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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4490 법원주림(法苑珠林) 47권

by Kay/케이 2024.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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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47

 

법원주림 제4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46. 징과편(懲過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몸은 근심이 많은 것이니 엄하게 경계해야 하며 근식(根識)은 혼침(昏沈)하는 것이니 항상 채찍질해야 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잠자는 인연으로 일생을 헛되이 지나 아무 얻음이 없게 하지 말라”한 것이다. 몸이 있으면 근심의 근본이 되고 몸이 없으면 근심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예(禮)는 반드시 공경해야 하고 거만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 만일 함부로 거만을 부리면 게으름과 교만을 더욱 더하고 함부로 남을 공격하면 그 근심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입이란 칼이나 도끼의 문이요 재앙 갚음의 처음이 된다. 마음에 독한 생각을 품고 입으로 독한 말을 뱉으며 몸으로 독한 업을 행하여, 이 3업을 일으키면 곧 4취(趣)를 부르느니라.
그러므로 『서전(書傳)』에서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고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을 수 있다”하였고, 또 “행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요 추기의 발동은 영욕(榮辱)의 근본이다” 한 것이다. 뜻은 업의 근본이 되고 몸의 업과 입의 업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니, 그러므로 먼저 흉한 마음을 제거하여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흐름은 마음으로 지어짐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만일 잠깐이라도 반연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입으로 나쁜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말은 뜻으로 말미암아 나타나 무슨 악이라도 다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마음을 버리고 생각이 없으면 몸과 입의 업이 곧 없어진다” 한 것이다.

(2) 인증부(人證部)
『유마경(維摩經)』에서 “얼마 안 되는 간절한 말로 곧
계율에 들어갈 수 있다” 하였고, 또 『서전(書傳)』에서는 “남의 충고를 듣되 물이 흐르는 듯 빨리 하라” 하였으니, 이런 말은 기록할 만한 것이다. 성질이 이지러진 사람은 믿지 않고 사나운 말(馬)은 길들이기 어렵다. 가슴을 어루만지며 많이 부끄러워하여 항상 스스로 경계하라. 남의 말을 듣기를 바라면 마음의 굽음을 펼 수 있다.
지금 그 말을 삼가 그 몸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제어하고 다음은 그 뜻을 절복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경전에 “한 곳(마음)을 제어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비유하면 금산(金山)의 굴 속에 여우와 토끼가 감히 머무르지 못하고 맑은 못에는 바다의 개구리와 거북이 자려 하지 않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그 마음을 조촐히 하고 그 뜻을 깨끗이 하면, 3도(塗)의 과보가 없어지고 4덕(德)이 항상 원만해지는 것이다. 뜻을 성(城)처럼 지키고 입을 병마개처럼 막으면, 이른바 금하(金河)의 부탁이 이 사람에게 있게 되고 옥문(玉門)의 넓은 교화는 이로써 믿을 수 있는 것이다. 3업(業)을 채찍질하면 4환(患)을 제거할 수 있나니, 그 4환이란 이른바 생ㆍ노ㆍ병ㆍ사이니라. 그러므로 『수태경(受胎經)』에서 말하였다.
“중생들 태를 받을 때는 갖가지 고난을 다 겪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득한 것이 그 모양은 떠있는 티끌 같다가 열 달이 다 차려 할 때는 어머니 태에서 비로소 고통을 안다. 업(業)의 바람이 재촉하면 그 머리를 산문(産門)으로 향하며, 땅에 떨어질 때의 그 아픈 감촉은 마치 칼산에 있는 것 같고, 바람이 불어닥칠 때의 그 차가운 감촉은 마치 찬 얼음 같나니, 이 때를 당해 태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다.”
또 『열반경(涅槃經)』에는 말하였다.
“비유하면 등불 심지가 오직 기름만 의지하고 있다가 기름이 다하면 그 심지의 힘도 오래지 않아 정지하는 것처럼, 사람도 이와 같아서 오직 왕성한 혈기만 의지하고 있다가 왕성한 혈기가 다하면 노쇠의 심지가 어찌 오래 머물 수 있겠는가?”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부처님은 늙음의 고통을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젊어서는 의기(意氣)가 왕성했지만
닥쳐오는 늙음의 핍박을 받아
쇠약한 몸은 지극히 수척하고
기력이 다해 지팡이 짚고 다닌다.’

또 부처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숨은 끊어지고 정신 떠나고
온몸은 쓸쓸히 차디차진다.
사람이나 물건은 다 한결같이
나서 죽지 않는 것 하나도 없다.’”

또 『열반경』에서 말씀하셨다.
“대개 죽음이란 험난한 곳에서 양식도 없으며 가야 할 곳은 아주 먼데 동행도 없고, 항상 가도 그 끝이 없으며 깊숙하고 깜깜하며 어두워도 등불이 없고, 들어갈 문은 없으나 그 있는 곳은 있으며 비록 아픈 곳은 없으나 고칠 수는 없으며, 가도 막는 이는 없지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 말하였다.
“혼자 나고 혼자 죽으며 혼자 오고 혼자 간다. 괴롭거나 즐겁거나 그것은 제가 당하고 남이 대신하지 못한다. 깊숙하고 깜깜하며 그 이별은 영원이다. 가는 길이 같지 않으매 만날 기약이 없어, 서로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대개 날 때는 친족들이 모두 모여 자애(慈愛)의 정을 다하지만 한번 죽을 때는 아침에 죽으면 저녁에 염(斂)을 하고 두려워하면서 이별하는 상황으로 울며 보내지만, 가는 사람은 그것을 모른다. 보내고 돌아오면 텅 빈 방은 쓸쓸하고 적막하여 다시 볼 수 없거늘 살고 죽음과 있고 없음의 변화는 잠깐 사이니라.”
그러므로 『출요경(出曜經)』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죽음의 고통을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목숨이란 과일이 익기를 기다리면서도
항상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이미 생긴 것과 모두에게 고통 있거니
그 누군들 죽지 않을 수 있으랴.

마치 사형(死刑)을 받은 죄수가
저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그저 죽음의 길로 향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나니.

