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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20 법원주림(法苑珠林) 77권

by Kay/케이 2024.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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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77

 

법원주림 제7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십악편 ⑤


11) 간탐부(慳貪部)[여기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중생들의 미혹의 병은 나[我]에 대한 집착이 그 시초가 되고, 범부[凡品]들의 삿된 미혹은 간탐(慳貪)이 그 근본이 된다. 그러므로 선은 털처럼 가볍고 악은 태산처럼 무거우며, 복은 봄의 얼음처럼 적고 탐욕은 가을의 비처럼 많다. 6정(情)의 그물은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3독(毒)의 나루는 건널 길이 없다. 몸이 무거워 항상 잠기는 것은 강물 속의 고기와 같고, 날개를 치며 날고자 하나 그 어려움은 하늘 위의 새와 같다. 그리하여 계속되는 가난은 다투어 핍박을 더하고, 이어지는 고통은 다투어 손해를 부른다. 마치 나는 부나비가 불꽃에 뛰어들어 스스로 타는 것 같고, 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 남이 얽지 않음과 같다. 이것은 실로 아끼고 탐하는 장애로 말미암아 주리고 떠는 죄를 받는 것이요, 보시(布施)는 바로 부(富)의 인(因)으로서 항상 풍락(豊樂)을 부르는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분별업보경(分別業報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언제나 즐겨 지혜를 닦으면서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언제나 총명하게 태어나지만
가난하고 궁해 재물이 없다.

오직 보시만 즐겨 행하고
지혜를 닦지 않으면
큰 부자로 태어나지만
우치하고 어두워 지견(知見)이 없다.

지혜와 보시를 모두 닦으면
재물과 지혜를 다 얻으며
그 두 가지를 다 닦지 않으면
언제나 빈천(貧賤)하게 산다.

그러므로 『섭론(攝論)』에서 말하였다.
“인색함은 바로 재물의 장애요, 질투는 바로 존귀(尊貴)의 장애이다. 또 중생이 탐욕을 일으킴은 재색(財色)보다 더한 것이 없다.”
첫째의
색욕이 과다한 허물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서술한 바와 같거니와 그 뜻이 같지 않은 것을 지금 대강 설명하리라.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나찰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는 족족 모두 다 잡아먹었고, 나중에는 그 남편까지 잡아먹었다. 나찰 여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색욕은 중생들의 선근의 아들을 낳는 족족 다 잡아먹고, 선근의 아들이 없어지면 다시 중생을 잡아먹고, 그들을 지옥ㆍ아귀ㆍ축생 등의 세계에 떨어뜨린다.
또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여 꽃줄기에 있는 독사는 보지 않고 그 꽃을 꺾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는 것처럼, 일체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5욕(欲)의 꽃을 탐해 애욕이라고 하는 독사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그것을 즐기다가 애욕이라고 하는 독사에게 물려 목숨을 마친 뒤에는 3악도에 떨어진다.”
둘째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재물을 탐하면 재앙을 불러 크게 고뇌하면서 도속(道俗)을 다 배반하고 친소(親疎)를 모두 잃는다. 그러므로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재물은 갖가지 번뇌와 죄업의 인연이다. 그러나 계율ㆍ선정ㆍ지혜 등의 갖가지 선법은 열반의 인연이다. 그러므로 재물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좋은 복밭에 보시하지 않겠는가.
비유하면 어떤 형제와 같다. 즉 그들은 각각 10근(斤)의 금을 지고 길을 갔는데, 아무도 없을 때 형이 생각하였다.
‘나는 왜 아우를 죽이고 저 금을 뺏지 않을까? 이 광야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 때 아우도 형을 죽이고 그 금을 뺏으려 했다. 그 형제는 각각 악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말이나 바라보는 눈길이 다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각각 스스로 깨닫고 다시 후회하고는 생각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 금수와 무엇이 다른가? 다 같이 형제로 태어났으면서 조그만 금 때문에 악심을 내다니…….’
그들이 어느
물가에 가서 형이 먼저 그 금을 물에 던져 버리자, 아우가 말하였다.
‘장합니다, 잘 했습니다.’
아우가 또 금을 물 속에 던져 버리자, 형도 말하였다.
‘장하다, 잘했다.’
그들은 서로 물었다.
‘왜 장하다, 잘했다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각각 답하였다.
‘우리는 이 금 때문에 악심을 내어 서로 죽이려 했는데, 이제 그것을 버렸기 때문에 ≺장하다, 잘했다≻고 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항상 악한 마음을 버리라고 한다.”
또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들었다. 사위국에서 부처님께서 아난과 함께 광야를 가시다가 어느 밭에서 복장(伏藏:땅 속에 묻은 보물)을 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큰 독사.’
그러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사나운 독사.’
그 때 그 밭에 있던 농부는 독사가 있다는 부처님과 아난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가 보자. 저 사문들이 무엇을 보고 독사라고 하는지.’
그는 곧 거기 가서 순금을 보았다. 그리고 말하였다.
‘저 사문들이 말하는 독사란 바로 이 금덩이였구나.’
그리고 그것을 집어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는 전에는 가난하여 의식도 곤란했으나, 그 금을 얻고는 아주 큰 부자가 되어 마음대로 먹고 입고 하였다. 왕가(王家)의 금사(禁司)는 그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을 괴상히 여겨 조사해 그 재산을 몰수하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그는 그가 얻은 그 금을 다 쓰고도 그 옥을 벗어날 수 없어 장차 사형을 받게 되었다.
그가 외쳤다.
‘독사 아난, 악독사 세존.’
곁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이 사실을 왕에게 고했다. 왕은 그를 불러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독사 아난, 악독사 세존≻ 하며 외쳤느냐?’
그가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전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ㆍ악독사≻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를 놓아주었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성의 바제(婆提)라는 장자는 큰 부자로서 재산이 많아 금과 은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는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여 잘 입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아 그 의복과 음식이 매우 추루하였으며, 또한 처자ㆍ권속ㆍ노비ㆍ하인ㆍ친우ㆍ벗, 그리고 사문과 바라문에게도 보시하지 않았다. 또 삿된 견해를 일으켜 선근을 다 끊었다. 그리고 자식이 없어 그가 죽은 뒤에는 그 재산이 다 관(官)에 몰수 당했다.
바사닉왕은 그 재산을 다 몰수한 뒤에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바제 장자는 죽은 뒤에 어디에 가서 났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바제 장자는 옛 복은 이미 다하였고 새 복을 아직 짓지 못하였으며, 또 삿된 견해로 인해 모든 선근을 다 끊었으므로 죽은 뒤에는 저 제곡(啼哭)지옥에 있습니다.’
바사닉왕은 이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바제 장자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부잣집에 태어났고, 또 무슨 악을 지어 그런 큰 부자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랜 옛날 가섭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이 장자는 사위국의 어느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었습니다. 그 때 어떤 벽지불이 그 집에 걸식하러 왔는데, 이 장자는 곧 음식을 보시했습니다. 벽지불은 그 음식을 얻어먹고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장자는 그것을 보고 곧 서원(誓願)하였습니다.
≺나로 하여금 이 선근으로 인하여 태어나는 세상마다 3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재보가 많게 하소서.≻
그러나 장자는 보시한 뒤에 다시 후회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아까 그 음식을
노비에게 주고 저 까까머리 사문에게는 주지 말 것을 잘못했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바제 장자는 옛날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하고 발원한 공덕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재보가 많아 모자람이 없었지마는, 그 뒤에 다시 후회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부자이면서도 그 부자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그 재산을 지키기에 인색하여 스스로도 좋은 옷을 입지도 못하고 맛난 음식을 먹지도 못했으며, 처자ㆍ권속에게도 주지도 않고, 또 벗ㆍ친지, 그리고 사문과 바라문에게도 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인연을 듣고 만일 재물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보시해야 하며, 보시할 때는 지극한 마음으로 손수 보시하고 보시한 뒤에는 후회하지 말지니, 이렇게 보시하면 무량무변한 큰 과보를 얻을 것이다.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국의 난타(難陀)라는 장자는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아 금ㆍ은 등의 보배와 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하인과 의복ㆍ장식물과 농토가 셀 수 없이 많아 그 나라 안에선 제1의 부자였다. 그러나 그는 큰 부자이면서도 신심이 없어 인색하고 질투하여 일곱 겹의 대문을 만들고 각각 문지기를 두어 분부하였다.
‘어떠한 걸인도 들이지 말라.’
뜰의 상공에는 채색한 쇠그물을 쳐서 새가 날아와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고, 네 벽의 담 밑에는 찰진 흙을 발라 쥐들이 구멍을 뚫고 들어와 재물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
그에게는 전단향(栴檀香)이라는 외아들이 있었다. 그가 임종 때에 아들에게 유언하였다.
‘나는 병으로 꼭 죽을 것 같다. 내가 죽은 뒤에 우리 집 재물을 함부로 쓰지 말라.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도 보시하지 말고, 거지가 오더라도 한 푼도 주지 말라. 그렇게 하면 우리 집 재산은 7대까지는 넉넉히 유지할 것이다.’
이렇게 유언하고
죽은 뒤에 그는 사위국의 어느 전타라(旃陀羅) 집의 장님 어머니 태에 들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도 장님이었다. 어머니가 생각하였다.
‘만일 내가 사내를 낳으면 나는 장님이니, 그 애에게 의지하리라.’
그러나 낳은 애까지 장님이란 말을 듣고 어머니는 더욱 슬퍼하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아들 눈멀고 나도 또한 눈멀어
둘이 모두 두 눈이 없네.
이런 몹쓸 물건을 왜 만났는가?
나의 근심 괴로움 더할 뿐이네.

