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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67 불교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2권

by Kay/케이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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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장일람집(大藏一覽集) 2

 

 

대장일람집 제2권


[제4문 선악문善惡門] ①

진실로 선과 악의 두 길을 말미암아 6도道를 오르내리게 한다.[모두 16품의 인연 419칙이다. 이 문은 내용이 많아서 4권으로 나뉜다.]

18) 삼귀품三歸品 19) 십선품十善品
20) 보시품布施品


18) 삼귀품三歸品[5칙]

먼저 스스로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고
이를 통해 몸[身]ㆍ입[口]ㆍ뜻[意]을 수행한다.

『갈마경羯磨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법신法身에 귀의하는 것이니, 이른바 일체지一切智와 배울 바 없는 공덕과 5분分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자타自他가 다하는 곳에 귀의하는 것이니, 이른바 욕망을 단절한 무욕無欲과 멸제滅諦인 열반이다.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제일의第一義인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니, 이른바 진실한 도움의 복전福田인 성문의 학學과 무학無學의 공덕이다.”[입자함入字函 제1권]

『대방편경大方便經』에서 말하였다.
“3귀歸는 3업業의 성품이니, 몸ㆍ입ㆍ뜻의 업이다.”

또 말하였다.
“3보寶는 귀의하는 바가 되며, 귀의하는 바는 구호救護를 의미[義]로 삼는다. 비유하면 왕에게 죄지은 사람이 다른 나라에 투신해서 구원해달라 하니, 다른 나라의 왕이 ‘그대여, 오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경계를 벗어나지 말고 내 가르침을 어기지 않으면 반드시 그대를 구호하리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생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니, 마魔에 구속되어서 태어나고 죽음의 죄가 있더라도 3보에 귀의함으로써 구원을 찾는 것이다. 만약 성실한 마음으로 3보에 귀의하여 다시 다른 곳을 향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면, 마왕의 사악함인들 어찌하겠는가.”[기자함器字函 제6권]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마땅히 중생이 대도大道를 체득 해탈하여서 부처의 종자[佛種]를 이어받기를 원하라. 스스로 법에 귀의하여 마땅히 중생이 경장經藏에 깊이 들어가서 지혜가 바다 같기를 원하라. 스스로 승가에 귀의하여 마땅히 중생이 대중大衆을 거느려 지도하여[統理] 일체의 장애가 없기를 원하라.”[평자함平字函 제4권]

『종경록宗鏡錄』에서 말하였다.
“가르침 가운데 설하는, ‘스스로 부처님 등께 귀의한다 함[自歸依佛]’은 결국 다른 것에 귀의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성품[自性]에 귀의하지 않으면 귀의할 곳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무릇 귀의라 함은 근원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중생의 6근根은 일심一心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니, 이미 스스로의 근원을 등지고 6진塵으로 달려가 흩어진 것이다. 이제 명근命根을 들어 6진塵을 전체적으로 거두어서[總攝] 일심一心의 근원에 돌아가기 때문에 ‘일심一心에 귀명歸命하는 것이 곧 3보를 갖춤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또 말했다.
“일체一體의 3보라는 것은 단지 일심一心일 뿐이다. 마음의 성품이 스스로 능히 각조覺照하는 것이 곧 불보佛寶이고, 심체心體의 본래 자성이 명칭을 여읜 것이 법보法寶이며, 심체에 둘이 없는 것이 곧 승보僧寶이다.”

또 말했다.
“승찬 대사가 혜가 대사에게 물었다.
‘화상和尙을 뵈오니 곧 승보[僧]를 알겠습니다만 모름지기 무엇을 부처라 하고 무엇을 법이라 합니까?’
혜가 대사가 대답했다.
‘이 마음이 부처이고 이 마음이 법이니, 법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그대는 알지어다.’ ”[치자함侈字函 제6권]


천상의 복이 모두 다해서 돼지의 과보를 받으려다
부처님께서 삼귀의[三歸]를 주시어 도道의 인因을 증득하다.

『절복나한경折伏羅漢經』에서 말하였다.
“예전에 도리천忉利天의 천자가 수명이 다하면서 다섯 가지의 쇠약해 가는 모습[衰相]이 나타났다. 수명이 다한 후에는 돼지의 태胎 속에 떨어지는 것을 관하고서 천자는 걱정 고민으로 즐겁지가 않았다. 어떤 천天이 천자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능히 그대의 죄를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천자는 즉시 부처님 처소에 가서 예를 드리고 아직 여쭈지 않았는데 부처님께서 먼저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만물은 모두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대는 본래부터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걱정하는 것인가?’
천자가 부처님께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돼지의 몸을 여의고 싶다면 마땅히 삼귀의를 염송하라.’
천자는 즉각 스스로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밤낮으로 삼귀의를 염송했다. 7일 뒤 수명이 다하자, 유야리국維耶離國에 하생下生하여 장자의 아들이 되었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도 날마다 세 번 스스로 귀의하였고, 막 태어나 땅에 닿았을 때도 무릎 꿇고 스스로 귀의했다. 온 집안이 매우 괴이하게 여기고 불길한 징조라며 죽이고자 했다. 오직 아버지만이 식견이 있어서 말했다.
‘이 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백 살이 되더라도 스스로 3보寶에 귀의하는 것[自歸三尊]을 깨우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막 태어나 땅에 닿았는데도 능히 나무불南無佛을 외우는구나.’
아이를 잘 보살피고 길러서 일곱 살이 됐을 때 길에서 사리불舍利弗 등을 만났다. 어린아이인데도 능히 예를 드리는 것을 보고는 대중들이 모두 놀라면서 괴이하게 여겼다. 아이가 말했다.
‘도인은 다시 식識을 보지 않습니다만, 제가 천상에 있을 때 마땅히 악도惡道에 태어나야 했는데, 부처님께서 삼귀의를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디 세존과 모든 보살과 승려와 어진 이 등을 청하오니 받아주십시오.’
청을 받아들이고 떠나자, 아이는 돌아와서 부모님께 말하였다.
‘바라건대 공양 음식을 마련해 주십시오.’
부모는 아이의 나이가 어린데도 큰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기이하게 여겨서 기꺼이 음식을 마련하였다. 부처님과 뭇 승려들이 각기 신족통으로 와서 아이의 공양에 응한 뒤에 법을 설하였다. 아이와 부모와 내외의 친족이 모두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얻었다.”[영자함靈字函 제2권]


19) 10선품善品[23칙]

여래如來를 보고 들어서 청정함을 얻고
선근善根을 닦고 심으니 모두 다 헛되지 않네.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모든 중생이 만약 여래의 색신色身을 보게 된다면 눈이 청정함을 얻고, 만약 여래의 명호名號를 듣게 된다면 귀가 청정함을 얻고, 만약 여래의 계향戒香을 냄새 맡으면 코가 청정함을 얻고, 만약 여래의 법미法味를 맛보게 된다면 혀가 청정함을 얻어서 장광설長廣說을 구족하여 말을 이해하고 법을 설하며, 만약 여래의 빛을 접촉하게 된다면 몸이 청정함을 얻어서 구경究竟에는 위없는 법신[無上法身]을 얻으며, 만약 여래에 대해 억념憶念을 일으키게 된다면 염불삼매念佛三昧의 청정함을 얻고, 만약 여래께서 거쳐 가신 토지와 탑묘塔廟에 공양한다면 역시 선근善根을 갖춰서 일체의 번뇌와 우환을 없애 성현의 즐거움을 얻는다.
설사 중생이 부처를 보고 듣는 데 업장業障이 얽히고 덮여서 믿음과 즐거움을 일으키지 못하더라도, 선근을 심어서 헛되이 지냄이 없으면 마침내 구경究竟에는 열반에 든다. 다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에 대해 보고 듣고 친근한 것과 심어 놓은 선근은 모두 헛되지 않으니, 한량없는 지혜를 내기 때문이며, 일체의 장애와 어려움을 여의기 때문이며, 마침내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장부丈夫가 조그만 금강(金剛:다이아몬드)을 먹어도 끝내 녹지 않고서 몸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금강은 육신과 잡된 더러움에 섞이지 않으면서도 똑같이 머물기 때문이다. 작은 선근을 심는 것도 이와 같아서 번뇌의 몸을 뚫고 지나 구경의 처소에 이른다. 왜냐하면 선근은 번뇌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여자함 黎字函제2권]


한 가지 선善을 닦아도 능히 백 가지 악을 깨뜨리니
불씨를 던져 장작더미를 태울 수 있음과 같다.

『대열반경大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부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코끼리ㆍ말 같은 갖가지 축생이고, 둘째는 금ㆍ은 같은 갖가지 진귀한 보배이니, 코끼리와 말이 비록 많더라도 하나의 보배 구슬을 대적하지 못한다. 중생도 이와 같으니, 첫째는 악한 부富이고, 둘째는 착한 부이다. 온갖 악을 많이 짓는 것은 한 가지의 착함만 못하나니, 착한 마음 한 가지를 닦으면 백 가지 악을 깨뜨린다. 마치 작은 금강이 능히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고, 또한 작은 불이 능히 일체를 태우는 것과 같다.”[일자함一字函 제9권]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가령 마른 풀이 쌓인 것이 수미산과 같더라도 겨자씨만한 불을 던지면 반드시 몽땅 다 태워 버리니, 왜냐하면 불이 능히 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작은 선근을 심는 것도 이와 같아서 반드시 일체 번뇌를 다 태워 버리고 구경에는 열반에 이르니, 왜냐하면 이 작은 선근도 성품은 구경究竟이기 때문이다.”[여자함黎字函 제2권]


예불을 하면 단박에 다섯 가지 복을 얻고
목환자木患子를 지니면 108가지 허물[愆]이 능히 소멸된다.

『주림珠林』에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을 인용해 말하였다.
“예불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첫째는 단정端正함이니, 상호相好를 봄으로써 존상尊上을 낳기 때문이다. 둘째는 좋은 소리를 얻는 것이니, 부처의 등정각等正覺을 노래하고 읊기 때문이다. 셋째는 재물이 많고 넉넉한 것이니, 향과 꽃을 갖추어서 공양을 올리기 때문이다. 넷째는 태어나는 곳이 고귀한 것이니, 무릎을 땅에 대고 장궤長跪 자세로 예를 드리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니, 염불의 공덕이 마땅히 그렇기 때문이다.”[고자함藁字函 제10권]

『목환경木患經』에서 말하였다.
“파유리왕波瑠璃王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나라 안의 재난과 환란이 저를 우울하고 피곤하게 해서 수행을 제대로 하질 못합니다. 부디 쉽게 수행하는 긴요한 법을 내려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번뇌장煩惱障과 보장報障을 없애고 싶다면 마땅히 목환자木患子 118개11 『목환자경木患子經』에는 118개가 아니라 108개로 되어 있다.
를 뚫어서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늘 스스로 지니고서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뜻을 분산시키지 않고, 불타佛陀ㆍ달마達磨ㆍ승가僧伽의 명호를 칭하면서 목환자 하나를 돌려야 한다. 이같이 점차 목환자를 십ㆍ이십ㆍ백ㆍ천, 나아가 백천만까지 세어 나간다. 만약 20만 번을 능히 채울 수 있다면, 온몸과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온갖 아첨과 왜곡이 없어지니, 목숨을 버리고 나서는 제3의 염천炎天에 태어나게 된다. 백만 번을 완전히 채워서 마땅히 108가지 결업結業을 끊어 없앨 수 있다면, 비로소 생사의 유취流趣를 등지고 니원(泥洹:열반)을 향함으로써 번뇌의 뿌리를 끊고 위없는 과보를 얻을 수 있다.’
대왕은 감사의 예를 드린 뒤에 즉시 나무를 골라 천 개를 만들고, 그것을 6친親의 나라 친척들에게 모두 하나씩 주었다. 왕은 항상 염송하면서 비록 몸소 군대를 이끌 때라도 그만두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크게 자비로우셔서 일체의 고통에 두루 응하신다. 만약 나의 이 선으로 오랜 동안 고통의 바다에 빠짐을 면할 수 있다면, 부처님께선 마땅히 몸을 나타내시어 나를 위해 법을 설하리라. 바라노니 기꺼이 마음을 다그치리라.’
3일간 먹지 않으니, 부처님께서 즉시 형상으로 감응해서 궁궐 안으로 가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사두莎斗 비구는 3보寶의 명칭을 염송해서 10년이 지나자 사다함斯陀含 과보를 성취할 수 있었으며, 점차 수행을 익혀서 지금은 보향普香세계에서 벽지불辟支佛이 되었다.’
왕은 이 말씀을 듣고서 수행을 배로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하물며 3보寶의 명칭을 능히 염송하는 것이 만 번을 넘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단지 이 사람의 이름을 듣고서 한 생각이라도 수희隨喜할 수 있는 자는 미래에 태어나는 곳에서도 항상 열 가지 선善을 들으리라.’
대중들이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학자함學字函 제4권]


난관이 닥칠 때 나무불南無佛을 한결같이 부르면
소리에 따라서 배에 가득한 사람을 모두 구원하리라.[지옥의 불을 소멸한다.]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염불삼매念佛三昧에는 커다란 복덕福德이 있어서 능히 중생을 제도한다. 가령 예전에 5백 명의 상인들[估客]이 바다에 나아가 보물을 수집하다가 마가라어왕摩伽羅魚王을 만났다. 입을 벌려 바닷물을 들이키자 배가 신속히 빨려 들어갔다. 뱃사공이 망루 위의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것들이 보이는가?’
대답하였다.
‘세 개의 태양이 솟아오른 모습과 하얀 산이 늘어선 모습과 물의 흐름이 치달리는데 마치 커다란 갱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네.’
뱃사공이 말했다.
‘이는 마가라어왕이 입을 연 것이네. 하나는 실제 태양이고, 둘은 고기의 눈이라네. 하얀 산은 고기의 이빨이고, 물의 흐름이 치달리는 것은 그 입으로 우리를 들이키는 것이라네. 우리들은 끝장이네.’
상인들은 저마다 온갖 천신에게 구원해 주길 간구했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다시 섬기고 있는 대상에게 간구했으나, 아무런 감응이 없었다. 그 중에서 5계戒를 갖춘 우바새優婆塞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선 능히 액난을 구하실 수 있다. 마땅히 다 함께 나무불南無佛을 불러야 한다.’
이 고기는 전생에 부처님의 파계破戒 제자였다. 부처님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문득 숙명지宿命智를 얻어 마음이 저절로 뉘우치고 깨달아 즉시 입을 다무니, 배에 탄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염불 덕분에 모두 죽음의 액난을 면한 것이다.[성자함聖字函 제7권]

『주림』에서 『비유경譬喩經』을 인용하여 말하였다.
“옛날 어떤 국왕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됐다. 한 아라한이 이 국왕이 오래지 않아 목숨을 마칠 것을 알았다. 남은 목숨을 헤아려 보니 7일에 불과하였다. 만약 목숨을 마친다면, 반드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져서 1겁 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 아라한은 왕을 찾아가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불을 7일 동안 부르면서 그치지 말라고 권고하여 가르쳤다. 왕은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7일째가 되자 문득 목숨을 마쳤는데, 혼신魂神이 아비지옥으로 향하면서도 앞서의 염불을 하고 갔다. 지옥문에 이르자 즉시 큰 소리로 나무불을 부르니, 죄인들이 모두 듣고서 일시에 똑같은 목소리로 나무불을 불렀다. 그러자 지옥의 맹렬한 불길이 즉시 소멸하면서 모든 죄인이 다 해탈을 얻었다.”[고자함藁字函 제3권]
『법화게法華偈』에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산란하다면 탑묘塔廟 속에 들어가서 한결같이 나무불을 부른다면 모두 불도佛道를 이룰 것이다.”[수자함樹字函 제1권]


사방四方의 산이 합쳐지면 왕은 어찌할 것인가?
일념으로 보시[檀]를 닦으면 스스로 초월할 수 있네.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셨다.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와서 제각기 ‘네 개의 커다란 산이 사방에서 와서 백성들을 해치려고 합니다’고 한다면, 왕께선 어찌 하겠는가?’
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가령 이렇게 오더라도 도피할 곳이 없다면, 오직 마땅히 마음을 집중하여 계戒를 지키고 보시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찬탄했다.
‘훌륭하도다, 대왕이여. 내가 설명한 네 개의 산은 곧 중생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니라. 항상 와서 사람을 핍박하니, 어찌 계를 지키고 보시를 베푸는 수행을 하지 않으리오.’
왕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면 어떤 과보를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인간과 천상에서 많은 쾌락을 받는다.’ ”[체자함體字函 제9권]


빈두로賓頭盧는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서
시주의 공양을 받아 세상의 복전福田이 되었다.

『주림珠林』에서 말하였다.
“빈두로 존자는 부처님의 교시를 받아서 말법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대복전이 되었다. 어떤 장자가 3차에 걸쳐 법답게 큰 모임을 마련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히 청하였다. 그는 담요 아래에다 두루 좋은 꽃을 깔아서 시험했는데, 대중이 식사를 마치고 살펴보자 담요 아래의 꽃이 누렇게 시들어 있었다. 장자는 괴로워하면서 자책하였지만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장자는 다시 백여 명의 법사를 청해서 잘못된 바를 찾아서 죄과를 참회하기를 구했다. 한 상좌가 그에게 고했다.
‘세 번의 모임에서 나를 청해서 모두 왔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내 옷이 남루하다고 해서 그대는 노비를 시켜 문 앞에서 막도록 했습니다. 나는 억지로 들어갔지만 얻어맞아서 머리가 깨지고 오른쪽 이마에 상처가 났습니다. 두 번째 모임에도 왔는데, 다시 얻어맞아서 이마 중앙에 상처가 났으며, 세 번째 모임에도 왔지만 다시 얻어맞아서 이마 왼쪽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대 스스로가 지은 것인데, 어찌하여 괴로워합니까?’
말을 마치고는 안 나타나니, 장자는 그가 빈두로임을 알았다. 이로부터 모든 사람이 복전을 마련하면 모두 문을 막지 않았으며, 정성이 남에게 감응하여 통하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든 중간이나 아랫자리에 앉은 사람이든 그 차이를 구했지만 끝내 얻지를 못했으며, 자리에 앉아도 꽃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재齋를 지내는 집을 보면, 대체로 법에 의거하지 않고 다만 인정을 좇아서 범속凡俗을 안치할 뿐 온전히 부처님과 성승聖僧22 빈두로존자나 문수보살상 등 선종에서 승당의 중앙에 안치한 상을 말한다.
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전에서 설한 대로 시주의 온 집안이 정성을 다하여 7일 전에 미리 불당을 쓸고 닦으며, 아울러 성승聖僧을 모실 때는 앉는 곳을 깨끗이 씻고, 몸을 청결히 하고, 좋은 향을 태워 올리고, 비단 깃발을 걸고, 온갖 꽃을 뿌리고, 손으로 향로를 잡고 정성과 공경을 다해서 3보와 성승聖僧을 받들어 청한다면, 시방 법계의 일체 성인이 제자의 청을 받아들여서 성스러운 모습[聖儀]을 내릴 것이다. 만약 가난한 집안이라서 좋은 향과 꽃이 없고 편안히 안치할 곳도 없다면, 임시로 짐작하여서 승려가 앉기 전에 먼저 좋은 곳을 바쳐서 불좌佛座를 안치한다. 다음은 성승聖僧의 자리를 마련하고 새롭고 청정하고 부드러운 물건과 삼베와 면을 올린다. 만약 시주의 마음이 두터워서 감응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앉은 곳에 보신報身이 올 것을 아는 듯하다. 만약 상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만 화신化身이 올 뿐이고, 만약 경솔하고 오만하다면 보신과 화신이 모두 그 자리에 이르지 않는다. 채색된 그림, 능라綾羅, 금과 은으로 된 온갖 장식과 위에서 꽃을 흩어 뿌리고, 비록 나한이라도 범속한 승려와 함께 똑같이 250의 별해탈계別解脫戒를 받으니, 이 때문에 온갖 채색된 그림이나 금과 은 등을 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모든 부처님과 보살 같은 대승의 사람으로서 출가한 모습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덕분에 갖가지 공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성승聖僧을 자리에 앉히고 음식을 드실 때에도 그 자리를 높은 곳에 안치해서는 안 되며 여섯 자 이하라야 한다. 또 성승의 소형塑形을 그 자리에 앉혀서도 안 되나니, 만약 그렇게 한다면 보신이 스스로 오더라도 어찌 소상塑像을 밀쳐내고서 앉을 수 있겠는가? 만약 성승이 있을 경우 돈이 들어오면 또한 성승을 위해 쓰되, 연등과 태우는 향을 겨울과 여름의 사시사철마다 마땅히 공양해야지 어찌 달리 쓸 수 있겠는가? 만약 이미 썼다면 반드시 배로 돌려주어야 하고, 돌려주지 않으면 죄를 얻는다.”

