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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25 법원주림(法苑珠林) 82권

by Kay/케이 202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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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82권

 


법원주림 제82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5. 육도편 ③


2) 지계부(持戒部)[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권지부(勸持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가만히 듣건대, 계율은 바로 사람의 스승이라서 도인이나 속인이나 다 함께 받들며, 마음은 업(業)의 주인이라서 범부나 성인이나 다 같이 제제한다. 진실로 3보(寶)에 의지하는 까닭에 4생(生)이 함께 윤택해지나니, 그러므로 경에서 ‘정법이 머무른다[正法住]’, ‘정법이 사라진다[正法滅]’ 하는 뜻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율을 잘 지니는 것으로 덕을 삼아서 스스로 대경(大經)을 드러내고 성품의 착함을 숭앙하며 대론(大論)을 밝힌다. 계(戒)는 또 해와 달에 비교되고 보배 구슬에 비유되나니, 그 뜻[義]은 바르는 향[塗香]과 같고 일[事]은 물을 아끼는 것과 같다. 큰 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견고한 배라 하고, 훌륭한 싹을 자라게 하는 땅을 편편한 땅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품수(稟受)한 것을 작은 티끌만큼도 이지러뜨리지 않고, 나한은 계율을 잘 지켜서 작은 겨자씨만큼도 범함이 없다. 차라리 목이 말라서 죽을지언정 벌레 있는 물을 마시지 않으며, 끝내 몸을 동여매고 살다가 죽을지언정 풀잎 하나라도 상함이 없다. 경서(經書)에서 이르되 ‘세상에 나아가 바른 도(道)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後世)에 드날리고자 하면, 말과 행실을 충성스럽고 신뢰 있게 해야 하며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한다’했거늘, 어찌 심마(心馬)를 멋대로 놓아둔 채 고삐와 재갈을 채우지 않겠는가? 제멋대로 날뛰는 원숭이[情猿]를 도무지 제어하고 묶어놓지 않아서 부낭(浮囊)이 이미 훼손되면 앞길을 어떻게 기약하겠는가? 덕의 병[德甁]이 이미 깨지고 나면 수승한 인연도 길이 끊어지리라.
혹은 나쁜 사람을 한데 모아서 흉악한 무리를 만들고, 다시 서로가 부추기며 갖은 허물을 지으면서도 참괴(慚愧)와 수치심이 없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면서 한층 더 세속을 좇아가기만 하면, 마치 꽃다지와 쑥의
가지와 잎 모두가 쓴 것과 같고 하리과 나무[訶梨菓樹]의 몸에 온통 단맛이 없는 것과 같다.
밝은 데서 어둔 데로 들어가면 다시는 벗어날 기약이 없고, 겁(劫)의 수효가 아득히 멀어지면 그 근심과 슬픔을 참아 내기 어렵다.
이에 가마솥 안에서 세차게 끓는 물은 그 맹렬한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화로에 피운 숯은 이글거리면서 그 폭발하는 소리가 땅을 찢는다. 구리를 녹여 입에 부어넣으면 뱃속이 문드러지고 간장이 녹으며, 구리 기둥에 몸이 부딪치면 뼈와 살이 모두가 다 없어지니, 뒹굴면서 통곡함을 어찌 생각이나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이런 따위의 괴로움들은 실로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이니라.

(2) 권지부(勸持部)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현재의 과보가 나타나게 된다. 나는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난제발제성(難提跋提城)에 우바새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모두 다섯 가지 계율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아우가 갑자기 겨드랑이가 아프면서 숨이 끊어지려고 했다.
그때 의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새로 개를 잡아서 고기를 먹고 아울러 술을 마시면 아픈 데가 반드시 나을 것이오.”
환자가 말하였다.
‘개고기는 저자에서 사서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를 범하면서까지 술을 먹지는 않겠습니다.’
형은 아우가 몹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술을 가져와서 아우에게 말하였다.
‘계를 버리고 술을 마셔라. 그리하여 병부터 고쳐라.’
아우가 형에게 말하였다.
‘제가 아무리 병이 위급하다 할지라도 저는 신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면서까지 이 술을 먹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괴이한 일입니다. 임종 때에 와서
나의 영락(瓔珞)과 같은 계율을 깨트리라 하다니
나는 계율로써 몸을 장엄할 뿐
파묻힐 장구(葬具)는 소용 없습니다.

사람의 몸은 이미 얻기 어렵고
계를 만나는 것은 더욱 어려우므로
차라리 백천 번 목숨을 버릴지언정
금지한 계법을 훼손하거나 깨트리지 않으리니,
한량없는 백천 겁 만에
비로소 이 계율을 만났습니다.

염부제의 세계 안에서
사람의 몸은 극히 얻기 어렵고
그러나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다 하나
바른 법 만나기란 몇 갑절 어렵습니다.

어느 때 법의 보배 만났다 해도

어리석은 이는 취할 줄 모르나니
설사 능히 갈 분별하는 사람이라도
이 일만은 역시 어렵습니다.

계율의 보배가 내 손 안에 들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빼앗으려 하십니까.
이야말로 원수요 미운 사람이니
나의 친애하는 이가 아니십니다.

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아우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친애하기 때문이지 계율을 막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우가 형에게 말하였다.
‘친애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패퇴(敗退)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수승한 곳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하는데
계율을 훼손시켜 저로 하여금 떨어지게 하시니다.
계율 버리게 하는 것을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친애한다 하십니까.

나는 부지런히 계율의 근본을 익히고 있는데
급기야 겁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키는 다섯 가지 계율 중에서
술 안 먹는 계율이 가장 중합니다.
이제 억지로 나에게 범하게 하시니
친애하는 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형이 아우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술을 계율의 근본이라 하느냐?’
그러자 게송으로 형에게 대답하였다.

만일 금지한 계율의 법들을
마음을 다하여 보호하고 지키지 않으면
곧 대비(大悲)를 어기는 것입니다.

풀잎 끝에라도 술 방울이 묻었어도
오히려 감히 맛보거나 접촉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술은 악도(惡道)의 원인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의 수다라(修多羅)에도
술의 나쁜 과보를 설하고 있지만
오직 부처님만이 분별할 수 있을 뿐
그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의 나쁜 행위 중에서
오직 술만이 그 근본이 되어서
다시 나쁜 행 위에 떨어진다 했습니다.

옛날에 어느 우바이는
술을 먹은 인연 때문에
마침내 나머지 네 가지 계율까지 깨트렸으니
이를 악행의 운수[數]라고 이름합니다.

술은 방일하는 근본이 되므로
마시지 않으면 악도를 막아버리고
믿고 좋아하는 마음을 얻게 되어서
간탐 버리고 재물을 보시할 수 있습니다.

수라(首羅)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한량없는 이익을 얻게 되었건만
나는 도무지 딴 뜻이 없는데
어찌하여 훼손하고 범하게 하려 하십니까.

