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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81 불교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4권

by Kay/케이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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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4

 

대종지현문본론 제4권


마명 지음
진제 한역
이병욱 번역


7. 대해부장도로(大海部藏道路) 대결택분

이와 같이 독일산왕과 마하산왕의 대결택분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대해부장도로의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해부장에
모두 열 가지의 법이 있으니
다섯 가지는 공(空)이 아닌 것이고
다섯 가지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論】 이 대해부장의 도로(道路)에서는 몇 가지 법을 세워서 부장의 양(量)으로 삼는가? 말하자면 열 종류의 법체(法體)를 세워서 대해부장을 삼는다. 마하연지(摩訶衍地) 수다라에서 말하였다.
“구구해장이도분(俱俱海藏履道分) 중에 다만 열 종류의 법이 있을 뿐 다른 법은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해부장에 모두 열 가지의 법이 있으니”라고 말한 것과 같다.
무슨 의미 때문에 열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하는가? 다섯 종류는 공이 아닌 것이고 다섯 종류는 무상한 것이어서 각기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다섯 가지는 공(空)이 아닌 것이고, 다섯 가지는 무상(無常)한 것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저 열 종류의 법은 그 이름과 내용이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장애를 여읜 것이고, 실제가 있는 것이며
성품이 화(火)이고, 본래 광명이 나는 것이며
아울러 깊은 이치가 드러난
지장대용왕(地藏大龍王)이다.
이와 같은 다섯 종류의 이름은
공이 아니며 함께 일컫지 않는다.
일어남, 간직함, 변함, 무너짐
그리고 큰 힘의 무명(無明)이니
이와 같은 다섯 종류의 이름은
무상한 것이며 함께 일컫지 않는다.
각기 제일(第一)의 하나를 가지고 있어서
기(氣)의 힘을 청하므로

문을 세우는 것이 실제 근본에 포섭되나니
법대로 응당 살펴야 할 것이다.
【論】 어떤 것을 다섯 종류의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장애를 여의어서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이고, 둘째는 실제가 있어서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이며, 셋째는 성품이 화(火)라서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이고, 본래의 광명이 나서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이며, 다섯 째는 깊은 이치가 드러나서 결정코 머무는 법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장애를 여읜 것이고, 실제가 있는 것이며, 성품이 화(火)이고, 본래 광명이 나는 것이며, 아울러 깊은 이치가 드러난 지장대용왕(地藏大龍王)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다섯 이름이며 다섯 종류의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은 다르게 전전하는 차별된 이름과 함께하지 않는다. 게송에서 “이와 같은 다섯 종류의 이름은 공이 아니며 함께 일컫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다섯 종류의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움직여 일어남이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이고, 둘째는 그치고 간직함이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이며, 셋째는 변하는 것이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이고, 넷째는 흩어져 무너지는 것이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이며, 다섯째는 큰 힘이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이다. 이것을 다섯 종류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간직하는 것이며, 변하는 것고, 무너지는 것이며, 큰 힘의 무명(無明)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다섯 이름인 다섯 종류의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은 다르게 전개되는 차별된 이름과 함께하지 않는다. 게송에서 “이와 같은 다섯 종류의 이름은 무상하며 함께 일컫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같다.
