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법원주림(法苑珠林) 46권
법원주림 제46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44. 사신편(思愼篇)[여기에는 5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신용부(愼用部) 신화부(愼禍部)
신경부(愼境部) 신과부(愼過部
(1) 술의부(述意部)
신중히 생각하여 허물을 막는 것은 근심을 없애는 이치이고, 입을 다물고 잡념을 그치는 것은 악을 떠나는 근본이다. 시작을 경계하고 마침을 삼가는 것은 군자의 염매(鹽梅)요, 처음을 공경하고 끝을 조심하는 것은 생명을 기르는 요긴한 이치이다. 인연의 일어남을 깨치고 생멸의 덧없음을 알며, 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임을 분별하고 평등의 묘한 문(門)을 비추어 보아, 그 이치를 보존하고 그 발자국을 버리며, 그 화를 경계하고 그 복을 부르면, 이것은 신(神)의 영(靈)을 편하게 하고 사물의 도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2) 신용부(愼用部)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국왕은 국내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가려 대신을 삼으려 했다. 왕은 사람을 시험하여 그의 행동을 따라 중죄를 주려고 신하들에게 명령하되, 발우에 기름을 가득히 담아 그 사람을 시켜 그것을 들게 하고는 북문에서 남문으로 나와 20리 밖에 있는 조희(調戱)라는 동산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 한 방울이라도 기름을 땅에 떨어뜨리면 그 머리를 베라 하고 그 이유는 묻지 말라 했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따라 발우에 기름을 가득 부어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들고 매우 조심하면서 길을 떠났다. 수레와 말을 타고 길을 메운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걸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친척과 처자들이 다가와도 안정된 마음은 좌우를 돌아보지 않았으며, 온 나라 사람들이 몰려나와 떠들어도 마음을 단정히 하여 그들을 보지 않았고, 왕녀와 미녀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다가올 때 사람들은 다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으나 그는 일심으로 발우를 받들고 흔들리지 않고 또한 망상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았으며, 오로지 발우를 받들고 그들의 말소리는 듣지 않았다.
이런 게송이 있다.
교묘한 재주를 조용히 부리면서
그 춤은 가장 아름다워
모든 사람들 거기 빠졌네.
비유하면 저 예쁜 악마 계집이
애욕을 떠난 자를 움직임과 같거늘
하물며 저 평범한 사람들이랴.
그들이 그의 곁을 오갔지만
발우를 든 마음은 기울지 않았네.
또 사나운 코끼리와 말이 성 안에서 뛰어나오고 성 안에서는 불이 일어나 백성들은 서로 부르짖으면서 ‘빨리 불을 피하고 구덩이에 떨어지지 말라’고 외칠 때, 관리들이 모두 나와 불을 꺼도 그는 일심으로 발우를 받들어 한 방울의 기름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또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리며 사나운 바람이 나무를 꺾고 먼지가 일며 번개가 번쩍거리고 벼락이 때려 새와 짐승이 맞아 죽고 사람이 놀라 부르짖어도, 그는 오로지 기름을 생각하고 그런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기름 발우를 들고 그 동산까지 갔는데 기름은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신하들은 이 사실을 왕에게 여쭈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그를 대신으로 삼았다.
수도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같다. 비록 저 사나운 음욕과 분노와 수치가 일어나 그 마음을 흔들 때라도
안으로 살피고 밖으로 다스리며 마음을 거두어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니, 삼매의 고요한 뜻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마치 기름 발우를 받든 사람이
흔들리지 않아 기름을 떨어뜨리지 않고
미묘한 슬기의 뜻, 바다와 같아
일심으로 기름 그릇을 잘 받드는 것처럼.
만일 누구나 도를 배우려거든
그 마음을 붙잡기 이렇게 하라.
마음에 모든 덕의 등불을 밝혀
일체의 더러움을 모두 없애라.
여러 가지의 색(色)의 욕심이
분노와 수치를 일으킬 때에
뜻이 있으나 방일하지 않으면
그것들 사라지고 자제하게 되리.
사람의 몸에 병이 있을 때
약으로 그것을 고치는 것처럼
마음의 병도 그와 같나니
4의(意)로 그것을 없애 버려라.”
또 『대집경(大集經)』의 「제룡품(濟龍品)」에서 말하였다.
“그 때 그 대중 가운데 파라기리사(頗羅機梨奢)라는 눈 먼 용이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큰 성인이신 세존이시여, 나를 구제해 주소서. 나를 구제해 주소서. 나는 몸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갖가지 벌레들이 내 몸을 파먹고 끓는 물 속에서 잠시도 즐거움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리사야, 너는 전생에 불법 안에서 비구가 되어 계율을 깨뜨리고, 마음에는 온갖 거짓을 가졌으면서 밖으로는 좋은 상을 나타내며, 권속을 널리 탐을 내어 제자를 많이 두었으며 이름이 사방에 널리 퍼졌었다. 이리하여 ≺우리 스승님이 아라한의 과(果)를 얻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많은 공양을 받는다≻하면서 혼자 그것을 다 먹었었다. 그리고 계를 지키는 비구를 보면 도리어 욕설을 퍼부어 그를 괴롭혔다. 그들은 고민하면서 속으로 ≺나는 세상에 날 때마다 네 몸의 살을 먹으리라≻고 이렇게 맹세하였다. 그런 악업으로 너는 죽어 용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네 몸이요 중생들은 그 맹세의 힘으로 네 살을 먹는 것이며,
그 나쁜 업의 인연으로 너는 장님의 과보를 받은 것이다. 또 전생의 무량한 겁 동안 적동(赤銅)지옥에 있으면서 항상 온갖 벌레들의 밥이 되었느니라.’
용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은 지금 모두 지성으로 참회하나이다. 원하옵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이 고통을 빨리 벗어나게 해 주소서.’
그 용들 중에서 26억의 굶주린 용들은 모두 과거의 몸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은 지난 세상에 불법 안에서 출가했으나, 온갖 악업을 다 짓고 셀 수 없이 많은 몸이 악도에 떨어졌으며, 그 남은 과보로 용으로 태어나 큰 고통을 받습니다. 마치 우리는 저 푸른 빛깔의 용과 같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용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물을 가지고 와서 내 발을 씻으라. 너희들의 그 재앙이 점점 사라지게 하리라.’
그리하여 용들은 다 손으로 물을 움켜 들었다. 그러나 그 물은 다 큰 돌이 되어 손에 가득하고 또는 불로 변하여 크고 사나운 불꽃이 일어났다. 그들은 그것을 버리면 다시 생기고, 이렇게 일곱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들은 다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눈물이 비 오듯 했다. 부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큰 서원을 세우게 하고, 그들이 그렇게 하자 불은 다 꺼졌다. 이렇게 여덟 번 되풀이 한 뒤에 그들은 물을 떠서 여래의 발을 씻고 진심으로 참회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희들은 미륵불 때에 사람의 몸을 얻고, 그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정진하고 계를 지녀 모두 아라한이 되리라.’
그 때 그 용들은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스스로의 과거를 생각했다.
‘불법 안에서 혹은 속인이 되었고, 친족의 인연으로 다시 설법을 들으러 오갔으며, 그 인연으로 신심을 지녀 갖가지 꽃과 과실과 음식으로 보시하고, 여러 비구들과 함께 차례를 따라 그것을 먹기도 했다.’
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거에 4방승(方僧)의 꽃을 받고 그 과일과 음식을 먹었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에 가서 여러 스님께 보시하고 혹은 예배하며 이렇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바시불 때부터 그 부처님 법 가운데에서 속인으로 있었습니다.’
내지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석가모니불의 법 가운데에서 속인이 되어 친구를 문안하는 인연과 혹은 오가면서 설법을 듣는 인연으로 절을 오갔으며, 신심이 있는 사람이 스님에게 공양하려고 꽃과 과일과 갖가지 음식을 보시하면, 비구는 그것을 먹고 다시 내게 돌려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얻어먹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지옥에서 무량한 겁 동안 사나운 불 속에서 혹은 타고 혹은 구워졌으며, 혹은 구리쇳물을 마시고 혹은 뜨거운 철환(鐵丸)을 머금었습니다. 이 지옥에서 나와서는 축생이 되었고 축생의 몸을 버리고는 아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갖가지로 고통을 받았으나 악업이 다하지 않아 다시 용으로 태어나서 항상 고뇌를 받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용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악업은 부처님 물건을 훔친 것과 다름이 없고, 5역업(逆業)에 비하면 그 죄는 반 정도이다. 너희들은 지금 다 3귀계(歸戒)를 받아 일심으로 선을 닦으면 이 인연으로 그 현겁(賢劫)에서 최후의 부처님인 누지불(樓至佛)을 만나 그 부처님 세상에서 죄가 모두 없어질 것이다.’
그 때 그 용들은 이 말을 듣고 다 지극한 마음으로 몸과 목숨을 다해 각각 3귀계를 받았다.
그 때 대중 가운데 눈 먼 용의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입안이 다 문드러지고 온갖 벌레가 가득하여 그 꼴은 마치 대소변과 같고, 내지 극히 더러워 마치 여자의 생식기에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과 같아 보기조차 싫었다. 갖가지 피고름이 흘러나오며 온몸에는 항상 모기와 등에가 피를 빨고 있어 보기도 어려웠다.
