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3권
대장일람집 제3권
[제4문 선악문] ②
21) 지계품持戒品 22) 인욕품忍辱品
23) 정진품精進品 24) 선정품禪定品
25) 반야품般若品
21) 지계품持戒品[38칙]
보살의 대승 삼취품三聚品이요
범망梵網의 10중重 48경輕이다.[도속道俗에 모두 통한다.]
수보살삼취위의受菩薩三聚威儀
(1) 개도開導
원래 계戒라는 것은 범어의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이다. 일체의 스승이신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성취하신 원인이고, 현재의 보살이 이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며, 미래의 수행하는 사람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해탈하는 것이다.
경전에서 말하였다.
“계율은 마치 평평한 땅과 같아서 만 가지 선善이 이로부터 생기고, 계율은 마치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능히 온갖 질환을 치료하고, 계율은 마치 밝은 구슬과 같아서 능히 어둠을 타파하고, 계율은 마치 배나 뗏목과 같아서 능히 고해苦海를 건너고, 계율은 마치 영락과 같아서 법신法身을 장엄한다. 죄가 있는 자는 마땅히 참회해야 하니, 참회하지 않는 자는 죄가 더욱 깊어져서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 겁을 지나더라도 회복하지 못한다. 오늘은 비록 편안하더라도 내일 아침은 보장하기 어렵나니, 마땅히 계율의 법을 지켜서 조속히 생사를 건너야 한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길 구하면서 간절히 세 번 청한다.11 이 문장은 다음의 청사請師에 속해야 할 문장으로 보인다.
(2) 청사請師
제자[아무개] 등은 일심으로 받들어 청하오니, 석가여래께서는 화상和尙이 되시고 저는 화상에 의지하기 때문에 보살계菩薩戒의 자비와 연민을 받게 되길 원하옵니다.[세 번 청한다.] 제자[아무개] 등은 일심으로 받들어 청합니다. 문수사리께서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22 계를 받는 이에게 지침이 되는 스님을 말한다.
가 되시고, 미륵보살께서 교수사敎授師가 되시며, 일체 여래께서는 존엄한 증명이 되시고, 일체 보살마하살이 함께 배우는 평등한 도반이 되어 주시기를 청합니다.[나란히 사구詞句를 세 번 청함은 앞서와 같다.]
계사戒師가 스스로 말한다.
“시방의 일체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승려들에게 우러러 여쭈옵니다. 여기 이 불자佛子들은 비구[아무개]가 되길 희구해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따라 보살삼취계菩薩三聚戒를 받고자 합니다. 이 불자들은 능히 깊은 믿음을 내면서 오직 3보의 자비와 연민을 바라고 있으므로 보살삼취계를 베풀어 주십시오.”[세 번 말한다.]
(3) 3보寶에 귀의함
제자[아무개] 등은 부디 오늘부터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부처님의 양족존兩足尊께 귀의하고, 법의 이욕존離欲尊께 귀의하고, 승가의 중중존衆中尊께 귀의하기를 원하옵니다.[세 번 설한다.]
제자[아무개] 등은 부디 오늘부터 몸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기를 이미 원했습니다.[세 번 설한다.] 지금부터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칭할 뿐, 다시 여타의 사마외도邪魔外道에는 귀의하지 않으리니, 부디 3보의 자비로 애민哀愍하여 거두어주시기를 원하옵니다.[세 번 말한다.]
(4) 열 가지 큰 서원을 일으킴
모든 불자들은 3보에 귀의를 마쳤으니 다음에는 마땅히 열 가지 큰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묻노니 진실하게 대답하라.[모두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항상 부처님을 염念하고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할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일체의 악지식惡知識을 버릴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목숨의 인연이 다하도록 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대승 경전을 독송하고 깊고 깊은 뜻을 물을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위없는 보리에 대해서 믿는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만약 중생이 고뇌를 받는 걸 볼 때는 구호救護할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힘닿는 대로 3보에 공양할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지식을 공경하고 섬길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모든 게으름을 버리고서 부지런히 불도佛道를 구할 수 있는가? 불자여, 그대는 지금부터 5진塵 위에서 번뇌가 생기는 것을 볼 때 능히 마음을 다스리고 조복할 수 있는가?”
(5) 7차遮를 물음
앞에서 열 가지 큰 서원을 일으켰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그대에게 7차遮의 죄가 없는지를 묻고서야 바야흐로 계를 받을 수 있다. 7차라는 것은 5역逆의 무거운 죄로서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노니 진실하게 답하라.[모두 없다고 대답한다.]
“불자여, 그대는 부처님 몸에 피를 내지는 않았는가? 그대는 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는가? 그대는 어머니를 죽이지는 않았는가? 그대는 화상을 죽이지는 않았는가? 그대는 아사리를 죽이지는 않았는가? 그대는 갈마승륜破羯磨僧倫33 갈마승은 화합승和合僧과 같은 말이다. 갈마승이란 일종의 작은 승가로서 비구가 서로 일정한 구역 내의 동일한 장소에서 한달에 두 번 계율 조문을 읊고 잘못을 참회하는 규칙을 함께하는 비구 모임을 말한다. 갈마를 함께하는 승단의 도리를 부쉈다는 것은 승가를 무너뜨리거나 분열시켰다는 말이다.
을 부수지는 않았는가? 그대는 성인을 죽이지는 않았는가?”
만약 모두 없다면 청정한 계를 받을 수 있다.
(6) 시방의 3보에게 계율을 증명해 주기를 청함
일심으로 받들어 청하옵니다.
시방 3세의 온 허공계와 두루한 법계 가운데 계신 일체의 부처님과 12부 경전과 진여해眞如海의 장藏과 모든 대보살ㆍ연각ㆍ성문께서는 부디 도량에 두루 내리셔서 계율을 받음을 증명하소서.
일심으로 받들어 청하옵니다. 시방 법계의 28천석天釋ㆍ범왕梵王 등과 법을 수호하고 계율을 수호하는 8부部의 용신龍神께서는 모두 부디 3보의 힘을 이어받아 널리 도량에 내리셔서 청정을 맺고 계율을 수호하여 공덕을 증명하소서.
일심으로 받들어 청하옵니다. 시방 법계의 육도사생六道四生, 염라천자閻羅天子, 태산부군太山府君, 천조지부天曹地府, 허공, 물과 육지, 일체 성현 및 계율을 받은 제자, 여러 생의 부모[累生父母], 안팎 가문의 선조 중에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들도[뜻대로 첨가한다.] 모두 부디 3보의 힘을 받아 도량에 이르러서 계율의 착함에 똑같이 적시소서.
(7) 참회
제자[아무개] 등은 지심志心으로 참회합니다. 무시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 부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아직 법을 듣지 못했을 때, 아직 승려를 만나지 못했을 때에 선악을 알지 못해 끊임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하지 않은 죄는 살생ㆍ도둑질ㆍ삿됨이며,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선하지 않은 죄는 망령된 말ㆍ꾸미는 말ㆍ욕하는 말ㆍ이간질하는 말이며,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선하지 않은 죄는 탐욕ㆍ성냄ㆍ삿된 견해입니다. 부모를 살해하고, 아라한을 죽이고, 화합 승단을 깨뜨리고,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고, 승단의 가람을 파괴하고 경전과 불상을 불태우고, 정법을 훼방하여 일천제一闡提를 지었으니, 일체의 죄악이 한량없고 가없습니다. 이제 시방의 부처님 앞에서 불쌍히 여겨 구해 주기를 드러내오니 부디 소멸해 주시길 원하옵니다.
(8) 네 가지 큰 서원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길 서원합니다. 가없는 번뇌를 끊길 서원합니다. 다함없는 법문을 배우길 서원합니다. 위없는 불도佛道를 성취하길 서원합니다.[세 번 설한다.]
(9) 갈마羯磨
모든 불자들은 이제 마땅히 세 번 갈마를 지을 때, 밝은 마음으로 경앙傾仰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잘 들어라. 첫 번째 갈마 때에는 시방 법계의 오묘하고 좋은 계법戒法을 모두 그대들의 몸과 마음에 주입하려 하고, 두 번째 갈마 때에는 이 오묘한 계법을 편만한 허공 중에서 그대들 불자의 정수리 위에 모이게 하고, 세 번째 갈마 때에는 이 오묘한 계법이 그대들 불자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니 청정함이 마치 유리와 같고 안팎이 밝게 사무침으로써 계법을 감당해 받으라. 그대들 모든 불자들은 각각 합장한 채로 잘 듣고 잘 들어라.
(10) 계율을 받음
날이 되면 살하薩訶세계가 있다.[운운] 출가와 재가의 두 대중이 이제 내 처소에서 보살의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구해서 받는다. 3취聚라는 것은 율의律儀를 섭수하는 계율로서 이른바 10바라이波羅夷이니 곧 악을 그치는 것이고, 선법善法을 섭수하는 계율로서 이른바 8만 4천 법문이니 곧 선을 행하는 것이며, 중생을 섭수하는 계율로서 이른바 자비희사慈悲喜捨이니 유정有情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 계율은 곧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수행하는 지름길이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하셨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앞으로 설하실 것이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지금 설하시는 것이며, 과거의 일체 보살도 이미 받았고 이미 배웠고 이미 이해했고 이미 행했고 이미 성취했으며, 미래의 일체 보살도 앞으로 받을 것이고 앞으로 배울 것이고 앞으로 이해할 것이고 앞으로 행할 것이고 앞으로 성취할 것이며, 현재의 일체 보살도 지금 받고 지금 배우고 지금 이해하고 지금 행하여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게 될 것이다.
불자여, 그대들은 지금의 몸으로부터 미래제가 다하도록 그 중간에서 살생을 하지 말라. 만약 범한다면 보살행이 아니니, 범하지 않고 능히 지킬 수 있겠는가?[이하부터는 모두 그러하다고 대답한다.]
불자여, 그대들은 지금의 몸으로부터 미래제가 다하도록 도둑질, 삿되고 잘못됨, 망령된 말, 술을 파는 것, 재가와 출가 보살의 죄과를 말하는 것, 스스로를 찬양하고 남을 헐뜯는 것, 간탐慳貪, 성냄, 3보를 비방하는 것을 행하지 말라.[모두 이상과 같이 말한다.]
(11) 계율을 찬탄함
보살계라는 것은 앉아서 받고 서서 깨뜨려도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 설사 훼손하고 범해서 6취趣 가운데 떨어지더라도 6취의 왕이 되고, 받아서 범하는 자라도 받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는 자보다 뛰어나다. 범함이 있으면 이름하여 보살이고, 범함이 없으면 이름하여 외도外道이다. 성문의 계율을 받는 것은 마치 반딧불과 같고, 보살의 계율을 받는 것은 비유하면 햇빛과 같다. 또 붕새는 한 번에 만 리를 날아가는데 이것이 보살계이니, 도에 나아감이 빠르기 때문이다. 『법화경』에서는 “이 보배 수레를 타고서 곧바로 도량에 이른다”고 하였다.
(12) 회향廻向
앞서의 계품戒品이 낳은 공덕은 한없이 좋은 연緣으로 진여眞如에 회향하고 실제를 장엄한다. 위없는 불과佛果와 보리와 4은恩의 세 가지 광대한 과보는 법계를 균등히 자량함으로써 원수든 친한 이든 똑같이 깨달음의 길에 오른다.[다시 언사를 넣고 싶다면 뜻대로 늘리거나 줄인다. 운운]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정각을 성취하시고서는 널리 대중을 위해 선설宣說하신, 노사나盧舍那부처님의 열 가지 무진장계품은 일체 중생의 본원本源으로서 자성의 청정함이고, 초결初結 보살의 10중重 바라제목차는 도에 이르는 법으로서 일체 보살이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하니, 게송으로 설한다.
나 이제 노사나盧舍那는
바야흐로 연화대蓮華臺에 앉아서
천 개의 연꽃 위를 두루 돌아서
다시 천 분의 석가를 나타낸다.
한 송이 꽃은 백억의 나라인데
한 나라에 한 분의 석가께서
각기 보리수에 앉아서
일시에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신다.
이처럼 천백억의
노사나 본신本身과
천백억의 석가께서
각기 미진微塵의 대중을 접하여
함께 내 처소에 이르러서
내가 독송하는 불계佛戒를 들으니
감로문이 곧 열리누나.
이 때 천백억도
본도량本道場에 이르러서
각기 보리수에 앉아
내 본사本師의 계율을 독송한다.
10중重의 48가지인
계율은 마치 해와 달처럼 밝고
또한 마치 영락瓔珞의 구슬과 같아서
미진의 보살 대중이
이로 말미암아 정각을 성취한다.
이 노사나의 독송을
나 또한 이렇게 독송하니
그대 새로 배우는 보살은
정수리에 이고서 계율을 받아 지니고
이 계율을 받아 지닌 후에는
이를 모든 중생들에게 전해 주어라.
나의 올바른 독송을 잘 들어서
불법 가운데 계율의 장藏인
바라제목차를
대중이 마음으로 진정 믿는다면
그대는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니
나는 이미 부처를 이루었노라.
항상 이와 같이 믿는다면
계품戒品이 이미 구족한 것이니
일체의 마음이 있는 자는
모두 마땅히 불계佛戒를 섭수해야 한다.
중생이 불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나니
그 지위는 대각大覺과 동일하도다.
진실로 모든 불자佛子들과
대중들은 다 공경하는 마음과
지극한 마음으로 나의 독송을 들으라.
부처님께서 불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스스로 죽이고 남으로 하여금 죽이게 하고, 죽이는 것을 방편으로 찬탄하고, 하는 걸 보고서 기뻐하고 나아가 주문으로 죽인다면, 죽임이 업이고 죽임이 법이고 죽임이 인因이고 죽임이 연緣이다. 나아가 일체 생명이 있는 것을 부득이해서 죽이게 되더라도 보살은 반드시 자비심을 일으켜서 구제하고 보호해야 하는데도, 방자하게 죽이는 자는 바라이죄波羅夷罪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도둑질하고, 남을 도둑질하게 하고, 방편으로 도둑질을 한다면 도둑질이 업이고 도둑질이 법이고 도둑질이 인因이고 도둑질이 연緣이다. 주문으로 도둑질하고 나아가 귀신이 물건을 겁탈하고 훔치는 것을 주재하는데,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라도 얻지를 못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한다면, 보살이 자비심으로 항상 일체의 사람을 도와서 복을 낳고 즐거움을 낳아야 하는데도, 도리어 남의 물건을 훔친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사음邪淫하고, 남으로 하여금 음란하게 한다면, 사음이 인이고 사음이 업이고 사음이 법이고 사음이 연이다. 나아가 축생의 여인과 모든 천天과 귀신의 여인이 도리에 맞지 않게 사음을 행하더라도 보살은 마땅히 청정한 법을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일체의 사람에게 사음을 일으킨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망령된 말을 하고, 남에게 망령된 말을 하도록 하고, 방편으로 망령된 말을 한다면, 망령된 말이 인이고 망령된 말이 업이고 망령된 말이 법이고 망령된 말이 연이다. 보살은 항상 올바른 말을 해야 하는데도 일체의 사람에게 삿된 말을 일으키도록 한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술을 팔고, 남에게 술을 팔도록 한다면, 술을 파는 인이고 술을 파는 업이고 술을 파는 법이고 술을 파는 연이니, 술은 죄를 일으키는 인연이다. 보살은 마땅히 일체 중생이 밝은 지혜를 낳도록 해야 하는데, 도리어 사람들에게 뒤바뀐 마음[顚倒心]을 일으키게 한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재가ㆍ출가 보살의 죄과罪過를 말하고, 남에게 죄과를 말하도록 한다면, 죄과가 인이고 죄과가 업이고 죄과가 법이고 죄과가 연이다. 보살은 외도外道의 악인과 2승乘의 악인이 불법 가운데 법 아닌 것과 계율 아닌 것을 설하는 것을 들으면, 보살은 항상 자비심을 일으켜서 이 악인들을 교화하여 대승大乘에 대해 훌륭한 믿음을 낳게 해야 하는데, 도리어 스스로 불법 가운데 죄과를 설한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도록 한다면, 남을 헐뜯는 인이고 남을 헐뜯는 업이고 남을 헐뜯는 법이고 남을 헐뜯는 연이다. 보살은 일체 중생을 대신해서 헐뜯음과 모욕과 나쁜 일을 받고 자신은 좋은 일을 남과 함께해야 하는데, 만약 스스로 자기의 덕만 고양하고 남의 좋은 일은 숨겨서 남으로 하여금 헐뜯음을 받게 한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간탐하고, 남에게 간탐하도록 한다면, 간탐이 인이고 간탐이 업이고 간탐이 법이고 간탐이 연이다. 보살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구걸하는 걸 보면 일체를 주어야 하는데도, 보살이 악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으로써 돈 한 푼, 바늘 하나, 풀 한 포기도 보시하지 않고, 법을 구하는 자에게 한 구절과 한 게송도 설하지 않고서 도리어 욕을 한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성내고 남에게 성내도록 한다면, 성내는 인이고 성내는 업이고 성내는 법이고 성내는 연이다. 보살은 마땅히 일체 중생의 선근과 다툼 없는 일을 낳아야 하고 항상 자비심을 내야 하는데, 도리어 욕하면서 손, 발, 칼, 몽둥이로 때릴 뜻을 멈추질 않고, 오히려 면전의 사람이 참회를 하는데도 성냄을 풀지 않는다면 바라이죄이다.
만약 불자야, 스스로 3보를 비방하고, 남에게 3보를 비방하도록 한다면, 비방이 인이고 비방이 업이고 비방이 법이고 비방이 연이다. 보살은 남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을 보아도 마치 창으로 마음을 찌르는 것 같은데, 하물며 자신의 입으로 비방하고 도리어 남의 비방을 돕는다면 바라이죄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상과 같이 10중重 바라제목차를 설하신 후에 다시 48경輕을 설하셨다. 이른바 국왕과 윤왕輪王과 백관百官이 지위를 받을 때는 마땅히 먼저 보살계를 받아야 귀신이 구호救護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신다. 화상 아사리阿闍利 등을 보고도 일어나서 맞이하고 예배하고 공양하지 않는다면 경구죄輕垢罪를 범한 것이다.
다음에 술을 마시는 자는 과실이 한량 없다. 술그릇을 남에게 마시도록 건네주기만 해도 5백 세상 동안 손[手]이 없을 텐데, 하물며 스스로 마시고 남에게 마시게 한다면 경구죄를 범한 것이다.
다음에 고기를 먹는 자는 자비의 성품을 끊어서 경구죄를 범한 것이다.
다음에는 계율을 지키는 것인데, 불자佛子는 이렇게 서원해야 한다.
‘차라리 이 몸을 불구덩이나 칼산에 던질지언정 결코 부처님의 경법과 계율을 범하지 않겠으며, 아울러 여인과 함께 청정하지 못한 행을 짓지 않겠다. 차라리 뜨거운 쇠로 몸을 얽을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몸으로 신도가 보시한 옷을 받지 않으리라. 차라리 쇳덩어리를 삼킬지언정 계율을 파괴한 입으로 신도가 보시한 음식을 먹지 않으리라. 차라리 맹렬한 불길에 누울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몸으로 신도가 보시한 침상자리[床座]를 받지 않으리라. 차라리 창에 찔릴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몸으로 신도가 보시한 의약품을 받지 않으리라. 차라리 뜨거운 가마솥에 들어갈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몸으로 신도가 보시한 집을 받지 않으리라. 차라리 망치로 몸을 부술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몸으로 남에게 예배를 받지 않으리라. 차라리 두 눈을 도려 파낼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마음으로 남의 호색好色을 보지 않으리라. 차라리 송곳으로 귀를 찌를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마음으로 좋은 음성을 듣지 않으리라. 차라리 코를 베어 버릴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마음으로 온갖 향기를 탐내서 맡지 않으리라. 차라리 혀를 끊을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마음으로 여타의 백 가지 맛을 먹지 않으리라. 차라리 도끼로 몸을 찍을지언정 결코 계율을 파괴한 마음으로 좋은 접촉을 탐착하지 않으리라.’
