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21 법원주림(法苑珠林) 78권

by Kay/케이 2024. 7. 19.
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78

 

법원주림 제78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 십악편 ⑥

12) 진에부(瞋恚部)[여기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4사(蛇)가 조급히 날뛰어 3독(毒)이 마구 달리고, 6적(賊)이 서로 침노하여 백 가지 근심이 모두 모인다. 혹은 전생에 서로 꺼림으로써 그 장단(長短)을 엿보아 찾고, 본래 맺힌 원한으로써 서로 해침을 더해 마침내 아무 인의 (仁義)가 없고 자비를 모두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법을 죽이고 인연을 죽이며, 죽음을 가르치고 죽음을 찬탄한다. 혹은 가만히 독약을 쓰고 비밀히 사축(邪祝)을 보내고, 그 장부(臟腑)에 독을 머금게 하여 간장과 심장을 찢으니, 긴 밤 동안 슬픔을 머금게 하고 저승에서까지 분통을 안게 하니, 이 같은 일이 언제나 그치며 이 원한을 누구에게 호소하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한 것이다.
“장자의 집 안에 독수(毒樹)가 많이 나고, 나찰의 바다 위에선 부낭(浮囊)을 자주 구걸한다. 또한 마른 섶이 만 단이나 되더라도 콩알만한 불이 태울 수 있고, 백 년 동안 어두운 방도 등불 하나로 밝힐 수 있다.”
그러므로 성내는 마음[瞋心]은 사나운 불보다 심한 것이니, 수행자는 부디 스스로 단속해야 한다. 오랜 공덕의 적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은 없느니라.
만일 한 생각이라도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온갖 선의 공덕을 다 태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질이 악한 사람은 사람과 짐승이 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선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말을 하면 곧 독을 이루고, 남의 마음을 부수기 좋아하면 남으로 하여금 미워하게 하여 아무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도리어 대중은 그를 두려워해 마치 호랑이를 피하듯 하며, 현재는 남의 천대를 받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허물을 보고 인욕으로 성내는 마음을 없애어 어떤 고통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2) 인증부(引證部)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성내는 마음[瞋心]을 일으키면 스스로 그 몸을 태우고, 그 마음은 독을 머금어 안색이 달라진다. 그는 남의 버림을 받아 모든 사람이 그를 피한다. 대중은 그를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비방하고 천시하며,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 성내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짓지 않는 악이 없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성내는 마음을 버리기를 불을 버리듯 한다. 성내는 마음의 허물을 알면 스스로를 이롭게 할 수 있으니,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려면 인욕을 행해야 하느니라.
마치 큰 불이 집을 태울 때 용맹스런 사람이 물로 불을 끄는 것처럼, 지혜의 물이 성내는 마음의 불을 끄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인욕을 잘하는 사람이 제1의 선심(善心)이다. 진심을 능히 버리면 사람들이 사랑하고 만나기 좋아하며 사람들이 신용하고, 안색은 청정하며 그 마음은 고요하다. 마음이 조급히 날뛰지 않으면 깊은 마음을 능히 맑게 한다.
그리하여 몸과 입의 허물을 떠나고 마음의 고민을 떠나며, 악도의 두려움을 떠나고 원망과 미움을 떠나며, 나쁜 이름을 떠나고 걱정과 고통을 떠나며, 원수의 두려움을 떠나고 악한 사람의 욕설과 꾸짖음을 떠나며, 후회의 두려움을 떠나고 나쁜 소리의 두려움을 떠나며, 이익 없는 두려움을 떠나고 고통의 두려움을 떠나며, 교만의 두려움을 떠난다.
만일 누구나 이런 두려움을 떠나면 그는 모든 공덕을 다 구족하여 명예가 널리 퍼지고 현재와 미래의 즐거움을 얻으며, 사람들이 부모처럼 대할 것이니, 이 인욕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다 친근히 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냄은 마치 독사와 같고 칼과 같으며 불과 같은 것이니, 인욕으로 그것을 모두 없애야 한다. 성냄을 능히 참으면 이것을 인욕이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착한 사람이 선(善)을 수행하려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인욕이란 보배와 같은 것이니, 이것을 잘 보호해야 한다.’
