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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62 불교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4권

by Kay/케이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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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4

 

 

대장엄론경 제14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67

다음으로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신 것은 가장 희유한 일이므로, 비록 번뇌에 싸여 있는 여인일지라도 해탈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의 이모(姨母)인 구담미(瞿曇彌) 비구니가 장차 열반에 들려 할 때에 갖가지 장엄으로 수승하고 미묘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그때에 세존께서 4부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그들 가운데 계시다가 기침을 한 번 하시니, 때마침 구담미 비구니가 부처님의 기침 소리를 듣고는 그녀가 부처님을 자식으로 사랑하여 길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다.
“오랜 수명을 누리세요,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소리가 점점 퍼져 나가 마침내 범천(梵天)에까지 이르자, 부처님께서 구담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부처를 공경하는 주원(呪願)의 법이 아니오.”
곧 게를 설하셨다.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나의 마음을 조복하고
견실한 법을 힘껏 닦아
정진을 애써 행할 것이며

성문(聲聞) 대중들을 보면
“모두 다 함께 화합하시오”라고 할지니
부처님을 공경하고 예배할 때엔
이렇게 주원해야 하는 법이오.

그러자 구담미 비구니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성문들이 화합하는 것이 부처님께 예경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오히려 성문들을 화합시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헤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며, 불세존의 성문 대중들은 타락한 이가 없으니, 이러한 뜻에서 내가 먼저 열반에 들어야만 하겠다.’
그때 비구니의 가람(伽藍)을 지키던 천신(天神)이 구담미 비구니가 열반에 들려고 하는 것을 알고서 슬피 우니, 그 눈물이 비구니들의
옷 위에 떨어졌는데, 때에 비구니들은 이 신이 무엇 때문에 눈물을 옷에 떨구었는지를 관찰하여 구담미가 열반에 들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5백 비구니들이 모두 다 구담미가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구담미가 여러 비구니들에게 말하였다.
“4대(大)로 이루어진 독사 같은 상자에 오래 머무를 수 없어서 내가 지금 열반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 천신의 마음이 부드럽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 그대들의 옷에 떨어진 것이라네.”
5백 비구니들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동시에 출가했으니, 우리들을 버리고서 먼저 열반에 들지 마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우리들은 함께 출가하여
다 함께 무명의 어둠을 여의었으니
열반의 안온한 성(城)으로도
이제 같이 가야 하리라.

생사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들이
아직도 번뇌의 숲에 처해 있거늘
어떻게 그대만 홀로 가서
감로(甘露)의 자취에 나아가리요.

“당신들이 이제 어떻게
한꺼번에 열반하리요” 하지만
그대가 만약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우리도 그대와 함께 가리다.

그때 구담미는 5백 비구니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까지 머물던 곳을 떠나가면서, 곧 그곳의 천신에게 이별의 말을 하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이 집과 이별하고 떠나가오.”
천신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비구니가 말하였다.
“나는 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병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함도 없으며, 사랑하는 것과 이별해야 하는 고통도 없는, 저 열반의 곳으로 가려 하오.”
그때 여러 범부 비구니들이 즉시 소리 높여 외쳤다.
“아, 이상하구나. 마치 허공 중의 별이 사방으로 흘러 사라지듯이, 한 찰나에 이 비구니 승방이 모두 다 텅 비겠구나.”
구담미 비구니가 5백 비구니들을 데리고 함께 떠나가니, 마치 저 항하 강물이 5백 강물과 함께 큰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는데, 그때에 여러 우바이(優婆夷)들이 구담미의 발에 이마를 대고 예를 올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가엾이 여기시어
우리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 비구니들이 우바이들을 위로하며 말하였다.
“그대들은 지금 근심할 때가 아니오.”
곧 게를 설하였다.

우리들은 이미 괴로움[苦]을 알았기에
쌓임[集]의 얽매임을 끊어 버리고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닦아
사라짐의 진리[滅諦]를 증득했으므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니
그대들은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부처님의 무리들에 빠짐이 없고
모니(牟尼)의 법장(法藏)이 머물러 있으며
세존께서도 세간에 계시므로
우리는 열반에 들어갈 것이며

교진여(憍陳如) 비구와
아부(阿富) 비구 등
이와 같이 때가 없는 사람들 중에
아직 타락한 이가 있지 않으니
우리들은 열반에 들어가려 하며

난타(難陀)와 라후라(羅睺羅)
아난(阿難)과 삼마타(三摩陁)
내지 아난타(阿難陁) 등
이런 이들이 세간에 있으므로
우리는 열반에 들어갈 것이며

모니께서 아직 안온하시고
비구 스님들이 다 화합하여
외도들의 날개를 꺾으므로
삿된 도가 물러나 흩어져서
일체종지가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이제 열반에 들 것이네.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니
우리의 마음은 해탈을 원하여
이제 이미 만족을 얻었거늘
그대들은 이제 무엇 때문에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는가.

환희심의 북[鼓]을 울려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동안
우리는 해탈의 방으로 나아가리니
지금이 바로 그 때인 만큼
그대들은 부디 근심하지 마시라.

그대들이 만약 우리를 생각한다면
부지런히 바른 법을 옹호하여
이 법이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을 생각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애써 바른 법을 옹호해야만 하며

부처님께서는 자비하시기 때문에
여인이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니
그대들은 계율을 굳게 지켜서
사람들이 욕을 퍼부어 욕보이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후세에 가서도
여인을 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네.

그때 여러 비구니들이 나머지 비구니들과 우바이들을 위로하고서, 5백 비구니들이 마치 줄지어 늘어선 꽃나무처럼 다 함께 부처님의 처소로 나아가 울다라승(鬱多羅僧)1)을 바로 하고 부처님 발에 예배한 다음,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게를 설하였다.

제가 이제 부처님의 어머니라면
여래께서는 바로 나의 아버지이시니
저는 법으로부터 생겨 나왔습니다.


제가 젖으로 육신의 몸을 길렀다면
부처님께서는 저의 법신(法身)을 기르셨으며
제가 세존께 먹인 젖은
잠시 동안의 목마름을 멈추게 할 뿐이지만

부처님께서는 법의 젖으로 나를 먹이시니
언제나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어서
길이 은애(恩愛)를 끊게 하시네.

