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50권
법원주림 제50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51.보은편(報恩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들으니 3보(寶)의 중한 은혜는 4생(生)을 사랑하고 돕는다 한다. 시방을 교화하고 기를 때, 마치 외아들과 같이 여긴다. 그 근기가 아무리 미미해도 거기 가지 않음이 없고, 그 지혜는 오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어루만져 주신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전왕(優塡王)은 불상을 조각하여 그 광명은 빛나고 바사닉왕[斯匿]은 형상을 주조(鑄造)하여 그 자리를 멀리 피했다. 이 뒤로는 신령스런 징조가 더욱 일어났고 아름다운 명성은 더욱 성하여 마치 풀이 바람을 따라 쓰러지는 것 같아서, 생각하면 재앙이 멸하고 복이 생기며 공경하면 덕이 높고 목숨이 영원하다. 이것은 실로 여래께서 내 법신(法身)을 길러 주시고 부모님께서 내 육신을 길러 주셨기 때문이다. 이미 장수(長壽)의 인(因)을 닦았거니 하루살이 목숨은 여기 있지 않다. 그 은의(恩義)는 실로 깊고 무겁거니, 특히 그 은혜를 알고 갚아야 하느니라.
(2) 인증부(引證部)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4종의 은혜가 있으니 그것은 매우 갚기 어렵다. 그 4종이란, 첫째는 어머니의 은혜요, 둘째는 아버지의 은혜이며, 셋째는 여래의 은혜요, 넷째는 법사의 은혜이다. 만일 누구나 이 4종의 사람에게 공양하면 그는 무량한 복을 받는다. 즉 현재에서는 사람의 찬탄을 받고 미래에는 보리를 얻느니라.”
또 『대반야경』[제443권]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응정(應正)께서는 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능히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느니라. 왜냐 하면 일체 세간에서 부처님보다 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증일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은혜를 갚을 줄 알면 그는 공경할 만하나니, 그는 작은 은혜를 잊지 않거늘 하물며 큰 은혜이겠느냐? 그는 비록 여기서 백천 유순 밖에 떨어져 있더라도 내 곁에 가까이 있는 것과 같아 나는 항상 그를 찬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중생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르면 그는 큰 은혜도 잊겠거늘 하물며 작은 은혜이겠는가? 그는 나와 가깝지 않고 나는 그와 가깝지 않다. 그는 비록 승가리(僧伽梨)를 입고 내 곁에 있더라도 나와 먼 사람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항상 은혜 갚기를 생각하고 은혜 갚지 않는 것을 본받지 말지니라.”
또 『사리불문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계를 받은 사람은 그 힘을 따라 준비하여 그에게 보시하되 물질의 다소에 구애받지 말지니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모님의 은혜는 커서 갚지 않으면 안 된다 하시고, 또 스승님의 은혜도 헤아릴 수 없다 하시니, 그 중에 누구의 은혜가 제일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재가자(在家者)가 부모님을 효도로 섬기고 그 슬하(膝下)에 있는 것은 낳아 길러 주신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 아니요, 낳아서 길러 주신 은혜가 깊기 때문에 크다고 한 것이다. 만일 스승을 쫓아 배워 지견(知見)을 개발했으면 그것은 그 다음의 큰 은혜니라. 그러나 출가자가 그 부모가 나고 죽는 집을 버리고 법의 문에 들어와 미묘한 법을 받았으면 그것은 법사의 힘이다. 즉 법신을 낳아 길러 주시고 공덕의 재물을 내어 지혜의 생명을 길러 주신 그 은혜는 막대하니라. 다만 그 낳은 차례를 따라 다음이라 했을 뿐이니라.’”
또 『중음경(中陰經)』에서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물으셨다.
“염부제에서 아이가 처음 나서부터 3세까지 어머니 품에 안겨 그 먹는 젖은 얼마나 되는가?’
미륵은 답하였다.
‘어머니 배 안에서 먹은 4분(分)을 제하고 모두 180곡(斛)의 젖을 먹습니다. 동방의 불우체(弗于逮)에서는 아이가 처음 나서부터 3세까지 먹는 젖은 모두 1,800곡이며 서방의 구야니(拘耶尼)에서는 아이가 나면서부터 3세까지 먹는 젖은 880곡이니라. 그러나 북방의 울단월(鬱單越)에서는 아이가 처음 나면 거리에 내다 앉힙니다. 길가는 사람이 손가락을 물리면 아이는 그 손가락을 빨고 7일만에 사람이 됩니다. 그 국토에는 젖이 없고 중음(中陰)의 중생들은 바람을 마십니다.’[옛 사람이 쓰는 소두(小斗)한 말은 지금의 당두(唐斗)한 말이요 이 한 말은 옛날 세 말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 젖은 많은 것 같다.]
또 『난보경(難報經)』에서 말하였다.
“왼쪽 어깨 위에 어머니를 얹고 오른쪽 어깨 위에 아버지를 얹고 천년 동안 등에서 부모가 보시는 대소변을 다 받더라도, 그 부모님의 은혜는 다 갚을 수 없느니라.”
또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양하는 공덕의 과보는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의 공덕과 같으니라.”
또 『불설고래세시경(佛說古來世時經)』에서 아나율 비구는 자기 전생 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옛날 바라내국(波羅柰國)에 살고 있었다. 그 때 곡식이 귀하여 백성들은 모두 굶주리고 있었는데, 나는 풀을 베어 그것을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그 때 화리(和理)라는 연각(緣覺)이 그 나라에 와서 살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풀을 베러 성을 나갔다. 그 연각은 가사를 입고 분위(分衛:걸식)하러 성 안으로 들어오다가, 중도에서 풀을 지고 돌아가는 나를 만났고, 또 성 안에서도 만났는데 그는 빈 발우로 성을 나오고 있었다. 그는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일찍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저 사람은 성을 나온다. 지금 풀을 지고 돌아오는 것을 보니 아직 아침을 먹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저 사람을 따라 그 집에 가서 이 주림을 면하리라.’
