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74권
법원주림 제74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84. 십악편 ②[여기에는 7부가 있다.]
5) 투도부(偸盜部)
술의부(述意部) 불물부(佛物部) 법물부(法物部)
승물부(僧物部) 호용부(互用部) 범물부(凡物部)
유물부(遺物部)
(1) 술의부(述意部)
무릇 몸을 받아 6취(趣)에 태어나는 것은 탐욕(貪欲)이 그 근원이 되지 않음이 없고, 형체[質]를 2의(儀:陰陽)에서 받는 것은 모두가 재물을 그리워한 것이 그 근본이 된다.
비록 사람과 축생(畜生)이라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인색하고 아낌[慳惜]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재물에 임(臨)하여 구차하게 얻으면 그를 명철한 사람[哲人]이 아니라고 말하고, 이익을 보고 의리(義理)를 잊으면 군자(君子)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돈과 재물[錢財]과 옥(玉)과 비단[帛]은 바로 바깥 것에 의지하는 것이요, 번기[幡]와 꽃과 스님들의 물건 등은 바로 안으로 공양(供養)하는 것이다. 이치로 보아 마땅히 자기 자신의 가난하고 구차함[貧窘]을 살펴보고, 다른 사람의 부유(富裕)한 것을 따라 기뻐해 주어야 하겠거늘, 어찌 남의 재물을 탐하여 빼앗아서야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조달(調達)은 꽃을 꺾었다가 마침내는 곧 퇴락(退落)했고, 교범(憍梵)은 좁쌀을 축냈다가 도리어 소의 몸이 되었으며, 가섭(迦葉)은 떡을 구걸했다가 속인(俗人)에게 꾸지람을 받았고, 비구(比丘)는 꽃향기를 맡았다가 지신(池神)에게 청정해야 한다는 꾸지람을 들었다. 이로써 알 수 있다. 도둑질을 한 허물이 어찌 큰 죄(罪)가 아니겠는가?
그런 까닭에 아침을 먹고자 해도 먹을 음식이 없고, 밤에 잠을 잘 적에도 잠옷이 없으며, 새처럼 깃들이고 사슴처럼 자면서 알몸으로 구부렸다 폈다 괴로워하고, 길가에서 편안히 잠을 자며,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한다.
마침내 어머니로 하여금 자고(鷓鴣)새를 쫓아 남쪽으로 가게 하고, 아들은 호마(胡麻)를 따라 북쪽으로 돌아가게 하며, 남편은 해의 그림자처럼 서쪽으로 달아나게 하고, 아내는 흘러가는 냇물처럼 동쪽으로 흘러가게 하나니, 모든 고향을 바라보고 창자를 끊고 태어난 곳을 생각하여 통곡하여 울며,
눈물은 뒤범벅이 되어 피를 뿌리고 답답한 심정은 미간(眉間)을 찡그리게 한다. 이와 같은 고통은 모두가 전생(前生)의 몸이 보시(布施)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겁탈하고 훔쳤기 때문에 초래(招來)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과거생(過去生)의 원인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현재의 결과를 보면 될 것이요, 미래(未來)의 과보(果報)를 알고자 하면 다만 현재의 인(因)을 보아라. ”
그런 까닭에 여러 수행하는 이들에게 권유(勸諭)하노니, 부디 항상 경계하고 힘써서 남의 물건 훔칠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나아가 길거리에 흘린 물건까지도 탐하지 말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일부러 남의 물건을 훔쳐서야 되겠는가?
(2) 불물부(佛物部)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불사(佛寺:寺刹)를 짓고 거기에 공양한 구슬과 화만(華鬘) 따위를 따질 것도 없이 함부로 취하면, 만약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다 방편(方便 :技術)을 도적질한 죄를 얻게 되느니라.”
또 『비나야론(鼻奈耶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탑(塔)이나 성문(聲聞)의 탑에 있는 번기[幡]나 꽃을 훔치면, 이것은 다 시주(施主)에 대하여 중(重)한 죄를 짓는 것이니, 그의 복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불도(佛圖)의 물건이나 정사(精舍:寺刹)의 공양 도구를 훔치는 사람이 있거나, 만약 그것을 수호(守護)하는 주인이 있으면, 주인을 계량(計量)하는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 된다.”
『십송률』에서 말한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훔친 것이나,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한 불상(佛像)을 훔친 것과 같은 것은 다 정심공양(淨心供養)이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사람들도 부처님의 제자요, 나 또한 부처님의 제자이다’고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비록 취(取)하여 공양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다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시주와 뜻이 통하면 범한 것이 아니고, 국집[局]하면 중죄를 범한 것이라는 말이다.]
또 『마덕륵가론(摩德勒伽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물건을 팔아 생활하기 위하여 불상이나 사리를 훔치는 것은 큰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 된다.”
(3) 법물부(法物部)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느 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경전(經典)을 훔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그 경전을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종이와 먹의 가치를 계산하여 5전(錢)의 가치가 충분하면 그것은 중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남에게 경전을 빌려왔다가 거역(拒逆)하고 되돌려 주지 않아 그 주인으로 하여금 의심을 내게 하면
방편죄(方便罪)를 범하는 것이다.”[마음으로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약 거절하면 중죄를 범하는 것이다.]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남의 비방(秘方:技術)을 훔치면 중죄를 범한 것이니라.”
『유식(唯識)』과 『결론(決論)』에서 말하였다.
“가만히 다른 사람의 경전을 가져다가 한 구절[句]이라도 읽으면 문구(文句)를 훔친 죄가 되느니라.”[이는 마땅히 그 주인이 마음으로 아끼는 비방이면 범죄가 되고, 다른 경도 다 그러하다. 만일 그 주인과 뜻이 통해 아끼지 않는 것이면 가져다 읽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오백문사구결(五百問事口決)』에서 말하였다.
“경전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불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입 기운[口氣]이 악(惡)하기 때문이다.[불상에 쌓인 먼지도 그러하다.] 만일 오래된 경전이라고 해서 그것을 불사르면 중죄(重罪)가 되나니 부모를 태우는 것과 같고, 죄가 되는 줄을 모르면 경죄(輕罪)가 된다.”[어떤 악한 사람은 부처님의 동상(銅像)을 훔쳐 그것을 녹여 성인의 용모를 주조(鑄造)하여 장차 자기 신명(身命)에 쓴다. 이것은 지극한 역죄(逆罪)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혹은 번기와 꽃을 훔쳐 옷을 만드는 데 쓰거나 그것을 팔아 생활하면, 이와 같은 죄는 미래에 재앙을 받는데 거기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4) 승물부(僧物部)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스님의 물건을 빌려왔다가 되돌려 주지 않으면, 그 가치를 따져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 된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스님의 화만이나 물건을 훔치는 것은 8만 4천의 부모를 죽인 죄보다 더 크다.”
또 『보량경(寶梁經)』에서 말하였다.
“차라리 내 몸의 살을 씹을지언정 끝내 3보(寶)의 물건은 쓰지 않아야 한다.”
