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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500 법원주림(法苑珠林) 57권

by Kay/케이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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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57

 

법원주림 제5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65. 채부편(債負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은 대사(大士)의 떳떳한 마음이요, 악을 버리고 복을 짓는 것은 보살의 떳떳한 원이다. 이 때문에 선과 악이 업을 움직임은 형제와 그림자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고, 빚을 지는 재앙과 허물은 3보(報)의 괴로움의 과(果)를 심는 것이다. 혹 어떤 때는 현재에 지고 현재에 갚으며, 혹 어떤 때는 현재에 지고 다음에 갚으며, 혹은 어떤 때는 현재에 지고 뒤에 갚는다. 이와 같이 3시(時)에 진 빚은 털끝만큼도 거절하고 갚지 않으면 결정코 고통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먼저 지옥이나 축생ㆍ아귀에 들어가고, 뒤에 사람의 몸을 얻으면 두 종류의 과보를 얻는다. 첫째 항상 빈궁하고, 둘째 비록 재물을 얻더라도 조금 얻으며, 또 항상 남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이 말은 증험이 있는 것으로서 자기를 반성하고 남을 위하는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법구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불가사(弗迦沙)라는 상인이 장사하러 나열성(羅閱城)에 들어갔다가 성문 안에서 새끼를 갓 낳은 암소에게 떠받치어 죽었다. 소 주인은 두려워해 다른 사람에게 이 소를 팔았다. 그 사람이 소를 끌고 물을 먹이러 가는데 소가 뒤에서 또 그 주인을 떠받아 그 주인이 죽었다. 그 주인집 사람은 화를 내어 그 소를 죽여 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떤 시골 사람이 그 소머리를 사 가지고 새끼로 꿰어
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밭 가의 나무 밑에 앉아 쉬면서 소머리를 나무 가지에 걸어 두었다. 잠깐 사이에 새끼가 끊어지면서 소머리가 바로 그 사람 위에 떨어져 그 뿔에 찔려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렇게 하루 동안에 그 소는 세 사람을 죽였다. 병사왕은 이 말을 듣고 괴상히 여겨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가서 그 까닭을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상인(商人) 세 사람이 장사하러 다른 나라로 가서 어떤 고독한 노파 집에 여관을 정했습니다. 그들은 이 노파가 고독한 것을 보고는 여관비를 떼어먹으려고 그 노파가 없는 틈을 보아 아무 말도 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노모는 돌아와 손님이 보이지 않자 이웃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들이 다 떠났다 하므로, 노모는 화를 내어 곧 뒤를 쫓아 그들을 붙들고 여관비를 내라 했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노모를 나무라면서 ≺여관비를 벌써 다 내었는데 왜 또 달라 하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 함께 우겨대며 주지 않았으나 노모는 혼자라 어찌할 수 없어 몹시 분해하면서 ≺나는 지금 이렇게 곤궁한데 어찌 사기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있겠는가. 죽어 후생에라도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너희들을 죽이고 말 것이오. 만일 도라도 얻으면 끝내 만나지 못하겠지만……≻ 하고 저주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병사왕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노모는 바로 지금의 이 암소요, 그 때의 그 세 사람 상인들은 지금의 저 소에게 죽음을 당한 불가사 등 세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쁜 말로 꾸짖으며
사람을 멸시하는 교만
이런 행을 일으키면
원수가 자꾸 생긴다.

겸손하고 삼가는 말로
사람을 존경하며
악을 참고 원한 풀면
원수 절로 없어진다.

