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1권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제1권
마명(馬鳴) 지음
진제(眞諦) 한역
이병욱 번역
1. 귀의덕처무변대결택분(歸依德處無邊大決擇分)
일체의 여지(餘地) 없는 밝음에 정례(頂禮)드리니
하나도 아니고 하나가 아닌 모든 궤칙의 경지로서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무량(無量)한 하나이자
아울러 여러 가지 세계의 중생들 종류이네.
본래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끊은 품[斷命品]이니
더불어 평등해서 티끌 티끌마다 법(法)이 있지 않고
겸하여 불가설(不可說)의 무소유(無所有)이니
이러한 것들의 온갖 법이 아님을 통틀어 갖추었다.
【論】 이 두 행의 게송에 여덟 가지 문(門)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 가지 문인가? 첫째, 중중(中中)의 주인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둘째, 도로(道路)의 궤칙(軌則)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셋째, 잡됨을 여의고 하나로 합치됨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넷째, 끝없이 중생[毛生]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다섯째, 여러 가지 식(識)을 여의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여섯째, 가유(假有)로서 실질이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일곱째, 일이 있는 바가 없음[無所有]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여덟째, 구족하여 장애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문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 문이다.
첫 번째인 중중의 주인을 드러내 보이는 문에 다섯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순서에 따르고 전변을 따르는 응신(應身)의 주인이고, 둘째는 유와 무에 걸림 없는 변화신의 주인이며, 셋째는 본체이자 본성인 법신의 주인이고, 넷째는 근본과 지말이 모두 끊어져서 도(道)가 가득한 주인이며, 다섯째는 감응에 따라 걸림 없는 자연(自然)의 주인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수집행인대다라니수다라(修集行因大陀羅尼修多羅)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 화륜보광명천자(花輪寶光明天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가장 뛰어난 인도자이시여, 생각하고 의론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하고 의론할 수 없는 것을 얼마만큼 가지고 계십니까?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열어 보이셔서 분명히 말씀해 주옵소서. 저희들 대중은
그 이름[名字]을 듣고 항상 외우고 항상 생각하여 무명의 장(藏)을 벗어나 열반의 성에 이르고자 합니다.’
이에 세존께서 화륜보광명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만약 신통력으로 한량 없고 가없는 아승기 겁 동안 그 이름을 말한다 해도 끝내 다하지 못할 것이지만 지금 간략히 말하겠다. 너희들을 위해서 그 요점을 말하겠다. 선남자야, 깨달은 사람의 수효는 넓고 크며 원만하기가 항하의 모래 수보다 많으나, 간략히 말하면 다섯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종류인가? 첫째는 수체(隨體)의 부처님이고, 둘째는 변체(變體)의 부처님이며, 셋째는 법체(法體)의 부처님이고, 넷째는 헤아릴 수 없는[莫測] 부처님이고, 다섯째는 감응해 구르는[應轉] 부처님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말하였다.
게송에서 “일체의 여지(餘地) 없는 밝음에 정례 드린다”고 말한 것과 같다.
무슨 의미로 이끌어 주시는 스승을 모두 주인이라 이름하는가? 세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자재(自在)한 의미이니 모든 법의 왕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정상의 의미이니 삼계에서 첫 번째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두루하는 의미[周遍義]이니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 가지이다. 이와 같이 중중의 주인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말했다.
다음은 도로(道路)의 궤칙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말하겠다. 이 문에 여섯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여섯 종류인가? 첫째는 소리의 높낮이와 말의 인도가 무애자재(無礙自在)한 궤칙이고, 둘째는 근본 경지에 의지함이 평등한 하나의 종자라서 온갖 허망함을 여읜 궤칙이며, 셋째는 생장하고 장엄함이 하나하나 힘이 있는 궤칙이며, 넷째는 궁극적으로 원만해서 여지없이 다 거두는 궤칙이고, 다섯째는 이름도 아니고 모습도 아니며 체(體)도 아니고 용(用)도 아니고 조작도 없는 궤칙이며, 여섯째는 자연히 현전하여 상주불변(常住不變)하고 소전(所詮)이 없어서 궁극적으로 청정함이 충만한 궤칙이다. 이것이 여섯 가지이다.