빨리 흐르는 저 강물이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아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또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범지(梵志) 4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5통(通)을 얻어 7일 뒤에는 모두 죽을 줄을 제각기 다 알았다. 그 형제들은 서로 의논했다.
‘우리 형제는 신통이 자재하여 능히 신력(神力)으로
이 천지를 뒤엎을 수 있고 극히 큰 손으로 해와 달을 만질 수 있으며 산을 옮기고 물을 멎게 하는 등 못할 일이 없다. 그런데 어찌 이 죽음만은 피할 수 없겠는가?’
첫째 맏형이 말하였다.
‘나는 큰 마당에 들어가 아래위가 평등하고 바른 한복판에 있으리라. 무상(無常:죽음)의 살귀(殺鬼)인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그 둘째는 말하였다.
‘나는 수미산 복판을 가르고 들어가 다시 합쳐 흔적이 없게 하리라. 무상의 살귀인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그 셋째는 말하였다.
‘나는 허공에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자취를 없애리라. 무상의 살귀인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그 넷째는 말하였다.
‘나는 큰 시장 복판에 가서 숨어 있으리라. 사람들이 들끓어 서로 몰라보는데 무상의 살귀가 그 중에서 누군가를 잡아가지, 하필 나를 잡아가겠는가?’
이 형제들은 서로 의논한 뒤에 왕에게 가서 하직을 고하면서 아뢰었다.
‘저희들의 목숨은 촉박해졌습니다. 모두 도망가 살면서 많은 복을 구하고자 하나이다.’
왕은 말하였다.
‘부디 그 공덕을 성취하여라.’
그들은 왕을 하직하고 각기 제 갈 곳으로 갔다. 그러나 7일의 기한이 되자 각기 그곳에서 다 목숨을 마쳤다. 부처님의 천안(天眼)으로 그들 형제가 죽음을 피해 각기 세상을 살아가려 했으나 이미 다 죽은 것을 보시고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요 바다속도 아니며
저 산중의 돌 속도 아니다.
죽음을 벗어나 받지 않을
그런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사위국(舍衛國) 동쪽의 녹모원(鹿母園)에서 큰 비구들 5백 인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는 7일과 15일이었다. 세존께서는 노지(露地)에 자리를 깔고 앉으셨고 대중은 앞뒤로 호위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건추(揵推)를 쳐라. 오늘 7월 15일은 수세(受歲)하는 날이다.’

아난은 합장하고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력(魔力)을 가진 원수를 항복 받고
모든 맺음[結:번뇌]을 모조리 없애고
지금 노지(露地)에서 이 건추를 치나니
비구들은 이 소리 듣고 모두 모여라.

법을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
생사의 바다를 건너려거든
이 미묘한 소리를 듣고
모두 와서 여기 모여라.

아난은 건추를 친 뒤에 세존께 나아가 아뢰었다.
‘지금 때가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분부가 계시옵니까?’
세존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차례를 따라 앉되 풀자리[草座]에 앉아라.’
그리하여 비구들은 각기 풀자리에 앉았다. 세존은 잠자코 비구들을 둘러보시고 곧 분부하셨다.
‘나는 지금 수세(受歲)하려 한다. 나는 대중에 대해 아무 허물이 없는가? 또 몸과 입과 뜻으로 무슨 죄를 범하지 않았는가?’
여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잠자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재삼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존자 사리불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꿇어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이 비구들은 여래의 몸과 입과 뜻에 허물이 없으심을 관찰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구제되지 못한 이를 구제하시고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시키시며 열반에 들지 못한 이를 열반에 들게 하시고 구호할 이 없는 자를 구호해 주시며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 주시고 병자에게는 큰 의왕(醫王)이 되어 주시어, 3계에서 홀로 존귀해 아무도 따를 자가 없사오니, 이런 인연으로 여래께는 대중에 대한 허물이 없으시고 또한 몸과 입과 뜻의 허물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리불은 또 세존께 아뢰었다.
‘저도 지금 여래와 저 비구들에게 허물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겠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리불에게는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비행(非行)은 전연 없다. 그대의 지금 그 지혜에는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 그대가 지금 하는 말은 다 법에 맞아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아직 없었다.
그러자 사리불은 다시 아뢰었다.
‘이 5백 비구들도 다 이 수세를 당해 여래께 허물이 없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5백 비구들의 몸과 입과 뜻도 꾸짖지 말라. 사리불은 이 대중 가운데서 극히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지만, 지금 이 대중 가운데 제일 아래 자리에 있는 사람도 다 수다원을 얻고 또 반드시 그 이상으로 퇴전(退轉)하지 않는 법까지 얻을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이 대중을 꾸짖지 않는 것이다.’”
또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석종(釋種)의 남자는 모두 9만 9천 명이었다. 가비라국(迦毘羅國) 바소도(婆蘇都) 성내에 사는 인민들은 모두 그 성에서 나와 여래를 뵈러 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수두단왕(輸頭檀王)이 여러 대중과 함께 장엄을 갖추고 오는 것을 보고 혼자 생각하셨다.
‘만일 내가 저들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 나가 맞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저런 사람이 어찌 계행(戒行)의 과보를 받은 사람이겠는가, 어떻게 그 아버지를 보고도 일어나 맞이하지 않는가 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아버지와 대중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면 저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또 만일 내가 지금 이 위의를 지닌 채 여기 그대로 있으면 저이들은 내게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여래께서는 이런 세 가지 생각을 갖고 또 이런 세 가지 인연을 관찰하고 또 이런 세 가지 이치를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으로 날아올라 갖가지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저이들로 하여금 다 부처를 믿고 불도에 들어오게 하셨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불자들은 법을 따라 차례로 앉아야 한다. 즉 계를 먼저 받은 사람은 앞에 앉고 계를 뒤에 받은 사람은 뒤에 앉으며, 늙거나 젊거나 비구ㆍ비구니ㆍ귀인ㆍ국왕ㆍ왕자 내지 황문(黃門)ㆍ노예를 불문하고 다 계를 먼저 받은 사람은 앞에 앉고 계를 뒤에 받은 사람은 그 차례대로 앉아야 한다. 그리하여 저 외도의 어리석은 사람처럼 늙었거나 젊었거나 앞도 없고 뒤도 없게 하지 말라. 앉음에 차례가 없는 것은 저 병노(兵奴)의 법이니라. 우리 불법에서는 먼저 사람은 먼저 앉고 뒤의 사람은 뒤에 앉는다. 그런데 만일 보살로서 차례로 앉지 않으면 그는 경구죄(輕垢罪)를 범함이 되느니라.
불자가 항상 교화를 행할 때 대비심(大悲心)으로 단월이나 귀인의 집에 들어가더라도, 그 속인들에게는 서서 설법하지 말고 속인들 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법사는 땅에 서서 4부 대중인 속인들에게 설법하지 말라. 설법할 때는 법사의 높은 자리에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설법을 듣는 4부 대중은 밑에 앉아 그 법좌에 부모에게처럼 효순하고, 스승의 가르침인 듯 공경하기를 저 불을 섬기는 바라문들처럼 하라. 설법하는 사람도 법답게 하지 않으면 경구죄를 범하게 되느니라.”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제자가 스승에게 법을 물을 때에는 여섯 곳을 피해야 한다. 첫째 너무 그 앞에 바로 서지 말고, 둘째 뒤에 서지도 말며, 셋째 너무 멀리 서지도 말고,
넷째 너무 가까이 서지도 말며, 다섯째 높은 데 서지도 말고, 여섯째 바람받이에 서지도 말지니라.
‘【문】 4종(種)의 위의로서 앉고 서고 다니고 눕고 하는 일이 있는데, 왜 다만 한쪽에만 선다고 합니까?’
‘【답】 법을 묻기 때문에 다닐 수 없고 공경하기 때문에 앉을 수 없고 공양하기 때문에 누울 수 없느니라.’
또 『삼천위의(三千威儀)』에서 말하였다.
“평상에 오르려 할 때는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 천천히 다리를 걸쳐 오르고, 둘째 기어오르지 말며, 셋째 평상의 소리를 내지 말고, 넷째 야단스럽게 평상을 털어 소리를 내지 말며, 다섯째 씻은 발이 마르지 않았으면 잘 닦고 올라가야 하느니라.
평상에 있을 때 다섯 가지 일 있다. 첫째 평상을 크게 하지 말고, 둘째 남을 꾸짖거나 큰 소리로 한숨 쉬지 말며, 셋째 세상일을 생각하여 탄식하지 말고, 넷째 개처럼 눕지 말며, 다섯째 일어나 앉으려 할 때 마음이 어지러워 안정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스스로 꾸짖는 것이다.
또 누울 때에도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 머리를 부처님께로 향하고, 둘째 누워서 부처님을 보지 말며, 셋째 두 발을 나란히 맞추지 말고, 넷째 벽을 향해 눕거나 엎드려 눕지 말며, 다섯째 두 무릎을 세우지 말고 두 손을 굽히고 두 발을 거두고 두 무릎을 포개야 하느니라.
또 누웠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할 때에도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 일어나 평상에서 내려올 때에 평상 소리를 내지 말고, 둘째 신을 때는 먼저 잘 털며, 셋째 바로 서서 법의를 입고, 넷째 문을 열려 할 때는 먼저 손가락을 세 번 튀기고 문소리를 내지 말며, 다섯째 방안에 불상이 있을 때는 그것을 등지고 나오지 말되, 돌아서서 문을 나오며 나와서는 서서 남과 이야기하지 말라.”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공작(孔雀)보살은 여러 하늘 대중에게 조복(調伏)하는 법을 말하였다.
“집에 있는 사람이거나 집을 나온 사람이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이런 장엄으로 조복에 상응해야 한다. 즉 출가한 사람은 처음에
가사로 스스로를 조복하되 일곱 가지 일을 행해야 한다. 첫째 그 나라의 법대로 분소의(糞掃衣)를 받는다. 그러나 재가인(在家人)이 버린 옷이나 혹은 무덤 사이에 있는 죽은 사람의 옷으로서 시체에 눌린 것이면 가져서는 안 되며 혹은 무덤 사이에서 얻은 다 해진 옷이면 써도 좋나니 이것을 가사를 조복하는 법이라 한다.
둘째 촌락에 들어갔을 때는 땅만 보고 다니되 1심(尋)쯤 앞을 보며 부처님의 영상(影像)을 생각하면서 일심으로 생각을 바르게 하여 모든 근(根)을 어지럽히지 말고, 일체 필요한 도구를 바라보지 말며 여자와 이야기하지 말라. 어린애를 안지 말고 발을 자주 움직이지 말며, 또 팔과 그 앉은 평상도 자주 움직이지 말며, 손으로 머리를 만지지 말고 옷을 자주 여미지 말며 가사를 털지 말고, 손을 자주 주무르지 말며 또 손가락을 튀기지도 말라. 이것이 두 번째 조복하는 법이니라.
셋째 시주 집에 들어가 밥을 먹을 때는 팔과 손을 다 씻으라. 밥을 받을 때는 손을 너무 내밀지 말고 1주(肘)쯤 내밀며, 밥을 입에 가득히 넣지도 말고 너무 적게 넣지도 말라. 받은 음식이 단식(摶食)이면 숟갈에 너무 크게 뜨거나 너무 적게 뜨지도 말며 입을 크게 벌리지 말고 씹는 소리를 내지 말라. 받은 음식은 2분쯤 먹고는 족함을 알며 남의 발우를 보고 탐심을 내지 말라. 받은 음식에 다른 마음을 품지 말고 제 발우만 보고 좌우를 돌아보지 말라. 이것이 세 번째 조복하는 법이니라. 넷째 음식을 먹을 때나 마을에서나 혹은 도시에서 먼저 본 음식에 생각을 내지 말고 자주 그것을 말하지 말며 또한 그것을 바라지도 말라. 받은 방석은 법답게 받아 간직하되 아주 좋은 것을 구하지 말라. 이것이 네 번째 조복하는 법이니라.