다시 이런 서원을 지어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성불하기를 원하옵니다.’
보살이 이런 서원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경구죄를 범한 것이다.
[번잡해서 다 기록하지 않고 대략 12가지만 들었다. 『범망경』에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극자함剋字函]
우바새는 5계이고 우바이는 8계이며
비구와 비구니는 10조條이다.
5계의 글을 받는다.[재가자가 계율을 받을 적에는, 먼저 3보에 예배하고 무릎 꿇고 합장해서 3업을 참회한 후에 5계를 받는다.]
나[아무개]는 지금부터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 양족존兩足尊께 귀의하고, 법의 이욕존離欲尊께 귀의하고, 승가의 중중존衆中尊께 귀의합니다.[세 번 말한다.]
나[아무개]는 부처님께 귀의했고, 법에 귀의했고, 승가에 귀의했습니다. 석가모니의 불법 속에서 5계를 즐겁게 받아 우바새가 되었사오니, 마땅히 증지證知하소서.[세 번 말한다.]
그대[아무개]가 석가모니부처님의 우바새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노라. 설해 주는 5계는 무릇 우바새라면 마땅히 수명이 다할 때까지 호지護持해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수명이 다하도록 살생을 여의는 것이 우바새의 계율이니 지킬 수 있는가?[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수명이 다하도록 남의 것을 취하는 걸 여의고, 사음을 여의고, 망령된 말을 여의고, 술 파는 것을 여의는 것이다.[위와 똑같이 묻고 대답한다.]
8계의 글을 받는다.
나[아무개]는 이미 3귀歸를 받았습니다. 무시無始의 생사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몸의 업[身業]이 착하지 못했으니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사음했으며, 입의 업[口業]이 착하지 못했으니 망령된 말ㆍ꾸미는 말ㆍ욕하는 말ㆍ이간질하는 말을 하였으며, 뜻의 업[意業]이 착하지 못했으니 탐욕하고 성내고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가졌습니다. 이 같은 온갖 죄과를 지금 시방의 모든 부처님ㆍ모든 존귀한 보살ㆍ도를 얻은 성현과 현재의 스승과 승가 앞에서 불쌍히 여겨 주시길 바라면서 참회합니다.
나[아무개]는 이미 참회했으니 몸의 업이 청정하고, 입의 업이 청정하고, 뜻의 업이 청정합니다. 이를 청정이 머문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살생하지 않으며, 도둑질하지 않으며, 사음하지 않으며, 망령된 말을 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으며, 높고 넓은 큰 상에 앉거나 눕지 않으며, 향기로운 꽃이나 영락瓔珞을 몸에 달거나 향기로운 기름을 몸에 바르지 않으며, 노래와 잡기와 오락이 있는 데 일부러 가서 관람하고 듣지 않을 것이며, 정오 때가 지나면 먹지 않겠습니다.[세 번 설한다.]
나[아무개]는 이미 8계를 받았으니, 이 공덕으로 전륜성왕, 제석천과 범천의 모든 왕, 인간과 천상의 온갖 즐거움을 구하지 않겠으며, 바라는 것은 모든 번뇌를 멸하고 모든 법을 밝게 알아서 불도佛道를 이루겠습니다.[우바이에게도 통용된다.]
10계의 글을 받는다.
나[아무개]는 대덕大德께 사미沙彌 화상이 되옵기를 구하오니, 부디 대덕께서는 저[아무개]를 위해 10계의 화상이 되어 주소서. 나[아무개]는 대덕 화상께 의지했기 때문에 출가해서 10계를 받습니다.[이와 같이 세 번 말하고, 계사戒師는 응한다.] 나[아무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해서 출가합니다. 부처님ㆍ바가바婆伽婆ㆍ석가모니께서 출가하셨으니, 나 역시 부처님을 따라서 화상 아무개에게 출가합니다.[세 번 말한다.] 나[아무개]는 부처님ㆍ법ㆍ승가에 귀의했습니다. 부처님ㆍ바가바ㆍ석가모니께서 출가하셨으니, 나 역시 부처님을 따라서 화상 아무개에게 출가했습니다.[계사가 응답해서 말한다.]
그대 아무개가 부처님ㆍ바가바ㆍ석가모니의 사미가 되었음을 들었노라. 10계를 설하노니, 수명이 다하도록 살생을 여의는 것이 사미의 계율인데 그대는 지킬 수 있는가?[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수명이 다하도록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고, 범행梵行이 아닌 것을 여의고, 망령된 말을 여의고, 술 마시는 것을 여의고, 높고 넓은 큰 상에 앉고 눕는 것을 여의고, 향기로운 꽃이나 영락을 몸에 달거나 향기로운 기름을 몸에 바르는 것을 여의고, 노래와 잡기와 오락하는 데 일부러 가서 관람하고 듣는 것을 여의고, 금ㆍ은 보화를 받아서 쌓아두는 것을 여의고, 정오 때가 아닌데 먹는 것을 여읜다.[위와 같이 문답한다.]
이와 같은 사미의 10계를 수명이 다하도록 반드시 범해선 안 되며, 마땅히 3보에 공양해야 하고, 마땅히 화상 아사리에게 공양해야 하고, 일체를 법답게 가르쳐서 어기거나 거스르지 말고, 방편과 학문과 좌선과 송경誦經을 부지런히 구해서 불법 중에서 마땅히 수다원과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아라한과ㆍ벽지불도 나아가 대보리를 얻어야 한다.”[훈자함訓字函 제2권]
계율에는 비록 품류에 등급 차별이 있지만
마음이 우월하거나 열등할 뿐 정해진 한계가 없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계율을 깨뜨리는 자는 3악도惡道에 떨어진다. 만약 계율을 지키는 것이 하품이라면 인간으로 태어난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중품이라면 6욕천欲天에 태어나는데, 계율을 지키면서 4선禪과 4공空의 정定을 행한다면,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난다. 상품의 계율을 지키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급의 청정한 지계持戒는 아라한을 얻고, 중급의 청정한 지계는 벽지불을 얻고, 상급의 청정한 지계는 불도佛道를 얻는다.”[덕자함德字函 제3권]
『불보은경佛報恩經』에서 말하였다.
“계율에는 상ㆍ중ㆍ하가 있으니, 5계는 하품下品이고, 10계는 중품中品이고, 구족계[具戒]는 상품上品이다. 5계 가운데서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가령 미품微品의 마음으로 계율을 받으면 미품의 계율을 얻고, 만약 중품의 마음으로 계율을 받으면 중품의 계율을 얻고, 만약 상품의 마음으로 계율을 받으면 상품의 계율을 얻는다. 10계와 구족계에도 역시 각기 3품이 있다. 가령 5계의 설명처럼 상품의 마음으로 5계를 얻으면 상품의 계율이고, 중품의 마음으로 10계를 얻으면 중품의 계율이고, 하품의 마음으로 구족계를 얻게 되면 하품의 계율이다. 이런 뜻 때문에 마음에 따라서 상ㆍ중ㆍ하가 있어 계율을 얻는 것이 동일하지 않은 것이지 정해진 한계는 없다.”[기자함器字函 제6권]
계율을 제정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것 때문이고
다섯 가지 지니거나 범하는 것을 검사하는 데도 차이가 있다.
『보은경報恩經』에서 말하였다.
“5계를 지닌 우바새에게는 다섯 가지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첫째는 축생을 팔아서는 안 되며, 둘째는 활ㆍ화살ㆍ칼ㆍ몽둥이를 팔아서는 안 되며, 셋째는 술을 팔아서는 안 되며, 넷째는 기름을 짜서는 안 되니, 천축의 마麻에는 벌레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벌레가 없다면 기름을 짜도 잘못이 없다. 다섯째는 5대색[大色]44 5대색이란 황색[地]・백색[水]・적색[火]・흑색[風]・청색[空]의 다섯 가지 정색(正色:標準色)을 말한다. 계율에 수행승은 위와 같은 다섯 가지의 원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으로 염색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외국의 염색법에서는 온갖 벌레를 많이 죽이는데, 진秦나라 땅에서 푸르게 물들이는 것 역시 벌레를 많이 죽이는 것이므로 5대색으로 염색하는 것에 속한다.”[기자함器字函 제6권]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 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 그물을 치지 말 것이며, 독약을 팔지 말 것이며, 술을 빚지 말 것이며, 노름이나 장기ㆍ바둑을 두지 말 것이며, 갖가지 오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다섯 가지 어울려 놀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으니, 백정과 음녀와 주막과 국왕과 전다라旃陀羅의 집이다.”[극자함剋字函 제3권]
『섭대승론』에서 말하였다.
“계율 가운데 성문이 죄가 있다고 시인하는 곳을 보살은 그 속에 죄가 없다고 하고, 보살이 죄가 있다고 시인하는 곳을 성문은 그 속에 죄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논석(論釋)』55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이다.
에서 말하였다.
“여래께서 두 가지 뜻을 세우니, 첫째는 성문이 자기를 제도하도록 하기 위해서 계율을 제정하고, 둘째는 보살이 자기도 건너면서 남도 건너도록 하기 위해서 계율을 제정한다. 성문과 보살이 뜻을 세우고 계율을 받는 것이 또한 이와 같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계율을 지니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가령 성문이 안거安居 중에 다니면 계율을 범하는 것이고, 다니지 않으면 범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보살이 유행遊行하여 중생에게 이익이 있다면, 다니지 않는 것이 범하는 것이고, 다니는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다.”[여자함與字函 제1권]
율장律章에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대한 명문明文이 있으며
겁의 수數가 길고 기니 진실로 두렵다.
『승갈마僧羯磨』에서 말하였다.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자는 머리를 끊은 것과 같아서 다시는 일어설 수도 없고 함께 머물 수도 없다.”[입자함入字函 제1권]
『비니모毘尼母』에서 말하였다.
“바라이라는 것은 모든 좋은 법을 버려서 영원히 참회함이 없기에 그렇게 부른다. 승잔僧殘이라는 것에는 참회할 만한 여지[理]가 약간은 있다. 만약 청정해지고 싶어서 대중에게 참회하면, 이 죄는 없앨 수 있지만 약간은 남아 있어서 승잔이라고 하는 것이다. 투란차偸蘭遮라는 것은 크고 악한 죄에서 변생邊生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대사大事를 일으키려고 해도 성취하지 못한다. 바일제波逸提라는 것은 선근을 끊는 것이 아니라 가지나 줄기 정도의 죄를 말한다.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라는 것은 실수해서 잘못을 지었기 때문이다. 돌길라突吉羅라는 것은 몸과 입의 율의律儀를 범하는 것이다.”[유자함猶字函 제7권]
『계율경중경戒律輕重經』에서 말하였다.
“비구는 부처님의 법에 대해 오만하고 가볍게 여겨서 대중이 배우는 계율을 범한다. 가령 사천왕[四天王天]에서 5백 년의 수명을 누리고서 니리(泥犁:지옥) 가운데 떨어졌다면 인간의 숫자로는 9백천 년을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를 범한 것이며, 가령 삼십삼천三十三天에서 천 년의 수명을 누리고서 니리 가운데 떨어졌다면 인간의 숫자로는 3억 60천 년을 바야제波夜提를 범한 것이며, 가령 야마천夜摩天에서 2천 년의 수명을 누리고서 니리 가운데 떨어졌다면 인간의 숫자로는 20억천 년을 투란차偸蘭遮를 범한 것이며, 가령 도솔천에서 4천 년의 수명을 누리고서 니리 가운데 떨어졌다면 인간의 숫자로는 50억 60천 년을 승가바시사僧伽婆尸沙를 범한 것이며, 가령 불교락천不憍樂天에서 8천 년의 수명을 누리고서 니리 가운데 떨어졌다면 인간의 숫자로는 230억 40천 년을 바라이를 범한 것이며, 가령 타화천他化天이 16천 년의 수명을 누리고서 니리 가운데 떨어졌다면 인간의 숫자로는 921억 60천 년을 범한 것이다.”[봉자함奉字函 제10권]
한 달에 6일은 재계를 지니고
사천왕의 무리들은 인간 세계를 살핀다.
『타사가경墮舍迦經』에서 말하였다.
“한 달에 6일을 재계齋戒하니, 8일과 14일과 15일과 23일과 29일과 30일이다. 여덟 가지 계율을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받들어 지닌다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다. 만약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신속히 아라한의 도를 얻으려고 한다면, 만약 불도佛道를 얻으려고 한다면, 만약 천상에 태어나고 싶다면, 그 마음을 단정히 하고 그 뜻을 하나로 해서 한 달에 15일이나 20일을 재계하면 좋다.”[약자함若字函 제4권]
『사천왕경四天王經』에서 말하였다.
“한 달에 6번은 재일齋日이니, 모든 태자와 사천왕으로 하여금 내려가서 중생을 관찰하게 한다.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적으면 도리천에 올라가서 제석천에게 알린다. 제석천과 모든 천天의 마음은 모두 기뻐하지 않으며, ‘수라修羅의 종자는 많은데 모든 천天의 종자는 적다’고 말한다. 만약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가 많다면, 모든 천天은 환희하면서 ‘천상의 무리들이 점점 늘어나고 수라는 점점 감소한다’고 설한다.”[덕자함德字函 제3권]
반나절의 미약한 재계의 힘을 가볍게 여기지 말지니
그것으로도 60만 년의 자량을 벌 수 있다.
『잡비유경雜譬喩經』66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 나온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대단월大檀越이 부처님과 승려를 청하여서 공양을 했다. 낙酪을 파는 손님 한 사람이 와서 그 공양으로 인해 머물렀다가 재계齋戒를 지니고 법을 들을 것을 권유받았다. 그가 저녁 때 돌아오자 부인이 말했다.
‘나는 아침도 아직 먹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소.’
그러면서 억지로 함께 남편에게 밥을 먹게 함으로써 재계를 깨뜨리게 되었다.
반나절 정도 재계한 복으로 일곱 번 천상에 태어나고 일곱 번 인간에 태어나며, 하루 동안 재계를 지니면 60만 년의 자량資糧이 있고, 다시 다섯 가지 복이 있으니, 첫째는 병이 적은 것이고, 둘째는 몸이 편안한 것이고, 셋째는 음란함이 적은 것이고, 넷째는 잠이 적은 것이고, 다섯째는 천상에 태어나 숙명宿命을 아는 것이다.”[도자함圖字函]
5근根이 범하지 않도록 일심으로 다스려도
술 한 번 마심으로써 5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열반교계경涅槃敎誡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계율에 머물 수 있다면, 반드시 5근根을 다스려서 방일로 인해 5욕欲 속에 들어가지 말라. 비유하면 마치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소를 감시함으로써 멋대로 남의 벼의 모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만약 5근을 방일하게 하면, 5욕이 장차 끝[崖畔] 없어서 다스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포악한 말에 고삐가 없고, 미친 코끼리에게 굴레가 없고, 원숭이가 나무에 올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그러지 못하도록 다스리기 어려움과 같다. 이 5근은 마음이 주인이 되어서 방일하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 마음을 방종하게 하면 사람의 착한 일을 상실하고, 마음을 한 곳으로 다스리면 해내지 못 할 일이 없다.’ ”[양자함羊字函 제5권]
『비바사론毗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어떤 오바삭가(鄔波索迦:남자 신도)가 품성이 어질고 현명해서 5계를 받아 지녔는데, 계율을 범하지 않도록 전념하였다. 후에 한때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가 그릇에 담긴 술을 보았는데 물처럼 보였다. 마침내 이를 들어 마시니, 이 때 문득 음주의 계율을 범한 것이다. 그 때 이웃의 닭이 그의 집으로 들어오자, 그 닭을 훔친 뒤 잡아먹었다. 이는 다시 살생과 도둑질의 계율을 범한 것이었다. 이웃의 여인이 닭을 찾으러 그의 집에 들어왔다가 강제로 정을 통하게 됐으니, 이는 다시 사음[邪行]의 계율을 범한 것이었다. 이웃집이 관청에 신고해서 심문을 받는데 거부하고 기피하였으니, 이는 다시 망어[誑語]의 계율을 범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5계를 모두 술로 말미암아 범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만약 부처님을 스승으로 부른다면, 지금부터 아래로 띠풀 끝에 적셔진 술 한 방울이라도 마셔서는 안 된다.’ ”[휴자함虧字函 제3권]
계율의 병이 온전하면 재물도 따라서 생기고
계율의 병이 깨지면 재물도 따라서 상실된다.
『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일마다 얻지 못함이 없고,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은 일체를 다 잃는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항상 천天을 공양하는데 그 사람은 빈궁해서 사방으로 구걸하며 다녔다. 12년이 지나도록 천天을 계속 섬기면서 부귀를 축원祝願하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여기까지 이르자, 천天도 그를 불쌍히 여겨서 몸을 나타내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구하는가?’
‘저는 부귀를 구합니다.’
천天이 덕병德甁이라 이름지은 그릇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무릇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두 병에서 나올 것이다.’
한 손님이 물었다.
‘그대는 가난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이토록 부자인가?’
‘내가 얻은 천병天甁에서 갖가지 재물을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손님이 병을 빌려서 살펴보았다. 그 사람이 교만한 탓에 병을 단단히 잡지 못해서 실수로 병을 깨뜨렸다. 모든 재물도 함께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무릇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갖가지 묘하고 좋은 것을 원해서 얻지 못함이 없다. 만약 계율을 훼손하는 사람이라면 교만방자로 병을 깨뜨려서 재물을 잃었듯이 그도 이와 같다.”[사자함寫字函 제3권]
계율을 지키면 부처님과 멀리 있어도 항상 친견함이요
계율을 깨뜨리면 부처님을 친견하여도 도리어 멀어진다.
『제경요집』에서 말하였다.
“바라지국波羅脂國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세존께 여쭙기 위해 사위국으로 오고 있었다. 도중에 목이 말라서 앞에 있는 우물로 갔다. 한 비구는 물을 길어서 마셨지만, 다른 비구가 물을 살펴보니 벌레가 보여서 마시지 않았다. 물을 마신 비구가 도반인 비구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마시지 않았는가?’
그 비구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계율을 제정하셔서 벌레가 있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셨네.’
물을 마신 비구가 권유했다.
‘그대는 물을 마셔서 갈증으로 죽지 않도록 하게나. 부처님을 뵙지 못할 수도 있네.’
비구가 대답했다.
‘나는 차라리 몸을 잃을지언정 부처님의 계율은 훼손하지 못하겠네.’
마침내 그는 갈증으로 죽었다. 물을 마신 비구는 부처님의 처소에 도착했다. 부처님께서는 짐짓 알면서도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저는 바라지국에서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대는 도반이 없는가?’
‘두 사람이 도반이 되었습니다. 도중에 갈증이 났는데 우물에는 벌레가 있었습니다. 저는 곧 그 물을 마셔서 물로 기력을 찾아 세존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는 굳이 계율을 지키면서 물을 마시지 않아 갈증으로 죽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그대는 나를 보지 못했는데도 나를 보았다고 생각하는구나. 저 죽은 비구는 이미 먼저 나를 보았다. 만약 어떤 비구가 방일하고 게을러서 모든 감관[根]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비록 나와 함께 머물더라도 그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그가 비록 나를 보더라도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만약 어떤 비구가 바다 저쪽 해안[彼岸]에 있으면서 능히 방일하지 않고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 모든 감관을 다스린다면, 비록 나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나는 항상 그를 보고 그도 항상 나와 가까이 있는 것이다.’ ”[장자함帳字函 제3권]
비구가 꽃의 남은 향기를 멀리에서 냄새 맡으니
연못의 신은 그가 도둑질했다며 강직하게 꾸짖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한때 어떤 비구가 눈병이 났다. 스승께서는 마땅히 발담마화鉢曇摩華 냄새를 맡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비구는 마침내 그 꽃이 있는 연못가에 가서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앉은 뒤에 냄새를 맡았다. 연못의 신이 비구에게 말했다.
‘향기를 도둑질하는 도적이다.’
비구가 게송을 설했다.
파괴하지도 않고 빼앗지도 않고
멀리서 머물면서 향내에 따라 냄새 맡는데
그대는 지금 어째서 말하는가?