『사분율』에서 말하였다.
“이곳에서는 허용되지만 다른 곳에 쓰면 안 되니, 그렇게 하면 죄를 얻는다. 만약 집에 따라서 항상 매일 아침과 낮에만 먹고 3보를 공양하는 마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 공덕은 한량이 없다.”[칠자함漆字函 제2권]


먹는 것은 네 가지 때[時]와 때 아님[非時]이 있으니
과일[菓]과 모든 허락할 때와 허락되지 않을 때이다.

『주림』에서 말하였다.
“【문】 무엇을 먹을 때라 하고, 무엇을 때가 지났다고 합니까?
【답】 『사분율』에 의거해서 말한다. 이른바 날이 밝아올 때야 비로소 죽을 먹을 수 있으며[날이 밝아오지 않을 때는 때가 아니다(非時).] 나아가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먹을 수 있다. 이 오시午時를 법으로 삼나니, 곧 음식을 먹을 때이다.”[『승기율僧祇律』에서 이르기를, “이 오시午時에서 털 하나, 또는 일순간이나 나뭇잎만큼만 더 지나가도 곧 때가 아니다(非時)”라고 하였다.]

『비라삼매경毘羅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먹는 데 네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아침은 천상이 먹는 때이고, 낮은 법이 먹는 때이고, 저물녘은 축생이 먹는 때이고, 밤은 귀신이 먹는 때이다. 부처님께서는 6취趣를 끊으셔서 3세의 부처님과 동등하게 하기 때문에 법이 먹는 때인 정오에 드신다. 이를 지나고 나면 하취下趣와 같아져서 식사를 올릴 때가 아니니, 이 때문에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오후에 먹지 않으면 다섯 가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첫째는 음욕이 적은 것이며, 둘째는 적게 눕는 것이며, 셋째는 일심一心을 얻는 것이며, 넷째는 하풍(下風:방귀)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몸이 안온해져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무릇 음식은 먼저 사문과 범지에게 보시한 뒤에 자기가 먹으면서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처음 한 숟가락의 밥을 내릴 때는 일체의 악을 다 끊어 버리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숟가락을 내릴 때는 일체의 선이 원만하도록 닦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숟가락을 내릴 때는 닦은 선근을 중생에게 회향해서 널리 함께 성불하기를 바랍니다.’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일체의 쓰고 맵고 시고 단 것 등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지만 때가 아니라[非時] 할지라도 진형약盡形藥33 사람에게 지병持病이 있을 경우에 평생토록 먹어야 하는 약을 말한다.

으로 만들어졌을 때는 먹을 수 있다.”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일체의 나무와 열매, 뿌리, 줄기, 가지, 꽃 등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지만 모두 진형약으로 만들어졌을 때는 먹을 수 있다.”[칠자함漆字函 제2권]


비록 향香 하나를 한 부처님의 처소에 바치더라도
능히 한량없고 가없는 곳까지 두루할 수 있다.

『삼매해경三昧海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한 분의 부처님께 예배할 때면 반드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지혜는 한계[限]나 장애[礙]가 없으니, 내가 지금 한 분의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은 곧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만약 한 분의 부처님을 사유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뵙는 것으로, 한 분 한 분의 부처님 전에 한 행자行者가 발을 만지고 예를 드리고 있는데 모두 자기 자신임을 본다. 만약 한 송이 꽃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할 때면, 몸의 모든 털구멍이 하나의 털구멍으로 하여금 무수한 꽃구름을 일으키게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일체의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한 분 한 분의 부처님께 화대華臺로 변화시켜 놓으니, 모든 부처님들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신다고 생각한다. 시방계十方界에 향을 공양하는 등 불사佛事를 베푸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니, 반드시 이렇게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부디 이 꽃향기가 시방계에 가득 차서 일체의 부처님께 공양되길 바라나이다. 화신불[化佛]ㆍ보살ㆍ헤아릴 수 없는 성문聲聞 대중이 이 향기로운 꽃구름을 받아들여서 광명의 대臺로 삼고, 널리 끝없는 세계에 한량없이 불사佛事를 지으소서.’
그리고 예불한다. 만약 좌선에서 일어나면 이렇게 공양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항상 이러한 서원을 발하여야 하며, 비단 일산ㆍ당기[幢]ㆍ번기[幡]ㆍ음악ㆍ게송을 지을 때도 또한 이렇게 서원[願]을 지어야 한다.
‘제가 지금 이렇게 보잘것없는 공양구[供具]를 마련했지만, 부디 이 공양구가 시방에 계신 일체의 부처님께 두루 공양되고 모든 부처님께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당기와 번기 속에서는 광명의 구름으로 변화하고, 음악 속이나 게송 안에서는 훌륭한 법음法音으로 펼쳐지길 바랍니다.’ ”[복자함覆字函 제10권]


다섯 가지 일[五事]에 게으르지 않으니 점차 공功이 더해지고
열 가지 선善은 무상과無上果를 원만하게 이루도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 말하였다.
“중생은 열 가지 일로 선善을 삼고, 열 가지 일로 악惡을 삼으니, 몸으로 짓는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와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라는 것은 살생ㆍ도둑질ㆍ음란함이며, 입으로 짓는 네 가지라는 것은 이간질ㆍ나쁜 욕설ㆍ망령된 말ㆍ속이는 말이며,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라는 것은 질투ㆍ분노ㆍ어리석음이니, 3보寶를 믿지 않고 삿된 것을 참되다고 여긴다. 우바새優婆塞가 다섯 가지 일을 행하는 데 게으르지 않아서 열 가지 일에 이르면 반드시 도를 얻는다.”[사자함辭字函 제7권]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열 가지 착한 업[十善業]의 길은 인간과 천상에서부터 유정처有頂處에서 태어나는 인因을 받는 데까지 이른다. 또 이 상품上品의 열 가지 착한 업의 길은 성문聲問ㆍ연각緣覺ㆍ보살승菩薩乘으로 닦아 들어가며, 또 상상품上上品의 열 가지 착한 업의 길은 보리를 성취한다.”[애자함愛字函 제5권]


부처님께서도 오히려 바늘을 꿰어서 작은 복이라도 탐내는데
인간이 어찌 선善을 싫어해서 부지런히 닦지 아니하랴.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아나율阿那律 존자가 일상의 법으로써 옷을 꿰매다가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도를 얻은 아라한 가운데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바늘에 실을 꿰어 주었으면…….’
세존께서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바늘을 갖고 오거라. 내가 그대를 위해 꿰어 주겠노라.’
아나율이 말씀드렸다.
‘앞서 제가 말한 것은, 이른바 세간에서 복을 구하고 싶은 자가 저를 위해 바늘을 꿰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복을 구하는 사람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 ”[여자함如字函 제1권]


한 방울의 선善이라도 부처님께 맡겨 축원하고 갈무리하면
겁을 지나더라도 끝내 없어지지 않고 그대에게 돌아온다.

『니원경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중생이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신심信心을 일으킨다면, 이 같은 선근善根도 끝내 썩어 없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또 온갖 나머지 선근을 짓는 것이겠는가?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털끝으로 한 방울의 물을 적셔서 내 처소로 가져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제가 이 물을 구담瞿曇께 바치오니,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햇볕에 말라붙게 하지 마시옵고, 새나 짐승이 먹지 못하도록 하시옵고, 끝까지 다른 물과 섞이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여래께서 즉시 그 부탁을 받아들여 항하恒河 속에 넣으니,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서 거슬러 올라오지 않도록 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었으며, 새나 짐승 등이 능히 마셔 버릴 수 없었으니, 이 같은 물방울은 큰 물줄기와 함께 점점 큰 바다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비람풍毘嵐風이 일어나 세계를 파괴할 때에 내 처소로 와서 기탁한 물이 지금 있느냐고 한다. 여래께서는 내 물방울이 머무는 곳이 나머지 물과 섞이지 않음을 아시고,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아서 평등함을 알기 때문에 갖고 와서 그 사람에게 돌려준다. 이처럼 여래ㆍ응공ㆍ정변지正遍知의 대지혜는 다능하여 기탁을 받는 사람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뛰어나기에 오랜 겁[久遠]을 지나더라도 훼손되지 않으니, 이 뜻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털끝은 심의식心意識을 비유한 것이며, 항하는 생사의 흐름을 비유한 것이며, 한 방울의 물은 한 번만이라도 일으킨 미미한 선근을 비유한 것이며, 큰 바다는 부처ㆍ여래의 처소를 비유한 것이며, 기탁하는 사람은 저 장자長者ㆍ거사 등을 비유한 것이며, 오랜 겁[久遠]을 지나더라도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은 선근은 상실되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귀자함歸字函 제3권]


축생畜生이 부처님을 염念해서 모두 도道를 이루고
개구리가 법을 듣고서 천상에 태어나다.

『반니원경般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단지 마음만으로 부처님을 염念하면서 일생 동안 공경하고 믿는다면,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열반의 과果를 얻고, 열반을 다할 즈음에도 사람 가운데 놓여서 부처님의 공덕을 염한다고 말하리라. 만약 어떤 축생이 부처님ㆍ세존에 대해 능히 염을 일으킨다면, 나는 이 역시 그 선근에 의한 복의 과보로 반드시 열반을 얻는다고 설하리라.”[귀자함歸字函 제2권]

『경률이상經律異相』에서 말하였다.
“가라지迦羅池라는 연못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는 걸 듣고서 즉시 연못에서 나와 풀 섶으로 들어갔다. 이 때 한 목동이 대중이 빙 둘러서서 부처님 설법을 듣는 걸 보았다. 그는 부처님께서 계신 안쪽으로 나아가서 법을 듣고 싶어 지팡이로 땅을 짚다가 잘못해서 개구리 머리에 부딪쳤다. 개구리는 즉시 목숨을 마치고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
개구리는 곧 생각했다.
‘나는 전생에 축생이었는데, 어떤 인연으로 이 천궁에 태어났을까?’
개구리는 살펴보니 법을 들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러한 과보를 얻었다. 그 때 개구리와 천인天人은 즉시 궁전을 타고서 부처님 처소로 가서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시자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계자함啓字函 제8권]


20) 보시품布施品[79칙]

급고독給孤獨이 꾀를 내어서 절을 지으니
천계天界의 궁전이 이루어져서 먼저 그를 기다리다.

『경률이상』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대단월大檀越인 수달다須達多 장자는 사위국舍衛國에 살면서 항상 외로운 이들에게 보시를 했기 때문에 급고독給孤獨이라 불렸다. 어느 날 그는 왕사성王舍城의 호미護彌 장자에게 갔다가 그 집에서 한 남자의 초대를 받았다. 그로 인해 그 집안 사람이 부처님의 설법을 청하는 걸 보았다. 수달다는 본래 외도外道를 섬겼는데, 홀연히 부처님의 법을 듣고서는 환희심이 생겼다. 그는 발을 만지고 예를 드리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사위국 사람인데, 삿된 것을 많이 믿었습니다. 이제 제자는 정사精舍를 짓고 싶은데, 부디 부처님께서 가셔서 교화해 주시고 이를 허락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청을 받아들이신 뒤 즉시 사리불舍利弗을 보내시어 규칙을 지시하셨다. 수달다가 여러 곳을 두루 답사하셨지만, 오직 기타祇陀 태자의 한 동산만이 있을 뿐이었다. 너비는 80경頃인데, 숲의 나무가 울창하고 그윽하고 고요해서 거처할 만했다. 훌륭한 땅을 보고 나서 태자에게 가서 말하니, 태자가 장난으로 말했다.
‘황금을 그 땅에다 가득 깐다면 주겠소이다.’
수달다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 동산은 이미 내 것이 됐소이다.’
태자가 대답했다.
‘나는 농담으로 말한 것이오.’
두 사람은 서로 다투었다. 그 때 수타천首陀天이 내려와서 평결했다. ‘태자의 법으로 망령되게 말해선 안 됩니다. 매매가 이미 성립하였으므로 중간에 후회를 마셔야 합니다.’
수달다는 황금을 가져다 80경을 깔았다. 잠깐 사이에 가득 채우려고 했으나, 약간 땅이 모자랐다. 기타가 즉시 수달다에게 말했다.
‘동산의 땅은 당신에게 속한 것이지만, 숲과 나무는 내게 속한 것이니, 함께 부처님께 바칩시다.’
줄을 잡고서 기초를 정할 즈음에 사리불이 갑자기 웃었다. 수달다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여기서 정사 짓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6욕천欲天의 궁전이 이루어졌으니, 그대의 과보입니다.’
즉시 수달다에게 도안道眼을 빌려 주니 과연 볼 수 있었다. 수달다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이 6욕천 중에서 어느 곳이 가장 즐겁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제4욕천에서는 보처補處 보살이 항상 법을 설합니다.’
수달다가 말했다.
‘저는 그곳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치자 나머지 궁전은 모두 사라졌다. 정사가 다 이루어지니, 무릇 1천 2백 곳의 백왕白王이 사자를 보내서 부처님께 안거安居하시기를 청하였다.”[영자함靈字函 제3권]


아육왕은 전생에 흙을 보시한 것으로 인해
이 공덕으로 후세에 왕이 되는 과보를 받았다.

『아육왕경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을 하시다가 두 명의 어린이를 보았다. 한 아이는 덕승德勝이었고, 다른 한 아이는 무승無勝이었는데,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흙을 막아서 성과 집과 창고를 만들고, 흙으로 보릿가루를 삼아서 창고 속에 넣었다. 그러다가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보자, 덕승은 환희하면서 창고 속의 흙을 꺼내 보릿가루라 이름 붙이고는 세존께 바치면서 발원發願하였다.
‘제가 장래에 하늘과 땅을 덮을 만큼 널리 공양을 마련하게 하옵소서.’
이 선근善根의 발원공덕發願功德으로 인해서 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하신 지 1백 년 후에 전륜왕이 되어서 염부제閻浮提의 왕 노릇을 했다.”[부자함府字函 제1권]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아육왕이 모든 비구들에게 물었다.
‘누가 불법佛法 속에서 대보시大布施를 행했는가?’
비구들이 말했다.
‘급고독 장자가 백억천百億千의 황금을 희사해서 대단월이 되었습니다.’
왕 역시 백억천의 황금을 보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8만 4천의 보병寶甁과 온갖 깃발과 일산을 만들어 모든 야차夜叉들에게 부촉해서 염부제의 일체 국토와 나아가 대해大海에 이르기까지 탑을 세우고자 야사耶舍 존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루의 일념 속에서 8만 4천의 보배 탑을 일으켜 일시에 모두 이루고, 저 각각의 탑 안에 다시 백천의 황금을 보시하고 싶습니다. 다시 5백의 대회를 열고, 그 대회엔 3백천의 비구가 있는데 3백억의 황금으로써 공양하고자 합니다. 이같이 계산하면 96억천의 황금을 쓰게 됩니다.’
왕은 나중에 병이 들어서 소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즉시 진기한 보배를 가려내 계작사鷄雀寺로 보내자, 모든 신하들이 태자에게 말했다.
‘창고의 재물이 이미 고갈되었습니다. 재물 담당자로 하여금 대왕께 쓰시도록 다시는 내주지 말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왕은 이미 재물을 달라 해도 얻지 못할 걸 알았다. 그래서 사용하고 있던 황금 그릇을 다 절로 보냈다. 태자는 황금 그릇을 보내는 걸 중단하게 하고 은그릇을 주라고 명령했다. 구리 그릇도 그렇게 하고는 마침내 질그릇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대왕은 단지 반 개의 아마륵과阿摩勒菓가 손에 있을 뿐이었다. 왕은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곁에 있는 신하를 불러 말했다.
‘이 염부제는 나의 소유인데도 이제 재보를 자유롭게 얻지 못하고, 오직 이 반 개의 아마륵과만을 자유롭게 쓸 수 있구나. 이걸 절에다 보내거라. 갈아서 마실 것[漿]으로 만든 뒤 석류의 국에다 섞어서 뭇 승려들에게 공양하여 두루 먹도록 해 주어라. 이것이 최후의 단바라밀檀波羅蜜이니, 나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이 보시를 받을 것이다.’
그 때 왕은 다시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이 염부제의 왕인가?’
신하들이 말하였다.
‘대왕이십니다.’
왕이 말했다.
‘나는 이제 이 염부제를 3보寶에 보시하오니, 뜻에 따라 쓰시오.’
그리고는 게송을 설했다.

지금 이 염부제에는
진기한 보배 장식이 많이 있으니
훌륭한 복전福田에 보시한다면
과보는 저절로 얻으리라.