다만 중생의 선악은 현재에 있어서 다를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허물을 업신여기고 꾸짖음으로써 이겼다고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하묵(下黙)함을 으뜸으로 여긴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만 다툼을 일으킴으로 인해 끝내는 큰 원망을 이루고, 만일 자기가 승리하면 남의 원망은 더욱 깊어지며, 만일 스스로 이치를 굽히면 도리어 근심과 고통을 더하는 것이다. 만일 능히 말을 삼가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으면, 비록 남이 나를 욕하더라도 그것은 다 과거의 업이요 함부로 된 과보가 아니니라.”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보살이 상왕(象王)이 되었다. 그 마음은 넓고 커서 3보(寶)가 있음을 환히 알고 항상 거기 귀의하여 늘 큰 자비로 중생을 구제했다. 장차 부처가 되면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서원하면서 5백 마리의 코끼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때 그는 두 아내를 두고 있었다. 한번은 물 속에서 아주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를 얻어 본처(本妻)에게 주었다.
본처가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어떻게 이런 꽃이 있었습니까?’
그의 첩은 질투하는 마음으로 화를 내어 서원하며 말하였다.
‘무서운 독약으로 너(상왕)를 독살하리라.’
그녀는 그 원한이 맺혀 이내 죽었다. 그리고 그 혼이 변화하여 4성(姓)의 여자가 되었는데, 얼굴은 매우 아름답고 지혜는 날카로워 고금의 일을 두루 알며 천문(天文)을 관찰하고 시세(時勢)의 성쇠(盛衰)를 환히 알았다. 국왕은 그녀의 이러함을 듣고 그녀를 맞이해 부인으로 삼았다. 부인은 들어와 곧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를 이야기하였는데, 그 이치는 신하들을 충성스럽게 할 수 있었다. 왕은 기뻐하고 존경하면서 부인의 말이면 다 들어주었다.
그 부인이 말했다.
‘나는 꿈에 여섯 어금니의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그 어금니로 패궤(珮几)를 만들고 싶습니다. 만일 대왕님이 들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죽고 말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런 요망스런 말을 하지 마시오. 사람이 들으면 웃겠소.’
부인이 매우 우울해 있으므로 왕은 신하 네 사람을 불러 의논하면서 먼저 자기의 꿈이라 하고 말하였다.
‘천하에 이런 코끼리도 있는가?’
한 신하가 말하였다.
‘그런 코끼리는 없습니다.’
한 신하는 말하였다.
‘그것은 대왕님의 꿈이 아니십니다.’
또 한 신하가 말하였다.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아주 먼 데 있다 합니다.’
또 한 신하가 말하였다.
‘만일 제석을 부를 수 있으면 지금 여기서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명의 신하들이 곧 사방의 사수(射手)를
불러 물으니, 남방의 사수가 말하였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님이 항상 그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멀어서 이루기 어렵습니다.’
신하가 말하였다.
‘이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대왕님은 곧 시키십시오.’
부인이 말했다.
‘너는 여기서 바로 남쪽으로 3천 리를 가서 산에 들어가 2일쯤 가면 그 코끼리가 있을 것이다. 길가에 구덩이를 파 둔 뒤에 너는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그 구덩이 속에서 활을 쏘아 그것을 잡아 그 어금니를 2촌(寸)쯤 잘라 가지고 오너라.’
사수는 명령을 받고 코끼리 있는 곳으로 가서 코끼리를 쏘기에 앞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구덩이 속에 있었다. 상왕(象王)은 이 사문을 보고 머리를 숙여 말하였다.
‘합장 예배합니다. 사문님은 무슨 일로 내 목숨을 시험하려 하십니까?’
‘나는 너의 어금니를 얻고 싶다.’
그러자 상왕이 말하였다.
‘나는 아픈 것은 참지 못합니다. 빨리 내 어금니를 자름으로써 내 마음을 어지럽혀 악한 생각이 생기지 말게 하십시오. 악을 생각하면 죽어서 태산(太山)ㆍ아귀ㆍ축생 등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욕으로 자비를 행하고 악이 올 때 선으로 갚는 것은 보살의 최상의 행입니다.’
사수는 곧 그 어금니를 잘랐다.
상왕이 말하였다.
‘도사님, 당신은 뒷걸음질로 가십시오. 그래서 다른 코끼리들로 하여금 당신 발자국을 찾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수가 멀리 떠난 뒤에 상왕은 아픔이 너무 심해 참기 어려워 땅에 쓰러져 크게 부르짖다가 그대로 죽어 곧 천상에 났다.
코끼리 떼들은 모두 와서 말하였다.
‘우리 왕을 누가 죽였는가?’
코끼리들은 두루 찾다가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왕의 시체를 지키면서 슬피 울었다. 사수가 어금니를 가지고 돌아오니, 왕은 그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했다. 부인이 그것을 받아 막 보려 하자 번개와 벼락이 부인을 때려 부인은 피를 토하고 죽어 지옥에 들어갔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상왕은 바로 지금의 이 나요, 그 대부인은 지금의 구이(瞿夷)요, 그 사수는 지금의 저 조달이며, 그 부인은 지금의 저 묘수(妙手)이다. 보살이 뜻을 세우고 바라밀도[度無極]를 행하는 계율이 이와 같았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다음 게송으로 부처님께 물었다.
어떤 것을 죽이면 편안하고
어떤 것을 죽이면 걱정 없는가.
어떤 것이 독(毒)의 근본이고
일체의 선을 다 삼켜 없애는가.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답하셨다.

