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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60 불교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2권

by Kay/케이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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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2

 

대장엄론경 제12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64

다음으로 부처님 법은 듣기 어려우므로 여래께서도 옛날에 보살이었을 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법을 구하셨으니, 그러므로 반드시 부지런한 마음으로 법을 들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비둘기와 관련된 비유인데, 어떤 삿된 소견을 지닌 외도의 스승이 석제환인(釋提桓因)에게 뒤바뀐 법을 설하였으니, 저 스승은 사실 참된 지혜도 없으면서 스스로를 일체지(一切智)라고 일컬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1)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때 제석이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이 즐겁지 않고 매우 근심스러웠으며, 모든 세간에서 고행하는 자들이 다 그곳에 가서 일체지를 구하는 것을 보고는 『제석문경(帝釋問經)』에서 설한 것과 같은 게를 설하였다.

내가 이제 마음껏 구하였으나
만족함을 얻을 수 없었으니
밤낮 의혹을 갖게 될 뿐
옳고 그름을 알 수 없네.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항상 생각하고 널리 구했으나
위대한 진제(眞濟)께서
지금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없네.

비수갈마(毘首羯磨)2)가 제석에게 아뢰었다.
“천상(天上)에 계시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세간에서는 구시국(拘尸國)의 왕 시비(尸毘)가 부지런히 닦아 고행하면서 삼먁삼보리를 구하고 있으며, 지혜로운 자들이 보고는 ‘이 왕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라고 하니, 가서 친근히 할 만할 것입니다.”
제석이 말하였다.
“그이가 하는 일이 과연 흔들리지 않을까?”
곧 게를 설하였다.

마치 물고기가 새끼 친 것이 많아도
그 중에 살아남는 것은 적고
또 암라과(菴羅果)는
날 것과 익은 것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발심하는 자는 매우 많아도

성취하는 자는 지극히 적네.

만약에 어려운 고행을 닦아서
물러나지 않는 자라면
“결정코 얻겠다”고 말할 수 있으니
보살인지 알고자 한다면
잡은 마음이 반드시 견고한지 보아라.

비수갈마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가서 시험해 보고, 만약 진실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땅히 공양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때 제석은 그가 과연 보살인가를 관찰하기 위해 곧 자기의 모습을 매[鷹]로 변화 시키고서 비수갈마에게 말하였다.
“너는 비둘기로 변하거라.”
그러자 비수갈마가 곧 몸은 푸른 하늘 같고 눈은 붉은 구슬 같은 비둘기로 변하여 제석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때 제석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비수갈마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어떤 방법으로 보살에게 대들어야 할까. 저 시비왕을 괴롭히기 위해서는 비록 우리 자신이 괴로움을 받더라도 마치 좋은 보석을 다루듯이 자꾸자꾸 시험해 보아야 진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니, 보석을 시험하는 법이란 끊거나, 갈거나, 구부리거나, 분질러 보기도 하고, 불에 녹여 보기도 하고, 방망이로 때려 보기도 해야 비로소 진짜인지 알 수 있다.”
그때 변화한 비둘기가 매에게 쫓기어 겁내는 표정을 나타내면서 대중들 앞에서 시비왕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갔는데, 그 푸른빛은 마치 연꽃잎과 같았고, 붉은빛은 검은 구름 속의 무지개 같았으며, 흰 부리가 화려하게 보였으니, 모든 사람들이 다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곧 게를 설하였다.

진실로 자비한 마음이 있으신 줄을
중생들이 다 몸으로 알아 믿으니
마치 해가 저물어 어두워질 때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구나.

변화한 매가 말하기를
“바라건대 왕이시여, 내게 먹이를 주소서” 하네.

그때 대왕은 이 게를 들음과 동시에 저 비둘기가 매우 겁내는 것을 보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비둘기가 매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에게로 날아와 의지하려 하는구나.
비록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지만
겁에 질려 눈물이 눈에 가득하니
그러므로 이제 구호해 주어야 마땅하리라.

그리고 나서 대왕은 비둘기를 위로하기 위해 다시 게를 설하였다.


비둘기야, 놀래거나 겁내지 말아라.
내 몸이 존재하는 한
끝내 너를 죽이지 않고
반드시 네 목숨을 구호해 주리라.

어찌 너만을 구호할 뿐이겠느냐.
아울러 모든 중생들과
일체를 구호하기 위해서
힘쓰는 이가 되었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에게 품삯을 받되
여섯으로 나누어 하나를 내가 받으니
나는 이제 모든 이들에게 고용된 사람이라네.

반드시 잘 수호하여
괴롭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으리.

그때 저 변화한 매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바라건대 이 비둘기를 놓아 주시오. 이 비둘기가 바로 저의 밥입니다.”
왕이 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자비를 닦았으므로 있는 힘껏 중생들을 구호해야 하겠노라.”
매가 왕에게 물었다.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그러자 대왕이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처음 보리심을 내었을 때부터
곧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구호하여
누구에게나 다 자비심을 내었노라.

매가 다시 게로써 화답하였다.

이 말이 만약 진실이라면
빨리 내 비둘기를 돌려주시오.
만약에 내가 굶주려 죽는다면
그대는 곧 자비심을 버린 것입니다.

