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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26 법원주림(法苑珠林) 83권

by Kay/케이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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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83권

 


법원주림 제8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5. 육도편 ④


4) 정진부(精進部)[여기에는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해타부(懈墮部) 책수부(策修部)
진익부(進益部)

(1) 술의부(述意部)
대저 인욕을 실행하는 정(情)이 오히려 어둡고, 진실을 깨달아 아는 뜻[旨]이 아직 밝지 못하면, 그러한 이유로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마음을 게으르지 않게 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너희 비구들아, 부지런히 정진하여야 한다. 10력(力)과 지혜의 해가 벌써 져서 숨었으니, 너희들은 당연히 무명(無明)에 가리워지게 되었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천제(闡提)인 사람은 시체가 종일토록 누어있는 것이므로 도를 이룬다[成道]는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석론(釋論)에서 이르기를 “집에 있는 사람이 게으르면 세속의 이익을 잃고, 집을 떠난 이가 게으르면 법의 보배를 상실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나(斯那)의 용맹함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찬양하셨고 가섭(迦葉)의 기묘함을 여래께서는 칭찬하셨다. 서(書)에서 이르기를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 자면서 온 힘을 다하여 몸을 다스려야 비로소 충신이라 하고 효자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방일과 게으름은 자랑하지 못할 것이고, 정진하면서 수고하는 것은 어느 때나 옳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 그 어리석은 생각으로 제멋대로 교만을 부림으로서 선근(善根)의 종자를 더 자라나지 못하게 하고 도수(道樹)의 가지와 줄기를 더욱 마르게 해서야 되겠는가. 하물며 목숨이 사왕(死王:염라대왕)에게 속하고 이름이 유부(幽府)에 매어있음이겠는가? 갑자기 돌아가고 나면 오랜 세월 동안 자량(資糧)이 단번에 끝나버릴 터인데, 저승에서 고문(拷問)할 때에 무엇을 가지고 대답할 것인가? 그때에 가서 뉘우치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모든 수행인들에게
몸에 남은 힘이 있는 한, 미리 앞날에 쓸 자량을 갖추어 놓기를 권고하노니, 언제나 반드시 3업(業)을 자세히 살피고 생각하면서 여섯 때[時]에 어김이 없게 해야 한다. 매양 밤낮으로 아침부터 한낮까지, 한낮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나아가 한 시각ㆍ한 생각ㆍ한 찰나에 이르기까지 3업을 자세히 살피면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마음이 선을 지었고 얼마나 마음이 악을 지었는가? 얼마나 마음이 효도를 행하였고 얼마나 마음이 거역하였는가? 얼마나 마음이 재물과 여색을 여의려고 노력하였고, 얼마나 마음이 재물과 여색에 탐착하였는가? 얼마나 마음이 인간과 천상의 선근이 되는 업을 지었고, 얼마나 마음이 삼악도에 들어갈 착하지 않은 업을 지었는가? 얼마나 마음이 명예와 나[我]에 집착하는 마음을 여의려고 노력했고, 얼마나 마음이 명예와 나에 집착하는 마음을 탐했는가? 얼마나 마음이 3승(乘)으로 세간을 벗어나려는 마음을 기꺼이 닦았고, 얼마나 마음이 3승을 업신여기면서 깊이 세간의 마음을 좋아하였는가?
이와 같이 선과 악은 밤낮으로 어기는 것이므로 수행하는 이는 항상 모름지기 자세히 살피고 단속함으로써 방일하거나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언제나 3업을 반성하여 서로서로 경계하고 힘쓰면서 마음과 입을 훈계해야 할 것이다.
입은 마음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니 그대는 항상 선을 말할 것이요 법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 것이며, 입은 도리어 마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대는 바른 법을 생각할 것이요 법이 아닌 것은 생각하지 말 것이며, 마음은 또 몸[身]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대는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요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나의 마음을 스스로 규제하고 나의 입을 스스로 삼가며 나의 몸을 스스로 금해야 한다. 이와 같이 스스로 채찍질하면 족히 높은 데로 오를 수 있거늘 어찌 수고로이 다른 사람조차 막아버리면서 방자하게 원한과 미움을 사겠는가?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였다.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으로 선을 행하고 뜻으로 선을 행하면 반드시 선도(善道)에 태어날 것이요,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행하고 뜻으로 악을 행하면 반드시 악취(惡趣)에 태어난다.”
또 마치 잘 달리는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빨리 달리므로 느린 짐승에게 매와 회초리를 대는 것과는 같지 않듯이 만일 스스로 경계하지 않고 반드시 남의 꾸지람을 빌려야 한다면 도리어 부딪치는 괴로움만 더하면서 죄만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2) 해타부(懈墮部)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대저 게으름이란 온갖 행위의 허물인 것이다. 속가에 있는 이가 게으르면 옷과 밥을 공급받지 못하고 산업도 일으키지 못하며, 출가한 이가 게으르면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온갖 모든 일은 모두가 정진으로 말미암아 흥성하는 것이다.’
이때 제석(帝釋)이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으뜸가는 도(道)를 구하려 하면
그의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지니
몸 버리기를 썩은 흙과 같이 해야
나[我]가 없음을 환히 알게 됩니다.

아무리 재보(財寶)를 보시한다 하여도
그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요
용맹스럽게 이와 같이 한 사람만이
정진하여 부처님를 빨리 이를 것입니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착하지 않은 행을 심으면 모든 일에서 손해가 있겠지만, 만일 게으르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가장 정묘한 일이니라. 왜냐 하면 미륵보살은 30겁을 지나야 성불할 텐데, 나는 정진의 힘과 용맹스런 마음으로써 미륵으로 하여금 나의 뒤에 성불하게 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의당 정진을 생각해야 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가섭불(迦葉佛) 때에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다 같이 사문이 되었다. 형은 계율을 지니고 좌선하면서 일심으로 도를 구했으나 보시를 하지 않았으며, 아우는 보시하면서 복은 닦았으나 파계(破戒)하기를 좋아하였다.
형은 석가불을 좇아서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으나 의복이 항상 넉넉하지 않았고 음식도 언제나 배부르지 않았다. 아우는 코끼리로 태어나서 코끼리의 센 힘 때문에 적을 물리쳤다. 그래서 국왕의 사랑을 받아 금은과 영락으로 몸을 장식하였고, 수백호(數百戶)의 읍을 봉하여 이 코끼리가 필요로 하는 대로 무엇이든 공급하게 하였다.
그때 형 비구는 큰 흉년을 만나 이리저리 걸식하고 다녔으나 7일 동안을 얻어먹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거친 밥을 약간 얻어먹었으므로 겨우 목숨만은 부지하였다. 그는 벌써 이 코끼리가 전생의 아우였음을 알고 있었던 터라 곧 코끼리에게 가서 코끼리의 귀를 붙잡고
말하였다.
‘나는 옛날에 너와 함께 죄를 지었다.’
코끼리는 비구의 말을 생각하다가 곧 전생의 일을 알고 전생의 인연을 보았기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먹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코끼리를 돌보는 사람이 겁이 나서 즉시 왕에게 이 일을 아뢰었더니, 왕이 코끼리를 돌보는 사람에게 물었다.
‘먼저 이 코끼리를 범한 사람은 없느냐?’
코끼리를 돌보는 이가 대답하였다.
‘달리 딴 사람은 없었고 오직 한 분의 사문이 코끼리 곁에 와서 잠깐 동안 있다가 떠나간 일이 있을 뿐입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서 사문을 찾아오게 한 뒤에 물었다.
‘코끼리 곁에 가서 무슨 말을 하였소?’
사문이 대답하였다.
‘나는 코끼리에게 너와 나는 모두 죄를 지었다고 했을 뿐입니다.’
사문이 왕에게 앞에서 말한 일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자, 왕은 문득 그 뜻을 깨닫고서 곧 사문을 놓아 주었다.”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계셨는데, 어느 한 장로(長老) 비구가 세존을 향하여 다리를 펴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수마나(修摩那) 사미는 나이 겨우 8세인데도 세존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사유를 현전하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장로 비구가 다리를 펴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셨고, 또 사미가 단정히 앉아서 사유(思惟)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른바 장로라 함은
반드시 머리를 깎은 이도 아니니
비록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나쁜 행을 면치 못하는구나.