깊은 이치가 드러난 지장대용왕과 큰 힘이 무상하고 허망한 가짜인 전전하는 법,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은 기(氣)의 힘으로 문을 세운 것이지 실체를 취한 것이 아니니, 응당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게송에 “각기 제일(第一)의 하나를 가지고 있어서 기(氣)의 힘을 청하므로 문을 세우는 것이 실제 근본에 포섭되나니 법대로 응당 살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름을 세우는 것이 같지 않은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글에 담겨진 의미와 이치가 차별되는 문을 설명하겠다. 이와 같이 다섯 종류의 공이 아닌 결정코
머무는 법에는 각기 몇 가지가 있는가? 말하자면 각각 두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을 두 종류의 장애를 여읨이라고 이름하는가? 첫째는 몸을 지켜서 장애를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변전(變轉)하여 장애를 여의는 것이다. 몸을 지켜서 장애를 여의는 것은 장애 없는 몸은 항상 결정되어서 잃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고, 변전하여 장애를 여의는 것은 온갖 존재를 세워서 자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 종류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두 종류의 실제가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는가? 첫째는 몸을 지키는데 실제가 있음이고, 둘째는 변전하는데 실제가 있음이다. 몸을 지키는 데 실제가 있다는 것은 항상 평등한 몸은 늘 결정되어서 잃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변전하는데 실제가 있다는 것은 차별된 것을 세워서 편안히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 종류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두 종류 성품의 화(火)라고 하는가? 첫째는 몸을 지키는 성품의 화이고, 둘째는 변전하는 성품의 화이다. 몸을 지키는 성품의 화라는 것은 밝은 덕이 간직되어 있는 몸은 항상 결정되어 있어서 잃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변전하는 성품의 화라는 것은 티끌이 겹쳐진 것이 모두 전전하면서 순서를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 종류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두 종류의 본래의 광명이라고 하는가? 첫째, 몸을 지키는 본래의 광명이고, 둘째 변전하는 본래의 광명이다. 몸을 지키는 본래의 광명은 처음부터 불꽃같이 불타는 몸은 결정되어 있어서 항상 잃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변전하는 본래의 광명은 순서대로 전전하여 장애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두 종류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두 종류의 깊은 이치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몸을 지키는 깊은 이치이고, 둘째는 변전하는 깊은 이치이다. 몸을 지키는 깊은 이치라고 하는 것은 여의어 끊음 가운데 몸은 항상 결정되어 있어서 잃거나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변전하는 깊은 이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무위법에서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두 종류라 이름한다.
앞에서 말한 다섯 종류의 무상한 업의 쓰임의 차별은 각각 어떤 것인가? 말하자면 차례대로 일체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큰 근심의 바다를 낳음에 모두 남음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큰 근심의 바다를 주지(住持)함에 모두 남음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큰 공덕의 바다를 변화시킴에 남음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큰 공덕의 바다를 무너뜨려 없앰에 남음이 없기 때문이며, 덮여진 장애가 덕도 아니고 근심도 아닌 가운데 몸이 자재함에 남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은 자기의 본체(本體)와 품성(品性)이 각각 차별되므로 응당 이러한 도리를 잘 살펴야 한다. 이와 같이 글에 담겨진 의미와 이치가 차별되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지위에 의지해 결정적으로 안립(安立)하는 문을 설명하겠다. 앞에서 말한 쉰한 종류의 진금강의 지위는 몇 가지 지위에 두루하는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와 같은 쉰한 가지는
다섯 가지의 처소에 두루하나니
크게 총명한 수행자는
훌륭하게 결택(決擇)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니라.
【論】 앞에서 말한 쉰한 가지 지위는 장애를 여읨 등의 다섯 종류 처소를 두루하는 가운데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대금강위에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게송에서 “이와 같은 쉰한 가지는 다섯 가지 처소에 두루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지위는 근기가 예리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지 근기가 둔한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극하고 매우 깊기 때문이고, 지극히 예리하게 요달하기 때문이며, 지극히 비밀스럽기 때문이니, 게송에서 “크게 총명한 수행자는 훌륭하게 결택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또한 다시 처소가 두 가지이므로 지위도 두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모두 모으면 열 가지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말한 것은 변화이지 몸에 대한 것은 아니다. 따로 지위를 세우는 데 모두 몇 가지의 이름과 몸의 차별이 있으며, 그 상(相)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따로 지위를 세우는 데 그 숫자는
모두 열 종류가 있나니
점차(漸次)의 지위이고, 다하여도 남음이 있는 지위이며
움직이지 않는 지위이고 모두 소멸하는 지위이며
하나가 공(空)이고 다른 하나는 유(有)인 지위이고
지혜와 지혜로 끊는 것이 모두 지혜인 지위이며

서로 만나는 지위이고 배척해 세우는 지위이며
변(邊)과 변으로 구르는 지위이고 하나로 모이는 지위이다.
이러한 열 가지 지위를 구족하면
이러한 문(門)의 세계와 분량은 원만하다.