간략히 설명해서 말하자면
차라리 백천 번 목숨을 버릴지언정
부처님의 가르침을 범하지 않겠으며
차라리 이 몸을 바짝 마르게 할지언정
끝내 이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가령 계율을 훼손하고 범하면

백천 년 동안 오래 살 수 있다 하여도
금지한 계율을 보호하다가
즉시 몸과 목숨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병을 낫게 한다 해도
나는 오히려 마시지 않겠거늘
하물며 나을 것인지 낫지 않을 것인지도
지금 확실히 모르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결정된 마음을 짓고 나니
마음에 큰 기쁨 생겨나면서
이내 진리를 보아서 얻게 되었고
아팠던 것도 나아버렸습니다.
오직 크게 지혜로운 사람만이 세상을 싫어해서 도를 닦는다. 비록 계율을 갖추었어도 안으로 선정과 지혜를 품어야만 계율을 지닌 모양을 나타내지 않고 안으로 진실한 덕을 말한다. 그러므로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어떠한 것이 삿된 생활을 여의는 계[離邪命戒]인가? 이 보살은 계율을 지닌 깨끗한 상을 짓지 않으며 남들로 하여금 내면의 진실한 덕은 진실한 덕의 모양을 나타내지 않음을 알게 하고자 하며, 다만 청정한 계율을 지니면서 한결같이 법의 구경(究竟)인 살바야(薩婆若)를 구한다.
어떠한 것이 악을 일으키지 않는 계[不起惡戒]인가? 이 보살은 스스로 높고 귀한 체 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계율을 지녔다’고 하지 않으며, 계율을 범한 사람을 보아도 그를 꾸짖어서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게 하고, 다만 그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청정한 계율을 지님으로써 수승한 결과를 반드시 얻을 뿐이므로 필경 의심하거나 미혹하지 않는다.”
또 『보살장경(菩薩藏經)』에서 말하였다.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시바라밀다(尸波羅蜜多)를 행하는 까닭에 열 가지 청정한 시라(尸羅)를 얻는다. 너는 반드시 알아야 하니, 어떤 것이 열 가지 인가? 첫째는 모든 중생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다. 둘째는 남의 재물을 빼앗거나 훔치지 않는다. 셋째는 다른 이의 아내와 첩과의 모든 음행을 멀리한다. 넷째는 모든 중생에게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다섯째는 권속이 화합하며 서로가 등지지 않는다. 여섯째는 모든 중생에게 거친 말을 쓰지 않나니 그들의 나쁜 말을 능히 참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허한 말[綺語]을 멀리 여의나니 무릇 말을 할 때면 자세히 살피어 말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모든 탐착을 멀리하나니 다른 이가 수용한 것에 내 것[我所]이 없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성냄을 멀리 여의나니
추악한 말이나 욕을 잘 참기 때문이다. 열째는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나니 다른 하늘이나 신선이나 귀신을 공경하거나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보적경』에서 말하였다.
“두 번째 10선업계(善業戒)를 지니는 이는 다섯 가지 일의 이익이 있다. 첫째는 나쁜 행을 제어할 수 있고, 둘째는 착한 마음을 지을 수 있으며, 셋째는 번뇌를 막을 수 있고, 넷째는 청정한 마음을 성취하며, 다섯째는 계율을 능히 키우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방일하지 않는 행을 잘 닦으면 8만 4천의 한량없는 계품(戒品)이 모두 다 이 10선계(善戒) 안에 있다.
또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이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면 열 가지 이익이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일체지(一切智)를 만족시키고, 둘째는 부처님이 배우는 바와 같이 배우며, 셋째는 지혜로운 이가 훼방하지 않고, 넷째는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다섯째는 수행에 편히 머무르고, 여섯째는 나고 죽는 일을 버리며, 일곱째는 열반을 그리워하고, 여덟째는 얽매임이 없는 마음을 얻으며, 아홉째는 수승한 삼매를 얻고, 열째는 신시(信施)의 재물이 모자라지 않는 것이다.”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 또 계율을 지니면서 지혜를 구족하는 네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계율을 지니면서 항상 법을 연설한다. 둘째는 계율을 지니면서 늘 부지런히 법을 구한다. 셋째는 계율을 지니면서 바르게 법을 분별한다. 넷째는 계율을 지니면서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다.”

(3) 인증부(引證部)
『대장엄론』에 말하였다.
“나는 오래전에 들었다. 여러 비구와 상인들이 바다에 들어가서 보물을 캐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배가 파괴되었다. 그 때 어느 나이 어린 비구는 한 장의 널빤지를 붙잡게 되었으나 상좌(上座) 비구는 널빤지를 붙잡지 못했기 때문에 물 속으로 빠지려 했다.
그러자 상좌는 두려워하고 당황해하면서 물에 떠내려갈 것을 겁내며 나이 어린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당연히 상좌를 공경해야 하므로 그대가 얻은 널빤지를 나에게 주게나.’
나이 어린 비구는 곧 생각하였다. ‘여래ㆍ세존님께서 실로 말씀하시기를 ≺온갖 이익과 즐거움은 먼저 상좌에서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널빤지를 상좌에게 주고 나면 반드시 물 속으로 빠질 것이다. 굽이쳐 돌아 흐르는 물길과 파도마저 심하니, 큰 바다의 재난은 너무도 깊고 넓어서 나는 이제 생명을 보존치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나이가 젊고 막 출가한지라 아직 도과(道果)를 얻지 못했으니, 이것이 걱정이구나. 그러나 내가 몸을 버려서 상좌를 구제할 때는 바로 지금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한 뒤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스스로 이 바다에서 온전히 구제 받아야 할까.
아니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승함을 따라야 할까.
한량없는 공덕의 무더기를 얻으면
그 명성이 시방 세계에 두루하리라.

몸과 목숨이란 극히 비천하거늘
어떻게 성인의 가르침을 어기리.
나는 이제 부처님의 계율을 받았으므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굳게 지키리라.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까닭에
널판지를 바치고 신명을 버리겠소.
만일 어려운 일 하지 못한다면
끝내 어려운 과위 얻지 못하리.

내가 만일 이 널판지를 가지면
큰 바다의 재난은 건널 수 있겠지만
성인의 뜻을 순종하지 않으면
장차는 생사의 바다에 빠지리.

나는 이제 물에 빠져 죽는다 해도
오히려 그 이름은 수승할 것이지만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버리면
천상과 안간의 이익을 잃을 것이며
아울러 크나큰 열반과
위없는 제일의 즐거움도 잃으리라.

이렇게 게송을 말한 뒤에 곧 널판지를 상좌에게 주었다. 널판지를 주자마자 바로 해신(海神)이 그의 정성에 감동해서 이내 나이 어린 비구를 붙들어다 해안에 놓아두고 합장한 채 비구에게 아뢰었다.
‘저는 이제 계율을 굳게 지닌 이께 귀의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런 액난을 만났으면서도 능히 부처님 계를 지키셨습니다.’
해신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참된 비구이시여
실로 고행(苦行)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사람을 이름하여 사문이라 하는데
그대는 실로 이런 이름에 알맞습니다.

그대의 덕의 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여러 벗들과 그리고 재보가
큰 해난(海難)을 면하게 되어
모두가 안온하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대의 말씀과 서원이 견고하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공손히 따랐으니
그대는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으로서
뭇 환난을 제거하셨는데
제가 어찌 옹호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본 뒤에 계율을 지키는 것은
그런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범부가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
이것을 바로 희유하다고 합니다.

비구가 편안하고 고요한 데 있으면서
청정하게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며
금지한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
이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도의 자취[道迹]를 아직 획득하기 전에
크게 두려운 곳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사랑하는 목숨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지키면서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희유한 일입니다.”

또 논(論)에 말하였다.
“나는 오래전에 들었다. 한 비구가 차례로 걸식하면서 구슬 꿰는 사람의 집 문밖에 서 있었다. 그때 그 구슬 꿰는 이는 국왕을 위해 마니주(摩尼珠)를 뚫고 있었는데, 비구가 입은 붉은 옷이 구슬에 비치자 그 구슬도 빛이 붉어졌다. 그러자 구슬을 꿰는 이는 곧 비구에게 줄 음식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거위 한 마리가 와서 구슬 빛의 붉은 그 모양이 마치 고기와 같았으므로 얼른 삼켜버렸다. 구슬 꿰는 이가 밥을 가지고 와서 비구에게 주고는 구슬을 찾았으나 아무 데도 없었다. 이 구슬은 값이 몹시 비쌌고, 구슬 꿰는 사람은 가난한 이었으므로 다급하게 비구에게 물었다.
‘나의 구슬을 가져갔습니까?’
그러나 비구는 거위를 죽여서 구슬을 찾는 것이 두려웠으므로, ‘무슨 꾀를 쓰면 이 환난을 면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생각하다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남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내 몸 일부분으로 그 괴로움 받으려 하오.
다시 다른 방편이 없으므로
오직 이 목숨으로 그를 대신할 뿐이오.

만일 남이 가지고 갔다고 말하면
이런 말도 또한 옳지 않은 일이며
내가 가져갔다고 하면 허물은 없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내가 이제 몸과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 거위의 목숨을 위해서요
짐짓 내가 계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이로 인해 해탈을 이룰 것입니다.

