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81권
법원주림 제81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5. 육도편(六度篇) ②
(6) 양경부(量境部)
自述
보시하는 사람의 행에는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이 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보시를 행할 때에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을 관찰하나니, 이익이 있으면 보시하고 이익이 없으면 보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빈궁한 이를 보거든 먼저 말하기를 ‘당신은 3보에 귀의하고 재계(齋戒)를 받을 수 있습니까?’하여 ‘할 수 있다’고 하면 먼저 3귀(歸)와 재계를 수여한 뒤에 보시할 물건을 줄 것이며, 만일 ‘할 수 없다’고 하면 다시 말하기를 ‘나의 말을 따라서 온갖 법은 무상하고 나[我]가 없고 열반의 적멸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여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렇게 교화한 뒤에 보시한다. 그리고 그 재물이 없는 이를 교화하듯이 그밖에 재물이 있는 이에게도 이렇게 보시하게 한다.”
또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면 재물에 탐착하면서 사람이나 물건이 남에게 속해 있고 무상함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워하고 집착하고 아까워한다. 보살은 이런 이익이 없는 물건을 보면 그로 하여금 급히 보시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그만두고 도업(道業)을 닦게 한다. 그러므로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재물이 고뇌를 일으키게 하면 저축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값진 물건이나 보배라 해도 반드시 여의어야 하나니, 마치 벌이 꿀을 만들면 남이 먹고 자기는 먹지 못하는 것처럼 재보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또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보살이 하는 보시가 남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받게 하거나 핍박을 당하게 하거나 침해받고 속임을 당하게 하거나 또는 법답지 않은 요구를 받게 하는 것이면 자기의 힘이든 다른 이의 힘을 빌리든 바라는 바를 따르지 말 아야 한다. 중생을 위한 것이므로 차라리 자기의 신명을 버릴지언정 그의 욕심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핍박을 당하게 되어도 보시하지 말 것이니,
그 이유는 보살이 청정한 보시를 행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 밖에 보시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만일 어떤 중생이 독이나 불이나 칼이나 술을 구하거나 중매 따위로 희롱을 하려는 것 등, 온갖 법에 어긋난 것을 와서 구걸하면 보살은 보시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보시하게 되면 대부분이 악을 짓고 악도에 떨어져서 저 언덕[彼岸]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이가 와서 나의 몸의 어느 부분을 요구하면 곧 베풀어 주어야 하며, 다른 앞사람을 헤아리면서 퇴굴(退屈)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문】 어떻게 보시하면 저 언덕에 이르기도 하고 저 언덕에 이르지 않기도 합니까?
【답】 사리불이 60겁 동안 보살의 도를 행하면서 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했다. 그때 어느 걸인이 와서 그의 눈을 구걸하자 사리불이 말했다.
‘눈은 소용도 없으면서 무엇 때문에 구하십니까? 만일 나의 몸이나 재물을 구하신다면 드리겠습니다.’
걸인이 대답했다.
‘소용없습니다. 오직 눈만을 얻고 싶습니다. 만일 당신이 진실로 보시를 행하는 이라면 눈을 주십시오.’
그래서 사리불은 눈 한 개를 뽑아서 주었다. 걸인은 눈을 얻자마자 사리불 앞에서 냄새를 맡아보다가 더럽다면서 침을 뱉으며 땅에다 버리고는 게다가 발로 짓이겨버렸다.
사리불은 이를 보고 생각하였다.
‘이런 못된 사람은 제도하기 어렵구나. 눈은 실로 소용이 없었는데도 억지로 구하더니 얻은 뒤에는 쓸데없다고 버리면서 발로 짓이기기까지 하니 말이다. 너무도 못되었구나. 이러한 무리는 제도할 수 없다. 차라리 스스로를 조복하여 일찍이 생사를 건너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보살의 도에서 물러나 소승으로 회향한 것이니, 이것을 바로 저 언덕에 이르지 못했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만일 물러나지 않고서 불도를 이루어 마치면, 그것을 저 언덕에 이른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7) 복전부(福田部)
『우바새계경』에서 말씀하였다.
“만일 축생에게 보시하면 1백 배의
과보를 얻고, 계율을 깨뜨린 이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과보를 얻으며, 계율을 지닌 이에게 보시하면 10만 배의 과보를 얻고 외도(外道)로서 욕심을 여읜 사람에게 보시하면 백만 배의 과보를 얻으며, 도를 향(向)하여 수행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억 배의 과보를 얻고, 수다원(須陀洹)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얻으며, 사다함(斯陀含)을 향하여 보시해도 한량없는 과보를 얻고, 나아가 부처님께 보시하여도 한량없는 과보를 얻느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이 모든 복전(福田)을 분별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서 축생에게 보시하면 오롯한 마음으로 공경하면서 모든 부처님께 보시하여 얻는 그 복과 똑같아서 조금도 차별이 없느니라.
백 배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령 수명과 물질[色力]과 안락과 변재를 그에게 보시하면 시주도 뒤에 수명과 물질[色力] 과 안락과 변재를 각각 백 배 나아가 한량없이 얻게 됨이 그와 같다는 듯이다. 그러므로 나는 계경 속에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내가 사리불에게 보시하고 사리불도 나에게 보시하였다. 그러나 나는 얻는 복이 많지마는 사리불이 얻는 복은 많지 않다.”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받는 이가 악을 지으면 그 죄는 시주에게 미친다’고 하는데 이런 이치는 옳지 아니하다. 왜냐 하면 시주가 보시할 때에는 그의 고통을 깨뜨려 주기 위한 것이지, 죄를 짓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주는 반드시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받는 이가 죄악을 지었으면 그 죄는 제 몸에게로 모이지 시주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문】 만일 성인에게 베풀어서 복을 얻는 것이 많다면, 어찌하여 경에서는 ‘지혜 있는 사람이 보시를 행할 때는 복전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답】 지금 이 뜻을 해석하자면 여러 갈래가 있으니,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구별이 있고 보시하는 대상에는 자비[悲]와 공경[敬]의 다름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자비는 바로 가난하여 곤경을 겪는 이를 말하고 공경은 바로 3보를 말한 것이다. 자비에는 복전[田]은 하열하나 마음[心]은 수승하고, 공경은 복전은 수승하나 마음이 하열하다. 만일 마음의 수승함만을 취하여 부처님께 보시한다면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중생들은 남이 모으고 쌓아서
모든 복업을 짓는 것을 보고 다만 명예와 이름만을 구하기 위해 온 집안의 재물을 다 기울여 보시하면서도 가난하고 고독한 이를 보면 꾸짖고 내쫓으면서 털끝만큼도 구제하지 않는 이가 있다. 이러한 중생을 전도된 선행을 짓는다 하며, 화(禍)와 복(福)에 어리석고 미쳐있다고 하니 이를 이름하여 올바르지 못한 복을 짓는다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쌍하기 그지없으니, 재물은 아주 많이 베풀면서도 얻는 복은 아주 적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나는 어느 때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설령 사람이 아승기(阿僧祇) 동안 몸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성문들에게 공양한다 해도, 어떤 사람이 축생에게 한 입의 음식을 보시하는 것보다 못하다. 그 복은 저것보다 백천만 배 더 뛰어나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것이며, 나아가 주린 개와 개미 새끼들에게 베풀어주는 자비의 밭이 가장 수승하다’라고 했느니라.”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사리불이 한 발우의 밥을 부처님께 올렸더니 부처님께서는 곧 개에게 주면서 사리불에게 물으셨다.
