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73권
법원주림 제7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 십악편(十惡篇) ①[여기에는 1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업인부(業因部) 과보부(果報部)
살생부(殺生部) 투도부(偸盜部) 사음부(邪婬部)
망어부(妄語部) 악구부(惡口部) 양설부(兩舌部)
기어부(綺語部) 간탐부(慳貪部) 진에부(瞋恚部)
사견부(邪見部)
1) 술의부(述意部)
슬프구나. 미혹한 무리들은 장애가 두터워 3거(車)1)를 버려두고 타지 않으며, 고해(苦海)에 빠져서 불에 타고 문드러지는 데에 몸을 맡기고도 피로해 하지 않으니, 마치 썩어 냄새나는 시체를 좋아하는 파리와 같고, 흡사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비와 같구나. 이것은 진실로 헷갈려 빠짐으로 말미암아 많은 겁(劫) 동안 온갖 어려운 신고[艱辛]를 겪고 숱한 고통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고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여래(如來)께서 크게 불쌍하게 여기시어 차마 영원히 버리지 못하고 그 괴로움과 즐거움의 원인을 보여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흔연히 싫어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는 열 가지 악(惡)을 행하여 받는 죄와 열 가지 선(善)을 행하여 받는 복, 이 두 가지 행에 대하여 간략하게 밝히는 것이다.
2) 업인부(業因部)
오직 범부들이 짓는 업(業)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음이 몸과 입과 서로 맞는 수도 있고, 또한 몸과 입이 마음과 서로 틀리는 수도 있다. 이것에 의해 논하면, 무릇 몸과 입을 움직이는 것은 다 심사(心使) 때문이니, 만일 마음이 선하지 못하면 바야흐로 사물을 손상(損傷)하고, 만일 마음에 선이 있으면 비로소 복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손해와 이익이 똑같지 않으나, 세 가지 업의 근본은 다 마음에 근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이 일어나는 것도 같지 않다는 것을 다음에 간략히 가려내어 보는 것이다.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세 사람이 함께
탑(塔)을 돌고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염불(念佛)하는 공덕을 위해서였고, 두 번째 사람은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였으며, 세 번째 사람은 청량(淸凉)해지기 위해서였다. 비록 또 이렇게 몸이 짓는 업은 같으나 선(善)ㆍ악(惡)ㆍ무기(無記)의 세 가지 성질[性]은 각각 다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죄와 복은 마음으로 인해 생기는데, 몸과 입이 짓는 업의 현상[相]인 선악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사분율(四分律)』과 『성실론』 등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일 마음이 없었으면 비록 실수로 부모를 죽였다 하더라도 역죄(逆罪)는 되지 않으며, 또한 어린애[嬰兒]가 어머니의 젖을 만지작거리는 것과 같아서 죄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더러운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비담』에서 말하였다.
“의보(依報)2)의 색(色)이 방편의 색을 일으키는 것을 신업(身業)이라고 하고, 소리[聲]를 구업(口業)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죄와 복의 본체(本體)이나 숨기고 말하지 않는다.”
대승교(大乘敎) 중의 실설(實說)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몸과 입, 그리고 빛깔과 소리는 언제나 죄도 아니고 복도 아니다. 만일 선과 악을 거론한다면 그것은 오직 뜻[意]만이 그럴 수 있다. 만일 의지(意地)가 사량(思量)하여 몸과 입을 발동시키면 그것은 곧 의사(意思)요, 또 이것은 곧 몸과 입의 업체(業體)이니, 만일 의사가 몸과 입을 발동시키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만 의업(意業)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유식론(唯識論)』에서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말과 같다.
‘도적이 산림(山林)ㆍ마을ㆍ성읍(城邑) 등을 태웠다고 말하지, 불이 태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이치도 그와 같아서 오직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성취될 뿐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모든 법은 마음이 근본이 되고
모든 법 중에 또한 마음이 으뜸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모든 법도 없고
오직 마음만이 몸이니 입이니 한다.
그러므로 논석(論釋)에서 말하였다.
“다만 심식(心識)이 있을 뿐이요, 몸과 입의 업은 없다. 몸과 입의 업이란 다만 명자(名字)만 있을 뿐, 실은 곧 뜻의 업이며, 몸과 입은 이름만을 말한 것이다. 또한 임종(臨終) 때에 사견(邪見)의 마음을 내면 곧 지옥에 떨어지고, 바른 소견[正見]의 마음을 일으키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 말하였다.
“마음을 떠나 생각이 없으면 몸과 입의 업은 없다.”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이 마음을 놓아 버리면 사람의 선한 일을 잃고,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면, 비록 살생을 하더라도 죄가 없다. 첫째는 도를 행(行)함에 있어서 기억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의도적인 마음이 없이 동물이나 개미 따위를 죽이는 것이며, 셋째는 무심한 가운데 쇠 따위를 던졌는데 거기에 생물의 목숨을 끊은 것이고, 넷째는 의사가 병을 고쳐 이익을 주기 위해 준 약이 병자를 죽인 것이며, 다섯째는 불을 피운 곳에 벌레가 들어와 무심결에 저 벌레들이 불에 뛰어들어 죽은 경우이니, 이런 다섯 가지는 비록 생명을 끊은 것이라 하더라도 살생죄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짓는 업은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살생에 있어서 그 마음과 경계에 의하여 말하면, 마음과 경계가 같지 않아 거기에는 상ㆍ중ㆍ하가 있다. 첫째 경계에 의하여 말하면, 가령 축생을 죽이면 그 비구는 바일죄(波逸罪)3)를 받고, 범부나 학인(學人)을 죽이면 바라이죄(波羅夷罪)를 받으며, 부모나 아라한을 죽이면 5무간(無間)지옥에 떨어지는 중죄를 받고, 사견(邪見)으로 인하여 선근(善根)이 끊어진 사람을 죽이면 가장 가벼운 죄를 받는데, 이것은 축생을 죽인 죄보다 더 가볍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알아야 한다. 살생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ㆍ중ㆍ하이다. 하(下)라는 것은 개미 내지는 모든 축생들을 죽이는 것인데, 오직 보살의 시현(示現)으로 태어난 것은 제외한다. 이 모든 축생들에게도 미미한 선근(善根)이 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을 죽이면 죄의 과보를 다 받는다. 중살(中殺)이라는 것은 범부에서 아나함(阿那含)까지를 말하는 것이고, 상살(上殺)이란 부모ㆍ아라한ㆍ벽지불과 필정(畢定) 보살들이다. 만일 일천제(一闡提)를 죽이면 이상 세 가지의 살생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유하면 땅을 파고 풀을 베고 나무를 자르고 시체를 베는 따위에 죄보(罪報)가 없는 것처럼 일천제도 또한 그러하다.[중한 죄가 없다는 말이지 가벼운 고통까지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둘째, 마음에 의해 말하면, 죄를 짓는 것은 마음 때문이므로 업(業)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다. 만일 분노가 중(重)하면 죄도 중하고, 분노가 가벼우면 죄도 가벼운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성실론』에서 말하였다.
“혹은 일이 중하기 때문에 정해진 과보가 있다. 이것은 마치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공양하거나 공양하지 않거나, 혹은 업신여기고 헐뜯는 마음이거나 혹은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때문에 정해진 과보가 있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독약을 꼭꼭 싸 가지고 개미 따위를 살해하고 이 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되, 마음에 성냄이 없으면, 비록 상경(上境) 내지는 부모를 죽이더라도 역죄(逆罪)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와 같다.”[이하의 여러 죄의 예(例)에도 경중(輕重)은 있다. 그러나 글이 번거로워 다 적지 않는다. 위의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살생하지 않음이란 어떤 것인가? 만일 벼ㆍ기장ㆍ보리 따위에 미세한 벌레가 생기면 그 곡물을 찧지도 않고 갈지도 않으며, 거기에 벌레가 있는 줄을 알면 이 벌레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그 곡물을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 또 살생하지 않음이란, 소ㆍ말ㆍ낙타ㆍ나귀 따위에 짐을 실어서 등에 부스럼이 생겨 거기에 벌레가 생기면, 그 부스럼을 물로 씻을 때는 농약으로 그 목숨을 죽이지 않고 새털로 그것을 씻어 모아 다른 썩은 고기 속에 두어 그 목숨을 보전하게 하고, 또 그 소나 나귀까지도 보호하는 것이다.
개미 새끼의 목숨까지도 해칠까 두려워해야 하고, 또 보호하기 위해 밤이나 낮이나 방일(放逸)하게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지 말며, 만일 다른 중생들이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하거든 자기가 먹는 음식을 대신 주어 그 벌레를 거기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3) 과보부(果報部)
『미륵보살소문경론(彌勒菩薩所問經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열 가지 불선업도(不善業道)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과보과(果報果)이고, 둘째는 습기과(習氣果)이며, 셋째는 증상과(增上果)이다. 과보과라는 것은, 만일 지옥에 태어나면 이것을 과보과라고 하고, 습기과라는 것은 만일 지옥에서 나와 인간으로 환생(還生)하면 살생에 의지하였던 까닭에 수명이 짧은 과보를 받고, 도둑질에 의지하였던 까닭에 재산이 없는 과보를 받으며, 나아가 사견(邪見)에 의지하였던 까닭에 어리석은 마음이 증상(增上)하나니, 이런 모두를 습기과라고 말한다.”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우치(牛齝) 비구는 항상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하는 경우와 같나니, 그는 어느 세상이 되었든지 간에 소들 세상에서 왔기 때문이다. 어떤 비구가 비록 번뇌가 없어졌음에도 항상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그는
세상마다 음녀(婬女)들 속에서 왔기 때문이다. 또 목련(目連) 비구가 비록 신통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항상 뛰는 놀이를 하는 경우와 같나니, 그는 전생에 원숭이였는데 그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다.”
증상과라는 것은, 저 열 가지 불선업도(不善業道)에 의하여 모든 외물(外物)이 기세(氣勢)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땅이 높고 낮으며, 서리와 우박이 오고 가시가 찌르며, 흙에서 냄새가 나고 뱀ㆍ전갈 따위가 많이 있으며, 곡식이 적게 나고 낱알이 잘며, 과일이 적게 열리고 그 알이 잘고 또 맛도 쓰니, 이런 모두를 다 증상과라고 말한다. 또 상사과(相似果)가 있으니, 이른바 살생하는 자가 일부러 중생을 해하면서 갖가지 고통을 주고는, 그 때문에 지옥에 태어나서 갖가지 고통을 받으며, 또 그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수명이 짧은 과보를 받는다. 이것은 다 남의 따뜻한 기운을 끊고 그 성품을 찔렀기 때문이니라.”[이 이외의 것은 이상의 일들로 미루어 보면 다 알 수 있다. 또 앞의 「수보편(受報篇)」 중의 『지지론(持地論)』에서 말한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어떤 것을 번뇌의 나머지 과보[餘報]라고 하는가? 만일 어떤 중생이 탐욕을 익히고 가까이하면 이 과보가 익숙해졌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와서는 축생(畜生)의 몸을 받나니, 즉 비둘기ㆍ참새ㆍ원앙ㆍ앵무ㆍ청작(靑雀)ㆍ물고기ㆍ자라ㆍ원숭이ㆍ사슴 따위로 태어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몸을 받으면 황문(黃門)이나 2근(根)을 가진 여인이나 근(根)이 없는 음녀(婬女)가 되며, 만일 출가하게 되면 첫 번째 중계(重戒)를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 만일 어떤 중생이 은중(殷重)한 마음으로 진에(瞋恚)를 익히고 가까이하면 이 과보가 익숙해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나니, 이른바 독사(毒蛇)가 되어 네 가지 독(毒)을 갖춘다. 그 네 가지 독은, 첫째는 견독(見毒)이요, 둘째는 촉독(觸毒)이며, 셋째는 설독(齧毒)이요, 넷째는 석독(螫毒)이다. 또는 호랑이ㆍ사자ㆍ곰ㆍ고양이ㆍ이리ㆍ매 따위가 되며, 만일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열두 가지 악한 율의[惡律儀]를 다 갖추고, 만일 출가(出家)하면 두 번째 중계를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 만일
어리석은 사람을 친근히 하여 그 과보가 익숙해졌을 때엔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나니, 이른바 코끼리ㆍ돼지ㆍ소ㆍ양ㆍ물소ㆍ벼룩ㆍ이ㆍ모기ㆍ등에ㆍ개미 따위가 된다. 만일 사람의 몸을 받으면 귀머거리ㆍ장님ㆍ벙어리ㆍ곱사등이와 같은 불구자(不具者)가 되어 법을 받지 못하고, 만일 출가하게 되면 모든 감각기관[根]이 둔하고 어두워 세 번째 중계를 즐겨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 만일 교만한 사람을 친근히 하여 그 과보가 익숙해졌을 때엔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나니, 이른바 똥벌레ㆍ낙타ㆍ사냥개ㆍ말 따위가 된다.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혹은 노비(奴婢)의 몸이 되거나 가난하고 궁색하게 살면서 구걸하거나, 혹은 출가하더라도 항상 남에게 천대를 받으면서 네 가지 중계(重戒)를 즐겨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한 의사(疑使)의 큰 의미도 이 어리석음을 설명한 내용과 똑같으므로 번거롭게 따로 기술하지 않는다. 이상을 5둔사(鈍使)의 과보라고 한다.
또 『보살장경(菩薩藏經)』에서 말하였다.
“또 장자(長者)야, 내가 살펴보건대 일체 중생들은 열 가지 불선(不善)한 업도(業道)를 말미암아 사도(邪道)를 건립하여 거기에 안주함으로 인하여 대부분 나쁜 세계에 떨어진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목숨을 빼앗는 것이요, 둘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며, 셋째는 사음(邪婬)하는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거친 말을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비단결처럼 나긋나긋한 말로 사람을 꾀는 것이요, 여덟째는 탐하고 집착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성내는 것이요, 열째는 삿된 견해를 내는 것이다.