그 때에 구슬을 꿰는 이는 이 게송을 들었으면서도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돌려주지 않으면 당신만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끝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비구는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마치 사슴이 동산에 들어갔다가 나갈 길을 모르는 것처럼 비구를 구원해 줄 사람이 없는 것도 그와 같았다. 그래서 비구는 곧 스스로 몸을 사리며 의복을 단정히 하였다. 그 사람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나하고 싸울 작정인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당신과는 싸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번뇌[結使]와 싸우는 것입니다.’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내가 몸과 목숨을 버릴 때에
땅에 떨어지는 것은 마른 나무와 같겠지만
장차 사람들은 나를 칭찬하고 찬미하리니
‘거위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고.

또한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근심과 고통을 내게 하면서도
이처럼 몸을 버림으로써
듣는 이에게 정진(精進)을 권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도(道)를 수행하면서
금지한 계율을 굳게 지니다가
갑자기 계율을 범하게 되었을 때
원하건대 계율 지니기를 좋아하십시오.

그러자 구슬 꿰는 이는 마구 몽둥이로 때리면서 두 손과 머리를 모두 묶어버렸다. 비구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으므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고 죽으면서 받는 고통이 모두 이런 것이리라.’
그리고는 다시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지나간 세상에
음행하고 훔치다가 몸과 목숨 버린 것이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으며
양과 사슴 등, 여섯 가지 축생으로서
몸을 버린 적도 헤아릴 수 없다.

그 때에는 헛되이 고통만을 받았으나
계율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버리게 되니
계율을 범하는 것보다 수승합니다.

설사 스스로가 옹호하려 해도
장차 사라질 곳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니
계율을 잘 지키고
다른 이의 몸과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위태하고 연약한 이 몸을 버림으로서
해탈의 목숨을 취하겠습니다.

나는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걸식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나무 아래서 머무르면서 살거늘
무슨 일로 도둑질을 했겠습니까.
당신은 응당 자세히 살피셔야 합니다.

하지만 구슬을 꿰는 이는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슨 말이 이렇게도 많으냐.’
그리고는 더욱
포박하면서 갑절이나 더 때렸으며, 맨 줄을 한껏 죄이자 귀와 눈과 코와 입에서 온통 피가 흘러내렸다. 이때 그 거위가 와서 피를 빨아먹자 구슬 꿰는 이는 성을 내면서 거위를 때려 죽였다. 그러자 비구가 물었다.
‘이 거위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구슬 꿰는 이가 대답하였다.
‘거위가 죽었건 살았건 무엇 때문에 묻느냐?’
그러자 그 비구는 곧 거위에게로 가서 거위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언짢아하면서 거위를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내가 모든 괴로움을 받은 것은
이 거위를 살리기 위한 것인데
이제 나의 목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거위가 나보다 앞서 죽었구나.

나는 너의 목숨을 보호하려고
이런 극심한 고통을 받았거늘
무슨 뜻으로 네가 먼저 죽었느냐.
나는 과보를 이루지 못했구나.

구슬 꿰는 이가 비구에게 물었다.
‘거위가 지금 너에게 무슨 친족이나 되느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그러하니 말이다.’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의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언짢아하는 것입니다.’
구슬 꿰는 이가 물었다.
‘바라던 소원이 무엇인가?’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보살은 옛날 옛적에
몸을 버려서 목숨을 비둘기와 바꾸었소.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위를 대신하여 목숨을 버리려 했소.

나는 가장 수승한 마음을 얻어서
이 거위로 하여금 목숨을 보전하게 하여
오래 살면서 늘 안락하기를 바랐는데
당신이 거위를 죽였기 때문에
소원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때서야 비구는 다시 자세히 말해 주었다. 그러자 구슬 꿰는 이는 즉시 거위의 배를 째서 구슬을 찾아냈다. 그는 구슬을 보자마자 소리 높여 통곡하면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거위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나로 하여금 이런 법이 아닌 일을 하게 하셨구료.’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당신이 공덕을 감추신 일은
마치 재로 불을 덮은 것과 같소이다.
나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수백의 몸을 불에 태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부처님의 모습을 드러냈고
지극히 그 모습과 합치하였지만
나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자세히 잘 살피지 못해서
어리석음의 불에 타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잠시 머무시면서
저의 조그마한 참회라도 들어주셔서
마치 발을 헛디뎌 넘어진 이가
땅을 짚고 일어남과 같게 하소서.

청정한 행에 귀의하고
계율을 굳게 지닌 이께 귀의합니다.
이런 극도의 고난을 만났으면서도
행을 이지러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나쁜 일을 만나지 않았다면
계율 지니는 것도 희유한 일이 아니니
반드시 이러한 고난을 만나서
계율을 지닐 수 있는 이라야
이것을 하기 어려운 일이라 합니다.

거위를 위하여 몸소 고통을 받으면서도
금지한 계율을 범하지 않으시니
이런 일은 실로 있기 어렵습니다.
참회는 이미 마치었으니
비구여, 이제 돌아가십시오”

또 『대장엄론』에서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 넓은 벌판을 지나가다가 도둑을 만나서 옷을 모두 빼앗겨버렸다. 게다가 도둑 떼들은 비구들이 마을에 가서 알릴 것을 두려워하여 모두 다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둑 중에서 전에 출가했던 적이 있던 사람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무엇 때문에 모두 죽이려 합니까? 비구의 법에서는 풀도 해칠 수 없으니, 이제 풀로써 비구들을 묶어 두면 그들은 풀이 상할까봐 끝내 사방으로 달려가서 알리거나 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도둑들은 곧 풀로 비구들을 묶어 두고서 떠나버렸다.
모든 비구들은 풀에 묶인 채 혹시라도 금지된 계율을 범할 것이 두려워서 당겨 끊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는 옷을 입지 않은지라 햇볕에 그을리고 모기와 등에와 파리에게 시달렸다. 아침부터 묶인 채로 저녁이 되었고, 더구나 해가 져서 아주 캄캄해지자 밤에 다니는 날짐승ㆍ길짐승이 이리저리 날고 뛰어다녔으므로 아주 무섭고 두려웠다. 이때에 어느 늙은 비구가 나이 젊은 비구들에게 게송으로 경계하여 말하였다.

만일 지혜 있는 어떤 이가
금지한 계율을 굳게 지니면서
인간과 천상과 열반을 구한다면
모두 뜻대로 얻게 되리라.

명성이 널리 퍼지면서 알려지고
일체가 다 함께 공양하게 되어서
반드시 인간ㆍ천상의 쾌락을 얻고
또한 해탈의 과보도 얻으리라.

이라발용왕(伊羅鉢龍王)이
그 금지한 계율을 훼손해서
나무의 잎을 손상했기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 용의 세계에 떨어졌지만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라발용왕이
언제 용의 세계에서 벗어날지 말씀하지 않으셨네

금지한 계율을 굳게 지니는 것
이런 일이야말로 매우 어려운 일이며
계율의 모습도 극히 많기 때문에
분별하여 환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칼로 된 숲과 가시나무 속에 있으면
몸에 상처와 훼손된 곳이 많듯이
어리석고 하열하면 이와 같은 계를
감당하지도 못하고 지니지도 못할 것이다.

이 여러 비구들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굴신(屈伸)도 못하고 움직이지 못했으며, 행여 풀의 생명을 해칠까봐 오직 계율만을 지키면서 죽음에 이르도록 범하지 않았다.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우리들은 옛적부터 지금까지
뭇 악업(惡業)을 지었나니
가령 인간 세계에 태어나서는
도둑질하고 남의 아내와 음행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국법의 형벌을 받은 것은
아무리 계산해도 헤아릴 수 없으며
또 지옥에서 고통을 받은
그와 같은 일도 헤아리기 어렵다.

혹은 소와 양과 닭과 개와
사슴과 금수 등 짐승의 몸을 받아
다른 것에게 살해를 당하면서
몸을 잃은 일이 끝이 없었는데도
조그마한 이익도 일찍이 없었다.