다섯째 모든 하는 일에서 너무 치우치지 말고 집착하지 말되 신경을 아끼지 말라. 모든 쓰임새의 도구를 많이 쌓아 두지 말고, 변방의 위험한 곳에 다니지 말며, 복장을 이상하게 하지 말라. 한 집만을 치우치게 좋아해 그 집을 오가지 말라. 이것이 다섯 번째 조복하는 법이니라.
여섯째 초목을 꺾지 말고 생땅[生地]을 파지 말며 여러 빛깔의 신과 여러 빛깔의 옷을 신지 말고 입지 말라. 남의 계를 깨뜨리게 하지 말고 깨뜨리게 하고는 비방하지 말며 그것을 말하지 말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말라. 왕의 음식을 맛있다 하여 집착하지 말고 싸움을 좋아하는 비구를 친하지 말라. 이것이 여섯 번째 조복하는 법이니라.
일곱째 뜻이 같고 법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친해 이익을 얻으라. 혹은 산의 굴 속이나 나무 밑이나 한 데에서는 항상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닦아 행하라. 이것이 일곱 번째 조복하는 법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라도 이렇게 잘 수행하면 그는 일체의 결박을 끊고 해탈을 얻을 것이다.”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시던 날 밤에 그 아들 라후라는 비로소 어머니 태에 들어갔고,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하시던 날 밤에 라후라는 세상에 나왔다. 온 궁 안의 궁녀들은 모두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괴상하다, 큰 악인 야수타라여,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처신하여 자신을 삼가지 않고 우리 온 궁중을 모두 더럽혔구나. 실달(悉達)보살은 출가하신 지 이미 오래인데 이제 갑자기 아기를 낳으니 이런 치욕이 어디 있는가?’
그 때 전광(電光)이라는 석녀(釋女)가 있었으니, 그녀는 야수타라(耶輸陀羅)의 이모의 딸이다. 그녀는 자기 가슴과 어깨를 두드리면서 야수타라를 꾸짖었다. ‘너는 존친(尊親)에 대해 왜 이처럼 욕되게 하느냐? 태자님이 출가하신 지 이미 6년이 지났는데, 이제 이 아이를 낳았으니, 이것은 때가 맞지 않다. 너는 누구에게서 이 아이를 얻어 우리 종족을 욕되게 하느냐?’