또 방등경(方等經)에 의하면 이러하다.
“화취(華聚)보살이 말하였다.
‘5역죄(逆罪)1)와 4중죄(重罪)2)는 내가 구제할 수 있어도 스님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나로서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다.’”
또 『대집경(大集經)』 「제룡품(濟龍品)」에서 말하였다.
“그 때 모든 용(龍)들이 숙명심(宿命心)을 증득하여 스스로 과거의 업을 생각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부처님 앞에 와서 각각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저희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보니, 부처님의 법 가운데에서 혹 속인(俗人)의 친속(親屬)들과 인연을 맺기도 하였고, 또 법(法)을 들은 인연으로 믿는 마음을 가지고 갖가지 꽃과 과일, 그리고 음식 등을 보시하였으며, 여러 비구들과 함께 차례를 따라 나누어 먹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용이 말하였다.
‘저는 일찍이 사방 대중 스님들의 꽃ㆍ과일ㆍ음식 등을 먹었습니다.’
또 어떤 용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과거에 절에 가서 대중 스님들에게 보시하였고, 때로는 예배(禮拜)를 올리고 이와 같은 것을 먹었습니다. 나아가 7불(佛) 이후로 일찍이
속인으로서 믿는 마음을 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공양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과일과 갖가지 음식을 보시하였습니다. 비구가 그것을 얻고 난 뒤에 그것을 다시 저에게 돌려주었고, 저는 그것을 얻어 가지고 곧 먹었습니다.
그 업(業)의 인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겁(劫)을 지내는 동안 큰 불 속에서 혹은 태워지기도 하였고, 혹은 볶이기도 하였으며, 혹은 구리 녹인 물을 먹기도 하였고, 혹은 벌겋게 단 철환(鐵丸)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그 지옥에서 나와서는 축생(畜生)의 세계에 떨어졌고, 축생의 몸을 버린 다음에는 아귀(餓鬼)로 태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 고통을 골고루 받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용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악한 업은 부처님의 물건을 훔친 것과 똑같아서 차별이 없고, 비구가 지은 5역죄(逆罪)의 업에 비교하면 그 죄는 그 절반과 같다. 그러나 이 죄의 과보는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현겁(賢劫) 중에 최후의 부처님을 만나게 될 터이니, 그 부처님의 이름은 누지(樓至)라고 할 것이다. 그 때 그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죄가 소멸되어 없어지게 될 것이다.’”
自述
【문】 무슨 까닭에 스님의 물건을 훔쳐 사용하면 그 죄가 더욱 중(重)하다고 하는가?
【답】 한 물건을 훔치면 그것을 따라 곧 시방 세계의 범부와 성인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즉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게 이르고 아래로는 일반 스님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의 끝이 없음을 따라 다시 끝이 없는 죄를 짓나니, 미세한 먼지는 오히려 헤아려 알 수 있어도 이 사람의 죄보(罪報)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 시주가 본래 보시한 하나의 털과 한 알의 낱알도 시방 세계의 출가한 범부와 성인에게 공양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먹고 쓰도록 하여 밤낮으로 도를 닦게 하기 위한 것이지 속인(俗人)에게 공양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종(鐘)이 울려 퍼지면 그 하나의 메아리에 멀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와서 음식을 먹고,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함께 도업(道業)을 이루는 것이니, 가만히 시주(施主)를 힘입어 얻는 수익은 그지없다.
이 복리(福利)를 생각해 보건대 그 공은 법계(法界)와 같아서 선(善)을 부름이 그처럼 많거늘 그 얻은 죄인들 어찌 적겠는가?
요즈음 어리석고 미혹된 중생들을 보면, 귀하고 천함을 가릴 것 없이 3보(寶)를 믿지 않고 구차스럽게 복물(福物)만을 탐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제 자신을 위해서 쓴다. 혹은 스님의 음식을 먹기도 하고, 또는 꽃과 과일을 받아 쓰기도 하며, 혹은 스님이 기르는 짐승을 타고 다니거나 스님이 부리는 종을 부리기도 하며, 혹은 스님의 물건을 빌려 와서는 오래도록 돌려주지 않다가
스님의 독촉을 받게 되면 도리어 능멸(凌蔑)하고 헐뜯으며, 혹은 관청의 세력을 믿고 스님들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등 이와 같은 따위의 손해를 끼치는 일들을 다 열거하여 말하기 어렵다. 이런 허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지금 아끼고 주지 않는 것은 간탐[慳]하거나 인색[惜]해서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속인[白衣]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그들이 장래에 받을 고통을 염려하기 때문이니, 만약 마땅히 그냥 준다면 다만 속인에게만 손상을 끼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죄가 지사(知事)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미래 세상에 태어나는 곳에서 그 재앙을 똑같이 받을까 염려해서이다.
그러므로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말하였다.
“한 생각의 악(惡)은 다섯 가지 불선(不善)한 문(門)을 연다. 첫째는 악이 능히 사람들의 선근(善根)을 태우는 것이요, 둘째는 악한 것으로부터 다시 악이 생겨나는 것이며, 셋째는 성인에게 꾸중을 듣는 대상이 되는 것이요, 넷째는 도과(道果)를 잃는 것이며, 다섯째는 죽어서 악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쉬운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참으로 큰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니, 이 뒤에 어느 때든지 스님의 물건을 받아 쓸 적에는 마땅히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써야만 할 것이다.”
(5) 호용부(互用部)
『보인경(寶印經:寶梁寶印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의 물건과 법(法)의 물건, 이 두 가지 물건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물건과 법의 물건, 이 두 가지는 서로 주인(主人)이 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물어볼 수도 없으니, 그것은 항상 초제(招提:寺刹)에 놔두고서 서로 물어보고 쓸 수 있는 승려의 물건[僧物]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승려의 물건을 사용하여 불탑(佛塔)을 수리하려면 법에 의하여 취해야만 하나니, 스님들이 화합(和合)하면 쓸 수 있겠지만, 화합하지 못하면 속인들에게 권하여 수리하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불탑에 어떤 물건 내지는 1전(錢) 이상의 돈이 있으면, 시주(施主)가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하늘이나 사람들은 이 물건에 대하여 마땅히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고 탑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나아가 바람이 불어와서 무너졌더라도 3보(寶)에 공양한 물건을 팔아서는 안 되나니, 여래(如來)의 탑물(塔物)은 사람이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승방(僧坊)이나 불도(佛圖)에서 부리는 하인[使人]과 코끼리ㆍ말ㆍ소ㆍ양 따위는 각각 속한 데가 있으므로 함께 쓸 수 없는 것이다.”
또 『승기율(僧祇律:摩訶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 공양한 물건이나 꽃이 많으면 다른 곳에 팔아 향(香)이나 등(燈)을 사도 된다고 허락하였으며,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아 있으면
무진재(無盡財) 중에서 매매(賣買)할 수도 있다.”