이리하여 그 장님 어머니가 아들을 길러 나이가 벌써 8, 9세가 되니, 능히 다닐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지팡이 하나와 식기 한 벌을 주면서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여기 있지 말고 돌아다니면서 구걸하여 살아가거라. 나도 장님이니 구걸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아이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하다가 드디어 전단향의 집에 이르러 그 집 문 밖에 서서 외쳤다.
‘장님인 거지 아이입니다.’
그 때 그 문지기는 화를 내어 아이를 붙잡아 깊은 구덩이에 던져 버렸다. 그 바람에 아이는 왼팔이 부러졌다. 문지기는 다시 그 머리를 때리고, 구걸한 음식을 모두 땅바닥에 버렸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그 어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기어가서 아이를 안아 무릎에 앉히고 아이에게 말하였다.
‘네게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고액을 당하는가?’
아들이 말하였다.
‘아까 전단향 집 문 앞에서 구걸하다가 어떤 악인을 만나 맞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재앙이다, 재앙이다. 난타 장자는 목숨을 마치고 저 전타라 집 장님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면서부터 두 눈이 다 먼 장님이다. 그는 전에는 큰 부자로서 코끼리와 말과 7보(寶)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것을 친히 쓰지 못하는가? 그것은 다 간탐 때문에 이 장님의 과보를 받아서이고, 여기서 죽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부처님께서
오후가 되어 비구들을 데리고 성내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전단향 집 문 앞의 그 장님 아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그 때 전단향은 부처님께서 문 밖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문을 나가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이 모인 것을 아시고 다시 전단향을 보시고, 그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다.
‘간탐과 질투는 무량한 죄를 받고 법대로 보시하면 무궁한 복을 받으며, 이 설법은 중생들로 하여금 유위(有爲)를 떠나 무위(無爲)로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전단향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해 주기 위해 그 장님 아이에게 물으셨다.
‘네가 바로 난타 장자가 아니냐?’
아이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난타입니다.’
이렇게 세 번 문답하는 말을 듣고 대중은 깜짝 놀라 말하였다.
‘난타 장자가 이런 몸을 받았구나.’
전단향은 이것을 보고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예배하고 구원해 주기를 바라며 죄의 뿌리를 뽑아 주시기를 원하면서, 내일 자기 집의 공양을 받아 주시기를 부처님께 간청했다. 이튿날 부처님께서는 그 집의 공양을 마치시고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는 곧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이 재물을 쌓아 두고도 입을 것도 안 입고 먹을 것도 안 먹으면서 또 보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치 중의 우치이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보시를 행함으로써 생사 떠나기를 구해야 할 것이요, 부디 인색함으로써 무량한 고통을 받지 말지니라.’”
또 『노지장자경(盧至長者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성의 노지(盧至)라는 장자는 큰 부자로서 재산이 셀 수 없이 많아 마치 비사문(毘沙門)과 같았으니, 그것은 전생에 훌륭한 복밭에 보시했기 때문에 얻은 과보였다.
그러나 그는 보시할 때 지극한 마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부자이긴 하나 그 뜻은 비열하였으며, 입은 옷은 누추해 깨끗하지 못하였고, 먹는 음식은 겨밥에 나물 반찬으로 배를 채웠으며, 목이 말라도 마실 것은 물뿐이었다. 다닐 때는 헌 수레를 탔으며, 살림살이는 노예와 같이 고역(苦役)하였으므로 항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뒤 어느 때 성안의 사람들은 큰 명절놀이를 할 때, 모두 집을 장엄하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향수를 땅에 뿌리며 좋은 꽃을 뿌리고 갖가지 아름답고 화려한 음악과 춤과 노래로 즐거워하는 것이 마치 저 천상세계와 같았다. 노지 장자는 이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저들이 저렇게 즐겁게 노니, 나도 저렇게 하리라.’
그리고는 곧 집에 돌아가 창고를 열고 5전(錢)을 내어 쥐었다가 다시 생각했다.
‘이것으로 집에서는 어머니와 아내와 권속들이 두루 다 먹을 수 없고, 다른 집에 가면 그 집 주인에게 빼앗길 염려가 있다.’
그리고 곧 그 중의 2전으로는 보릿가루를 사고, 또 2전으로는 술을 사고, 나머지 1전으로 파를 샀다. 그 집에서 소금 한 줌을 얻어 옷고름에 싸 가지고 성밖의 어떤 나무 밑으로 갔다. 나무 밑에서 많은 까마귀들을 보고는 그것이 와서 채어 갈까 염려하여 다시 묘지로 갔다.
그곳에서 개들을 보고는 다시 그것들을 피해 어느 한적한 곳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술에 소금을 넣고 보릿가루를 타서 그것을 마시고 또 파를 먹었다. 전에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라 곧 술에 대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이 좋은 명절에
술에 취하여 마음껏 즐기나니
저 비사문(毘沙門)보다도 더 즐겁고
또한 제석천(帝釋天)보다도 더 훌륭하네.