분노를 죽이면 심신이 편안하고
분노를 죽이면 아무 걱정이 없다.
분노가 독의 근본이 되고
분노가 모든 선을 모두 없앤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승리하면 원한을 더욱 늘리고
패배하면 근심과 고통 더한다.
이기고 짐을 다투지 아니하면
그 즐거움이 최상이니라.

만일 인욕을 행하면 5덕(德)이 있게 된다. 첫째는 원한[恨]이 없고, 둘째는 비난이 없으며, 셋째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넷째는 좋은 명예가 있으며, 다섯째는 선도(善道)에 나는 것이니, 이런 5덕을 평화로운 일이라 하느니라.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는 다음 게송이 있다.

우치한 사람은 꾸짖고,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한다.
이 침묵은 저 꾸짖음을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치한 사람은 지견이 없어
침묵을 두려움 때문이라 한다.
나는 제1의 진리 보니
인내와 침묵이 최상이 되고,
악 중에서도 제1의 악은
분노에 대해 또 성내는 것이다.
분노에 대해 성내지 않으면
그것은 싸움 중의 최상이니라.

사람에겐 두 가지 연(緣) 있으니
자기와 남을 다 위하는 것이다.
다투지 아니하는 사람을 보고
어리석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큰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해 잘 참나니
이 참는 힘이 제1이 되고
그것은 인욕 중의 최상이니라.

우치한 사람은 힘이 있다 자칭하나
이 힘은 진실한 힘이 아니다.
법답게 참는 그 힘이라야
아무도 저지할 수 없는 힘이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는 다음 게송이 있다.


그 입의 말은 유연하면서
그 마음에 독을 품은 사람은
사람을 볼 때 매우 반가워하여
친하게 따르는 것만 같다.

그 입의 말은 유연하면서
그 마음속에 독을 품으면
그것은 마치 나무의 꽃 빛 고우나
그 열매가 독처럼 쓴 것과 같다.

또 『적취오유경(赤觜烏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구기[拘耆:부리가 붉다는 뜻]라는 까마귀가 있었다. 구기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까서 우거진 숲 속에 두었다. 그런데 그 구기는 어떤 원숭이와 매우 친했었다. 그 때 그 숲 속에 있는 독사가 구기가 없는 틈을 엿보다 그 새끼를 모조리 잡어먹어 버렸다. 구기는 새끼를 잃고 슬피 울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독사가 잡아먹은 줄을 알았다.
원숭이가 돌아와 보고 구기에게 물었다.
‘왜 그리 우느냐?’
‘독사가 내 새끼를 모조리 잡아먹었다.’
원숭이가 말하였다.
‘내가 그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 때 독사가 지나가므로 원숭이는 그 앞에서 독사를 희롱했다. 독사는 화를 내어 원숭이를 감았다. 원숭는 그 머리를 잡아끌고 가서 돌에 갈아 죽여 던져 버리고 돌아왔다. 구기는 매우 기뻐했다. 짐승도 이런 갚음이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뱀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다투었다.
머리가 꼬리에게 말했다.
‘내가 너보다 위대하다.’
꼬리가 말하였다.
‘내가 너보다 위대하다.’
그러자 머리가 말했다.
‘나는 귀가 있어 들을 수 있고, 눈이 있어 볼 수 있으며, 입이 있어 먹을 수 있고, 다닐 때에는 앞에 있다. 그러므로 위대하다. 너에게는 이런 기술이 없다.’
이에 꼬리가 말하였다.
‘내가 너를 가게 하기 때문에 너는 갈 수 있다. 만일 내가 가게 하지 않으면 너는 가지 못한다.’
그리고는 몸을 나무에 세 겹으로 감아 3일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뱀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거의 굶어 죽게 되었다.
머리가 말하였다.
‘나를 놓아 다오. 네가 위대하다.’
꼬리는 이 말을 듣고 곧 놓아주었다.
머리가 다시 꼬리에게 말했다.
‘네가 이미 위대해졌으니 네가 앞서 가라.’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크고 깊은 구덩이에 빠져 죽었다. 이것은 중생들이 무지하여 공연히 나니, 남이니 하다가 마침내 3악도에 떨어진다는 비유이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옛날 한 떼의 닭이 개암나무 숲 속에 있었다. 살쾡이가 와서 수놈을 잡아먹고 암놈만 남았는데, 까마귀가 그것을 덮쳐 새끼 한 마리를 낳았다. 새끼가 소리를 내어 울 때, 까마귀가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나의 소유가 아니다.
들[野]의 아비와 마을의 어머니가
함께 어울려 낳은 아이는
까마귀도 아니요 닭도 아니다.

만일 아비 소리를 배우려 하면
이것은 닭이 낳은 것이요
만일 어미 울음을 배우려 하면
그 아비는 바로 까마귀이다.
까마귀를 배우면 닭 울음 같고
닭을 배우면 까마귀 소리를 낸다.
까마귀와 닭을 다 배우려 하면
그 둘 모두 이루지 못하리.

이것은 도인과 속인이 비록 계율을 지니더라도 잡되어 순수하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즉 외모는 선한 것 같으나 입에서 내는 말은 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이라 부르려 하면 그 입에서 악을 내고, 선이 아니라고 부르려 하면 그 외모는 바로 출가인이라는 것이다.”
또 『벌독수경(伐毒樹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사위국 관원(官園)에 독수(毒樹)가 있어서 사람이 그 아래에서 놀면 모두 머리가 아파 빠개지는 것 같았으며, 혹은 허리가 몹시 아팠다. 이것은 베어 버리면 다시 나는, 나무 중에서도 묘한 나무였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좋아하여 꺼릴 줄을 모르면 다 죽음을 당했다.
그래서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였다.
‘그 뿌리까지 모두 없애야 한다.’
그래서 그 뿌리를 파 버리고자 하나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새로이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출가해 도를 배우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무를 벨 때 뿌리까지 베지 않으면
비록 베었더라도 다시 나는 것처럼
애욕을 벨 때도 근본까지 안 베면
자주자주 그 고통 다시 생기네.

끝까지 마음이 깨어 있어 엄하게 꾸짖으면, 곧 초과(初果)를 얻는다.”
또 『패경(孛經)』에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악은 그 마음에서 생겨
도리어 스스로를 죽이나니
마치 쇠에서 녹이 슬어
그 몸뚱이를 녹임과 같다.

나무는 꽃과 열매 무성해
도리어 그 가지 꺾이고

살모사는 독을 머금어
도리어 그 몸을 해친다.