이 보시의 공덕으로써
제석천帝釋天을 구하지 않고
범왕梵王이나 인간의 왕도 구하지 않고
세계의 온갖 미묘한 즐거움도 구하지 않으니

이 같은 종류의 과보를
나는 다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이 보시의 공덕으로써
속히 부처님의 도를 이루어

세간의 존경과 추앙을 받고
일체지一切智를 이루어서
세간의 착한 벗이 되고
도사導師 중에서 제일이 되리라.”[천자함川字函 제5권]

온 집안 모두 복이 있어 사람에 따라 감응함은
지나간 세상에 부처님께 똑같이 음식을 보시했기 때문이다.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옛날 발제성跋提城에 장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문다文茶였다. 온 집안의 아이와 부인들에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커다란 복덕이 있었다. 장자가 곳간에 들어가면 허공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리고, 나간 뒤에는 그쳤다. 부인이 음식 그릇을 취해서 안팎에 나눠 주면 취하는 데 따라서 가득하였다. 아이가 금 주머니를 잡으면 진금眞金이 쏟아져 나와서 부어도 마르지 않았다. 아이와 부인이 쌀을 내서 1곡(斛:열 말)을 집 안에 공양하면, 1개월이 돼도 다하지 않았다. 머슴이 밭을 갈 때는 문득 일곱 개의 밭두둑을 이루고, 여종이 향을 갈면 반 냥兩으로 집을 칠해도 안팎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사방의 사람들이 듣고서 와 보지 않는 자가 없었다. 나아가 병사왕甁沙王도 천인의 권속과 함께 와서 과연 그와 같음을 보고는 탄복해 마지않았다. 장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와 아이와 부인 등은 이미 복이 다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누구의 힘인지 부디 설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대들은 이 복을 공유하고 있다. 옛날 왕사성에는 한 명의 직물을 짜는 사람이 있었다. 벽지불辟支佛이 발우를 들고 음식을 구걸하자, 직물을 짜는 사람은 자기 음식으로 보시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남편에게 음식을 양보하면서 내 몫을 가져가라고 하였고, 아이와 노비에 이르기까지 잇달아 사양하면서 보시하였다. 벽지불이 말했다.
≺그대들은 이미 자신의 몫을 내게 주었으니 착한 마음을 다했느니라. 함께 덜어서 준다면, 그대들의 음식이 적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만족하리라.≻
사람들이 한 숟가락씩 덜자, 벽지불의 발우가 가득 찼다. 벽지불은 보시를 받아들이고서는 신통으로 변화[神變]하여 떠나갔다. 그들은 목숨을 마치자 6욕천에 태어나서 일곱 번을 반복해서 전전展轉했으며, 나머지 복으로 여기에 태어났으니, 이 직물을 짜는 사람과 그 권속이 지금의 그대들이다.’”[화자함和字函 제1권]


아들과 며느리는 보시[檀]를 행해서 궁전의 즐거움이 있었고
부모는 보시를 막아서 굶주림과 목마름을 받게 되었다.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사위성舍衛城의 동쪽에 바라문 한 명이 있었다. 대부호인 그의 아들은 부처님을 섬기는 집에 장가를 들게 되었다. 며느리는 5계戒를 받들고 6재齋를 지키면서 항상 보시하길 좋아했다. 남편에게도 보시[檀]를 행하길 권하자, 남편도 즉시 이해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부모는 크게 성내면서 집안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부인은 갖고 있던 돈과 비단을 남편에게 주었으며, 남편은 이를 궁궐을 지키는 여종에게 주었으며, 여종은 문을 지키는 종에게 주었으며, 종은 절에 보내서 보시하였다. 부부는 이렇게 맹세했다.
‘보시가 만약 복이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천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보도록 하옵소서.’
그런 뒤에 나라의 명절인 3월 3일이 되었다. 온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물 위로 가서 즐거워하는데, 홀연히 동남쪽에서 한 천인天人이 한 마리 하얀 말을 타고서 공중을 날아 지나갔다.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물었다.
‘어느 신령神靈이십니까?’
대답하였다.
‘뒤에 오는 자에게 물어보라.’
잠시 후 다시 7보로 된 궁전이 보였는데, 한 옥녀玉女가 그 위에 홀로 앉아 있었으며, 사대천신四大天神이 궁전을 감싸면서 날아갔다. 사람들이 또 물었다.
‘당신에게도 어떤 공덕이 있었습니까?’
옥녀 역시 나중에 오는 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이윽고 다시 대칠보로 된 궁전이 보였는데, 한 명의 천인과 한 명의 여인이 함께 그 속에 앉아 있었으며, 앞뒤로 음악이 연주되면서 12천신이 함께 그 궁전을 감싸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어떤 공덕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대답했다.
‘뒤에 오는 자에게 물어보라.’
잠시 뒤 다시 두 명의 설여귀薛荔鬼44 아귀의 다른 이름이다.
가 보였는데, 신장이 3장丈이고 검고 마르고 추하고 더러웠으며,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이 몸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각기 커다란 방망이를 잡고 서로를 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들은 사위성 동쪽의 대부호 바라문에 대해 듣지 못했는가? 하얀 말을 탄 자는 문을 지키는 종이었고, 조그만 궁전의 옥녀는 궁궐을 지키는 여종이었으며, 커다란 궁전의 두 사람은 내 자식과 며느리였고, 두 명의 아귀는 바라문이었다. 바라문 부부는 전생에 어리석은 탓으로 올바른 법을 믿지 않다가 지금 화를 당한 것이니, 이를 다시 어찌할 수 있겠는가?”[계자함啓字函 제1권]
계집 종[婢]이 금전 하나를 보시해서 귀한 공주의 몸이 되었고
가난한 여인이 두 냥을 보시해서 왕비의 영화를 얻었다.

『법원주림法苑珠林』에서 말하였다.
“아육왕의 궁전에 어떤 계집 종[婢]이 있었는데, 왕이 복을 짓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질책하면서 말했다.
‘왕께선 전생에 여래께 한 줌의 흙을 보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부귀를 얻게 되었고, 오늘 다시 복을 지으니 앞으로는 더욱 뛰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생에 죄를 지어서 지금은 종이 되었는데, 또다시 빈궁해서 복을 닦을 수 없으니 장차 더욱 비천해질 텐데 언제나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는 땅을 쓸다가 우연히 동전을 얻게 되어서 즉시 승려들에게 보시하니, 마음에 기쁨이 솟았다. 오래지 않아서 병으로 죽었는데, 아육왕 부인의 뱃속에 탁태해서 여자 아이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단정하고 남달리 뛰어난 모습이었는데, 오른손을 항상 쥐고 있었다. 나이가 만 5세가 되자, 왕이 품에 안고서 손을 문질러 열어 보니 금전 하나가 있었다. 금전을 취하는데, 취할 때마다 다시 금전이 생기면서 없어지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금전이 창고에 가득 차자, 왕은 그 까닭을 이상하게 여겨서 야사夜奢 아라한에게 가서 물었다. 야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여자 아이는 전생에 왕의 비녀였습니다. 썩은 흙을 쓸다가 동전 하나를 얻었는데, 그것을 승려들에게 보시한 덕택으로 왕의 딸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과응보가 이와 같습니다.’ ”
또 말하였다.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승려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공양을 보내는 자도 많았다. 어느 거지 여인이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전생에 복을 닦아서 금생에 부귀를 누리며, 지금 다시 복을 지으니 미래는 더욱 뛰어날 것이다. 나는 전생에 닦지 않아서 금생에 가난하고 괴로운데, 지금 만약 복을 짓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욱 비참하리라.’
거지 여인은 상심해서 흐느껴 울었다.
예전에 그녀는 분뇨 속에서 동전 두 냥을 얻었는데, 항상 아끼면서 보관해 두었다. 구걸하지 못했을 때 음식을 사려고 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제 음식을 얻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겠다.’
그리고는 즉시 그 돈을 승려들에게 보시했다. 그 때 유나승維那僧이 앞에서 축원을 하려고 했으나, 상좌가 스스로 축원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음식을 남겨서 그녀에게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상좌가 음식을 주는 것을 보았으므로 다 같이 덜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거지 여인은 크게 기뻐하다가 문득 과보를 얻었다. 그녀는 나무 밑으로 가서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누웠다. 보시의 복이 감응했던지 황금빛 구름이 그녀를 덮었다.
그 때 마침 국왕이 대부인大夫人55 천자天子를 낳은 부인을 말한다.
을 잃고서 사자를 보내 복덕이 있는 자를 찾도록 했다. 사자가 그 나무 밑에 이르러, 이 가난한 여인을 보았다. 점술사가 점을 쳐 보니, 국왕의 부인이 될 만하였다.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혀서 천 대의 수레와 만 명의 기병으로 맞이해서 왕의 처소에 이르렀다. 왕은 매우 기뻐하였다. 나중에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 복된 과보를 얻은 인연은 두 냥의 돈을 승려에게 보시했기 때문이다.’
즉시 왕에게 아뢰었다.
‘가서 은혜를 갚고 싶으니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수레에다 진귀한 보배와 음식을 싣고 산으로 가서 보시했다. 상좌는 즉시 유나로 하여금 축원하도록 했다. 부인이 생각했다.
‘전에 두 냥을 보시할 때는 상좌가 축원했는데, 지금은 진귀한 보배를 싣고 왔는데 어째서 직접 축원하지 않을까?’
나이 어린 비구도 역시 상좌의 이런 행동을 싫어했다. 그러자 상좌가 부인에게 말했다.
‘우리 불법佛法 안에서는 오직 착한 마음을 귀하게 여길 뿐 진귀한 보배는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부인께서 예전에 두 냥을 보시했을 때는 착한 마음이 지극히 수승했지만, 지금 진귀한 보배를 보시하면서는 스스로 자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축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이 어린 비구는 듣고 나서 부끄러워했다. 그 때 상좌가 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자, 승려들이 모두 초과初果를 얻었다.”[계자함啓字函 제1권]


돈 세 냥을 보시해서 5리里의 기쁨이 있었으니
후생에 갈무리한 곳간이 이처럼 광대하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악생왕惡生王이 숲 속에 놀러갔다가 금 고양이 한 마리가 서남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사람을 시켜서 발굴해 보니 구리 동이 하나가 나왔다. 3곡斛들이의 동이에는 금전이 가득 차 있었다. 점점 더 깊게 파서 다시 동이 하나를 얻었으며, 차례대로 3중重의 동이를 얻었다. 다시 곁으로 파들어 가기를 쉬지 않고 계속한 결과 1만 5리 안 모두에서 다 구리 동이를 얻었는데, 금전이 가득 찬 것이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왕은 기이하게 생각해서 즉시 가전연迦旃延 존자를 찾아가 돈을 얻게 된 인연을 갖추어 말했다.
‘이 돈을 쓰면 재앙을 얻지 않을까요?’
존자가 대답했다.
‘이것은 왕의 복된 과보이니, 사용해도 괴로움이 없을 겁니다. 비바시毘婆尸부처님 당시에 비구들이 네거리에서 크고 높은 좌대[大高座]를 설치한 뒤 발우를 그 위에 두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이여, 곳간을 견고하게 할 수 있다. 만약 전 재산과 돈을 이 곳간 속에 넣는다면 물에 떠내려가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고, 왕도 빼앗을 수 없고, 도적도 겁탈할 수 없다.’
그 때 땔감을 파는 사람이 3푼[文]의 돈이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 기쁜 마음이 생기면서 발우 속에 희사하고는 성실한 마음으로 소원을 일으켰습니다.
집까지 5리인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걸음걸음마다 기쁨에 넘쳤습니다. 문에 도달해서는 권화勸化의 처소를 향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다시 소원을 빈 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땔감을 팔던 사람이 지금의 왕입니다. 동전 세 냥을 보시한 인연으로 세세생생 존귀하면서 항상 이 같은 3중重의 동이와 돈을 얻고, 5리의 기쁨을 인연으로 해서 항상 5리 가득히 돈의 곳간이 있는 겁니다.’
왕은 전생의 인연을 듣고서 기뻐하면서 떠나갔다.”[경자함驚字函 제7권]


열매 하나를 보시해서 여러 겁 동안 병이 없었고
한 끼의 식사를 보시해 일곱 번 되풀이해 천신이 되었다.

『부법장경付法藏經』에서 말하였다.
“비바시毘婆尸부처님께서 계실 때, 한 비구가 두통을 앓고 있었다. 박구라薄拘羅 존자가 일찍이 가난했을 적부터 갖고 있던 한 개의 하리륵과河梨勒菓를 보시해서 그 비구의 병이 나았다. 박구라 존자는 열매를 보시한 인연으로 해서 91겁 동안 천상의 인간 속에서 복과 쾌락을 누렸으며, 일찍이 병이 든 적도 없었다. 최후에는 바라문의 가문에 태어났는데, 그 어머니가 일찍 죽자 아버지는 후처를 들였다.
박구라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떡을 만드는 것을 보고 쫓아가서 그것을 뒤져 먹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그를 미워해서 즉시 박구라를 잡아다가 화살촉 위에 던져 놓고, 화살촉의 끝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그를 불태워 해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다음에 고기를 구웠는데, 박구라가 다시 그것을 뒤져 먹었다. 어머니는 더욱 화가 나서 곧 솥 안에다 던져 넣었지만 역시 그를 끓여 죽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나중에 박구라를 강으로 쫓아내어 물 속에 던져 넣자 커다란 물고기가 그를 삼켜 버렸다. 그러다 그 물고기가 잡혀서 시장에 들어왔는데, 우연히 아버지가 그 물고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물고기의 뱃속을 갈라보니 박구라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버지에게 안부를 여쭙는데 다친 아이 같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식을 보고서 너무나 기뻐서 얼싸안고 나갔다. 박구라는 장성해서는 출가를 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화살촉의 열로도 달구지 못했고, 솥 안에서도 삶아지지 않았고, 물에 빠져서도 떠내려가지 않았고, 물고기가 삼켜도 죽지 않았고, 칼로 베어도 상처를 입지 않았으며, 160세가 되도록 병이 없었으니, 이는 병든 승려에게 열매 하나를 보시했기 때문이다.”[칠자함漆字函 제2권]

『달마현종론達磨顯宗論』에서 말하였다.
“무멸無滅 존자는 옛날에 뛰어난 복전福田이 있었는데, 음식을 한 번 보시했기 때문이다. 과보가 성숙하자, 이로부터 일곱 번을 되풀이해서 삼십삼천三十三天에 태어났고, 일곱 번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전륜성제轉輪聖帝가 되었으며, 최후엔 제석帝釋으로 태어나 살았다.”[자자함自字函 제3권]


실 한 오리를 보시해서 보리菩提를 성취하고
등불 하나를 보시해서 역시 부처가 되었다.

『보적경寶積經』에서 말하였다.
“방기라사旁耆羅私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실을 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적績이라고 했다. 항상 미세한 실을 짜서 여래께 보시하고서 부처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이 실을 받아 거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선근으로 인해 미래 세상에는 여래를 성취하여 능히 일체를 섭수하게 하옵소서.’
이처럼 매일 실 한 오라기를 보시해서 1천5백 일을 채웠다. 그는 이 복으로 말미암아서 15구지拘胝 동안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았고, 천 구지 동안 되풀이해서 전륜왕이 되었으며, 천 구지 동안 반복해서 천제석天帝釋이 되어서 천 구지 동안 부처를 받들었다. 또 향과 꽃과 의복들로 여래를 공양하였다. 이로부터 1아기야겁阿企耶劫이 지나 세간에 출현해서 대보리를 증득하였는데 명호를 선섭수善攝受여래라고 하였다. 미세한 실을 보시하고 발심發心을 크게 했기 때문에 차례차례 전전展轉해서 불법佛法을 원만히 성취하였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는 마음을 말미암은 것이지 실을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게송에서는 이렇게 설한다.

보시를 행할 때 미묘한 색色과 재물을 구하지 말라.
또한 천상과 인취人趣에 감응하길 바라지도 말라.
오직 위없이 수승한 보리를 구해야 하나니
보시는 미미해도 커다란 과보를 얻느니라.”[조자함鳥字函 제1권]

『아사세왕수결경阿闍世王受決經』에서 말하였다.
“왕이 식사할 때, 부처님께서는 이미 기원정사[祇洹]로 돌아가셨다. 왕은 많은 연등에 백 곡斛의 기름을 갖추고서 궁궐에서 곧바로 정사精舍로 갔다. 그 때 가난한 여인이 있었는데, 늘 부처님께 공양하려고 했지만 재물이 없었다. 왕이 이러한 공덕을 짓는 것을 보고는 더욱 간절해졌다. 그녀는 구걸해서 돈 두 냥을 얻었는데, 그것으로 마유麻油를 파는 집에 가서 기름을 사서는 부처님 앞에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생각하였다.
‘이 기름은 부족해서 저녁의 반나절 동안도 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이렇게 맹세했다.
‘만약 내가 후세에 도를 얻어서 부처님과 같아질 것 같으면, 반드시 기름이 밤새도록 타면서 광명이 꺼지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서 예를 드리고는 떠나갔다. 왕의 처소에 있는 연등은 꺼진 것도 있고 꺼지려는 것도 있었다. 비록 등불을 돌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항상 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난한 여인의 등불 하나만은 찬연히 홀로 빛나고 있었으며,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기름도 다하지 않아서 다음 날 아침까지 켜져 있었다. 부처님께서 목련目連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등불을 꺼도 좋다.’
목련이 곧 등불을 껐지만, 오직 가난한 여인의 등불 하나만은 세 번을 껐는데도 꺼지지 않았다. 목련이 문득 가사袈裟를 들어서 부채질하자 더욱더 밝아졌으며, 신통으로 비람풍毘嵐風을 끌어다 불어 보았지만 더욱 활활 타올라서 위로는 범천梵天을 비추고 옆으로는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다.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이것은 미래에 올 부처님의 광명ㆍ공덕이라서 그대의 위신력으로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가난한 여인은 전생에 180억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이미 전생의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다. 경법經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쓰느라 단바라밀[檀]을 닦을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가난해서 재물이 없지만, 30겁이 지나면 공덕이 원만해져서 부처가 되리니, 그 명호를 수미등광須彌燈光여래라 하리라.’ ”[상자함傷字函 제7권]


자비로운 세존께 꽃을 바쳐서 수기[記別]를 받았고
여래께 풀로 만든 일산을 씌워서 벽지불을 증득했다.

