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49권
법원주림 제49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49. 충효편(忠孝篇)[여기에는 5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태자부(太子部)
섬자부(睒子部) 업인부(業因部)
(1) 술의부(述意部)
나는 “효성(孝誠)하고 충경(忠敬)하면 그 고귀함은 동감(董★)의 어짐보다 뛰어나고, 존친(尊親)을 배반하고 업신여기면 그 죄는 왕기(王寄)의 반역(叛逆)보다 더하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목상(木像)은 친모(親母)는 아니나 거기에 공양하면 그 메아리는 천 년을 넘어가고, 범부는 성승(聖僧)이 아니나 그를 공경하면 그 빛은 만 대(萬代)를 넘어간다. 마음을 기울여 받들면 무량한 복을 받거늘, 어찌하여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도리어 업신여기겠는가. 그러므로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드날리는 원인은 일생 동안 효도를 다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실로 나라를 세우는 아름다운 행이다. 그러므로 자로(子路)가 공자(孔子)에게 아뢰었다.
“유(由:자로의 이름)는 양친을 섬길 때에 항상 명아주 잎과 콩잎을 먹으면서 양친을 위해 1백 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습니다. 양친이 돌아가신 뒤에 남방의 초(楚)나라에 있을 때에는 늘 따르는 1백 채의 수레에 만 종(萬鍾)의 곡식을 실었고 자리를 포개고 앉았으며 솥을 벌려 놓고 음식을 지어먹었습니다. 그러나 명아주 잎과 콩잎을 먹으면서, 부모를 위해 쌀을 지는 것을 원하지만 그런 일을 다시 얻을 수 없음이 한스럽습니다.”
나는 항상 이 말에 감탄하면서, 부모님이 살아 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어떻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바다보다 깊은데 자식의 효도는 물방울이나 티끌과 같다. 길이 사모하고 멀리 부르면서 이 고통은 심장을 꿰뚫는다. 세속에는 젖을 먹이고 이 몸을 낳아 주신 일생의 은혜도 갚기 어렵다 하거늘, 하물며 우리 여래께서는 큰 자비로써 중생을
모두 외아들처럼 보시어, 3도(塗)를 없애고 4생(生)을 떠나게 하여 8고(苦)를 하직시키고 3승(乘)을 길이 타게 하심에랴. 가만히 생각하면 이 중한 은혜가 어찌 범속(凡俗)과 같겠는가? 마음은 무너져 마치 타는 것만 같으며 이 정은 간절하여 그 아픔은 마치 칼로 베는 것과 같구나. 여러 겁(劫) 동안 우러러 공경하며 항상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여도 그 잠깐 동안의 은혜도 갚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평등하신 그 자비로
외아들인 듯 중생들 생각하시나
중생들은 그 구제하심을 알지 못하고
여래와 법과 승을 도리어 비방하네.”
(2) 인증부(引證部)
『말라왕경(末羅王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부모의 힘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부모님이 우리를 낳아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이니라. 땅에서 위로 28천(天)에 이르기까지 보배를 쌓아 그것을 다 사람에게 보시해도 부모님께 공양하는 것만 못하나니 이것이 부모의 힘이니라.”
또 『증일아함경』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법(法)이 있어서 그것으로 범부들은 큰 공덕을 얻고 큰 과보를 이루느니라. 첫째는 부모님께 공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에게 공양하는 것이니, 이 두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공덕을 얻고 큰 과보를 받느니라.
어떤 사람이 그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얹고 그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얹고는, 천만 년 동안 의복ㆍ음식ㆍ평상ㆍ침구ㆍ의약 등을 공급하고, 부모님이 어깨 위에서 대소변을 보시더라도 그래도 그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나니, 부모님 은혜의 중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 부모님이 우리를 기르실 때에 항상 보호하나니, 우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공양하고 효도해야 하느니라.”
또 『지옥경』에서 말하였다.
“사람의 제자로서 그 사승(師僧)의 허물을 말하면 설혹 그 사승에게 그런 사실이 있더라도, 그 제자는 목숨을 마친 뒤에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 벌레에게 그 혀를 먹힐 것이다.
또 만일 좋은 음식과 맛난 과일 등을 얻어, 그 부모와 스승에게 드리지 않고 저 혼자 먼저 먹으면 죽어서 아귀 속에 떨어지고, 뒤에 사람으로 나더라도 매우 빈궁할 것이다. 또 독한 마음을 먹고 스승을 대하면 죽어서 쇠말뚝[鐵杙]지옥에 들어가고, 뒤에는 독사로 날 것이다. 또 악한 마음으로 부모나 스승의 말을 배우면 죽어서 융동(融銅)지옥에 들어가고 뒤에 사람으로 나더라도 말을 더듬거릴 것이다.”
또 『살바다론』에서 말하였다.
“차라리 탑을 부수고 불상을 부술지언정 남의 추한 죄를 말하지 말라. 만일 말하면 그것은 법신(法身)을 부수는 것이다. 비구에게 전에 죄가 있었거나 없었거나 일체 그것을 말하지 말라.”
또 『경사경(敬師經)』에서 말하였다.
“하루에 세 번 스승에게 나아가 문안을 드려라. 만일 갔다가 스승이 안 계실 때에는 흙덩이나 풀잎이나 나무 조각으로 왔다는 표를 해 두라.
날이 몹시 더운 때에는 세 때로 나누어 부채로 스승에게 부쳐 드려라. 어떤 비구가 그 스승이나 화상(和尙)곁에서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그들의 장단점(長短點)을 말하면, 죽어서는 거박(拒撲)이라는 조그만 딴 지옥에 들어가, 하나의 몸에 네 개의 머리로 태어나 온몸이 다 탈 것이다. 그 지옥에서는 또 구자(鉤觜)라는 벌레가 항상 그의 혀를 파먹을 것이다. 만일 거기서 한 4구게(句偈)를 들으면 그것을 일러 준 화상아사리 등을 어깨 위에 얹거나 혹은 등에 업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은혜는 다 갚을 수 없느니라.”
또 『비담론』에서 말하였다.
“만일 병자 및 법사와 함께 부처님을 가까이 하고 보살에게 보시하면 그는 큰 과보를 얻느니라.”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보살은 학(鶴)이 되어 아들 3형제를 낳았다. 그 때 그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학은 그 아들을 먹일 것이 없었으므로,
제 겨드랑이 밑의 살을 떼어 먹여 그들의 목숨을 살려 갔다. 그 3형제는 ‘이 고기의 맛은 어머니 몸의 기운과 비슷하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자기 살로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인가?’ 하고는 모두 슬픈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우리는 어머니의 몸을 상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는 모두 입을 다물고 아무 것도 받아먹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들이 먹지 않는 것을 보자 더욱 먹으라고 권했다. 그 때 천신(天神)은 이것을 보고 찬탄하기를 ‘어머니의 자비와 슬기는 비유하기 어렵고, 그 아들들의 효도는 참으로 드문 일이다’했다. 그래서 저 천신들이 도왔으므로 이들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 때의 그 어머니 학은 바로 나요, 그 3형제는 지금의 저 사리불과 목건련과 아난 등이다. 보살의 자비와 슬기의 도무극(度無極)은 이렇게 보시를 행하느니라.”
또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1백 사람의 범인(凡人)에게 하는 음식 공양은 한 사람의 선인(善人)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고 천 사람의 선인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5계(戒)를 지키는 한 사람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며, 5계를 지키는 만 사람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한 사람의 수다원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고, 백만 사람의 수다원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한 사람의 사다함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며, 천만 사람의 사다함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한 사람의 아나함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고, 1억 사람의 아나함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한 사람의 아라한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며, 10억 사람의 아라한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한 사람의 벽지불에게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고, 백억 사람의 벽지불에게 하는 음식 공양도 3존(尊)의 가르침으로 1생(生)의 양친을 제도함만 못하며, 천억 사람의 부모를 가르침도 한 사람의 부처님께 하는 음식 공양보다 못하나니, 서원을 세워 부처를 구하는 것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선인(善人)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그 복은 가장 크고 깊고 무겁다. 범인들은 천지의 귀신을 섬기지만 그것은 그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보다 못하나니, 양친은 최고의 신(神)이기 때문이니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먼 옛날 설산(雪山)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부모는 모두 장님이었는데, 그는 항상 맛난 과일이 생기면 그 부모에게 먼저 드렸다. 그 때 어떤 농부가 처음 곡식을 심을 때 이렇게 서원하였다.
‘내가 심은 이 곡식은 반드시 중생들에게 주어 함께 먹으리라’
그 앵무새는 농부의 이런 마음을 알고 항상 그 곡식을 가지고 와서 부모에게 공양했다. 농부는 논에 나가 어떤 새가 그 곡식 이삭을 자르는 것을 보고 화를 내어 곧 그물을 치고 그 앵무새를 잡았다. 앵무새는 그 농부에게 말했다.
‘농부님 당신이 전에 보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감히 와서 이렇게 곡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물을 쳐서 나를 잡습니까?’
농부는 물었다.
‘너는 누구를 위해 이 곡식을 가져가느냐?’
앵무새는 말했다.
‘나는 장님 부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봉양하는 것입니다.’
농부는 말했다.
‘지금부터는 항상 이것을 가져가거라 . 조금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농부는 생각했다.
‘짐승도 저렇게 부모에게 효도하고 봉양하거든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의 그 앵무새는 바로 지금의 나요, 그 농부는 저 사리불이며 그 장님 부모는 지금의 우리 부모 정반왕과 마야부인이시다. 나는 옛날 부모님께 효도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처가 되었느니라.’”
(3) 태자부(太子部)
『보은경(報恩經)』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먼 옛날 무량 무변 아승기겁 이전에 이 세상에 나오신 비바시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상법(像法)시대에 바라내(波羅柰)국왕 라사(羅闍)는 60의 소국(小國)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 왕의 어떤 태자가 소국의 왕이 되었는데, 그의 대신 라후라(羅睺羅)는 반역할 마음이 생겨 대왕과 두 태자를 죽였다.
그 왕의 막내아들은 변방의 왕이 되었는데 성질은 어질고 착하여 천신(天神)들도 그를 공경하고 사랑했다. 그에게서 난
태자 수사제(須闍提)는 나이 겨우 7세로서 총명하고 효성이 있어 그 왕은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 때 천신이 그 왕에게 말하였다.
‘라후라 대신은 나라를 빼앗고 또 두 형을 죽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의 군사가 와서 대왕을 해칠 것이니 지금 어디로 도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 몸이 털의 다 일어섰다. 그리고 우러러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다만 소리만 들리고 그 형상은 보이지 않는구나. 그대가 한 말이 참말인가?’
천신은 답하였다.
‘나는 대왕의 궁전을 지키는 신입니다. 대왕은 복덕이 있고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므로 억울한 백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대왕은 빨리 피하십시오. 오래지 않아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궁중으로 들어가 가만히 생각했다.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
그 때 이웃 나라로 가려면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한 길은 7일 동안 가야 되고 한 길은 14일을 가야 되는 길이었다. 왕은 곧 7일 동안의 양식을 준비하고 아들을 안고 떠나고 부인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황급한 마음에 그만 잘못하여 14일이 걸리는 길로 가게 되었다. 그 길은 험난하고 또 물도 풀도 없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양식만 가지고 떠났는데 이제 세 사람이 같이 먹으니 며칠만에 양식은 다 떨어지고 앞길은 아직 멀었다. 왕은 그 부인과 함께 큰 소리로 울면서 온몸을 땅에 던져 한탄하였다.
