는 것이다.
선행 중의 어김과 순종에도 열 가지 마음을 갖추고 있나니, 항상 생각을 이어서 앞의 죄를 다스리고 뒤를 따라 본보기를 세움으로서 하나하나 관찰하여 깨뜨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허물을 뉘우치면서 행을 세우는 근본이다.
첫째, 인과를 바르게 믿고 헷갈리지 않으면서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죄를 얻는 것이다. 비록 짓는 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과보(果報)는 상실되지 않고, 비록 생각생각이 소멸한다 하더라도 업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요 지혜는 능히 도에 들어가는 것이니, 지혜와 믿음은 뭇 선의 근본인 것이다. 이 바른 믿음으로써 믿지 않는 일천제의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니, 이 마음을 갖추어야 비로소 참회를 일으킬 수 있다.
둘째, 죄를 뉘우치는 긴요한 방도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그 근본이 된다. 나 스스로 이 죄를 부끄러워하면서 남의 무리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의 죄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서 천벌(天罰)을 받지 않나니, 이것이 깨끗한 법[白法]이다. 또한 이는 3승(乘)을 수행하는 사람의 제일의천(第一義天)이요 세간을 벗어나는 깨끗한 법이다. 이 부끄러워함으로써 부끄러워함이 없는 더러운 법[黑法]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니, 반드시 이런 마음을 갖추어야 참회 뒤의 조례(條例)를 행할 수 있다.
셋째, 무상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목숨은 마치 물거품과 같아서 한 번 숨이 꺼지면 돌아오지 않고 업을 따라 유전하는 것이니, 무상함을 깨닫고 나면 먹을 때나 쉴 때나 한가함이 없다. 이 무상으로써 항상하다 믿으면서 나쁜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넷째, 다른 이 앞에서 죄의 경중을 들추어 말한다. 죄를 들추어내기 때문에 즉시 시들어버리는 것이 마치 나무 뿌리가 드러나면 가지와 잎이 시들어 떨어짐과 같으니, 이 들추어냄으로써 감춘 것을 도리어 깨뜨리고 청정한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다섯째, 상속하는 마음을 끊고 필경 악을 버린다. 결단코 용맹을 내기를
마치 굳센 칼과 같이 하니, 이것이 맹세코 악을 끊음으로써 악한 기억이 상속되는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여섯째, 보리의 마음[菩提心]을 낸다. 온갖 괴로움을 두루 구제하고 널리 온갖 즐거움을 주는 이 마음이 크고도 넓어서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는 대승의 보리의 마음으로써 두루한 악의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일곱째, 공을 닦아서 허물을 보완하고 3업을 힘써 다잡으면서 정진을 쉬지 않는다. 이렇게 공을 닦고 덕을 세움으로써 3업을 닦지 않고 무고하게 악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여덟째, 바른 법을 수호하고 외도를 생각지 않는 것이다. 삿된 이들이 불법을 파괴하면 맹세코 광명을 드러내서 오래도록 머물고자 하니, 이 수호로써 온갖 착한 일을 없애는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아홉째, 시방의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과 신통과 지혜를 생각한다. 우리를 가호하고 우리의 고통을 가엾이 여기면서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시려고 하는 청정하고도 좋은 약이니, 이것으로써 나쁜 벗을 생각하는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열째, 죄의 성품이 공임을 관찰한다. 죄는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므로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죄는 없을 수 없을 것이고, 나의 마음이 저절로 공이라면 공이 어떻게 있겠는가. 착한 마음 역시 그러하여 죄와 복은 주인이 없으며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고 중간도 없다. 항상 스스로 있지 않고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라서 이름 붙여 마음이라 하고, 다만 이름이 있을 뿐이라서 이름하여 죄와 복이라 한다. 이처럼 이름일 뿐이고 이 이름이 곧 공이므로 근원으로 돌아가고 본래로 돌이키면 마침내 청정한 것이다. 이 죄의 성품이 공임을 관찰함으로써 무명으로 뒤바뀌어 집착하는 마음을 도리어 깨뜨리는 것이다.
무명이 소멸되기 때문에 모든 행(行)이 소멸하고, 모든 행이 소멸되기 때문에 생사가 소멸하는 것이다. 이것을 12인연(因緣)의 큰 나무가 파괴된다 하고, 또한 괴로움[苦]과 쌓임[集]의 씨와 열매 양쪽의 속박에서 해탈한다고도 하며, 또한 도(道)와 사라짐[滅]의 두 가지 진리가 나타난다고도 한다.
이처럼 방등(方等)한 관(觀)의 지혜가 해와 달처럼 비추게 되고 중생은 이 중한 은혜를 만나기 때문에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된다. 이로써 큰 자비를 표시하는 것이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4) 회의부(會意部)
【문】 경전에서는 참회로 죄업을 소멸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이치를 관찰하는 지혜의 마음만으로 모든 업을 소멸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답】 참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미혹된 마음으로 사참회(事懺悔)에 의거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불상 앞에서 도를 행하고 예배 공경하고 발원하면서 기한을 약정하여 죄악을 없애는 것이다. 둘째는 이 지혜의 마음으로 이참회(理懺悔)에 의거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몸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번뇌를 없애는 것이다.
다만 지은 업에는 경함이 있고 중함이 있을 뿐이다. 만일 경한 업을 논한다면 사참회로도 소멸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중한 업을 논한다면 바뀔 수 있는 것은 역시 중한 것을 바꾸어서 경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3악도의 업을 인간 안에서 가벼이 받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십주바사론(十住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죄를 참회하면 가벼워지고 시간을 단축하여 받는다.”
그러므로 사참회로도 중한 것을 바꾸어서 경하게 하므로 과보를 이끄는 것은 정해지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번뇌를 끊지 않았기 때문에 유루(有漏)의 힘은 미약하고 업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는 반드시 과보를 받는 것이니, 이처럼 온전한 것도 아니요 정해 있지도 않은 것이므로 지금 짐짓 이치를 관찰하여 번뇌를 끊는다는 것을 치우치게 강조한 것이다.
혹(惑)에는 윤업(潤業)이 없으므로 멸[滅:본문은 업(業)이나 이는 멸업 (滅業)임]은 생(生)을 끌어오지 않고 끊는 바의 처소에 따라서 옛 업은 영원히 다하며, 현재에 짓는 업 역시 생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현재에 지었던 선악이 곧 마지막이 되므로 과보를 끌어당기는 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런 이치에 의거하기 때문에 특히 치우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혜 있는 이는 과거ㆍ현재의 3악도의 중한 업을 끊고자 해서 곧 이치를 관찰하여 영원히 악도(惡道)를 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니, 이 때문에 첫째 과위[初果]를 이름하여 저채(觝債)라 한다. 그러므로 『섭론(攝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괴로움을 주는 무명이 없으면 모든 행(行)이 생기지 않고 또 행이 이미 생겼어도 도를 닦음이 없으면 무명의 모든 행은
성숙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수다원(須陀洹)의 사람은 생을 받는 과보의 업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아나함(阿那含)의 사람은 아래 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했으며,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욕계(欲界)의 모든 업을 갖추었어도 아나함과를 얻으면 뒤에 받을 업을 바꾸어서 현재에 그것을 받는다. 아라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치를 관찰하는 것이 바로 진실한 참회임을 알 것이다.