『채화위왕상불경採花違王上佛經』에서 말하였다.
“왕은 원감園監들에게 칙령을 내려 새벽에 아름다운 꽃을 꺾어 모두 궁 안으로 들여보내게 했다. 그들은 길에서 우연히 부처님을 뵙고서 법을 듣고는 기뻐하였다. 그래서 갖고 있던 꽃을 모두 부처님 위에 뿌렸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기[授決]를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미 90억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이후 140겁이 지나면 그대들은 반드시 부처가 되리니, 그 명호를 묘화妙華여래라 하리라.’ ”[상자함傷字函 제7권]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울단라연국鬱單羅延國에 계시면서 1천2백 대중을 거느리고서 촌락 사이를 유행하셨다. 이 때 날씨가 무척 뜨거웠는데도 길에는 서늘한 그늘이 없자, 한 명의 양치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다.
‘삼계三界의 스승께서 뜨거운 더위를 무릅쓰고 지내시니, 풀을 엮어 일산을 만들어서 부처님 위에 씌워 드려야겠다.’
양치기가 일산을 잡고 부처님을 따라가자 양이 있는 곳에서 크게 멀어졌다. 양치기는 일산을 땅에 던져 놓고 양 곁으로 돌아왔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풀로 일산을 만들어서 부처에게 씌워 주었다. 13겁 동안 천상과 세간의 존귀한 곳에 태어나고, 항상 자연히 7보로 된 일산이 그의 위에 있을 것이다. 13겁이 지나면 출가를 해서 도를 닦아 벽지불辟支佛이 되리니, 그 명호를 아뇩바달阿耨婆達이라 하리라.’ ”[기자함器字函]


꽃을 꺾어 부처님께 바치려고 길을 절반쯤 가다가
우연히 죽음을 당했으나 선업[善]에 힘입어 천상에 도달하다.

『비유경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양을 치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연못에 오색 연꽃이 핀 걸 보고는 그 꽃을 꺾어 부처님께 바치려고 했다. 그러나 절에 이르기도 전에 소를 만나 받쳐 죽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계자함啓字函 제4권]


절을 보시했으나 머물기도 전에 비가 내려 무너졌지만
부처님께서 일찍이 왕림함을 받았으니 복은 필연이도다.

『비나야경毘奈耶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6중衆66 6중은 6중비구를 줄여 말한 것으로서 여섯 무리의 못된 비구를 지칭하는 말이다. 6군비구群比丘라고도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절은 천타 비구가 부자로 하여금 돈을 대게 하고 자기가 공사 감독을 직접 하여 하루 만에 만든 3층짜리 부실공사 절이다.
천타闡陀가 한 명의 장자를 교화해서 절을 지어 희사하게 했다. 그러나 아래쪽엔 물 빠지는 도랑이 없고, 위로는 물 나오는 곳이 없었다. 절이 바야흐로 완성되어 다음 날이 경찬慶讚77 일을 이룬 것을 기뻐하고 선善의 근원을 기리는 것으로, 불사佛事를 회향하는 것을 말한다.
하는 날이었다. 부처님께선 이 절이 밤이 지나면 무너져서 시주가 크게 괴로워하면서 목숨을 마칠 것임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모든 필추(苾芻:比丘)들에게 지시해서 정력定力이 있는 자는 이른밤[初夜]에 천타가 지은 절로 가서 각기 착한 일[善品]을 닦으라고 했으며, 세존께서도 늦은밤[後夜]에 역시 그 절에 가셨다. 세속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상법常法이니, 세속의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제석천과 모든 천天이 다 뜻을 알아서 구름처럼 모여들자 부처님께서 이를 위해 모든 법의 무상無常함을 널리 설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부처님과 모든 필추들이 함께 떠났는데, 늦은밤 되자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면서 큰비가 내렸다.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자 절은 이내 무너졌다. 날이 밝자, 시주는 절에 경찬하러 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한량없는 재물을 희사했지만 아직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마침내 절이 무너진 광경을 보고는 기절해서 땅에 쓰러졌다. 잠시 뒤 깨어나자, 부처님께선 난타難陀를 시켜서 장자에게 말하도록 했다.
‘수많은 시주가 여래께 방과 집을 지어서 바쳤지만 불세존께서는 끝내 받아들이시고는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주들은 복이 행위에 따라 생겼는데, 하물며 그대의 절은 이른밤에 덕 있는 장로 필추들이 모두 들어와서 이용했으며, 세존께서도 가셔서 모든 천天이 모여들자 미묘한 법을 널리 설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복과 이익은 가없는 것입니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서 깊은 환희심이 생겼다.”[이자함而字函 제10권]

또 말하였다.
“방房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는 한 명의 새로 계율을 받은 나이 어린 비구가 계율의 덕이 청정해서 이 방 안에 들어오면 이미 단월檀越의 신심으로 한 보시의 덕은 마치게 된다. 만약 억수億數의 갖가지 방ㆍ각閣과 갖가지 장엄이 아래로는 금강지제金剛地際에 이르고, 높고 넓은 장엄장식[嚴飾]이 마치 수미산과 같다 하더라도, 만약 한 명의 청정한 계율을 지닌 비구가 잠시라도 받아들여서 이용한다면 이미 보시의 은혜를 마친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 지금 부처를 이루셨기에 비로소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체득 이해하고서 중생에게 준 것이지 세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세속을 여의고 열반[泥洹]의 문을 향한 것이다. 무릇 방사房舍ㆍ와구臥具ㆍ음식ㆍ탕약湯藥은 세간의 법이지, 세간을 여읜 얻기 어려운 법은 아니다.”[자자함子字函 제7권]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걸식을 너무 자주 하신다고 싫어하자
부처님께선 그대의 복도 또한 자주자주라고 말씀하셨다.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새벽에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하다가 돌라사突邏闍 바라문 집에 이르렀다. 그는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가득 담아서 세존께 바쳤다. 두 번째 날과 세 번째 날에도 다시 걸식하러 가자, 그 바라문은 ‘자주 오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부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아시고는 즉시 게송을 설하셨다.

하늘에서 비가 자주자주 내리니
오곡이 자주자주 익어가는구나.
도인道人은 자주자주 구걸하고
단월檀越은 자주자주 주어서

자주자주 천상에 태어나고
자주자주 과보果報를 받는구나.
부녀婦女는 자주자주 임신을 해서
자주자주 자식을 낳는구나.

자주자주 우유를 걸러서
자주자주 소락酥酪을 얻는다.
자주자주 생生을 받아서
자주자주 소멸하여 다한다.

자주자주 죽음에 이르고
자주자주 슬퍼하고 고뇌한다.
또한 다시 자주자주 번뇌하다가
자주자주 무덤에 묻히게 된다.

후유後有의 길을 끊을 수만 있다면
이내 자주자주를 그치게 되리라.
만약 자주자주 태어나지 않는다면
또한 자주자주 죽지도 않을 것이고
자주자주 근심을 하지도 않는다면
자주자주 호곡號哭하지도 않으리라.

그 때 바라문은 음식을 보시하기 위해 세존께 바쳤지만 받지 않으셨다. 그러니 마땅히 누구에게 줄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문과 바라문을 보지 않는다. 마귀[魔]든 범천이든 만약 이 음식을 먹으면 능히 법대로 소화할 수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음식은 반드시 벌레 없는 물 속이나 벌레 없는 풀 속에 놓아두어야 한다.’
그 때 바라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물 속에 놓아두었다. 즉시 치성하게 연기와 불꽃이 함께 일어나면서 졸졸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문은 환희하면서 ‘드문 일이로다’고 하였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출가를 했다.”[식자함息字函 제4권]


보시하면 반드시 그 과보를 얻는다고 형이 권하자
곳간을 열어 복 오기를 바라니 어찌 그리도 급할까.

『보시망즉보경布施望卽報經』에서 말하였다.
“목련目連에게 동생이 있는데 커다란 부자였다. 형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인색해서 보시하거나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부처님께선 은혜를 베풀고 보시를 하는 자는 수없이 많은 과보를 얻는다고 항상 공개적으로 설하셨다.’
동생은 형의 말을 듣고는 곳간을 열어서 보시를 하면서 다시 새로운 곳간을 세워서 그 과보를 받으려고 하였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재물이 고갈됐기 때문에 곳간이 텅 비었으며, 새로운 곳간에는 아무런 과보도 없었다. 그가 형에게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목련이 말했다.
‘그만두게나, 그만두게나.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그런 거친 말을 듣게 해서는 안 되네. 내가 지금 방편으로 그대에게 미약한 과보나마 보여 주겠네.’
목련은 신족력神足力으로 그 동생을 데리고 제6천天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궁전이 있었는데, 7보가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었다. 곳간도 가득 차 있었으며 옥녀가 관리하고 있었다. 수천만의 대중이 순전히 여자일 뿐 남자는 없었다. 동생이 목련에게 물었다.
‘누구의 궁전이길래 이토록 우뚝한 것입니까?’
그러자 목련이 동생에게 말했다.
‘네 스스로 가서 물어 보거라.’
천녀가 대답했다.
‘목련에게 동생이 있는데, 커다란 부자로서 보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마친 뒤에는 장차 이곳에 태어나서 우리들의 남편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동생은 기뻐하면서 형에게 가서 참회하였다. 그리고 세간에 돌아와서는 널리 보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병자함丙字函 제4권]
병든 승려가 고기를 구하니 사려고 해도 어디에도 없기에
마하사나는 허벅지 살을 베어 주었으니 그 정성 간절하도다.

『현우인연경賢愚因緣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우바이 마하사나摩訶斯那는 항상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부처님과 승려들에게 공양하였다. 그가 병든 비구를 보고서 물었다.
‘무엇을 드시고 싶습니까?’
병든 비구가 대답하였다.
‘뜨거운 고기즙을 먹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선 도살을 금지하였다. 그래서 그는 즉시 사람을 시켜 돈 등으로 거듭 사려고 했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마하사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먼 옛날에 보살은 한 마리 비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살을 베어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았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제자인데 어찌 그를 구제하지 않으리오.’
이렇게 생각하고서는 즉시 허벅지 살을 베어 온갖 약초와 합해서 약으로 달인 뒤 병든 비구에게 보냈다. 병든 비구는 그것을 먹은 후 금방 병이 나았다.”[반자함盤字函 제3권]


가령 범부 백 명의 무리에게 밥을 주더라도
계율을 지키는 착한 사람 하나에게 주느니만 못하다.

『사십이장경』에서 말하였다.
“백 명의 보통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한 명의 착한 사람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천 명의 착한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5계를 지키는 한 사람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5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에게 밥을 주는 것은 한 명의 수다원須陀洹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수다원 백만 명에게 밥을 주는 것은 한 명의 사다함斯陀舍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사다함 천만 명에게 밥을 주는 것은 한 명의 아나함阿那舍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아나함 1억 명에게 밥을 주는 것은 아라한阿羅漢 한 명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아라한 10억 명에게 밥을 주는 것은 벽지불辟支佛 한 명에게 밥을 주느니만 못하고, 벽지불 백억 명에게 밥을 주는 것은 3존尊의 가르침으로써 일세이친一世二親을 제도함만 못하고, 천억 명의 친족을 가르치는 것은 한 분의 부처님께 밥을 드림만 못하다.”[사자함辭字函 제7권]


한량없는 백천百千의 부처님께 공양함은
무심無心 도인 한 분께 공양함만 못하다.[보시에는 3법이 있다.]

『지요록指要錄』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수달須達을 위해 보시의 과보를 말씀하셨다. 보시를 많이 해도 과보는 적고 보시를 적게 해도 과보는 많은 것이 있다. 백천 명의 재가자[白衣]에게 공양하는 것은 청정한 행을 하는 한 분에게 공양하느니만 못하고, 나아가 백천 명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은 무심無心 도인 한 분에게 공양하느니만 못하다.”[계자함溪字函 제4권]

『법원法苑』에서 말하였다.
“보시에는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로 음식을 절에 보내는 것은 상上이라 하고, 집으로 모셔서 공양하는 것은 중中이라 하고, 집에 와서 보시를 구걸할 때 공양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하下라 한다.”[칠자함漆字函 제2권]


음식을 보시하면 다섯 가지 한량없는 복을 얻고
승려에게 공양하면 일곱 가지 다함없는 공덕을 얻는다.

『식시획오복보경食施獲五福報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선 음식을 보시하면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첫째는 목숨을 보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색色을 보시하는 것이고, 셋째는 힘을 보시하는 것이고, 넷째는 안락함을 보시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변재[辯]를 보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무엇이 목숨을 보시하는 것인가? 사람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7일 만에 수명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능히 보시하면 목숨을 보시한 것이 되니, 목숨을 보시한 자는 세세토록 장수를 누리고 재물과 부富는 한량이 없다.
무엇이 색色을 보시하는 것인가? 사람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안색이 초췌해진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능히 보시하면 색을 보시하는 것이 되니, 색을 보시하는 자는 세세토록 단정해서 남이 보면 기뻐한다.
무엇이 힘을 보시하는 것인가? 사람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몸이 초췌해지고 의지가 나약해진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능히 보시하면 힘을 보시하는 것이 된다. 힘을 보시하는 자는 세세토록 많은 힘을 갖게 되고 끝내 소모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무엇이 편안함을 보시하는 것인가? 사람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마음에 근심이 생기고 몸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능히 보시하면 편안함을 보시한 것이 된다. 편안함을 보시하는 자는 세세토록 안온하면서 재난과 환란을 만나지 않는다.
무엇이 변재를 베푸는 것인가? 사람이 능히 먹을 수 없다면 곤궁함으로 능히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능히 보시를 하면 변재를 보시한 것이 된다. 변재를 보시하는 자는 세세토록 통달을 해서 다른 사람이 법언法言을 채취한다. 이 다섯 가지 복이 음식을 보시한 과보이다.”[칠자함 제2권]

『존나경尊那經』에서 말하였다.
“존나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다함 없는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다함 없는 공덕은 매우 깊고 미묘하다. 만약 사람이 마음으로 귀의하면 커다란 과보를 얻게 되는데 여기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가령 선남자가 믿는 마음으로 보시하면 원림園林과 연못이 사방을 채워서 승려가 경행經行을 하며 거닐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니, 이것이 첫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다시 그 가운데 정사精舍를 건립하면 뭇 승려들이 편안히 머무니, 이것이 두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그 정사 안에서 앉고 눕는 도구를 보시하는 것인데, 이른바 의자와 탁자, 방석과 이부자리와 의복 등 갖가지 받아서 쓰는 물건이니, 이것이 세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다시 재물과 곡식을 베풀어 뭇 승려들에게 공양을 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다시 승려들에게 오고 가면서 항상 필수품들을 보시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다시 질병의 고통이 있는 자에게 능히 보시를 행하고, 아울러 병을 간병하는 자에게도 또한 보시를 행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나아가 눈비가 내리고 추워지면 능히 갖가지 음식과 탕약과 의복과 신발과 같은 종류를 마련해서 승려들에게 공급하여 커다란 안락을 얻게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의 다함 없는 공덕이다. 만약 사람이 이 법을 구족한다면, 커다란 과보를 얻는다.’ ”[연자함輦字函]


넓은 보시[廣施]는 일곱 가지로서 범천梵天의 복이요
공경히 다섯 종류의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의 공덕이 있다.

『불설복전경佛說福田經』에서 말하였다.
“넓은 보시[廣施]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불도佛圖ㆍ승방僧房ㆍ당각堂閣을 건립하는 것이며, 둘째는 동산과 과일ㆍ목욕하는 연못ㆍ수목의 청량한 것이며, 셋째는 항상 의술과 약을 보시해서 온갖 병을 치료하여 구제하는 것이며, 넷째는 견고한 배를 만들어서 인민이 건너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다리를 안전하게 건설해서 어린이와 나약한 사람이 건너게 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길 가까이에 우물을 만들어 목마른 사람이 마시게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깨끗한 화장실을 지어서 편리한 곳으로 보시하는 것이니, 이 같은 일곱 가지는 범천의 복을 얻는다.”[칠자함 제3권]

『잡비담심론雜毘曇心論』에서 말하였다.
“다섯 종류의 사람에게 보시함은 큰 과보를 얻는데, 무엇 때문인가? 부모는 오래도록 길러 주고 몸을 낳아준 은혜가 있기 때문에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 병자는 의탁할 데가 없어서 자비심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 법을 훌륭히 설하는 자는 선과 악을 보여 주기 때문에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 불지佛地에 가까운 자는 공덕을 쌓아서 중생을 섭수하기 때문에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화자함華字函 제8권]

또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경우에 보시해야 반드시 대과大果를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노니, 뜻대로 내게 대답하시오. 비유하자면 마치 전투할 때 모든 전사를 모집하는 것과 같소. 어떤 바라문족의 자식은 동쪽으로부터 오고, 찰리족[刹利] 동자는 남쪽으로부터 오고, 비사족[鞞舍] 동자는 서쪽으로부터 오고, 수다라족[首陀羅] 동자는 북쪽으로부터 오는데, 병법兵法을 잘 쓰지 못해서 적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이 같은 청장년[士夫]에게 왕은 상을 주겠소, 안 주겠소?’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상을 주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전투에 임할 때 바라문 등의 동자가 무예를 잘 배워서 능히 거대한 적을 쳐부순다면, 이 같은 전사에게 더 큰 상을 주겠소, 안 주겠소?’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더 큰 상을 줍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이처럼 사문과 바라문은 5지支를 멀리 여의고 5지를 성취해야 복전福田을 건립하고, 이 복전을 보시하는 자는 큰 복리福利를 얻고 큰 과보果報를 얻는다. 무엇을 5지를 여읜다고 하는가? 이른바 탐욕의 덮개와 성냄[瞋恚]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심의 덮개를 끊는 것이다. 무엇을 5지를 성취하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배움이 없는 계신戒身ㆍ정신定身ㆍ혜신慧身ㆍ해탈신解脫身ㆍ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을 성취하는 것이다.’ ”[부자함不字函 제2권]


찌꺼기를 보시하며 복을 빌자 그 헛됨을 비웃었지만
혀가 얼굴을 덮는 걸 보이니 그 말씀이 어찌 허망하리요.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하였다.
“모든 바라문들이 공통으로 제도를 세웠는데, 만약 부처님께 음식을 주거나 부처님과 함께 말한다면 그 벌로 금전 5백 냥을 물어내는 것이었다. 당시 부처님께서 성에 들어가 음식을 구걸하자, 사람들이 모두 문을 닫고 빈 발우로 내보냈다. 심부름하는 한 여인이 깨진 기와 그릇에다 냄새나는 찌꺼기를 담아서 문 밖으로 버리려다 부처님의 빈 발우를 보고는 신심信心이 청정해지면서 공양을 하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것이 없었다.
‘이 버리는 음식을 누가 취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뜻을 알고 즉시 그 보시를 받은 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음식을 보시하면 15겁 동안 천상과 인간에서 복과 쾌락을 누리면서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며, 나중에는 남자 몸을 얻어서 출가하여 도를 배운 뒤에 벽지불을 이루게 되노라.’
바라문이 말했다.
‘부처는 음식 때문에 이와 같이 거짓말을 하고, 냄새나는 음식을 감당치 못하니 과보가 무거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혀를 내밀어 얼굴을 덮어서 머리털에까지 이르게 한 뒤에 바라문에게 말했다.
‘그대는 경서經書를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있던가?’
바라문이 말했다.
‘이 같은 혀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잘못을 뉘우쳤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법을 설하자 초도初道의 과果를 얻었다. 그는 즉시 큰 소리로 대중에게 말했다.
‘감로甘露의 문이 열렸는데 어째서 나서지 않는가?’
모든 바라문도 부처님을 우러르면서 공양하여 모두 청정한 믿음을 얻었다.”[계자함啓字函 제1권]

『수명동자경壽命童子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해와 달과 별이 땅에 떨어질 수 있어도
산에 있는 돌이 땅에서 공중으로 날아갈 수는 있어도
깊고 깊은 바닷물을 마르게 할 수는 있어도
부처님의 말씀은 결정코 허망하지 않도다.[영자함營字函 제2권]


보시는 적어도 복은 많다고 하니 누가 믿겠는가.
씨앗은 작아도 나무는 크니 내 어찌 속이겠는가.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사위성 밖에 청신녀淸信女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걸식하시자, 밥을 발우 속에 넣고는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축원하셨다.
‘하나를 심어 열을 낳고, 열을 심어 백을 낳고, 백을 심어 천을 낳고, 나아가 만을 낳고 억을 낳아서 도제道諦를 볼 수 있으리라.’
그 여인의 남편이 믿지 않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 이리도 심하십니까? 한 그릇의 밥을 보시해서 그렇게 많은 복을 얻고, 게다가 또 도제까지 보다니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니구류수尼拘類樹의 높이가 얼마쯤 된다고 보는가?’
여인의 남편이 대답했다.
‘높이가 40리로서 해마다 수만 곡斛의 열매를 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말이 어찌 그리 심한가? 씨앗은 겨자씨만한데 높이가 사십 리가 되고 만 곡의 씨앗을 낸다고 하니 말이오?’
여인의 남편이 대답했다.
‘실제가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땅은 그 과보를 알지 못하면서도 능력이 그러한데, 하물며 기쁜 마음으로 한 그릇의 밥을 부처님께 바친다면, 그 복은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니라.’
두 부부는 심의心意가 열리면서 수다원須陀洹의 도道를 얻었다.”[도자함圖字函]


쥐와 참새가 침입함은 나를 의지해서 사는 것이니
자비는 해로움이 없고 보시의 공덕은 깊도다.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 중에서 말하였다.
“가령 밭과 곳간에 참새와 쥐가 많이 있어서 곡식을 파먹으면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쥐와 참새는 나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자 기쁨이 생기면서 괴로운 상념에 시달리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극자함剋字函 제5권]


부귀를 누리는 자가 구걸로 인해 모두 번뇌를 일으키니
괴로움과 즐거움은 진실로 일념一念의 차이로부터 말미암는다.