장자야, 내가 보건대 중생들은 이상 열 가지 불선한 업을 말미암아 사도(邪道)를 타고서 대부분 나쁜 세계로 향하여 떨어진다.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證得)하여 일체의 사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끗한 신심(信心)을 가지고 석씨(釋氏)의 집을 버리고 위없는 도로 나아가야 하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난제가(難提迦) 우바새(優婆塞)에게 말씀하셨다.
‘살생을 하면 열 가지 죄(罪)를 짓게 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마음에 항상 독기를 품어 대대로 끊어지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들이 그를 미워하여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악한 생각을 품고 악한 일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넷째는 중생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마치 호랑이나 뱀처럼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잘 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도 불안해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항상 악몽(惡夢)을 꾸는 것이며, 일곱째는 목숨을 마칠 때에 미친 듯이 두려워하면서 나쁘게 죽는 것이고, 여덟째는 수명이 짧은 업의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니리옥(泥犁獄)에 떨어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인간에 나도 항상 수명이 짧은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에도 열 가지 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물건의 주인으로 하여금 항상 성을 내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이 의심을 내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때를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으므로 그 행동을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고, 넷째는 악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질고 착한 이를 멀리 떠나는 것이며, 다섯째는 좋은 모양[相]을 파괴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관청[官]에 잡혀가서 죄를 받는 것이며, 일곱째는 재산을 모두 관청에 몰수당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가난해지는 업(業)의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사람이 되어도 부지런히 모은 재산을 남과 공유(共有)해야 하거나 혹은 왕이나 도적에게 빼앗기거나 불에 타거나 물에 떠내려가서 없어지거나 사랑하지 않는 아들이 써버리게 되며, 심지어 매장(埋藏)되든지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니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음(邪婬)에도 열 가지 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항상 그 음부(婬夫)의 남편이 해치려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부끼리 화목하지 않아 늘 싸우는 것이며, 셋째는 온갖 선하지 못한 법은 날로 불어나고 모든 선한 법은 날로 줄어드는 것이고, 넷째는 제 몸을 잘 지키고 보호하지 못해서 처자(妻子)가 고아(孤兒)나 과부(寡婦)가 되는 것이며, 다섯째는 재산이 날로 소모되는 것이고, 여섯째는 온갖 악한 일들이 있어 항상 남의 의심을 받는 것이며, 일곱째는 친척과 친지들이 사랑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원수를 맺는 업의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여자로 태어나면 여럿이 함께 한 남편을 섬기고, 남자가 되면 그 아내가 정숙(貞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을 짓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음(邪淫)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짓말에도 열 가지 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입 속에서 항상 냄새가 나는 것이고, 둘째는 선신(善神)이 그를 멀리하고 귀신이 그 사람의 틈을 엿보는 것이며, 셋째는 비록 진실을 말해도 남이 믿어 주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지혜로운 사람의 모임에 항상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항상 남에게 비방(誹謗)을 당하고 추악한 소문이 천하에 두루 퍼지는 것이고, 여섯째는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여 비록 무엇을 지시하더라도 남이 순종하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항상 근심이 많은 것이고, 여덟째는 비방 받을 업과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지옥에서 나와 사람이 되어도 항상 남의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를 짓지 않으면 그것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좋은 율의(律儀)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36가지 과실(過失)이 있다.[자세한 것은 이하의 5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죄를 짓지 않으면 이것은 몸으로 짓는 좋은 율의(律儀)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입이 짓는 좋은 율의이니라.’”
이상은 5계의 율의에 대한 것이다.
또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서 말하였다.
“또 열 가지 업(業)이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바깥의 악한 과보[惡報]를 받게 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열 가지 악한 업을 많이 닦고 익히면, 모든 외물(外物)에서 느끼는 것을 다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업인가? 첫째는 살생하는 업[殺生業]이니, 그 때문에 모든 바깥 과보인 대지(大地)는 다 소금밭이요 모든 약초도 다 힘이 없게 된다. 둘째는 도둑질하는 업[偸盜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서리ㆍ우박ㆍ메뚜기 등을 만나 세상이 흉년이 든다. 셋째는 사음을 행하는 업[邪淫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사나운 비바람과 모든 티끌[塵埃]을 만난다. 넷째는 거짓말을 하는 업[妄語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외물이 모두
더러운 냄새가 난다. 다섯째는 이간질하는 말의 업[兩舌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대지는 높고 낮아 고르지 못하고 산과 언덕이 생기며, 나무 그루터기와 거친 터가 생긴다. 여섯째는 욕설을 하는 업[惡口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기왓조각과 자갈처럼 거칠고 깔깔한 나쁜 물건들은 더러워 가까이할 수 없다. 일곱째는 비단처럼 꾸며서 하는 말의 업[綺語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초목이 조밀하게 나고 나뭇가지에 가시가 생긴다. 여덟째는 탐욕의 업[貪多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곡물의 종자가 아주 미세한 것이다. 아홉째는 진에의 업[瞋恚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무 열매가 그 맛이 떫고 쓰다. 열째는 사견의 업[邪見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수확이 매우 적다. 이런 악한 업은 다 외부의 악한 과보를 생기게 하느니라.”
4) 살생부(殺生部)[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형상을 받아 6취(趣)에 태어나면 연연(戀戀)해 하면서 생(生)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몸[質]을 2의(儀:陰陽, 즉 父母)에서 받고 나면 모두가 구구(區區)하게 죽음을 두려워한다.
비록 또한 오르고 내림이 만 가지요, 어리석고 지혜로움이 천 갈래가 되더라도 괴로움을 피하고 편안함을 구하는 데 이르러서는 그 정(情)이 어찌 따름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놀란 새가 책상에 몸을 던지고도 오히려 위군(魏君)에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했고, 곤궁에 빠진 짐승이 여막[廬]에 들어와서 구(區)씨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한왕(漢王)은 미끼를 버려 마침내 명주(明珠)의 갚음을 감득(感得)하였고, 양보(楊寶)는 꽃을 보시하여 곧 백환(白環)의 보답을 받았으며, 나아가 사미(沙彌)는 개미를 구제해 주고 현세(現世)에 긴 수명을 얻어 오래도록 살았고, 유수(流水)는 물고기를 구제하자 하늘에서 진귀한 보물이 내려왔으니, 이와 같은 사실들을 어찌 다 갖추어 기술(記述)할 수 있을 것이며, 어찌 싫어함이 없다고 하여 제멋대로 행동하고서 이러한 공양이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남의 기명(氣命:목숨)을 끊고 남의 음신(陰身)을 잘라서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고통을 안고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슬픔을 머금고 죽음으로 향하게 한다면, 이 땅이 아무리 넓다 해도 도망쳐 숨을 곳이 없을 것이요, 하늘은 이미 너무도 높아 그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서 말하였다.
“일체 중생들은 칼이나 몽둥이를 두려워하고 수명을 아끼지 않는 이가 없으니, 자기 자신을 용서하듯이 죽이지도 말고 몽둥이로 때리지도 말라.”
이렇게 말했으나 다만 범부와 속인들은 뒤바뀌어 삿된 견해를 일으켜 밝지 못하다. 그리하여 혹은 길흉(吉凶)을 위해 공적(公的)・사적(私的)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요리를 장만할 때에는 푸줏간[庖廚]에서 잡류(雜類:짐승)들의 몸뚱이를 삶고 구워서 여러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공양하는가 하면, 혹은 다시 해가 바뀌는 세밑이 되어 일에 틈이 생겨 시간에 여유가 있고, 하늘에서 암담하게 서리가 내리면, 들에는 온통 불을 붙여 태운다. 그리하여 온갖 짐승들을 핍박하면서 때맞추어 바람을 좇는 듯한 빠른 말을 타고 번개처럼 빠르게 나는 좋은 매[鷹]를 들고 나가는데, 그럴 때 쓰는 칼은 거궐(巨闕)4)이나 간장(干將)5)이요, 활은 오호(烏號)6)나 번약(繁弱)7)이다. 드디어 모든 늪지대를 누비고, 저 숲 속을 다 뒤져 둥지를 뒤엎고 짐승이 사는 굴속을 파헤치며 들엔 온통 그물을 펼쳐 놓고 높은 산에는 덫을 놓는다.
혹은 앞에서 포위하고 뒤를 차단하여 왼쪽에서 맞이하고 오른쪽을 끊으며, 티끌과 먼지는 햇빛을 가리고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찌른다. 드디어 새들로 하여금 짝을 잃고 놀라서 날아가게 하고, 짐승들은 무리를 이탈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하면, 기러기는 활시위 소리를 듣자마자 앞 다투어 떨어지고, 원숭이는 나무를 안고 애처롭게 우나니, 모두가 험한 골짜기에 다다라 슬피 부르짖고 높은 숲을 대하여 절규(絶叫)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리하여 활은 헛되이 쏘지 않고 화살도 빗나가지 않아 저들의 겨드랑이를 관통하고 가슴을 뚫으며, 또 저들의 머리를 가르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게 한다. 혹은 또 흐린 물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맑은 못에 미끼를 흩으면, 하진(河津)에서 잉어 낚는 법을 배우고, 정곡(井谷)에서 붕어를 쏘는 것과 같아서 붉은 비늘이 이미 걸렸으니, 더 이상 믿을 만한 재능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소질(素質:칼 이름)을 이미 달아 놓았으니 배를 띄울 조짐이 영원히 사라졌다.
그 몸뚱이를 어지럽게 회(膾)를 치자, 소반[盤]을 꺼내 비처럼 흩어 놓는다. 혹은 또 험윤(獫狁:匈奴의 別名)이 매우 왕성하게 일어나자 군대를 보내 마구 정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변방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일삼아 신비한 무예를 힘입어 정벌한다.
비록 또 훌륭하고 어진 제왕(帝王)이요 군주(君主)라 하더라도 오히려 창과 방패를 동원했고, 지혜로운 왕후[哲后]요 밝은 임금[明君]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정벌(征伐)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승이(昇陑:지명)의 전쟁에서 마침내 높은 이름을 드러냈고, 목야(牧野)의 군사 동원에서 비로소 훌륭한 덕이 일컬어지게 되었으니, 그 가운데서 혹 백만(百萬)의 군대에 둘러싸여
마구 돌아다니기도 했고,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깊이 진입(進入)하기도 했던 것이다. 적벽(赤壁)에서 조공(曺公:曹操)을 쳐부수고, 오강(烏江)에서 항제(項帝:項羽)를 쳤으며, 왕망(王莽)의 머리를 고대(高臺)에 매달고 동탁(童卓)의 시체를 도시(都市)에서 쓰러뜨린 그 때는 다 영웅들이 하루아침에 위엄 있는 무예(武藝)를 떨쳤던 것이다.
그 당시의 이와 같은 흐름을 이루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뼈를 쌓아 산을 이루지 않음이 없었고, 피가 흘러 방패가 떠다니지 않음이 없었다.
이제 왕의 군대[王師]가 천둥처럼 움직여 요망한 역적을 소진(掃殄)하려고 군대를 드날리고 부절(符節)을 끼고는 변경(邊境)을 살피고 변경을 엿보며, 이윽고 전구(前驅:行列의 앞잡이)에 참예(參預)하고 외람(猥濫)되게 후경(後勁)에 있었으니, 구름처럼 펄럭이는 깃발 아래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할 수 있겠는가?
서릿발같은 칼날이 오가는 사이에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 많다. 그러므로 칼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창 밑에서 목숨을 빌었으니, 이와 같은 죄들을 갖추어 다 진술할 수가 없다.
무릇 이 중생들은 서로서로 침해하면서 원수가 되고 적이 되어 목숨을 등지고 몸을 등짐으로써, 혹은 수명(壽命)이 짧아지는 원인(原因)이 되고, 혹은 병(病)이 많은 결과(結果)를 초래(招來)하였다. 그러니 부디 지금부터는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영원히 단절하고 미래 세계가 다하도록 보리(菩提)의 권속(眷屬)이 되어 좋은 인연과 법성(法城)의 동반자를 무너뜨리지 말기를 바란다.
(2) 인증부(引證部)
또 비나야율(鼻奈耶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였다. 사위국(舍衛國)에 어떤 바라문(婆羅門)이 있었는데, 항상 가류타이(迦留陀夷)8) 나한(羅漢) 비구에게 공양하였다. 그 바라문의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 장성하여 아내를 맞이했다.
그 때 바라문은 임종할 무렵이 되어 그 아들에게 유언(遺言)을 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도 너는 존자(尊者) 가류타이를 잘 보살펴 내가 오늘날까지 했던 것처럼 하여 조금도 모자라는 것이 없게 하라.’
부모가 죽고 난 뒤에 그 아들은 부모의 유언을 받들어 다시 가류타이를 공양(供養)하되, 마치 부모가 살아 계시던 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게 하였다. 그 뒤 어느 때에 바라문의 아들이 출행(出行)하여 집에 있지 못하게 되자 그 아내에게 공양을 부탁하고 떠났다.
그 날에 문득 5백 명의 도적 떼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도적의 얼굴이 매우 단정(端正)하였다. 그의 아내는 멀리서 이 도적을
보고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오게 하여 그와 함께 정(情)을 통하였다.
가류타이는 예전처럼 자주 그 집에 갔는데, 그 부인은 이 사문(沙門)이 그 일을 누설(漏泄)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뒤에 이 도적과 공모하여 방편(方便)을 써서 가류타이를 죽여 버렸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은 존자 가류타이가 도적에게 피살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왕은 존자와의 옛정을 생각하여 화를 내고 또 고민하다가 즉시 바라문의 가족을 죽이고, 아울러 그의 측근에 살고 있던 18여 가구 남짓한 집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죽였으며, 또 5백 명의 도적들을 잡아 그들의 손발을 끊어버리고 모두 구덩이 속으로 던져 버렸다.