왕이 이 게를 듣고는 곧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처신하기가 매우 어렵구나. 내가 어떻게 해야 이치에 맞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매에게 응답하였다.
“혹시 다른 고기로 너의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
매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오직 신선한 고기와 피만이 저의 목숨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때 대왕이 생각하기를, ‘어떤 방법을 써야만 할까?’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나는 늘 일체 중생들을
구호할 생각만 닦아 왔거늘
이같이 뜨거운 살과 피는
살생하지 않고는 끝내 얻지 못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직 자기 몸의 살과 피라야 그를 구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므로 다시 게를 설하였다.


내 몸의 살을 베어서
저 매에게 주어야 할 것이니
나아가 내 몸을 다 버리더라도
겁에 질린 목숨만은 구호해 주어야 하리라.

그때 대왕이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바로 매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살을 먹으면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매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바라건대 왕께서는 몸의 살을 저울에 달아서 그 무게가 비둘기와 같게 하여 저에게 주셔야만 제가 먹겠습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는 환희심을 내어서 곧 시인(侍人)들에게 말하였다.
“빨리 저울을 가지고 와서 나의 살을 베어 이 비둘기의 몸과 바꾸어라. 지금이야말로 나에게는 매우 길한 날이구나. 어째서 좋은 날인가 하면…….”
곧 게를 설하였다.

늙고 병든 몸이라는 곳은
위태롭고 약하고 더러운 것인 만큼
이제 마땅히 법을 위하여
이 천하고 더러운 살을 버려야 하겠네.

그때 왕의 시인들이 명을 받들어 저울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대왕은 저울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도 도무지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고, 곧 다리를 내놓으니, 그 윤택한 흰 다리가 마치 다라(多羅)나무 잎 같았다. 왕이 시인 한 사람을 불러 놓고 곧 게를 설하였다.

네가 이제 잘 드는 칼로
내 다리 살을 베어 내되
다만 나의 말에 순종할 뿐
조금도 의심하거나 겁내지 말라.

어려운 고행을 겪지 않고는
일체지를 얻을 수 없나니
이 일체종지라는 것은
삼계 중에서 가장 수승하기 때문이라네.

보리는 가벼운 인연으로는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나 이제
지극히 견고한 행을 닦아야만 하리라.

그때 시인은 슬픔의 눈물이 눈에 가득한 채 합장하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용서해 주소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항상 대왕님께 공급(供給)을 받던 시인인데 어찌 차마 칼로 대왕의 다리 살을 베어 낼 수 있겠습니까?”
곧 게를 설하였다.

대왕님이야말로 구제자이시니
제가 설령 왕의 살을 베어 낸다 해도
저의 몸과 칼이 먼저

곧 땅에 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자 대왕이 손수 칼을 잡고서 다리 살을 베려고 하니, 재상과 대신들이 울부짖으면서 간쟁(諫諍)했으나 멈추게 할 수 없었고, 성안의 모든 사람들도 각기 그만두길 청하였으나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다리 살을 베어 내기 시작하니, 가까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고개를 돌려 차마 보지 못하였고, 바라문들도 각기 그들의 눈을 가리고 차마 보지 못하였으며, 궁중의 채녀(婇女)들은 소리 높여 슬피 울었다. 천룡ㆍ야차ㆍ건달바와 아수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은 허공에서 각각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일은 진실로 전에 없던 것이다.”
그때 대왕은 왕궁에서 자라난 연약한 몸으로 일찍이 겪어 본 적이 없는 고통을 만났으므로 온몸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목숨이 끊어질 듯하였으나,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아, 마음을 굳게 가진다면
이 따위 조그만 고통쯤이야
무에 그리 견디지 못하랴.

너는 모든 세간을 관찰할지니
백천 가지 괴로움에 시달려도
돌아가 기대거나 구호받을 데 없고
어느 누가 덮어 길러 줄 이 없는 자들
모두 다 자유를 얻지 못하였도다.

네가 마음이 있는 자라면
마땅히 그들을 구제해야 하거늘
어째서 스스로를 책망하진 않고
엉뚱하게 고뇌의 생각만을 내는 것이냐.

석제환인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대왕이 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니, 그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곧 시험해 보리라.’
그리고는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지금 고통이 너무 심해서 참기 어렵다면 어째서 그만두지 않고 그렇게 고통을 받으십니까? 지금이라도 그 고통을 받지 않으시려면 비둘기를 놓아 가게 하소서.”
보살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끝까지 이 고통 때문에 내가 맹세한 마음을 어기지는 않으리니, 설령 이보다 더한 고통을 받더라도 끝내 물러날 생각은 없다네. 지금의 이 작은 고통쯤이야 지옥에 비한다면 비교가 되지 않으리니, 저 고뇌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생각하여 몇 배로 자비심을 내어야 할 것이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지금 몸을 베는 고통은
마음가짐이 광대하기 때문이니
지혜가 적고 뜻이 약한 자는
지옥의 고통을 받기 마련이네.