내가 향기를 도둑질하는 도적이라고.
천신이 다시 게송으로 대답했다.
구하지 않고도 스스로 취하는 것을
세간에서는 도적이라 하네.
그대는 지금 남이 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한결같이 취하고 있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는
진실로 향기를 도둑질하는 도적이라 하네.
당시 한 사부士夫가 있어 그 연뿌리를 취해서 짊어지고 가 버렸다. 비구가 그 천신에게 게송을 설하였다.
지금 저 사부士夫는
분타리芬陀利를 끊고
뿌리를 뽑아서 짊어지고 갔으니
이는 간교한 사람일진대
당신은 어째서 막지를 않고
내게만 향기를 도둑질한다고 말하는가.
천신이 게송으로 대답했다.
광란하고 간교한 사람은
마치 유모乳母의 옷과 같으니
어찌 그런 말을 더할 수 있으며
그대와 더불어 말하는 걸 감당하겠는가.
가사袈裟는 더러움이 나타나지 않으며
검은 옷은 먹과 같아서 더럽혀지지 않으니
간교하고 흉악한 사람과는
세간에서 함께 말하지 않네.
파리의 다리라도 흰 비단을 더럽히니
명백한 것에는 자그만 허물도 나타나네.
마치 먹으로 하얀 조개에다 점을 찍으면
비록 작은 것이라도 다 나타나는 것과 같네.
항상 그로부터 청정을 구하면
결박도 없고 번뇌도 여의네.
마치 머리털만한 나쁜 것을
사람이 태산처럼 보는 것과 같네.
비구가 다시 게송으로 설했다.
그 말씀이 좋고도 좋으니
담긴 뜻은 나를 편안케 한다네.
그대와 함께하리니 항상 나를 위해서
자주자주 이 게송을 설해 주소서.
천신이 게송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대가 산 노예도 아니고
또한 남이 그대에게 준 것도 아닌데
어째서 항상 그대를 따르면서
자주자주 고하여 말하겠는가?
저기 저 요익이 되는 일을
그대는 이제 스스로 알아야 하네.
비구는 듣고 나서 오로지 정좌靜坐에 전념해서 모든 번뇌를 끊고 아라한을 얻었다.”[불자함不字函 제10권]
음주의 계율 실로 지키기 어렵다고 5계를 사양하지만
술 마셔도 나쁜 행동 없다면 무슨 허물 있겠는가?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기타祇陀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난번에 5계를 받았는데, 음주의 계율은 지키기가 어려우니 자칫 죄를 지을까 두렵습니다. 이제 계율을 버리고 열 가지 선법善法을 받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술을 마실 때 무슨 나쁜 짓을 하는가?’
태자가 대답했다.
‘나라 안의 호족들과 비록 때때로 서로 어울리면서 술과 음식을 먹고 함께 오락을 즐기지만, 스스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술을 마셔도 계율을 생각해서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그대의 말과 같다면, 종신토록 술을 마신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
술을 방편으로 빌리면 마셔도 범하는 것이 아니고
발언에 이익이 있으면 거짓이라도 해롭지 않다.
또 말하였다.
“옛날에 바사닉왕波斯匿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굶주림과 목마름이 매우 심해지자 주방의 관리를 베라고 칙령을 내렸다. 그의 이름은 수가라修迦羅인데, 오직 이 한 사람만이 왕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말리末利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술과 안주를 마련해 왕의 처소로 가서 함께 마시며 즐겼다. 왕의 분노도 곧 가라앉았다. 말리 부인은 거짓으로 왕의 명령이라 하며 주방의 관리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다음날이 되자 왕의 안색이 초췌해졌다. 말리 부인이 물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왕이 말했다.
‘어제 굶주림이 심한 나머지 화가 나서 주방의 관리를 죽이라고 한 것이 후회스러워 근심에 잠긴 것이오.’
말리 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왕은 즉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말리 부인은 부처님의 5계를 지녔는데도, 이 음주와 망령된 말의 두 계율을 범했으니 그 일은 어찌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흡사 계율을 범한 것 같으나 대공덕을 얻었으니, 죄가 없는 것이다.’ ”[막자함莫字函]
무심無心으로 욕망을 행한다면 어찌 계율을 범한 것이 되며
계율을 지녔다면 비록 훼손하더라도 하늘이 또한 도와준다.
『정제업장경淨諸業障經』에서 말하였다.
“무구광無垢光 비구가 발우를 들고 걸식하다가 음녀婬女의 주술에 걸려 함께 음욕하게 되었다. 돌아와 자신을 꾸짖고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마음이 있었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저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미 마음이 없었다면, 무엇을 범했다고 하겠는가?’ ”[유자함維字函]
『계소재경戒消災經』에서 말하였다.
“인도의 한 가족이 부처님의 계율을 받들었다. 한 아들이 외지로 나가자, 부모가 그에게 당부했다.
‘5계를 굳건히 지녀서 훼손하거나 범하지 말아라.’
외국에 이르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가 억지로 권하여 마침내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 뒤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모는 그 말을 듣고 가르침을 어겼다고 여겨서 효자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쫓겨나서 다른 지방에 이르렀는데, 사람을 먹는 귀부鬼婦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비록 하나의 계율은 깨뜨렸지만 여전히 네 개의 계율은 지녔으므로 천신이 그를 수호해서 귀신도 잡아먹을 수 없었다. 즉시 귀부와 그녀의 부모에게 부처님의 계법戒法을 설해 주고 함께 부처님을 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계율의 법은 일체의 재난을 없앤다.’ ”[입자함入字函]
한 방울의 기름을 떨어뜨림이 생명을 빼앗기는 죄가 된다면
소리와 빛깔이 눈앞에 있더라도 누가 감히 보겠는가?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세상의 미인이 어느 곳에 있다면, 갖가지로 노래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고 웃음 지어 다시 많은 사람을 구름처럼 모여들게 할 것이다. 만약 미련하지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즐거움을 좋아하고 괴로움을 피하고자 하며77 “즐거움을 좋아하고 괴로움을 피하고자 하며[樂樂背苦]”의 부분이 원문에는 “쾌락을 즐기는 것이 모두 고통이 되어[樂樂皆苦]”로 되어 있다. 문맥상 “개皆”는 “배背”의 오기로 보인다. 『잡아함경』에 의거하여 바로 잡았다.
생生을 탐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떤 장부[士夫]가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장부에게 ≺장부여, 그대는 기름이 가득 찬 발우를 들고서 저 사이를 지나가라. 사람을 잘 죽이는 한 사람을 시켜 칼을 빼어 들고 너를 따르게 하여, 만일 기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곧 네 목을 자르게 하리라>고 말한다면, 어떤가? 비구들아, 그 기름 발우를 든 장부가 과연 기름 발우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 죽이는 이도 생각하지 않고서, 그 기녀나 대중들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그 장부는 뒤에 칼을 빼어 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기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칼을 빼어 든 저 사람이 반드시 내 머리를 벨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하나로 하여 생각을 기름이 든 발우에 집중하고 세상의 미인과 그 대중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지나갈 것이요, 감히 돌아볼 엄두도 내지 말자>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문이 그 마음의 생각을 전일하게 해서 소리와 빛깔[聲色]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내 제자로서 가르침에 따르는 자이다.’ ”[천자함川字函 제4권]
남의 아내를 범하지 않는 것은 공功이 끝내 쉽지만
자기 아내에게 능히 지킬 때 행이 비로소 원만해진다.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 【문】 무슨 까닭으로 범행梵行이 아닌 것 가운데는,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을 여의는 데 의거해서 계율[學處]을 정립하고, 자기 아내를 범하는 것을 여의는 데는 의거하지 않습니까?
【답】 협脇 존자가 대답했다.
‘법왕의 율의律儀에서 어떤 법은 능히 장애와 차지遮止가 되고, 어떤 법은 장애와 차지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설명하는 게 있다. 남의 아내들에 대해서 멀리하기는 쉽지만, 자기 아내에 대해선 그렇지 못하다. 이른바 집에 거처할 때는 아내와 자식에게 둘러싸여 밤낮으로 가까이 지내는 습관이 되어 은애恩愛가 마음을 얽매기 때문에 능히 계율을 지닐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설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다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훌륭한 방편이다. 가령 부처님께서 각자 자기 아내를 다스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든 국왕과 재상과 장자는 능히 자기 아내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문득 부처님께 여쭙게 된다.
≺저희는 여래의 금계禁戒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시 청하건대, 자기 아내를 여의는 것을 없애 주소서. 저희들은 이로 말미암아 후계자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오직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을 여의는 데 의거해 정립한 것이다. 또 다른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아내에 만족해서 능히 범하지 않는 자는 이름하여 순일純一하고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이라고 한다.’ ”[휴자함虧字函 제3권]
부부가 한 침상에서 잠자리를 나누면서도
시종일관 계율을 온전히 해서 훼손함이 없다.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말하였다.
“필발라야畢鉢羅耶 동자와 발타라跋陀羅 여인은 부부가 되어 함께 범행을 닦으면서 서로 물든 마음으로 접촉[染觸]하지 않았다. 만약 필발라야가 수면에 들면 발타라 여인은 즉시 일어나서 경행經行을 했고, 만약 발타라 여인이 수면에 들면 필발라야가 즉시 일어나 경행을 했다. 이처럼 서로가 해가 지나도록 끝내 동침을 하지 않았다.
발타라 여인이 이미 잠들어서 한 손이 땅에 닿았는데, 홀연히 뱀 한 마리가 있었다. 남편은 그 뱀이 손을 물까 두려워서 즉시 옷으로 손을 감싸 부인의 팔을 잡아서 침상 위에 안전히 올려놓았다. 이 때 부인이 깨어나서 남편에게 따졌다.
‘당신과 나는 함께 범행을 닦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 이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남편이 사실대로 말했다. 두 사람은 12년이 지나도록 한 방에 같이 있으면서도 각기 서로 접촉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하였는데, 욕망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알아서 두타행頭陀行을 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장로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다.”[기자함基字函 제6권]
거위가 구슬 삼키는 것 보고서도 알리면 죽일까 걱정하여
대신 죽기로 작정하고 말 않으니 진실로 생명을 보호하도다.
『법원』에서 말하였다.
“옛날 한 비구가 있었다. 차례차례 걸식하다가 주사(珠師:구슬) 공인의 문전에 이르렀다. 그 때 그 주사는 왕을 위해 큰 마니주를 꿰고 있었는데, 구슬을 놓아둔 채 보시하기 위해 음식을 가지러 들어갔다. 거위가 구슬에 비친 비구의 옷이 빨간색이어서 그 모양이 흡사 고기와 같은 것을 보고 즉시 삼켜버렸다. 주사는 음식을 갖고 나와서 구슬을 찾았으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 구슬은 값이 매우 비싼 것이라서 주사는 깜짝 놀라 비구에게 말했다.
‘내 구슬을 가져갔습니까?’
비구는 그가 거위를 죽여서 구슬을 꺼낼까 두려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주사가 말했다.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풀어 주지 않겠다.’
그리고는 즉시 몽둥이로 때렸다. 이 때 비구는 호소를 해도 소용이 없자, 게송으로 말했다.
설사 스스로 옹호하려 하여도
모인 것은 반드시 소멸하기 마련이니
견고하게 계율을 지켜서
남이 목숨을 지키도록 위하고
이 위태롭고 약한 몸을 버려서
해탈의 목숨을 취하리라.
나는 누더기 옷[糞掃衣]을 입고서
걸식을 업으로 삼아
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도적의 몸이 되었는지
그대는 마땅히 잘 관찰하소서.
주사는 비구에게 따졌다.
‘어찌 그리 말이 많은가?’
더욱더 단단히 포박하니, 귀ㆍ눈ㆍ코ㆍ입에서 다 피가 흘러나왔다. 이 때 그 거위가 달려와서 피를 먹자, 주사는 화가 나서 거위를 때려 죽였다. 비구는 거위가 이미 죽은 걸 보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다가 거위를 향해 게송을 설했다.
내가 모든 고뇌를 받고서
이 거위가 살길 바랐는데
이제 내 목숨은 끊어지지 않고
거위가 나보다 먼저 죽어 버렸구나.
주사가 비구에게 물었다.
‘거위와 당신이 얼마나 친하기에 그와 같이 근심하는가?’
비구가 답했다.
‘내 서원을 채우지 못했으니 게송으로 다시 대답하겠소.
보살께서는 지나간 옛날에
몸을 버려 비둘기를 구제했는데
나 역시 이 뜻을 받아서
거위 대신 몸을 버리려 하였으나
그대가 거위를 죽여 버렸기 때문에
마음의 서원을 채우지 못했소이다.’
비구가 자세히 모두 설명하자, 주사는 즉시 거위의 배를 갈랐다. 구슬을 얻은 뒤에 큰 소리로 울면서 비구에게 말했다.
‘당신은 거위의 목숨을 보호하느라고 몸을 아끼지 않고 나로 하여금 이런 법답지 않은 일을 짓게 했소.’
그리고는 즉시 게송을 설했다.
견고하게 계율을 지닌 이에게 귀의[南無]합니다.
거위의 신명을 위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해치거나 훼손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
이런 일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참회가 끝나자, 비구는 머물지 않았다.”[부자함府字函 제2권]
도적을 만나 약탈당하고 풀로 묶였으나
계율을 지키다 죽을지언정 차마 사물의 목숨 끊지 않도다.
또 말하였다.
“어떤 비구들이 광야를 지나다가 도적에게 약탈을 당하고 옷을 빼앗겼다. 도적들은 비구가 마을로 가서 알릴까 봐 모조리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도적 가운데 한 사람은 과거에 일찍이 출가한 적이 있었다. 그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비구의 법은 풀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풀로써 저들을 묶으면, 저들은 풀이 상할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끝내 갈 수가 없을 것이오.’
즉시 풀로 비구들을 묶어 두고 떠나갔다. 비구들은 몸에 옷을 걸치지 않아서 햇볕에 그을렸으며, 모기ㆍ파리ㆍ이 등에 물렸다. 아침부터 밤까지 짐승들이 이리저리 지나가는데, 풀의 생명을 해칠까 두려워 감히 구르거나 움직이지도 못했다. 오로지 마땅히 계율을 수호하여서 죽음에 이를지라도 범하지 않았다.
그 때 그 나라의 국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서 게송으로 물었다.
신체가 지극히 건장하고
병도 없고 힘도 있는 듯한데
무슨 인연 때문에
풀에 묶여서 움직이지 않는가?
주술에 미혹된 것인가.
고행을 하는 것인가.
스스로 몸을 싫어하는 것인가?
어서 빨리 그 뜻을 말해 주시오.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모든 금계禁戒를 지키기 때문에
감히 단박에 당겨서 끊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초목은
다 살아있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어길 수 없어서
함부로 끊지를 못하는 겁니다.
저희들의 계율은 좋은 밭이니
능히 온갖 공덕을 낳을 뿐만 아니라
천상에 태어나는 사다리입니다.
이것을 종자種子라 칭하는데
바로 성聖을 얻는 다리이자 나루입니다.
모든 이익의 머리이자 눈이거늘
지혜로운 자라면 누군들
계덕戒德의 병을 깨뜨리려고 하겠습니까?
왕이 게송을 듣고 나서 즉시 비구를 위해 풀의 결박을 풀어 주고, 다시 게송으로 말했다.
훌륭하도다, 능히 계율을 굳게 지킴이여.
석가모니 부처님[釋師子]께서 설하시기를
차라리 자기의 신명을 버릴지언정
사물을 보호하여 해치거나 훼손치 말라셨네.
이같이 크나큰 법을 나타내시니
모니牟尼 해탈존解脫尊께도
견고하게 금계를 지킨 자에게도
나 이제 목숨 바쳐 의지[歸命]합니다.”[부자함府字函 제2권]
죽음에 이르러도 견고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제도를 지키고
물에 빠져서 판자를 얻었어도 어른에게 양보를 하다.
또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비구가 바다를 건너다가 배가 난파되었다. 그 때 나이 어린 한 비구는 판자 조각을 잡았으나 상좌上座 비구는 판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물 속에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이 때 상좌가 나이 어린 비구에게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마땅히 상좌를 공경해야 하나니 네가 얻은 판자는 내게 주어야 한다.’
나이 어린 비구는 즉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몸을 버려 상좌를 구해야 하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때이다.’
그리고는 즉시 게송을 말했다.
나 이제 부처님의 계율을 받았으니
죽음에 이르더라도 반드시 굳게 지키리라.
부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판자를 바치고서 목숨을 버리리라.
만약 어려운 일을 하지 못한다면
끝내 얻기 어려운 과보를 획득하지 못하리라.
나 이제 물에 빠져 죽지만
비록 죽더라도 오히려 이름은 뛰어나리라.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을 저버린다면
무상無上의 즐거움을 잃는 것이네.
이 때 바다의 신이 그의 정성에 감복해서 즉시 나이 어린 비구를 들어다가 언덕 위에 놓아두었다. 바다의 신은 합장한 채 게송으로 과보를 설했다.
그대는 크게 뛰어난 인간이라서
능히 온갖 환란을 없앴도다.
내 지금 그대를 옹호하지 않겠다고
어찌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자기가 아끼는 목숨을 버리면서도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계율을 지키누나.
해내기 어려운데도 능히 해내면
이를 가장 희유하다고 하네.”[부자함府字函 제1권]
아버지는 조상의 가업인 도살업을 전수하려 하고
아들은 이 지경에 이르자 스스로 기꺼이 죽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수다원 한 명이 도살하는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났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 가니 마땅히 생업을 배워야 하는데도 죽이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모가 칼과 양 한 마리를 주고 함께 우리 속에 가두면서 말했다.
‘만약 양을 죽이지 못하면 네가 나와서 해와 달을 보지 못하도록 하겠다.’
아들은 스스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 양 한 마리를 죽이면 끝내 업이 될 것이다. 어찌 나 자신 때문에 이러한 큰 죄를 짓겠는가?’
그리고는 그 칼로 자살을 했다. 부모가 문을 열어 보니 양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아들의 목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자살한 즉시 아들은 천상에 태어났으니, 이는 수명을 아끼지 않고 청정한 계율을 온전하게 수호했기 때문이다.”[덕자함德字函 제3권]
하나의 계율을 훼손하여 새가 되는 벌을 받았고
불살생계 하나를 능히 지키니 물고기도 해치지 못했다.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현겁賢劫 중에 바라나국波羅奈國에 한 장자가 있었다. 그는 5계를 받아 지녔는데, 계율 하나를 범했기 때문에 앵무새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머지 네 가지 계율은 완전히 갖추었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해서 도를 얻었다.”[칠자함漆字函 제2권]
『법원』에서 말하였다.
“사위국에 대장자大長者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어서 신[神祇]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드렸다. 감응이 있어 남자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어느 날 강에 갔다가 아이가 우연히 물에 빠졌다. 물고기가 그 아이를 삼켰으나, 아이의 복력福力 때문에 비록 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 때 강 하류에 한 부호가 있었는데, 역시 후손이 없어 갖가지 기도를 드렸으나 자식을 얻을 수 없어 괴로웠다. 이 물고기가 우연히 그 부호의 종에게 잡혔는데, 물고기를 갈라보니 아이가 나왔다. 온 집안이 환희하면서 진실로 기도로 인해 상천上天이 주었다고 여겼다. 아이의 부모가 이 소식을 듣고는 찾아가서 실상을 말했다.
‘부디 아이를 돌려주시오.’
그러자 부호가 말했다.
‘하늘과 땅에 여러 번 기도를 드려서 그 과보로 아이 한 명을 얻은 것이오. 당신의 아이는 물에 빠졌는데, 어째서 간섭하는 것이오?’
