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75권
법원주림 제75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 십악편 ③
6) 사음부(邪婬部)[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가욕부(呵欲部) 간위부(姦僞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음란한 소리[婬聲]는 덕(德)을 무너지게 하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행(行)하지 않고, 탐욕의 모습[欲相]은 정신을 미혹하게 하므로 성인은 이를 멀리 여읜다.
그러므로 주(周)나라 유왕(幽王)1)
이 나라를 잃은 것은 진실로 포사(褒姒 :幽王의 寵妃)의 허물이요, 진(晋)나라 헌제(獻帝)가 집안을 망친 것은 진실로 이희(孋姬:麗姬라야 옳다)의 죄(罪)이다. 독각산(獨覺山) 위에서 목을 매단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묘당(廟堂)에 있기를 기약했으니, 어찌 몸을 태우는 고통을 깨달았겠는가? 이것은 다 욕계(欲界)의 중생들이 관해(觀解)를 닦지 않음으로써 지상(地上)에 얽매인 번뇌를 끊어 조복(調伏)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에 있어서 어느 것이 주재자(主宰者)가 되겠는가?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본성(本性)은 다 공(空)한 것이다. 엷은 껍질과 두터운 가죽에 두루 돌아다니는 깨끗하지 못한 것과 생장(生臟)과 숙장(熟臟)의 더럽고 혐오(嫌惡)스러운 것은 이루 다 논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항상 사람을 끌어다가 3악도(惡道)에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보살대사(菩薩大士)는 항상 관행(觀行)을 닦아 더러운 것이 흘러넘쳐 온몸에 가득하다고 관(觀)하느니라. 6진(塵:色ㆍ聲ㆍ香ㆍ味ㆍ觸ㆍ法)의 원적(怨賊)은 늘 서로 접촉하여 괴롭히고, 5음(陰:色ㆍ受ㆍ想ㆍ行ㆍ識)의 전타(旃陀)는 친근히 하기 어렵다.
범부(凡夫)들은 뒤바뀐 착각으로 이것을 탐하여 미혹됨으로써 부질없이 아름다운 자태(姿態)를 보고 꽃다운 자태라고 그리워하고 집착한다. 새하얀 이와 붉은 입술이며, 긴 눈썹과 우뚝한 상투를 틀고 그림자를 희롱하며 어슬렁거리고 아름답고 고움을 더욱 뽐낸다.
그런 까닭에 낙천(雒川)에서는 패물(佩物)을 풀어 진왕(陳王)에게 수레를 세(稅) 낼 수 있었고, 한곡(漢曲)에서는 구슬을 희롱하여 마침내 교포(交浦)에 뜻을 두었으며, 무산(巫山)의 누대 위에서는 운우(雲雨)에 의탁해서 오고 갔으며,
마고(麻姑)의 물가에서는 흐르는 샘물에 몸을 기탁해 갔다 왔다 했던 것이다. 마침내 타오르는 향(香)의 기운으로 하여금 멀리 한수(韓壽)의 옷에 배게 했고, 거문고를 탄 곡조로 하여금 멀리 상여(相如:司馬相如)의 마음을 끌게 하였다. 혹은 천침(薦枕)2)으로 인하여 친분을 이루기도 하였고, 혹은 괘관(掛冠:벼슬을 내놓음)을 핑계로 숨어서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 몸뚱이는 거품 덩어리와 같은 것이고, 본질은 뜬구름과 같아서 안팎이 다 공(空)하여 잠깐 사이에 흩어져 없어지는 것임을 어떻게 알겠는가?
온몸은 깨끗한 것이 아니요, 온몸은 항상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아야, 비로소 개미와 땅강아지들이 득실거리는 개천[溝渠]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저 중생들은 이 삿된 행위[邪行]가 있어서 범천(梵天)으로 가는 길을 어기고 보리(菩提)의 업을 막음으로써 4취(趣)의 원인을 만들고 3도(塗)의 결과를 받는다.
이로써 알 수 있나니 3유(有:三界)의 근본은 바로 음욕의 업(業) 때문이요, 6취(趣)의 과보는 다만 애염(愛染)으로 기인하는 것이니, 업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특별히 중하기 때문에 성인의 제도를 실천하지 못한다.
(2) 가욕부(呵欲部)
① 탐욕이 너무 많은 것을 밝힘
『열반경(涅槃經)』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항상 시름하고 괴로워하면
시름은 마침내 불어나고 자라나나니
마치 사람이 잠자기를 좋아하면
잠이 더욱 많아지는 것처럼
음행(婬行)을 탐하고 술을 즐기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리.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게송(偈頌)으로 말하였다.
마치 불에 마른나무를 보태면
그 불길 더욱 커져서 훨훨 타오르듯이
이와 같이 애욕(愛欲)을 즐기게 되면
애욕의 불길 더욱더 증장(增長)하리라.
나무에 붙은 불 아무리 치열하게 타올라도
사람은 다 그것을 버리고 여읠 수 있으나
애욕의 불이 세간을 태울 때에는
꼭꼭 얽매여 버릴 수 없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되어
다섯 가지 욕망을 탐하고 집착하여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나
그것이 다음 세상에 이르러서는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게 되나니
비유하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맛있는 과일을 탐내고 집착한 끝에
나무에 올라가서 그 과일 따먹으면서
때가 되어도 내려오려 하지 않다가
사람이 그 나무를 베어 버리면
그 나무가 쓰러지면서
곧 나무에서 떨어져
온몸을 다치고 몸이 부서져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다 죽는 것과 같다네.
얻을 때에는 즐거움이 적건만
잃을 때에는 괴로움이 많나니
마치 칼날에 꿀을 발라 놓으면
칼을 핥는 사람은 단맛만을 탐내어
혀를 다치는 줄도 모르고 핥아먹다가
뒤에 커다란 고통을 겪는 것과 같다네.
또 『성실론(成實論)』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탐욕은 진실로 괴로운 것이건만
범부들은 뒤바뀐 착각으로
부질없이 즐겁다는 생각을 내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고통으로 본다네.
고통으로 보았으면 곧 끊어야 하건만
탐욕하고 사랑하여 싫어하지 않나니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그 갈증만 더욱더 심해진다네.
갈증이 더욱더 심해졌으니
어떻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
비유하면 개가 마른 뼈다귀를 씹을 적에
그 마른 뼈에 피만 묻히고
게다가 제 침까지 보태어
그것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리.
탐욕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무 맛도 없는 그 가운데에서
삿된 착각의 힘 때문에
그것이 재미있다고 말하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저 색욕(色欲)에 대한
괴로움은 실제요 즐거움은 헛되다는 것을.
반드시 탐내 구하는 일이 없어야
비로소 진실한 즐거움이라 말할 수 있네.
② 여인의 부정(不淨)을 관함
다만 생각해 보면 모든 여인들은 겉으로는 아름다운 용모(容貌)를 가장했지만, 속에는 냄새나고 더러운 것만을 간직한 채 사람을 미혹시키므로 사람들은 그 겉모양에만 집착하여 그것이 거짓이요 속이는 것인 줄 알지 못한다.
오직 큰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그것이 미워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다.
또 『선비요경(禪秘要經)』에서 말하였다.
“장로 목련(目連)이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증득하였다.
그러나 본부인(本婦人)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좋은 옷으로 장엄하게 꾸미고 목련을 무너뜨리려고 하자, 목련이 그 때 게송을 설하였다.
당신의 몸은 마른 뼈를 세워 놓은 것으로서3)
가죽과 살이 서로 얽어매고 싸고 있으며
그 안엔 깨끗하지 못한 것이 가득 들어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좋아할 물건이 없다네.
가죽 자루에 대변과 소변을 담아놓은 것이라서
아홉 구멍으로 항상 흘러 나와서
아무 데에도 마땅치 않는 귀신과 같은데
어찌 족히 스스로 귀하다고 하겠는가?
당신의 몸은 마치 걸어다니는 변소를
엷은 가죽으로 싸놓은 것과 같아서
지혜로운 사람은 버리고 멀리하기를
마치 변소를 버리고 떠나는 것과 같이 하네.
만약 누구든지 자신의 몸을 알아
나처럼 그 몸을 미워하고 싫어한다면
몸 일체를 다 멀리 여의기를
마치 사람들이 변소를 피하듯 하리.
그대는 그 몸을 스스로 장엄하되
꽃과 향 그리고 영락으로 꾸몄네.
범부는 그것을 애착하여 탐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거기에 미혹되지 않네.
그대 몸은 바로 부정(不淨)한 덩어리로서
온갖 더럽고 약한 물건을 다 모았으니
마치 변소를 장엄한 것과 같건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래도 그것을 좋다고 하네.
그대의 갈비뼈는 등에 달라붙어
마치 서까래가 기둥을 의지하고 있는 것 같고
오장(五臟)은 뱃속에 들어 있어
깨끗하지 못하기 마치 똥 담은 상자 같네.
그대의 몸은 똥이 들어 있는 집과 같건만
어리석은 사람은 탐하고 보호하여
구슬과 영락(瓔珞)으로 잘 꾸며서
겉껍데기 호화롭기 마치 화병(畵甁)과 같네.
만약 누구든지 욕염(欲染)이 비어지면
시종(始終)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리니
그대가 와서 나를 불태우려 하는 것이
마치 불나방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드는 것 같네.
일체의 모든 탐욕의 독(毒)을
나는 이미 다 없애 버렸네.
5욕을 이미 멀리 여의었고
마(魔)의 그물 이미 찢어 버렸다.