금강삼매의 장애 없는 해탈의 근본 지혜의 실제 성품의 수다라[金剛三昧無礙解脫本智實性修多羅]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 문수사리야,
만약 내가 자세히 말하면 모두 10억7만 3천50법문이 수행자가 지나가야 할 도로(道路)의 칙칙(則則)이고, 내가 간략히 말하면 모두 여섯 종류의 수행자가 지나가야 할 칙칙이 있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가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궤칙의 장해(藏海)를 거두어들인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말하는 칙(則)이고, 둘째는 등(等)의 칙이며, 셋째는 종(種)의 칙이고, 넷째는 상(上)의 칙이며, 다섯째는 비(非)의 칙이고, 여섯째는 상(常)의 칙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마치 게송에서 하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모든 궤칙의 경지이기 때문인 것과 같다.
이것은 무슨 의미 때문인가? 모든 법장(法藏)을 이름하여 궤칙이라 한다. 이것은 세 가지 뜻이 있기 때문인데,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금구(金區)의 의미이다. 때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만 법문의 인(印)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으니, 저 구(區)와 같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도하는 의미이다. 장차 수행하려는 사람을 거두어 다스리는 길로 나아가게 하니, 저 인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간직하는 의미이다. 자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으니, 마치 저 간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 가지이다. 이와 같이 도로의 궤칙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잡됨을 여의고 합일함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겠다. 이 문에 세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세 종류인가? 첫째는 결박하여 합일하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무명의 번뇌를 가진 온갖 무리가 다시 생겨나는데, 비록 안에서는 합일하지 못하지만 바깥에서는 합일한다. 왜냐하면 수(數)와 양(量) 등이 성립하여 하나라는 의미에 계합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해탈하여 합일하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삼승의 모든 성인(聖人) 등이 있는데, 이들이 안으로는 도리(道理)의 합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바깥으로는 티끌과 함께 합일하는 의미가 있다. 셋째는 모두 아닌 것[俱非]을 구족해서 합일하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금강의 중간인 대성인의 무리 등이 계합하는 주체와 계합되는 대상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세 가지라 한다.
문수사리가 제일(第一)의 무극무진(無極無盡)을 논의하는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록 승가의 무리는 바다 같아서 헤아릴 길이 없지만, 그 본체에는 단지 세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세 종류인가? 첫째는 근(根)이 없고 싸움이 없는 경지이고, 둘째는 근과 함께 하면서 싸움 없는 경지이며, 셋째는 근을 두고서 싸움이 없는 경지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그러므로 게송에서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무량(無量)한 하나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무슨 의미 때문에 모든 스님을 합일(合一)이라고 이름하는가?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모으는 의미[集積義]이다. 헤아릴 수 없고 가없이 흩어진 티끌을 모으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 가지라는 의미이다. 헤아릴 수 없고 가없이 파도치는 의식을 편안히 잠재우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가지이다. 이와 같이 잡됨을 여의고 합일함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끝없이 중생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말하겠다. 이 문에 세 가지 문이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 번째는 유(有)인 종류의 중생의 가없는 문이고, 둘째는 공(空)인 종류의 중생의 가없는 문이며, 셋째는 사(似)인 종류의 중생의 가없는 문이다. 이것이 세 가지이다. 처음 문에 네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첫째는 알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태(胎)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셋째는 축축한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넷째는 변화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생(生)으로 헤아릴 수 없는 유(有)인 종류의 근본 명수(根本名數)를 포섭할 수 있다.
두 번째 문에 대해 살펴보면 세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세 종류인가? 첫째는 광명 속에 갈무리된 공(空)의 종류이고, 둘째는 어두운 색 가운데 갈무리된 공(空)의 종류이며, 셋째는 바람과 구름 가운데 갈무리된 공(空)의 종류이다. 이것을 세 종류라 이름한다. 이와 같은 세 종류는 공(空) 때문에 공인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공인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공(空)인 종류의 권속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 권속의 숫자는 많지만 이 헤아림을 벗어나지 않는다.