비구들이 그 사실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류타이는 본래 무슨 악한 업을 지었기에 바라문의 아내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류타이는 지난 과거생(過去生)에 큰 천사(天祀)9)의 주인이 되었었다. 그 때 5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양(羊)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네 발을 끊어 천사에 가져다 올리고는 함께 소원을 빌었다. 그 천사의 주인은 염소를 얻고 난 뒤에 곧바로 잡아먹었다. 그는 그 염소를 죽인 것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옛날 그 천사의 주인은 바로 지금의 저 가류타이이다. 그가 비록 아라한이 되기는 했으나 남은 재앙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아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 때 그 염소는 지금 저 바라문의 아내이고, 그 때 염소의 네 발을 끊은 5백 사람은 지금 바로 저 왕에게 손과 발이 잘린 5백 명의 도적 떼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또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살해(殺害)하는 일이 있으면, 그가 받을 과보는 끝내 없어지지 않느니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사위성(舍衛城) 안에 어떤 한 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여기미(黎耆彌)였다. 그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결혼하였다. 그 중 막내아들의 아내인 비사리(毗舍離)는 매우 어질고 지혜로워서 무슨 일이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 때 여기미는 그 가업(家業)을 몽땅 작은며느리에게 맡겼으니, 그것은 그녀가 제일 현명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이었다. 바사닉왕(波斯匿王)도 그녀를 공경하고 예우하여 누이동생으로 삼았다.
그녀는 그 때 아이를 배어 달이 차자 서른두 개의 알을 낳았는데, 그 하나의
알마다 그 속에서 사내아이 하나씩 나왔다. 그들은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용맹스럽고 건강하였으며, 범상하지 않아 혼자서도 천 사내를 대적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점점 자라 아내를 맞이했는데, 그 며느리들은 모두 나라 안에서 제일 부자였고 현명한 집안의 딸들이었다.
그 때 비사리가 부처님과 대중 스님들을 자기 집에 초청(招請)하여 공양(供養)하였는데,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시자, 온 집안이 다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녀의 가장 어린 아들만은 도적(道跡)을 얻지 못한 채 코끼리를 타고 놀러 나갔었는데, 보상(輔相:재상)의 아들이 수레를 타고 다리 위로 오는 것을 보고, 곧 발로 차서 다리 아래 구렁텅이로 떨어뜨렸다. 그 아이는 몸을 다친 채 집으로 돌아와 그 아버지에게 일렀다.
그러자 보상이 아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힘이 장사인 데다 또한 국왕의 친척[國親]이니 그와 싸운다 해도 절대로 이기기 어렵다. 마땅히 아무도 모르게 보복할 길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는 곧 7보로써 말채찍 서른두 개를 만들고, 순 강철로 칼을 만들어 말채찍 속에 넣어 가지고 알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각각 하나씩 주었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그것을 받고는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왕(王)을 알현(謁見)하기 위하여 출입(出入)할 때에도 항상 손에 들고 드나들곤 하였다.
그 당시 국법(國法)으로는 왕을 알현할 때에는 칼을 지니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 때 보상은 그들이 채찍을 받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곧 왕에게 참소(讒訴)하여 아뢰었다.
‘비사리의 아들들은 나이도 젊은 데다 힘이 세어 혼자서도 천 명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다른 생각을 품고 대왕님을 살해(殺害)하기 위하여 각기 예리한 칼을 만들어 말채찍 속에 감추어 두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살펴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왕이 곧 조사해 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왕은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 끝에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다 죽이고 나서 서른두 사람의 머리를 한 상자에 담고 봉인(封印)한 다음 그것을 그 누이동생인 비사리에게 보냈다.
그날 비사리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하다가 왕이 보낸 함(函)을 보고는 왕이 공양을 돕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곧 그 함을 열어 보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말리면서 공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공양을 마치고 난 뒤에 부처님께서는 비사리를 위하여 모든 법은 덧없는 것[無常]으로서 다 괴로운 것이라고 설법하시자, 그 때 비사리는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떠나가신 뒤에 비사리는 함을 열고 자기 아들 서른두 명의 머리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욕애(欲愛)를 끊었기 때문에 그다지 고뇌(苦惱)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이런 말을 하였다.
‘아, 애통하고 슬프구나.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란 것이 있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5도(道)를 돌아다니나니, 그 일이 어찌 이다지도 괴롭단 말인가?’
서른두 명 아들들의 처가(妻家) 친족들이 이 사실을 듣고 모두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대왕이 무도(無道)하여 억울하게 착한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는 함께 군대와 말을 모아 가지고 거느리고 가서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왕은 두려워서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아났다. 모든 사람들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기환(祇桓)정사를 에워쌌다.
아난(阿難)은 왕이 비사리의 서른두 명 아들을 죽이자, 그 부인의 집안 친족들이 복수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이 있기에 서른두 명 아들들이 대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과거 세상에 저 서른두 명의 아들이 남의 소 한 마리를 훔쳐 함께 끌고 어떤 한 노모(老母)의 집으로 가서 그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노모가 기뻐하면서 그 소를 잡을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칼로 내리쳐 잡으려 할 때는 그 소가 꿇어앉아 살려달라고 애걸하였으나, 모든 사람들은 탐하는 마음이 더욱 성하여 마침내 그 소를 잡았다. 그 때 그 소가 죽으면서 맹세하였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죽이지만 나는 장차 다음 세상에선 결코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결국은 그 소를 잡아 그들은 함께 먹었고, 노모도 배불리 먹고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지금까지 손님들을 치렀으나 아직껏 오늘 같은 날은 없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소는 바로 지금의 바사닉왕이고, 그 소도둑들은 바로 오늘날 비사리의 서른두 명 아들이며, 그 때의 노모는 바로 지금의 바사리이니라. 저들이 그 때 그 소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5백 생 동안 항상 죽임을 당하였고, 노모는 기뻐하였기 때문에 5백 생 동안 줄곧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아들이 피살될 때마다 매우 고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는데, 지금은 나를 만났기 때문에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게 되었느니라.’
부인들의 집안 친족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분한 마음이 곧 풀려 각각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제가 심은 것을 지금 과보로 받은 것이구나. 한 마리 소를 죽인 까닭으로도 그 과보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수없이 많은 중생을 살생하는 것이겠는가? 저 바사닉왕은 그래도 우리들의 왕이니, 어찌 원한을 품고 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곧 왕 앞에 나아가 용서를 빌고 참회하였다. 왕도 또한
모두 이해하고 그 죄를 묻지 않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들은 또 무슨 복을 지었기에 호귀(豪貴)하고 용감(勇敢)하고 건강(健康)하며 부처님을 만나서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어떤 노모(老母)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향(香)을 모아 기름에 섞어서 불탑(佛塔)에 바르려고 하였다. 그녀는 길을 가는 도중에 서른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만났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도 권유(勸諭)하여 함께 가서 불탑에 발랐다.
그 일을 마치자 이렇게 발원하였다.
≺우리는 태어나는 생(生)마다 존귀(尊貴)하고 영화(榮華)로우며 부자(富者)의 집안에 태어나 항상 모자(母子)가 되게 하고 부처님을 만나 도를 얻게 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있은 이후로 이들은 5백 생 동안 항상 존귀하였고 늘 모자 사이가 되었으며, 지금은 부처님을 만났기 때문에 각각 도적(道跡)을 증득하게 되었느니라.’”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장난치고 웃으면서 남의 목숨을 죽이면
슬피 울부짖으며 지옥에 들어가서
냄새나고 더러운 물과 구리 녹인 물을
그 입에 끊임없이 쏟아 넣게 된다.
칼날 위를 달리고 불 속으로 나아갈 때
찔리고 찢어지는 고통 너무 심하여
억 년 동안 그 고통 갖가지로 많으니
아픈 마음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살생하면 4취(趣)에 들어가
3도(塗)의 괴로움을 받다가 마치고 나서
다시 인간 세계에 태어나지만 그 다음에도
수명이 짧고 온갖 질병으로 근심하게 된다.
병들어 쇠약해지는 고통을 받고
수명 또한 짧아서 항상 침몰(沈沒)하게 되나니,
만약 그가 지혜롭고 인정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제멋대로 죽일 마음을 가지겠는가?
감응연(感應緣)[열일곱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송(宋)나라 때 무군장군(撫軍將軍:將軍의 名號) 유의(劉毅)의 증험
양(梁)나라 때 어떤 사람이 머리를 감을 때 계란 흰자위를 사용한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드렁허리[鱓] 파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손님이 고기를 구워 먹은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죽여 절 기둥[刹柱] 밑에 둔 증험
양나라 때 어떤 부곡(部曲)10)이 도적의 손을 끊은 증험
제(齊)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잡아먹고 갑자기 죽은 증험
제나라 때 어떤 사람이 물고기 잡는 것을 보다가 그 고기가 물어뜯은 증험
당(唐)나라 때 은안인(殷安仁)이 손님을 잡아두고자 나귀를 죽인 증험
당나라 때 도독(都督) 찬두궤(酇竇軌) 공이 살생하기를 좋아한 증험
당나라 때 반과(潘果)가 양(羊)을 잡아먹고 혀가 꼬부라진 증험
당나라 때 하열(賀悅)이 소를 붙잡아 매놓고 혀를 끊고 벙어리가 된 증 험
당나라 때 과의효(果毅孝)가 벌을 죽인 증험
당나라 때 어떤 사람이 원수의 해침을 받은 증험
당나라 때 제사망(齊士望)이 계란을 구운 증험
당나라 때 봉원측(封元則)이 양을 훔쳐 죽인 증험
당나라 때 경성(京城) 서로(西路)의 가게 사람이 양을 죽인 증험
송(宋)나라 때 무군장군(撫軍將軍:將軍의 名號) 유의(劉毅)의 증험
송(宋)나라 고조(高祖)는 환현(桓玄)을 평정한 뒤에 유의(劉毅)를 무군장군(撫軍將軍) 형주(荊州) 자사로 삼았다. 유의는 형주로 부임(赴任)하여 곧 우목사(牛牧寺) 주지를 수감하고 말했다.
“장환(藏桓)의 집 아이를 제도해 사미(沙彌)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아울러 네 도인(道人)과 함께 죽였는데, 그 뒤 어느 날 밤 꿈에 이 스님이 와서 말하였다.
“그대는 왜 나를 억울하게 죽였느냐? 내가 이미 그 사실을 천제(天帝)께 아뢰었으니, 아마도 그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그는 곧 병을 얻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날로 쇠약해져 갔다. 장차 양도(楊都)로 출발할 때에는 많은 다툼을 일으켜 재보(宰輔)를 침범하고 업신여겼다. 송의 고조는 마침내 사람을 보내 그를 정벌했다. 유의는 패하여 밤에 혼자서 도망쳐 우목사로 갔다. 그 절 스님이 무군(撫軍:劉毅)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장군은 우리 스승과 우리 도인(道人)을 억울하게 죽였습니다. 이제는 원수를 잡을 일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
이 죽은 스님은 여러 번 영험(靈驗)을 나타내어 말하였다.
“천제(天帝)가 무군장군을 체포해 절에서 죽일 것이다.”
유의는 곧 탄식하면서 그 절 뒷산으로 올라가 큰 나무 위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원혼지(冤魂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양(梁)나라 때 어떤 사람이 머리를 감을 때 계란 흰자위를 사용한 증험
양(梁)나라 때에 어떤 사람은 항상 계란 흰자위를 물에 타서 머리카락을 빛나게 했다. 그는 머리를 감을 때마다 계란 20개 내지 30개를 썼다. 그가 임종(臨終)할 무렵, 머리카락 속에서 수천 마리의 병아리 소리가 삐악삐악 들려올 뿐이었다.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드렁허리[鱓] 파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증험
양나라 때 강릉(江陵)의 유(劉)씨는 민물고기인 드렁허리[鱓]를 파는 일로 업(業)을 삼았다. 그는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의 머리는 드렁허리였고, 목 부분 이하는 사람이었다.
양나라 때 어떤 손님이 고기를 구워 먹은 증험
양나라 때 왕극(王克)은 영가(永嘉) 군수(郡守)로 부임했다. 어떤 사람이 양(羊)을 선물로 보내왔는데, 그는 손님을 모아들여 그것을 잡아 잔치를 베풀려고 했다. 그러자 양은 고삐를 풀고 어느 손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두 번 절하고는 곧 그 손님의 옷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손님은 끝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고, 주인에게 구원(救援)을 청하는 일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그 양을 잡아 구워서 먼저 그 손님에게 돌렸다. 손님이 그 양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자 그것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 돌아다녔다. 그는 그 일로 온몸에 고통을 느껴 울부짖으면서 그 때서야 그 사실을 말하였다. 결국 그는 양 울음소리를 내면서 죽었다.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죽여 절 기둥[刹柱] 밑에 둔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은 현령(縣令)이 되었다. 그는 유경궁현(劉敬躬縣)의 현령을 지내다가 그 고을 관아의 행랑채[縣廨]가 화재를 입어 다 탔으므로 절에서 묵고 있었다. 그 고을의 백성들이 소와 술을 가지고 와서 예물로 현령에게 드렸다. 그는 소를 절에 매어 두고 불상을 다 치우고 거기에 술상을 차리고는 당상(堂上)에서 손님을 대접했다. 그 소를 아직 죽이기 전에 소가 고삐를 풀고, 뜰 앞에 와서 현령에게 예배하였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측근 신하들을 시켜 소를 잡아 요리하여 술과 안주를 한껏 먹고 처마 밑에 누워서 잤다. 술이 깨자 온몸이 가려우면서 두드러기와 종기가 생겨 마구 긁었다. 그로 인해 조금 뒤에 큰 병으로 변하여 10여 일쯤 되자 이내 죽고 말았다.
양나라 때 어떤 부곡(部曲)11)이 도적의 손을 끊은 증험
양나라 양사달(楊思達)은 서양(西陽) 군수가 되어 후경(侯景)의 난리를 만났다. 그 때는 또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굶주린 백성들이 남의 밭의 보리를 훔쳤다. 사달은 부곡(部曲) 한 사람을 보내 순찰하게 하였는데, 그는 도적을 붙잡아 그 도적의 손을 끊었다. 그렇게 그런 벌을 받아 손이 끊어진 사람이 무릇 10여 명이나 되었다. 그 뒤에 부곡이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는 나자마자 저절로 손이 없었다.
제(齊)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잡아먹고 갑자기 죽은 증험
제(齊)나라 때에 어떤 봉조청(奉朝請)12)은 집이 매우 크고 사치스러워 손수 잡은 소가 아니면 그것을 먹어도 맛이 없다고 했다. 나이 30여 살쯤 되어 병이 위독하였는데, 그 때 큰 소가 오는 것을 보고 온몸이 칼에 찔리는 것 같아 울부짖으면서 죽었다.