사람이 살아갈 때
입 안에 도끼 있어
제 몸을 죽이나니
나쁜 욕설 때문이다.”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계빈국(罽賓國)에 형제 두 사람이 있었다. 형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고, 아우는 집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살림을 살고 있었다. 형은 자주 아우에게 가서 타일렀다.
‘보시와 계율로 선을 닦아 복을 지으면 살아서 명예가 있고, 죽어서는 좋은 곳에 난다.’
아우는 말하였다.
‘형님은 출가하여 공(公)도 사(私)도 생각하지 않고, 처자도 가사도 재물도 돌보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형이 아무리 타일러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아우는 그 뒤에 목숨을 마치고 소로 태어나 사람의 소금을 싣고 성내로 들어갔다. 형은 성내에서 나오다가 이것을 보고 여러 가지로 설법해 들려주었다. 소는 이 설법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소 주인은 이것을 보고 도인(형)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무슨 도를 말했기에 우리 소가 저처럼 슬퍼합니까?’
도인은 말하였다.
‘이 소의 전생 몸은 바로 내 아우입니다. 아우는 옛날 당신에게 소금 값 1전의 빚을 졌기 때문에 소로 태어나서 지금 제 노력으로 그 빚갚음을 하고 있습니다.’
소 주인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당신 아우는 옛날 제 친우입니다.’
그리고는 곧 소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놓아주고 부리지 않으리라.’
소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여 진심으로 염불하면서 스스로 깊은 못에 몸을 던져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에 나서 무한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또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누구나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소ㆍ양ㆍ사슴ㆍ나귀ㆍ말 등으로 태어나 그 묵은 빚을 갚느니라.”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실 때 거리에서 한 바라문을 만났다. 그는 땅에 금을 그어 놓고 부처님을 지나가시지 못하게 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지금 내게 그 5백 금을 돌려주면 여기를 지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끝내 지나가지 못하게 하겠소.’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서서 지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바사닉왕 등은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붙들려 있다는 말을 듣고
각각 보배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바라문은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달이 이 말을 듣고 5백 금을 주자 바라문은 그것을 받고 곧 부처님을 지나가시게 했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그 연유를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나국의 범마달다왕의 태자 선생(善生)은 여행하다가, 어떤 노름꾼이 정승의 아들과 5백 금을 걸고 도박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정승의 아들은 도박에 지고도 그 노름꾼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태자는 이것을 보고 그 노름꾼에게 ≺저이가 주지 않으면 내가 대신 갚아 주리다≻ 하고는, 그 뒤에도 끝내 갚지 않았다. 이로부터 무량한 세상에서 태자는 그 노름꾼에게 빚독촉을 받았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옛날의 그 태자는 바로 지금의 이 나요, 그 정승의 아들은 바로 지금의 저 수달이며, 그 노름꾼은 바로 지금의 저 바라문이니라.’”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계빈국에 이월(離越)이라는 아라한이 산중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잃은 소를 뒤쫓아 이 아라한이 있는 곳까지 왔다. 마침 이월은 풀을 삶아 그 물로 옷에 물을 들이고 있었는데, 옷은 저절로 변해 소의 가죽이 되었고, 물들이는 물은 저절로 변해 소의 피가 되었고, 삶은 풀은 변해 소의 살이 되었고, 가졌던 발우는 변해 소 뿔이 되었다. 소 주인이 그것을 보고 곧 이월을 결박하여 왕에게로 데리고 가자 왕은 그를 옥에 가두었다. 그리하여 12년 동안 그는 항상 옥감(獄監)이 되어 말에 먹이를 주고 말똥을 치우는 일을 했다.
이월의 5백 제자들은 스승을 찾았으나 있는 곳을 알지 못해 업의 인연이 끝날 것 같았다. 어떤 제자가 그 스승이 계빈국의 옥에 갇혀 있음을 알고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우리 스승님이 옥중에 있습니다. 결단을 내려 주소서.’
왕은 조사해 보기 위해 사람을 옥으로 보냈다. 사자는 옥으로 가서, 어떤 사람이
여윈 얼굴에 수염과 머리는 길게 자라고 옥감이 되어 말에 먹이를 주고 말똥을 치우고 있는 것을 보고, 곧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지금 옥중에는 사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자는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은 영을 내려 거기 있는 비구는 모두 내어 놓으라 하소서.’
왕은 곧 영을 내려 옥중에 있는 사문을 모두 석방하라 했다. 이월이 이 말을 듣자 곧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지고 허공으로 솟아올라 18종류의 변화를 나타내었다. 왕은 이것을 보고 온몸을 땅에 던져 이월에게 말하였다.
‘존자님, 내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는 이어서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옥에서 고생하셨습니까?’
이월은 답하였다.
‘나는 옛날 소를 잃고 그 뒤를 쫓아가 남을 모함하여 옥에서 하루를 지내게 하였는데, 그 때문에 죽어서는 3악도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남은 죄가 다하지 않아 지금 아라한이 되어서도 남의 모함을 입었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으므로 일체 중생은 구업(口業)을 삼가 남을 모함하지 말아야 한다. 이월이 옛날 모함한 사람은 바로 벽지불이니, 그 때문에 이런 과보를 받은 것이다.”
『법화경』에서 말하였다.
“경을 외우는 사람을 비방하면 그것이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현세에서 백라병(白懶病)에 걸리느리라.”
또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들으니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어떤 여인이 아귀에 붙잡혀 곧 주술(呪術)로 아귀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남의 여자를 괴롭히느냐?’
아귀는 답하였다.
‘너는 내 원수다. 5백 생 동안 너는 항상 나를 죽였으니, 나도 5백 생 동안 너를 죽일 것이다. 만일 네가 옛날의 그 원한을 버리면 나도 이 원한을 버릴 수 있다.’
그 때 그 여인이 말하였다.
‘나는 지금 원한을 버렸다.’
아귀는 이 여인을 관(觀)하여 입으로는 버렸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곧 이 여인을 죽였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목건련은 항하(恒河) 가에서 5백 아귀들이 강가로 들어가자 강지기 귀신이 쇠막대기로 때려 쫓으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에 아귀들은 목건련에게로 가서 그 발에 예배한 뒤에 목건련에게 각각 그들의 죄를 물었다.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이 몸을 받고 항상 뜨거움과 갈증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전에 항하의 물이 맑고 또 시원하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갔더니 뜨거운 물이 몸을 삶는 것 같았으며, 시험삼아 그 물을 한 모금 마셨더니 오장이 다 타면서 그 냄새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는 무슨 죄로 이런 고통을 받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관상쟁이로서 사람의 길흉(吉凶)을 볼 때, 참말은 적고 거짓말이 많아 혹은 비방하고 혹은 칭찬하면서 자칭 용하다 하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여 미혹시키고 속임으로써 재물을 구하고 중생을 미혹시켜 뜻대로 될 일을 잃어버리게 했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천사(天祠)에 있는데, 어떤 개가 붉고 흰 날카로운 이빨로 와서 내 살을 다 먹고 뼈만 남았을 때 바람이 불면 살이 다시 생기고 개는 또 와서 내 살을 먹습니다. 이 고통은 무엇이 그 원인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천사(天祠)의 주인으로 있으면서 항상 사람을 시켜 양을 죽여 그 피로 하늘에 제사지내게 하고 그 살은 네가 먹었었다. 그 때문에 지금 네 살로 그것을 갚는 것이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항상 온몸에 똥을 두루 바르고 또 그것을 핥아먹습니다. 이것은 무슨 죄 값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바라문이었는데 사악하여 불법을 믿지 않았으므로, 도인이 걸식하러 오면 그 발우를 받아 똥을 가득 담고 그 위에 밥을 조금 얹어 주었다. 도인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돌아가 밥을 먹으려다가 그 똥에 손을 더럽혔다. 그 때문에 너는 지금 그 죄 값을 받는 것이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배는 독만큼 크고 목구멍과 손발은 바늘처럼 가늘어 음식을 얻어먹지 못합니다. 이 고통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촌장(村長)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부귀를 믿고, 술을 마시고 방종하면서 남을 업신여기고 속여 그 음식을 빼앗아 그들을 곤궁하게 했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항상 측간에 가서 똥을 먹으려 하면 많은 귀신들이 막대기로 저를 쫓아내면서 측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며, 제 입 안은 문드러지고 냄새가 나며 배가 고파 몹시 괴롭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절의 주지로 있으면서 신도들이 여러 스님들을 위해 공양을 차려 오면, 너는 거친 것은 나그네 스님들에게 주고 맛있는 것은 너 자신이 먹었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온몸에 혀가 나 있습니다. 누가 와서 도끼로 이 혀를 찍어 끊고 끊으면 혀는 다시 납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계속 되니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도인이 되었을 때, 여러 스님들이 너를 시켜 꿀물을 타 오라 했다. 그 석밀(石蜜) 덩이가 너무 커서 녹이기 어려우므로 너는 도끼로 그것을 부수고는 도둑 마음이 생겨 그것을 한 움큼 입에 넣었었는데, 그 때문에 지금 그 혀를 찍히는 것이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에게는 항상 뜨거운 쇠알 일곱 개가 있어서 그것이 바로 제 입으로 들어가 뱃속으로 들어가면 오장이 다 타며, 그것은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갑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죄를 받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사미로 있으면서 과일을 돌릴 때, 네 스님 앞에 가서는 네가 공경하기 때문에 편벽된 마음으로 거기만 많이 주었으니, 그것은 실로 일곱 개가 더 많았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뜨거운 쇠수레바퀴가 항상 제 양쪽 겨드랑이 밑에서 돌고 있어서 제 몸이 마구 탑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스님들과 함께 떡을 만들 때, 도둑 마음이 생겨 떡을 두 번 훔쳐 양쪽 겨드랑이 밑에 숨겼었다. 그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제게는 독만한 큰 혹이 있어서 다닐 때는 어깨 위에 있고 서면 발에 밟혀 행동하기에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시령(市令)으로 있으면서 항상 가벼운 저울과 작은 말[斗]을 써서 남에게 주고 무거운 저울과 큰 말을 써서는 자기가 가지면서, 늘 나만 이롭고 남에게는 손해를 주었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두 어깨에 오른쪽 눈이 있고 가슴에 입과 코가 있으며 머리는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항상 사형집행관(死刑執行官)의 제자로 있으면서 죄인을 죽일 때, 너는 기쁜 마음으로 새끼를 그의 상투에 매어 잡아 당겼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에게는 항상 뜨거운 쇠침이 있어서 제 몸을 드나들어 간단없이 고통을 받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말을 부리거나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이었다. 코끼리나 말을 제어하기 어려우면 너는 쇠침으로 그 다리를 찔렀었고, 또 소도 느리게 걸으면 쇠침으로 그 다리를 찔렀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제 몸에는 항상 저절로 불이 나서 저는 몹시 괴롭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국왕의 부인이었다. 또 한 다른 부인을 왕이 더욱 사랑하였으므로 너는 항상 질투하여 그녀를 해치려 했었다. 마침 왕이 그녀에게서 자고 일어나 떠난 뒤에 그녀는 아직 일어나 옷을 입지 않고 누워 있었다. 이 부인은 악심이 생겨 마침 떡을 만들던 뜨거운 참기름을 그녀의 배에 쏟아 그녀는 배가 타서 곧 죽었다. 그 때문에 너는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에게는 항상 회오리바람이 있어 제 몸을 돌리므로
저는 아무 데고 제 마음대로 가지 못해 항상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점쟁이었다. 어떤 때는 참말을 하고 어떤 때는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시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제 몸은 항상 살덩이와 같아서, 다리ㆍ손ㆍ눈ㆍ귀ㆍ코 등이 없고, 늘 새가 와서 쪼아먹으므로 고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늘 남에게 약을 주어 그 태아를 떨어뜨렸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에게는 항상 뜨거운 쇠장롱이 있어, 제 몸을 가두어 두므로 그 뜨거움이 큰 고통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항상 그물로 새와 물고기를 잡았었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항상 무엇으로 제 머리를 싸매며 또 항상 남이 저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마음이 늘 불안해 견딜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음탕하여 남의 여자를 범하면서 늘 남이 볼까 겁을 내되, 혹은 그 남편에게 붙들려 맞아 죽을까 두려워했고, 혹은 관리에게 붙들려 장판에서 베여 죽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 공포가 계속 되는 것이다.’
또 한 아귀는 말하였다.
‘저는 이 몸을 받은 뒤로 항상 구리쇠 녹은 물이 가득한 병이 있어서, 제 손으로 그 물을 한 국자씩 떠서 제 머리에 쏟으며 그러면 온몸이 다 문드러집니다. 이런 고통은 한이 없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에 이렇습니까?’
목건련은 답하였다.
‘너는 전생에 출가하여 도를 닦을 때 스님들의 음식을 맡고 있었다. 소병(酥甁) 하나를 몰래 다른 데 두고 나그네 도인이 오면 주지 않다가, 그가 떠나고 난 뒤에 그 소병을 내어 친한 스님에게 주었다. 이 소병은 그 절의 모든 스님들의 공동 소유인데, 너는 그것을 숨겨 두었다가
주기는 주었으나 평등하지 못했으니, 그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외국의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혼이 돌아와 제 시체에다 마구 매질을 했다. 곁의 사람들이 물었다.
‘이 사람은 벌써 죽었는데 왜 또 자꾸 때리는가?’
그러자 그는 말하였다.
‘이것은 제 옛 몸입니다. 이것 때문에 저는 온갖 악을 다 지었습니다. 경을 보아도 읽지 않고 계도 지키지 않고 도둑질하고 사기 치며 남의 여자를 범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며 형제간에 우애하지 않고 재물을 아껴 보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죽어서는 저를 악도에 떨어지게 하여 이로써 받는 고통은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와서 때리는 것입니다.’”
『무량수경』에서 말하였다.
“교범파제(憍梵波提)는 전생에 비구였는데 남의 조 밭에서 조 한 줄기를 꺾었다가 그 중에서 덜 익은 몇 알을 땅에 버렸었다. 그 때문에 5백 생 동안 소가 되어 그것을 보상했다.”

