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 하권
대장엄법문경 하권
문수사리신통력경 또는 승금색광명덕녀경이라고도 한다.
수 나련제야사 한역
김달진 번역
이때 세존께서는 시자 아난과 기사굴산(耆闍崛山) 산마루의 대경행처(大經行處)1)에 계셨고, 멀리서 문수사리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문수사리야, 보살의 가장 뛰어난 정진의 방편법문(方便法門)을 잘 설하였다. 그대가 설한 바와 같다.”
이렇게 찬탄하셨을 때, 그 소리는 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에 가득하였고, 일체의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2).
이때 무량한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들과 제석천왕ㆍ대범천왕ㆍ사천(四天)의 대왕들이 모두 소리를 찾아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공경히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자리를 잡고 부처님께 함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조금 전 여래께서 훌륭하다고 찬탄하시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대천세계에 가득하고 땅이 모두 진동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여래께서는 누구를 찬탄하셨습니까?”
이때 세존께서는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까 문수사리를 찬탄하였다.”
이때 대중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문수사리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사성(王舍城) 동쪽 문의 노상(路上)에 있으면서 금색녀와 함께 온갖 대중을 위하여 묘법(妙法)을 연설하고 있다. 너희들도 만약 법을 듣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거라.”
이때 일체의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들과 제석천왕ㆍ대범천왕ㆍ사천(四天)의 대왕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함께 문수사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뛰어난 광명을 나타내고
하늘의 오묘한 꽃을 비처럼 온 왕사성과 여러 대중에게 두루 뿌렸다. 이때 모든 사람과 하늘의 대중들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서로를 볼 수 있었다.
이때 왕사성의 모든 인민들은 여러 하늘대중과 오묘한 꽃들을 보고 다 함께 서로 어울려 문수사리가 계신 곳으로 갔다. 이때 아사세왕(阿闍世王)도 큰 위덕(威德)으로 네 가지 군사[四兵]3)와 후궁과 채녀(婇女)들을 장엄하고 역시 문수사리가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이때 성 안의 모든 왕자ㆍ대신ㆍ장자ㆍ거사(居士)들은 금색녀의 마음이 적멸(寂滅)에 머무른 것을 보고 모두가 더러운 마음을 버려 5근(根)이 청정해졌으며, 온갖 참괴(慙愧)를 갖추고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
이때 문수사리는 이 대중들이 금색녀에게 더러운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나서 금색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번뇌를 어디에 두었기에 여러 왕자와 내지 거사들이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까?”
금색녀가 말하였다.
“일체의 번뇌와 중생의 번뇌는 모두 지혜와 해탈의 언덕에 머뭅니다. 여여한 법계의 평등한 법에서 그 모든 번뇌는 생(生)이 있는 것이 아니고 멸(滅)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어딘가에 두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번뇌의 체성을 바르게 봅니다.”
문수사리가 금색녀에게 말하였다.
“어떤 것이 번뇌의 체성입니까?”
금색녀가 말하였다.
“모든 나쁜 각관(覺觀)이 곧 번뇌의 체성입니다. 깨끗하지 않은 반연(攀緣) 때문에 번뇌가 생기는 것이고, 깨끗한 각관(覺觀) 때문에 번뇌는 나그네[客]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는 공(空)의 지혜와 화합하지 않으며, 무상(無相)ㆍ무원(無願)과도 화합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 큰 독사의 경우와 같습니다.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아가타약(阿伽陀藥)을 가지고 그 뱀이 있는 곳으로 가면 뱀은 약기운을 맡자마자 곧 독을 잃어버립니다.
나아가 어린 아이들이 제 맘대로 만지며 괴롭혀도 해를 입힐 수 없게 됩니다.
문수사리님, 저는 옛날에 나쁜 각관 때문에 전도된 마음을 내어 번뇌의 불에 태워졌습니다. 제 몸을 애착해 이 몸이 물거품과 같고, 불꽃과 같고, 환(幻)과 같고, 화(化)와 같고, 꿈속과 같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칼날에 발린 꿀과 같은 5욕(欲)의 즐거움을 누리며 어리석은 저는 그 맛을 탐해 혀를 베이는 줄도 몰랐습니다.