그 고통이야말로 길고도 멀며 깊고도 넓어서
끝이 없고 다할 때가 없거늘
어찌 견디어 참아 낼 수 있으랴.

나 이런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에
이 때문에 빨리 보리를 구하여
이와 같은 모든 고통을 구제하여
두루 다 해탈케 하리라.

그때 제석천이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이 하는 일이 아직은 큰 고통이 아니기 때문일까? 다시 이 고통보다 더 한 것이 있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내가 지금 시험해 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묵묵히 말하지 않았다.
저 대왕이 베어 낸 살을 저울 한쪽에 얹고 또 비둘기 몸을 다른 한쪽에 얹어 비둘기 몸이 더 무거운 것을 보고는 다시 두 다리와 몸뚱이의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려 놓았으나 역시 비둘기 몸보다 가벼우므로, 매우 이상하게 여겨 “무엇 때문에 이럴까?” 하고서 곧 온몸을 저울 위에 얹으려고 하였다.
때마침 매가 이것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왜 이제 와서 후회하려 하십니까?”
대왕이 대답하였다.
“내가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온몸을 다 저울 위에 얹어서 이 비둘기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네.”
그리고 나서 대왕이 저울 위로 올라가려고 하였는데,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하였다. 좌우에 있던 친근한 이들은 다 차마 볼 수 없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까지 몰아내어 그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게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마음대로 다 보게 하여라.”
그때 저 왕이 몸의 살을 다 베어 내어 뼈마디만 앙상하게 드러나자 마치 그림을 비 속에 두면 번지고 지워져서 알아보기 어려운 것과 같았다.
대왕이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제 몸을 버리는 것은 재보나 욕락(欲樂)을 위해서가 아니고, 또 처자를 위해서나 종친(宗親)과 권속을 위해서가 아니며, 일체종지를 구하여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니라.”
곧 게를 설하였다.

하늘ㆍ사람ㆍ아수라와
건달바ㆍ야차ㆍ용ㆍ귀신 등

일체의 모든 중생 부류들로서
나의 이 몸을 보는 자는
모두 다 물러나지 않게 하리라.

지혜를 탐하기 때문에
아파도 이 몸을 베어 내는 것이므로
일체종지를 구하려는 자는
자비심을 굳게 해야 하리니
만약 자비심이 견실하지 못하다면
이는 곧 보리를 버리는 것이리라.

그때 대왕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곧바로 저울에 오르니, 때마침 온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는데, 마치 풀잎이 물결을 따라 마구 움직이듯 하였고, 여러 하늘들은 공중에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진실로 정진하여 마음이 견고한 이라고 부를 만 하도다.”
곧 게를 설하였다.

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몸의 살을 스스로 베는 것은
순수한 자비의 그 마음을
굳게 지녀 움직이지 않음이니
일체의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다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네.

그제서야 변화한 매도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저이의 마음이 이같이 견실하므로 오래지 않아 성불하리니, 일체 중생들은 장차 의지할 곳이 있으리라.”
그리고는 제석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대왕 앞에 서서 비수갈마에게 말하였다.
“도로 너의 몸으로 돌아오너라.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함께 공양을 베풀어야 하리라. 이 보살이 지닌 뜻의 힘이야말로 견고하여 마치 수미산이 큰 바다에 처해 있어도 끝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마음도 또한 그와 같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이에게
우리들은 공양해야 할 뿐더러
이제 다 같이 찬탄하는 마음으로
그를 더욱 증장시켜야 하며

어떤 장애와 고난이 있더라도
우리들이 함께 막아 내서
그와 더불어 한 패[伴黨]가 되어
오래도록 견고하게 수행해야 하리니

대비의 땅에 편히 머물러서
일체종지의 나무에
싹을 처음으로 나타내고자 한다면
지혜로운 이를 옹호해야만 하네.

비수갈마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이제 대왕이 일체 중생에 대하여 자비심을 체득했다면 그의 몸을 본래대로 회복시켜 일체 중생들의 지혜로운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소서.”
그때 제석이 저 왕에게 물었다.
“비둘기 한 마리를 위해 몸을 버린다는 것이
괴롭고 근심스럽지 않습니까?”
대왕이 게를 읊어 대답하였다.

이 몸이 돌아가 버려지게 되면
마치 저 나무나 돌 같기도 하고
날짐승이나 길짐승에게 뜯어먹히거나
불에 태워지고 땅 속에서 썩을 것이니

아무런 이익도 없는 이 몸으로
큰 이익을 구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매우 기뻐해야지
끝내 근심하거나 후회하는 마음 없도다.

그 누구나 지혜 있는 이라면
이 위태롭고도 약한 몸을
견고한 법으로 바꾸게 되는데
어찌 즐겁고 기뻐하지 않으랴.