그 때 제석천왕은 하늘 무리를 데리고 부처님께 가다가 노지가 술에 취해 춤을 추며 ‘저 제석천보다도 더 훌륭하다’는 노랫소리를 듣고 가만히 생각했다.
‘간탐이 많은 이 사람이 으슥한 곳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나를 모욕한다. 내가 저를 놀려 주리라.’
그리하여 곧 노지의 형상으로 변신하고 노지의 집에 가서 그 어머니와 아내ㆍ노비 등 권속을 모으고 그 어머니 앞에 앉아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내게는 지금까지 큰 인색한 귀신이 있어 나를 쫓아다니면서
늘 나로 하여금 인색하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먹을 것도 안 먹고 입을 것도 안 입으며 권속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은 것도 다 그 인색한 귀신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밖에 나갔다가 어떤 도인을 만났는데, 그는 내게 좋은 주문(呪文)을 주어 그 귀신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은 내 형상과 꼭 같습니다. 만일 그것이 오거든 마구 두들겨 주십시오. 그것은 반드시 ≺내가 노지입니다≻ 하고 사칭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말고 빨리 문을 닫으십시오. 그가 오거든 기다렸다가 내가 시키거든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 온 집 사람들이 모두 한껏 먹었다. 그리고 다시 창고를 열어 온갖 보물과 의복ㆍ영락 등을 내어 어머니와 아내 등 집안의 권속들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노래와 춤으로 즐거워한 것은 다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노지가 인색한 귀신을 제거했다는 말을 듣고 모두 와서 구경했다.
노지는 술이 깨어 집에 왔다가 문 밖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 대문을 두드리며 불렀으나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제석은 사람을 부르는 노지의 소리를 듣고 대중에게 말했다.
‘지금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 것은 반드시 인색한 귀신일 것이다.’
사람들은 귀신이란 말을 듣고 모두 문을 열고 피해 달아났다. 노지는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으나, 그 집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 않고, ≺이 간귀(慳鬼)야≻ 하면서 노지의 다리를 붙잡고 거꾸로 끌어 문밖으로 쫓아내었다.
노지는 골목에 끌려 나와 크게 울면서 외쳤다.
‘괴상하다. 지금 이 내 몸이 본래와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 왜 집 사람들이 이처럼 나를 귀신이라 구박하면서 전연 인정해 주지 않는가? 나는 지금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그 때 노지는 꼭 미친 사람과 같았으므로, 곁의 사람과 친족들은 모두 와서 위로하였다.
‘너는 노지이다. 우리는 너의 친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를 보러 온 것이다. 너는 부디 마음을 굳게 가지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신을 바로 차려라.’
노지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조금 놓여 눈물을 거두고 말하였다.
‘여러 사람들을 청해 다시 나를 보아 주시오. 내가 참으로
노지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다 말했다.
‘너는 참으로 노지이다.’
그러자 노지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다 나를 위해 내가 참으로 노지임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우리는 너를 위해 네가 참으로 노지임을 증명하겠다.’
그러자 노지는 말하였다.
‘당신들이 참으로 그러할 수 있다면 그 인연을 들어 보시오.’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누군가 어떤 젊은 사람이
나와 얼굴이 꼭 닮았네.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무릎 맞대고 앉아 있네.

나는 우리 집 권속들에게
매를 맞으며 쫓겨났고,
권속들은 모두가 저것을 사랑해
우리 집에서 잘 있게 했네.

주리고 떠는 고통 참으며
나는 재물을 모았는데,
그것을 저것은 뜻대로 쓰고
내게는 그것 털끝만큼도 없네.

저것은 마치 저 비사문처럼
그 의식이 매우 풍족하므로
성 안의 사람들
모두 의심해 괴상타 했네.

그리고 모두들 다 말했네.
도대체 이 어찌된 일이냐고
그 중에 어떤 지혜로운 사람
그는 그 때에 이렇게 말했네.

요즈음 어떤 간교한 사람
그 모습이 꼭 노지와 닮았는데
그는 노지의 큰 간탐 알고
일부러 그를 괴롭히러 왔나니,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았거니
노지를 버려서는 아니 된다고.

