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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66 불교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1권

by Kay/케이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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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1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제1권


[제1문門]

첫머리에서 대각大覺의 모습을 먼저 소개함으로써 중생의 본보기로 삼는다.[모두 8품 13칙이다.]

1) 선왕품先王品 2) 인지품因地品
3) 시생품示生品 4) 출가품出家品
5) 성도품成道品 6) 도생품度生品
7) 입멸품入滅品 8) 상주품常住品


1) 선왕품先王品[성씨姓氏 3칙 첨부]

혼돈混沌에서 하늘과 땅이 열리고
조상이 왕의 통치를 시작하다.

『석가보釋迦譜』에서 말하였다.
“겁의 시초에 천지는 큰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이 불자 점점 소멸하면서 거품으로 응결되었다. 거품이 차차로 변화해서 천궁天宮이 되고 나아가 산악과 평평한 육지는 주洲가 되고 깊은 방죽은 바다를 이루었으니,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예전대로 건립되었다. 광음천光音天의 사람이 날아 내려왔는데, 저마다 몸에 빛이 있고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나 향기롭고 달콤한 지미地味를 먹고는 몸이 무거워지고 빛이 사라져 다시는 날지 못했다. 해와 달이 처음으로 생기니, 이에 낮과 밤으로 나뉘었다. 먹기를 탐했기 때문에 마침내 지미가 사라지고 다시 바라婆羅가 생겨났다. 바라가 사라지자 다시 멥쌀이 생겨났다. 멥쌀의 길이는 네 치[寸] 반이었는데, 아침에 베어도 해질 무렵에 다시 자라났다. 이 쌀을 먹은 까닭에 남자와 여자의 모습으로 나뉘었다. 나중에는 탐을 내어 쌓아 두고 모으려 하자, 그 때는 베어도 자라나지 않았다.[기심機心이 한 번 움직이면 사물은 그 진실이 떠나게 된다. 일찍이 들으니 동래에서 조세를 더 받자 바다에서 고기가 나오지 않았고, 합포에서 진주를 탐하자 진주조개들이 멀리 떠나 버렸다고 한다. 근대의 일로 옛날에 견주어 보아도 부계를 합한 듯하니 멥쌀이 자라나지 않는 것도 그리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이후 서로 빼앗고 훔치는 데도 능히 해결할 자가 없었다. 서로 논의해서 한 명의 지혜로운 자를 세우니, 삼마다三摩多가 평등왕平等王이 되었다. 그가 선한 자에겐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겐 벌을 주니, 모두가 다 같이 넉넉하였다.”[채자함彩字函 제1권 . 혼돈混沌은 「삼재품三災品」과 「겁량품劫量品」 두 품에 상세히 보인다.]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에서 말하였다.
“이 평등왕의 자손은 33대[世]를 이어가다가 선사왕善思王 이후에야 비로소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지위를 증득했다. 사천하에서 왕 노릇하면서 줄곧 사자협왕師子頰王에까지 이르렀는데, 모두 131만 56명의 왕이 이어졌다.
사자협왕은 네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는 정반淨飯이고, 둘째는 백반白飯이고, 셋째는 곡반斛飯이고, 넷째는 감로반甘露飯이었다.
정반왕은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한 명은 실달다悉達多이고, 또 한 명은 난타難陀였다. 백반도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한 명은 제사帝沙이고, 또 한 명은 난제가難提迦였다. 곡반도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한 명은 아니루타阿尼婁馱이고, 또 한 명은 발제리가跋提梨迦였다. 감로반도 두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한 명은 아난타阿難陀이고, 또 한 명은 제바달다提婆達多였다. 그리고 실달다[세존의 어릴 적 이름]는 한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이름은 라후라羅睺羅였다.”[영자함映字函 제10권]

『석가보』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왕이 동생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 준 후에 바라문婆羅門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는데, 바라문의 성씨가 구담瞿曇이었다. 바라문은 왕을 받아들이면서 ‘마땅히 왕의 옷을 벗고 내 복장처럼 입고서 구담의 성씨를 받으라’ 고 말하고, 소구담小瞿曇이라 불렀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모습과 복장이 달라진 탓에 알아보는 자가 없었으며, 감자원甘蔗園을 정사精舍로 삼았다.[정반왕의 먼 조상이 나라를 버리고 수행했는데, 구담의 성씨를 받았으므로 구담씨라고 하였으며, 감자원甘蔗園에서 살았으므로 감자의 후예라고 칭하였다.]
도둑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어지러워지자 도둑을 다스리는 법으로 그를 논죄했다. 나무로 그의 몸을 꿰뚫어서 본보기로 세워 두니, 피가 땅에 흘러 내렸다. 대구담大瞿曇이 천안天眼으로 이 광경을 보고는 신족통神足通으로 날아와서 말했다.
‘나의 아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잔혹한가?’
그리고는 땅에 있는 피를 진흙 덩어리로 만들어 가지고 정사精舍로 돌아왔다. 왼쪽의 피는 왼쪽 그릇 속에 붙이고, 오른쪽의 피도 역시 그렇게 한 다음 대구담은 주문을 외우면서 소원을 빌었다.
‘만약 이 도사道士의 뜻이 참되다면, 피가 화해서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 후 10개월이 지나자, 왼쪽은 남자가 되고 오른쪽은 여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성씨를 구담으로 했다.
또 의마왕懿摩王에게는 네 명의 태자가 있었는데, 설산雪山으로 내쫓겼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덕에 귀의하는 자들이 마치 저자처럼 많았고, 그 결과 나라가 번성해서 강국이 되었다. 의마왕이 찬탄하면서 말했다.
‘이야말로 참된 석자釋子로구나.’ ”[석씨의 의미는 제齊나라 말로 능能이다. 그래서 능자로 성씨를 삼는다. 채자함彩字函 제1권]


2) 인지품因地品[3칙]

멀리 삼대승기三大僧祇 인지因地를 다하고
최후의 한 생[一生]은 보처補處에서 머무누나.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아득한 과거 사람들이 백 살의 수명을 누렸을 때,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의 명호는 석가모니釋迦牟尼였다. 그의 어머니는 마야摩耶였고, 아버지는 정반淨飯이었으며, 아들은 라호(羅怙:라후라)였으며, 시자侍者는 아난타阿難陀였다. 부처님께서 시자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등에 병이 났다. 그대는 광치廣熾라는 도예공의 집에 가서 호마유胡麻油를 구해다가 나를 위해 발라다오.’
광치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기름을 가져 와 부처님께 발라드리니, 병이 깨끗이 다 나았다. 부처님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치하하고 가르침을 주시니, 광치는 기뻐하면서 즉시 소원을 일으켰다.
‘제가 미래에 반드시 부처가 되기를 원하오니, 그 명호와 권속과 시기와 장소와 제자가 지금의 세존과 전혀 차이 없이 똑같기를 바라나이다.’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도예공이 바로 나 석가이니, 본원本願을 말미암았기 때문에 지금의 명호 등이 옛날과 똑같아서 차이가 없는 것이다.
최초에는 석가모니 등 7만 5천의 부처님을 만나서 섬겼는데, 이를 일컬어 초겁의 아승기야만阿僧企耶滿이라 한다. 이후로 계속 연등然燈여래 등 7만 7천의 부처님을 만나서 섬겼는데, 이를 일컬어 제2겁의 아승기야만이라고 한다. 다시 이로부터 계속 승관勝觀여래를 만나서 섬겼는데, 이를 일컬어 제3겁의 아승기야만이라고 한다. 이후 다시 91겁을 거치면서 미묘한 상相과 업業을 닦아왔는데, 가섭파迦葉波부처님을 만나 섬기고 나서야 비로소 원만함을 얻었다.”[심자함心字函 제7권]

『과현인과경過現因果經』에서 말하였다.
“보광불普光佛[연등불의 다른 명호임]이 세상에 출현한 시기였다. 이 때 선혜善慧 선인은 5백 명의 외도들과 토론을 벌여서 그들의 이견異見을 타파했다. 당시 5백 명은 제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각기 은전銀錢 한 닢을 선혜에게 바쳤다. 선혜가 들으니, 왕의 신하가 북을 치면서 큰 소리로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었다. 등조왕燈照王이 부처님을 맞이하여 공양을 올리고자 하니 나라 안의 이름난 꽃은 모두 사거나 팔지 못하고 왕에게 보내야 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선혜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꽃이 있는 곳을 찾아 가다가 우연히 구이瞿夷를 만났다. 그녀는 일곱 송이의 꽃을 가지고 있었는데, 왕의 명령이 두려워 병 속에 감추고 있었다. 선혜의 지극한 정성에 꽃이 감동하여 위로 솟아오르자, 쫓아가 부르면서 사고자 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반드시 내궁內宮으로 보내 부처님께 올리고자 하니 팔 수 없습니다.’
선혜가 말했다.
‘은전銀錢 5백으로 다섯 송이의 꽃을 사겠소.’
구이가 물었다.
‘꽃을 어디에 쓰시려고 합니까?’
선혜가 대답했다.
‘부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구이가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 바치는 것입니까?’
선혜가 대답했다.
‘일체 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해서 중생을 제도해 해탈시키려 합니다.’
구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남자는 그 뜻이 정말 지극하여 돈과 보물을 아끼지 않는구나.’
구이는 즉시 선혜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이 꽃을 드리겠으니, 제가 세세생생토록 항상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하소서.’
선혜가 대답했다.
‘나는 범행梵行을 닦고 무위無爲의 도를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생사의 인연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구이가 즉시 말했다.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꽃은 드릴 수 없습니다.’
선혜가 다시 말했다.
‘그대가 만약 결정코 나에게 꽃을 주지 않겠다면, 이제 그대의 소원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보시를 좋아해서 남의 뜻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내게 머리와 눈과 뇌수腦髓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식까지도 구걸한다면, 그대는 내가 보시하려는 마음을 가로막고 무너뜨려선 안 될 것입니다.’
구이가 대답했다.
‘내리신 명命을 공경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연약한 여자의 몸이라서 앞에 나서질 못합니다. 이 꽃 두 송이를 함께 부처님께 올림으로써 저로 하여금 세세생생토록 이 소원을 잃지 않고, 밉든 곱든 여의지 않고 반드시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 알려 주소서.’
그 때 등조왕燈照王이 모든 관리들을 거느린 채 미묘한 향ㆍ꽃ㆍ갖가지 공양의 도구들을 지니고서 성을 나아가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왕과 신하가 공손하게 예배를 드리면서 이름난 꽃들을 뿌렸지만 꽃이 모두 땅에 떨어졌다. 선혜는 많은 사람들의 공양이 다 끝났음을 보고, 상호相好를 갖춘 여래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일체종지를 원만히 해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발원하며 즉시 다섯 송이의 꽃을 뿌렸다. 꽃은 모두 공중에 머물다가 화대花臺로 변했다. 이어 두 송이의 꽃을 뿌렸는데, 역시 공중에 머물렀다.
그 때 왕과 백성과 천룡팔부天龍八部는 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그러자 보광여래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그대는 이 공양으로 말미암아 승기僧祇의 겁을 지나면 반드시 성불하리니, 그 명호를 석가모니釋迦牟尼라 하리라.’
수기授記를 마치고서 부처님께서 걸어가시는데 땅이 질퍽했다. 선혜는 즉시 입고 있던 사슴 가죽의 옷을 벗어서 땅에 깐 다음 머리를 풀어 헤쳐서 그 옷으로 덮었다. 부처님께서 밟고 가시면서 다시 수기하셨다.
‘그대가 나중에 부처가 되면 마땅히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 모든 천상과 인간을 제도함을 어렵게 여기지 않음이 반드시 나와 같으리라.’
이 때 선혜는 출가하고자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제 다섯 가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첫 번째는 큰 바다에 누워 있는 꿈이었고, 두 번째는 수미산을 베고 있는 꿈이었고, 세 번째는 모든 중생들이 제 몸 속으로 들어오는 꿈이었고, 네 번째는 손으로 해를 잡는 꿈이었고, 다섯 번째는 손으로 달을 잡는 꿈이었습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풀이하여 주옵소서.’
보광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바다에 누워 있는 꿈은 그대가 생사生死의 큰 바닷속에 있는 것이며, 수미산을 베고 있는 꿈은 생사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모든 중생들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은 그들을 위해 귀의할 곳을 짓는 것이며, 해를 잡는 꿈은 지혜의 광명이 널리 비추는 것이며, 달을 잡는 꿈은 청량淸凉으로 중생을 제도해서 뜨거운 번뇌를 여의게 하는 것이다. 이 꿈의 인연은 그대가 장차 성불할 상相을 나타낸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난 선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중에 보광여래께서 입멸入滅하게 되자, 선혜 비구는 정법正法을 수호하면서 2만 살이 되도록 중생을 제도하니, 그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목숨을 마친 뒤엔 천상에 태어나 사천왕四天王이 되어서 모든 천중天衆을 교화하였다. 그곳에서 천수天壽를 다한 뒤엔 하계의 인간으로 태어나 전륜왕轉輪王이 되었다. 사천하四天下의 왕 노릇을 하면서 7보寶를 다 갖추었으니, 첫째는 금륜보金輪寶요, 둘째는 백상보白象寶요, 셋째는 감마보紺馬寶요, 넷째는 신주보神珠寶요, 다섯째는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는 주장신보主藏臣寶요, 일곱째는 주병신보主兵臣寶이다. 천 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모두가 다 용맹해서 능히 원수를 굴복시켰으며, 열 가지 선善으로 백성을 교화했다.
이곳에서 수명을 마친 뒤엔 상계의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서 그곳의 천왕이 되었으며, 목숨을 마친 뒤엔 하계에서 다시 전륜왕으로 태어났다가 또 다시 범천梵天에 올라갔다. 이렇게 위로는 천제가 되고 아래로는 성주聖主가 되기를 각기 36번을 되풀이했으며, 그 사이에 혹은 선인仙人이 되기도 하고 혹은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되기도 하고 혹은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소왕小王이 되기도 하였으니, 이 같은 변화 현생變現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사자함辭字函]

『석가보』에서 말하였다.
“선혜보살은 공덕행功德行이 원만구족해서 그 지위가 10지地에 올랐다.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으니, 성선백聖善白이라 이름하였다. 모든 천天의 스승이 되어 응하는 바에 따라 법을 설했다. 기다리던 운運이 장차 이르자 마땅히 하생하여 부처가 되고자 다섯 가지 상서로움을 나타냈다. 첫째는 대광명大光明을 놓아서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를 널리 비추는 것이며, 둘째는 대지가 열여덟 가지 모습으로 진동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궁魔宮이 은폐되는 것이며, 넷째는 해와 달의 광명이 없어지는 것이며, 다섯째는 8부部가 모두 다 진동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든 천자天子에게 이렇게 고했다.
‘반드시 알라. 내가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오직 이 한 생生만이 곧 중생을 제도해서 해탈시킬 때이다. 나는 마땅히 내려가 염부제闇浮提에 태어나리라.’
그러자 모든 천자들이 다 함께 ‘보살을 어느 종種으로 현생現生시킬까’를 의논하였는데, 어떤 이가 이렇게 설명했다.
‘유제維提 종성의 마갈국摩竭國은 그 어머니는 비록 올바르지만 아버지가 참되지 않으며, 구살대국拘薩大國은 부모 종족宗族이 모두 참되지도 올바르지도 않으며, 화사국和沙國의 땅은 다른 예절과 법도를 받아들이며, 유야리국維耶離國은 다투길 좋아해서 불화가 있으며, 발수국鏺樹國의 기풍은 거동이 허망하며, 나머지 나라는 변방의 땅이라서 어느 곳이나 지극히 존귀하신 부처님께서 태어나셔서는 안 됩니다. 삼천대천세계 중에서 오직 유라위국維羅衛國의 백성들만이 도덕의 뿌리를 심고 무성히 가꾸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반왕의 종족이 제일 성품과 행실이 인자하고 현명합니다. 그 부인도 정숙해서 오히려 천상의 옥녀玉女가 신身ㆍ구口ㆍ의意를 수호하고 있으며, 이전의 5백 세 동안 보살의 어머니가 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신식神識을 내려 그녀의 모태母胎에 드는 것이 마땅합니다.’”


3) 시생품示生品[1칙]

이에 도솔천으로부터 강림하여 경사스러이
비람毘嵐에 탄생하여 색신을 보이다.

보살이 모든 천자들에게 물었다.
‘어떤 모습으로 신식[神]을 내려 모태에 들어야 하오?’
어떤 이는 어린 동자의 모습이라 했고, 어떤 이는 일월왕日月王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흰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짐승이 있는데, 첫째는 토끼이고, 둘째는 말이고, 셋째는 코끼리이다. 토끼는 물을 건널 때 스스로 건널 수 있는 곳으로만 나아갈 뿐이며, 말은 비록 용맹하긴 하지만 여전히 물의 깊고 얕음은 알지 못하며, 흰 코끼리는 건널 때 그 밑바닥까지 다 안다. 성문과 연각은 토끼나 말과 같아서 비록 생사를 건너더라도 법의 근본을 요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보살의 대승은 마치 흰 코끼리와 같아서 삼계三界와 12연기緣起를 완전히 통달하고 그것이 본래 없음[本無]을 요달함으로써 일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늦은 봄 초여름이라서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때였다. 그래서 보살은 4월 8일에 흰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화化하여 태양의 정기를 받으면서 어머니가 낮잠을 잘 때 꿈으로 현시했다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갔다. 부인은 꿈에서 깨어나자 스스로 몸이 무거움을 알았다. 천인이 음식을 바치니, 자연히 인간세계의 맛을 다시는 즐기지 않게 되었다. 보살이 태胎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방해나 장애가 되지 않아서 아침에는 색계천色界天을 위해 법을 설했고, 한낮에는 욕계천欲界天을 위해 법을 설했으며, 저녁 때에는 모든 귀신[鬼]을 위해 법을 설했다. 밤의 세 때에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해서 한량없는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이익되게 하였다. 그리하여 도솔천의 대중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보살께서는 이미 정반왕淨飯王의 궁宮에 의탁하셨다. 우리들도 마땅히 하계의 인간세계에 태어나야겠다. 보살이 성불하면 우리도 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여러 나라의 왕이나 신하ㆍ바라문ㆍ장자長者와 거사居士 등의 집안에 의탁했는데 대략 99억이었다.
보살은 태胎에 들어 10개월을 채웠다. 4월 8일, 부인은 모든 시녀들을 데리고 람비니藍毘尼 동산에서 노닐다가 무우수無憂樹를 잡았다. 그 때 나무 아래에서 홀연히 연꽃이 솟았는데, 마치 수레바퀴처럼 컸다. 보살은 화현해서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 그 연꽃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스스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사자후師子吼를 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그 때 사천왕四天王은 즉각 천상의 비단으로 태자의 몸을 감싸서 보배로 된 이부자리 위에 모셨으며, 제석천帝釋天은 일산[盖]을 잡았고, 범천왕[梵王]은 털이개[拂]를 잡고서 좌우에서 시립侍立했다. 아홉 용은 공중에서 청정한 물을 토해냈는데, 한 번은 따뜻하고 한 번은 시원한 물로 태자의 몸을 씻었다. 32상相 80종호種好가 대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었으며, 천룡팔부天龍八部가 허공 속에 가득 차서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미묘한 향ㆍ꽃ㆍ영락瓔珞ㆍ천의天衣를 비처럼 내렸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감응된 상서로운 반응[34가지인데 번잡해서 기록하지 않는다.]은 뭇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하였고, 지옥은 고통을 멈추었다.
똑같은 날에 8대 국왕이 모두 태자를 낳고, 석釋씨의 종성種姓이 모두 5백 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나라 안의 거사와 장자들도 또한 모두 아들을 낳았다. 아울러 8만 4천 마구간의 말도 망아지를 낳았으며, 궁 안에 있는 5백의 복장伏藏도 발현했으며, 또한 모든 대상大商들도 보배를 얻어서 함께 돌아왔다.
곧 태자의 이름을 실달다悉達多[한漢나라 말로는 돈길頓吉이다.]라 지었으며,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摩耶 부인은 목숨을 마쳤다. 천사天師를 잉태한 공과 복이 크기 때문에 상계의 도리천에서 태어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봉수封受하였다. 태자는 복덕이 위중威重해서 예禮를 감당할 만한 여인이 없음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마야 부인이 임종할 때를 즈음하여 태어난 것이다.
이 때 이모인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가 자신의 젖으로 태자를 양육했는데, 어머니와 다름없었다. 왕은 여러 바라문들을 불러서 태자의 상相을 보고 앞날을 점치게 했다. 그들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출가하게 된다면 일체지一切智를 이룰 것이며, 만약 재가에 있는다면 전륜왕轉輪王이 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진심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바라문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바라문 선인[梵仙]이 한 분 계신데, 아사타阿私陀라고 합니다. 5신통을 구족한 분으로서 향산香山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상相을 매우 잘 보므로 대왕께서는 의문을 해결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짐짓 그에 대한 생각을 하자, 그는 멀리서 알고 허공을 날아왔다. 그가 태자를 보고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본 왕은 크게 걱정스럽고 두려워서 선인에게 물었다.
‘아이가 무엇이 상서롭지 않습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태자는 32상을 구족했습니다.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왕이 되고, 출가를 하면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서 위대한 법륜法輪을 굴릴 것입니다. 내 나이 이미 120살이라서 머지않아 목숨을 마칠 것이니, 태자의 설법을 듣지 못하겠기에 스스로 슬퍼하는 것뿐입니다.’
태자가 점점 자라나 왕이 태자를 안고 대자재천大自在天의 사당에 행차하여 예배하니, 그 때 모든 신상神像들이 다 일어나서 태자의 발에 절을 했다. 부왕은 깜짝 놀라면서 찬탄했다.
‘내 자식이 천신 중에서도 가장 존귀하고 가장 뛰어나니, 마땅히 그 자字를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로 하리라.’
태자의 나이 일곱 살이 되어 학문을 익힐 때가 되었다. 나라 안을 두루 뒤져서 총명한 바라문을 찾아냈는데, 그의 이름은 선우選友로서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태자가 물었다.
‘어떤 책과 경전으로 가르치실 것입니까?’
그 스승이 대답했다.
‘범서梵書와 가류서佉留書입니다.’
태자가 말했다.
‘그와 다른 서적이 예순네 가지나 되는데, 이제 스승께선 어째서 다만 두 가지만 말씀하십니까?’
스승이 물었다.
‘어떤 것들을 말합니까?’
대답하였다.
‘범서[梵書:婆羅門書]ㆍ가류서[佉留書:驢脣仙書]ㆍ용귀서龍鬼書ㆍ건답화서[犍沓和書:香神書]ㆍ아수륜서[阿須倫書:阿修羅書][너무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하고 대략 너댓 가지만 기록한다.]입니다. 또한 서書에는 두 글자가 빠져 있습니다.’
태자가 스승에게 그 뜻을 물으니, 스승은 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반문하였다.
‘이 아阿라는 글자는 파괴할 수 없다는 뜻이며, 또한 둘이 없는 올바르고 참된 도라는 뜻입니다.’
이 때 선우는 부끄러움을 깊이 느껴서 왕에게 말하였다.
‘태자께선 천인사(天人師:천상과 인간의 스승)이신데, 제가 어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태자는 모든 기예伎藝와 전적典籍ㆍ활쏘기ㆍ천문ㆍ지리를 모두 자연스럽게 알았다. 나이가 차서 장성하자 왕은 날을 정해 태자와 난타難陀, 조달調達 등 5백 동자에게 칙령을 내리고, 다시 북을 치고 영令을 내려서 백성 중에 힘과 용기가 있는 자들을 모두 광장에 모이게 하였다. 정한 날이 되자 조달이 무리를 이끌고서 먼저 나왔다. 코끼리가 문을 가로막자 손으로 당겨서 거꾸러뜨렸다. 다음은 난타였는데, 그는 코끼리가 길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서 즉시 발가락으로 길옆으로 밀쳐냈다. 태자는 ‘지금이 바로 힘을 나타낼 때이다’고 생각하고, 즉시 코끼리를 잡아 공중에 던졌다가 다시 손으로 받았는데 전혀 다치지 않게 했다. 이를 본 대중들은 모두 탄복했다.
동산에 도착한 후에는 북을 걸고 활쏘기를 했다. 조달은 40리 거리에 북을 세웠지만 화살이 이르지 못했고, 난타는 60리 거리에 북을 세웠지만 또한 그 거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자 태자는 1백 리 거리에 북을 세웠는데, 활의 힘이 견디지 못해 꺾어졌다. 그래서 선조 왕들의 진고鎭庫에 있는 활을 꺼냈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활을 당길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태자가 일단 당기자, 소리가 성 전체에 진동하면서 화살이 북을 꿰뚫고 땅 속에 깊이 박혔는데, 그곳에서 샘물이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철위산과 대천大千의 찰토刹土를 투과하면서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진동했다. 대중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기이하게 여겼다.
태자의 나이가 열일곱이 되자 태자의 비妃를 간택했다. 태자비 야수다라耶輸陀羅는 단정하기가 제일이었으며 예의도 갖추었으니, 곧 전생에서 꽃을 팔았던 그 여인이었다. 태자는 그녀를 비록 받아들이긴 했지만, 세속에는 뜻이 전혀 없었으므로 오랫동안 접하지 않았다. 다만 고요한 밤에 선관禪觀만을 닦았다.