‘아, 괴변이구나. 아, 괴로워라. 나는 이 세상에 난 뒤로 아직 이런 고난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오늘 내 자신이 이런 고액을 받는가?’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지금 이런 화를 당하는가?’
그리고 큰 소리로 울면서 땅에 쓰러져 까무러쳤다. 조금 있다가 다시 생각했다.
‘우리 세 사람이 여기서 다 죽을 수는 없다. 저 부인을 죽여 그 살로 나도 살고 아이 생명도 구제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칼을 빼어 그 부인을 죽이려 했다. 아이는 왕이 그 어머니를 죽이려 하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나와
왕의 손을 잡고 그 까닭을 물었다. 왕은 울면서 슬픈 눈물이 두 눈에 가득했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의 어머니를 죽여 그 피와 살로 우리 목숨을 이어 가려 한다. 만일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지금은 죽고 살기인데 무슨 딴 일이 있겠는가? 너를 살리기 위해 네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아버님께서 어머님을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 살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머니 살을 먹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만일 그것을 먹지 않으면 이 아들도 함께 죽을 것입니다. 아버님은 지금 아들을 죽여 그 살로 부모님이 모두 잡수시도록 하십시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땅에 쓰러져 뒹굴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내 눈과 같다. 세상에 제 눈을 빼어 먹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차라리 우리가 죽을지언정 아들을 죽여 그 살을 먹을 수는 없다.’
아들은 또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만일 아들의 목숨을 끊으면 그 살은 썩어 며칠 못 갈 것입니다. 부모님께 원합니다. 저는 날마다 제 몸의 살을 3근(斤)씩 베어 3분(分)으로 만들어 2분은 부모님께 드리고 1분은 제가 먹어 그것으로 살아가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따라 아들의 살을 3근씩 베어먹으면서 길을 계속해 걸었다. 그러나 이틀도 되지 못해 아들의 살은 자꾸 줄어 뼈마디만 붙어 있고 아직 죽지는 않은 채 곧 땅바닥에 쓰러졌다. 부모는 이것을 보고 곧 가서 안아 일으키고 큰 소리로 울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깊은 생각도 없이 함부로 너의 살을 먹고 네게 고통을 주었구나. 앞길은 아직 멀어 언제 갈지 모르는데, 네 살은 이미 다해 이제 우리 모두 여기서 죽게 되었구나.’
아들은 말하였다.
‘이미 아들의 살을 먹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하면 앞으로 하룻길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죽겠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저 범인(凡人)들처럼 여기서 한꺼번에 다 죽지 마시고, 저의 몸의 뼈마디 사이에 붙은 살을 베어 내어 그것을 드시면
부모님은 갈 데까지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는 아들의 말을 따라 그 살을 긁어내어 3분으로 나누어, 1분은 아들에게 주고 2분은 자기네들이 먹고 길을 떠났다. 아들은 일어서서 떠나는 부모를 바라보았다.
그 때 부모는 큰 소리로 울면서 길을 따라 갔다. 부모는 멀리 가서 돌아보았으나 태자(아들)는 보이지 않았다. 태자는 부모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다가 한참만에 땅에 쓰러졌다. 몸에 묻은 피를 모기와 등에 등이 빨아먹으므로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은 남은 목숨이 아직 다 끊어지지 않아 일어나서 큰 소리로 서원 하였다.
‘전생에 지은 죄악은 이로써 모두 사라지소서. 지금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리다. 나는 내 몸으로 부모님께 공양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다른 복을 얻어, 누우시면 편안함을 깨닫고 나쁜 꿈을 꾸지 않으며 하늘이 보호하고 사람들이 사랑하며 관리와 도둑들의 음모가 다 소멸하고 일마다 길상(吉祥)하여지리다. 내 몸에 남은 피와 살을 이 곤충들에게 보시하나니, 나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불도를 이루게 하라. 그러면 나는 법식(法食)을 너희들에게 보시하여 너희들의 주리고 목마름과 나고 죽는 중병을 없애 주리라.’
이렇게 서원할 때 천지는 크게 진동하고 해는 빛이 없었다. 제석천은 이것을 보고 곧 사자와 호랑이로 변하여 태자에게 겁을 주면서 곧 와서 물려 했다. 태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를 잡아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잡아먹어라. 왜 겁만 주느냐?’
제석은 말하였다.
‘나는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다. 나는 제석천으로 너를 시험하기 위해 왔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 한없이 기뻐하였다. 제석은 이어 물었다.
‘너는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려 그 몸의 살을 부모님께 공양하였다. 그러면 그런 공덕으로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늘의 왕인가, 사람의 왕인가, 범천(梵天)의 왕인가, 악마의 왕인가?’
태자는 답하였다.
‘나는 그런 것은 원치 않습니다.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싶습니다.’
제석천은 말하였다.
‘부처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어 오랫동안 정진하고 고생하여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는 그런 고생을 능히 이겨내겠는가?’
태자는 말하였다.
‘비록 뜨거운 수레바퀴가 내 정수리 위에 있더라도 나는 그런 고통 때문에 결코 부처 되는 길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석천은 말하였다.
‘그것은 빈말이 아닌가, 누가 너의 그런 말을 믿겠는가?’
태자는 곧 맹세했다.
‘만일 제가 제석천을 속인다면 내 몸의 상처가 영원히 낫지 않을 것이요, 내 말이 참말이라면 내 몸이 완전히 낫고 피는 젖으로 변할 것입니다.’
태자가 이렇게 맹세하자 그 몸은 완전히 나아 전과 같고 피는 흰 젖으로 변하며 얼굴은 전보다 더 단정해졌다. 제석천은 곧 찬탄하고는 말하였다.
‘만일 부처가 되거든 나를 먼저 제도해 주십시오.’
그 때 이 부모는 이웃 나라에 도착해 그 국왕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말하였다.
‘우리 아들은 이와 같이 그 몸의 살을 우리에게 공양하였습니다.’
그 왕은 이 말을 듣자 그 아비의 사랑과 아들의 효도에 감복하여, 곧 이 왕에게 군사를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 라후라를 치게 했다. 아버지는 군사를 거느리고 길을 따라 돌아오다가 태자와 헤어진 곳에 이르러 가만히 생각했다.
‘내 아들은 죽었을 것이다. 그 뼈나마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가자.’
소리 내어 울면서 길을 따라 태자를 찾다가, 멀리서 태자를 보았다. 그 몸은 완전하고 얼굴은 전보다 더욱 단정하였다. 곧 달려가 태자를 부둥켜안고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태자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지금까지 살아있었느냐?’
그 때 태자는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부모는 크게 기뻐하면서 큰 코끼리를 같이 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태자는 그 복덕과 효도의 힘으로 본국을 도로 찾고, 부왕은 태자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아버지는 지금의 내 아버지 열두단왕이요, 그 때의 그 어머니는 지금의 내 어머니 마야부인이며, 그 때의 그 태자는 바로 지금의 나요, 그 때의 그 제석은 지금의 저 아야교진여이니라.’
(4) 섬자부(睒子部)
『섬자경(睒子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가이국(迦夷國)의 어떤 장자(長者)는 아들이 없고 또 그 부부는 모두 장님이었다. 그들은 항상 산에 들어가 위없는 도를 구하기를 원하면서 깨끗한 뜻을 닦고 한적한 곳을 좋아했다.
그 때 일체묘견(一切妙見)이라는 보살은 가만히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미묘한 도를 구한다. 그러나 모두 장님이기 때문에 만일 산중에 들어가면 억울한 화를 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보살은 목숨을 마친 뒤에 그 원을 따라 그 장자의 집에 태어나 이름을 섬(睒)이라 했다. 그는 지극히 효도하고 인자하여 항상 10선(善)을 행하고 밤낮으로 정진하여 부모를 섬기되, 사람이 하늘을 섬기는 것 같았다. 나이 10세를 지나자 부모 앞에 꿇어앉아 아뢰었다.
‘부모님은 본래 큰 뜻을 내어 깊은 산에 들어가 공적(空寂)한 최상의 정각(正覺)을 구하려 하셨습니다. 그러하온데 어찌 이 자식 때문에 본래의 원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부모는 그 말을 따라 곧 산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섬자는 집안의 재산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하고는 부모를 모시고 곧 산으로 들어가 초막을 짓고 평상과 침구를 만들어 춥지도 덥지도 않게 하여 항상 부모의 마음에 맞게 했다. 산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나서는 온갖 과일이 풍성하고 아름다워 매우 맛이 있었으며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도 시원하며 못에는 아름다운 색깔의 꽃이 피고 새와 짐승은 아름다운 소리와 인정스런 마음으로 서로 친해 조금도 해칠 생각이 없었다.
섬자는 부모님께 지극히 효도하고 땅을 밟을 때도 땅이 아파할까 걱정하였으며 천지의 신명들은 항상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 밤낮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섬자가 사슴가죽옷을 입고 병을 들고 나가 물을 길을 때는 사슴과 온갖 새들도 같이 와서 물을 마시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 가이국왕은 산에 들어가 사냥하다가 개울가에서 사슴 떼가 노는 것을 보고 활을 쏘았다. 그러나 그 화살은 잘못 나가 섬자의 가슴을 맞혔다. 섬자는 독한 화살을 맞고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활을 가지고 세 도인을 쏘아 죽이느냐?’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말에서 내려
섬자 앞으로 갔다. 섬자는 왕에게 말하였다.
‘코끼리는 그 어금니 때문에 죽고 물소는 그 뿔 때문에 죽으며 수달은 그 털 때문에 죽고 사슴은 그 가죽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죽습니까?’
왕은 섬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 하는 사람인데 사슴의 가죽옷을 입고 금수와 다름이 없는가?’
섬자는 말하였다.
‘나는 대왕의 나라 사람입니다. 장님인 부모와 함께 여기 와서 도를 배운 지 20여 년이지만 일찍이 호랑이나 독충들의 해침을 당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대왕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산에서 사나운 바람이 세게 일어나 나무 가지를 부러뜨리고 온갖 새들은 슬피 울며 사자ㆍ곰 등 짐승들은 다 크게 울부짖으며 해는 빛이 없고 샘물은 마르며 꽃들은 시들어 죽고 우레와 번개는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 때 장님 부모는 놀라 일어나 서로 이야기했다.
‘섬자가 물을 길러 나간 지 오래인데 왜 이제껏 돌아오지 않을까? 혹 독충한데 물리지나 않았는가? 저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평시와 다르구나. 바람이 일어나고 나무가 부러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무슨 재난이 있는 것이다.’
왕도 그 때 크게 후회하고 스스로를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무례한 짓을 했다. 본래는 사슴을 쏘려 했는데 잘못해 도인을 쏘아 죽였으니 이 죄는 매우 중하다. 앉아서 조그만 고기를 탐하여 무거운 재앙을 받게 되었다. 나는 지금 온 나라의 보물과 궁전ㆍ기녀ㆍ성곽ㆍ도시 등 모두를 다 걸고라도 이 도인의 목숨을 구제해야 한다.’