『화엄경(華嚴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온갖 업장(業障)의 바다는
모두가 망상(妄想)에서 생기는 것이니
만일 참회를 하고자 하는 이는
진실한 모습을 구해야 한다.
또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말하였다.
“백천만 겁 동안 오래오래 익힌 번뇌의 업이라도 하나의 실다움[一實]으로써 관찰하면 곧 모두가 소멸한다.”
또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보살이 일체 중생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임을 볼 수 있으면 마침내 업장의 죄를 소멸시킬 수 있다.”
또 『보현보살경(普賢菩薩經)』에서 말하였다.
“마음을 관찰하면 마음이 없으니, 뒤바뀐 생각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의 마음은 망상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니, 마치 공중의 바람이 의지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성품을 취하여 모습을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직 그 이치를 깨치지 못했다면 허망한 업이 없지 않거니와 나중에라도 만일 그 이치를 깨치면 앞의 업은 곧 소멸되어 머무를 만한 법이 없기 때문에 생을 초래하지 않는다. 바르게 이치를 관찰할 때에는 의당 ‘모든 장애는 본래 공적(空寂)할 뿐이어서 항상 모든 부처님과 동일한 참성품이요, 항하 모래같이 많은 수의 만덕(萬德)을 갖춘 법계(法界)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무명의 장애가 두꺼워서 볼 수 없을 뿐이니, 볼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 앞에서 계율을 깨뜨리고 도를 어기면서 10악(惡)과 5역(逆) 등의 온갖 죄과를 짓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집 안에 범부와 성인이 같이 있으면서 공양을 하는데, 여러 소경들은 눈이 없기 때문에 끝내 대중 앞에서 갖은 악업을 짓고 있는 것과 같다. 이때 어떤 지혜 있는 사람이 그들을 너무 가엾게 여겨서 마침내 소경들에게 말하였다.
‘이 집에는 범부와 성인과 스님들이 모두 계시거늘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 앞에서
공공연히 악을 짓고 있는가?
이 말을 들은 소경들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 몸둘 바를 모른 채 곧 스님들에게 아뢰었다.
‘제자 아무개는 온 집 안에 계신 스님들 공순히 아뢰옵니다. 제자들은 복이 없어서 어릴 때부터 눈이 멀었으니, 이 때문에 비록 스님들과 한 집 안에 같이 있었으면서도 볼 수 없었사오며,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드디어 스님들 앞에서 모든 허물을 멋대로 지었나이다. 이제 착한 벗의 깨우침을 받고서야 비로소 스님들이 계셨음을 알았사오니, 부끄럽고 두려워서 다 아뢸 수도 없나이다. 저희들은 이제 온 집 안에 계신 스님들께서 가엾이 여겨 용서해 주길 바라오니, 스님들께서는 저희들의 귀의와 지성껏 참회하는 것을 받으옵소서.’
그러나 이 소경들이 비록 눈이 없어서 스님들을 보지 못했어도 스님들이 먼저 보신 뒤에 그들의 참회를 아는 것처럼, 우리들도 역시 옛날에 죄를 짓고 있었을 때에는 언제나 부처님 앞에 있었으나 지금 죄과를 참회하려고 할 때 비로소 모든 부처님께서 다 보셨음을 알게 된 것과 같다. 다만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3달(達)의 신령한 지혜와 5안(眼)의 밝은 비춤으로 모두 다 알아서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으니, 안팎의 밝고 어두움을 마치 손바닥 안의 구슬 보듯 하시면서 근기에 따라 응하시되 때를 어기지 않을 뿐이다.
또 죄의 연[罪緣]은 제 성품이 없건마는 다만 허망한 생각의 인연 때문에 헛되이 그 괴로움을 받고 있을 뿐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마음이 더럽기 때문에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중생이 깨끗하다. 허망한 생각이 더러운 것이요 허망한 생각이 없으면 깨끗한 것이다. 죄의 성품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으며, 마음 역시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그 마음이 그러한 것처럼 죄의 더러움도 그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의 성품이 모두 공임을 추궁해서 지혜의 불을 밝히면, 무명의 어두움이 다하면서 무시 이래로 지었던 모든 악은 마치 캄캄했던 방이 밝은 등불을 한 번 비추면 어두웠던 것이 모두 없어져버리는 것처럼 참회로 인해 해소된다. 이는 캄캄한 어둠이 와서 무시 이래의
등불을 밀쳐버리는 것이 아니다.
밝음[明]과 어두움[闇]과 앎[解]과 미혹[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이건만 원인에 헷갈리고 결과를 그릇 알아서 모든 잘못된 일들을 짓는 것이 마치 어두운 것과 같고, 이제 참회로 없애고자 해서 불성(佛性)의 힘에 의거하여 바른 소견의 불을 켜는 일들은 마치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등불이 일어나면 어두움은 없어지는 것이요 앎이 생기면 미혹은 없어지는 것이니, 그 뜻[義]이 소멸되지 아니함이 없다. 마치 서리와 눈은 햇빛을 기다려서 없어지는 것과 같고, 질병은 좋은 약을 기다려서 없어지는 것과 같으며, 방향을 잘못 알면 깨침을 기다려서 바로잡는 것과 같고, 악한 일들은 섶나무들이고 참회는 큰불로서 그것을 잠깐만에 태워 없애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마치 무명의 꽃이 천 근(斤)이라도 순금 한 냥(兩)보다 못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은 죄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조그마한 선행보다는 못하다. 이미 부처님 앞에서 허물을 지은 것이 도리어 소경이 스님들을 향하여 참회한 것과 동일하니, 죄는 제 성품이 없어서 인연 따라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중한 죄를 지었어도
지은 뒤에 깊이 스스로를 책망하고
참회하면서 다시 짓지 않으면
근본의 업[根本業]을 능히 뽑느니라.
이미 진실과 거짓을 알았다면 반연되는 죄업도 일에 따라서 생긴 줄 알 것이다. 미혹된 정(情)과 가로막힌 이해로 미혹되어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죄가 있으니, 마치 구름이 해를 가리운 것과 같고 어두움이 방을 캄캄하게 하는 것과 같다. 지금의 깨친 마음은 이치를 반연하여 생기는 것이니, 알음이 일어나고 미혹이 없어짐은 마치 광명이 어두움을 없애는 것과 같다. 앞의 마음으로 비록 중한 죄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뒤의 생각으로 이치를 관찰하면 허망한 마음은 곧 사라지고 망령된 경계는 생기지 아니하니, 오래오래 쪼이기를 마지않으면 업의 종자는 저절로 없어진다. 그러므로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앞의 마음으로 악을 지음은 마치 구름이 햇빛을 가리운 것과 같고, 뒤의 마음으로 선을 일으킴은 마치 횃불이 어두움을 녹이는 것과 같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마치 백 년 동안 입은 더러운 옷을 하루 동안에 빨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이, 백천 겁 동안에 쌓은 모든 착하지 않은 업을 불법의 힘으로써 잘 따르고 생각하면
하루의 한 시간 만에 모두 소멸시킬 수 있다.”
