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5권
대장엄론경 제15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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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잘 분별하는 이는 국토가 광대하고 모든 일이 갖추어져 부족함이 없다 해도 그것이 다 고뇌인 줄을 알기 때문에 버리고 가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세존께서 옛날에 보살이었을 때 큰 나라의 왕이 되셨는데, 빈궁한 자가 와서 구걸하면 일체를 다 주었고, 괴로운 재앙에 처한 자를 위해서는 든든한 옹호자가 되어 주었으며, 이익을 원하는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는 지혜가 밝고 용맹하게 하였다. 또 왕위에 계실 적에 이웃 나라의 왕이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서 더불어 싸우고자 왔으므로 보살인 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다섯 가지 욕락[五欲樂]에 집착하면 마음을 길들일 수 없고, 여섯 가지 감관[六根]은 만족시키기 어렵거늘, 뭇 도구들이 이미 많으니 다시 일을 처리해서 옹호할 필요가 있겠다. 이 뭇 도구들 때문에 투쟁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 일을 버려야만 투쟁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내 몸을 따르는 수승한 법을 닦아 모으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모든 것을 관찰할 때에
지혜로운 이는 잘 분별해야만 하니
일을 위해 생각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어쩔 수 없으리.
‘옳고 그름을 관찰하면 반드시 그 처신할 바를 알게 되리라.’
다시 게를 설하였다.
욕심이란 횃불[草炬]을 잡는 것 같고
또는 뭇 고기 덩어리와도 같으므로
욕심에 집착하면 반드시 다치고 훼손되기 마련이어서
해로움이 다음 세대에까지 미치리라.
지혜로운 이는 국토를 비롯한 뭇 도구들을
빨리 여의어야만 하리니
이와 같은 뭇 도구들은
목숨이 다하여 돌아갈 때엔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것이네.
차라리 지금 뭇 고통들을 받을지언정
그 누가 후세에 이르기까지
길이길이 이 고통을 받길 원하랴.
지금의 내 세력을 계교해 보건대
저를 꺾어 굴복시킬 수 있음은
현재로선 분명한 증과(證果)이지만
칭찬하고 탄미하는 그 소리가
뒷날에는 괴로움의 상해(傷害)를 받는 것이라.
비록 자기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끝내 저 사람을 옹호해야 하리니
만약 저 사람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뒷날 반드시 자신이 상해를 받을 것이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도피하여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어떤 한 늙은 바라문이 길을 잃고 그 숲 속에 들어오므로, 보살 왕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 숲에 들어왔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는 왕을 뵙고 싶습니다.”
보살 왕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왕을 보려고 하오?”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는 지금 빈곤하며, 또한 부채도 많습니다. 듣건대 왕께서 보시하기를 좋아한다 하기에 일부러 와서 구걸하여 그것으로 부채를 갚아 가난에서 아주 벗어날까 합니다. 달리 돌아가 부탁할 곳도 없으니, 오직 왕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구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그대는 돌아가시게. 이 숲에는 왕이 없거늘 누구에게 귀의하겠는가?”
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지니, 보살 왕이 이것을 보고 가엾이 생각한 끝에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다른 사람을 옹호하려고
버리기 어려운 것도 다 내버렸으니
지금은 다 버린 뒤인데
무슨 물건을 줄 것인가.
나는 이제 이 사람을 위해
내 몸과 목숨을 버려야 하리라.
이 게를 설하고는 즉시 바라문을 붙들어 일으켜서 이렇게 타일렀다.
“그대는 근심하거나 겁내지 말라. 내가 그대에게 재리(財利)를 얻도록 해주겠다.”
그때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보살인 왕은 곧바로 풀로 새끼를 꼬아 바라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일체를 보시한다는 것은 내 몸뚱이를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이웃 나라 왕이 나를 잡지 못해
마음이 끝내 편치 않으니
그대가 이제 이 끈으로
나의 팔목을 얽어 매어
저 왕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저 왕을 기쁘게 해준다면
당연히 그대에게 진귀한 보물과
금이나 은 같은 모든 재물을 줄 것이므로
그대는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저 왕은 다시 기뻐할 것이네.