이제 다시 요약하여 말하자면
제가 비록 젖을 먹여 길렀지만
갚으신 은혜가 지극히 크나니
바라건대 일체의 여인들로 하여금
부처님 같은 아들을 낳게 하소서.

라마(羅摩)ㆍ아순(阿純)ㆍ바수(婆須) 등의
여러 어머니들은 번뇌의 바다에 처하여
처음도 끝도 없는 생사에 윤회하건만
저는 모자(母子)의 인연 때문에
생사의 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 세간에서 가장 귀한 여인은
임금의 부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일체종지의 어머니라는
이 이름만은 얻을 수 없거늘

저는 이제 이미 얻었으므로
저의 크고 작은 뜻과 바람이
모두 다 만족되었기에
지금 열반에 들고자 하는 저의 뜻을
부처님께 고하여 알려드립니다.

연꽃잎 같은 부처님 발의
바퀴 무늬가 모두 빛나시온데
이제 저의 마음이 만족할 수 있도록
이 마지막 예배를 받아 주소서.

바가바께 엎드려 예배드리오니
진금 덩어리 같으신 몸의 가사 옷을 여시어
저에게 여래의 몸을 보게 하여 주신다면
저는 여래의 몸을 잘 관찰하고서
이제 열반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그때 여래께서 서른두 가지 대인(大人)의 모습과 여든 가지 훌륭한 상호(相好)를 구족하신 몸의 가사 옷을 여시니, 이에 구담미가 부처님의 몸을 보고 나서 발에 예배드리며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열반에 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구담미에게 타일러 말씀하셨다.
“그대가 열반에 들고자 한다면 나는 그대의 뜻을 따를 것이오. 마치 달이 기울어질 때에 점점 사라져 남음이 없는 것 같아도 그 달이 줄지 않는 것처럼 그대가 열반에 든다 해서 대중이 줄어들지는 않으며, 제자가 먼저 가고 내가 마지막으로 가니, 마치 장사꾼들이 길을 갈 때에 그들의 우두머리는 뒤에서 따라가는 것과 같구려.”
그때 5백 비구니들이 마치 수미산을 둘러싸듯이 불세존을 둘러쌌으며, 이미 부처님을 둘러싸고 나서는 여래 앞에 서서 존안(尊顔)을 우러러보고 사모하는 마음이 만족할 줄 몰랐으며, 법을 설하시는 음성을 듣고도 역시 싫증냄이 없이 만족함을 얻었다.
법의 맛을 얻었기 때문에 난타(難陀)ㆍ
라후라(羅睺羅)ㆍ아난타(阿難陁)ㆍ삼마제(三摩提)ㆍ발타(拔陁) 등은 엎드려 예배하고 참회를 구하였다. 일체의 모든 성중(聖衆)들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여 말없이 서 있었으나, 오직 아난ㆍ라후라ㆍ삼마제ㆍ발타 등은 그렇지 못하였으니, 아난은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았고 마음이 인자하고 유순했기 때문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서 마치 바람 없는 나무처럼 합장하고 서서 눈물만 흘렸다.
그때 구담미가 존자에게 말하였다.
“아난 존자께서는 들음이 많고 진리를 보았을 텐데 어째서 지금 마치 범부처럼 구시는 겁니까?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은애(恩愛)에는 다 이별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존자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위해 불세존께 청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어떻게 이 법을 얻었겠습니까?”
게를 설하였다.

그대가 부처님께 청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이 출가할 수 있었으므로
그대는 지금 사실 헛되지 않아서
모두 실제로 과보를 얻었으니

일체 외도의 스승들로선
일찍이 이런 경지를 얻은 적이 없었거늘
우리는 이제 여인의 몸으로도
감로의 자취를 얻을 수 있네.

선지식이신 부처님께 의지하였기에
이제 감로의 자취를 얻은 것이니
그대는 부처님 법을 지킴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잘 지켰으므로

오늘날 이 최후의 시간에
마지막으로 그대를 만나는 것은
우리가 이제 열반에 들어가면
도(道)를 타고서 가기 때문이네.

부처님께서 대중들 속에서 기침하셨을 때
내가 ‘오래 사십시오’라고 외쳤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는 공경하여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이 일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부처님도 또한 스님들을 옹호하사
빠지거나 줄어들지 않게 하려 하시며
나도 또한 그것을 원하지 않으나
열반의 곳으로 들어가려 하네.

무상(無常)이라는 큰 바람이 이르러
성문(聲聞)의 나무에 불어대면
뿌리를 뽑아 땅에 넘어뜨리고
금강(金剛)처럼 단단한 무상이라는 바람은
수미산을 흩어 버릴 수도 있으나
다타아가(多陀阿伽)의 햇빛은
무명의 어둠을 여읠 수 있으니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시는 동안
수승하고 미묘한 열반의 길을
열 가지 힘으로 설법하심으로써
법의 광명이 비치는 곳마다
외도들의 삿된 논의를 부수고야 말리라.

햇빛이 온 세계를 널리 비추듯이
부처님의 위덕도 또한 그러하여
지금 이렇게 좋은 때를 만났기에
우리는 곧 몸을 버리려는 것이네.


그때 아난이 이 게를 듣고 나서 이내 곧 눈물을 거두고는, 게를 설하여 대답하였다.

이제 그대들의 뜻이 크므로
나는 다시 근심하지 않겠으니
마치 깊은 숲 속에는
가시에 찔리는 등의 고통이 많은데

암코끼리가 달아나서
숲을 벗어나 고통을 여의듯이
그대들도 또한 이와 같이
모든 세간을 여의고 달아나네.

다만 이제 염려되는 것은
교만과 어리석음이며
지독한 번뇌의 치성한 불이
3유(有) 가운데서 타고 있는데

그대들이 먼저 열반한다면
커다란 불덩어리 같으신 불세존께서
불꽃이 다하여 불이 꺼질까 염려스럽네.

그때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 비구니가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서 존안을 우러러보며 게로써 찬탄하였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위대한 성인이신 여래의 말씀은
진실한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이며
이치의 말씀이고 법의 말씀이며

이익이 되는 허망하지 않은 말씀이고
참된 적멸의 말씀이며
나와 내 것이 없는 말씀이고
일체를 다 뛰어넘은 말씀이며

원만하신 여래의 눈은
장래의 수승하고도 미묘한 길을 보여 주시고
항상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시며

큰 광명으로 모든 어둠을 몰아내시고
분쟁을 멸하여서 법의 정원에 화톳불을 태우시며
일체를 비추시어 중생들에게 등불이 되어 주시네.