그리고 왕은 곧 손으로 섬자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잡아 뽑았으나 화살은 깊이 박혀 빠지지 않았다. 새와 짐승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부르짖는 소리는 산을 진동시켰다. 왕은 더욱 당황하여 360의 뼈마디가 모두 흔들렸다. 섬자는 말하였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이것은 대왕의 허물이 아니요 내 전생의 죄가 불러온 것입니다. 나는 신명을 아끼지 않고 장님인 내 부모님을 가엾이 여깁니다. 부모님은 이미 늙으셨고 또 장님이신데 하루아침에 내가 없어졌으니 반드시 그분들도 돌아가실 것입니다. 돌볼 사람 없음이 괴로울 뿐이요, 이 화살의 고통 때문이 아닙니다.’
왕은 다시 말하였다.
‘나는 차라리 지옥에 들어가 1백 겁 동안 죄를 받을지언정 이 섬자를 살려야 할 것이다. 만일 섬자가 목숨을 마치면 나는 내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이대로 이 산중에 있으면서 그대 부모를 그대 있을 때처럼 공양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저 하늘ㆍ용ㆍ귀신들이 다 증명할 것이니, 나는 결코 이 맹세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섬자는 왕의 맹세하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죽더라도 이제는 한이 없습니다. 내 부모 때문에 대왕께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인에게 공양하면 현세에서 죄를 멸하고 얻는 복이 무량할 것입니다.’
왕은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 부모님이 계시는 곳을 내게 말하라. 그대가 죽기 전에 내게 그곳을 알게 하라.’
섬자는 곧 알려 주었다.
‘여기서 지름길로 얼마 안 가면 한 초막이 나타날 것이니, 내 부모님은 거기 계십니다. 대왕께서는 조용히 가시어 부모를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좋은 방편으로 잘 이해시키고 나를 대신해 사과를 드리십시오. 무상(無常)이 지금 곧 닥칩니다. 후세에 가서도 신명을 아끼지 않고 다만 부모님만 생각할 것입니다. 부모님은 늙으셨고 또 두 눈이 장님입니다. 일단 내가 없으면 의지할 데가 없으니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혹하게 죽음은 하나의 떳떳한 일이온데, 그것은 전생에 지은 죄가 불러오는 것으로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참회하오니, 죄는 없어지고 복이 생기며 어떤 세상에서도 서로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를 원하오며, 또 부모님은 마지막까지 목숨을 보전하시고 아무 우환도 없으시며 하늘과 용ㆍ귀신들이 항상 따라다니면서 보호하여 재해가 소멸하기를 원하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몇 사람을 데리고 부모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났다. 왕이 떠난 뒤에 섬자는 곧 목숨이 끊어졌다. 금수들은 울부짖고 그 시체 위를 돌면서 입으로 그 가슴의 피를 핥았다. 장님 부모는 이 소리를 듣고 더욱 두려워했다. 왕이 빨리 가는 바람에 초목이 흔들리고 사람들 소리가 크게 났으므로 부모는 놀라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내 아들의 걸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나는 가이국의 왕입니다. 도인이 이 산에서 도를 배운다는 말을 듣고 공양하기 위해 왔습니다.’
부모는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수고로이 그 귀하신 몸으로 이 산중까지 오셨습니까? 대왕께서는 존체 편안하시고, 그 궁중의 부인과 태자ㆍ관리ㆍ국민들도 다 편안하십니까?’
왕은 답하였다.
‘도인의 은혜를 입어 다 편안합니다.’
그리고 왕은 다시 문안했다.
‘이런 산중에서 몸과 마음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이 숲 속의 짐승들은 침해하지 않습니까? 산중의 추위와 더위에도 철을 따라 편안하십니까?’
부모는 답하였다.
‘대왕의 은혜를 입고 항상 안온하게 지냅니다. 우리에게는 섬이라는 효자가 있어서 항상 과일과 샘물을 공급하여 늘 풍족하며 산중의 바람과 비는 때를 맞추어 온화하여 불편이 없으며 앉을 만한 풀자리가 있고 먹을 만한 과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섬이 물을 길러 가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슬퍼져 눈물을 흘리면서 우선 말했다.
‘나는 죄를 지어 면목이 없습니다. 산에 들어가 사냥하다가 물가에서 노는 사슴을 보고 활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잘못 나가 아들을 맞혔기 때문에 이렇게 와서 알리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 말을 듣고, 마치 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땅에 쓰러지자 땅이 진동했다. 왕은 곧 그들을 잡아 일으켰다.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으며 말하였다.
‘우리 아들은 효순하고 인자하여 땅을 밟을 때도 땅이 아파할까 걱정했었습니다. 그런 우리 아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활을 쏘아 죽였습니까? 아까 바람이 일어나 나무들이 부러지고 온갖 새들이 한꺼번에 부르짖기에 우리 아들이 죽지나 않았나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더욱 울었다. 그 때 그 아버지는 말했다.
‘그만 그치시오.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는 것으로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오. 지금 우선 왕에게 물어 봅시다. 얼마쯤이나 섬을 쏘았으며 또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왕은 자세히 설명했다. 부모는 거의 까무러치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아들이 없어졌다. 우리도 죽어야 한다.’
이에 대해 『잡보장경』에서는 말하였다.
“왕은 슬피 울면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이 나라의 임금으로서
이 산에 와서 사냥한 것은
다만 짐승을 쏘아 잡으려 한 것인데
그만 잘못하여 사람을 쏘았구나.
나는 이제부터 왕의 자리 버리고
여기서 장님 부모 섬기려 하네.
당신네의 아들과 다름없이 하리니
부디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장님 부모도 다음 게송으로 답하였다.
‘우리 아들은 인자하고 효순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다시없거니
대왕이 아무리 가엾이 여기어도
어떻게 우리의 아들만이야 하랴.
대왕이 우리를 가엾이 여기거든
우리 아들 있는 곳에 데려다 주오.
다만 우리 아들 그 곁에만 있으면
우리 함께 다 죽어도 여한 없으리.’
이리하여 왕은 그 부모를 데리고 아들 시체 있는 곳으로 갔다. 부모는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말하였다.
‘우리 아들은 인자하고 효순하기 비할 데가 없었다.’
그리고 하늘의 신과 산의 신과 나무의 신ㆍ물의 신 등을 모두 향해 다음 게송을 말하였다.
‘제석천과 범천(梵天)과 세상의 왕들이여,
어찌하여 우리 아들 돕지 않아서
효도하고 온순한 우리 아들을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였는가?
우리 아들 효성에 깊이 감동해
빨리 우리 아들 목숨을 구제하라.’”
또 『섬자경(睒子經)』에서는 이에 대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우리를 그 시체 곁으로 데려다 주십시오.’
왕은 곧 장님 부모를 붙들고 그 시체 곁으로 갔다. 아버지는 시체 다리를 안고 어머니는 그 머리를 안고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었다. 어머니는 곧 혀로 아들 가슴의 상처를 핥으면서 발원했다.
‘그 화살의 독이 내 입에 들어가소서. 나는 이미 늙었고 또 장님입니다. 내 몸으로 아들을 대신하여 우리 아들이 살고 내가 죽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우리 아들의 지극한 효성을 만일 천지 신명께서 아시거든 화살이 뽑히고 독약이 다 없어져 우리 아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이리하여 제2의 도리천왕의 자리가 곧 흔들렸다. 도리천왕은 하늘눈으로, 두 도인이 아들을 안고 울부짖는 것을 보았고, 또 제4의 도솔천왕의 궁전도 다 흔들렸다. 제석천과 범천과
사천왕들은 곧 제사천왕을 따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에 섬자 앞에 내려와, 신약(神藥)을 섬자의 입 안에 쏟아 넣었다. 약이 섬자의 입 안에 들어가자 뽑히지 않던 화살이 저절로 빠져나오면서 섬자는 다시 살아나 전날과 같았다. 부모는 놀라고 기뻐하여 섬자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곧 두 눈이 다 뜨이고 새와 짐승들은 모두 크게 기뻐했으며 바람은 그치고 구름은 걷히며 햇빛은 다시 빛나고 샘물은 다시 솟아나며 5색 꽃들은 다시 피고 나무들은 평시보다 더욱 무성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제석천 등에 예배하고 다시 그 부모와 섬자에게 예배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나라의 재산을 다 도인께 올립니다.’
섬자는 말하였다.
‘대왕이 은혜를 갚고자 하시면 우선 궁중으로 돌아가 인민들을 편안하게 하고 모두 계율을 받들게 하십시오. 그리고 대왕은 다시는 사냥하여 벌레와 짐승들을 죽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살아서는 항상 몸이 편치 않고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 그 은애(恩愛)는 잠깐이요, 이별은 장구하여 항상 보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왕은 전생의 공덕으로 지금 왕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재(自在)함을 얻었다고 해서 부디 방탕하지 마십시오. 대왕은 참회하시고 지금부터는 내 가르침을 따르십시오.’
종자 수백 명은 다 크게 기뻐하면서 5계(戒)를 받들어 지녔다. 왕은 하직하고 궁중으로 돌아와 영을 내려, 모든 장님 부모와 섬자 같은 이가 있으면 다 공양하여 버리지 말게 하고 만일 범하면 중죄를 주리라 했다. 이리하여 온 나라 사람들은 다 왕의 명령을 따라 5계와 10선(善)을 받들어 행하여 죽어서는 천상에 나고 3악도(惡道)에 들어가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전생의 그 섬자는 바로 이 나요, 그 아버지 장님은 지금의 내 부왕 열두단왕이며, 그 어머니 장님은 바로 지금의 마야부인이요, 그 가이국왕은 지금의 너 아난이며, 그 때의 그 제석천왕은 바로 저 미륵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빨리 이루게 한 것은 다 효도의 덕 때문이니라.’”
(5) 업인부(業因部)
『잡보장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공양하면 무량한 복을 받고, 조금이라도 효순하지 않으면 그 받는 죄도 무량할 것이다.
나는 먼 옛날, 파라내국(波羅柰國)의 어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이름을 자동녀(慈童女)라 했다. 그는 그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 날마다 2전(錢)을 얻어 어머니께 공양했다. 생활 방도가 더욱 나아져 하루 4전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하고 다시 차츰 더 나아져 하루에 8전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뒤에는 다른 사람이 투자해 더욱 많은 이익을 얻어 하루에 16전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사람들은 그의 총명과 복덕을 보고 모두 와서,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라고 권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어머니께 아뢰었다. 어머니는 그의 효도를 보았으므로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는 농담 삼아 말했다.
‘오냐, 네 생각대로 하라.’
그는 동행할 사람과 약속하고 날짜를 정한 뒤에 어머니에게 하직을 고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안고 울면서 말했다.
‘내 죽기를 기다리지 않고 무엇 때문에 떠나느냐?’
아들은 남과의 약속을 저버릴까 걱정하여, 곧 어머니를 끌어내어 어머니 머리카락 수십 개를 잘라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가 많은 보물을 얻어 돌아왔다. 중도에 이르러 그 동행은 멀리 앞에 가고 그 혼자 쳐져 동행도 잃고 길도 잘못 들었다. 어느 산 위에 올라가 유리성(琉璃城)을 보았다. 그리고 배고프고 목이 말라 그리로 갔다. 네 사람의 미녀가 네 개의 여의주(如意珠)를 받들고 음악을 울리며 성을 나와 맞이하여, 그는 그녀들과 4만년 동안 거기서 쾌락을 누렸다.