또 풀끝에 맺힌 이슬과 같아 해가 뜨면 곧 사라지는 것인데 모든 행이 무상(無常)하고 빠르다는 것을 모르고, 5음(陰)이란 한결같이 항상 괴로움이란 걸 모르고, 제 몸의 성품이 청정하다는 것을 모르고, 일체의 법은 아(我)와 아소(我所) 등 온갖 차별을 벗어난 것임을 몰랐습니다. 스스로 소견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어둡게 했다는 것을 모르고, 스스로를 결박하고 또 다른 이들도 결박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가 법을 듣지 않았을 때에는 이 모든 법에 있어서 해탈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법을 듣고 지혜를 얻었기에 모든 번뇌에서 해탈을 얻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일체 중생이 저의 몸에 탐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님, 비유컨대 광명이 어둠과 함께 머물지 않듯이, 이와 같이 탐심을 떠난 자는 번뇌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때 금색녀는 문수사리에게 이 법을 설하고 나서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모든 하늘과 사람 대중이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오직 바라오니 자비로서 설법의 힘을 갖추시고 사람과 하늘들에게 열어 보여 모든 번뇌의 체성을 알게 해 주십시오. 체성을 알고 나면 모든 중생에게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이 안온을 얻게 하기 위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이 번뇌의 체성은 믿기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번뇌의 성품이 곧 보리이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불이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는 장작을 태울 수 없음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면 유전 가운데 있어도 생사(生死)를 받지 않습니다.
불이 난 뒤에는 곧 장작을 태울 수 있듯이 나쁜 각관이 생긴 자는 생사에 유전합니다. 비유컨대 불이 큰 초목(草木) 더미를 태우면 불길을 잡기 어렵듯이, 이와 같이 악견(惡見)과 독심(毒心)이 번뇌와 합하면 삼계(三界) 가운데서 사납게 항상 타오르며 쉼이 없습니다. 비유컨대 장작이 없으면 불이 탈 수 없듯이, 이와 같이 나쁜 소견을 멀리 벗어나면 번뇌가 삼계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불의 타오름은 백천 년을 그렇게 한다 해도 이익이 없고 또 늘어나는 것도 없듯이, 번뇌의 사나운 불 또한 그와 같아 백천 년이 지난다 해도 이로운 것이 없고 또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비유컨대 불이 없어진다 해도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듯이, 그와 같이 지혜는 모든 번뇌를 없애지만 또한 그와 같아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비유컨대 사나운 불에는 뛰어들 자가 없듯이, 이와 같이 자성은 청정하므로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생긴다 해도 더럽힐 수 없습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금색녀에게 물었다.
“몸을 어떻게 봅니까?”
금색녀가 말하였다.
“물속의 달을 보듯 합니다.”
또 물었다.
“5음(陰)을 어떻게 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변화로 나타낸 사람을 보듯 합니다.”
또 물었다.
“18계(界)를 어떻게 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겁화(劫火)가 모든 세계를 태우는 것을 보듯 합니다.”
또 물었다.
“12입(入)을 어떻게 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업행(業行)을 짓지 않는다고 봅니다.”
또 물었다.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어떻게 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위의 허공을 보듯 합니다.”
또 물었다.
“자신을 어떻게 관합니까?”
금색녀가 말하였다.
“부모의 화합으로부터 생겼다는 것을 압니다.”
또 물었다.
“나[我]의 몸을 어떻게 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장님이 빛깔을 보듯 합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지금 이 법을 들었습니까?”
금색녀가 말하였다.
“환인(幻人)이 법을 들음과 같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까?”
금색녀가 말하였다.
“저는 이미 발심하였으므로
다시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布施波羅密)을 행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번뇌 속에서 행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시바라밀(尸波羅蜜:持戒波羅密)을 만족하였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허공이 가득하듯 만족하였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忍辱波羅密)을 닦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 중생이 태어나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듯이 이미 닦았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精進波羅密)을 일으켰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의 법을 얻을 수 없듯이 이미 일으켰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선바라밀(禪波羅蜜:禪定波羅密)에 머무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법계 안에 머물듯이 이미 머물고 있습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禪定波羅密)을 만족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이미 만족했습니다. 어떻게 만족했는가 하면,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방편의 지혜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그대는 자비로움[慈]을 닦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 중생이 나지 않듯이 이미 닦았습니다.”
또 물었다.
“보살의 대비(大悲)는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 중생의 번뇌에서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중생이 번뇌가 없다면 보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기쁜 마음[喜心]은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가장 뛰어난 믿음의 청정함과 보리의 기쁜 마음에서 구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살은 평등한 마음[捨心]을 어떻게 만족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 중생의 다툼을 버리고 벗어나는 것, 이것을 만족이라 합니다. 일체 온갖 법의 쟁론(諍論)을 멀리 벗어나므로 이런 까닭에 만족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무엇을 쟁론(諍論)이라 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스스로 ‘내 마땅히 일체의 번뇌를 버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말한다면 이것을 쟁론이라고 합니다.”
문수사리가 또 말하였다.
“누구와 쟁론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의 외도(外道)입니다.”
또 물었다.
“누가 외도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남의 삿된 교설에 따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을 외도라고 합니다.”