또한 밝음을 따르는 이에게는 조어(調御) 대장부시고
큰 해탈에 귀의하게 하는 도사(導師)시므로
열 가지 힘을 구족하시고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구족한 이로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성취하셨으며

설법이 또한 허망하지 않으시어
반드시 중생을 이익되게 하시며
석종(釋種)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시어
견실하게 정진을 닦게 하시니

수승하고 미묘한 정진을 닦은 이로서
몸에 대비를 구족하시여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
도저히 더럽힐 수 없는 분이므로

제석ㆍ범천ㆍ사천왕과
마혜수라왕ㆍ염왕(閻王)ㆍ바루나(婆樓那)와
재부(財富)에서 자유로운 자 등
이와 같이 수승한 사람들이
합장하고서 부처님을 찬탄하네.


“이와 같이 매우 미묘하고 두려움이 없는 대중들의 수승함을 때로는 화합하고 때로는 놓아 버려서 진실로 나타내시며, 도(道)를 보여 주기 위해 갖가지로 법을 설하시되,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의 음성까지 잘 이해하시니, 이름이 허공에 가득하시며, 정생왕(頂生王)을 비롯한 우발차나(憂鉢遮那)ㆍ발라타(拔羅陁) 같은 여러 대왕의 종성들로부터 서로 이어져 출생한 분이십니다.
여래께선 해와 달 같으시어 하늘과 사람ㆍ아수라의 공양을 받으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七覺意]을 얻어 무명의 어둠을 몰아내며, 또한 삼보(三寶)의 수승한 깃발을 세우신 분입니다.
여래의 얼굴은 마치 금산(金山) 꼭대기 같아서 광명을 널리 비추시므로 이야말로 최고의 장부라 할 수 있으니, 즉 연화(蓮花) 장부라 할 수 있고 구물두(拘物頭)2) 장부라 할 수 있고 분타리(分陀利)3) 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탐욕ㆍ진심(瞋心)ㆍ우치(愚癡) 등의 모든 번뇌를 끊으시고, 나아가 네 가지 얽매임의 근심과 고뇌ㆍ게으름ㆍ교만ㆍ투쟁ㆍ분노ㆍ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등의 일을 끊어 버리셨으며, 여래ㆍ세존께선 남을 속이거나 도박을 하거나 남과 경쟁하여 그를 기만하거나 더불어 송사를 벌이거나 화를 내어 이별하는 따위의 일들을 모두 다 영원히 끊어 버리셨으며, 외도의 스승들처럼 주먹을 쥐거나 법을 감추거나 하는 모든 나쁜 번뇌의 습기를 다 남김없이 끊어 버리셨습니다.
교만의 당기[幢]를 넘어뜨리고 법의 수승한 당기를 세우시며, 법의 바퀴를 굴리시어 눈물과 젖과 피의 바다를 다 말려 버리고, 깊고도 끝이 없는 선정의 바다를 얻으시며, 안팎의 일체 재물을 다 내어 주시되 아까워함도 집착함도 없으시어 원수나 친한 이에게나 그 마음이 평등할 뿐입니다.
부처님 몸은 진금(眞金) 덩어리를 녹여 놓은 것처럼 미묘하시니, 혀의 길이와 너비는 연꽃 잎 같으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여 깨끗하며, 그 배[腹]는 판판한데 배꼽이 오른쪽으로 돌아 마치 향합 같으며, 한 길이나 되는 둥근 광명은 번개처럼 밝으며 또한 진금 같기도 합니다.
정진의 갑옷을 입고서 선정의 호위를 받으시며, 지혜의 화살로 터럭의 백 분의 일까지 쏠 수 있어서 쏘는 것마다
다 들어맞아 마군(摩軍)의 무리를 쳐부수시니, 용건(勇健)하고 두려움 없음이야말로 사람 가운데 큰 용이시고, 사람 가운데 진정한 구제자이십니다.
선정과 신통이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형상이 없어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분별해 보이시며, 애욕과 성내는 마음을 끊어 없애시어 서원(誓願)이 견고하고 의지가 안정되어 끝내 경솔하거나 조급하지 않으시니, 마치 우담발화(優曇鉢花)를 매우 만나기 어려움과 같도다.
여래의 공덕은 대지(大地)보다 더하시어 가는 티끌 수 같은 백천만억 세계의 중생들에게 여덟 가지 바른 길로 번뇌를 씻어 내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저 언덕에 이르도록 그 방향과 장소를 보여 주시며, 서른두 가지 대인(大人)의 모습과 여든 가지 훌륭한 상호로써 마치 그림처럼 스스로를 장엄하시고, 지혜의 금강저(金剛杵)로 일체 외도의 삿된 의론을 꺾어 멸하시어 해탈하는 열반의 묘한 방법을 보여 주시며, 일체의 법에 대하여 자재로움을 얻으시어 세간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모든 느낌과 경계와 번뇌를 마주 대하여 다스리는 법을 말씀하시되, 수승한 변재로써 일체의 모든 법을 잘 분별하시어 속이거나 현혹되는 일을 뽑아내 버리시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 다 저 언덕에 도달하게 하시니, 이 때문에 아시타(阿私陀) 선인에게 존경을 받으시어 그 이름이 사방에 두루하시며, 최후의 몸에 머무시어 이미 스스로 깨달으신 그대로 중생들을 열어 깨우쳐 주시니, 공덕의 복장(伏藏)이며 공덕의 수미산이고 공덕의 큰 바다이시며, 한량없는 명칭과 한량없는 변재로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예를 올리고 물러나 5백 비구니들을 데리고서 한적한 곳에 들어가 목숨을 버리려고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으니, 때마침 우바이가 마지막으로 비구니들이 있는 곳에 이르러 비구니 발에 예배하고는 소리 높여 울부짖으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저희들에게 모든 허물이 있사오니
치성한 지혜로써 저의 참회를 들어 주소서.
저희들이 끝내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파사파제(波闍波提) 비구니가 욕심을 여의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용감하여 손을 들어 우바이를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사랑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끌리지 말아야 하니, 은애(恩愛)로 모이고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있다”고 하셨으니
일체의 함이 있는[有爲] 법이라는 것은
모두 다 무상(無常)한 것이지만
무상의 불이 치열하게 타오르면
3유(有)를 다 태워 버리기 마련이라.