4) 출가품出家品[1칙]

사문유관四門遊觀에서 홀연히 경각하고
한밤중에 성을 넘어 돌연 출가하다.

태자가 궁에서 산 지 오랜 세월이 지나자, 왕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성 밖으로 나가서 유람하고 싶습니다.’
왕은 칙령을 내려서 거리를 깨끗이 정비하게 하고 아울러 모든 관속官屬들로 하여금 태자를 시봉토록 했다. 태자가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가자, 구경하는 자가 구름과 같았다. 그 때 정거천淨居天이 노인으로 화현했는데, 머리털은 희고 등은 몹시 굽었으며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태자가 시종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대답했다.
‘노인입니다.’
또 물었다.
‘노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대답했다.
‘예전엔 어린이였다가 차차로 변해서 형색形色이 쇠퇴하고 남은 목숨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늙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이 노인 한 사람만이 그런 것인가,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인가?’
시종이 대답했다.
‘사람마다 다 그렇습니다.’
태자는 시종의 말을 듣고 커다란 고뇌가 생겼다.
‘나는 지금 비록 부귀를 누리고 있지만, 어찌 늙는 것을 면하겠는가?’
궁으로 돌아와서도 태자는 즐겁지가 않았으며, 왕 역시 그런 태자를 걱정스러워했다.
태자는 다시 남쪽 문으로 유람을 나갔다. 왕은 칙령을 내려 거리를 깨끗이 하고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시봉토록 했다. 그 때 정거천이 다시 병든 사람으로 화현했는데, 비쩍 말라 뼈가 앙상하고 기침으로 콜록거리면서 신음했다. 혼자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두 사람이 겨드랑이를 부축한 채 길 옆에 있었다. 태자가 곧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시종이 대답했다.
‘병든 사람입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병이라 하는가?’
대답했다.
‘병이라는 것은 모든 관절이 아프고 기력氣力이 쇠미한 것입니다.’
또 물었다.
‘이 사람만이 그런 것인가, 나머지 사람도 다 그런 것인가?’
대답했다.
‘귀하고 천함을 가릴 것 없이 다 그렇습니다.’
태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쾌락에 탐닉할 뿐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인가?’
궁에 돌아온 태자는 고뇌에 싸였으며, 이를 전해 들은 왕은 더욱 걱정을 하면서 신하들에게 물었다.
‘태자가 처음에는 동쪽 문으로 나갔는데, 노인을 만나고는 즐거워하지 않았다. 지금 남쪽 문으로 나갔을 때 내가 그대들에게 칙령을 내려서 거리를 깨끗이 하라고 시켰는데, 어찌하여 병든 사람을 또 보게 했는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왕의 엄하신 명령을 받들어 살피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병든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신들의 죄가 아닙니다.’
왕은 바라문의 자제인 우다이優陀夷가 지혜와 변재가 지극히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서 말했다.
‘태자가 세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가 출가를 할까 걱정이구나. 그대가 태자의 벗이 되어서 잘 이끌어 주도록 하라.’
태자는 다시 성을 나가 유람하기를 청했다. 왕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엄한 칙령을 내려 거리와 원림園林에 이르기까지 향기로운 꽃과 번개幡蓋로 이전보다 몇 배나 더 꾸미고 상서롭지 않은 것이 있으면 멀리 쫓아 버리게 했다. 이 때 태자는 우다이와 많은 관료들, 대중들과 함께 서쪽 성문으로 나갔다. 정거천의 천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전에 노인과 병든 사람으로 나타났는데, 모든 대중들이 다 보았다. 왕은 시종들을 질책했지만, 그들은 억울하고 무고한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죽은 사람으로 변화해야겠다. 그리하여 권속들이 둘러싸서 목놓아 슬피 울면서 장송하도록 함으로써 오직 태자와 우다이 두 사람만 보도록 해야겠다.’
태자가 물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다이는 왕의 엄한 칙령 때문에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정거천은 자신의 능력으로 알아채지 못하게 하면서 태자에게 말했다.
‘죽은 사람입니다. 바람의 힘이 형태를 해체하고 신식神識이 떠나가서 사지[四體]와 모든 감각기관[根]이 다시는 지각하지 못하니 진실로 가련합니다.’
태자가 다시 우다이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도 다 저러한가?’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해서 단 한 사람도 피하질 못합니다. 이제 진실로 말씀드리노니, 부디 질책 받지 않게 하소서. 고금의 모든 왕들도 애욕愛欲을 즐긴 뒤에야 출가했습니다. 태자께선 어찌하여 영원히 끊고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나라를 버리고서 도道를 배운 자는 없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태자께선 5욕欲을 받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식을 둠으로써 왕의 후사後嗣를 끊지 마옵소서.’
태자가 대답했다.
‘진실로 말한 바대로다. 다만 나는 5욕에 즐거움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5욕에 대해 애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옛날의 모든 왕들은 먼저 5욕을 경험한 뒤에 출가했다고 하는데, 그 모든 왕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애욕을 받아들인 까닭에 어떤 이는 지옥에 있고, 어떤 이는 아귀餓鬼에 있고, 어떤 이는 축생畜生에 있고, 어떤 이는 인천人天에 있다. 이와 같은 윤회[輪轉]의 고통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욕망을 벗어나고자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는가?’
이에 우다이는 온갖 언변을 다 구사했지만, 태자를 끝내 돌이킬 수는 없었다. 즉시 궁으로 돌아왔는데, 태자는 더욱더 우울해 했다. 왕이 그 이유를 상세히 물었다. 우다이가 대답했다.
‘성을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죽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모든 관리와 시종들에게 물으니, 모두가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왕은 그 때서야 하늘의 힘이지 신하들의 잘못이 아님을 알았다.
태자는 다시 북쪽 문으로 유람을 나갔다. 정거천의 천자는 비구比丘로 화현해서 태자 앞에 나타났다. 태자가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비구입니다. 세간이 무상無常한지라, 나는 성스러운 도道를 닦아서 피안彼岸으로 갑니다.’
이렇게 대답한 후 허공으로 솟구쳐서 사라졌다. 태자는 생각했다.
‘먼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보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비구를 만나 내 마음을 열게 되니, 너무나 기쁘구나.’
이 소식을 들은 왕은 태자가 결정코 집을 버리고 도를 배울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야수다라에게 태자와 떨어져 있지 말라고 명을 내리고, 다시 기녀妓女들을 늘려서 즐겁게 놀아 주도록 했다.
그러자 태자는 다시 부왕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은애恩愛는 반드시 여의기 마련이니, 저의 출가를 들어주소서.’
그러나 왕은 눈물을 흘리며 허락하지 않았다. 태자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이 네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첫째는 늙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병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죽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왕이 대답했다.
‘그런 소원을 이 세상 누군들 들어줄 수 있겠느냐?’
관상을 보는 이가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가 만약 출가하지 않으면, 7일 뒤에는 전륜왕轉輪王의 지위를 얻어서 칠보七寶가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즉각 신하들에게 칙령을 내려 밤낮으로 엄격히 경비하도록 하니, 성문을 여닫는 소리가 40리 밖에서도 들렸다. 또 야수다라耶輸陀羅에게 태자를 전보다 더욱더 잘 살피라고 명을 내린 뒤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라에는 지금 후사가 없으니, 마땅히 아들 하나를 낳아야 출가를 들어주리라.’
태자가 즉시 야수다라의 배를 가리키니 문득 임신되는 기를 느꼈다. 그 뒤 라후羅睺가 천상으로부터 변몰變沒해서 화생化生하니, 부모의 결합[合會]을 말미암지 않고서 태어났다. 태자가 열아홉 살이 되자, 출가의 시기가 이르렀다. 2월 8일 밤 모든 천天이 하계로 내려와서 태자 앞에서 머리를 발에 조아리고 예를 드리면서 말했다.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부지런히 고생스럽게 수행하셨습니다. 이제 때가 성숙했으니 출가함이 마땅합니다.’
태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칙령을 내려 안팎의 관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소이다.’
모든 천天들이 말했다.
‘저희들이 방편方便을 써서 아는 자가 없도록 하겠나이다.’
태자는 즉시 차닉車匿에게 명하여 건척犍陟을 데려오도록 했다. 사천왕은 말의 네 다리를 받치고, 제석帝釋은 차닉을 안고서 일산을 잡았다. 그리고는 북쪽 문이 소리나지 않게 저절로 열리도록 했다. 성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천天들은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태자는 발가선림跋伽仙林에 이르자 사자후師子吼를 하였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보리菩提를 구하기 위해 좋은 옷과 장식을 버리고 머리털과 수염을 깎으셨다. 나도 이제 그렇게 하리라.’
태자는 즉시 보관寶冠과 영락瓔珞 등을 벗어서 차닉에게 주면서 부왕께 돌려 드리라고 분부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검으로 스스로 머리털과 수염을 깎았는데, 제석천이 머리털을 받아 천상에 올라가 탑을 세웠다. 다음 정거천은 사냥꾼으로 변화해서 몸에 가사袈裟를 걸치고 있었는데, 태자는 칠보로 장식한 옷을 대신 주고서 그 옷을 걸쳤다. 차닉은 통곡을 하고 건척은 슬피 울면서 길을 따라 돌아왔다. 부왕과 이모와 야수다라 등은 태자를 보지 못하자 슬프게 울고 한없이 번민하였으며, 온 나라는 슬픔에 잠기고 태자를 그리워했다. 이에 정반왕은 나라 안의 호걸과 현인 가운데 자손이 많은 자 다섯을 선발하고, 그 다섯 사람이 각기 아들 한 명씩을 보내도록 했다. 그리하여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태자를 쫓아가 시봉하도록 했다.
태자는 먼저 선인이 머무는 곳을 찾아갔다. 그들을 보니, 어떤 이는 풀잎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어떤 이는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었고, 어떤 이는 풀ㆍ나무의 꽃과 열매를 먹었다. 어떤 이는 물ㆍ불ㆍ해와 달을 섬겼으며, 어떤 이는 가시 위에 엎드렸고, 어떤 이는 물과 불 앞에 드러누웠으며, 어떤 이는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어떤 이는 이틀에 한 끼만 먹는 등 이 같은 고행을 하고 있었다. 태자가 물었다.
‘어떤 과보[果]를 구하고자 합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천상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태자가 다시 물었다.
‘천상 세계는 비록 즐겁긴 하지만, 복이 다하면 다시 윤회輪廻하게 됩니다. 결국은 괴로움이 쌓이는 것인데, 어찌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닦아서 괴로운 과보를 구하는 것입니까? 이는 모두 진정한 해탈의 도가 아닙니다.’
태자는 그곳을 작별하고 떠나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넜다. 교진여 등은 태자를 따른 지 오래되어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미친 사람이 길을 가리지 않고 가니, 어찌 그를 따를 수 있겠는가? 만약 내버려 둔 채 돌아간다면 왕은 우리들 집안을 멸망시킬 것이니, 여기서 머물러 고행을 부지런히 수행하느니만 못 하다.’
태자는 아라라阿羅邏와 가란迦蘭 선인이 있는 곳을 차례로 찾아가서 생로병사를 끊는 법을 물었다. 선인이 대답했다.
‘중생의 시작은 명초(冥初:만물의 본원)에서 시작하며, 명초는 아만我慢에서 일어나며, 아만은 어리석은 마음[癡心]에서 생기며, 어리석은 마음은 염애染愛에서 생기며, 염애는 다섯 가지 미진微塵의 기운[氣]에서 생기며, 다섯 가지 미진의 기운은 5대大에서 생기며, 5대는 탐욕ㆍ성냄 및 모든 번뇌에서 생기니, 이리하여 생로병사와 우비고뇌憂悲苦惱에 유전流轉하는 것이오.’
태자가 다시 물었다.
‘말씀하신 바는 이미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사의 근본은 다시 어떤 방편을 써야 능히 끊을 수 있습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만약 끊고 싶다면 선정禪定을 닦아 익혀야 합니다. 욕망으로 인한 악[欲惡]과 착하지 않은 법[不善法]을 여의면 깨달음[覺]도 있고 관觀함도 있으면서 초선初禪을 얻게 됩니다. 각관覺觀을 없애면 선정[定]이 생겨 기뻐하는 마음[喜心]에 들어감으로써 제2선禪을 얻습니다. 기뻐하는 마음을 버리면 정념正念을 얻고 감관[根]의 즐거움[樂]을 갖춤으로써 제3선을 얻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없애면 청정한 염[淨念]에 들어가게 되고, 감관[根]을 버림으로써 제4선을 얻습니다. 무상無想의 과보를 획득하면 색상色想을 여의고서 공처空處에 들어가고, 상想을 대함을 소멸하면 식처識處에 들어가고, 한량없는 상想을 소멸하면 식識은 오직 식識만을 관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며, 갖가지 상相을 여의면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가니, 이 경계 처處를 구경해탈究竟解脫이라고 하는데, 모든 배우는 자의 피안彼岸이 됩니다.’
태자가 사유해 보니, 그러한 지견知見은 구경처가 아니었다. 태자가 물었다.
‘비상비비상처는 유아有我입니까, 무아無我입니까? 만약 무아라고 한다면, 마땅히 비상비비상이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만약 유아라고 한다면, 아我에게 앎[知]이 있습니까, 앎이 없습니까? 아我가 만약 앎이 없다면 나무나 돌과 같을 것이고, 아我가 만약 앎이 있다면 반연攀緣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반연이 있다면 염착染着이 있고, 염착이 있다면 해탈이 아닙니다. 당신은 큰 번뇌[麤結]는 다했지만, 여전히 미세한 번뇌[細結]가 남아 있으므로 피안으로 건너가지 못했습니다. 만약 능히 나[我]를 없애고 나아가 아상我想마저 일체를 다 버렸다면, 이를 진정한 해탈이라고 합니다.’
태자는 두 명의 선인을 조복하고 나서 수승한 법을 구하기 위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5) 성도품成道品[1칙]

6년 간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닦고
어느 아침 보리수[道樹] 아래에서 새벽 별을 보고 깨닫다.

태자는 다음에 고행림苦行林 속에 있는 니련하尼連河 근처로 갔다. 그곳에서 고요히 앉아 참선하면서 계율을 지켰는데, 하루에 참깨 한 줌, 쌀 한 줌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7일에 한 줌의 쌀과 참깨를 먹기도 하였다. 게다가 구걸하는 자가 오면 그것마저도 주어 버렸다. 그렇게 고행을 6년간 하고 나니, 몸은 마른 나무처럼 비쩍 말랐다.
‘내가 만약 이렇게 파리한 몸으로 도를 취한다면, 저 모든 외도外道들은 마땅히 스스로 굶는 것이 열반의 원인이라고 할 것이니, 나는 마땅히 음식물을 받아들인 뒤에 도를 성취하리라.’
일단 이렇게 생각하자, 정거천의 천자가 하계로 내려와서 태자에게 권했다.
‘저 숲 밖에 있는 목녀牧女 난타바라難陀波羅에게 우유죽을 취해서 공양하십시오.’
태자가 음식을 받아서 다 먹고 나자, 신체가 기쁨으로 빛나면서 보리菩提를 감당할 수 있었다. 과거의 부처님을 관찰해 보니 풀로써 자리를 삼았었다. 제석천은 범인凡人으로 화현해서 풀을 태자에게 봉헌했다. 태자가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길상吉祥이라고 합니다.’
태자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나는 불길함을 깨뜨려서 길상을 이루겠다.’
그리고는 그 풀로 만든 자리에 앉았다. 염부수閻浮樹 아래에서 나무를 관하며 사유하니, 하늘과 땅이 감동하여 대광명이 펼쳐지면서 마궁魔宮을 덮어서 가려 버렸다. 파순波旬은 두려워한 나머지 네 여인을 시켜서 태자를 찾아가 온갖 요사스러움으로 유혹하도록 했으나 태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파순은 다시 80억 대중을 데리고 와서 태자를 괴롭히고 무너뜨리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일어나서 가지 않으면, 당신을 바다에 던져 버리겠소.’
태자가 대답했다.
‘그대는 먼저 나의 물병[凈甁]을 움직이고 다음에야 나를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이오.’
80억 대중이 온 힘을 다했으나 병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아가 갖가지 위엄을 부렸지만, 돌을 껴안은 자는 들 수가 없었고, 설사 들 수 있는 자라도 다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칼과 춤추는 검은 공중에서 정지했고, 우레ㆍ번개ㆍ우박과 비는 오색의 꽃을 이루었다. 마귀 무리들은 힘이 다해 버려 다시는 태자를 어찌하지 못했다.
이 때 태자의 나이 30이었는데, 2월 8일 밤 결박[結]이 풀리고 번뇌[漏]가 다하면서 생사가 끊어졌다. 그리하여 샛별이 뜰 때 홀연히 크게 깨쳐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다. 널리 삼계三界를 관찰해 보니, 한 가지의 즐거움도 있지 않았다. 이 모든 중생들은 무슨 인연으로 늙고 죽음이 있을까? 알고 보니, 늙고 죽음[老死]은 태어남[生]을 그 뿌리[本]로 삼았다. 만약 태어남을 떠나면 늙고 죽음도 없게 되었다. 인연因緣을 좇아 태어나는데,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업業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또 관찰해 보니, 이 3유有의 업은 4취取로부터 생기며, 취取는 애愛로부터 생기며, 애愛는 수受로부터 생기며, 수受는 촉觸으로부터 생기며, 촉觸은 6입入으로부터 생기며, 6입은 명색名色으로부터 생기며, 명색은 식識으로부터 생기며, 식識은 행行으로부터 생기며, 행行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생겼다.
만약 무명無明을 멸하면 행行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識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名色이 멸하고, 나아가 늙고 죽음과 우비고뇌憂悲苦惱가 멸했다. 이처럼 순順으로 역逆으로 12인연因緣을 관찰하여 37조도품助道品ㆍ18불공법不共法ㆍ4무소외無所畏ㆍ10신통력을 구족하였다.
이 때 대지는 열여덟 가지 모습으로 진동했으며, 천상은 풍악을 울리면서 꽃을 뿌리고 향을 피웠으며, 천룡팔부가 마련한 공양이 허공에 충만했다.
여래如來께서는 7일 동안 사유하셨다.
‘내가 얻은 법은 너무나 깊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이 법을 알 수 있다. 일체 중생들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삿된 소견[邪見]으로 덮여 있어서 지혜가 없으니, 어찌 내가 얻은 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만약 지금 법륜法輪을 굴린다면, 저 중생들은 반드시 미혹해서 능히 믿고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방을 해서 반드시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라. 나는 차라리 침묵한 채 그냥 반열반般涅槃에 들어야겠다.’
이 때 대범천왕大梵天王이 여래의 발에 예배하고 주위를 돌고 나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랫동안 생사에 머물면서 나라와 성城ㆍ아내ㆍ자식ㆍ머리ㆍ눈ㆍ뇌수 등까지도 다 버리고 법을 구한 까닭에 오늘날 법의 바다[法海]가 이미 충만하고 법당法幢이 이미 섰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중생을 깨우쳐 이끌어 주어야 할[開導] 가장 올바른 때인데, 어찌하여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이렇게 세 번 설법을 청했다.