나는 집에 돌아와 풀을 내려놓고 돌아보았다.
그는 내 뒤를 마치 형체의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나는 그 때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아침에 성을 나갈 때 이 연각은 분위(걸식)하러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빈 발우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아침밥을 얻어먹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내 음식을 나누어 저에게 보시하리라.’
‘나는 곧 밥을 들고 꿇어앉아 그에게 주었다. 도인(연각)은 그것을 민망스레 받으며 말하였다.
‘지금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모두 굶주리는데, 그 음식을 2분으로 나누어 1분은 내게 주고 1분은 자기가 먹으니, 당신은 법에 상응합니다.’
나[施主]는 답하였다.
‘성인(聖人)께서는 받아 주십시오. 속인들은 집에 있으면서 아침을 천천히 먹기 때문에 시간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도인께서는 받아 주시고 우리 집안을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 연각은 내가 주는 밥을 받아 다 먹었다.
나는 이 공덕으로 일곱 번 천상에 나서 천왕이 되었고 일곱 번 인간에 나서 사람의 왕이 되어 장자ㆍ인민ㆍ신하ㆍ관리들의 섬김을 받고, 4배(輩)와 도속(道俗)들의 공양을 받았다. 그 뒤로는 누가 내게 와서 무엇을 구하면 나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또 『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佛昇忉利天爲母說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 환희원(歡喜園)의 파리질다라나무[波利質多羅樹] 밑에서 3개월 동안 안거(安居)하실 때에 대중에게 둘러 싸여 털구멍에서 천 줄기의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그 때 마야부인은 자기 젖이 저절로 흘러나온다는 말을 듣고 말했다.
‘만일 저이가 참으로 내가 낳은 실달다이거든 이 젖이 그의 입으로 바로 들어가라.’
이 말을 마치자, 두 젖가슴에서 흰 연꽃 같은 젖이 나와 여래의 입으로 바로 들어갔다. 마야부인은 이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마치 연꽃이 피어나듯 일심으로 온몸을 땅에 던지고 오로지 바로 생각할 때 모든 번뇌가 다 사라졌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여 어머니(마야)는 수다원의 과(果)를 얻었다. 부처님이 천상에서
갖가지 이익을 베푼 것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 때 부처님께서 여름 3개월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는 염부제로 내려오시려고 5색 광명을 놓아 두루 빛나게 하였다. 제석천은 부처님께서 내려가실 것을 알고 곧 귀신들을 시켜 세 길의 보배 계단을 만들었다. 중앙은 염부단금이요 왼쪽은 유리요 오른쪽은 마노로서, 난간의 조각은 극히 장엄하고 화려했다. 부처님께서 마야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생사의 법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염부제로 돌아가지만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 것입니다.’
마야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게송을 읊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어머님과 작별하고 보배 계단으로 내려오시니, 범천왕은 일산을 받들고 4천왕은 좌우로 모시고 섰으며, 4부 대중은 노래로 찬탄하고 하늘 사람은 음악을 탄주하면서 허공을 메워 꽃을 뿌리고 향을 피웠다. 부처님께서는 앞뒤의 호위를 받으며 염부제로 돌아오셨다.
그 때 파사닉왕과 일체 대중은 다 보배 계단에 모여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을 맞이하고,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로 돌아와 사자좌에 앉으셨다. 부처님을 에워싼 4부 대중은 모두 크게 기뻐하였으니, 이런 것은 다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부왕(父王)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전륜왕(轉輪王)의 행하는 법대로 단월(어머니)에게 문안하겠습니다.’
그 때 지지(持地)보살은 수릉엄정(首楞嚴定)에 들어 금강제(金剛際)로부터 금강꽃을 만들어 꽃과 꽃이 서로 이어졌고 4룡(龍)은 각각 7보대(寶臺)를 만들었으며, 지지보살은 부처님을 위해 세 길의 보배 계단을 만들었다. 그 길로 부처님께서는 천궁(天宮)에 들어가 백호상(白毫相)의 광명으로 7보의 일산을 만들어 어머니 위에 씌워 드리고, 7보의 평상을 만들어 어머니를 앉게 하셨다.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나는 대리가(大理家)로서 수억의 재산을 쌓아 항상 3보를 받들고 중생들을 사랑으로 대하였다.
시장에 나가 자라를 파는 장수를 보고 그 자라를 가엾이 여겨 주인에게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주인은 보살이 두루 사랑하는 덕이 있음을 알고 백만 금이라 했다. 보살은 좋다 하고 그것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물에 넣어 주었다. 자라는 재미있게 놀다가 어디로 가버렸다. 보살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중생이 그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기는 지금의 너와 같다’ 하고 큰 서원을 세웠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찬탄하셨다.
그 뒤 어느 날 밤에 자라는 와서 보살의 문을 깨물었다. 보살은 그 소리를 이상히 여겨 나갔다가 자라를 보았다. 자라는 보살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의 그 중한 은혜를 입고 몸이 안전하게 되었으나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다만 물에 사는 물건이라 물의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장차 큰 홍수가 닥쳐 큰 해를 입을 것이니 빨리 배를 만드십시오. 그 때 맞이하러 오겠습니다.’
보살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하고 이튿날 아침에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왕은 보살의 좋은 이름을 듣고 있었으므로 이 말을 신용하여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피신했다. 때가 되어 자라가 왔고 또 홍수가 닥쳤다.
자라는 말했다.
‘빨리 내려와 배를 타십시오. 내가 지시하는 데로 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쯤 가다가 뱀 한 마리가 배를 향해 왔다. 보살은 자라에게 말했다.
‘저것을 건져 주자.’
자라는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또 여우 한 마리가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저것을 건져 주자.’
자라는 또 말했다.
‘좋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제 뺨을 치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나를 살려 주소서.’
보살은 말했다.
