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76권
법원주림 제76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 십악편 ④
8) 악구부(惡口部)[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범부의 독(毒)은 왕성하고 분노의 불은 항상 타 인연을 만나면 장애를 일으키고 경계에 부딪치면 성을 낸다. 그러므로 말을 해서 한 번 성내면 입을 함부로 하고 마음을 태워 앞사람을 해치는 고통은 칼로 베는 것보다 더하고, 보살의 선한 마음을 어기고 여래의 인자한 교훈을 거슬리게 된다. 그러므로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추악한 말은 사람을 괴롭히며
남의 비밀을 드러내기 좋아하며
억세고 굳세어 제어하기 어렵나니
그는 죽어 염구(焰口)의 아귀로 난다.
(2) 인증부(引證部)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혹 어떤 아귀는 전생에 나쁜 입으로 중생들에게 추악한 말을 하였으므로 중생들은 그를 미워하여 원수처럼 보았다. 그는 이 죄로 아귀가 되었느니라.”
또 『법구경(法句經)』에서 말하였다.
“비록 사문이 되었더라도 몸과 입을 거두어 다스리지 않아 추악한 말로 많은 사람을 중상(中傷)하면 대중이 사랑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끼지 않는다. 몸이 죽고 정신이 떠나 3도(道)에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났다가 스스로 죽어 그 고뇌가 무량하며 모든 부처님과 성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느니라. 가령 중생이 몸에는 비록 허물이 없더라도 구업(口業)을 삼가지 않으면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그 때 어떤 귀신이 머리는 돼지머리 같은데 입에서 냄새나는 벌레가 나왔고, 몸에는 금빛 광명이 있었다. 이 귀신은 전생에 비구로 있으면서 욕을 하며
나그네 비구를 꾸짖었다. 이에 몸으로는 깨끗한 계를 가졌기 때문에 광명이 있고, 입으로는 욕설을 하였기 때문에 더러운 벌레가 입에서 나온 것이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차라리 예리한 칼로 그 혀를 벨지언정 욕과 거친 말로 욕을 하며 3악도(惡道)에 떨어지지 말라.”
또 『호구경(護口經)』에서 말하였다.
“과거에 가섭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와 설법하시어 중생을 두루 교화하시고는 무여니원계(無餘泥洹界)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드셨다.
그 뒤에 황두(黃頭)라는 삼장(三藏) 비구가 있었다. 여러 스님들이 이 황두 비구에게 타일렀다.
‘일체의 잡된 일에 당신은 간섭하지 말고 다만 후학(後學)들을 위해 묘법(妙法)만을 가르치시오.’
이 삼장 비구는 내심(內心)으로 이 말을 고깝게 듣고 그들을 업신여겨 후학들에게 경의 이치를 설명하되, 그들을 부를 때는 ‘코끼리 대가리야, 빨리 나오너라’ 하였고, 다음에는 ‘말 대가리야’ 하였고, 또 다음에는 ‘낙타 대가리,’ ‘나귀 대가리,’ ‘돼지 대가리,’ ‘염소 대가리,’ ‘사자 대가리,’ ‘호랑이 대가리’ 등 이렇게 온갖 짐승들의 이름으로 부른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비록 경전의 이치를 가르치기는 했으나 그 죄를 면하지 못해, 죽은 뒤에는 지옥에 들어가 수천만 겁 동안 무량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 남은 죄가 다 끝나기 전에 지옥에서 나와서는 큰 바다 속의 물고기가 되었는데, 한 몸에 머리가 백이요 몸은 극히 커서 다른 고기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달아났다.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서 계실 때, 존자 만족(滿足)은 아귀 세계에 가서 어떤 아귀를 보았다. 그것은 형상이 추하여 보는 자는 다 크게 두려워 몸의 털이 다 일어섰다.
그 몸에서는 불꽃이 나와 마치 불덩이 같았고, 입에서는 종기 벌레가 나왔으며 피고름이 넘쳐흘러 그 냄새 때문에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혹은 입에서 불을 뿜어 길이가 수십 장(丈)이나 되었다. 혹은 눈·귀·코·신체·지절(支節)에서
온갖 화염을 뿜어내어 길이가 수십 장(丈)이나 되었다. 입술은 밑으로 처져 마치 들돼지 형상과 같았고, 몸의 길이는 1유순(由旬)이었는데, 손을 움켜쥐고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만족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지금 이런 고통을 받는가?’
그 아귀가 답하였다.
‘나는 옛날 출가해 있으면서 집에 집착하여 그것이 아까워 남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호족(豪族)임을 스스로 뽐내면서 더러운 욕을 함부로 했습니다. 계를 지니고 정진하는 비구를 보면 으레 입을 삐죽이고 눈을 흘기며 모욕하거나 시비를 걸었으니, 그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습니다. 차라리 예리한 칼로 그 혀를 끊고 여러 겁 동안 고통을 받을지언정 하루라도 정진하고 지계하는 비구를 비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존자여, 만일 존자께서 염부제(閻浮提)로 돌아가시거든 내 형상으로써 모든 비구들을 경계하십시오. 즉 입의 허물을 잘 단속하여 헛된 말을 않도록 하고, 계를 지키는 사람을 보면 그 덕을 베풀 것을 생각하라고. 나는 아귀의 몸을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수천만 년 동안 항상 이런 고통을 받았고, 다시 죽은 뒤에는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울부짖으며 땅에 쓰러지는데, 마치 큰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천지가 뒤집혔으니, 이것은 다 입의 허물 때문이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장자의 아내는 임신하자 그 몸이 더럽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달이 차서 아이를 낳자 그 아이는 뼈만 이어 드러나고 몹시 초췌하여 차마 볼 수 없었고, 또 많은 대소변을 온몸에 바르고 나왔다. 차츰 나이가 들어 장성해서도 집에는 있으려 하지 않고 대소변을 먹으면서 그것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부모와 친척들은 그것이 보고 싶지 않아 집에서 멀리 쫓아내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는 밖에서 살면서 늘 대소변을 먹었으므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그 이름을 염바라(閻婆羅)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그것은 다 전생의 인연이었다. 즉 그는 과거
구류손(拘留孫)부처님 때에 출가하여 절의 주지가 되었다. 이때 여러 단월(檀越)들이 대중 스님을 목욕시키고 또 향유(香油)를 그 몸에 발라 주었는데 거기 어떤 아라한이 있었다.
주지는 그 아라한을 보고 성을 내어 꾸짖었다.
‘당신은 출가한 사람으로서 몸에 향유를 바르는데, 이것은 마치 사람의 대변을 그 몸에 바르는 것과 같다.’
아라한은 그를 가엾이 여겨 그를 위해 신통을 나타내었다. 주지는 이 신통을 보고 참회하여 사과하고 그 죄를 없애 주기를 원하였다. 그는 욕설로 아라한을 꾸짖었기 때문에 5백 생 동안 항상 몸이 더러워 그를 가까이할 수 없었고, 옛날 출가하여 그에게 참회했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구업을 삼가 서로 나무라지 말지니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여러 비구들과 함께 비사리(毘舍離)로향해 가던 중 이월하(梨越河)에 이르렀다. 거기서 어떤 사람이 그물로 잡은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고기는 1백 개의 머리를 가져 5백 사람이 잡아당겨도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때 그 강가에 소를 치는 5백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들과 힘을 합해 1천 사람이 당겨서야 비로소 물에서 끌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괴상히 여겼다. 부처님께서 비구들과 함께 거기 가서 고기에게 물으셨다.