만일 어떤 이가 진리의 법을 보고
대중의 앞에서 해치는 일이 없으며
더럽고 나쁜 모든 행을 버리면
이를 이름하여 장로라 하느니라.

내가 이제 장로라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출가한 이가 아니니
착하고 근본이 되는 업을 닦아서
바른 행을 분별하는 이를 말하느니라.

설령 나이가 어리고 적다 해도
모든 감관에 샘[漏缺]이나 결핍이 없으면
이런 이를 이름하여 장로라 하나니
바른 법의 행을 분별하는 이이니라.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혹시 이 장로가 다리를 펴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예, 모두
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장로 비구는 지난 5백 세상 동안 항상 용의 몸이었으며, 이제 또 목숨을 마치면 용의 세계에 가서 날 것이다. 왜냐 하면 불법의 대중을 공경함이 없기 때문이니, 불법을 닦는 대중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는 이는 죽으면 모두 용의 세계에 가서 나느니라.
너희들은 혹시 수마나 사미가 나이는 겨우 8세인데도 나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데서 단정히 앉아서 사유하고 있는 것을 보느냐.?’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모두 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미는 이로부터 7일 후에 4신족(神足)을 얻고 4제(諸)의 법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더욱 힘써서 불법을 닦는 대중을 공경할지니라.’
또 『불설마유팔태비인경(佛說馬有八態譬人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말에는 좋지 못한 여덟 가지 형태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 형태인가? 첫째의 형태는 굴레와 고삐를 풀을 때에 수레를 끌고 달리려고 하는 것이요, 둘째의 형태는 수레의 멍에를 씌울 때에 뛰어 돌아다니면서 그 사람을 물려고 하는 것이며, 셋째의 형태는 문득 앞의 두 발을 쳐들고 수레를 끌면서 달리는 것이요, 넷째의 형태는 문득 수레 굴대의 빗장의 가죽을 밟는 것이며, 다섯째의 형태는 사람이 서서 멍에를 가지고 몸을 어루만질 때에 수레를 들이받고 물러나는 것이요, 여섯째의 형태는 문득 곁으로 가면서 비스듬히 달리는 것이며, 일곱째의 형태는 수레를 끌고 달리다가 진창을 만나면 서서 가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의 형태는 구유를 들이대어 먹이려고 할 때는 보고만 있으면서 먹지 않다가, 주인이 끌고 가서 타려고 할 때에야 갑자기 헐떡거리면서 먹으려고 하다가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도 좋지 못한 여덟 가지 형태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 형태인가? 첫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곧 달아나면서 기꺼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말이 굴레와 고삐를 풀면 수레를 끌고 달아나는 때와 같다. 둘째의 형태는 경전의 뜻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의 방향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성을 내어 돌아다니면서 기꺼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말에다 수레의 멍에를 씌울 때에 날뛰고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물려고 하는 때와 같다. 세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문득 거역하면서 받지 않는 것이니, 마치 말이 앞의 두 발을 쳐들고 수레를 끌고 달려가는 것과 같다. 네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욕설을 퍼붓는 것이니, 마치 말이 수레 굴대의 빗장 가죽을 밟는 때와 같다. 다섯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곧 일어나 가버리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서서 멍에를 가지고 말의 몸을 어루만지면 수레를 들이받고 물러나는 때와 같다. 여섯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들으려 하지 않고 머리를 낮추어 곁눈질을 하면서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것이니, 마치 말이 사잇길을 가면서 비스듬히 달리는 때와 같다. 일곱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곧 따지려고 하고 그에게 물으면 상응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도 죽기를 작정하고 허망한 말을 하는 것이니, 마치 말이 진창을 만나면 멈추어 선 채 더 이상 가지 않는 것과 같다. 여덟째의 형태는 경전의 설법을 들으면 기꺼이 들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음탕하고 방자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받아지니려 하지 않다가 죽어서 나쁜 세계에 들어갈 때 비로소 배우고 묻고 도를 행하려 하지만 다시는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니, 마치 말이 구유를 들이대어 먹이려 할 때는 보고만 있으면서 먹지 않다가 주인이 끌고 가서 타려고 할 때에야 갑자기 헐떡거리면서 먹으려고 하지만 역시 먹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에게 여덟 가지 나쁜 형태가 있고 사람에게도 역시 여덟 가지 나쁜 형태가 있음을 말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은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3) 책수부(策修部)
『지세경(持世經)』에서 말하였다.
“보광(寶光) 보살은 염부단금(閻浮檀金) 부처님 처소에서 정진을 일으켜서 다만 이와 같은 법의 방편문에 들기만을 위했을 뿐, 20억 년 동안 끝내 나쁜 마음이나 이양(利養)만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또 보광 보살은 이와 같이 20억 년 동안 정진하면서도 일찍이 탐냄[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 무량의(無量意) 보살과 무량력(無量力) 보살은 4만 년 동안을 끝내 잠을 자지 않았으며, 항상 배가 부르게 먹지도 않았고, 눕거나 앉거나 거닐지도 않으면서 다만
5취음(取陰)의 모양을 생각할 뿐이었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법어(法語)비구는 2만 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런 뒤에는 허공으로 1다라수(多羅樹) 높이를 올라가 가부좌한 채 1천 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법의 기쁜[法喜]을 밥으로 삼았으며, 비지(比智)로 중생의 원에 따라 자유자재하게 설하는 변재를 얻었다.”
또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나열기국(羅閱祈國)의 사문이 앉은 채로 스스로 서원하였다.
‘나는 도를 얻지 못하면 끝내 잠을 자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길이 8촌(寸)되는 송곳을 만들어서 양 넓적다리를 찔렀으므로 그 고통으로 잠을 자지 않다가 1년 만에 도를 얻었다.”