‘저 사람을 건지자.’
자라는 말했다.
‘부디 건져 주지 마십시오. 무릇 사람이란 거짓이 많아 끝까지 받을 것이 못 됩니다. 은혜를 등지고 세력을 쫓아가면서 악한 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말했다.
‘짐승을 건져 주고 사람을 천히 여기면 어찌 인(仁)이라 하겠는가?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그리고 사람을 건져 주었다.
자라는 말했다.
‘아, 애석하다.’
그리고 풍토(豊土)로 가려고 보살에게 하직을 고하면서 말했다.
‘이제 은혜를 다 갚았으니 나는 물러가겠습니다.’
보살은 말했다.
‘나는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을 얻었으니, 반드시 나를 구제해 주실 것이다.’
‘좋습니다’ 하고, 자라가 떠나자 뱀과 여우도 각각 떠났다.
여우는 굴 속에서 살다가 옛 사람이 묻어 둔 자마금 1백 근(斤)을 얻어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저 사람의 은혜를 갚으리라.’
그리고 보살에게 가서 말했다.
‘나는 그 은혜를 입어 미미한 목숨을 건졌습니다. 나는 굴을 집으로 삼아 편하게 지냅니다. 이 굴은 무덤도 아니요 집도 아니며 이것은 겁탈한 것도 아니요 훔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내 정성으로 이루어진 것이온데 현자(賢者)님께 바칩니다.’
보살은 생각했다.
‘내가 이것을 받지 않고 헛되이 버리면 저 빈민들에게는 아무 이익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보시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곧 그것을 받았다. 구제된 사람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나와 나누어 가집시다.’
보살은 곧 10근을 그에게 주자 그는 말했다.
‘너는 무덤을 파고 그것을 빼앗았으니 그 죄를 어쩌겠는가? 그 반을 주지 않으면 나는 유사(有司)에게 고발할 것이다.’
보살은 말하였다.
‘나는 이것을 저 빈곤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는데, 너만이 가지려 하는 것은 너무 치우치지 않은가?’
그는 드디어 유사에게 고발했다. 보살은 구속되었으나 호소할 곳이 없어 오직 3존(尊)께 귀명(歸命)하고 스스로 꾸짖고 후회하며 말했다.
‘부처님, 저 중생들로 하여금 빨리 8난(難)을 벗어나 지금 저처럼 원한을 받지 말게 하소서’
뱀과 여우는 한 자리에 모여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하고 의논하다가, 뱀이 ‘내가 가서 구제하리라’ 하고는 좋은 약을 입에 물고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보살은 얼굴이 수척해지고 수심이 가득했다. 뱀은 이것을 보고 보살에게 말했다.
‘이 약을 가지고 계십시오. 나는 저 태자를 깨물어 그 독이 매우 심해 아무도 고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당신은 이 약으로 자청(自請)하십시오. 이 약을 붙이면 태자 병은 곧 나을 것입니다.’
보살은 잠자코 약을 받아 뱀이 시키는 대로했다. 과연 태자는 거의 죽게 되어 왕은 영을 내렸다.
‘누구든지 태자를 구제하면 그를 상국(相國)으로 봉(封)하여 나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게 하리라.’
보살은 자청해 가서 약을 붙이자 태자의 병은 곧 나았다. 왕은 기뻐하면서 그 까닭을 물어, 보살은 그 본말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왕은 창연(悵然)히 스스로를 꾸짖으면서 말했다.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그리고 곧 그 사람을 죽이고 온 나라에 큰 사면령(赦免令)을 내리고는 보살을 상국으로 봉했다. 그리고 보살의 손을 잡고 궁중으로 들어가 같이 앉아 불법을 이야기하는 등 나라는 태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이가(理家:보살)는 바로 나요, 그 국왕은 저 미륵이며 그 자라는 아난이요, 그 여우는 추로자(秋露子:사리불)이며 그 뱀은 목건련이요, 그 떠내려가던 사람은 저 조달이다. 보살은 자비와 지혜의 도무극(度無極)으로 이렇게 보시하였느니라.’”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건타라국(揵馱羅)국의 가이색가(迦膩色迦王)의 어떤 황문(黃門)은 항상 국내의 일만 감독하다가 잠깐 성 밖으로 나갔다. 그는 5백 마리의 소를 몰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어떤 사람을 보고 물었다.
‘이 소들은 다 무엇 하려는 소인가?’
그는 답했다.
‘이 소들은 장차 그 종자를 없애려는 소입니다.’
이에 그 황문은 생각했다.
‘나는 전생의 업으로 불남(不男)의 몸을 받았다. 지금 돈을 주고라도 이 소들을 구제해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값을 주고 그 소들을 다 그 화를 면하게 했다. 이 선업의 힘으로 이 황문은 곧 남자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우 기뻐하면서 곧 성내로 들어와 궁문에 서서, 사람을 시켜 왕에게 뵈옵기를 청했다. 왕은 이상히 여겨 곧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물었다. 황문은 이상의 사실을 다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그에게 보배와 재물을 후하게 주고 다시 높은 벼슬에 승진시켜 바깥일을 맡아보게 했다.”
게송을 읊는다.
거룩하여라 능인(能人)이시여,
자비의 구제를 첫째로 삼아
그런 상대 있으면 곧 달려가
가엾이 돌보아 주시네.
여우는 금을 주고 뱀은 약을 주고
엄인(閹人)은 몸이 완전해졌나니
은혜를 알고 공덕 갚음은
저 신(神)이 감응한 그것이네.