그 때 세존께서는 크게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으로 그 눈 먼 용의 아내가 그처럼 고통받는 것을 보시고 물으셨다.
‘여자 용아,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이런 나쁜 몸을 받았는가? 지난 세상에 무슨 업을 지었는가?’
그는 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지금 제 몸은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 잠시도 그치지 않습니다. 비록 말하고자 하나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과거 36억 년의 일을 기억합니다. 백천 년 동안은 악룡으로 태어나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 하루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과거 91겁에 비바시불의 법에서 비구니가 되었으나 온갖 애욕을 생각하기가 술에 취한 사람 같았습니다. 비록 출가는 했으나 법답지 못하여 계를 범하고 항상 3악도에서 태워지고 구워졌습니다. 이 몸을 구제해 주소서, 이 몸을 구제해 주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마치시고 그 용의 입안에 물을 쏟아 넣었다. 그러자 불은 꺼지고 고름과 벌레들은 모두 없어졌다. 그녀는 시원하고 깨끗해진 입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큰 성인 여래시여, 저는 과거 일을 기억합니다. 가섭불 때에 속인으로 있으면서 논을 갈고 있었습니다. 어떤 비구가 제게 와서 돈 50전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에게 ≺좀 기다리십시오. 곡식이 익으면 나는 당신에게 음식을 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비구는 다시 ≺만일 50전이 안 되겠으면 10문(文)이라도 주십시오≻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성을 내어 그 비구에게 ≺10전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비구는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또 어느 때에는 절에 가서 숲 속에 들어갔다가, 스님들 소유인 암라 열매 10개를 몰래 훔쳐먹었습니다. 그 업의 인연으로 지옥의 고통을 받았고, 그 업이 다하지 않아 늪 속의 주린 용의 몸을 받고는
항상 온갖 벌레에게 먹혀 고름과 피가 흘러 넘치며 배고프고 목마름에 괴로워했습니다. 또 저 비구에게 성을 낸 그 악업의 인연으로, 그가 죽어서는 조그만 독룡이 되어 내 겨드랑 밑에 나서 내 피를 빨며 그 뜨거운 기운이 내 몸에 닿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내 몸에는 뜨거운 피와 고름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나를 가엾이 여겨 구제하여 이 원수의 독룡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 때 세존께서는 손으로 물을 뜨시고 성실(誠實)한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에 흉년의 세상에서 몸의 길이와 넓이가 한량이 없는 큰 중생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신통의 힘으로 공중에 올라가 이렇게 외쳤다.
≺저 늪 속에 부진(不瞋)이라는 큰 벌레가 있다. 너희들은 저기 가서 그 벌레 살을 먹으면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그 세상의, 사람인 듯 하면서도 사람이 아닌 것들은 내 말을 듣고 모두 거기 가서 서로 다투어 그 살을 먹었다.’
이렇게 진실하고 성실한 말로 말씀하셨을 때 이 용의 겨드랑이 밑의 작은 용이 곧 기어 나왔다. 그리고 이 두 용이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언제나 이 용의 몸을 버리고 이 재앙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악업은 5무간(無間)지옥의 다음으로 크고 무겁다. 왜냐 하면 4방승(方僧)의 물건이나 혹은 현재 거기 사는 스님의 물건이나 독실히 믿는 단월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시한 꽃ㆍ과일ㆍ과수원 등의 음식과 생활에 필요한 평상ㆍ침구ㆍ방석ㆍ약품 등 일체 생활 필수품을 제 마음대로 사사로이 쓰거나, 혹은 가지고 나가 친구나 고향 속인들에게 주면, 이 죄는 아비지옥에서 받는 과보보다 더 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삼귀계를 받고 삼보에 귀의하면 저 시원한 물 속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세 번 외우고
세 번 받고는, 곧 몸이 안온해져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용들을 위해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차라리 저 예리한 칼로 그 몸의
4지(支)와 피부와 또 살을 벨지언정
신심이 있는 시주들이 보시한 음식을
속인이 먹으면 실로 큰 재난이 되리.
차라리 수미산 같은 큰 불덩이를
손으로 잡아먹을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은
스님에게 보시한 음식일랑 먹지 말라.
차라리 예리한 칼로
온몸의 껍질을 회쳐 먹을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로서
스님들의 잡식(雜食)을 받아먹지 말라.
차라리 그 몸을 저 방에 가득한
사나운 큰 불꽃 속에 던질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은
스님들의 자리에 앉거나 눕지 말라.
차라리 불에 달군 예리한 저 송곳을
손으로 잡아 그 손이 다 탈지언정
집에서 사는 속인들은
스님들의 물건을 사사로이 쓰지 말라.
차라리 훌륭하고 좋은 쇠 다듬잇돌에
그 몸의 살을 펴서 저밀지언정
집을 떠난 저 청정한 사람에게
잠깐이나마 성을 내지 말지니라.
차라리 제 손으로 두 눈을 후벼 빼어
저 땅에 던져 버릴지언정
저 선한 법을 잘 닦아 행하는 사람에게
성낸 마음을 품고 바로 보지 말라.
차라리 뜨거운 쇠로 그 몸을 얽어
이리 저리 움직이고 앉거나 누울지언정
성낸 마음으로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스님이 보시 받은 깨끗한 옷을 입지 말라.
차라리 잿물이나 짠물을 마셔
뜨거운 그 물이 불처럼 입을 태울지언정
탐욕의 독하고 악한 마음으로
스님들이 보시 받은 깨끗한 옷을 입지 말라.
세존께서 이 게송을 다 읊고 나자 1만 4천의 모든 용이
다 3귀계를 받고 과거ㆍ현재의 모든 업보의 고뇌에서 벗어나게 되어 3보를 깊이 믿는 그 마음이 물러나지 않았다. 또 80억의 용들도 다 3보에 귀의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혹은 비구가 되어 얻은 갖가지 생활 도구는 다 신심이 있는 단월이 보시한 것이니, 혹은 그것을 스스로 먹거나 혹은 남에게 주거나 혹은 여럿이 그것을 훔쳐 숨겨 두거나 사사로이 쓰면, 그는 이런 업으로 3악도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다.
또 어떤 중생은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 때문에 집을 나와 부유함과 해탈과 안락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출가한 뒤에는 게으르고 타락하여 경전을 독송하지 않고, 선정과 슬기와 정진을 익히지 않고 내버리며, 승려의 모든 일만을 알기를 좋아한다.
또 어떤 비구는 밤낮으로 정진하여 선법을 즐겨 닦고 경전을 독송하며 좌선하고 슬기를 익히면서 잠깐도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이 인연으로 4배(輩)의 갖가지 공양을 얻는다. 그런데 일만을 아는 사람은 이익을 얻어서는 혼자만 먹거나 혹은 훔쳐서 속인 친구에게 준다. 이런 인연으로 오랫동안 악도(惡道)에 있으며, 거기서 나와서는 다시 이런 우매한 인간이 되어 미래 과보의 가볍고 무거움을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 분부하노니, 너희 사문 제자들은 내 법을 항상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문이다. 나는 진실된 법을 행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칭하지 말라. 여러 스님에 의해 받은 보시, 즉 떡이거나 나물이거나 과일이나 꽃 등, 이것들은 다 스님들이 쓸 물건들이니, 부디 이것을 저 속인들에게 주지 말라. 또 ‘이것은 내 물건이다’ 하면서 스님들과는 그것을 따로 쓰지 말라. 또 여러 스님들 물건을 따로
저축하여 이자놀이를 하거나 갖가지로 팔아 ‘이득을 본다’고 여겨져서 세상의 비웃음을 사지 말라. 또 비싼 것을 내어 싼 것을 거두어들이면서 세상 사람들과 이익을 다투지 말라. 또 음식을 위해서나 스님들의 인연을 빙자하여 저 중생들을 3악도에 떨어지지 말게 하고, 부디 선법을 권하고 그리로 인도하여 저 비구들로 하여금 3보를 참으로 믿게 하고, 중생들과 내지 부모를 잘 거두어 모두 안온하고 해탈을 얻게 하라.”
또 『십륜경(十輪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4방승(方僧)의 생활 기구와 잡물(雜物) 등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계를 지키거나 계를 깨뜨리는 사람들에게 주지 말라. 그렇게 하면 이 인연으로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다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의 「제룡품(濟龍品)」에서 말하였다.
“그 때 사가라용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용들 중에서 혹 어떤 용들이 받는 즐거운 과보는 마치 저 하늘사람들과 같고, 혹은 그 즐거움이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혹은 아귀, 혹은 아수라, 혹은 저 지옥의 중생처럼 큰 고통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이 용왕의 아들 청련화면(靑蓮華面)이 부처님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나는 어떤 악업의 인연으로 이 용으로 태어나서, 몸은 크고 단정하나 모든 색(色)과 촉(觸)의 수용(受用)이 마치 불에 타는 것 같으며 항상 옷이 없이 맨몸으로 다니는 것입니까? 그러하온데 우리 부왕(父王)이 받는 즐거움은 가장 훌륭하여 저 전륜성왕의 과보와 다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청련화면아, 그 이유를 말하리라. 과거 31겁 전에 시기라는 부처님께서 계셨고, 그 때 배다부사(培多富沙)라는 왕이 있었다. 그 왕은 3개월 동안 저 부처님과 4종의 사문과(沙門果)를 얻은 무량 백천의 큰 보살들에게 의복ㆍ음식ㆍ
약품 등 갖가지를 공양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그 설법을 듣고는 곧 보리심을 내었고 또 절을 지어 공양했다.