‘누가 복을 얻는 것이 더 많겠느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제가 불법의 이치를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개에게 주셔서 얻는 복이 더 많을 것입니다.’
만일 법을 공경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지위를 알면서 수도하는 일에 의지한다면 공경의 밭이 더 수승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축생에게 보시하면 1백 배의 과보를 얻고, 나아가 수다원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얻는다. 아라한과 벽지불조차도 오히려 부처님보다 못한 이들이거늘 하물며 그 밖의 무리들이겠는가. 만일 평등에 의거하여 보시를 행한 사람이라면 자비와 공경을 따질 필요가 없다.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얻는 복이 크고 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나누어 두 몫으로 만들어서 한 몫은 저 난승(難勝)부처님께 보시하고 한 몫은 성 안의 가장 천한 걸인에게 준다면 그 복전은 둘이 없고 똑같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이모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는 부처님께서 출가하시자 손수 베를 짜서 미리 한 단(端)의 금빛 모직물로
방석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언제나 마음에 쌓아두고서 잊지 않은 채 부처님만을 기다리다가 이윽고 부처님을 뵙게 되자 기쁨이 심장과 골수에 사무쳐서 이내 그 방석을 가져다가 여래께 올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교담미(憍曇彌)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 방석을 가져다가 저 스님들에게 바치십시오.’
파제는 거듭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뒤부터 늘 생각하면서 손수 베를 짰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기다렸습니다. 부디 저를 가엾이 여기셔서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님께서 오로지 한 마음으로 저에게 주시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사랑의 마음에서 한 보시는 복이 크고 넓지 못합니다. 만일 스님들께 보시하면 그 얻는 복이 한층 더 많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알고 있으므로 권하는 것입니다.”
또 『거사청승복전경(居士請僧福田經)』에서 말하였다.
“5백 명의 나한을 따로 청하는 것은 차례대로 한 평범한 스님을 청하는 것보다 못하다. 나의 법 안에는 따로 청을 받는 법이 없으니, 만일 어떤 이가 스님을 따로 청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다. 이는 6사(師)의 법으로서 일곱 부처님께서도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보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하나로 대강 추려서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8) 상대부(相對部)
自述
여기에는 따로 다섯 종류의 상대(相對)가 있다.
첫 번째는 복전[田]과 재물[財]의 상대로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복전은 수승[勝]하나 재물은 하열[劣]한 것이니, 마치 어린 아이가 흙을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재물은 수승하나 복전은 하열한 것이니, 마치 보물을 가져다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 셋째는 복전과 재물이 다 같이 수승한 것이니, 마치 보물을 가져다 부처님들께 보시하는 것과 같다. 넷째는 복전과 재물이 다 같이 하열한 것이니, 마치 풀을 가져다 짐승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경함[輕]과 중함[重]의 상대로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은 중하나 재물은 경한 것이니, 마치 가난한 여인이 1전(錢)을 대중에게 보시하여서 복을 얻음이 크고 많은 것과 같다. 둘째는 재물은 중하나 마음이 경한 것이니, 마치 왕의 부인이 교만한 마음으로 보물을 많이 가져다 대중에게 보시했더라도 얻는 보은 적은 것과 같다.[셋째와 넷째의 두 가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비움[空]과 있음[有]의 상대이다. 첫째는 마음을 비웠으나 경계는 비우지 못한 것이니, 마치 비록 공관(空觀)을 배우기는 했으나 재물이 아까워서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빈궁의 과보를 얻는 것과 같다. 둘째는 경계를 비웠으나 마음은 비우지 않은 것이니, 마치 재물이 덧없다는 것을 알아서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므로 복을 얻는 것이 더욱 많아지는 것과 같다.[셋째와 넷째의 두 가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네 번째는 많고[多] 적음[少]의 상대이니 다음과 같이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말하였다.
“보시에는 네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보시는 많으나 얻는 복은 적은 것이요, 둘째는 보시는 적으나 얻는 복은 많은 것이며, 셋째는 보시도 적고 얻는 복도 적은 것이요, 넷째는 보시도 많고 얻는 복도 많은 것이다.”
무엇을 보시는 많으나 얻는 복은 적다고 하는가? 사람이 어리석어서 산 것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고 술을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돈과 재물을 낭비한다면 복과 지혜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보시는 많으나 얻는 복은 적다고 한다.
무엇을 보시는 적으나 얻는 복은 많다고 하는가? 인자한 마음으로 도덕이 있는 사람에게 바쳐서 뭇 스님들이 그것을 먹은 뒤에 정진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외우기도 하면, 비록 보시는 적으나 그 복은 더욱 많은 것이니, 이것을 보시는 적으나 얻는 복은 많다고 한다.
무엇을 보시도 적고 얻는 복도 적다고 하는가? 간탐과 나쁜 뜻으로 삿된 자나 외도에게 보시하면 둘 다 어리석은 것이니 그러므로 보시도 적고 얻는 복도 적다고 한다.
무엇을 보시도 많고 얻는 복도 많다고 하는가? 만일 어떤 어진 이가 세간의 무상함을 깨닫고서 좋은 마음으로 재물을 희사하여 탑과 절을 세우고 정사(精舍)와 과수원을 만들며 3존(尊)께 옷과 이불과 신발과 걸상과 음식 등을 공양하면, 이 복이야말로 마치 5대하(大河)가 흘러서 큰 바다로 들어가듯 복의 흐름도 그와 같아서 세세생생 끊어지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보시도 많고 얻는 복도 많다고 한다.
다섯 번째는 더러움[染]과 깨끗함[淨]의 상대이니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불법 중에는 네 가지 보시가 있다. 첫째는 보시한 이는 깨끗하나 받은 이가 깨끗하지 않고, 둘째는 보시한 이는 깨끗하지 않으나 받는 이가 깨끗하며, 셋째는 보시한 이나 받는 이가 다 같이 깨끗하고,
넷째는 보시한 이나 받는 이가 다 같이 깨끗하지 않은 것이다.”
부처님 스스로가 부처님께 공양하기 때문에 이것을 다 같이 깨끗하다 한 것이니, 마치 동방의 보적불(寶積佛)께서 공덕의 힘으로 내신 꽃을 10주(住) 법신(法身)의 보명(普明)보살에게 맡겨 이 꽃을 보내어 석가모니불의 위에 뿌리게 함으로서 시방의 부처님께 이것이 제일가는 복전임을 아시게 함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두 가지가 모두 깨끗하다고 한다.[나머지 구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9) 재시부(財施部)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말하였다.
“재물의 보시[財施]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믿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때를 따라 보시하는 것이요, 넷째는 자기 손수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법답게 보시하는 것이다.”