6) 도생품度生品[1칙]

최초에 녹야원에서부터 법륜을 굴리고
최후에 사라쌍수에서 유훈遺訓을 부촉하다.

이 때 세존께서는 그의 청을 받아들여 최초로 법륜을 굴리시기 위해 즉시 바라나국波羅奈國의 녹야원鹿野園으로 찾아가셨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여는 감로법문甘露法門을 응당 누가 가장 먼저 들어야 하겠는가?’
아라라阿羅邏와 가란伽蘭 두 선인은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쉽게 깨달을 수 있었지만, 세존께서는 그들이 각각 지난밤에 목숨을 마친 사실을 아셨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했다.
‘교진여 등 다섯 사람은 모두 다 총명하고 또한 일찍이 발원한 바도 있으니, 마땅히 먼저 제도해야 하리라.’
그리고는 그들의 근기를 살펴보니 도를 받아들일 만하였다.
‘세상에는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이 있으니, 이른바 5음陰이 치성한 괴로움[五盛陰苦]ㆍ태어나는 괴로움[生苦]ㆍ늙는 괴로움[老苦]ㆍ질병의 괴로움[病苦]ㆍ죽는 괴로움[死苦]ㆍ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ㆍ원수나 미운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ㆍ구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이다. 이 같은 모든 괴로움의 뿌리는 아我에서 말미암는 것 이니, 마땅히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고 멸滅을 증득하고 도道를 닦아야 한다. 만약 사람이 4성제聖諦를 알지 못하면 해탈을 얻지 못하니, 마땅히 4제諦 12행行의 법륜을 세 번 굴려야 한다.’
이 때 5백 명의 상인商人이 있었는데, 우두머리가 두 명이었다. 그 이름은, 한 명은 제위提謂였고, 다른 한 명은 파리波利였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데, 천신이 그들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그대들이 마땅히 먼저 공양하시오.’
즉시 꿀로 보릿가루를 버무린 떡을 올리니, 사천왕四天王도 각기 그릇에 음식을 담아 바쳤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모두 받아 손바닥 위에 쌓아 놓고서 하나로 뭉치니 응공應供의 그릇이 되었다.
그 때 교진여 등 다섯 사람은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를 했다. 세존께서 그들을 부르며 말했다.
‘잘 왔다, 비구여.’
그러자 머리털과 수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걸쳐지더니, 곧 사문沙門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알기에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은 상常인가, 무상無常인가? 고苦인가, 고가 아닌가? 공空인가, 공이 아닌가? 아我가 있는가, 비아非我인가?’
다섯 비구들은 오음법五陰法을 듣고서 번뇌[漏]가 다 없어지고 의미가 이해되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성취하였다. 그리고 즉시 대답했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은 실로 무상無常이고 고苦이고 공空이고 무아無我입니다.’
모든 천天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돌아가며 외쳤다.
‘여래께서는 오늘 녹야원에서 대법륜을 굴리셨으니, 세간에는 비로소 3보寶가 있게 되었다.’
여래 대성大聖은 불보佛寶이고, 4제諦의 법륜은 법보法寶이며, 다섯 아라한은 승보僧寶이니, 모든 천상과 인간 세계에서 제일가는 복전福田이다.
다음에는 야사耶舍 등 비구 50명을 제도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각자 여러 지방으로 유행遊行하면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시오. 나는 이제 혼자서 마갈제국摩竭提國으로 가겠소.’
그 나라에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형제는 선도仙道를 배웠는데, 왕과 신하들은 모두 그들에게 귀의했다. 부처님께서 그곳에 이르시자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묵어가게 해 달라고 가섭에게 청하셨다. 가섭이 대답했다.
‘석실石室은 깨끗해서 묵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저희가 섬기는 화룡火龍이 있는데, 그 성질이 포악해서 당신을 해칠까 두렵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빌려 주기만 한다면 용의 포악함은 개의치 않소.’
가섭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석실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跏趺坐하셨다. 악룡이 불을 내뿜자 치솟는 불꽃이 충천하여 석실을 녹일 정도였다. 세존께서 즉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가시자, 용이 도리어 불길과 마주쳤다. 용은 몸을 숨기려 해도 숨길 곳이 없자, 곧 부처님의 발우 속으로 들어갔다. 가섭의 무리들은 부처님께서 독룡毒龍을 만나 해침을 당했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가섭 등이 살펴보러 오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안에서 시원하게 지냈소이다. 저 독룡의 불길도 끝내 나를 어쩌지는 못했소. 그대들이 섬기는 용은 지금 내게 항복해서 내 발우 속에 있소이다.’
가섭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탄복하였다. 그러나 다시 말했다.
‘비록 저 사문이 신통력은 있지만 우리 도의 진실함만 못하리라.’
그래서 세존께서 그곳에 머무시는데, 둘째 날 밤에는 사천왕의 대중들이, 셋째 날 밤에는 제석천의 대중들이, 넷째 날 밤에는 대범천의 대중들이 각기 내려와서 법을 들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는 광명은 너무나 밝았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밤마다 광명이 나타나는데, 당신은 불을 섬기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오. 여러 천天이 매일 밤 내려와서 법을 듣는데, 그들의 몸에서 나는 광명이오.’
가섭이 다시 말했다.
‘비록 사문이 신묘하긴 하지만, 우리 도의 진실함만 못하리라.’
가섭이 아침에 불을 피우는데 타지 않자, 그 까닭을 괴이하게 여겼다.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서 보라고 하셨다. 돌아와서 불을 보니 이미 타고 있었고, 일이 끝나서 불을 끄려고 하자 꺼지질 않았다. 가섭은 다시 부처님께 찾아와서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서 보라고 하셨기에 와서 보니 이미 꺼져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장작을 패는데 도끼를 들 수 없었고, 도끼를 들고 나서는 또 내려놓을 수가 없었는데, 모두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야 들 수 있었고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섭은 부처님께 집으로 가서 공양을 받아달라고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가라. 내가 뒤따라가리라.’
가섭이 떠나자, 부처님께서는 염부제주閻浮提洲에 가서 과일을 따 가지고 오셨다. 가섭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부처님께선 이미 도착해 계셨다. 가섭이 바로 여쭈었다.
‘어느 길로 오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과일을 보이시면서 말씀하셨다.
‘수만數萬 요자나踰闍那를 지나서 이 과일을 따 가지고 왔소. 그대는 먹어도 좋소.’
그런 후에 이같이 세 번 청하자, 부처님께서도 세 번이나 나머지 삼천三天으로 가서 그곳에서 생산되는 과일을 따 가지고 오셨는데 모두 먼저 도착하셨다. 이 같은 신통변화가 무릇 열여덟 가지나 되었는데, 가섭은 그 때마다 이렇게 억지를 부렸다.
‘대사문께선 신묘하기는 신묘합니다. 그러나 우리 도의 진실함만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아라한의 도가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크나큰 아만我慢을 허망하게 일으키는가?’
그러자 가섭은 스스로 진실하지 못함을 알고서 두려운 마음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결국 그는 부처님의 갖가지 신통변화가 수승함을 보고서는 5백 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하였다. 그리고 불을 섬기는 도구는 모두 다 니련선하尼連禪河에 버렸다.
가섭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한 명은 나제那提가섭이라 하고, 또 한 명은 가사伽闍가섭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각기 제자 250명을 데리고 하류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형이 불을 섬기던 데 쓰던 기구器具들이 물에 떠내려 오는 광경을 보고 상서롭지 않게 생각했다. 똑같이 형에게 달려간 그들은 형과 그 권속들이 삭발을 하고 검게 물들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아연실색하면서 탄식하였다.
‘형은 이미 위대한 나한羅漢으로서 총명과 슬기는 남보다 뛰어나고, 명성은 시방에 퍼져서 신봉하고 숭앙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어찌하여 이 도를 버리고 남을 좇아서 배운단 말입니까?’
가섭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배운 것은 구경법究竟法이 아니다. 오직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만이 능히 생사를 멸진한다. 이미 이런 대성大聖의 존자尊者를 만났는데도 스승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눈이 없는 것이다.’
두 동생도 아뢰었다.
‘우리도 부디 형을 따라서 같이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들도 제자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하였다.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병사왕甁沙王은 만약 내가 도를 이룬다면, 가장 먼저 제도 받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즉시 가섭을 비롯한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王舍城으로 가서 장림杖林에 머무르셨다. 그 때 병사왕은 어가御駕를 타고 백관과 수많은 기마[千馬萬騎]를 이끌고서 부처님의 입국을 맞이하였다. 병사왕은 부처님의 발에 조아려 예를 드리고 나서 조용히 앉았다. 부처님께선 그의 근기가 성숙했음을 관찰하고서 즉시 법을 설하셨다.
‘대왕이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5음陰의 몸은 식識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식을 말미암아서 의근意根이 생기고, 의근을 말미암아서 색色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색법은 생하고 멸하면서 머물지 않습니다. 이같이 관찰[觀]하는 사람은 몸이 무상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으며, 이처럼 몸을 관찰하면 몸의 상相을 취하지 않아서 즉각 아我와 아소我所를 떠날 수 있습니다. 만약 색을 관찰하여 아와 아소를 떠날 수 있다면 곧 색의 생함이 바로 고苦의 생함임을 알게 되고, 색의 멸함이 바로 고의 멸함임을 알게 됩니다. 이같이 관찰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며, 이렇게 관찰하지 않는 것을 속박[縛]이라고 합니다. 법은 본래 아도 없고 아소도 없습니다. 전도된 상념 때문에 멋대로 아와 아소가 있다고 계교하지만 실다운 법은 없습니다. 만약 이 전도된 미혹의 상념을 끊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왕은 즉시 이렇게 사유했다.
‘만약 중생들에게 아我가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속박이라 이름한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 다 무아無我이다. 그런데 이미 아가 있지 않다면, 누가 과보果報를 받는단 말인가?’
부처님께선 왕의 생각을 알고서 즉각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이 선악을 행함과 그 과보를 받음은 아我가 지음[造]도 아니요, 또한 아가 받음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지금 선악을 짓고 과보를 받는 것이 있음을 봅니다. 이에 대해 마땅히 왕을 위해 설하겠습니다. 다만 정(情:6根)ㆍ진(塵:6境)ㆍ식(識:6識)의 화합으로 경계[境]에 물듦[染]이 생겨나고, 여기에 연루된 상념[累想]은 늘어갑니다[滋繁]. 이 때문에 생사로 내달려 흘러들어서 온갖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만약 경계에 물듦이 없고 연루된 상념을 쉬어 버리면, 즉시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정情ㆍ진塵ㆍ식識의 세 가지 인연이 함께 선과 악을 일으키고 아울러 과보도 받는 것이지, 다시 따로 아我라는 것은 없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불을 피울 때 손으로 나무를 비벼서 불을 얻는 것과 같으니, 저 불의 성품은 손으로부터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무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손과 나무를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저 정情ㆍ진塵ㆍ식識도 이와 같습니다.’
왕은 다시 생각했다.
‘만약 정情ㆍ진塵ㆍ식識이 화합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고 과보를 받는 것도 있다면, 항상 화합되었을 때는 마땅히 분리되어 끊어지지[離絶] 못할 것이다. 만약 항상 화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단절이다.’
부처님께서는 왕의 생각을 아시고 곧 대답하셨다.
‘이 정ㆍ진ㆍ식은 항상하는 것[常]도 아니며 단절된 것[斷]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화합되었기 때문에 단절이 아니고, 분리되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하면 마치 저 씨앗이라는 원인이 물과 땅을 반연해서 싹과 잎을 틔우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이 이미 싹을 틔워 없어지면 항상한다고 이름붙일 수 없으며, 싹과 잎을 낳았기 때문에 단절이라고 이름붙일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단절과 항상을 떠났으므로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세 가지의 인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왕은 법을 듣고 나자 마음이 열리고 뜻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8만 나유타那由他의 바라문과 대신, 96만 나유타의 모든 천天이 저마다 티끌의 더러움을 멀리 여의고서 법안法眼의 청정을 얻었다.
장자 가릉迦陵은 부처님께서 나라에 들어오셔서 임금과 백성이 공경히 받드는데도 정사精舍가 아직 없는 것을 보고는 즉시 죽원竹園을 희사했다. 병사왕은 그곳에다 법당과 전殿을 세워서 갖가지로 수려하게 장엄한 뒤에 부처님의 안거安居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거느리고 한량없는 천인에게 앞뒤로 둘러싸여서 왕사성으로 들어가셨다. 부처님께서 문지방을 밟자, 성안의 악기가 두드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울렸으며, 좁은 문은 넓혀지고 아래로 처진 문은 다시 높여졌으며, 일체의 높은 둔덕이 모두 다 평평해지고, 냄새나고 더러운 티끌은 자연스럽게 정화되어 향내가 났으며, 귀머거리는 듣게 되고 벙어리는 말할 수 있게 되고 장님은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미친 사람은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병자는 다 치유되었으며, 고목에서 꽃이 피고 썩은 풀은 빼어나게 자라났으며, 마른 연못에는 물이 풍부해지고 향기로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으며, 봉황새가 날아들어서 온화하고 우아한 소리를 내는 등 갖가지 상서로움이 있었다.
성안에는 두 명의 바라문이 있었는데, 근기가 예리하고 총명하였다. 한 사람은 사리불舍利弗이라 하고 또 한 사람은 목건련目犍連이라 했는데, 두 사람은 친구로서 각기 백 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그 나라 사람들에게 숭앙을 받고 있었다. 당시 아사파기阿捨婆耆 비구가 발우를 들고 마을로 들어갔다가 사리불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사리불은 기품 있는 그의 위의威儀를 보고서 스승은 누구이며 어떤 법을 설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사파기가 대답했다.
‘저의 큰 스승님은 천상과 인간의 지존이시며, 지혜와 신통도 능히 견줄 이가 없습니다. 저는 나이도 어리고 도를 배운 지도 얼마 안 되니, 어찌 선설宣說하신 여래의 묘법妙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게송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체 모든 법의 근본은
인연[緣]을 따르므로 본래 없는 것이다.
만약 능히 본원本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를 사문沙門이라고 한다.

사리불은 이 게송을 듣자마자 즉시 도의 자취를 보고서 마음이 환희로 가득하였다. 그는 목건련을 찾아가서 비구에게 들은 게송을 알려줬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깨달음이 열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함께 2백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죽원의 가람을 찾아가서 출가를 청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두 사람은 내 법 속에서 상제자上弟子가 될 것이다. 사리불은 지혜에서 제일이고, 목건련은 신통에서 최고일 것이다.’
이처럼 무릇 1,250명이 각기 출가할 때, 세존께서는 ‘잘 왔도다, 비구여’라고 하셨다. 그러자 머리털과 수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걸쳐짐으로써 사문의 모습을 이루었다.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4제법諦法을 설하시니, 모두가 티끌의 더러움을 멀리 여의고 법안의 청정을 얻어서 아라한을 증득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연등然燈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을 때, 선혜善慧 선인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바로 나이다. 인연의 길에서 만나 함께 토론했던 그 5백 명의 외도外道와, 함께 따라서 기뻐했던 이들이 바로 지금 이 모임에 있는 가섭 형제와 그 권속인 비구들이며, 꽃을 판 여인은 지금의 야수다라이다. 또 선혜가 머리털을 땅에 깔 때 곁에 있던 두 사람이 부처님 앞의 땅을 쓸고 아울러 2백 명이 따라서 기뻐하며 도왔는데, 바로 지금의 사리불과 대목건련 및 이들의 2백 명 제자들이다. 또 머리털을 땅에 깔 때 찬탄했던 허공의 모든 천天들은, 내가 처음으로 도를 얻어 녹야원에서 법륜을 굴리기 시작했을 때의 8만 천자天子, 그리고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일명 병사왕]이 거느린 권속 8만 나유타의 사람들, 그리고 또 96만억 나유타의 천天들 모두가 바로 그들이다.
그대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과거에 한 번 심어진 인연은 무량겁을 지내더라도 끝내 마멸되지 않는다. 나는 지나간 옛적에 일체의 선한 업을 닦고, 아울러 대원大願을 일으켜 마음이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일체 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한 것이다. 그대들도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야 하며 게으름을 피워선 안 된다.’”[채자함彩字函과 사자함辭字函의 두 함에서 참용參用]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49년 동안 세간에 계시면서 3백여 회의 법을 설하셨으니, 사생육도四生六道의 중생들을 제도해 해탈시킨 숫자가 한량없고 가없었다. 열반할 때가 이르자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니련선하 강가에서 처음으로 도를 이루었을 때, 마왕 파순波旬은 반열반般涅槃에 들기를 청하였다. 나는 제자가 아직 없어서 열반에 들 수 없다고 말하였다. 나는 처음에 다섯 비구들을 제도한 이래로 점점 대중들을 이끌어 나가서 마지막으로 수발타라須跋陀羅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도에 들어갔으니, 할 바를 이미 했고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마쳤다. 이제 열반에 들려 하니, 그대들은 부지런히 중생을 가르치면서 방일하지 말라. 삼계三界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면, 조속히 벗어나서 여의기를 구하라. 한 번 사람 몸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대중들은 부처님의 부촉付囑을 듣고서 다 서글프고 안타까운 심정이 되었다. 한 우바새優婆塞가 있었는데, 순타純陀라고 하였다. 그는 최후의 공양을 마련해서 보시바라밀[檀度]을 구족하였다. 그 때 아난은 심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고민한 나머지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다. 아니루두[阿泥樓逗:阿那律]가 아난을 위로하였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가? 여래께서는 비록 오늘은 계셔도 내일이 되면 안 계실 것이오. 그대는 내 말에 의거해서 네 가지 질문을 해 주시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육군비구六群比丘(6惡性比丘)와는 어떻게 함께 머물면서 가르침을 보일 것인가? 여래께서 세간에 계실 때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았지만, 이미 입멸하신 후에는 무엇을 스승으로 삼을 것인가? 여래께서 세간에 계실 때는 그 분을 의지해서 안주했지만, 이미 입멸하신 후에는 무엇을 의지해서 안주할 것인가? 여래께서 입멸하신 후에 법장法藏을 결집結集할 때, 모든 경의 첫머리를 어떤 말로 해야 하는가?’
아난이 이 말을 부처님께 여쭈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질문한 대로 내가 열반에 든 후에는 육군 비구와는 어떻게 함께 머물 것인가? 나의 정법正法에 의거해서 육군 비구에게 가르쳐 보이면 증상과證上果를 얻을 것이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모든 애착의 속박[愛結]을 일으키고, 몸과 마음을 사역使役함으로써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만약 능히 12인연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무아無我여서 본래의 청정에 깊이 들어갈 것이며, 즉시 삼계三界의 큰 불을 멀리 여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최후로 그대들에게 부촉하니, 반드시 닦아 행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후에는 무엇을 스승으로 삼는가?’라고 묻는다면, 곧 시바라계(尸波羅戒:계율)가 그대들의 큰 스승이니라.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는 무엇에 의지해서 안주하는가?’라고 묻는다면, 4념念에 의지해서 안주하라.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 모든 경전의 첫머리는 어떤 말로 시작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모처에 머무르시면서 이 경을 설하셨다’고 하여라.’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다비茶毘의 법식을 여쭙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법에 의거하라. 나중에 사리舍利를 수습해서 칠보탑을 세워 일체 세간이 함께 숭앙하는 바가 되게 하라.’
당시 제석천은 부처님께 반신半身 사리를 공손하게 청하면서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자 하였다. 부처님께서 천제天帝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중생을 평등하게 보니, 마치 라후라처럼 평등하게 이익과 도움을 준다. 내 이제 그대에게 오른쪽 윗어금니 사리를 하나 주겠노라. 그러면 천상에서 탑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상과 인간이 슬픔을 그치지 않자, 세존께서는 널리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근심하거나 탄식하지 말라. 왜냐하면 비록 부처가 열반에 들더라도 사리가 있어서 다시 법보法寶가 항상 세간에 머물러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깊은 마음으로 귀의하고 공양케 하기 때문이다. 사리는 곧 불보佛寶이니, 부처를 보는 것이 곧 법신法身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는 것이 곧 성현聖賢을 보는 것이며, 성현을 보기 때문에 곧 4제諦를 보는 것이며, 4제를 보기 때문에 곧 열반을 보는 것이다. 반드시 알라. 3보寶는 항상 머물면서 변역變易함이 없으니, 능히 세간을 위하여 귀의처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 세존께서는 사자좌에서 승가리僧伽梨를 벗어 자마금빛 몸[紫金身]을 드러낸 채 대광명을 놓으시면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반드시 알라. 여래는 그대들을 위한 까닭에 여러 겁 동안 부지런히 고된 수행을 해서 보리를 성취하였노라. 그 결과 이 같은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몸을 얻어서 32상相을 구족하였으니, 마치 우담발화를 만나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라. 연緣이 다해서 열반에 들면, 그대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나의 금신金身을 살펴서 반드시 청정한 업을 닦아야만 미래세에 이러한 과보를 얻으리라.’
이처럼 세 번 말씀하시고서 허공으로 상승하니, 7다라수多羅樹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셨다. 이렇게 24번 반복한 뒤 모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최후로 여래를 보는 것이 되리라. 이후로 다시는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때가 되어 내 몸의 통증이 일어나고 있구나.’
즉시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초선에서 나와서 다시 제2선으로 들어가고, 순서를 따라 비비상처非非想處에 이르고, 비비상처에서 나와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고, 멸진정에서 나와서 다시 비비상非非想으로 들어가고, 순서를 따라 다시 들어가서 곧바로 초선에 들어가고, 다시 초선超禪에 들어갔다. 이처럼 역순逆順으로 전전하기를 27번 반복하고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불안佛眼으로 삼계를 두루 살펴보니, 모든 법의 성품은 본래 해탈되어 있는지라 시방에서 찾아보아도 끝내 얻을 수 없었다. 근본이 없기 때문에 소인所因의 지엽枝葉도 모두 다 해탈되어 있으며, 무명無明이 해탈되어 있기 때문에 나아가 늙고 죽음도 모두 해탈을 얻는다.’