그 때 여러 사람들은 다 이 말을 듣고 모두 같은 마음으로 말했다.
‘노지여, 당신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노지가 답하였다.
‘나를 위해 증명해 주십시오. 나는 대왕님을 뵈옵고 싶습니다. 그리고 값이 4수금(銖金)쯤 되는 흰 모포 두 장만 내게 빌려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대왕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웃으면서 말했다.
‘노지가 이제는 큰 시주가 되었다.’
그는 모포 두 장을 끼고 왕의 궁문에 가서 문지기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 대왕님께 통해 주시오. 나는 지금 대왕님께 선물을 바치고 싶소.’
문지기는 놀라 웃으면서 곧 왕에게 아뢰었다. 이에 왕은 생각하였다.
‘노지의 간탐이 죽을 때까지 가지 않고 갑자기 이렇게 변하는구나.’
그리고는 곧 그를 불러들였다.
노지는 왕 앞에 이르러 끼었던 모포를 왕에게 바치려 했으나, 갑자기 겨드랑이가 벌려지지 않아 아무리 당겨도 모포가 빠져 나오지 않았다. 곧 다시 몸을 돌려
힘을 다해 굳이 당겨서야 비로소 나왔다.
그 때 제석은 변화를 부려 그 모포 두 장을 두 묶음의 풀로 만들었다. 노지는 이 풀을 보자 부끄러워 땅에 앉아 슬피 울고 흐느끼면서 말을 못하였다. 왕은 이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노지에게 말하였다.
‘비록 그것이 풀이더라도 괴로워할 것이 없다. 무엇이 소원이냐? 마음대로 말해 보라.’
노지는 슬픔에 목이 메이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 풀을 보니 너무 부끄럽습니다. 땅 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고, 지금 이 몸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없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아뢸 바가 무엇인지 대왕께서 알아주십시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를 가엾이 여겨 곁의 사람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슬픔에 막혀 말을 못한다. 누가 저의 뜻을 알거든 대신 말해 보아라.’
곁의 사람이 왕에게 답하였다.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그 형상이 꼭 노지와 같은 사람이 노지 집에 가서 거짓으로 노지라 하자, 그 집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 집 재물을 보시하는 데에 다 써 버렸습니다. 그런데 집 사람들은 이 노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몽둥이로 때려 내쫓아 그는 도리어 길거리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 닮았다는 사람을 불러와 그 둘을 왕 앞에 나란히 세웠다. 왕은 이 두 사람의 모양이나 말이나 웃음이 꼭 같은 것을 보고는 그 뒤의 사람을 참 노지라 생각하고 앞의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노지가 말하였다.
‘제가 바로 노지이고, 저 사람은 노지가 아닙니다.’
왕은 또 뒤의 사람에게 물었다.
‘노지는 간탐한데 너는 보시를 좋아한다. 어떻게 진짜 노지라 하는가?’
그가 답했다.
‘제가 부처님 말씀을 들으니, 간탐하는 자는 아귀 세계에 떨어져 백천만 년 동안 기갈(飢渴)의 고통을 받는다 하므로, 그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간탐을 버렸습니다.’
왕은 말했다.
‘네 말이 옳다. 마치 때묻은 옷을 잿물에 빨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번뇌의 때묻은 마음도 법을 들으면 곧 없어지는 법이다.’
왕은 이 사실을 다 보고 다시 두 사람을 각기 다른 곳에 두고 각각 종이를 주어 친족의 수(數)와 재물의 종류를
다 적어 빨리 내라 했다. 그들이 적어낸 은밀한 일과 또 글씨까지도 모두 같아서 왕으로도 분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왕은 그 어머니를 불러 물으니, 어머니가 말하였다.
‘이 사람이 내 아들이요, 저 이는 내 아들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인색한 귀신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혹 몸에 흉터나 사마귀 등 비밀한 곳은 없는가? 그것을 보면 분별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답했다.
‘내 아들은 왼쪽 옆구리에 팥알 만한 조그만 흉터가 있습니다.’
왕은 곧 사람을 시켜 그들의 옷을 벗기고 팔을 높이 들게 하여 보았다. 두사람의 흉터의 크기가 꼭 같았다. 왕은 이것을 보고 크게 웃으면서 희한한 일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몹시 꾸짖었다.
‘일제 중생은 어둠에 덮여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다. 이런 일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는 곧 그들을 코끼리에게 태우고 이 의심을 풀기 위해 다 함께 부처님께로 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특징[相好]으로 장엄된 손을 들고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짓을 했느냐?’
제석은 곧 노지의 형상을 없애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는 갖가지 광명을 내면서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언제나 간탐의 노예가 되어
입고 먹으려 하지 않으며
5전(錢)으로 술과 보릿가루를 사고
거기 소금 넣어 마셨습니다.