게송을 읊는다.

가난과 부자는 서로 어그러지고
빚준 이와 빚진 이는 서로 어긴다.
남에게 빌었다가 그것 갚지 않으면
원한 맺어 언제나 자꾸 치달린다.

마음으로 후회하고 갚지 않으면
괴로운 그 과보는 틀림이 없어
갖가지 악도에 떨어져
긴 밤 동안 돌아갈 곳이 없다.

감응연(感應緣)[11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사문 석안청(釋安淸)
진(晋)의 사문 석백원(釋帛遠)
양(梁)의 남양(南陽) 사람 후경(侯慶)
수(隋)의 양주(楊州) 사람 변사유(卞士瑜)
수(隋)의 낙주(雒州) 사람 왕오계(王五戒)
수(隋)의 기주(冀州) 사람 경복생(耿伏生)
당(唐)의 정주(鄭州) 부인 주(朱)씨

당(唐)의 분주(汾州) 사람 노백달(路伯達)
당(唐)의 옹주(雍州) 사람 정화(程華)
당(唐)의 노주(潞州) 사람 이(李) 교위(校尉)
당(唐)의 옹주(雍州) 부인 진(陳)씨

한(漢)의 사문 석안청(釋安淸)
한(漢)나라 낙양(洛陽)의 사문 안청(安淸)은 이름이 세고(世高)이니, 안식국(安息國) 왕의 정후(正后)의 태자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칭찬을 받았고, 또 뜻이 총명하고 특히 학문을 좋아하여 외국의 서적과 7요(曜)ㆍ5행(行)ㆍ의방(醫方)ㆍ이술(異術) 내지는 새나 짐승들 소리까지 모두 통달했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제비 떼를 보고 그 동행에게 “누가 음식을 보내 올 것이다”고 했는데, 조금 있다가 과연 음식이 왔으므로 모두 신기하다 했다. 그러므로 그의 뛰어난 명성이 일찍부터 서역(西域)에 퍼졌다.
세고는 이치와 성품을 다 연구해 알고 전생의 업연(業緣)을 스스로 알아 기적이 많이 있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헤아리지 못했다.
처음에 세고는 자기 전생 일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전생에 출가하였는데, 어떤 동학(同學)은 성내는 마음이 많아 분위(分衛)할 때에 시주(施主)를 만나도 정답게 하지 않고 늘 성을 잘 내었다. 세고가 누차 나무랐으나 그는 끝내 고치지 않았다. 이렇게 20여 년을 지내다가 그 동학과 하직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광주(廣州)로 가서 거기서 전생의 과보를 마칠 것이다. 그대는 경전에 밝고 부지런하기 나보다 못하지 않는데, 다만 성질이 분노가 많아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추악한 몸을 받을 것이다. 만일 내게 그런 역량이 있으면 꼭 너를 구제하리라.”
그 뒤에 그는 마침내 광주로 가다가 도적의 난리를 만났는데, 길에서 어떤 소년이 손에 침을 뱉고 칼을 뽑아 들고는 말하였다.
“너를 참 잘 만났다.”
세고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전생에 그대의 빚을 졌기 때문에 그대의 분노를 갚으려 한다. 이것은 내가 전생에 먹었던 마음이다.”
그리고는 목을 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도적은 드디어 그를 죽였다.
길을 메운 구경꾼들은 모두 그 신기함에 놀랐다. 그런데 그 혼이 돌아와 안식국왕의 태자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세고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세고는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포교 사업을 마치고 영제(靈帝) 말년에 관락(關洛)이 크게 어지럽게 되자 지팡이를 날려 강남(江南)으로 떠나면서 말하였다.
“나는 여산(廬山)을 지나 옛날의 동학을 제도하리라.”
그리고는 떠나가다가 공정호(笻亭湖)의 사당에 이르렀다. 이 사당은 옛날부터 영험이 있어 나그네 상인들이 기도를 하여 바람을 아래위로 나누어 각각 걸림이 없게 할 수 있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거기 있는 신죽(神竹)을 가지려 빌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베었는데, 그의 배는 곧 침몰하고 신죽은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었다. 이로부터 뱃사람들은 그것을 공경하여 모두 그 형상을 두려워했다.
세고는 나그네 30여 인과 배를 같이 탔다. 그 선주(船主)가 희생(犧牲)을 올리고 복을 빌었을 때 사당 신은 축문을 내려 “그 배에 있는 사문을 이리 불러 올려라”고 했다. 뱃사람들은 모두 놀라 세고를 데리고 사당에 들어갔다. 사당 신은 세고에게 말했다.
“나는 외국에서 자네와 함께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서 보시하기를 좋아했으나 성질이 성을 잘 내었기 때문에 지금 이 공정묘(笻亭廟)의 신이 되어 이 주위 천리는 다 내가 다스린다. 보시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보물은 풍부하지만 성을 잘 내었기 때문에 이 귀신의 과보를 받았다. 지금 동학을 만나니 슬픔과 기쁨을 다 말할 수 없구나. 내 목숨은 아침저녁에 있고 추한 형상은 길고도 크다. 만일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이곳의 강호(江湖)를 더럽힐 것이니, 저 산서(山西)의 늪 속으로 가리라. 이 몸이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다. 내게 비단 천 필과 여러 가지 보물이 있으니, 그것으로 법을 위해 탑을 세워 나를 좋은 곳으로 가게 해 다오.”
세고가 말하였다.
“일부러 구제하러 왔는데 왜 형상을 내 놓지 않느냐?”
신은 말하였다.
“내 형상이 너무 누추하고 이상해 여러 사람들이 보면 반드시 두려워할 것이다.”
세고는 말하였다.
“그저 나오기만 하라. 대중은 괴상하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귀신이 평상 뒤에서 머리를 내니, 그것은 바로 큰 이무기로서 꼬리의 길이는 알 수 없고, 머리는 세고의 무릎 곁에까지 왔다. 세고가 그 이무기를 향해 범어(梵語)로 몇 번 찬패(贊唄)하고 몇 계(契)를 외우자, 이무기는 슬퍼하며 눈물을 비처럼 흘리면서
잠깐 사이에 도로 들어갔다.
세고는 곧 그 비단과 보물을 챙겨 가지고 사당을 하직하고 나와 뱃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돛을 올렸다. 이무기는 다시 나와 산 위에 올라가 바라보다가 뱃사람들이 손을 들어 흔든 뒤에야 비로소 사라졌다. 잠깐 사이에 배는 예장(預章)에 도착하였고, 세고는 그 사당의 물건으로 동사(東寺)를 세웠다. 세고가 떠난 뒤에 신(이무기)은 곧 목숨을 마쳤다.
저물 무렵에 어떤 소년이 배에 올라 세고 앞에 꿇어앉아 세고의 축원을 듣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세고는 뱃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아까 그 소년은 곧 저 공정묘의 신이었는데 이제 그 추악한 형상을 버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 사당의 신이 없어진 뒤로는 그 사당에는 다시는 영험이 없었다. 뒤의 사람이 산서의 늪 속에서 어떤 죽은 이무기의 시체를 보았는데, 머리에서 꼬리까지가 몇 리나 되었으며, 지금 심양(潯陽)의 사촌(蛇村)이 바로 그곳이다.
세고는 뒤에 다시 광주(廣州)로 돌아와 자기를 헤쳤던 그 소년을 찾아보았다. 그 소년은 아직 그대로 살아 있었으므로 그 집에 투숙하면서 옛날의 빚 갚던 일을 이야기하고 또 전생의 인연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하였다.
“나는 아직 갚을 것이 남았다. 지금 회계(會稽)로 가서 그것을 마저 갚아야 하겠다.”
그 소년은 세고의 비범함을 알고 활연히 뜻이 풀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더욱 후하게 대접했다. 그리고 세고를 따라 동쪽으로 가서 회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곧 시장에 들어갔는데, 마침 시장에 난리가 일어나, 서로 때리는 사람이 잘못 세고의 머리를 때려 세고는 그 자리에서 운명했다.
광주의 나그네(소년)는 이 두 가지의 과보를 직접 보고, 드디어 불법에 정진하면서 이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여 원근 사람들이 모두 이 사실을 들어 알고 다 슬퍼하고 감탄했다. 이로써 3세(世)의 증험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진(晋)의 사문 석백원(釋帛遠)
진(晋)나라 장안(長安)의 백원(帛遠)의 자는 법조(法祖)요 본성은 만(萬)씨이며 하내(河內) 사람이다. 재주와 생각이 투철하고 민첩하여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하루에 8, 9천 언(言)의 경을 외웠으며 방등경(方等經)을 깊이 연구하여 미묘한 경지에 들어갔으며 세속의 고전도 모두 관통하였다.
법조는 진(晋)나라 혜제(惠帝) 말년에
농우(隴右)에 숨어 고상한 지조를 보전하려 하였는데, 마침 장보(張輔)가 진(秦)의 자사(刺史)가 되었었다.
전에 그 고을 사람 관번(管蕃)이 법조와 토론하여 여러 번 졌기 때문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장보에게 모함하여 장보는 법조를 잡아 가두고 중벌을 주려 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원통하다 했다. 그 때 법조는 말하였다.
“나는 이제 과보를 마친다. 이것은 오래전에 맺힌 숙명이요 지금의 일이 아니다.”
이에 시방의 부처님을 부르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법조의 전생의 인연으로서 이제 기꺼이 그 과보를 받습니다. 원컨대 지금부터는 장보와 좋은 벗이 되오리니, 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태형(笞刑) 다섯 대를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장보는 뒤에 자세한 사정을 알고 매우 원통해 하였으며 도인과 승려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고 대중들은 다 격분했다. 그리고 법조의 시체를 나누어 각기 탑을 세웠다.
장보는 비록 재주는 있었으나 가혹하여 이치로 다스리지 않고 덕이 있는 스님들을 억울하게 죽였다. 천수(天水) 태수(太守)가 장보의 벼슬을 높여 주자, 백성들은 의심하고 놀라면서 이에 난리를 일으켜 장보를 죽이고 또 관번도 죽었다.
그 때 이통(李通)이라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 자기가 법조 법사가 염라대왕이 있는 곳에서 염라왕을 위해 『능엄경』을 강설하면서 “이 강설을 마치면 도리천으로 갈 것이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제주(祭酒) 왕부(王浮)와 도사 기공(基公)이라는 이가 사슬에 묶이고 형틀을 차고는 법조에게 참회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옛날 법조는 평소에 왕부와 더불어 늘 옳다 그르다 다투었는데 왕부가 누차 굴복했었다. 왕부는 원한을 참지 못하고, 곧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을 지어 불법을 모함하고 비방하다가 그 화를 입고 죽을 때 비로소 참회했던 것이다.
손작(孫綽)의 『도현론(道賢論)』에서는 법조를 혜강(嵇康)과 맞먹는다 하였고, 또 그 논(論)에서 말하였다.
“법조는 관번과 사이가 나빠 중간에 헤어졌다가 종회(鍾會)에서 화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뛰어나고 고상한 기상이 있었으나 몸을 보존하는 생각에 어두워 마음을 세상 일 밖에 두고 세상을 가벼이 여기다가 화를 당했으니 거의 다르지 않다.”
그는 이렇게 칭송을 받았었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양(梁)의 남양(南陽) 사람 후경(侯慶)
양(梁)나라 남양(南陽) 사람 후경(侯慶)은 동상(銅像) 1구(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높이는 1척 남짓하였다. 후경은 소 한 마리가 있어 그것을 재물이라 생각하고, 이름을 금색(金色)이라 했다. 마침 급한 일이 있어 그 소를 팔아 그 돈으로 충당했다. 2년이 지난 뒤에 후경의 아내 마(馬)씨의 꿈에 갑자기 그 동상이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 부부는 내 금색에게 빚진 지 오래인데 갚지 않으니, 이제 그대 아이 추다(醜多)를 잡아 와서 그 금색에 대신하리라.”
마씨는 꿈에서 깨어나 마음이 몹시 불안했는데, 새벽에 추다가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후경은 나이 50에 오직 그 아들 하나뿐이었으므로 그 슬피 우는 소리는 길가는 사람들까지 슬프게 했다.
추다가 죽던 날 그 동상은 갑자기 금색이 되어 그 빛이 사방 이웃을 다 비추었고, 이웃 사람들은 모두 그 향냄새를 맡았으며, 도인과 속인과 노소들이 모두 다 와서 보았다. 상서(尙書) 우복야(右僕射) 원적(元積)은 그 마을 안에 자주 이변이 있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그 마을 이름을 부재리(負財里)에서 제해리(齊諧里)라 고쳤다.[이것은 『낙양사기(洛陽寺記)』에 나온다.]