감응연(感應緣)[대략 네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송(宋)의 오자영(吳子英)
송(宋)의 어떤 사람이 염불하여 액난을 면함
송(宋) 때의 발해(勃海)의 진배(陳裵)
당(唐)의 병주(幷州) 석벽사(石壁寺)의 스님
송(宋)의 오자영(吳子英)
송(宋)나라 오자영(吳子英)은 서향(舒鄕) 사람이다. 그는 물에 들어가 붉은 잉어를 잡아 그 빛깔을 좋아해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죽이지 않고, 못에 놓아두고는 자주 먹이를 주어 길렀다. 1년이 지나 1장(丈)이 넘게 자라자 뿔이 나고 날개가 생겼다. 자영이 두려워해 절을 하면서 사과하자 고기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맞이하러 왔습니다. 내 등에 업히십시오. 나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 봅시다.”
새해가 되어 집에 돌아와 그는 아내와 아들을 두었다. 그 뒤에 또 고기가 맞이하러 왔다. 이리하여 그 아들이 70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오씨 문중 사람은 모두 신어(神魚)와 자영이 만든 것이다.[이 한 가지 증험은 『열선전(列仙傳)』에 나온다.]
송(宋)의 어떤 사람이 염불하여 액난을 면함
송(宋) 때의 어떤 나라는 나찰과 가까이 있어 나찰들이 자주 국경을 넘어와 함부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왕은 나찰과 약속하여 말하였다.
“지금부터는 내 나라에서 하루에 한 사람씩 보내 줄 것이니 다시는 와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
그 때 부처님을 믿는 어떤 집에 외아들이 있었는데 나이 겨우 10세에 보낼 차례가 되었다. 그 부모는 슬피 울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일가 친척들까지 이 아이를 구원하려 했다. 그리하여 아이를 보냈으나 부처님의 위신(威神)의 힘으로 큰 귀신(나찰)은 감히 아이 가까이 가지 못했다. 이튿날 부모는 아이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모두 기뻐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 뒤로는 나찰의 변이 아주 없어졌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은 다 경하하고 사모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유명기(幽冥記)』에 나온다.]
송(宋) 때의 발해(勃海)의 진배(陳裵)
송(宋)나라 주천군(酒泉郡)의 태수(太守)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죽었다. 그 뒤에 발해(勃海)의 진배(陳裵)가 이 군(郡)에 부임하기로 되었으나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여 점쟁이에게 가서 길흉(吉凶)을 점쳐보았다. 점쟁이는 말했다.
“제후(諸侯)를 멀리하고 백구(伯裘)를 놓아주어야 액난이 풀리고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배는 이 말을 해득하지 못했는데 점쟁이는 말했다.
“그저 부임해 있어 보면 자연히 알아질 것입니다.”
진배가 부임하자 그 시의(侍醫)로 왕후평(王候平)과 유사(有司)로 후동사(候董俟) 등이 있었다. 진배는
마음속으로 깨달았다.
“이들이 이른바 제후(諸侯)로구나.”
이로 인해 그들을 멀리했다. 그리고 ‘백구를 놓아준다’는 뜻을 생각해 보았으나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밤중이 지나 어떤 물건이 내려와 진배의 이불을 눌렀다. 진배는 잠을 깨어 일어나 그것을 억지로 이불로 쌌다. 그것은 펄떡펄떡 뛰면서 끽끽하며 소리를 질렀다. 바깥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그것을 죽이려 했다. 도깨비(그것)는 말했다.
“나는 실로 해칠 생각이 없고 다만 부군(府君)을 한번 시험해 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나를 한 번 용서해 놓아주시면 부군의 깊은 은혜를 갚겠습니다.”
진배는 물었다.
“너는 어떤 물건이기에 감히 태수를 침범하느냐?”
도깨비는 대답했다.
“나는 본래 1백 년 묵은 여우로서 지금 도깨비로 변해 다시 천신(天神)으로 화하려 하옵는데, 그만 부군의 위노(威怒)에 저촉되어 이런 고난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부디 한 번 용서하여 놓아주십시오. 내 이름은 백구(伯裘)입니다. 앞으로 부군께 급한 일이 있을 때 내 이름만 부르시면 일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진배는 매우 기뻐하면서 말했다.
“점쟁이의 ‘백구를 놓아 주라’는 점이 참으로 맞는구나.”
그리고 곧 놓아주었다. 이불이 조금 열리면서 갑자기 번갯불 같은 붉은 빛이 문으로 나갔다.
이튿날 밤에 누가 진배의 문을 두드렸다. 진배는 물었다.
“그 누구냐?”
그것은 대답했다.
“백구입니다.”
진배는 물었다.
“왜 그러느냐?”
백구는 대답했다.
“아뢸 일이 있습니다.”
진배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백구는 대답하였다.
“북쪽 국경에서 도적들이 종들을 내어놓았습니다.”
진배는 말했다.
“내어놓았으면 조짐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먼저 진배에게 와서 알렸으므로, 그 뒤로는 그 경계에 털끝 만한 나쁜 일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 성군(聖君)이 세상에 나왔다고 했다.
그 뒤 한 달이 지나 주부 이음(主簿 李音)이 진배의 시비(侍婢)와 몰래 통했다가, 또 백구가 와서 진배에게 알릴까 두려워해, 저 후(候)들과 꾀하여 진배를 죽이려 했다. 그래서 진배 곁에 아무도 없게 하고는 후들을 시켜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진배를 쳐죽이려 했다. 진배는 황급히 백구를 불렀다.
“빨리 나와서 나를 살려 달라.”
곧 어떤 물건이 한 필의 붉은 비단을 펴는 듯이 내려오면서 무슨 소리를 질렀다. 후 등은 모두 땅에 엎드려 정신을 잃었다. 곧 그들을 차례로 묶고 고문하여 그들은 모두
사실을 자백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백구는 와서 진배에게 하직을 고했다.
“이제 나는 천신이 되어 천상으로 갑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오가면서 부군을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사라졌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이기(搜神異記)』에 나온다.]
당(唐)의 병주(幷州) 석벽사(石壁寺)의 스님
당(唐)나라 병주(幷州) 석벽사(石壁寺)의 어떤 늙은 스님은 참선과 독경으로 업을 삼아 부지런히 수행했다.