그 왕의 첫째 태자 배다사수제(裵多娑樹帝)는 부처님을 뵈옵고 설법을 듣고는, 생사 유전에 대해 큰 공포를 느껴 그 부왕에게 출가하기를 청했다.
왕은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하라.’
그는 출가한 뒤에 그 왕에게 다시 청했다.
‘저는 절에 가서 있고 싶습니다.’
왕은 또 말했다.
‘언제든지 가라.’
그 때 그 시기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은 그 절에 있으면서 음식을 마음대로 수용했다. 배다사수제는 이것을 보고 질투하여 항상 성을 내어 스님들을 꾸짖었다. 그 때문에 그 스님들은 모두 그 절에서 떠나 버렸다. 스님들이 떠나는 것을 그는 기뻐하면서 혼자 생각했다.
‘저들이 가서 좋구나. 나는 이제 아주 편하다.’
그리하여 절 안의 의복과 음식을 마음대로 수용하면서 누가 와서 머물려 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이 악업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큰 지옥에 떨어져 무량 천만 나유타 동안을 지내면서 갖가지로 불에 탔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서는 아귀 속에 태어나 무량겁 동안 고통을 받았다. 아귀로 죽어서는 다시 지옥에 떨어지고 지옥을 벗어나서는 다시 아귀로 태어났다. 이렇게 30겁을 지내면서 그 유전 속에서 갖은 고통을 다 받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청련화면아, 저 배다사수제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너는 과거 악업의 인연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가운데 나서 돌아다니면서 고통을 받았다. 이 31대겁 동안 갖은 고통을 다 받으면서 잠깐도 끊이지 않았으나, 또 업이 남았기 때문에 이 용으로 태어나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 것이다.’
청련화면은 이 말씀을 듣고 큰 소리로 울면서 온몸을 땅에 던져
부처님께 예배하고 아뢰었다.
‘나는 진심으로 부처님께 참회하고 다시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나는 지금 지극한 정성을 골수에 넣어 3보께 귀의하오며, 내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다, 장하다. 이렇게 내게 귀의하면 그 업이 다 없어지고 여기서 죽으면 미륵부처님을 만나 사람의 몸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미륵불 앞에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될 것이다.”
(3) 신화부(愼禍部)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나라가 있었다. 5곡(穀)은 풍성하고 백성은 편안하고 아무 병이 없으며 밤낮 음악이 울리고 사람들은 걱정이 없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물었다.
‘나는 천하에 어떤 화(禍)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신하들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왕은 한 신하를 시켜 이웃 나라에 가서 구해 보라 했다. 그 때 천신(天神)은 사람으로 화(化)해 시중에서 그것을 팔고 있었는데 그 모양은 돼지와 같았다. 그는 그것을 철사에 묶어 팔고 있었다. 신하는 그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천신이 말하였다.
‘이것은 화모(禍母)라는 것입니다.’
신하는 말했다.
‘이것을 팔겠는가?’
‘팔 것입니다.’
신하는 물었다.
‘값이 얼마요?’
천신은 답하였다.
‘천만 냥입니다.’
신하는 물었다.
‘이것은 무엇을 먹고 사오?’
천신은 대답했다.
‘바늘 한 되씩 먹습니다.’
신하는 곧 집집마다에 명령하여 바늘을 내놓아라 했다. 이리하여 백성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바늘을 구하느라고 온 고을이 시끄러웠으므로 백성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그 폐가 적지 않았다.
신하는 왕에게 아뢰었다.
‘화모는 얻었사오나 백성들을 소란하게 하여 남녀들이 모두 할 일을 잃었습니다. 저것을 죽여 버리고 싶사온데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곧 허락하였다. 그래서 성밖으로 끌고 나가 죽이려 했다. 그러나 창으로 찔러도 창이 들어가지 않고 도끼로 찍어도 찍히지 않으며 칼로 해부해도 죽지 않았다. 나무를 쌓고 불에 살라 몸이 불처럼 붉게 타자 곧 달아났다. 그러자 마을을 지나면 마을을 태우고 저자를 지나면
저자를 태우며 성에 들어가면 성을 불사르고 나라에 들어가면 나라를 불살랐다. 그래서 백성들은 소란하고 굶주리며 곤궁했다. 이것은 다 앉아서 즐거움에 싫증이 나서 화모를 삼음으로써 받는 고통이니라. 이상은 여색(女色)을 탐하는 욕망에 불타는 남자들이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고통을 모름[不知]에 비유한 것이다.”
(4) 신경부(愼境部)
공작(孔雀)보살이 여러 하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비구로서 악명(惡名)을 두려워하거든 저 모든 허물에서 빨리 떠나라. 이른바 여자들이 시시덕거리는 곳에 들어가지 말고, 술집에 들어가지 말며, 술장수를 가까이 하지 말고, 그와 서로 말하지도 말며, 술을 즐기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그와 함께 말하지도 말라. 큰 악을 먼저 지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며, 음흉하고 독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를 버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도박꾼을 가까이 하지 말고, 광대를 가까이 하지 말며, 어린애를 가까이 하지 말고, 여색(女色)에 빠진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탐욕이 많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며, 남을 속이는 장사치를 가까이 하지 말고, 시장의 사기꾼으로서 남의 미움을 사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강을 파는 사람[掘河池人]을 가까이 하지 말고, 황문(黃門)의 여자와 한 걸음도 동행하지 말며, 코끼리 다루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말 부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생선회 장수를 가까이 하지 말라. 단견(斷見)에 떨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등, 이런 악인들과는 친하지 말라. 이런 사람과 친하면 반드시 그 행이 같아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비구는 악명을 두려워하여 이런 행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과는 한 걸음도 동행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만일 누구나 불선(不善)을 가까이하면
그는 곧 선하지 않은 사람된다.
그러므로 모든 악을 떠나고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지 말라.
어떤 사람을 친하기에 따라
자주자주 서로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함으로써 그 행이 같아져
혹은 선하고 혹은 선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을 구하는 모든 사람은
부디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라.
그렇게 하면 즐거움 얻고
선하면 곧 곤고(困苦)하지 않다.
선을 가까이 하면 공덕이 늘고
악을 가까이 하면 악이 더 심해진다.
공덕과 또 악한 모습을
이제 이렇게 대강 말했다.
만일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로써 좋은 명예를 얻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어느새 남의 천대받는다.
언제나 선인을 가까이 하고
악한 벗일랑 멀리 떠나라.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함으로써
모든 악업을 버릴 수 있다.”
(5) 신과부(愼過部)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철환(鐵丸)을 불 속에 넣어 그것이 불빛과 같아졌을 때 그것을 부드러운 솜으로 싸면 어떻겠느냐? 비구들아, 그 솜은 빨리 타겠느냐?’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비구가 촌락 근처에 산다 하자. 그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그 촌에 들어가 걸식할 때, 몸을 잘 단속하지 않고 근문(根門)을 지키지 않고 생각을 잡아매지 않은 채, 만일 젊은 여자를 보면 좋지 못한 생각으로 그 얼굴에 집착하여 애욕을 일으킬 것이다. 애욕은 그 마음을 태우고 그 몸을 태워 그만 계를 버리고 타락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어리석은 비구는 오랫동안 의로운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는 그 몸을 단속하고 근문을 잘 지키고 생각을 매고 촌락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옛날 어떤 삵 한 마리가 몹시 굶주려 쥐구멍 앞에서 쥐새끼를 엿보면서, 쥐새끼가 나오기만 하면 잡아먹으리라 하고 있었다. 마침 쥐새끼가 구멍에서 나와 놀고 있었다. 그 때 삵은 곧 그것을 잡아 삼켰다. 쥐새끼는 몸이 작았으므로 바로 삵의 뱃속으로 들어가 그 내장을 갉아먹었다. 내장을 갉아먹을 때 삵은 고통을 못 견뎌 미친 듯이 빈집과 무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칠 줄 모르다가 드디어 죽고 말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우치한 비구는 마을을 의지해 있으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그 몸을 잘 단속하지 않아 근문을 지키지 않고 생각을 잡아매지 않고 있다가, 여자를 보고는 부정한 생각을 일으키고 그 얼굴에 집착하여 애욕을 낸다. 애욕의 불길이 그 몸과 마음을 태우면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절을 좋아하지 않고 계를 버리고 타락한다. 그리하여 이 우치한 사람은 오랫동안 항상 이롭지 못한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비구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근문을 잘 지키며 바른 생각에 마음을 잡아매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해야 하느니라.’”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나무 절구공이를 쉬지 않고 항상 쓰면 그것이 밤낮으로 닳는 것처럼, 이와 같이 비구도 본래부터 늘 근문(根門)을 닫지 않고 음식의 양을 모르며, 초저녁에도 새벽에도 깨어 있지 않고 선법을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선법이 밤낮 닳아 늘지 않는 것이 저 나무절구공이와 같으니라.’”