또 『박구라경(薄俱羅經)』에서 말하였다.
“박구라가 말하였다.
‘나는 출가해서부터 80년 동안 옆구리를 한번이라도 침상에 대고 누웠거나 등을 기댄 일이 없었다.”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가 부지런히 정진하기만 하면 어떤 일에도 어려움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니, 마치 작은 물도 끊임없이 흐르면 돌을 뚫는 것과 같다. 또 수행한 이의 마음이 자주자주 게으르면, 마치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서 불을 일으킬 때 아직 뜨거워지지 않았는데 그만두면 아무리 불을 얻고자 해도 불을 얻기 어려운 것과 같나니, 이것을 정진이라 하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몸[身]의 정진은 작은 것이요 마음[心]의 정진은 큰 것이며, 바깥[外]의 정진은 작은 것이요 안[內]의 정진은 큰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는 ‘의업(意業)의 힘은 크기 때문에 마치 선인(仙人)이 성을 낼 때는 큰 나라를 갈아서 없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또 몸과 입으로 5역죄(逆罪)를 지으면 그 과보가 커서 1겁 동안 아비지옥에 있게 되겠지만 의업의 힘을 받으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태어나서 8만 대겁(大劫)을 살며 또한 시방 부처님 국토에 있으면서 수명이 한량없을 것이니, 이 때문에 몸과 입의 정진은
작은 것이요 뜻의 정진은 큰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경전에서 널리 정진을 찬탄하였으니, 한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면 속히 도의 과위를 얻을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많이 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들은[聞] 것을 모두 지니고자 하면, 응당 한 마음으로 기억하면서 생각을 더욱 자라게 해야 한다. 비슷한 일에 생각을 매어 두면 보지 않은 일도 알게 되는 것이니,마치 주리반타가(周利槃陀迦) 비구가 일심으로 신발을 닦으면서 생각 생각 선정을 기억하여 마음의 때를 없앤 뒤에 아라한이 된 것과 같다.
그 사람은 몹시 둔했으므로 쓸 소[掃] 자와 비 추[箒] 자의 두 글자를 외게 하였으나 둘 다 외지 못했다. 쓸 소 자를 외울 때는 비 추 자를 잊어버리고 비 추 자를 외울 때는 쓸 소 자를 잊어버렸다. 이렇듯 둔했는데도 오히려 성인의 도를 얻었거늘 하물며 영리한 사람이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겠는가. 천하에서 극히 둔하다 한들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불법은 실행을 귀히 여기고 실행하지 않음을 귀히 여기지 않나니, 다만 부지런히 행하기만 하면 비록 들은 것은 적다 해도 역시 먼저 도에 들어간다.”
또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마치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가면서 한 사람은 빠른 말을 타고 한 사람은 느린 말을 탔다고 할 때, 비록 느린 말을 탔다 하더라도 먼저 출발한 까닭에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해탈을 믿는 사람이 부지런히 정진을 하면 먼저 열반에 이를 것이니, 곧 주리반타가 등이 그런 분이다.”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듣고 외울 것이요, 게으름을 피우다 음개(陰蓋)에 덮이지 말아야 한다.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수없는 겁 이전의 과거에 일체도왕(一切度王) 부처님께서 계셨다. 당시 대중 가운데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한 비구의 이름은 정진변(精進辯)이요 한 비구의 이름은 덕락지(德樂止)였다. 두 사람은 함께 법을 들였는데, 정진변은 경을 듣고 기뻐하였으므로 바로 즉시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를 얻고 신통이 구족하였지만, 덕락지는 잠에 빠져서 깨지 않았으므로 혼자만 얻은 바가 없었다.
이때 정진변이
덕락지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이란 만나기 어려우니, 억백천의 세상 동안에 한번 나오신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뭇 선(善)의 근본을 지어야 하거늘 어떻게 잠을 잔단 말이오.≻
그러자 덕락지는 그의 가르침을 듣고 이내 기수(祈樹)의 사이를 거닐었으나 거닐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선 채로 졸았다. 이렇게 번거롭고 어지러워 스스로 안정을 취할 수 없자 샘 곁으로 나아가 앉아서 사유하려고 하였으나 다시 졸음이 왔다.
그래서 정진변은 좋은 방편으로 그를 제도하기 위해 꿀벌의 왕으로 변화해서 그의 눈으로 날아가 쏠 듯이 하자, 덕락지는 깜짝 놀라면서 깨어나 앉았다. 그러나 꿀벌을 두려워한 것도 한 순간이요 다시 잠이 들었는데, 그때 꿀벌이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가서 그의 가슴을 쏘았다. 그러자 덕락지는 놀라서 깨어났는데, 마음 속으로 겁이 나고 두근거려서 감히 다시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때 샘물 안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꽃이 있었는데 아주 깨끗하였다. 꿀벌의 왕이 꽃 위로 날아가 앉아서 단 이슬의 맛을 빨아먹고 있었는데, 덕락지는 단정히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날아올까 겁이 나서 감히 자지 못한 채 꿀벌을 사유하면서 그의 근본을 관찰하였는데, 꿀벌은 단맛을 빠느라 꽃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꿀벌의 왕은 잠깐 졸다가 진창 속에 떨어지면서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썼으며, 그런 뒤에는 도로 그 꽃 위에 날아가 앉았다. 그러자 덕락지는 꿀벌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단 이슬을 먹고 있는 자여,
그 몸이 안온하겠구나.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
아내나 아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진창 속에 떨어져서
스스로 그 몸을 더럽힌단 말이냐.
이렇게 꾀가 많지 못한 탓으로
단 이슬의 맛을 망가뜨렸구나.

또 이런 꽃과 같은 데서는
오래 머물지 않아야 하나니
해가 지고 꽃이 도로 오므라들면
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다.

다음 날이 되어서 햇빛이 나야
그 때 비로소 다시 나올 수 있으므로
온밤 내내 어두운 곳에서 지칠 것이니
이와 같이 매우 심한 고생을 겪으리라.


그러자 꿀벌은 덕락지를 향하여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처님이란 비유하면 단 이슬과 같으므로
법을 들으면 싫어함이 없나니
게으름을 피워서 온갖 중생에게
이익이 없는 일은 하지 말게나.

다섯 갈래[五道]의 나고 죽는 바다는
마치 진창에 떨어지는 것과 같나니
애욕에 얽히고 싸여지게 되면
지혜가 없어서 아주 미혹되리라.

해가 돋아서 모든 꽃이 피는 것은
마치 부처님의 색신(色身)과 같고
해가 져서 꽃이 도로 오므라드는 것은
세존께서 열반에 드는 것과 같네.