나를 사랑하는 이 매우 많고
내가 사랑하는 것도 적지 않지만
나는 이제 이러한 애착 따위를
모두 다 버릴 수 있도다.

생사의 어두컴컴한 곳
그 험악한 속을 윤회하면서
친한 이끼리는 서로가 그리워하며
이별하는 것 보기를 싫어하지만
무상이란 것에는 자비심이 없어서
깨뜨리고 무너뜨려서 이별하게 하는지라.

은애(恩愛)롭기만 하고 이별이 없다면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겠지만
점점 서로가 친하고 사랑하여
더욱 연모하고 친선을 두터이 하다가
필경에는 반드시 이별하게 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해탈을 구할 뿐
도무지 남겨 둔 미련이라곤 없다네.

그때 구담미가 갖가지 인연으로 열반을 찬탄한 뒤에 말없이 서서 불세존께 하직하고 말했던 그대로 조금도 어김없이 열반에 들었으며, 여러 비구니들도 전일한 생각으로 부처님 앞에서 초선(初禪)에 들었으며, 이와 같이 차례차례 멸진정(滅盡定)에 이르러 역(逆)으로 순(順)으로 관찰하고는 갖가지 신족(神足)을 나타내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몸은 땅 위에 있으면서
손을 뻗어 해와 달을 어루만지고
몸을 변화시켜 숨겼다가
허공 중에서 솟아나오기도 하며
한 몸이 여러 몸으로 되기도 하고
여러 몸이 한 몸으로 되기도 하며

몸에서 큰 광명을 놓아
온 땅을 움직이는가 하면
땅에 들어가기를 물에 빠지듯이 하고
물에 들어가기를 땅을 밟듯이 하며

또 몸에서 큰 광명을 내어
큰 비를 퍼붓듯이 하니
뜻대로 되는 신족(神足) 때문에
이러한 일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네.

나머지 5백 비구니 역시 이러한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니,
이는 다 여래의 법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모두 다 신통을 나타내되,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오르니, 마치 구름을 헤치고 큰 비를 내리는 것 같으며, 또한 뜨락의 화톳불이 허공 중에서 바람에 불리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같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몸 위에서 물을 내고 몸 아래서는 불을 내기도 하며, 몸 위에서는 불을 내고 몸 아래서는 물을 내기도 하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각각 천 가지 불빛을 내어
둘러싸고서 스스로를 장엄하여
몸 위에서는 불빛을 내기도 하고
몸 아래서는 큰 비를 퍼붓기도 하며

허공에는 뭇 꽃들이 가득 차서
마치 첨복(瞻蔔) 나무 가지 같고
물 위에는 뭇 꽃들이 쌓이고 쌓여
갖가지 변화를 나타내니

여러 단월들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고는
마치 마른 섶이 다 타면 불꽃도 사라지듯이
남겨 둠이 없는 열반으로 들어갈 것이네.

그때 범천왕은 모든 범중(梵衆)들을 거느리고, 석제환인은 여섯 욕심 세계의 천신들을 데리고, 그 밖의 큰 천신들과 수승한 용ㆍ야차ㆍ귀신들이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모두 다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애욕과 번뇌를 이미 다 여의셨으므로 세간에도 수순하시지만, 저희들에게는 어떠한 일을 하도록 시키시려는 겁니까?”
이들이 바로 불세존께서 가장 마지막으로 가까이하신 이들이다.
그러자 여래께서는 때에 따라 알맞는 각각의 해야 할 일들을 명하시고서,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멀고 가까운 곳에 두루 외쳐서 부처님의 어머니에게 공양할 이는 모두 다 와서 모이게 하거라.”
그때 존자 아난이 소리 높여 울부짖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여러 불제자들이여,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말고 다 나의 말을 들으시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다 와 모여서 부처님의 언교(言敎)를 들읍시다. ‘저 구담미 비구니가 젖을 먹여 내 마지막 몸을 길러 주었는데, 이제 열반에 들어가니 마치 기름이 다하면 등불이 꺼지는 것과 같도다. 모든 신심 있는 불제자로서 부처님의 어머니 몸에 공양할 자는 빨리 와서 모이거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과 하늘 중에 여인의 몸으로 부처님께 젖을 먹여 기른 이러한 이가 없을 뿐더러, 이와 같이 부처님을 직접 길러 낸 이가 다시는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은 다 와서
모여야만 하오.”
그때 사방의 멀고 가까운 곳에 있던 모든 비구들이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으로 재계하고 몰려드니, 허공 중에서 마치 기러기 왕들이 날아드는 것 같았다. 마치 해가 구름에 들어가 비추어 허공에 두루한 것처럼 비구니들도 허공에 가득하여 그 모양이 또한 그러하였는데, 그때에 사천왕(四天王)은 파사파제 비구니의 침상의 네 발을 받들었고, 제석ㆍ범천들도 또한 5백 비구니의 침상을 부축하였다. 모든 침상에는 각각 당기[幢]와 번기[幡]를 세웠고, 하늘의 만다라꽃이 마치 꽃장막처럼 비구니들의 머리 위를 덮으니 마치 선굴(禪窟) 같았다. 당기와 번기를 세워 온 땅에 가득하며, 하늘의 비단 번기와 일산[盖]이 허공 중에 가득 차서 그 빛깔이 갖가지였으며, 하늘에서 꽃다발을 비내리기도 하고, 가루 향을 뿌리기도 하여 향 연기가 구름처럼 허공에 가득하였으며, 하늘의 모든 음악 소리가 천지간을 가득 채웠다.
부처님 뒤를 사리불(舍利弗)ㆍ목건련(目犍連)ㆍ난타(難陀)ㆍ라후라(羅睺羅)ㆍ아나율(阿那律)ㆍ아난(阿難) 등이 따랐으며, 범왕(梵王)들을 비롯한 여러 하늘들ㆍ아수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천룡ㆍ야차들이 또 부처님 뒤를 둘러쌌는데, 그때에 세존께선 파사파제 비구니의 침상 앞에 마치 금산(金山)이 가는 것 같았으며, 5백 비구니들의 침상이 차례차례 파사파제 비구니의 뒤를 따르니, 일체의 대지가 전에 없이 화려하게 장엄되어 마치 파사파제 비구니가 그 모든 장엄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구담미가 열반에 들어갈 때에는 불세존께서 법주(法主)이셨고, 사리불이나 목건련 같은 여러 성중들이 그 자리에 모였으나,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는 부처님 몸도 이미 없고, 사리불이나 목건련 등도 모두 죽고 없었으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장엄이 지금의 파사파제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 침상들을 넓은 곳에 안치한 다음 모든 향내 나는 섶들을 그 위에 쌓고서 5백 비구니들의 시신을
그 위에 얹고, 갖가지 우두전단향과 온갖 향으로 시신 위를 덮었으며, 다시 뭇 향유(香油)들을 그 위에 부었다.
그때에 존자 아난이 모든 비구니들의 시신이 이미 불에 타 버린 것을 보고는 슬피 울며 괴로워하면서 게를 설하였다.