우리들은 지금에야
성인의 계율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 미미한 생명을 버리게 되었으니
반드시 큰 이익을 얻게 되리라.

우리들은 이제 위급한 액운을 만나서
틀림없이 몸과 목숨 버리게 되었지만
당연히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나서 쾌락을 받으리라.

만일 금지한 계율 범하면
현재에는 나쁜 이름 퍼지면서
남들에게 업신여김 당할 것이며
목숨을 마치고도 나쁜 길에 떨어진다.

여기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지금 다 같이 서약을 하자.
가령 이 뜨거운 햇빛으로 인하여
우리의 몸과 목숨이 말라버린다 해도
우리는 반드시 부처님 계율을 지키면서
끝내 범하거나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가령 나쁜 짐승을 만나서
우리의 몸과 손을 자르거나 찢는다 해도
부처님[釋師子]께서 금지하신 계율을
끝내 감히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아야 하나니
차라리 계율을 지니다가 죽을지언정
계율을 범하면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비구들은 늙은 비구가 말하는 게송을 듣고 나서 저마다 그 몸을 바로 잡고 꼼짝하지 않았으니, 마치 큰 나무가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가지와 잎이 꼼짝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이때 그 나라 왕이 사냥을 나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차츰 비구들이 묶여 있는 곳까지 왔다. 왕은 멀리서 그들을 보자 의문이 생겼다.
‘이들은 벌거숭이로 사는 니건자(尼揵子)들인가?’
이렇게 생각한 왕은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모든 비구들은 몹시 부끄러워 하면서 그들의 몸을 가렸으므로 그 심부름꾼은 석자사문(釋子沙門)임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그들의 오른쪽 어깨가 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 그들은 사문이었으며 니건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왕은 이제 반드시 아셔야 하나니,
그들은 도둑에게 옷을 빼앗기고
부끄러워 하면서 풀에 매여 있는 것이
마치 큰 코끼리가 억류 당한 것과 같습니다.

대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몹시 괴상히 여기다가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저 비구들에게 가 보아야겠다’라고 하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푸른 풀로 손이 묶여 있는 모습이
마치 앵무새의 날개와 같으며
또 하늘에 제사지내는 양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지도 않는구나.

위험하고 험난한 곳인줄 알면서도
잠자코 머무르며 풀을 상하지 않는 것이
마치 숲에 불이 나서 타고 있을 때에
꼬리 긴 소[犛牛]가 꼬리 때문에 죽는 것 같구나.

이 게송을 말한 뒤에 그곳으로 가서 게송으로 물었다.

신체는 극히 정정하고 왕성해서
병도 없으며 힘도 있는 같은데
무슨 인연 때문에
풀에 묶여서 움직이질 못합니까?
당신들은 자기 자신의 몸에
스스로 힘이 있음을 어찌 모릅니까?

주문 때문에 미혹된 것이거나
아니면 고행을 하는 것이거나
스스로 몸이 싫고 귀찮아서입니까?
속히 그 뜻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비구가 게송으로 왕에게 대답하였다.

금지한 계율을 지키기 위하여
감히 잡아당겨서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온갖 초목은 모두
귀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 하셨기에
우리들은 감히 어길 수 없어서
이 때문에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도량 가운데서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경계를 그었으면
신령한 주문의 힘 때문에

독사가 감히 넘지 못하는 것처럼
부처님[牟尼尊]께서 경계를 그었기에
우리들도 감히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비록 생명을 보호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마멸[磨滅]로 돌아가고 마나니
계율을 지니다가 죽을지언정
끝내 계율을 범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덕이 있거나 덕이 없거나 간에
다 같이 수명을 버리게 되나니
덕이 있고 지혜의 목숨[慧命]이 존재하면
그에게는 또한 다시 명성이 있지만
덕도 없고 지혜의 목숨까지 상실하면
그는 다시 명예까지도 잃게 됩니다.

우리들 모든 사문은
계율 지키는 것을 힘으로 삼나니
계율을 지키는 좋은 밭이 되면
모든 공덕을 능히 냅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사닥다리이고
명성을 얻는 종자이며
성인이 되는 다리이자 나루요
모든 이익의 머리이자 눈이거늘
그 누가 지혜 있는 이로서
계율의 덕병[戒德甁]을 부수려고 하리까?

국왕은 이 게송을 듣고 나서 아주 기뻐하면서 즉시 풀에 묶인 비구들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굳게 지키시면서
차라리 자기 신명을 버릴지언정
법을 수호하며 범하지 않는구려.

나도 이제 또한
이렇게 밝고 크신 법에 귀명하고
뜨거운 번뇌를 여의신
부처님[牟尼解脫尊]께 귀의하며
금지한 계율을 굳게 지킨 이에게도
나는 이제 귀명하겠습니다.

감응연(感應緣)[대략 두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양(梁)의 사문 석법총(釋法聰)
수(隋)의 사문 석법충(釋法充)

양(梁)의 사문 석법총(釋法聰)
후량(後粱)의 남쪽 양양(襄陽)에 있는 경공사(景空寺)의 석법총(釋法聰)은 남양(南陽) 신야(新野) 사람이다. 정신이 뛰어나게 바르고 성품이 고결한 것이 마치 옥(玉)과 같았는데, 채소와 미역 등을 달게 먹고 기름진 음식은 구하지 않았다. 그는 양양의 산개산(繖蓋山) 백마천(白馬泉)으로 가서 사방 1장(丈)되는 방을 짓고 마음을 깃들이는 집을 삼았다. 골짜기를 들어가면 두 곳에 난야(蘭若)의 집을 두었으니, 지금 산을 순행하는 이도 오히려 옛터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양(梁)나라 진안왕(晋安王)이 그의 도풍(道風)을 듣고 문안차 선실(禪室)을 찾았는데,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까닭 없이 뒤로 물러나므로 왕은 부끄러워하면서 되돌아갔으며 밤에는 나쁜 꿈을 꾸었다. 나중에 다시 찾아갔는데 말이 먼저와 같이 다시 물러나므로 왕은 비로소 깨끗이 재계하고 한껏 공경하는 마음으로 깊이 삼가고 신중을 다하고서야 나아가 뵐 수 있었다.
처음 절 곁에 이르자, 다만 한 골짜기에 불이 활활 타는 모습만 보였다.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더니 갑자기 변하여 물이 되면서 멈췄다가 잠깐 사이에 물은 사라져 없어지고 당(堂)이 나타났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물어 보고서야 그 당시 수화정(水火定)에 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당 안으로 들어갔더니 앉아 있는 승상(繩床) 양 곁에 호랑이가 한 마리씩 있었다. 왕이 감히 나아가지 못하자 법총은 손으로 호랑이 머리를 땅에다 눌러 놓고 두 눈을 감게 한 뒤에 왕을 불러서 앞으로 오게 하니 왕은 비로소 예(禮)를 펴게 되었다. 그리고 왕이 이 구역 안에서 호랑이의 재앙이 많음을 말하면서 법총의 구원을 청하자, 법총은 곧 정(定)에 들어갔다. 그러자 잠깐 동안에 열 일곱 마리의 큰 호랑이들이 모였는데, 그들에게 곧 삼귀계(三歸戒)를 주면서 ‘백성을 범하거나 난폭하게 굴지 말라’고 분부하였으며, 또 제자에게 명하여 베로 호랑이들의 목을 매어 준 뒤에 7일 후에 이 곳으로 오게 하였다. 왕도 그 날이 되자 찾아와서는 재를 베풀었고, 호랑이들도 모두 왔으므로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베도 풀어 주었다. 그러한 뒤로부터는 피해가 없었다.
그날 법총은 왕을 데리고 백마천(白馬泉)으로 갔다. 그 안에는 흰 거북이 있었는데 법총의 손 안으로 와서 먹이를 먹자 왕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숫룡[雄龍]이오.”
또 영천(靈泉)으로 갔다. 그곳에는 5색의 잉어가 있었는데, 역시 법총의 손으로 와서 먹이를 먹자 왕에게 말했다.
“이것은 암룡[雌龍]이요.”
왕과 신하들은 그 일을 보자 모두 감탄하고 칭찬했으며 크게 보시하고는 돌아왔다.
그 당시 왕의 측근에 있던 수십 명이 흉한 장정들이 보시한 물건들을 빼앗으려고 밤에 왔으나, 호랑이가 으르렁 거리며 그들의 길을 막았으며 또 선실 곁에 큰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곁에 있는 소나무들도 그들의 무릎까지 가로막았으며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수호하고 있었으므로 온밤 내내 빙빙 돌기만 하다가 한낮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왕이 그들이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자, 비로소 지난 밤의 일을 자백하고 마침내 표(表)를 올려 아뢰었으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 법총이 선당(禪堂)에 와서 머무를 때는 길이 아주 잘 든 흰
사슴과 흰 참새가 와서 살았으며, 법총은 가는 곳마다 자비로운 구제를 우선으로 삼았다. 한 때는 백정들이 멧돼지 백여 마리를 몰고 갔는데, 법총이 세 번 해탈수능엄(解脫首楞嚴) 하고 외우자, 멧돼지들은 마침내 줄이 풀리면서 흩어져 도망쳤다. 이때 백정들이 크게 성을 내면서 손으로 때리려 하자 다 같이 몸이 빳빳해지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곧 돌아가서 허물을 뉘우쳤고 그로 인해 살생하는 업을 끊었다. 또 한수(漢水)에서 고기잡이가 쳐 놓은 그물을 끌어당길 때 앞에서한 것처럼 주문을 세 번 외우자 그물이 끌려 오지 않았으며, 고기잡이 역시 마음을 돌리고 빈 그물을 가지고 돌아갔다. 또 형주(荊州)에 지독한 가뭄이 들었으므로 장사사(長沙寺)에서는 스님을 법총에게 파견해서 비를 청하게 하였더니, 심부름한 이가 돌아오자마자 크게 비가 내려서 못들이 가득 찼다.
뒤에 강릉(江陵) 천궁사(天宮寺)에서 죽었는데, 당시는 바로 양태(梁太) 초년이었다. 그 절에는 현재도 비문의 기록이 있다.

