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2권
대종지현문본론 제2권
마명 지음
진제 한역
이병욱 번역
3. 일종금강도로(一種金剛道路)
이와 같이 덕처에 귀의하는 인연의 대결택분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한 종류의 금강도로의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게송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가지 금강의 경지에
통틀어 다섯 가지의 지위가 있네.
점차의 지위, 구경의 지위와
원만의 지위, 모두 부정하는 지위와
모두 긍정하는 지위이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지위
모든 수다라에서
잘 갖추어서 남김없이 설하네.
【論】 한 종류의 금강도로의 장애 없는 본지(本地)의 경지에는 모두 몇 가지 지위가 있는가? 자세히 말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간략히 말하면 다섯 종류가 있다. 이와 같은 다섯 지위가 일체의 총괄적인 법칙이고, 일체의 근본이며, 모든 것 안에 갈무리되어 있고, 일체가 태어나는 것이다. 게송에서 “한 종류의 금강의 경지에 모두 다섯 종류의 지위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다섯 종류의 근본지위라고 하는가? 첫째는 순서를 뛰어넘음이 없이 점차적으로 전전하는 지위이고, 둘째는 여지가 없는 궁극이자 총체적으로 지니는 지위이며, 셋째는 두루하고 원만하며 광대한 지위이고, 넷째는 모든 법이 부정되는 지위이며, 다섯째는 모든 법이 긍정되는 지위이다. 이것을 다섯 종류의 근본지위라고 이름하는데, 게송에서 “점차의 지위, 구경의 지위, 원만의 지위, 모두 균등히 부정하는[等非] 지위, 모두 균등히 긍정하는[等是] 지위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다섯 지위는 자가(自家)의 분명히 드러낸 교설이고 귀감이 되는 법칙의 방편 교설이다.
이와 같은 다섯 지위는 다만 방편의 교설이지 분명히 드러낸 교설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게송에서 “이와 같은 다섯 지위는 수다라에서 잘 갖추어져 남김없이 설해진다”고 말한 것과 같다.
지위가 의지하는 근본 수[本數]의 이름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지한 근본 수(數)는
모두 쉰한 가지이니
허가(虛假)와 광명의
마흔 종류의 이름과
움직이지 않는 진금강(眞金剛)의
열 종류의 본래 이름과
아울러 대극지(大極地)이니
이 때문에 의지하는 수(數)라 한다.
【論】 다섯 종류의 본래 지위가 의지하는 이름의 차별은 그 수효가 얼마나 있는가? 자세히 말하면 헤아릴 수 없지만, 간략히 말하면 쉰한 종류의 이름이 있다. 이와 같은 쉰한 종류의 근본이 되는 이름은 모든 것의 하늘과 땅이고, 모든 것의 부모이며, 모든 것의 근본성품이고, 모든 것의 의지할 곳이다. 게송에서 “의지한 근본 수(數)는 모두 쉰한 가지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쉰한 가지의 숫자라 하는가? 허가(虛假)와 광명에서 분화되어 마흔 종류가 있고, 진금강(眞金剛)에 열 종류의 수가 있다. 이 쉰 가지에 대극자연다리니지(大極自然陀羅尼地)를 첨가하기 때문에 쉰한 가지라는 숫자가 성립한다. 명자에서 분화된 마흔 종류의 수는 어떤 내용인가? 열 종류의 애착하고 즐기는 마음이고, 열 종류의 식별해 아는 마음이며, 열 종류의 도를 닦는 마음이고, 열 종류의 물러나지 않는 마음인데, 이러한 것들이 각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열 종류의 애착하고 즐기는 마음이라 하는가? 