이런 차례대로라면
여래께서도 오래지 않아
장차 열반에 드실 것이니

마치 불이 숲을 사를 때에
홀로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불이 가지와 잎을 태워 버리면
그 세력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과 같네.

세간은 모두 고통스럽고
연설하신 법은 삼계에 가득하지만
삼계에서 존귀한 이들이 다 돌아가신다면
누구 하나 법을 염(念)하는 이 없으리니

무량한 겁(劫)이 쌓이고 쌓여서야
이 수승한 법의 꿀을 얻어서
성문(聲聞)의 벌들이 모여 먹었는데
만약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그 누가 다시 법의 꿀을 준단 말인가.

법이 다 사라지고 오래지 않아
형상과 탑사(塔寺)마저 사라지리니
그림 속의 사람도 오히려 없거늘
하물며 법복 입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한 모든 이들은
슬피 울며 매우 괴로워하지만
욕심을 여읜 이들은 법을 관찰하여
화장을 해서 다 타고 나면
뼈를 거두어 탑사를 일으켜서
중생들에게 공양하게 하리라.

그때 어떤 사람이 의심하기를, ‘누가 탑사를 일으켜서 공양을 닦을까?’ 하였는데, 그때에 세존께서 그 의심을 끊어 주시려고 설하셨다.
“세 종류의 사람이 반드시 탑을 일으켜 공양할 것이니, 그 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은 부처님과 번뇌를 다 끊은 아라한과 전륜성왕이 바로 그들이라 할 것이다.”

68

다음으로 스님의 공덕을 기억하여 잘 관찰한다면 몸과 목숨을 버릴지라도 오히려 착한 마음을 일으킬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석가모니께서 보살이었을 때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가 되셨었는데, 그때에 왕과 부인이 코끼리에게 어떤 원한이 있었는지 곧 사람을 시켜 코끼리 있는 곳을 가리키면서 그 어금니를 뽑아 오게 하였다.
그때 명령을 받은 사람이 저 코끼리들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가서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를 보았는데, 마치 이라발(伊羅撥) 코끼리처럼 무리들을 여의고 암코끼리 한 마리와 함께 따로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우발라 연꽃이 활짝 핀
맑은 물이 가득한 큰 연못
이런 곳에서
큰 코끼리를 보았네.

희디흰 구진(拘陳)꽃 같고
그 형상 젖과 눈[雪] 같아서
모두 똑같은 흰색이니
마치 커다랗고 하얀 산이
다리가 있어 움직이는 것 같네.

저 큰 코끼리 왕이야말로
그 빛이 마치 달과 같은 데다가
여섯 개의 어금니가 입에서 나와
환하게 비추니 매우 장엄하여

마치 흰 연꽃을 모아 놓은 것 같고
저 코끼리 어금니를 가까이서 보면
마치 흰 연뿌리 같기도 하네.

그때 저 사냥꾼이 몸에 가사를 걸치고 겨드랑이에 활과 화살을 끼고서 나무를 병풍삼아 천천히 걸어 저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때 암코끼리가 저 사냥꾼이 겨드랑이에 활과 화살을 끼고 있는 것을 보고는 코끼리 왕에게 말하였다.
“저가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코끼리 왕이 물었다.
“그가 활과 화살을 끼고 있었다면 옷은 무슨 옷을 입고 있던가?”
암코끼리가 대답하였다.
“몸에 가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코끼리 왕이 말하였다.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더냐?”
곧 게를 설하였다.

이러한 표식의 모습은
다른 것들을 해치지 않을 뿐더러
안으로는 자비한 마음이 있어서
항상 일체 중생들을 구호하므로
저 가사 입은 사람에 대하여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보는 이는 안온하게 되어
고요히 수승하고 미묘함을 얻나니
마치 저 맑고 시원한 달은
끝내 뜨겁게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네.

그때 암코끼리는 이 게를 듣고 나서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 사냥꾼이 빽빽한 숲 속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곧 독화살로 코끼리 왕을 쏘아 맞추니, 저 암코끼리가 코끼리 왕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가사 입은 사람은 반드시 자비심이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코끼리 왕이 곧 게를 설하였다.

이 옷은 해탈의 옷이지만
번뇌에 가득한 그 마음이 작용하여
멀리 자비를 여읜 것이지

절대 가사 옷의 허물은 아니라네.

구리에 진금(眞金)을 바른 것처럼
녹여 보면 비로소 잡것임을 아느니
모든 범부들을 속이고 미혹시켜도
어리석은 자나 진금이라고 할 뿐
지혜로운 이는 잘 분별하여
금을 칠한 구리인 줄 금방 안다네.

나쁜 마음의 활과 화살 때문에
이제 나를 해치기는 했지만
가사는 훌륭한 열반의 옷이니
이 나쁜 마음의 중생을
만약 잘 관찰한다면
가사는 언제나 훌륭한 옷이리라.

그때 암코끼리가 매우 화가 나고 분이 나서 코끼리 왕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말은 대단히 훌륭하지만 나로서는 참을 수가 없으므로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고 저 사람을 잡아다 팔ㆍ다리를 찢어 놓고 싶습니다.”
보살인 코끼리 왕이 암코끼리에게 말하였다.
“번뇌를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그러한 것이니, 그대는 성내고 미워해서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저 사냥꾼에 대해서도 분노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오.”
곧 게를 설하였다.