여래 계신 세상을 만나게 되었으니
부지런히 정진하며 받아들여서
수면(睡眠)의 가리움을 제거해야 할지니
부처님께서 항상 계신다고는 말하지 말라.

깊은 법의 요긴한 지혜는
색(色)으로써 인연을 삼지 않나니
그 집착이 있음을 나타낸 것은
교묘한 방편인 줄 알아야 하네.

교묘한 방편으로 제도하는 것은
이익이 있을 뿐 헛된 일이 아니니
이러한 변화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역시 일체 중생을 위해서니라.

덕락지는 그의 말을 듣고 이내 불기법인(不起法忍:無生法忍)을 얻고 모든 법의 근본을 알았으며 다린니(陀隣尼)를 체득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정진변은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요, 덕락지는 지금의 미륵이니라. 나는 그 때 미륵과 함께 경법을 들었으나, 미륵은 그 때 잠을 잤기 때문에 홀로 얻은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교묘한 방편으로 구제하지 않았으므로 미륵은 지금까지 생사 안에 있으면서 아직 해탈하지 못한 것이다.”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비구가 날마다 성 밖의 들판에 있는 무덤 사이를 다녔는데 그 길은 다른 사람의 밭을 지나게 되어 있었다. 밭의 주인이 밭을 지나가는 비구를 보고 성을 내면서 ‘이 무슨 도인이기에 날마다 이 곳을 왔다갔다하면서도 도와 덕은 닦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도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걸사(乞士)이기에 나의 밭 가운데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사람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오.’
도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증인을 구하러 가기 위하여 밭 가운데를 가는 것이오.’
밭주인은 전생의 인연이 연결되어 있어서 제도를 받아야 했으므로 곧 도인의 뒤를 몰래
따라갔더니 큰 들판에 무덤이 있었다. 무덤 사이에는 시체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서 퉁퉁 불어터지고 썩어 문드러져 있었는데, 새와 짐승이 뜯어먹다가 남은 시체가 이곳 저곳에 널려져 있었다. 다 뜯어먹다가 둔 것도 있고 아직 덜 뜯어먹다가 둔 것도 있었으며, 회색 비둘기 같은 것에서는 벌레들이 우글거리면서 파먹고 있었으므로 더러워서 가까이 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때 비구는 손을 들어서 그 사람에게 말하였다.
‘이 새와 짐승들이 나의 증인입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이 새와 짐승들이 어째서 증인이란 말입니까? 당신은 지금 비구인데 누구와 함께 싸운다는 말입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마음의 병으로 번뇌와 근심들이 많습니다. 나는 이 해골을 관찰하면서 추악하게 드러난 것을 분별합니다.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가서 나의 몸을 돌이켜 관찰하건대,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저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만 갈래로 내달으면서 허깨비이자 거짓인 저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細滑]의 법을 쫓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마음의 근원에다가 ,≺너 마음은 이 생각의 일어남을 알아서 나를 데리고 지옥과 아귀 안에 들어감이 없게 해야 한다≻고 훈계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범부라서 아직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 마음의 도둑은 명을 따라 주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날마다 들판에 가서 추악하게 드러난 깨끗하지 않은 생각을 말하는 것이며, 또 마음으로 마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란 갑작스럽고 어지럽고 뒤섞여 일정하지 않으므로 마음을 지금 고쳐서 나쁜 인연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밭주인은 도인의 가르침을 듣고 손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 밭주인은 가섭불(迦葉佛) 때부터 1만 년 동안 부정상(不淨想)을 닦았던 터라 이내 36물(物)의 추악하게 드러난 부정함을 분별하였다.
그리하여 비구와 그 밭주인은 곧 그 들판에 있던 크고 두려운 무덤 사이에서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알라. 앞의 성인과 뒤의 성인이 모두 간절히 경계하셨으니, 부디 가볍게 여기거나 게으름을 피워서 스스로가 다가오는 과보를 손상치 말 것이다. 권속은 오래 가는 것이 아니다. 잠시 동안 인연이 합하여 선과 악으로 갚는 것이거늘 친함과 성김이 어찌 정해져 있으랴. 가족에게 치우쳐서 고집하거나 탐착하지 말라.
비록 영광스런 지위를 얻는다 하더라도 잠시일 뿐이요 오래가지 않는다. 자주 보는 일이지만, 어리석고 속된 이는 덧없음을 모른 채 집과 전답을 널리 경영하고 아내와 자녀에게 연연하며 이름과 이익을 탐하고 구하면서 만족할 줄을 모르고 있다. 평생 동안 복을 닦을 줄 모르다가 죽어서 세상을 떠나고 나면 도로 다른 사람에게 속하게 된다.”
또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외국(外國)에 청신사(淸信士)가 있었는데 3보(寶)를 공양하면서 한 번도 싫증을 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떤 사문과 친구가 되어서 신통을 얻었으며 나고 죽음을 이미 다하였다. 그런데 청신사에게 중병이 들어서 약을 아무리 써도 낫지 않았는데, 그의 부인은 곁에서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말하였다.
‘함께 부부로 있다가 혼자만이 이런 고통을 받으십니까? 당신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디에 의지하며, 아들딸도 외로워질 터인데 그 누구를 믿겠습니까?’
남편은 그녀가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듣자 그 즉시 죽어서 혼신이 아내의 콧속으로 들어가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몹시 슬피 울면서 그칠 줄을 몰랐다.
그때 도인이 가서 그 부인을 만나서 그녀의 남편이 죽은 뒤에 콧속의 벌레가 된 것을 알고는 잘 달래어서 근심을 덜어 주려고 했다. 부인은 도인이 온 것을 보고 더욱더 슬퍼하면서 말하였다.
‘어떻게 하오리까. 화상이시여, 남편은 벌써 죽었습니다.’
그때 부인이 흘린 콧물과 함께 콧속의 벌레가 땅으로 떨어졌다. 부인이 부끄러워하면서 발로 밟으려고 하자 도인이 말하였다.
‘그러지 마시오, 그러지 마시오. 제발 죽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 남편이 벌레로 변화한 것입니다.’
부인이 도인에게 아뢰었다.
‘저의 남편은 경전을 받들고 계율을 지녔으며 정진은 그 누구도 미치기 어려웠거늘, 무슨 까닭에 죽어서 벌레가 되었단 말입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은혜와 사랑으로 슬퍼하면서 울부짖었으므로 은혜와 애착하는 마음이 일어나 연모하고 근심했기 때문에 죽어서 이런 벌레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도인은 벌레를 위하여 경을 설하였다.
‘그대는 정진하면서 경을 받들고 법을 지녔으므로 의당 천상에 태어나서 모든 부처님 앞에 있어야 마땅하오. 다만 은혜와 애착으로 연모하는 생각에 안주하다가
이런 벌레가 되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오.’
벌레는 그의 말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리면서 이내 자신을 엄격히 자책하고는 즉시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오직 자세히 살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선과 악을 알아야 하며, 허물을 고치고 복을 닦으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남을 위할 것이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스스로 다가오는 과보를 손상하지 말아야 한다.”