(5) 의식부(儀式部)
이 하나의 문[一門]을 수행하는 이가 참회하고자 하면, 반드시 3보의 수승한 대경 앞에서 한쪽 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낸 채 수건과 신을 벗고 (여인은 어깨를 드러내려고 애쓸 필요 없고 복장만으로 위의를 차린다) 합장하고 공경해야 하며, 자기 마음으로 공경하는 나이 많은 대덕(大德)을 청한 뒤에 먼저 시방의 3보를 받들어 청하여 좋은 인연으로 삼으면서 옛 사람이 말한 게송으로 말해야 한다.
시방의 온갖 부처님께 귀명하옵고
끝없이 청정한 깨달음의 바다에 머리 조아리오며
또한 묘한 법의 불가사의한
진여(眞如) 자성(自性)의 청정한 법장(法藏)에 예배하나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한 제자의 자리에 머물러서
도를 얻고 과위를 얻은 모든 성인께
저는 몸과 입과 청정한 뜻으로써
모두에게 각각 귀명하며 예배하나이다.
그러한 뒤에 참회주(懺悔主)를 청하며 말한다.
“대덕께서는 한 마음으로 기억하십시오. 제자 아무개는 지금 대덕을 청하여 참회 아사리(阿闍梨)로 삼고자 하니, 원컨대 대덕께서는 저를 위해 참회 아사리가 되어 주십시오.. 저는 대덕께 의지하여 참회하리니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소서.”[한 번 해도 되며, 세 번 하면 더욱 좋다.]
둘째로 참회사는 그로 하여금 앞서 말한 죄의 성품의 경하고 중함을 알게 할 것이니, 자세한 것은 처음의 뜻과 같다.
논(論)에 의거하건대 참회에는 통틀어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경상역탈참(更相易脫懺)이니, 이는 범부의 하품(下品) 참회법이다. 둘째는 영단상속참(永斷相續懺)이니, 이는 범부의 상품(上品) 참회법이다. 셋째는 초업참(焦業懺)이니, 이는 현인(賢人)의 참회법이다. 넷째는 멸업참(滅業懺)이니, 이는 성인의 참회법이다.
앞의 두 가지는 작법(作法)에 의한 참회로서 상대에 맞서서 없애는 것이니, 업이 소멸하기 전에는 일단 잠복해 있으면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치에 의하여 관찰하지 않고 아직 성인의 지위에 들지 못한지라 비록 잘못은
면하게 되어서 미래의 나쁜 갈래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업의 성품은 항상 존재하므로 훈습으로써 종자를 이룬다. 그러므로 마치 사람이 나무를 찍을 때 가지와 줄기만을 버리고 뿌리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과 같다.
뒤의 두 가지 참회는 반드시 공을 반연하여 이치를 깨달음으로서 마음과 경계가 비고 융화해야 하는데, 항상 뜻을 지어 진리를 보면서 점차로 수행한 연후에야 소멸하게 된다. 지금은 우선 두 번째인 범부의 영단상속참에 의거하여 업을 눌러 행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 항상 착한 벗을 의지하여 큰 서원을 세우면 임종할 때에는 역시 원에 따라 시방의 정토(淨土)에 태어나서 영원히 3악도(惡道)를 여읠 수 있다. 사바(娑婆)세계에 머무르면서 두려운 마음과 겁이 많아서 뜻이 견고하지 못하여 물러나려고 하면, 의당 다섯 가지 법으로 도와서 후회스럽지 않는 결과를 얻어야 한다. 첫째는 믿음[信]이요, 둘째는 스스로 부끄러워함[漸]이며, 셋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함[愧]이요, 넷째는 선지식(善知識)이며, 다섯째는 계(戒)를 숭앙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첫째, 믿음이란 도(道)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니, 온갖 착한 법은 이로 인해 생긴다. 둘째, 스스로 부끄러워함이란 스스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셋째, 남에게 부끄러워함이란 남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또 스스로 부끄러워함[漸]이란 안에서 스스로 남에게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요, 남에게 부끄러워함[愧]이란 하늘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기도 하니,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있기 때문에 부모와 스승과 어른과 온갖 범부ㆍ성인을 공경하게 되는 것이다. 선지식이란 바로 범행(梵行)이 온전한 이요, 계(戒)란 바로 그대들의 큰 스승이기 때문이다. 3보는 바로 범부와 성인이 의지할 바라 모름지기 귀의하고 공경해야 된다. 계사(戒師)는 그 때에 임하여 갖가지로 깨우치고 유도함으로서 큰마음을 일으켜 영원히 이후의 범함을 끊게 하는 것이니, 그 때에 임하여 경계하고 힘써야 할 것을 미리 다 진술할 수는 없다.
(6) 세참부(洗懺部)
『사리불회과경(舍利弗悔過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아라한의 도를 구하고자 하거나, 벽지불의 도를 구하고자 하거나, 부처님의 도를 구하고자 하거나,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면, 항상 새벽ㆍ한낮ㆍ해가 질 때ㆍ초저녁ㆍ밤중 및 닭이 우는
때에 씻고 양치질하고 옷을 바로 입은 뒤에 시방의 부처님께 합장 예배하고는 향하고 있는 데서 응당 허물을 참회해야 한다.
≺저 아무개는 전생의 수 없는 겁으로부터 범한 허물과 금생에 와서 음탕하게 논 일을 범한 것과 성을 낸 일을 범한 것과 어리석은 일을 범한 것과, 부처님을 알지 못한 때와 법을 알지 못한 때와 비구 스님을 알지 못한 때와 선악을 알지 못한 때에 몸으로 범한 허물과 입으로 범한 허물과 마음으로 범한 허물과, 뜻으로 부처님을 해치고자 하고 경의 도를 미워하고 비구 스님들과싸운 일과 아라한을 살해하고 부모를 살해한 일을 참회합니다. 또 몸의 세 가지와 입의 네 가지와 뜻의 세 가지를 범한 일로 스스로 살생하고 남을 시켜 살생하게 하고 남이 살생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도둑질을 하고 남을 시켜 도둑질을 하게 하고 남이 도둑질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사람을 속이고 남을 시켜 사람을 속이게 하고 남이 사람을 속이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이간질을 하고 남을 시켜 이간질을 하게 하고 남이 이간질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욕설을 하고 남을 시켜 욕설을 하게 하고 남이 욕설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시켜 거짓말을 하게 하고 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질투하고 남을 시켜 질투하게 하고 남이 질투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탐욕을 부리고 남을 시켜 탐욕을 부리게 하고 남이 탐욕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자신이 믿지 않고 남을 시켜 믿지 않게 하고 남이 믿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선을 지으면 선을 얻고 악을 지으면 악을 얻는다는 것을 믿지 않고 남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을 참회합니다.
또 스스로 부처님을 모신 절의 재물을 훔치고 비구승의 재물을 훔치고 남을 시켜 훔치게 하고 남이 훔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스스로 저울을 가볍게 하고 말[斗]을 작게 하고 자[尺]를 짧게 하여서 남을 속이기도 하고 저울을 무겁게 하고 말을 크게 하고 자를 길게 하여 남을 침해하기도 하고 남이 사람을 침해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스스로 일부러 도둑이 되고 남을 시켜 도둑이 되게 하고 남이 도둑이 된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과, 스스로 악역(惡逆)을 하고 남을 시켜 악역을 하게 하고 남이 악역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대신하여 기뻐한 일을 참회합니다.