제나라 때 어떤 사람이 물고기 잡는 것을 보다가 그 고기가 물어뜯은 증험
제나라 때 강릉(江陵)의 고위(高偉)는 오(吳)나라에서 제나라로 들어와서 여러 해를 살다가 유주(幽州)로 갈 때,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잡았었다. 그 뒤에 병이 들었는데 그 때 늘 고기 떼가 몰려와서 자신을 물어뜯는 것을 보다가 곧 죽었다.[이상 일곱 가지 증험은 『홍명잡기(弘明雜記)』에서 나온 것이다.]
당(唐)나라 때 은안인(殷安仁)이 손님을 잡아두고자 나귀를 죽인 증험
당나라 서울에 사는 은안인(殷安仁)은 집이 부자로서 평소부터 자문사(慈門寺) 스님을 섬겼었다. 의령(義寧:隨 恭帝의 연호) 원년(617) 초에 어떤 손님이 그 집에 기숙하고 머물렀다. 그 손님은 남의 집 나귀를 훔쳐다가 그 집에서 잡아먹고, 나귀 가죽을 안인(安仁)의 집에 놓아두고 떠났다.
정관(貞觀:唐 太宗의 연호) 3년(629)에 이르러 안인이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안인에게 말했다.
“그대를 쫓는 사자가 내일 올 것이다. 그대는 분명히 죽게 될 것이다.”
안인은 크게 두려워 그 길로 자문사에 가서 불전(佛殿) 가운데 앉아 밤을 지새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 과연 기병(騎兵) 세 사람과 보병 수십 명이 모두 무기를 들고 절에 들어와 멀리서 안인을 보고 불러냈다. 그러나 안인은 거기에 응하지 않고 염불(念佛)과 송경(誦經)을 더욱 열심히 했다. 귀신(군사)들이 서로 의논하였다.
“어제 바로 잡지 않았더니 오늘은 저처럼 복(福)을 닦고 있으니 어떻게 저 사람을 잡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모두들 떠나가면서 한 사람만 남겨두어 그를 감시하게 했다. 감시하던 사람이 안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전날 나귀를 잡아먹었으므로 그 나귀가 지금 그대를 고소(告訴)하여 우리가 그대를 잡으러 왔을 뿐이다. 이렇게 서로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 가지 않은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안인이 멀리서 대답하였다.
“전날 그 나귀는 다른 사람이 훔쳐 와서 그가 잡았고, 다만 그 껍질만을 내게 주었을 뿐이다. 본래 내가 죽인 것이 아닌데, 왜 나를 쫓아다니느냐? 부디 그대는 돌아가서 그 나귀에게 내 대신 말 좀 해 주오.
‘내가 너를 죽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너를 위해 명복을 빌어 줄 것이니 부디 나를 놓아달라.’
이렇게 말을 전해 주오.”
감시하던 사람은 좋다고 허락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만일 나귀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내일 다시 올 것이고, 만일 허락하면 나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라졌다. 그 이튿날이 되었으나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안인은 나귀를 위해 명복을 빌어 주고 온 집안이 다 계(戒)를 지키면서 채식(菜食)만 했다고 한다. 이것은 노문려(盧文勵)가 이야기한 것이며, 안인은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고 하였다.
당나라 때 도독(都督) 찬두궤(酇竇軌) 공이 살생하기를 좋아한 증험
당나라 낙주(雒州) 도독(都督)인 찬두궤(酇竇軌) 공은 성질이 살생(殺生)을 좋아하였다. 처음에는 익주(益州)의 행대(行臺)13) 복야(僕射)14)로 있으면서 장사(將士)들을 많이 죽였고, 또 행대 상서(尙書)인 위운기(韋雲起)를 살해하였다.
정관(貞觀) 2년(628) 겨울에는 낙주에 있으면서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하였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내게 오이를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이 대답하였다.
“지금 한겨울인데 무슨 오이가 있겠는가?”
찬두궤 공이 말하였다.
“지금 한 상 가득하게 오이가 있는데, 왜 오이가 없다고 하느냐?”
조금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오이가 아니다. 그것은 다 사람의 머리이다. 다 내게 살려 달라고 하고 있다.”
또 말하였다.
“나를 부축해 일으켜라. 위상서(韋尙書)가 보인다.”
그리고는 말을 마치자 이내 죽었다.
당나라 때 반과(潘果)가 양(羊)을 잡아먹고 혀가 꼬부라진 증험
당나라 서울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반(潘)이고 이름은 과(果)였다. 나이 20세가 채 못 된 무덕(武德:唐 高祖의 年號) 때에 도수(都水)의 조그만 관리에 임명되었다가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와 젊은이 몇 명과 함께 들에 나가 놀았다. 무덤 사이를 지나다가 양(羊) 한 마리를 보았다. 그 양은 무리에서 떠나 혼자 풀을 뜯고 있었다. 반과는 소년들과 함께 그것을 붙잡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양이 오는 도중에 몹시 울었으므로 반과는 주인이 들을까 두려워하여 그 양의 혀를 잡아 뽑고 그 날 밤에 잡아먹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반과의 혀가 자꾸 오그라들어 부득이 사직원(辭職願)을 내었다. 부평(富平) 현령(縣令) 정여경(鄭餘慶)은 그것을 거짓이라 의심하고 사람을 시켜 그의 입을 벌리고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혀가 다 오그라들어 아주 없었고, 혀뿌리에 콩알만한 것만 남아 있었다. 관인(官人)이 그 까닭을 묻자 반과는 종이에 글을 써서 그 내력을 말하였다. 관인들은 일시에 손가락을 튀기면서 그로 하여금 염소를 위해 명복(冥福)을 빌게 하고,
『법화경(法華經)』 등을 베끼게 했다. 반과는 곧 발심(發心)하여 불법(佛法)을 믿고 공경하여 끊이지 않고 재계(齋戒)를 하였고, 염소를 위해 복을 닦았다. 그런 지 1년이 지나 반과의 혀가 차츰 자라나더니 결국에는 전과 같이 되었다. 그는 관청에 나아가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현관(縣官)은 반과를 이정(里正)으로 삼았다. 현령이던 여경(餘慶)은 정관 18년(644)에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어 부임하러 갈 무렵에 이 사실을 이야기하였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서 나온 것이다.]
당나라 때 하열(賀悅)이 소를 붙잡아 매놓고 혀를 끊고 벙어리가 된 증험
당나라 무덕(武德:唐 高祖의 年號) 때에 습주(濕州) 대녕(大寧) 사람 하열영흥(賀悅永興)이 그 이웃집 사람의 소가 그의 농사를 망쳐 놓았다 하여 밧줄로 소를 묶고 그 소의 혀를 끊었다. 그 뒤에 영흥(永興)이 아들 셋을 낳았는데 모두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했다.
당나라 때 과의효(果毅孝)가 벌을 죽인 증험
당나라 옹주(雍州) 육효정(陸孝政)은 정관(貞觀) 연중(年中)에 우위습주부(右衛濕州府)의 좌과의(左果毅)가 되었다. 그는 성질이 조급하여 잔인한 짓을 많이 했다. 그 부내(府內)에 전부터 벌통 하나가 있었는데, 그 벌이 분봉(分蜂)하여 그 집의 남쪽에 있는 나무 위에 날아와 붙었다. 그러자 효정(孝政)은 사람을 시켜 그 벌들을 다른 통에 옮기도록 하라고 지시해 놓고 벌이 빨리 옮겨지지 않자 그는 크게 화를 내어 끓는 물 한 바가지를 가져다가 나무에 있는 벌떼에게 쏟았다. 그 벌들은 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고 말았다. 그 이듬해 5월에 효정이 청사(廳舍)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혀를 쏘았다. 벌에 쏘인 자리가 큰 종기가 되어 숨통을 막아 며칠만에 죽고 말았다.
당나라 때 어떤 사람이 원수의 해침을 받은 증험
당나라 농서(隴西)의 이의염(李義琰)은 정관(貞觀) 연중에 화주현(華州縣)의 위(尉)15)가 되었다. 그 고을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을 잃어버렸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의 부형(父兄)들은 그것을 어떤 원수가 해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관청에 가서 진정하였다. 의염이 아무리 조사해 보았으나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 밤에도 촛불을 켜고 자세히 심문했는데, 을야(乙夜:밤 10시 경)쯤 되어 의염이 책상에 기대 머리를 숙이고 있을 때 갑자기 죽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피살된 그 모습을 하고서 말하였다.
“아무개가 나를 때려
죽여 어디에 있는 어느 우물 속에 던져 버렸으니, 공(公)은 어서 빨리 조사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았다가 그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기라도 하면 다시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의염이 직접 나가 조사해 보았더니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곧 그 원수를 잡아 추궁하여 그의 자백을 받았다. 그 때 이 사실을 보거나 들은 사람은 모두 다 놀라고 감탄했다.
당나라 때 제사망(齊士望)이 계란을 구운 증험
당나라 위주(魏州) 무강(武强) 출신인 제사망(齊士望)이 정관(貞觀) 21년에 죽었다가 7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전에 죽어서 끌려가 왕(王)을 뵈었더니 왕은 곧 나를 조사(曹司:관청)에게 부탁하여 특별히 감당(勘當)으로 보냈다. 한 4~5일쯤 지난 뒤에 감부(勘簿)가 말하였다.
‘꼭 죽어야 할 자와 성명(姓名)이 똑같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다.’
그런데 판관(判官)이 나에게 말하였다.
‘너는 생전에 닭을 잡아 구워먹기를 좋아했으니, 마땅히 죄를 받고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명하여 문 밖으로 내보내게 했다. 조사(曹司)에서 한 1~2리쯤 떨어진 곳에 한 성(城)이 있었는데, 그 성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뻐서 그 성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 성에 들어서자마자 성문이 굳게 닫히고 성안에는 집 한 채도 없었으며, 온 땅은 다 뜨거운 재[熱灰]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타오르는 불길에 발을 데어 고통이 매우 심했다. 내가 사방을 둘러보았더니, 성문이 다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가자 그 문은 또 닫히고 말았다. 하루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문지기에게 명령하였다.
‘문을 열어라. 어제 그 죄인을 놓아주어 지금 나갈 것이다.’
나는 문을 나와 명을 받은 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돌아오려는데, 사자가 길이 멀다고 하면서 자꾸 미루고 보내 주지 않더니 마침내 돈과 비단을 요구했다. 나는 그의 요구를 허락하고 마침내 냇물을 건너고 가시밭길을 걸어 어느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빙 둘러 담을 쌓았고 그 안에는 매우 깊고 검은 구덩이가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하였는데, 그 때 사자가 나를 그 구덩이로 밀쳐 나는 그 구덩이에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다시 살아났다. 조금 있다가 곧 종이돈 따위를 만들어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사자가 약속한 시간이 되자 왔다. 나는 그곳에서 아내도 같이 보았다.”
당나라 때 봉원측(封元則)이 양을 훔쳐 죽인 증험
당나라 봉원측(封元則)은 발해(渤海) 나라 장하(長河) 사람이었다. 현경(顯慶:唐 高宗의 年號) 연중에 그는 광록시(光祿寺) 태관장선(太官掌膳)이 되었다. 그 때 서번(西蕃:서쪽 국경과 인접한 나라)에서 우전왕(于闐王)이 와서 조회(朝會)를 하였는데, 요리하여 먹다가 남은 양이 무릇 수십 백 마리나 있었다. 왕이 원측(元則)에게 부탁하여 모두 절[僧寺]에 보내 놓아기르게 했다. 그런데 원측이 몰래 백정[屠家]을 시켜 그 양을 다 잡아 요리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팔아 그 값으로 돈을 거두어들였다.
용삭(龍朔:唐 高宗의 年號) 원년(661) 6월에 낙양(雒陽)에 천둥과 벽력을 동반한 큰비가 내렸는데, 그 때 원측이 선인문(宣仁門) 밖 큰 거리에서 죽었다. 그는 죽을 때 목이 부러졌고, 흘린 피가 땅을 흠뻑 적셨다. 이것을 보고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이상 다섯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서 나온 것이다.]
당나라 때 경성(京城) 서로(西路)의 가게 사람이 양을 죽인 증험
당나라 현경(縣慶) 연간에 장안성(長安城) 서쪽 길가에 가게가 있었는데, 어떤 집 신부가 그 점포에서 아이를 낳았다. 보름날 친족들이 모여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베풀고 양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 양은 백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꾸 절을 했다. 백정이 이 사실을 그 집 사람들에게 알렸으나 집안의 노소들은 다 그것을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고 하여 결국 그 양을 잡았다. 여러 사람들은 그 고기를 삶아서 파와 마늘, 그리고 떡이랑 곁들여 맛있게 먹으면서 산부(産婦)에게 아기를 안고 불 앞에서 고기 삶는 것을 감독하게 했다. 산부가 불 앞에서 아기를 안고 있을 때 매우 단단하고 큰 가마솥이 갑자기 터지더니, 그 끓는 물과 뜨거운 재가 모자(母子)를 바로 때려 두 모자가 그 자리에서 다 죽었다. 이것을 본 친척과 이웃 사람들이 모두 불쌍하게 여겼다.
이런 증험의 분명함을 알 수 있거늘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이것을 본 가게 사람들은 술과 고기와 냄새나는 채소를 아주 끊고 먹지 않았다.[이것은 그 가게에 있던 사람이 말한 것이다.]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 십악편(十惡篇) ①[여기에는 1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업인부(業因部) 과보부(果報部)
살생부(殺生部) 투도부(偸盜部) 사음부(邪婬部)
망어부(妄語部) 악구부(惡口部) 양설부(兩舌部)
기어부(綺語部) 간탐부(慳貪部) 진에부(瞋恚部)
사견부(邪見部)
1) 술의부(述意部)
슬프구나. 미혹한 무리들은 장애가 두터워 3거(車)1)를 버려두고 타지 않으며, 고해(苦海)에 빠져서 불에 타고 문드러지는 데에 몸을 맡기고도 피로해 하지 않으니, 마치 썩어 냄새나는 시체를 좋아하는 파리와 같고, 흡사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비와 같구나. 이것은 진실로 헷갈려 빠짐으로 말미암아 많은 겁(劫) 동안 온갖 어려운 신고[艱辛]를 겪고 숱한 고통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고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여래(如來)께서 크게 불쌍하게 여기시어 차마 영원히 버리지 못하고 그 괴로움과 즐거움의 원인을 보여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흔연히 싫어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는 열 가지 악(惡)을 행하여 받는 죄와 열 가지 선(善)을 행하여 받는 복, 이 두 가지 행에 대하여 간략하게 밝히는 것이다.