“또 보리의 참는 마음[忍心]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일체 중생의 뇌란(惱亂) 속에서 생깁니다. 왜냐하면 만약 뇌란(惱亂)하지 않으면 참는 마음[忍心]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온갖 중생이 헐뜯고 욕하며 때리고 모욕하더라도 그 마음이 땅과 같아 원한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을 참음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무엇이 성냄이고 원한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성냄과 원한은 백겁(百劫)동안 지은 선업(善業)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성냄과 원한이라고 합니다.”
또 물었다.
“무엇이 성내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것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만약 일체 번뇌의 경계에서 장애받는 것이 없다면 성냄도 원한도 없는 것이라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살은 쟁론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보살은 일체 법에 있어서 분별하는 것이 없고 또 얻는 것도 없습니다. 이를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수는 다시 말하였다.
“보살이 악마의 원한을 멀리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보살은 악마의 업을 행하는 것을 보인다 할지라도 물들거나 집착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를 곧 악마의 원한을 멀리 벗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5음의 번뇌를 나타낸다 할지라도 5음의 번뇌와 화합하지 않으니, 체성은 더럽혀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생사를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기는 하지만 일체의 법에 거래(去來)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위해 천마(天魔)의 도(道)를 설하긴 하지만 일체지(一切智) 안에서 자신은 아(我)와 아소(我所)을 멀리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문수가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교화합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방편을 닦아야만 합니다. 반야바라밀이 교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수가 또 말하였다.
“보살은 어떻게 일체 중생을 안주시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보살이 스스로 지혜에 머무는 것처럼 일체 중생 또한 이와 같이 머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여인이여, 일체 대중이 그대의 설법을 듣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그대를 공경합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문수사리님, 이와 같이 공경하고 공양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이 공양하는 것은 공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자신의 몸과 남의 몸을 보고 나아가 설할 만한 법이 있다고 보는 것은 공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의 몸과 남의 몸, 나아가 법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이를 공양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들음도 없고 집착도 없는 것, 이를 법을 듣는 것이라 하고 또 공양이라고 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법공양(法供養)이란 무엇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만약 몸을 꿈과 같고 설하는 자는 환(幻)과 같으며 듣는 법은 메아리와 같다고 관하고, 이와 같이 믿고 나서 두 가지 해탈4)을 짓지 않는 것, 이를 법공양이라 합니다.”
문수는 물었다.
“법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 이를 법을 듣는 것이라 합니다.”
이 금색녀는 문수사리 동자의 신통력 덕분으로, 또 자신의 과거의 선근(善根)과 지혜의 힘 덕분으로 그 대중 가운데서 법답게 법을 설하였다.
이때 금색녀가 이 법을 설했을 때, 대중 가운데 억천(億千)의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또 과거에 깊은 선근을 심은 여러 천인(天人) 대중 가운데 5백 명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3만 3천의 천인은 티끌을 멀리 벗어나 법안정(法眼淨)을 얻었다.
승금색녀는 청정한 마음으로 환희하며 순법인(順法忍:柔順忍)을 얻었고, 순법인을 얻은 다음에 문수사리의 발에 절하고,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해 깊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정법(正法)에 있어서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집니다. 오직 원하오니 너그러운 연민으로 저의 출가(出家)를 허락해 주십시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살의 출가는 자신의 머리를 깎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큰 정진을 일으켜 일체 중생의 번뇌를 없앨 수 있다면, 이를 보살의 출가라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몸에 물들인 옷을 걸치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중생들의 3독(毒)에 물든 마음을 부지런히 끊는 것, 이를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만 계행을 지니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금계를 훼손한 이들마저 청정한 계에 안주시킬 수 있는 것, 이를 출가라 합니다.
아란야처(阿蘭若處)에 홀로 앉아 사유하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여색(女色)과 생사의 유전에서 지혜의 방편으로 교화하여 해탈시키는 것, 이를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만 계율과 위의(威儀)를 지키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만약 네 가지 무량한 마음[四無量心]을 널리 일으켜 중생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면 이를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만 선법(善法)을 수행하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善根)을 늘리게 할 수 있어야 이를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만 열반에 들 수 있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중생을 편안케 하고 대열반에 들게 하려고 하는 것, 이를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이 번뇌를 없앴다고 출가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지런히 일체 중생의 번뇌를 끊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스스로 능히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을 보호하는 것을 출가라 합니다.