또 『오백문사구결(五百問事口決)』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을 장식한 번기[幡]가 많으면 다른 불사(佛事)를 하려고 할 때 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만약 시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불탑(佛塔)에 공양한 음식은 탑을 수리하는 사람이면 먹어도 된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 앞에 바친 음식을 부처님을 시봉(侍奉)하는 비구는 먹을 수 있으며, 만약 비구가 없어서 속인이 부처님을 모셨으면 속인이라도 먹을 수 있다.”
또 『죄복결의경(罪福決疑經)』에서 말하였다.
“처음으로 부처님께 바칠 때에는 상좌(上座)ㆍ중좌ㆍ하좌의 비구는 반드시 속인을 시켜 부처님과 스님을 받들게 하되, 부처님께 바치기를 마친 다음에 스님에게 돌리고 나서 그것을 먹으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천억(千億) 년 동안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단월(檀越:施主)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또한 앞에서와 같은 과보(果報)를 초래하며, 만약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9백만 년 동안 하천(下賤)한 곳에 떨어지게 된다. 왜냐 하면 부처님의 물건은 어느 누구도 평가(評價)할 수 없기 때문이다.[만약 재(齋)를 올리는 평범한 집안에서나 절에 있을 때에는 보통 두 때만 먹지만, 부처님이나 거룩한 스님에게 바친 음식은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부처님과 스님에게 들어온 것은 굳이 수속(收贖)할 필요는 없으며, 창(唱)을 하고 난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 만약 정표(情標)로 보시한 음식으로서 결정코 부처님이나 스님에게 들어온 것이요 속인에게 통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속(贖)한 뒤에 가져다 먹어야 한다.]
혹 시주가 본래는 석가(釋迦) 불상을 만들려고 했다가 뒤에 미타(彌陀) 불상으로 바꾸어 만들거나, 본래는 『대품경(大品經)』을 만들려고 했다가 나중에 『열반경(涅槃經)』으로 바꾸어 만들거나, 본래는 승방(僧房)을 만들려고 했다가 뒤에 스님에게 공양할 음식을 장만하거나, 본래는 2중(衆)에게 보시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1중(衆)에게 바꾸어 보시하거나, 본래는 시방(十方)에 회향(回向)하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딴 사람에게 돌리거나, 본래는 대중 스님들에게 쓰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속인에게 돌리면, 이것은 다 시주의 뜻에 위반하는 것이니, 돈의 많고 적음을 따져 5전(錢)이 꽉 차면 중죄를 이루고, 5전이 못 되면 경죄[蘭:輕罪)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이곳에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곧 저곳에 주면 그것은 다 죄가 된다.[죄의 경중(輕重)을 결정하는 것은 앞에서 설한 시주(施主)에 대한 글의 내용과 같다.]
이러한 글들로 준(准)해 보면 불상을 검교(檢校:자세히 조사하고 살펴봄)하다가 남은 채색이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나 성승(聖僧) 등의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되나니, 그것은 스승과 제자의 지위가 다르기 때문에 같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다른 장엄구(莊嚴具)를 만들려고 하다가 도로 가져다가 부처님께 공양하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시주의 뜻이 통해
한 번 불상을 만들어 마음대로 갖가지 도인과 속인, 범부와 성인의 형상을 장엄(莊嚴)하고 여러 가지 잡된 것들, 즉 이름 있는 꽃ㆍ초목(草木)ㆍ산(山)ㆍ못ㆍ새ㆍ짐승 따위를 공양하되 불상에 국한(局限)하지 않고 통틀어 지어도 아무 죄가 없다.”
그러므로 『오백문사경(五百問事經)』에서 말하였다.
“불상에 사용할 채색(彩色)으로 새나 짐승의 형상을 그리면 죄를 얻지만, 부처님 앞에 공양한 것을 제외하고는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자주 듣건대 변방(邊方)의 도인들과 속인들은 계율(戒律)을 익히지 못해 비록 좋은 마음이 있어 3보(寶)를 경영하더라도 자신의 평범한 마음[凡情]에 따라 3보의 물건을 같이 써도 된다. 나아가서는 상성(上聖)의 스님에게 재(齋)를 올린 돈이거나, 혹 자기 집에 들어온 재물이거나, 혹은 상주승(常住僧)에게 들어온 재물을 가지고 혹 불상을 만들거나, 혹은 벽 위에다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등의 형상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다 죄가 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위의 「수청편(受請篇)」에서 말한 것과 같다.
“묻기를 ‘요즈음 재(齋)를 올릴 때에 불전(佛錢)이 생기는데, 이 돈을 가져다가 어디에 써야 좋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만일 시주가 본래 마음으로 불상을 만드는 데 쓰기로 결정했으면, 또한 앞의 호용문(互用文)에서 결단(決斷)한 것과 같이, 오직 불상을 만드는 데에만 써야 하고 다른 데는 쓸 수 없다. 가령 요즈음 재를 올리는 집에서 스님들이 식사를 한 뒤에는 불전(佛錢)과 승전(僧錢)을 통틀어 내놓는데, 시주가 표국(標局)을 분별하지 않은 줄 알면, 그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향(香)을 사거나 기름을 사고 번기를 만들거나 불당(佛堂)을 경영하고, 갖가지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등 수용(受用)해도 다 가능한 일이지만, 다만 경전이나 스님에게 들어온 수입(收入)을 다른 사람이 쓸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대략 기술한 것은 모두 경률(經律)의 결정된 글에 의한 것이고, 이것은 인정(人情)이 아니다. 만약 법(法)에 의한 것이 아니면, 도리어 무지(無知)와 불학(不學)의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밖에 다하지 못한 것은 모두 승니(僧尼)의 『십권율초(十卷律鈔)』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3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일이 매우 중대하고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계율을 밝게 알고 인과(因果)를 깊이 믿지 않으면 안 된다. 부디 삼가고 조심하여 마음을 쓰고 업도(業道)3)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여 항상 부지런히 마음을 가다듬고 인정을 보호하지 말라. 이와 같은 사람이라야 비로소 강유(綱維)의 지사(知事)가 되어 이 외의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보량경(寶梁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迦葉)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두 종류의 비구(比丘)에게는 무슨 일이든 경영(經營)하는 것을 허락한다. 어떤 것이 그 두 종류인가? 하나는 깨끗한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후세(後世)를 두려워하되, 비유하면 마치 금강(金剛)과 같이 여기는 것이다.
또 두 종류의 비구가 있다. 어떤 것이 그 두 종류인가? 하나는 업보(業報)를 잘 아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온갖 참괴(慙愧)와 뉘우치는 마음이 있는 비구이니라.
또 두 종류의 비구가 있다. 어떤 것이 그 두 종류인가? 하나는 아라한(阿羅漢)이요, 다른 하나는 8배사(背捨:八解脫)4)를 잘 닦은 비구이다.
이와 같은 두 종류의 비구는 무슨 일이든 경영하는 것을 나는 허락한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부스럼[瘡]이나 혹[疣] 같은 질병도 없고, 다른 사람의 뜻도 잘 보호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이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법 가운데에는 갖가지 출가(出家)와 갖가지 성(姓)과 갖가지 마음과 갖가지 해탈(解脫)이 있고, 갖가지 번뇌[結]를 끊는 사람이 있다.