태어난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있으며
수명이란 마침내 다 되기 마련이니
위험과 재앙을 구제하기 위하여
비록 다시 몸과 목숨을 잃는다 하여도
지혜로운 이는 이것을 일러
영락(瓔珞)이라 부를 것이네.
그때 바라문이 이 말을 듣고는 매우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끈으로 이 보살을 묶어서 저 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이 이 광경을 보고는 바라문을 향하여 게를 설하였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고.
몸 빛은 마치 금산(金山) 같고
위광(威光)은 매우 밝게 빛나서
마치 세간을 비추는 햇빛과 같고
얼굴과 눈은 단정하고 엄숙하여
보는 이마다 다 기뻐하는구나.
이같이 복덕 있는 이야말로
대지의 주인이 되야 할 것이지만
오늘은 잡힌 몸이 되어
고액을 당함이 이와 같도다.
내가 사자좌(師子座)에 앉은 것은
지극히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오.
그가 왕위에 있어야 하고
나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것이니
길들여져 따르지 못하는 나는
이 자리에 앉을 수 없네.
그때 바라문이 이 게를 듣고는 대왕에게 아뢰었다.
“이 사람이 바로 대왕님의 원수입니다.”
왕이 바라문에게 물었다.
“누가 이 사람을 묶었느냐?”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사실 제가 묶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너에게 묶일 이가 아니니,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저이는 큰 코끼리처럼
몸의 힘이 매우 세거늘
네가 이제 쇠약한 몸으로
무기나 말의 힘도 빌리지 않고
어떻게 그를 묶을 수 있겠느냐.
이 일은 믿을 수 없으니
너는 진실 그대로 말해야지
허망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때 바라문은 위에서 있었던 일들을 갖추어 진술하여 게를 설하였다.
실망하고 있는 저를 보고서
저 사람이 곧 스스로 묶었으니
자비심으로 자신을 묶어
저를 구제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장부는
이름이 시방에 두루하리니
마치 뜰에 화톳불을 피워
널리 일체를 비추는 것과 같거늘
착하지 않은 사람이 어리석음 때문에
저 사람을 아주 소멸하려 한다면
이는 마치 뜰의 화톳불이 훨훨 타오를 때
남김없이 꺼 버리는 것과 같으리라.
그때 대왕이 이 말을 듣고는 곧 놀라 일어나서 합장하고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훌륭해. 참으로 착한 장부이구려. 그대가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이런 일을 하다니.”
곧 게를 설하였다.
이른바 위대한 왕을 일러
라사(羅闍)라 부르는 것은
세간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라사라고 하는 것이니
그대가 이제 왕이 되어서
온 국토를 보호하고 지켜야만 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지금 제가
참회하는 모든 죄과를 들어 주소서.
저는 실로 어리고 어리석어
가볍기 그지없는 무지한 자이니
그대가 다시 왕이 되어 준다면
저는 이 나라를 버리고 갈 것입니다.
그대만이 일체의 중생들에게
안락함을 얻도록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설령 왕이 된다 하여도
온 세간을 핍박하여 괴롭게 할 것입니다.
곧 저를 왕으로 세우고 본래 머무르던 곳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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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청정하고 복된 업을 지으려면 공양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복된 업을 닦아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석실국(石室國)에 오월기(烏越★)란 왕이 있었다. 온 나라의 인민들이 함께 부처님 모시는 모임을 베풀 때에 어떤 한 부인(婦人)이 창문 사이로 세존을 엿보았는데, 그때에 저 왕이 여인의 단정한 모습을 보고는 곧 영락(瓔珞)을 풀어 곁에서 시중들던 신하를 시켜서 저 여인에게 보내 주었다.
그러자 왕의 가까운 신하들이 곧 왕에게 아뢰었다.
“저 부인은 바로 이 나라의 여인인 만큼 왕께서 만약 사랑하실 생각이라면 바로 가서 불러올 수 있는데, 어찌 번거롭게 구슬을 주어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받으십니까?”
왕이 이 말을 듣고는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쯧쯧, 참으로 나쁘구나. 어째서 이런 말이 내 귀에 들리게 하느냐?”