‘네가 바로 가비리(迦毘梨)이냐?’
고기는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너를 가르치던 스승은 지금 어디 있느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시자, 고기는 답하였다.
‘지금 아비지옥에 있습니다.’
아난이 이것을 보고 그 인연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어떤 바라문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가비리라 했다. 아들은 총명하고 널리 달통했고 다문(多聞) 제1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고명(高名)한데 이 세상에 과연 너를 이길 자가 있느냐?≻
아들이 답하였다.
≺저 사문(沙門)은 아주 뛰어납니다. 제가 의심이 있어서 가서 물으면 그는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을 다 설명하여
저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그가 만일 제게 물으면 저는 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너는 왜 그에게 가서 그 법을 배우지 않느냐?≻
이렇게 어머니가 다시 묻자 그는 대답하였다.
≺만일 제가 그에게 배우려면 사문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지금 속인이니 어떻게 그에게 가서 배우겠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는 우선 거짓으로 사문이 되어 그에게 가서 다 배우거든 곧 집으로 돌아오너라.≻
아들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그에게 가서 얼마 동안에 삼장(三藏)을 다 배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이제는 이길 수 있느냐?≻
≺아직 이길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말했다.
≺만일 지금 가서 서로 토론하여 지게 될 때는 곧 욕설로 대처하라. 그러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아들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서로 토론하여 지게 되자 곧 욕설로 대처했다.
≺너희 사문들은 다 무식하고 우매하여 그 머리가 짐승 대가리 같다.≻
그렇게 온갖 짐승 머리를 다 들어 비유했다. 그는 이 인연으로 지금 고기의 몸을 받아 몸은 하나에 머리는 1백 개로서 낙타ㆍ나귀ㆍ소ㆍ말ㆍ돼지ㆍ염소ㆍ개 등, 온갖 짐승 머리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는 언제나 저 고기 몸을 벗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현겁(賢劫) 동안 천 부처님께서 지나가셨지마는 아직 저 고기 몸을 벗지 못했으니, 이런 인연으로 3업(業)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라.’”
또 『왕현책행전(王玄策行傳)』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비야리성(毘耶離城)에 노니시면서 고뇌하는 중생들을 보시면 곧 그들을 구제하시려 했다. 이렇게 이 나라를 두루 돌아 보셨다. 그 때 계월타(雞越吒)의 2중(衆) 5백 인이 바라구말저강[婆羅俱末底河]에 그물을 놓아 큰 마갈어(摩竭魚)를 잡았다.
그것은 머리가 18개요 눈은 36개인데, 그 머리는 짐승의 형상이 많았다. 부처님께서는 그 고기를 위해 설법하셨다.
고기는 이 설법을 들은 뒤에 곧 목숨을 마치고 천상에 나서 천자(天子)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본래
물고기로 있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천상에 난 것을 돌이켜 관찰하고는 갖가지 향과 꽃ㆍ영락ㆍ진주 등을 가지고 천상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공양했다.
그 때 저 계월타 2중(衆)도 모두 발심하고 회개하여 곧 구말저강 북쪽 백여 보쯤에서 고기잡이 그물을 불살라 그 재를 구리병에 넣어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곳에 묻고 거기에 탑을 세웠다. 그 불상은 엄연히 지금까지 있으며, 조각의 장식은 다 법다워서 그것을 보는 사람은 모두 착한 마음을 내었다.”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파사닉왕(波斯匿王)의 부인 말리(末利)는 한 딸을 낳아 이름을 금강(金剛)이라 했다. 그 얼굴은 추하고 몸은 거칠어 마치 뱀 껍질과 같았으며, 머리털은 굵고 세어 마치 말 꼬리와 같았다. 왕은 이것을 보고 매우 불쾌하여 궁중 깊이 가두어 두고 밖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차츰 장성하여 결혼할 때가 되었으므로 왕은 신하 한 사람을 보내어 사윗감을 구하게 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본래는 호족(豪族)이었으나 지금은 가난한 사람을 구하라. 그대는 이런 사람을 데리고 오라.’
신하는 왕의 분부를 받고 가서 그런 사람을 구해 왕에게 데리고 왔다. 왕은 그를 데리고 비밀한 곳으로 가서 가만히 그에게 말했다.
‘내 들으니 너는 본래 호족인데 지금은 가난하다 한다. 내게 딸이 있는데 그 얼굴이 추악하다. 그래도 그대가 다행이 받아 주면 나는 그 살림살이를 다 대어 주겠다.’
그러자 이 가난한 사람은 꿇어앉아 왕에게 아뢰었다.
‘비록 대왕께서 개를 주면서 데리고 살라 하셔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왕녀 말리 부인의 소생이겠습니까?’
왕은 곧 그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고 그를 위해 집을 짓되 문을 7중(重)으로 만들고 그 사위에게 부탁했다.
‘방에 가두어 문을 굳게 잠그고 출입을 엄금하여 남이 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왕은 재물을 내어 살림을 차려 주되 조금도 아쉬움이 없게 했다. 그리고 사위를 대신으로 삼았다.
그 뒤에 부귀한 사람들의 연회가 있었다. 거기에는 반드시 부부동반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부인을 데리고 왔는데, 이 대신만은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의심하고 괴상히 여겨 말하였다.
‘저 사람 부인은
너무 아름답거나 혹은 너무 추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이다.’
뒤에 또 연회에도 아내를 데리고 오지 않으므로, 그들은 가만히 그에게 술을 권해 취해 눕게 하고는 다섯 사람을 보내 그 집에 가서 대문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다. 부인은 남편이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마음으로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면서 혼잣말로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남편에게 갇히어 해도 달도 보지 못하는가?’
그리고는 곧 지심(至心)으로 멀리 부처님께 예배하고 말하였다.
‘원하옵나니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제게 오셔서 잠깐이나마 이 고액에서 저를 구제해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곧 그녀 앞의 땅 속에서 솟아나 감색 머리털의 상[紺髮相]을 나타내셨다. 그녀가 머리를 들어 부처님의 감색 머리털을 보고 공경하고 기뻐하자 그녀의 머리털도 저절로 감색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차츰 얼굴을 나타내시자 여자는 더욱 기뻐하였고, 그로 인해 얼굴이 아름답게 되어 나쁜 상과 거친 피부가 다 없어졌다. 부처님께서 온몸을 다 나타내시어 그녀로 하여금 다 보게 하시자 그녀는 더욱 기뻐하였고, 그로 인해 그녀의 몸이 아름답기가 마치 천녀와 같았다. 부처님께서 곧 그녀를 위해 온갖 법을 설하시자, 그녀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뒤에 그 다섯 사람은 그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뛰어나고 단정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닫고 자물쇠를 본래대로 채운 뒤에 돌아왔다.
그 남편은 집에 돌아와 그 부인의 단정한 얼굴을 보고 기뻐하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물었다.
‘그대는 전에는 그렇게 추악했는데 어떻게 지금 이처럼 아름답게 되었는가?’
그녀는 그 동안의 일을 다 이야기하고 다시 말하였다.
‘나는 대왕님을 뵙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주선해 주십시오.’
그는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아내가 지금 대왕님을 뵈러 오겠다 합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그런 말 말고 문을 굳게 잠가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라.’