7) 입멸품入滅品[2칙]

할 일을 마치신 뒤 니원(泥洹:涅槃)에 드시고
사리를 남겨서 불사佛事를 삼으시다.
세존의 나이 79세 때이다. 2월 15일 밤에 대중들에게 가르침을 보인 뒤 오른쪽 옆구리로 누우시니 등은 동쪽을 향하였고, 얼굴은 서쪽, 머리는 북쪽, 발은 남쪽으로 두셨다. 사라수娑羅樹의 여덟 갈래 뿌리는 합하여 두 그루가 되었는데, 참담함으로 하얗게 변한 채 가지를 드리워서 여래를 덮었다. 시방이 진동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큰 바다가 용솟음치고, 냇물이 말라붙고,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흑풍黑風이 세차게 불어오고, 풀과 나무도 꺾이고 부러졌다. 모든 천天이 슬프게 소리내어 우는데, 하늘에서 향기로운 꽃이 비처럼 내리고,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괴롭고 괴롭도다.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지혜의 태양이 소멸한단 말인가. 일체 중생들은 진실하고 자비로운 아버지를 잃었고 공경하는 하늘을 잃었도다.’
부처님을 따라 입멸하는 자도 있었고, 정신을 잃은 자도 있었고,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가슴을 치는 자도 있었고, 애통함으로 땅에 털썩 주저앉은 자도 있었다.
당시 전륜왕의 법에 의거해서 관棺과 곽槨을 사용했다. 구시성拘尸城의 사람들은 논의하여 역사力士 네 명으로 하여금 부처님 관을 들고서 성으로 들어가 공양토록 청하였다. 그러나 역사들이 신력神力을 다했으나 들 수가 없었다. 다시 여덟 명의 역사로 했다가 다시 열여섯 명까지 늘렸지만,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루두가 말했다.
‘설사 성안 사람들을 모두 동원한다 해도 들 수 없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평등하셔서 모든 인천人天들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하는 데 차별이 없다.’
그러자 관이 저절로 들리면서 허공으로 1다라수多羅樹까지 올라갔다. 그리고는 구시성의 서쪽 문으로 들어가서 동쪽 문으로 나왔다가, 다시 남쪽 문으로 들어가서 북쪽 문으로 나와서는 성을 일곱 번 돌았다. 보살ㆍ성문聲聞ㆍ제석ㆍ모든 천天이 즉시 보대寶臺와 화개花蓋로 공중을 따르면서 번기[幡]와 당기[幢]를 덮고 갖가지 음악으로 공양하니, 지상과 공중에 충만하게 꽉 찼다. 슬피 울고 애통해 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대중들은 여래의 자마금신紫磨金身을 붙잡고서 관을 들어 보상寶牀에 안치했다. 그리고는 미묘한 향수로 깨끗이 씻은 뒤에 안은 도라면兜羅綿으로, 밖은 미묘한 모직물 천 장으로 법도에 맞게 감쌌으며, 이어서 관에 넣고서는 향유香油를 가득 부었다.
모든 천天과 사람들이 저마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전단향과 침수沈水향으로 대향루大香樓를 맺고서 관을 그 위에 놓고는 횃불로 다비를 했지만 불이 다 꺼져 버렸다. 대중들은 통곡하면서도 여래께서 어떤 인연을 아직 끝내지 못하셨는지 알지 못했다.
제석천이 대답했다.
‘필경 가섭을 기다리는 것이오.’
가섭이 도착하자 관이 저절로 열리면서 두 발이 나타났는데, 천복륜상千輻輪相이 관 밖으로 나왔다. 가섭이 이 광경을 보고는 통곡을 하면서 예를 드리니 다시 발을 들여놓으셨다. 이에 역사가 횃불로 불을 붙였지만 끝내 타지 않았다.
가섭이 말하였다.
‘대성大聖의 보관寶棺은 삼계三界의 불로는 태울 수 없는 것이오. 하물며 그대의 능력으로 어찌 태울 수 있겠는가?’
여래의 가슴속에서 삼매三昧의 불이 소리를 따라 일어나니, 그 불은 관 밖으로 솟구쳐 나오면서 점점 다비를 하였으며, 7일이 지나자 향루香樓도 소진하였다. 그 때 사천왕과 강하江河의 신은 사리를 빨리 갖고 돌아가 공양하고 싶어서 불이 아직 꺼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물을 부었다. 그러나 불꽃은 오히려 타올랐다. 아니루두가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한 분은 천상에서 거처하고, 또 한 분은 바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대들이 사리를 수습해서 각기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면, 땅에서 사는 사람은 어떻게 갖고 가서 공양할 수 있겠습니까?’
사천왕과 강하의 신은 부끄러운 나머지 구석으로 물러갔다. 제석천이 7보로 된 병과 공양구[供具]를 가지고 다가오자, 불이 갑자기 잦아들면서 엄연한 관의 모습이 보였다. 아울러 천 장의 모직물로 부처님의 몸이 감싸져 있는데 안팎의 각 한 장씩이 본래의 모습과 완연히 같았다. 제석천이 대중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오른쪽 어금니의 사리를 청하옵니다.’
그렇게 하고 나자, 당시 여덟 나라의 왕들이 사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다. 제석천은 둔굴屯屈이란 이름을 가진 범지梵志로 화현해서 앞으로 나아가 간했다.
‘왕들께선 백성의 주인이 된 자로서 마땅히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사리는 균등하게 나눠서 모든 국토에다 다 탑묘를 짓게 하고, 무지한 세속을 계도하여 부처님이 계심을 귀하게 알도록 함으로써 널리 경복景福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가 말했다.
‘옳소이다.’
그들은 공통으로 둔굴에게 명하여 사리를 여덟 등분으로 나누고는 각자에게 한 몫씩 주었다. 왕들은 그 사리를 얻자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였다. 향화香華와 번기[幡]와 당기[幢]로 맞이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탑을 세웠다. 더욱이 나머지 재와 숯도 수습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를 회탑灰塔과 탄탑炭塔이라고 부르면서 공양을 구하여 불사佛事로 삼았다.”[실자함賓字函과 징자함澄字函 두 함에서 참용]

『니원경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열반은 경력慶曆 6년 병술세丙戌歲까지는 1,994년이다. 경력 병술년으로부터 다시 소흥紹興 27년 세차歲次 정축丁丑년까지는 앞의 것과 합해서 2,135년이다.”[징자함澄字函 제2권]


8) 상주품常住品[1칙]

환영[幻]으로 와서 생生한 것이니 어찌 생한 적이 있으리오.
환영[幻]으로 가서 멸滅한 것이니 어찌 멸한 적이 있으리오.

『종문통요宗門統要』에서 말하였다.
“낙양의 불광여만佛光如滿 선사에게 당나라의 순종順宗이 물었다.
‘부처님께선 어디로부터 오셨으며, 멸할 때는 어디를 향해 가셨습니까? 항상 세간에 머무신다고 한다면, 부처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어디로부터 오시는 것도 아니고, 멸하여 어디로 가시는 것도 아닙니다. 법신法身은 허공과 동등해서 항상 무심無心의 처소에 있습니다. 유념有念이 무념無念으로 돌아가고, 유주有住가 무주無住로 돌아감이니, 오셔도 중생을 위해 오시고, 가셔도 중생을 위해 가시는 것입니다. 청정한 진여眞如의 바다는 담연해서 체體가 항상 머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잘 생각하셔서 다시는 의심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황제가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선 왕궁을 향해 태어나셨고, 멸하실 때는 쌍림雙林을 향해서 멸하셨으니, 세간에 49년 간 머무셨습니다. 또 설할 법이 없다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산하山河와 대해大海, 천지와 일월日月이 때가 이르면 다 귀진歸盡한다고 하니, 도대체 누가 불생멸不生滅을 아는 것입니까? 의문이 이와 같으니, 지혜로운 이께선 잘 분별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부처님의 체體는 본래 무위無爲인데, 미혹된 마음[迷情]으로 망령되이 분별할 뿐입니다. 법신은 허공과 동등해서 일찍이 생멸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연緣이 있으면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고, 연緣이 없으면 부처님께선 입멸入滅하십니다. 곳곳에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마치 물 속의 달과 같습니다. 항상함[常]도 아니고 또한 단멸함[斷]도 아니며, 생함[生]도 아니고 또한 멸함[滅]도 아닙니다. 생하여도 일찍이 생한 적이 없으며, 멸해도 일찍이 멸한 적이 없습니다. 무심처無心處를 요달해 보면, 자연히 설할 법이 없습니다.’


[제2문]
다음은 교문敎門의 구경究竟을 변별해서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귀의처를 알게 한다.[모두 6품의 인연으로 20칙이다.]

9) 원도품原道品 10) 교흥품敎興品
11) 우열품優劣品 12) 구경품究竟品
13) 석의품釋疑品 14) 증험품證驗品

9) 원도품原道品[6칙]

도道에는 피차彼此가 없어서 원래 하나이건만
가르침엔 권점權漸이 있어서 방편으로 삼교를 시설하다.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수보리須菩提에게 말씀하셨다.
‘이 법은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하느니라.’ ”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여래께서 널리 법계法界를 살펴보니, 일체 중생은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는데도 어리석음과 미혹으로 인해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내가 반드시 성스러운 도[聖道]로 가르쳐서 그 망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게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 안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차이가 없음을 보게 하리라.”[여자함黎字函 제5권]

『변정론辯正論』에서 말하였다.
“태호(太昊:伏羲氏)는 본래 응성應聲 대사大士였고, 중니仲尼는 곧 유동儒童보살이었다. 먼저 이 땅에서 유행하면서 방편행으로 점차 교화했으며, 5탁濁의 세상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려고 5상(常:仁ㆍ義ㆍ禮ㆍ智ㆍ信)을 선포하였다.”[명자함明字函 제1권]

『파사론破邪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선 세 명의 제자를 진단(震旦:중국)으로 보내서 교화하게 했다. 유동儒童보살은 공구孔丘라고 했으며, 광정光淨보살은 안회顔回라고 칭했으며,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노자老子라고 칭하였다.”[기자함旣字函상권]

삼귀三歸는 완연히 3외畏와 동일하고
5계戒가 어찌 5상常과 다르겠는가?

『파사론』에서 말하였다.
“도를 닦는 단계에서는 마음과 행이 일치하지 않지만, 모두 얕음으로부터 깊은 곳에 이르고, 은미함에 의거해서 뚜렷함으로 나아간다. 처음으로 마음을 닦을 때는 불佛ㆍ법法ㆍ승僧에 의거해서 3귀歸를 받는다. 3귀는 군자의 3외畏와 같으며, 또 5계戒인 살인ㆍ도둑질ㆍ간음ㆍ거짓말[妄語]ㆍ음주를 끊는 것은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과 동일하다.”[기자함旣字函 상권]

『홍명집弘明集』에서 말하였다.
“인仁은 살생하지 않는 계율이고, 의義는 도둑질하지 않는 계율이고, 예禮는 사음하지 않는 계율이고, 지智는 술에 취하지 않는 계율이고, 신信은 거짓말하지 않는 계율이다.”[전자함典字函 제3권]


10) 교흥품敎興品[3칙]

우리 부처님께서 하생下生하시니 광명이 곳곳에 미치고
이 땅에도 천 년 동안 그 가르침이 면면히 내려오다.
『파사론』에서 말하였다.
“주周나라 소왕昭王 즉위 24년 4월 8일이었다. 강과 하천, 샘물과 연못이 갑자기 범람하면서 대지가 진동하였다. 밤에는 오색五色의 빛이 태미太微11 태미太微는 동양 천문학에서의 성좌의 세 구획, 즉 북극 부근의 자미원紫微垣, 사자궁 부근의 태미원太微垣, 사견궁蛇遣宮 부근의 천시원天市垣 중의 하나이다. 북극의 소웅좌 부근에 있으며 천제天帝 가 거처하는 곳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를 궤뚫고 들어가서 서방西方에 두루 퍼지면서 청홍색靑紅色을 띠었다. 소왕이 태사太史22 옛날 중국에서 기록記錄을 맡아보던 관리官吏. 사관史官을 말한다.
인 소유蘇由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상서로움인가?’
소유가 대답했다.
‘대성인이 서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상서로움이 나타난 것입니다.’
소왕이 말했다.
‘천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소유가 대답했다.
‘지금 당장은 별다른 것이 없지만, 천 년이 지난 후에는 그 명성과 가르침이 이 땅에 미칠 것입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처음 태어나셨다.
목왕穆王 즉위 52년 2월 15일이 되자, 폭풍이 갑자기 일어나고 숲의 나무가 부러지고 대지가 진동하였다. 서방에는 하얀 무지개 열두 줄기가 남북으로 통과했는데, 밤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목왕이 태사太史인 옹다邕多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징조인가?’
대답했다.
‘서방에 있는 대성인이 멸도滅度하면서 쇠멸의 상相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열반하셨다.

금빛 얼굴이 꿈에 나오니 가르침이 서쪽에서 전해오고
사리舍利를 올려 상서로움 보이니 법이 동쪽에서 떨치도다.

『파사론』에서 말하였다.
“후한後漢의 효명제孝明帝는 영평永平 3년에 우연히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의 우뚝 솟은 모습이 6장丈이나 되었으며, 궁전의 정원으로 날아 왔는데 광명이 밝게 비추었다.
황제가 신하들을 돌아보면서 묻자, 통사사인通事舍人 부의傅毅가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서역西域에 도를 얻은 분이 계신데 부처라고 합니다. 폐하께서 보신 것이 그 분 아니겠습니까?’
황제는 박사博士 왕준王遵 등 18명을 함께 서역으로 보내서 불법佛法을 구해 오게 하였다. 그들이 월지국月支國에 이르렀을 때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을 만났는데, 두 천축[梵]의 승려는 백첩화白氎畵와 석가상釋迦像과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가지고 있었다. 두 승려를 백마에 태우고서 낙양에 도달하니, 이 때가 영평 10년이었다. 이 때부터 이 땅에서 3보寶를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명제가 마등에게 물었다.
‘법왕法王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어째서 교화가 여기까지 미치지 않았습니까?’
마등이 대답했다.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은 곧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중심입니다. 3세世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 그곳에서 태어나셨고, 무릇 원행願行이 있는 자는 다 그곳에 태어나 부처님의 바른 교화를 받아서 도를 깨닫습니다. 나머지 처소의 중생은 부처님과 감응할 연분이 없어서 부처님께서 가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비록 가지 않으셨더라도 광명은 곳곳에 미치니, 혹은 5백 년, 혹은 1천 년, 혹은 1천 년이 지나서 성인이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전해서 교화합니다.’”[모두 기자함旣字函 상권임]

『삼보록三寶錄』에서 말하였다.
“사문 강승회康僧會는 처음 오吳나라 땅에 도달해서 띠집을 짓고 불상[像]을 마련하여 도道를 행하였다. 오나라 사람들이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요사스럽고 이상하다고 여겼으며, 유사有司는 왕에게 상소했다.
오나라 왕이 물었다.
‘부처께서는 어떤 영험이 있는가?’
강승회가 대답했다.
‘부처님의 은밀한 영험의 자취는 앞으로 천 년 동안 나타날 것이며, 유해에서 나온 사리는 어디서나 감응할 것입니다.’
오나라 왕이 말했다.
‘만약 사리를 얻는다면 반드시 탑을 세우겠다. 그러나 거짓말이라면 국법에 따라 형벌에 처하겠다.’
강승회는 7일의 기간을 청한 후 권속에게 말하였다.
‘법이 흥하느냐, 폐하느냐가 이 일에 달려 있다. 지금 지극한 정성을 쏟지 않으면, 나중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정성스럽게 재계齋戒한 후 구리로 만든 병에다 물을 담고, 향을 태우면서 예로써 청하였다. 그러나 7일 동안 아무 일도 없어서 두 번째 7일 기간을 청하였지만, 역시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손권이 말했다.
‘나를 속인다면 앞으로 더욱더 죄가 무거워질 것이다.’
강승회가 세 번째 7일 기간을 청하자, 손권은 이를 허락하였다.
강승회가 도반道伴에게 말했다.
‘공자[宣尼]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은 이미 죽었으나, 문장은 여기에 있지 아니한가?≻라고 하였소. 법령法靈은 응당 강림하는데도 우리가 감응하지 못하니, 어찌 왕의 법을 기다리겠소? 응당 죽기를 맹세하고 기약합시다.’
세 번째 7일 기간 마지막 날 저녁이 됐는데도 볼 만한 것이 없자, 두려움으로 몸이 덜덜 떨렸다. 시간이 5경更에 접어들자, 병 속에서 챙 하는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강승회가 즉시 가서 보니, 과연 사리를 얻었다. 다음 날 아침 손권에게 바치니, 온 조정이 모여서 살펴보았다. 오색의 광염光焰이 병 위를 비추는데, 손권은 스스로 병을 잡고서 구리 쟁반 속에 쏟았다. 사리가 쟁반에 부딪치자, 쟁반은 즉각 깨졌다.
손권이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보기 드문 상서로움이로다.’
강승회가 다시 아뢰었다.
‘사리의 위신력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겁劫을 태우는 불길로도 태울 수 없고, 금강의 공이로도 부술 수 없습니다.’
손권은 시험해 보라고 명했다. 그래서 사리를 철로 만든 받침돌 위에 놓고서 힘센 자로 하여금 공이로 내리치게 했다. 받침돌과 공이가 모두 패였지만, 사리는 전혀 손상이 없었다. 손권이 깊이 탄복하고서 즉시 탑을 세우니, 이로써 대법大法이 부흥하였다.”[설자함設字咸 제5권]


11) 우열품優劣品[6칙]

제석천과 범천이 모두 삼계三界의 어버이라 칭하고
공자[仲尼]도 일찍이 대성인이라 가리키다.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본래 태어난 나라인 유위대성維衛大城으로 돌아가시니, 모든 천天들이 모두 와서 부처님을 모시며 전송했는데, 꽃비를 내리고 향을 바치고 깃발을 걸고 일산을 세우고 온갖 기악을 연주하였다. 또 사왕四王의 모든 천들은 그 앞길을 인도하고, 비구 대중은 그 뒤를 감싸면서 따라갔으며, 제석천은 왼쪽에서 모시고 범왕梵王은 오른쪽에서 모시면서 게송을 설했다.
‘태자께선 나라의 왕위를 버리고 도를 이루었으니, 어떤 명호名號로 불러야 할까? 천중천天中天이라 하리니, 삼계에서 존귀하기가 제일이로다.’”[채자함彩字函 제5권]

또 『지도智度』의 게송에서는 이렇게 설했다.
“오직 부처님 한 분만이 홀로 제일이시니, 삼계의 부모이시며 일체지一切智로다. 그 일체지에 대해 더불어 견줄 자 없으니, 비할 바 없이 희유하신 세존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성자함聖字函 제5권]

『파사론破邪論』에서 말하였다.
“태재太宰인 비嚭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夫子]께선 성인이십니까?’
대답하였다.
‘제가 박학다식하지만, 성인은 아닙니다.’
또 물었다.
‘그럼 삼왕三王은 성인입니까?’
대답하였다.
‘삼왕은 지혜와 용기를 잘 썼지만, 성인인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또 물었다.
‘그럼 오제五帝는 성인입니까?’
대답하였다.
‘오제는 인仁과 신信을 잘 썼지만, 성인인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또 물었다.
‘그럼 삼황三皇은 성인입니까?’
대답하였다.
‘삼황은 때[時]를 잘 썼지만, 성인인지는 역시 제가 모르겠습니다.’
태재는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성인입니까?’
공자가 감동의 표정을 띠더니, 잠시 있다가 말했다.
‘저는 서방에 대성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러워지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신의가 있고,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니, 그 탁 트여 광대한 바는 사람들이 뭐라고 이름붙일 수가 없습니다.’ ”[기자함旣子函 상권].