또 『자애경(自愛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갈 때 마음에 독한 생각을 품고 입으로 독한 말을 뱉으며 몸으로 독한 업을 행하면, 이 세 가지는 마음과 입과 몸에서 나와 그 악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가해진다. 중생은 그 해독을 입고 곧 원한이 맺혀 기어코 그것을 갚으려 한다. 혹은 현세에서 갚고
혹은 죽은 뒤에 혼령이 천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갚는다. 그래 인간과 축생과 귀신으로 태산에서 서로 싸우게 된다. 이것은 다 숙명(宿命)에 의한 것이요 함부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은 법을 위한 마음이요
마음에서 속마음을 귀하다 한다.
마음을 시켜 악을 짓게 하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죄의 괴로움이 스스로를 쫓아오는 것이
수레가 바퀴자국 밟는 것과 같다.
마음은 법의 근본이 되고
마음은 마음 부림을 귀하다 한다.
마음속으로 선을 늘 생각하고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면
복과 즐거움이 스스로를 따라오는 것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집에 있는 보살은 혹 계를 깨뜨리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에게 성을 내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가엾이 여기고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그치기를 권하여 착한 마음을 내게 하라. 애써 충고해도 고치지 않는다 해서 비방하거나 또 성을 내어 함부로 그의 허물을 보지 말지니, 그렇게 함으로써 이 현겁(賢劫)에서 어떤 보살의 비방이 있었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구류손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독인(禿人)으로서 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중생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것이니,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거늘 내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만일 남을 알려고 하면 혹 스스로 다칠 수 있는 것이니, 중생을 헤아리는 것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경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남을 해치려 하면 곧 스스로를 해칠 것이다.’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개가 있어도 빈 병이 있고
마개가 없어도 빈 병이 있으며
마개가 있어도 찬 병이 있고
마개가 없어도 찬 병이 있다.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이런 네 종류의 사람이 있어
그 위의와 공덕의
있고 없음도 그와 같음을.
만일 일체지가 아니면
어떻게 사람을 헤아릴 수 있으며
어떻게 그 위의만 보고
곧 그 공덕을 알 수 있으랴.
바로 알고 선한 마음 있으면
그것을 현인(賢人)의 모습이라 하나니
다만 외양의 위의만을 보고
어떻게 그 속을 알 수 있으랴.
만일 외양으로 그 속을 헤아려
업신여겨 천대하는 마음을 내면
그 몸과 선근을 모두 망치고
죽어서는 저 악도에 떨어지리.
겉으로 거짓의 위의를 나타내어
어질고 착한 체 돌아다니면
그것은 다만 말뿐인 것이
천둥치며 비 오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경전에 말하였다.
“배우지 못했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배운 사람은 부처님처럼 공경하라. 오직 지혜가 있는 이라야 번뇌를 부술 수 있으며, 만일 남을 헤아리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다. 오직 부처의 지혜만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니, 이런 일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디 계를 깨뜨린 사람에 대해서도 성을 내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자라 한 마리가 있었다. 큰 가뭄이 들어 호수가 다 말라 버렸으므로 자라는 먹이가 있는 다른 못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 때 큰 학 한 마리가 그 곁에 왔다. 자라는 그에게 구제해 주기를 청했다. 학이 자라를 물고 도시 위를 날아 지나갈 때, 자라는 잠자코 있지 못하고 물었다.
‘여기가 어딘데 왜 자꾸 가기만 하는가?’
학이 곧 대답하자, 그만 입이 열렸으므로 자라는 땅에 떨어져 사람들이 잡아먹었다.
대개 사람도 어리석어 입을 삼가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비유한 것이다.
또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네 가지 일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복을 얻어 가난하지 않게 된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한창 젊었을 때에도 삼가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늙어서도 정진하며 음탕함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재물이 있어
항상 보시하기를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스승에게 나아가 공부하면서 바른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 네 가지를 행하지 않고 세상이 항상 있다고 생각하여 성패(成敗)를 헤아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모두가 흩어지면, 마치 늙은 학이 이 빈 못을 지키나, 아무 소득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에 부처님께서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게으르며
늙어서도 음행을 그치지 않고
재물 있어도 보시하지 않으며
부처님 말씀을 받들지 않는 등
이런 네 가지 악행 있으면
스스로 침노하고 속임 되나니
아아 어느새 늙음이 닥쳐
몸이 변하여 7ㆍ80이 되었구나.
젊어서는 마음대로 다 하였으나
늙어지자 짓밟히고 천대받는다.
청정한 행을 닦지도 않고
또 부유하거나 귀하지도 못하면서
늙어지면 마치 빈 못 지키는
저 흰 두루미와 다름없어라.
계도 이미 지키지 않았거니와
또 재물도 쌓아 두지 않았고
늙어 기력은 쇠진해버렸으니
옛날을 생각한들 어이 미치리.
늙음은 마치 가을 나뭇잎 같아
행색은 더럽고 남루한데
목숨은 빨리 죽음에 이르렀거니
후회한들 그 무슨 소용 있으리.
게송을 읊는다.
처음과 마지막을 신중히 생각하여
힘써 보존하고 몸을 바르게 하며
입에는 두 가지 말이 없으며
마음은 함부로 일으키지 말라.
욕심을 줄이고 족함을 알며
마음에 남과 나를 잊어버리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힘써 기쁨과 근심을 경계하라.
감응연(感應緣)[대략 11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나라 하비(下邳)의 주식(周式)
한(漢)나라 회계(會稽)의 구장(句章) 사람
한(漢)나라 제기(諸曁)의 오상(吳祥)
진(晋)나라 의흥(義興) 사람 주씨(周氏)
진(晋)나라 회남(淮南)의 호무회(胡茂回)
송(宋)나라 예장(豫章)의 호비지(胡庇之)
송(宋)나라 태시(泰始) 때의 장을(帳乙)
송(宋)나라 양성(襄城)의 이이(李頤)
주(周)나라 선제(宣帝) 때의 우문빈(宇文贇)
제(齊)나라 경사(京師)의 석혜예(釋慧豫)
당(唐)나라 친위(親衛)인 고법안(高法眼)
한(漢)나라 하비(下邳)의 주식(周式)
한(漢)나라 하비현(下邳縣)의 주식(周式)은 일찍이 동해(東海)로 가다가 길에서 관리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는데, 배를 태워 달라고 했다. 10리쯤 가다가 그가 주식을 보고 말했다.
“내 잠깐 들를 데가 있습니다. 이 책을 배에 두고 내리니, 삼가 이것을 펴보지 마십시오.”
그가 떠난 뒤 주식은 가만히 그 책을 펴 보았다. 그것은 모두 죽을 사람들의 기록인데 아래에 가서 주식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잠깐 사이에 그가 돌아와 주식이 먼저 책을 읽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어 말했다.
“일부러 그것을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식은 머리를 조아리며 피를 흘렸다.
한참 있다가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나를 멀리까지 태워다 주었소. 그러나 이 책에서 당신 이름을 지울 수는 없소. 지금부터 집에 가거든 3년 동안은 문 밖을 나가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구제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 책을 보았다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마시오.”
주식은 집에 돌아와 2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른 집에서 모두 이상히 여기던 차에 그 이웃집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주식의 아버지는 주식을 시켜 조문하러 가라 했다. 주식은 할 수 없이 이웃집으로 가려고 막 문을 나서자 문득 그 관리가 나타나 주식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3년 동안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소. 그러나 이제 보았으니 어찌 하겠소. 나는 당신을 나타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계속해 매를 맞았소. 이제 당신을 보았으니 어찌할 수 없소. 사흘 뒤에는 당신을 데리고 가겠소.”
주식은 들어와 울면서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이 말을 믿지 않았고, 그 어머니는 밤낮 울면서 그 곁을 지켰다. 사흘이 되어 점심때에 그가 나타나자 주식은 이내 죽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한(漢)나라 회계(會稽)의 구장(句章) 사람
한(漢)나라 때 회계현(會稽縣)의 구장(句章) 사람이 동야(東野)에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 돌아오는데 아직 집에 닿기 전에, 길가의 어떤 오막살이집의 등불을 보고 거기 들어가 투숙하게 되었다. 그 집에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사내와 한 집에 자기를 꺼려 그 이웃집 여자를 불러 함께 잤다. 밤에 그녀는 공후(箜篌)를 타면서 노래했다.
“줄줄이 칡넝쿨이 등나무에 오르나니 한 가닥은 늘어지고 한 가닥은 조여 매네. 그대는 내 성명을 알고 싶어하는가? 내 성은 진(陳)이요 내 이름은 아등(阿登)이네.”
그는 이튿날 동쪽 성밖으로 나가 어느 음식점에 들렀다. 그 집 여주인에게 어젯밤의 일을 다 이야기했다. 그 여자는 ‘아등’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면서 말했다.
“그 아이는 내 딸인데, 근자에 죽어 성 밖에 장사지냈습니다.”