이에 염증을 느낀 그는 그녀들을 버리고 거기서 떠나 또 파려성(波瓈城)을 보았다. 여덟 명의 미녀들이 여덟 개의 여의주를 받들고 음악을 울리며 나와 맞이하여 그는 그녀들과 거기서 8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렸다. 이에 염증을 느낀 그는 그녀들을 버리고 가다가 백은성(白銀城)에 이르렀다.
16명의 미녀들이 16개의 여의주를 받들고 전처럼 나와 맞이하여, 그는 그녀들과 거기서 16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렸다. 이에 염증을 느낀 그는 그녀들을 버리고 가다가 황금성(黃金城)에 이르렀다. 32명의 미녀들이 32개의 여의주를 받들고 전처럼 나와 맞이하여 32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렸다.
그 뒤에 또 염증을 느껴 그는 그녀들을 버리고 가다가 한 철성(鐵城)에 들어갔다. 어떤 사람이 머리에 화륜(火輪)을 이고 있다가 이 자동녀의 머리에 씌우고 떠났다.
자동녀는 옥졸(獄卒)에게 물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화륜을 언제 벗을 수 있는가?’
옥졸은 답하였다.
‘세간의 어떤 사람이 죄와 복의 업을 짓되, 그대와 같이 바다에 들어갔다가 여러 성을 거친 뒤라야 여기 와서 그대 죄를 대신 받겠거니와, 만일 대신할 자가 없으면 그것은 끝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 물었다.
‘나는 옛날 어떤 죄와 복의 업을 지었는가?’
옥졸은 답하였다.
‘너는 일찍이 2전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므로 유리성과 4개의 여의주와 4명의 미녀를 얻어 8만 년 동안 그 쾌락을 누렸고, 4전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므로 파려성과 8개의 여의주와 8명의 미녀를 얻어 8만 년 동안 온갖 쾌락을 누렸으며, 8전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므로 백은성과 16개의 여의주와 16인의 미녀를 얻어 16만 년 동안 쾌락을 누렸고 16전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므로 황금성과 32개의 여의주와 32명의 미녀를 얻어 32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머리털을 잘랐기 때문에 지금 철성에서 화륜을 과보로 얻어, 너를 대신할 사람이 있어야 그것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또 물었다.
‘지금 이 지옥에서 나와 같이 죄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옥졸은 말했다.
‘그런 사람은 무량하여 다 헤아릴 수도 없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는 끝내 면할 수 없다. 원컨대 저들이 받는 고초를 모두 내 몸에 모으리라.’
이렇게 생각하자,
그 죄의 화륜은 곧 그의 머리에서 떨어졌다. 옥졸은 이것을 보고 곧 쇠꼬챙이로 그의 머리를 때려 그는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에 났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의 그 자동녀는 바로 지금의 이 나이니, 나는 그 때 부모님께 조그만 선과 악을 지은 인연으로 무량한 과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부지런히 공양해야 하느니라.’”
또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여래는 모든 성인과 부모님께 선과 악의 업을 일으켰으므로 현재의 과보를 받는다.”
또 『문수문경(文殊問經)』에서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해와 달이 모든 꽃을 비춰 주어도
은혜 갚음 받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이 여래도 아무런 취함이 없어
갚음을 안 구함도 또한 그러하네.
게송을 읊는다.
조정에 들어가서 왕을 도울 때
세운 뜻이 오로지 충성에 있고
집에 있어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공경과 정성과 효도로써 바친다.
하물며 부처님은 크신 은혜로
두루 구제하심이 끝이 없나니
그 은혜에 보답하고 그 공덕을 갚을 때
어찌 몸소 정성 드림 게을리 하랴.
감응연(感應緣)[대략 15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순(舜)의 아들은 아버지를 섬겨 감응(感應)이 있었음
곽거(郭巨)는 어머니를 봉양하여 감응이 있었음
정란(丁蘭)은 목상(木像)을 새겨 감응이 있었음
동영(董永)은 자신(自身)을 팔아 감응이 있었음
진유(陳遺)는 밥을 지어 감응이 있었음
강시(姜詩)는 물을 길어 감응이 있었음
오규(吳逵)는 장사를 치러 감응이 있었음
소고(蕭固)는 상(喪)을 당해 감응이 있었음
오충(吳沖)은 애통하여 감응이 있었음
왕허(王虛)는 병이 나아 감응이 있었음
백유(伯兪)는 어머니를 슬퍼하여 감응이 있었음
석사(石奢)는 대신 죽어 감응이 있었음
효부(孝婦)는 시어머니를 봉양하여 감응이 있었음
웅화(雄和)는 물에 몸을 던져 감응이 있었음
왕천석(王千石)은 무덤의 감응이 있었음
순(舜)의 아들은 아버지를 섬겨 감응(感應)이 있었음
순(舜)의 아버지는 눈을 잃을 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후처(後妻)가 들어와 말했다.
“순(舜)은 우물을 파는 일이 있을 것이다.”
순의 아버지는 집에 있으면서 몹시 가난하고 고생스러워 시장에 나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그는 꿈을 꾸었다. 봉황새 한 마리가 스스로 닭이라고 일컬으면서 입에 쌀을 물고 와서 그에게 먹여 주고는 말하였다.
“이 닭이 자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볼 때 그것은 닭이 아니요 봉황새였다.
황제(黃帝)의 꿈을 풀이한 책에 말하였다.
“그의 자손에 반드시 귀인(貴人)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순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해마다 사들이는 벼 속에 돈이 있었으므로 순은 3일 동안 하늘을 우러러 스스로의 허물을 고하고 이로 인해 용서를 얻었다. 그 아버지는 날마다 시장에서 친한 한 사람을 가르쳤으므로, 순은 아버지의 눈을 핥아 눈이 갑자기 환히 뜨였다. 눈을 보고 감탄한 시장 사람들은 다 대성(大聖)의 지극한 효도에 신명(神明)이 감응한 것이라 했다.
곽거(郭巨)는 어머니를 봉양하여 감응이 있었음
곽거(郭巨)는 하내온(河內溫) 사람이다. 아버지가 죽고 그 재산 2천만 냥을 2분으로 나누어 1분은 아우에게 주고, 자기 혼자만이 어머니를 맡아 모시고 살았다. 그 이웃에 어떤 흉한 집이 있는데 아무도 거기 들어가 사는 사람이 없었으나, 그는 거기 들어가 살았어도 아무 탈이 없었다. 그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 그는 처자를 기르려면 어머니 봉양에 방해될까 염려하여, 아내를 시켜 아이를 안게 하고는 땅을 파고 그들을 묻어버리려 했다. 파는 땅 속에서 황금 가마솥을 얻었다. 그 솥뚜껑에 쇠로 된 증서가 있었다. 거기에는 “효자 곽거에게 준다”고 새겨져 있었다.
정란(丁蘭)은 목상(木像)을 새겨 감응이 있었음
정란(丁蘭)은 하내(河內)의 야왕(野王)사람이다. 15세 때에 어머니를 잃고 나무에 어머니 상을 새겨 생시처럼 섬기며 공양했다. 어느 날 밤에 그 아내가 불로 어머니 얼굴을 태워 어머니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이틀 뒤에 그 아내의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져 마치 칼로 깎은 것 같았다. 그때서야 그녀는 사과했다. 정란은 어머니 목상을 큰길에 모시고 그 아내를 시켜 3년 동안 엎드려 절하게 했다. 어느 날 밤에 갑자기 비바람이 일어나자 그 목상은 스스로 돌아왔다. 이웃 사람이 물건을 빌리러 왔을 때, 그 어머니의 얼굴이 부드러우면 물건을 빌려주고 부드럽지 않으면 빌려주지 않았다.[정집(鄭緝)의 『효자전(孝子傳)』에 “정란의 아내가 잘못하여 어머니 얼굴을 태웠더니, 곧 그녀의 꿈에 어머니가 몹시 아파하는 것을 보았다. 이웃 사람이 물건을 청하러 오면, 아내는 ‘줄까, 주지 말까’를 먼저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다. 이웃 사람이 ‘마른 나무가 무엇을 알리오’하고, 곧 칼로 나무를 깎았더니 목상의 어머니는 피를 흘렸다. 정란은 돌아와 슬피 울고 복(服)을 입고 장례를 치렀다. 정위(廷尉)가 나무 어머니의 감응으로 죽었다. 선제(宣帝)는 정란을 가상히 여겨 태중대부(太中大夫)의 벼슬을 주었다.]
동영(董永)은 자신(自身)을 팔아 감응이 있었음
또 동영(董永)이라는 사람은 [정집(鄭緝)의 『효자감통전(孝子感通傳)』에는 천승(千乘)사람이라 했다.] 젊어서부터 외로이 아버지와 살면서 농사에 힘썼다. 그 아버지는 사슴수레에 태우고 자신은 그 뒤를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자, 제 몸을 어느 부자에게 잡히고 빚을 내어 장례를 치렀다.
길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가 그에게 말하였다.
“나를 당신 아내로 삼아 주십시오.”
그래서 그녀를 데리고 그 부잣집으로 갔다. 그 부자는 말했다.
“이 여자는 누구냐?”
그는 대답했다.
“내 아내입니다. 내 빚 갚음을 돕고자 한다고 합니다.”
부자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비단 3백 필을 짜면 모두 놓아주리라.”
그녀는 10일 동안에 다 짜서 주인에게 주고, 그 집 문을 나오면서 동영에게 말했다.
“나는 천녀입니다. 하늘이 나를 시켰기 때문에 당신 빚 갚음을 도왔을 뿐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홀연히 어디로 사라졌다.[이상의 네 가지 증험은 유향(劉向)의 『효자전(孝子傳)』에 나온다.]
진유(陳遺)는 밥을 지어 감응이 있었음
진유(陳遺)는 오(吳)나라 사람으로서 젊어서 군리(郡吏)로 있었다. 그 어머니가 눌은밥을 좋아하였으므로 진유는 관리로 있으면서 항상 주머니를 차고 녹미(祿米)를 받으면 그것을 볶아 어머니에게 드렸다. 뒤에 손은(孫恩)의 난리가 일어났을 때는 진유는 여러 말의 쌀을 모아 항상 가지고 다녔다. 싸움에 패하여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으나 진유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 어머니는 밤낮 진유를 생각하면서 눈이 멀어 장님이 되고 또 귀도 먹어 귀머거리가 되었다. 진유는 돌아와 어머님께 두 번 절하고 울었다. 그 때 어머니의 눈은 갑자기 환히 밝아졌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손궁(宋躬)의 『효자전(孝子傳)』에 나온다.]
강시(姜詩)는 물을 길어 감응이 있었음
강시(姜詩)의 자(字)는 사유(士游)이니 광한(廣漢)의 낙양(洛陽) 사람이다. 그 어머니는 강물 마시기를 좋아하였는데 강시가 강에 나가 물을 긷다가 빠져 죽었다. 그 아내는 몹시 애통하면서도 그 어머니가 사실을 알까 두려워해, 거짓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어머니를 속였다. 그리고 새해마다 새 옷을 지어 강물 속에 던져 넣었다. 얼마 뒤에 그 집 곁에서 샘물이 솟아났는데, 그 맛은 강물처럼 맛났으며 또 거기서 잉어도 나왔다.[이 한 가지 증험은 『동관한기(東觀漢記)』에 나온다.]