내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아
온갖 것에 집착하는 일이 없거니
설사 천녀(天女)가 온다고 해도
내 마음을 더럽힐 수 없으리.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차라리 불에 달군 쇠 송곳으로 눈을 찌를지언정 여인[色]을 보고 그로 인해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여인의 성심(性心)에는 질투(嫉妬)가 많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여인은 죽은 뒤에 대부분 아귀의 세계에 태어난다. 아무리 그 말이 아름다울지라도 마음은 독(毒)이 해치는 것과 같아서 허망하고 삿됨을 알면서도 능히 세간을 현혹시킨다.”
③ 여인은 친근히 하기 어렵고 싫어해야 할 대상임을 밝힘
『우전왕경(優塡王經)』에서 게송으로 말한 것과 같다.
여인은 가장 악한 것이라서
그와 더불어 인연을 맺기 어렵다네.
은애(恩愛)에 한 번 얽매이고 집착하면
사람을 끌고 죄의 문으로 들어간다.
다만 사람을 끌고서 악한 세계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천상(天上)에서 퇴락(退落)하는 것도 또한 여인(女人)의 유혹 때문이라네.
또 『정법념경』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천상의 커다란 결박이라 하더라도
여색(女色)보다 더한 것은 없다.
여인은 모든 천상의 사람들까지 얽어매어
3악도(惡道)로 데리고 들어간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갖가지 깨끗하지 못함[不淨]을 관찰한다. 모든 재앙 중에서 여자로 인한 재앙이 가장 심하다. 불ㆍ칼ㆍ우레ㆍ번개ㆍ벼락ㆍ원수ㆍ독사 같은 따위는 그래도 잠시 가까이할 수 있지만, 여인의 간탐ㆍ시샘ㆍ성냄ㆍ아첨ㆍ요사스러움ㆍ더러움ㆍ투쟁ㆍ탐욕ㆍ질투는 친근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차라리 벌겋게 달군 쇠뭉치를
눈 속에 넣고 굴릴지언정
흩어진 마음으로써
삿되게 여색(女色)을 보아서는 안 된다.
웃음을 머금고 갖은 교태 부리고
또 교만하고 수줍어하며
얼굴을 돌려 곁눈질하고
아름다운 말로 질투하고 성내기도 한다.
요염하고 더러운 걸음걸이로
사람들은 모두 유혹하나니
음탕하게 펼쳐 놓은 애욕의 그물에
사람들은 모두 다 몸을 던진다.
앉거나 눕거나 다니거나 서 있으면서
돌아보며 아양떠는 그 아름다움에
지혜 적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칼을 들고 도적을 대적하면
그것은 그래도 이길 수가 있지만
여자라는 도적이 사람들을 해치면
이것은 정말 금지하기 어렵다네.
독기를 머금은 저 독사를
오히려 손으로 붙잡을지언정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인의 정(情)
그것은 정말로 접촉해서는 안 된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부디 여인과 더불어 교통(交通)하지 말고
또 함께 어울려 이야기하지도 말라.
저 여인을 멀리 여읠 수만 있다면
곧 여덟 가지 환란[八難]4)
을 여읠 수 있으리.
또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서 니건자(尼乾子)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제 아내에게 만족할 줄 모르고
남의 부녀자와 음행하기 좋아하면
이런 사람은 부끄러움[慚愧]이 없어
괴로움만 받고 항상 즐거움은 없으리.
현재 세계와 미래 세상에서
괴로움을 받고 또 매맞고 결박당하며
몸을 버린 뒤에 지옥에 태어나서
괴로움만 당하고 항상 즐거움은 없으리.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두 딸을 낳았는데, 딸들은 모두 단정하였다. 그래서 바라문(婆羅門)은 상금을 내걸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90일 안에 내 딸을 보고 추(醜)하다고 꾸짖는 자가 있으면 이
상금을 주리라.’
그러나 끝내 이 말에 응해 오는 자가 없었으므로 그 딸을 데리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곧 꾸짖어 말씀하셨다.
‘이 딸들은 모두 추하기만 할 뿐 어느 것 하나 좋은 데가 없다.’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딸들은 정말로 아름다운데 부처님께서는 추악하다 말씀하시니, 어디가 좋지 못하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눈으로 색(色)을 보지 않으면 그것을 좋은 눈이라 하나니, 귀ㆍ코ㆍ입도 또한 그러하니라. 몸이 섬세하고 매끄러운 촉감을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을 좋은 몸이라 하고, 손이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지 않으면 그것을 좋은 손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관찰해 보니, 이 여인은 눈으로는 색(色)을 보고 귀로는 소리를 들으며, 코로는 냄새를 맡고 몸은 섬세하고 매끄러운 촉감을 좋아하며, 손은 남의 재물 훔치기를 좋아하고 있으니, 이런 것들이 다 좋지 않은 것이니라.’”
또 『불설일명보살경(佛說日明菩薩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색욕(色欲)의 법을 나무란다. 여색(女色)이란 세간의 칼[枷]이요 쇠사슬[鎖]인데, 범부들은 그것을 그리워하고 집착하여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여색이란 세간의 중한 질환으로서 범부들은 그 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면하지 못한다. 여색이란 세간의 재앙[衰禍]으로서 범부들이 그것을 만나면 닥치지 않는 재앙이 없다.
수행하는 사람[行者]은 이미 그것을 버린 사람이다. 만일 다시 돌아보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옥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고, 미친 사람이 정신이 바로 돌아왔는데도 다시 그것을 즐기는 것과 같으며, 병이 이미 나았는데 다시 병 얻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노여워하면서 그들이 미쳐 날뛰다가 얼마 안 되어 죽을 것임을 안다.
범부들은 여색을 소중히 여겨 즐겨 여색의 종이 되어 한평생토록 허덕이면서 그 때문에 갖은 고통을 당하되, 비록 다시 도끼로 허리를 마디마디 베고 칼날과 살촉이 번갈아 이르더라도 달가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병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미친 사람은 미친 것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허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이 만일 그것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으면, 이것은 칼을 부수고 쇠사슬에서 벗어나며, 미친 것을 미워하고 병을 싫어함으로써 모든 재앙에서 떠나 편안하고도 길(吉)하며 감옥에서 벗어나 영원히 환난(患難)이 없을 것이다.
여인(女人)의 모습과 그 말은 꿀처럼 달지만, 그 마음은 독(毒)과 같다. 비유하면 못물은 거울처럼 맑지만, 거기에는 교룡(蛟龍)이 살고 있고,
금산(金山)은 보배의 굴이지만, 거기엔 사자가 살고 있는 것과 같나니, 그 해(害)는 잠시라도 가까이할 수 없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한 집안이 화목하지 못한 것도 부인 때문이요, 종족을 파괴하는 것도 부인의 죄(罪)이다. 실로 이 음적(陰賊)은 사람의 지혜의 밝음을 멸하고, 또한 사냥꾼의 포위망이라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자가 적다.
비유하면, 높은 그물에 걸린 온갖 새가 떨치고 날 수 없는 것과 같고, 또한 촘촘한 그물에 걸린 모든 물고기가 창자를 뽑히고 살을 난도질 당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어두운 구덩이에 빠진 장님과 같고, 불에 날아드는 부나비와 같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알고 그것을 멀리 피하며, 그 해악(害惡)의 더러움을 받지 않고, 이 물건의 유혹을 당하지 않는다.”
또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나녀(奈女)에게 말씀하셨다.
‘삿된 음행[邪婬]을 좋아하는 것에 다섯 가지의 스스로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
첫째는 명성(名聲)이 좋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왕법(王法)의 미움을 받는 것이며, 셋째는 다른 사람들이 많은 의심을 가지는 것이요, 넷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며, 다섯째는 지옥의 죄를 마치고 나면 축생의 몸을 받는 것이니, 이런 죄들은 다 삿된 음행으로 이룩되는 것이다.
능히 스스로 마음을 없애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이는 다섯 가지 복(福)이 늘어난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고을 관리[縣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편안함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죽고 나면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것이며, 다섯 째는 뜻의 청정(淸淨)함을 따라 니원(泥洹)의 도(道)를 증득하는 것이다.”
(3) 간위부(姦僞部)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어떤 큰 씨족(氏族)의 집 아들이 모습이 매우 단정하였는데, 그는 금(金)으로 여인의 상(像)을 만들어 놓고 그의 부모에게 말하였다.
‘이 여인의 상과 같은 여자가 있으면 저는 마땅히 그녀와 결혼하겠습니다.’
그 때 다른 나라에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용모가 매우 단정하였다. 그녀도 금으로 남자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의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떤 남자든 이 형상과 같은 이가 있으면 저는 마땅히 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아들 부모는 각각 이 소문을 듣고 멀리서 서로 맞이하여 결혼 시켰다.
그 때 국왕은 거울을 걸어놓고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천하 사람들 가운데 용모가 나만한 사람이 있는가?’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신 등이 들으니, 저 나라에 어떤 남자가 있는데 단정하기가
비할 데가 없다고들 합니다. 곧 사신을 보내 초청(招請)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신이 그 나라에 가서 그 남자에게 말했다.
‘왕께서 그대를 보고 싶어하십니다.’
그는 곧 수레를 꾸며 타고 가다가 스스로 생각하였다.
‘왕은 아마도 내가 명철하고 통달[明達]하였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서 부르는 것이리라.’