혹은 아란야(阿蘭若)에 있기도 하고, 혹은 걸식(乞食)을 하기도 하며, 혹은 산림(山林)에 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혹은 촌락[聚落] 가까운 곳에 살기를 좋아하면서 깨끗한 계율을 지키기도 하며,
혹은 4액(軛)5)을 잘 여의기도 하고, 혹은 부지런히 다문(多聞)을 닦기도 하며, 혹은 변재(辯才)로 모든 법을 설(說)하기도 하고, 혹은 계율을 잘 지키는 이도 있으며, 혹은 비니의식(毘尼儀式)을 잘 지키는 이도 있고, 혹은 여러 성읍(城邑)이나 마을을 지나면서 남을 위해 설법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등류(等類)의 여러 비구승(比丘僧)과 일을 경영하는 비구는 여러 사람들의 심상(心相)을 잘 아느니라.’”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저 일을 경영하는 비구[營事比丘]는 마땅히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상주승(常住僧)의 물건은 초제승(招提僧)에게 주어서는 안 되고, 초제승의 물건은 상주승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이 두 가지 물건은 같이 쓸 수 없다.] 상주승의 물건과 초제승의 물건은 부처님의 물건과 한데 섞어서는 안 된다.[부처님의 물건도 또한 두 가지 승려의 물건들과 한데 섞을 수 없다.]
만약 상주승의 물건이 많은데 초제승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일을 경영하는 비구는 마땅히 스님들을 모아 놓고 산가지[籌]를 뽑아 그것을 변통하도록 해야 하는데, 승려들이 화합(和合)하면 마땅히 상주승의 물건을 초제승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만약 여래탑(如來塔)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경우에는 상주승의 물건이든지 초제승의 물건이든지 간에 그것이 많으면 일을 경영하는 비구는 마땅히 승려들을 소집해서 산가지를 뽑게 해야 하는데, 이와 같이 말해야 한다.
‘이 부처님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기 때문에 지금 물자가 필요한데 여기에 상주승의 물건과 초제승의 물건이 많습니다.
대덕 스님들께서는 허락해 주십시오. 만약 승가가 때에 이르렀으면 승가는 허락해 주십시오. 만약 스님들이 얻은 시주물(施主物)을 아까워하지 않으면 상주승의 물건이거나 초제승의 물건이거나 간에 저는 지금 이것을 사용하여 부처님의 탑을 수리하겠습니다.’
만약 스님들이 화합하지 못하면 일을 경영하는 비구는 마땅히 재가인(在家人)에게 권유하고 교화해서 재물을 구해 부처님의 탑을 수리(修理)해야 한다. 만약 부처님의 물건이 많아도 그것을 상주승이나 초제승에게 나누어 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 물건에 대하여 마땅히 세존(世尊)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고, 또 부처님의 소유물(所有物)은 실오라기 하나까지라도 그것은 다 시주가 믿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하늘이나 세상 사람들은 이 물건에 대하여 불탑(佛塔)이라는 생각을 내야 할 것인데 더구나 3보의 물건이겠는가?
만약 불탑 안에 있는 물건이 차라리 비바람이 몰아쳐서 무너지고 깨져서 다 없어질지언정 이 옷을 가지고 보물과 바꾸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여래탑의 물건은 어느 누구도 능히 그 가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요, 또 부처님은 필요로 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을 경영하는 사람은 3보의 물건을 마땅히 뒤섞이게 해서는 안 되는데, 스스로 잡된 일에 사용하게 되면 큰 고통의 과보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혹은 1겁(劫) 동안 받기도 하고, 혹은 1겁 이상을 받기도 하나니, 3보의 물건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또 『보량경(寶梁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을 경영하는 비구가 계율을 잘 지키는 큰 덕을 지닌 사람의 처소에서 성을 내거나, 제 마음대로[自在]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를 마구 부린다면 그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것이며,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남의 노복(奴僕)이 되어 주인을 위해 고된 일[苦役]을 하게 되며, 또 남에게 매를 맞을 것이다.
또 일을 경영하는 비구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엄중한 제도를 만들어 스님들의 생활을 항상 지나치게 간섭하고, 비구들에게 벌을 주면서 아무 때나 일을 시키면, 그는 이 불선근(不善根) 때문에 다정(多釘)이라는 작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지옥에 태어난 뒤에는 백천 개의 못이 그 몸에 박히고 그 몸에 훨훨 불이 타올라 마치 커다란 불덩어리처럼 될 것이다.
또 일을 경영하는 비구는 계율을 잘 지키는 대덕(大德) 스님의 처소에서 중대한 일로 그를 두렵게 하거나, 또 성난 마음으로 말을 하면 그 때문에 지옥에 태어나나니, 그 지옥에 태어나면 5백 유순(由旬)이나 되는 기다란 혀를 가지게 된다. 그 기다란 혀에 백천 개의 못이 박히고, 그 하나하나의 못마다 큰 불꽃이 나올 것이다.
또 일을 경영하는 비구가 자주 스님의 물건을 얻어 가지고는 그것을 아까워해서 감추어 두거나, 혹은 아무 때나 스님에게 주거나, 혹은 또 주기를 어려워하며, 혹은 고통스러움으로 인하여 주거나, 혹은 조금 주거나, 혹은 아예 주지 않기도 하며, 혹은 주는 것이 있기도 하고, 혹은 주지 않기도 하면, 그는 이 불선(不善)한 근기 때문에 더럽고 악한 아귀(餓鬼)가 되어 늘 똥으로 만든 환(丸)을 먹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이런 가운데 태어나서 백천 년을 지내는 동안 항상
음식을 얻지 못하여 혹 때로는 음식이 똥이나 오줌으로 변하거나 혹은 고름이나 피로 변한다.
그런 까닭에 가섭아, 일을 경영하는 비구는 차라리 제 자신의 살을 씹어 먹을지언정 끝끝내 3보의 물건으로 옷ㆍ발우ㆍ음식 따위를 만드는 데 잡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6) 범물부(凡物部)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이나 나아가 3보(寶)를 위하여 재물을 수호(守護)할 때 만약 삼가고 조심하여 잘 관장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물쇠로 굳게 잠갔는데도 도적이 구멍을 따라 집안에 들어와서 몰래 훔쳐가거나, 혹은 핍박하여 빼앗아 갔을 때 그것을 지키던 사람이 막을 수 있었던 일이 아니면, 다만 본 주인에 대해서만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해야 하고, 다 변상하게 할 수는 없다. 만약 관장하는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며 열심히 지키지 않았다가 도둑을 맞았으면, 그 물건을 관장하던 사람이 변상해야 하나니, 수호하는 주인에 대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먼 곳에서 남이 부쳐온 물건을 받아 가지고 오다가 길에서 그것을 파손했을 때, 만약 좋은 마음으로 깨뜨렸으면 마땅히 보상하지 않아도 되고, 나쁜 마음으로 깨뜨렸으면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
만일 남의 물건을 빌었을 때에는 좋은 마음으로 그랬거나 나쁜 마음으로 그랬거나 간에 깨뜨렸으면 모든 것을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
또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도적이 물건을 훔치러 왔을 때, 혹 주인이 좋은 마음으로 보시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핍박을 받고 두려운 마음 때문에 주었거나 간에 그것을 다 취할 수 있으니, 이는 물건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도적에게 구걸하여 얻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준 것이면 가져도 되지만, 가져온 다음에는 괴색(壞色)으로 물들여 입어야 하고, 주인이 제 것이라고 확실하게 인정하면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
또 『마덕륵가론(摩德勒伽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미친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줄 때, 그의 부모나 친척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그것을 가질 수 있으나, 만약 부모를 알 수 있고 제 손으로 준 것이 아니면 취할 수 없다.”