자신만 몸과 마음의 결박을 풀었다고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의 결박을 풀어주기 때문에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만 생사의 두려움에서 해탈을 얻었다고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일체 중생의 생사의 두려움을 없애 해탈을 얻게 할 수 있어야 출가라고 합니다. 자신만 열반을 즐기는 것을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불법(佛法)을 만족하게 하기 때문에 출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여인이여, 무릇 출가란 일체 중생에게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출가란 일체 중생의 악(惡)을 보지 않고, 또 상(相)을 취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출가란
남의 죄를 들추지 않고, 참괴하는 자가 있으면 가르쳐 참회시키는 것, 이를 출가라 합니다. 여인이여, 출가를 어렵다고 하는 것은 남에게 속박되는 것입니다. 보살은 그렇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자재하여 속박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왜 출가를 남에게 속박되는 것이라고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계에 속박되는 것을 출가라 하고 계를 깨트리는 것은 출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삼매(三昧)에 속박되는 것을 출가라 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것은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지혜에 속박되는 것을 출가라 하고 어리석은 것은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해탈에 속박되는 것을 출가라 하고 해탈을 떠나는 것은 출가라 하지 않습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문수사리님, 왜 보살은 남에게 속박되지 않는 것이라고 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살은 안으로 스스로 법을 증득하지 남에게서 배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속박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지(一切智)를 스스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이 출가의 법을 설하고 나자, 5백의 보살이 마음에 기쁨이 생겨 곧 몸에 걸친 의복의 영락을 벗어 문수사리에게 받들어 올리고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이 법을 잘 설하셨습니다. 저희도 마땅히 수행하겠습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금색녀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수레에 올라 위덕(威德) 장자의 아들을 교화하십시오. 만약 이 장자의 아들을 교화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곧 출가라 합니다.”
이때 문수사리가 이 말을 했을 때, 일체 대중은 모두 의혹을 일으켜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이 여인은 이미 탐욕을 떠났는데 무슨 까닭으로 보내어 탐욕스런 자와 함께 있게 하는 걸까?’
이때 금색녀는 여러 대중의 마음에 의혹이 생긴 것을 알고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탐욕을 떠난 보살은 다시 탐욕스런 자와 항상 함께 지낸다 하더라도
교화하기 때문에 나쁜 이름을 멀리 벗어납니다. 보살은 스스로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났으므로 함께 있다 하더라도 교화하기 때문에 또한 나쁜 이름이 없습니다. 보살은 스스로 번뇌를 벗어났으므로 번민하는 자와 함께 있다 하더라도 교화하기 때문에 나쁜 이름을 멀리 벗어납니다.
비유컨대 어머니와 아들은 함께 있더라도 영원히 탐욕에 더러워지는 일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탐욕을 떠난 보살도 이와 같아 탐욕스런 자와 함께 있더라도 영원히 탐욕에 더러워지는 일이 없습니다. 비유컨대 황문(黃門)5)은 여인과 함께 있더라도 역시 탐욕으로 더러워지는 일이 없듯이, 이와 같이 보살은 삼계를 멀리 벗어났으므로 욕계(欲界)를 행한다 하더라도 욕심이 없습니다.”
이때 금색녀는 생사번뇌(生死煩惱)의 악법(惡法)을 분명히 알고 욕계를 벗어난 경계에 머물렀으며, 욕계를 벗어난 광명을 얻어 욕계의 어둠을 없애고는 문수사리의 발에 예배하였다. 발에 예배하고 나서는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고, 수레에 오르려 하면서 게송(偈頌)을 설하였다.
나 이제 수레에 오르지만 3독(毒)을 벗어났으니
체성(體性)이 청정하여 탐욕의 더러움 없네.
성냄을 멀리 벗어나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는 어리석음이 없이 지혜를 얻었네.
내가 탐내던 각관(覺觀) 이미 청정하니
이제 수레에 올라 숲으로 떠나리라
내 지난날 탐욕으로 마음이 미혹하고 취해
재물과 색(色)에 탐착하며 깨닫지 못했었네.
마치 큰 구름이 대지를 뒤덮듯
햇빛이 나오지 않고 비추지도 않았지만
그 광명 가지도 않고 또 오지도 않으니
큰 구름이 가렸기에 숨어서 나타나지 못했었네.
이와 같이 중생들 번뇌에 덮여
청정한 큰 지혜 비추지 못하지만
그 지혜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나니
번뇌를 알고 나면 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네.
또한 다른 곳에서 오는 것도 아니니
나쁜 각관(覺觀) 때문에 번뇌가 생기고
청정한 각관 때문에 번뇌는 사라지네.
명색(名色)을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한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또한 남에게 주지도 않고 남에게서 취하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법의 맛 너무도 청정하네.
등불이 타올라 어둠을 없애지만
그 어둠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로 번뇌를 벗어났지만
번뇌는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또한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네.
마치 훌륭한 의사 온갖 병을 고칠 때
찾아든 병만 없애 병이 생기지 않게 하고
저 지(地)ㆍ수(水)ㆍ풍(風)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듯
이와 같이 뛰어난 의왕(醫王) 문수께서도
모든 중생 번뇌의 병 치유하시며
지혜의 인연으로 번뇌를 없애지만
번뇌는 가지 않고 법은 잃지 않는다네.