의견이 분분하여 결론을 내지 못하자, 왕에게 가서 판결을 구했다. 두 집안이 함께 양육해서 각각 아내를 맞게 하여 두 장소에서 따로 살게 하며, 이 부인이 낳은 아이는 이 집안에 속하고, 저 부인이 낳은 아이는 저 집안에 속하기로 했다. 아이가 나중에 장성해서 모두 아내를 맞게 되었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서 부족한 것이 없게 하였다. 그 아이가 두 부모에게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여쭈었다. 그의 자字는 중성重姓이라 했는데 아라한을 증득하였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성 비구는 일찍이 어떤 선근이 있었길래 물고기가 삼켰는데도 죽지 않았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비바시毘婆尸부처님께서 회상會上에서 법을 설하실 때 장자가 있었는데, 세 가지 자귀의自歸依를 받아서 불살생의 계율을 지켰으며, 다시 1전錢을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그 장자가 지금의 중성 비구이다. 1전을 보시한 것으로 말미암아 91겁 동안 항상 돈과 재물이 풍부했으며, 금생에서도 두 집안이 함께 공급한 것이다. 또 불살생의 계율을 받아들인 탓에 물고기가 삼켜도 죽지 않았고, 세 가지 자귀의를 받아들여서 지금 나를 만나 아라한을 얻은 것이다.’ ”[서자함書字函 제2권]
왕이 참언讒言을 듣고서 왕비에게 화살을 쏘았으나
왕비는 부처님의 계율을 지녔기에 화살이 왕에게 되돌아가다.
『경률이상經律異相』에서 말하였다.
“우전왕優塡王의 왕비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 귀의하고 계율을 품수하여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왕은 이로 인한 참언을 듣고서 활을 당겨 왕비에게 쏘았다. 백 개의 화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왕비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전혀 성내거나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왕에게 연민하는 마음을 보냈다. 이 화살은 이미 왕비에게 이르러 왕비의 주위를 세 번 돌고서 되돌아가 왕 앞에서 머물렀다. 화살마다 모두 그러하자 왕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왕은 수레를 타고서 부처님을 찾아뵙고 잘못을 여쭈었다.
‘재가의 제자도 자비의 힘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여래이겠습니까? 오직 바라옵건대 부디 드넓은 자비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사자함舍字函 제9권]
인륜의 선善을 지을 수 있음은 매우 다행스러우나
도리어 천상의 즐거움을 해치게 되니 계율은 지키기 어렵네.
『법원』에서 말하였다.
“목련目連 존자가 제자의 병 때문에 도리천忉利天에 올라가서 기바耆婆에게 물으려는데, 때마침 여러 천天들이 환희원歡喜園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 때 목련이 길 옆에 서서 기다리는데, 여러 천天들은 곧바로 지나갈 뿐 특별히 돌아보는 자가 없었다. 오직 기바만이 나중에서야 목련을 돌아보고 잠깐 한 손을 들어 보이더니 수레를 타고 곧바로 지나갔다. 목련이 스스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본래 인간 세상에서는 내 제자였는데, 지금은 천상의 복을 누리고 있다. 천상의 즐거움에 집착해서 본래의 마음을 몽땅 잃었구나.’
즉시 신통력으로 수레에 제동을 걸어서 멈추게 했다. 기바가 수레에서 내려 목련의 발에 예배했다. 목련이 갖가지 인연을 들어 질책하자, 기바가 대답했다.
‘제가 대덕大德의 제자였으므로 손을 들어서 안부를 물은 것입니다. 여러 천天들 중에서는 그런 자가 없지 않았습니까?’
이에 목련은 다시 제석천을 훈계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만나기 어려운 것이오. 어찌 자주자주 가까이하면서 정법正法을 묻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오?’
제석천은 목련의 뜻을 이해하고자 칙사를 보내 한 명의 천자를 오게 했는데, 세 번을 반복해서 부른 뒤에야 비로소 왔다. 제석천이 목련에게 여쭈었다.
‘이 천자에겐 오직 한 명의 천녀와 하나의 기악妓樂이 있는데 욕정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비록 명령이 중해도 능히 자신을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오기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물며 천주天主 되는 이는 갖가지 궁전에서 헤아릴 수 없는 천녀, 백천 가지의 기악을 관람하느라 동쪽을 보면 서쪽을 잊어버리는 정도인데 어떻겠습니까? 비록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정법을 듣기 어렵다는 것을 알더라도, 쾌락에 물들어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3도塗의 괴로운 과보를 알더라도 계율을 얻을 인연은 없으니, 사람 가운데서 오직 3천하만이 계율을 얻습니다. 북울단월北鬱單越은 복의 과보가 장애가 되고 아울러 어리석음 때문에 계율의 법을 얻지 못합니다.’ ”[서자함書字函 제4권]
계율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집착할 수 있으랴.
사람은 이미 범한 것도 없고 지키는 것도 없다.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계율ㆍ계율을 지니는 것ㆍ계율을 깨는 것의 세 가지 일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이를 지혜라 한다.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하급의 인간은 계율을 깨뜨리고, 중급의 인간은 계율에 집착하고, 상급의 인간은 계율에 집착하지 않는다. 보살은 이렇게 사유한다.
‘만약 계율을 미워하고 계율을 깨뜨리는 자, 계율을 사랑하고 계율을 지키는 자가 애착과 성냄을 일으킨다면, 오히려 죄업의 인연을 받는다. 비유하면 코끼리가 목욕한 후 다시 흙탕 속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증오와 애착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일체법은 인연에 속해서 자재함이 없으니, 모든 선법善法이 다 악으로 인해서 생긴다. 만약 악으로 인해서 생긴다면, 어찌 집착할 수 있겠는가? 악이 바로 선의 인因이니,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사유하고는 곧바로 모든 법의 실상實相에 들어가서 계율을 지니는 것과 계율을 깨뜨리는 것을 관찰하였더니, 모두가 인연을 좇아서 생겼으며, 인연을 좇아서 생겼으므로 자성自性이 없으며, 자성이 없으므로 필경에는 공空하며, 필경에는 공하므로 집착하지 않으니, 이를 반야바라밀이라 한다.”[정자함正字函 제1권]
이미 벗어날 생사가 없는데
어찌 지켜야 할 부처님의 계율이 있겠는가.
『전등록』에서 말하였다.
“약산藥山 선사가 고高 사미에게 물었다.
‘어느 곳으로 가는가?’
‘강릉부江陵府로 계율을 받으러 갑니다.’
약산이 말했다.
‘계율을 받아서 무엇을 하려는가?’
‘생사를 벗어나렵니다.’
약산이 말했다.
‘어떤 사람은 계율을 받지도 않고 또 벗어나야 할 생사도 없다는 것을 그대는 돌이켜 아는가? 모르는가?’
‘그렇다면 부처님의 계율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약산이 쯧쯧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이 잘 지껄이는 사미가 아직도 입술과 이에 걸리는구나.’
고 사미는 이 말로 인해 본심과 계합해서 다시 계율을 받지 않았다.”[영자함纓字函 제4권]
22) 인욕품忍辱品[10칙]
가리왕은 무단히 1척의 장검을 휘둘렀지만
선인은 인욕을 닦아서 스스로 성냄을 잊었네.
『법원』에서 말하였다.
“‘현겁賢劫 중에 가리歌利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내궁內宮의 권속들과 함께 숲 속에서 놀다가 싫증이 나자 잠시 쉬었다. 그러자 여인들은 꽃과 열매를 찾으러 다니다가 멀리서 인욕忍辱 선인이 숲 속에서 단정히 정좌靜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인들이 그곳으로 달려가서 함께 예를 드리자, 선인은 즉시 욕망의 허물에 대해 설했다.
‘이른바 모든 욕망은 청정하지 못한 오염된 법이라서 싫어하고 미워해야 할 것이니, 지혜로운 자라면 누군들 욕망을 가까이해서 익히겠는가? 여러 누이들은 마땅히 욕망을 싫어하고 여의어야 한다.’
왕이 잠에서 깨어나자 여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칼을 빼들고 찾으러 다니다가 여인들이 선인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크게 화를 내면서 물었다.
‘누구냐? 어째서 여인들을 유혹하는가?’
선인은 대답했다.
‘나는 선인으로 인욕의 도를 닦고 있소.’
왕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화내는 걸 보았기 때문에 문득 인욕을 닦는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이제 시험해 보리라.’
‘그대는 비비상처정非非想處定을 얻었는가?’
선인은 대답했다.
‘얻지 못했습니다.’
왕은 차례대로 따져 물었다.
‘그대는 초정려初靜慮를 얻었는가?’
선인은 대답했다.
‘얻지 못했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대는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거늘 어찌 여인들을 보고 있으며, 또한 스스로 인욕을 닦는 사람이라고 말하는가?’
왕은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기 위해 한 팔을 내밀라고 했다. 선인이 팔을 내밀자 칼로 베면서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선인은 대답했다.
‘나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오.’
다시 한 팔을 내밀게 해서 베어 버렸다. 왕은 앞서와 같이 물었고, 선인도 앞서와 같이 대답했다. 이와 같이 두 발과 두 귀와 코를 베어 버리자, 왕의 마음도 가라앉았다. 선인이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 고달프게 하고 싫어하십니까? 설사 나를 베어서 온몸이 나뉘어 마치 겨자와 같더라도, 나는 한 생각의 분노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말한 바의 인욕도 끝내 변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다시 이런 서원을 일으켰다.
‘그대가 오늘과 같다면, 나는 실로 허물이 없소. 내가 미래 세상에서 보리를 얻을 때는 그대의 청을 기다리지 않고 제일 먼저 제도해 해탈케 하겠소.’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인욕 선인은 바로 지금의 석가이며, 가리왕은 바로 지금의 교진나憍陳那이다.’
교진나가 듣고 나서 매우 부끄러워했다.”[부자함府字函 제2권]
단박에 난타難陀로 하여금 자만을 꺾어 버리게 하니
곧바로 대지가 감응해서 진동하였다.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제자인 난타難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사람의 몸은 얻기가 어렵고, 부처님의 법은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존귀한 분들은 다 세상의 영화를 버렸으니, 제가 무엇을 탐내겠습니까? 오직 부처님의 자비로 부디 제도 받기를 바라오니, 사문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의法衣가 몸에 걸쳐져서 문득 사문이 되었다. 비구 가운데 있으면서 차례대로 예를 드렸는데, 우바리優波離에게 이르자 예를 드리지 않았다.
‘우리 집안의 종이었는데 절을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세존께서 난타에게 말씀하셨다.
‘불법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백 개의 강을 수용하여 받아들이며, 4류流가 바다로 돌아오면 모두가 똑같은 일미一味이니, 계율의 먼저와 나중에 근거할 뿐 귀하고 천함에 있지 않다. 4대大가 합쳐졌기 때문에 거짓 이름으로 몸이라 하지만, 그 속은 공적空寂해서 본래부터 나가 없으니, 마땅히 성스러운 법을 사유해야 하며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이 때 난타가 스스로 오만함을 버리고 우바리에게 예를 드리니, 대지가 그를 위해 진동하였다.”[명자함鳴字函 제2권]
아수라가 결박당하고도 오히려 무례하건만
제석천은 단지 그 어리석음을 비웃을 뿐이네.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아수라와 제석천이 전투를 벌였는데, 아수라가 이기지 못하고 다섯 번이나 포박을 당했다. 그를 천궁으로 데려오는데, 문득 성내면서 욕설을 했다. 그 때 호송하는 이가 게송을 설해서 제석천에게 물었다.
제석천은 지금 그를 두려워하니
힘이 부족해서입니까?
아수라가 면전에서 욕하는 것을
능히 참고 계시니 말입니다.
제석천이 대답했다.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참는 것이며
또한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범부를 상대하겠는가?
호송하는 이가 다시 말했다.
만약 단순히 인욕을 행하는 것이라면
일에는 다툼이 있기 마련인데
어리석은 자는 반드시 이렇게 말하리라.
두려움 때문에 인욕을 행한다고
그러므로 마땅히 다스려야 한다면
지혜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제석천이 대답했다.
나는 항상 그를 관찰해서
저 어리석은 범부를 다스렸노라.
어리석은 자가 심하게 화내는 것을 보면
지혜로써 고요히 복종시켰노라.
힘이 아닌데도 힘을 쓰는 것은
저 어리석은 자의 힘일 뿐이니
어리석음은 법에서는 멀리 어긋나는 것이며
도道에는 있지도 않은 것이다.
만약 커다란 힘이 있다면
열등한 자에 대해 참을 수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상인上忍일진대
힘 없는 것이 어찌 인욕이겠는가?
남이 심하게 욕설을 해도
큰 힘이 있는 자는 능히 참을 수 있다.”[유자함流字函 제10권]
대중이 사람의 머리를 싫어해서 팔리지 않는데
내가 복전에 예배함을 막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아육왕경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또한 말한다. 아서가왕阿恕伽王은 복전福田인 승려를 보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묻지 않고 다 예배하였다. 야사耶奢 대신은 그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다.
‘왕이시여, 염부제의 왕들은 마땅히 자중해야 하는데, 어째서 경솔하게 예를 드리십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여러 신하들을 모이게 해서 살생을 허락하지 않고, 각 사람마다 명령을 내려서 한 종류의 머리를 얻게 하니, 소나 말의 부류였다. 오직 야사에게만 자연히 죽은 사람의 머리를 얻도록 명령했다. 시키는 대로 모두 얻고 나자 그것을 저자에 내놓아 팔게 하였다. 소나 말의 머리는 모두 다 팔려 나갔는데, 오직 사람의 머리만이 팔리질 않았다. 왕에게 아뢰니, 왕이 물었다.
‘모든 사물 가운데 무엇이 가장 귀한가?’
대답하였다.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합니다.’
왕이 말했다.
‘사람이 귀하다면 마땅히 비싼 값을 받아야 하는데, 어째서 팔리질 않는 것인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사람이 살아서는 비록 귀하지만 죽으면 가장 천해집니다. 죽은 사람의 머리는 더할 나위 없이 싫어하거늘 하물며 그 머리를 사겠습니까?’
왕이 물었다.
‘모든 사람의 머리가 천한 것인가, 오직 이 머리만이 천한 것인가?’
대답하였다.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왕이 말했다.
‘만약 모든 사람의 머리가 다 천하다면, 지금의 내 머리도 천한가?’
이 때 야사는 두려움에 떨면서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왕이 야사에게 명령했다.
‘내게 진실로 말하라.’
야사가 대답했다.
‘진실로 왕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왕이 말했다.
‘내 머리와 이것이 다르지 않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막는가? 그대가 만약 참다운 선지식이라면, 마땅히 나에게 예배를 권해야 하는데, 어째서 내가 스스로 예를 표하는데 그대는 오히려 나를 비웃는 것인가? 지금의 머리가 가치가 있으니 마땅히 공경히 예를 표해서 나로 하여금 장차 천상의 몸과 성현의 뛰어난 머리를 얻게 해야지, 나중에 가치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금자함禽字函 제2권]
아무리 매맞고 욕을 먹어도 화를 내지 않으니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 같아서 실체가 아님을 안다.
『법집경法集經』에서 말하였다.
“무엇이 보살의 인욕하는 힘인가. 남에게 매도를 당해도 보응을 가하지 않으니 메아리 같은 평등한 지력智力을 얻었기 때문이며, 남에게 매를 맞아도 보응을 가하지 않으니 거울의 상像 같은 평등한 지력을 얻었기 때문이며, 남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보응을 가하지 않으니 환영[幻] 같은 평등한 지력을 얻었기 때문이며, 남이 자기에게 화를 내도 보응을 가하지 않으니 내적으로 청정한 평등한 지력을 얻었기 때문이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능히 오염되지 않으니 세간법을 청정하게 하는 평등한 지력을 얻었기 때문이며, 일체의 번뇌가 능히 오염시킬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으니 인연을 모으는 평등한 지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보살은 일체의 염법문染法門을 다 청정문이라고 본다.”[욕자함欲字函 제3권]
『장엄경론』에서 말하였다.
“시리국다尸利麴多가 불구덩이에 태우고 독이 든 음식을 먹여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자 잘못을 뉘우치며 울고 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걱정하지 말라.’
그리고는 게송으로 설하셨다.
나는 성냄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원망하고 친애하는 마음을 버렸노라.
오른쪽은 전단향으로써 바르고
왼쪽은 날카로운 칼로써 베더라도
이 두 사람 사이에서
그 마음이 평등하여 다르지 않느니라.”[백자함白字函 제3권]
『중아함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이 여러 번 서로 다투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게송을 설하셨다.
만약 다툼으로써 다툼을 그치려 한다면
끝내는 그치게 하지 못하리라.
오직 인욕만이 능히 다툼을 그치게 할 수 있으니
이 법이야말로 존귀한 것이로다.”[숙자함夙字函 제7권]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忍은 보복을 가하지 않고
법 관찰하는 인忍은 일체를 공空으로 하네.[무생인無生忍을 첨부한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두 종류의 인忍과 원만하여 상相이 없는 인바라밀다忍波羅蜜多를 닦으니, 이른바 안수인安受忍과 관찰인觀察忍이다. 안수인이란 것은 모든 보살들이 초발심에서부터 보리菩提에 이를 때까지 그 사이에 설사 일체 유정의 종류가 다 와서 꾸짖고 훼손하고 능멸하고 칼이나 몽둥이로 해치더라도, 이 때 보살은 안인바라밀다安忍波羅蜜多를 원만히 해서 한 생각의 분노나 원한도 일으키지 않고, 또한 다시 보응을 가하려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고, 다만 이렇게 생각한다.
‘저 모든 유정들은 너무나 불쌍하구나. 마음의 번뇌를 더하고 그 마음이 흔들려 자재로움을 얻지 못해 나에게 이 같은 악업을 일으킨다. 마땅히 나 자신을 책망해야지 저 사람에게 성내서는 안 된다.’
관찰인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유하는 것이다.
‘모든 행은 마치 허깨비 같아서 진실하지 않고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고, 또한 마치 허공과 같아서 나[我]가 없다. 유정의 명자命者와 생자生者와 양자養者, 사부士夫ㆍ보특가라補特伽羅ㆍ의생意生ㆍ유동儒童ㆍ작자作者ㆍ수자受者ㆍ지자知者ㆍ견자見者를 모두 얻을 수 없다. 오로지 허망한 분별로써 일으킬 뿐이니, 누가 나를 꾸짖고 훼손할 것이고, 누가 나를 능멸할 것이고, 누가 나를 해칠 것이고, 누가 다시 상대에게 능멸을 당하고 해침을 당하겠는가? 이는 모두 자심自心의 허망한 분별이니, 나는 지금 멋대로 집착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것을 관찰인이라 한다.”[곤자함崑字函 제7권]
“또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번뇌가 필경에는 생기지 않게 하고, 아울러 모든 법이 필경에는 일어나지 않음을 관찰해서 미묘한 지혜가 항상 간단間斷이 없는 것을 말한다.”[결자함結字函 제6권]
나의 환신幻身을 요달하니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칼을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니 인욕이 어디서 오리오.
『전등록』에서 말하였다.
“계빈국왕罽賓國王이 사자師子 존자의 면전에서 칼을 빼들고 말했다.
‘대사는 5온蘊이 공空함을 얻었습니까?’
‘이미 5온의 공함을 얻었습니다.’
‘이미 5온의 공함을 얻었다면, 생사를 여의었습니까?’
‘이미 생사를 여의었습니다.’
‘이미 생사를 여의었다면, 대사에게 머리를 달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몸도 나의 것이 아닌데, 하물며 머리이겠습니까?’
왕이 문득 존자를 베자, 하얀 젖이 몇 척이나 높이 솟아올랐고, 왕의 팔은 저절로 떨어졌다.”[진자함振字函 제2권]
23) 정진품精進品[8칙]
생사를 따라 유랑하여 남긴 뼈가 산처럼 쌓였네.
윤회를 벗어나고 싶거든 힘써 부처님을 배우라.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 숙명宿命을 보니, 한량없는 겁 이래로 생사를 반복하면서 쌓인 몸의 뼈가 수미산須彌山보다 높고, 그 골수로 땅을 칠한 것이 천하의 삼천세계에 두루하였으며, 그 피가 흘러서 떨어진 것이 고금의 천하에 널리 내린 비보다 많으니, 다만 이 생사의 우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밤낮으로 정진하여 무위無爲를 구해야 한다.”[누자함樓字函 제8권]
출가해서 정각正覺 구하는 것을 칭찬하니
진실로 정진을 말미암아서 성취할 수 있다.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실 때 비구들의 몸과 마음이 게으른 것을 보시고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대저 게으름이란 온갖 행위의 허물[累]이 되는 것이다. 집에 살면서 게으르면 옷과 음식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가업도 일어나지 못한다. 출가해서 게으르면 생사의 고통을 여읠 수 없다.