【論】 따로 세운 지위는 모두 열 종류이니 어떤 것이 열 종류인가?
첫째는 한결같이 순서를 뛰어넘지 않는 점차(漸次)의 지위이고, 둘째는 구경(究竟)을 두루하여 다하면서도 다하지 못하는 지위이며, 셋째는 일체 중제(中際; 현재)의 움직이지 않는 지위이고, 넷째는 모든 법을 쌍으로 세우고 함께 없애는 문이며, 다섯째는 하나가 공(空)이라면 다른 하나는 유(有)에 해당하는 지위이고, 여섯째는 끊는 주체와 끊는 대상이 모두 지혜인 지위이며, 일곱째는 훈습하는 힘이 서로 마주치고 서로 만나는 지위이고, 여덟째는 장애를 제거하는 처소에 따라서 지위를 세우는 지위이며, 아홉째는 진(眞)과 망(妄)이 유와 무라는 변(邊)으로 전개되는 지위이고, 열째는 모든 법이 한 종류로 하나로 모이는 지위이다. 이것을 열 종류라고 이름한다.
게송에서 “따로 지위를 세우는 데 그 숫자는 모두 열 종류가 있나니, 점차(漸次)의 지위이고, 다하여도 남음이 있는 지위이며, 움직이지 않는 지위이고, 모두 소멸하는 지위이며, 하나가 공(空)이고 다른 하나는 유(有)인 지위이고, 지혜와 지혜로 끊는 것이 모두 지혜인 지위이며, 서로 만나는 지위이고 배척해 세우는 지위이며, 변(邊)과 변으로 구르는 지위이고 하나로 모이는 지위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개별적으로 세워진 저 총괄적인 하나의 지위가 모든 개별적인 지위를 반드시 구족해야 비로소 크게 총괄하는 지위를 세울 수 있는가? 개별적인 지위를 구족해야 총괄의 지위가 성립하기 때문이니, 게송에서 “이러한 열 가지 지위를 구족하면 이러한 문의 세계와 분량은 원만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열 종류의 개별적 모습의 지위는 몇 가지 처소를 두루하는가? 다섯 처소를 두루한다. 말하자면 전개하고 포섭하는 다섯 종류의 처소에서 각기 쉰한 가지의 금강위를 구족하고, 모든 지위를 지나는 것도 열 종류의 개별적 모습의 지위가 있기 때문이다.
크게 총괄하는 모습의 지위에는 모두 몇 가지가 있으며, 몇 개의 처소를 두루하는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총괄적인 지위에 세 종류가 있으니
상ㆍ중ㆍ하를 말하느니라.
단지 다섯 종류의 처소만을 두루하고
다른 지위에 두루하지 않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論】 큰 성품의 총괄하는 경지의 근본 체(體)의 지위에는 모두 세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세 종류인가?
첫째는 높은 상상(上上)으로 나아가서 전개해가는 지위이고, 둘째는 자연히 중중(中中)에 안주하는 지위이며, 셋째는 하하(下下)로 향하여 나아가는 지위이다. 이것을 세 종류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총괄적인 지위에 세 종류가 있으니 상ㆍ중ㆍ하를 말하니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세 가지 총괄적인 지위는 개별적 유(有)를 따라 있는 것이다. 다만 다섯 처소만을 두루 구를 뿐이지 다른 지위에 두루한 것은 아니니, 이러한 도리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게송에서 “단지 다섯 종류의 처소를 두루하고, 다른 지위에 두루하지 않음을 알아야 하느니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지위에 의지해 결정적으로 세우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지위에 의지해 법수(法數)의 갖추고 빠트리는 문을 설명하겠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열 종류 본래의 법의 몸을 지키는 것과 변전하는 두 종류는 금강의 지위에서 다하는가, 다하지 않는가? 만약 몸을 지키는 지위에서는 덕의 다섯 가지만 구족하고 다른 다섯 가지는 없으며, 변전하는 지위라면 열 가지 법이 구족하여 빠지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총괄적인 지위와 부분적인 지위의 있고 없음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위에 의지해 법수의 갖추고 빠트리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덕과 근심이 분량을 대하여 종(宗)을 나타내는 문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어나는 것은 성품이 화이고, 그치어 머무는 것은 지금의 광명이 머무는 것이며
변화하는 것은 공하여 장애를 벗어나고, 무너지는 것은 실제가 있는 것이며
큰 힘이 있는 것은 출현한 큰 용이니 순서대로 마주 대하는 것과 같으며,
비슷한 것이 있어서 많은 것을 취한다.