그는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지금 아내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고 단정한 얼굴이 되어 천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사람들을 보내어 맞이해 오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단정한 얼굴을 보고는 한없이 기뻐하면서 그녀를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이 여자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어 호귀(豪貴)한 집에 났으며 또 얼굴이 추루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내국(波羅柰國)의 어떤 장자는 날마다 어떤 벽지불(辟支佛)에게 공양했는데, 그 벽지불은 몸이 매우 추루했습니다. 그 때 장자 집의 한 소녀는 그 벽지불을 보고 나쁜 마음으로 비방하면서 말했습니다.
≺얼굴은 추루하고 피부는 추악하여 참으로 밉살스럽다.≻
그 때 벽지불은 열반에 들기 위해 신통을 나타내어 18변(變)을 지었습니다. 소녀는 이것을 보고 스스로 가책을 느껴 참회하고 빌었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벽지불을 비방했기 때문에 항상 추하게 났고, 다시 참회했기 때문에 얼굴이 단정해졌으며, 벽지불에게 공양했기 때문에 부귀한 집에 태어나 즐거움이 끝이 없습니다.’”
또 『흥기행경(興起行經)』에서 말하였다.
“석가는 과거에 나쁜 말로 비방했다.
‘까까머리 가섭에게 무슨 불도가 있느냐?’
그 때문에 지금 6년 동안 하루에 깨 한 알, 콩 한 알, 녹두 한 알씩을 먹는 고행을 하게 되었느니라.’”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득차시라국(得刹尸羅國)의 어떤 바라문은 소 한 마리를 기르면서 밤낮 먹이를 주고 솔로 털을 빗겨 주며 또 만져 주었다. 그 때 득차시라국의 또 어떤 장자도 소를 길렀는데, 그는 네거리와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외쳤다.
≺누구 소가 1백 대의 수레를 한꺼번에 끌 수 있겠는가? 내 소와 힘을 겨루어 돈 천 냥을 걸고 내기하자.≻
그 때 바라문의 소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이 바라문은 밤낮 내게 먹이를 주고 내 털을 빗겨 준다. 나는 지금 힘을 다해 저 천 냥을 따내 이 주인의 은혜를 갚으리라.≻
그리고 그 주인 바라문에게 말했다.
≺지금 득차시라국의 어떤
장자가 누구의 소가 자기 소와 힘을 겨루되 백 대의 수레를 한꺼번에 끌 수 있겠느냐면서 천 냥 돈을 내기로 걸었습니다. 지금 주인님은 거기 가서 말하십시오. 내 소는 당신 소와 힘을 겨루어 백 대의 수레를 한꺼번에 끌 수 있으며, 내기 돈으로 천 냥을 걸겠다고.≻
그리하여 바라문은 그 장자에게 가서 말했다.
≺내 소가 당신 소와 힘을 겨루어 백 대 수레를 끌 수 있으며 내기 돈은 천 냥입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지금 곧 겨룹시다.≻
바라문은 곧 자기 소를 끌고 와서 장자의 소와 함께 백 대의 수레를 끌게 하고 내기돈 천 냥을 걸었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바라문은 대중 앞에서 제 소를 나무랐다.
≺이 민둥뿔아, 빨리 끌어라.≻
소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해 힘을 내어 겨루려 하지 않았으므로 장자의 소가 이기고 바라문의 소는 졌다. 그래서 바라문은 내기돈을 떼었다. 바라문이 제 소에게 말했다.
≺나는 밤낮 네게 먹이를 주고 털을 빗겨 주었다. 너는 마땅히 힘을 다해 저 소에게 이겼어야 할 것인데 왜 오늘 도리어 내기돈 천 냥을 떼이게 했느냐?≻
소가 말했다.
≺당신은 대중 앞에서 나를 비방하기를, 이 민둥뿔아, 빨리 끌라고 하여, 대중 앞에서 내게 창피를 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힘을 내어 저 소와 겨룰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런 말씨를 고치고 다시는 내 꼴을 들추지 않기로 하면 저 장자에게 바로 가서 말하십시오. 이번에는 내기 돈 2천 냥을 걸고 다시 내 소와 겨루자고.≻
바라문이 소에게 말했다.
≺이제는 2천 냥을 떼이게 하지 말라.≻
소는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다시는 대중 앞에서 나를, 이 민둥뿔아, 빨리 끌라고 비방하여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대중 앞에서 나를 칭찬하되, 잘 끌어라, 단엄(端嚴)한 좋은 뿔아 하십시오.≻
그래서 바라문은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다시 겨루게 하고 내기 돈은 2천 냥으로 합시다.≻
장자가 말하였다.
≺지금 바로 합시다.≻
그리하여 바라문의 소와 장자의 소가 수레 1백 대 끄는 시합을 하는데 내기 돈은 2천 냥이라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나왔다. 바라문은 대중 앞에서 자기 소를 찬탄하였다.
≺잘 끌어라. 단엄한 좋은 뿔아.≻
소는 이 말을 듣고 힘을 다해 끌었으므로 바라문의 소는 이기고 장자의 소는 졌다. 그래서 바라문은 내기 돈 2천 냥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사람이 무슨 말을 할 때는 좋은 말씨를 쓰고 나쁜 말은 하지 말지니, 좋은 말을 하면 좋게 되고 나쁜 말을 하면 스스로 남에게 번뇌를 주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축생도 사람의 욕설을 들으면 부끄러워 힘을 다하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이 남의 비방을 듣고 어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험한 입으로 갖가지로 비방하면, 그는 그 말대로 과보를 받느니라.”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는 다음 게송이 있다.
말이 어리석고 마음 또한 억세어
부드럽지 않아서 좋은 말이 없으면
언제나 이간질할 마음을 갖게 되고
남의 좋은 이익은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 말은 분명치 않아
악을 간직해 마음에 숨기나니
마치 재로 숯불을 덮은 것 같아
밟으면 사람 발을 태움과 같다.
그 말이 언제나 부드러워
잘 순종해 사람을 칭찬하고
그 말과 실행이 서로 맞으면
몸과 마음 사람을 해치지 않네.
비유하면 꽃이 좋은 나무는
맺는 열매도 맛이 좋은 것과 같네.
부처님께서는 몸과 마음을
좋게 쓰라고 말씀하셨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처음 성불하셨을 때, 모든 용왕을 교화하기 위하여 수미산 밑으로 가시어 비구의 형상을 하고 단정히 앉아 참선하고 계셨다.
그 때 어떤
금시조왕(金翅鳥王)이 큰 바다 가운데 들어가 조그만 용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수미산으로 돌아와 그것을 먹으려 하였다. 그 때 그 용은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는데, 멀리서 어떤 비구가 단정히 앉아 참선 하는 것을 보고서 지심으로 구해 주기를 빌었다. 그 용은 곧 죽어 사위국의 어떤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 이름을 부리(負梨)라 했다. 그 얼굴은 단정하고 묘해 세상에 보기 드물었으므로 자(字)를 수보리(須菩提)라 했다. 그는 장성하자 큰 지혜와 총명이 있어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했다. 다만 그 성질이 괴팍하여 사람이나 축생을 보면 곧 성을 내었으므로 부모와 친척들은 다 걱정하면서 그를 보기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드디어 집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갔으나, 새나 짐승을 보거나 초목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보아도 성을 내면서 끝내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 때 그곳에 있던 산신(山神)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엇하러 집을 버리고 이 산중에 왔습니까? 선(善)을 닦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이익도 없고 한갓 피로할 뿐입니다. 지금 세존께서는 기원(祇洹)에 계십니다.
그 분은 큰 복덕이 있고 중생을 잘 교화하여 선을 닦고 악을 끊게 합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당신의 성을 잘 내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이 산신의 말을 듣고 곧 기뻐하며 산신에게 물었다.