모든 일은 다 정진으로 말미암아서 흥성한다. 집에 있으면서 정진하면 옷과 음식이 풍부하고 가업도 더욱 번창한다. 출가해서 정진하면 도행道行이 모두 이루어져서 곧바로 성불에 이르니, 이 모두는 정진으로 말미암아서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함器字函 하권]
미륵은 40겁을 먼저 닦았지만
석가는 나중에 나아가서도 1기期를 초월했다.
『미륵소문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 뜻을 일으킨 것은 나보다도 42겁 전이었으며, 나는 그 후에야 비로소 도의 뜻을 일으켰다. 그래서 현겁에서 대정진으로 9겁을 초월해서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얻었다. 첫째는 소유한 것을 아끼거나 애착하지 않았으며, 둘째는 진귀한 보배에 대해 그러했으며, 셋째는 국토에 대해 그러했으며, 넷째는 아내와 첩에 대해 그러했으며, 다섯째는 자식에 대해 그러했으며, 여섯째는 혈육에 대해 그러했으며, 일곱째는 손과 발에 대해 그러했으며, 여덟째는 머리와 눈에 대해 그러했으며, 아홉째는 골수와 뇌[髓腦]에 대해 그러했으며, 열째는 신명身命에 대해 그러했다. 이 열 가지 사항으로 신속하게 불도佛道를 얻은 것이다.”[전자함傳字函 제1권]
공을 쌓으면서 인지因地에서 3아승기겁[三祇]을 지내고
저사불底沙佛을 찬탄해서 9겁을 초월했다.
『아비달마론阿毘達磨論』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인지因地에서의 보살이었을 때였다. 처음 무수겁無數劫 초반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만났는데, 나는 도공陶工이었다. 그 부처님의 처소에서 처음으로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향수로 목욕하고 공양을 마련한 다음에 큰 서원을 일으켰다.
‘부디 반드시 부처가 되어서 세존과 똑같게 하시고, 고금의 여래 한 분 한 분과도 똑같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1겁 동안에는 보계불寶髻佛 등 7만 5천 부처님을 만나서 섬겼으며, 제2겁 동안에는 연등불燃燈佛 등 7만 6천 부처님을 만나서 섬겼으며, 제3겁에서는 승관불勝觀佛 등 7만 7천 부처님을 만나서 섬겼다. 보살이 저사불底沙佛에게서 정진할 때, 열 손가락 합장을 하고 한쪽 다리를 든 채 하나의 게송[伽陀]으로 7일 밤낮을 저 부처님을 찬탄해서 문득 9겁을 초월했다.”[자자함自字函 제4권]
이 게송에서 말하였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부처님 같은 이 없고
시방세계에서도 또한 견줄 이 없도다.
세간의 모든 것[所有] 내가 다 보았지만
어디에도 부처님 같은 이 없어라.[장자함帳字函 제4권]
바닷물을 다 퍼내 말려서 잃은 구슬을 찾으려 하자
신이 그 용맹에 놀라서 구슬을 그에게 돌려주었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한 상인이 보배를 캐러 바다에 들어가서 한 알의 귀중한 마니주摩尼珠를 얻었는데 다시 바닷속에 떨어뜨렸다. 그 때 그 상인이 즉시 국자 하나를 가지고 용맹한 마음을 일으켜서 바닷물을 퍼내 말라붙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구슬을 찾고자 했다. 바다의 신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어리석구나.’
그리고는 게송을 하나 설했다.
세간의 수많은 중생의 무리들은
재물의 이익을 탐내서 갖가지 짓을 한다.
내가 이제 그대의 어리석음을 보건대
어떤 사람도 그대를 능가하진 못하리라.
8만 4천 유순由旬의 바다를
이제 국자로 퍼내서 말라붙게 하려 하니
피곤함으로 다만 스스로의 일생을 잃을 뿐
퍼낸 것은 많지 않은데도 목숨은 문득 다하고 만다.
퍼낸 물은 마치 털에 붙은 물방울 같고
이 바다는 광대하며 깊고 깊으니
그대는 지금 뜻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귀고리옥[耳璫]을 가지고 수미산을 만들려고 하네.
이 때 상인이 다시 바다의 신에게 게송으로 설했다.
천신이 이렇게 좋지 않은 말을 해서
내가 바다를 말라붙게 하는 걸 막으려 하네.
신께선 뜻을 정해서 올바로 나를 살피시오.
오래지 않아 바닷물을 퍼서 비워 버릴 것이오.
나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를 바닷속에 떨어뜨렸기에
이 때문에 큰 바다의 물을 마르게 하려는 것이네.
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다시 보배를 얻으리니
얻은 후에라야 마땅히 집으로 돌아가리라.
이 때 저 바다의 신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이 사람이 이같이 용맹하게 정진한다면, 이 바닷물을 퍼내서 끝내는 고갈시키고 말 것이다.’
즉시 보배 구슬을 돌려주면서 게송을 설했다.
무릇 사람은 모름지기 용맹한 마음을 지어야 하니
짊어진 게 커서 고달파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하네.
내가 이렇게 정진하는 힘을 보았으니
잃어버린 보배를 돌려주어 집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 때 세존께서도 게송을 설하셨다.
정진은 곳곳에서 칭송하는 마음을 얻지만
게으름은 항상 큰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용맹한 뜻을 일으키면
지혜로운 사람은 이로써 보리를 성취하리라.
저 상인이 바로 나 자신이다.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배 구슬을 얻었다가 다시 잃었지만, 용맹한 마음으로 찾아서 다시 얻었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니, 정진한 까닭에 대보리를 얻은 것이다.”[소자함所字函 제1권]
고덕古德이 게송을 말했다.
“도를 배움은 송곳으로 불을 일으키는 것과 같으니
연기가 피어 나오거든 결코 쉬지 말라.
불꽃[金星]이 나타나길 줄곧 기다리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 비로소 이루어지네.”
남을 비웃으면서 ‘부처를 나무 밑에서 얻었다’고 말함은
마치 아이가 구슬은 주머니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과 같다.
『잡비유경』에서 말하였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선 왕의 가문에 태어나셨고, 나무 아래 앉아서 도를 생각하신 지 6년 만에 부처가 되었으니, 너무나 쉬울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큰 부자였다. 온갖 보배를 다 갖추었으나 오직 빨간색의 진주만이 없어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데리고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험난한 장애물을 헤쳐서 마침내 보배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몸에 피를 내어서 기름 주머니에 싼 뒤 바다 밑에 달아놓았다. 주합珠蛤이 냄새를 맡고서 입을 대어 삼키고 나서는 곧 조개를 내놓았다. 조개를 가르자 구슬이 나왔는데, 이렇게 3년 동안 기다렸다가 캔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빨간색 구슬을 얻었다. 바닷가로 돌아왔을 때, 동료가 음모를 꾸몄다. 그는 물을 길러 갔다가 장자를 우물 속에 밀어 넣은 뒤 우물을 덮고 떠났다.
뒤에 그는 구멍을 찾아서 나온 뒤에 본토로 돌아갔다. 그는 동료를 불러내서 말했다.
‘너는 내 구슬을 가져갔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돌려다오. 그러면 내가 끝까지 훔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 동료는 두려워서 구슬을 돌려보냈다. 그 후 나중에 두 아이가 구슬을 갖고 함께 놀다가 서로 물었다.
‘이 구슬은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인가?’
한 아이가 말했다.
‘내 주머니 속에서 나왔어.’
또 한 아이가 말했다.
‘집 안의 항아리 속에서 나왔어.’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웃자 부인이 물었다.
‘왜 웃는 거예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이 구슬을 매우 애써서 얻은 것이오. 그런데 저 어린 아이들은 나한테서 그걸 얻었는데도 본말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나 항아리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단지 내가 성불한 것만 볼 뿐이고,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에 부지런히 애쓴 뒤 지금에야 비로소 얻은 것을 알지 못하고 쉽다고 말하는구나. 그건 마치 저 어린아이들이 주머니와 항아리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사자함寫字函 제4권]
이십이억의 지나친 정진 얼마나 잘못되고 해롭던가.
거문고의 줄이 너무 팽팽하면 결국 소리가 조화롭지 못하다.
『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어떤 존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이십이억二十耳億88 이십억이二十億耳의 오기誤記이다. 대부호의 집안에 태어나서 세존께 출가한 비구. 발바닥에 털이 2촌寸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고 한다. 정진제일精進第一로 알려져 있다.
이라고 했다. 밤낮으로 수행하면서 정진하기를 쉬지 않았는데도 욕루심欲漏心에서 해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사문 노릇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제 법의를 벗고 다시 흰옷을 입고 제가 가진 재물을 널리 보시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집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는가?’
존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줄이 너무 팽팽하면 울림이 고르지 않은데, 음을 들을 수 있겠는가?’
존자가 대답했다.
‘듣지 못합니다.’
또 물으셨다.
‘만약 줄이 너무 느슨하다면 음을 들을 수 있겠는가?’
또 대답했다.
‘들을 수 없습니다.’
또 물으셨다.
‘팽팽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으면 들을 수 있는가?’
또 대답했다.
‘들을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수행도 이와 같다. 정진이 과도한 자는 오히려 희롱하여 놀리는 것과 같고, 만약 게으른 자라면 삿된 견해에 떨어진다. 만약 중도中道에 있는 자라면 이는 뛰어난 행이니, 이같이 하면 오래지 않아서 번뇌가 사라진 사람[無漏人]이 될 것이다.’
이 때 이십이억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고요한 곳에서 사유하고 그 법을 수행하여 여실히 알아서 아라한을 증득했다.”[사자함斯字函 제2권]
24) 선정품禪定品[10칙]
좌선의 의식儀式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청정한 관觀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도 반드시 익혀야 한다.
『좌선의坐禪儀』에서 말하였다.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마땅히 대비심을 일으키며, 큰 서원을 일으키며, 삼매를 정진하여 닦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 자기 한 몸을 위해서 해탈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온갖 연緣을 놓아 버리고 만사萬事를 쉬어서 몸과 마음을 한결같이 하고 동정動靜에도 간단이 없어야 한다. 그 음식의 양을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하고, 수면도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조절해야 한다. 결가부좌結跏趺坐는 먼저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두고,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둔다. 혹시 반가부좌나, 왼쪽 발로 오른쪽 발을 누르는 것도 다 좋다. 다음은 왼손바닥을 오른손바닥 위에 두고, 양쪽의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버티게 하고, 서서히 몸을 펴면서 오래도록 다시 좌우로 흔들어 준다. 그리고 몸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아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고 앞으로 구부리거나 뒤로 치켜지지 않도록 한다. 허리와 척추와 머리와 목의 골절을 서로 버티게 해서 마치 그 모습이 탑[浮圖]과 같게 한다. 귀와 어깨가 서로 대응되게 하고, 코와 배꼽이 서로 대응되게 하며, 혀는 위 입천장에 붙인다. 이빨과 입술을 서로 붙이고, 눈은 약간만 떠서 혼침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몸의 모습이 이미 안정되고 기식氣息이 이미 조절됐다면, 배와 배꼽을 느긋하게 놓아서 일체의 선악을 모두 사량思量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닫고, 깨달으면 곧 없는 것이니, 오래오래 연緣을 잊다 보면 저절로 한 덩어리를 이룬다. 만약 이 뜻을 얻었다면, 자연히 4대大가 가볍고 상쾌해지니, 이른바 안락安樂 법문이다. 만약 이미 발명發明한 자라면 마치 용이 물을 얻은 것과 같고, 아직 발명하지 못한 자라면 다만 긍정적인 마음을 갖출 뿐 결코 속여서는 안 된다. 선정[定]에서 나올 때는 서서히 몸을 움직이면서 차분하게 일어난다. 일체의 시간 속에서 정定의 힘을 보호해 지녀야 하니, 마치 아이를 보호하듯이 하면 선정의 힘을 쉽게 성취하리라. 그런 까닭에 구슬을 찾을 때는 마땅히 파도가 가라앉아야지 출렁거리며 움직이는 물에서는 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선정의 물이 맑고 청정하면 마음의 구슬은 저절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걸림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 선정으로 인해 생긴다. 이로써 범부를 벗어나고 성현을 초월하는 것이 반드시 고요한 연[靜緣]을 빌린다는 걸 알겠다. 앉아서 해탈하거나 서서 죽는 것도 반드시 선정의 힘을 빌리는 것이니, 가장 급선무라 하겠다.’ ”
『선법요해禪法要解』 상권에서 말하였다.
“청정한 관觀에 3품品이 있다. 혹은 초습행初習行이고, 혹은 이습행已習行이고, 혹은 구습행久習行이다.99 초습행은 처음 관행을 익히는 자이고, 이습행은 이미 관행을 익힌 자이고, 구습행은 오래 관행을 익혀온 자를 말한다.
만약 초습행이라면 마땅히 백골白骨을 관해서 의식[意]을 관觀에다 묶어 놓고는 외적인 의식[外意]이 되지 않게 한다. 여러 가지 연緣을 외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것을 섭수해서 환원시켜야 한다. 만약 이습행이라면 두골頭骨을 갖추어 관해서 외적인 생각[外念]이 되지 않게 한다. 여러 연緣을 외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것을 섭수해서 환원토록 해야 한다. 만약 구습행이라면 의식을 심처心處에 두어서 외적인 생각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온갖 연을 외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것을 섭수해서 환원시키고서 반드시 다시 마음을 관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극도로 피로하면, 모든 외적인 상념을 버리고 생각이 연緣에 있도록 주시해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원숭이가 사로잡혀서 기둥에 묶여 있을 때는 종일토록 달려도 사슬에 걸려 항상 돌아오게 되는 것과 같아, 끝내는 쉬게 되니 반연한 바가 기둥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사슬과 같고, 마음은 원숭이에 비유한 것이다. 수행자가 마음을 관하는 것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점차 마음을 다스려서 연처緣處에 머물게 하여 마음이 오래 머물러 있게 되면 이것이 선법禪法에 상응하는 것이다.’ ”[도자함圖字函]
마음을 전일하게 하면 선정에 깊이 이를 수 있어서
5백 대의 수레 소리도 결코 들리지 않는다.
『니원경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대신 복계福罽가 멀리서 세존의 모든 감관[根]이 고요한 것을 보았다. 그는 환희하면서 세존 앞에 나아가 예를 드리고는 한쪽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복계는 어떤 법을 얻었길래 기뻐하는가?’
복계가 대답했다.
‘비구 역람力藍이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데, 5백 대의 수레가 줄지어 지나갔습니다. 비구 가까이 이르렀을 때 수레에서 내려 물었습니다.
≺수레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수레 소리는 들었는가?≻
≺듣지 못했습니다.≻
≺그 때 자고 있었는가?≻
≺나는 자고 있지 않고 오히려 길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찬탄하며 말했습니다.
≺수레 소리가 덜컹거리는데, 깨어 있으면서도 듣지 못했다니 어찌 마음을 그렇게 한결같이 쓸 수 있는가? 그렇게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뜻이 매우 가상하여 마침내 법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복계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뇌성벽력과 5백 대의 수레 소리를 견줄 수 있다고 여기는가?’
복계가 대답했다.
‘설사 천 대의 수레가 질주하면서 똑같은 소리를 낸다 해도 뇌성벽력에 미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내가 아침阿沈에 유행했을 때 벼락이 쳐서 소 네 마리가 연이어 죽었으며, 밭을 갈던 두 사람도 동시에 공포로 죽었는데도, 세존은 홀로 듣지 못하였다. 선정에서 깨어나 경행을 하는데, 한 사람이 예를 드리고는 나를 따라서 걸었다. 내가 물었다.
≺어찌 그리 바쁜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아까 벼락이 쳐서 소 네 마리와 두 사람이 죽었는데, 세존께서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듣지 못했노라.≻
≺그 때 자고 계셨습니까?≻
≺자지 않고 스스로 삼매에 들었을 뿐이다.≻
그 사람도 찬탄하기를 선정이 부처님과 같은 자를 들어본 일이 드물다며 역시 법의 기쁨을 얻었다.’ ”[징자함澄字函 제4권]
선정 속에 우뚝 앉은 모습 진실로 고목과 같아
정수리에 둥지를 허용하고 부화되길 기다리다.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석가께서 옛날 나계螺髻 선인이셨을 때 상자리尙闍梨라고 이름하였다. 항상 제4선禪을 행하였는데,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끊고 한 그루의 나무 아래 우뚝하게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새가 나무로 여겨서 곧 상투 속에 알을 낳았다. 보살이 선정에서 깨어나 정수리에 새알이 있는 걸 알고서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일어나서 움직이면, 새가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알이 모두 깨질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선정에 들어가서 새가 새끼를 부화하고 날아간 뒤에야 비로소 일어났다.”[덕자함德字函 제7권]
어떤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이 잠깐이라도 정좌靜坐를 한다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칠보탑을 지음보다 낫다.
칠보탑은 결국 티끌로 변하지만
일념의 고요한 마음은 정각을 성취한다.
사람이 만약 어떤 이의 선정[靜慮]을 한 번 흔들면
그 죄로 말미암아 5백 겁 동안 편안하지 못하다.
『불설처처경佛說處處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비구 하나가 좌선에서 선정의 뜻을 얻었다. 다시 어떤 우바새 하나가 그가 앉은 곳이 평평하지 않은 걸 보고는 끌어 일으켜서 그에게 편안한 곳을 제시했다. 우바새는 나중에 5백 겁 동안 안온함을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의 염念을 끊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경전을 설할 때는 신중하되 중단하지 말라. 그 죄가 엄중해서 헤아릴 수가 없다.’ ”[무자함無字函 제4권]
장난하는 말로 속였는데도 그에게 법이 전해졌으니
정좌靜坐하여 능히 감당할 수 있으면 이런 공을 증득한다.
『잡보장경』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비구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혼미하고 꽉 막혔다. 젊은 비구들이 4과법果法을 설하자, 마음에 부러움이 생겨서 젊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부디 4와를 내게 주게나.’
젊은 비구들은 그를 비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에게 4와가 있는데, 모름지기 좋은 음식을 얻은 뒤에라야 줄 것이오.’
이 때 늙은 비구는 기뻐하면서 즉시 음식을 갖추어 대접하였다. 대접이 끝나자 젊은 비구들이 늙은 비구를 희롱하며 말했다.
‘대덕이여, 당신은 이 방의 한쪽 모퉁이에 앉으십시오. 마땅히 당신에게 과果를 주겠습니다.’
이 때 늙은 비구는 기뻐하면서 그들의 말대로 했다. 젊은 비구들은 즉시 가죽 공으로 머리 위를 치면서 말했다.
‘이것이 수다원과須陀洹果입니다.’
늙은 비구가 들은 후 생각이 흩어지지 않도록 집중하자 즉시 초과初果를 얻었다. 젊은 비구들이 다시 그를 희롱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 비록 수다원과를 얻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일곱 번 태어나고 일곱 번 죽으면 그만입니다. 다시 한쪽 모퉁이로 옮기십시오.’
젊은 비구들은 다시 공으로 치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줍니다.’
그 때 늙은 비구가 더욱더 전념하자 곧 두 번째 과를 증득했다. 젊은 비구들이 다시 그를 희롱하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이미 사다함과를 얻었지만, 여전히 생사를 왕래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신은 다시 자리를 옮기십시오.’
젊은 비구들은 다시 공으로 그를 치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줍니다.’
그 때 늙은 비구가 지극한 마음을 배가하자, 다시 세 번째 과를 증득했다. 젊은 비구들은 다시 그를 희롱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이미 불환과不還果를 얻었기 때문에 색계와 무색계에서 유루신有漏身을 받는데, 그 몸은 무상無常하게 변천하니 생각 생각마다 고통입니다. 당신은 다시 자리를 옮기십시오.’