【論】 장애를 다스리고 가려진 것을 밝혀서 수량을 대(對)하는 형상은 그 순서대로 하면, 움직여 일어나는 것의 무상(無常)은 성품이 화(火)인 것에 머무는 법이고, 그치고 간직하는 것의 무상은 지금의 광명이 머무는 법이며, 변화하는 것의 무상은 장애를 여의어서 머무는 법이고, 흩어져 무너지는 것의 무상은 실제가 있는 머무는 법이며, 큰 힘의 무상은 출현하는 용왕으로 양을 삼는다.
게송에서 “일어나는 것은 성품이 화라는 것이고, 그치어 머무는 것은 지금의 광명이 머무는 것이며, 변화하는 것은 공하여 장애를 여의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은 실제가 있는 것이며, 큰 힘이 있는 것은 출현한 큰 용이니, 순서대로 마주 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분량을 마주 대하면 한결같이 구르는가,
분량과 함께 구르는가? 분량과 함께 구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게송에서 “비슷한 것이 있어서 많은 것을 취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덕과 근심이 분량을 마주 대하여 종지를 나타내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마땅히 순서대로 따로 풀이하여 자세히 설명하는 문을 말하겠다. 또한 장애를 여의는 문에서 안정된 분포의 형상은 어떻게 나타나 보이며, 주(住)와 반(伴)이 장애를 다스리는 문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장애를 여읜 몸의 본체에는
쉰한 가지 지위가 있고
쉰한 가지 지위에는
세 종류의 총상(摠相)이 있으며
세 종류의 총상에는
열 종류의 별상(別相)이 있으니
처음 쉰한 가지 지위에서
하나하나가 모두 각각
열의 본수(本數)를 구족하나니
최초에는 주(主)이고 그 뒤는 반(伴)이며
다음의 처음은 주이고 그 뒤는 반이니
응당 순서대로 관찰해야 한다.
【論】 장애를 여읨 중에서 쉰한 종류의 금강의 지위가 있다. 이 지위에서 세 종류의 근본 총상의 지위가 있다. 이 총상의 지위에서 열 종류의 분리된 별상이 있으니, 게송에서 “장애를 벗어난 몸의 본체에 쉰한 가지 지위가 있고, 쉰한 가지 지위에서 세 종류의 총상(摠相)이 있으며, 세 종류의 총상에서 열 종류의 별상(別相)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세 종류의 총상에서 열 종류의 별상이 있기 때문에 금강의 모든 지위의 하나하나 지위에서 본래의 수(數)를 구족한다. 게송에서 “처음 쉰한 가지 지위에서 하나하나가 모두 각각 열의 본수(本數)를 구족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주(主)와 반(伴)이 각각 두 가지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 주인가? 첫째는 주주(主主)이고, 둘째는 반주(伴主)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 반(伴)인가? 첫째는 반반(伴伴)이고, 둘째는 주반(主伴)이다. 주주는 장애를 여읜 것이고, 반주는 두 번째로 전개한 것이다. 반반은 다섯 가지 본래의 법을 제외한 나머지 권속인 것이고, 주반은 장애를 여읜 것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법이다. 게송에서 “최초에는 주이고 그 뒤는 반이며, 다음의 처음은 주이고 그 뒤는 반이니, 응당 순서대로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세 종류의 총상의 금강위 속에서
어떻게 안립하는가? 말하자면 처음의 신심을 그 시초로 삼고, 뒤의 대타지([대襌-(田/十)+(王+寸)]陀地)를 그 끝으로 삼아서 순서대로 점차로 전개한다. 그러므로 높은 상(上上)으로 나아가서 전개해가는 지위[趣高上上轉去位]를 세운다. 뒤의 대타지를 그 처음으로 삼고 첫 번째 신심을 그 끝으로 삼아서 순서대로 점차로 전개한다. 그러므로 하하(下下)를 향하여 전개해가는 지위[向焉下下轉去位]를 세운다. 위와 아래의 두 문(門)의 지위마다 각각 변(邊)을 여읜 중도가 결정코 세워진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안주하는 중중의 지위[自然安住中中位]를 세운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열 종류의 별상에 위와 아래만 있고 중간은 없다.