또 『선견율(善見律)』에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진심(瞋心)을 일으키면
그것은 마치 달리는 수레 같다.
운전사가 그것을 제지시키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 아니지마는,
사람이 진심을 제지하기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진심(瞋心)을 일으켜
남을 원망하고 또 해치면
그는 죽어서 독사나 혹은 잔인한 짐승이 된다.

마치 저 대나무가 쪼개지고
파초와 노새가 잉태하는 것처럼
자신을 해치는 것 이와 같으니
그러므로 자비심을 내어야 한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가란타(迦蘭陀) 죽림(竹林)에 계실 때였다.
그 때 그 성내에 사는 현면(賢面)이라는 장자는 재보가 무량하여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아첨과 간탐과 질투가 많아 보시할 마음은 조금도 없고, 더구나 새들까지도 그 집 가까이 오지 못하게 다 쫓았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거지가 그 집에 와서 구걸하면 그는 욕설로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다가 죽은 뒤에는 독사가 되어 본래의 재물을 지키고 있었는데, 누가 가까이 오면 성난 눈으로 노려보아 그들을 죽게 했다.
빈바사라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라 괴상하게 여겼다.
‘이 독사는 사람을 보면 해친다. 오직 부처님만이 이것을 제어하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고는 이 사실을 다 아뢰었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 독사를 항복받아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시고 다음날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독사 있는 곳으로 가셨다. 독사는 부처님을 보자 잔뜩 화를 내어 부처님을 물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의 힘으로 다섯 손가락 끝에 오색 광명을 놓아 독사의 몸을 비추었다. 독사는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뜨거운 독기가 다 사라지고 매우 기뻐하며 머리를 들고 사방을 돌아보며 생각하였다.
‘어떤 복인(福人)이 이런 광명을 놓아 내 몸을 비춰 이렇게 말할 수 없이 시원하게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이 독사가 항복한 것을 알고 그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독사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깊이 가책을 느끼자 번뇌의 구름이 걷혔다. 그러자 자신의 전생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에 장자의 몸으로써 온갖 악업을 지어 지금 이런 과보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는 비로소 부처님을 믿고 공경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전생에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아 이 뱀의 몸을 받았으니, 이제는 마땅히 나의 가르침을 잘 순종해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독사가 부처님 말씀에 대답하였다.
‘부처님 견해와 가르침을 따르는데, 어찌 감히 가르침을 거스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다시 독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항복해 순종한다면, 곧 나의 이 발우에 들어가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독사는 이내 발우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님은 그것을 가지고 죽림으로 돌아오셨다.
왕과 대신들은 부처님께서 독사를 교화시켜 발우에 담아 가지고 오신다는 말을 듣고, 또 나라 사람들이 다 구경하러 거기 몰려갔다. 독사는 사람들을 보고 매우 부끄러워하고, 그 독사의 몸이 싫어져 이내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忉利天)에 났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무슨 복을 짓고 이 천상에 났는가?’
그리고 그는 관찰했다.
‘인간 세계에서 독사로 있다가 부처님을 뵈옵고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독사의 몸을 싫어하게 되었고, 여기 나서 이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이제 나는 지금 부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리하여 향과 꽃을 가지고 광명을 번쩍이면서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에 예배하고 공양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서 다음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했다.

높고 높은 큰 성인은
온갖 공덕을 모두 갖추어
모든 어리석음 다 깨우치시니
곧 도과(道果)를 얻게 되었네.

번뇌의 더러움 모두 없애고
생사의 바다를 멀리 뛰어나

지금 부처님의 은덕을 입고
3악도의 문을 닫게 되었네.

그 때 천자는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고 천상으로 돌아갔다.
이때 빈바사라왕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간탐을 버렸으며, 거기 모인 대중으로서 어떤 사람은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를 얻고, 어떤 사람은 최상의 보리심을 내 기뻐하며 봉행했다.”
또 『백연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교살라국(驕薩羅國)에서 비구들을 데리고 늑나(勒那) 나무 숲으로 가시는 길에 어떤 못에 도착하셨다. 거기에 매우 사나운 5백 마리 물소와 5백 명의 물소 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비구를 데리고 그 길로 가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부처님께서는 그 길로 가시지 마십시오. 소 떼 중에는 매우 사나운 물소가 있어서 사람을 마구 떠받기 때문에 지나가시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 소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크게 걱정하지 말라. 설사 저 물소들이 나를 떠받더라도 내가 알아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사나운 물소들이 갑자기 몰려오면서 꼬리를 들고 뿔을 숙여 땅을 긁고 부르짖으며 바로 뛰어 앞에 왔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다섯 손가락 끝에서 다섯 마리 사자를 만들어 사방에서 호위하게 하고, 또 큰 불구덩이를 만들었다. 그 때 그 소들은 크게 두려워 사방으로 달아나려 했으나 갈 곳이 없었고, 오직 부처님의 발 앞에 조그만 빈자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들은 갑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시원해지며 아무 두려움도 없이 부처님 앞으로 달려와서는 꿇어앉아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을 핥았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들어 부처님을 바라보며 못 견디게 기뻐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진 것을 아시고 곧 소들을 위해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왕성한 혈기(血氣)로 나쁜 마음 일으켜
몰려와서 나를 해치려 하였으나
정성을 기울여 훌륭함 얻기 위해

도리어 와서 내 발을 핥아 주네.