그것 마시고 크게 취하여
노래하고 춤추며 놀면서
우리 하늘들을 모욕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일부러 내려와
거기 가서 그를 괴롭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 열 가지 죄과가 있는 법이니, 마땅히 용서하고 놓아주어라.’
화신(化身)은 다시 제석의 형상으로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사람은 간탐하여 스스로 옷과 밥을 잘 입지도 먹지도 않으면서 5전어치의 술과 보릿가루에 소금을 넣어 마시고는 술에 대취하여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모든 하늘을 모욕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괴롭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일체의 중생은 다 허물이 있는 법이니 부디 놓아주어라.’
그리고 다시 노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집에 돌아가서 너의 재물을 다시 살펴보아라.’
노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재물은 제석이 다 써 버렸사온데 집에 돌아간들 무엇하겠습니까?’
그러자 제석이 말하였다.
‘나는 네 재물을 털끝만큼도 쓰지 않았다.’
이에 노지가 말하였다.
‘나는 제석을 믿지 않고 오직 부처님 말씀만 믿는다.’
그는 부처님을 믿었기 때문에 곧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 때 하늘ㆍ용 등 8부(部)와 4중(衆)은 이 말을 듣고 다 네 종류의 도과(道果)를 얻었고, 어떤 이는 3승(乘) 인연의 종자(種子)를 심었다.”
또 『라순유경(羅旬踰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어떤 바라문의 아들은 박복하여 어떤 점쟁이는 그 상을 보고 상이 없다 했다. 그는 나이 12세 때 아버지에게 쫓겨나 걸식하다가 기원정사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큰 자비의 손으로 그 머리를 만지셨다. 그는 머리털이 곧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져 부처님께서 그 이름을 라순유(羅旬踰)라 지어 주셨다.
그 때 그는 5부중(部衆)과 함께 늘 걸식하러 나갔는데, 그가 끼인 부중은 늘 빈 발우로 돌아왔다. 부처님께서 다른 비구들에게 분부하여 그들이 얻은 음식을 그에게 나누어주게 하셨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목건련은 생각했다.
‘이 비구 때문에 다른 스님도 음식을 얻어먹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목건련의 이 생각을 아시고 사리불과 함께 걸식을 나가시고, 목건련은 이 라순유와 함께 가게 하면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는 너는 가지 못한다.’
목건련은 부득이 라순유와 함께 가게 되었다. 그가 막 가려고 하는 그 집에는 번번이 부처님과 사리불이 그 집 문 앞에 계셨다. 이렇게 5백억의 나라를 다 다녔지마는 그들은 끝내 음식을 얻지 못했다. 목건련은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얻어먹지 못했다. 저 라순유는 얼마나 배가 고프겠는가?’
그리고 항하(恒河) 가에 있다가 목건련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의 발우에는 아직도 남은 음식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곧 그것을 목건련에게 주셨다. 목건련이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배가 몹시 고파 수미산을 삼켜도 배가 부를 것 같지 않은데
이 적은 밥으로 어찌 만족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저 이 밥을 먹기만 하고 모자랄 것은 걱정하지 말아라.’
목건련은 곧 그것을 먹었다. 배는 이미 불렀는데, 발우의 밥은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사리불은 생각했다.
‘저 라순유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지금 배가 고파 매우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남은 밥을 라순유에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밥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라순유는 전생의 과보로 그것을 얻어먹지 못한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네가 주어 보아라.’
사리불이 곧 밥을 주었다. 라순유가 그 밥을 받으려 하자 발우가 땅속 백장(丈)까지 들어갔다. 사리불은 도력(道力)의 손으로 발우를 빼내어 라순유에게 다시 주었다. 라순유가 그 밥을 받아 막 먹으려 하다가 그만 발우를 떨어뜨려 밥이 다 물 속에 흩어졌다. 라순유는 다시 앉아 뜻을 안정시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비구들과 함께 가지마는 으레 빈 발우로 돌아오고, 거기다 부처님께서 주시는 밥을 나는 다시 엎질러 버렸으니, 이것은 다 내 죄의 과보 때문이다. 나는 마땅히 이 과보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번뇌가 풀리고 없어져 아라한도를 얻었다. 그리고 그는 흙을 먹고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다.
‘알고 싶으냐? 저 라순유는 과거 유위(維衛)부처님 때의 범부로서 항상 간탐하여 보시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 때 밥을 먹으려고 옷을 벗어 땅에 폈으나 밥알이 땅에 떨어질까 염려하고 있었다. 어떤 사문이 그 앞을 지나다가 그에게 밥을 빌었다. 라순유가 그를 보고 물었다.
≺무엇을 줄까요?≻
그리고는 손으로 흙을 집어 주었다. 사문은 곧 그를 축원해 주었다.
≺이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나는 저이를 빨리 해탈시키리라.≻
그 뒤로 그는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다가 지금에 와서 음식을 얻어먹지 못하였고, 또 지금 도를 얻었으나 흙을 먹고 열반에 들었으며, 그 흙을 받은 사문은 바로 지금의 사리불이다. 그러므로 죄와 복은 다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유교삼매경(遺敎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이 라순유는 전생에 현자(賢子)의 아들로서 사람됨이 질투가 많아 사문이 걸식하러 오는 것을 보면 문을 미리 막고서 말하였다.
‘지금 주인이 안 계십니다.’
사문이 다시 다른 집에 가면 또 그 집의 문을 닫으면서 말하였다.
‘주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걸식해도 음식을 얻지 못한다. 또 마침 남이 음식을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여 그 대회(大會)에 가면서 생각했었다.
‘나도 사문이 되리라.’
그 때문에 지금 이처럼 곤궁한 것이다.”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이때 목건련ㆍ가섭ㆍ아나율ㆍ빈두로의 4대(大) 아라한은 한 자리에 모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다 같이 보자. 이 라열성(羅閱城) 안에 불ㆍ법ㆍ승에게 공양하는 공덕을 짓지 않는 자가 누가 있는가?’
그 때 발제(跋提)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재보가 있었으나 간탐하여 불ㆍ법ㆍ승에게 보시하지 않고 털끝만한 착함도 없었다. 그러므로 과거의 복은 이미 다 없어졌고, 새로운 복은 아직 짓지 못했다. 그 장자는 일곱 겹의 대문을 세우고 거기 각각 문지기를 두어 어떤 거지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또 쇠그물을 중정(中庭)에 쳐서 새들도 뜰에 오지 못하게 했다.
또 그에게는 난타(難陀)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도 간탐이 심하고 또한 삿된 견해를 가져 복을 심는 보시를 행할 마음도 없었고, 또한 도를 증득하지도 못했었다. 그녀도 그 오빠처럼 일곱 겹의 대문을 두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어느 때 발제 장자는 이른 아침에 떡을 먹고 있었다.
이때 아나율(阿那律)이 장자의 집 뜰의 땅속에서 솟아올라 발우를 장자 앞에 내밀었다. 장자는 못내 아까워하면서도 먹던 떡을 조금 아나율에게 주었다. 아나율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이때 장자는 화를 내어 문지기에게 말하였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내가 그처럼 일러두었는데 어째서 그 사람이 왔는가?’
문지기가 말하였다.
‘문을 단단히 잠가 두었는데, 그 도사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잠자코 있었다. 장자는 떡을 다 먹고 다음에는 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 때 가섭이 또 장자의 집에 가서 그 뜰의 땅속에서 솟아올라 발우를 장자 앞에 내밀었다. 장자는 못내 아까워하면서도 먹던 고기를 가섭에게 조금 주었다. 가섭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거기서 사라져 돌아왔다. 장자는 더욱 화를 내어 문지기에게 말했다.
‘아까도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이르지 않았느냐? 왜 또 두 사문이 집에 들어와 걸식하게 했느냐?’
문지기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 사문이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저 까까머리 사문들은 요술을 잘 부려 세상 사람들을 속일 뿐이요 바른 행은 없다.’
그 때 장자의 부인은 장자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다가 장자의 이 말을 듣고 장자에게 말했다.
‘말을 삼가십시오. 그것을 요술이라 말하지 마십시오. 저 사문들은 큰 위신(威神)이 있으므로 그 때문에 저들이 오면 우리에게 큰 이익이 있습니다. 장자님은 그 두 비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장자가 말하였다.
‘나는 모르오.’
그러자 그 때 그 부인이 말했다.
‘그 첫째 사람은 바로 곡반왕(斛飯王)의 아들 아나율입니다. 그가 처음 날 때에 이 대지는 여섯 번 변하여 진동했으며, 그 집 주위 1유순 안에 있던 복장(伏藏)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부인은 이어 말했다.
‘이 호족(豪族)의 아들은 범행(梵行)을 닦아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얻어 천안(天眼)이 제1입니다. 그리고 그 둘째 비구는 이 라열성 안에 사는 가비라(迦毘羅)라는 큰 범지(梵志)로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보가 있어서 999두(頭)의 소로 밭을 갈았다 합니다. 그 아들 비바라야단나(比波羅耶檀那)는 몸이 금색이며, 그 부인 바타(婆陀)는 여자 중에서 가장 뛰어났는데, 자마금(紫磨金)을 그 앞에 두면 마치 검정빛을 흰빛에 견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나는 두 사람의 이름은 다 들었소. 그런데 왜 다시 보이지 않습니까?’
그 부인이 답하였다.
‘아까 뒤에 온 사람이 바로 그 비바라야(가섭)입니다. 그는 그런 미인의 부인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워 지금은 아라한이 되었으며, 항상 두타를 행하는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까 ≺입을 삼가고 성인을 비방하여 요술쟁이라고 말하지 마시라≻고 한 것입니다. 이 석가님의 제자들은 다 신덕(神德)이 있습니다.’
그 때 존자 목건련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장자는 공중을 쳐다보고 앉아 말하였다.
‘너는 하늘이냐, 건달바냐, 귀신이냐,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羅刹)이냐?’
목건련이 말했다.
‘나는 나찰이나 귀신 따위가 아니다.’
이때 장자는 다음 게송으로 말했다.

하늘과 건달바와
야차와 귀신이라 하였더니
하늘도 아니요
야차나 귀신도 아니라 하네.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저 건달바와 같지도 않구나.
그러면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나는 지금 그것을 알고 싶다.

목건련도 게송으로 답하였다.

나는 하늘도 건달바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나찰도 아니다.
나는 보는 바와 같이
3세의 해탈을 얻은
사람 몸이다.

저 악마들을 다 항복 받고
위없는 도를 이루었나니
스승님 이름은 석가모니요
내 이름은 목건련이다.

이때 장자가 목건련에게 말했다.
‘비구여, 내게 무슨 가르치실 말이 있습니까?’
목건련이 답하였다.
‘나는 지금 그대에게 설법하고자 한다. 내 설법을 듣고 잘 생각하여라.’

이때 장자가 생각했다.
‘이 사문은 오랫동안 음식에 집착해 있었으니, 지금 무슨 말이 있다면 반드시 음식 이야기일 것이다. 만일 내게 음식을 청하면 나는 없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이 사람의 설법을 조금 들어 보자.’
그 때 목건련은 장자의 이 생각을 알고 곧 다음 게송으로 말했다.