수(隋)의 사문 석법충(釋法充)
수(隋)나라 강주(江州)에 있는 여산(廬山) 화성사(化城寺)의 석법충(釋法充)은 속성이 필(畢)씨이며 구강(九江) 사람이다. 항상 법화경(法華經)과 대품경(大品經)을 외우고 있었는데, 말년에는 여산 중턱에 있는 화성사에서 선정을 닦고 있었다. 스님으로서 할 일이 아닌 경우를 보면, 신발이 닿도록 스스로 간여했다. 매양 스님네에게 ‘위로는 부처님이 교화를 손상하고 아래로는 속요(俗謠)에 떨어진다’ 하고 여인을 절에 들이지 못하게 권했다. 그러나 절 집안의 기본적인 일로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도 따르지 않는 이가 있었으므로 법충은 탄식하며 할했다.
“태어나서 부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벌써 죄의 인연이다. 바른 가르침이 행해지지 않으면 도의상 일찍 죽어야 하는데, 어찌 한 지방에서 계율을 받들지 않는다고 염려한단 말이냐.”
그리고는 드디어 이 산의 향로봉(香鑪峰)으로 올라가서 ‘몸과 뼈가 부셔짐으로써 정토에 태어날 것’을 서원하고는 몸을 아래로 던졌다. 그런데 중간쯤에서 갑자기 머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천천히 깊은 골짜기에 사뿐히 내려앉았으며, 한 터럭만큼도 다침 데가 없었다.
절 대중들은 이 일을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봉우리 올라가서 정상에 있는 길을 걷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천여 길[仞]이나 되는 데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으므로 내려가 보았더니 바로 법충이었다. 몸과 목숨은 그대로요 입으로는 예전과 같이 경을 외고 있었으므로 그를 모시고서 절로 돌아왔다. 스님네들은 죽음으로써 간(諫)한 일에 감동해서
여인들을 끊게 되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에 죽었는데, 대단히 더운 철이었는데도 시체가 썩지 않았다. 그 때가 바로 개황(開皇)의 말년이었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3) 인욕부(忍辱部)[여기에는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권인부(勸忍部) 인덕부(忍德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저 듣건대, 참는 덕은 가장 높고 으뜸가는 것이라서 계율을 지니고 고행하는 것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찬제 비구(羼提比丘)는 잔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원망하지 않았고, 인욕 선인(忍辱仙人)은 몸을 갈가리 찢기면서도 성을 내지 않았다. 또 자비의 도는 구제를 우선으로 삼는 것이므로 보살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측은한 생각으로 항상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지옥 중생이 받는 고통을 대신 받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면서 안락을 베풀어야 하겠거늘, 어찌 미미한 접촉으로 괴롭히는 일에 대해 크게 성을 낼 수 있겠으며, 나아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참혹한 얼굴로 핏대를 올리면서 드디어는 매를 때리고 몽둥이를 댈 수 있겠는가? 혹은 부자와 형제에게도 해를 끼치고 벗과 권속에게도 도리어 침범하고 손상시킨다면, 그 악하고 거스르는 행위는 간악하기가 올빼미보다 심하고 독을 품은 마음은 벌이나 전갈보다 더 독할 것이다. 이 때문에 오랜 겁 동안 원수가 되어서 태어날 적마다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2) 권인부(勸忍部)
『보살장경(菩薩藏經)』에서 말씀하셨다.
“무릇, 성을 내는 이는 백천의 대겁(大劫) 동안 쌓은 선근을 금방 망쳐버린다. 만일 모든 선근을 성을 내어서 망쳐버리면 다시 백천의 대겁 동안 부지런히 고행하고 성인의 도를 수행하여야 한다. 이런 사람은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얻기가 극히 어려우니, 그러므로 우리는 인욕의 투구를 쓰고 견고한 힘으로써 성을 내는 군사를 꺾어야 한다.
사리자야,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그 이일을 자세히 말하리라. 나의 기억으로는 지나간 세상에 큰 선인[大仙人]이었을 적에 내 이름은 수행처(修行處)였다. 당시 어떤 악마가 꾸준히 욕설을 퍼붓는 5백 명의 장부를 변화시켜 만들어서는 항상 나를 따르면서 모진 욕설을 퍼붓게 했다. 낮이나 밤이든, 가고 오고 서고 눕고 할 때든, 승방의 조용한 방에 있을 때나 마을이나 속가에 있을 때든, 거리에 있을 때나 한적한 곳에 있을 때든, 내가 앉고 서고 할 적마다 이 변화로 된 악마는 추악한 말로써 헐뜯고 욕설을 퍼붓고 꾸짖었다. 이렇게 5백 년 동안을 잠시고 쉬는 때가 없었다.
사리자야, 내 기억으로는 그 옛날의 5백 년 동안에 모든 악마의 꾸짖음과 헐뜯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에게 대하여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을 낸 일이 없었고,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과 구원코자하는 마음을 일으켜 관찰했었느니라.”
또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나쁜 말로써 욕설을 퍼부을 때 소인(小人)이 참지 못하는 것은 마치 새에게 돌비[石雨]가 내리는 것과 같고, 나쁜 말로써 욕설을 퍼부을 때, 대인(大人)이 참고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코끼리에게 꽃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이는 항상 그 사람에 대한 본말(本末)의 인연을 관찰해야 한다. 즉 ‘어쩌면 과거에 나의 부모가 되어 나의 몸을 낳아 기르면서 죄이건 복이건 피하지 않으셨을 텐데, 아직 은혜를 갚지도 못했거늘 어떻게 성을 낸단 말이냐’고 하기도 하고, 혹은 ‘형제요 처자 권속이었으리라’고 하기도 하며, 혹은 ‘이 분은 성인이었거나, 옛날의 착한 벗이었다. 범부의 뜻으로는 알 수 없거늘 어떻게 헐뜯을 수 있단 말이냐’고 해야 한다.”
또 『섭론(攝論)』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의 이치를 관찰함으로써 성냄을 제거해야 한다. 첫째는 온갖 중생은 비롯함이 없는 그 때부터 나에게 은혜가 있다라고 관찰하고, 둘째는 온갖 중생은 항상 찰나마다 소멸하고 있거늘 어느 사람이 손해를 끼치고 어느 사람이 손해를 받겠느냐고 관찰하며, 셋째는 ’오직 법일 뿐이요 중생이란 없거늘 어찌 손해를 입히는 이와 손해를 받는 이가 있겠느냐고 관찰하고, 넷째는 온갖 중생은 모두가 스스로 괴로움을 받고 있거늘 어떻게
다시 괴로움을 끼치려고 하겠느냐고 관찰하며, 다섯째는 온갖 중생은 모두 나의 자식이거늘 어떻게 그에게 손해가 생기기를 바라겠느냐고 관찰한다. 이 다섯 가지의 관찰로 말미암아 성냄을 없앨 수 있다.”
또 『보은경(報恩經)』에서 말하였다.
“가령 뜨겁게 달군 쇠 수레바퀴가 나의 정수리 위에서 돈다 해도, 끝내 이 고통 때문에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또 『성론(成論)』에서 말하였다.
“인자한 마음을 쓰는 이는 누워도 편안하고 깨어있어도 편안하며 나쁜 꿈을 꾸지 않는다. 하늘이 보호하고 사람이 사랑하므로 독에 상하지도 않고 무기에 다치지도 않으며 물과 불에도 죽지 아니한다.”
또 『사분율(四分律)』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인욕하는 것은 으뜸가는 도라서
부처님께서는 무위(無爲)에서 으뜸이라 하셨다.
출가한 이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사문이라고 이름하지 못한다.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인욕을 능히 행하는 이라야 비로소 힘이 있는 대인(大人)이라 할 수 있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남의 허물을 보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악행이 있으면 들춰내야 한다.”
또 서(書)에서 말하였다.
“남의 허물을 듣거든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해서 귀로 듣기는 하되 입으로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남의 착한 일을 칭찬하면서도 자기의 잘한 일은 말하지 않는다.”
또 서에서 말하였다.
“군자는 남의 잘한 일은 찬양하면서도 자기의 착한 일은 자랑하지 않는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보시한 뒤에 그 과보를 바라지 말라. 만일 남에게서 얻은 것이면 털끝만큼의 것이라도 모두 축원해 주고 부끄러워하면서 받는다.”
또 서에서 말하였다.
“공자(公子)는 남에게 덕을 베풀면, 공자는 그것을 잊어주길 원하지만, 남이 공자에게 덕을 베풀면 공자는 잊지 않기를 원한다.”
또 말하였다.
“남에게 보시했으면 부디 기억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보시를 받았으면 부디 잊지 말 것이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남을 죽이지도 말고 매로 때리지도 말라.”
또 서에서 말하였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그러므로 안팎의 가르침[內外之敎]이 그 근본은 같은 줄 알 것이다. 비록 형상에는 검고 흼이 있다 할지라도 서고 가는데는 다를 것이 없다. 만일 이 뜻에 어긋나면 곧 비속(鄙俗)한 것과 같거늘, 무엇으로 안팎의 것에 의지하겠는가.
마치 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은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셔서 무명의 어두운 미혹을 끊어 없앰이 마치 좋은 의사가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함과 같다. 이것을 내교(內敎)라 한다.
또 서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도(道)는 친함이 없고 오직 어진[仁] 이에게만 베풀어 준다”고 했다. 이것을 외교(外敎)라 한다.
또 출가(出家)한 사람이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를 관찰하여 생사를 여의고 세간 벗어나기를 구하는 것은 바로 내교에 의지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행에 어긋나면 도리어 외속(外俗)이 된다.
재가(在家) 사람이 만일 세속의 정(情)을 버리고 고상한 뜻을 흠모하면서 오로지 3보(寶)를 숭앙하고 4덕(德)을 닦아 지니며 효(孝)ㆍ제(悌)ㆍ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와 정(貞)ㆍ화(和)ㆍ애(愛)ㆍ경(敬)을 봉행하되 능히 실천할 수 있다면 도리어 내교와 같겠지만, 만일 이 뜻에 어긋나면 도로 외도(外道)와 같아진다. 세속에 있는 사람도 내교를 따르면서 진리를 깨치고, 마음이 항상 도(道)에 일치하여 점차로 수승한 길로 나아가면 마침내 보리에 이르게 된다. 이미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서 이 행을 실천하고자 하면, 오직 스스로를 낮추면서 덕을 미루어 남에게 주는 것을 마치 먼지 묻은 수건을 씻듯이 할 뿐이다.
더러운 것은 자신에게 돌리고 깨끗한 것은 남에게 주는 것이니,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물러남으로 해서 얻는 것이 불도이다”라고 했고, 또 서에서 말하기를 “군자는 사양함에서 얻게 된다”고 했다. 이런 이치 때문에 항상 나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밀어 주어야 하고, 언제나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엄히 꾸짖어야 한다.