제석이 대왕에게 말하였다.
“이 말은 믿기 어려울 뿐더러, 또한 이러한 일은 실로 전에 없던 일이거늘 그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 대답하였다.
“내 마음을 내가 알고, 또 세간에 큰 선인(仙人)이 있어서 관찰할 수 있다면 반드시 내 마음을 알 것이니, 조금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제석이 말하였다.
“그대는 진실한 말을 하시오.”
그때 대왕이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
“만약에 내가 지금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몸을 도로 본래대로 회복시켜 주소서.”
그리고는 몸의 살을 베어 낸 곳을 보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내 스스로 몸의 살을 벨 때엔
괴로움과 즐거움이 마음에 있을 리 없고
성내거나 근심할 리도 없으며
기뻐하지 않는 마음도 있지 않았으니

이 말이 만약 진실이라면
도로 이 몸을 회복시켜서
빨리 보리의 도를 이루어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게 하소서.

이 게를 설하고 나니, 대왕의 베어 낸 몸의 살이 도로 회복되었다. 곧 게를 다시 설하였다.

모든 산과 온 땅이
일체 다 진동하고
나무들과 큰 바다도
쉴 새 없이 울렁거려
마치 두려움에 떠는 자가
스스로 편안치 못한 것 같으며

모든 하늘이 음악을 연주하고
공중에서 향과 꽃을 비내리니
종소리ㆍ북소리 등 뭇 소리가
한꺼번에 다 터져 나오며

하늘과 사람의 음악들이
일체 모두 합창하여
중생들이 다 요동하는가 하면
큰 바다도 또한 소리를 내며

하늘이 고운 가루향을 비내리어
모든 길에 다 가득하게 하고
꽃이 허공에서 내려오는데
더디고 빠름이 같지 않으며

또 허공에서 천녀(天女)들이
꽃을 뿌리어 땅에 가득하고
갖가지 고운 비단에

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옷이
하늘에서 비 오듯이 떨어지니

그 하늘 옷이 올올이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내며
모든 사람들의 집 안에
보배 그릇이 저절로 나타나

그 집들을 다 장엄하고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니
마치 천상의 기악과 같으며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어
사방이 다 청명하고
스치는 바람은 향기를 풍기는데
강물은 고요해 소리조차 없구나.

야차들도 간절히 법을 우러러서
축하하는 마음을 배로 늘려
“오래지 않아 성불하리라” 하고
노래하고 찬탄하면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모든 수승한 건달바들도
노래와 음악 등 아름다운 음성과
가볍고 무거운 갖가지 소리로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하니

“오래지 않아 성불하리니
서원(誓願)의 바다를 건너서
빨리 좋은 곳에 도달하시어
과보와 바람을 이미 성취하였으면
우리들도 해탈시킬 것을 기억하소서” 하네.

그때 저 제석은 비수갈마와 함께 보살에게 공양하고서 천궁으로 돌아갔다.

65

다음으로 선지식을 가까이해야만 하니,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자는 번뇌가 치성해도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소비라왕(素毘羅王)의 태자 사라나(娑羅那)가 부왕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하려 하지 않고 아우에게 보위를 넘겨 준 다음, 가전연(迦旃延)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출가하기를 구하였다. 이미 출가해서는 존자 가전연을 따라 파수제왕(巴樹提王)의 나라로 가서 그곳 숲에 머물러 있었는데, 파수제왕이 여러 궁인(宮人)들을 데리고 그 숲으로 와서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
저 존자 사라나가 걸식을 마치고 돌아와 나무 아래 고요히 앉아 있으니, 천성이 꽃이나 과일을 좋아하는 궁인들이 그것을 찾아 온 숲 속을 다니다가 저 사라나 비구가 한창 때에 출가하여 극히 단정하므로, 궁인들이 저 비구가 젊은 나이에 용모가 수려함을 보고는 모두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불법 중에도
이런 사람이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이가 있구나.”
그리고는 곧 그 주위에 둘러앉았다.
그때 파수제왕이 잠에서 깨어 궁인과 좌우(左右)3)들을 돌아보았으나 각기 사방으로 흩어져 찾을 수가 없으므로, 왕이 몸소 있는 곳을 찾은 끝에 여러 궁인들이 비구를 둘러싸고 앉아서 그의 설법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비록 곱고 흰 옷을 입고 있지만
말솜씨만 못하구나.
천 명의 궁녀가 둘러싸고 앉아서
그의 용모를 사랑하여 공경하네.

그때 저 왕이 화가 나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아라한(阿羅漢)의 과위를 얻었는가?”
“아직 얻지 못하였소.”
“그렇다면 아나함(阿羅含)의 과위를 얻었는가?”
“아직 얻지 못하였소.”
“그렇다면 수다원(須陁洹)의 과위는 얻었는가?”
“그 역시 얻지 못하였소.”
“그렇다면 그대는 초선(初禪)이나 2선, 내지 4선은 얻었는가?”
“그 역시 얻지 못하였소.”
그러자 저 왕이 이 말을 듣고는 매우 크게 분노하며 존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욕심을 여읜 사람이 아니거늘 어째서 이 궁인들과 함께 앉아 있는가?”
그리고는, 곧 좌우에 명하여 속옷만 남기고 입은 옷을 다 벗기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가시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리니, 때에 궁인들이 울면서 왕에게 아뢰었다.
“저 존자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때리시는 겁니까?”
왕은 이 말을 듣자 더욱 화가 나서 더 심하게 때리도록 하였다.
그때 존자는 지난날 왕자였으므로 몸이 부드럽고 약해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온몸에 피가 흘러내렸으며, 궁인들로서 이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존자 사라나는 이렇게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 목숨이 거의 끊어질 정도가 되어 땅에 쓰러졌다가, 잠시 뒤에 다시 소생하긴 했으나 몸이 다 망가져서 마치 개가 마구 씹어 놓은 것 같았으니, 비유하자면 왕뱀의 입 속에 끌려 들어간 사람은 실상 벗어나기 어려울 뿐더러 입에서 도로 나온다 하더라도
살아나기 어려운 것처럼, 사라나 비구가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또한 그와 같았다. 겁에 질려 눈을 크게 뜨고, 또다시 맞을까봐 두려워하면서 온몸에 피가 흘러 옷도 입지 못하고 옷을 안고 달아나면서도 누가 자기를 다시 붙잡을까 두려워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함께 범행(梵行)을 닦던 이가 이 광경을 보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누가 가엾이 여기는 마음 없이
이 비구를 때려 상처를 내었으며
어찌 출가한 사람에게
힘 자랑 할 생각을 내어