自述
그러나 보시하는 재물에는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다. 법에 어긋난 재물은 설사 보시한다 하더라도 얻게 되는 복은 적을 것이며, 법다운 재물이면 얻는 복이 더욱 많을 것이다. 『대보적경』에서 말하였다.
“보시하지 않아야 할 것에 다시 다섯 가지의 일이 있다. 첫째는 도리를 어기고 구한 재물이면 남에게 보시하지 말 것이니, 그 재물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술과 독약은 남에게 보시하지 말 것이니, 중생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짐승을 잡는 그물은 남에게 보시하지 말 것이니, 중생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칼과 몽둥이와 화살은 남에게 보시하지 말 것이니, 중생을 해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음악과 여색(女色)은 남에게 보시하지 말 것이니 청정한 마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또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역시 법답지 않은 음식을 보시하지 않으니, 이른바 출가한 사람에게 남은 찌꺼기의 음식인 똥ㆍ오줌ㆍ눈물ㆍ침ㆍ고름 및 피가 섞인 음식, 밥인지 보리밥인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척 음식을 보시하는 것이다. 법답지 않은 것이 섞여 있으면 버려야 한다. 이른바 마늘이 섞인 음식이 아니어야 하고, 고기가 섞인 음식이 아니어야 하고, 술이 섞인 음식이 아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섞였으면 법답지 않은 것이므로 남에게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매로 때리고 고문하고 빼앗고 가두고 묶어서 얻은 그 재물로써 보시하면 코끼리나 말이나 소로 태어나는데, 비록 짐승의 몸을 받아 무거운 짐을 지고 채찍을 맞으며 굴레가 씌워지고 사람이 타는 일을 당한다손치더라도 좋은 집과 좋은 음식을 얻고 사람들의 아낌을 받으면서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다. 또 마치 나쁜 사람이 성을 많이 내고 마음이 단정하지 못한 채 보시를 행하면 장차 용 안에 떨어져서 7보로 된 궁전과 묘한 음식과 좋은 빛깔을 얻는 것과 같다. 또 마치 교만한 사람이 교만과 성내는 마음이 많은 채 보시를 행하면, 금시조(金翅鳥) 안에 떨어져서 항상 자유로움이 여의보주(如意寶珠)로 영락을 삼은 것과 같아서 갖가지 구하는 것을 모두 얻어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으며 변화가 무쌍하여 일마다 이루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재상이나 벼슬아치가 인민들을 억울하게 다루고 법을 따르지 않으면서 빼앗은 그 재물로써 보시하면, 귀신 안에 떨어져서 구반다귀(鳩槃茶鬼)가 되어 갖가지 변화로 다섯 가지 경계[五塵]에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성내고 패악하고 사나운데다가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보시를 행하면, 지야차귀(地夜叉鬼) 안에 떨어져서 언제나 갖가지 환락과 음악과 음식을 얻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괴퍅하고 힘이 세어서 수레와 말을 보시하고 그 대신 걸어간다면, 장차 허공야차(虛空夜叉) 안에 떨어져서 큰 힘을 갖고 질풍처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질투하는 마음으로 다투기를 좋아하면서도 좋은 방과 집과 침구ㆍ의복ㆍ음식을 보시하면, 그 때문에 궁관(宮觀)의 비행야차(飛行夜叉) 안에 태어나서 갖가지 오락과 몸을 편케 하는 물건이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앞사람을 괴롭혀서 억지로 사람이나 재물을 구하여 복을 지으면 도리어 그 죄를 부르는 것이니, 마음을 고요히 하여 속마음을 다스림으로서 더욱 뛰어난 이익을 얻는 것만 못하다. 또 『우바새경(優婆塞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권속을 괴롭혀서 얻은 물건을 보시하면,
이 사람은 미래 세상에 비록 큰 과보를 얻기는 하나 몸이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만일 먼저 부모에게 공양하지 않고 처자와 종을 괴롭혀서 얻은 재물을 보시한 이를 나쁜 사람이라 하는데, 이는 거짓된 보시라 하지 옳은 보시라고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보시한 이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이라 하는데, 이런 사람은 미래 세상에 비록 재보를 얻는다 하더라도 항상 구하기만 할 뿐 쌓이지 않고 꺼내서 쓰지도 못하며 몸에 병고만 많다.”
이런 글로써 증험하건대, 억지로 남을 부려서 얻은 물건으로 복을 짓고 닦는 이는 도리어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거늘 어찌 이익을 낸다고 하겠는가. 지금은 말세(末世)라서 도인이든 속인이든 뒤바뀌어서 재(齋)와 강(講)을 경쟁하듯 일으켜 억지로 재물을 강요하여 탑과 절을 짓는데, 이는 경전의 뜻에 합치하지도 않고 도리어 앞서 말한 죄를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고요히 앉아서 속으로 닦고 실행함만 못한 것이니, 벗어남[出離] 가운데서 이보다 더 수승한 것은 없다. 만일 어떤 이가 청정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설법하면, 그 사람들은 정성껏 공경하면서 법을 구하며 보시하게 된다. 그러면 곧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해서 복과 지혜를 이루게 해야지, 앞서 말한 것을 판단해서 덩달아 배척하지 말아야 하며, 망령되이 비방하면서 앞서 말한 복을 억지로 막지도 말아야 한다. 또 『무성섭론석(無性攝論釋)』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저 유정이 재물로 인하여 무거운 업장이 있음을 보기 때문에 보시하지 않으며 그로 하여금 보시해도 공하여 과보가 없음을 알게 한다. 설령 다시 그에게 보시한다 해도 받을 수가 없거늘, 무엇으로 보시한다 하겠는가?”
마치 다음 게송의 말과 같다.
어머니가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되
세월이 가도 한결같아서 게으르지 않지만
젖먹이의 목구멍이 막혀버리면
먹이고 싶어도 어찌하겠는가?
차라리 가난한 이로 하여금 재물이 없게 해서
악취(惡趣)의 모든 나쁜 행을 여의게 할지언정
그가 부귀를 누리다가 모든 감관 어지럽혀
미래의 뭇 고통을 받게 하지는 말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시기에 맞춘 보시에는 다섯 가지 일의 이익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먼 데서 온 사람에게 보시하고, 둘째는 멀리 가는 사람에게 보시하며, 셋째는 병든 사람에게 보시하고, 넷째는 넉넉지 못할 때에 보시하며, 다섯째는 햇과일이나 햇곡식 등을 얻으면 먼저 계를 지니면서 정진하는 사람에게 드리고 나중에 자신이 먹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보시를 행하고자 하면 때에 따라 보시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일 때에 맞추어 청정하게 보시하면 때에 맞추어 과보를 받게 된다. 때의 마땅함을 따라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은 추울 때에는 따뜻한 방과 털 이불과 땔나무와 불과 따뜻한 음식 등을 보시하는 것이며, 더울 때에는 서늘한 방과 가벼운 옷과 물과 부채와 차가운 물건 등을 보시하는 것이며 목마를 때에는 마실 것을 주고 배고플 때에는 먹을 것을 주며, 바람 불고 비가 올 때에는 공양을 보내고 날씨가 화창해지면 스님을 청하는 것이다. 이처럼 때를 따르면서 마음에 맞고 기쁘게 보시하면, 미래 세상에 복을 얻되 다시 순조로운 과보[順報]를 받느니라.’”