공자와 노자를 부처님과 어찌 비교할 수 있으리오.
현명한 신하들이 법을 변별해서 분명히 선포하다.

『파사론破邪論』에서 말하였다.
“오吳나라 왕이 말했다.
‘공자[孔丘]와 노자를 부처님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감택闞澤이 말했다.
‘멀어도 한참 멉니다. 왜냐하면 공자와 노자가 시설한 가르침은 하늘의 제도와 작용을 본받은 것이라서 감히 하늘을 어기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한 가르침은 하늘이 본받아서 봉행奉行하는 것이라서 감히 부처를 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실로 비교할 수 없음이 명백합니다.’ ”

『성도기주成道記注』에서 말하였다.
“당나라의 율사律師인 도선道宣이 종남산終南山에서 살았는데, 계행戒行이 지극히 높았다. 북방의 비사문왕毘沙門王은 늘 두 명의 천인을 보내서 그를 보좌하게 했다. 도선은 언젠가 경행經行을 하다가 실족하여 넘어질 뻔했는데, 섬돌 밑에 있던 천인이 발을 받쳐 주었다. 이로 인해 천인이 그 몸을 나타냈는데, 도선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대답했다.
‘천신天神입니다.’
도선이 다시 물었다.
‘주나라의 소유蘇由나 한나라의 부의傅毅나 오나라의 감택闞澤 같은 이들은 모두 본래부터 불법佛法을 알지 못했는데도, 성인의 태어남과 입멸을 알고 그 가르침이 장차 도래할 것도 알아서 불법佛法을 최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천인이 대답했다.
‘그들은 모두 천인입니다. 불법佛法을 이 땅에 보급[流行]시키기 위해 하늘이 천신을 내려보내 나라를 보좌함으로써 불법佛法을 분명히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의 우열優劣을 사람들이 어찌해야 믿을까?
경전이 불 속에서도 그대로 있는 일로 알 수 있도다.

『파사론』에서 말하였다.
“한나라 영평永平 중에 도사 진걸陳乞과 승려가 진위眞僞를 비교했다. 그들은 칙령을 받아서 백마사白馬寺에 단檀을 설치하고는 제가諸家의 경전을 다 모아 단에 집어넣고 불을 질렀다. 모두 다 타 버렸지만, 오직 불경佛經만이 아무 손상 없이 말짱하였다. 불법佛法이 이로부터 흥기하였다.”[기자함旣字函 상권]


12) 구경품究竟品[9칙]

오직 부처님만이 궁극적으로 공功을 성취하니
비유하자면 금이 어찌 다시 광석이 되겠는가?

『원각경圓覺經』에서 말하였다.
“금강장金剛藏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시방의 이생(異生:중생)은 본래는 불도佛道를 이루고 있건만, 나중에 무명無明을 일으킨 것입니다. 모든 여래는 어느 때 다시 모든 번뇌를 낳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가령 금광석을 제련하면 금은 녹지 않는다. 이미 금을 이루었다면 다시는 광석이 되지 않으며, 무궁한 시간이 지나더라도 금의 성질은 파괴되지 않으니, 본래 성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해선 안 되느니라. 여래의 원각圓覺도 이와 같으니라.’”[기자함旣字函]


모든 천天이 비록 즐거워도 해탈은 아니며
10선仙이라도 과보가 다하면 다시 윤회한다.

『불인과경佛因果經』에서 말하였다.
“태자가 물었다.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모든 선인을 두루 참례한 것은 어떤 과보를 구하고자 해서입니까?’
선인이 대답했다.
‘천상에 태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태자가 다시 물었다.
‘모든 천天은 비록 즐거움을 누리지만, 복이 다하면 윤회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苦의 덩어리가 되는데, 어째서 모든 고苦를 닦아서 그로 인해 고苦의 과보를 구한다고 합니까? 모두 해탈의 바르고 참된 도가 아닙니다.’ ”[사자함辭字函 제4권]

『능엄경楞嚴經』에서 말하였다.
“정각正覺에 의지해서 삼마지三摩地를 닦지 않고, 따로 망념妄念을 닦아서 상념을 간직하고 형체를 굳건히 하는 열 가지 선仙이 있다. 복식服食의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식도食道를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지행선地行仙이라 한다. 초목 약물[草木]의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약도藥道를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비행선飛行仙이라 한다. 금석金石을 화련化練하는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화도化道를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유행선遊行仙이라 한다. 토고납신吐故納新, 도인導引, 기맥운행의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정기精氣를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공행선空行仙이라 한다. 진액津液을 토하고 삼키거나 정수를 복용하는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윤택한 덕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천행선天行仙이라 한다. 일월의 정기나 천지의 정화[精色]를 취하여 받아들이는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흡수吸粹를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통행선通行仙이라 한다. 금주禁呪의 법문을 닥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술법術法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도행선道行仙이라 한다. 정신사념[思念]을 하나로 모으는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사억思憶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조행선照行仙이라 한다. 교구交溝의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감응感應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정행선精行仙이라 한다. 천지변화의 물리의 현묘한 법문을 닦아 익혀 형체를 견고히 하길 쉬지 않음으로써 각오覺悟를 원만하게 하는 것을 절행선絶行仙이라 한다.[앞의 4행行은 평성平聲이고, 뒤의 6행行은 거성去聲이다.]
이런 부류들은 모두 사람 중에서 마음을 단련하면서도 정각正覺을 닦지 않고 따로 장생長生의 이치를 얻어서 천 살이나 만 살의 장수를 누리지만, 망령된 상념이 유전流轉하고 삼매를 닦지 않아서 과보가 다하면 다시 와서 온갖 취(趣:6道)에 흩어져 들어간다.”[염자함染字函 제8권]

『금강경金剛經』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치 별의 그림자나 등불의 환영[幻]과 같으니, 모두 무상無常을 비유한 것이다. 누식漏識으로 인과를 닦는다면, 누군들 장구長久함을 얻는다 하리오. 위험하고 허약하기가 물거품이나 이슬과 같고, 구름이나 그림자나 번갯불과 같다. 설사 8만 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공망空亡에 떨어지리라.”


원수도 오히려 부모처럼 생각하는데
교법敎法에 감히 인상人相과 아상我相의 마음을 일으키랴.

『원각경』에서 말하였다.
“그가 원수라도 자기 부모처럼 보아라.”
『화엄경』에서 말한다.
“보살은 세간의 중생을 마치 외아들처럼 평등하게 관하니, 모두가 최상의 안락安樂을 얻게 하려고 한다.”[장자함章字函 제6권]

『영가永嘉』에서 말하였다.

원돈圓頓의 가르침엔 인정人情을 개입하지 말라.
의심을 결택하지 못하면 곧바로 결판을 내야 한다.
산승(山僧:永嘉)이 인상人相ㆍ아상我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이가 단斷ㆍ상常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곧바로 삼도三塗에 들어가서 고통을 대신하면서
언제나 일체가 성불하도록 가르친다.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모든 중생들이 악惡을 지어서 고통을 받고 그 장애 때문에 3보寶를 만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내가 그의 고통을 대신 받고서 해탈케 하리라’고 한다. 보살이 이러한 고통을 받을 때는 더욱더 부지런히 정진하지, 포기하거나 겁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을 짊어질 것을 결단코 서원하여 지옥이나 축생 같은 험난한 곳까지도 자기 자신을 볼모로 삼아서 그의 해탈과 바꾸기 때문이다.”[장자함章字函 제3권]

『금강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존재하는 일체 중생의 부류로서 알에서 태어난 것이거나, 태胎에서 태어난 것이거나, 습濕한 데서 태어난 것이거나, 화化해서 태어난 것이거나, 색色이 있는 것이거나 색이 없는 것이거나, 상념이 있는 것이거나 상념이 없는 것이거나, 상념 있는 것도 아닌 것이거나, 상념 없는 것도 아닌 것이거나 간에 나는 다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도록 멸도滅度시키리라.’”


13) 석의품釋疑品[4칙]

단지 악한 자가 길하고 선한 자가 흉한 것만 알고 있으니
어찌 인因이 따르고 과果가 상응하는 것을 알겠는가.

『전등傳燈』에서 말하였다.
“20대 조사인 사야다闍夜多가 19대 조사에게 물었다.
‘저의 부모는 본디부터 3보를 믿었는데도 항상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하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이웃인 사구舍久는 전다라旃陀羅의 업을 하고 있는데도 몸은 항상 용감하고 굳건하며 하는 순조롭고 일도 화목합니다. 어째서 그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합니까?’
존자尊者께서 대답하셨다.
‘어찌 의심할 필요가 있으리오. 선악의 과보에는 삼시三時가 있다. 범부는 단지 어진 사람이 요절하고, 난폭한 사람이 장수를 누리고, 역적이 길하고, 의로운 자가 흉한 것을 보고 인과因果도 없고 죄와 복도 허망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그림자와 메아리[影響]가 서로 따르는 것이 털끝만치도 틀리지 않아서 설사 백천만 겁을 지나더라도 마멸되지 않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다.’
당시 사야다는 이 말을 듣자, 단박에 의심하였던 것이 풀어졌다.”[진자함振字函 제1권]


구담瞿曇에게 악한 자식이 있음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신과 같은 요堯임금에게도 단주丹朱33 요임금의 아들. 불초한 자식으로 이름이 높다.
가 있지 않은가?

『홍명집弘明集』에서 말하였다.
“물었다.
‘불도佛道는 무위無爲로써 보시를 즐기며, 계율을 지키는 것에 전전긍긍해서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한 듯이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문은 술 마시길 좋아하고, 혹은 아내와 자식을 두기도 하고,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도 하니, 이는 바로 세속의 인위人爲이다. 그런데도 불도에서는 이를 무위라고 한다.’
모자牟子가 말하였다.
‘공인工人의 명장은 남에게 도끼나 자귀, 먹줄과 먹은 줄 수 있어도 그에게 솜씨를 줄 수는 없으며, 성인은 사람들에게 도를 전수할 수는 있어도 그에게 도의 실천궁행을 줄 수는 없다. 고요皐陶44 순임금 때 형리刑吏의 수장首長이다.
는 도둑에게 벌을 줄 수는 있어도 탐욕스런 자를 백이伯夷ㆍ숙제叔齊처럼 만들 수는 없으며, 다섯 가지 형벌[五刑]은 무례한 자를 벌줄 수는 있어도 악한 사람을 증삼曾參이나 민자건閔子蹇으로 만들 수는 없다. 요임금은 단주丹朱를 교화할 수 없었고, 주공周公은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훈육할 수 없었지만, 어찌 요임금의 교화가 빛나지 않고 주공의 도덕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악한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마땅히 사람이 능히 실천하지 못함을 걱정해야지, 어찌 불도佛道에 악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집자함集字函 제1권]


14) 증험품證驗品[2칙]

천상의 복도 다하면 당나귀 뱃속에 던져질 수 있으니
불도가 아니면 어느 누가 그 재앙을 벗어날 수 있으리.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제석천은 다섯 가지 덕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스스로 복이 다했음을 알고서 매우 우울하였다. 그는 생각했다.
‘삼계三界 가운데 인간의 고액苦厄을 구제하는 이는 오직 부처님만이 계실 뿐이다.’
제석천은 부처님께서 계신 처소로 갔다. 그 때 부처님께서도 좌선을 하면서 보제普濟삼매에 들어 있었다. 제석천은 예를 드리고는 땅에 부복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ㆍ법ㆍ성중聖衆의 세 가지에 귀의하였는데,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그의 목숨이 홀연히 떠나면서 문득 도예공의 집에 이르러 당나귀 어미의 뱃속에 들어가 새끼가 되었다. 그 때 당나귀가 스스로 고삐를 풀고 달아나다가 기왓장 사이를 밟아서 그 기와들을 깨뜨렸다. 주인이 당나귀를 때리자 태胎 안에 있던 새끼가 다쳐서 그 신神이 다시 돌아와 제석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시며 찬탄하셨다.
‘훌륭하도다. 목숨을 마칠 때 능히 3존(尊:寶)에게 귀의해서 죄를 이미 끝내고 고통의 시련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자, 제석천은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수자함獸字函 제1권]


사문沙門은 경전을 외워서 천계天界를 초월했고
유신庾信은 법을 비방하다 거북의 모습을 받았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 말하였다.
“『명보기冥報記』에 당나라 수주遂州 사람 조문신趙文信은 정관貞觀 원년에 갑자기 죽었다가 3일 뒤에 다시 소생했다고 하였다. 그가 말했다.
‘염라대왕의 처소에 이르러서 한 승려를 보았습니다. 염라대왕은 먼저 그를 불러 물었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어떤 공덕을 닦았는가?≻
승려가 대답했습니다.
≺오로지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외웠을 뿐입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합창한 채 찬탄하였습니다.
≺훌륭하도다, 이미 『금강반야경』을 외웠다면 마땅히 천상으로 올라갔어야 할텐데, 뭔가 잘못되어서 이곳으로 왔구료.≻
염라대왕의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홀연히 천의天衣가 내려와서 승려를 데리고 천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음에는 조문신을 앞에다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그대는 어떤 공덕을 닦았는가?≻
대답했다.
≺일생 동안 불경佛經은 닦지 않고 오직 유신庾信의 문장과 집록集錄만을 좋아했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그 유신이란 놈은 대죄인이다. 이렇게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일찍 알아차렸어야지 다시 말하지 않겠다. 그대는 비록 그의 문장을 읽었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선 알지 못했노라.≻
염라대왕은 즉시 사람을 보내서 유신을 끌고 오도록 했습니다. 곧 머리가 여럿 달린 거북 한 마리가 보였으며, 거북이 사라지고 잠시 있다가 한 사람이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바로 유신입니다. 살아 있을 때 문장 짓기를 좋아해 멋대로 불경佛經을 인용해서 세속의 글과 섞어 놓았으며, 불법佛法을 비방하면서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 거북의 몸을 받는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고자함藁字函 제8권]


[제3문]
과연 이 도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어찌 자기의 본래를 여의겠는가?[무릇 3품의 인연으로 61칙이다.]

15) 탁태품託胎品 16) 오온품五蘊品
17) 번뇌품煩惱品


15) 탁태품託胎品[22칙]

세 가지 인연을 말미암아서 후유後有에 감응하고
또한 세 가지 사事가 합해서 그 태胎에 들어간다.

『본사경本事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필추(苾篘:比丘)들에게 말씀하셨다.
‘반드시 알라. 세 가지 인因과 세 가지 연緣이 능히 후유(後有:後生)에 태어나는 존재에 감응한다.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無明을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이며, 애착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업을 아직 쉬지 못했기 때문이니,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서 능히 후유에 감응한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업은 좋은 밭이 되고, 식識은 씨앗이 되고, 애착은 물을 대는 것이 되고, 무지無智ㆍ무명無明ㆍ무료無了ㆍ무견無見의 가림으로 식識이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처소에 안주하는 것이니, 욕欲은 가장 아래가 되고, 색色은 그 중간이 되고, 무색無色은 묘함이 된다. 욕계欲界의 업을 말미암아서 이숙과異熟果를 감응하면 앞에 바로 나타나는 까닭에 시설施設할 수 있는데, 이것이 욕유가 된다. 이 때 업이 좋은 밭이 되고, 식識은 씨앗이 되고, 애착이 물을 대는 것이 되면, 식識은 문득 최하인 욕유의 처소에 안주한다.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가 이숙과를 감응하는 것도 이와 같다.’ ”[심자함甚字函 제7권]