또 『십송률』에서 말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기르는 호랑이가 먹다 남은 고기를 취하면, 작은 죄가 되나니 희망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자가 먹다 남은 것을 취하면 범한 것이 아니니 희망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또 『살바다론(薩婆多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새나 짐승들이 먹다 남긴 것을 훔치면 작은 죄가 된다.”[요즘 흉년이 들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쥐구멍을 부수고 쥐들이 쌓아둔 조ㆍ깨ㆍ호두 등 잡다한 것과 과자 따위를 취하는 것도 여기에 준해 보면 죄를 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준 것이라는 생각으로 취하고 자신의 소유(所有)라는 생각으로 취하며, 분소(糞掃)라는 생각으로 취하고 잠깐만 쓴다는 생각으로 취하며, 친구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취하는 것 등은 다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저 친구라고 하는 것은 계율에 의하면 반드시 일곱 가지 법을 갖추어야 비로소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하는 것이요, 둘째는 주기 어려운 것을 능히 주는 것이며, 셋째는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는 것이요, 넷째는 비밀(秘密)한 일을 서로 알리는 것이며, 다섯째는 서로서로 감싸주고 덮어주는 것이요, 여섯째는 고통을 당해도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가난하고 천(賤)해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 법을 사람이 능히 실천하면 그것은 곧 선(善)한 친구이니, 그가 주는 것은 가져도 죄가 되지 않느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적이 되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그 물건의 주인에게 붙잡혀 포박된 채 왕에게 보내 그 죄를 다스리게 할 것이다. 그러면 왕은 곧 사람을 보내 감옥에 가두고서 혹은 손과 발을 끊기도 하고, 혹은 귀와 코를 베기도 하며, 혹을 살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혹은 힘줄을 뽑아내기도 하며, 혹은 거꾸로 매달기도 하고, 혹은 톱으로 썰기도 하며, 혹은 불로 지지기도 하고, 혹은 끓는 물에 삶기도 하며, 혹은 날가죽[生革]으로 그 머리를 묶기도 하고, 혹은 구리쇳물을 그의 몸에 쏟아 붓기도 하며, 혹은 긴 말뚝으로 그의 넓적다리뼈에 박기도 하고, 혹은 사나운 코끼리를 시켜 밟아 죽이게 하기도 하며, 혹은 배를 가르고 창자를 내어 풀에 깔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묶어 때리고 욕설하고 시장으로 끌고 가서 표하(標下)에서 머리를 베기도 하고, 혹은 또 마디마다 그 형체를 나누기도 하며, 혹은 칼로 몸을 쪼개기도 하고, 혹은 활로 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고통을 가하여 잔인하게 죽인다.
이렇게 도둑질을 한 악한 업(業)의 인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에 지옥에 태어나면 사나운 불이 그 몸을 태우고 구리쇠 녹인 물을 입 안에 쏟아 부으며, 가마솥에 펄펄 끓는 뜨거운 물과 화로 속의 숯불과 칼 산의 검수(劍樹)의 고통을 받으며, 뜨거운 재와 똥오줌을 뒤집어쓰고 맷돌에 갈리고 절구에 찧기는 등 이와 같은 따위의 갖가지 고통과 시리고 아픈 독해(毒害) 등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데 백천만 년 동안 그곳에서
벗어날 기약조차 없다.
지옥의 죄가 끝나면 축생(畜生)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데,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낙타ㆍ나귀ㆍ개 따위가 되어 백천 년이 지나도록 다른 것을 위해 힘써 보상(報償)하며, 축생의 죄를 마치고 나면 아귀(餓鬼)의 세계에 태어나 배고프고 목마른 고뇌(苦惱)를 이루 다 갖추어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애초부터 물ㆍ음료수가 있다는 말은 아예 들어보지도 못하면서 백천 년을 지나는 동안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다.
악한 세계의 죄가 끝나면 인간 세계에 출생하는데, 만약 인간으로 태어나면 두 가지 과보를 받는다. 그 하나는 가난하고 궁색한 것이니, 옷으로 말하면 몸조차 가릴 만한 것이 없고, 음식으로 말하면 배를 채울 것조차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항상 왕이 되어도 도적ㆍ불ㆍ물의 왕이 되거나 악한 도적의 왕이 되어 겁탈을 일삼는 것이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것을 도적질이라고 말하는가? 만약 사람이 생각하되 ‘갖가지 곡식과 보리 등은 오직 나에게만 풍성하고, 세간 사람들에겐 오곡이 풍년(豊年)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좋지 못한 생각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중생들이 박복하여 농사를 짓더라도[田苗] 수확할 것이 없게 해 달라’고 하면,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은 세상의 기근(飢饉)을 보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겨 ‘내 생각대로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장에 나가 곡식을 팔 때, 비뚤어진 마음으로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여 온갖 곡식의 양(量)을 속여 사람들을 미혹시키므로 마침내 업(業)을 짓게 될 것이다.
만약 마음으로 생각하면 그것을 생각의 업이라 말하고, 만약 속일 때에는 속이는 업이라고 말하며, 속이는 업을 짓고 나면 그것을 구경업(究竟業)이라고 말한다.”
(7) 유물부(遺物部)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길에 떨어진 물건을 보거든 그것이 금(金)이거나 은(銀)이거나 그밖의 재보(財寶)라고 하더라도 주워 들고 소리쳐 말해야 한다.
‘이것이 누구의 물건이오?’
이렇게 하여 만약 어떤 사람이 그것이 내 물건이라고 말하거든, 마땅히 그 물건의 모습을 물어보아 사실로 확인되면 돌려주어야 한다. 만약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으면, 7일 동안 그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날마다 외쳐야 한다. 그래도 주인이 확인되지 않거든 이 물건을 국왕이나 대신, 아니면 주(州)ㆍ군(郡)의 수령(首領)에게 맡겨야 한다. 만약 국왕ㆍ대신, 주나 군의 수령이 복덕(福德)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나면, 이 물건을 자신이 취하지 말고 뒤에 마땅히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하는 여러 스님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을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길에 떨어진 옷을 보거든 마땅히 큰 소리로 외쳐 주인을 찾도록 하라. 주인이 확인되지 않으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매달아 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라. 만약 누구든지 그 물건이 내 것이라고 말하거든, 마땅히 ≺당신은 그 물건을 어디에서 잃어버렸소?≻라고 물어보아야 하며, 그에 상응하는 답을 하면 그에게 주어야 한다. 만약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물건을 마땅히 보관하고 있다가 석 달이 지난 뒤에는 만약 그 물건을 탑원(塔園)에서 주웠으면 탑을 세우는 데 쓰고, 승원(僧園)에서 주웠으면 사방(四方)의 승려를 위하여 쓰도록 하라.