젊은 비구들이 다시 공으로 그를 치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줍니다.’
그 때 늙은 비구는 네 번째 과를 증득했다. 마음이 크게 기뻐서 온갖 음식과 갖가지 향기로운 꽃을 마련해 젊은 비구들을 청해서 그 은덕에 보답했다. 젊은 비구와 함께 도품道品을 논하는데, 젊은 비구들의 발언은 걸리고 막혔다. 그 때 늙은 비구가 바야흐로 말했다.
‘나는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했네.’
젊은 비구들은 모두 다 희롱한 죄를 참회하였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지극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구해서 얻지 못할 것이 없다.”
또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여인이 깊이 3보寶를 믿었는데, 한 비구에게 공양을 청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여인은 지극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정좌靜坐하고서 설법해 주길 간청하였다. 비구는 이해하지 못하고 몸이 드러나니 몸을 숨겨서 절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여인은 유위법有爲法은 무상하고 고苦이고 공空해서 자재로움을 얻지 못한다는 걸 염念하면서 깊은 마음으로 관찰한 끝에 수다원과를 얻었다. 이미 수다원과를 얻고 나자,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절에 가서 그 비구를 찾았다. 비구는 부끄러워서 한결같이 숨고 피해 다녔지만, 계속 찾아다니자 결국 나왔다. 이 여인이 도과道果의 인연을 갖추어 사례하자, 비구는 매우 부끄러워했다.”[장자함帳字函 제2권]
중생은 어찌하여 부처를 보지 못하는가?
고경古鏡에 티끌이 덮였는데 어찌 그 모습을 보겠는가?
『기신론』에서 말하였다.
“ 【문】 모든 부처님께서는 가없는 방편으로 능히 시방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시는데, 어째서 중생은 항상 부처를 보지 못하고, 신변神變을 보거나 설법을 듣는 것입니까?
【답】 여래에게는 실로 이 같은 방편이 있다. 다만 중생이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곧 몸을 나타낸다. 마치 거울에 때가 있으면 색상色像이 나타나지 않다가도 때를 없애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러해서 마음이 더러움을 여의지 못하면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고 더러움을 여의면 나타난다.”[명자함命字函 제2권]
이미 마음이 청정하다면 여래가 나타나니
마치 물이 허명虛明할 때 해와 달이 나타나는 것과 같네.
『입인법문경入印法門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염부제에서 해와 달의 바퀴가 뜰 때는 일체 그릇의 물이 청정해서 탁하지 않고 장애를 여의면 모두에 다 나타나지만, 해와 달의 바퀴는 본래의 처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여래ㆍ응공ㆍ정변지正遍知가 시방 세계에서 장애도 없고 막힘도 없는 것이 이와 같고 이와 같다. 교화를 받는 중생이 스스로 마음이 청정하면 모두 여래를 보지만, 모든 여래는 도솔천에서 본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시방의 일체 세계는 일체 중생이 일으킨 마음속에 모두 다 나타난다.’ ”[복자함伏字函 제4권]
좌선만을 익힌다고 어찌 성불할 수 있겠는가.
수레를 나아가게 하려면 소를 몰아야 한다.
『전등록』에서 말하였다.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마조馬祖가 좌선하는 걸 보고는 마조를 가르쳐 이끌어주고자 암자 앞에 있는 돌 위에서 벽돌 조각을 갈고 또 갈았다.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네.’
마조가 말했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어찌 좌선해서 성불할 수 있겠는가?’
마조가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령 수레에다 소를 매어서 가는데,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은가?’
마조가 대답하지 못하자,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려는 것인가, 좌불坐佛을 배우려는 것인가? 만약 좌선을 배운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니고,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상相이 아니니, 머묾이 없는 법[無住法]에서 마땅히 취하거나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만약 좌불坐佛을 배운다면 이는 곧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만약 앉아 있는 모습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요달하지 못할 것이다.’ ”
『영가永嘉』에서 말하였다.
행하는 것도 선이요, 앉는 것도 선이니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해도 체體는 편안하다.
설사 칼날을 만나더라도 항상 평탄하고
가령 독약을 마시더라도 덤덤할 뿐이다.[증도가證道歌]
25) 반야품般若品[34칙][아직 6도度가 끝나지 않았다.]
명명백백하게 5온蘊이 공함을 비추어 보고
요달하고 요달해서 일체의 고통을 능히 건넌다.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 말하였다.
“관자재觀自在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5온이 모두 공空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통을 건넜다. 사리자여,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도 색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空한 모습은 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는 색도 없고, 수ㆍ상ㆍ행ㆍ식도 없으며,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없으며,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도 없으며, 안계眼界도 없고 나아가 의식계意識界도 없으며, 무명無明도 없고 또한 무명의 다함도 없으며, 나아가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의 다함도 없으며,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도 없고,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니, 그러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도 없어서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멀리 여의어 구경究竟에는 열반에 든다. 3세世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다. 그러므로 알지어다. 반야바라밀다는 대신주大神呪요 대명주大明呪요 무상주無上呪요 무등등주無等等呪이니, 능히 일체의 고통을 없애서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니, 곧 주문을 설하기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고 하였다.”[형자함荊字函 『인왕경仁王經』 말미]
우리 부처님은 몸소 반야般若로부터 태어난 것인데
어느 누가 마야 부인의 아들이라 하는가?
『도신족경道神足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월천자月天子에게 말씀하셨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모태母胎이니,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곧 32상相과 10력力과 4무외無畏 등을 얻어서 모두 다 귀의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야 부인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로다.’ ”[피자함被字函 제2권]
어찌하여 법신에 덕용德用이 없다고 말하는가?
마땅히 금은보화가 진흙에 싸인 것과 같다.
『대승법계론大乘法界論』에서 말하였다.
“중생의 법신은 이미 공덕과 상응하는데, 어째서 여래의 덕용德用이 없겠는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는 마치 연꽃이 아직 피지 않은 것과 같으니 온갖 악한 소견의 잎사귀가 빙 둘러싸기 때문이며, 또한 마치 금산金山과 같으니 분노의 진흙에 의해 싸여 있기 때문이며, 또한 마치 허공과 같으니 어리석음의 구름에 의해 가려 있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게송으로 설한다.
연꽃이나 금산 등이 아직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부처의 체體에 객진客塵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도 그러하다.
이 때에 공덕은 스스로 이익되게 하지 못하니
이를 뒤집으면 능히 커다란 이익이 될 수 있다.”[임자함臨字函 제8권]
마음의 악한 티끌은 선으로 깨끗이 할 수 있다.
코끼리가 물을 흐려 놓아도 구슬로써 맑힐 수 있듯이.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만약 오직 마음만 있고 마음의 법은 없다면, 마땅히 더러움이 있고 청정함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비유하면 마치 청정한 연못의 물에 미친 코끼리가 들어가서 물을 혼탁하게 했을 때 물을 맑히는 구슬을 넣으면 물은 곧 맑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 이외에 코끼리도 없고 구슬도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음도 이와 같아서 번뇌가 들어가기 때문에 능히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데, 온갖 자비 등의 선법善法이 마음에 들어가면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번뇌와 자비 등의 법이 곧 마음이라고 할 수는 없다.”[명자함名字函 제6권]
등불이 이미 비추니 어둠이 스러지고
지혜가 비로소 생기니 번뇌가 없어진다.
『정법경正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빈방에 문이나 창문이 없어서 백천 년이 지나도 사람이나 물건이 없다고 하자. 이 방은 어두컴컴했는데 홀연히 어떤 천인天人이 있어 그 방안에서 등불을 밝혔다. 가섭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와 같은 어둠이 ≺내가 백천 년 동안 여기에 머물렀다. 나는 지금 떠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이러한 일이 있겠는가?’
가섭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어둠은 무력해서 등불이 켜지면 결정코 사라집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저 업과 번뇌도 또한 이와 같다. 백천 겁 동안 저 식識 속에 머물러 있더라도 저 수행하는 사람이 하루 밤낮 동안 정관正觀이 상응해서 저 지혜의 등불을 켠다면, 가섭이여, 이 같은 성자에게 지혜의 뿌리가 생긴다면 이 업과 번뇌도 결정코 있지 않은 것이다.’ ”[경자함卿字函 제3권]
내가 생生을 끊으니 사死는 저절로 멸하고
사자가 사람을 쫓으니 흙덩이는 저절로 쉰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최승最勝 천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보살이 무생법無生法에서 생이 있음을 봅니까?’
부처님께서 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에는 소멸이 없으니, 이 때문에 생함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품[性]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세속을 말미암아서 생멸이 있음을 보지만 이는 모두가 허망해서 진실한 유有가 아니다. 만약 모든 보살이 깊은 반야를 행한다면 곧 여실하게 알 것이니, 무명無明의 인연 때문에 온갖 행을 낳고, 행에 의거해서 식識이 생긴다. 자세히 설하면 나아가 유有로 말미암기 때문에 생生이 있고, 생이 있으면 곧 늙음이 있고, 늙음이 있으므로 죽음과 근심과 탄식과 고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을 할 때는 무명을 끊어야 하고, 무명이 끊어지면 나머지 10지支도 잇달아서[展轉] 그에 따라 소멸한다. 마치 몸이 끊어지면 목숨도 그에 따라 소멸하는 것과 같다.
천왕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삿된 견해를 가진 외도外道는 해탈을 구하기 위해서 단지 죽음을 끊으려 할 뿐이지 생生을 끊어야 함을 알지 못한다. 만약 법이 생하지 않는다면 곧 소멸도 없으니,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흙덩이를 사자에게 던지자 사자가 사람을 쫓으니 흙덩이가 저절로 쉬는 것과 같다. 보살도 또한 마찬가지니, 단지 그 생함을 끊기만 해도 죽음은 저절로 소멸한다. 개는 오직 흙덩이를 쫓을 뿐 사람을 쫓는 것은 알지 못하므로 끝내 쉬지를 못한다. 외도도 또한 마찬가지니, 생生을 끊을 줄 모르기에 끝내 죽음을 여의지 못한다. 보살이 깊은 반야를 행한다면, 인연과 모든 법의 생멸을 잘 알 것이다.”[과자함菓字函 제9권]
이 반야를 어찌 구할 수 있겠는가?
금은보배의 힘으로 얻는 것과도 같지 않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다만 바라밀의 상相을 요달한다면, 이것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시방十方에서 구하더라도 주는 자가 없으며, 또한 금은보배의 힘으로 구해서 얻는 것과도 같지 않다.”[입자함立字函 제1권]
반야는 모습이 없어서 비록 구하기 어렵더라도
방편의 힘으로 마땅히 증득할 수 있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보리를 구함은 방편선교方便善巧라야 비로소 증득할 수 있다. 보살이 반야를 닦을 때, 만약 법의 자성自性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면 마땅히 취할 수 있으나, 법의 자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 마땅히 어디에서 취할 것인가? 이른바 취하지 못하는 이것이 바로 색色이고, 이것이 바로 수受 등이고, 나아가 이것이 바로 성문이고, 이것이 바로 보살이고, 이것이 바로 여래이다.
사리자여, 보살이 반야를 수행하면 일체의 법성法性과 여래를 다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하게 요달해 안다. 이와 같이 취할 수 없는 바라밀다가 곧 장애가 없는 바라밀다이며, 이와 같이 장애가 없는 바라밀다가 곧 이 반야바라밀다이다.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그 속에서 배워야 하고, 그 속에서 배울 때 오히려 배운다는 것도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보리를 얻겠는가? 왜냐하면 자성이 있는 작은 법도 없기 때문이니, 이처럼 자성이 없음이 자성법自性法인데 무엇이 이생법異生法이고, 나아가 무엇이 여래법如來法이겠는가?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이미 얻을 수 없는데, 어떤 법에 의거해서 시설施設할 수 있겠는가? 보특가라(補特伽羅:사람)가 있더라도 보특가라는 이미 얻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것은 이생법異生法이고, 나아가 여래법이라고 설할 수 있겠는가?’
사리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약 일체법이 모두 자성이 없어서 마땅히 실유實有가 아니라면, 어떤 일에 의거해서 이것은 이생법이고, 나아가 여래법이라는 것을 요달해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色이나 수受가 실유實有한다고 할 때 이는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처럼 이생異生의 집착인가?’
사리자가 말했다.
‘아닙니다. 단지 전도顚倒됨으로 말미암아서 어리석은 범부가 이같이 집착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이 반야의 방편선교方便善巧를 수행할 때는 비록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어서 실유가 아님을 관하더라도 세속에 의거해서 보리를 발취發趣하니, 이는 온갖 유정有情을 위해서 갖가지로 널리 설하여 올바른 이해를 얻도록 해서 전도됨을 멀리 여의게 하려는 것이다.’ ”[상자함霜字函 제1권]
“다시 선현善現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보살의 보리의 자량資糧이라 합니까? 요컨대 이 같은 자량을 갖추면 보리를 증득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일체의 선법善法은 모두 보리의 자량이니, 원만하게 수행함으로써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증득할 수 있다.’ ”[제5권]
뗏목으로 인해 언덕에 도달하면 마땅히 뗏목은 버려야 한다.
법도 오히려 여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뗏목을 엮어서 강을 건너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이미 이 언덕[此岸]에서 저 언덕[彼岸]에 이르렀다면, 이 뗏목을 말미암아서 나의 액난厄難을 구제한 것이니, 진실로 두려움이 있는 땅으로부터 무위無爲의 처소에 이른 것이다. 내가 지금 이 뗏목의 용도를 버리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따르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법도 오히려 버릴 수 있어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임에랴.’ ”[여자함如字函 제8권]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자성은 본래 없는 것이어서
피차가 모두 공空한데 어떻게 얻고 버리겠는가?
『정법경正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등불이 능히 일체의 어둠을 깨뜨리는 것과 같으니, 저 어둠이 어디로 가겠는가? 동쪽으로 가거나 나아가 북쪽으로 가는 것도 아니니, 가도 가는 것이 아니고 와도 오는 것이 아니다.
가섭이여, 다시 등불도 또한 그 자체[我]가 능히 어둠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니, 만약 어둠이 없다면 어떻게 등불이 드러나겠는가? 가섭이여, 등불과 어둠은 본래 자성이 없으니, 이 두 가지는 모두 공해서 얻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가섭이여, 이런 까닭에 지혜도 또한 이와 같나니, 지혜가 만약 생긴다면 무지無智가 곧 사라지지만, 저 무지가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동쪽으로부터 북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니, 가도 가는 것이 아니라면 와도 오는 것이 아니다. 가섭이여, 다시 지혜가 만약 생긴다면 무지는 곧 사라지지만, 저 유지有智가 능히 무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니, 무지가 본래 없다면 유지가 어떻게 드러나겠는가? 가섭이여, 유지와 무지는 모두 자성이 없으니, 이 두 가지는 모두 공하여 얻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경자함卿字函 제3권]
공空을 듣고서 문득 공무空無에 집착한다면
마치 소금이 너무 지나쳐 소금의 좋은 점을 해치는 것과 같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공을 관하는 사람은 먼저 한량없는 보시와 지계持戒와 선정으로 그 마음이 유연하고 모든 번뇌[結使]가 희박해진 다음에야 진공眞空을 얻는다. 삿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없고, 단지 상념으로 분별해서 삿된 마음으로 공을 취한다. 비유하면 시골 사람이 처음엔 소금을 알지 못하다가 남이 갖가지 고기와 야채에 소금을 뿌려서 먹는 걸 보고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어째서 그렇게 하는가?’
‘이 소금이 음식의 맛을 좋게 한다네.’
그러자 그는 문득 소금을 입 안 가득히 넣어 먹었는데 너무나 짜서 입이 상했다.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소금이 맛을 좋게 한다고 말하는가?’
그가 어리석은 사람을 질책했다.
‘이 소금은 반드시 양을 알맞게 조절해야만 맛을 낼 수 있네. 어찌 그냥 마구 먹는 것을 말했겠는가?’
무지한 사람은 공해탈문空解脫門을 들으면, 공덕은 닦지 않고 다만 공을 얻으려고만 하니, 이는 삿된 견해로서 모든 선근善根을 끊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아비담阿毘曇 등의 3문門에 들어가면, 불법이 서로 어긋나지 않음을 알 것이다. 이 일을 능히 아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의 힘이니, 일체법에 대해 걸리는 바가 없다. 만약 반야바라밀의 법을 얻지 못하고 아비담문에 들어가면 유有 속에 떨어지고, 만약 공문空門에 들어가면 무無 속에 떨어지고, 만약 곤륵문蜫勒門에 들어가면 유무有無 속에 떨어진다.
또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비록 모든 법이 하나의 상[一相]임을 알더라도 또한 능히 일체법의 갖가지 상相을 알 수 있고, 비록 모든 법의 갖가지 상相을 알더라도 능히 일체법이 하나의 상임을 알 수 있으니, 이를 반야바라밀이라 한다.”[덕자함德字函 제8권]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 이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법이 스스로 공한 것이지, 색色을 멸한 것이 아니다.
『보운경寶雲經』에서 말하였다.
“선남자야,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 이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공은 스스로 공한 것이어서 전제前際ㆍ후제後際ㆍ중제中際도 역시 공하고, 다만 법은 스스로 공한 것이지 색色이 멸한 공이 아니니, 마땅히 공에 의거하고 사람에 의거하지 말라. 만약 공을 얻었는데도 공에 의거한다면,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은 퇴보한다고 설하셨다. 선남자야, 차라리 아견我見을 일으켜서 수미산처럼 쌓을지언정 공견空見으로써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키지 말라. 왜냐하면 일체의 견見은 공으로써 해탈을 얻는데, 만약 공견空見을 일으킨다면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허공을 무서워해서 슬프게 호곡하고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이 허공을 물리쳐다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같은 허공을 없앨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공법空法을 두려워한다면, 나는 이 사람이 미쳐서 실성했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항상 공 속에서 행하면서도 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목자함木字函 제7권]
불성佛性은 색色도 아니고 색을 여읜 것도 아니니
장님이 설명한 코끼리는 끝내 코끼리로 돌아간다.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에서 물러서지 않으니, 이를 결정적으로 얻었다고 한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왕이 한 대신에게 말했다.
‘그대는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장님들에게 보여라.’
그 때 저 장님들은 각기 손으로 코끼리를 만졌다.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코끼리가 어떤 종류인가?’
어금니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의 형상은 마치 무[蘆菔] 뿌리와 같습니다.’
귀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키[箕]와 같습니다.’
머리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돌과 같습니다.’
코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절구공이와 같습니다.’
다리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절구와 같습니다.’
등을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상床과 같습니다.’
배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항아리와 같습니다.’
꼬리를 만진 자가 말했다.
‘코끼리는 마치 밧줄과 같습니다.’
선남자야, 가령 저 장님들은 코끼리의 몸체를 설명한 것도 아니고 설명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 온갖 모습들이 다 코끼리는 아니지만, 이 모습들을 여의고서 따로 별개의 코끼리도 없다. 선남자야, 왕은 여래ㆍ정변지正遍知를 비유한 것이고, 신하는 이 경전을 비유한 것이고, 코끼리는 불성을 비유한 것이고, 장님은 일체의 무명 중생無明衆生을 비유한 것이다. 이 모든 중생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후에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색色이 불성이다. 왜냐하면 이 색은 비록 멸하더라도 차례로 상속하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여래의 32상相을 획득하는 것이다. 여래의 색色이 항상 여래의 색인 것은 늘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이와 같은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저 장님들이 각각 코끼리를 설명한 것이 비록 진실하지는 않더라도 코끼리를 설명하지 않음도 아닌 것과 같다. 불성을 설명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6법에 즉한 것도 아니고 6법을 여읜 것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중생에게 불성을 설명할 때 색色도 아니고 색을 여읜 것도 아니며, 나아가 나도 아니고 나를 여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중생의 나라는 것은 바로 5음陰인데, 5음을 벗어나서 따로 나라는 것은 없다. 비유하면 벽과 나무가 합쳐져서 집이 되지만, 이런 것들을 여의고서 따로 집이 없는 것과 같다.”[솔자함率字函 제2권]
유아有我든 무아無我든 각기 한쪽 부분이며
유有를 여의고 무無를 여읜 것을 중도中道라 한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단멸斷滅의 견해를 따르려는 것에 대해 나가 있어서 후세의 죄와 복을 받는다고 설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상견常見에 떨어지려고 하면 나도 없고 짓는 자도 없고 받아들이는 자도 없다고 설하셨다. 이 5중衆의 가명仮名을 여의면, 다시 한 법도 자재한 것이 없다.