한(漢)나라 제기(諸曁)의 오상(吳祥)
한(漢)나라 때 제기현(諸曁縣)의 관리 오상(五祥)은 역사에 시달려 못내 고달파하다가 깊은 산으로 도망쳤다. 어떤 시냇가에 이르러 해가 저물었다. 비단 옷을 입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어떤 젊은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혼자 몸이요, 또 고향도 없습니다. 오직 고독한 노파 한 사람과 여기서 한 10여 보 밖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상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반가워하면서 그녀를 따라갔다. 한 1리 남짓 걸어 그 집에 이르렀다. 집은 매우 가난하고 누추한데 오상을 위해 음식이 나왔다. 1경(更)쯤 지나 한 노파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고자(張姑子)야”
그녀는 답하였다.
“예.”
오상은 물었다.
“저이는 누굽니까?”
그녀는 말했다.
“아까 말한 그 고독한 노파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함께 잤다. 새벽닭이 울었다. 상이 떠날 때 그녀는 연연한 정표로서 자주색 수건을 오상에게 주고 오상은 베 손수건을 그 정표로 갚았다. 오상은 어제 오던 곳으로 가다가 시내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날 밤에 온 비로 물이 갑자기 불어 넘쳐 건널 수가 없었다. 오상은 부득이 그녀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집은 보이지 않고 다만 무덤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진(晋)나라 의흥(義興) 사람 주씨(周氏)
진(晋)나라 의흥(義興) 사람의 성은 주(周)씨였다. 그는 영화(永和) 연간에 서울을 떠나 말을 타고 두 사람의 종자를 데리고 가다가, 아직 마을에 이르기 전에 해가 저물었다. 길가에 새로 지은 조그만 초가가 있었다. 한 여자가 문 밖에 나와 바라보는데 나이는 16ㆍ7세쯤이요 얼굴은 단정하며 옷은 깨끗했다. 그녀는 주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주씨에게 물었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앞마을은 아직 멀었습니다. 임하(臨賀)께서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주씨가 곧 묵기를 청해 그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녀는 불을 때어 밥을 지었다. 1경(更)쯤 있다가 문 밖에서 어떤 아이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향님.”
“예.”
이 여자가 대답하자, 이내 말했다.
“관청에서 우리 수레를 보내어 당신을 부릅니다.”
그녀는 주씨에게 말하였다.
“지금 일이 있어 떠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갔다. 그 날 밤에 과연 큰 우레가 울며 비가 오고 새벽에 그녀는 돌아왔다. 주씨는 말에 올라 돌아보았다. 어제 묵은 곳에는 새로 된 무덤 하나가 있고, 무덤 앞에는 말똥과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주씨는 매우 놀라며 슬퍼했다. 그리고 5년 뒤에 그는 과연 임하 태수(臨賀太守)가 되었다.[이상 세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진(晋)나라 회남(淮南)의 호무회(胡茂回)
진(晋)나라 회남(淮南)의 호무회(胡武回)는 귀신을 볼 수 있어서 아무리 보지 않으려 해도 항상 보았다. 후에 양주(楊洲)에 갔다가 역양성(歷陽城)으로 돌아올 때였다. 그 동쪽에 신사(神祠)가 있어 마침 백성들이 무당을 데리고 와서 그 사당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조금 있다가 귀신들이 말했다.
“상관(上官)이 오신다.”
그리고는 각각 사당 밖으로 나와 달아났다. 돌아보니, 어떤 스님 두 사람이 와서 그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귀신들은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서로 안고 사당 앞 풀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 뒤에 그 스님들이 떠나자 다시 사당으로 들어갔다.
무회는 이것을 본 뒤로 곧 불교를 믿고,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받들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송(宋)나라 예장(豫章)의 호비지(胡庇之)
송(宋)나라 때 예장(豫章)의 호비지(胡庇之)는 일찍이 무창군승(武昌郡丞)으로 있었다. 원가(元嘉) 26년에 관청에 들어갔을 때 괴상한 귀신이 나타났다. 한밤중 으스름달에 창문이 조금 열려 있고, 아이 같은 어떤 사람이 창문에 기대 서 있었다. 문이 닫히자 그가 떠나는 데 나막신 소리가 나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되풀이해 있었다.
그 뒤 28년 3월에 온 집안 사람이 모두 유행병에 걸렸다. 공중에서 말소리가 나면서 기왓장이나 돌멩이를 던지고 혹은 마른 흙덩이를 던지는데 여름의 병자들은 다 그것에 맞았다. 그 말소리와 물건을 던지는 세력은 더욱 사나워져 갔다. 그래서 도인을 청해 재계하고 밤을 새워 경을 읽었다. 던지는 물건은 전보다 더욱 많아 비처럼 쏟아졌으나 오직 도인의 경에만은 떨어지지 않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자
차츰 소리가 나면서 기왓장과 돌을 사람에게 던졌다. 그것에 맞은 사람은 푸르스름하게 멍은 들었으나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호비지가 잘 아는 어떤 노파는 욕설하기를 좋아했다. 귀신은 그 곁에 와서 그녀를 크게 위협했다. 비지는 제주(祭酒)를 맞이하여 하늘에 글을 올리고 부적(符籍)을 그려 붙여 귀신들을 쫓았다. 귀신들은 차츰 사라졌다.
29년에 이르러 귀신은 다시 와서 먼저보다 더 극성스러웠고, 이듬해에는 관청 4방에서 불이 자주 일어나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모두 유행병으로 죽어갔다. 귀신은 늘 개소리를 내었으므로 그 집의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흘람(吃嚂)이라 불렀다.
그 뒤에 귀신이 갑자기 말하였다.
“나는 소와 같다.”
밤중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비지가 물었다.
“그 누구냐?”
그것은 대답하였다.
“정소릉(程邵凌)이오.”
비지가 불을 들고 나가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초저녁에 다시 문밖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있었다. 비지는 그것을 꾸짖었다. 그것은 말하였다.
“당신은 나를 꾸짖지 마십시오. 나는 선신(善神)입니다. 전에 왔던 그런 자가 아닙니다. 도어사(徒御史)가 나를 보내 당신에게 알리라 했습니다.”
비지는 말하였다.
“나는 도어사를 모른다.”
귀신은 말하였다.
“도경현군(陶敬玄君)입니다. 그는 옛날 당신과 서로 오가면서 지냈습니다.”
비지는 말했다.
“나는 그와 서울에 있을 때 형양(衡湯)을 함께 섬긴 일은 있으나 그가 어사(御史)가 된 적은 없었다.”
“그 도어사는 지금 복지(福地)에 있으면서 천상의 어사가 되었는데, 여러 번 와서 해친 것은 다 심공(沈公)의 짓입니다. 이 관청은 본래 심공의 집이었으므로 그 때문에 그는 와서 집을 보고 불평이 있어서 말소리와 물건을 던짐으로써 당신을 해친 것입니다. 당신이 그를 너무 심하게 물리치고 심지어 꾸짖으며 여종들을 시켜 무례하게 대했으며, 또 제주를 시켜 글을 올렸으니, 이 죄의 정상이 천조(天曹)에까지 들렸습니다. 심공은 지금 천상으로 올라가면서 ‘그대는 부처님께 3귀계(歸戒)를 받은 제자로서 왜 불가(佛家)에 복을 청하지 않고 제주를 시켜 하늘에 글을 올렸는가? 지금부터는 오직 마음을 오로지 하여 불법을 받들면 저 나쁜 귀신들의 곤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비지는 여러 비구니를 청해 경을 읽고 재를 지내었다. 그리고 하루를 지낸 뒤에 또 문 밖의 어사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심공을 찾아가 알아보았더니,
그는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만일 그의 말과 같다면 그대는 너무 무리한 짓을 많이 했다. 그러나 만일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귀의하고 경을 읽고 계를 지키면 모든 요사스러움이 다 없어질 것이다. 전날의 정을 잊지 못해 지금 와서 알리는 것이다.”
송(宋)나라 태시(泰始) 때의 장을(帳乙)
송(宋)나라 태시(泰始) 때에 장을(張乙)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 맞은 자리가 부스럼이 되어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죽은 사람의 뼈를 가루를 내어 그것을 붙이라고 했다. 같은 방에 있는 아이를 시켜 산에 가서 해골을 파 가지고 와서 불에 태우고 가루를 만들어 붙였다. 그 날 밤에 방안의 화로에 불을 피우고 그 아이가 불을 감시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무엇이 내려와 이 아이의 머리를 불 속에 넣어 누르면서 꾸짖었다.
“너는 왜 내 머리를 불태웠느냐? 지금 이 불로 너에게 앙갚음한다.”
아이는 크게 부르짖으면서 말했다.
“장을이 불태웠습니다.”
그것은 말했다.
“네가 가지고 가서 장을에게 주지 않았으면 장을이 어떻게 태울 수 있었겠느냐?”
그리고 한참 동안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털이 다 타고 피부가 다 문드러진 뒤에야 놓아주었다.
장을은 크게 두려워하여 남은 뼈를 보내어 본 자리에 묻고 술과 고기로 제사지내 주었다. 그 뒤로는 재앙이 다시는 없었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술이기(述異記)』에 나온다.]