세 번째 문을 살펴보아도
세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세 종류인가? 첫째는 허깨비같이 변화하는 주술로서 모습마다 이치가 없는 사(似)인 종류이고, 둘째는 변화하는 약과 방술과 금기로서 모습마다 이치가 없는 사(似)인 종류이며, 셋째는 근본을 따라 영상(影像)을 현전하는 사(似)인 종류이다. 이것을 세 종류라 이름한다. 이와 같은 세 종류가 모든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갖가지 사(似)인 종류의 근본 명수(名數)를 포섭할 수 있다.
종류를 모으는 법문(法門)의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식(識)의 종류에는 자세히 말하면 열 가지가 있지만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심식(心識)이 친하고 가깝게 존재하는 중생이고, 둘째는 장소에 감추어져 있어서 심식이 드러나지 않는 중생이며, 셋째는 심식이 멀어서 움직이고 구르는 듯한 중생이다. 이것을 세 가지라 이름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
게송에서 “아울러 여러 가지 세계의 중생들 종류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무슨 의미로 모든 중생을 털이 난 것[毛生]이라 이름하는가?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는 어떤 것인가? 첫째는 움직여 구르는데[動轉] 결정된 뜻이 없는 것이니, 육취에 따라 생을 받는 것에는 결정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매우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방(方)과 각(角)에는 숫자와 양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 가지라 이름한다. 지금 이 문에서는 성인은 각(角)과 같이 드물고,범부는 털과 같이 많은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끝없이 중생의 문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여러 가지 식(識)을 여읨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겠다. 이 문에 두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공업(共業:공통된 업)으로 이루어진 목숨을 끊은 품(品)이고, 둘째는 별업(別業)으로 이루어진 목숨을 끊은 품이다. 이것을 두 가지라 한다. 첫 번째 문에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풍륜(風輪)의 대지(大地)로 목숨을 끊은 품이고, 둘째는 수륜(水輪)의 대지로 목숨을 끊은 품이며, 셋째는 금륜(金輪)의 대지로 목숨을 끊은 품이고, 넷째는 화륜(火輪)의 대지로 목숨을 끊은 품이다. 이것을 네 가지라고 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윤(輪)이 일체의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공업으로 이루어진 목숨을 끊은 품의 근본명수(根本名數)를 다 거두어들인다.
별업으로 이루어진 목숨을 끊는 품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의 몸에서 비집수(非執受)에 포함되는 머리털과 털 등의 종류이다. 업행본인(業行本因) 수다라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시 문수사리여, 중생이 세간에 거주한다고 하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총륜(摠輪:네 가지 윤을 총괄)세간이고, 둘째 별지(別持:따로 그 개성을 지킴)세간이다. 이것을 두 가지 세간이라 이름한다. 이 두 가지 세간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일체의 거주하고 의지하는 세간을 능히 잘 거두어들인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마치 게송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목숨을 끊은 품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일체의 식(識)을 여읨을 목숨을 끊음이라 이름하나니, 소위 요별(了別)하는 지혜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식을 여읜 것을 나타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가유(假有)로서 실질이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겠다. 이 문에 다섯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다섯 종류인가? 첫째는 물 속에 비친 달과 같은 가유(假有)이고, 둘째는 건달바성과 같은 가유이며, 셋째는 신기루의 물과 같은 가유이고, 넷째는 허깨비같이 변화하여 지어낸 가유이며, 다섯째는 계곡의 메아리 소리와 같은 가유이다. 이것을 다섯 종류라고 이름한다.