첫째는 필차다(必叉多)이고, 둘째는 아마가시(阿摩呵尸)이며, 셋째는 체도비리야(諦度毘梨耶)이고, 넷째는 화라지도(和羅只度)이며, 다섯째는 사마타제시(奢摩陀提尸)이고, 여섯째는 마하아비발치다(摩訶阿毘跋致多)이며, 일곱째는 아라바하니(阿羅婆訶尼)이고, 여덟째는 바미다아리나하제(婆𡄣多阿梨羅訶諦)이며, 아홉째는 시라구시아시라(尸羅俱尸阿尸羅)이고, 열째는 마하비가아승나(摩訶毘呵阿僧那)이다. 이것을 열 종류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열 가지 인식하고 분석하는 마음이라 하는가? 첫째는 유가도(留伽度)이고, 둘째는 유제가도(留諦迦度)이며,
셋째는 유라가(留羅伽)이고, 넷째는 유마하(留摩訶)이고, 다섯째는 안바사(安婆娑)이고, 여섯째는 비발치(毘跋致)이며, 일곱째는 아비발치(阿毘跋致)이고, 여덟째는 필차가(必叉伽)이며, 아홉째는 필아라(必阿羅)이고, 열째는 유산가(留山迦)이다. 이것을 열 가지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열 가지 도를 닦는 마음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도가가(度伽呵)이고, 둘째는 도안이(度安爾)이며, 셋째는 도지라(度只羅)이고, 넷째는 도화차(度和差)이며, 다섯째는 도리타(度利他)이고, 여섯째는 도생바제(度生婆諦)이며, 일곱째는 도사필(度沙必)이고, 여덟째는 도아하(度阿訶)이며, 아홉째는 도불아(度佛阿)이고, 열째는 도차일바(度叉一婆)이다. 이것을 열 가지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열 가지 물러나지 않는 마음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나제류사(羅諦流沙)이고, 둘째는 나담사(羅曇沙)이며, 셋째는 필자가(必自伽)이고, 넷째는 법필타(法必他)이며, 다섯째는 불도타(佛度陀)이고, 여섯째는 나차필(羅叉必)이며, 일곱째는 사라문가(師羅文伽)이고, 여덟째는 바하제(婆訶諦)이며, 아홉째는 바라제불타(婆羅提弗陀)이고, 열째는 달마변가(達摩邊伽)이다. 이것을 열 가지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허가(虛假)와 광명의 마흔 종류의 이름”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을 열 가지 진정한 금강의 마음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구마라가(鳩摩羅伽)이고, 둘째는 수하가일바(須何伽一婆)이며, 셋째는 수나가(須那迦)이고, 넷째는 수다원(須陀洹)이며, 다섯째는 사다함(斯陀含)이고, 여섯째는 아나함(阿那含)이며, 일곱째는 아라한(阿羅漢)이고, 여덟째는 아니라한(阿尼羅漢)이며, 아홉째는 아나하하(阿那訶訶)이고, 열째는 아하라불(阿訶羅弗)이다. 이것을 열 가지라 이름한다. 게송에서 “움직이지 않는 진금강(眞金剛)의 열 종류의 본래 이름”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 쉰 가지에서 다시 바가바불타(婆伽婆佛陀)를 첨가하니 잘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쉰한 종류의 이름이라 한다. 게송에서 “대극지(大極地)이니, 이 때문에 의지하는 수(數)라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쉰한 종류의 마음에서 저 순서를 뛰어넘지 않고 점차적으로 전전하는 지위에
포함되는 것은 그 모습이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쉰한 가지 지위에서
차례대로 순서를 건너뜀 없이 전전하니
하나에서 일체를 갖추는 것을
이름하여 점전위(漸轉位)라 한다.