송(宋)나라 양성(襄城)의 이이(李頤)
송(宋)나라 양성(襄城)의 이이(李頤)의 아버지는 그 성질이 요사(妖邪)한 일을 믿지 않았다. 어떤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본래부터 흉가(凶家)여서 아무도 살지 않았는데 거기 사는 사람은 예사로 죽었다. 아버지는 그 집을 사서 들어갔으나 여러 해 동안 안길(安吉)하고 자손도 번성하고 살림은 2천 석이나 되었다. 또 벼슬길에 올라 이사하게 되어 그 집에서 떠나려 할 때 그는 내외 친척들을 청해 모으고 음식이 나오자 말하였다.
“천하에 과연 길흉(吉凶)이 있는가? 이 집은 원래 흉가라 했지만 나는 이 집에서 오랫동안 편안하고 길하였으며 더구나 벼슬까지 승진하게 되었거늘 귀신이 어디 있는가? 지금부터 이 집은 길택(吉宅)이 될 것이다. 여기 사는 사람이 마음만 바로 가진다면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변소에 갔다. 갑자기 변소 벽에 큰 자리를 말아 세운 듯한 어떤 물건이 나타났다. 높이는 5척쯤 되는 새하얀 것이었다. 그는 칼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찍어 두 동강을 내었다.
그것은 곧 두 사람으로 화했다. 그는 다시 가로로 잘랐다. 그것은 또 네 사람으로 화해, 그가 가진 칼을 빼앗아서는 그를 도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다시 대중이 모인 자리로 가서 그의 자손 및 이씨의 성을 가진 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때 이이는 아직 어려서 유모의 품에 있었는데, 그 유모는 이 변괴가 나자, 이 이를 안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다른 집에 숨겨 두었기 때문에 그 혼자만이 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이의 자는 경진(景眞)이요 그 벼슬은 상동태수(湘東太守)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주(周)나라 선제(宣帝) 때의 우문빈(宇文贇)
주(周)나라 선제(宣帝) 우문빈(宇文贇)이 태자로 있을 때 그 부왕(父王)인 무제(武帝)는 태자를 매우 엄하게 훈육하여, 항상 관리와 성신(成愼)을 시켜 그를 감찰하게 했다. 만일 조그마한 죄라도 숨기고 아뢰지 않으면 성신을 죽이기로 했었다. 이리하여 성신이 항상 태자의 불미한 일을 아뢰면 무제는 태자를 1백여 개의 매로 때렸다.
선제가 임금이 되어 즉위(卽位)할 때, 그 어깨 위의 매 맞은 상처를 돌아보고 곧 성신의 있는 곳을 물었다. 그 때 성신은 이미 군(郡)으로 전근해 가 있었으므로 선제는 곧 신하를 보내어 성신에게 가서 죽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성신은 원통하여 말했다.
“이것은 당신 아버지가 한 짓이다. 이 성신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한 번의 화를 낸 나머지 내가 무리하게 죽는구나. 만일 내가 죽더라도 앎이 있다면 끝내 놓아두지 않으리라.”
그 때 궁중에서는 모두 금기(禁忌)하여 서로 만나더라도 눈으로만 인사하고 서로 이야기하거나 웃지도 않았다. 선제는 4방에 감관(監官)을 두어 궁인(宮人)들의 죄를 낱낱이 기록했다.
그 때 좌황후(左皇后) 밑의 한 딸이 하품을 하다가 눈물이 나왔다. 그녀는 그 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니, 이른바 누구를 사모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금 앞에서 취조를 받았다. 처음에 그녀의 머리를 한 번 내리쳤다. 그러자 임금의 머리가 아팠다. 다음에 그녀의 목을 한 번 내리치면 곧 임금의 목이 아팠다. 임금은 크게 화를 내어 말하였다.
“이것은 내 원수다.”
그리고 곧 사람을 시켜 그녀의 허리를 잡아 꺾자 곧 임금의 허리가 아팠다. 그 날 밤에 임금은 남궁(南宮)으로 나갔으나 병은 점점 더해갔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 돌아오려 했으나 허리가 아파 말을 탈 수 없었으므로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그 여자가 죽은 곳에서
사람의 형상 같은 검은 무리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녀의 피라 하고 다 닦아 버리면 다시 생겨났다. 이렇게 두세 번 되풀이했다. 부득이 유사(有司)는 그 흙을 치워버리고 새 흙으로 덮었다. 한 밤을 지내자 그것은 다시 여전했다. 이 때문에 임금의 병은 자꾸 더해 7ㆍ8일 뒤에는 온몸이 문드러져 죽었다.
처음으로 그 시체를 상(床)에 모시자 그 상다리가 모두 굽어지면서 까딱하지 않아 바르게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 여자가 누웠던 평상만이 다리가 곧았으므로 그것으로 대신했으니, 이것은 다 귀신의 뜻이었다. 임금이 죽은 뒤에 성신이 죽으니, 그 사이는 겨우 20여 일 이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제(齊)나라 경사(京師)의 석혜예(釋慧豫)
제(齊)나라 서울의 영근사(靈根寺)에 있는 석혜예(釋慧豫)는 본래 황룡(黃龍)사람으로서 서울에 왔다가 영근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학문에 힘써 여러 스승을 두루 찾아다녔다. 아름다운 일이면 즐겨 담론하지만 사람의 선악에 관한 평을 들으면 곧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먼저 『열반경』과 『법화경』과 『십지(十地)』 등을 외우고 또 선정을 익혀 5문(門)에 정통했다. 일찍이 자다가 세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의관(衣冠)이 깨끗하고 손에는 꽃 일산을 들고 있었다. 혜예는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그들은 말했다.
“법사님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마중하러 왔습니다.”
혜예는 물었다.
“아직 일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1년만 여유를 줄 수 없습니까?”
그들은 말했다.
“좋습니다.”
이듬해 1년을 채우고 혜예는 죽었다. 때는 제나라 영명(永明) 7년이요, 그의 나이는 57세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나라 친위(親衛)인 고법안(高法眼)
당(唐)나라 옹주(雍州) 장안현 (長安縣)의 고법안(高法眼)은 수(隋)나라 때의 복야(僕射)인 고영지(高潁之)의 현손(玄孫)이다. 그는 용삭(龍朔) 3년 정월 25일에 중대(中坮)로 가서 선과(選科)를 보고 정오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은 의령방(義寧坊)의 동남 모퉁이에 있었는데, 거리를 향해 문을 열면 화도사(化度寺) 동쪽이 바로 그의 집이었다. 자성(子城) 서쪽 순의문(順義門)으로 나가려다가 성안에
말을 탄 두 사람이 그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았는데, 성을 나서자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 길 북쪽에는 보광사(普光寺)가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달려가서 보광사 문을 지키고 있다가 저 사람을 그 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법안을 놓칠까 하여 그는 달려가 절 문을 지키고 있었다. 법안은 겁이 나서 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곧 서쪽으로 달려가 서쪽 거리의 금성방(金城坊)에 이르렀다. 남문의 길 서쪽에는 회창사(會昌寺)가 있었다. 저들은 다시 네 사람이 되었다. 새로 온 사람은 먼저의 두 사람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회창사 문을 지켜라.”
저들은 그 말대로 달려가서 절 문을 지켰다. 법안은 두려워하면서 저들에게 말했다.
“당신네는 어떤 사람인데 나를 이처럼 쫓아오는가?”
저들은 말하였다.
“대왕님이 우리를 보내 너를 잡아가려고 왔다.”
법안은 물었다.
“어떤 왕이 보내서 왔느냐.”
저들은 말했다.
“염라대왕님이 보내서 왔다.”
법안은 이 말을 듣고 이들이 귀신임을 알고는 곧 버티고 서 있었다.
저들은 크게 화를 내며 저희끼리 말했다.
“빨리 그 머리털을 베어라.”
그리고는 한 귀신이 칼을 들고 곧 법안의 두 상투를 베었다. 상투는 살이 붙은 채 땅에 떨어졌다. 법안은 서쪽 거리까지 가서는 까무러쳐 말에서 떨어져 깨어나지 못했다. 이미 큰 거리까지 나갔으므로 잠깐 사이에 구경꾼이 천 명이 넘었다.
거리를 순찰하던 과이(果毅)는 거리를 지키는 사람을 보고 화를 내며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처럼 모였느냐?”
거리 지키는 사람들이 모인 까닭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다음의 서쪽 거리 끝에는 법안의 집이 있었다. 곧 그 집의 사람을 불러 법안을 수레에 싣고 집으로 갔다. 이튿날 비로소 법안은 깨어나 그 집안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지옥에 들어가 염라대왕을 보았다. 그는 높은 자리에 앉아 나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는 무엇 때문에 화도사의 명장(明藏) 스님 방에 가서 상주승(常住僧)들의 과일을 먹었느냐? 너는 마땅히 뜨거운 쇠알[鐵丸] 4백 개를 4년 동안 다 먹어야 한다.’”
인간의 하루는 지옥의 1년이니, 4일 동안에
다 먹어야 하고 정월 26일에서 29일까지인데 1일에 1백 알씩 먹어야 한다.