‘지금 세존께서는 어디 계신다 했습니까?’
‘당신은 그저 눈을 감고 계십시오. 내가 당신을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수보리가 그 말대로 눈을 감으니, 수보리가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어느새 기원에 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 부처님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의 광명이 백천의 해와 같이 빛나는 것을 보고 못내 기뻐하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셨다.
‘분노의 허물과 우치의 번뇌는 모든 선근을 다 불태우고 온갖 악을 증장시키는 것이므로 뒤에 그 과보를 받아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모조리 받고, 설사 거기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혹은 용ㆍ뱀ㆍ나찰ㆍ귀신이 되어 항상 마음에 독을 품고 서로 해치느니라.’
수보리는 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 두려운 마음에 몸의 털이 다 일어서 곧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부처님 앞에서 그 죄를 참회했다. 그리고 활연히 깨달아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리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수도의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부처님께서는 곧 인허하시고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야.’
이에 수보리는 그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면서 바로 사문이 되었다. 그는 부지런히 닦고 익혀 아라한과를 얻어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 때 비구들이 이 일을 보고 부처님께 그 본래의 인연을 여쭈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현겁(賢劫)에 가섭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 법 안에서 출가한 어떤 비구는 항상 교화를 행하면서 1만 년 동안 비구들을 데리고 곳곳에서 공양했다. 그 뒤에 어떤 스님들이 일이 조금 있어 그를 따라가지 않자, 그는 곧 성을 내며 말하였다.
≺너희들은 사납기가 독룡(毒龍)과 같다.≻
그리고는 이내 그대로 나가 버렸다. 이 업의 인연으로 그는 5백 생 동안 독룡의 몸을 받아 항상 마음에 독을 품고 중생들을 괴롭혔으며, 지금 사람이 되었어도 전생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저렇게 성을 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알고 싶은가? 그 때 교화한 비구로서 욕설하던 그 사람이 지금의 수보리이다. 그러나 그 때 그는 스님들에게 공양했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봉행했다.”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왕사성의 어떤 장자는 재산이 한없이 많아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 부인이 아기를 배어 열 달이 찼으나 아이가 나오려 하지 않는데, 또 아기를
배어 달이 차서 한 아이를 낳았다. 먼저 밴 아이는 오른쪽 옆구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차례로 아홉 아이를 배어 각각 달이 차서 다 낳았다.
그런데 오직 한 아이만이 태 안에 그대로 있어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는 매우 걱정하여 온갖 약을 다 썼으나 병은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부인은 집안 사람들에게 부탁하였다.
‘내 뱃속의 아이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만일 끝까지 나오지 않거든 내 배를 가르고 아기를 내어 잘 길러다오.’
이 어머니는 끝내 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그리하여 그 가족들은 시체를 운반해 무덤으로 가서 큰 의사인 기바(耆婆)를 청해 그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었다. 아이의 형상은 그대로이나 머리가 작고 수염은 희었으며, 곱사등이 걸음으로 사방을 돌아보며 여러 친족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아십시오. 나는 전생에 입이 나빠 여러 스님들을 꾸짖었기 때문에 이 숙장(熟腸)에서 60년을 지냈습니다. 그 받은 고통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친족들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면서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멀리서 이 아이의 선근(善根)이 이미 성숙된 것을 아시고 대중을 데리고 그 시체 있는 곳으로 가시어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바로 그 장로 비구냐?’
아이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세존께서 두 번 세 번을 이렇게 물으시자 또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대중은 아이가 부처님께 대답하는 것을 보고 각각 의심을 내어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지금 이 늙은 아이는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기에 배 안에서 머리가 희고 곱사등이 걸음으로 다니며, 또 여래와 문답하는 것입니까?’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현겁 중에 가섭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고 여러 비구들이 여름 안거(安居)에 들어갔다. 대중 스님들은 의논해서 나이 많은 한 비구를 뽑아
유나(維那)로 삼고 다 함께 규정을 만들었다. 즉 이 안거 동안에 도를 얻은 이라야 자자(自恣)할 수 있고 도를 얻지 못한 이는 자자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유나만이 홀로 도를 얻지 못했기에 대중 스님들은 그의 포살(布薩)과 자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 유나 스님은 고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혼자 여러 스님들을 위해 모든 사무를 관리하여 스님들로 하여금 편안히 도를 행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내게 자자와 포살갈마(布薩羯磨)를 허락하지 않는구나.≻
그리고는 곧 화를 내어 스님들을 꾸짖으면서 방으로 끌고 들어가 가두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치 지금 내가 어두운 방에 있는 것처럼 너희들도 항상 어두움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게 하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곧 자살한 뒤에 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았으며, 지금 비로소 지옥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태 안에서 이런 고통을 받은 것이다.’
대중 스님들은 이 말씀을 듣고 각각 3업을 단속하면서 생사를 싫어하여 네 종류의 사문과(沙門果)를 얻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벽지불의 마음을 내었고, 어떤 이는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여러 친족들은 이 늙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길렀다. 아이가 장성하자 친족들은 그를 출가시켰고, 그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는 과거에 스님들에게 공양하고 또 유나로 있으면서 스님들의 일을 관리하였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봉행했다.”
정보송(正報頌)에서 말하였다.
나쁜 말은 독화살과 같아
맞는 사람은 곧 해침을 받는다.
지옥의 문은 열려 그를 기다리나니
거기 들어가면 확탕(鑊湯)이 있다.
혀를 끊어 스스로 먹게 하나니
그 고통은 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몸에 아무 이익이 없다면
왜 그 입을 삼가지 않으랴.
습보송(習報頌)에서 말하였다.
나쁜 말은 남의 거슬림 많고
지옥에 들어가면 불에 타게 되고
인간에 나면 남은 그 과보 있어
도리어 칼날 같은 말을 듣는다.
비록 어떠한 담론이 있어
다투다 남의 원한을 사도
과거의 그 과보 즐거이 받고
악을 고치는 이 참으로 적다.
감응연(感應緣)[한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당(唐)나라 옹주(雍州) 예천현(醴泉縣) 동양향(東陽鄕) 사람 양사조(楊師操)는 정관(貞觀) 초에 사죽감(司竹監)이 되었다가 뒤에 공사(公事)로 인해 남전현위(藍田縣尉)로 전임했다. 정관 21년에 몸이 늙어 집에 돌아와 몸소 농사로 업을 삼았다. 그러나 사조는 성질이 사납고 입이 험해 일생 동안 남의 허물 보기만을 좋아하여 고향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것을 적어 관가에 고발했다. 현사(縣司)는 사조가 일찍이 조정에 있었다 해서 그래도 좋게 보아주었다.
그러나 사조는 늘 그 악을 고치지 않고 자주 관청을 시끄럽게 했다. 즉 고을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서는 대소를 불문하고 늘 협박하고 공갈했다. 그 마을에서는 아무 일이 없는데도 공연히 일을 만들어 노소를 다 헐뜯고 비방하면서 시비를 만들었다. 다만 소나 염소 따위를 함부로 놓았다 해서 남녀들이 서로 다투면 곧 그것을 사건으로 만들어 현령(縣令)에게 가지고 왔다. 현령 배구담(裵瞿曇)은 그것은 사소한 일이라 번거로웠지만 처음 두세 번은 그것을 맡아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나 뒤에 많은 일에 쫓기어 거기에 관여해 주지 않았다. 그 뒤에 사조는 그 사건을 주(州)를 경유하여 나라에까지 글을 올려 알리는 등 악심은 날로 성하였으므로 사람들은 다 그를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다. 사조도 제 성질의 악함을 스스로 알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성질이 조급하고 입이 험악하다.”