『비바론毘婆論』에서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및 중유中有55 사유死有의 뒤면서 생유生有의 앞.
의 세 가지 사[事]가 화합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음탐淫貪을 일으켜서 한데 합회合會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몸이 조적調適해서 병이 없는 때라는 것은, 이른바 탐욕을 일으킨 몸과 마음이 기뻐하기 때문에 조적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뱃속이 청정해서 풍風ㆍ열ㆍ담痰이 서로 핍박하여 단절시키는 일이 없기 때문에 병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가 더럽고 나쁜 것으로 인해 날마다 달마다 항상 흘러나오고 혈수血水가 과다해서 습기가 많으면 태胎를 이루지 못하고, 너무 적어서 건조해도 태를 이루지 못한다. 만약 이 혈수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아서 건조하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으면, 바야흐로 태胎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이때’라고 한다.
그리하여 중유中有가 태에 들어갈 때는 어머니의 마지막 피에서 나머지 한 방울과 아버지의 마지막 정액에서 나머지 한 방울이 화합해서 성취하는데, 그 중유를 말미암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성냄[恚]의 두 마음이 잇달아[展轉] 일어난다[現起]. 만약 남자의 중유라면 어머니에 대해선 애착을 일으키고 아버지에 대해선 성냄을 일으키면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
‘만약 저 장부가 이 처소를 떠난다면, 나는 당연히 이 여인과 교회交會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전도顚倒된 상념이 생기면서 그 장부가 이 처소를 멀리 떠나는 것을 보며, 곧 여인과 화합함을 자기가 보게 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회交會하면서 정액과 혈수가 나올 때 문득 아버지의 정액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보고 나면 기쁘면서도 문득 미혹의 번민이 일어나고, 미혹의 번민 때문에 중유가 무거워지고, 이미 무거워진 후에는 문득 모태에 들어가서 스스로 이미 몸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등을 향해 쭈그리고 앉았음을 본다.[만약 여자의 중유라면 아버지에 대해선 애착을 일으키고 어머니에 대해선 성냄을 일으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서 배를 향하여 쭈그리고 앉는다.]
모든 유정有情의 종류는 대부분 이러한 전도된 상념[想]을 일으킨 후에 모태에 들어간다. 오직 보살만이 태胎에 들어가려고 할 때 아버지에 대해선 아버지를 상념하고 어머니에 대해선 어머니를 상념하는데, 비록 능히 바르게 알더라도 그 어머니에 대해선 친함을 일으켜 애착을 하고 이 애착의 힘을 타고서 문득 모태에 들어간다.
【문】 중유는 어느 곳에서 태胎로 들어가는가?
【답】 중유는 걸림이 없어서 즐기는 곳에 따라 문득 태에 들어가는데, 반드시 태어나는 문을 좇으니 애착하기 때문이다.
【문】 보살의 중유는 어느 곳에서 태로 들어가는가?
【답】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들어간다.
【문】 전륜왕과 독각獨覺의 중유는 어느 곳에서 태로 들어가는가?
【답】 전륜왕과 독각은 비록 복과 지혜가 있지만 증상增上을 다한[極]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차 태에 들어갈 때 전도된 상념이 있어서 역시 음애淫愛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태위胎位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태어나는 문[生門:자궁]을 좇는다.”[의자함義字函 제10권]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 말하였다.
“여인이 수태受胎를 원해서 월화수月華水를 낸다는 것[월화月華는 피를 일컫는다.]은 아기를 배는 곳에서 하나의 핏덩이가 생기고 7일이 지나면 저절로 깨지는데, 이로부터 나온 것이다. 만약 피가 나오는 것이 그치지 않는다면 남자의 정精이 머물지 않아서 함께 유출하는 것이다. 만약 피가 다 그친다면, 남자의 정精은 머물게 되어서 문득 태胎가 있게 된다.
다시 일곱 가지 수태[七事受胎]가 있다. 첫째는 상촉(相觸:서로 접촉함)이고, 둘째는 취의(取衣:옷을 취함)이고, 셋째는 하정(下精:정을 내림)이고, 넷째는 수마(手摩:손을 마찰함)이고, 다섯째는 견색(見色:색을 봄)이고, 여섯째는 문성(聞聲:소리를 들음)이고, 일곱째는 후향(齅香:냄새를 맡음)이다. 무엇을 상촉 수태라 하는가. 여인이 월수月水가 생길 때는 남자를 기쁘고 즐겁게 한다. 만약 남자가 몸으로써 그 몸의 부분을 접촉하면 곧 탐착貪着이 생기면서 문득 회태懷胎하는 것이다. 무엇을 취의 수태라 하는가. 가령 우타이優陀夷66 가비라성 국사의 아들로서 정반왕에게 뽑혀 실달타 태자의 벗이 되었다. 변론을 잘해서 태자의 출가를 막으려 했으나, 나중에는 출가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는 부인과 함께 출가했으나, 애욕이 그치지 않아서 각자 서로 묻다가 애욕의 정精으로 옷이 젖자, 비구니가 그것을 취하여 핥고는 다시 내근內根에다가 취하니, 문득 회태하였다. 무엇을 하정 수태라 하는가. 가령 녹모鹿母가 도사의 정精을 냄새맡고 욕심을 내어 마시니, 마침내 문득 회태하였다. 무엇을 수마 수태라 하는가. 가령 섬睒보살의 부모는 모두 장님이었는데 출가해서 도를 닦았다. 음양陰陽을 합치지 못해서 손으로 배꼽 밑을 마찰하자 문득 회태하였다. 무엇을 견색 수태라 하는가. 어떤 여인이 월화수가 이루어지고도 남자를 얻어서 욕정의 성대함을 합치지 못했다. 오직 남자를 궁宮처럼 볼 뿐이고, 여인도 이와 마찬가지이었는데도 문득 회태하였다. 무엇을 문성 수태라 하는가. 가령 백로는 모두 암컷으로 수컷이 없지만, 햇볕이 비추는 봄철에 우레가 처음 울리는 소리를 일심一心으로 들으면 문득 회태한다. 무엇을 후향 수태라 하는가. 가령 진秦의 어미소는 단지 새끼의 기운을 냄새 맡기만 해도 문득 회태하였다.”[벽자함壁字函 제9권]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문】 만약 중유中有를 받는다면, 피차彼此가 화합해서 연緣끼리 맺어져 태어난다. 가령 아버지가 미라국彌羅國에 있고 어머니가 지나국支那國에 있다면, 이러한 생연生緣은 화합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게 중유가 속히 가서 맺어져 태어나는가?
【답】 마땅히 알아야 한다. 유정有情이 부모를 짓는 업에는 정해진 것도 있고 정해지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부모로서 전변할 수 있는 뜻과 전변할 수 없는 뜻이 있다. 만약 부모로서 모두 전변할 수 있다면, 즉시 다른 부모에게로 가서 화합하는 곳에서 맺어져 태어난다. 만약 아버지는 전변할 수 있으나 어머니가 전변할 수 없다면, 그 여인의 성품이 비록 정결해서 5계戒를 받아 지녔더라도 반드시 다른 남자와 화합해서 중유로 하여금 속히 가서 맺어져 태어나게 해야 한다. 만약 어머니는 전변할 수 있으나 아버지가 전변할 수 없다면, 그 남자의 성품이 비록 정량貞良해서 5계를 받아 지녔더라도 반드시 다른 여인과 화합해서 중유로 하여금 속히 가서 맺어져 태어나게 해야 한다. 만약 부모로 모두 전변할 수 없다면, 그 유정이 아직 목숨을 마치지 않아서 지위가 업력業力을 말미암으니, 그 부모가 비록 머무는 연緣이 있더라도 서로 연모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서로 향하면서 화합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서로 향할 때 경과하는 처소는 독毒으로도 해칠 수 없고 칼날로도 상하게 할 수 없으며, 아울러 다른 온갖 요망한 인연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으니, 반드시 화합해서 그 유정으로 하여금 목숨을 마친 뒤엔 중유를 정확히 받아서 곧바로 가서 맺어져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문】 만약 욕구하는 마음이 항상 증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중유가 가는 데를 따라서 맺어져 태어나겠는가? 가령 말은 봄에는 욕구하는 마음이 증대하여 치성하지만 다른 시기엔 그렇지 않으며, 소는 여름에, 개는 가을에, 곰은 겨울에 또한 그러한데, 어떻게 유정이 중유를 정확히 받아서 그로 하여금 화합케 하여 가서 맺어져 태어나게 하는가?
【답】 그 유정이 중유의 지위에 머묾을 말미암아서 업의 증상하는 힘이 그 부모의 때 아닌 욕심도 증성增盛시켜 서로 향하여 화합케 함으로써 그가 맺어져 태어나는 것이다. 다른 스승의 설명도 서로 비슷한 종류 가운데 맺어져 태어나기 때문에 잘못이 없으니, 이른바 말은 봄에 욕구하는 마음이 증대하고 다른 시기엔 그렇지 않지만, 당나귀는 어느 시기에나 욕구하는 마음이 증대함을 말한다. 마땅히 말로 태어나는 것은 때가 아니기 때문이며, 당나귀로 전생轉生하는 것은 비록 그 형상이 나머지 것과 서로 비슷하더라도 온갖 동분同分은 근본의 부전不轉과 같으니, 온갖 중유로써 전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유는 적은 시간을 머물러 지내더라도 반드시 가서 맺어져 태어나니, 조속히 태어남을 구하기 때문이다. 존자 설마달다設摩達多는 ‘중유는 아무리 길어도 칠칠七七일, 곧 49일 동안 머물면 결정코 맺어져 태어나기 때문이다’고 하였고, 존자 세우世友는 ‘중유는 지극히 많으니, 7일 동안 머물러 지내더라도 오래 머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문】 만약 7일 안에 태어나는 연緣이 화합하면 저[彼]에 맺어져 태어날 수 있으니, 만약 그렇다면 장소와 시간이 태어나는 연緣과 합치지 않더라도 저[彼]가 어찌 단괴斷壞하겠는가?
【답】 저[彼]는 단괴하지 않으니, 이른바 저[彼]의 중유와 나아가 태어나는 연緣은 화합하는 위位가 아니라서 자주 죽고 자주 태어나도 단괴斷壞가 없기 때문이다. 대덕大德께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여기엔 정해진 한계가 없으니, 저[彼]의 태어나는 연緣이 조속히 화합한다면 여기[此]의 중유의 몸도 곧 짧은 시간 동안 머물며, 만약 저[彼]의 태어나는 연緣이 많은 시간에도 화합하지 못한다면 여기[此]의 중유의 몸도 곧 많은 시간 동안 머문다.
【문】 중유의 형량形量은 크기가 어떠한가?
【답】 욕계欲界의 중유는 대여섯 살의 어린이 같은 형량이며, 색계色界의 중유는 본시本時대로의 형량이다.
【문】 욕계 중유의 어린이 같은 형량이 어떻게 부모에 대해 전도된 상념을 일으켜서 애착과 성냄을 낳는가?
【답】 형량이 비록 작더라도 모든 감관[根]이 매우 예리하여 마치 본유本有의 때에 능히 온갖 일을 짓는 것과 같으며, 마치 벽에 노인의 형상을 그리는데 그 양量이 작더라도 노인의 모습이 있는 것과 같다.
【문】 보살의 중유는 그 양이 어떠합니까?
【답】 본유本有에 머무는 것과 같으니, 성년시盛年時의 양은 32상相ㆍ80수호隨好이다.
【문】 모든 중유는 형상이 어떠합니까?
【답】 본유와 같으니, 이른바 그가 마땅히 지옥취地獄趣에 태어나는 것은 소유한 형상이 곧 지옥과 같은 것이며, 나아가 마땅히 천취天趣에 태어나는 것은 소유한 형상이 곧 저 천天의 중유와 같은 것이니, 본유의 일업一業이 이끌기 때문이다.
【문】 모든 취趣의 중유는 행상行相이 어떠한가?
【답】 지옥의 중유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위로 해서 지옥으로 들어가고, 모든 천天의 중유는 발을 아래로 하고 머리를 위로 하니, 마치 사람이 화살을 들어 허공으로 쏘는 것과 같아서 상승하면서 천취天趣로 간다. 나머지 취趣의 중유는 모두 다 방행傍行을 하니, 마치 공중을 나는 새처럼 태어나는 곳으로 간다. 이는 인간 가운데서 목숨을 마친 자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만약 지옥에서 죽었다가 지옥에 환생했다면, 반드시 머리를 아래로 하고 발을 위로 해서 갈 필요는 없으며, 만약 천취[天]에서 죽었다가 천취에 환생했다면 반드시 발을 아래로 하고 머리를 위로 해서 갈 필요는 없다. 만약 지옥에서 죽었다가 인취人趣에 태어난다면 마땅히 머리가 상승해야 하고, 만약 천天 가운데서 죽었다가 인취에서 태어난다면 마땅히 머리를 아래로 돌려야 한다. 귀신과 방傍에서 태어난 2취趣의 중유는 마땅히 알 수 있다. 복이 있는 중유는 청정한 꽃과 열매의 음식 등을 흠향하여 가볍고 미묘한 향기로써 스스로 존재하고 활동하며, 만약 복이 없는 자라면 똥오줌 등 악취나는 음식 등을 흠향하여 가볍고 미세한 냄새로써 스스로 존재하고 활동한다. 또한 그가 먹은 향기가 지극히 적고 중유가 비록 많더라도 두루 구제함을 얻는다.”[의자함義字函 제10권]


이미 이 몸을 버리고서 저 몸을 받으니
언제나 선한 업과 악한 업을 지니네.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문】 만약 중음中陰이 없는 자라면, 염부제閻浮提의 목숨을 마친 뒤에는 울단월鬱單越에 태어난다. 전자[彼]가 후자[此]에서 끊어지니, 전자로선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는 법法이 없는데도 있는 것이다.
【답】 전자[彼]는 끝내 버려지지 않는다. 죽을 때의 음陰은 반드시 태어날 때의 음陰을 받고, 태어날 때의 음을 얻은 뒤에라야 죽을 때의 음이 버려진다. 마치 자벌레가 앞발을 안정시킨 뒤에야 뒷발을 드는 것과 같다.”[부자함浮字函 제4권]

『종경록宗鏡錄』에서 말하였다.
“대약大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식識이 몸을 여의고서 다시 조속히 몸을 받습니까? 식이 옛 몸은 버리고 아직 새로운 몸은 받지 않았을 바로 이 때에 식은 어떤 모습을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어떤 장부丈夫가 견고한 갑옷을 입고, 바람처럼 빠른 말을 타고서 적진으로 들어가 칼과 창을 부딪치다가 마음이 흐트러져 말에서 떨어졌지만, 무예가 강하고 민첩하기 때문에 즉각 다시 말 위로 뛰어오르는 것과 같으니라. 식識이 몸을 버리고 조속히 다른 몸을 받음으로써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받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니라.
다시 비유하면 마치 사람의 그림자가 물 속에 나타나더라도 취할 만한 본질은 없지만 손발ㆍ얼굴ㆍ눈 및 모든 형상은 사람과 다르지 않으니라. 체(體:바탕)의 본질과 사事의 업은 그림자 속에 모두 없으며, 차가움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아울러 온갖 촉觸도 없고 살도 없으며, 말과 소리도 없으니, 식이 옛 몸을 버리고 아직 새로운 몸을 받지 않은 모습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니라.’ ”
다시 말하였다.
“현호賢護 동진보살童眞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식識이 이 몸을 버리면 선악의 업에 따라 옮겨가면서 다른 과보를 받는데, 그 일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풍대風大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점복림占蔔林을 지나면 그 바람에 문득 향기가 있고, 똥과 오물을 지나면 그 바람에 문득 냄새가 나는 것과 같다. 만약 바람의 향기와 냄새가 함께 이른다면 바람의 향기와 냄새가 뒤섞인 가운데 더 강한 것이 먼저 드러난다. 풍대는 형태가 없고 향기와 냄새는 형질이 없지만, 바람은 향기와 냄새를 지니고서 이를 멀리까지 옮겨간다. 이 식識이 몸을 버린 뒤 선악의 업을 갖고 변천하다가 다른 과보를 받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책자함策字函 제5권]

『보적경寶積經』에서 말하였다.
“‘저 식識이 옮겨가고자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잠자면서 여러 가지 일을 꿈꾸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식은 인후咽喉 및 모든 구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며, 그 식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온갖 구멍을 구하지 않는다.’
다시 여쭈었다.
‘모든 알[卵]이 깨지지 않았는데 그 식識이 어떻게 옮겨간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마치 첨파화瞻婆花와 훈마薰麻가 잘 익은 뒤엔 기름을 짜는데, 이를 첨파화 기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꽃의 향내는 마麻 주변으로부터 구멍을 찾아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꽃과 마麻, 두 가지의 화합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그 향내가 좇아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식이 옮겨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시 여쭈었다.
‘이 식이 옮겨갈 때, 선한 업과 선하지 않은 업은 그 일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씨앗과 같다. 땅 속에 뿌려 두면, 싹ㆍ줄기ㆍ잎이 생기고 나아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그 색깔이 빨간 것도 있고 하얀 것도 있으며, 그 성품이 굳건한 것도 부드러운 것도 있으니, 모두 업력業力의 성숙 때문이다.’ ”[장자함丈字函 제9권]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만약 그 부모의 복업福業이 두드러지고 자식의 복업이 열등하다면, 또 만약 그 부모의 복업이 열등하고 자식의 복업이 뛰어나다면, 태胎에 들어가지 못한다. 요컨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식의 세 가지 복업이 균등해야 비로소 태胎에 들어가게 된다.
【문】 만약 부귀한 남자가 빈천한 여자와 합하거나, 혹은 부귀한 여자가 빈천한 남자와 합한다면, 어떻게 중유가 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답】 부귀한 남자가 빈천한 여자와 합할 때는 반드시 스스로의 몸에 대해선 하열한 상념을 일으키고, 상대 여인에 대해선 존승尊勝의 상념을 일으킨다. 만약 부귀한 여자가 빈천한 남자와 합할 때는 반드시 스스로의 몸에 대해선 하열한 상념을 일으키고, 상대 남자에 대해선 존승의 상념을 일으킨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장차 태위胎位에 들어가려고 할 때도 마땅히 이와 같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태에 들어갈 때는 모두 균등의 뜻이 있는 것이다.”[의자함義字函 제10권]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문】 6취(趣:道)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모두 오직 식識일 뿐입니다. 처음에 선과 악의 취趣에 태어나는 것은 그 모습이 어떠합니까?
【답】 복의 자량에 따라서 과보가 균등하지 않다. 수승한 복이 식識을 자량할 때는 그 경계가 크고, 열등한 복이 식을 자량할 때는 그 모습이 미약하다.”

『현식경顯識經』에서 말하였다.
“대약大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이 몸을 버리고 나서 어떻게 온갖 천天에서부터 지옥에 이르기까지 태어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이 임종할 때 복업福業의 자량이 있는 자는 본래의 시야를 버리고 천상의 오묘한 시야를 얻어서 천궁 등을 보니, 마치 자는 듯 마는 듯 안온하게 목숨을 버린다. 장차 목숨을 버리려 할 때는 천상의 아버지와 천상의 어머니가 똑같이 한자리에 머무르는데, 천상의 어머니 손에서 자연스럽게 꽃이 나와서 하늘거릴 때 목숨이 문득 다하면서 모습이 없는 식識이 모든 감관[根]을 버리고 온갖 경계를 지니는데 업이 과보로 변천함은 마치 말을 타는 것과 같아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타듯이 조속히 꽃 안에 의탁해 천상의 어머니 손에 나타난다.’
대약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형태가 없는 식識이 어떻게 인연의 힘을 빌려서 형태가 있는 것으로 태어나며, 어떻게 형태가 있는 것이 인연 안에 머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약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나무가 화합해서 서로 마찰하면 불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 불은 나무 속에선 애초에 얻을 수 없으며, 가령 나무를 제거해도 불을 얻을 수 없으니, 연緣이 합해야만 불이 생기고 인연을 갖추지 못하면 불이 생기지 않느니라. 나무 등에서 불의 빛깔과 모습을 찾아보아도 끝내 발견할 수 없지만, 누구나 불이 나무로부터 나오는 것을 본다.
이처럼 대약이여, 식識은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인연 화합을 가탁해서 형태가 있는 몸으로 태어나지만, 형태가 있는 몸 속에선 식을 찾아도 얻을 수 없으며, 형태가 있는 몸을 여의고는 식이 있지 않다.
대약이여, 마치 불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면 불의 모습도 나타나지 않고 따뜻한 감촉도 모두 없는 것처럼, 만약 몸이 있지 않다면 식識ㆍ수受ㆍ상想ㆍ행行도 모두 다 나타나지 않는다.
대약이여, 악업을 행한 자는 목숨이 다할 때 몹시 괴로워하면서 온갖 지옥을 보는데, 그곳에 감응하여 들어가는 자는 발이 위쪽으로 향하면서 아래로 거꾸러진다. 또 한 곳을 보더라도 땅이 순전히 피인데, 맛에 탐착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문득 지옥의 부패와 악취를 낳으면서 식이 그 속에 의탁하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거름이나 시궁창 같은 악취 속에 벌레가 사는 것과 같으니, 지옥에 들어간 자가 악취나는 것에 의탁해서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다.’ ”[책자함策字函 제5권]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복이 엷은 자라면 반드시 비천한 집안에 태어나니, 그가 죽을 때와 태胎에 들어갈 때는 문득 온갖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아울러 눈으로는 대나무와 갈대가 우거진 총림과 같은 험악한 곳에 들어감을 망령되이 보게 된다. 만약 복이 많은 자라면 반드시 존귀한 집안에 태어나니, 고요한 경계를 보거나 혹은 아름답고 미묘하여 뜻에 맞는 소리를 들으며, 아울러 궁전에 오르는 등 뜻에 맞는 상이 나타남을 스스로 망령되이 보게 된다.”[습자함習字函 제1권]

『보적경』에서 말하였다.
“이 식은 중생의 몸 안에서부터 저곳으로 옮겨가면서 취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머무는데, 혹은 복을 받기도 하고 혹은 죄를 받기도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 마치 꿀벌이 온갖 꽃의 맛을 보고 나선 그 꽃을 버리고 다른 꽃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으며, 혹은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가서 꽃 위에 앉은 후 그 꽃을 즐거이 탐착하고 그 향기와 맛을 취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신식神識은 선근善根이 많으면 천상의 몸을 받기도 하는데, 천상의 몸을 받은 후에는 악한 과보[惡果]로 인해 다시 지옥ㆍ축생ㆍ아귀를 받아서 윤회가 그치질 않는다.”[문자함文字函 제9권]


서른여덟 번의 7일 동안 변하고
스물아홉 가지의 온갖 바람이 분다.

『유가론』에서 말하였다.
“이 때 부모의 탐착과 애욕이 모두 극에 달하면서 최후에는 각기 한 방울의 농축된 정혈精血이 나와 서로 화합해서 모태母胎 안에 머무는데, 마치 숙성한 젖이 응결한 것처럼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의거하니, 이것을 갈라람위羯羅藍位라 칭한다.”[습자함習字函 제1권]

『보적경』에서 말하였다.
“이 모든 중생들이 태胎에 의탁해서 어머니 뱃속에 있는데, 서른여덟 번의 7일 동안 스물아홉 가지의 업풍業風이 불면서 차례대로 성취한다.
첫 번째 7일에는 그 형상이 젖과 같으며, 두 번째 7일에는 그 형상이 응고된 젖과 같으며, 세 번째 7일에는 그 형상이 약공이[藥杵]와 같으며, 네 번째 7일에는 신발이 매달린 것과 같으며, 다섯 번째 7일에는 머리와 팔과 폐가 나뉘며, 여섯 번째 7일에는 팔꿈치가 서로 보며, 일곱 번째 7일에는 손과 발과 손바닥ㆍ발바닥이 나타나며, 여덟 번째 7일에는 손가락과 발가락 스무 개가 나타나며, 아홉 번째 7일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비로소 나타나며, 열 번째 7일에는 음성이 구족하며, 열한 번째 7일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개통하며, 열두 번째 7일에는 장과 관절에 구멍이 생기며, 열세 번째 7일에는 배고프고 목마른 상태가 생기며, 열네 번째 7일에는 9만 개의 힘줄이 생기며, 열다섯 번째 7일에는 8만 개의 맥脈이 생기며, 열여섯 번째 7일에는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통하고, 열일곱 번째 7일에는 식도食道가 점점 넓어지고, 열여덟 번째ㆍ열아홉 번째 7일에는 6근根이 구족하고, 스무 번째 7일에는 골절骨節이 두루 생기며, 스물한 번째와 스물두 번째와 스물세 번째 7일에는 피와 살과 피부가 생기며, 스물네 번째와 스물다섯 번째 7일에는 피와 살과 피부가 자라나고, 스물여섯 번째 7일에는 머리털과 손톱ㆍ발톱이 생기며, 스물일곱 번째 7일에는 선과 악의 모습이 나뉘고, 스물여덟 번째 7일에는 여덟 가지 상념[八想]이 망령되이 생기고, 스물아홉 번째와 서른 번째 7일에는 흑黑과 백白이 업을 따르고, 서른한 번째에서 서른여섯 번째까지의 7일에는 몸의 모습이 갖춰지고, 서른일곱 번째 7일에는 염念과 욕欲이 생겨나고, 서른여덟 번째 7일에는 만 10개월이 되어 어머니의 산문産門을 향해서 거꾸로 태어난다.”[궁자함宮字函 제5권]
『법원주림』에서 말하였다.
“서른여덟 번의 7일 동안 어머니의 뱃속에 있으면서 그 본래의 행실에 따라 자연히 바람이 일어나는데, 숙세宿世의 행실이 선한 자는 문득 향기로운 바람이 있어서 그 몸의 뜻에 맞고, 뼈와 관절도 단정해서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본래의 행실이 악한 자는 냄새나는 바람을 일으켜서 마음의 뜻에 맞지 않고, 바람이 그 뼈와 관절에 불어서 치우치고 삿되고 부스럼이 있고 굽어져 단정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기뻐하질 않는다.”