그리고는 책을 가지고 가려고 집으로 되돌아갔다가 그의 아내가 사내종과 간통(姦通)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몹시 슬퍼하고 착잡한 나머지, 그 때문에 병이 생겨 안색이 쇠잔하고 추해졌다. 신하들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고 말하기를 ‘길을 오느라 수척해졌다’고 하면서 마구간에서 편안하게 쉬라고 하였다. 그 날 밤에 그는 마구간에서 왕의 정대부인(正大夫人)이 마구간을 관리하는 하인(下人)과 간통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곧 스스로 깨달았다.
‘왕의 대부인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내 아내이겠는가?’
그리고는 곧 분이 풀리고 마음도 편안해져서 안색이 예전처럼 되었다.
그는 곧 왕과 함께 서로 만나게 되었다.
왕이 말하였다.
‘무슨 까닭에 사흘 동안이나 밖에서 머물러 있었느냐?’
대답하였다.
‘신이 올 때 잊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가지러 집에 되돌아갔다가 제 아내가 사내종과 간통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 안색이 쇠잔하게 변했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구간에서 사흘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대왕님의 정부인(正夫人)이 그 마부(馬夫)와 간통하는 것을 보고는 ‘왕의 부인도 저러한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더니, 분이 풀리고 안색이 전과 같아졌습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내 아내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더구나 보통 여자이겠느냐?’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세속을 버리고 곧바로 산중으로 들어가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사문(沙門)이 된 뒤에 ‘여인(女人)이란 함께 종사(從事)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정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모두 벽지불도(辟支佛道)를 증득하였다.”
또 『구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부인(婦人)이 한 딸을 낳았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기가 비할 데가 없었다. 그 딸의 나이 세 살 때에 국왕이 그 딸을 데려다 살펴보고는 도인(道人)을 불러 관상을 보게 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후에 내 부인이 될 만한가?’
도인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인은 남편이 따로 있습니다. 왕은 다음에 얻어야 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여인을 단단히 감추어둘 생각인데, 어찌하여 다음에 얻으라고 말하는가?’
그리고는 곧 학(鶴)을 불러서 오게 하고는 말하였다.
‘너는 어디서 살고 있느냐?’
학이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높은 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산은 산 중턱까지는 나무들이 빽빽해서 사람이나 짐승들이 다니지 못하고 산 아래쪽에는 소용돌이치는 큰물이 있어서 배조차도 다닐 수가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이 소녀를 너에게 부탁할 것이니 데리고 가서 잘
기르도록 하라.’
학은 그녀를 데리고 가서 날마다 왕으로부터 음식을 받아다가 소녀에게 주곤 하였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위에 있는 한 마을에 갑자기 홍수가 나서 나무 하나가 그 물에 떠내려 왔다. 그런데 어떤 남자 하나가 그 나무를 안고 소용돌이치는 물 속으로 떨어져서 빙빙 돌면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물가에 있는 머루 넝쿨을 부여잡고 뛰어나와 산모퉁이에 의탁해 머물렀다.
그 남자는 얼마 후 학이 살고 있는 나무에 올라갔다가 그 여인을 만나 사사로이 정을 통했고, 그 여인은 그 남자를 숨겨 두었다. 학은 그 여인의 몸이 무거워진 것을 깨닫고 사방으로 찾아 헤매다가 남자를 찾아내고는 모두 움켜잡아다가 버리고 그 사실을 왕에게 아뢰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전에 그 도인이 정말로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이로구나.’”
논사[師]가 말하였다.
“사람은 전생에 정해진 배필(配匹)이 있어서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정해져 있는 배필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 축생(畜生)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 『구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국왕이 있었는데 여자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급급하였다. 그 왕의 부인(夫人)이 태자(太子)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의 어미로서 너를 낳은 이후로 지금까지 나라 안을 구경하지 못했는데, 지금 한 번 돌아보고 싶다. 네가 왕에게 이 뜻을 아뢰어다오.’
이와 같이 세 번이나 부탁하였다. 그러자 태자가 왕에게 아뢰었고, 왕은 곧 허락하였다. 태자가 손수 수레를 몰고 길을 나서자, 모든 신하들이 길에 나와 받들어 영접하고 절까지 하였다. 부인은 손을 내어 휘장을 열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볼 수 있게 하였다. 태자는 여인이 이와 같이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고는, 곧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도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부인이 말하였다.
‘내가 너무나 생각이 없었다.’
태자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 어머니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다른 여인들이겠는가?’
그리고는 그 날 밤으로 곧 나라를 버리고 떠나가 산으로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구경하였다.
그 때 길가에 있는 어떤 나무 밑에 샘물이 있었다. 태자는 나무에 올라갔다가 어떤 범지(梵志)를 보았다. 그 범지는 혼자 수행을 하면서 물 속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나와 밥을 먹고 술법(術法)을 부려 병 하나를 토해내었다. 그 병 속에는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은밀한 곳에 방을 만들고 범지는 그녀와 함께 누웠다. 여인도 또 병 한 개를 토해냈는데, 그 병 안에는 다시 남자가 있었고, 또 그와 함께 누웠다. 그러나 그렇게 눕기를 마치자 여인은 병을 삼켜 버렸다. 조금 있다가 범지도 일어나서 다시
그 여인을 병 속에 넣어 삼키고는 지팡이를 짚고 가 버렸다.
태자가 본국으로 돌아와 왕에게 아뢰어 범지(梵志)와 여러 신하들을 초청하고 세 사람의 음식을 만들어 한쪽 가에 가져다 놓았다. 범지가 벌써 와서 있다가 말하였다.
‘저 혼자만 먹을 것입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범지여, 그대는 마땅히 여자를 토해내어 같이 드시오.’
범지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토해내었다. 태자가 여인에게 말하였다.
‘그대도 마땅히 네 남편을 토해내어 같이 먹도록 하라.’
이와 같이 세 번이나 말하자 그 여인도 하는 수 없이 남편을 토해내어 함께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 가 버렸다.
왕이 태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
태자가 대답하였다.
‘제 어머니께서 나라 안을 구경하러 다니실 때 제가 수레를 몰고 다녔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휘장을 걷고 손을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인들은 욕락(欲樂)이 많다≻고 생각한 끝에 곧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산으로 들어갔다가 범지가 자신의 뱃속에 여인을 숨겨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인의 간사함은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디 바라건대 대왕이시여, 궁중의 여인들을 다 놓아 버리시고 자재(自在)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왕이 곧 후궁(後宮)들에게 칙명(勅命)을 내렸다.
‘너희들은 가고 싶은 곳이 있거든 어디든지 마음대로 가거라.’”
논사가 말하였다.
“천하에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인들이니라.”
또 『구비유경(舊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사성(四姓)이 있었는데, 그는 부인을 감추어 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했다. 그 부인은 하인[靑衣人]들을 시켜 땅 속에 방을 만들게 하고 은(銀)을 다듬는 아이와 몰래 정을 통했다. 남편이 나중에 부인의 일을 알았을 때에 부인이 말하였다.
‘나는 평생 삿된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런 민망한 말은 하지 마십시오.’
남편이 말하였다.
‘나는 너를 믿을 수 없다. 마땅히 너를 데리고 신령스런 나무[神樹]로 갈 것이니, 너는 그곳에서 맹세하라.’
부인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남편은 이레 동안 재(齋)를 실행하기로 마음먹고 비로소 재실(齋室)에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아내는 은(銀)을 다듬는 아이에게 은밀하게 말하였다.
‘너는 거짓으로 미친 사람이 되어 머리를 풀어헤치고 시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거든 누가 되었든 끌어안고 끌고 가다가 버려라.’
남편이 재를 마치고 나와 곧 아내를 데리고 나갔다.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아직 시장 구경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데리고 시장으로 지나가 주십시오.’
그런데 은을 다듬던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녀를 끌어안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면서 땅에 드러누웠다. 부인은 곧 큰 소리로 그의 남편을 불러댔다.
‘어째서 당신은 남이 나를 끌어안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십니까?’
남편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곧 미친 사람인데 뭐 꼭 탓할 필요가 있겠느냐?’
부부가 함께 신령스런 장소에 이르렀다. 그녀는 머리 숙여 절하고 말하였다.
‘나는 태어나서 여태까지 악한 짓이라고는 한 적이 없고, 다만 미친 사람에게 끌어안긴 적은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곧 살아날 수 있었고,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부끄러워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여인들은 간사하기 이와 같아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계실 때였다.
어떤 바라문이 딸 하나를 낳았는데, 얼굴 모양이 단정하고 안색(顔色)이 맑고 깨끗하였으므로 묘광(妙光)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관상쟁이가 그녀의 상(相)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여아(女兒)는 훗날 5백 명의 사내들과 정(情)을 통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말을 들었으므로 그녀의 나이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아무도 청혼(請婚)해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바라문(婆羅門)의 이웃에 살고 있던 상인이 늘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오곤 하였다. 이 상인이 멀리 누각(樓閣) 위에서 이 여인을 바라보고는 곧 욕심이 생겨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구의 딸입니까?’
대답하였다.
‘저 여자는 아무 바라문의 딸입니다.’
‘아내로 데려가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무도 청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물었다.
‘어째서 청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대답하였다.
‘이 여인에게는 한 가지 허물이 있습니다. 관상쟁이가 그녀의 상을 보고 말하기를, ≺이 여인은 훗날 틀림없이 5백 명의 사내들과 정을 통할 것이다≻고 하였으므로 그 때문에 청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때 장사꾼은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사문(沙門)이나 석자(釋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는 곧 그녀와 결혼하였다. 여인이 그 집으로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상인은 일행들과 함께 바다로 가려고 하면서 문지기를 불러 말하였다.