수(隋)의 양주(楊州) 사람 변사유(卞士瑜)
수(隋)나라 양주(楊州)의 변사유(卞士瑜)의 아버지는 수나라에 있을 때 진(陳)을 평정한 공으로 의동(儀同)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인색하여 일찍이 사람을 시켜 집을 짓고 그 공임을 주지 않았다. 목수가 값을 청하면 그 아버지는 성을 내어 목수를 때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참으로 네게 빚을 졌다면 나는 죽어 너의 집 소가 되리라.”
얼마 뒤에 사유의 아버지는 죽었는데, 그 집의 소가 누런빛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송아지 허리에는 검은 무늬가 가로로 둘러 있어 마치 사람의 허리띠 같았고, 오른 다리에는 흰 무늬가 크고 작게 세로로 박힌 것이 바로 홀(笏) 모양 같았다. 주인이 말하였다.
“변공, 왜 내게 빚을 졌는가?”
그러자 송아지는 곧 앞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었다. 사유는 10만 전을 주면서 빚을 갚으려 했으나 주인은 받지 않고 죽은 뒤에 시체를 거두어 묻어 주었다. 이것은 사유가 임종 때에 한 이야기다.

수(隋)의 낙주(雒州) 사람 왕오계(王五戒)
수(隋)나라 대업(大業) 때에 왕(王)이란 사람은 항상 5계를 지키면서
때때로 미래의 일을 말해 맞히므로 마을 사람들은 다 그를 존경하고 믿었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갑자기 사람에게 “오늘 어떤 사람이 내게 나귀 한 마리를 보내 줄 것이다” 했는데, 점심 때에 과연 어떤 사람이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홀로 된 그 어머니가 1남 1녀를 길렀다. 딸(여동생)은 결혼하고 어머님마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다. 한식 날에 그는 술과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무덤에 제사 지내러 나귀를 타고 갔다. 무덤은 이수(伊水) 동쪽에 있었다. 이수를 건너려 했으나 나귀가 말을 듣지 않자 그는 나귀 머리와 얼굴을 때려 피가 흘러내렸다. 무덤에 이르러 나귀를 놓아 두고 제사 지내는 동안, 나귀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여동생은 오빠 집에 혼자 있다가 갑자기 그 어머니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머리와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몸은 매우 초췌하여 그 딸을 보고 울면서 호소했다.
‘나는 생시에 네 오빠 몰래 쌀 다섯 말을 네게 보내고, 그 죄의 과보로 이 나귀 몸을 받아 5년 동안 네 오빠에게 노력으로 갚게 되었다. 오늘은 이수를 건너려는데 물이 깊어 겁이 나서 건너려 하지 않았더니, 네 오빠가 매로 때려 내 머리와 얼굴이 다 상했다. 그대로 집에 돌아오더라도 네 오빠는 다시 나를 때릴 것이므로 지금 미리 달려와 네게 알리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빚을 거의 다 갚게 되었는데 왜 이처럼 무리하게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나가 버렸다. 딸은 나가 찾아보았으나 그 어머니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 오빠가 돌아왔을 때 딸은 먼저 나귀의 머리와 얼굴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니의 상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 나귀를 안고 울었다. 오빠가 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을 때 여동생은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오빠는, 나귀가 처음에 물을 건너려 하지 않았던 일과 그것을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온 일을 다 이야기했다. 전후의 사실이 꼭 다 맞았으므로, 이에 오누이는 서로 안고 통곡하고 나귀도 눈물을 흘리면서 풀을 먹지 않았다. 오누이는 그 앞에 꿇어앉아 청하였다.
‘만일 당신이 우리 어머니라면 이 풀을 먹으십시오.’
그러자 나귀는 그제사 먹었다. 그러나 이내 그쳤다. 오누이는 할 수 없어 조 다섯 말을 준비해 나귀와 함께 왕오계에게로 보냈다. 이리하여 나귀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뒤에 나귀가
죽었을 때는 이 오누이가 시체를 거두어 장사 지냈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 나온다.]