그 때 정반왕(淨飯王)은 누각 위에 있다가 대지가 6종으로 진동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본 왕은 보살[태자]이 죽었다 생각하고 근심의 화살이 심장을 찔렀다. 또 궁중에서 크게 우는 소리를 듣고는 왕은 더욱 놀라면서, 태자가 죽었다 생각하고 곧 여자를 보내어 ‘이 무슨 곡성이냐’하고 물었다.
여자는 대답했다.
‘태자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옵고, 야수타라님이 지금 아기를 낳아 온 궁중이 창피해서 우는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기가 차서 소리를 내어 울면서 크게 부르짖었다. ‘괴상하고 창피한 일이다. 태자가 출가한 지 이미 6년이 지났는데, 어째서 지금 와서 아이를 낳는단 말이냐?’
그리하여 국법을 따라 북을 쳐서 대중을 모았다. 9만 9천의 석종이 다 모여 곧 야수타라를 불렀다. 야수타라는 깨끗한 흰옷을 입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여러 석종들 앞에 서 있었다. 대중은 분노하여 꾸짖었다.
‘이 더러운 여자야, 너는 무슨 면목으로 우리 앞에 섰느냐? 바른대로 말해라. 그것은 누구의 자식이냐?’
그러나 야수타라는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말했다.
‘저 출가한 석종 실달님으로부터 이 아이를 얻었습니다.’
‘내 아들 실달은 본래 집에 있을 때 5욕(欲)이라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그 애욕으로 아이를 낳았겠느냐? 그것은 거짓이요 바른 말이 아니다.’
왕은 크게 화를 내어 여러 석종들에게 물었다.
‘어떤 방법으로 이들을 죽여야 할까?’
어떤 석종이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큰 불구덩이를 만들고 거기다가 저 모자(母子)를 넣어 없애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러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찬성했다. 이리하여 큰 구덩이를 파고는 그 구덩이에 가타라(佉陀羅)나무를 쌓고 불을 붙이고 야수타라를 데리고 갔다. 야수타라는 그 불구덩이 가에 그 불을 보자 매우 두려워했다.
마치 들사슴이 숲 속에 혼자 있어 4방을 돌아보나 아무도 구해 줄 이가 없는 것과 같았다. 야수타라는 말했다.
‘나는 아무 죄도 없으면서 이런 화를 당한다.’
그리고 여러 석종들을 둘러보았으나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탄식하면서 보살을 생각하며 말했다.
‘당신은 자비로써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기므로 하늘ㆍ용ㆍ귀신들도 다 당신을 공경합니다. 지금 우리 모자는 아무 죄도 없으면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데, 왜 당신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당신은 우리 모자를 오늘의 이 위기에서 구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을 향해 일심으로 경례했다. 그리고 여러 석종들에게 예배하고 합장하고는 불을 향해 진심으로 말했다.
‘이 아이는 진실로 다른 데서 얻은 것이 아니다. 이 아이를 참으로 다른 데서 얻지 않았고, 또 이 아이가 내 태 안에 있는 것이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거든, 이 불은 곧 꺼져서 우리 모자를 태우지 말아지리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곧 불 속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불구덩이는 물이 가득한 못으로 변하고 그 자신은 연꽃 위에 있었다.
그녀는 전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고 화열(和悅)한 안색으로 여러 석종을 향해 합장하고는 말했다.
‘만일 내가 거짓말을 했다면 나는 곧 불에 타 죽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진실로 보살의 아들이기 때문에, 또 내가 참말을 했기 때문에 이 불의 화를 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석종들도 말했다.
‘그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거나 불구덩이가 맑은 못물로 변한 것을 보면, 이 증험으로 그의 허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야수타라를 데리고 궁중으로 돌아가 더욱 공경하면서 유모를 구해 그 아이를 돌보게 했는데, 아이도 태어난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조부 백정왕(白淨王:정반왕)은 그 손자를 애지중지하여 라후라를 보지 않고는 음식도 먹지 않고 보살이 생각나면 라후라를 안고 그 시름을 풀었다. 간략히 말하면 정반왕은 부처님 생각이 간절해, 사람을 보내 부처님을 청하고,
부처님은 부왕(父王)을 가엾이 여겨 본국으로 돌아가셨다. 궁전에 도착하자 1,250비구들이 다 부처님처럼 변해 빛나는 모습이 부처님과 다름이 없었다. 야수타라는 라후라에게 말했다.
‘저들 중에서 어느 분이 너의 아버지이냐? 그 곁에 가거라.’
그 때 라후라는 부처님께 가서 예배한 뒤에 부처님의 오른발 곁에 섰다. 부처님께서는 손으로 라후라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내 권속들이나
또 내가 낳은 아이에 대해
치우쳐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다만 손으로 정수리를 만졌을 뿐
나는 모든 결사(結使:번뇌)를 다 없애고
사랑과 미움이 아주 다 없어졌다.

그대들은 부디 의심을 품지 말라.
내 아들에 대해 의심을 내지 말라.
이 애도 장차 집을 떠나서
다시 나의 법의 아들이 되리라.

그리고 그 공덕 간단히 말한다면
집을 떠나 진실한 도를 배우고
장차는 아라한의 과(果)를 이루리.

게송을 읊는다.

업의 바람이 언제나 불어닥쳐
괴로움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결
나는 항상 그 위에 떠돌아다니면서
열반의 성(城)에서 자꾸만 멀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비의 배가 와서
나를 태워 애욕의 바다를 벗어났다.
이로써 알겠네. 사모하던 그 벗이
허물을 징계하고 범정(凡情)을 고쳐준 것임을.

죄와 허물은 번뇌 끊는 힘을 입었고
신주(神珠)는 어두움을 열어 주었다.
석문(釋門)은 광명의 고운 그 풍경
세상일은 괴로움의 무거운 결박이다.

바라노니 5개(蓋)의 어두움을 없애야
비로소 6진(塵)의 가벼움 깨치나니,
스스로 보배 수레 타지 않으면
무엇으로 번뇌의 불꽃을 끄리.
감응연(感應緣)[대략 세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송(宋)의 사문 석승포(釋僧苞)
제(齊)의 사문 석승원(釋僧遠)
수(隋)의 사문 석홍헌(釋洪獻)

송(宋)의 사문 석승포(釋僧苞)
송(宋)나라 경사(京師)에 있는 기원사(祇洹寺)의 석승포(釋僧苞)는 본래 경조(京兆) 사람이다. 젊어서 관(關)에 있으면서 집공(什公)에게 수학했다. 영초(永初) 때에 북으로 유행하다가 황산 정사(黃山精舍)에 들어가 다시 정(精)ㆍ정(定) 등 두 스승에게 배우고, 이내 거기서 37일 동안 보현(普賢)보살에게 재를 올리고 참회했다. 17일째 되던 날에는 흰 학들이 날아와 보현(普賢)의 자리 앞에 모였다가 향 피우기를 마치자 다 날아갔다. 21일이 저물려고 할 때에는 또 누런 옷을 입은 네 사람이 와서 탑을 몇 번 돌고는 이내 사라졌다. 승포는 젊어서부터 뜻한 바 있었고 또 이런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으므로 게으르지 않고 더욱 힘써, 하루에 만여 자의 경을 외우고 항상 부처님께 수백 번 예배했다.
그 뒤에 동으로 경사(京師)로 내려가 기원사에서 개강(開講)하니, 승려는 구름처럼 모이고 관리와 백성들은 그 자리로 달려갔다. 승포가 처음 기원사에 갔을 때 이상한 사람이 있다 하여 나귀를 타고 가 보았다. 그는 옷은 누추하고 얼굴은 때에 더러워져 있었다. 집이 좁기 때문에 승포는 나귀를 밖에 매어 두고 들어갔다. 고좌(高座)는 글씨를 쓰고 있다가 막 끝을 냈다. 승포가 처음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그 법사는 먼저 물었다.
“객승(客僧)의 이름은 무엇이오?”
승포가 말했다.
“내 이름은 포(苞:싼다는 뜻)라 합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다 쌌는데 또 무엇을 싸려는가?”
승포는 답했다.
“고좌(高座)도 쌀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몇 차례의 문답이 있었으나, 원래 선달(先達)의 생각하는 힘으로는 따르지 못했으므로 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공손히 물러났다.
그 때 왕 홍범태(弘范泰)는 승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재주와 생각에 감탄하여, 그와 사귀려고 곧 기원사로 갔으며 승포는 여러 경전의 강의를 열어 법의 교화가 서로 이어갔다. 또 진군(陳郡)의 사령운(謝靈運)도 승포의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가, 승포의 신기(神氣)를 보게 되자 더욱 탄복했다.
어떤 사람이 승포에게 물었다.
“사령운의 인물이 어떻던가?”