저 물소들은 부처님의 이 게송을 듣고 깊이 부끄러워하고, 갑자기 깨쳐 번뇌의 구름이 걷혔다. 그리하여 전생에 인간 세계에 있으면서 지은바 온갖 죄업을 알고는, 더욱 부끄러워 물도 풀도 먹지 않다가 바로 목숨을 마치고 도리천에 났다. 거기서 갑자기 장성하여 8세 되는 아이만큼 되어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무슨 복을 닦아 이 천상에 났는가?’
그리고 이내 스스로 관찰하였다.
‘나는 전생에 물소로 있다가 부처님의 교화를 입고 이 천상에 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돌아가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꽃과 향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밝고 아름다운 광명으로 부처님을 비추면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4제법(諦法)을 설명하셨고, 그들은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 수다원과를 얻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에 천상으로 돌아갔다.
5백 명의 소치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설법하시니, 그들은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각각 도의 자취를 얻고 출가하려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들아.’
그러자 그들의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이 되었다. 그들은 부지런히 수행하여 모두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 때 비구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물소와 저 5백 소치는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물소가 되었으며, 또 무슨 복을 닦아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들이 전생에 지은 모든 악업을 알고 싶으냐? 지금 그것을 설명하리라.’
그리고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전생에 지은 선악의 업은
5겁 동안에는 없어지지 않으니,
저들은 선업의 인연 때문에
지금에 이런 과보를 얻었느니라.


‘이 현겁 동안에 바라내국에 가섭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이 부처님의 법 안에서 어떤 삼장(三臟) 비구는 제자 5백 명을 데리고 타국에 다니다가 대중 앞에서 토론할 때, 누가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면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곧 화를 내어 도리어 욕설을 퍼부었었다.
≺너희들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면서 억지로 어려운 문제를 내게 질문하는데, 그것은 마치 물소가 와서 사람을 마구 떠받는 것과 같다.≻
그 때 여러 제자들은 다 이 말이 옳다 하고, 각각 흩어져 돌아갔었다. 이런 욕설의 업연으로 5백 생 동안 물소가 되었고, 또 소치는 사람이 되어 서로 따랐는데,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했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고 싶으냐? 그 때의 그 삼장 비구란 자는 지금 이 물소 떼 중의 사나운 물소요, 그 때의 저 5백 제자들은 지금의 저 소치는 사람들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물소의 인연을 설명하셨을 때, 비구들은 모두 3업을 단속하고 생사를 미워하여 네 가지 사문과를 얻었으며, 어떤 이는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등 기뻐하며 봉행했다.”
정보송(正報頌)에서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분노가 심해
지옥에 들어 불에 살리우고
승냥이ㆍ이리 등이 그를 포위하며
독사들이 다투어 그 앞으로 온다.

성낸 눈으로 그를 씹어 먹으며
등과 옆구리를 이리저리 뚫는다.
스스로 짓고 도리어 스스로 받나니
분노의 불길이 그를 태운다.

습보송(習報頌)에서 말하였다.

성내는 마음은 해독이 많아
괴로운 3악도에 깊이 빠지고
거기서 나와 사람 몸을 받아도
남은 과보로 남의 괴롭힘 받는다.

사람들 모두 그의 허물 찾으며
마치 독초(毒草)처럼 그를 꺼린다.
분노에는 원래 아무 이익 없거니
그것을 어찌 보배로이 여기리.


감응연(感應緣)[열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양(梁)의 곡아(曲阿) 사람 홍(弘)씨
양(梁)의 말릉령(秣陵令) 주정(朱貞)
양(梁)의 남양(南陽) 사람 낙개경(樂盖卿)
양(梁)의 참군(參軍) 양도생(羊道生)
양(梁)의 자사(刺史) 장고(張皐)
주(周)의 문제(文帝) 우문태(宇文泰)
진(陳)의 중서사인(中書舍人) 우척(虞陟)
진(陳)의 유계손(庾季孫)
양(梁)의 무창 태수(武昌太守) 장순(張絢)
양(梁)의 배식(裵植)

양(梁)의 곡아(曲阿) 사람 홍(弘)씨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문황제(文皇帝)의 능(陵) 가에 절을 세우고자 했으나 좋은 목재가 없었다. 그래서 유사(有司)를 시켜 그것을 구하라 했다. 그 전에 곡아(曲阿) 사람 홍(弘)씨는 집이 큰 부자여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친척들과 함께 상주(湘州)로 가서 장사하여 몇 해 만에 큰 뗏목 하나를 장만했다. 그 길이는 천 걸음이나 되며 재목이 웅장하고 화려하여 세상에 드문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남진(南津)으로 갔다. 남진의 교위(校尉) 맹소경(孟少卿)은 조정의 뜻에 아첨하여 곧 거기에 먹줄을 치고 또 홍씨가 팔다 남은 비단옷을 보고는 길에서 겁탈해 얻은 것이라고 무고하여 그의 허물을 일부러 조작했다. 즉 장사꾼으로서는 옳지 않으니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그 뗏목을 몰수하여 절 짓는 데 써야 한다고 했다. 이리하여 그는 처형되게 되었다.
홍씨는 그날 그 처자에게 당부했다.
“황지(黃紙) 백 장과 붓과 먹을 준비해 내 관(棺) 안에 넣어 주시오. 죽어서 아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하늘에 호소할 것이오.”
그리고
맹소경이란 이름 수십 개를 써서 삼켰다. 한 달이 지나 소경이 단정히 앉아 있는데, 홍씨가 오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 사나움을 피했으나 부득이 항복하고 다만 살려달라고 빌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모든 감옥의 관리들과 문서를 맡은 사람과 사인(舍人)으로서 그 일에 관여했던 사람과 서주(署奏)한 사람들은 차례로 죽든가 혹은 1년이 못 되어서 다 몰락하여 죽었다. 황기사(皇基寺)는 준공하자마자 화재로 모두 타서 거의 전소되었으며, 땅속에 들어간 기둥까지 다 재가 되었다.