아직도 나의 몸엔 5음(陰)이 있고
여러 계(界)와 입(入)도 갖추었지만
내 이전엔 번뇌와 뒤섞였으나
지금은 모두 멀리 벗어나 청정함을 얻었네.
이때 문수사리가 대중 가운데서 설법하며 교화하고 나자 대중들이 환희하였다. 문수사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법을 들음이여.”
찬탄하고 나서 대중 가운데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저는 오늘 여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법을 듣고 싶다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 말을 하고나서 문수사리와 여러 대중은 각기 제 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승금색녀는 시종하는 80명의 여인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장자의 아들과 함께 보배 수레를 타고 동산의 숲으로 갔다. 숲에 도착해서는 갖가지로 장엄한 보당(寶幢)과 번개(幡蓋)와 향화(香華)와 영락(瓔珞)과 온갖 보배 향로들을 숲 사이에 가득 늘어놓았으며, 즐기려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희롱하며 웃었고, 또 온갖 감미로운 음식들을 차렸다.
이때 승금색녀는 그 상위덕(上威德) 장자 아들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으며, 곧 신통력으로 그 누운 자리에서 죽은 모습을 나타냈다. 배가 부풀어 오르고 악취가 진동해 가까이하기 어렵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배가 터지고 간장이 파열되었으며, 5장(藏)이 드러나 악취와 더러움이 혐오스러웠으며, 대변과 소변이
줄줄 흘러 더러운 것들이 넘쳐흘렀으며, 눈과 귀와 코 속에서 그리고 온몸의 일체 털구멍에서 고름과 피가 섞여 넘치고 입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부풀어 오르고 더러우며 냄새나는 곳에서 그 악취가 온 숲에 가득했으며, 해골과 뼈가 부서져 뇌가 사방으로 흘러내리고 4지 마디마디에 더러움이 넘쳐흘렀다. 푸른 파리가 빨아 먹고 구더기가 와글거리며 온갖 더러움과 추악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이 주검을 보고 큰 두려움이 생겨 온몸의 털이 곤두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여기에서 구해 줄 사람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구나.’
사방을 돌아보아도 귀의(歸依)할 곳이 없었으니, 두려움만 점점 더해 공포에 떨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 장자의 아들은 두 가지 인연으로 큰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첫째는 이처럼 두려운 일을 예전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둘째는 자신이 그녀와 함께 와서 이곳에 있는 것을 대중들이 알고 있는데, 지금 갑자기 죽었으니 다들 자기가 일부러 죽였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사세왕이 이 사건의 전후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얼핏 보고서 나를 죽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이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홀로 그 숲에 있고 한 사람도 보이지 않자, 다시 이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나는 지금 너무도 두렵다. 어떤 사문ㆍ바라문ㆍ하늘ㆍ용ㆍ귀신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든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그 장자의 아들은 과거의 선근이 성숙하긴 했지만 문수사리와 금색녀가 나눈 설법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문수사리는 곧 신통력으로 숲의 모든 나무들이 게송을 설하게 하였다.
모든 법의 체성(體性)
장자가 본 것과 같나니
삼계(三界)는 모두 허망하고
허깨비처럼 모두 실답지 않네.
피부로 추악하고 더러운 것 가리고서
범부들 부끄러움도 없이
나쁜 각관(覺觀)을 인연하여
망령된 생각으로 탐착을 일으키네.
비유컨대 병에 똥을 채우고서
겉에 속임수로 그림을 그려 꾸미면
어리석은 자들 알지 못하기에
병을 집어 머리에 이고 가네.
땅에 떨어져 곧 깨어지면
더러움이 온 곳에 가득하나니
온갖 악취 가까이하기 어려워지면
마음으로 후회하며 버리고 떠나려 하네.
이와 같이 모든 범부
함부로 여색(女色)을 분별하여
길고 짧음과 붉고 흰 것을 보고서
나쁜 각관 때문에 사랑에 물든다네.
만약 몸의 참된 성품 본다면
그대의 몸도 또 이와 같나니
참되게 보는 사람 중에 누가 있을까
냄새나는 주검에 애착을 일으키는 자.
그대는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
이 법의 체성은 공(空)하나니
일체는 진실이 아니라네.
그대가 이전에 탐착했던 것도.
어찌하여 지금 두려워하는가?
도사(導師) 석가문(釋迦文)께서
그대에게 안락을 베푸시리니
설법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네.
모든 탐욕 무상하다 설하시니
구름이나 안개나 번개처럼
5욕은 거짓되고 실답지 않나니
지혜로운 자라면 누가 탐착할까.