승포는 말했다.
“영운은 재주는 넉넉하나 식견(識見)이 부족하고, 또한 그 몸의 수행에도 힘쓰지 않는다.”
승포는 일찍이 길을 가다가 여섯 명의 도적이 관리에게 붙들린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해 설법하고 관세음보살 생각하기를 권하였다. 도적들은 그 위기를 당했으므로 일심으로 간절히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관리가 술을 가지고 와서 함께 마시고 같이 취했다. 도적은 결박에서 풀려났다. 승포는 송(宋)의 원가(元嘉) 때에 죽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제(齊)의 사문 석승원(釋僧遠)
제(齊)나라 양주(梁州) 설하사(薛河寺)의 석승원(釋僧遠)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 성질은 소탈하여 잔잔한 행은 닦지 않고 호탕한 사람들과 더불어 방탕하게 노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제나라 무평(武平) 5년에 그는 꿈을 꾸었다. 어떤 거대한 사람이 이를 갈면서 성을 내어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는 출가한 사람이면서 그런 꼴로 함부로 악을 짓는구나. 왜 거울에 네 얼굴을 비추어보지 않는가?”
승원은 갑자기 깨어나 못내 두려워하여 온몸에 땀이 흘렀다. 새벽이 되어 물동이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그 눈가에 검은 점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때가 묻은 것이라 생각하고 곧 물로 씻었다. 그 때 눈썹이 한꺼번에 다 떨어졌다. 그로 인해 그는 스스로 꾸짖으면서 어찌할 줄 몰랐다. 그는 드디어 그 습관을 고치고 행동과 성질이 달라졌다. 그리하여 누더기 옷에 떨어진 신을 신고 하루 한 끼 먹으면서 항상 재계하고 계율을 받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참회할 때는 두 눈에 눈물을 흘렸다. 한 달을 지낸 뒤에 그는 또 꿈을 꾸었다. 전날의 그 사람이 나타나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허물을 알고 능히 고치니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너의 허물을 용서하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그는 갑자기 놀라 깨어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고 얼굴이 윤기가 나며 눈썹이 차츰 자라났다. 승원은 한 몸으로 두 번의 과보를 받았으니, 3세의 고락이 거짓이 아님을 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뒤로는 정성을 다해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으므로 온 고을이 모두 귀의했다. 그는 고향에서 죽었다.

수(隋)의 사문 석홍헌(釋洪獻)
수(隋)나라 상주(湘州) 대자사(大慈寺)의 석홍헌(釋弘獻)은 젊어서 불문(佛門)에 들어가 일찍부터
계율에 밝았다. 돌아다니면서 법문을 듣기에 너무 시달려 두 눈이 모두 어두워졌다. 인도할 이가 없었으므로 항상 혼자 방 안에 있으면서 예배하기와 경 외우기를 업으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쉬지 않았다.
개황(開皇) 14년에 갑자기 한 신(神)이 나타나, 스스로를 반야단월(般若檀越)이라 하면서 그에게서 계를 받고 몇 마디 대화가 있었다. 같은 방에 있던 증강(曾綱) 선사가 법당에 올라가 공양하는 동안, 반야는 증강의 옷 한 벌을 가지고 와서 홍헌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수고로이 법사(法事)를 베풀어 주셔서 이익이 많았습니다. 미미하나마 이 옷을 바칩니다. 받아 주십시오.’
홍헌은 그것을 받아 궤 안에 넣어 두었다. 증강은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 옷이 없어진 것을 괴상히 여겨 온 절 안을 다 뒤지다가 홍헌의 궤 안에서 발견했다. 홍헌은 그 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했으나, 증강은 끝내 이 말을 믿지 않고 홍헌이 훔쳤다 하여 의심했다. 그 신(神:반야)은 드디어 증강의 방에서 옷과 기물과 책상 등을 끄집어내어 온 뜰 안에 흩어 놓고 또 그의 옷걸이와 부채와 저울과 자 등을 모두 동강동강 분질러 놓았다. 그리고 신은 공중에서 말했다.
“증강은 재를 베풀어 3보께 공양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화를 주고 너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홍헌은 가만히 과보를 얻고 반야와 이야기도 하고 직접 보기도 했다.
그 신(반야)은 홍헌에게 말하였다.
“우리 무리는 매우 많은데 모두 자맥하(紫陌河) 위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 30명만이 따라왔으니, 절에서 음식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 스님들은 서원(西院)에서 그들을 대접했다. 신은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음식을 차리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스님들은 이렇지만 증강은 재를 베풀지 않습니다. 이 뒤에 알게 할 것입니다.”
증강은 이 말을 듣고 어찌할 수 없었다.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곧 사재(私財)를 내어 재를 베풀고 복을 빌었다. 이에 반야(신)는 말했다.
“이제 복을 지었으니 놓아두겠습니다.”
그리고 비단 두 필을 홍헌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한 필은 대중에게 보시하고 한 필은 증강 스님에게 주십시오.”
홍헌은 대중 앞에서 그것을 받아 모두 보는 앞에서 나누어주었다. 증강은 그 뒤로는 허물을 고치고 경 읽기에 더욱 정진했다. 홍헌은 그 절에서 죽었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47.화순편(和順篇)[여기에는 5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화시부(和施部)
화국부(和國部) 화사부(和事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선과 악이 서로 등지고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면 거기서 화(禍)가 생기고 원한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말은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유(剛柔)가 중용을 얻으면 위순(違順)이 그 본성을 얻는 것이다. 비유하면 검(劒)을 만들 때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너무 부드러우면 굽어지는 것과 같다. 검을 부러지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주석을 섞어야 하고, 검을 굽어지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금을 섞어야 한다. 왜냐 하면 금의 성질은 강하고 주석의 성질은 부드럽기 때문이니, 강유가 고른 것을 선(善)이라 하고, 머금은 성질이 화평한 것을 아름다움[嘉]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운(羅雲)은 비밀한 행으로 스스로를 제어하였기 때문에 성인이 아름다운 기림으로써 칭찬하였고 제바(提婆)는 모질고 사나웠기 때문에 대중이 그 허물을 드러냄으로써 비방한 것이다. 속서(俗書)에서 말하였다.
“서문표(西門豹)는 제 성질이 급했기 때문에 무두질한 가죽을 차고 다님으로써 스스로를 느리게 했고 동안우(董安宇)는 제 성질이 느렸기 때문에 시위를 팽팽하게 맨 활을 차고 다님으로서 스스로를 급하게 했다.”
그러므로 음(陰)과 양(陽)은 천지의 화합을 고루고 강(剛)과 유(柔)는 인물(人物)의 성질을 고루는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밀적금강역사경(密跡金剛力士經)』에서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물었다.
“보살의 인화(仁和)에는 몇 가지 법이 있어서, 오거나 가거나 항상 온화하여 거친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인화(仁和)에는 8법이 있습니다. 그 8법이란 첫째 성질이 순직하여 아첨하지 않고, 둘째 성질이 온화하여 항상 사특함이 없으며, 셋째 마음이 참되어 거짓이 없고, 넷째 마음이 견고하여 나약하지 않으며, 다섯째 미혹함이 없이 그 뜻은 항상 인화에 있고, 여섯째 세상을 위하는 부처님께
그 덕행을 받으며, 일곱째 마음이 탁 트여 집착함이 없고, 여덟째 죄와 복을 생각하여 마음에 잡념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그 8법입니다.”
아사세왕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은 몇 가지 법행(法行)으로 이런 끝이 없는 힘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10법이 있습니다. 그 10행이란, 첫째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부지런히 정법(正法)을 받들고, 둘째 교만하지 않고 겸허하여 중생을 공경하며, 셋째 너무 억세어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보면 그를 인욕(忍辱)으로 다스리고, 넷째 굶주리는 사람을 보면 맛난 음식을 주어 충족시키며, 다섯째 두려워하는 중생을 보면 그들을 위안시키고, 여섯째 병을 앓는 중생을 보면 좋은 약으로 고쳐 주며, 일곱째는 쇠약한 자가 남의 천시를 당하면 그를 공경하고 사랑하여 남이 홀대하지 못하게 하고, 여덟째 깨끗한 물로 여래의 탑을 씻고 파괴된 자리를 보수하며, 아홉째 고독하고 빈곤한 사람이 항상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보면 그 극히 중한 재난을 면하게 하고, 열째 구호할 이가 없고 귀의할 곳이 없는 자가 있으면 항상 그를 구제하고 말대로 행하여 실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10법입니다.”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다른 친우와 서로 헐뜯고 원한을 품은 사람을 보고 그들을 잘 화합시키면, 그는 죽어 욕애천(欲愛天)에 나서 마음대로 5욕(欲)을 얻어 스스로 즐기리라. 만일 어떤 중생이 남이 망하고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그를 거기서 벗어나게 하거나, 혹은 위험한 곳에서 남에게 바른 길을 가리켜 주거나 혹은 두려운 곳에서 남을 안온하게 하면, 그는 목숨을 마치고 정행천(正行天)에 나서 천녀들의 공양을 받고 5욕락(欲樂)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에 나면 정견(正見)을 가진 큰 장자(長者)의 집에 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드럽고 깊은 마음으로 일체의 번뇌를 떠나면, 그는
열반과 해탈이 마치 손 안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마음이 백랍(白鑞)과 같아 선업을 수행하고 사람들이 다 믿을 것이요, 거칠고 사나운 사람의 마음은 금강과 같아 원한을 언제고 잊지 않으므로, 그 행이 자제하지 못해 사람들이 다 미워하여 사랑하지 않고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 때 공작(孔雀)보살은 불경의 다음 게송을 인용하였다.