오규(吳逵)는 장사를 치러 감응이 있었음
오규(吳逵)는 오흥(吳興) 사람이다. 손은(孫恩)의 난리에 그 형수(兄嫂)와 제수(弟嫂)와 종자 13명이 죽었다. 집이 가난하여 벽만이 서 있을 뿐이어서 겨울에도 솜옷이 없었다. 낮에는 나가 날품팔이로 일하고 밤에는 들어와 벽돌을 만들었다. 그 부부는 온갖 일에 밥 먹을 여가도 없었다. 일 년이 되어 겨우 일곱 개의 묘지와 열세 개의 널을 장만하고 품을 팔아 그 장례를 치렀다.
이웃 사람들이 모두 돈을 내어 부조했으나 한 푼도 쓰지 않고, 몸소 농사지어 빚을 다 갚았다. 의희(義熙) 3년에 태수 장숭례(太守 張崇禮)가 그를 불러 썼다.
소고(蕭固)는 상(喪)을 당해 감응이 있었음
소고(蕭固)의 자는 계이(季異)요 난릉(蘭陵) 사람이니 소하(蕭何)의 14세 손(孫)이다. 소하는 장릉(長陵)에서 벼슬하였다. 그 때문에 관중(觀中)에 살게 되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효도하고 삼가하여 부모 상(喪)을 당하여 6년 동안에는 꿩과 까치들이 그 뜰에 와서 친하게 놀고 노루와 사슴들이 그 담 안에 들어와 놀았다. 나라에서 벼슬로 불렀으나 그는 나가지 않았다.
소고의 아들 지(芝)는 자가 영모(英髦)인데 효심이 지극하였다. 상서랑(尙書郞)으로 있을 때는 수십 마리의 꿩들이 항상 그 집에 와서 자고, 그가 당직으로 갈 때는 꿩들이 길에까지 나와 배웅하고 그의 수레 곁에서 울며 날아다녔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정집(鄭緝)의 전기에 나온다.]
오충(吳沖)은 애통하여 감응이 있었음
오(吳)나라 중서랑(中書郞) 함충(咸沖)은 효도가 지극하였다. 어머니 왕씨는 장님이었다. 함충이 잠깐 밖에 나가면서 그 여종을 시켜 어머니의 식사를 돌보라 일렀다. 그 여종은 심지어 굼벵이를 삶아 왕씨에게 먹였다. 왕씨는 매우 맛나게 먹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함충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말하였다.
“네가 나간 뒤에 여종이 음식을 주는데 그것은 아주 맛이 있었다. 그러나 생선도 아니요 고기도 아니었다. 너는 한번 물어 보아라.”
함충이 묻자 여종은 사실대로 말하니, 그것은 굼벵이였다. 함충은 어머니를 안고 통곡했다. 어머니의 눈이 갑자기 밝아졌다.[이 한 가지 증험은 『조태지괴(祖台志怪)』에 나온다.]
왕허(王虛)는 병이 나아 감응이 있었음
왕허지(王虛之)는 여릉(廬陵)의 서창(西昌) 사람이다. 나이 13세 때에 어머니를 잃고 23세 때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20년 동안 소금과 초를 먹지 않고 병이 들어 누워 있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와서 문병하고 말하였다.
“그대 병은 곧 나을 것이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어디로 사라졌다. 또 밤이 되어 그 집 안에 광명이 있고 한 겨울인데도 귤나무에 귤이 열렸다. 그리고 과연 곧 병이 나았으니, 이것은 다 그의 지극한 효성의 감응이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송궁지(宋躬之)의 『효자전(孝子傳)』에 나온다.]
백유(伯兪)는 어머니를 슬퍼하여 감응이 있었음
한백유(韓伯楡)가 허물이 있어서 그 어머님이 매를 때릴 때 그는 울었다. 그 어머니가 물었다.
“전일에는 울지 않더니 지금은 왜 우느냐?”
그는 대답했다.
“전일에는 매를 맞으면 늘 아프더니 오늘은 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습니다. 어머님의 근력이 그만큼 준 것이니 그 때문에 웁니다.”
석사(石奢)는 대신 죽어 감응이 있었음
또 석사(石奢)는 초(楚)나라 사람으로서 그 부모를 효도로 섬겼다. 소왕(昭王) 때에 그는 영윤(令尹)이 되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멀리서 보고, 쫓아가 잡아 보았더니 그는 바로 그 아버지였다. 석사는 아버지를 놓아주고 돌아와, 스스로 옥에 갇히고는 사람을 시켜 왕에게 아뢰었다.
“법을 세우려니 아버지에게 불효요, 법을 어기고 아버지를 놓아주었으니 이것은 불충(不忠)입니다. 나는 죽음으로써 아버지의 죄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칼로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이상의 한 가지 증험은 『설원록(說苑錄)』에 나온다.]
효부(孝婦)는 시어머니를 봉양하여 감응이 있었음
『한서(漢書)』에서 말하였다.
“동해(東海)의 효부(孝婦)는 그 시어머니를 지극한 효도로 섬겼다. 시어머니는 말했다.
‘며느리는 나를 봉양하기에 매우 괴롭다. 나는 이제 늙었는데 남은 생명이 무엇이 아까워 저 젊은 며느리를 오랫동안 괴롭게 하겠는가?’
그리고는 드디어 목을 매어 자살했다. 며느리가 관가에 알려 말하였다.
‘제가 우리 시어머니를 죽였습니다.’
관가에서는 그녀를 잡아 가두고 지독하게 고문하면서 다스렸다. 이 효부는 그 고초를 견디지 못해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그 때 우공(于公)은 옥리(獄吏)로 있으면서 말하였다.
‘이 효부는 시어머니를 10여 년 동안 섬겨 그 효성은 4방이 다 압니다. 결코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태수(太守)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우공은 항변하였으나 당할 수 없어 길을 되돌려 그 감옥을 울면서 하직하고 물러났다.
그 뒤에 그 고을에 3년 동안 모진 가뭄이 들었다. 뒤의 태수가 새로 부임하여 가뭄의 까닭을 알아보았다. 그 때 우공이 말하였다.
‘효부는 죽여서는 안 되는데 먼저 태수가 억울하게 그녀를 죽였습니다. 가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태수가 곧 몸소 이 효부의 무덤에 제사하고.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큰비가 내렸다.”
『장로전(長老傳)』에서 말하였다.
“효부의 이름은 청(靑)이었다. 청은 죽음에 이르러 10장(丈)의 대나무 장대를 수레에 싣고 5개의 번기를 거기에 달고는 대중 앞에서 맹세하여 말하였다.
‘만일 내가 죄가 있으면 나를 죽일 때, 내 피는 이 장대를 따라 밑으로 흘러내릴 것이요 만일 억울하게 죽으면 내 피는 위로 거슬러 흐를 것이다.’
형을 집행하자, 그 피는 푸르고 누른빛으로서 장대를 따라 끝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밑으로 내려왔다.
웅화(雄和)는 물에 몸을 던져 감응이 있었음
건위부(健爲符) 선니화(先泥和)의 딸은 이름을 웅니화(雄泥和)라 했다. 영건(永建) 원년에 선니화는 현공(縣功)이 되었다. 조현장(曹縣長) 조지(趙祉)는 파군 태수(巴郡 太守)를 맞이하러 선니화를 보냈다. 선니화는 10월에 성단(城端)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러나 그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웅니화는 애통하게 울부짖으며 그 아우 현(賢)과 남편에게 알리고 아버지 시체를 찾게 하면서 말하였다.
‘만일 당신들이 찾지 못하면 내가 물에 들어가 찾으리라.’
그 때 웅니화의 나이는 27세로서 다섯 살 된 아들 공(貢)과 세 살 된 세(貰)가 있었다. 그녀는 비단 향낭(香囊) 하나에 금과 진주로 된 가락지를 넣어 어린 두 아이들에게 맡기고, 그 입에서는 슬피 우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일가 친족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걱정하였다.
12월 15일까지 아버지 시체를 찾지 못한 그녀는 조그만 배를 타고 나가 아버지가 빠져 죽은 곳에 이르러 몇 번 울고 스스로 물 속에 몸을 던져 몇 번 돌다가 가라앉았다. 그 아우의 꿈에 그녀가 나타나 말하였다.
‘21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물에서 나가리라.’
그 날이 되자 꿈에 말한 것과 같이 그녀는 아버지를 붙들고 물에 떠서 함께 나왔다. 현장(縣長)이 나라에 글을 올리고 그 고을의 태수(太守) 소등승(蘇登承)도 상서(尙書)에게 글을 올렸다. 나라에서는 호조 연(戶曹緣)을 보내 웅니화의 비를 세우고 또 그 형상을 그려 그 지극한 효도를 모두에게 알렸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왕천석(王千石)은 무덤의 감응이 있었음
당(唐)나라 자주 자사(玆州 刺史) 대원 왕천석(大原 王千石)은 그 성질이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침착하고 삼가함으로써 남의 칭찬을 받았다. 내전(內典)에 더욱 정통하여 믿는 마음으로 행을 단련했다.
정관(貞觀) 6년에 아버지 상(喪)을 당했을 때는 너무 예(禮)에 지나쳐, 하루 한 끼 먹고 항상 재계하여 그 몸이 해골 같았다. 묘지 왼쪽에 여막(盧幕)을 짓고 흙을 져날라 무덤을 만들고는 밤이 되면 불경을 외우면서 새벽까지 자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집에서는 항상 매우 맑고 트인 경쇠소리가 들리었고, 기이한 향냄새가 몇 리 밖에까지 풍겨, 승려와 속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해 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50. 불효편(不孝篇)[여기에는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오역부(五逆部) 부역부(婦逆部)
기부부(棄父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충성을 이루고 효도를 이루면 그로써 그 이름을 후세에 드날리고, 역(逆)을 행하고 괴(乖)를 행하면 그로써 미래에 고통의 과보를 받는다. 효도와 반역은 오르고 가라앉으며 선과 악은 호(胡)와 월(越)이다. 그러므로 대자(大慈:부처)님은 아사세왕의 흉악한 반역을 가엾이 여기고 라운의 선한 증거를 칭찬하셨으니, 그것은 장차 효도하지 않는 독(毒)의 불이 꺼질 길이 없을까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악역(惡逆)이 두터운 어둠은 밝아질 기약이 없으니, 마치 감옥의 중죄를 지은 죄수가 온갖 고통에 얽히는 것과 같다. 즉 긴칼을 안기고 큰 차꼬로 찌르며 금집게로 채우고 쇠사슬을 지워서 그 몸을 때리면, 부스럼이 터져 고름이 흐르고 사방에 널린 해골에 악취가 두루 에워 싼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인자한 아버지[慈父]를 찾는 간절한 정성은 진정 보기 어려운 것이다.