마치 바람이 물결을 일어
물거품을 일으키는 것처럼
거기에 실재로 짓는 자는 없나니
인연이 합한 까닭에 생긴 것이라네.
이와 같이 명색(名色)의 법도
또한 실재로 짓는 자가 없나니
업력(業力) 때문에 잃지 않고
모든 법은 화합하여 생긴다네.
여태껏 보았던 아름다운 색(色)
지금은 어느 곳으로 갔을까?
이 더러운 색은 어디서 와서
이렇게 큰 두려움을 일으키는 걸까?
이 법은 어느 곳[方]에도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부터 오지도 않았으며
미래(未來)로 가는 것도 아니라
모여서 일어났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라네.
그 가운데 짓는 자 없고
또 실재로 받는 자도 없나니
짓고 받는 법을 벗어나
허깨비처럼 공하고 실다움이 없다네.
그대는 남의 몸에
두려움을 내지 말라.
만약 스스로 관찰할 수 있다면
그대의 몸 역시 그와 같다네.
꿈속에서 탐욕을 즐기며
펄쩍펄쩍 뛰고 크게 환희하듯이
잠 깬 사람 욕락(欲樂)에 집착함도
꿈과 전혀 다름이 없다네.
그대의 두려움 없앨 수 없고
또 위안할 자도 없다네.
그대는 지금 빨리 가보라
큰 스승이신 여래(如來)께서 계신 곳으로.
그대의 큰 두려움
부모나 권속과 벗들도
구할 수 있는 자들 아니니
오직 부처님이신 세존만이 계신다네.
그 뿌리를 뽑을 수 있고
두려움 없음을 베풀어 주시며
보살필 자 없는 이 보호하시니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께 귀의하고
또 뛰어난 법과 승가에 귀의하라.
만약 하늘과 용들도
그분에게 귀의한다면
두려움에서 모두 해탈하여
신속하게 천인(天人)의 몸을 얻으리라.
이때 장자의 아들 상위덕은 이 게송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환희하였으며, 한량없이 펄쩍펄쩍 뛰면서 스스로 매우 다행이라 여겼다. 그는 주검을 버리고 숲을 나왔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기사굴산의 꼭대기에 계시면서 장자 아들의 선근이 성숙하여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고 큰 광명을 놓으셨다. 그러자 그 광명이 마가다국(摩伽陀國)을 두루 비추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광명 속에서 멀리 부처님의 몸을 보았는데, 마치 떠오르는 해와 같았고 대중에게 둘러싸여 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이 일을 보고서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염(念)하자 홀연히 또 일곱 가지 보배로 된 계단이 난간을 휘돌아 부처님 계시는 곳까지 이어진 것이 보였다. 또 오묘한 꽃이 길거리에 가득 깔린 것이 보였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길을 찾아 그곳으로 가려 하였다.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 곧 앞을 막아서며 길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 장자의 아들아. 부처님을 찾아뵈려 하다니 크고 좋은 이익을 얻으리라. 부처님 역시 그대를 가엾이 여긴다. 내 마땅히 그대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리라.”
이때 장자의 아들은 곧 제석(帝釋)과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하자 이때 천제석(天帝釋)은 곧 옷자락의 만다라화(曼陀羅華)를 장자의 아들에게 주며 부처님께 뿌리게 하였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하늘의 꽃을 받은 뒤에 환희심이 생겨 그것을 부처님 위에 뿌렸고, 얼굴을 땅에 대어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는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귀의하며, 법에 귀의하며, 승가(僧伽)에 귀의합니다.”
3귀의(歸依)를 마치고 나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이 선근의 온갖 공덕으로 내세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에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금색녀는 여러 사람에게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저는 욕락을 위해 그녀에게 재보를 주고는 함께 즐길 숲속의 장소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숲에 이르자 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더니
돌연 죽어버렸고, 갑자기 문드러지며 악취가 풍기고 더러워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데리고 온 권속들은 모두 저를 버리고 떠나버렸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사세왕이 이 여인이 죽은 것을 알면 제가 죽였다 하고서 함부로 형벌을 가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지금 너무도 두렵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근심하거나 두려워 말라. 내 마땅히 그대에게 일체의 두려움 없음을 베풀리라. 그대, 장자의 아들아. 부처에게 귀의하는 자는 어느 곳에서건 두려움이 없다.”
또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두려움의 인연을 놓아 버려라.”