(3) 인덕부(忍德部)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말하였다.
“세 번째의 인욕에는 열 가지의 일이 있다. 첫째는
나와 내 것의 모양을 관찰하지 않고, 둘째는 종성(種姓)을 생각하지 않으며, 셋째는 교만을 깨뜨려 없애고, 넷째는 악이 와도 보복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무상하다는 생각을 관찰하고, 여섯째는 자비를 닦으며, 일곱째는 마음이 방일하지 않고, 여덟째는 배고픔과 목마름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일을 버리며, 아홉째는 성냄을 끊어 없애고, 열째는 지혜를 닦아 익힌다. 만일 사람이 이와 같은 열 가지 일을 성취하면, 이 사람은 인욕을 잘 닦는 사람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한다.”
또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자비와 인욕에 머무르면 열 가지 이익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 인가? 첫째는 불이 태우지 못하고, 둘째는 칼이 베지 못하며, 셋째는 독이 몸을 상하지 못하고, 넷째는 물이 떠내려가게 하지 못하며, 다섯째는 사람 아닌 것[非人]의 보호를 받고, 여섯째는 몸매[相好]로 장엄하게 되며, 일곱째는 모든 나쁜 길[惡道]을 닫아버리고, 여덟째는 좋아하는 바에 따라서 범천(梵天)에 태어나며, 아홉째는 낮에도 밤에도 항상 편안하고, 열째는 그 몸이 기쁨과 즐거움을 여의지 않는다.”
또 『사가삼매경(私呵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욕에 여섯 가지 일이 있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얻는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힘을 얻고, 둘째는 입의 힘을 얻으며, 셋째는 뜻의 힘을 얻고, 넷째는 신족(神足)의 힘을 얻으며, 다섯째는 도의 힘을 얻고, 여섯째는 지혜의 힘을 얻는다.”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또 네 가지 인욕이 있어서 지혜를 두루 갖춘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구할 때에 남이 퍼붓는 욕설을 참는다. 둘째는 법을 구할 때에 배고픔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와 바람과 비를 피하지 않는다. 셋째는 법을 구할 때에 화상(和尙)과 아사리(阿闍梨)의 행을 따른다. 넷째는 법을 구할 때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능히 참는다.”
또 『비구피여인악명경(比丘避女人惡名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비록 많은 사람에게 악한 이름을 듣는다 하더라도
고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참을 것이니
괴롭다고 스스로 말해서도 안 되고

또한 고뇌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는 것은
곧 숲 속의 짐승이니
이 경박하고 성미 급한 중생은
출가의 법을 이루지 못한다.

어진 이는 상급ㆍ중급ㆍ하급의
악한 소리를 견뎌 내야 하나니
마음을 단속하여 굳게 머무르면
이것이 곧 출가한 이의 법이니라.

그대로 하여금 겁탈하는 도둑이 되게 한 것은
다른 이의 말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그대로 하여금 아라한이 되게 함도
다른 이의 말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대 스스로가 자신을 아는 것처럼
모든 하늘 또한 그러한 줄 알지니라.