(2) 오역부(五逆部)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제자 제바달다는 부처님의 4촌 동생이다. 그는 출가하여 도를 배워 6만의 법을 다 외우고 13년 동안 정진 수행하였다. 그 뒤에 공양하기 위해 부처님께 와서 신통을 배우고자 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5음(陰)의 덧없음을 관(觀)하면 도를 얻고 또 신통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신통을 구하는 법은 말씀하시지 않으므로 그는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가서 청했다. 그러나 5백 아라한까지도 그에게 그 법은 말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5음의 덧없음을 관찰하면 그로써 도를 얻고 또 신통도 얻을 것이다.’
그 때 아난은 타심지(他心智)를 얻지 못했으므로 부처님께 배운 그대로 제바달다에게 가르쳐 주었다.
제바달다는 신통을 얻는 법을 배운 뒤에 산에 들어가 오래지 않아 5종 신통을 얻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가 내 단월이 될 수 있을까? 저 아사세왕자는 대왕이 될 상이 있다.’
그리하여 아사세왕자와 친하기 위해 천상에 올라가 천상의 음식을 가지고 왔다. 또 울단월에 가서는 저절로 된 멥쌀을 취하고 염부의 숲으로 가서는 염부의 과일을 가지고 와서 아사세왕자에게 주었다. 그리고 혹은 그 몸을 코끼리와 말로 변해 그의 마음을 호리고 혹은 어린애로 변해 갖가지 모습으로 그 마음을 호렸다.
왕자는 그것에 홀려 내원(奈園) 안에 큰 정사(精舍)를 짓고 그를 청해 4종의 물건과 갖가지 공양거리를 모두 준비해 그에게 공양했다. 그리고 날마다 모든 대신을 거느리고 5백 가마의 국과 떡을 가지고 왔다. 제바달다는 이렇게 많은 공양을 받았으나 그 제자가 적었으므로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32상(相)이 부처님보다 얼마 적지 않다. 이것은 제자가 다 모이지 않은 탓이니, 만일 내가 7중(衆)에게 둘러싸이면 저 부처님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먹고는 곧 5백 제자를 얻었다. 그러나 사리불과 목건련이 설법하여 교화한 승려가 도리어 화합했다.
그 때 제바달다는 악심이 생겨 산을 밀어 부처님을 눌렀고 금강 역사(力士)는 금강저(金剛杵)를 멀리서 던져 부서진 돌이 몰려 와서 부처님 발가락을 다쳤다. 연화색(蓮華色) 비구니가 그를 꾸짖자, 그는 주먹으로 비구니를 때려 비구니는 곧 눈이 빠지며 죽었다. 그는 이렇게 3역죄(逆罪)를 짓고, 사악(邪惡)한 스승 부란나(富蘭那)와 친해 모든 선근(善根)을 끊으면서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다. 또 독약을 손톱에 바르고 부처님께 예배할 때 부처님을 해치려고 가다가 미처 다 가기 전에 왕사성(王舍城)에서 땅이 저절로 갈라지면서 화차(火車)가 나와 그를 맞이하여
그는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갔다. 이렇게 제바달다는 그 몸에 32상(相)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공양의 이익을 위해 큰 죄를 짓다가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간 것이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선성(善星) 비구는 비록 12부(部) 경전을 다 외우고 4선(禪)을 얻었지만, 1게(偈)의 1구(句)와 1자(字)의 뜻도 알지 못하고 악한 벗을 친하여 4선을 잃었다. 4선을 잃은 뒤에는 사악(邪惡)한 소견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처도 없고 법도 없고 열반도 없다. 사문 구담은 상(相)을 잘 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가섭과 함께 선성 비구에게로 가셨다. 선성 비구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사악한 마음이 생겼고, 이 사악한 마음 때문에 산 채로 아비지옥에 들어갔느니라.”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울타라가(鬱陀羅伽) 선인(仙人)은 5종의 신통을 얻어 날마다 국왕의 궁중에 날아 들어가 궁중의 음식을 먹었다. 왕후는 그 국법을 따라 그의 발을 잡고 예배했다. 부인의 손이 닿자 그는 곧 신통을 잃고 왕에게 수레를 청해 그것을 타고 돌아왔다. 숲 속에 들어가 다시 5통(通)을 구할 때 새들이 조급히 울어 그 소리가 그 뜻을 어지럽히므로, 그는 숲 속을 버리고 물가로 가서 다시 선정을 구했다. 거기서는 또 고기들이 서로 싸우면서 물을 흔드는 소리를 듣고 선정을 얻지 못했다. 그는 그만 화가 나서 생각했다.
‘나는 저 고기와 새들을 모두 죽여 버리리라.’
그는 그 뒤에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고 선정을 얻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났다.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는 내려와 날아다니는 삵으로 태어나서 저 모든 고기와 새들을 죽임으로써 무량한 죄를 짓고 3악도에 떨어졌다.
또 거기서 말하였다.
“어떤 비구가 앉아서 4선(禪)을 얻고 증상만(增上慢)이 생겨 아라한이 되었다고 자칭했다. 그는 이것을 믿고 거기에 만족하여
더 힘써 구하지 않다가 목숨을 마치려 했다. 그는 그 때 4선의 중음(中陰)의 상(相)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곧 사견(邪見)이 생겨 생각했다.
‘열반이란 없는 것인데 부처님께서 나를 속였다.’
이 사견 때문에 그는 4선의 중음을 잃고 아비지옥의 중음의 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아비지옥에 났느니라.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많이 듣고 계율과 선정을 가졌어도
무루(無漏)의 법을 얻지 못하면
비록 그러한 공덕은 있더라도
그런 공덕 믿을 수 없는 것이네.”
또 『미생원경(未生怨經)』에서 말하였다.
“조달은 부처님의 제자가 많음을 질투하여 태자 미생원(未生怨)에게 말하였다.
‘당신 아버님은 나라의 보물을 모두 저 불승(佛僧)들에게 바침으로써 국고가 텅 비게 되었습니다. 빨리 도모하여 왕위에 오르도록 하십시오. 나는 군사를 일으켜 저 부처를 치겠습니다. 당신은 왕이 되고 나는 부처가 되어 둘이 다 그 자리를 얻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태자는 세력 있는 신하를 시켜 왕의 인수(印綬)를 빼앗고 왕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왕은 태연히 전의 일을 반성해 보고 조금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거듭 부처님의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태자에게 말하였다.
‘내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나를 이렇게 처벌하는가?’
왕후와 귀신들과 전국의 노소들이 모두 애통해 하였다. 왕은 그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지ㆍ일월ㆍ수미산ㆍ바다 등 모든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무너지는 것이다. 성한 것은 쇠하고 모이면 헤어지며 나면 반드시 죽어 끝없이 변천하는 것이다. 내 몸도 보전되지 않거늘 하물며 나라가 항상 하겠는가?≻’ 하였다. 그리고 왕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늘 병이 있어 나는 항상 마음을 태우면서 내 신명을 다해 너를 구제함에 있어서 심지어 너를 대신하려고 까지 했다. 부모의 인은(仁恩)은 오직 하늘(아들)을 최상으로 삼는 것이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차마 역죄(逆罪)를 짓느냐? 대개 부모를 죽이는 자는 죽어서 반드시 태산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너를 높여 이 나라를 너에게 주고 나는 부처님께 가서 청해 사문이 되려 한다.’
태자는 말하였다.
‘잔소리 마시오.
나는 숙원을 이루었는데 어찌 당신을 용서하겠소.’
그리고 옥리(獄吏)에게 명하여 음식을 주지 말고 굶겨 죽이라 했다. 병사왕(甁沙王)은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예배하고 말하였다.
‘저 아들에게는 하늘과 땅 같은 죄악이 있으나 내게는 털끝만큼의 허물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아, 원통하다. 하늘에 어찌 이런 도가 있겠는가?’
온 나라의 노소들이 모두 애통해 했다.
왕후는 태자에게 말했다.
‘대왕은 지금 형틀에 묶여 감옥에 계시면서 기거할 때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대왕을 뵈옵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겠는가?’
태자는 허락했다. 왕후는 깨끗이 목욕한 뒤에 보릿가루와 꿀을 몸에 바르고 감옥에 들어가 대왕을 뵈었다. 왕의 얼굴은 수척하여 본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왕후는 왕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영화의 즐거움은 무상하고 죄의 고통은 항상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옥리가 음식을 주지 않아 배고프고 목마른 지 벌써 오래이다. 몸 속에는 80호(戶)가 있고 1호에는 수백 종의 벌레가 있어, 내 뱃속에서 소란을 피우면서 피와 살을 다 파먹고 이제 목숨도 다 되었다.’
그 말소리는 목이 메이고 숨은 끊겼다 이어졌다 했다.
왕후는 말하였다.
‘이런 어려움을 잘 알고 첩(妾)은 몸에 보릿가루와 꿀을 바르고 왔습니다. 이것을 핥아 자십시오. 오직 부처님의 교훈만을 생각하시고 다른 걱정은 마십시오.’
왕은 그것을 다 먹고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목멘 소리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화와 복은 보전하기 어려워 요술과 같고 꿈과도 같다≻ 하셨사온데 참으로 그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죽기는 두렵지 않사오나 오직 부처님을 뵈옵고 그 맑으신 설법을 듣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저 추로자(秋露子) 목건련 가섭 등과 더불어 그 오묘하신 도를 강설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왕후에게 말하였다.
‘저 목건련 등은 온갖 번뇌를 다 없애고 6통을 얻었어도 아직도 탐욕과 질투 때문에 범지(梵志)의 매를 맞거늘 하물며 나 따위겠소. 나는 재앙에 쫓기는 사람으로서 그것은 마치 형체의 그림자나 소리의 메아리와 같소. 부처님께서 나오시는 때는 만나기 어렵고 그 신령스런 설법은 듣기 어려우며 그 맑은 교화를 듣는 정성도 또한 가지기 어려운 것이오. 당신은 부디 삼가 그 교훈을 지켜 미래의 화를 방지하시오.’
왕후는 왕의 경계를 듣고 더욱 애통해 했다.
그 때 태자는 옥리에게 물었다.
‘왕은 음식을 끊은 지 오래인데 왜 죽지 않는가?’
옥리는 대답했다.
‘왕후께서 몸에 보릿가루와 꿀을 바르고 감옥에 들어가 그것을 바치기 때문에 왕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태자는 옥리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는 왕후로 하여금 감옥에 들어가 왕을 만나지 못하게 하라.’
왕은 주리다가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곧 배가 고프지 않고 밤에는 감옥 안이 밝았다. 태자는 이 말을 듣고는 그 창문을 막게 하고 왕의 발바닥을 깎아 일어나서 부처님의 밝음을 보지 못하게 했다. 옥리는 곧 왕의 발바닥을 깎았으므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왕은 그래도 부처님을 생각해 잊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왕을 위해 설법하셨다.
‘대개 선과 악의 행을 따르는 재앙과 복은 다 내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병사왕은 대답했다.
‘비록 4지를 다 끊고 온몸을 조각조각 내더라도 끝내 악은 생각하지 않으리다.’
부처님께서 거듭 말씀하셨다.
‘나는 부처가 되어 대천세계의 해와 달과 천인ㆍ귀신ㆍ용 등이 다 머리를 조아리지만, 그래도 남은 재앙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거늘, 하물며 범부 중생으로서 전생의 재앙을 갖추 부르는 사람이겠는가?’