또한 위의 문에 의지하여 열 가지 지위를 세우는데,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섯 일[五事]을 믿는 것이 이미 지나가니,
후후(後後)의 지위에 이르기 때문이고
한 가지 일의 구경이기 때문이고
한 맛 속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며
대치와 장애가 하나로 멸하기 때문이고
대치와 장애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며
지혜로 지혜를 끊기 때문이고
위와 아래가 서로 비추기 때문이며
본래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기 때문이고
대치와 장애를 스스로 변별하기 때문이며
개별적인 것 없이 하나로 전개하기 때문이니
응당 순서대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
【論】 높은 상상으로 나아가 전개해가는 문[趣高上上轉去門]에 의지하면, 열 가지 개별적 지위를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어떠한가? 말하자면 다섯 종류의 공 아님의 머무르는 법[非空住法]으로 다섯 종류의 허망한 가짜로 전개된 법[虛假轉法]을 상대하여 다스린다. 그 순서대로 초과함이 없이 점차로 점차로 전개하기 때문에 한결같이 건너뜀이 없는 점차적 지위[一向無超漸次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다섯 가지 일을 믿는 것이 이미 지나가니 후후(後後)의 지위에 이르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다스려서 그 감응된 하나의 구경을 따르기 때문에 구경에 두루하여 다하면서도 다하지 못하는 지위[遍究竟盡不盡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한 가지 일의 구경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대치하니,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는 한 맛의 평등한 중도의 실상이기 때문에 일체 중제(中際; 현재)의 움직임이 없는 지위를 세운다. 게송에서 “한 맛인 중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대치하니, 장애가 없어질 때 그 지혜의 본체도 문득 없어진다. 그래서 쌍으로 제법을 건립하고 모두 없애는 지위[雙立諸法俱滅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대치와 장애를 하나로 멸하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대치하니, 대치하는 것이 일어나면 장애가 없고 장애가 일어나면 대치하는 것이 없어서 친근히 할 수도 없고 함께 행할 수도 없고 도달하게 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가 공이라면 하나는 응당 유에 해당하는 지위[若一空當一有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말하기를 “대치와 장애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대치하니, 대치함이 뛰어난 기력(氣力)으로 모든 장애를 변화시켜 대치의 권속으로 삼으며, 또한 뛰어난 기력으로 끊음의 권속을 삼으므로 끊는 주체와 끊는 대상이 모두 지혜의 지위[能斷所斷悉智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지혜로 지혜를 끊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대치하니, 그 감응한 바를 따라 위의 지위와 아래의 지위를 서로 조명하여 통달한다. 대응하는 것을 따라 장애를 제거한다. 그래서 훈습하는 힘이 서로 상대하고 서로 만나는 지위[熏力相對相値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위와 아래를 서로 비추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다스리니, 끊어버린 장애를 따라 허망하여 근본이 없어서 안립된 지위도 또한 근본이 없기 때문에 장애를 제거하는 곳을 따라 지위를 세우는 지위[隨除障處立位位]를 건립한다. 게송에서 “본래는 없었는데 지금은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다스리니, 다스리는 것은 모두 밝고 깨끗하며 장애하는 것은 모두 어둡다. 그런데 저 대치하고 끊는 일이 이미 이루어졌고, 이 장애하고 가리는 작용은 모두 구족되었다. 그래서 참과 허망이 유(有)나 무(無)의 어느 한쪽을 얻는 지위[眞妄得邊有無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대치와 장애를 스스로 변별하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다섯 가지 일로 다섯 가지 일을 다스리니, 대치와 장애의 두 가지 법이 두 가지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어서 한 맛이고 평등하며, 한 몸이고 한 성품이며, 한 업이고 한 쓰임이므로 모든 법이 한 가지 종류로 하나로 모이는 지위[諸法一種一會位]를 세운다. 게송에서 “개별적인 것 없이 하나로 전개하기 때문이다”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든 지위는 게송에서 풀이해서 설명한 것과 같다. 마음을 오로지 하여 관찰하면 그 이치가 분명해지고 본래의 취지가 모두 나타나니, 게송에서 “순서대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을 ‘장애를 벗어난 문에 의지해서 모든 지위의 총상과 별상을 세우고 상상(上上)의 차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다음은 아래의 문에 의지해서 열 가지 문을 세운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앞에서 설한 열 가지 의미는