대보무진련화지지(大寶無盡蓮花地地)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속에 비친 달과 같다는 다섯 종류 허설(虛說)의 비유는 5만 5천5백50의 언전(言詮)인 허설의 비유와 근본 이름을 모두 포함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그러므로 게송에서 “더불어 평등해서 티끌 티끌마다 법(法)이 있지 않고”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은 무슨 의미 때문인가? 일체의 헤아릴 수 없는 허설의 비유는 다 있지 않다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소위 실제의 자성이 없기 때문에 없다고 이름하고, 실제가 없지만 도무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있다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가유(假有)로서 실제가 없음을 나타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일이 있는 바가 없음[無所有]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말하겠다. 이 문에 네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첫째는 석녀(石女)와 같이 일이 있는 바가 없는 것이고, 둘째는 토끼와 말의 뿔처럼 일이 있는 바가 없는 것이며, 셋째는 거북이 털과 같이 일이 있는 바가 없는 것이고, 넷째는 아라한의 번뇌와 같이 일이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네 종류라 이름한다.
본지(本地)의 수다라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시 불자여, 그대가 앞에서 어떤 법이 존재하지 않는 품인가 물었는데, 석녀의 자식과 같은 네 종류 근본의 가르침이 있지만, 내가 자세히 말한다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마치 게송에서 “겸하여 말할 수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은 어떤 의미 때문인가? 모든 공(空)의 법은 다 명자(名字)라서 있는 바의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종류가 있는데,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저 공한 법의 체성(體性)은 공(空)하고 공하니 이 네 가지 근본 교설과 같기 때문이다. 둘째, 이 공이 저것을 다 언전(言詮)하지 못한다면, 이것도 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 종류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있는 바의 일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구족하여 장애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설명하겠다. 이 문에 열 종류가 있다. 첫째는 심주법(心主法)이고, 둘째는 심념법(心念法)이며, 셋째는 색주법(色主法)이고, 넷째는 색자법(色子法)이며, 다섯째는 비계응법(非契應法)이고, 여섯째는 무위법(無爲法)이며, 일곱째는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법이고, 여덟째는 유위이기도 하고 무위이기도 한 법이며, 아홉째는 구구법(俱俱法)이고, 열째는 모두 아닌 법이다. 이것을 열 종류라 이름한다.
심주법은 팔식 등의 모든 심식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근본적인 법이기 때문이다. 심념법은 이것과 상응하는 모든 수의 법이다.
색주법은 하나로 능히 창조할 수 있는 대종법(大種法) 등이다. 색자법은 하나로 창조될 수 있는 갖가지 색법이다. 비계응법은 하나가 색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여러 종류의 법일 수 있는 것이다. 무위법은 허공 등의 네 종류의 무위법이고,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법은 일심 등 모든 본성의 법이고, 유위이기도 하고 무위이기도 한 법은 일심 등 모든 본성의 법이 지은 업의 용상(用相)이며, 구구법은 큰 근본의 법에서 그 첫 번째 부분이고, 모두 아닌 법이란 큰 근본의 법에서 최후의 부분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법이 지금 이 문에서 한 쪽은 있고 다른 한 쪽은 없으며, 한 쪽은 생기고 다른 한 쪽은 없어지며, 한 쪽은 역(逆)이고 다른 한 쪽은 순(順)이며, 한 쪽은 품(品)이고 다른 한 쪽은 유(類)이어서 서로 버려서 여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족하여 장애가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문을 말한 것이다.
최후덕왕광대허공(最後德王廣大虛空)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불가설(不可說), 불가설, 불가설인 시방세계 미진(微塵)의 수효는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법문의 큰 바다이다. 한 번 거처하기도 하고 한 번 일어서기도 하며, 한 번 머물기도 하고 한 번 그치기도 하는데, 끝내 나눌 수 없고 또한 버릴 수도 없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건립하여 말하기를 ‘광대하고 원만함이 허공과 같아서 지지(地地)가 다함이 없고 끝없는 법계의 큰 바다의 문’이라고 하였다.(나머지는 생략한다)”
마치 게송에서 “이런 것들이 아닌 모든 법을 통틀어 갖추었다”고 말한 것과 같다.
2. 귀의덕처인연(歸依德處因緣) 대결택분
이와 같이 덕처(德處)에 귀의함이 가없는 대결택분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덕처에 귀의하는 인연의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열 가지 큰 인연이 있으니
귀의하는 덕처의 바다를 만들어 내는구나.