무덕년(武德年) 이래로 네 번이나 계를 받고 행을 지녀 예배하며 날마다 경론을 외우면서 사람을 교화하되 선을 행하라 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기를 해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참지 못했다. 영휘(永徽) 원년 4월 7일 밤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동쪽에서 왔다. 흰말을 타고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사조의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조는 그를 보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가 말하였다.
“동양대감(東陽大監)이 일부러 나를 보내 그대를 체포해 오라 했다. 그대는 지금까지 독한 마음이 얽혀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면 선을 권하면서 자신은 계를 완전히 지니지 못하고 간탐하여 보시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선심으로 3보에게 공양한다 하면서도 일찍이 한 푼도 보시한 일이 없다. 입으로는 부끄럼을 말하면서 마음속에는 딴 계책을 꾸며 사람들을 미혹시켜 어지럽힌다. 그러므로 그대를 부르시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어느새 그는 사라졌다. 사조는 대문 앞에서 갑자기 땅에 쓰러져 말을 못하고 오직 심장 윗부분만이 조금 따뜻했다. 집 사람들이 그를 업고 들어와 방에 눕혔으나 한 밤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조는 이미 동양도록처(東陽都錄處)에 가 있었다. 그 때 부군(府君)의 대아(大衙:최상급 관청)는 한산하지 못해 사조는 가만히 조사(曹司:하급 관청)로 갔다. 거기 있는 책상과 자리 등은 다 매우 정묘하고 좋았으며 또한 죄수도 있었다. 그들은 큰칼을 쓰거나 쇠사슬을 차고 있었고, 혹은 머리를 드러내고 허리를 흩트렸으며, 혹은 앉았거나 섰거나 다니고 있었는데, 이런 죄인들은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사조는 동쪽으로 가서 한 곳을 지나다가 아주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오직 화성(火星)만이 흘러나오고 냄새나는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또 어떤 두 사람이 쇠막대기를 들고 문짝을 수리하고 있었다. 사조가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는 무엇 하는 곳입니까?”
조사(曹司:하급 관리)가 대답했다.
“여기는 맹화(猛火)지옥이오. 계를 온전히 지키지 않은 사람이나 혹은 선을 닦다가 중간에 쉬는 사람을 가두고, 알면서 범하는 사람이 죽으면 여기 들어오오. 들으니 양사조라는 사람은 평생에 남의 허물 따지기를 좋아해 늘 관가에 고발하고, 남의 단점을 말하며 사람을 만나면 거짓으로 부끄럼을 말하고 조금이라도 자기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참지 못한다 하오. 지금 그 사람을 여기 붙들어 들이기 위해 이렇게 수리하는 것이오. 그 사람은 금년 4월 8일에 집 사람이 그를 위해 죽어 재(齋)의 공양을 보시하였으므로 조사(曹司)에서 잘 주선하여 돌려보내려 하다가 그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사조는 곧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면서 말했다.
“그 양사조란 바로 이 제자입니다. 무슨 방편으로라도 면하게 할 수 없겠습니까?”
그들이 답하였다.
“그대는 지심으로 시방 부처님께 예배하고 지심으로 참회하여 그 악독한 마음을 고치면, 곧 정토(淨土)에 왕생하고 여기에는 오지 않을 것이오. 비록 악의를 품었더라도 한 번 참회하고 보살처럼 행하는 데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으면 정토에 날 수 있을 것이오.”
사조는 이 말을 듣고는 곧 그들이 시키는 대로 다 고백하고 간절히 참회함으로써 드디어 놓여나 집으로 돌아와 3일 뒤에 다시 살아났다. 사조는 살아나서 이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 사조는 그 뒤에 혜정(惠靖) 선사에게 가서 회개하고 참회하여 지금도 그대로 살고 있다. 나이 75세까지 하루 한 끼로 장재(長齋)하고 6시(時)로 예참(禮懺)했다. 사조의 논이 관도(官道) 곁에 있었으므로 보리를 보러 갔다가 소 세 마리가 보리 싹을 마구 뜯어먹는 것을 보았으나 소에 대해서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여 쫓아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뒤에 다시 보리밭에 가 보았을 때 보리는 죽지 않고 다만 소 발자국만 있을 뿐이었다. 경양(經陽)의 서쪽 경계에 진왕(陣王)의 불당(佛堂)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사조는 그들에게 이 사실을 다 이야기하였으므로 도속(道俗)들은 모두 놀라고 괴상히 여겨 그에 대한 예참(禮懺)이 더욱 정성스러웠다. 그 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와서 사조에게 말했다.
“나는 저승사자인데 일부러 와서 그대에게 경계하는 것이다. 그대는 이미 악을 그쳤으니 나는 다시 그대를 쫓아다니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대는 조심하여 선을 닦기만 하라. 그러면 새삼 걱정할 것이 없다.”
사조를 만난 어떤 스님이 이 일을 임(臨)에게 말하였다.[이 영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9)양설부(兩舌部)[여기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스스로 나올 기약이 없고, 보리ㆍ열반은 닦아 들어갈 길이 있다.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얻은 까닭은 4섭(攝)을 행한 때문이니, 그러므로 범부와 성인들이 귀의한다. 보살이 성인이 된 까닭도
6도(道)를 행한 때문이니, 그러므로 승려와 속인이 공경하는 것이다. 지금 보건대 세속의 무리들은 오로지 근거 없는 일을 꾸며 그 악을 피차(彼此)에 전하여 남의 권속으로 하여금 갈라지게 하고, 친한 벗으로 하여금 흩어지게 함으로써 불화(不和)의 업을 즐겨 심고 생이별(生離別)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만일 착한 마음으로 악인을 떠나게 하면, 그것은 깨지는 것이라도 이익이 있고 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착한 마음으로 교화하면 비록 갈라지게 하더라도 그것은 죄가 되지 않으며, 만약 악한 마음으로 남을 싸우게 하면 그것은 곧 양설(兩舌:이간질하는 말)로서 그 짓는 죄가 가장 중한 것이니, 이른바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고, 만일 인간에 나면 남의 비방을 받으며 오직 폐악(弊惡)만 받고 권속을 파괴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거짓말의 허물 중에서 피차(彼此)를 갈라놓기 위한 거짓말은 이 이치에 의거하면 그것은 양설(兩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 죄를 말하면 3세(世)의 고통을 부르는 것이니, 이것은 위에서 이미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되풀이해 말하지 않는다.
(2) 인증부(引證部)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들으라. 옛날 단짝인 두 마리 짐승이 있었으니, 하나는 이빨이 좋은 사자요, 다른 하나는 팔이 좋은 호랑이였다. 이들은 밤낮으로 틈을 엿보아 많은 사슴을 잡아먹었다.
그 때 야간(野干) 한 마리가 그들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먹다 남은 고기를 먹고 살아 갔었다. 어느 때 야간이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언제고 저들 뒤만 따라다닐 수 없다. 무슨 방편을 써서라도 저들을 이간시켜 다시는 서로 친하지 못하게 하리라.≻
그래서 야간은 사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호랑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태어난 곳도 종족도 모습도 힘도 저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나는 무엇 때문에 날마다 좋은 먹이를 구해 저 사자가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먹다 남은 고기를 주어 먹고 살아가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야간은 거듭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렇게 호랑이는 말하였네.