응당 여여(如如)를 따르니
얻은 체(體)를 무너뜨리고 공(空)에 돌아가
점차로 순서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論】 하하(下下)로 향하여 전개해 나아가는 문[向焉下下轉去門]에 의지하면 열 가지 별상의 지위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앞에서 말한 열 가지 종류의 의미에서 그 대응하는 순순(順順; 순종하는 모습)과 여여(如如)에 따라 그 얻은 체(體)를 무너뜨리고 공(空)인 본래의 존재에 돌아가는 것이다. 게송에서 “앞에서 설한 열 가지 의미는 응당 여여(如如)를 따르니, 얻은 체(體)를 무너뜨리고 공(空)에 돌아간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모든 지위는 일시에 전개되는가, 전후로 전개되는가? 전후로 전개되며 일시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게송에서 “점차로 순서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나머지 법에서도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수수(隨隨)와 여여(如如)로 조작(造作)을 말하여 보인다. 마땅히 그 개별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잘 관찰해야 하니, 이것이 본래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것이 본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모두 각각 이와 같이 두 가지가 전개하니 일시와 전후의 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전개함을 세우는 것이니 전후가 정해지기 때문이고, 둘째는 본래의 성품이 전개하는 것이니 전후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 가지라 이름한다.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문은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다르니 생각을 잘하여 관찰하여야 할 것이다.

8. 심리출흥지장대용왕(深里出興地藏大龍王) 대결택분

이와 같이 대해부장도로(大海部藏道路)의 대결택분을 이미 설명하였다. 다음은 심리출흥지장대용왕의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장용왕 가운데
총체적으로 두 종류의 의미가 있으니
소위 덕이 감추어져 있는 의미와

아울러 근심이 감추어져 있는 의미이다.
【論】 심리출흥지장대용왕의 본체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 의미인가? 첫째는 공덕의 근본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이고, 둘째는 허물의 근본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공덕의 근본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이 대용왕이 네 가지 비공의 근본장[四非空根本藏]이기 때문이고, 허물의 근본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이 대용왕이 네 가지 무상의 근본장[四無常根本藏]이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지장용왕 가운데 총체적으로 두 종류의 의미가 있으니, 덕이 감추어져 있는 의미와 근심이 감추어져 있는 의미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두 가지 장(藏)의 의미를 갖추고 있는 지장용왕이 머무는 곳은 어떤 곳이며, 그 마을은 얼마나 크며, 길고 짧고, 크고 작은 모든 형상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암파시니(唵婆尸尼)에 거처하고
마을은 51양(量)의 크기이며
몸 길이는 일천 유순이고
머리에 바다제(婆多提)가 있어서
네 종류의 물을 내고
꼬리에 사가필(舍伽必)이 있어서
네 종류의 바람이 나오고
색깔은 유리구슬과 같다.
【論】 지금 이 게송에서 무슨 의미를 밝히려 하는가? 구체적 일을 들어서 이치를 나타내고 본래의 법(法)의 큰 바다를 열어서 연설함을 나타내 보이고자 한 것이다. 이 대용왕은 어느 곳에 머무는가? 암파시니에 머문다. 게송에서 “암파시니에 거처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물로부터 땅으로 들어가는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물바닥에서 땅을 향하여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51유순의 거리이다. 게송에서 “마을은 51양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저 대용왕의 몸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가? 일천 유순인데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다. 게송에서 “몸의 길이는 일천 유순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저 대용왕은 그 머리 위에 맑고 흰 털이 있으니 바다제라 부른다. 이 털의 끝에서
네 종류의 물이 나오는데, 어떤 것이 네 종류의 물인가?