(4) 진익부(進益部)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잘 정진하면 열 가지 이익이 있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 인가? 첫째는 남이 꺾어 누르지 못하고, 둘째는 부처님께서 거두어 주며, 셋째는 사람 아닌 것[非人]의 보호를 받고, 넷째는 법을 들으면 잊지 않으며, 다섯째는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고, 여섯째는 변재가 더욱 늘어나며, 일곱째는 삼매(三昧)의 성품을 얻고, 여덟째는 병이 적고 괴로움이 적으며 아홉째는 얻는 대로 먹고 먹은 뒤에는 잘 소화되고, 열째는 울발라꽃[優鉢羅華]이 더러운 데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또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말하였다.
“네 번째의 정진에는 열 가지 생각[十念]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佛]의 한량없는 공덕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가르침[法]의 부사의한 해탈을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상가[僧]의 청정하여 물들음이 없음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대자(大慈)를 행하여 중생을 안립(安立)시킬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대비(大悲)를 행하여 뭇 고통에서 구제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정정취(正定聚)에게는 즐거이 선을 닦게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사정취(邪定聚)에게는 그를 구제하여 근본으로 돌아가게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아귀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몹시 고뇌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모든 축생은 뭇 고통을 오래오래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요, 열째는 모든 지옥에서는 불에 태우고 삶는 고통을 갖추어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러한 열 가지 생각으로 3보의 공덕을 사유하면서 마음을 오로지 하여 산란하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생각으로 정진한다고 한다.”
또 『육도경(六度經)』에서 말하였다.
“다시 네 가지 정진으로 지혜를 완전히 갖춘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다문(多聞)에 힘쓰고, 둘째는
총지(總持)에 힘쓰며 셋째는 요설(樂說)에 힘쓰고 넷째는 정행(正行)에 힘쓰는 것이다.”