‘나는 바다에 가려고 한다. 어떤 사내든지 억지로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하거든 받아들이지 말라. 다만 사문이나 석자는 예외(例外)이다. 이들은 허물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상인이 떠난 뒤에 어떤 사문이 그 집에 걸식(乞食)을 하러 오자, 이 여인이 사문을 보고 말하였다.
‘나와 함께 애욕(愛欲)을 행합시다.’
모든 비구들은 그 사정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집에는 틀림없이 깨끗하지 못한 행실을 지닌 사람이 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가지 말아야 한다.’
그 여인은 그 후 병에 걸려 그 날 밤에 죽고 말았다. 그 집안 사람들은 그 여인이 장엄했던 도구와 함께 그녀를 시체 버리는 곳에 내다 버렸다.
그 때
5백 명의 도적 떼들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죽은 여인을 보고 곧바로 음심(淫心)이 생겨 모두 돌아가며 음욕(淫欲)을 행하였다. 이 여인은 전에 사문 바라문에게 ‘나와 함께 음욕을 행하자’고 말하였는데, 이 인연 때문에 악한 세계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 나라 북방(北方)에 음란한 용(龍)으로 태어나서 이름을 비마달다(毘摩達多)라고 하였다.”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사음(邪婬)을 저지르면 지옥에 들어가서
저 도엽림(刀葉林)에 오르게 되며
뜨거운 쇠못을 그 입에 박고
구리쇠 녹인 물을 심장에 쏟아 붓는다네.
독한 용이 골수(骨髓)를 부수고
금강(金剛)의 쥐가 5음(陰)을 먹으며
구리 기둥을 타고 오르내리고
쇠 평상 위에 누워 깊숙하게 숨는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몰래하는 음행은 마음과 몸을 어지럽혀
곁과 속 할 것 없이 괴로움을 받으며
나머지 업 때문에 사람의 몸 받더라도
아내로부터 항상 배신을 당한다.
피차(彼此)가 다 시기(猜忌)하는 마음 품나니
누가 그 마음 순종하기를 즐거워하리.
조금이라도 성품에 신령[性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찌 무안하고 수치스러운 마음 없으랴.
감응연(感應緣)[열두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한(漢)나라 때 담생(談生)이 귀신과 혼인한[冥婚] 괴변
진(晋)나라 때 노충(盧充)이 귀신과 혼인한 괴변
진나라 때 하남(河南)의 어떤 남자가 다시 살아난 여인을 얻은 괴변
진나라 때 장세지(張世之)가 귀신과 혼인한 괴변
진나라 때 풍마자(馮馬子)가 다시 살아난 여인을 얻은 괴변
진나라 때 환도민(桓道愍)이, 부인이 거듭 태어난다는 것을 안 괴변
송(宋)나라 때 한백자(韓伯子) 등이 사당[廟]에 있는 여인의 형상과 몰래 혼인한 괴변
송나라 때 홍농(弘農)이 감득(感得)한 귀신과 혼인한 괴변
제(齊)나라 때 왕환(王奐)이 투기해 첩을 죽이자 그 귀신이 몰래 보복 한 괴변
제나라 때 진(陳)씨가 투기하여 전처(前妻)의 아이를 죽이자 그 귀신 이 보복한 괴변
당나라 때 기주(岐州)의 왕지(王志)가 귀신과 혼인시킨 괴변
당나라 때 인인(印人)이 아내가 약속을 어기고 외간 남자와 사통(私 通)하여 귀신과 혼인한 괴변
한(漢)나라 때 담생(談生)이 귀신과 혼인한[冥婚] 괴변
한(漢)나라에 담생(談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이 40에 부인도 없이 항상 경서(經書)를 읽으면서 감격해 하면서 밤을 새워 자지 않았다. 밤중이 되자 어떤 미녀[姝女]가 나타났는데, 나이는 15~16세 정도였고 자색(姿色)이 천하에 비할 데 없이 뛰어났고, 의복 또한 천하에 짝이 없이 화려하였다. 그녀는 담생에게 다가와 마침내 그날 밤에 부부(夫婦)의 연(緣)을 맺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말하였다.
“나는 사람과 밤을 지낸 일이 없습니다. 당신은 명심하고 불을 켜 나를 비추지 마십시오. 그러나 3년 뒤에는 비춰 보아도 좋습니다.”
담생은 그녀와 부부가 되어 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의 나이가 벌써 두 살이나 되었다. 담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가 잠든 틈을 타서 가만히 불을 켜고 그녀를 비춰 보았다. 그녀의 허리 아래 살은 사람과 같았으나, 허리 위로는 마른 뼈뿐이었다. 그녀는 잠이 깨어 마침내 떠나가면서 말하였다.
“당신은 나를 배반했습니다. 내가 변신(變身)할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왜 1년을 더 참지 못하고 결국 나를 비춰 보았습니까?”
그러자 담생이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렸으나 더 이상 붙들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당신과의 의리는 비록 중하지만 이제는 떠나야만 합니다. 그러나 내 아이를 생각하니 걱정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가난하여 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잠깐 나를 따라가십시다. 당신에게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담생이 그녀를 따라 화당(華堂) 난실(蘭室)에 들어가 보니, 기물(器物)들이 범상치 않았다. 그녀는 구슬로 장식한 의복을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이면 넉넉히 살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담생의 옷소매를 찢어 자기가 가지고, 담생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는 거기서 떠나갔다.
그 뒤에 담생은 그 옷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수양왕(睢陽王)이 그 옷을 샀는데, 그 값을 천만 냥이나 치렀다. 왕은 그 옷을 알아보고 말하였다.
“이것은 내 딸의 옷인데 어떻게 시장에서 이 옷을 살 수 있었을까?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내 딸의 무덤을 파고 훔쳐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어 담생을 잡아다가 고문하자, 담생은 저간(這間)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왕은 믿지 않고 곧 딸의 무덤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무덤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무덤을 파 보았더니, 과연 관(棺) 뚜껑 밑에서 담생의 옷소매 자락이 나왔다. 그래서 또 그 아이를 불러 보았더니, 아이의 얼굴이 꼭 딸의 얼굴을 닮았다. 왕은 그제야 그 말을 믿고
곧 담생을 풀어 주고는 이내 사위로 삼았으며, 또 그 아이는 낭중(郎中)으로 삼았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晋)나라 때 노충(盧充)이 귀신과 혼인한 괴변
진(晋)나라 때 노충(盧充)이라는 사람은 범양(范陽) 사람이다. 그의 집 서쪽 30리쯤에 최소부(崔少府:縣尉)의 무덤이 있었다. 노충은 나이 20살 이 되던 해 동지(冬至) 하루 전날, 집 서쪽으로 나가 사냥을 하다가 노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 곧 활을 쏘았다. 노루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아났는데, 노충이 따라갔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어느새 멀리까지 가 버렸다. 갑자기 길 북쪽 1리쯤에 마치 부사(府舍:官廳)와 같이 사방으로 기와집이 빙 둘러 있었고, 노루는 간 곳이 없었다. 그 문 안에 들어서자 방울 하나가 내려와 손님이 왔다고 울리자, 또 어떤 사람이 두건과 새 옷 한 벌을 들고 나와 말하였다.
“부군(府君)께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낭군(郎君)을 맞이하라 하셨습니다.”
노충은 곧 그것을 받아 입고 또 두건을 머리에 쓰고 들어가서 소부(少府)를 뵈었다. 소부가 노충에게 말하였다.
“존부군(尊府君: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께서 내 집을 비루(鄙陋)하다고 아니하시고 나로 하여금 당신을 위해 처녀를 구하여 결혼시키라는 편지를 근자에 보내왔으므로 이렇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편지를 꺼내 노충에게 보여 주었다. 노충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무렵엔 노충은 아직 어렸었으나, 아버지의 글씨는 알아볼 수 있었으므로 곧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최소부는 곧 내노랑(內盧郞)에게 오라고 명령하여 그 처녀를 예쁘게 화장(化粧)시켜 동랑(東廊)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황혼(黃昏)이 되자 내노랑은 처녀에게 말해 화장을 마치라고 하였다. 최소부가 노충에게 말하였다.
“이제 당신은 동랑으로 가 보십시오.”
노충이 이미 동랑에 이르자 신부가 수레에서 내려 자리 끝에 서 있다가 둘이 마주 절했다. 그 때 최소부는 이들을 위해 3일 동안 음식을 공급하고, 3일이 지나자 노충에게 말했다.
“이제 당신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저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마땅히 당신에게 드릴 것이요, 딸을 낳으면 여기에서 기르겠습니다.”
그리고 밖에 명령하여 여러 대의 수레로 이 손님을 전송해 드리라고 하였다. 노충이 곧 하직인사를 하고 나오자, 최소부는 중문(中門)까지 나와 노충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노충이 문을 나오니 푸른 소로 멍에를 메워 놓은 수레 한 대가 있었고, 또 자기가 본래 입었던 옷과 활과 화살 등도 모두 그대로 문 밖에 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있다가 전교(傳敎)를 보내왔는데,
두건을 쓰고 옷을 입고 어떤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서 노충과 서로 문안을 하고 말하였다.
“이제 인척(姻戚) 관계의 시작인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슬픕니다. 지금 옷 한 벌과 담요와 이불을 드립니다. 마음대로 쓰십시오.”