여래께선 두 가지 보시를 말씀하셨나니
그것은 곧 법시(法施)와 재시(財施)이니라.
지금 나는 법시를 말하리니
그대는 한마음으로 잘 들으라.

장자는 법시를 말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 목건련에게 말했다.
‘곧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목건련이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다섯 대시(大施)를 말씀하셨으니, 그것은 곧 살생하지 않음과 도둑질하지 않음과 사음하지 않음과 거짓말하지 않음과 술 마시지 않음이오. 이것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잘 수행하시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지금 말씀하신 것은 보물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는 지금 감히 살생하지 않으니 그것을 행할 수 있고, 또 우리 집에는 재보가 많아 끝내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도 내가 행하는 것이며, 또 우리 집에는 절세의 미인이 있어 끝내 사음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도 내가 행하는 것이요, 또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거늘 하물며 스스로 거짓말하겠습니까? 이것도 내가 행하는 것이며, 나 같으면 지금 술을 생각지도 않거늘 하물며 스스로 맛인들 보겠습니까? 이것도 내가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이어 말하였다.
‘이 5시(施)는 내가 능히 봉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사문에게 음식을 공양하리라.’
그리고 장자는 머리를 들고 우러러보면서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부디 굽어살피시고 내려오셔서 여기 앉으십시오.’
그리하여 목건련은 곧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장자는 몸소 음식을 공양하고 물을 내온 뒤에 다시 생각했다.
‘모포 한 단(端)을 저 사문에게 드리리라.’
그리하여
창고에 들어가 좋지 않은 것을 집으면 그것은 곧 좋은 것이 되고, 그것을 버리고 다시 다른 좋지 않은 것을 집으면 또 좋은 것이었다. 이때 목건련은 장자의 마음을 알고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시할 때에 마음이 싸우는 것
이런 복은 현자(賢者)가 버리는 바이다.
보시할 때에 마음 싸움 없거든
그 때에는 마음대로 보시하여라.

이에 장자가 생각하였다.
‘지금 목건련이 내 속마음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는 곧 흰 모포를 목건련에게 바쳤다. 목건련은 곧 다음 게송으로 축원하였다.

보시가 제1임을 잘 관찰하고
어진 성인(聖人)을 알아보고
그에게 하는 보시는 보시 중의 최상이거니
그 좋은 밭에서는 좋은 열매 나리라.

그 때 목건련은 이렇게 축원하고 그 흰 모포를 받았다. 장자는 무량한 복을 받고 한쪽에 앉았다. 목건련은 그를 위해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키면 천상에 난다는 것과 더러운 탐욕을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면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장자는 그 자리에서 법의 눈[法眼]이 깨끗해짐으로써 법을 보아도 아무 의심이 없었다. 그리고 5계(戒)를 받고 3보에 귀의했다. 목건련은 장자의 법의 눈이 깨끗해진 것을 알고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그 경은
근원을 모두 갖추고 있다.
깨끗한 눈에는 더러움 없고
의심도 없거니와 망설임도 없다.”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노파 난타(難陀)는 떡을 만들고 있었다. 존자 빈두로(賓頭盧)는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라열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차례를 따라 나아가다가 노파 난타의 집에 이르러 그 뜰의 땅에서 솟아나와 발우를 들고 난타에게 밥을 빌었다. 난타는 빈두로를 보자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욕을 했다.
‘비구여, 설사 당신 눈이 빠지더라도 나는 끝내 당신에게 이 떡을 주지 않겠소.’
이때 빈두로는 곧 삼매에 들어 두 눈이 바로 다 빠졌다.
노파는 더욱 화를 내어 말하였다.
‘설사 사문이 공중에 거꾸로 매달리더라도 나는 결코 당신에게 이 떡을 주지 않으리다.’
이때 존자는 다시 공중에 거꾸로 매달렸다. 노파는 또 더욱 화를 내어 말하였다.
‘설사 사문이 온몸에서 연기를 내더라도 나는 결코 당신에게 이 떡을 주지 않겠소.’
이때 존자는 다시 온몸에서 연기를 내었다. 노파는 또 더욱 화를 내어 말하였다.
‘설사 사문이 온몸에서 물을 내더라도 나는 결코 당신에게 이 떡을 주지 않으리라.’
이때 빈두로는 곧 온몸에서 물을 내었다. 노파는 이것을 보고 또 말하였다.
‘설사 사문이 내 앞에서 죽더라도 나는 결코 음식을 주지 않겠소.’
이때 빈두로는 곧 호흡을 끊고 노파 앞에서 죽었다. 노파는 그의 호흡이 끊어진 것을 보고 곧 두려운 마음에 온몸의 털이 다 일어섰다. 그리고 이내 말했다.
‘이 사문은 아는 사람이 많고 국왕의 존경을 받는다. 우리 집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나면 반드시 관가의 벌을 받을 것이니, 그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살아난다면 나는 이 음식을 주리라.’
이때 빈두로는 곧 삼매에서 일어났다. 노파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떡은 너무 크다. 다시 조그맣게 만들어 주리라.’
그리고 밀가루 반죽을 조금 떼어 떡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떡이 매우 커졌으므로 노파는 먼저 만든 떡을 주려고 집었다. 그러나 그 떡들이 모두 한데 붙어 버렸다.
노파는 빈두로에게 말했다.
‘비구님은 드실 만큼 마음대로 집어 가십시오. 왜 사람을 이렇게 희롱하십니까?’
빈두로가 말하였다.
‘자매여, 나는 음식이 필요 없습니다. 다만 자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뿐입니다.’
노파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빈두로가 말하였다.
‘지금 이 떡을 가지고 세존께 가십시오. 세존께서 무슨 분부가 계시면 우리 함께 그대로 행하십시다.’
이에 노파가 말하였다.
‘그것 매우 좋은 일입니다.’
노파는 그 떡을 지고 빈두로를 따라 세존께 가서 세존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아뢰었다.
‘이 노파 난타는 발제(跋提) 장자의 누님입니다. 간탐이 많아 남에게는 주지 않고 혼자 먹었습니다. 세존께서 독실히 믿는 법을 말씀하시어 이 여인을 깨우쳐 주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 노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떡을 나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및 빈궁한 사람들에게 보시하라. 그래도 남는 것이 있거든 깨끗한 땅이나 벌레가 없는 물에 버려라.’
노파는 곧 그 떡을 차례로 보시하고 또 깨끗한 물 속에 버렸다. 그러자 곧 물 속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노파는 그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했다. 세존께서는 그녀를 위해 보시와 계율로 천상에 난다는 것과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차례로 설명하셨다. 노파는 그 자리에서 법의 눈이 맑아져 3보를 섬기고 5계를 받은 뒤에 기뻐하며 부처님께 예배하고 돌아갔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 가류타이(迦留陀夷) 장로는 아라한이 되어 발우를 들고 성내에 들어가 걸식했다. 어떤 바라문의 집에 갔을 때, 주인은 없고 그 부인이 문을 닫고 떡을 만들고 있었다. 가류타이는 곧 선정에 들어 신통을 부려 밖에서 땅속으로 들어가 그 집 중정(中庭)에서 솟아나와 손가락을 튀겼다.