도무지 차마 할 수 없는
이토록 잔인한 마음을 내었을까?
죄 없는 이에게 함부로 해를 가하는
이야말로 이치에 맞지 않는 사람이네.

출가하여 부귀영화를 버리고
홀로 아무런 세력도 없이
옷과 발우로 자족하며 지낼 뿐
물건을 쌓아 두거나 불리지 않았거늘

이는 어떤 잔인한 사람이기에
이 지경이 되도록 매질을 했단 말인가.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서로 부축하여 손을 잡고 존자 가전연의 처소로 갔는데, 사라나가 소리 높여 우는 것을 보고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게를 설하였다.

붉고 희고 푸르게 아롱진
염부수(閻浮樹) 과일 같기도 하고
또 붉은 진흙이 있는 곳에서
피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니
누가 너의 몸을 때려서
이런 빛깔로 만들었느냐?

그때 사라나 비구는 자기의 몸이 깨져서 피가 흐르는 곳을 존자에게 가리켜 보이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저는 누구에게도 구호받지 않고
홀몸으로 걸식하며 살아온 만큼
스스로 살펴보아도 허물이 없거늘
함부로 깔보고 사람을 때리다니

저 파수제왕이 제멋대로
호귀(豪貴)한 토지의 주인으로서
포악하고 방일한 마음을 일으켜
혹독한 채찍에 불을 붙인 듯
저의 몸을 사르고 헐게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이미 잘못이 없는데도
함부로 와서 매질을 하므로
상해를 입어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존자 가전연은 사라나의 마음이 성내고 원망하고 있음을 알고서 타일러 말하였다.
“출가법에서는 자기 몸을 보호하려 하지 않고 먼저 그 마음의 괴로움을 없애야 하느니라.”
곧 게를 설하였다.


너의 몸뚱이가 이미 고액(苦厄)이거늘
어찌하여 원한을 품는단 말이냐?
성내고 미워하는 채찍을 일으키지 마라.
미친 마음에 스스로를 상해하게 되느니라.

사라나의 마음에 고뇌가 일어나서 그 성내는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니, 마치 용이 싸울 때에 혀를 내밀어 불을 토하는 것 같았고, 또한 번개가 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게를 설하였다.

화상께선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성냄과 교만이 저의 마음을 사르니
마치 마른 나무의 빈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출가하여 범행을 닦은 지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건만
지금의 제 심정 같아서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니

용렬하고 겁약한 자는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거늘
하물며 제가 이 큰 괴로움을
견디어 참아 낼 수 있으리까?

제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국왕의 지위를 도로 찾아서
모든 코끼리 군대를 불러 모아
온 땅을 검은빛으로 덮어 버리려 함이니

성내는 마음이 이글이글 타올라
밤낮으로 쉴 새가 없는 것이
마치 산과 들을 사르는
맹렬한 불길과 같으므로
반딧불쯤이야 그 안에서 타 버리듯이
파수제도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바로 3의(衣)를 벗어 함께 범행(梵行)을 닦던 이에게 넘겨 주고는, 슬피 울어 목이 메인 채 화상(和尙)의 발에 예배하고, 집에 돌아가고자 하직 인사를 하면서 다시 게를 설하였다.

화상께서는 저의 참회를 들으시고
죄과를 면제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마음에 다른 즐거움을 바라서가 아니라
출가법 안에서는
이 원한을 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 화상은 수다라(修多羅)의 이치를 제일 잘 분별하였고, 남을 설득하는 말재주 또한 제일이었으므로 사라나 비구를 타일러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이제 그런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왜냐 하면 이 몸은 견고한 것이 아니어서 마침내 다 없어지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너는 이제 몸을 위해 부처님 법을 어기지 말고 이 몸이란 덧없는 것이며 깨끗하지 못한 것임을 관찰해야 마땅하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이 몸은 청정한 것이 아니기에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와
그 냄새가 매우 고약하므로

이것이 바로 뭇 괴로움의 그릇이며

이 몸은 더럽기 짝이 없어서
종기와 창병이 모이는 곳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흔들거나 부딪치면
곧 큰 고뇌가 생기기 마련이라.