또 『보살지지론(菩薩地持論)』에서 말하였다.
“온갖 보시를 간략하게 말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의 보시[內施]이고, 둘째는 바깥의 보시[外施]이다. 보살이 몸을 버리는 것을 안의 보시라 한다. 만일 토한 것을 먹는 중생을 위하여 먹은 뒤에 토하여 보시하면 안팎의 보시[內外施]라고 한다. 위에서 말한 바를 제외한 나머지 것을 바깥의 보시라 한다.
보살이 행하는 안의 보시[內布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라는 바를 따라 남의 힘이 되어서 자유로이 몸을 버리는 보시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옷과 밥을 위하여 남에게 얽매이고 소속되어서 다른 이의 종이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보살은 이양(利養)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위없는 보리를 위해서이며,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니, 바라는 바를 따라 남의 힘이 되어서 자유로이 몸을 버리는 보시이다. 둘째는 남이 구하는 대로 팔다리의 마디뼈 등 온갖 것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보살의 바깥 보시[外布施]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의 구하는 바를 따라 수용하고 있는 쾌락의 기구를 기뻐하면서 베풀어주는 것이요, 둘째는 그를 받들어 섬기기 위하여 온갖 것을 버리는 마음으로 모두 베풀어주는 것이다. 보살의 안팎의 물건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니, 평등하게 온갖 것을 보시하면서도 어떤 경우는 보시할 것이 있고 어떤 경우는 보시하지 않을 것도 있다. 만일 중생에게 즐겁기는 하나 편안하지 않은 것이나 즐겁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것이면 보시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중생에게 편안하기는 해도 즐겁지 않은 것이나 편안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는 것이면 모두 다 보시한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보시가 있어서 지혜를 구족하게 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종이와 붓과 먹을 법사에게 주어서 그로 하여금 경전을 베껴 쓰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갖가지로 꾸미고 장엄한 묘한 자리[座]를 법사에게 보시하는 것이고, 셋째는 필요한 공양 거리들을 법사에게 바치는 것이고, 넷째는 아첨과 굽힘이 없는 마음으로 법사를 찬탄하는 것이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보시하면서 복을 닦되 유위(有爲)의 업을 지어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천왕천(四天王天)에 태어나게 된다. 만일 보시하는 사람이 부모ㆍ백부ㆍ숙부ㆍ형제ㆍ자매 등에게 공양하되 성냄도 없고 원한도 없어서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투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으면 도리천(忉利天)과 나아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나게 된다.”
또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옷을 보시하면 으뜸가는 예쁜 빛깔을 얻고, 음식을 보시하면 더할 나위 없는 힘을 얻으며, 등불을 보시하면 맑고 묘한 눈을 얻고, 탈 것을 보시하면 몸에 안락함을 느끼며 집을 보시하면 필요한 물건이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만일 깨끗하고 좋은 물건을 보시하면 뒤에 좋은 색(色)을 얻으므로 사람들이 보기 좋아하고, 착한 이름이 유포되며, 구한 바가 뜻대로 되고, 으뜸가는 성바지[種姓]에 태어나는 것이니 이것을 악(惡)이라 하지 않는다.
또 자신을 위하여 의복이나 장엄하는 도구 등, 갖가지 물건을 만들었을 때, 다 만들고 나서 기뻐하면서도 자기가 입거나 쓰지 않고 남에게 보시하면,
이 사람은 미래 세상에 여의수(如意樹)를 얻는다. 또 어떤 사람이 날마다 먼저 남에게 음식을 보시한 뒤에야 자기가 먹겠다고 서원을 세웠다가 그 서원을 어기고 부처님께 물건 보내기로 한 것을 보내지 않으면 부끄러움이 생긴다. 그러나 그 서약을 어기지 않으면 그것은 곧 미묘한 지혜의 인연이므로 이와 같이 보시한 이는 모든 보시 중에서 최상이니, 이 사람을 으뜸가는 시주라고도 한다.
또 처자와 종에게 의복과 음식을 공급하면서도 언제나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주면 미래 세상에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 또 밭이나 창고 안에 쥐와 참새가 많이 살면서 곡식을 축내는 것을 보고도 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면서 생각하기를 ‘이 쥐와 참새는 나로 인해 살게 된다’고 한 뒤에 기뻐하면서 없애버리려는 생각이 없으면 이 사람이야말로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고 알아야 한다.”
또 『대보적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꽃을 보시하면 다라니와 7각(覺)의 꽃을 갖춘다. 향을 보시하면 계(戒)ㆍ정(定)ㆍ혜(慧)를 갖추어서 몸에 쪼이고 바른다. 과일을 보시하면 계율을 갖추어서 무루과(無漏果)를 성취한다. 밥을 보시하면 수명과 변재와 빛깔과 힘과 쾌락을 구족한다. 옷을 보시하면 청정한 빛깔을 갖추며 참괴(慚愧)가 없는 마음을 제거한다. 등불을 보시하면 불안(佛眼)을 구족하여서 온갖 모든 법의 성품을 환히 비춘다. 코끼리와 말과 탈 것을 보시하면 무상승(無上乘)을 얻고 신통을 구족한다. 영락을 보시하면 80가지 형상에 수반되는 호(好)를 두루 갖춘다. 값진 보물을 보시하면 대인(大人)의 32가지 상(相)을 두루 갖춘다.
근력이 좋은 종을 보시하면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를 두루 갖춘다. 요점을 들어서 말하자면, 나라와 성과 처자와 머리ㆍ눈ㆍ손ㆍ발 등 온몸을 베풀어주면서 마음에 인색함이 없는 것은 위없는 보리를 얻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서이다.”
또 『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얻기 위하여 단나(檀那)바라밀다를 행할 적에 닦은 보시에도 또한 열 가지 칭찬할 만한 이익이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 마하살이 가장 미묘한 다섯 가지 욕망을 보시한 까닭에 청정한 계ㆍ정ㆍ혜의 무더기와 해탈 및 해탈지견(解脫智見)의 무더기를 획득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둘째는 보살이 가장 묘하게 유희하는 쾌락의 기구를 보시한 까닭에 청정하게 유희하는 법의 쾌락을 획득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셋째는 보살이 발[足]을 보시한 까닭에 원만한 법의(法義)의 발을 얻게 되어서 보리좌(菩提座)에 나아가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넷째는 보살이 손을 보시한 까닭에 원만하고 청정한 법의 손을 얻게 되어서 중생을 구제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다섯째는 보살이 귀와 코를 보시한 까닭에 모든 감관이 원만하게 성취함을 획득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느니라. 여섯째는 팔다리의 마디뼈를 보시한 까닭에 청정하여 물듦이 없고 위엄이 있는 부처님 몸을 획득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일곱째는 보살이 눈을 보시한 까닭에 온갖 중생을 보는 청정한 법안(法眼)을 획득하여 장애가 없음을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여덟째는 보살이 피와 살을 보시한 까닭에 견고한 몸과 목숨을 획득하여 온갖 중생을 거두어 보호하고 기르는 진실한 선권(善權:훌륭한 방편)을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아홉째는 보살이
골수와 뇌를 보시한 까닭에 원만하고 파괴할 수 없는 금강과 같은 몸을 획득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다. 열째는 보살이 머리를 보시한 까닭에 원만하고 삼계(三界)를 초월한 위없는 최상의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으뜸이 됨을 획득하되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보리를 얻기 위하여 이와 같은 보시를 함으로서 이와 같은 모습을 받았고, 모든 원만한 불법으로 칭찬할 만한 이익의 으뜸가는 절묘한 공덕을 섭수하는 것이니, 모두가 단나바라밀다를 만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게송을 말씀하셨다.