【문】 만약 그렇다면, 무엇이 실實인가?
【답】 무아가 실實이다. 일체법은 무상無常하고, 일체법은 무아이며, 적멸이 안온한 열반이니, 이름하여 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라 한다. 만약 사람의 선근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면, 부처님께서는 이 깊은 무아를 설하시지 않는다. 만약 그런 자에게 설한다면 곧 단멸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 가령 가섭의 질문 속에서 부처님께서는 아我도 한쪽 변邊이고 무아도 한쪽 변이니 이 두 가지 변을 여의는 것을 이름하여 중도中道라 설하셨다. 지금 어째서 내게 무아는 실實이라고 말하고 유아는 방편이 된다고 설하는가?
【답】 무아를 설한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무아상을 취하여 무아에 집착한 것이다. 둘째는 아我를 타파해서 취하지 않고 무아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버리고 여의는 것이다. 다시 다음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유아와 무아에는 두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세속으로써 설명했기 때문에 유아이고, 둘째는 제일의 실상實相으로써 설명했기 때문에 무아이다. 이와 같은 것 등의 유아와 무아에 대한 설명은 잘못이 없으니, 부처님께서는 곳곳에서 모든 법의 유有를 설하셨고, 곳곳에서 모든 법의 무無를 설하셨다.”[건자함建字函 제6권]
모든 법이 필경에 공하다는 걸 통달한다면
이것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일체의 공을 관하면서 이 공의 모습[相]에 고착되지 않는다면 반야를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공해서 법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반야를 행하겠는가?’
‘만약 이 공을 여의고서 다시 법이 있다면 반야를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일체법이 공하다면 모습도 없고 지음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공을 여의고서 다시 법이 있겠는가?’
수보리가 여쭈었다.
‘공空도 반야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공을 여의는 것도 반야를 행하는 것이 아니니, 일체법이 다 반야에 섭수되어 있는 가운데서 지금 단지 반야를 묻는 것이 반야를 행하는 것입니까?’
‘법은 스스로 행하지 못하니, 반드시 이법異法으로써 행해야 한다.’
다시 여쭈었다.
‘반야를 여의고서 다시 어떤 법이 있어서 반야를 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법이 반야에 섭수되어 있는 가운데서 다시 반야를 행하는 법은 없다.’
다시 여쭈었다.
‘만약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상도無上道를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반문하셨다.
‘그대는 지혜의 눈으로 결정코 하나의 법이 있어서 반야를 행한다고 보는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반야를 행하는 것이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
‘그대는 반야를 행하는 처소를 보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반야 속에선 일체의 관觀이 소멸해서 상常이나 무상無常이나 생멸 등 한 법도 정해진 상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인데, 어찌 이 반야를 적당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대가 지혜의 눈으로써 법을 보지 못한다면, 이 보지 못하는 법은 유有라 하는가, 무無라 하는가?’
대답하였다.
‘무無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선 지혜의 눈으로 관해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무無라 한다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법이 무無라서 얻을 수 없다면, 이 법은 생生하는 것인가?’
대답하였다.
‘생하지 않습니다. 이 법은 본래 스스로 무無라서 필경은 공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이 법에 대해 통달하여 의심이 없다면, 믿음의 힘과 지혜의 힘 때문에 능히 이 법 속에서 머무니, 이를 무생인無生忍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표자함表字函 제7권]
색色 등은 둘도 없고 둘로 나뉨도 없으니
청정은 구별도 없고 단절도 없기 때문이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선현善現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의 청정이 곧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이고,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이 곧 색의 청정이다. 왜냐하면 이 색의 청정과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은 둘이 아니고, 둘로 나뉨도 없고, 구별도 없고 단절도 없기 때문이다.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청정이 곧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이고,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이 곧 수ㆍ상ㆍ행ㆍ식의 청정이다. 왜냐하면 이 수ㆍ상ㆍ행ㆍ식의 청정과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은 둘도 아니고, 둘로 나뉨도 없고, 구별도 없고, 단절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든 부처님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의 청정이 곧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이고,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이 곧 모든 부처님의 무상정등보리의 청정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부처님의 무상정등보리의 청정과 반야바라밀다의 청정은 둘도 아니고, 둘로 나뉨도 없고, 구별도 없고, 단절도 없기 때문이다.”[서자함署字函 제3권에서 시작해서 율자함律字函 제4권에서 마친다.]
[색色ㆍ수受로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명상名相은 모두 80여 가지 과科이다. 이제 아래의 경문을 갖추어서 첨가할 수 있으니, 이 뜻을 차례대로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미루어 본다면, 반야 한 부의 원융한 뜻을 갖출 것이다.]
경 가운데 명상名相을 뽑아서 모으고
그 언구 아래에서 바로 간략하게 분석한다.
『지요록指要錄』의 주석에서 반야의 명상名相 80여 과科를 뽑았는데, 아마도 열람하는 자의 지혜를 발해서 알도록 한 것이리라.
5온蘊은 색온色蘊[쌓임으로서 비어 있고 가짜이다], 수온受蘊[받아들여서 탐착의 자량이 된다], 상온想蘊[상像을 취해서 달려간다], 행온行蘊[미세함이 변천하면서 흐른다], 식온識蘊[타오르는 듯하면서 요별한다]이다.
6근根은 안근眼根[모습을 보고 기뻐하거나 노여워한다], 이근耳根[계속해서 듣고 살핀다], 비근鼻根[냄새를 맡고는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설근舌根[달거나 쓴 것을 맛본다], 신근身根[껄끄럽거나 매끄러운 것을 탐내거나 싫어한다], 의근意根[항상 살피고 사량한다]이다.
6진塵은 색진色塵[형체가 드러나 가로막음을 성질로 한다],1010 장애[礙]를 가로막음이라고 번역한 것은, 색色은 그 형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다른 것이 그 공간을 함께하지 못하게 막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성진聲塵[도리어 듣는 것이 미혹을 이룬다], 향진香塵[향기나는 것과 냄새나는 것으로 앎을 미혹한다], 미진味塵[짠맛과 싱거운 맛으로 분풀이한다], 촉진觸塵[차고 더운 것이 수고롭다], 법진法塵[만 가지 상이 분분하다]이다.
6식識은 안식眼識[검고 누런 것이 참되지 못하다], 이식耳識[고락苦樂의 소리가 다르다], 비식鼻識[기운을 관찰하여 빛을 돌린다], 설식舌識[삿되고 바른 것을 분별해 설한다], 신식身識[기틀에 따라 몸짓을 나타낸다], 의식意識[생각을 반연하여 공으로 돌아온다]이다.
6촉觸은 안촉眼觸[여의면 밝게 본다], 이촉耳觸[멀고 가까운 것이 전부 들린다], 비촉鼻觸[냄새를 맡으면 곧 안다], 설촉舌觸[맛과 닿으면 곧 지각한다], 신촉身觸[닿지 못하면 지각하지 못한다], 의촉意觸[온갖 모습과 은밀히 계합한다]이다.
육연소생六緣所生은 안연소생수眼緣所生受[빛은 비춤의 경계가 아니다], 이연소생수耳緣所生受[소리를 수순하여 분별한다], 비연소생수鼻緣所生受[훈습으로 원돈圓을 닦는다], 설연소생수舌緣所生受[맵고 신 것이 어디에 의지하랴], 신연소생수身緣所生受[방일해도 잃는 것이 없다], 의연소생수意緣所生受[상념을 잊지 않는다]이다.
4연緣은 인연因緣[모든 법이 화합한다], 차제연次第緣[심법과 심수법心數法이다], 소연연所緣緣[법은 의지하는 바가 없다], 증상연增上緣[법은 얻을 수 없다]이다.
6대大는 지대地大[단단히 응결되고 가로막음을 성질로 한다], 수대水大[매끄러우면서 아래로 향하고 애착을 적신다], 화대火大[불꽃이 피어나듯 성냄을 일으킨다], 풍대風大[조급히 움직인다], 공대空大[끝과 겉을 보지 못한다], 식대識大[만법의 본원이다]이다.
12인연因緣은 무명無明[어두워 참 지혜를 가린다], 행行[흘러드는 것이 쉬지 않는다], 식識[망령되게 애염愛染을 일으킨다], 명색名色[형상을 관해서 실다움을 정한다], 6입入[근根과 진塵이 상대한다], 촉觸[점점 물들어 집착함을 낳는다], 수受[받아들이되 집착하지 않는다], 애愛[습기의 힘이 오염을 성취한다], 취取[대상을 집착하고 버리지 않는다], 유有[업의 인因이 성취된다], 생生[애욕이 유전한다], 노老[점점 변이變異를 깨닫는다], 병病[온갖 고통이 얽어맨다], 사死[버리고 떨어지면서 식識은 날아간다], 우憂[번민하고 슬픔에 빠진다], 비悲[울적하고 슬퍼서 운다], 고苦[나쁜 인연이 단박에 나타난다], 뇌惱[원수의 해침을 만나게 된다], 아자我者[나와 내 것을 일으킨다], 생자生者[부모에게 자식이 있는 것과 같다], 수자壽者[명근命根을 성취한다], 명자命者[능히 사事를 하기 때문이다], 유정자有情者[5온이 화합하여 생긴다], 양육자養育者[인연 때문에 자라난다], 중수자衆數者[모든 법에는 수數가 있다], 작자作者[손발의 능소能所이다], 사작자使作者[힘으로 능히 남을 부린다], 기자起者[지은 뒤 세간의 업이다], 사기자使起者[또한 남으로 하여금 짓게 한다], 수자受者[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가 나타난다], 사수자使受者[고통을 싫어하고 쾌락을 싫어한다], 견자見者[눈으로 색상色像을 본다], 지자知者[5식이 명칭을 아는 것이다]이다.
6도度는 보시布施[자기 것을 희사하여 남에게 혜택을 준다], 정계淨戒[세 가지 업에 오염이 없다], 안인安忍[비난과 칭찬에 의연하다], 정진精進[용맹하여 나약함이 없다], 정려靜慮[모든 반연을 미묘하게 끊는다], 반야般若[지혜가 원만히 사무친다]이다.
20공空은 내공內空[6근根에 실체가 없다], 외공外空[6진塵에 모습이 없다], 내외공內外空[6식識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空空[병이 나으면 약도 없앤다], 대공大空[소승법은 없다], 소공小空[네 가지 과의 모습이 없다], 승의공勝義空[공용功用이 거짓으로 나타난다], 유위공有爲空[생하고 소멸하는 모습이 없다], 무위공無爲空[모습 없음도 또한 없다], 필경공畢竟空[모든 법의 모습이 다한다], 무제공無際空[시작과 마침을 보지 않는다], 산공散空[화합하는 모습을 여읜다], 무변이공無變異空[여여한 지혜의 공적함], 본성공本性空[법은 본래 항상 무이다], 자상공自相空[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공상공共相空[자기와 남의 모습이 다한다], 일체법공一切法空[모두 얻을 수 없다], 불가득공不可得空[가可 역시 불가不可이다], 무성공無性空[연緣을 빌리면 곧 무이다], 자성공自性空[체體의 본원은 비어 있다],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모두 무인 것도 무이다]이다.
4제諦는 고성제苦聖諦[세간의 과果의 모습이다], 집성제集聖諦[세간의 인因의 모습이다], 멸성제滅聖諦[출세간의 과의 모습이다], 도성제道聖諦[출세간의 인의 모습이다]이다.
진여眞如[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에 따르는 것이 있다], 법계法界[이理와 사事가 원융하다], 법성法性[항상 스스로 적멸하다], 불허망성不虛妄性[본래가 진실이다], 불변이성不變異性[지금이나 옛날이나 항상 그러하다], 평등성平等性[범부와 성인이 일치한다], 이생성離生性[적멸해서 형상이 없다], 법정法定[모든 경계가 항상 여여하다], 법주法住[각각 스스로의 지위에 안주한다], 실제實際[한 티끌도 세우지 않는다], 허공계虛空界[끝이 없다], 부사의계不思議界[마음과 말길이 끊어졌다]이다.
4정려靜慮는 초선初禪[심尋도 있고 사伺도 있다], 2선禪[심尋은 없고 오직 사伺만 있다], 3선禪[심尋도 없고 사伺도 없다], 4선禪[염念을 버려서 청정하다]이다.
4무량無量은 자무량慈無量[사랑의 정定이 광대하다], 비무량悲無量[연민의 정定이 허공과 같다], 희무량喜無量[기쁨의 정定이 두루한다], 사무량捨無量[희사의 정定이 두루한다]이다.
4무색無色은 공무변처空無邊處[공의 정定이 공을 나타낸다], 식무변처識無邊處[식의 정이 식을 나타낸다], 무소유처無所有處[정이 없는 것이 정이다], 비비상처非非想處[생각도 생각 아닌 것도 없는 정이다]이다.
8해탈解脫이란, 안에서 색色이 있는 걸 관하고 밖에서도 색을 관하는 해탈[觀內有色外亦觀色解脫][안을 보고서 밖을 본다], 안에서는 색이 없는 걸 관하지만 밖에서는 색을 관하는 해탈[觀內無色外亦觀色解脫][밖을 보고 안을 본다], 안팎의 모든 색의 해탈[內外諸色解脫][있든 없든 모두 청정하다], 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색을 인연해도 공과 동일하다], 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3세世의 식이 공하다], 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무색無色의 반연도 없다], 비비상처해탈非非想處解脫[상相을 끊고 묘妙를 성취한다], 멸수상정해탈滅受想定解脫[심수법心數法이 다한다]이다.
8승처勝處는 1승처[청정한 모습이 뛰어나게 수승하다], 2승처[색의 경계가 뛰어나게 수승하다], 3승처[안팎이 뛰어나게 수승하다], 4승처[진공眞空이 뛰어나게 수승하다], 5승처[오묘한 식이 뛰어나게 수승하다], 6승처[공무空無가 뛰어나게 수승하다], 7승처[비상非想이 뛰어나게 수승하다], 8승처[상정想定이 뛰어나게 수승하다]이다.
9차제정次第定은 1차제정[초선의 기쁨과 즐거움이다], 2차제정[2선의 묘한 생生이다], 3차제정[3선의 오묘한 즐거움이다], 4차제정[4선의 정진淨盡이다], 5차제정[공이 능히 널리 들어간다], 6차제정[식이 능히 명료하다], 7차제정[무유無有가 곧 유이다], 8차제정[상념 없음이 곧 상념이다], 9차제정[마음이 멸해도 멸함이 없다]이다.
10변처遍處는 1변처[지대地大가 두루 돈다], 2변처[수대水大가 두루 돈다], 3변처[화대火大가 두루 돈다], 4변처[풍대風大가 두루 돈다], 5변처[공대空大가 두루 돈다], 6변처[청색이 공空에 가득하다], 7변처[황색이 공에 가득하다], 8변처[적색이 공에 가득하다], 9변처[백색이 공에 가득하다], 10변처[흑색이 공에 가득하다]이다.
4념처念處는 몸이 청정하지 않음을 관하는 것[오염의 반연이 있기 때문이다], 수受가 고통임을 관하는 것[취하는 것에 집착하면 속박을 더한다], 마음이 무상임을 관하는 것[생각생각마다 흘러가면서 소멸한다], 법이 무아임을 관하는 것[정해진 모습이 있지 않다]이다.
4정근正勤은 정진근精進根[신령스런 싹이 더욱 무성하다], 정진각精進覺[마음 마음마다 경책한다], 정진력精進力[털끝만치도 굽히지 않는다], 정정진正精進[삿됨을 따르지 않는다]이다.
4신족神足은 정근定根[깊고 단단하고 유원幽遠하다], 정각定覺[적멸하되 항상 비춘다], 정력定力[마魔가 능히 흔들 수 없다], 정정正定[부처님의 삼매에 들어간다]이다.
5근根은 신근信根[능히 법해法海에 들어간다], 염근念根[머물고 지녀서 잊지 않는다], 정진근精進根[언제나 생각한다], 정근定根[맑고 고요하여 허통虛通한다], 혜근慧根[진제를 명백히 변별한다]이다.
5력力은 신력信力[일념이 만 년을 간다], 염력念力[한 점도 없이 완전히 맑다], 정진력精進力[진겁塵劫이 지나도록 게으르지 않는다], 혜력慧力[삿됨을 물리치고 올바름을 드러낸다], 정력定力[수미산처럼 높고 튼튼하다]이다.
7각지覺支는 염각念覺[신령스런 마음이 어둡지 않다], 택법각擇法覺[미세함이 명료하다], 정진각精進覺[깨닫고 나서도 깨달음을 구한다], 희각喜覺[법의 즐거움이고 선의 희열이다], 의각猗覺[깨친 바가 없는 깨침이다], 정각定覺[밝디 밝고 또렷하고 또렷하다], 사각捨覺[깨침과 깨친 바를 여의는 것이다]이다.
8성도지聖道支는 정어正語[마음과 입이 상응한다], 정업正業[불사佛事가 아닌 것이 없다], 정명正命[결사結使를 이미 없앴다], 정사유正思惟[망상을 끊었기 때문이다], 정방편正方便[무위에 떨어지지 않는다], 정념正念[마음에 다른 반연이 없다], 정정正定[모든 신족神足을 초월한다], 정견正見[업보를 믿기 때문이다]이다.
3해탈문解脫門은 공해탈문空解脫門[공은 공을 보지 못한다],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모습은 모습을 보지 못한다],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원하는 것은 곧 원함이 없는 것이다]이다.
보살의 10지地는 환희지歡喜地[성스러운 지위를 증득했기 때문이다], 이구지離垢地[몸과 마음이 청정하다], 발광지發光地[지혜가 이미 밝음을 낳는다], 염혜지焰慧地[미묘한 깨달음이 확연히 비춘다], 현전지現前地[진眞과 속俗을 통달한다], 난승지難勝地[공행功行이 초월한다], 원행지遠行地[방소에 따라서 감응해 교화한다], 부동지不動地[인지忍智가 저절로 여여하다], 선혜지善慧地[신통의 힘이 자재롭다], 법운지法雲地[대지혜가 원만히 밝다]이다.
5안眼은 육안肉眼[안은 보아도 밖은 어둡다], 천안天眼[안팎이 모두 밝다], 혜안慧眼[온갖 모습을 비추어 요달한다], 법안法眼[기틀을 관해서 가르침을 시설한다], 불안佛眼[널리 법계를 관한다]이다.
6통通은 천안통天眼通[대천大千세계를 사무쳐 본다], 천이통天耳通[시방을 확연히 듣는다], 타심통他心通[종류를 다 안다], 숙명통宿命通[3세의 일을 요달한다], 신경통神境通[형상에 장애가 없다], 여의통如意通[임운任運하여 자재롭다]이다.
10력力은, 첫째는 처소든 처소가 아니든 여실한 힘이고[선행과 악행], 둘째는 3세의 업보를 아는 힘이고[과보가 분명하다], 셋째는 모든 선禪의 해탈 삼매를 아는 힘이고[명료한 정정正定이다], 넷째는 중생의 온갖 근기의 위와 아래를 아는 힘이고[계界의 성품을 요달해 안다], 다섯째는 중생의 갖가지 욕망의 힘을 아는 것이고[근根의 즐기는 바를 아는 것이다], 여섯째는 세간의 갖가지 성품의 힘을 아는 것이고[정定과 부정不定의 성품이다], 일곱째는 일체 도의 지극한 힘을 아는 것이고[모든 선정의 경계이다], 여덟째는 숙명지의 힘을 얻는 것이고[옛날이 곧 지금이다], 아홉째는 천안天眼을 얻어서 일체를 관하는 힘이고[한 조각도 보지 않는다], 열째는 누진지漏盡智를 얻는 힘이다[장작이 다하면 불도 꺼진다]
4무외無畏는 법무소외法無所畏[사자후師子吼를 짓는다], 누진무소외漏盡無所畏[어느 곳에 굽어 휘어짐이 있는가?], 설장도무소외說障道無所畏[삿된 미혹을 능히 타파한다], 설도무소외說道無所畏[결정이 이와 같다]이다.