그대가 미혹되어 이것에 집착함은
절대로 지혜로운 이치가 아닐진댄
그 용렬한 뜻을 버리고서
여래께서 설하신 게를
그대는 이제 기억해야만 하리니

“화냄과 성냄과 번뇌가 일어날 때
스스로 이것을 억제할 수 있는 자는
마치 저 채찍과 굴레로
사나운 말을 억제하는 것과 같기에
잘 억제하는 것을 ‘잘 탄다[善乘]’고 하고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게으르다[放逸]’고 한다”고 하셨네.

집에 있는 것을 “감옥에 묶여 있다”고 하고
출가하는 것을 “묶인 것을 푼다”고 하니
그대는 이미 출가하여 벗어난 자거늘
도리어 다시 쇠고랑을 구해
감옥에 갇힌 몸이 되려고 하는가.

성냄이 바로 내 안의 원적(怨賊)이므로
그대는 그것을 따라가거나
그것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이런 인연 때문에
많이 들은[多聞] 자를 찬탄하시어
선성(仙聖)들 가운데 왕이라 하셨으니
너는 그 말씀을 따라서
이제 마땅히 많이 들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만약에 쇠톱으로
몸뚱이와 팔ㆍ다리를 끊더라도
결코 성내지 말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부나(富那) 등을 위해 선설하신 말씀이니
그대는 이와 같은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함을 기억할 것이며

사리불(舍利弗)이 말한
다섯 가지 괴롭게 여기지 않는 법을 기억해야 하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도
그대는 잘 관찰해야만 하며
성내고 미워하는 것의 죄과를
그대는 깊이 계교해야만 하며

출가한 이의 표상(標相)을
스스로 잘 관찰해야만 하리니
마음과 표상이 서로 들어맞는가,
아니면 들어맞지 않는가?

이른바 비구의 법에서는
남에게 걸식하여 스스로 살아야 하니
어찌 신심의 보시를 받아 먹으면서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겠으며

또 남의 음식이 뱃속에 있거늘
어찌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신심으로 보시한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대가 법을 행하고자 한다면
성내고 미워함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스스로 법을 행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으며
나아가 중생들의 법칙이 되어서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자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으리라.

성내고 화내는 것이 그 맘을 괴롭혀서
입으로 나쁜 말을 낸다면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받으리니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하네.

모든 출가한 자들은
마땅히 세 가지 일을 갖추어야
잘 길들여져 따르는 비구라 하리니
욕됨을 참아 내서 화를 내지 않고
결정코 금계를 굳게 지키며

참말만 하고 허망한 말은 하지 않음이 그것이라.

욕됨을 참아 내는 것을 잘 닦았다면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사문의 부류에 속한 자라면
나쁜 말은 내지 말아야만 하니

유화의(柔和衣)4)를 입은 출가자라면
화를 내어 추악한 말을 할 수 없는 만큼
마치 저 좌선하는 선인(仙人)이
칼을 뽑아 앞에 두듯이 해야 하네.

비구의 그릇과 의복은
일체가 속인들과는 다르거늘
성내고 화내는 것이 속인들과 같다면
이는 아직 비구가 되지 못한 것이며
거친 말이 속인들과 같다면
어떻게 비구라 할 수 있겠는가.

머리털 깎아 몸을 꾸미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어 걸식을 행하여
이렇게 낮은 모습을 하고서도
교만을 끊어 버리지 못하니

만약에 교만을 없애고자 한다면
더럽고 추악한 마음을 버리고
빨리 해탈할 것을 구해야만 하리라.

몸은 마치 저 활 쏘는 과녁과 같아서
과녁이 있기에 화살이 꽂히듯이
이 몸이 있으므로 뭇 고통이 더해지고
몸이 없으면 고통도 함께 없어지며

또 마치 국경[關]의 순라 도는 문에
두드리는 북을 그 옆에 묶어 두었는데
어떤 사람이 먼 곳으로부터 와서
매우 피곤하여 잠을 자려 할 때에

문에 이르면 모두 북을 치므로
그 북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이 사람은 잠을 잘 수가 없어
북을 두드리는 자에게 화를 내며

많은 사람들과 싸우다가
뒤에 그 근본을 생각한 끝에
바로 이 북이 원인이지
도무지 뭇 사람들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는
곧 일어나 북을 부수어 버림으로써
비로소 편안히 잘 수 있었던 것처럼

비구의 몸도 북과 같아서
안락하기 위해 출가하였지만
모기나 벌레, 파리, 독한 풀 따위가
모두 사람을 물어뜯고 괴롭히므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해서
이 몸뚱이를 멀리 여의어야지
오랫동안 즐거이 머물 수는 없네.

그 근본 원인을 관찰해 볼 때
이것이 바로 쌓임[陰]과 경계[界]의 덩어리니
쌓임과 경계의 괴로움을 파괴해야만
편안히 열반의 잠을 잘 수 있으리라.