그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은
마치 단련된 금과 같아서
이 사람은 안팎이 모두 좋아
빨리 온갖 고통 다 벗어나리.

마음의 그릇이 잘 단련되면
일체가 다 부드러워지나니
이 사람이 선(善)의 종자 내는 것
마치 저 좋은 복밭[福田]과 같다.

또 『가조아나함경(呵鵰阿那含經)』에서 말하였다.
“아나함(阿那含)에는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8법이 있다. 그 8법이란 첫째 구하지 않음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둘째 믿음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으며, 셋째 스스로 부끄러워함[羞]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넷째 스스로 부끄러워함[慚]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으며, 다섯째 정진함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여섯째 스스로의 관찰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으며, 일곱째 선정 얻었음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여덟째 지혜로움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 까닭은 사람의 번잡함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니라.”

(3) 화시부(和施部)
『불설일체시왕소행단바라밀경(佛說一切施王所行檀波羅蜜經)』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먼 옛날 무수겁 이전에 큰 나라의 왕 살화달(薩和達)[일체시왕(一切施王)]이 있었다. 그는 누가 무엇이나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고 다 보시했다.
그 때 다른 나라에 어떤 바라문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젊어서 그 아버지를 잃고 혼자서 그 어머니와 여동생과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 집은 매우 가난했다.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이 곤궁하여 살아갈 수 없구나. 네 아버지가 계시면 살화달왕에게 구걸해 와서 살아갈 것인데, 너는 왜 저기 가서 돈을 좀 구걸해 오지 못하느냐?’
아들은 말했다.
‘나는 아직 아무 것도 모릅니다. 좀 더 공부한 뒤에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말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다. 너까지 공부하러 떠나면 그 동안에는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이냐?’
아들은 말하였다.
‘내가 떠나기 전에 금 한 냥 을 꾸어 오면 그것으로 1년 지낼 양식은 장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허락하고, 아이는 가서 한 냥을 꾸어 와서 그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집을 떠나 공부하다가 1년 뒤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앞질러 물었다.
‘너는 일체시왕에게 갔다 왔느냐?’
아들은 말했다.
‘아직 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더 배워야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물었다.
‘먼저 빌려온 돈이 다 떨어졌는데,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아이는 대답했다.
‘다시 가서 빌려오겠습니다.’
곧 먼저 대금업자(貸金業者)에게로 가서, 그 주인에게 다시 한 냥쯤 빌려 달라고 했다.
그 주인이 말했다.
‘먼저 빌려간 돈도 갚지 못했는데 또 빌려 달라는 것이냐? 네가 또 빌리려면 너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잡혀야 빌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기한에 갚지 못하면 그들은 다 내 종이 될 것이다.’
아이는 좋다 하고 곧 증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돈을 가지고 와서 그 어머니에게 주고는 다시 집을 떠났다. 1년을 지낸 뒤에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으므로 어머니에게 돌아가 이야기하려고 일체시왕에게로 갔다. 그 도중에, 그 대금업자에게 잡혀 그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결박되었다.
아이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일생 동안 우리를 결박해 두더라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오. 우리를 놓아주면 나는 일체시왕에게 가서 돈을 빌려 와 갚겠습니다.’
주인은 생각하다가 곧 그들을 놓아 돌려보냈다.
그 때 어떤 다른 나라의 왕이 군사를 일으켜 일체시왕의 나라를 치려 했다. 그리하여 대신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 국경에 들어 왔습니다. 대왕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일체시왕은 생각했다.
‘사람 목숨이란 지극히 짧아 다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젊어서부터 보시하기 좋아하여, 인자하고 인욕(忍辱)하면서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므로 저들과 싸우지 않으리라. 왜냐 하면 내 일신을 위해 군사를 동원하여 설혹 이기더라도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방비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저 장엄하게 나가 맞이하여 예배하고 공경하여 받들며 그 명령을 듣되 내 명령보다 더 엄수하여라.’
신하들은 말했다.
‘외국 군사가 국경에 들어오는데 어째서 막지 말라 하십니까?’
그러나 왕은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다가 왕은 말했다.
‘거역하지 말고 내가 아까 말한 대로 하라.’
신하들도 다 아뢰었다.
‘대왕께서 막지 말라 하시니 저희들도 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은 말했다.
‘매우 장하다. 각자 우선 집을 잘 보전하고 함부로 시끄럽게 하지 말라.’
왕은 밤중에 곧 인수(印綬)를 벗어 두고 잠자코 궁중을 떠났다. 저 왕은 이 나라에 들어와 곧 왕위를 차지하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일체시왕을 찾으면 중한 상을 주리라.’
일체시왕은 나라를 떠나 5백여 리를 가다가 멀리서 그 바라문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저 아이는 반드시 내게 무엇을 구하러 오는 길일 것이다’ 하였고 그 아들도 ‘저이가 바로 일체시왕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쳤다.