부인은 돌아보고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어디로 들어왔을까? 반드시 이 떡을 탐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주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가류타이에게 말했다.
‘비록 당신 눈이 빠지더라도 나는 결코 이 떡을 주지 않을 것이오.’
가류타이는 신통의 힘으로 두 눈이 다 빠졌다.
부인이 다시 말하였다.
‘설사 그 빠진 눈이 주발처럼 되더라도 나는 이 떡을 결코 주지 않을 것이오.’
그 눈은 변해 주발 같았다.
부인이 다시 말하였다.
‘설사 내 앞에서 거꾸로 서더라도 나는 주지 않을 것이오.’
부인이 다시 말하였다.
‘설사 당신이 죽더라도 나는 주지 않을 것이오.’
가류타이는 곧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 심상(心想)이 다 멸해 아무 지각이 없었다. 부인은 잡아 흔들어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크게 놀라고 두려워 가만히 생각했다.
‘이 사문은 항상 바사닉왕의 왕궁에서 유행하고 말리 부인의 스승이다. 만일 이 비구가 우리 집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나면 우리는 아주 망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가류타이에게 말했다.
‘만일 스님이 다시 살아나시면 나는 스님에게 이 떡 하나를 드릴 것입니다.’
가류타이는 곧 선정에서 깨어났다. 부인은 줄 떡을 보았다. 먼저 구운 것은 모두 좋았기 때문에 그것은 아까워 주기 싫었으므로, 다시 그릇에 묻은 밀가루 반죽을 조금 모아 구웠다. 그러나 이것은 먼저 것보다 더 컸으므로 다시 먼저 것을 주려고 하나를 집어 들자 다른 것까지 다 한데 붙어 버렸다.
가류타이가 이것을 보고 물었다.
‘자매여, 내게 얼마나 주려 하십니까?’
부인은 말했다.
‘나는 네 개를 드리려 합니다.’
가류타이가 말하였다.
‘나는 떡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저 기원정사의 스님들께 드리십시오.’
이 부인은 전생에 이미 선근(善根)을 심었기 때문에 가만히 생각했다.
‘이 비구는 실은 떡을 탐낸 것이 아니다. 다만 나를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와서 청했을 뿐이다.’
그리고 부인은 곧 떡 상자를 가지고 기원정사로 가서 여러 스님들에게 고루 공양하고 가류타이 앞에 앉았다. 가류타이는 그 인연을 관찰하고 부인을 위해 묘한 법을 설명했다. 부인은 그 자리에서
법의 눈이 맑아져 우바이가 되어 집에 돌아가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은 이 말을 듣고 곧 가류타이에게로 갔다. 가류타이는 그를 위해 설법하였고, 그도 법의 눈이 맑아져 우바새가 되어 항상 재력(財力)을 다해 아사리에게 공양하고, 죽을 때에도 그 자식들에게 명령하여 그 공양이 끊기지 않게 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타(迦蘭陀) 죽림(竹林)에 계실 때였다.
그 때 목건련은 한 나무 밑에서 어떤 아귀를 보았다. 그 몸은 불타는 기둥과 같았고 배는 큰 산과 같았으며, 목구멍은 가는 철사와 같았고 송곳과 같은 머리털은 그 몸을 두루 찔러 온 마디 사이가 다 불에 탔다. 입술이 다 타고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아 강으로 달려가면 그 물은 곧 말라 버리고,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 그 몸에 떨어지더라도 그것은 다 불로 변했다.
목건련이 그에게 가서 물었다.
‘너는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되었느냐?’
아귀가 대답했다.
‘나는 목이 너무 말라 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직접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 보십시오.’
목건련은 부처님께 나아가 이 사실을 다 말씀드리고 여쭈었다.
‘저 아귀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짓고 지금 저런 고통을 받습니까?’
그 때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너를 위해서 설명하리라. 이 현겁(賢劫) 때에 바라내국(婆羅奈國)에 가섭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 때 어떤 사문이 길을 가는데 더운 날씨에 목이 말라 매우 고생하고 있었다. 마침 악견(惡見)이라는 여자가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으므로, 이 사문은 거기 가서 물을 청했다.
여자가 말하였다.
≺설령 당신이 목이 말라 죽더라도 나는 물을 줄 수 없으며, 또 내 물을 줄게 할 것이니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문은 물을 얻어먹지 못하고 그대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 여자는 더욱 간탐이 생겨 어떤 걸인이 오더라도 결코 물을 주지 않았다. 그 뒤에 이 여자는 목숨을 마치고, 아귀 세계에 떨어져 그 업연으로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물을 주지 않던 여자가 바로 이 아귀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악견 여자의 인연을 말씀하실
때, 비구들은 다 간탐을 버리고 네 종류의 사문과(沙門果)를 얻었고, 어떤 이는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가 기뻐하며 봉행하였다.”
또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아라한 승가야사(憎伽耶舍)는 큰 지혜가 있었고, 언변이 유창하였다. 일찍이 출가하였으나 아직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였다. 큰 바닷가를 거닐다가 어떤 궁전을 보았는데, 장엄된 7보의 광명이 대단히 훌륭했다. 그는 이것을 보고 공양 때가 되어 곧 그 궁전에 가서 다음 게송으로 밥을 빌었다.

굶주림은 제1의 큰 병이요
행(行)은 제1의 고통이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사람은
열반의 도를 얻을 수 있네.

이때 그 집 주인이 나와 맞이하며 요를 깔고 앉으라 했다. 야사는 그 집 안에서 아귀 둘을 보았다. 벗은 몸은 검게 여위고 주림과 목마름에 몹시 괴로워하면서 몸에 사슬을 차고 각각 평상에 앉아 있었다. 또 향기로운 밥이 가득 담긴 발우 하나가 있었고, 물이 가득 담긴 물병이 그 곁에 놓여 있었다. 집 주인은 그 밥을 야사에게 주면서 말했다.
‘대덕 스님, 부디 이 밥을 저 아귀에게는 주지 마십시오.’
그러나 야사는 그들이 고생하는 것이 너무 가여워 곧 밥을 조금 덜어 그들에게 주었다. 아귀는 그것을 받아먹자 곧 피고름을 토하였고, 그것이 온 땅에 흘러 그 궁전을 더럽혔다.
야사는 이것을 보고 괴상히 여겨 주인에게 물었다.
‘이 아귀들은 무슨 인연으로 이런 죄보를 받습니까?’
주인이 대답했다.
‘이 두 아귀는 전생에 내 권속이었습니다. 즉 하나는 내 아들이요, 하나는 내 며느리입니다. 나는 옛날 보시하여 온갖 공덕을 지었는데, 저들 부부는 항상 성내고 인색했습니다. 나는 자주 타일렀으나 저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곧 서원을 세웠습니다. 즉 ≺이런 죄업으로 너희는 반드시
악의 과보를 받을 것이요, 그 죄를 받을 때는 내가 꼭 그것을 볼 것이다≻ 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들은 이런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또 조금 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거기는 갖가지로 기묘하게 장식한 큰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여러 스님들이 경행(徑行)을 하기도 하고 참선도 하고 있었다. 공양 때가 되어 목탁을 치자 모두 모여 공양했다. 막 공양을 마치려 했을 때 음식은 모두 피고름으로 변하였고, 발우들이 다 사람을 때려 스님들은 머리와 얼굴을 다쳐 흐르는 피에 몸이 더러워졌다. 그들이 말하였다.
‘왜 우리는 음식을 아끼다가 지금 이런 고통을 받는가?’
야사는 다가가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들이 말하였다.
‘장로님, 우리는 옛날 가섭부처님 때에 모두 한 절에 살면서 나그네 스님이 오면 모두 화를 내면서 음식을 숨기고 그와 나누어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 이런 고통을 받습니다.’
정보송(正報頌)에서 말하였다.