(4) 인증부(引證部)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 어느 때 아련야(阿練若)의 못물 가에 두 마리 기러기가 있었는데, 그들은 한 마리의 거북과 서로 친하게 사귀었다. 훗날 못물이 말라버리자 두 기러기는 의논하였다.
‘지금 이 못물이 말라버렸으니, 친구가 반드시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의논을 한 뒤에 거북에게 말하였다.
‘이 못물이 말라버렸으니 그대는 살아갈 도리가 없게 됐다. 그러니 나무 하나를 입에다 물어라. 그러면 우리가 각각 나무 한쪽 끝을 문 채 그대를 물이 많은 데로 데려다 놓겠다. 하지만 나무를 물고 갈 때는 부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나무를 서로 물고 마을 위를 지나가는데 그 때 여러 아이들이 보고서 모두가 말하였다.
‘기러기가 거북을 물고 가는구나.’
그러자 거북은 곧 성을 내면서 ‘야, 너희들 일이나 잘해’라고 말하다가 물었던 나무를 놓쳐버리고 땅에 떨어져 죽었느니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인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대체로 이 살아가는 데에
도끼가 입 안에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몸을 찍게 되는 것은
저 나쁜 말 때문이니라.

헐뜯어야 할 때에 도리어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때에 도리어 헐뜯으면
스스로 그 재앙을 입게 되어서
끝내 다시는 쾌락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북은 바로 지금의 조달(調達)이다. 옛날에는 성내는 말을 하다가 죽음의 고통에 이르게 되었고 지금은 또 여래에게 성을 내고 욕설을 퍼붓다가 큰 지옥에 떨어졌느니라.’”
또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나운(羅雲)이 아직 도를 얻지 못했을 때였다. 심성이 거칠고 사나운 데다가 말에는 성실과 믿음이 적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나운에게 명하셨다.
‘너는
현제정사(賢提精舍)로 가서 머물러라. 입을 조심하고 뜻을 거두어서 부지런히 경과 계율을 닦을지니라.’
나운은 가르침을 받들고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90일 동안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뉘우치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정사로 찾아와서 그를 보자, 나운은 기뻐하면서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예배하고 승상(繩床)에다 모셨다. 부처님께서는 승상에 걸터앉으셔서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대야에 물을 떠 와서 나의 발을 씻어라.’
나운은 분부를 받들고서 부처님의 발을 씻었다. 발을 다 씻고 나자 부처님께서는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야 안에 있는 발 씻은 물을 보았느냐?’
나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이 물을 음식 만드는 데에 쓸 수 있느냐?’
나운이 아뢰었다.
‘다시 쓸 수는 없나이다. 왜냐 하면 이 물이 본래는 깨끗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발을 씻어서 먼지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쓸 수 없습니다.’
‘너 또한 그와 같으니라. 비록 나의 아들이요, 국왕의 손자로서 세상의 영화와 녹(祿)을 버리고 사문이 되었다 하더라도 정진하면서 몸을 단속하고 입을 지킬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3독(毒)의 더러운 때가 가슴속에 가득 차있는 것이 마치 이 물을 다시 쓸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다시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대야의 물을 버려라.’
나운이 즉시 물을 버리자 부처님께서는 나운에게 또 말씀하셨다.
‘대야가 비록 비었다 해도 음식을 담는 데에 쓸 수 있느냐?’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시 쓸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대야라는 이름을 붙여서 일찍이 깨끗하지 못한 것을 받는 일에 썼기 때문입니다.’
‘너 또한 그와 같으니라. 비록 사문이 되었다 하더라도 성실과 신의가 있는 말을 하지 않고 심성은 억센데다 일념으로 정진하지 않았으니, 일찍이 나쁜 이름을 받은 것이 역시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부처님께서는 발가락으로 대야를 밀어버렸다. 그러자 대야는 떼굴떼굴 굴러가면서 두어 번을 솟구치다가 떨어지며 멈췄다. 부처님께서는 또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야가 깨지지나 않을까 아까워하지 않았느냐?’
나운이 아뢰었다.
‘발을 씻는 그릇이요 값이 싼
물건이라서 속으로는 비록 아까웠을지라도 크게 간절하지는 않았습니다.’
‘너 또한 그와 같으니라. 비록 사문이 되었다 하더라도 몸과 입을 단속하지 않고 추악한 말로써 많은 사람을 상하게 했기 때문에 대중이 사랑하지도 않고 지혜로운 이가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몸이 죽으면 영혼은 3악도[三塗]에 바퀴 돌듯하면서 스스로 고뇌를 일으킬 것이므로 한량없는 부처님들과 성현들이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네가 대야를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라.’
나운은 이 말씀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두려워 떨었다. 마치 싸움하는 코끼리가 양쪽 어금니와 두 개의 귀와 네 개의 다리와 꼬리 등 아홉 개의 무기를 모두 조심하면서도 먼저 코를 보호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왜냐 하면 코끼리의 코는 부드럽고 물러서 화살을 맞으면 즉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범하는 아홉 가지 악 중에서도 오직 입만을 지켜야한다. 입을 지키면서 3악도의 열 가지 악(惡)을 모두 범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니, 입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마치 코끼리가 코를 손상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사람은 열 가지 악을 범하면서도 3악도에서 받을 모질고 쓰라린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곧 게송으로 말하겠다.

나는 코끼리가 싸움터에서
화살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항상 성실과 신의로써
계율 없는 사람을 제도하느니라.

비유컨대 코끼리가 잘 조복되면
왕이 타는 코끼리로 뽑힐 수 있듯이
스스로를 조복하여 존귀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성실과 신의를 받느니라.