이때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두려움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인연으로 두려움이 생긴다. 신견(身見)6)의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갈애(渴愛)의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아(我)와 아소(我所)의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집착의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다툼의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자신을 사랑하며 얽매이는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무상(無常) 가운데에서 영원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괴로움인 법 가운데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깨끗하지 않은 것 가운데에서 깨끗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나[我]가 없는 가운데에서 나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5음의 인연에 집착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12입을 관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18계를 관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미래의 악(惡)을 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내신(內身)과 외신(外身)의 인연을 관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수명(壽命)을 사랑하는 인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장자의 아들아, 이와 같은 인연들 때문에 모든 두려움이 생긴다. 이와 같은 것들을 그대는 놓아버려야 한다.”
또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여인의 몸에서 온갖 나쁜 것을 보았느냐?”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일체의 모든 법은 무상하고, 썩어 무너지고, 괴롭고, 공(空)하고, 실답지 않으니 이는 허망한 거짓일 뿐인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알지 못한다.
업연(業緣)으로 생기기 때문이며, 허깨비는 실답지 않아 색상(色相)을 벗어난 것과 같기 때문이며, 꿈에서 즐겁게 놀아도 실재로는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무더울 때 아지랑이가 물이 아님에도 물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물에 반사된 빛이 그림자를 드리워 벽에 비치면 물의 움직임 따라 곧 아른거리지만 오고 감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거울 속 그림자가 업력(業力)으로 생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물속의 달은 물이 고요하면 곧 나타나지만 오고 감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메아리가 소리에서 생기지만 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림자처럼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며, 허깨비처럼 체성이 공(空)하기 때문이며, 바람의 성품처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허황하고 거짓되고 실답지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기 때문이다.
장자의 아들아,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주인이 없고 작용이 없고 집착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대의 조금 전 탐욕의 각관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이 안에서 보는 장점과 단점, 아름다운 색(色)을 나쁜 각관을 인연하여 범부는 탐착하지만 거룩한 법[聖法:佛法]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일이 없습니다. 성인의 법에서는 이는 더러움일 뿐이니, 진실 그대로 보기 때문이며, 나쁜 각관을 떠나기 때문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장자의 아들아, 탐욕의 성품을 보기 때문에 나쁜 각관(覺觀)을 벗어나고, 나쁜 각관을 벗어나기 때문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대는 마땅히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고 방편의 행을 닦아 일체의 경계에서 지혜의 업을 일으키고 자신의 몸이 있다는 견해와 남의 몸이 있다는 견해를 벗어나야 한다.”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보살은 어떻게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고 지혜로운 행을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아, 보살은 탐욕의 체성 가운데서 보리를 구하고, 이와 같이 성냄과 어리석음의 체성 가운데서 보리를 구하며, 또한 모든 번뇌의 체성 가운데서
보리를 구해야 한다. 이와 같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 일체 번뇌의 성품은 공하여 물(物)이 없으니, 보살은 곧 일체의 법 가운데서 지혜의 행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장자의 아들아, 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성품은 뿌리가 없고,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며, 또한 주인이 없고, 또한 짓는 자도 없다. 안팎이 청정하고 공(空)하여 소유(所有)가 없고, 나[我]가 없고, 중생(衆生)이 없고, 수명(壽命)이 없으며, 부가라(富伽羅)를 벗어났다. 상(相)이 없으니 나쁜 각관(覺觀)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원(願)이 없으니 갈애(渴愛)의 집착[取]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체성은 무생(無生)이기 때문에 보살은 모든 법 가운데서 지혜의 행을 일으킨다.
또 장자의 아들아, 청정을 반연하여 방편으로 행하는 보살은 일체 중생의 심법(心法)에서 모두 보리가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의 마음이 색이 없고, 색을 벗어나고, 분별을 벗어나고, 체성이 허깨비와 같아 이것과 저것 안과 밖이 상속(相續)하지 않으면 이를 보리(菩提)라 하기 때문이다.
또 장자의 아들아, 보살은 다른 일을 깨달아서는 안 되고, 자신의 마음만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자는 곧 일체 중생의 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의 청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의 체성이라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의 체성이다. 자신의 마음이 번뇌[垢]를 벗어난다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이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탐욕을 벗어난다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이 탐욕을 벗어나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이 성냄을 벗어난다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성냄을 벗어나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이 어리석음을 벗어난다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이 번뇌를 벗어난다면 곧 이것이 일체 중생의 마음이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짓는 것을 일체지(一切智)를 아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청정을 반연하여 방편을 행하는 보살은
번뇌의 체성과 오염된 일체 중생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상속하며 마음을 더럽힌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보살은 법의 방편을 나타내 그 중생을 잘 교화해 고뇌하는 일이 없게 할 수 있다. 만약 그 중생이 객진번뇌를 깨달으면 객진번뇌도 역시 더럽힐 수가 없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시고 나자 장자의 아들은 순법인(順法忍)을 얻었다.