마치 마음에 귀신 들린 사람이
어리석고 미쳐서 의사를 모욕하여도
의사로선 귀신을 치료할 뿐
병든 사람을 꾸짖지 않는 것과 같으니

번뇌도 또한 귀신과 같아서
무명의 어둠에 덮이기 때문에
탐ㆍ진ㆍ치의 마음을 내는 것이므로
다만 그 번뇌를 제거할 뿐이지
어찌 그 사람을 책망하리요.

만약 내가 보리를 성취하여
삼계에 명칭을 두루하려면
선정을 염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첨과 거짓의 그 모든 번뇌를
끝까지 다 소멸해야 하리니

지혜의 날카롭고 뾰족한 송곳으로
저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리되
반드시 남김없이 말려 버리고
반드시 남김없이 소멸시켜서
나는 장래에 그 고뇌를 다 없애리라.

보살인 코끼리 왕이 이 게를 설할 때에 암코끼리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뭇 코끼리들이 다 함께 모여들므로, 보살인 코끼리 왕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코끼리들이 혹시 저 사냥꾼을 다치게 하거나 해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사냥꾼이 있는 곳을 향하여 그에게 말하였다.
“나의 배 밑으로 들어오너라. 내 배가 그대를 저 코끼리들이 해치려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
곧 모든 코끼리들을 각각 다 돌려보내고서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필요한 것이라면
이제 마음대로 다 가져가시게.”
그때 저 사냥꾼이 이 말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나처럼 자비심이 없는 자는 저 코끼리만도 못하구나.’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리니, 코끼리 왕이 물었다.
“그대는 왜 우는가?”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우는 것이오.”
코끼리 왕이 말하였다.
“나는 코끼리들이 그대를 해칠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그대를 불러 배 밑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지, 내 몸뚱이로 그대를 누르려고 한 것은 아니었네.”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아니오, 몸으로 나를 눌러서가 아니오.”
코끼리 왕이 다시 말하였다.
“아니면 이 암코끼리가 나쁜 말을 내뱉어 그대에게 충격을 줘서 울게 한 것인가?”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나쁜 말로 나를 괴롭힌 것도 없소. 다만 지금 그대의 대자대비한 도덕 때문이오. 내가 나쁜 마음으로 독화살을 쏘아 그대를 해쳤거늘, 그대는 오히려 자비스런 마음으로 다른 코끼리들이 나를 해칠까 염려하여 나를 배 밑으로 불러 덮어 주었으니, 내가 이 일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두려워서 울었을 뿐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나는 지금 독 묻은 화살로
코끼리 왕의 몸을 상해하였지만
그대는 자비한 도덕으로써
나의 마음을 상해하였다네.

마음이 다친 것은 나을 수 있지만
이제 그대의 도덕을 상해하였으니
어리석은 마음의 종기[瘡]는 회복되기 어렵다네.

큰 바다와도 같은 그대의 덕을
뉘라서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리요.
그대의 목숨을 상해한 자에게
안위하며 자비로 덮어 보호해 주네.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하자면
나의 형체는 비록 사람일지라도
도무지 인자한 덕이 없으므로

텅 빈 시체 뼈와 같아서
저 기르는 짐승보다 더하고
모양과 모습은 사람 같지만
악업을 저지르는 것은 축생보다 더하며

그대는 비록 짐승의 몸을 받았어도
도덕(道德) 있는 사람 중에서도 으뜸이라
형상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도덕으로는 그대가 바로 사람일세.

보살인 코끼리 왕이 사냥꾼에게 물었다.
“그대는 빨리 나에게 대답하시게. 무슨 일로 와서 나를 쏘았는가?”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왕의 부림을 받아 그대 몸의 한 부분을 조금 취하려고 했던 것이지 나의 본마음으로 와서
그대를 해친 것은 아니오.”
코끼리 왕이 대답하였다.
“만약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대는 지금 빨리 가져가시오.”
그때 코끼리 왕이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손을 뻗어 빨리 받으시오.
보살의 마음을 모두 일으키면
일체 아까울 것이 없다오.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에 따라
모두 그대에게 줄 것이니
어금니가 필요하면 어금니를
그대 마음대로 뽑아 가시게.

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모습을 받은 것이며
일체를 나는 다 버렸으므로
필요한 것을 마음대로 가져가시라.

내가 나만을 위하는 자였다면
빨리 열반으로 갔겠지만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3유(有) 중에 몸을 받았고
일체종지가 되기 위하여
자비로 구제해서 인(因)으로 삼네.

사냥꾼이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국왕의 심부름으로 그대의 어금니를 가져가려 왔소.”
코끼리 왕이 대답하였다.
“조금도 의심하거나 어려워하지 말고 그대의 뜻대로 가져가시게.”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나는 사실 그대의 어금니를 뽑아 갈 수가 없소.”
곧 게를 설하였다.

인자한 마음이 가득한 그대가
나는 저 인자하신 아버지처럼 두렵거늘
만약 그대의 어금니를 뽑는다면
내 손이 반드시 떨어질 것이네.

그때 코끼리 왕이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만약 그렇게 두렵다면 내가 그대에게 뽑아 주리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코로 어금니를 묶었으나 어금니의 뿌리가 매우 깊었으므로 뽑아 내는 데 오래 걸렸고, 때에 저 코끼리 왕은 피를 많이 흘렸다.
곧 게를 설하였다.

어금니 뽑은 곳에서 피가 나와
넓적다리 아래로 흘러내리니
이 코끼리 왕에게는 지극한 복덕이고 이익이네.

마치 흰 우발라꽃과 구물두꽃들이
쌓이고 쌓여 큰 덩어리가 된 것처럼
코끼리 왕의 몸도 희기가 저와 같으며
또 저 큰 돌산[石山] 위에
흰 눈이 덮여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 높은 산꼭대기에서
붉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구나.

그때 코끼리 왕은 그 고통과 떨림을 오히려 스스로 위안하였다.
그러자 어떤
한 천신(天神)이 곧 게를 설하였다.

마음이 견고하게 안주하는 이는
어리석게 고민하지 않고
고뇌에 빠진 중생들을
어떻게 구제할까 관찰하나니

이 세계에는 모두 죽음이 있으므로
그대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항상 견고한 뜻을 가질 뿐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아야 하네.