양(梁)의 말릉령(秣陵令) 주정(朱貞)
양(梁)나라 말릉령(秣陵令) 주정(朱貞)은 죄로 옥에 갇혔다. 정위(廷尉) 평우불(平虞黻)이 그 일을 맡아 조사하여 중죄로 결정했다. 주정은 상문(相聞)을 보내어 우불에게 말하였다.
“내 죄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므로 감히 그 은혜를 빌지 않겠다. 다만 임금님이 만에 하나라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내일은 주가(朱家)의 묘일(墓日)이니, 이곳을 지날 때 상주(上奏)해 줄 수 있겠는가?”
우불이 말하였다.
“그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니 어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그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가(朱家)의 일이 먼저 있었고, 그 이튿날 주문(奏文)을 만들었다. 우불은 마침 손님을 만나 술에 취하여 드디어 그 문서 내놓는 것을 잊고 우선 말하였다.
“집 사람이 그 글묶음을 옷상자에 넣었는데, 내가 미처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임금님 앞에 나아가 향등(香橙)에 올라 발을 모으고 차례로 펼치다가 비로소 이 글을 발견했다. 그러나 숨길 사정이 못 되어 사실대로 아뢰었다.
무제는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주정을 죽여야 한다. 외부(外府)에 붙여 자세히 판결하라.”
주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원망하면서 말하였다.
“우불 소자(小子)가 곧 죽을 사람을 속였구나. 만일 귀신이 앎이 없으면 그대로 흙이나 재와 같겠지만 혹 앎이 있다면 기어코 이 원수를 갚고 말리라.”
주정이 시장으로 끌려가 사형을 당하려 할 때에 우불이 그것을 보았다. 그 뒤로 우불은 늘 주정이 와서 매우 꾸짖는 것을 보았고, 또 꿈에는 우불이 수레를 타고 산 밑에 있는데 주정이 산 위에서
돌로 누르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우불은 아곡령(阿曲令)에 임명되었다. 부임한 이튿날 사장문(謝章門)의 궐하(闕下)에 나아갔다. 그 부인은 평상시와 같이 집에 있다가 갑자기 죽었다. 우불이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부인 방에 들어가 곡(哭)하고 머리를 드니, 위에 주정이 보였다.
우불이 말하였다.
“주정이 여기 있는데 내 아내가 어찌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무 까닭도 없이 집이 갑자기 무너졌다. 그 때 우불과 그 자녀ㆍ종ㆍ하인 등 십여 인이 한꺼번에 다 죽었다. 우승(右丞)인 우줄(虞騭)은 우불의 종친(宗親)으로서 우불 아내의 장례 준비를 보러 갔다가 잠깐 집을 나왔기 때문에 그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양(梁)의 남양(南陽) 사람 낙개경(樂盖卿)
양(梁)나라 여릉왕(廬陵王)이 형주(荊州)에 있을 때, 종사(從事)를 백성들의 논밭을 측량하러 보냈는데, 남양(南陽)의 낙개경(樂蓋卿)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때 공부 사인(公府舍人) 위파로(韋破虜)가 계칙(誡勅)을 보냈는데, 그것이 왕의 뜻과 어긋났었다. 개경이 돌아와 잘못함으로써 죄를 받게 되었으므로 파로는 두려워하였으나 구태여 책임을 지지 않고 개경을 속여 말하였다.
“자네 힘으로 분별해 밝힐 일이요, 구태여 제소(提訴)할 것까지는 없네.”
며칠 사이에 시장에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개경은 울부짖었으나 호소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 집 사람에게 말하였다.
“종이와 먹을 관(棺) 안에 넣으라.”
개경이 죽은 뒤 얼마 안 되어 파로는 외양간에 있다가 어떤 소를 보았는데, 갑자기 개경이 머리를 끌고 들어와 그가 가졌던 마늘 한 주발을 파로에게 주었다. 파로는 놀라 달아나려 했으나 부득이 그것을 받아먹고, 그로 인해 병이 나서 얼마 안 되어 죽었다.
또 두억(杜嶷)은 양주(梁州) 자사(刺史) 회요(懷瑤)의 둘째 아들로서 서형주(西荊州)의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그는 성질이 매우 포악하였다. 새로 첩을 들였는데, 나이와 얼굴이 다 아름다웠으므로 두억은 특히 사랑하였다.
첩이 하루는 친정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요즈음 매우 곤궁하니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첩이 이 편지를 발에 기대어 읽고 있을 때 두억이 밖에서 돌아왔다. 첩은 첩이 된 지 오래지 않았는데, 이런 사정을 알리기가 창피스러워
이내 편지를 씹어 삼켜 버렸다. 두억은 그것을 어떤 정부(情夫)의 편지라 생각하고 드디어 첩의 배를 가르고 편지를 꺼내었다. 첩이 아직 숨이 끊어지기 전에 편지가 나와 두억은 이것을 보고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자제하지 못하고 이처럼 경솔하여 천하의 화기(和氣)를 해쳤으니 어찌 내가 오래 부지하겠는가?”
그 날 밤에 첩이 와서 하소연하는 것을 보았고, 두억은 열흘만에 죽었다. 양양(襄陽) 사람들은 지금도 이것을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다.