또 말하였다.
“태胎 안에서 서른여덟 번의 7일간을 지내면서 지체肢體의 나뉨이 모두 갖춰지고, 이로부터 다시 4일이 지나면 비로소 출생한다. 이는 기간을 다 채움을 말하는 것이고, 혹은 9개월을 지내고 혹은 그보다 더 지나친다. 만약 오직 8개월만 지난다면 이를 원만하다고 하고, 만약 7개월이나 6개월을 지난다면 원만하지 않다고 하니, 다시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벽자함壁字函 제9권]


승려를 욕한 우매함 때문에 태胎 안에 오래 있었고
잉태한 아이가 지혜로움은 어머니가 총명하기 때문이다.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장자長者의 부인이 잉태했는데, 만 10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에 몸이 무거워져서 다시 한 아이를 낳았는데, 먼저 잉태한 아이는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 있었다. 이처럼 차례대로 잉태해서 아홉 자식을 각기 만 10개월을 지내고서 출산했는데, 오직 먼젓번의 한 아이만이 그대로 태 안에 있으면서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 어머니의 병환이 심해져서 치료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인이 권속들에게 부촉하여 말했다.
‘내 뱃속의 아이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죽지 않았습니다. 내가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배를 열어서 아이를 꺼내세요.’
말을 마치자 기운이 끊어져 죽었다. 시신을 장지에 보낸 뒤 무덤 사이에서 의사 기바耆婆를 청해 배를 열어 살펴보았다. 과연 아이 하나를 얻었는데, 머리털이 호호백발이었다. 아이가 모든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험한 말[惡口]로 승려를 욕했기 때문에 지금 어머니의 태에 있으면서 60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이 아이의 선근善根이 이미 성숙했음을 아시고서 시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장로長老 비구였는가?
‘예, 실로 그렇습니다.’
대중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이 늙은 아이는 숙세宿世에 무슨 업을 지었길래 태 안에서 이토록 오래 머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迦葉부처님 당시에는 모든 비구가 여름엔 좌선을 하면서 안거安倨를 지냈는데, 한 비구를 유나維那로 뽑고 공동으로 제한制限을 세웠다.
≺이 여름철에 좌선을 하면서 도를 얻은 자에겐 자자自恣를 허락하고, 만약 도를 얻지 못한 자에겐 자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직 이 유나만이 홀로 도를 얻지 못하자, 대중들이 모두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는 마음에 회한과 고뇌를 품고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승려의 일을 관리해서 안온하게 도를 행할 수 있도록 했는데, 오히려 나의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을 허락하지 않는구나.≻
그리고는 승려들을 욕하자 곧바로 끌려가 방에 갇혀서는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로 하여금 항상 어둠 속에 처하게 해서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지금 이 어두운 방에 처해 있듯이 말이다.≻
이 말을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마쳤는데 오랫동안 지옥에 떨어졌다가 비로소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태 안에서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을 받은 뒤에는 부처를 따라 출가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닦아 익혀서 아라한阿羅漢의 과보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자 모든 비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늙은 아이 비구가 숙세에 어떤 복을 심었기에 출가해서 아라한의 과보를 증득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나를 맡아서 대중들의 일을 관리한 인연으로 나를 만나 도를 얻은 것이다.’ ”

또 말씀하셨다.
“옛날에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질사蛭駛였다. 그에겐 두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아들은 장과長瓜이고 딸은 사리舍利였다. 누이와 동생이 총명해서 둘 다 논쟁을 잘했다. 장과가 매번 누나에게 이겼는데, 누나가 임신을 한 후에는 동생이 누나만 못했다. 그 때 장과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의 누나가 논쟁에 뛰어난 것은 분명 잉태한 아이의 지혜의 힘일 것이다. 만약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면, 논쟁에서 반드시 나를 이기리라. 나는 마땅히 제방諸方을 유행하면서 널리 배워야 하리라.’
누나는 달을 다 채우고서 남자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사리불舍利弗이었다. 과연 모든 논論에 통달해서 대적하기가 힘들었다. 그 때 모든 범지梵志가 북을 쳐서 나라 사람들 18억의 대중을 불러 모아 논쟁의 마당을 마련했다. 그 때 사리불이 단계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자, 원로 범지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모든 논사論士들이 저 어린이를 대적해서 이겨도 영예롭지 못할 것이고,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즉시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젊은 바라문婆羅門들은 사리불과 함께 대략적인 문답을 했는데, 그 바라문들은 말이 궁해지고 이치가 꿀리자 점차 서로에게 미루었다. 마침내 윗자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사리불을 이기지 못했다. 사리불이 논쟁에서 이긴 뒤에는 명성이 멀리 퍼졌으며, 홀로 뛰어나서 짝할 이가 없었다. 나중에 사리불은 출가해서 아라한 과보를 얻었다.”[음자함淫字函 제10권]


16) 오온품五蘊品[15칙]

5온은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고
4대大는 땅ㆍ물ㆍ불ㆍ바람이다.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에서 말하였다.
“5온蘊이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말한다. 색온色蘊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수온受蘊은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의 세 가지를 감수[領納]하는 것이며, 상온想蘊은 온갖 경계를 취하는 것이며, 행온行蘊은 온갖 심소법心所法이 탐욕을 쉬지 않는 것이며, 식온識蘊은 반연되는 경계를 요별了別함을 그 성품으로 삼는 것인데, 또한 심의心意라 칭하면서 섭수하는 바를 채집한다.”[측자함則字函]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선현善現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행할 때 여실히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안다면, 능히 5온을 배웠다고 할 수 있느니라.’
선현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 뜻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만약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여실히 색의 모습을 알고, 여실히 색의 생성을 알고, 여실히 색의 소멸을 알고, 여실히 색의 진여眞如를 안다면, 이는 여실히 색을 아는 것이 된다.
선현아, 여실히 색을 알지니, 색은 마치 거품 덩어리의 성품이 견고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이를 여실히 색의 모습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선현아, 여실히 색을 알지니, 색은 와도 좇아온 곳이 없고 가도 향하는 곳이 없어서 비록 오고 감이 없더라도 생성의 법과 상응하느니라. 이를 여실히 색의 생성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선현아, 여실히 색을 알지니, 색은 와도 좇아온 곳이 없고 가도 향하는 곳이 없어서 비록 오고 감이 없더라도 소멸의 법과 상응하기 마련이다. 이를 여실히 색의 소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선현아, 여실히 색을 알지니, 색은 생기함도 없고 소멸함도 없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오염도 없고 청정도 없으며, 늘어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어서 항상 그 성품대로 허망하지도 않고 변천하지도 않는다. 이를 여실히 색의 진여眞如를 안다고 하는 것이다.[나아가 수受도 물거품과 같음을 알고, 상想도 아지랑이와 같음을 알고, 행行도 파초와 같음을 알고, 식識도 온갖 환영과 같음을 아니, 모두가 허망한 모습으로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면서 생멸과 상응한다. 여실히 그 뜻을 아는 것을 색色을 예로 들어서 밝힌 것이다.]’
다시 부처님께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색의 자성自性이 공空하다고 여실히 색을 알고, 나아가 식의 자성이 공하다고 여실히 식을 안다면, 이는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능히 5온을 배울 수 있다.’ ”[위자함爲字函 제4권]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5음陰이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말한다. 역력歷歷히 분명한 것이 곧 식음識陰이고, 감수[領納]가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곧 수음受陰이고, 마음이 이 이치를 반연하는 것이 곧 상음想陰이고, 행이 이 이치를 사용하는 것이 곧 행음行陰이고, 참된 성품을 오염시키는 것이 곧 색음色陰이다.
이 5음이라는 것은 그 전체[擧體]가 곧 일념一念이며, 일념이라는 것은 그 전체[擧體]가 전부 오음이다. 이 일념 속에 주재자가 없는 것이 곧 인공(人空:주체의 공함)의 지혜이며, 환화幻化처럼 보는 것이 곧 법공(法空:객체의 공함)의 지혜이다.”[경자함輕字函 제9권]

『원각경』에서 말하였다.
“지금 내 몸은 4대大가 화합한 것이니, 이른바 머리털ㆍ손톱ㆍ발톱ㆍ치아ㆍ피부ㆍ살ㆍ근육ㆍ뼈ㆍ골수ㆍ뇌ㆍ더러운 색신은 모두 땅으로 돌아가고, 침ㆍ콧물ㆍ고름ㆍ피ㆍ진액津液ㆍ점액ㆍ거품ㆍ가래ㆍ눈물ㆍ정기精氣ㆍ대소변은 모두 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면서 굴러가는 것은 바람으로 돌아간다. 4대가 각기 분리되면, 지금의 허망한 몸은 마땅히 어디에 있는가? 즉, 이 몸은 필경에는 실체가 없으니, 화합해서 모습이 된 것이 실제로는 환화幻化와 동일함을 알 것이다.
네 가지 연緣이 임시로 합쳐지면 망령되게 6근根이 있으며, 6근과 4대가 안팎에서 합성되면 망령되게 연기緣氣가 있게 되고, 그 안에서 쌓여 뭉치면 연緣의 모습이 있는 듯하니, 이를 임시로 마음이라 칭한다.
선남자야, 이 허망한 마음은 만약 6진塵이 없으면 있을 수 없으며, 4대가 분해되면 진塵도 얻을 수 없으니, 그 가운데서 반연된 진塵도 흩어져 소멸하면서 필경에는 반연된 마음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저 중생의 환신幻身이 소멸하기 때문에 환심幻心도 소멸하고, 환심이 소멸하기 때문에 환진幻塵도 소멸하며, 환진이 소멸하기 때문에 환의 소멸도 멸하며, 환의 소멸이 멸하기 때문에 환幻 아닌 것은 소멸하지 않으니, 비유하면 마치 거울을 갈아서 더러운 때가 다하면 밝게 나타나는 것과 같다.”[가자함可字函]

『대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문】 4대大의 종자는 일체의 시時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까?
【답】 어떻게 그런 줄 알겠는가? 가령 『입태경入胎經』에서는 부처님께서 경희慶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의 갈라람羯邏藍은, 만약 지계地界는 있는데 수계水界가 없다면 마땅히 말라서 흩어져야 하지만, 지금 흩어지지 않는 것은 물이 섭수하기 때문이다. 만약 수계水界는 있으나 지계地界가 없다면 마땅히 흘러가야 하지만, 지금 흐르지 않는 것은 땅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계와 수계는 있는데 화계火界가 없다면 마땅히 썩어야 하지만, 지금 썩지 않는 것은 불이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 가지 계界는 있지만 풍계風界가 없다면 마땅히 증장增長하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 증장하는 것은 바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휴자함虧字函 제7권]


6근根ㆍ6식識이 6진塵과 합쳐지니
12처處요 18계界로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6근根이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의 근根을 말한다. 6진塵이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을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은 빛깔의 티끌[色塵]이 되고, 귀로 듣는 것은 소리의 티끌[聲塵]이 되고, 코로 냄새 맡는 것은 냄새의 티끌[香塵]이 되고, 혀로 맛보는 것은 맛의 티끌[味塵]이 되고, 몸으로 오염되는 것은 감촉의 티끌[觸塵]이 되고, 뜻이 집착하는 것은 법의 티끌[法塵]이 되니, 이를 합쳐서 12처라 한다.
다음에 6식識이라는 것은, 본래 스스로의 일심一心이 6근의 문두門頭를 두루 말미암아서 6식을 이루니, 보는 걸 좇아서 안식眼識이 되고, 듣는 걸 좇아서 이식耳識이 되고, 냄새 맡는 걸 좇아서 비식鼻識이 되고, 맛보는 걸 좇아서 설식舌識이 되고, 오염된 걸 좇아서 신식身識이 되고, 분별하는 걸 좇아서 의식意識이 되니, 이처럼 근根ㆍ진塵ㆍ식識의 세 가지가 화합해서 18계界가 된다. 만약 자성自性이 모두 공空함을 여실히 안다면, 이것은 6근ㆍ6진ㆍ6식을 능히 배울 수 있는 것이라 한다.”[위자함爲字函 제4권]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여덟 종류의 식識이 있으니,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의 6식識과 일곱째 말나식末那識과 여덟째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문】 이 여덟 가지 식의 행상行相은 어떻습니까?
【답】 이 여덟 가지 식은 세 가지 능변(能變:능동적인 변화)을 갖추고 있다. 첫째는 이숙異熟이니, 곧 제8식으로서 이숙의 성품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량思量이니, 곧 제7식으로서 항상 사량을 살피기 때문이다. 셋째는 요경了境이니, 곧 전前 6식으로서 경계를 대략 분별하기 때문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송頌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타나식阿陀那識[이곳 말로는 집지식執持識]은 매우 깊고 미세하니
모든 종자種子가 폭포처럼 흐른다.
나는 어리석은 이에겐 펼쳐서 말하지 않으니
그들이 분별하고 집착하여 나라 할까 걱정해서이다.

이 제8식은 능히 전前 6식과 전식(轉識:제7식)을 일으키기 때문에 제8식이니, 이른바 전생[前世] 가운데 선善ㆍ불선不善의 업을 인因으로 삼아서 금생今生을 초래해 감응한다. 따라서 제8 이숙異熟의 마음은 과果이다.
【문】 이 식은 보편적이라서 범부와 성인의 경계에 통한다. 마땅히 이 식을 여의어서 따로 참 성품이 있는가 회복하면 되는 것인가?
【답】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이 식의 명자名字를 얻으면 합치지 않아도 합쳐지면서 그 장(藏:갈무리)의 뜻을 이룬다. 이 아뢰야식은 곧 진심眞心이니, 자성自性을 지키지 않고 오염과 청정의 연緣을 따르면서 합치지 않아도 합치면서 능히 일체의 진眞과 속俗의 경계를 함장含藏하기 때문에 장식藏識이라 한다. 마치 밝은 거울이 영상影像과 합치지 않아도 영상을 포함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화합의 뜻 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만약 화합하지 않는 뜻에서는 곧 체體가 항상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을 진여眞如라 한다. 이처럼 합치는 것과 합치지 않는 것을 말미암아서 두 가지 뜻으로 나누지만, 근본 하나의 진심眞心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아뢰야식이 곧 여래장如來藏임을 믿지 않아서 따로 진여의 이치를 구한다면, 마치 영상을 여의고 거울을 찾는 것과 같다. 이는 곧 나쁜 지혜라서 불변수연(不變隨緣)77 변하지 않으면서 연緣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과 수연불변(隨緣不變)88 연緣에 따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을 아직 요달하지 못해서 둘이라는 집착을 일으킨다.”

『기신론起信論』에서 말하였다.
“네 종류의 법으로 훈습熏習하는 뜻이 있으니, 첫째는 청정으로 이른바 진여이며, 둘째는 오염으로 이른바 무명無明이며, 셋째는 망심妄心으로 이른바 업식業識이며, 넷째는 망진妄塵으로 이른바 6진塵이 된다.”[가자함駕字函 제7권]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문】 마음[心]ㆍ뜻[意]ㆍ식識에는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답】 차별이 있지 않으니, 마음이 곧 뜻이고 뜻이 곧 식으로서 모두 같은 의미이다. 마치 불을 불이라 이름 붙이기도 하고, 불꽃이라 이름 붙이기도 하고, 탄다고 이름 붙이기도 하는 것과 같다.”[인자함仁字函 제9권]
『성유식론成唯識論』 가타伽他에서 말하였다.
“장식藏識을 마음[心]이라 하고, 사량의 성품을 뜻[意]이라 하고, 모든 경계의 모습을 능히 분별하는 것을 식識이라 한다.”[측자함則字函 제5권]

『섭대승론攝大乘論』에서 말하였다.
“아뢰야식을 심체心體로 삼고 이로 말미암아서 종자가 되고, 뜻과 식이 전변한다. 어떤 인연 때문에 또한 마음이라 한다고 말하는가? 온갖 법의 훈습으로 말미암아서 종자가 쌓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어떤 이유로 성문승 가운데 이 마음을 설하지 않고, 아뢰야식이라 이름하고 아타나식이라 이름하는가? 이로 말미암아서 깊고 세밀한 경계가 섭수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문은 일체 경계와 지혜의 처소에서 전변하지 않음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비록 이 설명이 없었지만 지혜를 이루고 해탈을 성취하기 때문에 설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모든 보살이라면, 일체 경계와 지혜의 처소에서 전변함을 정하기 때문에 설한다. 만약 이 지혜를 여의어서 바뀌지 않는다면,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증득한다. 송頌에서 말하였다.
‘모든 법의 일체 종자식種子識을 섭수하여 갈무리하기 때문에 아뢰야식이라고 하며, 승리자인 내가 열어 보이노라.’ ”[엄자함嚴字函 제3권]

『대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문】 하나의 몸 속에 12처가 있는데, 어떻게 12처가 건립됩니까?
【답】 그 자성自性이 개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12처라고 말한다. 비록 하나의 몸에 있더라도 열두 가지의 자성自性의 작용에는 차별이 있기 때문에 서로 섞이지 않는다. 마치 한 방 안에 있는 열두 명의 기예技藝가 각기 다른 것과 같다. 비록 하나의 방은 동일하지만, 열두 가지 자성의 작용이 있다.”[염자함廉字函 제3권]


예리한 근기에겐 즉시 5온을 설하고
둔한 근기에겐 18계를 자세히 설명한다.

『대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문】 부처님께선 교화 받는 중생[有情]을 위해 온蘊ㆍ처處ㆍ계界의 세 가지 법을 어떻게 자세하거나 간략하게 설명합니까?
【답】 둔한 근기를 위해선 18계를 설하고, 중근기를 위해선 12처를 설하고, 예리한 근기를 위해선 5온을 설한다.”[염자함廉字函 제2권]


중생과 보살은 다 마음이 지은 것이고
지옥과 천당도 역시 마음이 초래한다.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부처도 지을 수 있고, 마음은 중생도 지을 수 있으며, 마음은 천당天堂도 짓고, 마음은 지옥도 짓는다. 마음이 다르면 천 가지 차별이 다투어 일어나고, 마음이 평등하면 법계法界가 평탄해진다. 마음이 범속하면 3독毒에 얽매이고, 마음이 성스러우면 6신통六通이 자재롭다. 마음이 공空하면 한 길[一道]이 청정하고, 마음이 유有이면 만 가지 경계가 종횡한다. 착한 인因은 끝내 착한 연緣을 만나고, 악한 행동은 악한 경계에서 빠져나가기 힘들다. 구름과 안개를 밟고서 감로수를 마시는 것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고, 연기 자욱한 화염 속에 누워서 고름과 피를 먹는 것도 다 스스로 초래한 것이지 하늘이 낳은 바도 아니고 땅이 낸 것도 아니다. 단지 최초의 일념一念이 존재할 뿐이다.”[책자함策字函 제5권]


3제際99 3제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셋이다.
에서 마음을 구해도 얻을 수 없고
연緣에 따라서 사물에 응하니 어찌 무無가 아니겠는가.

『종경록』에서 『금강경』을 인용해서 말하였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현재를 인因해서 과거를 세우고 과거를 인해서 미래를 세우니, 현재가 이미 머물지 않아서 과거도 또한 생김이 없다. 서로 검토해 보아도 서로 없으니, 철저히 공적空寂하다. 다만 미세한 터럭이라도 일어나는 곳이 있다면 모두 식識으로부터 생긴 것이다.
이미 없음을 이제 미루어 보니, 분별이 저절로 멸한다. 분별이 이미 멸하니 경계가 의지할 바가 없다. 마치 물에 의지해서 파도가 일어나고 거울에 의지해서 상像이 나타나다가, 물이 없으면 파도가 일어나지 않고 거울이 없으면 상像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법이 있고 법이 없는 것에 상관없이 단지 식識이 생하고 식이 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게송에서 ‘법은 분별로부터 생기고 분별을 따라서 소멸한다’고 한 것과 같다. 멸하는 것은 모든 분별이며 법은 생기거나 소멸하지 않으니, 이렇게 통달通達하면 감관[根]과 경계가 활연해진다. 자기의 각[自覺]이 이미 밝아지고 나서는, 또한 능히 남을 이롭게 하면서 널리 비출 수 있다. 그러므로 경經의 게송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궁극적으로 허망함을 여의면
번뇌[染]가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고
청정하고 미묘한 법신法身이
고요히 일체에 감응한다.”[경자함輕字函 제6권]


대략적으로 유심有心을 일으켜서 이해하는 것은
꿈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참[眞]이 아니다.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문】 무심無心이라는 것은 마땅히 마음을 여의는 것이 무심인가, 마음에 즉卽해서 무심을 얻는 것인가?
【답】 마음에 즉해서 무심을 얻는 것이다.
【문】 마음에 즉함은 유심인데, 어째서 무심을 얻는다고 하는가?
【답】 마음의 모습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분별이 없는 것이다.
【문】 그것이 어찌 변별의 앎이 아니겠는가?
【답】 변별의 앎에 즉해서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무심이다. 어찌 아주 작용이 없어야 비로소 무심이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이 사물을 비추는 것이 어찌 유심이겠는가? 모든 중생은 항상 스스로 무심이어서 마음의 체體가 본래 항상 적적寂寂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적적하면서도 항상 작용하고 작용하면서도 항상 적적하니, 경계를 따라 비추어 변별하는 것은 모두 참된 성품[實性]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유심이 비로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중생은 자신의 마음이 항상 적적함을 요달하지 못하고 망령되게 유심을 계교해서 마음이 문득 경계를 이룬다.
그리하여 마음에 즉해서 무심이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이치[理]이고, 이치에 즉해서 이치가 없기 때문에 이치가 항상 마음이고, 이치가 항상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의 모습을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항상 이치이기 때문에 마음의 모습을 얻지 못하고, 마음의 모습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곧 중생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모습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곧 부처도 생기지 않는다. 중생과 부처가 모두 생기지 않기 때문에 곧 범부와 성인이 항상 스스로 평등한 법계法界의 성품이다. 순수하고 한결같은 도道가 청정할 뿐 다시 다른 법은 없다.
반드시 알라. 다만 유심으로 분별하여 해석을 짓는 곳은 모두 허망하여서 마치 꿈속과 같다. 만약 완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솜털만큼의 보는 바도 또한 꿈속의 일과 같다. 다만 무심을 얻으면 곧 깨달음과 동일하여 그 후에는 모든 경계가 끊어진다. 하지만 한 티끌이라도 있어 수증修證을 지을 수 있다면, 불가사의한 이해의 처소는 모두 삼계의 꿈속에서 본 바를 여의지 못한다. 경에서는 ‘조그만 법이라도 얻을 수 없다면 부처님께서 곧 수기授記한다’고 하였다.”[가자함駕字函 제5권]