만약 금ㆍ은ㆍ영락(瓔珞) 등의 귀한 값어치를 지닌 물건이면, 드러내 나타내지 말고 보물을 주웠노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할 터이니, 어떤 형태[相貌]를 지니고 있는가를 물어본 연후(然後)에 그것을 들어 보여 주어라. 누구든지 와서 확인하려 하거든 확인한 뒤에 상응(相應)하는 사람이면 주되,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주고, 은밀한 곳에서 돌려주지 말라. 그런 뒤에 3귀계(歸戒)를 가르쳐 주어 받게 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가 제정한 계율이 아니면,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구라도 와서 확인하려 하는 이가 없거든 3년 동안 가지고 있다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해당되는 경계에 쓰도록 하라.
만약 탑을 수리하다가 간직해 둔 보배를 얻었으면 곧 탑을 만드는 데 쓰고, 승지(僧地)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게 하라.’”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은 취해 써도 죄가 없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급고독(給孤獨) 장자는 곧 성인(聖人)이면서도 역시 이러한 물건을 취하였으니, 그러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저절로 얻어진 물건은 겁탈(劫奪)했거나 도둑질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승기율』에서 말하였다.
“마을에 들어갔다가 거리에 떨어진 물건이 있으면 가져서는 안 되며, 비구에게 주는 것은 된다. 그것은 곧 시주(施主)가 되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바람에 날려온 옷을 분소의(糞掃衣)를 만들 생각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넓은 들판 길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면 가져도 된다.”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만약 거의(擧衣)한 사람이 12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스님들을 모아 그것을 평가하여 사방 스님들을 위해 쓰고, 만약 그가 뒤에 돌아왔을 때 승가의 물건으로써 보상하더라도 받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이다.”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겁탈하거나 도둑질한 것으로 남을 공양하는 데 쓰면
그 혼자만 지옥(地獄)으로 침몰되어
확조(玃鳥)가 금강(金剛) 같은 부리로
뇌(腦)를 쪼아먹고 그의 심장(心臟)을 쪼갠다.
입에는 구리 녹인 물을 붓고
쇠방망이와 다듬잇돌로 그의 몸을 부수면
겁먹고 두려워서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다시 도검림(刀劍林)에 그 몸을 던진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겁탈하고 훔친 일로 받는 과보(果報)는
지옥에서 녹임을 당하고
그 죄가 끝나서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배고프고 가난하게 일생을 마친다.
공동 재산은 다른 이의 제약을 받나니
하천(下賤)한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부탁하여 말하노니 지조(志操)있는 사람이라면
부디 저 곤궁(困窮)함을 생각하시오.
감응연(感應緣)[간략하게 여섯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한(漢)나라 창오군(蒼梧郡) 정장(亭長) 공수(龔壽)
한나라 기주(岐州) 미현리(郿縣釐) 정장(亭長)이 남의 딸을 몰래 죽임
수(隋)나라 의주(宜州) 사람 황보천(皇甫遷)
당(唐)나라 위왕부(魏王府) 장사(長史) 위경식(韋慶植)의 딸
당나라 서경(西京) 동시(東市)의 필행(筆行) 조씨(趙氏)의 딸
당나라 주부(主簿) 주기(周基)가 관리에게 몰래 죽임을 당함
한(漢)나라 창오군(蒼梧郡) 정장(亭長) 공수(龔壽)
한(漢)나라 때 사람 하창(何敞)은 교지(交阯) 자사(刺史)6) 행부(行部)가 되었다. 창오군 고요현(高要縣)에 이르러 날이 저물자 작분정(鵲奔亭)에서 자게 되었다. 밤이 채 반이 되기 전에 어떤 여자가 누대(樓臺) 밑에서 나와서 말하였다.
“첩(妾)의 성은 소(蘇)이고 이름은 아(娥)이며, 자는 이주(怡姝)입니다. 본래 광신현(廣信縣) 수리(修里)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부모(父母)를 잃은 데다가 형제(兄弟)도 없으며, 남편도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비단 120필(疋)과 치부(致富)라고 하는 여자 종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외롭고 고달프며 이약(羸弱)하여 혼자서는 살아갈 길이 없어 비단을 팔려고 이웃 고을에 갔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고을 사람 왕백(王伯)을 찾아가 우차(牛車) 한 대를 1만 2천 전(錢)을 주고 빌어 첩(妾)이 타고 비단을 싣고는 치부에게 소 고삐를 잡게 하고 작년 4월
10일에 이 정(亭) 밖에까지 왔었습니다. 그 때 날이 저물어 행인도 다 끊어졌고,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으므로 거기서 머물러 잤습니다. 치부가 갑자기 배가 아파 나[妾]는 정장(亭長)의 집으로 가서 장(漿)과 불을 빌었습니다. 정장은 칼과 창을 들고 우리 우차 곁으로 오더니 나에게 물었습니다.
‘부인은 어디서 왔고 차 위에 실은 짐은 무엇이며, 남편은 어디에 있고 왜 이렇게 혼자서 가느냐?’
내가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그런 걸 묻습니까?’
수(壽:龔壽)는 내 팔을 붙들면서 말하였습니다.
‘부인은 아주 예쁩니다. 나와 서로 즐길 수 없습니까?’
내가 그 때 당황하여 그 말을 듣지 않고 팔을 뿌리치자, 정장 공수(龔壽)가 곧 칼로 내 옆구리를 찔러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또 그는 치부까지 죽였습니다. 수는 누대 밑에 땅을 파고 나와 여자 종을 거기에 묻고 재물을 다 빼앗아갔으며, 소를 죽이고 수레는 불살랐는데, 수레의 바퀴통 쇠와 소뼈는 이 역정 동쪽에 있는 빈 우물에 넣어 버렸습니다.
나는 그렇게 참혹하게 죽었으나 호소할 길이 없어 일부러 여기에 와서 현명하신 자사님[使君]께 진정하는 것입니다.”
하창이 물었다.
“지금 네 시체를 파내 보고 싶은데 무엇으로 증험할 수 있겠느냐?”
그 여자가 말하였다.
“나는 위아래 모두 흰옷을 입었으며, 푸른 실로 만든 제가 신었던 신은 아직 썩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창이 파 보았더니 과연 그 말과 같았다. 하창은 곧 관리를 보내 공수를 체포하여 고문 끝에 자백을 받고, 다시 광신현(廣信縣)에 가서 조사했더니, 모두가 그 여자의 말과 같았다. 하창은 공수의 부모와 형제를 다 잡아 옥에 가두고 왕에게 상소(上疏)하였다.