4무애해無碍解는 사무애詞無碍[구해口海의 물결이다], 변무애辯無碍[마땅히 이러한 설을 짓는다], 법무애法無碍[뜻을 요달치 못함이 없다], 의무애義無碍[법이 통하지 않음이 없다]이다.
4섭법攝法은 대자大慈[널리 사물을 섭수하기 때문이다], 대비大悲[널리 고통을 뿌리뽑기 때문이다], 대희大喜[널리 함께 즐기기 때문이다], 대사大捨[널리 베풀기 때문이다]이다.
18불공법不共法은, 첫째는 몸에 잘못이 없는 것이고[행이 규범에 어긋남이 없다], 둘째는 입에 잘못이 없는 것이고[말이 법 아님이 없다], 셋째는 뜻에 잘못이 없는 것이고[염念이 바르지 않음이 없다], 넷째는 다른 상념이 없는 것이고[올바로 믿어서 조화롭고 정직하다], 다섯째는 정심定心 아님이 없는 것이고[움직이면서도 항상 고요하다], 여섯째는 이미 버린 것을 알지 못함이 없고[선과 악의 모든 법이다], 일곱째는 욕구가 줄어듦이 없는 것이고[작은 선善이라도 싫어하지 않는다], 여덟째는 정진이 줄어듦이 없는 것이고[움직이고 고요함이 무상하다], 아홉째는 염念이 줄어듦이 없는 것이고[균등한 마음이 맑고 담연하다], 열째는 슬기가 줄어듦이 없는 것이고[고르고 실다우며 명료하다], 열한째는 해탈이 줄어듦이 없는 것이고[속박과 해탈이 둘이 아니다], 열두째는 지견知見이 줄어듦이 없는 것이고[두루 알고 두루 본다], 열셋째는 신업身業[지혜를 따라서 행한다]이고, 열넷째는 구업口業[지혜를 따라서 행한다]이고, 열다섯째는 의업意業[지혜를 따라서 행한다]이고, 열여섯째는 과거를 요달치 못함이 없는 것이고[닦은 바이고 행하는 바이다], 열일곱째는 미래를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이고[수기하는 바이고 보응하는 바이다], 열여덟째는 현재를 보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수受를 나타내고 과果를 나타낸다].
잊어버림이 없는 법이고[무루無漏의 성품을 증득한다], 항상 버림의 성품에 머무는 것이고[비고 고요하며 담적하다], 일체지一切智[요달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이고, 도상지道相智[요달할 것이 없는 걸 요달한다]이고, 일체상지一切相智[요달하고 요달해도 요달함은 없다]이고, 일체다라니문一切陀羅尼門[총지總持의 묘한 성품이다]이고, 일체삼마지문一切三摩地門[올바른 마음과 올바른 수受이다]이다.
4과果는 예류과預流果[수다원이다], 일래과一來果[사다함斯陀含이다], 불래과不來果[아나함阿那含이다], 무생과無生果[아라한阿羅漢이다]이다.
독각보리獨覺菩提[스스로 근본지를 깨닫는다], 일체보살마하살행一切菩薩摩訶薩行[자기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한다], 모든 부처님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인과가 원만하다]이다.”[계자함溪字函 제2권]
색을 파괴한 무상無常은 상사相似의 설이요
색이 본래 공[本空]함을 요달함은 여실한 말씀이다.
『출생삼법장반야경出生三法藏般若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설하셨다.
‘미래 세상에서는 반드시 상사相似의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설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제석천이 여쭈었다.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천에게 말씀하셨다.
‘미래 세상에서 모든 필추(苾芻:比丘)들은 이렇게 설할 것이다.
‘색色은 무상無常하니, 몸이든 마음이든 계戒ㆍ정定ㆍ혜慧든 다 있는 바가 없고 모든 관하는 바를 여읜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상사相似의 반야바라밀다를 설하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색을 파괴하므로 색의 무상함을 관하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파괴하기 때문에 수ㆍ상ㆍ행ㆍ식의 무상함을 관한다.’
만약 이렇게 구해서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모두 그 이름이 상사 반야바라밀다가 된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 제석천이여, 그대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즉 색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색의 무상함을 관하는 것이요, 수ㆍ상ㆍ행ㆍ식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수ㆍ상ㆍ행ㆍ식의 무상함을 관하는 것이니, 이렇게 설하는 것이 바로 여실하게 반야바라밀다를 선설宣說하는 것이다. 만약 남을 위해 이 뜻을 설할 수 있다면 많은 복을 얻게 된다.’ ”[택자함宅字函 제5권]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불도佛道를 구하는 자는 상사相似 반야를 설하지 않는 것인가? 선남자야, 그대들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 색色이 무상無常하다고 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색을 색이게 하는 성품은 공空하기 때문이다. 이 색의 성품은 법이 아니니, 만약 법이 아니라면 곧 그 이름을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 속에서 색은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니, 왜냐하면 이 가운데서 색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상常과 무상無常이겠는가? 이렇게 설하는 것을 이름하여 상사 반야를 설하지 않는다고 하니, 수ㆍ상ㆍ행ㆍ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시 다음에 상사 반야를 설하는 자는 명자名字와 언어는 같아도 마음의 뜻은 다르다. 가령 마음을 집착하고 모습을 취한다면, 5중衆 등의 무상을 설하고, 나아가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는 데까지 이르러도 이는 상사 반야이다. 만약 마음을 집착하지 않고 모습도 취하지 않는다면, 5중衆의 무상을 설하지 않고 다만 상常의 전도됨만 타파하기 때문에 무상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는 진실한 반야바라밀다이다.”[형자함形字函 제10권]
가령 반야를 버리고 다른 경전으로 나아간다면
마치 근본을 버리고 지엽枝葉을 찾는 것과 같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반야 경전을 버리고서 다른 경전을 구해서 배운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것은 보살의 마사魔事가 된다. 왜냐하면 일체지지一切智智의 근본인 깊고 깊은 반야를 버리고서 지엽인 다른 온갖 경전을 찾는다면, 끝내 부처의 보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현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다른 경전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가령 2승乘에 상응하는 법을 설하는 것이니, 이른바 4념주念住와 나아가 8성도지聖道支, 3해탈문解脫門, 4제諦의 지혜 등이다. 이 속에서 배우고 수행하면, 단지 예류預流ㆍ일래一來ㆍ불환不還ㆍ아라한과와 독각獨覺의 보리를 얻을 뿐이지,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는 얻지 못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다른 경전은 지엽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 능히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인발引發하질 못하며, 깊고 깊은 반야는 능히 일체지지를 인발해서 대세大勢의 공용이 있으니 마치 나무 뿌리와 같은 것이다.”[거자함巨字函 제9권]
하나인 반야의 힘으로 수호하지 못하면
다섯 바라밀도 마魔의 해침을 받는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가령 어떤 여인이 단정하고 큰 부자인데, 만약 강한 남편에게서 보호받지 못한다면 악인의 능멸을 받기 쉽다. 보시 등 다섯 바라밀다도 이와 마찬가지니, 만약 반야의 힘으로 수호하지 못한다면 마魔에게 파괴되기 쉽다.”[출자함出字函 제10권]
보시 등은 장님과 같아서 앞에서 이끌지 못하고
반야는 눈이 되어서 그것들을 인도한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백천 명의 장님을 맑은 눈이 없는 자가 인도하는 것과 같아서 더욱더 정도正道에 가까이 갈 수 없거늘, 하물며 능히 풍요롭고 즐거운 대성大城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보시 등의 장님들을 만약 반야의 맑은 눈이 없는 자가 인도한다면 더욱더 보살의 정도正道에 들어갈 수 없거늘, 하물며 일체지一切智의 성城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반야를 말미암아 바야흐로 피안彼岸에 도달한다.”[내자함來字函 제2권]
반야를 닦을 때 왜 나태하고 왜 부지런한가?
인지因地를 말미암아서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한다.
“다시 선현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반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깊은 믿음과 이해를 낳고, 쓰고 베끼고 받아 지니고, 사유하고 닦아 익힙니다. 이 보살은 어느 곳에서 죽었다가 이 세간에 와서 태어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이 반야를 듣고서 겁내지도 않고 미혹되지도 않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마침내 이익을 통달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보살은 전생에 반야를 듣기 즐겨하고, 반야를 들은 후에는 받아 지니고 정근하고 닦아 익혔으니, 이 선근으로 말미암아서 인간 세상[人趣]에서 죽었다가도 다시 인간 가운데 태어난다.’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이 이와 같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해서 타방他方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섬겼다면, 저곳에서 죽어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 반야를 듣고는 다시 읽고 익히는 데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생에 타방의 부처님 처소에서 이 반야를 듣고서 이와 같은 선근의 힘이 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어떤 보살이 비록 전생에 반야를 들었고 또한 일찍이 깊은 뜻을 청하여 물었지만 능히 1일, 3일, 4일, 5일 동안을 지나면서 수행에 수순隨順하지 못했다가, 금생의 인간 세계에서 반야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는 설사 1일 내지 5일 동안 지난다면 그 마음이 견고해서 능히 파괴할 수 없다. 만약 듣는 것을 여읜다면 곧 물러나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전생에서 비록 듣고 물었더라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에서는 어떤 때는 견고하고 어떤 때는 물러나 잃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어떤 보살이 비록 전생에서 6바라밀을 들었더라도 깊은 뜻을 청하여 묻지 않았다면, 금생의 인간 속에서는 이 깊은 반야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그 마음이 미혹되고 망설이고 더욱 겁내며 혹 다르게 이해하기도 한다.”[양자함陽字函 제1권]
반야를 지닌 자는 수승한 과보를 얻고
반야를 비방하는 자는 죄에 더욱 깊이 떨어진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만약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억념憶念하여 살바야(薩婆若:一切智)의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면, 만일 독약이든 불구덩이든 깊은 물이든 칼로 죽이고자 하더라도, 이와 같은 온갖 악이 다 해칠 수 없으니, 반야의 힘 때문에 이러한 수승함이 있는 것이다.
“ 【문】 현재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데도, 군대의 진영에 들어가서 병기의 해침을 받는다면 왜 그런 것입니까?
【답】 두 종류 업의 인연이 있다. 첫째는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반드시 과보를 받지는 않는 것이다.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대역大逆의 무거운 죄를 범해서 반드시 죽어야 할 사람은 비록 강력한 재물과 보배가 있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반드시 과보를 받지는 않는다는 것은 가령 사람의 죄가 비록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도 이치로는 아직 구제할 만하면 세력과 재물을 써서 문득 목숨을 구제할 수 있는데, 구하지 못하면 죽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처럼 반드시 과보를 받지는 않는다면, 죄가 비록 죽는 일에 이르더라도 반야를 읽고 외우면 제도를 받을 것이고, 만약 읽고 외우지 않는다면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반야에 힘과 세력이 있다 없다 말하지 않는 것이다.
【문】 앞에서 설하신 그 일은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가운데 능히 읽고 외우질 못하고, 단지 쓰고 베끼고 공양만 한다면 이러한 공덕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답】 이 사람이 얻은 공덕도 앞서와 똑같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먼저 스승께서 반야의 뜻을 설하는 걸 듣고서 깊이 사랑하고 즐기지만, 문자를 알지 못해서 스승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히 읽고 외우질 못하지만, 재보를 아끼지 않고서 사람을 고용하여 쓰고 베끼도록 한 뒤 마음을 다하여 갖가지 공양을 한다면, 외우는 자와 똑같이 공덕을 얻는다.”[형자함形字函 제7권]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 경전을 쓰고 베끼고, 갖가지로 장엄하고, 청정한 곳에 두고서 공경하고 공양한다면, 시방十方의 천룡天龍이 항상 와서 옹호하고, 인비인人非人 등의 해침을 받지 않는다. 오직 숙세宿世에 정해진 악업의 인因을 제거함으로써 현재에 마땅히 성숙하며, 혹은 무거운 악이 전변해서 현세에는 가볍게 받는다.”[거자함巨字函 제2권]
『금강경』에서 말하였다.
“이 경전을 받아 지녔는데 남에게 무시당하고 천대를 받는다면,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이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야 하는 것이었으나 금생에 남에게 무시당함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전생에 반야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이미 그걸 버렸다면, 금생에 그 설명을 들어도 숙세의 습관적인 힘으로 말미암아 다시 버리게 되어서 몸ㆍ말ㆍ마음이 모두 화합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서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되고 나쁜 꾀가 늘어서 올바른 법을 훼손한 업으로 대지옥에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백천百千 구지俱胝 나유타의 세월을 지내면서 온갖 큰 고통을 받으며, 3재災가 일어날 때는 저 법을 훼손한 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후에 타방 세계로 전생轉生해서 시방을 편력하고 한량없는 겁을 지나야 그 업이 점점 약해지면서 지옥에서 나오고, 그 다음엔 축생과 아귀의 몸을 받는다. 각각의 취趣 속에서 각기 백천 구지 나유타의 세월을 지나고, 3재가 이르면 타방 세계로 전생해서 온갖 고통을 갖추어 받는다. 나머지 세력이 장차 다 없어져야만 비로소 인간 가운데 태어나는데, 나쁜 율의律儀를 가진 가문에 태어나서 6근根을 갖추지 못한다.
사리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항상 설하시길 죄가 무거운 자는 5무간無間인데, 이는 법을 훼손한 업과 비슷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법正法을 파괴한 업은 거칠고 무거워서 견줄 만한 것이 없다. 이른바 스스로 반야를 비방한 것이든 또한 남에게 반야를 비방하도록 가르친 것이든 마찬가지다. 이는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또한 남에게 마시게 한 것이다.’ ”[수자함水字函 제5권]
6도度를 총괄하여 복과 지혜로 통하고
3학學을 섭수해서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한다.
『해탈요의경解脫了義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관세음觀世音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일을 배워야 하니, 이른바 6바라밀이다. 보시와 지계와 인욕은 증상增上의 계학戒學이고, 선정은 증상의 심학心學이고, 반야는 증상의 혜학慧學이며, 정진은 일체에 통한다.’
관세음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여섯 가지 일 가운데 몇이 복덕의 중구衆具이고, 몇이 지혜의 중구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증상의 계학戒學은 복덕의 중구이고, 증상의 혜학慧學은 지혜의 중구이다. 선과 정진은 일체에 통한다.’
관세음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째서 이것을 일러 일을 배우는 여섯 가지 시설施說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두 가지 일이 있으니, 첫째는 3학學이 중생을 섭취攝取하는 것이며, 둘째는 3학이 번뇌를 대치對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보시의 중구衆具와 지계의 해치지 않음과 인욕의 요익饒益, 이 3학으로써 중생을 섭취하고, 다시 또 보살은 정진으로 좋은 업을 닦고 선禪으로 번뇌를 굴복시키고 지혜로 모든 결박을 끊는, 이 3학으로써 번뇌를 대치한다.’ ”[신자함身字函]
하나라도 이 경을 지니면 6바라밀[六度]을 갖추고
하나라도 도량을 닦으면 6바라밀이 원만하다.
『불퇴전법륜경不退轉法輪經』에서 말하였다.
“이 경을 받아 지니고서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는 6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다. 이 경전을 능히 믿고 이해하는 자는 단(檀:보시)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고, 이 경전에 대해 의혹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시(尸:지계)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며, 이 법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찬제(羼提:인욕)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고, 이 경전에 대해 마음이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면 비리야(毘離耶:정진)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고, 이 경전을 믿고 즐기면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다면 선(禪:선정)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고, 이 경전을 요달해서 분별의 상념이 없으면 반야(般若:지혜)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이다.”[뇌자함賴字函 제4권]
『장엄왕보살경莊嚴王菩薩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6바라밀을 행할 때 도량을 닦아서 세우고 향기로운 꽃으로 공양하는 것이 단檀바라밀이고, 공양을 닦을 때 몸ㆍ입ㆍ뜻의 업이 중생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시尸바라밀이고, 만약 어떤 벌레가 도량에 들어와도 참고서 해치지 않는다면 찬제바라밀이고, 착한 마음이 상속하는 것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이 선禪바라밀이고, 단壇이 반듯하고 마당이 둥글고 치우치거나 기우는 것이 없으면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니, 이같이 한 가지 법은 마음을 따라서 변하여 나타난다.’ ”[경자함景字函]
6바라밀[六度]을 닦지 않으면 도를 이루기 어렵고
비록 6바라밀을 행하더라도 상相을 취하지 말라.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만약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빈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력도 없을 텐데, 무엇을 말미암아서 유정有情을 성숙시키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겠으며, 하물며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얻겠는가? 내가 만약 청정한 계율을 수호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악취惡趣에 태어나서 하천한 사람 몸도 받을 수 없을 텐데, 무엇을 말미암아서 유정을 성숙시키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겠으며, 하물며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얻겠는가? 내가 만약 안인安忍을 닦지 않아서 반드시 누추한 용모로 태어나 보살의 원만한 색상色相을 갖추지 못한다면, 유정을 성숙시킬 수도 없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할 수도 없을 텐데, 하물며 일체지지를 얻겠는가? 내가 정진하지 않아서 보살의 뛰어난 도道를 능히 수호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아서 유정을 성숙시키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겠으며, 또한 일체지지를 얻겠는가? 내가 만약 마음이 산란하여 정려靜慮에 들어가지 못해서 보살의 뛰어난 선정[定]을 일으키질 못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아서 유정을 성숙시키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겠으며, 일체지지를 얻겠는가? 내가 만약 지혜가 없음에도 반야를 배우지 못해서 온갖 선교 방편의 지혜로 이승지二乘地를 초월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아서 유정을 성숙시키고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겠으며, 일체지지를 얻겠는가?’ ”[영자함盈字函 제2권]
『사익범천경思益梵天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연등불燃燈佛을 보자,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연등불께서는 내게 수기하며 말씀하셨다.
‘그대는 내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며, 명호를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하리라.’
나는 이 때 6바라밀을 구족했다. 왜냐하면 비록 보시를 하더라도 과보를 구하지 않고, 비록 계율을 지키더라도 탐착하는 바가 없고, 비록 인욕하더라도 안팎이 공함을 알고, 비록 정진을 하더라도 일으키는 상相이 없음을 알고, 비록 선정을 하더라도 의지하는 바가 없으며, 비록 지혜를 행하더라도 상相을 취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만자함萬字函 제2권]
여기까지가 반야바라밀 등의 여섯 가지가 끝나고
이어서 방편바라밀 등의 네 가지를 추가하여 짝으로 삼는다.[모두 10바라밀다이다.]
『해탈요의경解脫了義經』에서 말하였다.
“관세음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째서 6바라밀에 대해 이와 같은 차제次第로 설명을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점차 높은 단계로 나아가면서[上上] 서로 의거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몸과 재물을 버리고서 청정한 계율을 받아 지니고, 계율을 수호하기 때문에 인욕[忍]하고, 인욕하면 정진하고, 정진하면 능히 선禪을 하고, 선이 구족하면 출세간의 지혜를 얻는다.’
다시 여쭈었다.
‘어째서 나머지 네 바라밀을 시설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6바라밀의 짝이니, 저 방편바라밀과 세 가지 바라밀의 짝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관세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현재의 법에서 번뇌를 많이 행하여 감당할 수 없을 경우 항상 인욕[忍]을 닦아 익히고 사소한 복이라도 행해서 미래세에는 번뇌가 희박해져서 능히 부지런히 정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원願바라밀로서 정진바라밀의 짝이 된다.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착한 법을 듣고 수승한 능력을 희망하는 것은 역力바라밀로서 선바라밀의 짝이 된다. 보살의 장藏에 대해 듣고 반연해서 선을 닦고, 능히 출세간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것은 지智바라밀로서 반야바라밀의 짝이 된다.”[신자함身字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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