수(隋)의 기주(冀州) 사람 경복생(耿伏生)
수(隋)나라 기주(冀州) 임황현(臨黃縣) 동쪽에 경복생(耿伏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집에는 재물이 조금 있었다. 대업(大業) 11년에 복생의 어머니 장(張)씨가 그 아버지 몰래 비단 두 필을 거지 여자에게 주었다. 몇 해 뒤에 그 어머니는 죽어 암퇘지로 그 집에 태어나 다시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복생은 그 새끼를 다 잡아먹어 버리고 다시 새끼를 못 낳게 했다. 그리고 복생은 곧 백정을 불러 돼지를 팔려고 했다. 미처 팔기 전에 어떤 객승(客僧)이 걸식하러 와서 그 집에서 조금 머물러 있을 때, 그가 데리고 온 소년이 돼지우리 안에 들어가 장난하고 있었다. 그 암퇘지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이 집 주인 복생의 어머니다. 지난날 복생의 아버지의 눈을 피해 비단 두 필을 거지 여자에게 주었다. 나는 그 죄로 암퇘지가 되어 새끼 두 마리를 낳았으나 복생이 다 잡아먹었다. 그래서 나는 빚을 다 갚고 이제는 더 갚을 것이 없다. 그런데 또 백정을 불러 나를 팔려 하니, 부디 이 사실을 스님에게 알려 다오.”
소년은 이것을 그 스님에게 자세히 이야기했으나 스님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너는 미쳤구나. 돼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는 그만 누워 잠이 들었다. 하루를 지나 돼지는 또 아이에게 말하였다.
“백정이 곧 올 터인데 왜 스님에게 알리지 않는가?”
아이는 또 말했으나 스님은 여전히 듣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백정이 와서 돼지를 잡아가려 했다. 돼지는 우리를 넘어 스님에게로 달려갔고, 백정도 그 뒤를 쫓아 스님에게로 갔다. 스님은 말하였다.
“돼지가 내게 왔으니 나는 이 돼지를 사겠소.”
그리고는 돈 3백 문(文)을 주고 그 돼지를 샀다. 그 뒤에 스님은 가만히 복생에게 말했다.
“전에 집에서 비단을 잃어버린 일이 있습니까?”
복생이 대답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비단 두 필을 잃은 일이 있습니다.”
스님은 또 물었다.
“자매는 몇이나 됩니까?”
복생은 말했다.
“여동생 한 사람뿐인데 이 고을 북쪽에 있는 공승(公乘)의 집으로 시집갔습니다.”
스님은 곧 소년에게서 들은 것을 다 그대로
이야기했다. 복생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면서 어찌할 줄 몰라 하고, 더욱 마음을 다해 돼지 어머니에게 공양했다. 며칠 뒤에 그 돼지는 죽었는데, 그 딸의 꿈에 나타나 “나는 빚을 다 갚고 이제 좋은 곳에 났다” 하고, 다시 그 딸에게 공덕 닦기를 권하였다.

당(唐)의 정주(鄭州) 부인 주(朱)씨
당(唐)의 정주(鄭州) 양무현(陽武縣)의 어떤 부인은 성이 주(朱)씨이다. 그 남편이 전에 외현(外縣) 사람에게 비단 백 필의 빚을 졌는데, 그 남편이 죽은 뒤에 아무도 그것을 갚지 못했었다.
정관(貞觀) 말년에 이 부인이 병으로 죽었다가 이틀을 지낸 뒤에 다시 깨어나 그 동안의 사실을 이야기했다. 부인은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어느 곳으로 갔는데, 어떤 사람이 부인을 보고 말했다.
“나는 바로 사명부(司命府)의 관리이다. 네 남편이 생시에 우리 집에 비단 약간 필의 빚을 졌기 때문에 너를 붙잡아 왔다. 그러나 너를 놓아 보내리니, 너는 빨리 비단을 마련하여 아무 고을, 아무 마을, 아무 집의 우리 어머니에게 보내 드려라. 만일 보내지 않으면 다시 붙들어 와서 더욱 고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겸해서 우리 어머님께 ‘부디 나를 위해 불상을 만들고 복을 빌어 달라’고 말씀드려라.”
부인은 곧 풀려 나와 마을에서 비단을 구해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또 그 아들의 용모를 이야기했다. 그것은 평시와 같았으므로 그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흐느꼈다.

당(唐)의 분주(汾州) 사람 노백달(路伯達)
당(唐)나라 분주(汾州) 효의현(孝儀縣) 사람 노백달(路伯達)은 영휘(永鰴) 때에 같은 고을 사람에게 돈 천 문(文)을 빌려 쓴 뒤에 계약을 어기고 갚지 않았다. 그래서 붙잡혔는데 증명하기 위해 전주와 함께 부처님 앞에 가서 맹세하였다.
“만일 내가 갚지 못하면 내가 죽은 뒤에 당신 집의 소가 되리라.”
이렇게 맹세하고 1년이 못 되어 백달은 죽었다. 전주 집의 암소가 2년 뒤에 붉은 송아지를 낳았는데, 그 이마에 흰 털이 ‘노백달’이라는 세 글자로 났다. 그의 아들과 조카들은 창피스러워 돈 5천 문으로 사려 했으나 주인은 듣지 않고, 곧
습성현(濕城縣) 계복사(啓福寺)의 진여(眞如) 스님에게 보내고, 15층의 부도를 만들었다. 누구나 이것을 보는 사람은 발심하여 악을 짓지 않고 다투어 돈과 물건을 보시했다.[이상의 세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당(唐)의 옹주(雍州) 사람 정화(程華)
당(唐)나라 영휘(永鰴) 5년에 서울 밖 동남쪽에 구가취(苟家嘴)라는 언덕이 있었고, 거기에 영천(靈泉)이 있었다. 정화(程華)라는 사람은 그 향장(鄕長)으로 있으면서 늦가을에 숯을 운반할 때, 어떤 탄정(炭丁)을 지정해 주고 그에게서 돈을 받았다. 그 탄정은 집도 가난하였지만 또 문자도 알지 못하여 그에게 그것을 적어 받지 않았었다. 정화는 그 뒤에 그 탄정에게 숯을 달라 했다. 탄정이 불복하자 정화는 말하였다.
“내가 네 돈을 받았다면 어디 그 문서를 가져오라.”
탄정은 말하였다.
“나는 문자를 모릅니다. 그 때 당신은 내게 ‘나는 이미 네 돈을 받았는데 새삼 따로 적을 것이 어디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어 새삼 적어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무엇 때문에 내게 돈을 청구합니까?”
정화는 인과(因果)를 믿지 않고 드디어 탄정에게 맹세하였다.
“만일 내가 네게서 돈을 받았다면 나는 죽어 네 집의 소가 되리라.”
탄정은 고민하면서 따로 돈을 구해 그에게 주었다. 정화는 15개월을 지내지 못하고 죽어, 곧 탄정의 집 암소의 태에 들어가 뒤에 송아지로 났다. 온몸은 다 검은데 오직 이마 위에만 한 쌍의 흰 글자로 ‘정화’라고 분명히 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그 송아지가 정화임을 알았다. 그 자녀들은 몇 곱의 돈을 가지고 속죄를 구했으나 되지 않아 그 소는 아직 그대로 있다.[좌근촌(左近村) 사람들이 다 보고 말한 것이다.]