『법원法苑』에서 말하였다.
“두 종류의 인간이 있으니, 한 사람은 크게 부유하고, 또 다른 사람은 빈궁하다. 구걸하는 사람이 오자, 이 두 사람은 모두 고뇌를 품는다. 재물이 있는 자는 구걸로 없어질까 두려워하고, 재물이 없는 자는 ‘내가 어떻게 하면 작은 재물이라도 얻어서 그에게 줄까?’라고 여긴다.
이처럼 두 사람의 걱정과 고뇌는 비록 같더라도 과보는 각기 다르니, 가난하면서도 자비로운 자는 인천人天 가운데 태어나서 한량없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부유하면서도 인색한 자는 아귀餓鬼 가운데 태어나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부자함府字函 제1권]


가난해도 보시하고 부유해도 인색함은 과거의 습관 때문이고
이미 부유하면서 영화가 없음은 보시를 후회한 허물 때문이다.

『미륵소문경彌勒所問經』에서 말하였다.
“부자는 인색한데 가난한 자가 능히 희사喜捨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대답하였다.
‘그 사람이 과거에 비록 오랫동안 인색한 습관이 있었지만 홀연히 청정한 복전福田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보시를 행하였다. 이 때문에 그 원으로 지금 몸은 부유하고 즐겁지만 습관으로 이루어진 성품의 인색함은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가난한데도 능히 보시하는 자의 경우 이 사람은 과거에 복전福田이 아닌 것에 대해 신심이 없었기 때문이며,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명칭을 위했기 때문이며, 사事를 구했기 때문이며, 존중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능히 보시를 했으니, 이러한 뜻으로 인해 부의 과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보시를 익혀 왔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보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함傳字函 제3권]

『잡아함경』에서 말하였다.
“사위성에 장자가 있었는데 마하남摩訶南이라고 하였다.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는데, 병에 걸려서 그만 목숨을 마치고 말았다. 집안의 재물을 관에다 넣었는데, 금은과 진기한 보물이 수천억만으로 헤아릴 수 없었다. 인색하고 탐욕스러웠기 때문에 아까워서 먹지를 못했고,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거친 음식이었다. 가령 국을 먹을 때는 생강 한 움큼을 달이고, 달이고 난 후 다시 거둬서 그걸 팔아 재산을 만들었다. 입는 것이라곤 오직 거친 베옷만을 입었고, 낡은 고물 수레만을 탔으며, 나뭇잎을 엮어서 일산을 만들었고, 사문이나 바라문, 가난한 사람, 거지, 아이에게 작은 보시라도 행하는 걸 일찍이 본 적이 없으며, 또한 부모와 처자와 노비에게도 능히 공양하지 못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이요, 훌륭한 장부가 아니다. 이 마하남은 예전에 벽지불에게 밥 한 그릇을 보시했는데,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손으로 보시하지도 않고 던져서 주었다. 나중에는 또 후회하였다. 먼저 보시한 음식으로 말미암아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으며,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부를 누리는 걸 기뻐하지 않았다. 게다가 또한 전생에 돈과 재물 때문에 이복동생을 죽여서 지옥의 고통을 거친 뒤에야 인간의 과보를 받았는데, 돈과 재물은 일곱 번이나 도리에 어긋나 관官에 몰수되었다. 마하남은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해서 복을 받았으나 다 누린 후에는 지옥으로 들어갔다.’ ”[식자함息字函 제3권]


음식을 내놓지 않으면 불자佛子가 아니고
분수에 따라 보시를 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리오.

『대열반경大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마을을 유행하실 때, 나무 아래에 귀신 하나가 있었는데 이름이 광야曠野였다. 순전히 고기와 피만을 먹었는데, 하루에 한 사람씩 먹었다. 나는 그를 위해 법을 설했지만, 그는 어리석어서 가르침의 도道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즉시 몸을 변화해 대력귀大力鬼가 되어서 그의 궁전을 흔들어 그의 처소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 귀신은 갈피를 못 잡고 고민하였다. 내가 자비와 연민으로 그의 몸을 손으로 문지르자, 즉시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착한 신심을 일으켰다. 내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해서 그에게 법요法要를 설하자, 그는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받아들였다. 그 귀신이 말하였다.
‘저와 권속들은 오직 피와 고기만을 먹으면서 스스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계율을 지녔으니, 어찌해야 살아가겠습니까?’
나는 즉시 대답했다.
‘이제 제자에게 명령을 내려서 불법佛法을 수행하는 곳에 따라 그대에게 음식을 보시하도록 하겠노라. 능히 보시하지 못하는 자는 내 제자가 아니다.’”[일자함一字函 제7권]

음식을 보시하는 게송[施食偈]에서 말하였다.

그대들 귀신의 무리들이여
내 이제 그대들에게 공양을 베풀리라.
일곱 낟알이 시방에 두루하니
일체의 귀신도 함께하노라.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가령 재물과 보배가 많고 훌륭한 복전이 있는데도 안으로 믿는 마음이 없어서 능히 받들어 보시하지 못한다면, 역시 빈궁貧窮이라 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많고 적은 능력에 따라 보시를 한다.”[극자함剋字函 제4권]


애착하는 마음으로 희사한다면 복이 넓질 못하고
친족을 버리면서까지 보시에 애착한다면 과보에 허물이 있다.

『법원』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는 부처님께서 출가를 하시자, 손수 실을 짜서 미리 일단(一端:옷감의 길이)의 금색 모직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마음으로 항상 여래께 바치겠다고 생각해 왔다. 부처님께서 그 모직물을 승려들에게 보시하도록 하자, 마하파사파제는 거듭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후부터 마음으로 항상 생각해 왔기 때문에 손수 만든 것입니다. 간절하게 바라오니 부디 자비를 내리셔서 저를 위해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오로지 내게 보시하고 싶다는 이모의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애恩愛의 마음은 복을 넓히지 못합니다. 만약 승려들에게 보시한다면, 더 많은 과보를 얻을 것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권유한 것입니다.’ ”[부자함府字函 제1권]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권속을 괴롭혀서 얻은 물건으로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미래에 비록 큰 과보를 얻더라도 몸이 반드시 병의 고통을 받으리라. 만약 부모를 먼저 공양하지 못하고 아내와 자식을 괴롭히고 노비를 피곤하게 해서 보시하는 자라면, 이는 거짓 이름뿐인 보시라서 의로운 보시[義施]라고 이름하지 못하며, 연민이 없다고 이름하며 보은報恩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미래에 비록 재물과 보배를 얻더라도 항상 잃어서 모으질 못하고, 능히 꺼내서 쓰질 못하며 몸에 병의 고통도 많다.”[극자함剋字函 제5권]


보시에는 여법如法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으며
또 마땅히 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 다섯 가지가 있다.

『법원』에서 말하였다.
“재물의 보시財施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극한 마음으로의 보시이고, 둘째는 믿는 마음으로의 보시이고, 셋째는 때에 따라 하는 보시이고, 넷째는 손수 하는 보시이고, 다섯째는 여법如法한 보시이다.”

또 말하였다.
“마땅히 보시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이치에 맞지 않게 구한 재물은 남에게 보시하지 않아야 하니, 물건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술과 독약은 남에게 보시하지 않아야 하니, 중생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덫이나 그물은 남에게 보시하지 않아야 하니, 중생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칼과 몽둥이와 활과 화살은 남에게 보시하지 않아야 하니, 중생을 해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음악과 여색은 남에게 보시하지 않나니, 청정한 마음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부자함府字函 제1권]


도리에 맞지 않는 보시는 무익하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악취惡趣를 좇더라도 여유를 얻는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이 채찍질을 하고 고문을 가해서 도리에 맞지 않게 얻은 재물로 보시를 한다면, 코끼리ㆍ말ㆍ소 가운데 태어나 비록 축생의 형태를 받아서 심한 채찍질을 받고 굴레에 매이고 사람을 태우고 달려도, 좋은 집과 좋은 음식을 누리면서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사람들에게 갖가지 공급을 받는다. 또 가령 악인으로 화를 많이 품고 마음이 왜곡되고 단정하지 못하면서도 보시를 행한다면, 반드시 용龍 속에 떨어져 7보 궁전에서 미묘한 빛깔과 좋은 음식을 누린다. 또 가령 교만한 사람으로 오만하고 성내는 마음이 많은데도 보시를 행한다면, 금시조金翅鳥 가운데 떨어져서 여의주를 영락瓔珞으로 삼아 만 가지 변화를 부리니, 바라는 온갖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다. 또 가령 벼슬을 한 사람이 법의 위반이나 남용으로 얻은 재물로 보시를 한다면, 귀신 중에서도 구반다귀鳩槃茶鬼가 되어서 갖가지로 변화하면서 5진塵을 스스로 즐긴다. 또 가령 사납고 화를 잘 내고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보시를 행하면, 땅의 야차귀夜叉鬼 가운데 떨어져서 항상 갖가지 음악과 음식을 얻는다. 또 가령 어떤 사람이 난폭하고 억세면서도 능히 수레와 말을 보시하여 걷는 것을 대신하게 한다면, 허공 야차 가운데 떨어져도 큰 힘이 있어서 바람처럼 이르게 된다. 또 가령 어떤 사람이 질투심이 있고 다투길 좋아해도 능히 방사房舍ㆍ와구臥具ㆍ의복ㆍ음식으로써 보시한다면, 궁관비행宮觀飛行 야차 가운데 태어나서 갖가지 오락을 즐기고 몸에 편한 물건이 있다. 만약 앞사람을 괴롭혀 억지로 물건을 구해서 복을 영위하는 자라면, 도리어 그 죄를 초래하니 이는 내심을 청정하게 다스려서 점점 더 큰 이익을 얻느니만 못하다.”[덕자함德字函 제2권]


내가 보시함이 없는 바에는 마땅히 입을 다물어야 하며
남이 보시하는 것을 막는다면 스스로 재앙을 취하게 된다.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목련이 왕사성에 들어가 음식을 구걸하다가 5백 명의 아귀를 보았다. 그들이 말했다.
‘존자시여,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저희 집안에다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장자의 아들인데, 날마다 방일해서 보시를 좋아하지 않았고 3보寶를 믿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문들이 성으로 들어와 음식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도 스스로 보시하지도 않고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막았습니다.
≺이 도인은 스스로 생활하지 않고 백성들만 쳐다볼 뿐입니다. 지금 만약 음식을 준다면, 훗날에도 다시 찾아오면서도 끝내 싫증내지 않을 겁니다.≻
이 업연業緣으로 말미암아 아귀 가운데 떨어졌으니, 부디 존자께서 마을의 친족들에게 말해서 공동으로 큰 법회를 마련하여 부처님과 승려들을 청해 이 몸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십시오.’
목련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법회 장소에 올 수 있겠는가?’
아귀가 대답했다.
‘몸은 타 버린 기둥 같고, 배는 태산과 같고, 목구멍은 가는 바늘 같고, 머리털은 송곳과 같고, 사지의 관절은 비어 있어서 달려가 음식을 구해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설사 맛있는 요리를 보아도 고름이나 피로 변해 버리니, 어찌 법회 장소에 갈 수 있겠습니까?’
목련은 아귀가 말한 대로 그들의 권속에게 말해서 법회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가서 그 아귀들을 두루 관찰하였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 까닭을 괴이하게 여겨서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귀들은 업풍業風에 날려갔으니, 그대 성문들이 능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대가 마련한 법회에 힘입어서 죄의 더러움이 제거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법회 장소에 올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시자, 그날 밤 목숨을 마치고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경자함經字函 제5권]
가난한 자가 비록 궁핍해도 마땅히 보시할 수 있는 것이니
어느 누군들 실이나 먼지 낀 보릿가루마저 없겠는가?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재물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재물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이 뜻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일체의 수초水草라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까닭이며, 비록 국왕이라도 반드시 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비록 빈궁한 사람이라도 능히 보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빈궁한 사람도 먹는 몫이 있는데, 먹은 후에 그릇을 씻으면서 탕蕩을 버리고 즙汁을 씻으니, 이러한 음식을 보시해도 복덕을 얻는다. 가령 먼지 낀 보릿가루를 개미 새끼에게 보시해도 역시 한량없는 복덕의 과보를 얻는다면, 천하의 지극히 가난한 이라도 누군들 티끌만큼의 보릿가루조차 없겠으며, 누군들 하루에 세 뭉치의 보릿가루를 먹지 못해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는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음식의 절반이라도 구걸하는 자에게 보시해야만 착한 사람이다. 지극히 가난한 이 가운데서 옷이 없어서 벌거벗은 자가 누가 있는가? 만약 옷이 있다면 어찌 실 한 올을 보시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천하 사람 가운데 가난하다고 해서 몸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만약 몸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복을 짓는 것을 보고서 마땅히 달려가 몸으로 도와야 하니, 이것 역시 시주施主라 이름하며, 또한 복덕을 얻는다.”[극자함剋字函 제4권]


천하에 지극히 어려운 일이 다섯 가지가 있으니
곤궁한 가운데도 능히 보시하는 것을 첫째로 친다.

『사십이장경』에서 말하였다.
“천하에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빈궁하면서 보시하는 어려움, 호화로운 부귀를 누리면서 도를 배우는 어려움, 수명을 다스려서 죽지 않는 어려움, 부처님의 경전을 보게 되는 어려움, 태어나서 부처님 세상을 만나는 어려움이다.”


만족할 줄 모르면 비록 부유하더라도 가난한 것이고
만족할 줄을 안다면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한 것이다.

『사십이장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을 관해야 한다. 만족할 줄 아는 법이 바로 부유하고 즐겁고 안온한 곳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땅 위에서 눕더라도 오히려 안락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비록 천당에 거처하더라도 또한 뜻에 맞지 않는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비록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항상 5욕欲에 끌리게 되고, 만족할 줄 아는 자에게 연민을 받는다.’ ”[사자함辭字函]


재물은 5가家에 속한 것으로 내 물건이 아니며
인색해서 나누어 보시하지 않는다면 다음 생生이 가난해진다.

『보적경』에서 말하였다.
“선안 대범천왕善安大梵天王의 태자가 부모에게 말했다.
‘금ㆍ은ㆍ유리ㆍ수정ㆍ자거ㆍ마노ㆍ명주明珠를 어찌 갈무리할 수 있겠습니까? 빈곤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하물며 일체의 재산[財業]은 참다운 보배가 아니니, 물ㆍ불ㆍ도적ㆍ관리ㆍ나쁜 자식이라는 5가家가 몫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부모가 말했다.
‘좋다. 네 뜻대로 하거라.’
태자는 재물을 취하여 널리 보시하였다.”[사자함師字函 제4권]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이 재물을 얻었는데도 탐욕과 인색함으로 베풀지 않는다면, 이는 바로 미래 세상 속에 빈궁의 씨앗일 뿐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극자함剋字函 제5권]


친한 이든 친하지 않는 이든 마땅히 평등하게 은혜를 베풀고
희사喜捨하든 희사하지 않든 어찌 항상 간직하겠는가.

『보적경』에서 말하였다.
“재가在家 보살은 자기 자식의 소유에 대해 지나치게 애착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식의 소유에 대해 지나치게 애착해서 타인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스스로를 훼손시키는 것이니, 마땅히 세 가지 법으로써 스스로를 질책해야 한다. 무엇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보리도菩提道는 평등한 마음이지 불평등한 마음이 아니며, 보리도는 올바른 행동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그릇된 행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보리도는 차별이 없는 행[無異行]으로 얻는 것이지 행을 여의고서 얻는 것이 아니다.
다시 다음에 마땅히 자기 자식에 대한 자기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자식에 대해 원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악지식惡知識의 생각이지 선지식의 생각이 아니라서 부처님 지혜의 평등한 자비를 거역해 나의 선근을 해치나니, 그는 마땅히 어디서나 스스로 마음을 조복해야 한다. 가령 그 자식을 사랑한다면 일체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하고, 가령 자신을 사랑한다면 일체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마땅히 이러한 관觀을 닦아야 하니, 내가 다른 처소에서 오면 자식도 다른 처소에서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은 일찍이 내 자식이었던 적이 있고, 나 또한 그 모든 중생의 자식이었던 적이 있어서 결코 나는 자식이고 그는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떠나가서 6취趣에 이르더라도 다시 원수가 되거나 혹은 다시 자식이 되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친하든 친하지 않든 평등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친한 이에 대해선 사랑해서 주려고 하는 마음이 배로 생기고, 친하지 않은 이에 대해선 일체를 주지 않는 것인가? 만약 내가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법에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평등하지 못한 행은 평등하지 못한 곳에 이르고, 평등한 행을 하면 평등한 처소에 이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불평등한 행을 행해선 안 되며, 내가 평등한 마음을 배워야만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일체지一切智에 이른다.”