정관(貞觀) 말년에 비둘기 한 마리가 그 방 격자 창 위에 집을 짓고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길렀다. 이 법사는 항상 밥을 남겨 늘 그 새끼들을 먹였다. 그 새끼들은 차츰 자라났으나 아직 날개가 완전히 되지 않아, 날기를 배우다가 모두 땅에 떨어져 죽었다. 스님은 그 시체를 거두어 모두 묻어 주었다. 10여 일을 지나 스님의 꿈에 두 아이가 나타나 스님에게 말했다.
“저희들은 전생에 조그만 죄를 짓고 비둘기의 몸을 받았다가 요즈음 법사님이 『법화경』과 『금강반야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그 묘한 법을 들었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이 절 근처 10리 밖의 아무 마을의 아무 성명을 가진 집의 아들로 태에 들어 열 달 뒤에는 날 것입니다.”
스님은 그 기한이 되어 그 집으로 가 보았다. 과연 그 집 부인이 동시에 쌍둥이 두 아이를 낳았다. 스님은 보름날의 재(齋)를 베풀고 “비둘기 아이야” 하고 불렀다. 두 아이는 동시에 “예” 하고 대답했다. 이렇게 한번 대답한 뒤 1년 만에 비로소 말을 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기(冥報拾遺記)』에 나온다.]
은혜를 갚은 여러 가지 일은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52.배은편(背恩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듣건대, 4생(生)은 물에 빠져 반드시 배의 힘을 빌어야 하고, 6취(趣)는 혼미하여 본래부터 길잡이의 손을 의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3보(寶)는 큰 자비로 백성들을 굽어 응할 때, 간절한 마음으로 이끌어 고난을 벗어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하거늘 하물며 그 중한 은혜를 배반하고서 어찌 길이 고해(苦海)에 빠지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부인은 남편에게 독약을 먹였으나 남편은 도리어 왕의
후한 상을 받았고(이 사실은 다음에 나온다) 나무꾼은 곰을 해쳤다가 당장 팔이 떨어지는 과보를 받았으니(이 사실도 다음에 나온다) 이것은 실로 중한 은혜를 배반했기 때문에 그런 과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은혜를 알면 큰 자비의 뿌리를 내고 선업의 첫 문을 열며, 사람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그 명성이 멀리 퍼지며, 죽어서 천상에 나고 마침내 불도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자는 축생보다 못하니라.”
(2) 인증부(引證部)
『백유경(百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부인은 그 성질이 절도가 없이 음탕하여 욕정이 성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늘 그 남편을 미워하여 항상 어떤 방책을 생각해 그 남편을 죽이려 했다. 갖가지 계책을 부려 보았으나 그 틈을 얻지 못했다. 마침 남편이 이웃 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어, 그녀는 가만히 독을 넣은 환약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면서 거짓으로 말했다.
‘지금 당신은 멀리 떠나시는데 무엇이 모자라지나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나는 지금 5백 개의 환희환(歡喜丸)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드리니 당신은 노자 겸 쓰십시오. 우리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로 가시면 배고프고 피곤할 때가 있을 것이니, 그 때 이것을 잡수십시오.’
남편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길을 떠나 다른 나라 경계에까지 갔으나 아직 그것은 먹지 않았다. 밤이 되어 숲 속에서 자다가 사나운 짐승이 두려워 나무 위로 피해 올라가면서, 환희환은 잊어버리고 나무 밑에 그대로 두었다.
그 날 밤에 5백의 도적들이 그 나라 왕의 5백 마리 말과 그 보물들을 훔쳐 가지고 그 나무 밑에 와서 쉬었다. 도망쳐 왔기 때문에 모두 주리고 목이 마르던 차에 그들은 나무 밑에서 이 환희환을 보고 모두 한 개씩 먹었다. 그 약의 독기가 심해 그들은 한꺼번에 다 죽었다. 이튿날 새벽에 나무 위에 있던 이 사람은 그 도적들이 모두 나무 밑에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일부러 그 시체를 칼로 찌르고 활을 쏘아 놓고는, 그 말들과 보물을 거두어 가지고 그 나라로 달려갔다.
그 때 그 나라의
왕은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도적들의 뒤를 쫓아오다가 길에서 이 사람을 만났다. 왕은 이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며 그 말은 어디서 얻었느냐?’
이 사람은 대답했다.
‘나는 아무 나라 사람인데 길에서 도적 떼를 만나 칼과 활로 서로 싸우다가, 지금 5백 명 도적들은 다 한곳에서 죽어 저 나무 밑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말과 보물들을 얻어 가지고 당신 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만일 내 말을 믿을 수 없거든 저 도적들이 죽어 있는 곳을 가 보십시오.’
왕은 곧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어 가 보았는데 과연 이 말과 같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희한한 일이라 찬탄하고 곧 나라로 돌아가 이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고 한 마을을 봉(封)해 주었다. 왕의 옛 신하들은 모두 이 사람을 질투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저 나그네(이 사람)는 아직 심복으로 믿을 수 없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그처럼 사랑하고 대우하시며, 심지어 벼슬까지 주어 저희 옛 신하들보다 더 대우하십니까?’
나그네는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누가 용맹이 있어 나와 시합하려느냐? 우리 저 넓은 들판에 나가 기능을 한번 겨뤄 보자.’
옛 신하들은 모두 깜짝 놀라 감히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그 뒤 그 나라의 광야에 어떤 사나운 사자가 길을 끊고 사람을 죽이며 왕의 길까지 끊었다. 그 때 옛 신하들은 의논했다.
‘저 나그네는 용맹이 있어 아무도 대적할 자 없다고 자부한다. 지금 만일 저 나그네가 이 사자를 죽여 나라의 근심을 없앤다면 얼마나 기특한 일이겠느냐?’