【論】 오직 한 가지 행[一行]만이 쉰한 종류의 개별적인 모습의 지위[別相位]로 회향하여 들어가는데, 순서대로 이루어질 뿐 초과하는 법은 없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의 지위와 양(量)의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니, 게송에서 “쉰한 가지 지위에서 순서대로 이어지고 건너뜀이 없이 전전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점차 전전하는가? 이른바 갖출 것을 갖추어 전전한다[具具轉]고 말하는데, 어떤 것을 갖추고 갖추어 전전하는 모습이라 하는가? 한 가지 신심위(信心位)에서 나머지 50심을 갖추어 전전하고, 나아가 한 가지 대극지위(大極地位)에서 나머지 50심을 갖추어 전전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동일한 것인가, 다른 것인가? 실제로는 다른 것이면서 동일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신심 속에 모든 지위를 갖추어서 나머지 지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가지 신심 속에 모든 지위를 갖추면 마찬가지로 나머지 다른 지위에서도 모든 지위를 갖추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 때문인가? 한 가지 신심 속에 모든 다른 지위를 갖추지만 다시 점차로 전전할 필요가 있으니, 하나에서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었지만 여럿에서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점차로 전전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지금 이 문의 51지위에서는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전부 갖추고 있으니, 그래서 그 이름을 점차적으로 전전하는 지위[漸轉位]라고 하는 것이다. 게송에서 “한 지위에서 모든 지위를 갖추는 것을 점차적으로 전전하는 지위라고 이름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마하연의 금강종자(金剛種子)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강도로에서 충분히 가고 가는 것은 두 가지 큰일로서 결정적으로 전전한다. 어떤 것이 두 가지 결정된 전전인가? 첫째는 두루두루 헤아려서 통달하여 전전함이고, 둘째는 구족함을 구족하여 증장(增長)하는 전전함이다. 이것을 두 가지라 이름한다.
두루 헤아려서 통달하여 전전함은 쉰한 종류의 큰 길을 두루 통과하는 것이고, 구족함을 구족하여 증장하여 전전함은 하나하나의 지위에서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것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와 같이 순서를 뛰어넘지 않고 점차로 전전하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여지가 없는 궁극이자 총체적으로 지니는 문을 말하겠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51지위에서는
그 앞을 따라 들어갈 수 있어서
일체의 일체를 포섭하니
이것을 여지없는 궁극[究竟]이라 하니라.
【論】 51지위의 개별적인 모습의 지위에서 어떤 수행자는 믿음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수행자는 진금지(眞金地)로써 들어가기도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수행자는 그 앞의 들어간 지위의 정도에 따라 일체의 일체 지위를 완전히 포섭해서 여지없는 궁극[究竟]이고, 또한 이전(移轉)함도 없고, 출입(出入)함도 없고, 하나하나가 명백하니, 이 때문에 총체적으로 지니는 문의 지위라고 말한다. 예컨대 게송에서 “쉰한 지위에서 그 앞에 들어간 것을 따라 일체의 일체를 포섭하는데, 이것을 여지없는 궁극이라 이름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난입미증유회(難入未曾有會)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향이 바로 믿는 마음이고,
믿는 마음이 곧 부처님의 경지로다.
부처님의 경지는 십지이니,
궁극적으로 무슨 순서가 있으리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와 같이 여지없는 궁극과 총체적으로 지니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두루하고 원만하며 광대한 문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떠한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쉰한 가지의 지위는
앞뒤 없이 한 때로다.
함께 전전하고 함께 행하기 때문에
두루하고 원만하다고 이름하네.
【論】 51지위에 앞과 뒤가 없이 한 때에 함께 전전하고 한 때에 함께 행해져서 여지가 없다. 또한 51가지 개별적인 모습의 지위 중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온갖 지위는 앞과 뒤가 없이 한 때에 함께 전전하고 한 때에 함께 행해져서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원만한 지위라고 말한다. 게송에서 말하기를 “쉰한 가지의 지위는 앞뒤 없이 한 때에 함께 전전하고 한때에 함께 행해지니, 이 때문에 두루 원만하다고 이름하느니라”고 한 것과 같다.
법계법륜무진중장(法界法輪無盡中藏)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 문수사리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드린 후에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을 방향 없이 제멋대로 전전하면서 도를 닦는 사람이라 합니까? 세존께서는 모든 대중을 위해서 이와 같은 큰일을 밝혀서 말씀하시고 열어 보여 주소서.’
이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한 종류일 뿐 두 가지가 없으니, 한 길이고 한 영역이다. 대지(大地)에서 행함이 모든 도를 행하는 것이니, 앞뒤 없이 한 때에 발하여 일어나고[發起], 한 때에 함께 전전하고, 한 때에 머물러 지니며[住持], 한 때에 증득하여 들어가고, 한 때에 안립(安立)한다. 이것을 방향 없이 제멋대로 전전하면서 도를 닦는 사람이라 이름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와 같이 두루하고 원만하고 광대한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일체의 모든 법을 함께 부정하는 문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일체의 갖가지 지위는
모두 다 건립된 것이 아니니
이를 이름하여 ‘함께 부정하는 지위’라 이름하느니라.