또 말하였다.
“재가 보살은 걸식하는 자가 와서 구걸하면, 경우에 따라서 재물을 베풀어야 하는데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재물을 베풀든 베풀지 않든 재물은 모두 반드시 흩어져 사라지게 마련이고, 나는 소원하는 것을 채우지 못하고 반드시 죽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재물을 버리지 않으면 재물이 나를 버릴 것이니, 내 지금 마땅히 희사해서 견고한 재보를 만들고 난 뒤에야 죽겠다. 이 재물을 희사하고 나면 죽을 때 한이 없으리라.’”[시자함始字函 제2권]


오직 소치는 여인에게만 알려서 가장 먼저 공양하게 하고
또 순타純陀가 바친 마지막 음식 공양만 받으심을 부러워하다.

『석가보釋迦譜』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도를 성취하셨을 때, 숲 밖에 난타파라難陀波羅라는 한 명의 소치는 여인이 있었다. 그 때 정거천淨居天이 하계로 내려와서 권유했다.
‘태자가 지금 숲 속에 계시니, 그대가 공양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은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크게 기뻤다. 그 때 땅 속에서 자연히 천 개의 잎을 가진 연꽃이 생겨났는데, 연꽃 위에는 우유가 있었다. 여인은 이 모습을 보고 기특한 마음이 생겨서 즉시 우유 죽을 만들었다. 태자의 처소에 이르자, 머리를 땅에 대고 발에 예배하면서 우유 죽을 태자에게 바쳤다. 태자는 곧 그녀의 보시를 받아들이고 축원[呪願]하였다.
‘지금 보시된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는 기력을 충만하게 하시고, 마땅히 보시한 집안은 안락하면서 병이 없고, 마침내 수명을 보존하고 지혜가 구족하게 하소서.’
태자가 다시 말했다.
‘나는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이 음식을 받아들이노라.’
즉시 음식을 받아서 먹으니, 신체가 기쁨으로 빛나면서 보리를 감당할 만하였다.”[채자함彩字函 제3권]
『경률이상經律異相』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구시성拘尸城에는 공인工人의 아들이 있었는데 순타純陀라고 이름하였다. 그는 울면서 세존께 아뢰었다.
‘저희들에게는 이제부터 주인도 없고 구원도 없으니 빈궁하고 외롭고 어렵습니다. 여래께 앞으로 음식을 구하고 싶으니, 부디 불쌍히 여기셔서 저희들의 미약한 공양을 받으신 뒤에 열반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를 위해 빈궁함을 없애도록 하겠노라. 위없는 법비[法雨]를 그대의 신전身田에 내려서 법의 싹을 낳도록 하고, 그대가 단(檀:보시)바라밀을 구족하도록 하리라.’
순타가 큰 소리로 울면서 다시 아뢰었다.
‘대중이 공동으로 예배드리면서 권하오니, 부처님께서는 부디 열반하지 마옵소서.’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불법이 그러하니, 유위有爲도 역시 그러하다. 조속히 베풀 것에 힘써야지 오래 머물러선 안 된다.’
이 때 천인이 모두 와서 공양을 바쳤지만, 부처님께선 모두 받지 않으셨다. 대중들이 외쳤다.
‘기이하도다. 순타는 큰 복을 성취했구나. 그런데 우리의 공구供具는 헛되이 버려졌구나.’
세존께서는 대중들의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하나의 털구멍을 한량없는 부처로 화했는데, 한 분 한 분의 모든 부처님에게는 한량없는 모든 비구승들이 있어서 다 공양을 받았다. 석가여래께서는 순타가 바친 음식을 스스로 받아들여서 정확히 8곡斛을 드셨으며, 부처의 신력神力으로 일체 대중을 모두 다 충족시켰다.”[영자함靈字函 제4권]

살타는 몸을 던져 호랑이의 굶주림을 채워 주고
살바달왕은 자신의 살을 베서 매의 굶주림과 바꾸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말하였다.
“지난 세상에 왕이 있었으니 마하라타摩訶羅陀라고 하였다. 세 명의 태자를 낳았는데, 맏아들은 마하파나라摩訶波那羅라고 했고, 둘째 아들은 마하제바摩訶提婆라고 했고, 막내아들은 마하살타摩訶薩陀라고 했다.
숲으로 유행을 나섰다가 호랑이 한 마리를 보았는데 마침 출산한 지 7일이 지났었다. 새끼 일곱 마리가 어미를 빙 둘러싸고 있었는데, 굶주림으로 목숨이 끊어질 듯했다. 첫째 왕자가 굶주림의 핍박을 받으면 반드시 도리어 새끼를 잡아먹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자, 셋째 왕자가 물었다.
‘이 호랑이가 먹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왕자가 대답했다.
‘이 호랑이는 신선한 고기와 피만을 먹는다네.’
셋째 왕자가 다른 왕자에게 말했다.
‘누가 능히 이 호랑이에게 음식을 줄 수 있겠는가?’
둘째 왕자가 말했다.
‘이 호랑이는 굶주림에 지쳐서 남은 목숨이 얼마되지 않는다네. 다른 곳에서 음식을 구할 수도 없으며, 설사 다른 곳에서 음식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목숨을 반드시 구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니, 누가 능히 이 호랑이를 위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겠는가?’
셋째 왕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옛날부터 이 몸을 여러 번 버렸다. 도무지 이익이 없는 데다가 다시 이 몸을 관찰해 보니, 마치 물 위에 뜬 거품과 같고 시신을 먹고 사는 온갖 벌레가 많아서 청정하지 못하고 싫어할 만하다. 내가 이제 이 몸을 버려서 적멸무상寂滅無上의 법신法身을 구하리라.’
형들이 막으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함께 길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도중에 살타는 몸을 숨겨서 다시 호랑이가 있는 곳에 와서 이렇게 맹세했다.
‘나는 이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보리를 구하기 위해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겠노라.’
그래서 굶주린 호랑이 앞에 누웠지만, 호랑이가 능히 어찌하질 못했다. 칼을 구할 수도 없고 해서, 즉시 마른 대나무로 목을 찔러 피를 내고, 높은 산 위에서 호랑이 앞으로 몸을 던졌다. 그 때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호랑이가 즉시 왕자의 몸에서 나오는 피를 핥고 그 살을 먹으니, 오로지 뼈만 남아 있었다. 두 형은 땅이 크게 진동하는 것을 보고는 동생이 몸을 버린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서 함께 호랑이 앞에 돌아와 보니, 과연 그와 같은 상태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때의 살타는 지금의 나 자신이고, 대왕인 마하라타는 지금의 두단頭檀이고, 왕의 부인은 지금의 마야摩耶이며, 첫째 왕자는 지금의 미륵彌勒이고, 둘째 왕자는 지금의 조달調達이다. 호랑이는 구이瞿夷이고, 호랑이 새끼 일곱 마리는 지금의 다섯 비구와 사리불과 목건련이다.’ ”

『도무극경度無極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살바달왕薩婆達王은 중생에게 널리 보시했는데, 그 최선을 다함이 넘칠 정도였다. 천天이 자기 지위를 빼앗을까 걱정해서 그를 찾아가 시험을 했다. 제석천은 즉시 몸을 나타내서 변왕邊王에게 명령했다.
‘살바달왕은 자비의 혜택이 넘쳐흐르고 복덕이 높고 높아서 내 지위를 빼앗을까 걱정이 되노라.’
즉시 제석천은 매로 변화하고, 변왕은 비둘기가 되어서 왕의 발 아래로 가서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슬픕니다, 대왕이시여.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왕이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이제 너를 살려 주겠노라.’
매가 뒤이어 와서 말했다.
‘비둘기가 이리로 왔는데, 비둘기는 제 먹이입니다. 부디 왕께서는 돌려주십시오.’
왕이 말했다.
‘비둘기가 이리로 온 것은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다. 진정 고기를 얻고 싶다면, 즉시 주겠노라.’
매가 말했다.
‘오직 비둘기만을 원할 뿐 나머지 고기는 필요 없습니다.’
왕이 말했다.
‘어떤 것을 주어야 네가 비둘기를 기쁘게 떠나도록 놓아줄 수 있겠는가?’
매가 말했다.
‘만약 왕께서 자비로운 은혜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왕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비둘기와 바꾸신다면, 제가 흔쾌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스스로 넓적다리 살을 벴다. 그리고는 비둘기와 대비해 무게를 달도록 해서 매에게 주도록 했다. 비둘기의 무게가 더 나갔지만, 몸을 벤 살이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고통이 한량없었지만, 왕은 자비와 인내로써 다시 측근의 신하에게 명령했다.
‘나를 죽여 골수의 무게를 달아서 비둘기들에게 주도록 하라. 나는 부처님의 계율을 받들면서 중생의 위난을 구제하겠다. 비록 온갖 고뇌가 있을지라도 마치 미풍과 같을 뿐이니, 어찌 태산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매는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한 뒤 절을 하면서 물었다.
‘대왕께선 어떤 뜻을 지니셨길래 고뇌도 그 정도로 여기십니까?’
‘나는 제석천이나 비행황제飛行皇帝에 뜻을 두고 있지 않다. 내가 중생을 관찰해 보니 눈먼 어둠[盲冥] 속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부처를 구하여 저 중생을 제도하려는 서원을 세웠다.’
제석천이 놀라서 말했다.
‘저는 대왕께서 제 지위를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을 시험한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내 몸의 상처를 치료해서 예전처럼 회복시켜다오. 항상 보시를 행하겠노라.’
천상의 약을 바르자 상처가 단박에 나았다. 제석천은 절을 하면서 대왕 주위를 세 번 돌고 난 뒤 기뻐하면서 떠나갔다.”[영자함靈字函 제10권]


온몸을 쪼개서 한 구절의 게송을 쓰고
반 구절의 게송을 듣고자 온몸을 버리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석가문釋迦文 부처님께서 보살이었을 때 낙법樂法이라고 이름하였다. 당시 세상에는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아서 법어法語를 듣지 못했다. 사방으로 부지런히 구하러 다녔지만 끝내 얻을 수 없었다. 이 때 마귀[魔]가 바라문으로 변해서 말했다.
‘나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 한 구절을 갖고 있다. 그대가 능히 가죽으로 종이를 삼고, 뼈로 붓을 삼고, 피로 먹을 삼아서 이 게송을 쓴다면 마땅히 그대에게 주리라.’
낙법이 생각했다.
‘몸을 잃은 적은 수도 없었지만 이런 이익을 얻지는 못했다.’
즉시 스스로 가죽을 벗겨서 햇빛에 말린 다음에 그 게송을 쓰려고 했다. 마귀는 문득 몸이 소멸되었다. 부처님께서 그의 지극한 마음을 알고 즉각 하방下方으로부터 솟아 나오셔서 그를 위해 깊은 법을 설하자, 그는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입자함立字函 제9권]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과거 불일佛日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적에 나는 당시 바라문이 되어서 보살행을 닦고 있었다. 경전을 두루 구하러 다녔지만 그 이름[名字]조차도 듣지 못했다. 설산에서 좌선하면서 부지런히 고행을 닦고 있을 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나찰羅刹로 변했는데 그 형상이 매우 무서웠다. 그는 과거의 부처님께서 설하신 반 구절의 게송인, ‘모든 행은 무상無常하니, 이는 생멸법이니라’를 큰 소리로 외웠다. 이렇게 설한 후 문득 멈추었다. 나[苦行者]는 이 반 구절의 게송을 듣자 기쁜 마음이 들어서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사람은 없고 오직 나찰만이 보였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마침 게송을 듣고서 내 마음을 깨우쳤는데 이는 나찰이 설한 것인가, 아니면 설하지 않은 것인가?’
나찰이 나에게 대답했다.
‘나는 여러 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너무 심한 나머지 마음이 혼란되어 말이 잘못된 것이지, 나의 본심이 아는 바가 아닙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설한 것은 뜻이 그래도 좀 완전하지 않네. 만약 나를 위해 이 게송을 다 설해 준다면, 나는 반드시 종신토록 그대의 제자가 되겠노라.’
나찰이 대답했다.
‘당신은 단지 법만 생각할 뿐 나의 굶주림은 생각하지 않으니, 실로 설할 수 없습니다.’
나는 즉시 물었다.
‘어떤 것을 먹는가?’
나찰이 대답했다.
‘제가 먹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따뜻한 살이고, 마시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뜨거운 피입니다.’
‘단지 이 게송을 온전히 알려 준다면, 늘 몸을 보시하리라.’
‘누가 당신 말을 믿겠습니까? 여덟 자字를 위해서 아끼는 몸을 버리다니 말이요.’
나는 즉시 대답했다.
‘견고하지 못한 몸을 버리고 금강金剛의 몸을 얻는 것이네.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은 이 일을 증득할 수 있었다네.’
그러자 나찰이 즉시 ‘생멸하는 것이 멸하니, 적멸이 즐거움이 된다’를 설한 후에 말했다.
‘당신은 이미 구족한 게송의 뜻을 들었으니, 마땅히 내게 몸을 보시하여야 하오.’
그 때 나는 기뻐 뛰면서 돌이나 나무 곳곳에다 그 게송을 써놓았다. 그리고 즉시 높은 나무에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져 떨어졌다. 나찰은 다시 제석천의 몸을 회복해서 나를 안아다 땅에 놓았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12겁을 초월해서 미륵보다 앞서 보리를 성취한 것이다.”[일자함一字函 제4권]


보시가 비록 많더라도 적은 복을 얻고
보시가 비록 적더라도 많은 복을 얻는다.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 상권에서 말하였다.
“현명한 사람인 수달須達은 집안 형편이 가난하였지만, 도덕을 지극히 믿어서 부처님께 가서 법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재가의 선비는 마땅히 보시를 행해야 하는가, 보시하지 않아야 하는가?’
수달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마땅히 보시를 행해야 하는데 많이 보시해야 합니까, 적게 보시해야 합니까? 호의로써 보시해야 합니까, 호의로써 보시하지 않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한 것이 비록 많더라도 얻는 과보가 적기도 하고, 보시한 것이 비록 적더라도 얻는 과보가 많기도 하다. 무엇을 보시가 많더라도 얻는 과보는 적다고 하는가? 비록 보시가 많더라도 지극한 마음이 없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크게 기뻐하지 않고 자만해서 자랑한다면, 보시를 하는 사람이 그릇되고 전도된 견해를 믿는 것이니, 이는 정견正見이 아니어서 쾌사快士가 되질 못한다. 그렇게 되면 보시하는 바가 비록 많더라도 얻는 과보는 적게 되니, 마치 밭을 갈 때 척박한 토양에다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아서 비록 거둬들이는 것은 많더라도 열매는 매우 적다. 보시는 적어도 큰 복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시한 바가 비록 적더라도 환희하는 마음ㆍ청정한 마음ㆍ공경하는 마음ㆍ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한다면, 보시하는 사람이 다시 쾌사ㆍ부처ㆍ벽지불ㆍ사문의 네 길을 얻는 것이다. 반드시 정견을 가진 자는 보시하는 바가 비록 적더라도 과보는 오히려 크게 얻으니, 마치 좋은 밭에다 씨앗을 뿌리면 비록 뿌리는 것은 적더라도 열매는 매우 많은 것과 같다.’ ”[기자함器字函]

또 『반야경般若經』에서 말하였다.
“무엇을 보시를 많이 행하는데도 적은 복을 섭수하고, 보시를 적게 행하는데도 많은 복을 섭수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약 모든 보살이 비록 긍가사(殑伽沙:恒河沙) 겁을 거치면서 항상 한량없는 진귀한 재보를 모든 유정有情들에게 보시하더라도, 위없는 보리로 회향하고 유정과 다 함께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증득하겠다고 서원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보살은 보시를 많이 행하는데도 적은 복을 섭수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보살이 비록 적은 시간을 거치면서 유정의 부류에게 적은 재물을 보시하더라도 능히 위없는 보리로 회향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살은 보시를 적게 행하는데도 많은 복을 섭수하는 것이다.”[진자함珍字函 제9권]


먼저는 고통스러워도 나중에는 즐거운 인연과
또 먼저는 즐거워도 나중에는 고통스러운 인연을 논하다.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인연으로 먼저는 고통스러우나 나중에는 즐거우며, 먼저는 즐거우나 나중에는 고통스럽고, 먼저도 고통스럽고 나중에도 고통스러우며,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겁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만약 사람이 백 년 동안 온갖 공덕을 짓거나 혹은 백 년 동안 온갖 악업을 짓는다면, 그 사람은 시기를 달리해서 혹은 겨울에 즐거움을 받기도 하고 혹은 여름에 고통을 받기도 한다. 가령 어린 시절에 복을 지었다가 장성해서 죄를 짓는다면, 다음 생에선 어린 시절에 복을 받고 장성해서는 죄를 받는다. 만약 어린 시절에 죄를 지었다가 장성해서 복을 지었다면, 다음 생에선 어린 시절에는 고통을 받고 장성해서는 즐거움을 받는다. 만약 어린 시절이든 장성해서든 항상 공덕을 짓고 보시를 나눈다면, 그 사람은 다음 생에선 먼저든 나중이든 모두 즐거움을 받는다.’ ”

또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비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삿된 견해가 없어서 옛날의 보시 공덕의 과보로 부귀를 감응해 얻게 되지만 보시 공덕을 짓지 않으면 항상 빈천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이 짓는 바를 고칠 수 있으면, 나중의 생에서는 풍요로운 부를 누리게 된다. 이를 일러 먼저는 고통스러워도 나중은 즐겁다고 하는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 부호의 가문에 태어났지만 삿된 견해와 치우친 견해[邊見]가 상응하면, 나중에 지옥에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태어나도 빈천한 집안에 태어나니, 이를 먼저는 즐거워도 나중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 먼저는 빈천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삿된 견해와 치우친 견해를 품는다면, 나중에 지옥이나 빈천한 집안에 태어나니, 이를 먼저도 고통스럽고 나중도 고통스럽다고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이 먼저 부귀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3존尊을 공경히 존중하고 항상 지혜로운 보시를 행한다면, 나중에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 항상 부귀를 누리니, 이를 먼저도 즐겁고 나중도 즐겁다고 한다.”[형자함馨字函 제1권]


혹은 몸은 즐거워도 마음은 즐겁지 않고
혹은 다시 마음은 즐거워도 몸은 즐겁지 않다.