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는 장자의 아들이 이미 교화를 받은 것을 알고서는 5백의 마차를 장엄하고 앞뒤로 둘러싸서 온갖 음악을 모두 지어 부르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도착해서는 수레에서 내려 머리를 땅에 대어 세 번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서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이때 문수사리 동자가 장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누이를 아십니까?”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저는 지금에야 진실로 압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는 어떻게 아십니까?”
이때 장자의 아들이 곧 문수에게 게송을 설하였다.
색(色)은 물거품과 같다고 보고
모든 수(受)는 다 거품과 같으며
상(想)은 아지랑이와 같다고 관하나니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행(行)은 파초와 같다고 보고
식(識)은 허깨비와 같다고 아나니
여인의 이름은 거짓으로 붙인 것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몸에 각관(覺觀) 없는 것 나무토막과 같고
또 풀이나 기와나 조약돌과 같으며
마음이란 볼 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나[我]가 아니고, 중생[衆生]이 아니며
수명(壽命)이 아니고, 부가라(富伽羅)가 아니며
18계(界)가 상속하나니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그녀는 탐욕도 성냄도 아니고
또한 어리석음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고 청정함도 아니니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모든 범부 술에 취한 듯
전도되어 나쁜 각관(覺觀) 일으키지만
지혜로운 자는 더럽히지 못하는 법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저 숲속의 그의 주검처럼
악취를 풍기며 문드러져 혐오스럽고 더럽나니
몸의 체성이란 이와 같은 것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과거는 본래 사라지지 않았고
미래도 역시 생기지 않으며
현재는 잠시도 머물지 않나니
이와 같이 저는 그녀를 압니다.
문수여 잘 들으소서.
그녀의 은혜 보답하기 어렵나니
저는 본래 탐욕이 많았으나
더러움을 보고서 해탈하였습니다.
그녀의 몸은 실재로 죽은 것 아니라
저를 교화하려고 죽음을 보인 것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에 시현하셨으니
누가 보고서 발심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그리고 일체의 번뇌는
이와 같은 체성의 법이니
훌륭합니다, 너무도 미묘하나이다.
이때 여래께서 곧 미소를 지으시자 그 얼굴에서 5색의 빛이 나와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으며, 비추고 나서는 다시 정수리로 들어갔다.
이때 아난은 그 광명을 보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였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부처님께 합장하고서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미소를 보이신 것입니까? 모든 부처님 여래ㆍ다타아가도(多他阿伽度)ㆍ아라가(阿羅呵)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께서는 인연 없이 미소를 보이지 않으십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금색녀를 보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예,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는 이 금색녀를 과거에 이미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였고, 이제 또 다시 문수사리에게서 정법을 듣고 순법인(順法忍)을 얻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상위덕(上威德) 장자의 아들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네,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장자의 아들을 나는 과거에 이미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였고, 지금 다시 나에게서 정법을 듣고 순법인을 얻은 것이다.
아난아, 이 승금색녀(勝金色女)는 900만 겁을 지난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니, 그 명호는 보광(寶光) 다타아가도ㆍ
아라가ㆍ삼먁삼불타이며, 수명이 무량할 것이다. 그 부처님세계의 이름은 보덕찰(寶德刹)이며, 겁(劫)의 이름은 낙생(樂生)이다. 저 여인이 미래에 부처가 되었을 때, 그 나라 중생들의 의복과 음식과 수명과 신색(身色)은 모두 도리천(忉利天)의 여러 천왕(天王)과 같아 평등하며 조금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부처님의 세계에는 성문과 벽지불은 없고 온전히 대승(大乘)의 여러 보살보(菩薩寶)7)만 있을 것이다.
그 보광여래(寶光如來)께서 성불(成佛)할 때, 이 장자의 아들은 보살의 몸을 얻을 것이다. 그 이름은 덕광(德光)일 것이니,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지니고 보광여래께서 설하는 법장을 남김없이 받아 지닐 것이다. 보광여래께서는 열반에 임하여 덕광보살에게 보리의 기별을 주며 ‘내가 멸도(滅度)한 뒤 나의 법이 멸하고 나면 이 덕광보살이 부처가 될 것이니, 그 명호는 보염(寶炎)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라 하리라.’고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때 여래께서 두 사람에게 수기하시고 나자마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큰 광명을 놓아 시방(十方)의 모든 세계를 가득 채우셨다. 이 수기(授記)의 법을 설하셨을 때, 8천의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이때 장로(長老)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대장엄법문(大莊嚴法門)이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라. 또 『문수사리신통분신력경(文殊師利神通奮迅力經)』이라고 하며, 또 『승금색광명덕녀교화경(勝金色光明德女敎化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장로 아난ㆍ승금색녀ㆍ장자의 아들ㆍ문수사리ㆍ하늘ㆍ사람ㆍ아수라 등 일체
대중은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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