왕은 곧 합장하고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지금 목숨이 끊어지면 영원히 부처님의 교화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목 메인 소리와 함께 잠깐 사이에 숨이 끊어졌다. 온 나라 인민들은 모두 땅에 쓰러지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었다. 병사왕은 곧 도를 얻고 천상에 났으니, 3악도의 문은 닫치고 모든 죄는 멸하였다.”
自述
아사세왕은 후회하고 간절한 정성으로 거듭 참회했다. 자세한 것은 『열반경』에 있으므로 여기 다 적지 않는다. 사실과 같은 자취에 의거해 방편을 잡아 두루 교화하였으니, 그러므로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부처님께서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죽인 역죄(逆罪)를 여래를 향해 참회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세간의 5백 일의 죄를 받고는 곧 거기서 벗어날 것이니, 그러므로 스스로 꾸짖어 과거의 죄를 고치고 미래의 복을 닦으면서 근심 걱정하지 말지니라.’
왕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또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가묵국(迦黙國)의 구타선촌(鳩陀扇村)에 어떤 노파가 있었다. 그 노파는 외동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은 성질이 도리에 어긋나고 인효(仁孝)는 닦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화를 내어 어머니를 주먹으로 한 번 치고 곧 집을 나갔는데 길에서 어떤 도적을 만나 그 도적이 그의 팔을 분질러 버렸다. 불효한 그 죄의 과보가 당장 이렇게 나타나 그는 그처럼 고통을 받았고,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 그 받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성(舍衛城)에 어떤 부자 바라문이 있었다. 그 아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얼굴은 추악하고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그 어머니 젖을 먹을 때는 어머니 젖을 허물어뜨리고, 다른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은 다 허물어졌다. 그래서 오직 꿀만을 그 손가락에 바르고 그것을 핥게 하여 신명을 구제했으므로 그 때문에 그 이름을 득포(得飽)라 했다.
그가 차츰 자라나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야.’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그는 곧 사문이 되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행걸(行乞)해도 음식을 얻지 못했으므로 그는 스스로 한탄하였다. 그는 불당(佛堂)에 들어가 먼지가 조금 쌓인 것을 보고 곧 소제했다. 그 뒤로는 때가 되어 행걸하면 곧 풍족한 음식을 얻었다. 그는 매우 기뻐하여 여러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불당 소제는 제가 하겠습니다. 들어주십시오.’
스님들은 다 허락했다. 그 뒤 하루는 그가 늦잠이 들어 새벽이 된 것을 몰랐다. 사리불이 불당 안에 먼지가 쌓인 것을 보고 그것을 소제하였다. 여군지(黎軍支)는 잠에서 깨어나, 사리불이 이미 소제를 다해 마친 것을 보고 매우 불쾌히 여겨 사리불에게 말했다.
‘당신이 내가 할 일을 대신하여 나는 하루를 굶게 되었습니다.’
사리불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나는 지금 어떤 초청을 받고 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니, 같이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리하여 사리불을 따라 성 안의 그 단월의 집으로 갔으나, 마침 그 부부는 싸우고 있었으므로 끝내 얻어먹지 못하고 굶은 채 돌아왔다. 그 다음날 사리불은 또 그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어떤 장자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당신을 데리고 가서 한껏 먹게 하겠습니다.’
때가 되어 함께 갔는데 그 상ㆍ중ㆍ하의 자리 사람들은 다 한껏 먹었으나 오직 그만이 얻어먹지 못해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은 전연 듣지 못하였으므로 끝내 굶은 채 돌아왔다.
3일째 되는 날, 아난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가엾이 여겨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늘 아침에 부처님을 따라 초청을 받아 갑니다. 당신 몫까지 받아 와서 한껏 먹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난은 여래의 8만 4천 법문을 모두 받아 지녀 한번도 빠뜨린 일이 없었으므로 지금 일부러 여군지 비구를 위해 음식을 받아 가려 했으나 그만 이 일을 잊어버리고 빈 발우로 돌아왔다. 4일째에도 아난은 그를 위해 음식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으나, 길에서 사나운 개가 달려들어 먹으려 하였으므로 그 음식을 땅에 버리고 그대로 돌아왔다.
5일째는 또 목건련이 그를 위해 음식을 받아 가지고 오다가, 길에서 금시조(金翅鳥)를 만나, 금시조가 발우 채로 빼앗아 가서 큰 바다에 던져 버렸으므로, 그는 또 얻어먹지 못했다.
6일째에는 사리불이 또 그를 위해 음식을 받아 가지고 그의 방으로 갔으나 방문이 저절로 굳게 닫혀 버렸다. 사리불은 그 신통의 힘으로 방에 들어가 그의 앞에 섰으나, 실수로 발우를 땅에 떨어뜨려 발우가 금강제(金剛際)에까지 내려갔다. 사리불은 또 신통의 힘으로 팔을 뻗어 발우를 집어 올려 그에게 주었으나, 이번에는 그의 입이 다물어져 먹지 못하고 며칠 뒤에야 그 입이 저절로 열렸다. 이리하여 7일 동안 그는 끝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못내 부끄러워하면서 대중 앞에서
모래를 먹고 물을 마시고는 곧 열반에 들어갔다.
그 때 비구들은 이 사실을 보고 못내 괴이하게 여겨, 부처님께 청해 그 본래 원인을 말씀해 달라 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량한 먼 옛날, 제당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와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4방으로 다니면서 교화하셨다. 그 때 구미(瞿彌)라는 장자는 부처님과 그 스님들을 보자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부처님을 집으로 청해 공양하였다. 이렇게 날마다 계속하다가 이 아버지(장자)가 죽고 그 어머니가 계속하려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인색하여 어머니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음식을 한정해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자기 몫을 줄이면서까지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했다.
아들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내어 곧 어머니를 빈방에 가두고는 자물쇠를 채우고 가버렸다. 7일을 굶은 어머니는 몹시 주림에 시달려 아들에게 음식을 청했다. 아들은 ≺모래를 먹고 물을 마시면 넉넉히 살 수 있을 것인데 왜 음식을 찾소≻ 하고, 그만 어디로 가버렸다. 어머니는 끝내 굶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아비지옥에 들어가 고통을 다 받고는, 다시 인간에 태어나 굶주리고 곤궁하기 이와 같았다. 그러나 과거에 그 부처님께 공양했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봉행했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포악한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 그릇을 들리고 자기는 소젖을 짰다. 젖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이제 그만 짜고 남은 것은 두었다가 송아지를 먹이라.’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성을 내어 그 손으로 소젖을 움켜 들고 그 어머니 얼굴과 몸에 뿌렸다. 그 소젖을 뿌린 악업의 힘으로 그의 몸에 어머니의 얼굴과 몸에 묻은 그 자리만큼의 백라(白癩)가 생겼다.”
(3) 부역부(婦逆部)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며느리는 성질이 사나워
예의와 법도를 따르지 않고 항상 그 시어머니 말을 반대했다. 그 뒤에는 계교를 부려 그 남편으로 하여금 그 어머니를 죽이게 했다. 어리석은 그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 곧 그 어머니를 데리고 광야로 나가 손발을 묶고 해치려 했다. 그 몹쓸 역죄(逆罪)는 하늘에까지 통해, 구름과 안개가 4방에서 모여들고 그 밑에는 벼락이 일어나 그 아들을 때려 죽였다. 어머니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며느리는 그 남편이 온 줄 알고 문을 열어 주면서 물었다.
‘죽이고 왔습니까?’
시어머니는 짐짓 말했다.
‘죽이고 왔다.’
이튿날에야 비로소 그녀는 그 남편이 죽은 줄 알았으니, 불효한 죄의 현재의 과보는 이런 것이다. 그 뒤에 그녀는 죽어 지옥에 들어가 무량한 고통을 받았다.”
(4) 기부부(棄父部)
『잡보장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있느니라. 나는 지금 뿐 아니라, 옛날에도 부모ㆍ스승ㆍ노인네를 항상 찬탄하고 공경하였다. 옛날 기로국(棄老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서는 노인이 있으면 모두 멀리 내다 버렸다 어떤 대신도 늙은 그 아버지를 국법을 따라 멀리 내다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효도가 지극해 차마 아버지를 내다 버리지는 못하고 땅을 깊이 파고 비밀한 굴을 만들어 아버지를 거기 숨겨 두고 때를 따라 봉양했다.
그 때 천신(天神)이 뱀 두 마리를 왕궁에 던지면서 말하였다.
‘이들의 수컷과 암컷을 구별하면 너의 나라가 편안할 수 있지만, 만일 구별하지 못하면 너와 네 나라가 7일 후에는 다 멸망하리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고민하면서 곧 신하들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여 제각기 의견을 말했으나 아무도 이것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왕은 곧 온 나라에 영을 내려 말했다.
‘누구든지 이것을 구별하면 큰상을 주리라.’
이 대신은 집에 돌아가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그것은 구별하기는 쉽다. 아주 부드러운 물건을 그 뱀 위에 씌워 두어, 그것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조급히 날뛰면 그것은 수컷이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암컷이다.’[그러므로 율(律)에 ≺흰 모직물로 뱀을 시험하면 가고 머묾이 같지 않다≻ 하였다.] 과연 그 말과 같아서 수컷과 암컷이 구별되었다.
천신은 또 물었다.
‘누가 자는 사람을 깨었다 하고 깬 사람을 잔다 하는가?’
왕은 또 신하들과 의논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대신은 곧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는 학인(學人)이다. 학인은 저 범부들을 깬 사람이라 하고 저 아라한을 자는 사람이라 한다.’
곧 이 말대로 왕은 천신에게 답하였다. 다시 물었다.
‘이 크고 흰 코끼리는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
신하들은 다 의논해 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그 코끼리들을 배에 싣고 배를 못물에 띄워 그 배가 얼마나 가라앉는가를 표해 두었다가 다시 그 배에 돌을 싣고 물에 띄워, 그것이 물에 가라앉는 그 만큼이 코끼리의 무게이니라.’
이로써 그 천신에게 답하였다.
천신은 또 물었다.
‘한 움큼의 물이 큰 바닷물보다 많은데, 이것을 누가 아는가?’
신하들은 의논해 보았으나 또 알 수 없어,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은 알기 쉽다. 즉 어떤 사람이 만일 신해(信解)가 청정한 마음으로 한 움큼의 물을 부처님과 스님들 및 부모와 곤궁한 사람ㆍ병자 등에게 보시하면 이 공덕으로 수천만 겁 동안 무량한 복을 받을 것이요, 바닷물은 아무리 많아도 1겁을 지내지 못하나니, 이 말로 미루어 보면 한 움큼의 물은 저 바닷물보다 수천 배나 많으니라.’
왕은 이 말로써 천신에게 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주린 사람으로 화하여 맞붙은 뼈만 의지하고 와서 물었다.
‘이 세상에 관연 굶주린 고통이 나보다 심한 사람이 있는가?’
신하들은 또 생각해 보았으나 답하지 못하여, 이 대신은 또 이 형상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답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인색하고 탐하고 질투하면서 3보(寶)를 믿지 않고 부모와 스승께 공양하지 못하다가, 죽은 뒤에는 아귀세계에 떨어져 백천만 년 동안 물이나 곡식이란 말도 듣지 못한다. 그 몸은 큰산과 같고 그 배는 큰 골짜기와 같은데, 목구멍은 가는 바늘과 같고 송곳과 같은 머리털에 온몸이 싸여 거동할 때는 4지 뼈마디가 불에 타는 것과 같나니, 이런 사람의 고통은 너의 굶주리는 고통보다 백천만 배나 더하다 하라.’