또 스스로 유전하면서 지옥 안에 있을 때나 짐승 안에 있을 때나 벽려(薜荔) 안에 있을 때나 인간 안에 있을 때나 천상 안에 있을 때, 이 다섯 가지 갈래에 태어나 있을 때에 범한 허물과,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스승에게 효도하지 않고 착한 벗을 공경하지 않고 착한 사문과 도인을 공경하지 않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은 일과, 부모를 업신여기고 스승을 업신여기고 아라한의 도를 구하는 이를 업신여기고 벽지불의 도를 구하는 이를 업신여긴 일과, 또 그들을 비방하고 질투한 일과 부처님 길을 보면서 그르다 하고 나쁜 길을 보면서 옳다고 하며 바른 것을 보면서 바르지 않다 하고 바르지 않은 것을 보면서 바르다고 말한 일 등, 제가 지은 바 모든 허물들을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용서를 빌면서 참회하나니, 저로 하여금 금생에는 이 허물과 재앙을 범하지 않게 하고 저로 하여금 후세에도 이 허물과 재앙을 입지 않게 하옵소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자비를 구하는 이를 어느 부처님께서든 환히 보시고 들으실 터이므로 감히 부처님 앞에서 속이지 못하오니, 저에게 있는 허물을 감히 감추지 않사옵고 지금으로부터는 감히 다시는 모든 악을 범하지 않겠나이다.≻’
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3악도에 들고 싶지 않다면 지은 바 허물을 모두 참회해야 하고 감추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3승의 도과(道果)를 얻고자 하면 모든 허물을 참회해야 하고 감추지 말아야 한다.’
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설령 천하의 남자와 여인을 모두 아라한과
벽지불이 되게 한 뒤에 어떤 사람이 천하의 아라한과 벽지불을 공양하기를 천일(千日) 동안 한다 해도『 회과경(悔過經)』을 지니면서 밤낮으로 각각 세 번씩 독송하여 얻는 그 하루의 복이 천하의 아라한과 벽지불을 공양한 복보다 백 배ㆍ천 배ㆍ만 배ㆍ억 배 더 뛰어나느니라.’”
또 『보현관경(普賢觀經)』에서 말하였다.
“6근(根)을 참회하는 본래의 뜻은 업장 때문이니, 6근이 청정하지 않으면 10악(惡)을 갖추어 짓고 처처에서 탐착하며 6정근(情根)에 두루 한다. 그리하여 이 6근의 업의 가지와 줄기와 꽃과 잎이 태어나는 삼계(三界)의 온갖 곳마다 가득 차서 무명을 더욱 자라게 한다. 이제 참회하고자 하면 널리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청한 뒤에 『대승경』을 독송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사무치게 원을 세워서 몸과 마음의 온갖 악이 파괴되기를 빌면 찰나찰나 동안에 보현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된다. 그래서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눈에 악이 있어서
업장으로 눈이 청정하지 않으면
다만 대승을 독송하면서
제일의(第一義)만을 생각하여라.
이를 눈에 대해 참회한다 하니
착하지 않은 업이 다하게 된다.
귀로 산란한 소리를 듣고
화합의 이치를 무너뜨리면
이로 말미암아 미친 기가 일어나서
마치 어리석은 원숭이와 같아진다.
다만 대승경을 독송하면서
법공(法空)과 무상(無相)만을 관찰하면
영원히 온갖 악을 여의게 되어서
천이(天耳)로 시방을 듣게 되리라.
코로 모든 냄새에 집착하면서
물듦[染]을 따라 모든 접촉 일으킨다면
이와 같이 미치고 헷갈린 코로는
물듦 따라 모든 번뇌[塵]를 내게 되리라.
만일 대승경을 독송하면서
법의 여실(如實)한 끝을 관찰하면
모든 악업을 영원히 여의고
후세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라.
혀로는 다섯 가지 나쁜 말 등
착하지 않은 업을 일으키나니
만일 스스로 순조롭게 다스리려고 하면
응당 부지런히 인자한 마음 닦아서
법의 참되고 적멸한 뜻을 생각하여야
모든 분별의 모양이 없으리라.
마음은 마치 원숭이와 같아서
잠시도 정지하는 때가 없나니
만일 꺾어서 복종시키려 하면
의당 대승경을 독송하면서
10력(力)과 4무외(無畏)로 이루어진
부처님[大覺] 몸을 생각해야 한다.
몸은 기관(機關)의 주인이 되는 것이
티끌이 바람 따라 구르는 것과 같나니
여섯 도둑[六賊]이 유희하는 가운데
자유자재해서 거리낌이 없다.
만일 이러한 악을 소멸하고
모든 진로(塵勞)를 영원히 여의어
당장에 열반의 성(城)에 처해서
안락하고 마음이 담박(澹怕)하고자 하면
다만 대승경을 독송하면서
모든 보살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한량없고 수승한 방편으로
생각을 따라 실상(實相)을 얻어야 한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법을
6정근(情根)이라 이름하나니
온갖 업장의 바다는
모두가 망상(妄想)에서 생기게 된다.
만일 이를 참회하려 하는 이가
단정히 앉아서 실상을 생각하면
뭇 죄는 마치 서리와 이슬이
지혜의 해[慧日]로 녹아 버리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응당 지향(志向)하는 마음으로
6정근을 참회해야 한다.
自述
나 스스로 온갖 경론(經論)을 부지런히 검토하였고 비록 또 사람들에게 총체적으로 죄를 참회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기는 하나, 글이 많고 흩어져 없어지기도 해서 다 갖추어 기록할 수가 없었다. 앞의 두 경전의 참회문을 가져다가 조금 요약하여서 치우치게 인용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가만히 탐색해 보면, 무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은 허물은 극히 많아서 그 이름과 수량이 티끌과 모래와 같으니, 설령 앞의 참회에 의거하고 또 씻어버린다 해도 두루 청정하게 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이제 아래에 다시 수(隋)나라 시대의 담천(曇遷)ㆍ영유(靈裕) 두 법사가 지은 10악(惡)을 참회하는 글을 싣나니 두루 미치기를 바란다. 비록 이 글을 범부가 지었다손 치더라도 글과 뜻은 모두가 『지지경(地持經)』과 논(論)의 성스러운 뜻을 따서 지은 것이니, 이에 의거하여 수행하면 모두가 부처님 뜻에 합치된다. 고금의 대덕들이 지은 참회문이 많이 있어서 두루 비교하여 알아보았으나, 아직은 아래에 든 두 가지 글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었다.