보시를 행하되 좋은 몸과 재물을 구하지 않고
또한 천상과 인간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도 않네.
내가 구하는 것은 위없고 수승한 보리인지라
보시는 작아도 곧 한량없는 복을 얻느니라.”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였다. 사위성(舍衛城) 안에 한 장자가 있었는데 재보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었다. 그의 부인이 한 남자 아이를 낳았는데 단정하고 남다른 묘한 모습이 세간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그가 태어나는 날에 하늘에서는 큰비가 왔으므로 부모가 기뻐하고 온 나라가 다 듣고 알았다. 관상쟁이가 점을 쳐보았더니 아주 좋았으므로, 그로 인해 이름을 야사밀다(耶奢蜜多)라고 지었다. 그는 젖을 먹지 않았으니, 어금니 사이에서 저절로 8공덕(功德)의 물이 나와서 그것을 먹고 자랐다. 나이가 차서 어른이 되자 부처님을 뵈옵고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으므로 천신과 세간 사람들이 공경하며 우러러 보았다. 당시 모든 비구들이 이런 일을 보고 나서 그가 전생에 지은 복의 인연을 알고 싶어했다. 그러자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겁(賢劫) 동안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셨는데 그 명호가 가섭불(迦葉佛)이시다. 그 법 속에서 한 장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극히 많은 상태에서 출가하여 도에 들어왔기 때문에 부지런히 정진할 수가 없었고 게다가 중병이 들어 있었다. 용한 의사가 그를 보고는 소(蘇)를 먹어야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자, 그는 곧 의사의 말대로 소를 가져다 먹었다.
그 날 밤 약 기운으로 열이 나면서 목이 몹시 탔으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물을 구했으나 물그릇은 모두 비어 있었으며 다시 샘이나 강물에 나아가 보았으나 모두 다 바짝 말라 있었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물을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깊이 스스로 뉘우치고 책망하면서 그 강물 언덕에서 옷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에 그 일을 스승에게 아뢰었더니, 스승은 그의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네가 그런 고통을 당했으니 그 형상이 마치 아귀와 같구나. 너는 이제 나의 병 속에 있는 물을 가져다 스님들에게 돌려라.’
그는 분부를 받고서 병의 물을 취하였지만 물이 모두 말라버렸다. 그래서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을 품고서 생각하기를 ‘내가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아귀에 떨어지겠구나’하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고는 세존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교시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스님들 안에서 좋고 깨끗한 물을 늘 돌려라. 그러면 이 아귀의 몸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하셨으므로,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즉시 스님들에게 늘 깨끗한 물을 돌리다가 2만 살 때에 죽었다. 그로부터 태어날 적마다 그 어금니 사이에서 항상 청정한 8공덕의 물이 저절로 나와서 채워 주었으므로 젖을 먹지 않았으며, 나아가 지금은 나를 만나서 출가하였고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또 『아육왕경(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적에 모든 비구와 아난에게 앞뒤로 둘러싸인 채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서 걸식하고 계셨다. 거리 안에 이르러서 어린 두 아이를 만났는데 한 아이의 이름은 덕승(德勝)이요 또 한 아이의 이름은 무승(無勝)이었다. 흙을 만지면서 장난하고 놀았는데, 흙으로 성과 집과 창고를 만들어 놓고는 흙을 미숫가루라 하면서 창고 안에 넣었다. 이 두 아이는 부처님의 상호와 금빛 광명이 성 안을 두루 비추는 것을 보았는데, 그 중 덕승이 기뻐하면서 창고 안에 있는 흙 한 움큼을 집어 미숫가루라 하면서 세존께 바치며 원을 세웠다.
‘오는 세상에는 저로 하여금 천지를 덮을 만큼 널리
공양을 베풀게 하소서’
이렇게 선근(善根)을 발원한 공덕으로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1백 년 후에 전륜왕으로 염부제의 왕이 되었는데 화씨성(華氏城)에 살면서 바른 법으로 세간을 다스리니 그 이름이 아서가왕(阿恕伽王)이었다. 그는 부처님의 사리를 나누어서 8만 4천의 보배 탑을 만들었으며 돈독한 신심으로 항상 스님들을 궁중에 청하여 공양하였다.
당시 왕궁 안에는 한 여종이 있었다. 너무나 가난하고 하천하였으므로 왕이 복을 짓는 것을 보고 자신을 몹시 책망하였다.
‘왕은 전생에 여래께 한 움큼의 흙을 보시하고서 오늘날 부귀를 누리고 있고, 지금도 거듭 복을 지으니 오는 세상에는 더욱 수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생에 지은 죄로 종노릇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빈궁해서 복을 지을 수 없으므로 오는 세상에는 더욱 천할 터이니 언제 벗어날 기약이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큰 소리로 울었다. 그리고 나서 스님들이 공양을 끝마칠 즈음에 땅을 쓸다가 한 닢의 동전을 얻었는데, 이 한 닢의 돈을 곧 스님들에게 보시하면서 마음이 몹시 기뻤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목숨을 마치고는 아육왕(阿育王) 부인의 뱃속으로 들어가 열 달을 채운 뒤에 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세간에서는 짝할 사람이 없었으나 그 여자아이는 언제나 주먹을 쥐고 있었다. 나이가 다섯 살일 때,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딸아이가 늘 한 손을 쥐고 있습니다’
왕은 이내 딸을 불러다가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손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자 손이 저절로 열리면서 손바닥 안에는 한 닢의 돈이 있었다. 그것을 집어 내면 그대로 또 돈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끝이 없었으므로 잠깐 동안에 돈이 창고에 가득 찼다. 왕은 괴이하게 생각해서 즉시 야사(耶奢) 나한 상좌에게로 데리고 가서 물었다.
‘이 딸아이가 전생에 무슨 복덕을 지었기에 손바닥 안에서 이런 돈이 나옵니까? 아무리 집어내도 끝없이 나옵니다.
상좌는 대답하였다.