노충이 곧 수레에 오르자 수레는 번개처럼 달려 잠깐 사이에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노충은 저간의 사정을 자세하게 다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4년이 지난 뒤 3월 3일에 노충이 물놀이를 나갔다. 그 때 노충은 갑자기 물가에서 수레 하나가 물에 떴다 잠겼다 하다가 언덕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보였다. 노충이 가서 그 수레의 뒷문을 열어 보니 거기에는 최소부의 딸과 네 살 난 어린아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여자는 아기를 안아다가 노충에게 주고, 또 금완(金鋺)과 시 한 수(首)를 주었는데, 그 시는 이러했다.
번쩍번쩍 하는 영지(靈芝)의 자질이여
그 빛과 아름다움은 어찌 그리 무성한고.
아름다운 꽃이 그 때에 피어났고
아름다운 만남이 신기(神奇)를 나타냈네.
꽃봉오리 맺어 미처 피지 못했더니
한여름에 서리 만나 시들고 말았네.
빛나는 그 영화는 영원히 멸하였거니
이 세상 길에서 베풀 것 길이 없었네.
음양(陰陽)의 돌아감을 깨닫지 못했는데
갑자기 철인(哲人)이 영광스럽게 오셨었네.
지금에 한 번 이별한 뒤로
어떻게 다시 만날 때를 얻으리.
노충이 그 아이와 금완과 시(詩)를 받자, 그녀는 갑자기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 뒤에 노충은 수레를 타고 시장에 나가 그 금완을 팔려고 내놓고는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어떤 여종이 이 금완을 알아보고 집에 돌아가 그 상전에게 아뢰었다.
“시장에서 어떤 사람이 수레를 타고 와서 최여랑(崔女郞)의 관(棺)에 넣었던 금완을 팔고 있었습니다.”
상전은 곧 최씨의 친이모였다. 이모가 곧 아이를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과연 여종의 말과 같았으므로 곧 그 수레에 올라가서 성명(姓名)을 통하고 노충에게 말하였다.
“옛날 내 이자(姨姊)인 소부(少府)가 낳은 딸이 이내 죽었으므로 모두들 슬퍼하면서 금완 하나를 그 관(棺) 안에 넣어 주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금완을 얻은 내력을 말해 주십시오.”
노충이 사실대로 다 말해 주었는데 아이가 또한 자꾸 울었기 때문에 곧 그 아이를 잘 싸서 안고 돌아가 어머니에게 사실을 아뢰었다. 어머니는 노충으로 하여금 그 아이를 집으로 맞이해 오라 하여 5친(親)이 모두 모였다. 아이는 최씨의 얼굴을 꼭 빼 닮았고, 또 노충의 얼굴도 닮았으니, 아이와 금완이 모두 그 증거가 되었다.
이모가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내 외생(外甥)이요, 자는 온휴(溫休)이다.”
온휴란 곧 유혼(幽婚)이라는 뜻이다. 아이는 커서 군수가 되었고, 그 자손들은 지금까지 대대로 벼슬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자손 자간(子幹)은 천하에 유명한 사람이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나라 때 하남(河南)의 어떤 남자가 다시 살아난 여인을 얻은 괴변
진(晋)나라 무제(武帝) 때에 하간군(河間郡)에 사는 어떤 남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좋아하여 결혼(結婚)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남자가 군(軍)에 나간 지 여러 해가 되었으므로 여자의 부모는 그만 그 딸을 다른 곳에 시집보냈는데, 얼마 안 되어 딸은 근심하다가 죽었다. 남자가 군에서 돌아와서 이 사실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무덤에까지 가서 실컷 울었다. 그런데도 감정을 억제할 길이 없어 마침내는 무덤을 파고 관(棺)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그 여자는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남자가 그 여자를 업고 집에 돌아와 며칠 동안 조리하고 간호하자 평상시처럼 회복되었다.
그러자 그 남편이 그 남자의 집에 가서 자기 부인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남자가 거절하면서 말하였다.
“그대 부인은 벌써 죽었다. 천하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들었는가? 이것은 하늘이 내게 준 것이니 그대의 아내가 아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소송을 일으켰다. 그러나 군현(郡縣)에서는 판결을 내지 못하고 정위(廷尉)에게 물었고, 정위는 다시 나라에 글을 올려 판결이 내려졌다.
“정성이 지극하여 천지(天地)를 감동시켰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이치[常理] 밖의 일이니, 예(禮)로써 처리할 문제가 아니며 법(法)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무덤을 판 남자에게 돌아갔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나라 때 장세지(張世之)가 귀신과 혼인한 괴변
진(晋)나라 때 무도(武都) 태수(太守) 이중문(李仲文)이 태수로 있을 때에 열여덟 살 된 딸이 죽어 군(郡)의 성(城) 북쪽에 임시로 매장[假葬]을 했다. 그 뒤에 장세지(張世之)라는 사람이 뒤를 이어 그 군의 태수가 되었다. 세지의 아들 자장(子長)이 나이 스무 살에 시종(侍從)이 되어 말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 마구간 옆의 방사(房舍)에 살고 있었다. 그 때 그의 꿈에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나이는 17ㆍ18살쯤 되어 보였고, 얼굴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자장에게 말하였다.
“나는 먼저 부군(府君:太守)의 딸인데 불행하게도 일찍이 죽었습니다. 마침 지금 다시 살아났는데, 마음에 당신이 사랑스럽고 또 좋아서 이렇게 온 것입니다.”
이렇게 5ㆍ6일 밤을 계속하다가 한번은 갑자기 낮에 나타났는데, 그 옷이 향기롭고 매우 독특하였다. 드디어 부부가 되어 같이
자고 나자 옷이 다 더러워지면서 마치 처녀와 같았다.
뒤에 중문은 딸의 여자 종을 보내 무덤을 살펴보게 하였다. 여종이 분부를 받고 딸의 묘소로 가다가 세지의 집을 지나게 되어 그 부인에게 문안하러 마구간에 들어갔다가 자장의 침상 아래에서 그 여자의 신 한 짝을 보았다. 여종은 그것을 들고 울부짖으면서 말하였다.
“누가 무덤을 파헤쳤구나.”
그리고는 신을 가지고 돌아가 중문에게 보였다. 중문은 깜짝 놀라 사람을 보내어 세지에게 물어보게 하였다.
“당신 아들이 어떻게 내 죽은 딸의 신을 가지게 되었는가?”
세지는 그 아들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아들이 저간에 일어났던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문중과 세지는 모두 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그 딸의 관(棺)을 열고 보았다. 여자의 몸에는 이미 살이 생겨 있었고 그 얼굴 모습도 생시(生時)나 다름이 없었으며, 오른 발에는 신이 신겨져 있었으나 왼발에는 신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 그녀는 결국 죽어 살이 문드러지고 다시 살아나지 못했으니, 이 한스러운 마음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진나라 때 풍마자(馮馬子)가 다시 살아난 여인을 얻은 괴변
진(晋)나라 때 동평(東平) 사람 풍효장(馮孝將)이라는 이가 광주(廣州) 태수가 되었다. 그 아들 마자(馬子)가 나이 스무 살에 혼자서 마구간 옆의 방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어떤 여자를 보았다. 나이는 17~18살쯤 되어 보였는데, 그 여인이 마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전임(前任) 태수인 북해(北海) 서현방(徐玄方)의 딸입니다. 불행하게도 일찍이 요절하고 말았는데, 죽은 뒤로 4년 동안 이곳에 드나들다가 귀신에게 억울하게 죽어 장부[案主]에 80여 번이나 그 이름이 기재되었습니다. 부디 나를 다시 살려 주시면 반드시 내가 의지하고 살 당신[馬子]이 있으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요, 또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어 무엇이나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이니 나를 살려 줄 수 있겠습니까?”
마자가 대답하였다.
“좋다. 네 말대로 하겠다.”
그러자 그녀는 마자의 기일을 정하고 그 때는 꼭 나가겠다고 하였다.
약속한 기일이 되자 마자의 평상 앞 땅바닥에 머리털이 나서 지면과 가지런하였다. 사람을 시켜 쓸어내게 하면 그 머리칼은 더욱 분명해졌다. 마자가 비로소 그 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좌우의 사람들을 다 물리치자, 다음에는 차츰 이마가 나오고 다음에는 머리와 얼굴이 나왔으며, 다음에는 목이 나오고, 그리하여 온몸이 다 나왔다.
마자가 그녀를 평상에 앉히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참으로 미묘한 일이었다. 그녀는 결국 마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항상 경계해 말하였다.
“나는 허(虛)를 숭상하고 스스로 절도를 지킵니다.”
물었다.
“어느 때나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대답하였다.
“마땅히 본래의 생(生)대로 나갈 것이나 생일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마구간으로 갔다. 그들이 말하는 소리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생일을 계산해 주었고, 또 그녀가 오거든 어떻게 기르라는 법까지 다 마자에게 가르쳐 주고는 절을 하고 돌아갔다.