17) 번뇌품煩惱品[25칙]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세 가지는 선한 것이 아니고
과보ㆍ업ㆍ번뇌의 세 가지는 장애[障]의 원인이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악하고 선하지 않은 것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다. 탐욕에 다시 세 가지가 있는데, 이른바 상품上品ㆍ중품ㆍ하품이다. 상품의 탐욕은 욕망의 경계[欲境]라는 이름만 들어도 온 마음이 뛰면서 마음 깊이 환희하며, 욕망의 허물을 살피지 않고 도리가 아닌 것을 추구하며, 마음과 마음이 상속해서 잠시도 버리지 못하니, 오직 미묘하고 좋은 것만 볼 뿐 허물이고 우환임을 알지 못한다. 이런 부류들은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악취惡趣에 떨어진다. 중품中品의 탐욕은 욕망의 경계를 떠났을 때는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품下品의 탐욕은 단지 함께 웃고 말해도 욕정이 문득 쉰다.
성냄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상품의 성냄은 분노를 일으키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눈이 흐트러지니, 어떤 경우엔 무간無間지옥을 짓고, 어떤 경우엔 정법正法을 비방하고, 어떤 경우엔 다시 나머지 온갖 무거운 죄업을 짓는다. 중품의 성냄은 성냄 때문에 비록 온갖 악을 짓더라도 곧 후회하는 것이다. 하품의 성냄은 마음으로도 싫어하거나 한스러워하지 않고 단지 입으로만 꾸짖고 깎아내려도 문득 후회를 하는 것이다.
어리석음에도 세 가지 품이 있으니, 반드시 이치대로 알아야 한다. 비록 이렇게 관찰하더라도, 모든 법이 다 허깨비[幻] 같고 꿈 같아서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지만, 전도되었기 때문에 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외적인 경계를 소멸하고 내적인 마음이 적정하면 능행能行과 소행所行의 법을 보지 않아서 둘이 없고 차별도 없으니, 자성自性을 여의기 때문이다.”[과자함菓字函 제6권]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에서 말하였다.
“세 종류의 장애가 있으니, 이른바 업장業障ㆍ번뇌장煩惱障ㆍ보장報障이다. 성스러운 도[聖道]와 성스러운 도의 방편을 장애하므로 장障이라 이름한다.
업장이라는 것은 5무간업無間業이니, 이른바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아라한을 죽이고, 승단을 파괴시키는 것이고, 악한 마음으로 부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다. 이러한 업을 짓고 나면 반드시 다음에는 무간지옥에 태어난다.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며, 나머지 세 가지는 복전福田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뇌장이라는 것은, 이른바 근勤번뇌와 이利번뇌를 말한다. 근번뇌는 자주 행하는 번뇌이고, 이번뇌는 번뇌를 증상增上하여 번뇌를 현행現行시키는 것이니, 이를 장애라 이름한다.
보장이라는 것은 머무는 바에 따른 과보이니, 성도聖道의 그릇이 아니면 과오와 악의 보답을 받기 때문이다.”[도자함都字函 제2권]


3독毒과 3루漏 나아가 7루漏가 있으며
5개蓋와 5욕欲과 아울러 7만慢이 있다.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3독毒이라는 것은 세 가지 착하지 못한 근根이 열 가지 악업을 일으켜서 열 가지 악한 곳에 떨어지는 것이다.
【답】 생명을 죽이는 것에 세 종류가 있으니, 혹은 탐욕으로부터 생기고 혹은 성냄으로부터 생기고 혹은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긴다. 나아가 삿된 견해도 또한 이와 같다.”[잠자함箴字函 제6권]
『아비달마론阿毘達磨論』에서 말하였다.
“3루라는 것은,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마음을 연속 적으로 쏟아 흘려 흩어지게 함[流散]이 그치지 않기 때문에 누漏라고 이름한다.”[보자함寶字函 제7권]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욕루라는 것은 일체 내적인 악의 각관覺觀이 외부의 연緣을 말미암기 때문에 욕欲이라고 이름하는데, 이를 욕루라 칭한다. 유루라는 것은 색계와 무색계 안의 모든 악법과 외적인 모든 인연이니, 이를 유루라 칭한다. 무명루라는 것은, 아我와 아소我所를 능히 요달해 알지 못하고 안팎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무명루라 칭한다.”[솔자함率字函 제7권]

『화엄론華嚴論』에서 말하였다.
“7루라는 것은, 이른바 첫째는 견해[見]이고, 둘째는 모든 감관[根]이고, 셋째는 잊어버림[忘]이고, 넷째는 악이고, 다섯째는 친근함이고, 여섯째는 애착[愛]이고, 일곱째는 염念이다.”[60권]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5개蓋라는 것은, 이른바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회개掉悔蓋ㆍ의개疑蓋이다.”[성자함盛字函 제8권]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5욕欲이라는 것은, 이른바 눈이 빛깔을 알고, 귀가 소리를 알고, 코가 냄새를 알고, 혀가 맛을 알고, 몸이 감촉을 아는 것이다.”[흥자함興字函 제5권]
『화엄론』에서 말하였다.
“7만慢이라는 것은, 이른바 교만憍慢ㆍ만만慢慢ㆍ과만過慢ㆍ비만卑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사만邪慢이다.”[57권]


3결結과 5결, 나아가 9결이 있고
10사使와 10전纏, 아울러 5견見이 있다.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에서 말하였다.
“3결結이라는 것은, 이른바 살가야견薩迦耶見과 계금취견戒禁取見과 의견疑見이다.”[벽자함壁字函 제6권]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5하분결下分結이라는 것은, 이른바 신견身見과 금취禁取와 의疑와 탐욕과 성냄[瞋恚]이다.”[성자함盛字函 제8권]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말하였다.
“5상분결上分結이라는 것은, 이른바 색色에 대한 애착, 무색無色에 대한 애착ㆍ무명無明ㆍ도掉ㆍ만慢이다.”[심자함深字函 제2권]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9결結이라는 것은, 애결愛結ㆍ에결恚結ㆍ만결慢結ㆍ무명결無明結ㆍ견결見結ㆍ취결取結ㆍ의결疑結ㆍ질결嫉結ㆍ간결慳結이다.”[규자함規字函 제4권]

『화엄론』에서 말하였다.
“10사使라는 것은, 첫째는 탐욕[貪]이고, 둘째는 성냄[瞋]이고, 셋째는 어리석음[癡]이고, 넷째는 만慢이고, 다섯째는 의疑이고, 여섯째는 신견身見이고, 일곱째는 변견邊見이고, 여덟째는 견취見取이고, 아홉째는 계금취戒禁取이고, 열째는 사견邪見이다.”[제61권]

『능엄경楞嚴經』 주석에서 말하였다.
“살가야견薩迦耶見이란, 이곳 말로는 유신견有身見이니, 몸을 집착해서 아我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변견邊見이란 아我의 단멸과 항상함[斷常]에 집착하는 것이니, 두 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계금취戒禁取란 구속된 삶[拘生] 등을 집착해 지니는 것이니, 계戒가 천상에 태어나는 인因이 되기 때문이다. 견취見取라는 것은, 앞서의 모든 견見을 집착해서 뛰어나다 여기고 능能이라 하는 것이며, 혹은 일체 유루有漏 등의 법을 집착하는 것이니, 즐겁고 청정한 것을 곧 열반이라 망령되이 일컫기 때문이다. 집견執見이라는 것은 곧 명칭을 취하는 것이니, 견취見取가 되기 때문이다. 사견邪見이라는 것은 인과가 없다고 배척해서 착한 종자를 끊어 버리는 것이니, 그 이름이 사견이 되기 때문이다.”[제8권]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10전纏이라는 것은, 분전忿纏ㆍ복전覆纏ㆍ수전睡纏ㆍ도전掉纏ㆍ면전眠纏ㆍ회전悔纏ㆍ질전嫉纏ㆍ간전慳纏ㆍ무참전無慚纏ㆍ무괴전無愧纏이다.”[잠자함箴字函 제6권]

『비바사론』에서 말하였다.
“62견見이라는 것은, 5온蘊 속에서 각기 4견見이 일어나니, 4ㆍ5는 20이요, 3세世에 각기 20이니 통틀어 60이 되고, 온몸이 곧 신神인 것과 몸이 신神과는 다르다는 이 2견見을 합해서 총합 62견이 된다. 또한 색온色蘊 중에서는 색에 즉卽한 것은 아我이고, 색을 여읜 것은 비아非我이고, 아我 속에 색이 있고 색 속에 아我가 있으니, 5온 가운데 이 네 가지를 갖추고 있다. 경전[經]에서는 ‘몸이 없으면 또한 견見도 없다’고 하였다.”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있고
증상연增上緣과 차제연次第緣이 있다.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 말하였다.
“수면隨眠이라는 것은, 이른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성품 때문에 두 가지로 취한 습기習氣이다. 저 수면이라 이름붙인 것은, 유정有情을 착 달라붙어 쫓아다니면서 수면에 굴복한 장식藏識이니, 곧 소지장과 번뇌장의 씨앗이다. 번뇌장이라는 것은, 변계소집遍計所執에 집착해서 실아實我의 살가야견으로 상수上首를 삼는 것이니, 120의 근본번뇌根本煩惱와 그와 동등한 흐름인 온갖 수번뇌隨煩惱가 모두 유정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혀서 능히 열반을 장애하는데, 이를 번뇌장이라 한다. 소지장이라는 것은, 변계소집에 집착해서 실법實法의 살가야견으로 상수를 삼는 것이니, 견見ㆍ의심ㆍ무명無明ㆍ애착ㆍ성냄ㆍ오만 등이 아는 바의 경계인 전도됨이 없는 성품을 덮어서 능히 보리菩提를 장애하는데, 이를 소지장이라 한다.”[측자함則字函 제9권]

『섭대승론』에서 말하였다.
“몇 가지 연緣이 능히 6식識을 낳는가? 세 가지 연緣이 있으니, 이른바 증상연增上緣ㆍ연연緣緣ㆍ차제연次第緣이다. 해석하여 말하면, 근根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증상연이고, 진塵을 반연하기 때문에 연연이고, 앞서의 식識이 소멸한 후에 식이 생기기 때문에 차제연이다. 앞서의 식識이 능히 나중의 식識과 함께하면서 3시(時:과거ㆍ현재ㆍ미래) 사이에서 간격이 없기 때문에 차제라고 한다.”[엄자함嚴字函 제5권]

『유가론』에서 말하였다.
“번뇌의 차별에는 종류가 많으니, 이른바 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ㆍ폭류暴流ㆍ액枙ㆍ취取ㆍ계繫ㆍ개蓋ㆍ주올株杌ㆍ구垢ㆍ상해常害ㆍ전箭ㆍ소유所有ㆍ근根ㆍ악행惡行ㆍ누漏ㆍ궤匱ㆍ소燒ㆍ뇌惱ㆍ유쟁有諍ㆍ화火ㆍ치연熾然ㆍ조림稠林ㆍ구애拘碍이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서 능히 고苦와 화합하기 때문에 결結이라 하고, 선행을 바라는 바에 따르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박縛이라 하고, 일체 세간에서 증대하는 종자가 달라붙어 따라다니는[隨逐] 것이기 때문에 수면隨眠이라 하고, 전도되고 오염된 마음이므로 수번뇌隨煩惱라 하고, 자주 현행現行을 일으키기 때문에 전纏이라 하고, 깊어서 건너기 어렵기 때문에 흐름을 따라 표류하므로 폭류暴流라 하고, 삿된 행의 방편이므로 액枙라 하고, 능히 자신의 몸을 취해서 상속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취取라 하고, 해탈하기 어려우므로 계繫라 하고, 진실한 뜻을 덮기 때문에 개蓋라 하고, 좋은 가전稼田을 파괴하기 때문에 주올株杌이라 하고, 자성自性이 오염되었으므로 구垢라 하고, 항상 능히 해를 끼치기 때문에 상해常害라 하고, 정靜의 모습이 아니고 멀리 따르는 바이기 때문에 전箭이라 하고, 능히 사事에 의거해서 섭수하기 때문에 소유所有라 하고, 착하지 않은 것이 의거하는 바이기 때문에 근根이라 하고, 삿된 행동의 자성自性이기 때문에 악행惡行이라 하고, 그 마음을 유동流動하기 때문에 누漏라 하고, 능히 받아 쓰는 것으로 하여금 염족厭足함이 없게 하기 때문에 궤匱라 하고, 능히 바라는 바로 하여금 늘 궁핍하게 하기 때문에 소燒라 하고, 능히 쇠퇴와 손실을 이끌기 때문에 뇌惱라 하고, 능히 투쟁과 논쟁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유쟁有諍이라 하고, 쌓아 놓은 온갖 선근의 장작을 태우기 때문에 화火라 하고, 큰 열병과 같기 때문에 치연熾然이라 하고, 갖가지 자기 몸이 큰 나무의 적집積集이기 때문에 조림稠林이라 하고,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갖가지 미묘한 욕망의 티끌[欲塵]에 즐거이 탐착하도록 함으로써 능히 증득한 출세간법出世間法을 장애하기 때문에 구애拘碍라고 한다.”[습자함習字函 제8권]

다시 논에서 말하였다.
“수번뇌隨煩惱라는 것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착하지 않은 근[不善根]이다. 만약 성냄에 얽히면 얼굴 표정[面貌]이 흥분되면서 일그러지기[奮裂] 때문에 분忿이라 하고, 안으로는 원결怨結을 품기 때문에 한恨이라 하고, 은밀히 온갖 악을 갈무리하기 때문에 복覆이라 하고, 더러움에 물듦에 놀라고 당황하기 때문에 열뇌熱惱라 하고, 다른 이의 잘됨[榮]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질嫉이라 하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資生具]에 대해 비루하고 인색하기 때문에 간慳]이라 하고, 상대를 속이려고 안으론 다른 꾀를 품으면서 밖으론 다른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 광誑이라 하고, 마음이 정직하지 못해서 이해와 행동이 삿되고 왜곡되기 때문에 첨諂이라 하고,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참慚이라 하고, 지은 죄에 대해 남에게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괴愧라 하고, 남은 열등하고 자신은 뛰어나다고 여겨서 마음을 우쭐대기 때문에 만慢이라 하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상만增上慢이라 하고, 실제로 덕이 없으면서도 자기가 덕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만邪慢이라 하고, 마음에 더러움[染汚]을 품고 영예를 믿고 기대서 그 모습[形相]이 산만 방자하기[疏誕] 때문에 교憍라 하고, 온갖 착한 일[善品]에 대해 부지런히 닦는 걸 즐기지 않고 온갖 악법에 대해 마음의 방비가 없기 때문에 방일放逸이라 하고, 모든 존중의 대상과 복전福田에 대해 마음이 겸손하거나 공경하지 않기 때문에 오傲라 하고, 마음에 더러움을 품고서 자기의 덕을 드러내려고 거짓으로 위의威儀를 나타내기 때문에 교矯라 한다.”[선자함善字函 제1권]

『보적경』에서 말하였다.
“세 가지 일이 다 미박微薄을 얻는다. 만약 재물을 베풀 때 마음에 탐욕의 집착이 없다면, 이를 탐박貪薄이라 하고, 구걸하는 자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진박瞋薄이라 하고, 만약 보시布施를 하고 나서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에 회향했다면 이를 치박癡薄이라 한다.”[시자함始字函 제2권]


무명無名과 법성法性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생사生死와 진여眞如가 어찌 두 가지이겠는가?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문】 만 가지 경계의 무명無明과 일심一心의 법성法性은 하나인가 둘인가? 만약 하나라면 오염과 청정이라는 두 가지 명칭으로 나누지 않을 것이고, 만약 둘이라면 어찌 교설 속에서 무명이 곧 법성이라고 하는가?
【답】 체體는 하나이니 이는 진眞이요, 명칭은 둘이니 이는 가假이다. 명칭은 정情으로 인해서 세워지고, 진眞은 지혜로써 밝혀진다. 정과 지혜는 스스로 나뉘지만 진眞의 근원은 움직이지 않는다. 결정코 동일하다고 할 수 없으니 세제世諦를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결정코 다르다고도 할 수 없으니 진제眞諦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명明과 무명無明은 어리석은 사람에겐 둘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한다’고 하였는데,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참다운 성품이다. 고덕古德은 10법계法界를 기준으로 해서 이렇게 해석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란 9계界의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습을 취해서 일체법을 보는데, 법성法性이 그 모습을 취하는 데 따르는지라 마음은 다 무명無明이다. 마치 추운 골짜기에서 천 년이나 된 견고한 얼음이 아직 물이 된 적이 없는 것과 같다. 지혜는 불계佛界의 지혜이다.
원만하게 관찰을 행하는 사람으로 불안佛眼을 연 자는 옛 부처와 똑같이 본다. 원만한 눈으로 보면 무명無明의 근본은 원래 청정한 법성이니, 마치 태양이 항상 비추어 바닷물이 아직 얼음이 된 적이 없는 것과 같다. 얼음과 물의 성품은 하나이지만 연緣에 따라서 두 가지를 이룬다. 하나는 성품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연緣에 따르며, 비록 다시 연緣에 따르더라도 자성自性을 무너뜨리지 않는데 하물며 법성法性과 무명無明이 어찌 결정코 같거나 어찌 결정코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사事를 따르면서도 체體를 잃지 않으니 공통인 것도 아니고 나뉜 것도 아니며[非共非分], 성품을 지키지 않고 연緣에 맡기니 동일하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는 것[亦同亦別]이다.’ ”[책자함策字函 제7권]


만약 신견身見을 단절한다면 업이 일어나지 않고
이미 무아無我를 안다면 어찌 탐내고 싶어하겠는가?

『대장엄경大莊嚴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그대의 말처럼 나고 죽으면서 몸을 받는 것이 상속되면서 단절되지 않는다면, 설사 신견身見이 있은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대답하였다.
‘신견이 있기 때문에 모든 업을 지어서 온갖 고뇌를 받는다. 만약 신견을 단절한다면 모든 업을 일으키지 않고, 업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몸을 받지 않으며, 몸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온갖 우환이 영원히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열반을 얻는다.’
또 친구 바라문이 교시가憍尸迦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법一切法에는 다 나가 있지 않다고 설하신다.’
그 때 교시가가 답했다.
‘내가 부처님의 법을 보건대 나고 죽음이 끝이 없다. 일체가 무아無我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나라고 계교한다면 끝내 해탈의 도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나가 없음을 안다면, 탐욕이 없어서 문득 해탈을 얻는다.’
그 때 친구 바라문이 교시가에게 말했다.
‘속박[縛]이 있어야 해탈도 있다. 그대가 나가 없는 것이라 말한다면 속박도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속박이 있지 않다면, 누가 해탈을 얻는 것인가?’
교시가가 말했다.
‘비록 나가 있지 않더라도 해탈과 속박은 있다. 왜냐하면 번뇌로 덮였기 때문에 속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번뇌를 단절한다면 해탈을 얻는다.’
모든 바라문들이 다시 말했다.
‘만약 나가 없는 것이라면, 누가 후세後世에 이르는가?’
교시가가 바라문들에게 말했다.
‘과거의 모든 번뇌와 모든 업을 따라서 현재의 몸을 얻고, 지금 현재에 다시 짓는 모든 업을 따라서 미래의 몸을 얻는다. 비유하면 곡식의 씨앗은 갖가지 연緣과 화합하기 때문에 싹을 틔우지만, 그러나 이 씨앗이 실제로 싹을 틔우는 것은 씨앗이 소멸하기 때문에 싹이 문득 자라나는 것과 같다. 씨앗이 소멸하기 때문에 항상하는 것이 아니요, 싹을 틔우기 때문에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을 받는 것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라고 설하신다. 비록 다시 나가 없더라도 업보業報는 상실되지 않는다.’
모든 바라문들이 말했다.
‘우리는 그대가 설한 무아無我의 법을 듣고서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버렸지만, 여전히 약간의 의심은 있다. 만약 나가 없다면, 예전에 지은 일을 어떻게 기억해서 잊지 않는 것인가?’
대답했다.
‘염念과 각(覺:지각)이 있어서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면, 문득 3세世의 일을 기억해서 잊지 않을 수 있다.’
또 물었다.
‘만약 나가 없다면 과거는 이미 소멸했고 현재의 마음은 생성해서 생멸이 이미 다른데, 어떻게 기억해서 잊지 않는단 말인가?’
대답했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남[受生]은 식識을 종자로 삼아서 모태母胎의 밭에 들어가고 애욕의 물로 적심으로써 몸의 나무가 자라나게 되니, 마치 호두의 씨앗이 종류에 따라서 생기는 것과 같다. 이 음陰이 업을 지어서 능히 나중의 음陰을 감응한다. 그러나 이 앞서의 음陰이 나중의 음陰을 낳는 것이 아니라 업의 인연 때문에 문득 나중의 음陰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생멸은 비록 다르더라도 상속하여 단절되지 않는 것이다. 마치 갓난아기가 병이 났을 때 유모가 아이에게 약을 주면 병이 낫는 것과 같으니, 비록 유모는 아기가 아니지만 약의 힘이 능히 그 아기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음陰도 이와 같아서 업력으로 인해 문득 나중의 음陰을 받기 때문에 기억해서 잊지 않는 것이다.’
교시가는 즉시 이렇게 설했다.
무명無明이 행行을 반연하고, 행이 식識을 반연하고, 나아가 생生이 늙음과 죽음ㆍ걱정ㆍ슬픔ㆍ고뇌를 반연하고,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소멸하고, 나아가 늙고 죽음이 소멸하기 때문에 걱정ㆍ슬픔ㆍ고뇌가 소멸한다. 온갖 연緣을 따르면서도 주재主宰가 없으니, 문득 그 가운데서 나가 없음을 깨달아 이해할 수 있다.”[군자함君字函 제1권]


나도 없고 남도 없으니 무엇이 나고 죽겠는가?
죽음도 공空하고 태어남도 공해서 나도 아니고 남도 아니다.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문】 이미 나도 없고 남도 없는데, 어찌하여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는가?
【답】 태어남도 공空한 태어남이요, 죽음도 공한 죽음이니, 필경에는 나도 남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경자함輕字函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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