10악을 참회하는 글[十惡懺文]
-담천(曇遷) 법사가 지은 글이다.-
제자 아무개는 널리 일체 법계의 중생을 위하여 무시 이래로 지금까지 지은 죄업을 모두 다 들추어내오리다. 혹은 임금과 어버이와 부처님과 아라한을 살해하기도 하고, 무기로 정벌하면서 창ㆍ칼의 날로써 살육하기도 하고, 날짐승ㆍ길짐승을 사냥하기도 하고, 벌레와 고기를 잡기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통치할 때에 나쁜 왕이 되어서 형벌을 마구 잘못 내리기도 하고,
나아가 영(靈)이 있고 성품을 받아 꿈틀거리는 모든 중생이었을 때도 해치고 죽이고 상해하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과 매ㆍ수리였을 때도 서로서로 잡아먹기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부처님 물건과 법의 물건과 스님의 물건과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관청에 있을 때에는 일을 처리하면서 돈을 거둬들이고 재물을 받기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자기 아내 아닌 이와 음행을 하기도 하고, 친척이나 승니(僧尼)를 가리지 않고 멋대로 애착과 미움을 일으키면서 망령된 모양으로 투기(妬忌)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거짓말로서 임금과 어버이를 속이기도 하고,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으면서 안다거나 보았다고 하기도 하고, 귀신을 핑계삼아 세속을 속이기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헐뜯음과 아첨으로 이간질을 하여 양쪽을 싸우게 하기도 하고, 이쪽의 나쁜 말을 저쪽에다 일러바치고 저쪽의 나쁜 말을 이쪽에다 말하기도 하고, 임금과 신하의 사이를 떼어놓고 골육(骨肉)을 이간시키는 등 온갖 화합이 이로 말미암아 파괴되기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하는 말마다 거칠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기도 하고 꾸짖기를 제멋대로 하고 욕설을 입에 담고 지내기도 했었을 것이옵니다. 혹은 바르지 않은 말로 발라 맞추면서 착한 것을 나쁜 것이라 하고, 구린내 나는 것을 향기롭다 하고, 잘한 일을 잘못한 일이라 하고, 흰 것을 검다고 하는 등, 그릇된 말과 속이는 말로써 남을 조롱하기도 했을 것이옵니다.
혹은 탐욕만을 지향하면서 구하고 취할 뿐 조절하지 않기도 하고, 성을 많이 내어서 스스로 속박되기도 했을 것이며, 혹은 바른 이치를 모르고 삿된 소견에 미혹되어 불ㆍ법ㆍ승을 비방하며 인과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선행을 닦으면 인간ㆍ천상의 낙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고, 나쁜 짓을 하면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기도 했을 것이오며, 혹은 이 몸을 까닭 없이 얻었다고 여기기도 했을 것이오며, 혹은 미래에는 인과가 전혀 없다고 여기면서 탑과 절을 헐고 경전을 불태우기도 하고, 불상을 녹이고 깎아 내어 금과 동을 가져가기도 하고, 가람(伽藍)을 더럽히면서 금계를 어기기도 했을 것이오며, 혹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5신채(辛菜)를 먹는 등, 어리석고 삿된 소견으로 짓지 않은 악이 없었을 것이옵니다.
무릇 여기서 말한 열 가지 악업은 자신이 짓기도 하고 남을 시켜 짓게 하기도 하고 남이 짓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도 했었을 것이므로 무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틀림없이 이런 죄가 있었을 것이오니, 이런 죄의
인연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과 축생과 아귀에 떨어지게 하였사옵니다.
설령 인간에 태어난다 해도 수명이 짧고 병이 많으며 항상 비천한 곳에 태어나서 가난하고, 남과 함께 재물을 지녀도 자재하지 못하며, 아내는 어질지 않고 두 아내가 서로 다투며, 비방을 많이 듣고 남의 속임수에 빠지며, 모든 권속은 폐악해서 마구 부수고 좋은 말을 못 만나면서 늘 나쁜 말만 들으며, 무릇 말을 하면 항상 다툼이 있고, 가령 참말을 한다 해도 남이 신용하지 않으며 나오는 말마다 바르지 않고, 재물을 한없이 탐내는 데도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늘 남들에게 자신의 잘 잘못을 엿보이고 착하지 않은 벗이 함께 침해하며, 항상 삿된 소견을 가진 집안에 태어나고 늘 아첨과 굽은 마음을 품고 있게 되나이다.
무시 이래로 지은 이 열 가지 착하지 않은 업은 모두가 번뇌와 삿된 소견에서 생긴 것이오니, 이제 불성(佛性)의 바른 소견의 힘에 의지하여 짐짓 들추어서 참회하면 모두가 제거되어 소멸될 것이옵니다. 마치 밝은 구슬[明珠]을 흐린 물에 넣으면 그 구슬의 위덕으로 물이 곧 맑아지는 것처럼 불성의 위덕도 그와 같아서 중생의 4중(重)ㆍ5역(逆)을 번뇌의 흐린 물에 넣으면 모두 이내 맑아지리이다.
제자 아무개와 온갖 법계의 중생은 지금의 이 몸으로부터 성불하기까지, 원하건대 다시는 이 모든 죄를 짓지 않으면서 항상 머물고 있는 3보에 귀명하고 공경하면서 예배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참회한 뒤에 그 다음에는 예참(禮懺)의 공덕으로 원을 세우면서 게송으로 말한다.)
원하옵건대 미래 세상에
무량수불(無量壽佛)의
그지없는 공덕의 몸을 뵙게 하소서.
저와 그 밖의 믿는 이들이
그 부처님을 뵈온 뒤에는
부디 때를 여읜 눈[離垢眼]을 얻어
위없는 보리를 이루게 하시어서
두루 함식(含識:중생)에게 미치게 하소서.
십악을 총체적으로 참회하는 게송[總懺十惡偈文]
-영유(靈裕) 법사가 지은 글이다.-
스스로 생각건대 나의 나고 죽음은
과거에도 시초와 끝이 없었고
나아가 지금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면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어두움이 가리기 때문에
3독(毒)의 불이 늘 타고 있고
몸과 마음이 있다손 치더라도
스스로 깨치지 못하였나이다.
온갖 부처님께서
지혜의 해의 광명을 놓으시어서
저의 두 가지 몸을 비춰 주셨는데도
아직도 깨달아 알지 못했었기에
미혹을 품고 모든 갈래[趣]에 태어나면서
생류(生類)마다 바꿔 나지 않음이 없었나니
진실로 이런 인연 생각한다면
그 누가 자기 권속 아니리이까.
또 모든 중생을 생각한다면
원래 동일한 마음의 바다인데
망상과 식(識)의 물결로 인하여
온갖 갈래의 몸이 허깨비로 생겼습니다.
이 몸은 여러 가지 종류가 없어서
나와 더불어 성품이 같은 것이어늘
염(念)을 잃고 모르기 때문에
그와 나라는 분별이 생기나이다.
이로부터 애착과 미움을 일으켜
늘 서로가 함께 다투고 있으면서
밤낮으로 싫어하며 원한을 품고
앙갚음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드디어 중생으로 있는 동안에는
상해하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남의 살림을 탐내고 빼앗으며
몫이 아닌데도 욕심을 내나이다.
거짓으로 속이면서 진실한 말이 없고
추악한 말을 하며 가리는 일 없으며
이간하는 말로써 서로를 파괴하고
비단말[綺語]로써 남을 조롱하나이다.
탐욕의 바다 때문에 만족할 줄 모르고
성냄의 불이 타고 또 탈 뿐만 아니라
삿된 소견으로 바른 교법(敎法) 저버리고
아첨으로 성실함과 신의가 없나이다.
모든 여래의
온갖 청정한 계율을 범하면서
원망하고 애착하고 미워하는 일들이
마음마다 가득하지 않음이 없나이다.
이 죄를 만일 참회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제 마음에 훈습(薰習)해서
그 훈습을 쌓고 쌓아 마지 않으면
지옥의 처소로 변하게 되어
온갖 고통의 도구들과 함께하나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이러한 때에
모두를 다 구제하지 못할지라도
오직 지은 바 모든 허물을
스스로 드러내는 이만은 제외되나이다.