왕은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 .
아이는 대답했다.
‘나는 지금 일체시왕께 가는 길입니다.’
왕은 또 물었다.
‘일체시왕에게 간다면 무엇을 구하러 가느냐?’
아이는 답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살기가 곤란하여 어머니와 여동생을 빚에 잡혔는데, 일체시왕에게 가서 돈을 구걸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출하여 함께 살아가려고 합니다.’
왕은 말했다.
‘내가 바로 일체시왕이다.’
아이는 놀라며 물었다.
‘종자(從者)는 다 어디 두고 이렇게 혼자 가십니까?’
왕은 말했다.
‘어떤 외국의 왕이 내 자리를 탐하기에 그 때문에 나는 떠난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사람들과 군사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이 말을 듣고 곧 땅에 쓰러져 크게 울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왕은 이 아이를 잡아 일으키고는 말하였다.
‘울지 말라, 네가 구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라.’
아이는 말했다.
‘대왕은 지금 나라를 잃으셨는데, 무엇을 가지고 나를 구제하려 하십니까?’
왕은 말했다.
‘저 왕은 나를 잡아오면 후한 상을 주리라 했다. 네가 지금 내 머리를 베어 가지고 가면 네가 구하는 것을 다 줄 것이다.’
바라문의 아들은 곧 다음 게송을 외웠다.

세상에서 그 부모 죽이는 사람
그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네.
지금 내가 만일 대왕을 해치면
그 죄는 저것과 다름없으리.

나는 지금 차마 대왕께
그런 죄악을 가할 수 없네.
차라리 내 목숨 다할지언정
끝내 그런 역죄(逆罪) 짓지 않으리.

이에 일체시왕은 다시 그 아이에게 말하였다.
‘만일 네가 내 머리를 베고 싶지 않거든, 내 코와 귀를 베어 보내도
상은 받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저 왕의 마음에 맞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아이는 말했다.
‘지금 나로서는 그런 짓도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왕은 다시 말했다.
‘만일 그것도 못하겠다면 나를 묶어 가지고 가도 큰 소득이 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왕의 상을 보고, 이 왕이 다시 왕이 되었을 때 왕의 해침을 당하지 않을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꼭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함께 가다가 본국 가까이 가서 대왕을 묶겠습니다.’
이에 왕과 아이는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 20여 리에 이르러, 왕은 곧 손을 뒤로 돌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너는 나를 묶으라.’
아이는 왕을 묶었다. 이때 온 나라 백성들은 일체시왕이 어떤 바라문의 아들에게 묶여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남녀 노소 없이 모두 크게 울면서 땅을 치며 슬퍼하는 것이 마치 부모를 잃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모두 궁문 앞으로 갔다. 신하들은 저 왕에게 아뢰었다.
‘전에 도망간 일체시왕이란 자가 바라문의 아들에게 묶여 지금 궁문 앞에 와 있습니다.’
저 왕은 말했다.
‘곧 붙들어 오너라.’
일체시왕은 곧 궁문으로 들어갔다. 저 왕과 그 신하와 모든 관리들도 이 일체시왕을 보자 모두 땅을 치며 울었다. 저 왕도 울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왜 모두 우는가?’
신하들은 아뢰었다.
‘저희들은 이 일체시왕이 그 나라를 버려 대왕님께 주고, 또 그 몸을 저 바라문의 아들에게 주고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것을 보고 울 뿐입니다.’
저 왕은 그 신하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곧 땅을 치고 크게 울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곧 그 바라문의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이 왕을 잡았느냐?’
그 아이는 그 동안의 사정을 다 자세히 이야기했다. 저 왕은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다시 땅을 치고 울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말했다.
‘저 왕의 결박을 풀라. 그리고 목욕시키고 새 옷을 입힌 뒤에 그 인수(印綬)를 채워 다시 왕으로 모시도록 하라.’
이에 일체시왕은 다시 왕위에 앉아 그 국법이 옛날과 같았다. 이리하여 저 왕은 곧 꿇어앉아 합장하고 찬탄하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부터
멀리서 대왕의 그 덕을 들었는데
지금에 다시 여기 와 보니
듣던 것보다 더 훌륭함을 알았네.

우뚝하여라. 쌓으신 공덕이여,
그것은 마치 저 금산(金山)과 같고
그 힘의 견고함도 또 이와 같아
아무도 감히 흔들 자 없네.

이제 대왕의 그 행을 볼 때
이 세상에는 필적할 이가 없나니,
내 나라마저 다 돌려 드리노니
모두 아울러 국토로 삼으시라.

나는 이제 내 본 고장에 돌아가
신하의 예(禮)를 엄하게 닦으면서
다시는 감히 교만하지 않고
대왕을 하늘처럼 섬기리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일체시왕은 바로 지금의 나요 저 왕은 사리불이며 그 바라문의 아들은 바로 저 조달(調達)이다. 내가 6바라밀과 상호(相好)와 이 공덕을 이룬 것은 다 조달의 은혜이다. 조달은 곧 나의 선지식이요 또한 내 스승이기도 하다. 조달은 이 뒤 아승지 겁을 지내면 부처가 되어 그 이름을 제화라야(提和羅耶)[천인왕(天人王)]라 하리라.”