이렇게 의논하고 왕에게 아뢰자,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이 사람에게 무기를 주어 사자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왕의 명령을 받고는 마음을 굳게 먹고 사자 있는 곳으로 갔다. 사자는 이 사람을 보자 기운을 떨쳐 큰 소리를 치며 이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이 사람은 놀라고 두려워 곧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자는 입을 벌리고 머리를 치켜들고 이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이 사람은 황급한 김에 가졌던 칼을 그만 사자 입 속에 떨어뜨려 사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기뻐 뛰면서 왕에게 가서 알렸다. 왕은 더욱 사랑하여 대우하고 온 나라 사람들도 다 공경하고 감복하며 찬탄하였다.”
또 『제경요집(諸經要集)』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나무를 베러 숲 속에 갔다가 헛갈려 길을 잃었다. 그 때 마침 비는 쏟아지고 날은 저물었는데 배고프고 추우며 독충과 사나운 짐승은 그를 해치려 했다. 그는 어떤 굴 속에 들어갔다가 큰곰을 보고 놀라 도로 나오려 하자 곰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겁내지 마십시오. 여기는 따뜻합니다. 여기서 쉬십시오.’
그리하여 7일 동안 계속 비가 내리는데 곰은 항상 맛있는 과일과 좋은 물을 그에게 공급했다. 7일만에 비가 멎자 곰은 그를 데리고 나와 길을 일러 주고는 말하였다.
‘나는 죄를 받은 몸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합니다. 혹 누가 묻더라도 나를 여기서 보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는 그러리라 하고 돌아오다가 사냥꾼을 만났다.
‘당신은 어디서 오십니까? 혹 짐승을 못 보았습니까?’
그는 말했다.
‘나는 큰곰을 보기는 했지만 그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사냥꾼은 말했다.
‘당신은 사람이요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만났는데 어찌 곰을 그렇게 아낍니까? 지금 한 번 길을 잃으면 나는 또 언제 올지 모릅니다. 당신이 그 곰 있는 곳을 가르쳐 주면 나는 당신에게 곰 고기를 많이 드리겠습니다.’
그는 마음이 변해 그 곰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사냥꾼은 곧 가서 곰을 잡아 그에게 고기를 많이 주었다. 그가 손을 내어 그 고기를 받으려 하자 그의 두 팔이 함께 떨어졌다.
사냥꾼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이 곰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보듯 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은혜를 배반했으니 이것은 그 죄의 과보입니다.’
그래서 사냥꾼도 겁이 나서 감히 그 고기를 먹지 못하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여러 스님들에게 보시했다. 그 중의 상좌(上座) 스님은 바로 아라한으로서 여러 하좌(下座)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그 곰은 보살이오. 미래 세에 나와 부처가 될 것이오. 그 고기를 먹지 마시오.’
그리하여 곧 탑을 세우고 공양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렸다.
‘은혜를 배반한 사람은 아무도 이 나라에 살지 못하게 하라.’[『신바사론』에서는 ‘그 때 상좌는 그 고기가 보살의 고기임을 알고 향나무로 그것을 태운 뒤에 그 뼈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부처님을 섬기듯 거기 예배하고 공양했다’고 한다.]
또 『구색녹경(九色鹿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보살은 9색(色)의 사슴이 되어 그 털빛은 9색이요, 그 뿔은 눈처럼 희었다. 그는 항상 항하(恒河) 가에서 물을 마시고 풀을 먹으면서 한 마리 까마귀와 친한 벗이 되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물결을 따라 떠내려오면서, 잠겼다 떴다 하다가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우러러 ‘산신ㆍ목신ㆍ하늘ㆍ용ㆍ귀신 등은 왜 나를 가엾이 여기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사슴은 이 말을 듣고 물로 내려와 그를 건지려고 말하였다.
‘당신은 내 등에 올라앉아 내 뿔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그를 업어 언덕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땅에 내려와 사슴을 세 번 돌고, 사슴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너는 상전이 되어라. 나는 종이 되리라. 그리고 나를 시켜 물을 긷고 풀을 뜯어 오라고 하라.’
그러나 사슴은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선 각기 떠나도록 하십시다. 다만 당신이 내 은혜를 갚으려거든 내 있는 고을을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내 가죽과 뿔을 탐해 반드시 와서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 때 국왕의 부인이 꿈에 9색 사슴을 보고, 곧 거짓으로 병이라 일컫고 일어나지 않았다. 왕이 그 까닭을 묻자 그녀는 말했다.
‘나는 어젯밤 꿈에 이상한 사슴을 보았습니다. 그 털빛은 9색이요 뿔은 눈처럼 희었습니다. 나는 그 사슴가죽으로 앉는 요를 만들고 그 뿔로 불자(拂子)의 자루를 만들고 싶습니다. 대왕은 나를 위해 그것을 구해 주십시오. 만일 얻지 못하면 나는 이대로 죽고 말 것입니다.’
왕은 곧 온 나라에 영을 내려 말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그것을 얻어 오면 나는 그와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리라. 그리고 금그릇에 은곡식을 가득 담고 은그릇에는 금곡식을 가득 담아 상으로 주리라.’
그(물에 빠졌던 사람)는 이 말을 듣고 부귀를 탐하여 생각했다.
‘사슴은 짐승이다. 그 죽고 사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
그리고 왕에게 가서 그 사슴의 있는 곳을 안다 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말하였다.
‘만일 네가 그 가죽과 뿔을 얻어 오면 이 나라의 반을 주리라.’
그 때 그의 얼굴에 문둥병의 부스럼이 생겼다. 그는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저 사슴은 비록 짐승이라 하더라도 큰 위신(威神)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많은 군사를 출동시켜야 저것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곧 많은 군사를 데리고 바로 항하가로 갔다. 그 때 까마귀는 나무 끝에 앉아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 사슴에게 말했다.
‘벗님, 빨리 일어나시오. 왕의 군사들이 옵니다.’