『증일아함경』에서 말하였다.
“혹은 어떤 사람은 몸은 즐거워도 마음은 즐겁지 않고, 혹은 어떤 사람은 마음은 즐거워도 몸은 즐겁지 않으며, 혹은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고, 혹은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지 않다.
만약 복을 짓는다면, 범부는 의복ㆍ음식ㆍ와구臥具ㆍ의약醫藥의 네 가지[四事]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3악도惡道의 고통을 면하지 못하니, 이를 몸은 즐거워도 마음은 즐겁지 않다고 한다. 만약 아라한으로서 공덕을 짓지 않고 네 가지 일의 공양에 대해서도 능히 스스로 갖추지 못한다면 단지 3악도의 고통만을 면할 뿐이니, 이를 마음은 즐거워도 몸은 즐겁지 않다고 한다. 만약 범부로서 공덕을 짓지 못한다면 네 가지 일의 공양을 얻지 못하고 또 3악도의 고통도 면하지 못하니, 이를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지 않다고 한다. 만약 공덕을 짓는 아라한이라면 네 가지 일의 공양도 부족한 바가 없고 다시 3악도의 고통도 면하니, 이를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다고 한다.”[형자함馨字函 제1권]

어떤 보시는 과보[果]는 있어도 쓰임새는 없고
어떤 보시는 쓰임새는 있어도 과보는 없다.

『미륵소문론彌勒所問論』에서 말하였다.
“보시의 과果에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과보는 있어도 쓰임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쓰임은 있어도 과보는 없는 것이며, 셋째는 과보도 있고 쓰임은 있는 것이며, 넷째는 과보도 없고 쓰임도 없는 것이다.
처음의 과보는 있어도 쓰임은 없는 것이란, 이른바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보시하지 않고 경솔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는 비록 과보를 얻더라도 능히 받아 쓸 수는 없으니, 마치 사위천왕舍衛天王이 비록 갖가지 진귀한 보배를 얻더라도 능히 받아 쓰지 못하는 것과 같다.
둘째의 쓰임은 있어도 과보는 없는 것이란, 이른바 스스로는 보시하지 않고 남이 행하는 보시를 보면서 기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뜻이 있으므로 비록 받아 쓰는 것은 있더라도 스스로는 과보가 없으니, 마치 천자의 물품을 일체의 사문과 바라문 등이 받아 쓸 수는 있어도 스스로는 과보가 없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전륜성왕의 네 가지 군대[四兵]가 비록 옷과 음식은 얻더라도 과보를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셋째의 과보도 있고 쓰임도 있는 것이란, 이른바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고 경솔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수제가제樹提伽諸 장자 등과 같다.
넷째의 과보도 없고 쓰임도 없는 것이란, 이른바 보시의 과거 원인이 곧 멸진하는 것이다. 혹은 출세간의 성도聖道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니, 마치 번뇌를 멀리 여읜 성인과 같은 것이다.”[전자함傳字函 제4권]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 보시는 인천人天에 태어나고
능히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면 불도佛道를 성취한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아직 욕망을 여의지 못한 보시는 인간 가운데 부귀한 자나 6욕천欲天 가운데 태어난다. 만약 욕망을 여읜 마음으로 보시한다면, 범세천梵世天에 태어나고 나아가 광과천廣果天에 이른다. 만약 색色을 여읜 마음으로 보시한다면 무색천無色天 가운데 태어나고, 삼계三界를 여읜 보시는 열반이 되기 때문에 성문聲聞의 도를 얻는다. 보시할 때 번잡함을 싫어하고 고요함을 좋아하고 깊은 지혜를 기뻐한다면 벽지불을 얻는다. 보시할 때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서 일체를 제도하고자 한다면, 불도를 성취하게 된다.”[명자함名字函 제3권]


받은 자가 물품으로 인해 악한 짓을 해도
보시하는 사람은 불쌍히 여긴 것이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문수소문경文殊所問經』 하권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한 사람이 날마다 음식을 보시하는데, 어떤 사람이 구걸하러 와서 음식을 얻는 것으로 인해 다른 재물을 도둑질한다면, 누가 죄를 얻겠는가?’
문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시주는 죄를 얻지 않았습니다. 시주는 오직 보시만 했을 뿐 도둑질을 시킬 뜻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고 그러하니라.’ ”[묵자함墨字函]


단지 불평등이 평등이 됨을 알 뿐이지
장차 아이를 아이에게 주는 것을 어찌 알아챘으리요.

『문수소문경』 하권에서 말하였다.
“문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능히 아내와 자식을 보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추한 바라문이 수달나須達拏 태자가 보시를 좋아하고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걸 듣고 찾아가서 머슴으로 삼고자 두 명의 자식을 요구했습니다. 태자가 기뻐하면서 보시하자 자식들은 거부하고 따라가지 않았는데, 그 바라문은 채찍으로 때리고 묶어서 데리고 갔습니다. 어째서 평등한 자비심이 없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두 명의 아이가 있는데, 작은 아이를 큰 아이에게 보시했다. 이 부모에게 평등한 마음이 없는 것인가?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때려서 마침내 죽어 버렸으니, 누가 마땅히 죄를 얻어야 하는가?’
문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모는 평등한 마음이어서 죄과罪過가 없습니다. 큰 아이 스스로 이 죄를 얻은 것입니다. 저는 중생에 대해서 항상 평등한 마음이니, 가령 라후라도 사랑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제바달다提婆達多도 사랑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에게는 죄과가 없습니다.’ ”[묵자함墨字函]

공양은 마음에 있지 사事에 있지 않으며
보시는 먼저 마음을 논한 뒤에 밭을 논한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문】 보살이 가령 한 그릇의 음식으로 한 분의 부처님과 스님을 공양하는 것도 오히려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스님이겠습니까?
【답】 공양은 마음에 있지 사事에 있지 않다. 만약 보살이 한 그릇의 음식을 큰마음으로 시방의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한다면, 멀고 가까운 것이 장애가 되지 않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보고 다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문】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가 있으므로 다 보고 다 받아들이지만, 스님들은 일체지가 없는데 어떻게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까?
【답】 스님들은 비록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그 공양한 보시는 복을 얻는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심부름꾼을 시켜서 상대방에게 공양을 보낸다면, 그 상대가 비록 얻지 못하더라도 이 사람이 이미 보시의 복을 얻은 것과 같다. 마치 자심慈心삼매가 중생에게 비록 보시하는 바가 없더라도 행하는 자는 공덕과 복이 한량없는 것과 같다.”[명자함名字函 제2권]

또 말하였다.
“【문】 보살은 우연히 얻은 것으로 공양하면 편할 텐데, 어째서 뜻에 따라서 추구하는 것입니까?
【답】 복덕은 마음을 따른다. 애지중지하던 것을 공양하면 더 많은 복덕을 얻으니, 마치 아육왕阿育王이 인지因地의 어린 시절에 애지중지하던 흙을 부처님께 바쳐서 염부제閻浮提 왕이 된 것과 같다. 만약 어른이 비록 많은 흙을 부처님께 보시하더라도 얻은 바가 없는 것은 소중하게 여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꽃을 매우 귀중히 여기는데, 그 귀중하게 여긴 것을 부처님께 공양한다면 더 많은 복을 얻으며, 나아가 시의적절하게 추울 때는 옷을 바치고 더울 때는 부채를 바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건자함建字函 제10권]

『종경록』에서 말하였다.
“사리불이 한 그릇의 밥을 부처님께 보시하자, 부처님께선 즉시 되돌아 개에게 보시하면서 사리불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밥을 내게 보시했고 나는 밥을 개에게 보시했는데 누가 더 많은 복을 얻겠는가?’
사리불이 말했다.
‘제가 불법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개에게 보시한 것이 더 많은 복을 얻습니다.’
사리불은 모든 사람 가운데 지혜가 가장 뛰어나고, 부처님의 복전福田은 제일가는 최고의 복전이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 개의 악전惡田에다 보시하여 극히 많은 복을 얻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큰 복은 마음으로부터 생기지 복전福田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사리불의 천만억 배라도 부처님의 마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문】 그대가 설명한 대로 복전이 미묘하기 때문에 많은 복을 얻었지만, 사리불이 부처님께 보시한 것은 큰 복을 얻지 못하는가?
【답】 훌륭한 복전은 비록 많은 복을 얻더라도 마음만 못하다. 왜냐하면 마음은 내면의 주체[內主]이고, 밭은 외적인 일[外事]이기 때문이다. 『보살본연경菩薩本緣經』의 게송에서는, ‘만약 은혜로운 보시를 행할 때 복전이 비록 청정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광대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과보가 한량이 없으리라’라고 했으니, 이로써 복은 마음으로부터 생기지 복전을 말미암아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따로 5백 아라한을 청하는 것은 차례에 따라 평범한 승려 한 명을 청하는 것만 못하다. 왜냐하면 평등한 마음의 복은 뛰어나고 취사선택하는 마음의 복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뛰어나고 열등한 것은 마음을 말미암는 것이지 어찌 밭에 있겠는가? 보시의 법이 이미 그러하다면, 육도만행六度萬行도 그와 마찬가지다.”[차자함車字函 제4권]


보시가 비록 비전悲田이라도 경전敬田보다 뛰어나고
그대가 단지 마음이 평등하다면 그 복도 평등하다.

『제경요집諸經要集』에서 말하였다.
“ 【문】 만약 성인에게 보시를 행할 때 많은 복을 얻는다면, 어째서 경전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보시를 행함에 있어서 복전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답】 지금 이 뜻을 해석하는 데 여러 갈래가 있다. 능히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의 차별이 있고, 보시할 대상에는 자비와 공경의 다름이 있는 것을 밝힌 것이다. 자비는 가난과 고통이요, 공경은 3보寶이다. 자비는 복전은 열등해도 마음이 뛰어나고, 공경은 복전은 뛰어나지만 마음이 열등하다. 만약 마음의 뛰어남을 취해서 부처님께 보시한다면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온갖 중생들은 남이 모으고 쌓아서 온갖 복업福業을 짓는 것을 보고서, 단지 명성만을 구하려고 집안의 재물을 기울여 보시를 하면서도 빈궁하고 외로운 이를 보면 욕하고 쫓아내면서 한 터럭만큼도 구제하지 않는다. 이 같은 중생을 가리켜 거꾸로[顚倒] 선을 행한다고 말하며, 미친듯이 날뛰어 화복禍福이 심히 불쌍하노니 쓰는 재물은 매우 많지만 얻는 복은 너무나 적다.
선남자여, 나는 한때 모든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승기阿僧祇 동안 몸으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성문에게 보시한다 해도, 이는 어떤 사람이 축생에게 한 입의 음식을 보시하는 것만 못하다. 그 복은 전자보다 백천만억 배나 뛰어나며, 나아가 개미 등의 비전悲田에 보시하는 것이 가장 뛰어나다. 마치 사리불이 한 그릇의 밥을 부처님께 올리자 부처님께서 되돌아 개에게 보시한 것과 같으니, 만약 법을 공경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데 근거한다면 공경의 밭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

또 경전에서 말하였다.
“만약 축생에게 보시해서 백 배의 과보를 얻고 나아가 수다원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얻는다. 나한과 벽지불도 오히려 부처님만 못하거늘 하물며 나머지 종류이겠는가? 만약 평등에 근거해서 보시를 행하는 자라면 자비와 공경을 물을 것도 없다.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를 하면 커다란 복을 얻기 때문이다.”

『유마경維摩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두 몫으로 나누어 만들어서 한 몫은 부처님이신 난승難勝여래께 보시하고, 또 다른 한 몫은 성안에 있는 가장 하층의 거지에게 주어도 복전은 둘이 아니다.”[대자함對字函 제10권]


시장施藏의 다함없음을 열 가지 문門으로 나누니
이 뜻이 상대하는 것이 다시 다섯 가지로다.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열 가지 다함없는 장[十無盡藏] 가운데 그 여섯 번째는 시장施藏인데, 열 가지가 있다. 이른바 분감시分減施ㆍ갈진시竭盡施ㆍ내시內施ㆍ외시外施ㆍ내외시內外施ㆍ일체시一切施ㆍ과거시過去施ㆍ미래시未來施ㆍ현재시現在施ㆍ구경시究竟施이다.
분감시分減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은혜로운 보시를 행하길 좋아하는 것이다. 만약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오로지 자기만 받지 않고 중생에게 준 후에야 비로소 먹는 것이니, 무릇 받은 물건에 대해선 빠짐없이 이와 같이 한다. 만약 혼자서 먹을 때라면 자신의 몸 속에 있는 8만 개의 벌레[戶蟲]를 생각한다.
‘내 몸이 충만하고 즐거우면 저 벌레도 충만하고 즐겁고, 내 몸이 굶주리고 고통스러우면 저 벌레도 굶주리고 고통스럽다. 내가 이 음식을 받아들이면 부디 저 중생으로 하여금 널리 배부르게 하소서.’
이처럼 저들에게 보시하기 때문에 스스로 먹는 것이다.
갈진시竭盡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어떤 사람이 와서 ‘모두 나에게 주어야 합니다’고 말하면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무시이래로 굶주림으로 인해 수없이 몸을 잃으면서도 아직 터럭만큼이라도 중생을 요익케 해서 좋은 이익을 얻은 적이 없었다. 내 이제 마땅히 옛날처럼 목숨을 마쳐서라도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보시해서 그들을 요익케 하리니, 목숨이 다하더라도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내시內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윤왕輪王의 지위를 받을 때 어떤 사람이 ‘심한 병이 들어서 죽을 지경인데, 만약 왕의 몸ㆍ손발ㆍ머리ㆍ눈을 얻는다면 저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고 말한다면, 보살은 ‘몸은 나중에 반드시 죽는 것이어서 단 하나의 이익도 없다’고 생각해서 보시하는 것이다.
외시外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윤왕의 지위를 받을 때 어떤 사람이 가난해서 그 지위에 오르길 원한다고 말하면, 보살은 ‘영화로움은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이고 쇠퇴할 때에 이르러선 요익케 할 수가 없다. 나는 이제 저 사람에게 주어서 그의 뜻을 채워주리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외시內外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윤왕의 지위에 처했을 때 어떤 사람이 ‘왕께선 그 자리에 계신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부디 제게 희사해 주시고 아울러 왕께선 저의 신하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보살은 ‘몸과 왕위는 다 무상한 것이다. 마땅히 견고하지 못한 것이니 견고한 법을 구하리라’라고 생각하여 곧 보시하고, 나아가 몸으로써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다.
일체시一切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윤왕의 지위에 처했을 때 어떤 가난한 사람이 국토나 두개골이나 처자를 구걸한다면, 보살은 ‘모든 은애恩愛와 만남은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을 보시하는 것이다.
과거시過去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가진 공덕을 듣고, 들은 후에는 집착하지 않고 비유非有를 요달하는데, 다만 교화를 위해 중생에 대한 집착을 취해서 불법佛法이 성숙하도록 연설하는 것이며, 다시 과거의 모든 법을 관찰해 시방에서 추구하더라도 도무지 얻을 수 없으니 필경 모두 버리는 것이다.
미래시未來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미래의 부처님께서 수행하실 것을 듣고서 비유非有를 요달하고 상相을 취하지 않아서 따로 모든 불국토에 대해 즐거움도 내지 않고 또한 싫증도 내지 않으며, 선근으로써 남에게 회향하지도 않고 또한 선근에서 물러서지도 않는다. 다만 저 경계로 인해 중생을 거두어들임으로써 불법佛法을 성숙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라는 것은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가까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어서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법이 유有가 아니라면 버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시現在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이 모든 천왕天王과 나아가 2승乘이 공덕을 구족했음을 듣고, 들은 후에는 마음이 미혹되지 않고 다만 모든 행行이 꿈과 같아서 진실하지 않음을 관찰하여 탐착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악취惡趣를 여의게 하고 보살도를 닦아 불법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연설을 하는 것이다.
구경시究竟施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보살에게 여러 감관[根]이 결손된 중생이 ‘방편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버려서 나를 구족케 하라’고 말하면, 보살은 관찰하기를 ‘이 몸은 냄새나고 더러워서 청정하지 못한데, 어찌 집착하겠는가?’ 하고 마땅히 집착을 버려서 아승기겁이 지나도록 모든 감관[根]이 갖추어지지 않아도 역시 후회하지도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이 몸은 위약해서 견고하지 않은데, 내가 지금 어찌 집착을 하겠는가? 마땅히 그에게 보시함으로써 그의 소원을 만족시키리라.’ ”[장자함章字函 제1권]

『제경요집諸經要集』에서 말하였다.
“보시에는 다섯 가지 상대相對가 있으니, 이른바 전재대(田財對:복전과 재물의 상대)ㆍ경중대(輕重對:가볍고 무거움의 상대)ㆍ공유대(空有對:공과 유의 상대)ㆍ다소대(多少對:많고 적음의 상대)ㆍ염정대(染淨對:오염과 청정의 상대)이다. 대對에는 다시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복전과 재물의 상대이다. 첫째는 복전은 뛰어나지만 재물은 열등한 것이니, 마치 동자가 흙을 가져다가 부처님께 보시한 것과 같다. 둘째는 재물은 뛰어나지만 복전은 열등한 것이니, 마치 진귀한 보배를 가져다가 가난한 사람 등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 셋째는 복전과 재물이 모두 뛰어난 것이니, 마치 보배를 가져다가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과 같다. 넷째는 복전과 재물이 모두 열등한 것이니, 마치 풀을 가져다가 축생 등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가볍고 무거움의 상대이다. 첫째는 마음은 무겁지만 재물은 가벼운 것이니, 마치 가난한 여인이 담요 한 장을 대중에게 보시해서 커다란 복을 얻는 것과 같다. 둘째는 재물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운 것이니, 마치 왕의 부인이 오만한 마음으로 수많은 보물을 승려들에게 보시하더라도 얻는 복은 매우 적은 것과 같다.[셋째와 넷째는 앞에 비추어 알 수 있다.]
세 번째 공空과 유有의 상대이다. 첫째는 마음은 공하나 경계는 공하지 않은 것이니, 마치 비록 공관空觀을 배웠어도 재물이 아까워 보시하지 않아 도리어 가난의 과보를 받는 것과 같다. 둘째는 경계는 공하나 마음은 공하지 않은 것이니, 재물을 보시하면 더 많은 부를 얻는다는 걸 알아서 희사를 즐겨 복을 얻는 것과 같다.[셋째와 넷째는 앞에 비추어서 알 수 있다.]
네 번째 많고 적음의 상대이다.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보시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시는 많으나 얻는 복은 적은 것이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제사를 지내면서 비용을 쓰고도 복과 지혜는 없는 것과 같나니, 이를 보시는 많아도 얻는 복은 적다고 한다. 둘째는 보시는 적으나 얻는 복은 많은 것이다. 마치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덕적인 사람에게 바쳐서 정진하면서 배우고 염송하면 이는 보시는 비록 적어도 그 복은 더욱 커지는 것과 같으니, 이를 보시는 적어도 얻는 복은 많다고 한다. 셋째는 보시도 적고 얻는 복도 적은 것이다. 간탐慳貪과 악의로써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보시를 하면 둘 다 어리석은 것이니, 이를 보시도 적고 얻는 복도 적다고 하는 것이다. 넷째는 보시도 많고 얻는 복도 많은 것이다. 만약 세간의 무상함을 깨달아서 탑과 절을 건립하고 3존尊에게 공양한다면 이 복은 큰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세세토록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를 보시도 많고 얻는 복도 많다고 한다.’
다섯 번째 오염과 청정의 상대이다. 첫째는 보시하는 자는 청정한데 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것이고, 둘째는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하나 받는 자는 청정한 것이며, 셋째는 보시하는 자와 받는 자 모두 청정한 것이고, 넷째는 보시하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한 구절만 이해하면 나머지 세 구절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를 갖춘 청정인가. 이는 마치 보적불寶積佛이 꽃을 석가문釋迦文부처님께 올린 것과 같다.”[대자함對字函 제10권]


큰 보시는 3륜輪이 청정한 것이고
하나의 단檀은 6바라밀을 갖추고 있다.