법안이 깨어난 26일에 또 귀신들이 그를 잡으러 왔다. 그는 또 귀신들과 싸웠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고, 다시 지옥에 들어가 쇠알을 먹게 되었다. 그것을 먹을 때에는 목구멍이 틔었다 막혔다 하고 몸은 타서 빨갛게 되었다. 다 먹고 나면 깨어나고 깨어나자 염라대왕은 또 말하였다.
“너는 무엇 때문에 3보(寶)를 공경하지 않고 스님들의 허물을 말했느냐? 너는 쇠알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쇠쟁기로 네 혀를 1년 동안 갈아야 한다.”
29일에 쇠알을 모두 먹고 정월 30일 아침에 다시 죽어 지옥에 가서는 다시 쇠쟁기로 혀를 갈리게 되었다. 그 때 그는 제 혀의 길이가 여러 리(里)가 되는 것을 보았고 곁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1척 남짓이나 혀를 토해 내었다. 왕은 다시 옥졸(獄卒)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3보(寶)의 장단점(長短點)을 말했으니, 큰 쇠도끼로 그 혀뿌리를 찍어 끊어라.”
옥졸들이 도끼로 찍었으나 혀는 끊어지지 않았다. 왕은 다시 말했다.
“그 도끼로 그 혀를 잘게 썰어 끓는 솥에 넣어 삶아라.”
그러나 삶기지 않자 왕은 그 까닭을 법안에게 물었다. 법안은 말했다.
“나는 일찍부터 『법화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처음에는 믿지 않고 신하를 시켜 공덕부(功德部)를 조사해 보라 했다. 책상 안에 있는 『독법화경(讀法華經)』 1부(部)를 보고 왕이 직접 점검해 보고는,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서야 비로소 놓아 보냈다. 법안은 깨어나자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장꾼과 함께 구경한 사람들도 모두 발심하였고, 그 집안 사람들도 다 불교를 믿어 뜻을 가다듬어 정진하면서 보시와 인욕에 이지러짐이 없이 지성을 다해 게으르지 않았다.
이상의 사실은 서울의 승려와 속인들이 다 아는 일이라 굳이 인증하지 않는다.
45.검약편(儉約篇)[여기에는 2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1) 술의부(述意部)
공허한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사실로 증명하는 것보다 못하고, 비슷한 상(像)을 듣는 것은 귀와 눈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믿음은 배움만 못하고 말은 행동보다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틀을 연구하고 이치에 맞춤은 실로 지극한 성인의 큰 기본이요, 반연을 버리고 검약하기 힘씀은 바로 지극한 사람의 큰 도량이니, 한계 밖의 마음을 세우지 않으면 어찌 끝이 없는 감응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한 개의 털과 하나의 낟알로도 마침내 4생(生)을 구제하고 한 생각과 한 찰나로도 항상 6도(度)를 돕는 것이니, 이것은 그 공은 절반의 숨길을 내어 가득 채우는 미래를 뛰어나며 소박하고 검약함을 가지는 것도 그 덕은 높은 법보다 나은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신바사론(新婆娑論)』에서 말하였다.
“【문】 모든 제자들 중에서 대가섭(大迦葉)은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두타행(頭陀行)을 갖추었으며, 박구라(薄矩羅)는 병이 적고 절약하고 검소하며 깨끗한 계행(戒行)을 갖추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무엇이 다릅니까?
【답】 존자 대가섭은 그 얻은 음식이 거칠거나 맛나거나 차례를 따라 먹으면서 구별하지 않나니, 마치 좋은 말이 얻는 대로 먹는 것과 같다. 존자 박구라는 그 얻은 음식이 거칠거나 맛날 때, 그 맛난 것은 버리고 거친 것을 먹나니, 그는 마치 경전에 말한 것과 같다. 즉 4종의 성종(聖種)이 있다. 첫째는 얻는 대로의 음식에 기꺼이 만족하는 성종이요, 둘째는 얻는 대로의 의복에 기꺼이 만족하는 성종이며, 셋째는 얻는 대로의 침구에 기꺼이 만족하는 성종이요, 넷째는 있고 없음에 의해 즐겨 끊고 즐겨 닦는 성종이다.”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어떤 이학(異學)이 있었다. 이 사람은 존자 박구라가 출가하기 전부터 좋은 벗을 잘 친했다.
그는 박구라에게 가서 그 뜻을 물었으므로 박구라는 그를 위해 설법했다.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 동안 욕상(欲想)을 일으킨 일이 없었다. 나는 분소의(糞掃衣)를 입은 지 80년 동안 잘났다는 생각을 일으킨 일이 없었고, 또 일찍이 거사(居士)의 옷을 받은 일이 없었으며, 옷을 마름한 일이 없었고, 옷을 바늘로 꿰맨 일이 없었으며, 바늘이나 실이나 주머니나 내지는 실 한 오라기도 가진 일이 없었다. 나는 걸식한 지 80년 동안 잘났다는 생각을 일으킨 일도 없고 거사의 초청을 받은 일도 없으며 차례를 뛰어넘어 걸식한 일도 없고 저 큰 집에 가서 걸식하면 깨끗하고 좋으며 아주 맛나고 풍부한 음식을 얻을 것이라 하여 걸식한 일이 없었다.
아직 여자의 얼굴을 본 일이 없고 아직 비구니의 방에 들어간 일이 없으며 비구니를 생각하여 서로 문안하거나 내지는 길에서도 서로 말한 일이 없었다. 아직 사미를 기른 일이 없고, 속인을 위해 설법하되 내지는 4구게(句偈)도 설명한 일이 없었다. 아직까지 병이 있거나 내지는 잠깐 동안 머리 아픈 일도 없고 아직 약으로서 한 조각의 하리륵도 먹은 일이 없었다. 나는 가부(跏趺)하고 앉은 지 80년 동안, 아직 벽이나 나무를 기댄 일이 없고, 나는 3일 만에 3달(達)을 얻었으며, 나는 가부하고 앉아 열반에 들었으니, 이것이 이 존자 박구라의 미증유(未曾有)의 법이니라.’”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달이가(達膩伽)아라한은 스스로 깊이 경하하면서 다음 게송을 읊었다.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언제나 사문의 법을 익혀라.
그것 버리면 살아가기 위하여
뱀이 쥐구멍에 드는 것 같다.
적멸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언제나 사문의 법을 익혀라.
신명이 옷과 음식에 매였나니
좋거나 나쁘거나 얻는 대로 써라.
적멸의 즐거움을 얻으려거든
언제나 사문의 법을 익혀라.
모든 것에 만족할 줄을 알고
오로지 열반의 도를 닦아라.”
또 『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비구가 한적한 나무 밑에 앉아 참선하고 있었다 한 번은 그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가 이 비구가 밥 먹는 것을 보고 나무에서 내려와 비구 곁으로 갔다. 비구는 먹던 밥을 나누어 원숭이에게 주었다 원숭이는 그 밥을 얻어먹고 바로 가서 물을 가지고 와서 비구에게 주어 손을 씻게 했다.
이렇게 여러 달을 지내다가 한 번은 그만 잊어버리고 그 원숭이에게 줄 밥을 남기지 않았다. 원숭이는 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크게 화를 내어 이 비구의 가사를 가지고 나무에 올라가 찢어 버렸다. 비구는 화를 내어 지팡이를 던졌다가 잘못 맞아 원숭이가 당장 죽었다. 다른 여러 원숭이들이 몰려와 죽은 원숭이를 메고 절로 갔다. 다른 비구들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비구에게 캐어물었다. 이 비구는 그 동안의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그 뒤로 불교에서는 비구가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중 얼마를 덜어 중생에게 주고 혼자서 다 먹지 못하게 했다.”
또 『오분률(五分律)』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항하강 가에 어떤 선인(仙人)이 석굴 속에 살고 있었다. 그 때 용왕이 날마다 물에서 나와 몸으로 그 선인을 일곱 겹으로 싸고 머리를 세워서는 그 위에 두고 선인을 밑으로 공손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번은 선인이 여행을 떠나고 그의 제자가 혼자 굴을 지키고 있었다. 용은 전날처럼 와서 제자를 공경했다. 제자는 두려워하여 몹시 수척해졌다.
나는 그 때 보살도를 닦으면서 항하강 가로 갔다가 이 상황을 보고 그 까닭을 물어 그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너는 그 용이 보기 싫으냐?’
‘예, 그렇습니다.’
나는 또 물었다.
‘너는 그 용의 턱 밑에서 어떤 물건을 보지 못했는가?’
그는 대답했다.
‘거기 여의주(如意珠)가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일러 주었다.
‘만일 그 용이 또 오거든 너는 그 용에게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라. 즉 ≺나는 당신 턱 밑에 있는 그 마니주[摩尼珠]를 가지고 싶습니다. 그것을 내게 주십시오≻ 그 선인의 제자는 내 말을 듣고는 그 용이 오자 곧 그것을 달라고 했다. 용은 이 말을 듣고는 꼼짝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선인의 제자는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용왕이여, 나는 지금 당신 턱 밑의
그 여의주를 가지고 싶다.
나는 지금 몹시 그것이 좋거늘
왜 잠자코 말이 없는가?