사슴은 짐짓 깊이 잠든 체하고 일어나지 않자 까마귀는 내려와 사슴의 귀를 쪼았다. 그때서야 사슴은 일어나 4방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달아날 곳이 없어 사슴은 바로 왕의 수레 곁으로 갔다. 왕의 곁의 신하가 사슴을 쏘려 하자 왕은 말했다.
‘쏘지 말라. 이 사슴은 보통 사슴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 천신(天神)일 것이다.’
사슴은 말했다.
‘대왕이시여, 우선 나를 쏘지 마십시오. 나는 전에 대왕 나라의 어떤 사람을 살린 일이 있습니다.’
사슴은 다시 꿇어앉아 왕에게 물었다.
‘누가 대왕께 내가 여기 있다고 일러 드렸습니까?’
왕은 수레 곁에 있는 문둥병 얼굴을 가진 사람을 가리켰다. 사슴은 머리를 들고 이 사람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눈에 가득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람이 전에 물에 빠졌을 때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물 속에 뛰어 들어 이 사람을 업고 나와, 나의 일을 말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르면 물 속에서 건져낸 뜬 나무 조각보다 못한 것입니다.’
왕은 얼굴에 부끄러워하는 빛을 띠면서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그런 은혜를 받고도 왜 도리어 그것을 죽이려 했는가?’
그리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려 말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이 사슴을 쫓아내는 자가 있으면 그 5족(族)을 벨 것이다.’
그 뒤에는 수천 마리의 사슴이 모두 이 사슴을 의지하여 물을 마시고 풀을 먹으면서 농사를 해치지 않고 바람과 비는 때를 맞추었으며 5곡(穀)은 풍성하고 사람들은 병이 없어 그 세상은 태평하였다.
그 때의 그 9색 사슴은 바로 이 나요, 그 까마귀는 지금의 아난이며 그 때의 그 국왕은 지금의 내 부왕(父王)인 열두단왕이요 그 때의 그 부인은 지금의 저 손타리이며 그 때의 그 물에 빠진 사람은 지금의 저 조달이니라. 나는 비록 선심으로 조달을 대하지만 저는 늘 나를 해치려 하느니라.”
또 『작왕경(雀王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보살(부처)은 참새왕이 되어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했다. 어떤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먹다가, 몸에 붙어 있는 부스럼 때문에 짐승의 뼈가 그 이빨을 찔러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거의 죽게 되었다. 참새왕은 날마다 그 호랑이 입 안에 들어가 뼈를 쪼았다. 그 때문에 참새왕의 입 안에도 부스럼이 생겨 몸이 매우 수척했다. 그러나 이빨에 걸린 뼈가 나와 호랑이는 살게 되었으므로 참새왕은 나무 위로 날아 올라가 불경을 외웠다.
‘살생은 흉한 짓으로서 그보다 더 큰 악이 없느니라.’
호랑이는 이 참새왕의 교훈을 듣고 버럭 화를 내어 말하였다.
‘너는 내 입을 벗어나더니 감히 말이 많구나.’
참새왕은 그 호랑이는 교화할 수 없을 것임을 알고 곧 날아가 버렸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참새왕은 바로 나요, 그 호랑이는 저 조달이니라.’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제바달다는 악한 생각을 품고 부처님을 해치려 했다. 이에 5백 명의 선재(善財) 바라문을 고용하여, 그들은 활을 들고 부처님께로 가서 활을 당겨 부처님을 쏘았다. 그러나 그 쏜 화살은 다 온갖 꽃으로 변했다. 5백 바라문은 이 큰 신변(神變)을 보고 크게 두려워해 모두 활을 버리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참회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그들은 다 수다원이 되었다. 그들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출가하여 불법 배우기를 허락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들아.’
그들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졌다. 부처님께서 다시 설법하여 그들은 다 아라한의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신력(神力)은 참으로 희유하옵니다. 제바달다는 항상 부처님을 해치려 하옵는데 부처님께서 언제나 큰 자비로 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현재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러했느니라. 즉 옛날 바라내국에 불식은(不識恩:은혜를 모름)이라는 큰 상주(商主)가 있었다. 그는 상인 5백 명을 데리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캤다. 보물을 많이 싣고 돌아오다가 소용돌이치는 곳에 이르러 나찰을 만나, 그들이 배를 붙잡고 있어 배는 더 가지 못했다.
상인들은 크게 두려워 부르짖었다.
‘천지의 여러 신령님과 일월의 여러 신령님, 누가 큰 자비로 우리를 구제해 주시렵니까?’
그 등 넓이가 1리쯤 되는 큰 거북 한 마리가 이들을 가엾이 여겨, 배 있는 곳으로 다가와 이들을 업고 바다를 다 건너 왔다. 그 때 거북은 잠깐 졸고 있었다. 불식은(상주)은 큰돌로 이 거북 머리를 때려서 죽이려 했다. 여러 상인들은 말했다.
‘우리는 이 거북의 은혜를 입고 바다를 건너 이렇게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고 은혜를 모르는 짓입니다.’
그러나 불식은은 말했다.
‘우리는 배고픔이 더 급한데 언제 은혜를 생각하겠느냐?’
그리고 곧 거북을 죽여 그 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큰 코끼리 떼가 와서 그들을 다 밟아 죽였다.
그 때의 그 큰 거북은 바로 나요 그 때의 그 불식은은 제바달다이며 그 5백 상인은 저 출가하여 도를 얻은 5백 바라문이다. 나는 옛날에 저의 액난을 면하게 해주었고 지금도 그 생사의 근심을 없애 주었느니라.’”
또 『전단수경(栴檀樹經)』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어느 때 유야리국(維耶梨國)의 5백 사람은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캔 뒤에 배는 그대로 두고 걸어 돌아오면서 깊은 산을 지나다가 해가 저물어 거기서 잤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출발할 때 499인은 다 먼저 떠나고 한 사람은 잠이 깊이 들어 그만 동행을 잃고 말았다. 마침 큰 눈이 내려 갈 길을 잃고 산중에서 혼자 낙심이 되어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었다. 그 때 큰 전단향나무의 신(神)이 이 궁인(窮人)에게 말하였다.