【論】 지금 이 게송에서 어떤 의미를 밝히려 하는가? 이 함께 부정하는 문이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며, 위(位)도 아니고 지(地)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고 의미도 아니며, 사(事)도 아니고 이(理)도 아니며,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한 것도 아니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일체의 일체가 모두 아니기 때문이다.
게송에서 “모든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일체의 갖가지 지위는 모두 건립된 것이 아니니, 이를 이름하여 함께 부정하는 지위라 이름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 의미 때문에 지위의 명칭을 건립하는가? 그 부정하는 뜻을 세워서 지위로 삼기 때문이다. 대명(大明) 수다라에서 말하였다.
“지위 없는 지위가 제일의 지위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이처럼 일체의 모든 법을 함께 부정하는 문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일체의 모든 법이 함께 옳다는 문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체의 갖가지 법은
금강의 몸 아님이 없으니,
한 몸이라는 뜻 때문에
이름하여 함께 긍정하는 문이라 하네.
【論】 헤아릴 수 없고 가없는 모든 지위의 법은 일체가 다 금강의 몸인지라 평등하고 차별이 없어서 다만 한 몸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함께 긍정하는 문이라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이 문에서 하나하나의 법이 금강의 진실한 몸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고, 게송에서 “일체의 갖가지 법은 금강의 몸 아님이 없으니, 한 몸이라는 뜻 때문에 이름하여 함께 긍정하는 문이라 하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리고 종금대지(種金大地) 수다라에서 말하기를, “병 없는 도인은 다만 쌓인 그림자만을 볼 뿐 흩어진 몸을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4. 금강보륜산왕(金剛實輪山王) 대결택분
이와 같이 한 종류의 금강도로의 대결택분을 설명하였다. 다음은 금강보륜산왕의 대결택분을 설명하겠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점차로 전개되는 것은 긍정이고, 다 원만함은 부정이네.
한 때에 전개되기도 하고, 앞과 뒤에서 전개되기도 하며
함께 전개되기도 하고, 함께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며
같은 때와 다른 때에 전개되기도 하며, 같은 곳과 다른 곳에서 전개되기도 하는구나.
【論】 지금 이 게송에서는 어떤 의미를 밝히려 하는가? 한 몸인 금강대력보륜산왕의 체(體)에서 순서대로 점차 전개하고, 모든 법을 균등히 긍정하고, 남김없이 구경이고, 두루 원만하고, 함께 부정함을 끊어버림을 나타내 보이고자 함이다. 이 다섯 종류의 지위는 한 때에 전개되고, 앞과 뒤로 전개되며, 함께 전개되기도 하고, 함께 전개되지 않기도 하며, 또한 한 때에 전개되기도 하면서 다른 때에 전개되기도 하며, 또한 한 곳에서 전개되기도 하면서 다른 곳에서 전개되기도 하며, 갖출 것을 갖추고 자재할 것을 자재하여 장애되는 것이 없다.
대엄진지허공법계(大嚴盡地虛空法界) 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시 용명(龍明)아, 그대가 앞에서 ‘어떤 것을 이름하여 금강의 본래 몸이 광대해서 각 지(地)마다 장애 없는 항하의 모래 숫자만큼의 공덕의 품이라고 합니까’하고 물었는데, 그것은 수승함이 지극하고 묘하여 불가사의라고 불가사의하다. 다섯 종류의 금강의 도로에서 충분히 행하는 지(地)와 지(地)이고, 다함없음 속에 갈무리된 근본 자성이며, 의지할 장(藏)을 낳아서 늘리는 것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981 불교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4권 (0) | 2024.04.02 |
---|---|
[적어보자] #3980 불교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3권 (0) | 2024.04.01 |
[적어보자] #3978 불교 (대종지현문본론/大宗地玄文本論) 1권 (0) | 2024.04.01 |
[적어보자] #3977 불교 (대정구왕경/大正句王經) 하권 (0) | 2024.04.01 |
[적어보자] #3976 불교 (대정구왕경/大正句王經) 상권 (0) | 2024.04.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