나는 형색(形色)과 태어난 곳과
큰 힘 또한 저보다 뛰어나고
사자는 나보다 훨씬 못하다고.
사자는 이 말을 듣고 야간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줄을 알았느냐?≻
야간이 답하였다.
≺당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대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야간은 다시 호랑이에게 가서 말하였다.
≺저 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종족도 난 곳도 다 저보다 뛰어나고 힘도 또한 저보다 세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가 좋은 고기를 먹으면 저 호랑이는 항상 내가 먹다 남은 고기를 먹고 살아가는가?≻
그리고 야간은 거듭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 사자는 이렇게 말하였네.
나의 형색과 태어난 곳과
큰 힘 또한 저보다 세고
저 호랑이는 나보다 못하다고.
호랑이가 물었다.
≺너는 어떤 일로 그것을 알았는가?≻
야간이 답하였다.
≺당신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서로 대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알았습니다.≻
이 뒤로 이들 두 짐승은 한 곳에 모이면 성난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사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곧 손을 내어 호랑이를 때렸다. 그리고 이어 다음 게송으로 호랑이에게 물었다.
형색과 또 태어난 곳과
큰 힘 또한 나는 저보다 세며
사자는 나보다 훨씬 못하다고,
호랑이야, 너는 이렇게 말했는가?
그 때 호랑이는 생각했다.
≺이것은 반드시 저 야간이 우리를 싸움 붙인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는 다음 게송으로 사자에게 답하였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형색과 또 태어난 곳과
큰 힘 또한 저보다 세며
사자는 나보다 훨씬 못하다≻고.
만일 아무 이익 없는 말 듣고
남을 이간질하는 그 말을 믿으면
친한 그 정 스스로 파괴하여
곧 두 사이는 원수가 된다.
만일 참으로 진실을 알면
원한의 그 고뇌는 없어지리니
이제 참으로 바른 말 하여
그 몸의 이익을 얻게 하여라.
지금 우리는 저 악한 벗의
항복을 받고 없애야 하리.
저 야간을 죽여 버리자.
우리를 싸움 붙이는 저 야간을.
그리하여 그들은 곧 야간을 때려 죽였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두 마리 짐승은 야간의 이간질로 한 자리에 모여 있으면서도 서로 불쾌히 바라보았거늘, 하물며 사람이 남의 이간질로써 그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염라왕은 죄인을 꾸짖어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말 많은 것을 너무 좋아할 때는
탐욕 늘리고 남을 두렵게 한다.
입의 허물은 스스로를 자랑함과
그리고 양설(兩舌)이 그 제1이니라.
또 『화수경(華手經)』에서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입이 악하여 이간질하는 말로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좋아하는
이와 같이 선하지 않은 사람
그는 어떤 악이고 다 짓는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진실된 말은 보시ㆍ계율ㆍ학문ㆍ다문(多聞) 등을 빌리지 않고 다만 닦는 것만으로도 무량한 복을 얻는다.”
또 『보은경(報恩經)』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세간에 나면
모든 화(禍)는 입에서 나오나니,
사나운 불보다 더 무서운
그 입을 잘 단속해야 한다.
무섭게 일어나는 사나운 불은
세간의 재물만을 태우지마는
사나운 입의 왕성한 불은
7성(聖)의 재물을 모두 태운다.
저 일체 중생의 모든
화는 다 입에서 나온다.
그것은 몸을 부수는 도끼요
몸을 망치는 재화(災禍)이니라.
정보송(正報頌)에서 말하였다.
이간질하는 말은 사람을 싸움 붙이고
지옥에 가서 찢김을 받나니
옥졸(獄卒)은 와서 그의 입을 찢고
불꽃의 칼로 그 혀를 끊는다.
그 고통 이미 이러하거니와
거기에 굶주림과 목마름을 더한다.
악한 업은 자유롭지 못하여
도리어 제 몸의 피를 마신다.
습보송(習報頌)에서 말하였다.
헐뜯음은 사람을 깊이 해쳐
3도(塗)의 고통을 굳게 받나니
비록 사람의 몸을 얻어도
그 남은 과보는 그대로 있다.
권속은 대단히 폐악스러워
마음대로 성을 내어 뜻을 어기며
오직 악을 없어지지 않게 하나니
그러므로 지옥에는 고금(古今)이 없다.
감응연(感應緣)[두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송후(宋后)가 걱정하다 죽은 증험
당(唐)의 여자 양(梁)씨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 증험
한(漢)의 송후(宋后)가 걱정하다 죽은 증험
한(漢)나라 영제(靈帝)의 황후(皇后) 송(宋)씨는 영제의 총애(寵愛)를 받지 못하면서도 정위(正位)에 그대로 있었다. 그 후궁(後宮)의 행희(幸姬)들은 모두 황후를 헐뜯고 모함했다. 초중상시(初中常侍) 왕보(王甫)가 발해왕(渤海王) 이(悝)와 그 왕비를 억울하게 죽였는데, 그 왕비는 이 황후의 고모였다.
왕보는 황후의 원한을 두려워해 태중대부(太中大夫) 정하공(程何共)과 함께 황후가 사도(邪道)에 집착하여 저주(咀呪)한다고 모함했다. 영제는 이 말을 믿고 드디어 황후의 옥새(玉璽)와 그 인수(印綬)를 빼앗으니, 황후는 스스로 포악한 아내라 하여 근심하다 죽었고, 그 아버지와 형제는 다 죽임을 당했다.
성각(省閣)에 있던 여러 상시(常侍)와 작은 황문(黃門)들은 다 송씨(황후)의 억울함을 가엾이 여겼다. 그 뒤에 영제는 꿈에 환제(桓帝)를 보았다. 환제는 화를 내며 영제에게 말했다.
“송황후는 아무 죄도 없는데 삿되고 미천한 궁녀들의 말을 듣고 그를 죽게 했으며, 또 발해왕 이는 이미 자리를 떠났는데 또 죽였다. 지금 송후와 이가 하늘에 호소하여 상제(上帝)는 매우 화를 내었으므로 그 죄를 면하기 어렵다. 특히 꿈에 나타난 것이니 밝게 살펴야 한다.”
영제는 꿈을 깨어 매우 두려워하면서 이 일에 대해 우림좌감(羽林左監) 허영(許永)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가, 이 재앙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허영이 대답했다.
“송후와 발해왕은 아무 죄도 없으므로 마땅히 장례를 다시 치러
그 원혼을 위안하고 송씨 집의 무리를 돌려보내며 발해의 봉(封)을 회복시킴으로써 그 재앙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나 영제는 이 말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곧 죽었다.[이것은 『원혼지(冤魂志)』에 나온다.]
당(唐)의 여자 양(梁)씨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 증험
당(唐)나라 함양(咸陽)에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그 성은 양(楊)씨였다. 정관(貞觀) 때에 그녀는 죽은 지 7일 만에 다시 살아나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나를 데리고 큰 원(院) 안으로 갔다. 거기에는 큰 관청이 있었고, 어떤 관리가 책상 앞에 앉아 붓을 들고 있었는데, 그 부하들이 매우 많았다. 그는 사람을 시켜 조사해 보고 부하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꼭 죽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장부를 가지고 와서 조사해 보고는 말하였다.
‘꼭 죽어야 할 사람과 성명이 같습니다. 그 때문에 붙들어 왔습니다.’
그 관리는 곁의 부하들을 시켜 곧 놓아 돌려보내려 했다. 나는 그 관리에게 말했다.
‘나는 또 다른 양씨는 모릅니다. 내게 무슨 죄가 있으면 그 죄를 다 받고 가겠습니다.’