양(梁)의 참군(參軍) 양도생(羊道生)
양(梁)나라 태산(太山)의 양도생(羊道生)은 양나라 소릉왕(昭陵王)의 중병 참군(中兵參軍)이 되었고, 그 형 해진(海珍)은 한주(漢州) 자사가 되었다. 도생이 휴가를 받아 형을 찾아보고 돌아올 때였다. 형은 길 가까이서 잠깐 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생은, 어떤 사람이 나무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보았는데, 그는 옛날 부곡(部曲)으로서 도생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슬피 호소했다.
“한주 자사가 나를 죽이려 합니다. 구제해 주십시오.”
도생이 물었다.
“너는 무슨 죄를 지었느냐?”
그가 대답했다.
“나는 뜻을 펴지 못하여 그를 배반하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도생이 말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화낼 만한 일이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 칼을 뽑아 그의 눈동자를 빼어 삼켜 버렸다. 부곡은 하늘을 부르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 조금 있다가 해진이 오자, 도생은 다시 형에게 권해 그를 메어 죽이게 했다.
도생은 술자리에 돌아와 잠시 있다가 비로소 눈알이 목에 걸린 것을 깨달았으나, 그것이 내려가지 않았으므로 술을 청해 여러 잔을 마셨지만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목은 더욱 붓고 막히어 드디어 이별 잔치를 마치지 못하고 떠났다가 며칠 만에 길에서 죽으니, 당시 그것을 본 사람은 모두 천도(天道)의 증험이라 했다.

양(梁)의 자사(刺史) 장고(張皐)
양(梁)나라 동서주(東徐州) 자사 장고(張皐)는 복야(僕射) 영(永)의 손자이다. 일찍이 싸움에 패해 북녘 땅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 토민(土民)이 장고에게 맹세하므로 그를 데리고 남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출가하여 이름을 승월(僧越)이라 하였고, 장고는 그를 공양했다. 그는 장고를 따라 동서주로 와서 옛날의 공을 믿고 장고에 대한 말씨가 사나워졌다. 장고는 크게 화를 내어 두 문생(門生)을 보내었다. 한 사람은
정(井)씨요 한 사람은 백(白)씨로 모두 이름은 모른다. 그들은 밤에 몰래 가서 승월을 죽였다.
그 뒤로 저녁마다 승월이 장고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원수를 갚겠다.”
얼마 뒤에 장고는 사냥을 나갔다가 전통(箭筒)에 손가락을 다쳐 피가 날 듯 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뒤에 배를 깎다가 배즙이 손가락 상처에 묻어 이내 종기가 되었고, 10여 일 뒤에 아무 까닭 없이 어깨 위에 또 종기가 생겨 그 피고름이 손가락과 통해 달포 만에 죽었다.

주(周)의 문제(文帝) 우문태(宇文泰)
주(周)나라 문제(文帝) 우문태(宇文泰)는 처음에 위승상(魏丞相)으로 있을 때 양조(梁朝)의 난리를 만났고, 그 때 양나라 효원제(孝元帝)는 상동왕(湘東王)이 되었다. 그는 형주(荊州)에 있으면서 문태와 통화(通和)하여 예우(禮遇)가 지극하였 뿐 아니라 또 매우 친하여 맹세하고 형제의 의(義)를 맺었다. 그 뒤에 후경(侯景)을 평정하고 효원이 즉위하였으나 문태는 신민이면서도 효원을 공경하지 않고 자못 그를 업신여겼으며, 또 무리한 것을 요구하다가 혹 마음에 맞지 않자 드디어 군사를 보내어 강릉(江陵)을 엄습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의 선비와 백성 140만 인을 포로로 잡고 효원까지 해쳤다.
또 위문제(魏文帝)는 전에 여여왕(茹茹王) 욱구려아나괴(郁久閭阿那瑰)의 딸을 황후(皇后)로 삼아 이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는데, 양왕(梁王)을 살해했고, 그 이듬해 아나괴는 제(齊)나라에 패하여 나라가 망하자 남은 군사 수천을 데리고 위나라로 달아났다. 그런데 돌궐(突厥)은 전에 여여왕과 원수였으므로 문태에게 말 3천 마리를 보내면서 아나괴 등을 죽이기를 요구했다. 그러자 문태는 허락한 뒤에 먼저 돌궐 군사를 숨겨 놓고 아나괴와 함께 잔치를 베풀고 술에 취한 저들을 결박하여 그날로 욱구려의 일문(一門) 5백여 명을 죽이니, 그 흐르는 피가 복사뼈까지 이르렀다. 여여는 죽을 때에 자꾸 하늘을 우러러 호소했다.
다음해 겨울에 문태는 농우(隴右)에서 사냥하다 병에 걸렸으니, 그것은 효원 및 아나괴의 빌미였다. 문태는 성을 내어 마구 욕설을 퍼붓다가 술을 마시고 두 달 뒤에 죽었다.