이 말로써 왕은 천신에게 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어떤 사람으로 화하여, 손과 발에는 수갑을 차고 목 뒤에는 쇠사슬을 지고 몸에서는 불을 내어 온몸이 타서 문드러지면서 물었다.
‘세상에 과연 나만큼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신하들은 갑자기 답하지 못했다.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물어 아버지는 답하였다.
‘세상의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에게 반역하며 남편을 배반하고 3존(尊)을 비방하다가, 오는 세상에는 도산(刀山)ㆍ검수(劍樹)ㆍ화차(火車)ㆍ노탄(鑪炭) 등 지옥에 떨어지고, 불시(沸尿)ㆍ화도(火道)ㆍ도도(刀道) 등의 강에 빠진다. 이런 고통은 무량 무변하여 다 헤아릴 수 없다. 이런 고통은 너의 고통에 비하면 천만 배나 심하다 하라.’
이 말로써 왕은 곧 천신에게 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단정하고 아름답기 세상에 뛰어난 한 여인으로 화하여 또 물었다.
‘세상에 과연 나처럼 단정한 여자가 있는가?’
신하들은 모두 잠자코 답하지 못하므로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곧 말하였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은 3보를 믿고 공경하며 부모에게 효순하며 보시하고 인욕하며 정진하고 계율을 가진다. 그는 천상에 나서 단정하고 뛰어남이 너보다 백천만 배나 더하다. 이에 비하면 너는 애꾸눈의 원숭이와 같다 하라.’
이 말로써 천신에게 답하였다. 천신은 또
전단향나무를 정방형으로 만들어 들고 물었다.
‘이것은 어느 쪽이 머리(뿌리 쪽)인가?’
신하들의 지혜로는 아무도 답하지 못하므로, 이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물어 아버지는 답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다. 그것을 물에 넣어 보라. 뿌리 쪽은 반드시 밑으로 잠기고 꼬리 쪽(나무 끝)은 반드시 물 위로 뜰 것이다.’
곧 이 말로써 천신에게 답하였다. 천신은 그 형상이 꼭 같은 흰 말 두 마리를 보이며 물었다.
‘어느 것이 어미고 어느 것이 새끼인가?’
신하들은 또 아무도 답하지 못하므로, 이 대신은 다시 아버지에게 물어 아버지는 답하였다.
‘저들에게 풀어 주어 보아라. 어미는 반드시 그 풀을 새끼에게 밀어 줄 것이다.’
이렇게 묻는 것을 모두 답하므로 천신은 크게 기뻐하여 그 왕에게 진기한 보물을 많이 주면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당신 국토를 보호하여 다른 외적이 감히 침해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왕은 못내 기뻐하면서 그 대신에게 물었다.
‘그런 것들을 그대 스스로가 안 것인가, 누가 가르쳐 주던가? 나는 그대의그 큰 지혜를 힘입어 우리 나라가 편하게 되었다. 이미 나는 많은 보물을 얻었고 또 보호를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다 그대의 힘이다.’
‘신(臣)의 지혜가 아니옵니다. 무외(無畏)를 베풀어주시면 감히 자세히 아뢰겠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비록 그대에게 만 번 죽어 마땅한 죄가 있다 하더라도 불문(不問)에 붙이겠거늘 하물며 조그만 허물이겠는가?’
대신은 왕에게 아뢰었다.
‘나라의 법은 노인 봉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신(臣)에게는 늙은 아비가 있으나 차마 내버릴 수 없어 왕법을 범하면서 땅 속에 감추어 두었사온데, 지금까지 신이 응답하온 것은 다 아비의 지혜요 신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원하옵나니 대왕께서는 온 나라의 노인 봉양을 허락해 주소서.’
왕은 곧 찬탄하고 기뻐하여 대신이 봉양한 그 아버지를 스승으로 삼고 말하였다.
‘내 나라의 모든 인민의 목숨을 구제했으니, 이런 이익은 나로서는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곧 온 천하에 영을 내려 말하였다.
‘노인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다 노인을 효도로 봉양하게 한다. 만일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스승을 공경하지 않으면 그 자에게는 큰 죄를 주리라.’
그 때의 그 아버지는 바로 나요, 그 때의 그 대신은 저 사리불이며 그 때의 그 왕은 저 아사세왕이요, 그 때의 그 천신은 바로 아난이니라.”[그러므로 속담에 ‘노인을 봉양하고 말[言]을 구걸한다’한 것이다.]
또 『잡보장경』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바라내국(波羅柰國)에 좋지 못한 법이 세상에 유행하여, 아버지 나이 60이 되면 부계(敷★)를 입고 문을 지키게 했다. 그 때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이 아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버지에게 부계를 주어 신기고 문을 지키게 하라.’
그런데 그 집에는 부계가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아우는 반을 잘라 아버지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형이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요,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은 아버지께 문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 형이 아우에게 물었다.
‘왜 그 부계를 모두 드리지 않고 반을 잘라 드렸느냐?’
아우가 대답했다.
‘마침 딱 하나 뿐인데, 반을 자르지 않고 다 드리면 이 뒤에 또 그것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형이 물었다.
‘뒤에 또 누구에게 주겠다는 것이냐?’
아우는 대답했다.
‘어찌 이것을 집에 두었다가 형님께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은 물었다.
‘왜 내게 주려는 것이냐?’
아우는 대답했다.
‘형님도 늙을 것 아닙니까? 형님 아들도 형님을 문지기 하라 할 것입니다.’
형은 이 말을 듣고 놀라면서 말했다.
‘나도 그렇게 될 것인가?’
아우는 말했다.
‘누가 형님대신 하겠답니까?’
이어서 형에게 말했다.
‘이런 악법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는 함께 재상에게 가서 이 법의 잘못됨을 말했다. 재상도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다 늙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곧 왕에게 글을 올렸다. 왕도 그 말이 옳다 하고 곧 전국에 영을 내렸다.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라. 먼저의 그 악법을 금하노니, 다시는 그런 것을 말라.’”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이 5역죄(逆罪)란 아버지를 죽이면
죄가 더 가볍고 어머니를 죽이면 더 무거우며, 아라한을 죽이면 어머니를 죽인 죄보다 더 무겁고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면 아라한을 죽인 죄보다 더 무거우며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면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죄보다 더 무거우니라.”
게송을 읊는다.
임금은 충신을 사랑하고
부모는 효자를 사랑하거니
하물며 부처님은 큰 자비로
고통 없애고 즐거움을 주심이랴.
그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내가 살려고 부모님을 해치다가
한번 저 지옥에 떨어지면
여러 겁을 거기서 지낼 것이다.
감응연(感應緣)[이렇게 5역(逆]과 악심으로 3보(寶)를 대하다가 현재에 화를 당하는 사실은 여러 편(篇)에 무수히 적혀 있다. 지금은 불효한 자가 현재의 과보를 받는 세 가지 증험만을 대략 적는다.]
주(周)의 왕언위(王彦偉)
제(齊)의 하군평(河君平)
수(隋)의 어느 며느리의 시어머니 봉양
주(周)의 왕언위(王彦偉)
주(周)나라의 왕언위(王彦偉)는 하남(河南) 사람이다. 그의 성질은 흉악하고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부모는 외로운 아들이라 지극히 사랑하면서, 항상 악인들과 어울려 놀지 말고 또 사냥도 중지하라고 타일렀다. 그것은 혹 사냥하다가 신명을 손상함으로써 뒤를 잇지 못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러나 언위는 아버지의 타이름도 듣지 않고 항상 사냥을 계속했으며 또 악인들과 어울려 항상 못된 짓을 저질렀다.
부모는 그가 악행을 중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50대의 매를 때렸는데 몸에 부스럼이 생겨 밖에 나가지 못했다. 부모를 원망한 그는 부모가 잠든 틈을 보아 가만히 흙 포대로 부모의 입을 누르고, 또 그 위에 눌러 앉아 숨을 통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것은 부모가 죽더라도 상처를 남기지 않고 또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갑자기 어떤 귀신이 방에 들어와 온 집안을 뒤흔들어 사람들이 다 깨었고, 귀신은 언위를 붙들어 평상 앞에 팽개쳤다. 언위는 반듯이 눕게 되고 어느새 흙 포대는 그 배 위에 있었다. 부모는 놀라 깨어 일어나 그 아들 배 위의 흙 포대를 잡아 당겼으나 꼼짝하지도 않았다. 언위는 또 귀신이 흙 포대를 누르는 것을 보자 더욱 괴로워 거의 죽게 되어, 큰 소리로 살려 달라고 외쳤다. 온 집안의 노소들과 또 이웃 사람까지 나와 힘을 합해 흙 포대를 잡아 당겼으나
끝내 끌어내지 못했다. 언위는 소리는 내지 못하고 다만 손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합장하고 죽었다.
제(齊)의 하군평(河君平)
제(齊)나라 하군평(河君平)은 상주(相州) 사람이다. 그 어머니 배(裵)씨는 젊어서 군평을 낳고 그 뒤에는 잉태하지 못했으므로, 부모는 마치 군평을 자기 눈처럼 지극히 사랑했다.
군평은 자라나면서 공부는 하려 하지 않고 방종하게만 놀다가 나이 20이 되었다. 그러나 부모는 그를 너무 사랑하여 딴 방에 있지 못하게 했다. 그 아버지는 나라의 사신으로 밖에 나가 여러 해만에 돌아왔다. 아버지가 출타한 뒤에 어머니는 아들과 사통(私通)하다가, 아버지가 돌아오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여 후원에 묻고, 남에게는 아버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속였다. 갑자기 뇌성 벽력이 일어나 그 아버지 시체가 드러난 뒤에 날은 개이고 시체에는 그 사연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친족과 이웃들이 관청에 고발하고 이것이 왕에게까지 알려졌다. 왕은 영을 내려 어머니 배씨를 죽이고 그 시체를 그대로 두고 묻지 못하게 했다.[이상 두 가지 증험은 『이귀심록(李歸心錄)』에 나온다.]
수(隋)의 어느 며느리의 시어머니 봉양
수(隋)나라 대업(大業)때 하남(河南) 사람으로서, 어느 며느리는 그 시어머니에게 매우 불효했다. 그 시어머니는 장님이었으므로 그녀는 지렁이로 국을 끓여 시어머니를 먹였다. 시어머니는 그 맛이 이상하다 하여 가만히 지렁이 한 토막을 숨겨 두었다가 아들에게 보였다. 아들은 그것을 보고 화를 내어 그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었다. 그녀가 막 도착하기 전에 갑자기 천둥이 일어나면서 그녀는 간 곳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그녀는 공중에서 떨어졌는데, 옷은 여전하나 그 머리가 흰 개머리[白狗頭]로 변하고 말은 변하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녀는 대답했다.
“시어머니께 불효했기 때문에 천신(天神)이 벌을 주었습니다.”
남편은 그녀를 관청으로 보내었다.
그녀는 때때로 시장에 나와 걸식하다가 그 뒤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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