하늘과 사람, 아수라와
건달바나 야차 따위가
온 허공 중에 가득하여
모두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며

천신도 이제 말하기를
“옛날부터 극히 희유한 일이란
어려운 고행을 행하는 것인데
어금니를 뽑는 것은 큰 고통이네.

오늘은 비록 고통을 받지만
속마음은 보리를 향함인즉
가장 수승한 과보를 구하려면
끝내 물러설 뜻이 없어야 하네.”

다시 어떤 천신이 그 천신에게 말하였다.
“이러한 보살은 끝내 물러섬이 없을 것이오.”
다시 게를 설하였다.

알겠노라, 그대가 어금니 뽑는 고통은
지옥의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서임을.

그때 저 코끼리 왕이 이미 어금니를 뽑았는데도 잠잠히 서 있기만 하니, 그때에 사냥꾼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금니를 뽑아 땅에 놓고도 장차 후회하는 일은 없을까? 나에게 보시하지 않는구나.’
코끼리 왕이 그의 생각을 알고는 위안하여 함께 말하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마치 구물두꽃 같으며
흰 연뿌리 같기도 한 어금니를
여섯 개 모두 다 그대에게 보시하겠으니
어금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그대를 안락하게 하려는 것이네.

내 마음을 꾸짖기를 조금 기다리면
점점 고통이 멈출 것이니
나로 하여금 그대에 대하여
공경하고 존중하며 믿는 마음을 얻게 하겠네.

설령 그대가 생각하기를
‘나는 지독히 나쁜 사람으로
살생ㆍ도둑질ㆍ음행ㆍ사기 따위의
온갖 착하지 않은 일들을 저질렀다’ 하겠지만

내 대답을 들어 보시오.
그대가 저지른 뭇 나쁜 일들은
마음을 해치는 활과 화살 때문이니
나는 모두 잊어버려 기억나지 않고
오직 경건한 가사 옷만 기억하여
보고서 마음으로 공경하고 믿을 뿐이네.

보시하는 이나 받는 이나
청정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 시주로서
청정함을 모두 갖추었으니

내가 마음을 정리할 때를 기다려

과보가 더욱 광대하도록
끝까지 그대에게 보시하리라.

그때 코끼리 왕이 사냥꾼에게 말하였다.
“이 가사 옷이 바로 욕심을 여읜 표식이므로 내가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코로 어금니를 받들어 사냥꾼에게 주는 것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이제 진실한 말을 하리니
독 묻은 화살로 내 몸을 쏘았지만
나는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으로
그대에게 보복하려 하지 않네.

다만 이 진실한 말의 인연으로
하루 빨리 보리를 증득하여
이러한 고뇌에 허덕이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여 해탈케 하겠네.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 어금니를 사냥꾼에게 보시하였다.
무슨 인연으로 이 비유를 인용하였는가 하면, 과거세에 한량없는 백천의 몸 가운데서 항상 이와 같이 베풀기 어려운 보시를 짓는 것은 본래의 서원(誓願)을 세우되 서원의 과(果)를 이루려는 것이고, 모든 고뇌 받는 중생들로 하여금 그 근본의 도를 얻게 하려는 것이며, 나아가 사람들에게는 각자 청정한 마음을 지켜 믿어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 비유를 인용한 것이다.

69

다음으로 큰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설산(雪山)에 두 마리의 사슴 왕이 있었으니, 각각 5백 마리의 뭇 사슴들을 거느리고 산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살고 있었다.
그때 바라날성(波羅捺城)4) 안에 범마달(梵摩達)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저 국왕이 설산 가운데 이르러 사람을 보내 우리를 쳐서 저 설산을 포위하니, 여러 사슴들이 다 그 우리 안에 갇히게 되었으나 의지하여 벗어날 곳이 없었으므로, 한 마리의 사슴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 몸의 얼룩얼룩한 무늬가 마치 여러 가지 보석들을 박아 놓은 것 같은 사슴 왕이 ‘무슨 방편을 세워 모든 사슴들을 이 고난에서 빠져 나가도록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였다.
‘다시 다른 계획이 없으니 바로 왕에게 나아갈 뿐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지름길로 해서 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때 왕이 보고 나서
그 좌우의 신하들에게 명령하였다.
“삼가하여 다치게 하지 말고 자유로이 오게 하라.”
저 사슴 왕이 이미 왕이 있는 곳에 이르러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유희(遊戱)로 뭇 사슴들을 죽여서 오락거리로 삼는 이런 일은 하지 마소서. 바라건대 왕께서는 불쌍히 여기어서 사슴들을 놓아 주시어 다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왕이 사슴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사슴 고기가 먹고 싶다.”
사슴 왕이 대답하였다.
“왕께서 만약 고기가 필요하시다면 제가 날마다 사슴 한 마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왕께서 만약 한꺼번에 죽이신다면 고기는 반드시 냄새나고 썩어서 오래 두지 못할 것이지만, 매일 한 마리씩 취한다면 사슴은 날로 늘어나고 왕께서는 고기가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곧 허락하였다.
그때 보살인 사슴 왕이 저 제바달다(提婆達多) 사슴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그대와 함께 매일 사슴 한 마리씩을 내어 저 왕의 음식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네. 오늘은 내가 한 마리를 보낼 것이니, 그대는 내일 다시 한 마리를 보내게.”
이렇게 함께 약속하고서 번갈아 사슴을 보내어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 뒤 어느 한때에 제바달다 사슴 왕이 한 암사슴을 내놓으니, 이 암사슴은 새끼를 가져 해산할 때가 되었으므로 제바달다에게 목숨을 청해 애걸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 몸이 이제 죽는 것은 감히 사양하지 않겠으니, 제가 해산할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면 주방에 제공되더라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 사슴 왕은 그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네가 지금 가야 할 뿐이니, 누가 너를 대신하겠느냐?”
그리고는 곧 화를 내고 미워하므로, 저 암사슴은 이미 미움과 질책을 받았기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들의 사슴 왕은 매우 자비하다고 하니, 내가 그에게 가서 청하여 아기의 목숨을 구해 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보살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앞 무릎을 땅에 꿇고 보살인 사슴 왕을 향하여 위의 사실을 갖추어 그를 향해 게를 설하였다.