그 관리는 부하를 시켜 장부를 조사해 보고 말하였다.
‘양씨는 평생에 오직 이간질한 말과 욕설한 죄뿐이요, 다른 죄는 없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시켜 한 사람은 혀를 빼고 한 사람은 도끼를 들고 그것을 찍었다. 이렇게 날마다 4, 5번씩 계속하다가 7일 뒤에야 비로소 돌려 보냈다. 처음에는 깊은 벼랑에 떨어지는 것 같더니 조금 있다가 마치 잠에서 깨듯이 깨어났다. 그 집 사람들이 그녀의 혀를 보았는데, 마치 문드러진 큰 종기 같은 것이 거기 있었다.
그 뒤로 그녀는 술과 고기를 아주 끊었고, 지금도 살아 있다.[이것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10.기어부(綺語部)[여기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충성스런 말은 이치를 나타내고 꾸밈말[綺語]은 진실에 어긋난다. 충성이기 때문에 진실이 있고, 진실이 있기 때문에 덕이 생기며, 덕이 생기기 때문에 성(聖)을 이룬다. 꾸밈말이기 때문에 허망하고, 허망하기 때문에 죄가 생기며, 죄가 생기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치로 나아가 성(聖)을 구하려면 반드시 진실한 말이어야 한다. 만일 그 말이 허망하면 마침내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니, 이른바 바르지 않은 말을 다 꾸밈말이라 한다.
꾸밈말이란 다만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직 방일만 늘리고
불선(不善)만 자라게 하여 죽어서는 3도(塗)에 떨어지고, 뒤에 사람으로 태어나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 무릇 그 말이 분명하지 못한 것도 또한 꾸밈말이라 하니,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그 말이 비록 진실이더라도 비시(非時)에 말하면 그것도 꾸밈말이다.”
(2) 인증부(引證部)
『지도론(智度論)』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아귀 가운데 떨어진 사람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
사방을 향해 큰 소리 지르나니
이것은 입의 허물의 과보이니라.
아무리 많은 문견(聞見) 가지고
대중 앞에서 설법하여도
믿음의 업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 모두 믿어 주지 않는다.
그 이름 널리 들리려 하면
남의 믿음을 얻어야 하나니
그러므로 그 말이 정성스럽고
꾸밈말은 쓰지 않아야 하네.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입에는 네 가지 허물이 있어 서로 엇갈리어 4구(句)를 짓는다. 첫째, 혹은 양설(兩舌)이면서 망어(妄語)도 아니요, 악구(惡口)도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전할 때와 같은 경우이다. 즉 말이 진실하기 때문에 망어가 아니요, 그 말이 부드럽기 때문에 악구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이 피차(彼此)를 갈라놓기 때문에 양설이라 하는 것이다. 둘째, 혹 어떤 양설은 바로 망어이면서 악구가 아닌 경우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전하는 경우와 같다. 즉 그 말이 피차를 갈라놓기 때문에 양설이라 하고, 그것이 거짓으로 말하기 그 때문에 망어이며, 그러나 그 말이 부드럽기 때문에 악구가 아닌 것이다.
셋째, 혹 어떤 양설은 바로 악구이면서 망어는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전하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그 말이 피차를 갈라놓기 때문에 그것은 양설이지만 그 말이 거칠기 때문에 악구요, 진실한 말이기 때문에 망어가 아닌 것이다. 넷째, 혹 어떤 양설은 그것이 바로 망어요 또 악구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전하는 경우와 같다. 즉 그 말이 피차를 갈라놓기 때문에
그것은 양설이요, 그 말이 거짓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망어이며, 악한 소리로 말했으면 그 때문에 그것은 악구인 것이다. 이 이외에 망어와 악구가 각각 4구를 만드는 것도 이상과 같다. 그러나 기어(꾸밈말) 하나만은 피차를 각각으로 갈라놓지 않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입의 다른 3업은 혹은 화합시키고 혹은 갈라놓지마는 기어만은 반드시 갈라놓는다고 할 수 없다.”
정보송(正報頌)에서 말하였다.
꾸밈말은 그 뜻도 이치도 없어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키며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선근을 죽인다.
지옥에서 구리쇳물 그 입에 쏟고
뜨거운 불꽃쇠로 혀를 지지며
오장 육부는 모두 타나니
이런 고통을 참지 못하여
슬피 울면서 항상 울부짖는다.
습보송(習報頌)에서 말하였다.
근거 없는 말, 진실을 가리나니
그는 그 때문에 악취(惡趣)에 떨어진다.
거기 버리고 인간에 잠깐 나면
말을 해도 깨닫는 사람이 없다.
살면서 아무 신앙심 없어
언제나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그리고 또 남의 수모(羞侮)받나니
왜 경전의 가르침 못 벗어나나.
감응연(感應緣)[대략 네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단국(檀國) 오랑캐의 주술(呪術)에 익숙한 증험
진(晋) 때 천축국(天竺國) 사람의 수술(數術)의 증험
당(唐)의 서국(西國) 바라문의 주술(呪術)의 증험
당(唐)의 주옥현(盩屋縣) 사람 정보락(程普樂)이 젊어서 음악을 좋아 한 증험
한(漢)의 단국(檀國) 오랑캐의 주술(呪術)에 익숙한 증험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 단국(檀國)의 오랑캐는 환술(幻術)에 익숙해 소나 말의 머리 위를 잘 옮겨 다녔으므로 명제는 신하들과 함께 그것을 구경하고 웃으며 즐거워했다. 삼국(三國) 시대 오(吳)나라의 서광(徐光)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마는 그는 항상 요술을 부렸다. 시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오이를 달라 했으나 그 주인이 주지 않으므로 그에게 씨앗 하나를 얻어 땅에 심었다. 돌아보는 사이에 오이 싹이 나더니 이내 줄기가 뻗고 꽃이 피며 어느새 열매가 맺었다. 사람들은 다 그것을 지켜보았다. 이내 오이가 되어 그는 그것을 따먹었고, 또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까 그 오이를 팔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오이는 모두 없어졌다. 귤ㆍ유자ㆍ밤ㆍ대추 등도 다 그와 같았으니, 그의
요술은 다 이런 유(類)이었다.
진(晋) 때 천축국(天竺國) 사람의 수술(數術)의 증험
진(晋)나라 영가(永嘉) 때에 천축국 사람이 강남(江南)에 왔는데, 통역을 두어야 비로소 의사가 통했다. 그는 수술(數術)을 잘 부려 혀를 끊었다 다시 잇고, 또 불을 토하는 변화를 부렸으므로 많은 남녀들이 모두 모여 그것을 구경했다. 그가 먼저 혀를 내어 관중에게 보이고, 그 다음에 그 혀를 끊으니, 흐르는 피가 땅을 덮었다. 그리고는 끊어진 혀 조각을 그릇에 담아 관중에게 보였다. 그것은 끊어진 혀끝이었고, 그 입 안에는 반쪽 혀만 남아 있었다. 다시 그것을 도로 입에 놓고 조금 있다가 혀를 내어 관중에게 보였다. 그것은 본래 혀 그대로였다.
또 비단을 사람에게 각기 한쪽씩 잡게 하고는 그것을 끊어 두 조각을 만들고, 그것을 쥐고 두 조각을 합쳐 주문을 외우면 그것은 이어져 본래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요술이라 의심하고 가만히 만져 보았으나, 역시 그대로의 비단이었다.