감응연(感應緣)[대략 여섯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진(晋) 사문(沙門) 백승광(帛僧光)
진의 사문 축담유(竺曇猷)
송(宋)의 사문 석승규(釋僧規)
송의 하담지(何澹之)
주(周)의 사문 석혜경(釋慧景)
수(隋)의 사문 석담순(釋曇詢)
진(晋) 사문(沙門) 백승광(帛僧光)
진(晋)나라 섬현(剡縣)의 은악산(隱岳山)에 백승광(帛僧光)이라는 사문이 있었다. 혹은 담광(曇光)이라고도 했는데 어디 사람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젊었을 때부터 선정을 익혔는데, 진나라 영화(永和) 초에 강동(江東)에서 노닐다가 섬현의 석성산(石城山)으로 들어가자 산에서 사는 백성들이 모두 말하였다.
“여기는 옛날부터 사나운 짐승들의 재앙이 있고, 또 산신(山神)이 모질게 굴어서 사람의 자취가 끊어진 지 오랩니다.”
그러나 승광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사람을 사서 풀을 깎아 헤치면서 석장(錫杖)을 등에 메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수십 리를 들어가자 갑자기 큰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서 호랑이 떼가 울부짖었다.
승광은 산 남쪽에서 하나의 석실(石室)을 발견하자 그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앉아서 합장하고는 선정을 닦을 처소로 삼았다. 다음날 아침 비가 그치자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였고 저녁에는 다시 그 안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3일이 지나자 산신이 나타났는데, 어떤 때는 호랑이 형상으로, 어떤 때는 독사 몸으로 나투어서 승광을 두렵게 하였으나 승광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시 3일이 지난 뒤에 또 꿈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장안현(章安縣) 한석산(韓石山)으로 옮아가 살겠습니다. 이 석실은 스님께 양보하겠습니다.”
그로부터는 나무꾼들이 막힘 없이 다녔고 도인과 속인들이 높이 섬겼다. 선(禪)을 좋아해서 배우러 온 사람들이 석실 곁에다 띠로 지붕을 잇고 있었으므로 점점 절이 되어갔고, 그로 인해 이름을 은악(隱岳)이라 한 것이다. 승광은 매양 선정에 들면 7일 동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산에 있은 지 53년이 되었고 나이는 110살이었다. 진나라 태원(太元) 말년에
옷으로 머리를 싼 채 편안히 앉아서 죽었다. 여러 스님들은 모두 평상대로 선정에 든 것으로 여겼으나 7일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자 괴이하게 생각해서 함께 살펴보았더니, 안색은 평소와 같았으나 콧속의 숨결이 없었다.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형해(形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송(宋)나라 효건(孝建) 2년에 곽홍(郭鴻)이 섬현에 부임하여 산으로 들어가 예배한 뒤에 시험삼아 마음대로 가슴을 풀어 헤쳤더니, 시원한 바람이 일어나면서 옷과 피부가 녹아 흩어지고 오직 흰 뼈만이 남았다. 곽홍은 크게 두려워하면서 뼈를 석실에다 거두어 모시고 벽돌을 그 둘레에다 쌓고 잘 바른 뒤에 그의 형상을 그려 놓았다.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진의 사문 축담유(竺曇猷)
진(晋)나라 시풍(始豊) 적성산(赤城山)에 담유(曇猷)라는 사문이 있었는데 혹은 법유(法猷)라고도 한다. 돈황(燉煌) 사람이며 젊어서부터 고행하면서 선정을 익혔는데, 뒤에 강좌(江左)에서 유행하다가 섬현(剡縣)의 석성산(石城山)에 머물면서 걸식하며 좌선을 했다. 일찍이 어느 주술을 쓰는 집에 가서 걸식을 했는데, 담유가 축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지네가 밥에서 뛰어나왔으나 담유는 흔쾌히 먹으면서 다른 기색이 없었다.
나중에 시풍(始豊)의 적성산(赤城山)으로 옮겨서 석실(石室)에서 좌선할 때였다. 사나운 호랑이 수십 마리가 담유의 앞에 와서 쭈그리고 앉았으므로 담유는 예전처럼 경을 외웠다. 그 때 한 마리의 호랑이가 잠을 잤으므로 담유는 마음껏 호랑이 머리를 때리면서 꾸짖었다.
“어째서 경을 듣지 않느냐?”
얼마 있다가 호랑이들은 모두 떠나갔는데, 잠시 후에는 뱀들이 다투어 나왔다. 큰놈은 열 아름이 넘었는데 머리를 쳐들고 담유를 향하여 빙빙 돌면서 왔다갔다하다가 한나절이 지난 뒤에야 떠나갔다. 그런 뒤의 어느 날, 신(神)이 몸을 나타내서 담유에게 말했다.
“법사의 위덕이 너무도 거룩하십니다. 이 산에 와 계십시오. 제자는 석실을 양보하여 스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자 담유가 말하였다.
“빈도(貧道)는 산을 찾아와서 서로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어째서 함께 살지 않으려 하십니까?”
신이 말하였다.
“제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속(部屬:권속)들이 법의 교화에 친밀하지 못해서 갑자기 통제하기도 어렵고, 먼 데 있는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다가 혹시 서로 침노할 염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신의 길은 다릅니다. 그래서 떠나가려 할
뿐입니다.”
담유가 말하였다.
“본시 무슨 신입니까? 여기서 얼마나 살았으며 어느 곳으로 옮겨가려 하십니까?”
신이 말하였다.
“제자는 하제(夏帝)의 아들입니다. 이 산에 산 지는 2천여 년입니다. 한석산(寒石山)은 바로 장인 어른께서 다스리는 곳이므로 그곳에 가서 머무르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산 북쪽의 묘(廟)로 돌아가 있다가 이별할 때에는 손을 붙잡고 담유에게 향(香) 세 그릇을 기증하였다. 그리고는 말 위에서 북을 울리고 뿔피리를 불면서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적성산에는 외따로 떨어져 있는 바위가 있었는데, 구름을 침범하듯 홀로 우뚝이 솟아 있었다. 담유는 돌을 가지고 사닥다리를 만들어서 그 바위로 올라가 조용히 앉아 있었으며, 대쪽을 이어서 물을 대어 날마다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곳엔 선학(禪學)의 깊은 경지에 도달한 이가 10여 명이나 있었는데, 왕희지(王羲之)는 이를 듣고 일부러 가서 봉우리를 우러러보며 공경을 드리고 돌아갔다.
적성의 바위와 천태(天台)의 폭포와 영계(靈溪)의 4명(明)은 다 같이 서로 연속되어 있었으며, 그 중에서 천태의 낭떠러지는 깎아 내린 듯 했고 산봉우리는 하늘을 끊을 정도였다. 옛 노인들이 서로 전한 말로는 ‘위에 아름다운 정사(精舍)가 있어서 도를 얻은 이들이 살고 있으며, 비록 돌다리가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걸쳐서 있기는 하나 돌이 가로놓여져서 사람이 갈 수 없고, 게다가 이끼가 푸르게 끼어서 미끄러지므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 본 이가 없다’고 했다. 담유가 그 돌다리까지 갔더니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대의 정성이 돈독함은 알겠으나, 지금은 아직 도를 얻지 못했으니 이로부터 10년 후에 올 것이니라.”
담유가 속으로 한탄하면서 저녁 때 그곳에서 자는데, 도를 행하고 포살(布薩)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수염과 눈썹이 하얀 한 사람이 나타나서 담유가 가려는 곳을 물었다. 담유가 자기 뜻을 자세히 대답하자 그가 말하였다.
“당신은 나고 죽고 하는 몸이거늘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곳의 산신(山神)이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담유는 결국 물러나서 돌아왔는데 도중에 하나의 석실(石室)을 지나다가 그 안에 들어가 쉬었다.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한꺼번에 없어지면서 석실 안이 모두 밝아졌으나, 담유의 신색(神色)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홑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여기는 제가 살던 곳입니다. 어제는 나가서 있지 않았더니 집안에 소동(騷動)이 생겼습니다. 아주