2) 업인부(業因部)
오직 범부들이 짓는 업(業)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음이 몸과 입과 서로 맞는 수도 있고, 또한 몸과 입이 마음과 서로 틀리는 수도 있다. 이것에 의해 논하면, 무릇 몸과 입을 움직이는 것은 다 심사(心使) 때문이니, 만일 마음이 선하지 못하면 바야흐로 사물을 손상(損傷)하고, 만일 마음에 선이 있으면 비로소 복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손해와 이익이 똑같지 않으나, 세 가지 업의 근본은 다 마음에 근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이 일어나는 것도 같지 않다는 것을 다음에 간략히 가려내어 보는 것이다.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세 사람이 함께
탑(塔)을 돌고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염불(念佛)하는 공덕을 위해서였고, 두 번째 사람은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였으며, 세 번째 사람은 청량(淸凉)해지기 위해서였다. 비록 또 이렇게 몸이 짓는 업은 같으나 선(善)ㆍ악(惡)ㆍ무기(無記)의 세 가지 성질[性]은 각각 다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죄와 복은 마음으로 인해 생기는데, 몸과 입이 짓는 업의 현상[相]인 선악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사분율(四分律)』과 『성실론』 등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일 마음이 없었으면 비록 실수로 부모를 죽였다 하더라도 역죄(逆罪)는 되지 않으며, 또한 어린애[嬰兒]가 어머니의 젖을 만지작거리는 것과 같아서 죄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더러운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비담』에서 말하였다.
“의보(依報)2)의 색(色)이 방편의 색을 일으키는 것을 신업(身業)이라고 하고, 소리[聲]를 구업(口業)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죄와 복의 본체(本體)이나 숨기고 말하지 않는다.”
대승교(大乘敎) 중의 실설(實說)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몸과 입, 그리고 빛깔과 소리는 언제나 죄도 아니고 복도 아니다. 만일 선과 악을 거론한다면 그것은 오직 뜻[意]만이 그럴 수 있다. 만일 의지(意地)가 사량(思量)하여 몸과 입을 발동시키면 그것은 곧 의사(意思)요, 또 이것은 곧 몸과 입의 업체(業體)이니, 만일 의사가 몸과 입을 발동시키려고 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만 의업(意業)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유식론(唯識論)』에서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말과 같다.
‘도적이 산림(山林)ㆍ마을ㆍ성읍(城邑) 등을 태웠다고 말하지, 불이 태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이치도 그와 같아서 오직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성취될 뿐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모든 법은 마음이 근본이 되고
모든 법 중에 또한 마음이 으뜸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모든 법도 없고
오직 마음만이 몸이니 입이니 한다.
그러므로 논석(論釋)에서 말하였다.
“다만 심식(心識)이 있을 뿐이요, 몸과 입의 업은 없다. 몸과 입의 업이란 다만 명자(名字)만 있을 뿐, 실은 곧 뜻의 업이며, 몸과 입은 이름만을 말한 것이다. 또한 임종(臨終) 때에 사견(邪見)의 마음을 내면 곧 지옥에 떨어지고, 바른 소견[正見]의 마음을 일으키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 말하였다.
“마음을 떠나 생각이 없으면 몸과 입의 업은 없다.”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이 마음을 놓아 버리면 사람의 선한 일을 잃고,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면, 비록 살생을 하더라도 죄가 없다. 첫째는 도를 행(行)함에 있어서 기억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의도적인 마음이 없이 동물이나 개미 따위를 죽이는 것이며, 셋째는 무심한 가운데 쇠 따위를 던졌는데 거기에 생물의 목숨을 끊은 것이고, 넷째는 의사가 병을 고쳐 이익을 주기 위해 준 약이 병자를 죽인 것이며, 다섯째는 불을 피운 곳에 벌레가 들어와 무심결에 저 벌레들이 불에 뛰어들어 죽은 경우이니, 이런 다섯 가지는 비록 생명을 끊은 것이라 하더라도 살생죄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짓는 업은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살생에 있어서 그 마음과 경계에 의하여 말하면, 마음과 경계가 같지 않아 거기에는 상ㆍ중ㆍ하가 있다. 첫째 경계에 의하여 말하면, 가령 축생을 죽이면 그 비구는 바일죄(波逸罪)3)를 받고, 범부나 학인(學人)을 죽이면 바라이죄(波羅夷罪)를 받으며, 부모나 아라한을 죽이면 5무간(無間)지옥에 떨어지는 중죄를 받고, 사견(邪見)으로 인하여 선근(善根)이 끊어진 사람을 죽이면 가장 가벼운 죄를 받는데, 이것은 축생을 죽인 죄보다 더 가볍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알아야 한다. 살생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ㆍ중ㆍ하이다. 하(下)라는 것은 개미 내지는 모든 축생들을 죽이는 것인데, 오직 보살의 시현(示現)으로 태어난 것은 제외한다. 이 모든 축생들에게도 미미한 선근(善根)이 있다. 그런 까닭에 이들을 죽이면 죄의 과보를 다 받는다. 중살(中殺)이라는 것은 범부에서 아나함(阿那含)까지를 말하는 것이고, 상살(上殺)이란 부모ㆍ아라한ㆍ벽지불과 필정(畢定) 보살들이다. 만일 일천제(一闡提)를 죽이면 이상 세 가지의 살생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유하면 땅을 파고 풀을 베고 나무를 자르고 시체를 베는 따위에 죄보(罪報)가 없는 것처럼 일천제도 또한 그러하다.[중한 죄가 없다는 말이지 가벼운 고통까지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둘째, 마음에 의해 말하면, 죄를 짓는 것은 마음 때문이므로 업(業)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다. 만일 분노가 중(重)하면 죄도 중하고, 분노가 가벼우면 죄도 가벼운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성실론』에서 말하였다.
“혹은 일이 중하기 때문에 정해진 과보가 있다. 이것은 마치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공양하거나 공양하지 않거나, 혹은 업신여기고 헐뜯는 마음이거나 혹은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때문에 정해진 과보가 있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독약을 꼭꼭 싸 가지고 개미 따위를 살해하고 이 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죽이되, 마음에 성냄이 없으면, 비록 상경(上境) 내지는 부모를 죽이더라도 역죄(逆罪)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와 같다.”[이하의 여러 죄의 예(例)에도 경중(輕重)은 있다. 그러나 글이 번거로워 다 적지 않는다. 위의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살생하지 않음이란 어떤 것인가? 만일 벼ㆍ기장ㆍ보리 따위에 미세한 벌레가 생기면 그 곡물을 찧지도 않고 갈지도 않으며, 거기에 벌레가 있는 줄을 알면 이 벌레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그 곡물을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 또 살생하지 않음이란, 소ㆍ말ㆍ낙타ㆍ나귀 따위에 짐을 실어서 등에 부스럼이 생겨 거기에 벌레가 생기면, 그 부스럼을 물로 씻을 때는 농약으로 그 목숨을 죽이지 않고 새털로 그것을 씻어 모아 다른 썩은 고기 속에 두어 그 목숨을 보전하게 하고, 또 그 소나 나귀까지도 보호하는 것이다.
개미 새끼의 목숨까지도 해칠까 두려워해야 하고, 또 보호하기 위해 밤이나 낮이나 방일(放逸)하게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지 말며, 만일 다른 중생들이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하거든 자기가 먹는 음식을 대신 주어 그 벌레를 거기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3) 과보부(果報部)
『미륵보살소문경론(彌勒菩薩所問經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열 가지 불선업도(不善業道)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과보과(果報果)이고, 둘째는 습기과(習氣果)이며, 셋째는 증상과(增上果)이다. 과보과라는 것은, 만일 지옥에 태어나면 이것을 과보과라고 하고, 습기과라는 것은 만일 지옥에서 나와 인간으로 환생(還生)하면 살생에 의지하였던 까닭에 수명이 짧은 과보를 받고, 도둑질에 의지하였던 까닭에 재산이 없는 과보를 받으며, 나아가 사견(邪見)에 의지하였던 까닭에 어리석은 마음이 증상(增上)하나니, 이런 모두를 습기과라고 말한다.”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우치(牛齝) 비구는 항상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하는 경우와 같나니, 그는 어느 세상이 되었든지 간에 소들 세상에서 왔기 때문이다. 어떤 비구가 비록 번뇌가 없어졌음에도 항상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그는
세상마다 음녀(婬女)들 속에서 왔기 때문이다. 또 목련(目連) 비구가 비록 신통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항상 뛰는 놀이를 하는 경우와 같나니, 그는 전생에 원숭이였는데 그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다.”
증상과라는 것은, 저 열 가지 불선업도(不善業道)에 의하여 모든 외물(外物)이 기세(氣勢)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땅이 높고 낮으며, 서리와 우박이 오고 가시가 찌르며, 흙에서 냄새가 나고 뱀ㆍ전갈 따위가 많이 있으며, 곡식이 적게 나고 낱알이 잘며, 과일이 적게 열리고 그 알이 잘고 또 맛도 쓰니, 이런 모두를 다 증상과라고 말한다. 또 상사과(相似果)가 있으니, 이른바 살생하는 자가 일부러 중생을 해하면서 갖가지 고통을 주고는, 그 때문에 지옥에 태어나서 갖가지 고통을 받으며, 또 그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수명이 짧은 과보를 받는다. 이것은 다 남의 따뜻한 기운을 끊고 그 성품을 찔렀기 때문이니라.”[이 이외의 것은 이상의 일들로 미루어 보면 다 알 수 있다. 또 앞의 「수보편(受報篇)」 중의 『지지론(持地論)』에서 말한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어떤 것을 번뇌의 나머지 과보[餘報]라고 하는가? 만일 어떤 중생이 탐욕을 익히고 가까이하면 이 과보가 익숙해졌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와서는 축생(畜生)의 몸을 받나니, 즉 비둘기ㆍ참새ㆍ원앙ㆍ앵무ㆍ청작(靑雀)ㆍ물고기ㆍ자라ㆍ원숭이ㆍ사슴 따위로 태어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몸을 받으면 황문(黃門)이나 2근(根)을 가진 여인이나 근(根)이 없는 음녀(婬女)가 되며, 만일 출가하게 되면 첫 번째 중계(重戒)를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 만일 어떤 중생이 은중(殷重)한 마음으로 진에(瞋恚)를 익히고 가까이하면 이 과보가 익숙해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나니, 이른바 독사(毒蛇)가 되어 네 가지 독(毒)을 갖춘다. 그 네 가지 독은, 첫째는 견독(見毒)이요, 둘째는 촉독(觸毒)이며, 셋째는 설독(齧毒)이요, 넷째는 석독(螫毒)이다. 또는 호랑이ㆍ사자ㆍ곰ㆍ고양이ㆍ이리ㆍ매 따위가 되며, 만일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열두 가지 악한 율의[惡律儀]를 다 갖추고, 만일 출가(出家)하면 두 번째 중계를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 만일
어리석은 사람을 친근히 하여 그 과보가 익숙해졌을 때엔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나니, 이른바 코끼리ㆍ돼지ㆍ소ㆍ양ㆍ물소ㆍ벼룩ㆍ이ㆍ모기ㆍ등에ㆍ개미 따위가 된다. 만일 사람의 몸을 받으면 귀머거리ㆍ장님ㆍ벙어리ㆍ곱사등이와 같은 불구자(不具者)가 되어 법을 받지 못하고, 만일 출가하게 되면 모든 감각기관[根]이 둔하고 어두워 세 번째 중계를 즐겨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 만일 교만한 사람을 친근히 하여 그 과보가 익숙해졌을 때엔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에서 나오면 축생의 몸을 받나니, 이른바 똥벌레ㆍ낙타ㆍ사냥개ㆍ말 따위가 된다. 만일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혹은 노비(奴婢)의 몸이 되거나 가난하고 궁색하게 살면서 구걸하거나, 혹은 출가하더라도 항상 남에게 천대를 받으면서 네 가지 중계(重戒)를 즐겨 범하나니, 이것을 나머지 과보라고 말한다.”
또한 의사(疑使)의 큰 의미도 이 어리석음을 설명한 내용과 똑같으므로 번거롭게 따로 기술하지 않는다. 이상을 5둔사(鈍使)의 과보라고 한다.
또 『보살장경(菩薩藏經)』에서 말하였다.
“또 장자(長者)야, 내가 살펴보건대 일체 중생들은 열 가지 불선(不善)한 업도(業道)를 말미암아 사도(邪道)를 건립하여 거기에 안주함으로 인하여 대부분 나쁜 세계에 떨어진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목숨을 빼앗는 것이요, 둘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며, 셋째는 사음(邪婬)하는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거친 말을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비단결처럼 나긋나긋한 말로 사람을 꾀는 것이요, 여덟째는 탐하고 집착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성내는 것이요, 열째는 삿된 견해를 내는 것이다.
장자야, 내가 보건대 중생들은 이상 열 가지 불선한 업을 말미암아 사도(邪道)를 타고서 대부분 나쁜 세계로 향하여 떨어진다.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證得)하여 일체의 사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끗한 신심(信心)을 가지고 석씨(釋氏)의 집을 버리고 위없는 도로 나아가야 하느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난제가(難提迦) 우바새(優婆塞)에게 말씀하셨다.