또 불을 토하는데, 먼저 그릇에 약을 담고 그 한 조각을 기장과 함께 입에 넣고, 두세 번 “아아” 하다가 입을 열면 불이 나왔다. 그것을 더운 곳에 갖다 두고 그것으로 밥을 지으면 곧 불이 세차게 일어났다. 또 종이나 새끼 따위를 그 불 속에 넣으면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그것들은 다 타서 재가 되었으며, 그가 그 재 속을 헤치고 들어내면 그것들은 본래 그대로였다. 이런 요술을 부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가 천하에 큰 난리가 일어난다면서 건안(建安)의 곽산(霍山)으로 가서 피난하라 하고. 동야(東冶)로 들어간 뒤에는 소식이 없어졌다.
당(唐)의 서국(西國) 바라문의 주술(呪術)의 증험
당(唐)나라 정관(貞觀) 20년에 서국(西國)에서 다섯 바라문이 경사(京師)에 왔는데, 그들은 음악과 주술(呪術)과 잡희(雜戱) 등을 잘하였다. 혀를 끊고 창자를 끄집어냈으며, 이어진 노끈을 끊기도 하고 잇기도 했다.
또 현경년(顯慶年) 뒤에 왕현책(王玄策) 등 여러 사람이 사신으로 5인도(印度)에 갔을 때, 그 나라의 왕들은
이 한나라 사신을 위해 오락을 베풀었다.
혹은 공중에 올라가 줄을 치고 신을 신은 채 줄 위를 다녔는데, 남녀들은 서로 피해 가면서 노래하고 장난하는 것이 보통 때와 같았다. 혹 어떤 여자는 손에 칼ㆍ창 등을 잡고 공중에 던졌다가 손으로 그것을 받았으며 줄을 타고 달리면서 떨어지지 않았다. 혹은 혀를 끊고 제 몸을 결박했다가 그것을 풀었는데, 여전하여 남의 손을 빌지 않았다. 이런 온갖 요술놀이는 다 말할 수 없다.
당(唐)의 주옥현(盩屋縣) 사람 정보락(程普樂)이 젊어서 음악을 좋아한 증
험
당(唐)나라 옹주(翁主) 서쪽 주옥현(盩屋縣)의 서북방에 원종인(元從人)의 마을이 있었다. 원종 사람 정보락(程普樂)은 젊어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었다. 영휘(永徽) 6년 5월 7일에 그는 조금 앓다가 갑자기 죽었는데, 5일 동안 심장 부분이 따뜻하고 썩지 않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감히 묻지 못하였다. 6일째 아침이 되자 다시 그는 살아나 평상시처럼 이야기했다.
“처음 죽었을 때 어떤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평상 앞을 지나가면서 말하였다.
‘대왕님이 당신을 부르십니다.’
내가 물었다.
‘어떤 왕이냐?’
그들이 대답했다.
‘염라대왕입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시더냐?’
그들이 대답했다.
‘조사할 일이 있다 합니다. 빨리 가십시다. 잠깐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손으로 나를 붙들고 마을 남문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남산 밑의 어떤 황무지(荒蕪地)로 갔는데, 거기는 땅에 소금기가 조금 있어 풀이 나지 않았고, 마치 큰 독 아가리 같은 큰 구멍이 있었다. 그들은 내게 말하였다.
‘이리로 들어가라.’
내가 두려워 들어가려 하지 않자 한 사람이 밀어 넣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들어갔다. 거기는 왕의 큰 궁전이 있었고, 무기를 든 사람이 매우 많았다. 대왕과 신하 및 후궁(後宮)의 비후(妃后)들은 다 궁전 위에서 휘장을 치고 앉아 있었다. 궁전 앞에는 여러 광대와 노래꾼이 온갖 놀이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인(使人)이 왕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을 붙들어 왔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가 누구냐?’
사자가 말하였다.
‘정보락입니다.’
왕은 내게 물었다.
‘너는 익살을 부릴 줄 아느냐?’
‘모릅니다.’
내가 대답하자, 왕은 장사아(張舍兒)라는 한 배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사람은 익살도 부릴 줄 모른다는데 왜 불러왔느냐?’
사아는 전에 나와
사이가 좋았는데, 그 뒤에 틈이 생겨 서로 미워하고 있었다. 사아는 그 원한 때문에 나를 함부로 불러왔던 것이다. 그러나 사아는 감히 왕을 속일 수 없어 사실대로 고백했다. 왕이 화를 내어 그를 시켜 광대놀이를 하라 하자 궁전 앞은 온갖 음악소리로 가득 찼다. 그는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장대를 탔다.
그는 처음에는 장대를 붙들고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장대 구멍으로 내려왔는데 장대가 갈라지면서 땅에까지 내려왔고, 다시 올라갈 때는 6근(根)이 다 부서지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흐르는 등, 장대를 오르내리는 것이 다 이러했다.
또 황당(皇唐) 이후의 광대들로서 제영자(齊嬰子)ㆍ돌출랑(突出郞)ㆍ독저(獨猪)ㆍ도봉(桃棒) 등 수십 인을 시켜 익살을 부리게 했다. 그 때 그들이 입에서 불을 토하고 혀를 빼어 마당에 두루 돌리면 백천 마리의 쇠새[鐵鳥]와 온갖 악독한 벌레들이 공중에서 내려와 일시에 모두 그 혀를 쪼아먹었다. 그들이 받는 그 지독한 고통 때문에 크게 울부짖는 소리는 대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이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온갖 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작은 쇠벌레들을 보고 모두 한꺼번에 손뼉을 쳤고, 크게 지르는 소리는 연기와 같고 불과 같아 그들은 동시에 그 불에 탔다. 불에 타 죽어서는 다시 살아나고, 또 잠깐도 쉬지 않고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는 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왕은 비록 지팡이는 내렸으나 옥졸(獄卒)을 보냈다. 그는 손에 쇠막대기와 예리한 창ㆍ쇠활과 화살을 들고 그들을 포위하고 지키면서 다시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쉬지 않고 고통을 받았다.
나는 지옥에 들어가 5일 동안 광대들이 이렇게 고통받는 것을 보았다. 6일 만에 왕은 나를 불러 말하였다.
‘너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다시 장부를 조사해 보니 3년 뒤에 네 목숨이 끝나게 되어 있다. 그 때 너는 와서 이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일생 동안 거짓말과 욕설과 꾸밈말로 승니(僧尼)들을 조롱하고 불법을 업신여기며, 3보(寶)를 핑계로 남의 물건을 절취하여 오로지 처자를 기르며 돼지와 양을 잡아
술과 고기를 먹으며, 혹은 절에 가서 스님들 물건을 먹거나 쓰는 등, 이런 죄로 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로 인해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너는 비록 그런 중죄는 없으나 다른 죄가 없지 않기 때문에 또한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선은 놓아 돌려보내지마는 죽을 때에는 잡아 올 것이다.’
다시 전의 그 두 사람을 시켜 집에까지 보내 주었다.
평상 하나쯤 되는 가시나무의 가지와 잎이 무성한데 저들은 나를 그리로 들어가라 했다. 내가 처음에 들어가려 하지 않자 두 사람이 떠밀므로 눈을 감고 들어갔다. 어느새 내 몸이 평상 위에 있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보락은 이런 증험을 보고 바로 서울의 내력사(來歷寺)로 가서 계를 받고 그것을 굳게 지녀 범하지 않으면서 채식(菜食)만을 먹고 예배와 공경을 빠뜨리지 않았다.[스님에게 참회하고 이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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