이른바 예경과 은혜와 가하는 힘[加力],
광대함과 수승함과 무아,
결정과 큰 바다와, 교화를 돕는 것,
겸하여 자기의 본래 몸을 통틀어 나타내 보이는 것,
이와 같은 열 가지의 큰 인연은
원만한 대사(大士)라야 갖출 수 있다.
범부의 경계가 아니며 성인이라도 헤아릴 수 없으며
수분(隨分:隨分覺)의 보살도 할 수 없느니라.
【論】 무슨 인연 때문에 덕처에 귀의하는가? 열 종류의 큰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귀의한다. 예컨대 게송에서 “열 가지 큰 인연으로 귀의하는 덕처의 바다를 만들어낸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열 종류의 인연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예경하고 존중하는 것의 깊고 깊은 인연이다. 덕처에 예경하고 귀의할 수 있으며, 교만한 마음을 눌러 선근을 늘리는 것이다. 예컨대 게송에서 “예(禮)”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둘째는 은혜와 혜택을 생각해서 그 과보를 널리 전하고자 하는 인연이다. 가장 묘한 논과 가르침을 만들어서 모든 미쳐 날뛰는 중생을 일깨워 준다. 일체의 덕처가 모두 다 환희이기 때문이고, 게송에서 “은혜”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하는 힘을 우러러 청해서 인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큰 논의 법문을 짓는다면 저 모든 덕처에서 힘을 가하지 않으니, 법문의 바다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가하는 힘”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넷째는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널리 퍼져서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인연이다. 묘한 말로 총명한 가르침을 보임으로서 저 모든 수다라의 비밀스럽고 미묘하며 깊은 글의 뜻의 큰 바다를 그 자리에서 깨닫게 하니, 가르침을 넓고 크게 하기 위한 것이다. 게송에서 “넓고 크다”고 말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중생에게 권하여 뛰어나다는 생각을 내게 하는 인연이다. 논과 가르침을 지어서 글의 뜻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만약 저 모든 중생들을 귀의시키지 못하면, 끝내 믿고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뛰어나다”고 말한 것과 같다.
여섯째는 인욕과 무아(無我)를 닦아 익히는 인연이다.
마음을 일으켜 기뻐하고 존중하며 귀의하고 향하는 넓고 큰 마음 때문이다. 게송에서 “무아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공덕을 낳는 것이 결정된 인연이다. 귀의하는 덕처에서 논의 가르침을 지으니, 보거나, 듣거나, 보는 자를 보거나, 듣는 자를 듣거나, 같은 나라에 머물거나 간에 일체가 시간에 따라 이동하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고 끝없는 모든 공덕의 선근의 성품을 낳아서 기른다. 결정하는 데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며, 게송에서 “결정”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큰 바다의 다함없는 보배 창고의 인연이다.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일체의 갖가지 힘을 쌓아두어서 뛰어나고 원만한 큰 바다의 여의보륜금강덕장(如意寶輪金剛德藏)을 짓는 것은 헤아릴 수 없고 가없이 가난하고 고통스러우며 괴로운 중생의 부류를 구제하여 해탈시키고자 함이다. 게송에 “큰 바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아홉째는 방편의 선교(善巧)로 교화하는 인연이다. 구족한 사람에겐 비록 따로 귀의함이 없지만, 교화를 도와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게송에서 “교화를 돕는다”고 말한 것과 같다.
열 번째는 과거의 본래 몸을 나타내 보이는 인연이다. 귀의하는 덕처에서는 모든 것이 자신이 거두어 지니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자신의 본래의 몸을 통틀어 나타내 보인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을 열 가지의 큰 인연의 모습이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넓고 크고 뛰어난 인연을 어떤 사람이 만들 수 있겠는가? 불보살(佛菩薩)이 짓는 것이니, 보살의 보살들도 지을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범부와 이승이 지을 수 있겠는가? 게송에서 “이와 같은 열 가지의 큰 인연은 원만한 대사(大士)라야 구족할 수 있으니 범부의 경계도 아니고, 성인도 헤아릴 수 없으며, 수분보살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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