‘살생을 하면 열 가지 죄(罪)를 짓게 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마음에 항상 독기를 품어 대대로 끊어지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들이 그를 미워하여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악한 생각을 품고 악한 일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넷째는 중생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마치 호랑이나 뱀처럼 보는 것이며, 다섯째는 잘 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깨어서도 불안해 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항상 악몽(惡夢)을 꾸는 것이며, 일곱째는 목숨을 마칠 때에 미친 듯이 두려워하면서 나쁘게 죽는 것이고, 여덟째는 수명이 짧은 업의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니리옥(泥犁獄)에 떨어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인간에 나도 항상 수명이 짧은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에도 열 가지 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물건의 주인으로 하여금 항상 성을 내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이 의심을 내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때를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으므로 그 행동을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고, 넷째는 악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질고 착한 이를 멀리 떠나는 것이며, 다섯째는 좋은 모양[相]을 파괴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관청[官]에 잡혀가서 죄를 받는 것이며, 일곱째는 재산을 모두 관청에 몰수당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가난해지는 업(業)의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사람이 되어도 부지런히 모은 재산을 남과 공유(共有)해야 하거나 혹은 왕이나 도적에게 빼앗기거나 불에 타거나 물에 떠내려가서 없어지거나 사랑하지 않는 아들이 써버리게 되며, 심지어 매장(埋藏)되든지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니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음(邪婬)에도 열 가지 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항상 그 음부(婬夫)의 남편이 해치려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부부끼리 화목하지 않아 늘 싸우는 것이며, 셋째는 온갖 선하지 못한 법은 날로 불어나고 모든 선한 법은 날로 줄어드는 것이고, 넷째는 제 몸을 잘 지키고 보호하지 못해서 처자(妻子)가 고아(孤兒)나 과부(寡婦)가 되는 것이며, 다섯째는 재산이 날로 소모되는 것이고, 여섯째는 온갖 악한 일들이 있어 항상 남의 의심을 받는 것이며, 일곱째는 친척과 친지들이 사랑하고 기뻐하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원수를 맺는 업의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여자로 태어나면 여럿이 함께 한 남편을 섬기고, 남자가 되면 그 아내가 정숙(貞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을 짓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음(邪淫)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짓말에도 열 가지 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죄인가? 첫째는 입 속에서 항상 냄새가 나는 것이고, 둘째는 선신(善神)이 그를 멀리하고 귀신이 그 사람의 틈을 엿보는 것이며, 셋째는 비록 진실을 말해도 남이 믿어 주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지혜로운 사람의 모임에 항상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항상 남에게 비방(誹謗)을 당하고 추악한 소문이 천하에 두루 퍼지는 것이고, 여섯째는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여 비록 무엇을 지시하더라도 남이 순종하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항상 근심이 많은 것이고, 여덟째는 비방 받을 업과 인연을 심는 것이며, 아홉째는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고, 열째는 만일 지옥에서 나와 사람이 되어도 항상 남의 비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를 짓지 않으면 그것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좋은 율의(律儀)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술을 마시는 데에도 36가지 과실(過失)이 있다.[자세한 것은 이하의 5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죄를 짓지 않으면 이것은 몸으로 짓는 좋은 율의(律儀)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입이 짓는 좋은 율의이니라.’”
이상은 5계의 율의에 대한 것이다.
또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서 말하였다.
“또 열 가지 업(業)이 있어 중생들로 하여금 바깥의 악한 과보[惡報]를 받게 한다. 만일 어떤 중생이 열 가지 악한 업을 많이 닦고 익히면, 모든 외물(外物)에서 느끼는 것을 다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 업인가? 첫째는 살생하는 업[殺生業]이니, 그 때문에 모든 바깥 과보인 대지(大地)는 다 소금밭이요 모든 약초도 다 힘이 없게 된다. 둘째는 도둑질하는 업[偸盜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서리ㆍ우박ㆍ메뚜기 등을 만나 세상이 흉년이 든다. 셋째는 사음을 행하는 업[邪淫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사나운 비바람과 모든 티끌[塵埃]을 만난다. 넷째는 거짓말을 하는 업[妄語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외물이 모두
더러운 냄새가 난다. 다섯째는 이간질하는 말의 업[兩舌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대지는 높고 낮아 고르지 못하고 산과 언덕이 생기며, 나무 그루터기와 거친 터가 생긴다. 여섯째는 욕설을 하는 업[惡口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기왓조각과 자갈처럼 거칠고 깔깔한 나쁜 물건들은 더러워 가까이할 수 없다. 일곱째는 비단처럼 꾸며서 하는 말의 업[綺語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초목이 조밀하게 나고 나뭇가지에 가시가 생긴다. 여덟째는 탐욕의 업[貪多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곡물의 종자가 아주 미세한 것이다. 아홉째는 진에의 업[瞋恚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무 열매가 그 맛이 떫고 쓰다. 열째는 사견의 업[邪見業]이니, 이 업으로 말미암아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수확이 매우 적다. 이런 악한 업은 다 외부의 악한 과보를 생기게 하느니라.”
4) 살생부(殺生部)[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형상을 받아 6취(趣)에 태어나면 연연(戀戀)해 하면서 생(生)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몸[質]을 2의(儀:陰陽, 즉 父母)에서 받고 나면 모두가 구구(區區)하게 죽음을 두려워한다.
비록 또한 오르고 내림이 만 가지요, 어리석고 지혜로움이 천 갈래가 되더라도 괴로움을 피하고 편안함을 구하는 데 이르러서는 그 정(情)이 어찌 따름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놀란 새가 책상에 몸을 던지고도 오히려 위군(魏君)에게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했고, 곤궁에 빠진 짐승이 여막[廬]에 들어와서 구(區)씨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한왕(漢王)은 미끼를 버려 마침내 명주(明珠)의 갚음을 감득(感得)하였고, 양보(楊寶)는 꽃을 보시하여 곧 백환(白環)의 보답을 받았으며, 나아가 사미(沙彌)는 개미를 구제해 주고 현세(現世)에 긴 수명을 얻어 오래도록 살았고, 유수(流水)는 물고기를 구제하자 하늘에서 진귀한 보물이 내려왔으니, 이와 같은 사실들을 어찌 다 갖추어 기술(記述)할 수 있을 것이며, 어찌 싫어함이 없다고 하여 제멋대로 행동하고서 이러한 공양이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남의 기명(氣命:목숨)을 끊고 남의 음신(陰身)을 잘라서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고통을 안고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슬픔을 머금고 죽음으로 향하게 한다면, 이 땅이 아무리 넓다 해도 도망쳐 숨을 곳이 없을 것이요, 하늘은 이미 너무도 높아 그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서 말하였다.
“일체 중생들은 칼이나 몽둥이를 두려워하고 수명을 아끼지 않는 이가 없으니, 자기 자신을 용서하듯이 죽이지도 말고 몽둥이로 때리지도 말라.”
이렇게 말했으나 다만 범부와 속인들은 뒤바뀌어 삿된 견해를 일으켜 밝지 못하다. 그리하여 혹은 길흉(吉凶)을 위해 공적(公的)・사적(私的)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요리를 장만할 때에는 푸줏간[庖廚]에서 잡류(雜類:짐승)들의 몸뚱이를 삶고 구워서 여러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공양하는가 하면, 혹은 다시 해가 바뀌는 세밑이 되어 일에 틈이 생겨 시간에 여유가 있고, 하늘에서 암담하게 서리가 내리면, 들에는 온통 불을 붙여 태운다. 그리하여 온갖 짐승들을 핍박하면서 때맞추어 바람을 좇는 듯한 빠른 말을 타고 번개처럼 빠르게 나는 좋은 매[鷹]를 들고 나가는데, 그럴 때 쓰는 칼은 거궐(巨闕)4)이나 간장(干將)5)이요, 활은 오호(烏號)6)나 번약(繁弱)7)이다. 드디어 모든 늪지대를 누비고, 저 숲 속을 다 뒤져 둥지를 뒤엎고 짐승이 사는 굴속을 파헤치며 들엔 온통 그물을 펼쳐 놓고 높은 산에는 덫을 놓는다.
혹은 앞에서 포위하고 뒤를 차단하여 왼쪽에서 맞이하고 오른쪽을 끊으며, 티끌과 먼지는 햇빛을 가리고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찌른다. 드디어 새들로 하여금 짝을 잃고 놀라서 날아가게 하고, 짐승들은 무리를 이탈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게 하면, 기러기는 활시위 소리를 듣자마자 앞 다투어 떨어지고, 원숭이는 나무를 안고 애처롭게 우나니, 모두가 험한 골짜기에 다다라 슬피 부르짖고 높은 숲을 대하여 절규(絶叫)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리하여 활은 헛되이 쏘지 않고 화살도 빗나가지 않아 저들의 겨드랑이를 관통하고 가슴을 뚫으며, 또 저들의 머리를 가르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게 한다. 혹은 또 흐린 물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맑은 못에 미끼를 흩으면, 하진(河津)에서 잉어 낚는 법을 배우고, 정곡(井谷)에서 붕어를 쏘는 것과 같아서 붉은 비늘이 이미 걸렸으니, 더 이상 믿을 만한 재능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소질(素質:칼 이름)을 이미 달아 놓았으니 배를 띄울 조짐이 영원히 사라졌다.
그 몸뚱이를 어지럽게 회(膾)를 치자, 소반[盤]을 꺼내 비처럼 흩어 놓는다. 혹은 또 험윤(獫狁:匈奴의 別名)이 매우 왕성하게 일어나자 군대를 보내 마구 정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변방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일삼아 신비한 무예를 힘입어 정벌한다.
비록 또 훌륭하고 어진 제왕(帝王)이요 군주(君主)라 하더라도 오히려 창과 방패를 동원했고, 지혜로운 왕후[哲后]요 밝은 임금[明君]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정벌(征伐)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승이(昇陑:지명)의 전쟁에서 마침내 높은 이름을 드러냈고, 목야(牧野)의 군사 동원에서 비로소 훌륭한 덕이 일컬어지게 되었으니, 그 가운데서 혹 백만(百萬)의 군대에 둘러싸여
마구 돌아다니기도 했고,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깊이 진입(進入)하기도 했던 것이다. 적벽(赤壁)에서 조공(曺公:曹操)을 쳐부수고, 오강(烏江)에서 항제(項帝:項羽)를 쳤으며, 왕망(王莽)의 머리를 고대(高臺)에 매달고 동탁(童卓)의 시체를 도시(都市)에서 쓰러뜨린 그 때는 다 영웅들이 하루아침에 위엄 있는 무예(武藝)를 떨쳤던 것이다.
그 당시의 이와 같은 흐름을 이루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뼈를 쌓아 산을 이루지 않음이 없었고, 피가 흘러 방패가 떠다니지 않음이 없었다.
이제 왕의 군대[王師]가 천둥처럼 움직여 요망한 역적을 소진(掃殄)하려고 군대를 드날리고 부절(符節)을 끼고는 변경(邊境)을 살피고 변경을 엿보며, 이윽고 전구(前驅:行列의 앞잡이)에 참예(參預)하고 외람(猥濫)되게 후경(後勁)에 있었으니, 구름처럼 펄럭이는 깃발 아래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할 수 있겠는가?
서릿발같은 칼날이 오가는 사이에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 많다. 그러므로 칼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창 밑에서 목숨을 빌었으니, 이와 같은 죄들을 갖추어 다 진술할 수가 없다.
무릇 이 중생들은 서로서로 침해하면서 원수가 되고 적이 되어 목숨을 등지고 몸을 등짐으로써, 혹은 수명(壽命)이 짧아지는 원인(原因)이 되고, 혹은 병(病)이 많은 결과(結果)를 초래(招來)하였다. 그러니 부디 지금부터는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영원히 단절하고 미래 세계가 다하도록 보리(菩提)의 권속(眷屬)이 되어 좋은 인연과 법성(法城)의 동반자를 무너뜨리지 말기를 바란다.
(2) 인증부(引證部)
또 비나야율(鼻奈耶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였다. 사위국(舍衛國)에 어떤 바라문(婆羅門)이 있었는데, 항상 가류타이(迦留陀夷)8) 나한(羅漢) 비구에게 공양하였다. 그 바라문의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 장성하여 아내를 맞이했다.
그 때 바라문은 임종할 무렵이 되어 그 아들에게 유언(遺言)을 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도 너는 존자(尊者) 가류타이를 잘 보살펴 내가 오늘날까지 했던 것처럼 하여 조금도 모자라는 것이 없게 하라.’
부모가 죽고 난 뒤에 그 아들은 부모의 유언을 받들어 다시 가류타이를 공양(供養)하되, 마치 부모가 살아 계시던 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게 하였다. 그 뒤 어느 때에 바라문의 아들이 출행(出行)하여 집에 있지 못하게 되자 그 아내에게 공양을 부탁하고 떠났다.
그 날에 문득 5백 명의 도적 떼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도적의 얼굴이 매우 단정(端正)하였다. 그의 아내는 멀리서 이 도적을
보고 사람을 시켜 그를 불러오게 하여 그와 함께 정(情)을 통하였다.
가류타이는 예전처럼 자주 그 집에 갔는데, 그 부인은 이 사문(沙門)이 그 일을 누설(漏泄)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뒤에 이 도적과 공모하여 방편(方便)을 써서 가류타이를 죽여 버렸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은 존자 가류타이가 도적에게 피살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왕은 존자와의 옛정을 생각하여 화를 내고 또 고민하다가 즉시 바라문의 가족을 죽이고, 아울러 그의 측근에 살고 있던 18여 가구 남짓한 집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죽였으며, 또 5백 명의 도적들을 잡아 그들의 손발을 끊어버리고 모두 구덩이 속으로 던져 버렸다.