『반야경』에서 말하였다.
“사리자舍利子가 선현善現에게 물었다.
‘어떻게 단바라밀다檀波羅蜜多를 닦습니까?’
선현이 대답했다.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고, 둘째는 출세간입니다.’
선현이 대답했다.
‘만약 보살이 대시주가 되어서 능히 사문과 바라문과 외로운 거지에게 보시할 수 있다면, 그 필요한 바에 따라서 모두 다 보시합니다. 만약 다시 아내와 자식, 왕위, 머리, 눈, 뇌수, 안팎의 집을 구한다면 모두 보시합니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보시를 하더라도 의지하는 바가 있으면, ≺나는 보시하고 상대는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는 얻는 바가 있어서 방편이 됩니다. 모든 유정有情들과 함께 공동으로 아뇩보리阿耨菩提에 회향하면서 다시 ≺내가 가진 이 복을 모든 유정들에게 보시해서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 안락함을 얻게 하고 나아가 무여無餘열반을 증득하게 하리라>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3륜輪에 집착해서 보시를 행하는 것입니다. 3륜은 첫째는 자기라는 상념이고, 둘째는 남이라는 상념이고, 셋째는 보시라는 상념이니, 이 3륜에 집착해서 보시를 행하기 때문에 세간의 보시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어떤 인연으로 이 보시를 세간이라 합니까? 세간과 더불어 공동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리자가 말했다.
‘무엇을 출세간의 보시바라밀다라고 합니까?’
선현이 대답했다.
‘가령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3륜이 청정한 것입니다. 첫째는 내가 보시한 것을 집착하지 않고, 둘째는 상대가 받은 것을 집착하지 않고, 셋째는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 이렇게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3륜이 청정하다고 합니다.
사리자여, 만약 보살이 대자비를 으뜸으로 삼아 닦은 보시의 복덕을 널리 유정에게 보시하면서도 모든 유정에 대해 도무지 얻고자 하는 바가 없고, 비록 유정과 더불어 공동으로 아뇩보리에 회향하면서도 그 속에서 작은 상相이라도 보지 않는다면, 도무지 집착하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기 때문에 출세간의 보시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어떤 인연으로 이 보시의 명칭이 출세간인가? 세간과 더불어 공동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능히 세간을 초월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지계持戒ㆍ안인安忍ㆍ정진精進ㆍ정려靜慮ㆍ반야般若의 다섯 바라밀 가운데 오직 출세간의 3륜이 청정할 뿐이니, 첫째는 나를 집착하지 않고서 능히 닦는 것이며, 둘째는 행하는 유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그 과보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머지 뜻은 보시와 더불어 모두 똑같습니다.’ ”[공자함恭字函 제5권]

또 『금강반야金剛般若』에서 말하였다.
“ ‘보살이 법에 대해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한다면, 이른바 색色에 대해 머물지 않는 보시라 하고, 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에 머물지 않는 보시라고 한다.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해서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방의 허공을 사량思量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방ㆍ서방ㆍ북방과 4유維와 상하의 허공을 사량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의 상相에 머물지 않는 보시의 복덕도 이와 같아서 사량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가르침대로 머물러야 하느니라.’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상相 없는 보시를 논한다면
그 공덕은 지극히 헤아리기 어려우니
자비를 행하여 궁핍한 자를 구제하면서도
그 과보를 결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범부는 정情으로 행해서 열등한지라
처음엔 성글게 칭찬해서 고양시키지만
그러나 단檀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과 같으니라.”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일념 속에서 6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으니, 보시할 때 법답게 재물을 희사한다면 이것이 단檀바라밀이고, 대선도大善道 속에 안주해서 보시가 2승乘을 향하지 않으면 이것이 시尸바라밀이고, 간탐 등의 번뇌와 마魔 등이 와서도 능히 마음을 흔들 수 없다면 이것이 찬제羼提바라밀이고, 보시를 쉬지 않는 것이 정진精進바라밀이고, 마음을 흩어지지 않도록 섭수해서 의심도 없고 후회도 없는 것이 선禪바라밀이고,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나아가 재물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이 반야般若바라밀이다.”[정자함正字函 제1권]


먼저는 보시를 찬탄해서 간탐을 부수게 하고
나중에는 이 보시를 비방해서 집착하지 않게 한다.

『대승론大乘論』에서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마치 여래께서 먼저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 보시를 찬탄해 놓고 나중에는 다시 비방[毁呰]하는 것과 같다.”

『논석論釋』에서 말하였다.
“어떤 중생에게 여래께서 먼저 보시의 공덕을 찬탄하신 뒤에 때로는 이 보시를 비방한다.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재물에 대해 간탐심이 있다면, 이 마음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는 보시를 찬탄한 것인데, 만약 사람이 보시를 행한 것을 즐거워했다면 이는 하품下品의 선근이므로 여래께서 다시 이 보시를 비방하여 그로 하여금 그 나머지 뛰어난 행을 갈망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뜻을 말미암지 않고서 찬탄하고 또 비방했다면 서로 어긋나게 되지만, 이 뜻을 말미암기 때문에 하나의 보시 속에서 비록 찬탄하고 비방하더라도 어긋나면서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여자함與字函 제6권]


재물의 보시는 윤회하는 것으로 해탈이 아니지만
법의 보시는 세간을 벗어나서 영원히 소요하게 한다.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제석천이 야간野干에게 물었다.
‘음식을 보시하는 것과 법을 보시하는 것은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의 목숨을 구제하는 것이고, 진기한 보배와 재물을 보시하는 것은 1세世의 궁핍함을 구제하지만 이익의 속박을 증대하는 것이며, 법을 설해서 교화하는 것은 법시法施라 하는데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출세간의 도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암자함奄字函]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 말하였다.
“재물의 보시는 인도人道 속에 있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대자비 속에 있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중생의 몸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중생의 마음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다함없는 돈과 재물을 짓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다함없는 지혜에 능하게 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몸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마음의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중생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며, 법의 보시는 세간의 공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요, 법의 보시는 지혜로운 자가 좋아하는 것이다. 재물의 보시는 능히 현재의 즐거움을 주며, 법의 보시는 능히 열반의 즐거움을 준다.”[진자함盡字函 제9권]

『법원』에서 말하였다.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능히 사람을 교화하려면 보시와 계율, 다문지혜多聞智慧를 구족해야 한다. 만약 종이나 먹을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베껴 쓰도록 하거나, 스스로 여래의 정전正典을 베껴 쓴 뒤에 사람들에게 보시하여 읽고 외우도록 한다면, 이를 법시라고 한다.
이와 같은 보시를 하면 미래에 천상에서 훌륭하고 뛰어난 색色을 얻는다. 왜 그런가? 중생이 법을 들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어 없애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뛰어난 색色을 성취하게 되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자비로운 마음이 되어서 살생하지 않으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수명의 장수를 누리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남의 재물을 도둑질하지 않으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재물과 보배가 많고 넉넉하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마음을 열어 보시를 즐기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몸에 큰 힘을 얻으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온갖 방일함을 여의게 되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몸의 안락함을 얻으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걸림없는 변재를 얻으며, 중생이 법을 들으면 믿는 마음에 의심이 없으니, 이 인연으로 미래 세상에선 믿는 마음이 명료해진다. 그러므로 법의 보시가 재물의 보시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다.”[경자함經字函 제10권]

또 게송에서 말한다.

백천百千의 세계에
순금을 가득 보시하더라도
한 가지의 법을 보시하여
그에 따라 수행하게 함만 못하네.[예자함隷字函 제7권]

또 『금강경』의 게송에서 말한다.

보배를 삼천대천세계[三千界]에 가득 채우고
재계를 지녀서 복전을 짓더라도
오직 유루有漏의 업을 이룰 뿐
끝내 인간과 천상을 여의지 못하노라.

경전을 수지하여 4구句를 취하고
성인과 좋은 인연을 지어서
무위無爲의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반야선般若船을 타야 하리라.

세간의 단檀을 행함은 마음이 전도됨이요
출세간의 보시를 행함은 성인이 찬양한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출세간의 보시[檀]는 청정해서 온갖 번뇌[垢]와 섞이지 않고 지혜와 화합하니 이는 성인이 칭찬하는 바이고, 세간의 보시는 청정하지 못해서 온갖 결사(結使:煩惱)와 섞이고 뒤바뀐 마음으로 집착하니, 이는 성인이 칭찬하지 않는 바이다.
‘ 【문】 무엇을 단檀이라고 합니까?
【답】 보시하는 마음이 착한 생각과 상응하는 것을 단이라 한다. 또 믿음이 있고, 복전이 있고, 재물이 있어서 이 세 가지가 화합했을 때 마음이 사捨의 법을 일으켜서 능히 간탐심을 부수는 것을 단이라 한다.
단에는 갖가지 이익이 있다. 단은 보장(寶藏:보배 창고)이 되어서 항상 사람을 따라다니고, 단은 고통을 타파하게 되어서 능히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며, 단은 훌륭한 마부가 되어서 천도天道를 열어 보이며, 단은 훌륭한 부(府:곳간)가 되어서 모든 착한 이들을 섭수하며, 단은 안온하여 임종할 때에도 두렵지 않으며, 단은 즐거움을 모아 능히 고통의 도적을 부술 수 있으며, 단은 대장이 되어서 능히 간탐의 적을 굴복시키며, 단은 묘과妙果가 되어서 인천人天에게 사랑 받으며, 단은 청정도[淨道]여서 성현들이 말미암는 바이니, 부귀와 안락의 숲이자 도를 얻고 열반으로 가는 나루터와 다리이다.”[덕자함德字函 제1권]

또 말하였다.
“단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재물의 보시이고, 둘째는 법의 보시이고, 셋째는 무외無畏의 보시이다. 계율을 지키고 자기를 검토해서 일체 중생의 재물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재물의 보시를 행하는 것이고, 능히 갖가지 법을 설해서 깨달음을 열게 하는 것을 법의 보시라 하고, 중생이 죽음을 두려워하니 계율을 지키며 해치지 않는 것을 무외시라 한다.”[덕자함德字函 제4권]


성문은 비록 보시를 하더라도 차안此岸에서 끝나고
보살이 단檀을 행함은 피안[那邊]에서 시작한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 【문】 아라한과 벽지불도 능히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는데, 어째서 바라밀波羅蜜이라 하지 않습니까?
【답】 아라한과 벽지불이 피안으로 건너는 것과 부처님께서 피안으로 건너는 것은 이름은 같아도 실제는 다르다. 전자는 생사를 차안此岸으로 삼고 열반을 피안으로 삼으므로 능히 단檀의 피안을 건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능히 일체의 사물과 일체의 시時와 일체의 종자로써 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능히 보시하더라도 대심大心이 없거나, 혹은 무기無記의 마음으로 하거나, 유루有漏의 착한 마음으로 하거나, 혹은 무루심無漏心의 보시라도 대비심이 없다면 능히 일체 중생을 위한 보시라고 할 수 없다. 보살의 보시라는 것은 보시의 불생불멸不生不滅ㆍ무루無漏ㆍ무위無爲가 열반의 모습과 같음을 알아서 일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이를 단바라밀이라 한다.”[덕자함德字函 제2권]

『법원』에서 말하였다.
“ 【문】 어떤 보시가 피안에 도달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이 피안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답】 가령 사리불이 60겁 동안 보살도를 행해서 피안으로 건너고자 할 때 어떤 사람이 와서 그의 눈을 구걸했다. 사리불이 말했다.
‘눈의 역할 기능[所任]이 없어지면 무엇으로써 찾겠는가? 만약 내 몸과 재물을 요구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주리라.’
대답했다.
‘필요 없습니다. 오로지 눈을 얻고 싶습니다.’
이 때 사리불은 눈 하나를 빼서 그에게 주었다. 구걸하던 자는 눈을 얻자 사리불 앞에서 그 눈을 냄새 맡으면서 냄새가 싫다고 하면서 침을 뱉고 땅에다 버렸으며 게다가 발로 밟았다. 사리불은 이렇게 생각했다.
‘실제 눈이 필요 없으면서도 억지로 그걸 구했으니, 이런 사람들은 제도할 수 없다. 스스로를 조절해서 조속히 생사를 건너느니만 못하도다.’
그리하여 보살도에서 물러나서 소승으로 돌아갔으니, 이를 피안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부자함府字函 제1권]


미혹된 마음으로 자신만을 이롭게 한다면 성문에 떨어지고
법을 요달해서 남을 이롭게 한다면 보살을 넘어선다.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중생을 위하지 않고 또한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시로 단지 생로병사에서만 벗어나길 구하는 것, 이것은 성문의 단檀이다. 일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보시하고 또한 모든 법의 실상을 아는 것, 이것은 모든 부처와 보살의 단이다. 온갖 공덕을 능히 구족하지 못하고 단지 적은 정도만을 갖추고자 하는 것, 이것은 성문의 단이다. 일체 공덕을 만족하게 갖추고자 하는 것, 이것은 모든 부처와 보살의 단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보시하는 것, 이를 성문의 단이라 한다. 부처님의 도를 돕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를 모든 부처와 보살의 단이라 한다.”[덕자함德字函 제2권]


보시가 능히 복을 낳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원래부터 간탐심을 낸다면 재앙을 초래한다.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재물을 보시하지도 않고, 법으로써 보시하지도 않고, 무외無畏를 보시하지도 않고서 항상 간탐심과 질투심을 품는다면, 이것을 인연으로 아귀餓鬼 가운데 태어난다.”[초자함初字函 제6권]


법을 보시하는 것이 비록 좋은 인연이라도
재물을 위한다면 도리어 악한 과보를 초래한다.[법시는 삼품三品으로 나뉜다.]

『제경요집』에서 말하였다.
“재물을 얻기 위하여 남에게 법을 설하고, 슬퍼하는 마음[悲心]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면서도 재물을 취하거나, 혹은 술을 마시거나, 혹은 여인과 함께 먹고 마셔서 마치 기생과 같다면, 법을 팔아서 재물을 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보시는 그 과보가 매우 적어서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지혜조智慧鳥가 되어서 게송을 설하니, 이를 하품下品의 법보시라 한다. 명성을 듣기 위해서, 뛰어난 법사法師가 되기 위해서 남에게 법을 설해 준다면, 얻는 과보도 적어서 천상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중간의 다른 과보[中異報]를 받거나 혹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니, 이를 중품中品의 법보시라 한다. 청정한 마음으로 중생의 지혜를 증대시키려 하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자를 정법에 머물게 하려고 하면서 재물의 이익을 위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법보시는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니 위없는 가장 뛰어난 것이며, 나아가 열반까지 이르러서 그 복이 다함없으니, 이를 상품上品의 법보시라 한다.”

또 말하였다.
“만약 법을 아끼고 인색하여 남의 혜명慧明을 가로막는다면, 이로 말미암아 항상 변두리와 불법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니, 이는 남에게 법을 파느니만 못하다. 법을 파는 것이 오히려 그 허물보다 낫다.”[장자함帳字函 제2권]


지혜를 닦았더라도 복이 없으면 궁핍하니 지혜가 빈곤해지고,
복을 닦았더라도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으니 복이 탁해진다.

『경률이상』에서 말하였다.
“가섭불迦葉佛 당시에 형제 두 명이 있었는데 함께 사문이 되었다. 형은 계율을 지키고 좌선을 하면서 일심으로 도를 구했으나 보시를 하지 않았다. 동생은 복을 닦았으나 항상 계율을 파괴하였다. 나중에 과보로 태어난 생生에서 형은 비록 사람이 되어서 석가를 따라 출가하여 아라한을 얻었으나, 옷이 항상 충분하지 않았고 음식도 적어 늘 배부르지 않았다. 동생은 코끼리로 태어나서 능히 원수와 적을 물리쳐 국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금은의 진귀한 보배와 영락으로 그 몸을 치장하고 수백 호의 마을에서 공급받도록 봉해졌다.
당시 형인 비구는 큰 흉년을 만나서 7일 동안 돌아다니며 구걸했지만 음식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거친 음식을 약간 얻었을 뿐이다. 그는 코끼리가 전생의 동생인 것을 알고서 이렇게 말했다.
‘나와 너는 옛날에 모두 죄를 지었다.’
코끼리는 숙명宿命을 알아채고는 우수에 잠겨서 먹지도 않았다. 왕이 물었다.
‘어느 누가 이 코끼리를 범했는가?’
‘오로지 사문 한 사람이 코끼리 곁에 왔다가 갔을 뿐입니다.’
왕이 사문을 찾아서 물어보니, 사문은 이렇게 답했다.
‘전생의 인연입니다.’
왕은 그 뜻을 이해하고 즉시 깨달았다.”[병자함丙字函 제7권]


재물과 법 두 가지를 보시해야 비로소 공功을 이루고
복과 지혜가 둘 다 온전해야 바야흐로 부처를 짓는다.

『법원』에서 말하였다.
“앞서의 다섯 가지 바라밀[五度]은 비유하면 마치 장님과 같고, 여섯 번째의 반야는 눈이 있는 것과 똑같다. 만약 반야를 얻지 못한다면 앞서의 다섯 가지 바라밀을 열어 이끌지[開導] 못해서 악도惡道에 떨어져 출세간을 이루지 못한다. 만약 법보시가 재물의 보시보다 뛰어나다는 걸 들으면, 어리석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즉시 재물을 숨기고 오로지 경전 읽기만을 즐긴다. 만약 이러한 법을 행한다면, 어떤 사람이 마음을 이해하고 1전錢을 보시하는 것이 마음을 미혹한 채 백천만 권의 경전을 읽는 것보다 낫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가르침을 시설해서 이해와 행의 뜻을 간직케 한 것이다.[이해는 지혜이고, 행은 복이다.] 오직 이해만 있고 행이 없다면 이해가 곧 허망해지고, 오직 행만 있고 이해가 없다면 행이 곧 외로워진다. 요컨대 이해와 행을 모두 갖추어야만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다. 또한 오직 이해만 있고 행이 없다면 마치 눈만 있고 발은 없는 것과 같아서 멀리 갈 수 없으며, 오직 행만 있고 이해가 없다면 마치 사람에게 발은 있어도 눈이 없는 것과 같아서 길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해와 행을 쌍으로 행해야만 바야흐로 불과佛果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경자함經字函 제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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