마자는 그녀의 말을 따라 그녀가 온다고 한 날에 붉은 장닭 한 마리와 기장밥 한 상과 청주 한 되로 마구간에서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를 마친 뒤에 관(棺)을 파내어 열어 보았다. 여자의 몸과 얼굴은 생시(生時)와 똑같았다. 천천히 그녀를 안아 내어 모포 휘장 안에 두었더니, 심장 밑이 따뜻해지고 입에는 숨기가 있었다. 여자 종 네 사람을 시켜 돌보아 잘 기르게 하고, 항상 푸른 양(羊)의 젖을 그 여자의 눈에 넣었더니 비로소 입을 열고 죽을 먹었으며, 차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지 2백 일 뒤에는 지팡이를 집고 일어나 다녔고, 1년 뒤에는 안색과 피부와 기력이 다 예전과 같아졌다. 그래서 곧 서현방에게 사람을 보내 알려서 온 집안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리고 좋은 날을 가려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어 그 부부 사이에 2남 1녀가 태어났다. 장남의 이름은 원경(元慶)이라 했는데, 영가(永嘉:晉 懷帝의 年號) 초년(307)에 비서랑중(秘書郞中)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이름이 경도(敬度)라 했는데, 태부연(太傅椽)이 되었으며, 딸은 제남(濟南)의 유자언(劉子彦)에게 시집갔으니, 그는 징사(徵士) 연세지(延世之)의 손자였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나라 때 환도민(桓道愍)이, 부인이 거듭 태어난다는 것을 안 괴변
진(晋)나라 환도민(桓道愍)이라는 사람은 초인(譙人)이다. 그는 융안(隆安:東晋 安帝의 年號) 4년에 아내를 잃고 도민은 마음속으로 정을 잊지 못하고 슬퍼해 마지않았다. 그 해 어느 날 밤에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병풍(屛風) 위로 어떤 사람의 손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깜짝 놀라 일어나서 촛불을 들고 병풍 밖을 비춰 보았더니 바로 그 부인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잘 화장하였는데 생시(生時)와 다름이 없었다. 도민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녀를 끌어안고 같이 누워서 가고 돌아오는 일과 죽고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민이 물었다.
“그대는 죽은 뒤로 말소리나 형상이 전연 없더니 오늘 밤에는 어떻게 갑자기 돌아왔는가?”
그녀가 대답하였다.
“얼마나 오고 싶었겠습니까마는 인간과 귀신은
세계가 다르고, 각각 소속된 데가 따로 있어 자유롭지 못했을 따름이었습니다. 나는 생시에 조금도 다른 죄를 지은 일이 없었는데, 다만 당신이 여자 종을 사랑하지 않나 의심하고 시기 질투한 그 마음 때문에 지옥의 과보를 받았고, 지옥에서 막 벗어나 지금 인간 세상에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와서 당신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도민이 다시 물었다.
“장차 어디에 태어날 것인가, 혹 찾아가면 알 수 있겠는가?”
그녀가 대답하였다.
“다만 장차 태어날 것이라는 것만 알 뿐, 어디에 태어날지는 모릅니다. 한 번 세상 사람이 되면 다시는 전생(前生) 일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서로 찾아 알 수 있겠습니까?”
새벽이 되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도민은 문 밖까지 전송하고 돌아와 조금 시간이 흐르자 그때서야 크게 무서운 기가 들었고, 여러 날 동안 정신이 몽롱했다고 한다.
송(宋)나라 때 한백자(韓伯子) 등이 사당[廟]에 있는 여인의 형상과 몰래
혼인한 괴변
송(宋)나라 함녕(咸寧)5) 때에 태상경(太常卿) 한백(韓伯)의 아들 아무개와 회계 내사(會稽內史) 왕온(王蘊)의 아들 아무개와 광록대부(光祿大夫) 유탐(劉耽)의 아들 아무개 등이 다 함께 장산묘(蔣山廟)에서 놀았다. 그 사당에는 여러 부인들의 상(像)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매우 단정(端正)하였다. 이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제각기 부인들의 초상을 가리키면서 제 아내라고 말하면서 짝을 지어 희롱하였다. 그날 밤에 이 세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장후(蔣侯)가 전교(傳敎)를 보내어 보게 하고 말하였다.
“우리 집 딸아이들이 모두 추하게 생겼는데 외람(猥濫)되게 그대들이 어여쁘게 보아 준 영화[榮顧]를 입었습니다. 아무 달 아무 날에 꼭 여러분들을 다 맞이하겠습니다.”
아무개 등은 그 꿈이 너무도 이상하다고 지적하면서 시험삼아 서로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세 사람이 모두 이런 꿈을 꾸었는데 한결같이 똑같은 꿈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매우 두려워하면서 3생(牲)을 장만해 가지고 사당에 가서 사죄하고 빌었다. 그리고 나서 세 사람 모두는 또 꿈을 꾸었는데, 장후가 직접 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이 이미 진실로 내 딸들을 탐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보려고 하기에 벌써 날까지 받아 놓았는데 이제 와서 후회(後悔)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용납(容納)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에 이들은 모두 죽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지괴전(志怪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송나라 때 홍농(弘農)이 감득(感得)한 귀신과 혼인한 괴변
송(宋)나라 때의 홍농(弘農)은 화음동향(華陰潼鄕)의 양수리(陽首里) 사람이다. 그는 여덟 섬[石]의 물을 먹고 수도선(水道仙)을 얻어 하백(河伯 :물귀신)이 되었다. 『유명록(幽冥錄)』에서 말하였다.
“여항현(餘杭縣)
남쪽에 상상(上湘)이 있고 그 상상의 중앙은 못이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구경하러 갔는데, 3~4명을 데리고 잠촌(岑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술에 조금 취해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마침 몹시 더운 때라서 그는 말에서 내려 물 속에 들어가 돌을 베고 잠이 들었다. 말이 고삐를 끊고 달아나므로 종자(從者)들이 그 말을 좇아갔다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사람도 보이지 않고 말도 다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다 바라보니 어떤 여자아이가 다가오는데 나이는 16~17살쯤 들어 보였다. 그 여자아이가 말하였다.
‘여랑(女郞)은 재배(再拜)드립니다. 날은 이미 저물어가고 여기는 매우 무서운 곳인데 당신에게 무슨 계획이 있으십니까?’
그는 여자아이에게 도리어 물었다.
‘여랑의 성은 무엇인가? 어째서 갑자기 와서 그렇게 묻는가?’
또 한 소년이 있었는데, 나이는 13~14살쯤 들어 보였다. 매우 똑똑한 소년으로서 새 수레를 타고 왔는데 수레 뒤에는 사람들이 한 스무 명쯤 따라왔다. 소년은 그를 불러 수레에 오르라고 하고는 말하였다.
‘대인(大人)께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이내 수레를 돌려 달려갔다. 가는 도중의 길목과 역(驛)마다 횃불을 밝혀 놓았는데, 수레는 곧 성(城)에 이르더니 성안으로 들어가 청사(廳舍)로 갔다. 청사 위에는 신번(信幡)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깃발에는 하백신(河伯信)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나이가 한 30살쯤 되어 보였고, 얼굴 모습은 마치 그려놓은 것과 같았으며, 많은 시자(侍者)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가 이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면서 사람을 시켜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나에게 어린 딸이 있는데 꽤 총명하오. 당신에게 아내[箕掃]로 드리고 싶소.’
이 사람은 그가 신(神)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곧 음식과 모든 잔치 준비를 하고 낭중(郎中)으로 데리고 가서 결혼을 시켰다. 결혼예식이 끝나자 베로 만든 홑옷과 비단으로 만든 겹옷, 그리고 비단 속옷ㆍ비단 적삼ㆍ비단 잠방이와 신 따위를 갖추어 보내왔는데 모두 그 품질이 최상이었고, 또 열 명의 소리(小吏)와 수십 명의 하인[靑衣]을 보내왔다. 신부의 나이는 18~19살쯤 되어 보였는데, 자태와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 3일 뒤에 배각(拜閣)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4일째 되는 날 그가 말하였다.
‘예(禮)에 정해진 기한이 이미 다 되었으니, 이제는 돌아가야 합니다.’
신부는 금사발[金甌]과 사향주머니[麝香囊]를 예물로 주고 남편과 이별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또 돈 10만 냥과 약방(藥方)이 적힌 책 3권을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공덕을 널리 펴십시오.’
또 말하였다.
‘10년 후에 다시 맞이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집에 돌아왔으나 따로 결혼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하고 출가하여 도인이 되었다. 그 3권의 약방이라는 것은, 1권은 맥경(脈經)이었고, 1권은 탕방(湯方)이었으며, 1권은 환방(丸方)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병든 사람을 치료하였는데, 모두 신비한 효험[神驗]이 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어머니가 늙은 데다가 또 형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 때문에 곧 집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벼슬길에 올랐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제(齊)나라 때 왕환(王奐)이 투기해 첩을 죽이자 그 귀신이 몰래 보
복한 괴변
제(齊)나라 때 낭야(狼邪)의 왕환(王奐)은 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로서 불교 경전[釋典]을 독실하게 믿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가 너무 깊어 곧 큰 서원을 잊어버렸다. 한번은 서재 안에서 애첩(愛妾)을 시켜 코밑수염을 깎고 있었는데, 갑자기 까마귀가 황매(黃梅)를 물고 뜰 위를 지나가다가 떨어뜨렸다. 왕환은 그것을 자기의 애첩이 몰래 누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신호라고 생각하고 곧 종을 시켜 밖에 나가 엿보게 했다. 그 때 마침 어떤 사람이 혼자서 집 울타리를 향해 혼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종이 곧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 사람은 화를 내고 무례하게 굴면서 이내 그 근처로 달아났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 일을 알리자 왕환은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애첩(愛妾)을 호되게 고문하면서 따져 물었다. 첩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호소했으나 왕환은 끝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마침내 뜰 아래로 끌어내어 매로 때려서 죽이라고 했다. 첩은 옷을 벗고 맹세하여 말하였다.