그때 저 화상이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다시 말하였다.
“너는 이제 성내고 미워해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버려야만 하니, 만약 아직도 남을 괴롭히고자 한다면 내 말을 좀 들어 보아라. 일체 세간이 다 남을 해치고 괴롭히거늘, 어찌하여 너마저 중생을 괴롭히고 해치려 하느냐? 일체 중생이 다 염라대왕에게 속해 있으니, 나나 너나 저 국왕도 오래지 않아 죽기 마련인데, 네가 이제
무엇 때문에 원수의 집안을 죽이려고 하느냐? 일체의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돌아가거늘, 네가 해칠 필요가 무엇인가? 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마치 해가 돋으면 반드시 지는 것과 마찬가지니라.
이 죽음의 이치가 본래 그러할진대 무엇 때문에 해를 가할 것이며, 설령 네가 그에게 해를 입힌다 해도 너에게 무슨 즐거움과 이로움이 있겠느냐? 더구나 너는 계율을 지키는 자로서 남을 훼손하려 한다면 미래세에 반드시 무거운 과보를 얻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훼손시키려 하는가? 저 왕이 너를 훼손했다 해서 네가 크게 화를 낸다면, 인과의 법에 비추어 현재에도 크게 괴롭고 미래세에 다시 그 고뇌의 과보를 받을 것이니, 먼저 상해를 당한 그 보복으로 어찌 그를 상해할 것인가? 만약 한 찰나라도 성내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몸과 마음을 괴롭히기만 할 것이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해 이와 같은 법을 설하겠으니 이 비유를 잘 듣거라.
마치 손가락에 불을 놓아 다른 사람을 태우려고 한다면 그를 해치기도 전에 스스로 고통을 받는 것처럼, 성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하면 자기가 먼저 고초를 받기 마련이니, 몸은 마른 섶과 같고, 성내는 마음은 불과 같아서 다른 사람을 태우기 전에 자신이 먼저 불에 탈 것이다. 한갓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것은 그럴 수 있거나 없거나 간에 먼저 자신을 해치는 일이 결정코 성취될 것이다.”
그때 사라나 비구는 묵묵히 화상이 말한 법의 요지를 듣고 있었고, 같이 범행(梵行)을 닦던 이들이 함께 환희심을 내어서 각각 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가 화상이 말한 법의 요지를 들었으므로 반드시 도 닦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나는 아직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여 소리를 높여서 말하였다.
“아무리 무심(無心)한 사람이라도 오히려 이런 일은 참을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유심(有心)한 내가 어찌 견뎌 낼 수 있겠습니까?”
사라나가 게를 설하였다.

허공에 번갯불이 번쩍여
마치 황금 말의 채찍처럼 보일 때
허공이 비록 무정(無情)한 물건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르르 꽝꽝 소리를 내나니

내가 이제 왕자의 몸으로서
저 왕과 다름이 없거늘
어찌 그대로 참고 견디어
보복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이 게를 설하고 나서 화상에게 아뢰었다.
“화상께서 하신 말씀은 진실로 그렇습니다만, 이제 저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서 물을 부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살갗이 터져 밖으로 피가 흘러 있는 것을 보면 곧바로 성이 나며 미워하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이 솟아오르니, 제가 그에게 무엇을 달라 한 것도 아니고, 그의 종도 아니며, 품팔이꾼도 아니고, 그의 백성도 아니며, 또 제가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남을 모함한 것도 아니며, 왕을 어지럽히기 위해 싸운 것도 아닌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매질을 한단 말입니까?
다만 그이는 왕위에 있어 세력이 있고 저는 이제 빈궁하고도 하천한 처지에 있음을 깔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상(相)이 있으니, 저는 스스로 걸식하여 먹고 빈 숲에 앉아 있거늘, 함부로 해를 가하는 것은 제가 그이와 비교가 되었더라면 감히 해치지 못했을 것이고, 해쳤다 하더라도 제가 마땅히 보복해서 그가 잠을 편히 잘 수 없도록 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착한 사람인 탓에 함부로 모욕을 당하였으므로, 이제 저에게 보복하여 제가 오늘 당한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도록 해서 함부로 횡포를 부리는 자들에게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감히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화상 앞에 꿇어앉아 거듭 말하였다.
“제가 부득이 계율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때 한 스승 아래서 배우며 범행(梵行)을 같이 닦던 이들이 소리 높여 크게 울면서 말하였다.
“그대가 지금 어찌 불법을 버리려 하는가?”
그리고 혹은 손을 잡거나 끌어안고 온몸을 땅에 던져 예배하면서 “그대는 이제 부디 불법만은 버리지 마소”라고 말하였다.
곧 게를 설하였다.

어찌 무리들 중에서
홀로 버리고 떠나가
부처님의 금계를 물리겠으며
또 어찌 이 악업을 짓기 위해
부처님을 우리의 스승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비구여, 그대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어찌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그대가 처음 계를 받을 때엔
육신이 다할 때까지 지키겠노라 맹세했거늘
어찌 그리도 믿음에 중심이 없어
이제 벌써 범행을 버리려 하는가.