나운은 부처님의 간절하고 측은히 여기는 가르침을 듣고 감격하였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그 말씀을 뼈에 새겨서 잊지 않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유화(柔和)에 힘쓰고 인욕하기를 마치 땅처럼 했으므로 생각이 고요해지면서 곧 아라한이 되었다.”
또 『나운인욕경(羅雲忍辱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나운은 어느 믿음이 없는 한 바라문의 집에 가서 걸식을 했다. 그러나 그 바라문은 인색해서 주지 않을 뿐더러 나운의 머리를 쳐서 피가 흐르게 했으며 게다가 모래를 집어서 발우 안에다 넣어 주었다. 나운은 꾹 참으면서 보복할 마음을 갖지 않은 채 즉시 발우를 가지고 강물로 가서 머리와 발우를 씻은 뒤에 혼자 말하였다.
‘내 스스로가 걸식하고 있는데 까닭 없이 나에게 방자하게 구는구나. 나의 고통은
잠깐 동안이지만 그가 받을 오랜 고통은 어찌해야 할까. 마치 날카로운 칼로 썩은 시체를 벨 적에 썩은 시체가 고통을 모른다 해서 칼이 날카롭지 않은 것은 아님과 같다. 또 하늘의 감로(甘露)를 저 우리 안의 돼지에게 먹이려 할 적에 우리 안의 돼지가 먹지 않고 도망간다고 해서 이 감로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님과 같다. 나는 부처님의 참다운 말씀으로써 흉하고 어리석은 이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저 흉하고 어리석은 이가 생각해 주지 않는구나. 어찌하여 그렇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리고는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나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이미 쇠망하고 있다. 경박했던 저 악인은 목숨을 한밤중에 마치면 무간지옥에 들어갈 것인데, 옥귀(獄鬼)가 고통을 가하면 그 독이 이르지 않는 데가 없을 것이며, 이렇게 8만 4천 년 동안 고통을 받다가 그 수명을 마치리라. 그리고는 다시 독이 있는 구렁이 몸을 받게 되어서 그 독으로 도리어 제 몸을 해치고, 죽었다가 다시 또 살아나는 독사의 몸을 계속 받으면서 항상 모래와 흙을 먹을 것이며, 이렇게 하기를 만 년 동안 하다가 그 몸이 다할 것이다. 성을 내는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대했기 때문에 독사의 몸을 받은 것이요, 모래를 발우 안에 넣어 주었기 때문에 세세생생 모래를 먹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이 죄를 마치면 사람의 몸을 받게 되겠지만, 어머니가 배었을 때에도 중한 병이 들게 되고 집안은 날로 쇠망해지리라. 그러다가 아이를 낳으면 바보인데다 손발이 없을 것이므로 그 양친은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모두 말하기를, ‘무슨 요망한 것이 와서 상서롭지 못하게 구느냐’고 하고, 곧 집어다 네거리에 버려 놓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길가는 사람들이 오고가다 경악하면서 다투어 기와와 돌과 칼과 막대기로 머리를 때릴 것인데, 그때 뇌가 터져서 모진 고통을 받다가 열흘만에 죽게 될 것이다. 죽은 뒤에는 혼령이 곧바로 또 태어날 것이나 손발이 없고 바보인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5백 세상 동안 무거운 죄를 받다가 다 마치고 나면, 그 뒤에 사람으로 태어나겠지만 항상 두통(頭痛)의 병을 앓을 것이다.
무릇 세상에 있을 적에 인욕하지 못하는 사람은 태어날 적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법을 어기며 스님들을 멀리하게 되므로 늘 3악도에 있게 된다. 그러다가 설령 나머지 복을 받게 되어서 그곳을 벗어나 사람이 된다 해도 품성이 항상 어리석고 흉악하고 사납게 되며, 남들이 추하다고 하면서 모두 미워하게 되고 살아가는 데도
가난할 뿐만 아니라 성현이 돕지 않는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에 존자 사라불과 대목건련이 기사굴산(耆闍崛山)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 존자 사리불은 머리를 깎았다. 이때 가타귀(伽吒鬼)와 우파가타귀(優波伽吒鬼)가 있었는데, 우파가타귀가 존자 사리불이 새로 수염과 머리를 깎는 것을 보고 가타귀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가서 저 사문의 머리를 때리겠다.’
그러자 가타귀가 말하였다.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이 사문이야말로 큰 덕과 큰 힘을 지니신 분이다. 네가 성을 내게 되면 오랜 세월 동안 크게 이롭지 못한 고통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말하였다. 그러나 우파가타귀는 두 번 세 번 말리는 가타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곧 손으로 존자 사리불의 머리를 쳤는데 치자마자 곧 스스로 부르짖었다.
‘나를 태운다, 가타야. 나를 삶는다, 가타야.’
이렇게 두세 번 부르짖은 뒤에 땅 속으로 빠져서 아비지옥으로 떨어졌다.
목련은 사리불이 귀신에게 맞았다는 말을 듣고 이내 가서 물었다.
‘어떻습니까, 존자여. 고통을 참을 만 하십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존자 목련께서 이 고통을 받으신다 해도 참아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목련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기특하십니다. 존자 사리불이여, 참으로 큰 덕과 큰 힘을 지니셨습니다. 이 귀신이 가령 손으로 기사굴산을 친다 해도 쌀겨[糠★]와 같이 부셔지겠거늘 하물며 사람을 쳤는데 고통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사리불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나는 정말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사리불과 대목건련이 서로 위로하고 있을 적에 세존께서는 천이(天耳)로써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 마음 마치 금강석과 같아서
굳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구나.
물들고 집착하는 마음을 이미 여읜지라

성내는 사람에게도 보복하지 않았나니
만일 이와 같이 마음을 닦는다면
무슨 고통과 근심이 있으리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일찍이 들었는데, 이 현겁(賢劫)의 과거[過法]에 갈리(羯利)라는 왕이 있었다. 당시 인욕(忍辱)이라는 선인이 있었는데, 그는 숲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지런히 고행을 닦았다.
그 때 갈리왕은 남자들은 데려가지 않고 내궁(內宮)의 권속들만을 데리고 가서 숲 속에서 풍악을 울리며 마음대로 재미있게 놀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즐기다가 피곤해지자 곧 잠이 들었다. 그러자 내궁의 궁녀들은 꽃과 열매를 따기 위하여 숲 속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멀리서 선인을 보았다. 그 선인은 한곳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고요히 앉아서 사유하고 있었다. 여인들은 모두 그곳으로 달려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빙 둘러싸고 앉았다. 선인은 곧 그들을 위하여 욕심의 허물을 말해 주었는데, 이른바 ‘욕심이란 모두 부정하고 더러운 법이어서 이는 꾸짖어야 되고 싫어해야 한다. 지혜로운 어느 누가 욕심을 익히고 가까이 하겠느냐? 여러 누이들은 모두 욕심을 싫어해야 하고 여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왕은 잠에서 깨어났으나 궁녀들이 보이지 않자 이렇게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꾀어서 빼앗아 간 것은 아닐까?’
그리고는 곧 날카로운 칼을 뽑아 들고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가, 궁녀들이 선인 곁에 빙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크게 성을 내면서 물었다.
‘어떤 큰 귀신이기에 나의 궁녀들을 유괴하였느냐?
그리고 다시 곧장 나아가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선인입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인욕의 도를 닦고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내가 성내는 것을 보자 짐짓 ≺나는 인욕을 닦는다≻고 하는구나. 내가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그리고는 곧 다시 물었다.
‘당신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선정을 얻었소?’
‘얻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다그쳐 물으면서 급기야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첫째 선정[初靜慮]을 얻었소?’
선인이 대답하였다.
‘얻지 못했습니다.’
왕은 갑절이나 더 성을 내면서 말했다.
‘너는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거늘 어찌하여 방자하게도 나의 궁녀들을 보고 있으냐? 게다가 나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라고 하니, 어디 한 팔을 펴 보아라. 잘 참는가를 시험하여 보자.’
그러자 선인은 선뜻 한 팔을 펴내었다. 왕이 날카로운 칼로 베어버리자 마치 연뿌리가 땅 위에 떨어진 것과 같았다. 왕이 다시 다그쳐 물었다.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선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왕은 다시 남은 한 팔을 펴라고 한 뒤에 이내 베어버리고는 앞에서와 같이 다그쳐 물었으나, 선인 역시 앞에서와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여 차례로 두 발이 베이고 두 귀가 잘렸으며 다시 그의 코가 베이었다. 이러면서 한번한번 다그쳐 물었으나 대답은 모두가 앞에서와 같았다. 그리하여 선인의 몸은 일곱 부분이나 땅에 떨어졌고 일곱 군데에 상처가 생겼다.
그런 뒤에야 왕의 마음이 그쳤으므로 선인이 말하였다.
‘왕이시여,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 피곤해 하십니까? 가령 나의 이 온 몸뚱이가 마치 겨자씨처럼, 나아가 작은 티끌만큼씩 잘린다 해도 나는 단 한 번의 성도 내지 않을 것이요, 인욕을 닦는다는 말도 끝내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서원을 세웠다.
‘오늘 나에게 아무런 허물이 없는데도, 그대는 나의 몸을 끊어서 일곱 토막이 나게 하고 일곱 군데의 상처 구멍을 나게 한 것과 같이, 나는 오는 세상에 아뇩보리를 증득하게 되면 대비(大悲)의 마음을 갖고 그대의 청을 기다리지 않고도 제일 먼저 그대로 하여금 일곱 가지 도를 닦게 하고 일곱 가지 수면(隨眠)을 끊게 하리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 때의 인욕선인이 바로 지금의 세존 석가모니요, 갈리왕은 바로 지금의 구수(具壽) 교진나(憍陳那)이다.
그러므로 교진나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나자, 부처님께서는 신력으로 그의 어두움을 제거시키고 그로 하여금 과거의 세상을 기억하게 하셨다. 즉 그 때의 자신이 갈리왕이었고 부처님께서는 선인이었는데, 자신이 날카로운 칼로 부처님을 일곱 갈래로 베고 일곱 군데의 상처 구멍을 만들었는데도 부처님께서는 성도 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서원을 세워서 그를 이롭게 하려고 했음을 보게 하셨으니, 부처님께서 어찌 옛날의 서원을 등지겠는가.
교진나는 이를 듣고 나자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합장하고
공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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