‘이 따님은 전생에 왕궁의 사람이었는데, 쓰레기 속에서 한 닢의 동전을 얻어서 스님들께 보시했습니다. 이런 선근으로
왕가에 태어나고 왕녀가 되었으며, 옛날 1전을 스님들께 보시한 선근의 인연으로 항상 손바닥 안에는 한 닢의 돈을 움켜쥐고 있는데, 아무리 집어내도 끝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기사굴산(耆闍崛山) 안에 스님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사방에서 이 소식을 듣고 공양을 보내는 이가 많았다. 어느 가난한 거지 여인은 모든 장자들이 공양을 보내면서 산으로 가는 것을 보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필경 모임이 있는가 보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구걸해야겠다.’
그리고는 곧 산중으로 가서 모든 장자들이 갖가지 음식을 스님들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저 모든 사람들은 전생에 복을 닦았기에 오늘날에도 부귀를 누리고 있으며, 지금도 또 거듭 복을 짓고 있으니 오는 세상에는 더욱더 수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생에 닦지 않아서 금생에 빈궁에서 허덕이고 있으니, 지금 만일 복을 짓지 않으면 오는 세상에서는 더욱 참담하리라.’
그리고는 큰 소리로 슬피 울었다. 거지 여인은 전에 쓰레기 속에서 주운 두 닢의 돈이 있었는데, 늘 아끼고 있으면서 쓰지 않은 것은 음식을 얻지 못했을 때 밥을 사 먹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이 돈을 뭇 스님들께 보시하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이틀 동안 밥을 얻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스님들의 공양이 끝나는 것을 엿보고 있다가 즉시 보시하고서는 유나(維那)스님 앞에서 축원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상좌는 유나의 허락 없이 스스로 그녀를 위해 축원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시 밥까지 주었다. 그러자 상좌에게 밥을 비는 것을 본 다른 사람도 음식을 나눠주었으므로 여인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과보를 얻었구나.’
그리고는 음식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어느 나무 아래로 가서 먹은 뒤에 누워 있었더니, 보시한 복이 감응하여 노랑 구름이 그녀를 덮어 주었다. 그 날은 국왕의 첫째 대부인이 죽은 지 7일이 되는 날이었다. 왕은 사람들을 파견하여 누가 복덕이 있어서 부인이 될 만한가를 찾게 하였다. 그래서 여러 신하들과 관상쟁이가 함께 찾다가 마침내 그 나무 아래에서 이 여인을 보게 되었는데, 관상쟁이가 점을 쳐보았더니 이 여인이 왕의 부인이 될 만하였다. 즉시 그녀를 향탕 물에 목욕을 깨끗이 시키고 왕비의 의복을 주어
입게 하니 모두가 서로 찬탄하면서 천만의 수레에 태워 왕에게로 데리고 갔다. 왕은 그녀를 보자 몹시 기뻐하면서 아주 공경하고 소중히 여겼다.
이 여인은 훗날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복의 과보를 얻은 까닭은 두 닢의 돈을 스님들께 보시했기 때문이니, 저 스님들은 나에게 크고 중한 은혜가 있음을 알겠구나’하고, 곧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원래 천한 종이었는데 왕의 간택을 입어서 부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곳으로 가서 그 스님들께 은혜를 갚도록 하여 주소서.’
왕이 말하였다.
‘마음대로 하시오.’
부인은 곧 수레에 음식과 값진 보물을 싣고 산으로 가서 보시하였다. 상좌는 즉시 유나를 시켜서 축원하게 하고 자신은 축원을 해 주지 않았다. 부인은 생각하기를 ‘전에는 두 닢의 돈을 보시했는데도 축원을 해 주더니 지금은 값진 보물을 싣고 왔는데도 축원을 해 주지 않는구나’ 하였고, 나이 어린 비구들도 상좌의 행동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상좌가 그 때 부인에게 말하였다.
‘마음속으로 나를 언짢게 생각하시는구려. 두 닢의 돈을 보시할 때에는 내가 축원했으나 지금 값진 보물을 싣고 왔을 때에는 축원해 주지 않는다고 말이오. 그러나 우리 불법 안에는 착한 마음이 귀할 뿐이요, 값진 보물은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부인은 먼저 두 닢의 돈을 보시할 적에는 착한 마음이 극히 수승하더니, 지금은 값진 보물을 보시하면서 젠체하고 뽐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지금 축원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나이 어린 여러분도 나를 나쁘다고 여기지 마시오.’
나이 어린 비구들은 상좌의 말을 듣고 뉘우침으로서 모두 다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으며, 이 부인도 법을 듣고 참회해서 역시 수다원과를 얻었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구류사국(拘留沙國)에 악생왕(惡生王)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동산의 당상(堂上)으로 나아갔다가 금으로 된 고양이 한 마리가 동북쪽 모퉁이에서 서남쪽 모퉁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왕이 이내 사람을 시켜서 파 보게 하였더니 구리로 된 동이 하나가 나왔는데, 동이는 석 섬[三斛]들이로서 그 속에는 돈이 가득 차 있었다. 점점 더 깊이 파 들어가자 또 하나의 동이가 나왔으며, 이렇게 차례대로 세 개의 무거운 동이를 얻었는데 모두 석 섬들로서 속에는 돈이 가득 차 있었다. 또 다시 곁으로 5리(里)쯤 파 들어갔는데,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모두 구리 동이를 얻었으며 속에는 돈이 가득 차 있었다. 왕은 비록 돈을 얻기는 했으나 두려워서 감히 쓰지 못했다. 일이 워낙 괴상한 까닭에 왕은 곧 존자 가전연(迦旃延)에게로 가서 그 사연을 설명했더니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왕께서 전생의 인연으로 얻게 된 부의 과보입니다. 쓰십시오. 괴로워할 것 없습니다.’
그래서 왕이 곧 옛날의 인연에 대해 물었더니 존자가 대답하였다.
‘지나간 세상 91겁(劫) 전에 비바시불(毘婆尸佛)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남겨진 교법을 닦는 여러 비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네거리의 길머리에 자리를 깔고 발우를 놓아두고는 그 위에서 가르침을 폈습니다.
‘누가 재물을 이 견고한 창고 안에 넣어 두겠습니까? 만일 이 창고 안에 넣어두면 국법이나 도둑이나 물이나 불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때에 어느 가난한 사람이 스님들의 가르치는 모습을 보자 나무를 팔아서 받은 돈 3문(文)을 기뻐하면서 보시했습니다. 그는 돈을 거푸 발우 안에 넣고는 원을 세우고 떠나갔는데, 집까지 5리를 가는 동안 걸음걸음이 기뻤고 문 앞까지 와서 들어갈 때도 다시 멀리 스님들을 향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원을 세우고는 들어갔습니다. 그 때의 가난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왕이십니다. 옛날에 스님들께 기쁜 마음으로 3문을 보시한 인연으로 태어나는 세상마다 존귀하였고, 늘 이와 같이 세 개의 무거운 구리 동이 속에 가득 찬 돈을 얻었으며, 5리를 걷는 동안 걸음마다 기뻐했기 때문에 항상 5리마다 이런 돈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알 수 있듯이, 보시할 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베풀어주어야지 후회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됩니다.”