진(陳)의 중서사인(中書舍人) 우척(虞陟)

진왕(陳王)이 처음 즉위했을 때, 양나라에는 원제(元帝)의 아홉째 아들 진안(晋安)이 왕이 되었다. 진왕은 그를 도왔다. 회계(會稽)의 우척(虞陟)은 본래 양무제(梁武帝) 때에 중서사인상서우승(中書舍人尙書右丞)이 되었었다. 어느 때 우척의 꿈에 양무제가 나타나 말하였다.
“자네는 나의 옛날 신하다. 진공(陳公)에게 말해 내 손자를 죽이지 말라 하라. 만일 죽이면 그대도 좋지 못하리라.”
그런데 그 꿈이 매우 분명했다. 그러나 진왕이 왕위를 빼앗을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우척은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했었다. 며칠 뒤에 또 꿈에 무제가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내 뜻을 전하지 않으면 그대도 좋지 못할 것이다.”
우척은 비록 깜짝 놀라고 감탄했으나 결정코 말할 도리가 없었다. 얼마 뒤에 태사(太史)가 진왕에게 말하였다.
“궐내(闕內)에 장차 급한 사변이 있을 것입니다.”
진왕이 말하였다.
“그 급한 사변이란 바로 내가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난병(亂兵)을 보내 어린 진안왕을 죽이고 자신이 즉위했다.
그 뒤에 우척은 병이 들었는데, 또 꿈에 양무제가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위해 진왕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재앙이 그대와 진왕에게 다 미치게 했으니, 곧 알게 될 것이다.”
우척은 비로소 편지로 진왕에게 아뢰었다. 진왕은 귀신을 매우 믿는 사람이라,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곧 가마를 보내 우척을 맞이하여 만나보고 우척을 원망하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왜 말하지 않았느냐?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6, 7일 뒤에 우척이 죽고, 얼마 안 되어 위재(韋載)의 괴변이 있었다.

진(陳)의 유계손(庾季孫)
진(陳)나라 유계손(庾季孫)은 그 성질이 살생을 매우 좋아해 고기 잡고 사냥하는 것을 일로 삼았고, 노비들이 혹 죄를 지어도 그것을 다 밝혔다. 항상 큰 병을 앓고 있었는데,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말하였다.
“만일 살생을 아주 끊으면 이 병이 낫겠지마는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래서 꿈속에서 맹세하였다.
“다시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자 몸이 떨리고 땀이 흘러 몸을 다 적셨으며 병도 차츰 나아갔다.
몇 해 뒤에 제자 셋이 그의 두 첩과 간통함으로써 그를 배반했다. 그는 곧 그들을 찾아 붙잡아 때려 죽였다.
그날 밤에 또 전의 그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왜 약속을 저버렸느냐? 그
사람의 죄는 죽일 것까지는 없는 죄이고, 또 개인이 함부로 벌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번만은 구제할 도리가 없다.”
새벽이 되어 그는 피를 토하고 며칠만에 죽었다.

양(梁)의 무창(武昌) 태수 장순(張絢)
양(梁)나라 무창(武昌) 태수 장순(張絢)은 늘 배를 타고 다녔다. 어떤 부곡(部曲)을 부려 일을 시켰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매를 들어 한 번에 내리쳤다. 매 한 대에 그가 죽게 되었다. 살아날 것 같지 않았으므로 장순은 드디어 그 시체를 강에 밀어 넣어 버렸다. 어느새 이 사람은 물에서 나와 손을 오므리고 장순에게 말하였다.
“나는 죽을죄를 짓지 않았는데, 당신은 나를 억울하게 죽였다. 나는 지금 원수를 갚으리라.”
그리고 곧 장순의 입으로 뛰어들었다. 장순은 이로 인해 병을 얻어 얼마 뒤에 죽었다.

양(梁)의 배식(裵植)
양(梁)나라 배식(裵植)은 그 계숙(季叔)인 숙업(叔業)을 따라 남방 연주(兗州)에서 북방으로 들어가 원(元)씨를 섬겨 상서(尙書)가 되었다. 배식의 매부 위백정(韋伯鼎)은 학식이 있었다. 거기다 그는 기운이 장하고 스스로의 재주와 지혜를 믿고 항상 배식을 업신여겼으므로, 배식은 그를 원수로 생각했다. 그 뒤에 낙하(洛下)에서 배식이 폐립(廢立)을 꾀한다고 무고하여 배식은 이 죄에 걸려 죽었다.
백여 일 뒤에 백정은 병이 들어 허공을 보며 말하였다.
“배상서(식)는 혼자 죽지 않았는데 왜 성을 내는가?”
그리고 이내 죽었다.
만유(萬紐)의 우중(于中)이란 사람은 북벌(北伐) 사람으로서 위세(魏世)를 섬겨 시중영군(侍中領軍)이 되었다. 명제(明帝) 훈(勳) 때는 전권(專權)으로 내상서(內尙書)에 있었다. 복야(僕射) 곽조(郭祚)와 상서(尙書) 배식(裵植) 등은 고릉(高陵)의 양왕(襄王) 옹출중(雍出中)을 권했다.
우중은 이 말을 듣고 유사(有司)를 핍박해 그 죄를 아뢰게 하고, 나라의 조서(詔書)라 사칭하여 저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조야(朝野)는 모두 분해 이를 갈았으며, 그는 2년 동안 병을 앓다가 배식과 곽조의 빌미로 곧 죽었다.[이상 열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