비구들이 그 사실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가류타이는 본래 무슨 악한 업을 지었기에 바라문의 아내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가류타이는 지난 과거생(過去生)에 큰 천사(天祀)9)의 주인이 되었었다. 그 때 5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양(羊)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네 발을 끊어 천사에 가져다 올리고는 함께 소원을 빌었다. 그 천사의 주인은 염소를 얻고 난 뒤에 곧바로 잡아먹었다. 그는 그 염소를 죽인 것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옛날 그 천사의 주인은 바로 지금의 저 가류타이이다. 그가 비록 아라한이 되기는 했으나 남은 재앙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아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 때 그 염소는 지금 저 바라문의 아내이고, 그 때 염소의 네 발을 끊은 5백 사람은 지금 바로 저 왕에게 손과 발이 잘린 5백 명의 도적 떼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또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살해(殺害)하는 일이 있으면, 그가 받을 과보는 끝내 없어지지 않느니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사위성(舍衛城) 안에 어떤 한 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여기미(黎耆彌)였다. 그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결혼하였다. 그 중 막내아들의 아내인 비사리(毗舍離)는 매우 어질고 지혜로워서 무슨 일이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 때 여기미는 그 가업(家業)을 몽땅 작은며느리에게 맡겼으니, 그것은 그녀가 제일 현명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이었다. 바사닉왕(波斯匿王)도 그녀를 공경하고 예우하여 누이동생으로 삼았다.
그녀는 그 때 아이를 배어 달이 차자 서른두 개의 알을 낳았는데, 그 하나의
알마다 그 속에서 사내아이 하나씩 나왔다. 그들은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용맹스럽고 건강하였으며, 범상하지 않아 혼자서도 천 사내를 대적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점점 자라 아내를 맞이했는데, 그 며느리들은 모두 나라 안에서 제일 부자였고 현명한 집안의 딸들이었다.
그 때 비사리가 부처님과 대중 스님들을 자기 집에 초청(招請)하여 공양(供養)하였는데,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시자, 온 집안이 다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녀의 가장 어린 아들만은 도적(道跡)을 얻지 못한 채 코끼리를 타고 놀러 나갔었는데, 보상(輔相:재상)의 아들이 수레를 타고 다리 위로 오는 것을 보고, 곧 발로 차서 다리 아래 구렁텅이로 떨어뜨렸다. 그 아이는 몸을 다친 채 집으로 돌아와 그 아버지에게 일렀다.
그러자 보상이 아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힘이 장사인 데다 또한 국왕의 친척[國親]이니 그와 싸운다 해도 절대로 이기기 어렵다. 마땅히 아무도 모르게 보복할 길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는 곧 7보로써 말채찍 서른두 개를 만들고, 순 강철로 칼을 만들어 말채찍 속에 넣어 가지고 알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각각 하나씩 주었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그것을 받고는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왕(王)을 알현(謁見)하기 위하여 출입(出入)할 때에도 항상 손에 들고 드나들곤 하였다.
그 당시 국법(國法)으로는 왕을 알현할 때에는 칼을 지니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 때 보상은 그들이 채찍을 받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곧 왕에게 참소(讒訴)하여 아뢰었다.
‘비사리의 아들들은 나이도 젊은 데다 힘이 세어 혼자서도 천 명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다른 생각을 품고 대왕님을 살해(殺害)하기 위하여 각기 예리한 칼을 만들어 말채찍 속에 감추어 두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살펴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왕이 곧 조사해 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왕은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 끝에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다 죽이고 나서 서른두 사람의 머리를 한 상자에 담고 봉인(封印)한 다음 그것을 그 누이동생인 비사리에게 보냈다.
그날 비사리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하다가 왕이 보낸 함(函)을 보고는 왕이 공양을 돕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곧 그 함을 열어 보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말리면서 공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공양을 마치고 난 뒤에 부처님께서는 비사리를 위하여 모든 법은 덧없는 것[無常]으로서 다 괴로운 것이라고 설법하시자, 그 때 비사리는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떠나가신 뒤에 비사리는 함을 열고 자기 아들 서른두 명의 머리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욕애(欲愛)를 끊었기 때문에 그다지 고뇌(苦惱)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이런 말을 하였다.
‘아, 애통하고 슬프구나.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란 것이 있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5도(道)를 돌아다니나니, 그 일이 어찌 이다지도 괴롭단 말인가?’
서른두 명 아들들의 처가(妻家) 친족들이 이 사실을 듣고 모두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대왕이 무도(無道)하여 억울하게 착한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는 함께 군대와 말을 모아 가지고 거느리고 가서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왕은 두려워서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아났다. 모든 사람들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기환(祇桓)정사를 에워쌌다.
아난(阿難)은 왕이 비사리의 서른두 명 아들을 죽이자, 그 부인의 집안 친족들이 복수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이 있기에 서른두 명 아들들이 대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과거 세상에 저 서른두 명의 아들이 남의 소 한 마리를 훔쳐 함께 끌고 어떤 한 노모(老母)의 집으로 가서 그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노모가 기뻐하면서 그 소를 잡을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칼로 내리쳐 잡으려 할 때는 그 소가 꿇어앉아 살려달라고 애걸하였으나, 모든 사람들은 탐하는 마음이 더욱 성하여 마침내 그 소를 잡았다. 그 때 그 소가 죽으면서 맹세하였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죽이지만 나는 장차 다음 세상에선 결코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결국은 그 소를 잡아 그들은 함께 먹었고, 노모도 배불리 먹고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지금까지 손님들을 치렀으나 아직껏 오늘 같은 날은 없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소는 바로 지금의 바사닉왕이고, 그 소도둑들은 바로 오늘날 비사리의 서른두 명 아들이며, 그 때의 노모는 바로 지금의 바사리이니라. 저들이 그 때 그 소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5백 생 동안 항상 죽임을 당하였고, 노모는 기뻐하였기 때문에 5백 생 동안 줄곧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아들이 피살될 때마다 매우 고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는데, 지금은 나를 만났기 때문에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게 되었느니라.’
부인들의 집안 친족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분한 마음이 곧 풀려 각각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제가 심은 것을 지금 과보로 받은 것이구나. 한 마리 소를 죽인 까닭으로도 그 과보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수없이 많은 중생을 살생하는 것이겠는가? 저 바사닉왕은 그래도 우리들의 왕이니, 어찌 원한을 품고 살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곧 왕 앞에 나아가 용서를 빌고 참회하였다. 왕도 또한
모두 이해하고 그 죄를 묻지 않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들은 또 무슨 복을 지었기에 호귀(豪貴)하고 용감(勇敢)하고 건강(健康)하며 부처님을 만나서 도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어떤 노모(老母)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향(香)을 모아 기름에 섞어서 불탑(佛塔)에 바르려고 하였다. 그녀는 길을 가는 도중에 서른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만났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도 권유(勸諭)하여 함께 가서 불탑에 발랐다.
그 일을 마치자 이렇게 발원하였다.
≺우리는 태어나는 생(生)마다 존귀(尊貴)하고 영화(榮華)로우며 부자(富者)의 집안에 태어나 항상 모자(母子)가 되게 하고 부처님을 만나 도를 얻게 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있은 이후로 이들은 5백 생 동안 항상 존귀하였고 늘 모자 사이가 되었으며, 지금은 부처님을 만났기 때문에 각각 도적(道跡)을 증득하게 되었느니라.’”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장난치고 웃으면서 남의 목숨을 죽이면
슬피 울부짖으며 지옥에 들어가서
냄새나고 더러운 물과 구리 녹인 물을
그 입에 끊임없이 쏟아 넣게 된다.
칼날 위를 달리고 불 속으로 나아갈 때
찔리고 찢어지는 고통 너무 심하여
억 년 동안 그 고통 갖가지로 많으니
아픈 마음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살생하면 4취(趣)에 들어가
3도(塗)의 괴로움을 받다가 마치고 나서
다시 인간 세계에 태어나지만 그 다음에도
수명이 짧고 온갖 질병으로 근심하게 된다.
병들어 쇠약해지는 고통을 받고
수명 또한 짧아서 항상 침몰(沈沒)하게 되나니,
만약 그가 지혜롭고 인정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제멋대로 죽일 마음을 가지겠는가?
감응연(感應緣)[열일곱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송(宋)나라 때 무군장군(撫軍將軍:將軍의 名號) 유의(劉毅)의 증험
양(梁)나라 때 어떤 사람이 머리를 감을 때 계란 흰자위를 사용한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드렁허리[鱓] 파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손님이 고기를 구워 먹은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죽여 절 기둥[刹柱] 밑에 둔 증험
양나라 때 어떤 부곡(部曲)10)이 도적의 손을 끊은 증험
제(齊)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잡아먹고 갑자기 죽은 증험
제나라 때 어떤 사람이 물고기 잡는 것을 보다가 그 고기가 물어뜯은 증험
당(唐)나라 때 은안인(殷安仁)이 손님을 잡아두고자 나귀를 죽인 증험
당나라 때 도독(都督) 찬두궤(酇竇軌) 공이 살생하기를 좋아한 증험
당나라 때 반과(潘果)가 양(羊)을 잡아먹고 혀가 꼬부라진 증험
당나라 때 하열(賀悅)이 소를 붙잡아 매놓고 혀를 끊고 벙어리가 된 증 험
당나라 때 과의효(果毅孝)가 벌을 죽인 증험
당나라 때 어떤 사람이 원수의 해침을 받은 증험
당나라 때 제사망(齊士望)이 계란을 구운 증험
당나라 때 봉원측(封元則)이 양을 훔쳐 죽인 증험
당나라 때 경성(京城) 서로(西路)의 가게 사람이 양을 죽인 증험
송(宋)나라 때 무군장군(撫軍將軍:將軍의 名號) 유의(劉毅)의 증험
송(宋)나라 고조(高祖)는 환현(桓玄)을 평정한 뒤에 유의(劉毅)를 무군장군(撫軍將軍) 형주(荊州) 자사로 삼았다. 유의는 형주로 부임(赴任)하여 곧 우목사(牛牧寺) 주지를 수감하고 말했다.
“장환(藏桓)의 집 아이를 제도해 사미(沙彌)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아울러 네 도인(道人)과 함께 죽였는데, 그 뒤 어느 날 밤 꿈에 이 스님이 와서 말하였다.
“그대는 왜 나를 억울하게 죽였느냐? 내가 이미 그 사실을 천제(天帝)께 아뢰었으니, 아마도 그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그는 곧 병을 얻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날로 쇠약해져 갔다. 장차 양도(楊都)로 출발할 때에는 많은 다툼을 일으켜 재보(宰輔)를 침범하고 업신여겼다. 송의 고조는 마침내 사람을 보내 그를 정벌했다. 유의는 패하여 밤에 혼자서 도망쳐 우목사로 갔다. 그 절 스님이 무군(撫軍:劉毅)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장군은 우리 스승과 우리 도인(道人)을 억울하게 죽였습니다. 이제는 원수를 잡을 일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
이 죽은 스님은 여러 번 영험(靈驗)을 나타내어 말하였다.
“천제(天帝)가 무군장군을 체포해 절에서 죽일 것이다.”
유의는 곧 탄식하면서 그 절 뒷산으로 올라가 큰 나무 위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원혼지(冤魂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양(梁)나라 때 어떤 사람이 머리를 감을 때 계란 흰자위를 사용한 증험
양(梁)나라 때에 어떤 사람은 항상 계란 흰자위를 물에 타서 머리카락을 빛나게 했다. 그는 머리를 감을 때마다 계란 20개 내지 30개를 썼다. 그가 임종(臨終)할 무렵, 머리카락 속에서 수천 마리의 병아리 소리가 삐악삐악 들려올 뿐이었다.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드렁허리[鱓] 파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증험
양나라 때 강릉(江陵)의 유(劉)씨는 민물고기인 드렁허리[鱓]를 파는 일로 업(業)을 삼았다. 그는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의 머리는 드렁허리였고, 목 부분 이하는 사람이었다.
양나라 때 어떤 손님이 고기를 구워 먹은 증험
양나라 때 왕극(王克)은 영가(永嘉) 군수(郡守)로 부임했다. 어떤 사람이 양(羊)을 선물로 보내왔는데, 그는 손님을 모아들여 그것을 잡아 잔치를 베풀려고 했다. 그러자 양은 고삐를 풀고 어느 손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두 번 절하고는 곧 그 손님의 옷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손님은 끝내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고, 주인에게 구원(救援)을 청하는 일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그 양을 잡아 구워서 먼저 그 손님에게 돌렸다. 손님이 그 양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자 그것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 돌아다녔다. 그는 그 일로 온몸에 고통을 느껴 울부짖으면서 그 때서야 그 사실을 말하였다. 결국 그는 양 울음소리를 내면서 죽었다.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죽여 절 기둥[刹柱] 밑에 둔 증험
양나라 때 어떤 사람은 현령(縣令)이 되었다. 그는 유경궁현(劉敬躬縣)의 현령을 지내다가 그 고을 관아의 행랑채[縣廨]가 화재를 입어 다 탔으므로 절에서 묵고 있었다. 그 고을의 백성들이 소와 술을 가지고 와서 예물로 현령에게 드렸다. 그는 소를 절에 매어 두고 불상을 다 치우고 거기에 술상을 차리고는 당상(堂上)에서 손님을 대접했다. 그 소를 아직 죽이기 전에 소가 고삐를 풀고, 뜰 앞에 와서 현령에게 예배하였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측근 신하들을 시켜 소를 잡아 요리하여 술과 안주를 한껏 먹고 처마 밑에 누워서 잤다. 술이 깨자 온몸이 가려우면서 두드러기와 종기가 생겨 마구 긁었다. 그로 인해 조금 뒤에 큰 병으로 변하여 10여 일쯤 되자 이내 죽고 말았다.
양나라 때 어떤 부곡(部曲)11)이 도적의 손을 끊은 증험
양나라 양사달(楊思達)은 서양(西陽) 군수가 되어 후경(侯景)의 난리를 만났다. 그 때는 또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굶주린 백성들이 남의 밭의 보리를 훔쳤다. 사달은 부곡(部曲) 한 사람을 보내 순찰하게 하였는데, 그는 도적을 붙잡아 그 도적의 손을 끊었다. 그렇게 그런 벌을 받아 손이 끊어진 사람이 무릇 10여 명이나 되었다. 그 뒤에 부곡이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는 나자마자 저절로 손이 없었다.
제(齊)나라 때 어떤 사람이 소를 잡아먹고 갑자기 죽은 증험
제(齊)나라 때에 어떤 봉조청(奉朝請)12)은 집이 매우 크고 사치스러워 손수 잡은 소가 아니면 그것을 먹어도 맛이 없다고 했다. 나이 30여 살쯤 되어 병이 위독하였는데, 그 때 큰 소가 오는 것을 보고 온몸이 칼에 찔리는 것 같아 울부짖으면서 죽었다.