(10) 수희부(隨喜部)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이 재물이 있으면서도 구걸하는 이를 보고서 ‘없다’고 하거나 ‘바쁘다’고 하면, 이 사람은 내생에 빈궁하고 박덕하리라는 것을 이미 말했음을 알아야 하나니, 이와 같은 사람을 방일(放逸)한 자라고 한다. 스스로 ‘재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왜냐 하면, 온갖 물이나 풀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국왕일지라도 반드시 보시한다고는 할 수 없으며,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보시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왜냐 하면 가난한 사람 역시 식사의 몫이 있으므로 먹은 뒤에 그릇을 씻고 버릴 찌꺼기일지라도 마땅히 그 음식을 보시하면 역시 복덕을 얻기 때문이다. 만일 티끌만큼의 보릿가루를 개미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덕의 과보를 얻는데, 천하에 극빈한 자라도 그 누가 이 티끌만큼의 보릿가루조차 없다고 하겠는가? 그 누가 하루 동안에 세 뭉치의 보릿가루를 먹지 않는 이가 있고 목숨을 보전하지 않는 이가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먹을 것의 반이라도 걸인에게 보시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어느 누가 옷이 없어서 벌거벗고 살겠는가? 만일 옷이 있다면 어찌 한 올의 실이라도 보시하여 상처를 동여매게 하고, 한 손가락 길이라도 떼어서 등불의 심지를 만들게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천하의 사람 중에서 그 누가 가난하다 해서 몸조차 없는 이가 있겠는가? 몸이 있다면 남이 복을 짓는 것을 보면, 응당 몸으로 가서 도우면서 기뻐하고 싫어함이 없어야 시주(施主)라 할 수 있고 또한 복덕을 얻는데 어떤 때는 분수가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똑같은 이가 있기도 하며 혹은 보다 나은 이가 있기도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파사닉왕(波斯匿王)의 식사를 받을 때에도 축원하기를 ‘왕과 가난한 사람의 얻는 공덕이 똑같아서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이니라.
마치 바르는 향[塗香]과 가루 향[末香]과 뿌리는 향[散香]과 사르는 향[燒香] 등을 사고자 하는데, 이 네 가지 향을 만지는 이나 사는 이나 파는 이나 구별 없이 다 똑같이 냄새를 맡게 되면서도 그 모든 향이 털끝만큼도 없어짐이 없는 것처럼, 보시를 닦는 덕도 그와 같은 것이다. 많든 적든 거칠든 미세하든, 기뻐하는 마음으로 몸소 가서 돕든, 또는 멀리서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기쁨을 내든 간에 그 마음은 똑같기 때문에 얻게 되는 과보도 차별이 없느니라.
만일 재물이 없다고 해서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서 기뻐하고 믿는 마음을 내지 않고 복전을 의심한다면, 이것을 빈궁한 이라 한다. 또 재보가 많아서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사람이 좋은
복전이 있는데도 속으로 신심이 없어서 보시를 봉행하지 않으면 역시 빈궁한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남은 한 뭉치의 밥을 자기가 먹으면 살고 남에게 주면 죽는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베풀어주어야겠거늘 하물며 많이 있다면 두말할 것이 있겠는가? 지혜로운 이는 세간에서 계율을 지닌 사람, 많이 들은 사람,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조차도 오히려 배고프고 목마름을 막지 못하고 방과 집과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병들었을 때 약이 없어 괴로움을 받는 이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전생에 보시하지 않은 인연 때문이다. 계율을 깨뜨린 사람조차도 보시하기를 좋아한다면, 설사 아귀나 축생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항상 배가 부르고 모자람이 없을 것이니라.
비록 부유하여 4천하에서 한량없는 쾌락을 받고 있을지라도 오히려 족한 줄을 모르는 이가 있으니, 이 때문에 ‘나는 위없는 즐거움을 위하여 보시를 행하지 인간과 천상에 나기 위하여 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왜냐 하면, 무상하기 때문이요 끝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시주가 기뻐하면서 후회할 일이 없고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재물이 부유해서 자재로울 수 있고, 훌륭한 집안에 태어나고, 인간과 천상의 쾌락을 얻고, 위없는 과위에 이르며 온갖 번뇌의 결박을 여의게 된다. 또 시주가 손수 보시하고 나면, 훌륭한 집안에 태어나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며, 재보가 넉넉해서 권속도 쓸 수 있고 보시할 수 있으며 온갖 중생들이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보게 되고, 본 뒤에는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느니라.”
또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간탐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이라면 비록 진흙일지라도 금과 옥보다 중히 여길 것이나, 자비로운 마음이 많은 사람이라면 비록 금과 옥을 보시할지라도 초목보다 가벼이 여긴다. 또 간탐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이 재보를 상실하면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할 것이지만, 보시를 행하는 사람은 받는 이를 기쁘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기뻐한다. 설령 좋은 음식이 있다 해도 베풀지 않고서 먹는 사람은
맛있다고 여기지 못할 것이나, 설령 나쁜 음식이라 해도 보시한 후에 먹는 사람은 희열을 느끼면서 지극히 맛있다고 여긴다.
만일 보시한 끝에 남은 것을 먹는 착한 장부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마치 열반을 얻은 것과 같으니, 신심이 없는 이라면 어찌 이런 말을 믿겠느냐. 설령 거친 음식이 있고 그의 앞에 배고픈 이가 있다 해도 오히려 보시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나머지 훌륭한 것을 남에게 주겠는가? 그런 사람은 큰 물가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적은 물조차 중생에게 베풀어주지 않을 텐데, 하물며 그 밖의 좋은 재물이겠는가. 세간의 쓰레기와 흙이 물보다 얻기 쉬운 것이지만, 이런 사람은 간탐하는 사람이라 쓰레기나 흙을 달라고 해도 오히려 인색한 마음을 품겠거늘 하물며 다시 재물이겠는가.
가령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큰 부자요 한 사람은 가난하다고 하자. 어떤 걸인이 오면 이 두 사람은 다 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재물이 있는 이는 그가 달라고 할까 두려워하고 재물이 없는 이는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조그마한 재물을 얻어서 그에게 주어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의 근심과 괴로워함은 비록 같다 할지라도 과보는 저마다 다른 것이니, 가난하면서 자비로운 생각을 하는 이는 천상과 인간 안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쾌락을 받을 것이나 부자로서 간탐하는 이는 아귀 안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만일 보살이라면 자비롭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두루 갖추어 있을 터인데 하물며 조그마한 물건을 주는 것이겠는가? 보살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를 생각하면서도 재물이 없으므로, 남이 구걸을 할 때는 차마 ‘없다’고는 하지 못하며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설령 남이 괴롭다고 하는 말만 들어도 오히려 견뎌 내지 못하거늘, 하물며 남의 괴로움을 눈으로 보면서도 구제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런 이치는 옳지 못하다. 자비심이 있는 이가 빈곤한 중생을 보고도 줄 만한 재물이 없을 때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탄식하는 것은 비유조차 할 수 없다.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이라면 중생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니,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그 마음의 부드러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의 눈물에는 세 가지 때[時]가 있다. 첫째는
공덕을 닦는 사람을 보면 사랑하고 공경하는 까닭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둘째는 고뇌하는 중생으로서 공덕이 없는 것을 보면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셋째는 크게 보시를 닦을 때에는 한편은 슬퍼하면서도 한편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보살이 지금까지 눈물을 흘린 것을 계산해 보면 네 개의 큰 바닷물보다 더 많다. 세간의 중생들은 친족을 잃었을 때에 슬피 울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보살이 빈곤한 중생을 보고도 보시할 재물이 없어서 슬피 울면서 흘린 눈물에는 미치지 못한다.