첫째는 중공(中空)의 물이다. 그것은 물의 티끌에서 나온 것인데 공(空)을 안으로 하고 유(有)를 바깥으로 삼아서 생겨나는 것이다. 둘째는 방등(方等)의 물이다. 그것은 물의 티끌에서 나온 것인데, 네 각의 크기가 같아서 차이가 없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항상 뜨거운 물이다. 그것은 물의 티끌에서 나온 것인데, 어느 곳이나 어느 때에 항상 따뜻한 것이다. 넷째는 빛나고 밝은 물이다. 그것은 물의 티끌에서 나온 것인데, 광명이 있고 푸르고 밝아서 현재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네 가지 물이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머리에 바다제가 있으니 네 종류의 물을 낳는다”고 말한 것과 같다.
또한 저 용왕의 꼬리 끝에 한 털이 있으니 사가필(舍伽必)이라 이름한다. 이 털 끝에서 네 종류의 바람이 나오니, 어떤 것이 네 종류의 바람인가?
첫째는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일어날 때 여러 번 중간을 지나서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는 먼지를 간직하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나올 때 모든 먼지를 그치게 하여 가만히 머물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보배를 변하게 하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나올 때 여러 번 중간을 지나서 모든 금과 옥을 변화시켜 모래와 돌로 만드는 것이다. 넷째는 보배를 무너뜨리는 바람이다. 이 바람이 나올 때 여러 번 중간을 지나서 금과 옥을 무너뜨려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네 가지 바람이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꼬리에 사가필(舍伽必)이 있으니 네 종류의 바람이 나온다”고 말한 것과 같다.
저 용왕 몸의 빛깔은 비유하면 유리와 같아서 결정된 색깔이 없다. 게송에서 “색깔은 유리의 구슬과 같다”고 말한 것과 같다.
“임파시니에 처한다”고 한 것은 본성의 왕이 머무는 근본 처소가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마을은 51양이다”고 한 것은 진금위(眞金位)의 정수량품(定數量品)을 비유한 것이다. “몸의 길이는 일천 유순이다”라고 한 것은 본성의 왕이 천 종류의 덕을 갖추고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머리에 바다제가 있다”고 한 것은 본성의 왕이 모든 정품(淨品)에서 방편을 짓는 것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네 종류의 물을 낸다”고 한 것은 네 가지 공(空)이 아닌 것을 비유한 것이고, “꼬리에 사가필이 있다”고 한 것은
본성의 왕이 모든 염품(染品)에서 업(業)의 용(用)을 짓는 것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네 종류의 바람이 나온다”고 한 것은 네 가지 무상을 비유한 것이고, “색깔은 유리의 구슬과 같다”고 한 것은 본왕의 왕이 염(染)과 정(淨)을 거두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 순서대로 살펴서 생각하고 택하라.
다시 “큰 바다의 바닥에 머물러서 서로의 거리가 중간이다”라고 한 것은 쉰한 가지 종류의 금강위에서 이미 구족했음을 비유한 것이다. “지극히 커다란 바다에 출현할 때”라고 한 것은 여러 가지 부류의 의취(意趣)를 비유한 것이고, “바다의 파도가 그칠 때”라고 한 것은 착한 마음을 일으킬 때를 비유한 것이다. “항상 파도를 일으킨다”고 한 것은 악한 마음이 일어날 때를 비유한 것이다. 또한 마음을 머물러 잘 관찰하도록 하라.
근본행의 높은 경지[本行上地]이고, 한 맛으로 평등하고, 오묘한 법(法)이 가없고, 업의 용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큰 바다의 보배 바퀴의 묘엄왕자(妙嚴王子) 수다라에서 말하였다.
“네 가지 도(道)의 법을 낳지만 네 가지 도에 포섭되지 않고 중심을 여의어 끊으며, 네 가지 바퀴의 법을 낳지만 네 가지 바퀴에 포섭되지 않고 중심을 여의어 끊는다. 이름을 세워서 큰 힘[大力]의 무명을 설한 것은 생겨난 법에 따라 이름을 세우기 때문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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