제나라 때 어떤 사람이 물고기 잡는 것을 보다가 그 고기가 물어뜯은 증험
제나라 때 강릉(江陵)의 고위(高偉)는 오(吳)나라에서 제나라로 들어와서 여러 해를 살다가 유주(幽州)로 갈 때,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잡았었다. 그 뒤에 병이 들었는데 그 때 늘 고기 떼가 몰려와서 자신을 물어뜯는 것을 보다가 곧 죽었다.[이상 일곱 가지 증험은 『홍명잡기(弘明雜記)』에서 나온 것이다.]
당(唐)나라 때 은안인(殷安仁)이 손님을 잡아두고자 나귀를 죽인 증험
당나라 서울에 사는 은안인(殷安仁)은 집이 부자로서 평소부터 자문사(慈門寺) 스님을 섬겼었다. 의령(義寧:隨 恭帝의 연호) 원년(617) 초에 어떤 손님이 그 집에 기숙하고 머물렀다. 그 손님은 남의 집 나귀를 훔쳐다가 그 집에서 잡아먹고, 나귀 가죽을 안인(安仁)의 집에 놓아두고 떠났다.
정관(貞觀:唐 太宗의 연호) 3년(629)에 이르러 안인이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안인에게 말했다.
“그대를 쫓는 사자가 내일 올 것이다. 그대는 분명히 죽게 될 것이다.”
안인은 크게 두려워 그 길로 자문사에 가서 불전(佛殿) 가운데 앉아 밤을 지새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튿날 과연 기병(騎兵) 세 사람과 보병 수십 명이 모두 무기를 들고 절에 들어와 멀리서 안인을 보고 불러냈다. 그러나 안인은 거기에 응하지 않고 염불(念佛)과 송경(誦經)을 더욱 열심히 했다. 귀신(군사)들이 서로 의논하였다.
“어제 바로 잡지 않았더니 오늘은 저처럼 복(福)을 닦고 있으니 어떻게 저 사람을 잡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모두들 떠나가면서 한 사람만 남겨두어 그를 감시하게 했다. 감시하던 사람이 안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전날 나귀를 잡아먹었으므로 그 나귀가 지금 그대를 고소(告訴)하여 우리가 그대를 잡으러 왔을 뿐이다. 이렇게 서로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 가지 않은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안인이 멀리서 대답하였다.
“전날 그 나귀는 다른 사람이 훔쳐 와서 그가 잡았고, 다만 그 껍질만을 내게 주었을 뿐이다. 본래 내가 죽인 것이 아닌데, 왜 나를 쫓아다니느냐? 부디 그대는 돌아가서 그 나귀에게 내 대신 말 좀 해 주오.
‘내가 너를 죽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너를 위해 명복을 빌어 줄 것이니 부디 나를 놓아달라.’
이렇게 말을 전해 주오.”
감시하던 사람은 좋다고 허락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만일 나귀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내일 다시 올 것이고, 만일 허락하면 나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라졌다. 그 이튿날이 되었으나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리하여 안인은 나귀를 위해 명복을 빌어 주고 온 집안이 다 계(戒)를 지키면서 채식(菜食)만 했다고 한다. 이것은 노문려(盧文勵)가 이야기한 것이며, 안인은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고 하였다.
당나라 때 도독(都督) 찬두궤(酇竇軌) 공이 살생하기를 좋아한 증험
당나라 낙주(雒州) 도독(都督)인 찬두궤(酇竇軌) 공은 성질이 살생(殺生)을 좋아하였다. 처음에는 익주(益州)의 행대(行臺)13) 복야(僕射)14)로 있으면서 장사(將士)들을 많이 죽였고, 또 행대 상서(尙書)인 위운기(韋雲起)를 살해하였다.
정관(貞觀) 2년(628) 겨울에는 낙주에 있으면서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하였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내게 오이를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이 대답하였다.
“지금 한겨울인데 무슨 오이가 있겠는가?”
찬두궤 공이 말하였다.
“지금 한 상 가득하게 오이가 있는데, 왜 오이가 없다고 하느냐?”
조금 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오이가 아니다. 그것은 다 사람의 머리이다. 다 내게 살려 달라고 하고 있다.”
또 말하였다.
“나를 부축해 일으켜라. 위상서(韋尙書)가 보인다.”
그리고는 말을 마치자 이내 죽었다.
당나라 때 반과(潘果)가 양(羊)을 잡아먹고 혀가 꼬부라진 증험
당나라 서울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반(潘)이고 이름은 과(果)였다. 나이 20세가 채 못 된 무덕(武德:唐 高祖의 年號) 때에 도수(都水)의 조그만 관리에 임명되었다가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와 젊은이 몇 명과 함께 들에 나가 놀았다. 무덤 사이를 지나다가 양(羊) 한 마리를 보았다. 그 양은 무리에서 떠나 혼자 풀을 뜯고 있었다. 반과는 소년들과 함께 그것을 붙잡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양이 오는 도중에 몹시 울었으므로 반과는 주인이 들을까 두려워하여 그 양의 혀를 잡아 뽑고 그 날 밤에 잡아먹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반과의 혀가 자꾸 오그라들어 부득이 사직원(辭職願)을 내었다. 부평(富平) 현령(縣令) 정여경(鄭餘慶)은 그것을 거짓이라 의심하고 사람을 시켜 그의 입을 벌리고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혀가 다 오그라들어 아주 없었고, 혀뿌리에 콩알만한 것만 남아 있었다. 관인(官人)이 그 까닭을 묻자 반과는 종이에 글을 써서 그 내력을 말하였다. 관인들은 일시에 손가락을 튀기면서 그로 하여금 염소를 위해 명복(冥福)을 빌게 하고,
『법화경(法華經)』 등을 베끼게 했다. 반과는 곧 발심(發心)하여 불법(佛法)을 믿고 공경하여 끊이지 않고 재계(齋戒)를 하였고, 염소를 위해 복을 닦았다. 그런 지 1년이 지나 반과의 혀가 차츰 자라나더니 결국에는 전과 같이 되었다. 그는 관청에 나아가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현관(縣官)은 반과를 이정(里正)으로 삼았다. 현령이던 여경(餘慶)은 정관 18년(644)에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어 부임하러 갈 무렵에 이 사실을 이야기하였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서 나온 것이다.]
당나라 때 하열(賀悅)이 소를 붙잡아 매놓고 혀를 끊고 벙어리가 된 증험
당나라 무덕(武德:唐 高祖의 年號) 때에 습주(濕州) 대녕(大寧) 사람 하열영흥(賀悅永興)이 그 이웃집 사람의 소가 그의 농사를 망쳐 놓았다 하여 밧줄로 소를 묶고 그 소의 혀를 끊었다. 그 뒤에 영흥(永興)이 아들 셋을 낳았는데 모두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했다.
당나라 때 과의효(果毅孝)가 벌을 죽인 증험
당나라 옹주(雍州) 육효정(陸孝政)은 정관(貞觀) 연중(年中)에 우위습주부(右衛濕州府)의 좌과의(左果毅)가 되었다. 그는 성질이 조급하여 잔인한 짓을 많이 했다. 그 부내(府內)에 전부터 벌통 하나가 있었는데, 그 벌이 분봉(分蜂)하여 그 집의 남쪽에 있는 나무 위에 날아와 붙었다. 그러자 효정(孝政)은 사람을 시켜 그 벌들을 다른 통에 옮기도록 하라고 지시해 놓고 벌이 빨리 옮겨지지 않자 그는 크게 화를 내어 끓는 물 한 바가지를 가져다가 나무에 있는 벌떼에게 쏟았다. 그 벌들은 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다 죽고 말았다. 그 이듬해 5월에 효정이 청사(廳舍)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혀를 쏘았다. 벌에 쏘인 자리가 큰 종기가 되어 숨통을 막아 며칠만에 죽고 말았다.
당나라 때 어떤 사람이 원수의 해침을 받은 증험
당나라 농서(隴西)의 이의염(李義琰)은 정관(貞觀) 연중에 화주현(華州縣)의 위(尉)15)가 되었다. 그 고을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을 잃어버렸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의 부형(父兄)들은 그것을 어떤 원수가 해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관청에 가서 진정하였다. 의염이 아무리 조사해 보았으나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 밤에도 촛불을 켜고 자세히 심문했는데, 을야(乙夜:밤 10시 경)쯤 되어 의염이 책상에 기대 머리를 숙이고 있을 때 갑자기 죽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피살된 그 모습을 하고서 말하였다.
“아무개가 나를 때려
죽여 어디에 있는 어느 우물 속에 던져 버렸으니, 공(公)은 어서 빨리 조사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았다가 그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기라도 하면 다시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의염이 직접 나가 조사해 보았더니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곧 그 원수를 잡아 추궁하여 그의 자백을 받았다. 그 때 이 사실을 보거나 들은 사람은 모두 다 놀라고 감탄했다.
당나라 때 제사망(齊士望)이 계란을 구운 증험
당나라 위주(魏州) 무강(武强) 출신인 제사망(齊士望)이 정관(貞觀) 21년에 죽었다가 7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전에 죽어서 끌려가 왕(王)을 뵈었더니 왕은 곧 나를 조사(曹司:관청)에게 부탁하여 특별히 감당(勘當)으로 보냈다. 한 4~5일쯤 지난 뒤에 감부(勘簿)가 말하였다.
‘꼭 죽어야 할 자와 성명(姓名)이 똑같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다.’
그런데 판관(判官)이 나에게 말하였다.
‘너는 생전에 닭을 잡아 구워먹기를 좋아했으니, 마땅히 죄를 받고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명하여 문 밖으로 내보내게 했다. 조사(曹司)에서 한 1~2리쯤 떨어진 곳에 한 성(城)이 있었는데, 그 성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뻐서 그 성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 성에 들어서자마자 성문이 굳게 닫히고 성안에는 집 한 채도 없었으며, 온 땅은 다 뜨거운 재[熱灰]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타오르는 불길에 발을 데어 고통이 매우 심했다. 내가 사방을 둘러보았더니, 성문이 다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가자 그 문은 또 닫히고 말았다. 하루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문지기에게 명령하였다.
‘문을 열어라. 어제 그 죄인을 놓아주어 지금 나갈 것이다.’
나는 문을 나와 명을 받은 사람의 전송을 받으며 돌아오려는데, 사자가 길이 멀다고 하면서 자꾸 미루고 보내 주지 않더니 마침내 돈과 비단을 요구했다. 나는 그의 요구를 허락하고 마침내 냇물을 건너고 가시밭길을 걸어 어느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빙 둘러 담을 쌓았고 그 안에는 매우 깊고 검은 구덩이가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하였는데, 그 때 사자가 나를 그 구덩이로 밀쳐 나는 그 구덩이에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다시 살아났다. 조금 있다가 곧 종이돈 따위를 만들어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사자가 약속한 시간이 되자 왔다. 나는 그곳에서 아내도 같이 보았다.”
당나라 때 봉원측(封元則)이 양을 훔쳐 죽인 증험
당나라 봉원측(封元則)은 발해(渤海) 나라 장하(長河) 사람이었다. 현경(顯慶:唐 高宗의 年號) 연중에 그는 광록시(光祿寺) 태관장선(太官掌膳)이 되었다. 그 때 서번(西蕃:서쪽 국경과 인접한 나라)에서 우전왕(于闐王)이 와서 조회(朝會)를 하였는데, 요리하여 먹다가 남은 양이 무릇 수십 백 마리나 있었다. 왕이 원측(元則)에게 부탁하여 모두 절[僧寺]에 보내 놓아기르게 했다. 그런데 원측이 몰래 백정[屠家]을 시켜 그 양을 다 잡아 요리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팔아 그 값으로 돈을 거두어들였다.
용삭(龍朔:唐 高宗의 年號) 원년(661) 6월에 낙양(雒陽)에 천둥과 벽력을 동반한 큰비가 내렸는데, 그 때 원측이 선인문(宣仁門) 밖 큰 거리에서 죽었다. 그는 죽을 때 목이 부러졌고, 흘린 피가 땅을 흠뻑 적셨다. 이것을 보고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이상 다섯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서 나온 것이다.]
당나라 때 경성(京城) 서로(西路)의 가게 사람이 양을 죽인 증험
당나라 현경(縣慶) 연간에 장안성(長安城) 서쪽 길가에 가게가 있었는데, 어떤 집 신부가 그 점포에서 아이를 낳았다. 보름날 친족들이 모여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베풀고 양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 양은 백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꾸 절을 했다. 백정이 이 사실을 그 집 사람들에게 알렸으나 집안의 노소들은 다 그것을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고 하여 결국 그 양을 잡았다. 여러 사람들은 그 고기를 삶아서 파와 마늘, 그리고 떡이랑 곁들여 맛있게 먹으면서 산부(産婦)에게 아기를 안고 불 앞에서 고기 삶는 것을 감독하게 했다. 산부가 불 앞에서 아기를 안고 있을 때 매우 단단하고 큰 가마솥이 갑자기 터지더니, 그 끓는 물과 뜨거운 재가 모자(母子)를 바로 때려 두 모자가 그 자리에서 다 죽었다. 이것을 본 친척과 이웃 사람들이 모두 불쌍하게 여겼다.
이런 증험의 분명함을 알 수 있거늘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이것을 본 가게 사람들은 술과 고기와 냄새나는 채소를 아주 끊고 먹지 않았다.[이것은 그 가게에 있던 사람이 말한 것이다.]
728x90
반응형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4518 법원주림(法苑珠林) 75권 (0) | 2024.07.18 |
---|---|
[적어보자] #4517 법원주림(法苑珠林) 74권 (0) | 2024.07.18 |
[적어보자] #4515 법원주림(法苑珠林) 72권 (0) | 2024.07.17 |
[적어보자] #4514 법원주림(法苑珠林) 71권 (0) | 2024.07.17 |
[적어보자] #4513 법원주림(法苑珠林) 70권 (0) | 2024.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