제가 이제 구호받을 데 없으니
바라건대 저를 구제하여 주소서.
여러 중생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 저만 홀로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바라건대 자비심을 드리우시어
저의 고난을 구제하여 주소서.

저는 다시 믿을 곳이 없으므로
당신께 와서 귀의할 뿐입니다.

당신은 항상 이익되는 것을 좋아하여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는 만큼
제가 지금 만약 죽음으로 나아간다면
두 생명 모두 온전하지 못하리니
이제 바라건대 저의 태아를 구호하사
하나라도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게 하소서.

보살인 사슴 왕이 이 게를 듣고 나서 저 사슴에게 물었다.
“그대의 왕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말했는가?”
암사슴이 대답하였다.
“제가 다 말했지만 들어 주지 않으시고, 다만 화를 내고 꾸짖으면서 ‘누가 너를 대신하겠느냐?’고만 하였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그이는 화를 내고 꾸짖을 뿐
불쌍히 여겨 구제해 줄 마음이 없으므로
명령하기를 ‘빨리 그리로 가라.
누가 너를 대신할 것이냐’라고만 하였습니다.

제가 이제 당신께 귀의함은
자비로써 몸을 삼은 이시라
그러므로 저로 하여금
한 목숨은 면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보살인 사슴 왕이 저 사슴에게 말하였다.
“너는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너의 뜻대로 가거라. 내 자신이 생각해 보리라.”
그때 암사슴이 이 말을 듣고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면서 본래의 무리들에게로 돌아갔다.
보살인 사슴 왕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에 다른 사슴을 보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니, ≺나는 아직 갈 때가 아닌데 어째서 나를 보내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마음이 곧 활짝 열리어 게를 설하였다.

내가 이제 몸소
저 왕의 주방으로 갈 것이니
여러 중생들을 위해
서원을 세워 반드시 구제하리라.

내가 만약 나의 몸으로
모기나 개미의 목숨과 맞바꾼다면
이러한 일을 하는 것도
오히려 큰 이익이 있으리로다.

몸을 기르는 이유는
바로 구제하기 위해서이니
한 생명을 대신할 수만 있어도
풀이나 지푸라기처럼 몸을 버리리라.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 거느리고 있던 모든 사슴들을 모이게 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부족한 것이 많았으니 나의 참회를 들어다오. 내가 너희들을 버리고 다른 생명을 대신하기 위해 왕의 주방으로 가려고 한다.”
그때 사슴들이 이 말을 듣고는 다 제각기 슬퍼하고 연모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가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대신 가겠습니다.”
사슴 왕이 대답하였다.
“내가 서원을 세웠으므로 내 자신이 가야만 한다. 만약 너희들을 보낸다면 반드시 고통스러워 괴로운 마음을 내겠지만, 지금 나는 기뻐하여 즐겁지 않은 것이 없노라.”
곧 게를 설하였다.

욕심을 여의지 않고서 몸을 버린다면
반드시 태어나는 곳이 있겠지만
내가 이제 저를 구제하기 위해
몸을 버림은 반드시 더욱 수승하리라.

나는 이제 이 몸뚱이가
반드시 무너짐이 있을 줄 알기에
지금 가엾이 여겨 구호해 주려고
곧 이 법으로 몸을 버려서
법의 인(因)이 됨을 얻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때 여러 사슴들이 갖가지로 간언(諫言)했으나, 마침내 지쳐서 저 사슴 왕의 마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으므로, 저 사슴 왕이 왕의 주방으로 나아가니, 모든 사슴들과 아울러 제바달다의 사슴 떼들이 다 사슴 왕을 따라 바라날로 향하였다.
사슴 왕은 이미 숲을 나와 뭇 사슴의 무리들과 작별하고 그들이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게 한 다음 자기 한 몸만 왕의 주방으로 나아갔다.
그때에 저 주방을 맡은 관리[廚典]가 과거에 사슴 왕을 본 적이 있었으므로 곧바로 알아보고는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사슴 왕이라고 칭하는 자가 스스로 주방으로 왔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몸소 주방으로 나와서 사슴 왕이 있는 곳을 향해 말하였다.
“그대의 사슴이 다된 것이냐? 어째서 스스로 왔느냐?”
사슴 왕이 대답하였다.
“왕께서 옹호해 주셔서 사슴들이 배로 늘어났습니다만, 제가 오게 된 이유는 새끼를 밴 한 암사슴을 위해 그의 목숨을 대신하려고 제 자신이 왕의 주방으로 온 것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구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그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나니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도
만약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나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만일 생사의 수레바퀴 가운데서
이 냄새나고 더러운 몸뚱이를 버린다면
스스로 헛되이 무너지는 것이어서
털끝만큼의 선(善)도 되지 않지만

이 몸이 반드시 무너지고 말진댄
자기를 버려서 다른 이를 보전함은
나로서도 큰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그때 범마달왕이 이 말을 듣고는 몸의 털이 다 곤두 섰고,.
곧 게를 설하였다.

나는 사람 형용을 한 사슴이고
그대는 사슴 형용을 한 사람이니
공덕을 갖춘 이를 사람이라 하고
잔악한 것이 바로 축생이네.

아, 지혜로운 이여
아, 용맹스런 이여
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이로다.

그대가 이러한 뜻과 형용을 지어서
곧 나에게 가르쳐 보이니
그대는 이제 되돌아가서
모든 무리의 사슴들에게
겁내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내지 말게 하라.

나도 이제 서원을 세워서
일체 모든 사슴의 고기를
영원히 다시는 먹지 않겠노라.

그때 사슴 왕이 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 만약 가엾이 여기신다면 마땅히 스스로 저 사슴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어 몸소 위안하시고 두려움이 없음을 베풀어 주십시오.”
왕이 이 말을 듣고, 몸소 숲으로 나아가 사슴 떼들이 있는 곳에 이르러 두려움이 없음을 베풀어 주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내 나라의 경계 안에 있는
일체 모든 무리의 사슴들을
내가 굳건히 옹호해 줄 것이니
부디 공포심을 내지 말라.

나 이제 이 숲의 나무와
모든 샘물과 연못 등을
다 사슴들에게 보시하고서
다시는 살해함을 허락하지 않겠으니
그러므로 이 숲의 이름을
사슴에게 보시한 숲[施鹿林]이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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