보살이 구걸하는 소리를 듣고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면, 그 걸인은 보살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비록 함께 말은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얻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보살은 걸인이 오는 것을 보면 아주 슬퍼하면서 괴로워하지만, 걸인은 재물을 얻었을 때에 기쁨이 생기면서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 보살은 구걸하는 말을 들으면 슬피 울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질 못하다가 구걸하는 이가 ‘만족합니다’고 말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친다.
보살은 보시를 수행한 뒤에 중생들이 만족하게 여기면, 곧 산이나 숲으로 들어가서 선정을 수행하여 세 가지 독(毒)을 없앤다. 재물이 갑절이나 많아져서 구걸하지 않아도 보시할 수 있게 되면, 보살은 ‘나는 이제 출가하여 모든 번뇌[結使]를 끊겠다’고 하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할 원을 세우고 온갖 구할 바를 모두 다 버린다. 자비로운 마음이 있는 이는 남을 위하여 열반조차도 오히려 버리거늘, 하물며 몸과 목숨과 재물을 버리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재물을 버리는 이는 몸을 버리는 것보다는 못하고 몸을 버리는 것은 열반을 버리는 것보다는 못하니, 열반조차도 오히려 버리거늘 어찌 버리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자비로운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고 자재로운 자비를 얻어서 구제를 하는 것은 큰 보살의 보시라 도무지 어려울 것이 없다.
온갖 중생의 몸이란 병들지 않음이 없고 그것을 아는 이가 없으나, 보살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두 알아본다. 즉 세 가지
일 때문에 병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음식ㆍ의복ㆍ탕약이 바로 병의 모습이다. 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은 세 가지 일로써 드러나게 되니, 무엇이 세 가지 인가? 이는 곧 재물의 보시[財施]와 법의 보시[法施]와 두려움 없음의 보시[無畏施]이다.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안락함을 주고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 주기 위하여 몸을 버리면서 구제하는데, 그러면서도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 마치 꼴[芻草]을 보듯 한다. 보살이 대비(大悲)로 갖가지 방편을 짓는 것은 마치 젖[乳] 더미와 같았으며, 피를 남에게 보시하면서도 세간 사람이 물로써 보시하는 것보다 쉽게 여겼으니, 마치 보살이 옛날에 다섯 군데 피를 내어 모든 야차귀(夜叉鬼)에게 보시하면서도 뛸 듯이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한 것과 같다.”
(11) 시복부(施福部)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단나바라밀다를 믿고 좋아하면 열 가지 이익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간고하고 인색한 번뇌를 항복 받고, 둘째는 버리는 마음을 닦아 익혀 상속시키며, 셋째는 모든 중생과 그 재산을 똑같이 견고하게 거두어 들여서 열반[滅度]에 이르고, 넷째는 부호의 집에 태어나며, 다섯째는 태어나는 곳마다 보시할 마음이 앞에 나타나고, 여섯째는 항상 4부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을 위하고 일곱째는 4부 대중에 처할 때에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여덟째는 훌륭한 명성이 사방에 두루 퍼지고, 아홉째는 손발이 부드럽고 발바닥이 편편하며, 열째는 도의 나무[道樹]에 이르기까지 선지식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대보적경』에서 말하였다.
“보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 명성과 이익을 얻는다. 첫째는 항상 온갖 성현을 친근하게 되고, 둘째는 온갖 중생이 즐겁게 바라보며, 셋째는 대중 속에 들어갈 때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넷째는 훌륭한 명성과 찬사가 시방에 퍼지며, 다섯째는 보리를 위한 으뜸가는 인(因)을 짓는다.”
또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에서 말하였다.
“세 가지 보시를 두루 갖추어야
보살의 금계(禁戒)를 받아 지닐 수 있다. 첫째는 보시[施]요, 둘째는 큰 보시[大施]며, 셋째는 위없는 보시[無上施]이다. 첫째의 보시는 4천하(天下)조차도 오히려 아까워하지 않거늘, 하물며 조그마한 물건이겠는가. 이것을 보시라 한다. 둘째의 큰 보시는 아내와 아들을 능히 버리는 것이다. 셋째의 위없는 보시는 머리ㆍ눈ㆍ골수ㆍ뇌ㆍ뼈ㆍ살ㆍ가죽 및 피를 보시하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보시를 두루 갖추어야 인(忍)을 갖추고 금계를 지닐 수 있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시주[檀越主]가 보시하는 날에는 다섯 가지 일의 공덕을 얻는다. 무엇을 다섯 가지 일이라 하는가? 첫째는 목숨을 보시하는 일이요, 둘째는 빛깔을 보시하는 일이며, 셋째는 안락을 보시하는 일이요, 넷째는 힘을 보시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변재를 보시하는 일이다. 목숨을 보시할 때에는 오래 삶을 얻고자 함이요, 빛깔을 보시할 때에는 단정함을 얻고자 함이며, 안락을 보시할 때에는 병이 없음을 얻고자 함이요, 힘을 보시할 때에는 능히 이기는 자가 없음을 얻고자 함이며, 변재를 보시할 때에는 위없는 바르고 참된 변재를 얻고자 함이다.”
또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집에 있는[在家] 보살이 탐하고 아끼는 물건을 만일 어떤 걸인이 급히 달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이 물건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속히 성불할 겁니다’고 하면,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지금 이 물건을 보시하지 않으면 이 물건은 반드시 나에게서 멀리 떠날 것이며, 설령 죽을 때가 된다 해도 나를 따르지는 않으리라. 이 물건은 멀리 여의어야 할 형상이니, 이제 보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베풀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뒷날에 죽을 때에도 반드시 후회가 없을 것이며 반드시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니, 이것은 큰 이익을 얻는 것이다’고 해야 하며, 만일 그래도 탐이 나면 걸인에게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성내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내가 새롭게 뜻을 발한 선근이 아직 갖추어지지 못했고, 보살행의 법에서도 아직 세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이 물건을 버릴 수 없으나, 나중에 세력을 얻어서
선근이 견고해지면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고 해야한다.”
또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부처님께 보시하고 나면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간에 과보는 벌써 결정된 것이다. 사람과 스님께 보시한 것에는 두 가지 복이 있으니, 첫째는 사용하는 때로부터 생기고, 둘째는 받은 때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왜냐 하면 시주가 보시할 때에는 스스로 인색한 마음을 파괴하고 받는 이가 사용할 때에는 남의 인색함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사용하는 때로부터 복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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