“공수의 살인(殺人)에 있어서 일반법으로는 그 일가족까지 다 죽일 수가 없습니다. 다만 공수는 지은 죄를 몰래 숨긴 지 이미 한 해가 지났으므로 국법으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 귀신의 하소연은 천 년에 하나도 없는 일입니다. 부디 다 저들을 죽여 남모르게 죽은 그 원통함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곧 허락하였다.
한나라 기주(岐州) 미현리(郿縣釐) 정장이 남의 딸을 몰래 죽임
한나라 때 왕돈(王忳)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자는 소림(少林)이었다. 그는 미현(郿縣)의 영(令)이 되어 그 고을에 이르러 이정(釐亭)을 찾아갔다. 그 정(亭)에는 늘 귀신이 있어 자주 사람을 죽였다. 왕돈이 누대 위에서 자고 있을 때 어떤 여자가 나타나 말하였다.
“호소할 일이 있는데 입고 나타날 옷이 없어 이렇게 스스로 덮고 있습니다.”
왕돈이 옷을 던져 주자 여자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첩(妾)은 본부(本涪) 영(令)의 첩이었는데
그 이가 있는 관아에 가려고 이 정을 지나다가 여기서 잤습니다. 그런데 정장(亭長:驛長)이 나와 또 대소(大小) 10여 인을 죽여 이 누대 밑에 묻고 우리들의 옷과 재물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 정장은 지금 이 현문하(縣門下)에 유격(游檄)이 되어 있습니다.”
왕돈이 말하였다.
“내가 너의 원수를 갚아 줄 터이니, 이 뒤로는 선량(善良)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여자 귀신은 옷을 벗어 던져 주고 가 버렸다. 왕돈은 우선 유격을 붙잡아 꾸짖어 물어 자백(自白)을 받고, 그와 같이 공모한 10여 명의 사람도 다 붙잡아 모두 죽였다. 그 시체를 파내어 그 집에 돌아가 다시 장사를 지낸 뒤로 그 정(亭)은 영원히 평안하였다. 사람들은 동요를 지어 불렀다.
참으로 이 소림(少林:왕돈)은 이 세상에 짝이 없네.
옷을 휘날리며 말을 달려 귀신과 이야기했네.
‘옷을 휘날리며 말을 달려’라고 한 것은 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 여기에는 기록하지 않는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원혼지(冤魂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수(隋)나라 의주(宜州) 사람 황보천(皇甫遷)
수(隋)나라 대업(大業:煬帝의 年號) 8년(612)에 의주성(宜州城) 동남쪽으로 40여 리쯤에 황보(皇甫)라는 성을 가진 한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4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큰 형과 작은 아우는 모두 생업(生業)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였고, 인자하며 충성스러우며, 효성스러웠으나, 그 둘째 아우 천(遷)은 나쁜 벗과 사귀어 놀기만 하면서 가사는 조금도 돌보지 않았다. 그 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시장에 가려고 돈 60전을 책상 위에 놓아두고 잠깐 이웃집에 갔었다. 그 때 아우 천이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그 돈을 훔쳐 가지고 집을 나가 모두 써 버렸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돈을 찼다가 돈이 없어진 것을 알고, 그 아이가 가져간 것은 알지 못하고 온 집안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다 뒤졌으나 다른 사람들[良賤]도 다 모른다고 하므로 결국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집안이 맑지 못하고 게다가 화합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집안의 남녀노소를 모두 매질했다. 그러자 크고 작은 집안 식구들은 모두 그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천(遷)이 죽어서 그 집에서 기르는 암퇘지의 태(胎)에 들었다. 3~5개월이 지난 뒤에 그 돼지는 새끼를 낳았다. 돼지 새끼가 두 살이 되던 해 8월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그 돼지 새끼를 먼 마을의 어느 집에 팔아 6백 문(文)을 받았다. 사관(社官)은 그 돼지 새끼를 끌고 갔다. 그런데 첫날 저녁에 그 돼지가 온 집안 사람을 다 깨웠다. 먼저 코로 찔러 그
부인을 깨웠다. 부인은 잠에서 깨어나 꿈을 이야기했다. 꿈에 돼지가 와서 말하였다.
“나는 네 남편이다. 내가 저 어머니의 돈 60전을 훔쳤기 때문에 온 집안 사람들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였고, 나로 하여금 돼지가 되게 했으므로 나는 지금 와서 그 빚을 갚으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나를 끌고 가서 저 제사를 주관하는 집[社家]에 팔아 그 집에서 나를 묶어 죽이려고 한다. 너는 내 아내로서 왜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나를 죽게 하느냐?”
부인은 처음엔 이 꿈으로 인하여 갑자기 마음이 놀라 깨어났으나 그래도 믿기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이와 똑같은 꿈을 꾸었다. 즉 돼지가 다시 와서 코로 부인을 찔러 깨웠다. 부인은 놀라 일어나서 옷을 입고 안방으로 가서 시어머니께 그 사실을 알렸다. 시어머니도 이미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일어나 앉아 있었고, 아이들도 그와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그 날 밤에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에게 모두 행장(行裝)을 차리게 하고, 그 아이와 천(遷)의 형을 데리고, 또 돈 1,200백 문(文)을 챙기게 한 다음 같이 떠나라 하고는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관(社官)이 혹 돌려주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는지 모르니, 값을 배로 쳐주어라. 그리고 아마 날이 밝으면 죽일지도 모르니 어서 급히 달려가거라.”
집에서 30여 리쯤 갔는데 아들이 먼저 그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혹 가문(家門)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해서였고, 다만 죽이지만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관은 막 그 돼지를 잡으려고 하던 터이라 이 말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제사를 지내야 할 때가 다가왔으므로 이 돼지를 그대에게 돌려 줄 수 없다.”
아들은 재삼(再三) 간청하였으나 그는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 형과 아이는 황급하여 혹 그 돼지를 죽일까 두려웠다. 일찍이 잘 알고 지냈고 서로 믿고 존경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현령(縣令)을 지냈다. 그를 빙자하여 그 실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여 비로소 돈을 주고 돼지를 되돌려 받았다. 이미 돼지를 돌려받아 가지고 돼지를 몰고 야전(夜戰)으로 돌아오다가 형이 돼지에게 말했다.
“네가 참으로 내 아우라면 너는 빨리 집으로 먼저 가거라.”
그 아들도 또 돼지에게 말했다.
“참으로 내 아버지라면 빨리 집으로 먼저 돌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돼지는 이 말을 듣고 빨리 달려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쯤 지난 뒤에 그 고을[鄕里]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았으므로 그 집 아녀(兒女)들은 부끄러워하였으며, 그 이웃 사람들도 모두 저들을 혐오(嫌惡)하고 또 돼지의 자식이라고 비방하였다. 그 아들딸들이 가만히 돼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 착하지 못한 업(業)을 짓고 이렇게 돼지의 몸을 받았으므로 우리 자식들은 밖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소(平素)에 늘 저 어진 사람 서(徐)씨와 교분(交分)이
두터웠으니, 아버지가 저 집에 가서 있으면 우리가 음식을 보내겠습니다. 저 집으로 가서 공양을 받으시오.”