죄송합니다.”
담유가 말하였다.
“만일 이것이 당신의 석실이라면 나에게 돌려주십시오.”
신이 말하였다.
“제가 살집은 이미 옮겼으니 지금부터 머무르십시오.”
그래서 담유는 잠시 동안 그곳에서 머물렀다. 담유는 돌다리를 건널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뒤에 여러 날을 깨끗이 재계하고 다시 가보려고 하였다. 마침 가로놓인 돌이 환히 열렸으므로 다리를 건너서 조금 더 가자 정사와 신승(神僧)이 보였는데 과연 듣던 말과 같았다. 그는 향을 피우고 점심을 먹었다. 다 먹고 나자 신승아 담유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10년 후에 여기로 와야 하오. 지금은 아직 머무를 수 없습니다.”
고 했으므로, 그냥 돌아오다가 가로놓인 돌을 뒤돌아보니 먼저와 같이 도로 합쳐 있었다.
진나라 태원(太元) 연간에 요사스러운 별이 나타났으므로 황제는 여러 나라의 덕 있는 사문에게 칙령을 내려서 재계와 참회로써 재앙을 물리치게 하였다. 담유가 이때 정성껏 기도하여서 감응이 나타났는데, 엿새째의 아침이 되자 푸른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와서 허물을 뉘우치며 말하였다.
“방자하게 법사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이날 저녁에 별은 물러갔다. 다른 설명에서는 별을 물리친 이가 백승광(帛僧光)이라고 했는데, 누가 옳은가는 자세하지 않다. 담유는 태원 말기에 산의 석실에서 죽었는데, 시체는 평소에 앉은 자세였고 온몸이 녹색이었다. 진나라 의희(義熙) 말년에 은사(隱士) 신세표(神世標)가 일부러 산에 들어가 바위에 올라가서 살펴보았더니 담유의 시체는 썩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도 가서 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앞을 가리므로 엿볼 수가 없었다 한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송(宋)의 사문 석승규(釋僧規)
송(宋)나라 사문 승규(僧規)는 무당사(武當寺)의 스님이다. 당시 경조윤(京兆尹) 장유(張瑜)가 이 고을에서 항상 승규를 청하여 집에서 공양하였다. 영초(永初) 원년(元年) 12월 5일에 병이 없이 갑자기 죽었다가 이틀만에 소생하여 스스로 말하였다.
“5일 밤 2경(更)에 큰 문 사이가 훤해지면서 어떤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다섯 사람이 횃불을 밝히고는 편지와 깃발을 잡고 곧장 집 안으로 들어와서 나를 꾸짖었다. 나는 벌떡 누우면서 정신이 어슴푸레해졌는데, 다섯 사람은 붉은 줄로 나를 묶어서 데려갔다.
가다가 어느 산에 이르렀는데 풀과 나무는 전혀 없었으면 흙빛은 아주 검어서 돌과 쇠 같았다. 산 곁의 좌우에는 백골이 쌓여 있었다. 산을 수십 리쯤 가자 세 개의 갈림길이 있었는데, 키가 큰 한 장정이 갑옷을 입고 몽둥이를 갖고 있으면서 다섯 사람에게 물었다.
‘몇 사람이나 오느냐?’
‘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나서 다섯 사람은 다시 나를 데리고 하나의 길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만에 하나의 성(城)에 닿았는데, 밖에는 수십 채의 집이 있었으며 고운 흙으로 쌓아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길이 십여 장(丈)되는 나무가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쇠로 된 들보가 놓여져 있었다. 그 형상은 마치 두레박 틀과 같았으며 좌우에는 흙이 담긴 삼태기가 있었다. 흙에는 수량의 등급이 있었는데, 열 섬[斛]들이 것도 있었으나 형상은 역시 다섯 되[升]들이의 크기 밖에 되지 않았다. 옷과 머리싸개가 다 같이 붉은 한 사람이 있다가 나에게 말하였다.
‘너는 세상에 살고 있었을 때에 어떠한 죄와 복을 지었느냐? 사실대로 말해야 하며 거짓말은 하지 말라.’
내가 몹시 두려워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국리(局吏) 같은 이에게 말하였다.
‘장부를 펴서 그의 죄와 복을 검사해 보라.’
그러자 얼마 있다가 긴 나무 아래로 가서 한 삼태기의 흙을 가져다가 쇠 들보 위에 올려놓고 달아보는데 마치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았다. 국리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죄와 복을 달아보는 저울이다. 너는 복이 적고 죄가 많으니 우선 벌을 받아야겠다.’
그 때 갑자기 의관을 차린 어른 한 사람이 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사문이구나. 어찌 염불을 하지 않았는고. 나는 허물을 뉘우치면 여덟 가지 재난을 제도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일심으로 염불을 하였더니, 의관을 차린 사람이 국리에게 말하였다.
‘다시 이 사람을 달아 보라. 이는 부처님의 제자이므로 행여 제도될 수도 있으리라.’
국리는 다시 삼태기를 올려놓고 달아보았다. 이번에는 저울이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자 나를 데리고 감관(監官) 앞으로 가서 판별하게 하였는데, 감관은 붓을 들고 장부를 보면서 오랫동안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또 주의(朱衣)를 입고 현관(玄冠)에 인수(印綬)를 차고 옥판(玉板)을 가진 한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장부 위에는 아직 이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감관은 깜짝 놀라면서 좌우에게
수록(收錄)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잠깐 있다가 도리어 저 다섯 사람을 포박을 하라고 했다.
감관이 말하였다.
‘살귀(殺鬼)들아, 무엇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데리고 왔느냐?’
그리고 나서 매를 때렸다. 잠시 후에 어떤 사자(使者)가 와서 천제(天帝)께서 도인을 불러오라고 하자, 그를 따라서 천제가 있는 궁전으로 나아갔다. 밟는 데마다 모두 금은 보석으로 되어 있어서 아름다운 광채가 반짝거려 응시할 수조차 없었으며, 천제의 좌우에는 주의(朱衣)를 입고 보관(寶冠)을 쓴데다가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이들이 서 있었다. 천제가 말하였다.
‘그대는 사문이거늘 어찌 힘써 업을 닦지 않다가 조그마한 귀신들에게도 함부로 체포되어 왔는가?’
내가 모든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면서 은혜를 빌고 복을 청하였더니 천제가 말하였다.
‘그대의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이제 환생(還生)시켜 주겠소. 부디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며 속인 집에 자주 가서 놀지 마시오. 살귀들이 사람을 잡아 올 적에도 잘못 알고 함부로 하는 일이 많아서 당신 같은 이가 걸려들게 됩니다.’
나는 물었다.
‘불의에 걸려드는 재앙은 어떤 방도로써 면할 수 있습니까?’
천제가 말하였다.
‘복된 일을 널리 짓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지만, 만일 그런 일을 못한다면 팔관재(八關齋)를 지으시오. 살아서는 뜻밖에 닥쳐오는 재앙을 면하고 죽어서는 지옥을 여의게 되는 것이므로 역시 그것이 순서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나를 보내 주었다. 얼마쯤 돌아오다가 한 정사(精舍)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많은 사문이 있었다. 무당사의 사주(寺主) 백(白) 법사도 있었고 제자 혜진(慧進)도 있었다. 건물들이 넓고 크고 가지런하였으며 자량(資糧)과 대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청하였더니 어느 한 사문이 말하였다.
‘여기는 복 있는 사람이 사는 땅이라, 당신이 있을만한 곳이 못됩니다.’
그러자 사자는 나를 데려다 도로 장유의 집에 놓아두고는 떠나가 버렸다.”