당(唐)의 노주(潞州) 사람 이(李) 교위(校尉)
당(唐)나라 용삭(龍朔) 원년에 회주(懷州)의 어떤 사람은 노주(潞州) 시장의 돼지를 사서 회주에 갔다 팔았다. 한번은 노주의 암퇘지 한 마리를 3백 전(錢)에 사서 회주의 백정에게 6백 전을 받고 팔았다.
그 해 11월에 노주의 이(李)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교위(校尉)가 되어 회주에 가서 당번(當番)으로 있으면서 고기를 사려고 시장에 나갔다. 거기서 이 돼지가 네 발이 묶인 채 푸줏간 앞에서 곧 죽게 된 것을 보았다. 돼지는 이 교위를 보고 말했다.
“너는 내 딸의 아들이요, 나는 네 외조모이다. 너의 집은 본래 가난하여 네 어머니가 자주 내게 와서 양식을 가져갔는데, 너무 자주 청하였기 때문에 이루 다 대어 줄 수 없었으므로 내 큰아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 모자를 가엾이 여겨 아들 몰래 가만히 쌀 다섯 말을 너희에게 주었다. 그 때문에 나는 지금 돼지가 되어 그 빚을 갚는데 너는 왜 나를 구해 주지 않는가?”
교위는 이 말을 듣고 백정에게 그 돼지를 사려고 했다. 백정은 교위의 말을 전연 믿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이 돼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직 이 교위만이 알아들었기 때문에 백정은 말하였다.
“만일 참으로 이 돼지가 당신 외조모라면 나는 이것을 놓아주겠습니다. 그러면 내 앞에서 둘이서 이야기해 보십시오.”
백정은 돼지를 풀어놓았다. 교위는 다시 돼지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당번이므로 한 달 안에는 할머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할머니를 어디에 모셔 두면 좋겠습니까?”
돼지는 말했다.
“나는 지금 저승에서 이 추악한 몸을 받았으니 설사 네가 당번이 끝나더라도 나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네 어미는 지금 집에 있고 너는 다시 교위가 되었으니, 고향의 권속들이 내 이 꼴을 보면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요, 또 너의 가문을 욕되게 할 것이다. 나는 들으니, 아무 절에서는 늘 돼지와 양을 기른다고 하였다. 너는 그 절에 나를 데려다 다오.”
교위는 말하였다.
“만일 할머니께 영험이 있다면 앞에서 길을 인도하십시오.”
돼지는 이 말을 듣고 바로 그 절로 달려갔다. 절의 스님들은 처음에는 받으려 하지 않았으나, 교위가 그들에게 그 동안의 영험을 자세히 이야기하자, 스님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가엾이 여겨 새로 집을 짓고 거기 두었다. 교위는 다시 담요를 깔고 거기 눕게 했다. 스님들과 속인들도 다 다투어 그 돼지에게 음식을 주었다. 오랜 뒤에는 스님들도 모두 돼지의 말을 알아들었다.
교위는 당번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 어머니에게 이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뒤에 어머니는 직접 와서 이 돼지를 보고 모녀는 서로 만나 함께 눈물을 흘렸다. 돼지는 인덕(麟德) 원년까지 그대로 잘 있다는 말을 들었다.[태자가 양난(梁亂)에 쫓기어 병주(幷州)로 갔다가 회주(懷州)의 성곽 아래에서 절충(折衝:武官의 명칭)을 맡았을 때 이것을 다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당(唐)의 옹주(雍州) 부인 진(陳)씨
당(唐)나라 용삭(龍朔) 3년에 장안(長安) 성내 통궤방(通軌坊)의 삼위(三衛) 유공신(劉公信)의 부인 진(陳)씨는 그 어머니가 먼저 죽고 진씨도 뒤따라 갑자기 죽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지옥에 들어가, 여러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최후에 한 지옥을 보았다. 견고한 돌문이 있었고, 얼굴이 장대한 두 귀신이 문을 지키면서 좌우에서 성난 눈으로 진씨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너는 어떤 사람인데 여기 왔느냐?”
그런데 돌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그 어머니가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고통이 조금 풀리자 어머니가 문 가까이 와서, 모녀가 서로 바라보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말하였다.
“너는 빨리 돌아가 부디 힘써 나를 위해 경전을 베껴라.”
딸이 물었다.
“무슨 경을 베끼면 좋겠습니까?”
어머니는 말하였다.
“나를 위해 『법화경』을 베껴라.”
말을 마치자 돌문은 곧 닫혔다. 진씨는 다시 깨어나 그 남편에게 이 일을 다 이야기했다. 남편은 그의 매형(妹兄)인 조사자(趙師子)에게 부탁해 경을 베끼려 했다. 조사자는 이전부터 베낀 경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즉 어떤 경생(經生)이 『법화경』 1부를 새로 베꼈으나 아직 포장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 사람이 전에 남의 부탁을 받고 베낀 것이었다. 경 주인은 범(范)씨였다. 이 경생은 이 『법화경』을 조사자에게 2백 전(錢)을 받고 팔았다. 그러나 시주(施主)는 그 경의 판 값을 모르고 있었다. 조사자는 다시 매형에게 말했다.
“지금 베낀 『법화경』 1부가 어떤 집에 있으니, 매형은 그것을 천 전을 주고 사십시오.”
진씨 남편은 그것을 4백 전에 사서 장정을 끝낸 뒤에 집에 두고 공양했다. 그 뒤에 진씨의 꿈에 그 어머니가 나타나 말했다.

“나는 먼저 나를 위해 『법화경』 1부를 베끼라고 부탁했는데 너는 왜 지금까지 그것을 구하지 않는가?”
진씨는 말했다.
“이미 『법화경』 1부를 사서 장정을 마치고 집에 두고 공양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 말 말아라. 그 경 때문에 나는 더욱 고통을 받는다. 저승의 옥졸(獄卒)이 때려 내 등이 모두 상했다. 너는 초췌해진 내 몸을 보아라. 옥관(獄官)은 내게 말했다.
‘너는 왜 남인 범씨 경전을 네 것이라 하느냐? 그것이 무슨 복이 있겠느냐? 너는 큰 죄를 지었다.’
진씨는 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다시 따로 『법화경』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마치기 전에 또 진씨의 꿈에 어머니가 와서 경을 재촉했다. 마침 그 때 어떤 스님이 『법화경』을 듣고 그 어머니에게 말했다.
“당신 따님이 당신을 위해 이미 『법화경』 제1권을 베껴 공덕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왜 또 와서 재촉합니까? 다 베낄 때까지 기다리시오. 무엇 때문에 그리 조급하십니까?”
그 뒤에 경을 다 베꼈을 때 그 어머니는 다시 진씨 꿈에 와서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해 경을 베꼈기 때문에 나는 지옥을 벗어나 지금 좋은 곳에 났다. 네 은혜를 입었으므로 지금 와서 알리는 것이니, 너는 부디 잘 살아라. 그리고 여자의 예의를 지키고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라.”
말을 마치고 모녀는 모두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며 이별했다.
뒤에 조사해 보았더니, 전에 그 『법화경』의 주인은 과연 범씨였다. 범씨는 그 경은 얻지 못했으나 그 경을 보시하였으므로 복이 원만하였고, 뒤에 전매한 사람은 죄를 스스로 불러왔으며, 진씨는 속죄를 시켰으므로 조금 복을 받았다. 그러나 죽은 그 어머니는 힘을 얻지 못했다.[이것은 진씨의 남편 유공신이 습유(拾遺)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66. 쟁송편(諍訟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인자한 말을 한 번 내면 하늘도 사람도 웃음을 머금고, 야비한 말을 한 번 내면 이승과 저승 사람이 다 성낸다. 두렵게 하는 소문을 듣고 악을 전하면 마음의
눈이 아주 멀어지나니, 선을 보고 사랑을 품으면 언제나 적자(赤子)와 같다. 사(邪)와 정(正)의 자국이 다르고 선과 악의 그 길이 다름을 알았다면, 3독(毒)의 흉한 말을 그치고 선화(善和)의 공경하는 순종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가르침은 근본을 닦고 지말을 버리는 것이다. 마음이 독(毒)의 주인이 되고 입이 화(禍)의 그릇이 되면 이로 인해 재앙을 이루고 흐름을 따라 악도에 가나니, 다툼으로 인상을 나쁘게 하고서 크게 교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인증부(引證部)
『중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기원정사에서 어떤 두 비구가 다투었다. 한 사람이 욕설을 퍼부을 때 한 사람이 잠자코 있자, 욕설을 퍼붓던 사람은 곧 참회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 비구는 그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비구들이 권하고 충고하면서 드디어 고함 소리가 시끄러워졌다.
그 때 세존께서 사람의 귀보다 뛰어난 깨끗한 하늘귀로 이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시고, 선정에서 일어나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 그리하여 대중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저 안타림(安陀林)에서 참선하고 있다가 이 정사에서 나는 시끄러운 고함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누구냐?’
비구들이 앞의 일을 자세히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그 우치한 사람은 남이 참회하고 사과하는데 그것을 받아 주지 않는가? 만일 남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우치한 사람으로서 긴 밤 속에서 항상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셨다.
‘옛날 석제환인이 삼십삼천과 다툴 때 나는 다음 게송으로 경계하였느니라.

남을 해치려는 마음 없으면
분노해도 원한을 품지 않으며
원한을 품었어도 오래 가지 않나니
그 분노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분노가 솟아오르더라도
그에 대해 추악한 말 하지 말라.


그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기를 구하지 말고
그의 단점을 들추어 내지 말고
항상 스스로 제 몸을 단속하여
도리로써 제 마음 잘 살펴보라.

성내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언제나 성현들과 함께 있으라.
만일 나쁜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강강(剛强)하기 마치 태산 반석같이 하라.