발우를 잡고 가사를 입고서
걸식한 지도 이미 오래 되었거늘
투구를 쓰고 칼과 몽둥이를 들고
바야흐로 싸움의 대열에 들어가려 하니
왕의 채찍이 그대의 몸을 상하게 했다지만
어찌 우리 사문의 법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과거에 인욕 선인(仙人)이
손발을 끊겼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도 홀로 출가하였고
그대 역시 출가한 사람 아니던가.

어찌 저 선인만이 법을 알고
그대는 법을 몰라 그런다 하겠는가.

저이는 그렇게 지독한 끊김을 당했어도
오히려 자비심을 내어
마음을 굳게 지켜 어지럽히지 않았거늘
그대는 이제 매질을 당했다고 해서
마음을 잃고 이렇게 날뛰는 것인가.

존자 가전연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저의 마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너희들은 내버려 두고 가거라. 너희들을 위해 내가 직접 다루어 보리라.”
모든 비구들이 이미 가 버린 뒤에 존자 가전연이 사라나 비구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정말 가야 하겠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화상이시여, 제가 이제 반드시 가야 하겠습니다.”
가전연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하룻밤만 더 이곳에서 묵고 내일 가도록 하여라. 그렇게 급하게 계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화상의 말씀에 따라 오늘 밤 화상의 곁에서 묵은 뒤에, 내일은 계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왕위를 도로 찾아서 파수제왕과 서로 대항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화상의 발치에서 풀을 깔고 그 위에서 자니, 때에 가전연이 신통력으로 깊이 잠들게 해서 다음과 같은 꿈을 꾸게 하였다.
그는 꿈에 계율을 버리고 본국으로 향하여 집으로 돌아가서 왕위에 올라 네 가지 병사들을 집합시켜 파수제로 향하였으며, 때에 파수제 역시 네 가지 병사들을 모아 서로 전투를 시작하였다. 사라나의 군대는 죄다 파괴되었고, 사라나는 사로잡혀 꽁꽁 묶여서 끌려갔는데, 파수제왕이 말하기를, “이 놈은 나쁜 놈이니, 죽여 버려야 마땅할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그의 목 위에 나비라만(羅毘羅鬘)의 형틀이 묶이고, 괴회(魁膾: 사형 집행인)가 거센 소리로 옆에서 도와주는 무리들을 시켜 형구를 갖추어 둘러싸 들고서 무덤들 사이에 이르렀는데, 그 가는 도중에 가전연이 그 옷을 입고 발우를 잡은 채 성으로 들어가 걸식하는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화상이 있는 곳을 향하여 게를 설하였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몸을 더럽혔으니
이제 나무 아래 가고 싶어도

이미 불법을 허물고 어겼습니다.

제가 이제 죽음의 길로 나아가니
뭇 칼들이 저를 둘러싸서
마치 우리에 갇힌 사슴처럼
저도 지금 그와 같습니다.

염부제를 보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상을 뵈오니
비록 저에게 나쁜 마음이 있었지만
암소가 송아지를 생각하듯 하여 주소서.

그때 저 망나니가 푸른 연꽃 같은 칼을 잡고서 말하였다.
“이 칼로 너를 벨 것이니, 비록 화상이 있다 한들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사라나가 화상에게 애원하면서 소리 높여 크게 울었다.
“제가 이제 화상에게 귀의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잠에서 깨었다.
놀라서 일어나 화상의 발에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바라건대 화상이시여, 제가 화상의 말씀을 어기려 했던 것을 용서하여 주소서. 제가 본래 어리석어서 부처님의 금계를 버리려고 했으나, 이제 저의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는 이제 원수에게 보복하지도 않고 왕위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니, 왜냐 하면 즐거운 맛은 적고 근심 걱정만 많기 때문입니다. 원망하고 성내는 마음의 허물과 근심을 제가 다 경험하여 알았으므로, 저는 이제 오직 해탈의 법만을 얻고자 합니다. 저는 뜻이 안정되지 못한 경솔한 중생이어서 사리를 잘 관찰하지 못하였고, 여러 지혜로운 이들과 함께 말해보지도 않았으므로, 이제 일체 중생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니, 오직 바라건대 화상이시여, 저의 출가를 허락하시여 고뇌를 당할 때에 불쌍히 여기는 모습을 나타내소서. 제가 지금 고통 가운데 있으니, 화상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전연이 말하였다.
“너는 도를 버리지 않았으니, 내가 신통력으로 꿈을 꾸게 한 것일 뿐이다.”
그가 오히려 믿지 않으므로 화상이 오른팔에서 빛을 놓으며 말하였다.
“네가 도를 버린 것이 아니니, 스스로 네 모습을 보아라.”
사라나가 환희심을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훌륭하십니다. 선지식께서 좋은 방편으로 저를 깨우쳐 주시는군요. 저에게 잘못이 있었지만 꿈으로 일깨워 붙잡아 주시니, 부처님께서 ‘선지식이 바로 범행(梵行)의 전체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진실로 그러함을 알겠습니다. 그 누가 선지식에게 귀의하지 않고서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어리석은 자만이 좋은 벗을 의지하지 않으니, 저가 어찌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존자 가전연이 사라나의 파수제에 대한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의 독약을 뽑아 내어 남김없이 다 소멸시켜 버렸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선지식을 가까이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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