마땅히 부처님과 보살의 마음으로
본래 청정한 성품[本淨性]을 따라야 하거늘
무시 이래로 밝음이 없는지라
이로부터 점차로 희미해지고 엷어졌나니
이 때문에 참괴(慚愧)의 마음을 품고
마음 깊이 모든 죄를 참회하나이다.
원컨대 부처님은 자비로운 광명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비추어 주시고
있는 바 모든 번뇌의 무더기를
모두 다 소멸되게 하여 주시며
자기 성품의 청정한 마음을
이로부터 마지막[究竟]에 이르기까지
평등하고 참된 법계를
지금 당장 원만하게 하여지이다.
이 아래 9행(行)의 게송은 장안(長安) 연흥사(延興寺)의 현완(玄琬) 율사가 지었다.
자기를 해치면서 무시 이래로 제 마음을 따라
욕계(欲界)의 흐름에 빠져서 돌고 돌았으니
그 안에선 외롭고 구원이 없는지라
그지없는 여러 고통을 갖추어 겪었나이다.
모든 고통을 받을 때와 과보가 정해져 있어
부처님네 위신으로도 구제할 수 없으니
곤란한 일을 당하고 고통에 맞닿아서
비로소 이 한 생각 깨닫는 데 있나이다.
그 무명(無明)으로 눈꺼풀이 두껍고
3독(毒)의 불은 늘 활활 타므로
여의고는 싶지만 여읠 수 없음이
마치 종기가 곪아서 딸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나이다.
원하옵건대 모든 부처님은 자비 광명을 놓으셔서
수시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비추어 주소서.
옛날에 지었던 3업(業)의 죄와
그리고 지금 현재 일으키는 온갖 악과
미래에 생기게 마련인 모든 번뇌를
머리 조아려 참회하오니 소멸시켜 주소서.
게송을 읊는다.
오체(五體)를 던져서 아침에 뉘우치고
세 번 굽혀[三屈] 한낮과 저녁에 참회하며
건추(犍椎) 울리고선 오늘 새벽을 경계하니
나의 수고로운 일이 가엾기도 하구나.
눈여겨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티끌 때[塵垢]가 쌓였음을 마음 아파한다.
쯧쯧[咄]. 이 몸은 내가 아니거늘
아! 지난날엔 항상 빠져서 헤매었구나.
머뭇거리면 갈림길에서 위험하지만
손 저으며 사양하는 동안에 꺾이리니
깨끗이 씻고 귀의해서 정성껏 참회하면
밝고 맑아지면서 드리운 구름이 풀리리다.
쓸쓸한 업의 고통 여의면
위로 오르면서 인연 따라 이익되리니
비록 높은 자취에는 못 오른다 하더라도
일단 어두운 길 가는 것만은 면하게 된다.
감응연(感應緣)[대략 세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진(晋)의 사문 혜달(慧達)
양(梁)의 사문 법총(法寵)
당(唐)의 사문 덕미(德美)
진(晋)의 사문 혜달(慧達)
진(晋)나라 사문 혜달(慧達)은 성이 유(劉)씨요 이름은 살하(薩荷)이며 서하(西河) 이석(離石) 사람이다. 출가하기 전에는 싸움터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불법을 듣지 못했고 무(武)를 숭상하면서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나이 31세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는데, 몸이 아직도 따스했으므로 집에서는 염(殮)을 하지 못했다. 그런 뒤 7일 만에 다시 소생하여 한 말이다.
“죽으려 할 때 어떤 두 사람이 나타나서 나를 잡아 묶은 뒤에 데리고 갔다. 서북쪽으로 향해 가는데 길이 갈수록 높아지다가 조금씩 편편한 길이 되었다. 양쪽 가에는 나무가 늘어섰는데, 활을 잡고 칼을 찬 어떤 사람이 거리에서 있다가 두 사람에게 살하를 데리고 서쪽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곳에는 집들이 아주 많았고 흰 벽에 붉은 기둥들이 서 있었다. 살하가 한 집에 들어갔더니 아름다운 용모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 살하가 그녀에게로 가서 밥을 구걸하는데 공중에서 ‘주지 말라’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땅에서 솟아 나와 쇠 절구공이를 잡고 그를 치려 했으므로 살하는 급히 도망쳤다. 그 후 여남은 집을 돌아다니면서 구걸하였으나 모두가 그러했으므로 끝내 얻어먹지 못했다.
다시 서북쪽으로 가다가 수레를 탄 한 노파를 만났는데 살하에게 한 권의 책을 주었다. 살하는 그 책을 받고 서쪽으로 가다가 한 집에 도달했는데, 그 집은 매우 크고 화려했다. 한 노파가 문 밖에 앉아 있었는데 입 안에는 범의 어금니가 나 있었다. 집 안의 평상과 장막은 번쩍번쩍했고 대로 만든 자리는 푸른 평상이었다. 또 어떤 여자가 그 곳에 있다가 살하에게 물었다.
‘책을 얻어 왔느냐?’
살하가 책을 그녀에게 주자 그 여인은 받아서 다른 책과 비교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두 사문(沙門)이 나타나서 살하에게 말했다.
‘너는 우리를 알겠느냐?’
살하가 대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사문들이 말하였다.
‘지금 석가모니불께 귀명해야 한다.’
그래서 살하는 그 말대로 염불을 하면서 그 사문들을 따라 함께 걸었다. 멀리 하나의 성(城)이 보이는데 마치 장안(長安)의 성과 비슷했다. 하지만 빛이 아주 검었고 대개가 쇠로 된 성이었다. 키가 아주 크고 살갗이 칠같이 검은데다 머리칼을 땅에다 끌고 있는 한 사람이 보이자 사문이 말하였다.
‘지옥 안에 있는 귀신이다.’
그 곳은 아주 추웠다. 방석같이 생긴 얼음이 흩어져 날아와 사람의 머리에 달라붙으면 머리가 끊어지고 다리에 달라붙으면 다리가 끊어졌다.
이때 사문이 말했다.
‘여기는 한빙지옥(寒氷地獄)이다.’
살하는 갑자기 저절로 전생 일을 알아차리면서 두 사문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은 옛날 유위불(維衛佛) 때에 모두가 그의 스승이었다. 사미였을 적에 세속의 죄를 범하여 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 부처님이 계셨지만 끝내 뵈올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두 번 사람의 몸을 받았었는데 한 번은 강(羌:지금의 티베트)나라에
태어났고 지금은 진(晋)나라 안에 태어나 있었다.
또 아우와 형이 이 지옥 안에 있으면서 살하에게 말하였다.
‘옛날 업(鄴)에 있을 때에 부처님을 섬길 줄 모르다가 어떤 사람이 불상을 씻는 것을 보고 잠시 시험삼아 배웠으나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 때문에 죄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불상을 씻은 복이 있으므로 다행히 천상에 나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도산(刀山) 지옥을 보았으며,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아주 많은 지옥들을 구경했다. 지옥마다 성(城)이 달랐고 뒤섞여 있지 않았으며, 사람 수는 모래와 같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고초를 부과하는 법은 대략 경전에서 말씀한 것과 부합되었다.
살하가 지옥을 구경하고 다닐 때에 어떤 광경이 나타났다. 갑자기 금빛이 햇빛처럼 찬란하면서 키가 두 길[丈]이나 된 사람이 나타났는데 상호(相好)가 장엄하고 몸은 황금빛이었다. 좌우가 모두 말하였다.