분노가 치솟으면 그것을 억제하기를
내닫는 말 수레를 붙잡듯 하라.
내 말은 좋은 스승 되라 함이요,
먹줄 잡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 아니다.’

그리고 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제석천왕 석제환인은 아수라와 싸우려 할 때 삼십삼천에게 말하였다.
≺오늘 우리 하늘들은 아수라와 싸운다. 우리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지거든 저 아수라의 왕 비마질다(毘摩質多)를 사로잡아 5박(縛)으로 결박지어 천궁(天宮)으로 데리고 가자.≻
아수라도 또 말했다.
≺우리가 싸울 때 저 하늘이 지고 우리 아수라가 이기거든 저 제석천왕을 사로잡아 5박으로 결박지어 우리 궁전으로 데리고 가자.≻
그리하여 싸울 때,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으므로 하늘들은 아수라를 5박으로 결박지어 천궁으로 데리고 가서 제석천의 단법전(斷法殿) 문 앞에 묶어 두었다. 제석이 그 문을 드나들 때에 아수라는 문 앞에 묶인 채 성을 내어 욕설을 했다. 제석의 마부는, 아수라왕이 5박으로 묶여 문 앞에 있으면서 제석이 드나들 때에 성을 내어 욕설하는 것을 보고 곧 게송으로 제석에게 아뢰었다.

제석님은 저이를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그 힘이 모자라서인가.
아수라가 면전에서 욕설하는 것
어찌하여 그것을 참으시는가.


제석은 답하였다.

겁이 나서 참는 것도 아니요
또한 힘이 모자라 그런 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저런 어리석은 사람과 맞상대하리.
마부는 또 말하였다.

만일 그저 참기만 하면
일에 있어 반드시 결함 생기네.
어리석은 사람은 으레 말하리.
겁이 나기 때문에 인욕한다고.
그러므로 마땅히 강하게 다스려
지혜로 어리석음 눌러야 하네.

제석은 말하였다.

나는 보았네. 현명한 사람이
우치한 사람을 제압할 때에
그이가 잔뜩 분노하는 것 보면
지혜로운 침묵으로 굴복시킴을.

힘 부릴 때 아닌데 힘을 부리면
그것을 어리석은 힘이라 하네.
우치한 사람은 법을 어기나
도에 있어서는 그런 일 없네.

만일 참으로 아주 힘센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자의 모욕 참으면
그야말로 최상의 인욕이라네.
힘이 없이 어떻게 인욕 있으랴.

남의 지나친 모욕을 당하고도
참으로 힘 있는 이 잘 참으면
그야말로 최상의 인욕이라네.
힘이 없이 어떻게 인욕 있으랴.

자신이나 또 다른 사람을
큰 두려움에서 잘 보호하고
어떤 사람이 잔뜩 화낸 것 알 때
스스로 제어하여 침묵 지키면
자기도 이롭거니와 남도 이롭게 하는
두 가지 이 이치를 모두 갖추리.

이른바 저 어리석은 사람은
참다운 이 법을 모르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 잘 참는 것 보고
더욱 욕설을 마구 퍼부으면서
남의 모욕을 잘 참음으로써
그에게 항상 이김을 모르네.

나보다 힘센 이에 굽혀 참는 것
그것을 두려워 참는 것이라 하고

나와 대등한 사람에게 참는 것
그것을 다툼을 참는 참음이라고 하며
나보다 약한 이에게 느긋이 참는 것
그것을 최상의 참음이라 하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석제환인은 삼십삼천에서 자재로운 왕이 되어 항상 인욕을 행하고 또 인욕을 찬탄하였다. 너희 비구들도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니, 저와 같이 인욕을 행하고 또 인욕을 찬탄하는 것을 배워야 하느니라.’”
또 『기세경(起世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여러 하늘들이 아수라와 큰 전투를 일으켰다. 그 때 제석천왕은 그가 거느린 삼십삼천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지금 아수라와 싸우게 되었으니, 잘 무장하고 각각 무기를 가져라. 만일 너희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지거든 너희들은 저 아수라의 왕 비마질다를 사로잡아 5박(縛)으로 묶어 여러 하늘의 집회소인 선법당(善法堂)으로 데리고 오너라.≻
삼십삼천은 제석천왕의 명을 받고 그대로 봉행하기로 했다. 그 때 비마질다 아수라왕도 여러 아수라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저 하늘이 지거든 그 제석천왕을 사로잡아 5박으로 묶어 아수라의 7두(頭)가 모이는 곳에 데리고 와서 내 앞에 세워라.≻
아수라들도 그 명령대로 행하기로 했다. 그 때 제석천이 이겨 곧 아수라왕을 사로잡아 5박으로 묶고 여러 하늘의 집회소 선법당으로 데리고 와서 제석천왕 앞에 세웠다. 그 때 비마질다왕은 생각했다.
≺모든 아수라들아, 다 잘 있거라. 나는 이제 아수라들이 필요 없다. 나는 여기서 이 하늘들과 함께
향락하며 살리라. 여기가 꼭 내 마음에 든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제 몸의 5박이 다 풀리고 5욕(欲)의 쾌락이 다 그 앞에 나타났었다. 그러다가 또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삼십삼천이 필요 없다. 여러 하늘아, 다 잘 있거라. 나는 아수라 궁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그 몸의 5박은 다시 묶이고 5욕의 쾌락도 갑자기 다 사라졌다.
아수라왕에게는 이런 미세한 결박이 있는데, 저 악마들의 결박은 이보다 더 미세하다. 왜냐 하면, 비구들아, 삿된 생각을 할 때는 곧 결박되고 바른 생각을 할 때는 곧 해탈하기 때문이다. 그 때 비마질다 아수라왕은 아직 싸우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다.
≺내게는 이런 위신(威神)과 공덕의 힘이 있다. 즉 해와 달의 궁전과 삼십삼천이 비록 내 머리 위에서 돌아다니고 있지만 내 힘은 그것을 취해 내 귀고리로 만들 수 있고, 나는 어디로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다.≻
이때 라후라 아수라왕은 갖가지 무기로 몸을 장엄하고 비마질다왕과 함께 요술을 부려 여러 작은 왕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아수라의 성을 나와 여러 도리천들과 큰 전투를 벌이려 했다.
그 때 난타와 우파난타 등 두 용왕이 그 궁전에서 나와 각각 그 몸으로 수미산을 일곱 겹으로 감아 일시에 흔들고 또 흔들며, 그 꼬리로 바다를 때려 한 무더기의 물을 허공에 올려 수미산 꼭대기에 두었다.
이때 제석천왕은 여러 하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대지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느냐? 저 공중은 흐려 마치 구름이나 비와 같고 또 짙은 안개와도 같구나. 나는 지금 확실히 안다.
저 아수라들이 우리와 싸우려는 것이다.’
이에 바다의 용들은 모두 무장하고 무기를 들고 나와 저 욕계(欲界) 6천(天)에게 알려, 6천들은 각각 무장하고 허공을 타고 내려왔다.
수야마천왕(須夜摩天王)은 무량 백천만 천자를 데리고 내려와서 수미산 꼭대기 동쪽에서 새파란 난항복기(難降伏旗)를 세우고는 산을 의지해 서 있었다.
이때 도솔타천왕과 무량 백천만 천자들이 일시에 구름처럼 모여서 황색의 난항복기를 세우고 산을 의지해 서 있었다.
또 화락(化樂)천왕은 무량 백천 천자와 함께 내려와 수미산 꼭대기 서쪽에서 새빨간 난항복기를 세우고 산을 의지해 서 있었다.
또 타화자재(他化自在)천왕은 무량 백천 천자와 함께 내려와 수미산 꼭대기 북쪽에서 새하얀 난항복기를 세우고 산을 의지해 서 있었다.
그 때 제석천왕은 모든 하늘이 다 구름처럼 모이고, 내지 허공의 야차들도 다 제석천왕 앞에 와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제석천왕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하늘 무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천궁에서 나와 큰 전투를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 여러 가지 무기들은 온갖 빛깔로서 볼 만하였고, 다 7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무기들을 멀리서 아수라들의 몸에 던지니, 모두 그 몸을 꿰뚫었다. 그러나 그 몸에는 전연 상처는 나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맞았기 때문에 아프기만 하였다. 아수라들의 무기도 다 7보로 이루어져 하늘들의 몸을 뚫었으나 상처는 없고 오직
맞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었다.”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여러 하늘이 아수라와 싸울 때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왕이 졌다. 왕은 두려워해 몸이 극히 작은 것으로 변해 연뿌리 속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부처님의 눈으로만 볼 수 있었고 다른 눈은 볼 수 없었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용의 무리와 아수라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싸우지 말고 인욕행을 닦아라. 너희들이 만일 분노를 버리고 인욕행을 성취하면 10종 왕이 될 것이다. 그 10왕이란, 첫째 사천하를 다스리는 자재륜왕(自在輪王)이요, 둘째 비루박차(毗樓博叉)천왕이며, 셋째 비루륵차(毗樓勒叉)천왕이요, 넷째 제두피타(提頭賴吒)천왕이며, 다섯째 비사문(毗沙門)천왕이요, 여섯째 제석[釋]천왕이며, 일곱째 수야마(須夜摩)천왕이요, 여덟째 도솔타(兜率陀)천왕이며, 아홉째 화락(化樂)천왕이요, 열째 타화자재(他化自在)천왕이니라. 너희들이 만일 인욕행을 성취하면 이런 10왕의 가까운 인욕의 과보를 빨리 얻을 것이다.’”
또 『중아함경』에서 세존께서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람은 토론하기 좋아하고
잡된 뜻으로 교만한 마음 품어
성인과 그 덕을 헐뜯으려고
제각기 유리한 기회 엿본다.