‘여기 있으시오. 의식은 다 대어 줄 것이니 내년 봄에 떠나도 좋소.’
이 궁인은 거기 살다가 이듬해 3월이 되어 수신에게 말했다.
‘은혜를 입고 신명을 보전했으나 조그만 보답도 없었습니다. 생각하니 양친이 지금 본국에 계십니다. 실은 돌아가고 싶은데 보내 주십시오.’
수신은 말했다.
‘좋소, 마음대로 하시오.’
그리고 한 덩이의 금을 주면서 말했다.
‘여기서 얼마 안 가면 본 고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궁인은 떠남에 이르러 다시 수신에게 물었다.
‘이 나무는 향기롭고 조촐하여 세상에 희귀한 것입니다. 지금 돌아감에 있어서 그 이름이나마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수신은 말했다.
‘물을 필요 없소.’
궁인은 다시 말했다.
‘이 나무 그늘에 의지해 3개월이나 지냈으니 본국에 돌아가면 이 나무의 은혜를 널리 선전해야 할 것입니다.’
수신은 그제야 말했다.
‘이 나무 이름은 전단으로서 뿌리와 줄기ㆍ가지ㆍ잎 모두가 사람의 온갖 병을 다스리며, 그 향기는 멀리 풍기는 등 세상에 희귀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이런 말 마십시오.’
궁인이 집에 돌아오자 친족들이 모두 기뻐했다. 얼마 안 되어 그 국왕이 두통병이 생겨 천지 산천의 신령에게 기도했으나 고통은 낫지 않았고, 유명한 의사들은 진찰하고는 오직 전단향나무로 다스려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 했다. 왕은 민간에 사람을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렸다.
‘전단향을 얻어 오는 자는 제후(諸侯)로 봉(封)하고 왕녀를 아내로 주리라.’
궁인은 이 상록(賞祿)이 후하다는 말을 듣고 곧 왕에게 가서 ‘나는 그 전단향나무의 있는 곳을 압니다.’
왕은 곧 장신(匠臣)을 시켜 궁인을 데리고 가서 향나무를 베라 했다. 장신은 나무 곁으로 가서, 그 나무가 크고 곧으며 가지는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런 희귀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차마 그것을 벨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베지 않으면 왕명을 어기는 것이므로 주저하고 배회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때 수신은 공중에서 말했다.
‘곧 베어라. 그러나 다만 뿌리만은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벤 뒤에 그 뿌리에 사람의 피를 바르고 간과 창자를 그 위에 덮어두면 나무는 저절로 생장하여 옛날과 다름없을 것이다.’
장신은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그것을 베게 하고, 궁인은 그 곁에 있었는데, 나무가 땅에 쓰러질 때 그 가지 끝이 궁인을 치어 죽였다. 장신은 곁의 사람들과 의논했다.
‘아까 수신이,
사람의 피와 간과 창자로 나무 뿌리에 제사 지내라 했다. 그러나 누구의 것으로 제사할 지 몰랐는데 마침 이 사람이 죽었으니 이것으로 충당하자.’
그리고 곧 그 시체를 쪼개고 간과 피를 내어 수신이 시킨 대로 하자, 나무는 곧 생장하여 본래와 같았다. 그들은 벤 나무를 수레에 싣고 나라로 돌아왔다. 의사는 그것을 왕에게 올려 왕의 병이 나았으므로 온 나라가 모두 기뻐했다. 왕은 곧 국내에 영을 내리고 병이 있는 자는 다 나오라 하여, 이 향을 주어 그들의 병이 모두 나았으므로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천하가 태평했느니라.
그 때 아난이 물러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부처님, 그 궁인은 왜 은혜를 갚을 줄 모름으로써 그 수신과의 중한 약속을 어겼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유위부처님 때에 아버지와 형제 모두 3부자가 있었다. 그 아버지는 항상 재계를 봉행하여 게으른 적이 없었고, 큰아들은 항상 뜰 위의 공중에 향을 피워 시방 부처님께 공양했다. 그러나 아우는 어리석어 3존(尊)을 모르고 제 옷으로 그 향불을 덮어 버렸다.
형이 아우에게 말했다.
‘이것은 매우 중한 일인데 너는 왜 함부로 침범하느냐?’
그러자 아우는 욕설하면서 말했다.
‘나는 맹세코 형의 두 발을 끊어 버리리라.’
형도 다시 말했다.
‘저것을 때려죽이리라.’
아버지는 말했다.
‘너희 둘의 싸움은 나를 머리 아프게 한다.’
그 때 큰아들은 말했다.
‘내 몸을 부수어 약을 만들어 아버지 두통을 낫게 해드리리라.’
이렇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그는 세상마다 그 죄를 받았다. 아우는 나쁜 마음을 내어 형의 발을 끊으리라 했다가, 뒤에 과연 사람을 데리고 가서 나무 몸뚱이를 베었고, 형은 아우를 쳐죽이리라 했다가 지금 수신(樹神)이 되어 나무의 몸뚱이에 붙어 아우를 쳐죽인 것이다. 그 때의 그 국왕은 머리를 앓은 그 아버지로서 재를 받들고 정진했기 때문에 존귀하게 되었으나 그 때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 했으므로 뒤에 과연 머리가 아프게 되는 등 이렇게 각각 재앙을 받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죄와 복의 보응(報應)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니라.’”
게송을 읊는다.
크나큰 자비로 세상 구제하시니
그 공덕은 천지보다 더 무겁고
그 은혜는 부모보다 더 깊으며
그 의리는 임금보다 더 뛰어나다.
충성과 효도에 목숨을 다하여도
그래도 그 은혜는 갚기 어렵다.
만일에 이 이치를 어길 때에는
서로서로 그 넋을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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