‘관세음 보살이시다.’
그리고는 모두 일어나 맞이하면서 예배드렸다. 같이 있던 두 사문은 형상이 서로 비슷했는데 다 같이 동쪽을 향해 갔으므로 살하는 예배하고 보냈다.
보살께서는 그를 위해 많은 말씀으로 자세히 설법해 주셨는데 끝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릇 죽은 사람으로서 부모 형제 그리고 더 나아가 7세(世) 동안의 인척과 친척과 벗과 길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위하여 정사(精舍)에서든 혹은 집 안에서든 복을 베풀어 주면 죽은 이들이 고통을 받다가도 이내 벗어나게 된다. 7월 보름날 안거(安居)가 끝날 때에 공양을 베풀면 더욱더 수승하다. 만일 그릇에 나누어서 공양할 때에는 그 그릇마다 ≺누구 누구를 위하여 3보께 받들어 올린다≻고 하는 표시를 하고 말을 하면, 그 보시는 복은 더욱 많고 그 경사도 더욱 빨리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과 속인으로서 현재에 지은 허물과 전생에 지은 죄와 악업을 대중 가운데서 모두 스스로 들추어내면서 조목조목 틀림없이 정성껏 참회하면 죄가 즉시 소멸된다. 만일 부끄럼을 잘 타서 대중에게 자신의 허물을 들추어내기가 부끄러운 이는 보이지 않는 데서 속으로 들추어 말할 수 있으며, 지은 죄의 조목이 틀리지 않으면 그 죄도 역시 소멸된다. 만일 조목을 빠뜨리거나 잘못을 일부러
숨기거나 하면, 비록 죄를 면하지는 못할지라도 받는 과보는 조금 경해진다. 만일 참회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를 이름하여 허물을 붙잡고 복귀하지 않는다[執過不返]고 하는 것이니, 죽은 뒤에는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진다.
또 다른 이가 탑을 조성하고 불당을 지을 때에 비록 한줌의 흙과 한 개의 나무와 물감과 옥돌이라 할지라도 솔선하여 정성껏 이바지하고 보조하면 매우 많은 복을 얻는다. 만일 탑이나 불전에 풀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매지 않고 밟고 지나가면, 그 예배한 공덕이 그에 따라 곧 다하게 된다.’
또 말씀하셨다.
‘경이란 존중히 여길 법전이요 교화하고 인도하는 나루이다. 『바라밀경(波羅蜜經)』의 공덕이 가장 훌륭하고, 『수능엄경(首楞嚴經)』 역시 그 다음이다. 만일 어떤 착한 사람이 경을 독송하면 그 곳의 땅은 모두 금강(金剛)이 되는데, 다만 육안을 지닌 중생이 보지 못할 뿐이다. 부지런히 독송하고 지니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반야(般若)의 정본(定本)과 여래의 발우[鉢]는 후에 동쪽의 한(漢)나라 땅으로 가리니, 한 가지 선행이라도 이 경과 바리에 대해서 행하면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고 그 공덕은 갑절 더하리라.’
말씀하신 바는 아주 많았으나 요약하여 이것만을 싣는다.
살하가 하직하고 떠나려 할 때에 말씀하셨다.
‘너는 오랜 겁 동안 숨겨왔던 죄의 과보를 받아야 하는데, 일찍이 경법을 듣고 기쁜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이제 경한 과보를 받으면서 단 한 번에 면하게 되리라. 너는 다시 살아나면 사문이 되라. 낙양(雒陽)과 임치(臨淄)와 건업(建業)과 무음(鄮陰)과 성도(成都)의 다섯 곳에는 다 같이 아육왕(阿育王)의 탑이 있으며, 또 오(吳)나라 안에 있는 두 석상(石像)은 아육왕이 귀신을 시켜서 조성한 것인데 자못 진짜 모습과 같다. 가서 예배하는 이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말씀을 다 하신 뒤에 동쪽으로 가셨다.
살하는 예배하면서 작별하고는 남쪽의 큰길로 나왔는데, 넓이는 1백여 보(步)쯤 되었으며 길 위로 가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길 곁에는 높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그 높이는 수십 길이나 되었다. 어떤 사문이 앉아 있었고 좌우로는 스님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아주 많았다. 어느 한 사람이 붓을 들고 북쪽을 향해 서서 살하에게 말하였다.
‘양양(襄陽)에 있을 때는
무엇 때문에 사슴을 죽였느냐?’
그는 거짓으로 대답하였다.
‘다른 사람이 사슴을 쏘았고 나는 연장을 주었을 뿐입니다. 또 그 고기도 먹지 않았거늘 무엇 때문에 과보를 받습니까?’
이때 바로 사슴이 죽은 양양의 땅이 나타나면서 풀과 나무와 산골 물이 홀연히 눈앞에 가득 찼다. 그리고 그가 탔던 검은 말이 다 같이 말을 하면서 모두가 사슴을 죽인 연월과 일시를 증명해 주었다. 살하가 두려워하면서 대답이 없자 잠깐 동안에 어떤 사람이 작살로 찔러서 그를 끓는 가마솥 안에다 넣었다. 스스로 보매 온몸이 모두 문드러져 부서졌는데, 홀연히 바람이 불어 와서 몸을 조그마한 언덕 가에 실어다 놓으니 모르는 결에 도로 온전한 몸으로 복구되었다. 붓을 가진 이가 다시 물었다.
‘너는 또 꿩을 쏘았고 일찍이 기러기도 죽였다.’
이런 말을 하자마자, 또 작살로 찔러서 끓는 가마솥 안에 넣었는데 문드러지고 복구되는 것이 앞에서와 같았다.
이 과보를 받고 나서야 살하를 보내 주었다. 그래서 하나의 큰 성(城)으로 들어갔는데 어떤 사람이 그 곳에 있다가 살하에게 말하였다.
‘너는 경한 과보를 받았고 또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복의 힘 때문이다. 지금 이후에 다시 죄를 짓겠느냐, 짓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말하고 나서 사람을 시켜 살하를 보내 주었다. 멀리서 자기의 옛 몸이 보였는데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으나 전송하는 사람이 밀고 끌고 했으므로 오래도록 버티다가 겨우 몸에 가 붙으면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 후 살하는 법을 받들어 부지런히 힘쓰다가 드디어 출가했으니, 그 이름을 혜달(慧達)이라 하였다. 태원(太元) 말년까지도 경사(京師)에 있다가 그 후에 허창(許昌)으로 갔으며 그 뒷일은 잘 모른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양(梁)의 사문 법총(法寵)
양(梁)나라 양도(楊都) 선무사(宣武寺)의 사문 법총(法寵)은 성이 풍(馮)씨요 남양(南陽) 관군(冠軍) 사람이다. 나이 38세일 적에 번허(樊許)의 도술을 잘 통한 정승사(正勝寺)의 법원(法願) 도인이 법총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나이가 다 차서 죽게 되었는데 피할 곳이 없겠구료. 오직 기도를 하면서 정성껏 모든 부처님께 전생에 지은 허물을 참회하며 물리쳐 없애면 혹시 가망이 있을 수도 있겠소.”