다만 상대방의 허물만 찾아
기어코 그 이를 굴복시키기 위해
서로서로 이기기만 구하지만
성인은 그런 짓을 말라 하신다.

또 『중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부디 다투지 말라.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는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다툼으로 다툼을 그치게 하려면
끝내 그 다툼은 그치지 않고

인욕만이 다툼을 그치게 할 수 있네.
이야말로 참으로 존귀한 법이니라.

이에 세존께서 매우 불쾌해 하시다가 구사미(拘舍彌) 비구들이 다툼을 그치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말 저런 말 여러 말로써
가장 높은 이의 대중을 파괴한다.
성인의 대중을 파괴하면
나무람을 면할 길이 없다.

몸을 상하고 목숨까지 해치며
코끼리ㆍ말ㆍ소 등 재물 빼앗고
나라까지 다 망친 뒤에도
그래도 여전히 화해를 망설인다.

하물며 너희들은 조그만 비방으로
서로를 화합하게 하지 못한다.
만일 참뜻을 생각하지 못하면
어떻게 그 원한을 풀 수 있으리.

자주 꾸짖고 또 욕설하여도
잘 제어하여 화합하여라.
만일 진실한 그 뜻을 생각하면
맺은 원한도 반드시 풀리리라.

다툼으로 다툼을 그치게 하려면
끝내 그 다툼은 그치지 않고
인욕만이 다툼을 그치게 할 수 있다.
이야말로 참으로 존귀한 법이니라.

슬기롭고 진실한 사람에 대해
성을 내어 욕하고 또 꾸짖으며
모니(牟尼)의 성인을 비방하고 헐뜯으면
그야말로 하천하고 또 무지한 사람이다.”

또 『불본행경』에서 부처님께서 5비구를 위해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한 달 동안에 천 번 이상 싸우고
한 번 싸움에 백 배로 남 이겨도
만일 부처님을 믿고 또 귀의하면
저것보다 16분이나 더 훌륭하니라.

한 달 동안에 천 번 이상 싸우고
한 번 싸움에 백 배나 남 이겨도
만일 진정한 법 잘 믿고 또 귀의하면
저것보다 16분이나 더 훌륭하니라.

한 달 동안에 천 번 이상 싸우고
한 번 싸움에 백 배나 남 이겨도

만일 법의 성품 공(空)함을 잘 생각하면
저것보다 16분이나 더 훌륭하니라.”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집에 여종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청렴하고 근신하여 주인집의 보리와 콩을 관장하고 있었다. 그 집의 수염소 한 마리가 틈을 엿보아 그 보리와 콩을 먹고 그 되[升]를 부수었다. 여종은 주인의 꾸중을 들었으나, 자신의 허물이 아니라 염소가 먹은 것임을 알기 때문에 늘 염소를 미워하고 매로 때렸다. 염소도 원한을 품고 성을 내고 다가와서 여종을 떠받았다. 이렇게 서로 때리고 떠받기를 계속했다.
어느 날 여종이 빈손으로 불을 피울 때 염소는 여종의 손에 막대기가 없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와 여종을 떠받았다. 여종은 황급하여 부젓가락을 염소 등에 던졌다. 염소는 뜨거움을 못 견뎌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다가 마을로 들어가, 마을을 태우고 그 불은 산과 들에까지 번졌다. 그 때 산에 있던 5백 마리 원숭이들은 맹렬하게 불어오는 불길을 미쳐 피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다 타 죽었다. 하늘들은 이것을 내려다보고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성내어 싸우는 동안에는
그것을 그치지 못하나니
염소와 여종이 싸우는 바람에
마을 사람과 원숭이가 죽었구나.”

게송을 읊는다.

부(富)와 귀(貴)는 내 것과 남의 것을 다투고
빈천은 저절로 부끄러워하며
강하고 약한 자는 서로 저버리면서
그 싸움은 일찍 쉰 적이 없다.

부끄럼과 원한은 서로 침노하면서
기회를 노려 그 원수 갚나니
맺은 원한은 언제나 서로 맞서
여러 겁(劫)에 늘 괴로워한다.

감응연(感應緣)[간략히 두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경제(景帝) 때 목이 흰 까마귀의 싸움
한(漢)의 중평(中平) 때 참새의 싸움

한(漢)의 경제(景帝) 때 목이 흰 까마귀의 싸움

한(漢)나라 경제(景帝) 3년 11월에 목이 흰 까마귀가 검은 까마귀와 싸우다가 초(楚)나라의 여현(莒縣)에서 목이 흰 까마귀들이 패해 사수(泗水)에 떨어져 죽은 것이 수천 마리였다. 유향(劉向)은 이것에 대해 말하였다.
“그것은 매우 나쁜 조짐이다. 초왕(楚王)이 포악 무도하여 신공(申公)을 욕보이려고 오(吳)나라와 모반할 것이다. 까마귀 떼가 싸운다는 것은 전쟁의 상징이다. 목이 흰 까마귀가 작은 것은 작은 것이 패함을 밝힌 것이요, 물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물이 있는 땅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초왕은 포악하고 무지하여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오(吳)나라와 내통하고 한(漢)나라와 싸웠는데, 대패를 당하고 달아나다가 단도(丹徒)에 이르러 월왕(越王)에게 베임을 당하여 죽었으니, 이것은 사수(泗水)에 떨어진 증험이다.
『경방역전(京房易傳)』에서는 말하였다.
“친친(親親)에 반역하는 것은 요사스러운 것이요, 검은 까마귀가 국도에서 싸우는 것은 연왕(燕王) 단(旦)이 모반할 조짐이다. 또 까마귀 한 마리와 까치 한 마리가 연(燕)나라 궁중에서 싸우다가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또 『오행지(五行志)』에서는 말하였다.
“초(楚)나라와 연(燕)나라가 골육(骨肉)을 배반하고 변방의 신하가 교만하여 불의를 꾀하는 것은 다 까마귀와 까치가 싸우다 죽음이 그 전조(前兆)인 것이다.”
행동한 것이 같고 그에 대한 점이 부합하는 것은 하늘과 사람이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연나라의 음모가 발각되기 전에 왕은 혼자 궁중에서 자살하였다. 그러므로 물빛인 까마귀 한 마리가 죽은 것이요, 초나라의 항양(亢陽)은 군사를 일으켰다가 군사들이 들에서 대패하였다. 그러므로 금색인 까마귀 떼가 죽은 것이다. 이것이 천도(天道)의 정미(精微)한 증험인 것이다.
『경방역전(京房易傳)』에서는 말하였다.
“전욱(顓頊)은 치러 가서 저 싸우는 요망한 까마귀와 까치를 죽였다.”

한(漢)의 중평(中平) 때 참새의 싸움
한(漢)나라 중평(中平) 3년 8월에 회릉(恢陵) 위에서 만여 마리의 참새가 먼저 아주 슬프게 울고는 어지러이 싸워 서로 죽이고, 모두 머리를 끊어 탱자나무 가지에 걸어 두었는데, 6년에 영제(靈帝)가 죽었다. 대개 능(陵)이란 높고 큰 것의 상징이요, 작(雀)이란 작(爵)이다.
『천계약(天誡若)』에서는 말하였다.
“작록(爵祿)을 생각하여 후(厚)한 이를 존경하다가 도리어 스스로 해쳐 멸망에 이르렀다.”
[이상 두 가지 증험은 『신수기(神搜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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