“오늘 나의 이 죽음은 참으로 억울하다. 만일 인천(人天)의 도(道)가 있다면 관리[官]로 하여금 알게 하리라.”
그 뒤에 그는 그 첩이 자주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얼마 뒤에 왕환은 옹주(雍州) 자사(刺史)로 부임했다. 성질이 점점 난폭해지고 이상해지더니,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아무 까닭 없이 소부(小府)를 때려 죽였다. 장사(長史) 유흥조는 그가 반역(反逆)하려고 한다고 무고(誣告)하고, 어사중승(御史中丞)6) 공치규(孔稚珪)가 이것을 상주(上奏)하자, 세조(世祖)는 중서(中書)7) 사인(舍人) 여문현(呂文顯)과 직합장군(直閤將軍) 조도강(曹道剛)을 보내 군사를 데리고 가서 왕환을 구금하게 하였다. 왕환의 아들 표(彪)는 본래 성격이 흉포하였데, 왕환의 사위 은예(殷叡)와 함께 왕환에게 권하였다.
“조도강과 여문현이 지금 여기에 왔지만, 실은 왕명(王命)을 받고 온 것이 아니고 거짓 변란을 일으키려는 것 같으니, 이 사실을 적어 빨리 상주(上奏)하십시오.”
그러자 왕환이 이 말을 곧이 믿고 즉시 천여 명의 사람을 시켜 성문(城門)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표(彪)는 결국 관군(官軍)과 싸우다가 패해
달아났고, 영만장사(寧蠻長史) 배숙업(裵叔業)은 성안에서 군사를 일으켜 왕환을 잡아 죽였다. 그 때 사람들은 다 이것을 그 애첩의 보복이라고 했다. [이상 두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제나라 때 진(陳)씨가 투기하여 전처(前妻)의 아이를 죽이자 그 귀
신이 보복한 괴변
송(宋)나라 동해(東海)의 서(徐)씨 아무개는 전처(前妻)가 허(許)씨였다. 그들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을 철구(鐵臼:쇠 절구)라고 했다. 전처 허씨가 죽자 서씨는 다시 진(陳)씨를 후처(後妻)로 맞이했다. 진씨는 성질이 흉악하고 포학(暴虐)하여 어떻게든 철구를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진씨는 아들을 낳고 축원하였다.
“네가 만일 철구를 없애지 않으면 내 자식이 아니다.”
그 일로 인해 그 아들의 이름을 철저(鐵杵:쇠 절구공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절구공이로 절구[臼]를 찧고 싶다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철구를 때리는 등 온갖 고통을 주었다. 배가 고파도 밥도 주지 않고 추워도 이불을 주지 않았다. 아무개는 성질이 미련하고 나약하며, 또 자주 집을 비우고 없었다. 후처 진씨는 마음대로 그 포악함을 자행(恣行)할 수 있었으므로 철구는 끝내 굶다가 매를 맞아 죽었는데, 그 때 철구의 나이 16세였다. 10여 일 뒤에 철구의 귀신이 갑자기 집에 돌아와 진씨의 평상에 올라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철구이다. 사실 조그만 죄도 없이 나는 억울하게 죽었다. 우리 어머니가 그 원한을 하늘에 호소하여 지금 천조(天曹)의 부(符)를 얻어 가지고 철저를 잡으려고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철저에게 병(病)을 주어 내가 당한 만큼의 고통을 줄 것이다. 데리고 갈 기일이 이미 결정되어 있으니, 나는 그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것이다.”
그 말소리는 생시(生時)와 똑같아서 집안 사람들과 손님들은 그 형상은 보지 못하였지만 모두들 그가 하는 말은 들었다. 이리하여 귀신은 항상 대들보 위에 거주하고 있었다. 진씨는 꿇어앉아 제 뺨을 때리면서 사과하고 그를 위해 제상[祭奠]을 차렸다.
귀신이 말하였다.
“꼭 이와 같이 할 것 없이 차라리 나를 굶겨 죽여라. 어찌 한 상의 음식으로 그 죄를 사하려고 하느냐?”
진씨는 밤이 깊어지자 가만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귀신이 소리를 가다듬어 말하였다.
“어찌 감히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느냐? 나는 지금 네 집의 기둥을 끊으리라.”
갑자기 톱질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톱밥도 떨어지더니, 기둥 꺾이는 소리가 나면서 정말 집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달려나와 촛불을 켜들고 비추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귀신은 또 철저를 꾸짖었다.
“너는 이미 나를 죽였으니 집안에 앉아서 마음이 통쾌하겠구나.
내가 네 집을 불살라 버릴 것이다.”
집은 곧 불에 타면서 연기와 불꽃이 맹렬하므로 집 안팎 사람들이 모두 당황해 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불은 저절로 꺼지고 띠로 이은 지붕도 그대로 있어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다. 이렇게 날마다 꾸짖다가 때로는 노래도 불렀다. 그 노래는 이러했다.
복사꽃과 오얏꽃은 곱기도 한데
서리 내리면 그 때는 어찌할거나.
복숭아와 오얏 열매는 좋지만
때 아닌 서리에 떨어지고 마는구나.
이 노랫소리는 너무나 애절하여 마치 자신이 성장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그 때 철저는 여섯 살이었는데 귀신이 이르자 갑자기 병에 걸려 몸이 아프고 배가 부어오르며, 상기(上氣)가 되어 음식을 먹는 것까지 방애(妨碍)되었다. 또 귀신이 자꾸만 때려 몸의 군데군데가 검푸르게 되더니, 한 달 남짓 지나자 철저는 죽고 말았다. 그제야 귀신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이 한 가지 증험은 『원혼지(寃魂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때 기주(岐州)의 왕지(王志)가 귀신과 혼인시킨 괴변
당(唐)나라 현경(顯慶) 3년(658)에 기주(岐州) 기산현(岐山縣) 왕지(王志)는 익주(益州) 현령으로 있다가 임기가 차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얼굴이 아름다웠으나 채 결혼도 하기 전에 객지에서 죽었다. 그래서 면주(綿州)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그의 관(棺)은 절에 두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여러 달이 흘렀다.
그 때 그 절에는 어떤 학생(學生)이 있었는데, 그 학생은 어느 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었다. 초저녁에 그 죽은 여자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그의 방에 들어와 예의를 갖추고 나서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한 번 만나고 싶었노라고 이야기했다. 학생은 그 청을 받아들여 서로 그렇게 알고 친하게 지냈다. 여러 달 동안 구리거울은 같이 쓰고, 수건과 빗은 각기 따로 하나씩 가지고 썼다. 그녀는 좋은 세계로 가려는 일념으로 학생과 함께 지내면서 애절한 정(情)을 다 펴고는 은밀하게 둘이서만 하직 인사를 나누고 이별했다.
그녀의 집안 사람들은 그녀가 쓰던 물건들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사방으로 찾아다니게 하였는데, 그 학생의 방에서 그 물건들을 발견하고는 사람들을 시켜 그 학생을 결박해 가지고 끌고 와서 그 학생을 때리면서 도적으로 몰았다. 학생은 저간에 있었던 사정을 다 이야기하고 한참 있다가 다시 말하였다.
“낭자에게서 얻은 물건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낭자는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눌 적에 자기의 상하의(上下衣) 두 벌을 정표[信物]로 여기에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사람을 보내 딸이 들어 있는 관(棺)을 열어 보게 하였는데, 과연 그가 말한 그 옷 두 벌이 없었고, 또 여자의 몸에는 사람이 사랑한 흔적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이런 증거를 보고 나서는 그 학생을 풀어 주고 그 학생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 사는 사람인가?”
학생이 대답하였다.
“나는 본래 기주(岐州) 사람입니다. 그런데 남방(南方)으로 부임하시는 아버지를 따라왔다가 부모님께서 모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방편(方便)상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에게 옷과 말을 주고 행장(行裝)을 꾸려 준 다음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학생을 사위로 삼아 매우 어여삐 여기고 사랑했다고 한다.[서명사(西明寺) 법운(法雲) 스님의 고향은 재주(梓州)인데 그가 이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당나라 때 인인(印人)이 아내가 약속을 어기고 외간 남자와 사통(私
通)하여 귀신과 혼인한 괴변
당나라 무덕(武德:唐 高祖의 年號) 연간에 인인(印人) 위(韋)씨가 한 부인과 서로 절대 배반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나 위씨의 사랑이 점점 식어가자 그 부인이 원한을 품었다. 그런데 위씨는 도리어 그 부인이 자기를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 끝에 그만 부인의 목을 졸라 죽였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난 뒤에 위씨의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문둥병이 되어 온몸에 종창이 나더니 죽고 말았다.
이것은 위효해(韋孝諧)가 임(臨)에게 이야기해 준 것인데, 그는 위씨의 종형(從兄)이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7) 망어부(妄語部)[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인간 세상에 몸을 받아 이런 더럽고 혼탁한 시대를 만나고, 바탕이 거짓인 몸을 받아 항상 허망하게 속이는 경계에 있게 된다.
그런 까닭에 망령된 생각을 허망하게 얽어 미혹(迷惑)과 착각이 번갈아 들고, 마음을 어기고 경계를 등져서 말을 했다 하면 다 거짓말만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속이고 유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잘못 이해하게 한다.