(4) 화국부(和國部)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두 국왕이 있었다. 첫째 가시(迦尸)국왕이요, 둘째는 비제혜(比提醯)국왕이다.
비제혜왕은 큰 향상(香象)을 두고 그 향상의 힘으로 가시왕의 군사를 쳐부수었다. 가시왕은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향상을 얻어 저 비제혜왕의 군사를 쳐부술까?’
그 때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나는 어떤 산중에서 흰 향상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가시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사람을 모집했다.
‘누구든지 저 향상을 잡아오는 사람에게 큰상을 주리라.’
응모한 어떤 사람이 말했다.
‘많은 군사를 모아 주시면 내가 가서 그 향상을 잡아오겠습니다.’
그 향상은 생각했다.
‘늙은 장님 부모를 두고 내가 멀리 도망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순히 왕에게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향상을 데리고 왕에게로 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 향상을 위해 좋은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히고 밑바닥에 담요를 깔았다. 그리고 기녀들과 거문고를 타고 비파를 치면서 즐기었다. 그러나 그 향상은 음식을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향상지기가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저 향상이 음식을 전연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왕은 몸소 거기 가서 ‘상고(上古)의 짐승들은 사람의 말을 잘했다’하고, 그 향상에게 물었다.
‘너는 왜 아무 것도 먹지 않느냐?’
향상은 대답했다.
‘내게는 부모가 있습니다. 모두 늙고 장님인데 먹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가 먹지 않는데 내가 어찌 먹겠습니까?’
그리고 이어 말했다.
‘만일 내가 도망가려고만 했다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부모가 늙고 장님이기 때문에 대왕을 따라 온 것뿐입니다. 대왕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가서 부모님을 봉양하다가 부모님이 목숨을 마치면 내 스스로 돌아오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사람 머리의 코끼리가 되었고 이 코끼리는 곧 코끼리 머리의 사람이 되었다.’
전부터 이 가시국 사람들은 부모를 천대하고 봉양할 마음이 없었는데, 이 코끼리 때문에 왕은 곧 온 나라에 영을 내렸다.
‘만일 부모님을 효도로 봉양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큰 죄를 주리라.’
그리고 이 코끼리를 놓아 부모에게로 돌려보내어 부모를 봉양하되,
그 수명의 장단(長短)을 따르게 했다. 부모가 죽은 뒤에 코끼리는 왕에게로 돌아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곧 이 코끼리를 장엄하고 저 나라를 치려 했다.
코끼리는 왕에게 말했다.
‘부디 싸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원래 싸움이란 많은 목숨을 해치는 것입니다.’
왕은 말했다.
‘저들이 나를 속이고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말했다.
‘나를 저 나라로 보내 주십시오. 내가 가서 저 적들로 하여금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만일 네가 가면 혹 돌아오지 못할지 모른다.’
코끼리는 말했다.
‘아무도 나를 돌아오지 못하게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곧 저 나라로 갔다. 비제혜왕은 코끼리가 온다는 말을 듣고 아주 크게 기뻐하여 몸소 나와 맞이했다. 그리고 곧 코끼리를 보고 말했다.
‘여기 이대로 있으라.’
코끼리는 말했다.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난 뒤로 아직 약속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나는 먼저 저 국왕에게 저 나라로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신네 두 국왕이 모든 원한을 풀고 제각기 제 나라에 편안해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곧 다음 게송을 외웠다.

싸움에 이기면 원수가 늘어나고
싸움에 지면 근심 고통 더하나니
이기거나 지거나 다투지 않으면
그 즐거움이 최상이니라.

코끼리는 이 게송을 마치고 곧 가시국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이 두 나라는 서로 화해하고 잘 지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가시국왕은 지금의 저 파사닉왕이요, 그 비제혜왕은 지금의 아사세왕이며, 그 때의 그 흰 코끼리[향상]는 바로 나이다. 나는 그 때 부모님을 효도로 봉양했기 때문에 많은 중생들도 다 그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게 하였으며, 그 때 화해시킨 두 나라는 지금도 잘 지내느니라.”

(5) 화사부(和事部)
『승기율(僧祇律)』에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에 바라내(波羅柰)라는 성(城)이 있고 그 나라 이름은 가시였다. 어떤 바라문이
마사콩[摩沙豆]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 아무리 삶아도 익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시장에 나가 팔려고 했으나 사는 사람이 없었다.
또 그 때 어떤 사람은 집에 있는 나귀를 몰고 시장에 나가 팔려 했으나 팔기 어려웠다. 그 때 콩 주인은 생각했다.
‘나는 이 콩으로 저 나귀를 사자.’
곧 나귀 주인에게 가서 말했다.
‘당신은 그 나귀로 내 콩을 사겠는가?’
나귀 주인도 생각했다.
‘이 나귀로 저 콩을 사리라.’
그리하여 ‘좋소’라고 답했다. 나귀를 사게 된 콩 주인은 기뻐하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나귀를 얻었다.’
그리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이 바라문은 교묘한 그 솜씨로
16년 묵은 마사콩 다 팔았네.
네 섶을 다 때어도 삶아지지 않아
너의 집 어른ㆍ아이의 이빨 부러지리라.

그러자 나귀 주인도 다음 게송을 외웠다.

너 바라문아, 기뻐하지 말아라.
비록 네 개 다리에 좋은 털옷 입었어도
무거운 짐을 지고 걷게 하면 알리라.
송곳으로 찌르고 불로 지져도 끝내 꼼짝 않으리.

콩 주인도 또 다음 게송을 외웠다.

홀로 생겨난 천년 묵은 지팡이
그 머리에 네 치의 바늘이 붙어 있어
쓰지 못할 나귀나마 다스릴 수 있겠거니
항복 받지 못할까, 무엇을 걱정하리.

그 때 나귀는 이 게송을 듣고 화를 내어 다음 게송을 외웠다.

앞의 두 발은 굳건히 세워 두고
뒤의 두 발을 짝지어 날려
너의 앞 이빨을 부러뜨릴 것이니
그제서야 너는 나를 알아보리라.

그러자 콩 주인은 나귀의 이 게송을 듣고 다시 다음 게송을 외웠다.

모기와 등에 등 독한 벌레가 쏠 때
너는 오직 꼬리 흔들어 그걸 방어하나니
나는 너의 그 꼬리를 잘라 버리어
너로 하여금 저 고통을 알게 하리라.

그러자 나귀는 다시 다음 게송으로 답하였다.


조상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런 사나운 법을 행해 왔으며
지금 나도 그대로 익혀왔나니
죽고 또 죽어도 끝내 버리지 않으리라.

그 때 이 콩 주인은 이 나귀가 사나워 더 이야기할 수 없음을 알고, 다시 칭찬하는 뜻으로 다음 게송을 외웠다.

우는 그 소리는 트이고 아름답고
얼굴은 희어 옥이나 눈(雪) 같구나
너를 위해 좋은 아내 소개하리니
저 숲 속에 가서 함께 놀아라.

나귀는 이 부드러운 말을 듣고 곧 다음 게송으로 답하였다.

나는 능히 여덟 섬의 곡식을 지고
하루에 6백 리를 갈 수가 있네.
그것을 바라문께서는 아셔야 하네.
아내라는 말을 듣고 기쁘기 때문이네.”

게송을 읊는다.

그 성질이 인자하고 또 유화(柔和)하면
현인이나 우인이나 모두 따르고
그 성정 탐심 많고 또 거칠면
사람도 짐승도 다 멀리 떠난다.

바깥 어김에 항상 채찍질하고
안의 따름을 언제나 제어하면
만대(萬代)에 그 이름 드날리고
천년 수명으로 오래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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