용왕도 곧 게송으로 답하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
그것을 모두 이 구슬로 얻는데
네가 지금 그것을 달라 하나니
이제는 다시 여기 오지 않으리.
마치 불이 갑자기 터지는 소리가
사람 마음을 두렵게 하지만
내가 지금 네 말을 듣는
이 두려움은 저것보다 더하다.’
이리하여 나는 옛일을 인용해 다음 게송을 읊었다.
“사람들은 달라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자주 달라고 하면 미움을 산다.
용왕은 달라는 그 말을 듣고
한번 가서는 다시 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가이국(迦夷國)의 어떤 왕은 곤궁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했다. 그 때 이 왕은 어떤 범지왕(梵志王)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범지왕은 아직 한번도 이 왕에게 무엇을 청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 왕은 저 범지왕에게 다음 게송으로 말했다.
‘사람들 모두 멀리서 와서
무엇이고 내게 달라 하는데
당신은 지금 여기 있으면서
아무 것도 안 청하는 것은 그 무슨 뜻인가?’
범지왕도 곧 게송으로 답했다.
‘사람들은 달라는 것 좋아하지 않는다.
자주 달라고 하면 미움을 산다.
그러므로 잠자코 구함 없나니
친애의 정이 떨어질까 두렵다.
왕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달라는 것 덕의 행을 해치는 것 아니요
또한 몸과 입의 허물 될 것도 없다
있는 것 덜어 없는 것 채우거니
무엇 때문에 달라하지 않는가?’
범지왕도 다시 게송으로 답하였다.
현명한 사람 달라 하지 않나니
달라고 하는 것은 현명한 것 아니다.
잠자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음
이런 사람을 대인(大人)이라 하느니.
그 때 왕은 이 현인의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우왕(牛王) 한 마리와 또 다른 소 천 마리를 그에게 보시했느니라.”
게송을 읊는다.
6정(情)에 교만하고 방자함이 없으며
4섭(攝)은 깊숙한 마음을 연다.
검약함으로써 사람 세상 피하고
고요히 누워 산림(山林)을 사모하네.
굽이치는 시내에는 말울음이 그치고
얽힌 나무 가지에는 휘장 그늘이 떨어진다.
못 가의 돈대[臺]에는 겨울눈이 쌓이고
처마 밑창에는 돌아오는 새가 날아든다.
돌의 무늬에는 새것 옛것 없는데
봉우리 형상에 어찌 예와 이제 있으랴.
큰 수레는 어찌 그리 아득한가.
달리는 말을 보내어 빠르구나.
어떻게 하면 6념(念)을 닦아
그 정성을 오로지 일음(一音)에 두랴.
자비의 배는 띄워 보지 못하고
헛되이 깊은 바닷물을 떠내려고 수고한다.
감응연(感應緣)
진(晋)의 단도개(單道開)
당(唐)의 두지개(杜智揩)
진(晋)의 단도개(單道開)
진(晋)나라 나부산(羅富山)의 단도개(單道開)는 성이 맹(孟)씨이니 돈황(燉煌)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숨어살면서 40만 언(言)의 경을 외웠다. 곡식을 끊고 잣을 먹다가 잣을 얻기 어려우면 다시 송진을 먹고 뒤에는 세석자(細石子)를 먹되, 한 입에 두어 개씩 며칠에 한 번씩 먹으며 혹은 생강이나 후추를 얼마씩 먹었다. 이리하여 7년 뒤에는 추위와 더위가 겁나지 않아,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 여름에도 홑옷을 입으며 밤이고 낮이고 자지 않았다.
도개와 함께 공부하는 10인도 다 도개와 같이 생활했으나 10년 뒤에는 혹은 죽고 혹은 타락했지만 도개만은 그 뜻을 변하지 않았다. 진릉 태수(進陵太守)가 말을 보내어 도개를 맞이했으나 도개는 말을 사양하고 걸어서 2백 리를 하루에, 그것도 일찍이 왔었다. 산과 나무의 여러 신(神)들이 혹 이상한 형상을 나타내어 시험했으나 도개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석호 건무(石虎建武) 12년에 도개는 서평(西平)에서 안도(安度)로 올 때는 하루에 7백 리를 걸었다. 어떤 아이가 사미(沙彌)가 되었다. 나이는 14세로서 도개에게 교법(敎法)을 받고 그 행은 도개를 따라갔다. 어느 때 태사(太史)가 석호에게 아뢰었다.
“선인(仙人)의 별이 나타났으니 반드시 고사(高士)가 국내에 들어올 것입니다.”
석호는 여러 고을에 두루 영을 내려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알리라고 했다. 그 해 11월에 진주(秦州) 자사(刺史)가 글을 올리면서 도개를 보냈다. 도개는 처음에는 업성(鄴城)에 있다가 뒤에 임장(臨障)의 소덕사(昭德寺)로 옮겨, 그 방 안에 중각(重閣)을 짓고 거기서 좌선(坐禪)할 때 석호가 모든 것을 매우 융숭하게 공급했다. 도개는 그것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시했다. 그 때 선도(仙道)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물었으나 도개는 일체 답하지 않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나는 괴로워하는 중생 가엾이 여겨
집을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네.
세상을 이롭게 하려면 밝음을 배워야 하나니
밝음을 배우면 악을 끊을 수 있네.
마을이 멀어 곡식 얻기 어려워
곡식을 끊는 이런 꾀를 세웠으나
이것은 신선 되기 위해서가 아니거니
부디 나를 신선이라 전하지 말라.
불도징(佛圖澄)은 말하였다.
“이 도사는 나라의 흥하고 쇠함을 관찰하기 때문에 만일 그가 떠나면 그 나라에는 장차 큰 재앙이 있다.”
석호 태령(太寧) 원년에 도개는 그 제자들과 함께 남방의 허창(許昌)으로 갔는데, 과연 석호의 아들과 조카가 서로 죽이는 바람에 그 업도(鄴都)가 매우 어지러웠다. 그는 진(晋)나라 승평(升平) 3년에 건업(建鄴)으로 와서 조금 있다가, 뒤에 나부산(羅浮山)에 들어가 혼자 초막에 살면서 세상을 멀리 벗어나 있었다. 나이 1백여 세에 그 산에서 죽을 때, 그 제자들에게 부탁하여 시체를 석실(石室)로 옮기라 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시체를 석실로 옮겼다.
강홍(康泓)이란 사람이 옛날 북간(北澗)에 있을 때 그 제자들에게 도개가 옛날 산중에 있을 때 늘 신선들이 오갔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멀리서 도개를 사모하고 예배하다가, 뒤에는 남해(南海)에서 도개를 만나 보고 곁에서 모시면서 그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도개의 찬(贊)을 지었다.
고요하여라, 착한 그 사람
티끌 세상을 멀리 떠났네.
겉으로는 소승(小乘)과 같았지만
안으로는 빈 몸을 알았네.
이상한 별이 나타나더니
존귀하신 걸음이 여기 오시다.
지초의 싹을 늘 자시며
산으로 물로 유랑하시네.
진(晋)나라 흥녕(興寧) 원년에 진군(陳郡)의 원굉(袁宏)이 남해 태수(南海太守)가 되어 그 아우 영숙(潁叔) 및 사문 지법방(支法防)과 함께 나부산에 올라가 석실 어구에서 도개의 유골(遺骨)과 향불과 질그릇이 아직 그대로 있음을 보았다. 원굉은 말하였다.
“법사(法師)님의 업행(業行)은 사람들보다 뛰어났으니 매미가 허물을 벗었을 뿐이다.”
이에 다음 찬(贊)을 지었다.
뛰어난 인물이라 기이하지만
덕이 있으매 외롭지 않았네.
아득하구나 그윽한 사람이여,
바위를 바라보며 승리하고 들어갔네.
걸림 없이 떠도는 신령한 신선
여기 와서 놀면서 함께 보였네.
남기신 신발이 숲 속에 있나니
영원히 그 한 벌뿐이네.
그 뒤에 사문 승경(僧景)ㆍ도점(道漸) 등이 모두 나부산에 올라가 보려 했으나
끝내 꼭대기까지는 가지 못했다.[『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두지개(杜智揩)
당(唐)나라 조주(曹州)의 이호(離狐) 두지개(杜智揩)는 젊어서부터 불경을 좋아하여 벼슬도 하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았다. 항상 승복(僧服)을 입고 태산(泰山)에 숨어살면서 오직 불경을 읽고 외움으로 일을 삼았다.
정관(點觀) 21년에 산에서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가사로 몸을 덮고 누워 있었다. 아름아름 꿈같은 속에 어떤 노파와 미녀 수십 인이 자주 와서 시끄럽게 했다. 그러나 지개는 전연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들은 차츰 다가와서 모두 말하였다.
“이 사람을 메어다가 북쪽 개울에 던져 버리자.”
그리고는 모두 앞에 와서 일시에 그를 붙들었다. 그 때 가사를 잡은 자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염불하고서 뒤로 물러가 모두 참회하고, 아미타불 조성하기를 청한 뒤에 관세음보살을 30번 불렀다. 조금 있다가 그는 깨어났는데, 온몸에 땀이 흐르고 병은 곧 나았다.[『명보습유록(冥報拾遺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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