법총이 증험하기 위해서 거울을 가져다 얼굴을 보니 검은 기(氣)가 서려 있었다. 그리하여 옷과 발우를 팔아 밑천을 삼고, 그 나머지 것을 합쳐 향과 공양 거리를 산 뒤에 배를 몰아 동쪽으로 갔다. 곧장 해염(海鹽)으로 가서 광흥(光興)의
빈방에 있으면서 예배하고 참회했다. 방 안에만 있으면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낮에는 밥 먹는 것도 잊고 밤에는 옷도 벗지 않으면서 참회하였다. 40세가 다된 마지막 저녁이었는데, 갑자기 양쪽 귀에 종기가 나서 통증을 느꼈으므로 더욱 두려운 생각으로 그 날 밤 4(更)이 될 때까지 참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밖에서 어떤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대의 죽어야 할 업은 이미 끝났도다.”
급히 문을 열어보았으나 도무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에 시험삼아 물어 보았더니 모두가 말하였다.
“검은 기가 모두 없어져버렸소.”
그리고 양쪽 귀에는 비로소 뼈가 생겨났으니, 이것은 실로 참회의 정성이 간절했기 때문에 수명을 연장하게 된 것이다. 보통(普通) 5년 3월 16일에 살던 데서 죽었으며, 춘추는 74세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사문 덕미(德美)
당(唐)나라 경사(京師) 회창사(會昌寺)의 석덕미(釋德美)는 성이 왕(王)씨요 청하(淸河) 임청현(臨淸縣) 사람이다. 나이가 어릴 적에도 선행하기를 좋아했고, 입으로는 항상 찬패(讚唄)를 노래했으며, 흙덩이를 가지고 장난할 적에도 반드시 탑을 만들었고, 매양 불상을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예배하고 공경할 줄 알았다.
이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남몰래 기이하게 여기면서 세속에서 후사(後嗣)를 이을 사람이 아님을 알았었다. 마음대로 스승을 따라가 배우다 19세에 출가했는데, 비록 경론을 갖추어 열람하기는 했으나 율법(律法)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사분율(四分律)』 1부를 속속들이 널리 통달하고 있었다. 태백산(太白山)으로 가서는 『불명경(佛名經)』 1부 12권을 독송하였다. 매양 참회할 때에는 이를 독송하면서 예배를 더했고, 베옷과 채식으로 살아갈 뿐 가죽이나 비단을 입지 않았다. 처음에는 구롱(九隴)의 태백(太白) 승옹(僧邕) 선사에게 의지하여 수업을 받았으나, 뒤에 경사(京師) 혜운사(慧雲寺)에 머무르면서 정묵(靜黙) 선사를 만나 그에게 수업을 청했다. 매양 여름이 되면 예참(禮懺)하였고, 도량이 끝날 무렵에는 7일을 남겨두고 용맹 정진하면서 1만 5천의 부처님께 날마다 한 번씩 예참했으므로 그의 정성은 다른 이가 미치기 어려웠다. 많은 감응과 상서로운 징조를 느끼면 작은 것으로부터 그것이 끝날 때까지 덕미는 천 번씩 예배했다.
스승 정묵을 이어받아 크게 복덕도 있었으니, 일찍이 흥선(興善)에서는 1천 명의 스님을 모아 놓고 7일 동안 도를 행했으므로 기한이
찼을 때는 후한 돈이 있었고 사람들은 열 필의 비단을 바쳤으며 끝나려 할 때에는 밖으로부터 갑절 더 생겼다. 그러므로 개황(開皇) 말년으로부터 마지막 대업(大業) 10년 동안에는 해마다 크게 보시가 들어 왔으니, 그의 예(例)는 모두가 그러했다.
정묵이 열반하려 할 적에는 넓은 복전(福田)을 덕미에게 위탁했다. 그래서 덕미를 으뜸으로 삼아 행했으니 비전(悲田)과 경전(敬田)을 해마다 한 번씩 행했으며, 또 동이에 가득한 돈은 늦여름에 항상 널리 보시했다. 대업(大業)말년 음력 5월에 1천 명의 스님들을 불러모아 7일 동안 도를 행했는데, 홀연이 형용과 복장을 화려하게 차린 이상한 사람이 와서 덕미에게 말하였다.
“계절이 아주 심하게 더운데 어찌하여 만두를 만들어서 공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선 스무 섬[斛]의 밀가루를 반죽하여 이틀 동안 잘 삭힌 뒤에 다음날 아침에 만들기 위해서 한밤중에 일어나 반죽해 놓은 밀가루를 치자 떡판이 덜거덕거렸으므로 사람들이 놀라고 소란해졌다. 그리고 죽을 쑤어서 공양하려고 잠시 동안 밀가루를 떼어서 삶기만 하면 넣은 대로 익었으므로 1천 명의 사람이 다 같이 배불리 먹으면서 모두 함께 기뻐했다. 만두는 또 단단하고 질겨서 하나도 부서짐이 없었고 시험삼아 장인(匠人)에게 가져가서 잘못된 곳을 물으면 온 대중이 슬퍼하고 괴이하게 여기는 등, 이런 감응을 초래하였다.
또 무덕(武德) 시초에 회창사(會昌寺)를 창건하여 덕미를 불러들이자 그는 서원(西院)에다 참회당(懺悔堂)을 짓고 화엄상(華嚴像)을 모셨는데 당각(堂閣)이 넓고 화려했다. 중생이 다 함께 모든 악업을 끊기를 서원하면서 오래 예참하고 정결하게 함이 방정(方正)하고도 평등(平等)하였으므로 어떤 이라도 단(壇)에 오르려 하면 반드시 덕미를 전거(典據)로 삼아야 참회가 되었다.
또 어느 때에는 우물이 갑자기 바짝 말라버렸으므로 참회하는 이들이 멈추어 서서 있을 뿐 씻고 참회할 수가 없었다. 이때 덕미가 향로를 가지고 우물로 와서 기원을 하자, 바로 즉시 샘이 솟아났는데 옛날보다 더 많은 물이 났다. 이때 모두가 감탄하고 괴이히 여겼으니 그의 복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아 둔 사리(舍利)를 보배 함에다 간직해서 가는 곳마다 반드시 갖고 다니면서 공양하였으며, 매양 어떤 이가 탑을 세우길 기원하면서 나누어주기를 청하면 기도에 감통하여 청하는 대로 모두 주었다.
또 가을과 여름이면 항상 맨발로 다녔는데 벌레와 개미를 밟을까 두려워한 것으로서 중생을 자비로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해마다
반주삼매(般舟三昧)를 닦으면서 한여름 동안 앉지도 않았고, 혹은 입의 허물을 없애려고 3년 동안 말을 하지도 않았으며, 혹은 가벼이 여기지 않겠다는 도를 행하면서 통상 7중(衆)에게 절을 했고, 혹은 의복과 음식은 그 4분의 1을 절약하기도 했으니, 그의 이러한 고행의 모습은 진실로 적지 않았다.
또 언제나 버리겠다는 생각을 내면서 오로지 서방(西方)을 공고히 다졌는데 죽을 때에도 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우면서 마쳤다. 정관(貞觀) 11년 2월 26일 날 합장하고 염불을 하면서 회창사에서 죽었으니 춘추는 60살이었다. 시체는 남산치(南山鴟)에 보내어 건추(犍椎)를 울렸고, 제자들이 뼈를 거두어 탑을 일으켜 비(碑)를 회창사에다 세웠으며, 시중(侍中) 우지녕(于志寧)이 글을 지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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