그리하여 온갖 고통[萬苦]이 다투어 얽어매고, 온갖 근심[百憂]이 모두 모여 허망한 원인[因]을 심고, 보잘것없고 하천(下賤)한 과보를 감득(感得)한다. 지옥(地獄)의 중(重)한 고통에다 다시 끓는 물과 숯불덩어리를 가하나니, 법(法)을 미혹시키고 참다운 것을 혼란하게 하는 것은 바로 거짓말 때문이다.
(2) 인증부(引證部)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일체 중생들을 고달프게 하고
자신도 항상 칠흑같이 깜깜한 세계에 있어
목숨이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네.
거짓말의 칼은 제 자신의 혀를 베나니
어떻게 혀가 끊어지지 않으리.
만약 거짓만을 말하면
곧 진실의 공덕을 잃게 된다.
만약 누구든지 거짓말을 하면
그의 입 안엔 독사(毒蛇)가 있고
칼도 입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불꽃도 입 속에서 타오른다.
입 속에 있는 독이 곧 진정한 독이요
독사에게 있는 독은 독이 아니라네.
입 속의 독은 중생들을 베어 버리나니
목숨을 마치고 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만약 누구든지 거짓말을 하면
그의 입 안에서는 고름이 나오고
그의 혀는 곧 지옥[泥犁]이며
혀도 또한 훨훨 타오르는 불과 같다네.
어느 누구든 거짓으로 남을 참소(讒訴)하면
그 사람은 속히 천해져서 천대받고
착한 사람들이 버리고 떠나가며
하늘들도 곧 거두어 보호하지 않는다.
항상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거나
여러 중생들과 함께 악한 짓을 하거나
방편으로 다른 사람 괴롭히고 혼란케 하면
이로 인하여 지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지
거짓말만 하기를 좋아하면
그는 현보(現報)를 얻어
욕설을 듣거나 형색이 추악(醜惡)해진다.
그의 말이 비록 진실한 것일지라도
사람들은 믿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요
온갖 사람들이 다 미워할 것이며
그와 만나는 것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현세(現世)의
악한 업[惡業]의 과보라고 말한다.
이 몸을 버린 뒤에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큰 고초를 당하고
배고프고 목이 말라 매우 괴로워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후세(後世)의
악한 업의 과보라고 말한다.
만약 사람의 몸을 얻게 되더라도
그의 입은 온전하지 못할 것이요
그가 하는 말이 비록 진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모두 다 믿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보는 사람마다 좋아하지도 않고
아무리 바른 법을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듣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한결같이 약한 사람은
그 인연(因緣)의 힘 때문에
일체의 바깥 물건과
생활필수품들이 줄어들거나 적어진다.
이것으로써 증명하여 알 수 있나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3세(世)에서 고통을 받는다.
또 『선비요경(禪秘要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부 대중들은 부처님의 법 가운데에서 이양(利養)만을 위하기 때문에 탐하고 구하여 만족할 줄 모르며, 좋은 이름이 널리 퍼지기만을 좋아하기 때문에 거짓되게 악한 짓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좌선(坐禪)을 하지 않으면서 몸과 입을 방일(放逸)하게 놀리고 행동도 방일한 짓만 하며, 이양만을 탐하기 때문에 스스로 좌선을 한다고 말하나니, 이와 같은 비구는 투란차(偸蘭遮)8)를 범하는 것이다.
때를 넘기고도 말하지 않고 스스로 뉘우치고 고치지 못한 채 잠깐 동안을 지내는 사이에
13승잔(僧殘)을 범(犯)하게 되며, 만약 하루나 이틀을 지나게 되면, 이 비구는 바로 하늘과 인간 세상의 도적이요, 나찰(羅刹)이며 괴회(魁膾:死刑 執行人)로서 틀림없이 악한 세계에 떨어지는 커다란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임을 꼭 알아야만 하느니라.
또 만약 비구나 비구니가 실제로는 백골(白骨)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 백골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나아가 아나반나(阿那般那)9)에 이르기까지 이런 거짓말을 하면, 이러한 비구나 비구니들은 모든 하늘ㆍ용ㆍ귀신 등을 속이고 현혹(眩惑)시키는 것이니, 이런 악한 무리들은 바로 마왕 파순(波旬)의 종자이니라.
거짓말만 하는 까닭에 스스로도 ‘나는 부정관(不淨觀)10)을 증득했다거나 나아가 정법(頂法)11)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증득했노라’고 거짓말을 하면,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다 목숨을 마친 뒤에 번개와 비보다 더 빠르게 틀림없이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질 것이요, 그 지옥에서 1겁(劫)의 수명(壽命)을 마치고 그 지옥을 나오게 되면, 아귀(餓鬼)의 세계에 떨어져서 8천 살 동안 뜨거운 쇠로 만든 탄환을 먹으면서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아귀의 세계를 벗어나면 다시 축생(畜生)의 세계에 떨어져서 몸으로 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고, 또 그 세계에서 죽으면 다시 가죽이 벗겨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5백 생(生) 동안 지내고 나서 다시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면, 귀머거리[聾]ㆍ봉사[盲]ㆍ벙어리[瘖瘂]ㆍ곱사등이[癃]가 되거나 온갖 질병을 앓게 되리니,12)
이와 같이 겪게 되는 괴로움은 이루 다 갖추어 기록할 수 없느니라.”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감로(甘露)와 독약(毒藥)은
모두 다 사람의 혀 안에 있다.
감로는 곧 진실한 말이요
거짓말은 곧 독약이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감로가 필요하면
그 사람은 진실한 말에 머물러야 하고
만약 어떤 사람이든 독약이 필요하거든
그 사람은 늘 거짓말을 하여라.
독약이야 사람을 반드시 죽이지 못하지만
거짓말을 하면 결정코 사람을 죽이나니
만약 누구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를 죽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네.
거짓말은 자기 자신에게도 이롭지 못하지만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
나와 남이 다 즐겁지 못하거늘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든지 분별을 잘못하여
거짓말하기를 기뻐하고 좋아하면
죽은 뒤에 날아서 불 칼 위에 떨어지리니
이와 같은 고뇌(苦惱)를 받게 되리라.
독으로 해치는 일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오직 하나의 몸만을 죽일 수 있을 뿐이나
거짓말을 하여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백천의 몸을 모두 무너뜨린다.
또 『불설수뢰경(佛說須賴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까지도 속이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남의 몸을 더럽게 하고 마음과 입에 신용(信用)이 없어 그 마음으로 하여금 괴롭게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입을 더럽게 하고, 그 몸도 천신(天神)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온갖 선(善)의 근본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어리석고 깜깜하게 만들어 착한 길을 잃어버리게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일체 악(惡)의 근본으로 선행(善行)과 한거(閑居)의 근본을 단절하게 하느니라.’”
또 『정법념경』에서 염라왕(閻羅王)이 죄인을 꾸짖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진실한 말은 안락(安樂)을 얻고
진실한 말은 열반(涅槃)을 얻지만,
거짓말은 고통의 과보를 내나니
지금 여기에 와서 그 과보를 받네.
만약 거짓말을 버리지 않으면
곧바로 온갖 고통를 받게 된다.
진실한 말은 반드시 사지 않더라도
얻기가 쉬워서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진실한 말은 다른 나라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는 것도 아니거늘
무슨 까닭에 진실한 말은 버리고
거짓말하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가?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곧 지옥의 인연을 짓는 것이다.
그 인연 전에 이미 지은 것이니
울부짖은들 무슨 이익 있으리.
거짓말은 제일 가는 불이라서
오히려 큰 바다도 태울 수 있다.
게다가 거짓말을 한 사람까지도 태우는 것이
마치 풀과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다.
만약 누구든 진실한 말을 버리고
게다가 또 거짓말까지 잘하면
이와 같이 어리석고 악한 사람은
보배 버리고 돌을 취하는 것과 같네.
만약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고
저 지옥에 대하여 애착 가지면
자신이 한 거짓말의 불이
이곳에서 제 자신을 태우리.
진실한 말은 참으로 얻기 쉽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다 장엄(莊嚴)하거늘
진실한 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하면
어리석음 때문에 이곳[地獄]에 오게 되리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진실한 말은 제일의 계율이요
진실한 말은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이며
진실한 말은 적은 것이라도 큰 것과 같건만
거짓말을 하게 되면 지옥에 들어가고 만다.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만약 설법(說法)ㆍ의논(議論)ㆍ전하는 말 등의 일체 시비(是非)에 대하여 자신이 옳다고 자칭하지도 말고, 항상
그 근본을 찾아 거기에 몸을 의탁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끼가 입 속에 있게 되리라.”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훌륭한 성[高姓]을 가진 사람에게 하천(下賤)하다 말하고, 두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 애꾸눈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거짓말이 된다.
또 한쪽 눈을 가진 사람을 보고 ‘너는 애꾸눈이다’고 말하면, 이것은 모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죄를 짓는 것이다.”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거짓말로 남을 교묘하게 속이면
지옥에서 죄를 받아 쓸모없게 되리니
불꽃의 톱으로 그 몸을 가르고
뜨거운 쇠붙이로 그 혀를 갈 것이다.
그의 몸에 녹인 쇳물을 붓고
강한 쇠로 그 몸을 짓누르며
비통하게도 골수를 부수니
신음으로 항상 오열하게 된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거짓말을 하면 3도(塗)에 들어가나니
3도에 들어가는 죄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남은 업(業)이 있어 사람의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비방을 당하거나 항상 근심으로 번뇌하게 된다.
도리어 남에게 속임을 당해
한스러운 마음이 뜨거운 불과 같나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남을 탓하지 말라.
결과를 증험하여 원인을 반드시 없애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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