즐겨 탐함을 도덕이라 속이고
잔인함과 학대를 재주로 삼아
교묘히 속이는 생각 엉클어졌고
이익을 찾는 마음 겹겹이 싸여 있다.

저 지옥에 들어가 죄를 받다가
그 버릇 아직도 그치지 않아
번갈아 드는 칼이 살을 다 베어
백골만이 연이어 서로 붙었다.

습보송(習報頌)에서 말하였다.

오직 탐욕만을 위하는 그 때문에
중생들은 악도에 빠지며
악도의 죄 다 받고 인간에 나도
남은 버릇 아직도 그 몸에 있다.

항상 이리 같은 마음을 가졌거니
누가 그를 반기고 가여워하리.
한평생 이 이치 못 깨치나니
우스워라,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

감응연(感應緣)[세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위(魏)의 사마선왕(司馬宣王)
위(魏)의 호인(胡人) 지법존(支法存)
제(齊)의 태수(太守) 장선(張善)

위(魏)의 사마선왕(司馬宣王)
위(魏)나라 사마선왕(司馬宣王)은 공업(功業)이 날로 융성하였다. 그러나 위(魏)의 대장군(大將軍)
조상(曹爽)을 죽임으로써 찬탈(簒奪)하는 자취가 차츰 드러났다. 그 때 왕릉(王陵)이 양주(楊州) 자사가 되었는데, 위제(魏帝)의 제재와 강경한 신하들 때문에 감히 임금이 되지 못했다. 초왕(楚王) 표(彪)는 나이도 많고 또 재주도 있었으므로 왕릉은 그를 맞이해 왕으로 세우려 했다. 연주(兗州) 자사(刺史) 화(華)가 왕릉이 모반한다고 선왕에게 아뢰었다. 선왕은 몸소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곧 왕릉을 토벌하러 나갔다. 왕릉은 갑자기 군사가 쳐들어오므로 자기 세력의 곤궁함을 알고 배 한 척을 가지고 나가 선왕을 맞이했다. 선왕은 왕릉을 경사(京師)로 돌려보냈다.
왕릉은 경성(頃城)에 이르러 가규(賈逵)의 사당을 지나다가 외쳤다.
“가량도(賈梁道)님, 내가 본래부터 위나라에 마음을 다한 것은 당신에게 신(神)이 있다면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고, 그의 3족(族)도 다 베여 죽음을 당하였다.
그 해 선왕은 병이 들었는데, 한낮에 왕릉의 귀신이 오는 것을 보았고, 또 가규가 빌미가 되었다. 그래서 왕릉의 자(字)를 불러 말하였다.
“언운(彦雲:왕릉의 字)아, 나를 살려다오.”
선왕의 몸에 매맞은 자리가 있었는데 얼마 안 있다가 선왕은 죽었다.

위(魏)의 호인(胡人) 지법존(支法存)
위(魏)나라 지법존(支法存)은 본래 인도 사람으로서 광주(廣州)에서 나고 자랐다. 의술(醫術)에 뛰어나 드디어 큰 부자가 되었다. 8장(丈)의 담요가 있어 갖가지 형상을 만들었는데, 그 광채가 햇빛처럼 빛났었다. 또 침향목(沈香木)으로 된 8척의 평상은 항상 향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왕담(王談)이 광주(廣州) 자사가 되자 그 큰아들 소지(劭之)가 그 두 가지 물건을 자주 법존에게 달라고 했다. 그러나 법존은 그것을 주지 않았다. 왕담은 존량계(存亮繼)를 시켜 법존을 죽이고 그 재산을 몰수했다. 법존이 죽은 뒤에 그 형상이 자주 부내(府內)에 나타나 누각 밑의 북을 치는 것이 마치 무슨 원혼(冤魂)을 자칭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8개월이 지난 뒤에 왕담은 병이 들었는데, 늘 법존이 와서 자신을 감시하는 것을 보았다. 얼마 안 있다가 왕담이 죽고 또 소지도 양도(楊都)에서 죽었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원혼지(冤魂志)』에 나온다.]

제(齊)의 태수(太守) 장선(張善)
제(齊)나라 양적(陽翟) 태수(太守) 장선(張善)은 가혹하고 탐욕이 많아 악명이 널리 퍼져 있었다. 난대(蘭臺)에서 어사(御史) 위휘준(魏暉儁)을 보내어 군(郡)에 내려가 법으로 다스리게 했더니, 그가 받은 뇌물이 하도
많아 마땅히 죽여야 할 죄인이었다. 장선은 옥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시켜 상소(上訴)하여 도리어 휘준을 수뢰죄(受賂罪)로 무고해 휘준이 억울하게 결박을 당하였다.
문선제(文宣帝)는 크게 화를 내어 법사(法司)의 아첨이라 생각하고, 꼭 몸소 바로잡기 위해 상서(尙書) 좌승로(左丞盧)와 배부지(裵覆之)를 시켰다. 부지도 드디어 아첨하여 휘준의 죄상을 꾸며 아뢰어 시장에서 베어 죽이게 되었다.
휘준은 영사(令史)에게 유언하였다.
“나의 정리(情理)는 그대가 잘 아는데, 오늘의 일은 과연 어찌된 일이냐? 종이 백 장과 붓 두 자루와 먹 하나를 내 시체에 딸려 보내다오. 만일 내 영혼이 있으면 기어코 원수를 갚으리라.”
영사는 애도하면서 옷을 사서 그 시체를 염(殮)하고 또 종이와 붓 등도 준비해 넣었다. 15일 뒤에 장선은 병이 들어 오직 하는 말이라고는 “위상서(魏尙書)에게 사과한다”는 말뿐이었다. 상서란 세속에서 대사(臺使)를 부르는 통칭이다. 10일이 못 되어 장선은 죽고, 좌승로와 배부지는 준위사(駿魏史)를 비방했다는 죄에 걸려 위사가 이 사실을 나라에 아뢰어 문제(文帝)는 그들을 다 때려 죽였다.[이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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