송의 하담지(何澹之)
하담지(何澹之)는 동해(東海)의 사람으로서 송(宋)나라 대사농(大司農)이었는데, 경법(經法)을 믿지 않았고 잔악한 일을 많이 했다. 영초(永初) 때에 병이 들었을 때 귀신 하나가 보였다. 키가 큰 장정인데 머리는 소요 몸은 사람이었으며, 손에는 쇠작살을 가지고서 밤낮으로 그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몹시 두려워서 도가(道家)를 시켜 부적(符籍)과 인록(印錄)을 만들어서 모든 재앙을 물리치게 하였으나 예전처럼 그대로 보였다. 이때 서로 알고 지내던 사문 혜의(慧義)가 그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문병을 오자, 담지는 그에게
보이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자 혜의가 말하였다.
“그는 바로 우두아방(牛頭阿旁)이오. 죄와 복은 어둡지 않으며 사람이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마음을 돌려서 불법을 향하면 이 귀신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담지는 미혹되어서 고치지 않다가 얼마 있지 않아서 죽었다.[이상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詳記)에 나온다.]

주(周)의 사문 석혜경(釋慧景)
주(周)나라 대동(大同) 2년에 혜경(慧景) 법사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사주(寺主)로서 도가 본디 높고 깨끗하며 지혜가 있어서 법을 떨쳤다. 법사는 먼저 절 뒷산 위에다 두타옥(頭陀屋) 두 칸을 짓고 지냈는데 항상 선신(善神)이 수호하고 있었다.
보통(普通) 원년(元年) 4월 20일에 새로 계를 받은 스님 혜징(慧徵)이란 이가 그 집 안으로 가서 계를 외우다가 조금 피로해서 싫증을 내었더니 산신이 모습을 나타냈다. 게다가 검은 옷을 입은 키가 한 길[丈]이나 되는 이가 손에다 노끈을 갖고 있었으므로 혜증은 놀라고 두려워서 절로 돌아왔다.
보통 8년 4월 15일에는 절의 스님 승복(僧覆)이 이 집 안으로 가서 한 여름 동안 경을 외우겠다고 맹세하고는 처음 하루는 외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째에는 절을 돌면서 꾸뻑거렸더니 잠깐 사이에 산 위의 돌이 우fp 같은 소리를 내면서 그 중 한 덩이의 돌이 집을 내리쳤다. 승복은 놀라 일어나서 사죄한 뒤에 경을 외우다가 다시는 감히 자지 않았다.
대동 4년 4월 12일, 한낮이 다할 무렵에 법진(法珍)이라는 한 객승(客僧)이 친척집이 수양(壽陽)에 있었으므로 절에 예배차 왔다가 절 뒷산으로 올라갔다 석굴(石窟) 안에는 예로부터 좋은 샘물이 있었는데, 그는 물이 아주 깨끗한 것을 보자 그대로 그 곳으로 가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공중에서 ‘피하라’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더니 잠깐만에 호랑이가 와서 앞다리로 그의 머리를 할퀴어서 피가 얼굴까지 흘러내렸으며, 그 상처는 40여 일 만에야 나아서 따나가게 되었다.
그 밖에 있는 일로는 대동(大同) 원년(元年) 2월 5일에 일어났다. 산신이 형상을 거두고는 보살의 수건을 쓰고 가사를 입은 채 형모(形貌)를
극히 단정하게 해서 좌우에 30여 인의 시종을 거느리고 왔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향로를 잡고 앞을 인도하여 선당(禪堂)에 들어와서 홍서(弘誓) 법사에게 나아가 스스로 의자에 앉아 법사와 함께 말을 했으며, 아울러 절의 대중들을 청하여 도를 행하였다.
또 그 해 4월 4일 밤에는 큰 바람이 불었다. 선당에 있던 스님 지원(智遠) 등은 바깥에서 10여 인이 걸어가는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새벽녘에 선당의 지게문 곁을 보았더니 하나의 나무가 있었으므로 혜경과 지원 등은 큰 절로 돌아가서 재(齋)를 마쳤다. 이후에는 자주 선당의 지게문을 열어 보았는데 이런 것이 보였다.
혜경 법사가 선상에 앉아 있을 때에 하나의 종이에 쓰여진 글을 보고는 선당 뒤의 석굴 안에 가져다 두기 위하여 혜경 법사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면서 처음에는 받들어서 옮기려고 했으나 움직이지 않다가, 마지막엔 ‘석굴에다 옮겨야겠다’고 말을 하자 곧 가볍게 들렸다. 그 해 5월 14일에는 다시 한 조각의 돌에다가 글을 써서 혜경과 지원 두 스님이 함께 선당 뒤에 가져다 놓고 대를 심은 뒤에 자칭 ‘보리(菩提)’라고 이름 붙였다.

수(隋)의 사문 석담순(釋曇詢)
수(隋)나라 양주(懹州) 백첨산사(柏尖山寺)에 있던 석담순(釋曇詢)은 속성이 양(楊)씨이며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이다. 스스로를 삼가고 다스려 닦으면서 심학(心學)을 종지로 받들었는데 멀리 바위를 찾아 숨어 있다가 백록산(白鹿山) 북림(北霖)의 낙천사(落泉寺)에 가서 담준(曇準) 선사를 만나 선법(禪法)을 전수했다. 또 조(稠) 선사에게로 가서 그 길[津道]을 물었는데, 극히 서로 예우(禮遇)하면서 선미(禪味)에 잘 화합했다. 나중에 여름을 세 번 지낸 뒤에 녹토곡(鹿土谷)으로 옮겨서 선정을 닦았다. 그 때에 말랐던 샘물이 다시 나왔으므로 암수의 사슴들이 선원을 돌며 옛날처럼 맛있는 물을 마시면서 길이 잘 들었고 날마다 도의 이웃을 이루었으니, 좇아서 배우는 무리들은 그 상서로움을 서로 경하하였다.
당시 설법의 청을 받아서 잠시 운문(雲門)으로 가던 길에 안개 때문에 어두워져서 길을 잃게 되었는데 갑자기 산신이 나와서 길을 가리켜 주었으므로 본 길로 접어들었다. 이야말로 깊숙하고 어두운 데까지 감화가 미쳤으므로 신명(神明)이
도운 것이다.
어느 때에는 도둑이 몰래 와서 채소를 훔쳐 가지고 밭을 나가려 할 때 벌 떼가 덤벼서 온몸을 쏘았다. 담순은 이 소식을 듣자 인자한 마음으로 구제하여 치료해 주었으니, 이 때문에 그는 남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일찍이 조(趙)나라 사람 하나가 멀리서 와서 은근한 태도로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제자는 병으로 인하여 죽었다가 다시 소생했습니다. 가서 염라왕(閻羅王)을 뵈었더니 죄를 따져 물어서 지옥으로 가게 되었는데 ‘담순 법사의 힘을 입어 명(命)을 청하라’고 하면서 왕이 방면해 주었습니다. 이제까지 한번도 뵙지 못했습니다만, 멀리서 찾아와 이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또 산길을 가다가 두 호랑이가 여러 날을 쉬지 않고 싸우고 있는 것을 만났다. 담순은 석장(錫杖)으로 둘을 떼어놓은 뒤에 몸으로 가로막고 서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다 같이 숲속에서 살면서 크게 어길 일이 없다고 본다. 다행히 저마다 갈 길이 나누어져 있거늘 어찌하여 굳이 분노하고 성을 내는가?”
호랑이들은 머리를 숙여 듣고 있다가 숨을 들이마시면서 흩어져 갔다. 여러 번 곰이나 호랑이가 서로 쉬지 않고 싸우고 있는 것을 모두 담순이 가서 구했는데, 대개가 앞에서와 같은 말을 했다. 선정에 들면 새들조차 떠들지 않았고 길짐승들은 그를 마치 짝처럼 대하였다. 또 음덕(陰德)은 만물을 감동시켰고 그 공용(功用)을 드러내어 인(仁)을 이루었다. 매양 선정에 들면 7일을 기한으로 삼았는데 백호(白虎)가 그 방으로 들어가 같이 있었다. 혼자 고요한 선원에 있으면서 10년 동안 나오지 않았으므로 수나라 문제(文帝)는 그 덕을 귀중히 여겨서 여러 번 글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해 동안 향과 공양을 올렸다.
개황(開皇) 초년(初年)에 풍진(風疹)이 갑자기 더하여 백첨산사(栢尖山寺)에서 죽으니 춘추는 80이었다. 처음에 병이 들어서 낫지 않고 위중해지자 갑자기 신령한 광명이 촛불을 비추고 향기로운 바람이 지게문에 떨쳤다. 또 목이 희고 몸이 붉은 기이한 새가 선원을 빙빙 날면서 애절한 소리로 울었고 병세가 아주 위독해지자 집의 당기(堂基)에 머물면서 몹시 따르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방문에 있다가 누운 자리까지 와서 아주 슬피 울었으므로 눈 속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죽게 되자 새는 바깥으로 나와서 빙빙 돌며 날다가 훌쩍 날아가 버렸다. 또 감화를 받은 사나운 호랑이가 선원을 빙빙 돌면서 으르렁거리고 할퀴었으며, 이틀 동안 하늘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사흘 동안 해는 슬픔을 띠었다. 또 산은 무너지고 돌이 떨어졌으며,
수풀이 꺾이고 산골 물이 막혔으므로 사람과 짐승들은 놀라서 동요했고 당황하면서 의탁하던 곳을 잃었으니, 그의 슬픈 느낌과 신령한 상서를 그 누가 다 기록하겠는가.[이상 두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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