돼지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서씨의 집을 향하여 달려갔다. 서씨의 집은 거기서 40여 리쯤에 있었다. 대업(大業) 11년(615)에 그 돼지는 그 서씨의 집에서 죽었다.
이러한 일들을 보았으면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업보(業報)란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으며, 눈앞의 불을 보듯 환한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장안(長安) 홍법사(弘法寺)의 정림(靜琳) 법사가 아우인 천(遷)의 이웃 마을에 살면서 그 돼지를 직접 보고 이런 말을 전한 것이다.
당(唐)나라 위왕부(魏王府) 장사(長史) 위경식(韋慶植)의 딸
당(唐)나라 정관(貞觀) 연중에 위왕부(魏王府) 장사(長史)7)인 경조(京兆) 사람 위경식(韋慶植)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먼저 죽자 그 부부는 매우 애통해 하였다. 그 딸이 죽은 지 2년 뒤에 경식은 친한 손님들을 모으고 음식을 준비하였다. 그 집의 사람들이 양(羊) 한 마리를 사서 아직 잡지는 않고 놔두고 있었다. 밤에 경식의 아내가 꿈을 꾸었는데 죽은 딸이 푸른 치마에 흰 적삼을 입고 머리에는 한 쌍의 옥비녀[玉𨥁]를 꽂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그 딸이 평생 입고 다니던 차림 그대로인 것이다. 그 딸이 와서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옛날 어떤 물건을 쓰고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가 이 업보로 인해 지금 양의 몸이 되어 부모님께 속죄(贖罪)하러 왔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죽게 될 것입니다. 머리는 희고 몸뚱이는 푸른 양이 바로 나입니다. 다만 원컨대 자비(慈悲)와 은혜(恩惠)를 베푸시어 제 생명을 구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놀라 깨어나 아침에 그 양을 가서 보았다. 과연 푸른 양이 있었는데 목과 허리는 다 희고 머리 위에는 흰 점 두 개가 있었는데 꼭 옥비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그 양을 보고 슬피 울고는 집안 사람들에게 그 양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는 경식이 오기를 기다려 그것을 놓아 보내기로 했다. 조금 있다가 경식이 와서 요리를 재촉하자 요리사가 말했다.
“부인께서 저 푸른 양을 잡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식은 화를 내며 얼른 잡으라고 명령했다. 요리사가 양을 달아매고 죽이려고 했을 때 손님 몇 사람이 왔다. 그 손님들은 얼굴이 단정한 한 여자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손님에게 말하였다.
“저것은 위(韋) 장사(長史)의 딸인데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있소.”
손님들은 놀라 요리사에게 잡지 말라고 만류했다. 요리사는 경식이 화를 낼까 두려웠고, 또 그에게는 다만 우는 양만 보였으므로 결국
잡아 요리를 만들어 내놓았다. 그런데 손님들은 앉아 있을 뿐 그 음식을 먹지 않았다. 경식이 괴상히 여겨 묻자, 손님들은 그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경식은 매우 비통(悲痛)해 하다가 병(病)이 들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서울의 선비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애(崖) 상서(尙書) 돈례(敦禮)가 임(臨)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 것이라고 한다.
당나라 서경(西京) 동시(東市)의 필행(筆行) 조씨(趙氏)의 딸
당나라 장안(長安)의 시장 풍속에는 매년 정월 1일이 지난 뒤에는 번갈아 음식을 만들어서 서로 초청하곤 했는데, 이것을 전좌(傳座)라고 말했다. 동시(東市)의 필생(筆生) 조대(趙大)의 차례가 되어 음식을 준비하였다. 어떤 손님이 먼저 와서 집 뒤에 갔다가 방아 위에 있는 어린 소녀를 보았다. 그 소녀의 나이는 13~14살쯤 되어 보였는데, 푸른 치마에 흰 적삼을 입고 있었고 두레박줄로 목을 묶인 채 방아 기둥에 매여 있었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손님에게 말했다.
“저는 이 댁 주인의 딸입니다. 왕년(往年)에 아직 죽지 않았을 때, 부모님의 돈 1백 전(錢)을 훔쳐 연지와 분[脂粉]을 사려고 했었는데, 미처 사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돈은 지금 찬간 방 서북쪽 벽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 그 돈을 쓰지는 않았지만 이미 돈을 훔쳤기 때문에 이런 죄를 받아 지금 부모님께 내 목숨으로 보상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곧 변화하여 머리는 희고 몸뚱이는 푸른 양이 되었다. 손님은 놀라서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은 그 형모(形貌)를 물어보고는, 그것이 바로 2년 전에 죽은 자기 딸임을 알고, 그 찬간 방 서북쪽 벽에서 오래된 돈 1백 전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그 양은 절에 보내 기르게 하고, 온 집안 사람들은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은 노문려(盧文勵)가 임(臨)에게 전한 말이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서 나온 것이다.]
당나라 주부(主簿) 주기(周基)가 관리에게 몰래 죽임을 당함
당나라 기주(冀州) 관도현(舘陶縣) 주부(主簿)8)의 성은 주(周)씨이고,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현경(顯慶:唐 高宗의 年號) 4년(659) 11월에 그는 사신(使臣)으로 무역을 하기 위하여 임유관(臨渝關)으로 가게 되었다. 주(周)는 떠날 때에 좌사(佐史:縣의 屬官) 등 두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돈과 비단을 제법 많이 가지고 갔다. 저들 두 사람은 곧 흙을 담은 부대로 주씨를 눌러 죽이고, 돈과 비단을 다 훔쳐 갔고, 그가 입고 있던 옷으로 시체를 싸서 그대로 버렸다.
그 해가 저물어 그가 곧 그 아내의 꿈에 나타나
피살된 상황을 다 이야기하고, 겸하여 도적 맞은 재물을 숨겨둔 곳까지 이야기했다. 아내는 그 말에 의해 이 사실을 관가에 고발했다. 관가에서는 사실을 조사하여 돈과 비단을 도로 다 찾고, 그 두 사람을 붙잡아 모두 처형했다.
상주(相州) 지력사(智力寺) 스님 혜영(慧永)이 이 일을 직접 보았다고 말했고, 정관(庭觀) 도사 유인관(劉仁寬)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서 나온 것이다.]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4519 법원주림(法苑珠林) 76권 (0) | 2024.07.18 |
---|---|
[적어보자] #4518 법원주림(法苑珠林) 75권 (0) | 2024.07.18 |
[적어보자] #4516 법원주림(法苑珠林) 73권 (0) | 2024.07.18 |
[적어보자] #4515 법원주림(法苑珠林) 72권 (0) | 2024.07.17 |
[적어보자] #4514 법원주림(法苑珠林) 71권 (0) | 2024.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