곧 게를 설하였다.
이 맹세의 주문을 말하노니
만약 내게 다른 마음이 있었다면
이는 나에게 큰 악업이 되겠지만
나는 이 구슬을 염착된 마음으로
저 여인에게 보낸 것이 아니었네.
내가 말하는 이유를 들어 보게.
업(業)은 자유로운 주인이 된다고
가장 훌륭한 업을 지은 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네.
이것은 주재자(主宰者)가 지은 것이 아니고
오직 업으로써 지은 것이니
마음이 주재자가 되는
착한 업을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만큼
이와 같이 묘한 색은
다시 주재하는 나가 없고
오직 착한 업으로 된 것이네.
착한 업은 내가 공경해야 하고
나쁜 업은 내가 여의어야 하니
과거세에 지은 착한 업의
과보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네.
나는 구슬 꿰미 같은
뭇 보배들을 섞어 장엄하였고
이마에는 다라니를 달았으니
구슬 꿰미가 눈처럼 흰 것은
내가 과거세에
색욕(色欲)에 탐착하지 않은 공덕이네.
만약 착한 업과 나쁜 업을 안다면
어찌 다시 색욕에 탐착하리요.
멀리서도 오히려 보지 않겠거늘
하물며 더럽히거나 집착하겠는가.
차라리 굶주림과 목마름에 죽을지언정
법이 아닌 탐욕은 부리지 않겠고
차라리 불덩어리 속으로 들어갈지언정
간사스런 일은 하지 않으리니
내가 만약 애착이 있었다면
지금의 몸이나 후생의 몸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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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만약에 착한 업이 있다면 그 업의 자연스런 힘 때문에 좋은 업의 과보를 받을 것이니, 비록 국왕 같은 이가 원조하는 힘일지라도 이 업력으로 얻어지는 훌륭한 과보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착한 업을 닦아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우열가왕(憂悅伽王)이 낮잠을 잘 때였다. 두 내관(內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머리맡에서, 다른 한 사람은 다리 밑에서 각각 부채질을 하다가 함께 논의하였다.
“우리가 이제 왕에게 사랑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는 한 사람은 자칭 “나의 업력(業力)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자칭 “내가 왕의 힘으로 말미암아서 왕을 받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때 저 두 사람은 자주 법을 듣고 아울러 의론(議論)을 이해할 수도 있었으므로 곧 게를 설하였다.
마치 소 떼가 물을 건널 때에
앞잡이가 바로 가면 따라가는 소들도 바로 가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서도 왕이 바른 법을 세우면
따르는 자 역시 바르기 마련이네.
그때 저 두 사람이 이치를 다투었던 까닭에 그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갔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왕에게 의지해 산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업력에 의지해 산다.”
왕이 이 소리를 듣고 곧 잠에서 깨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있느냐?”
또한 저 두 사람이 이치를 다투는 소리를 들어서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아직 아견(我見)을 끊지 못하였으므로 자기 편당인 자를 돕기 위해 왕은 마음속으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곧 저 업력(業力)을 주장하던 이를 향하여 게를 설해 물었다.
나의 국토에 의지해 머물면서
자기의 업력 때문이라고 주장하니
이것이 과연 누구의 힘인지를
나 이제 너에게 시험해 보리라.
이 게를 설하고는 부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인에게 말하였다.
“이제 어떤 사람을 그대 곁으로 보낼 것이니 제석(帝釋)의 모습으로 잘 장엄해 주시오.”
부인이 대답하였다.
“분부대로 잘 거행하겠습니다.”
그때 왕이 포도장(蒲萄獎)을 저 “왕에게 의지해 산다”고 한 사람에게 주어 부인에게 보내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업력이라고 주장했던 자는 이제 그렇게 말했던 것을 마땅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저 업력에 의지해 산다고 했던 사람이 좋은 의복을 입고서 왕의 곁으로 다가왔다. 왕이 보고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 곧 게를 설하였다.
내 자신이 착각을 일으켜서
저에게 남아 있던 포도장을 주었던가.
아니면 저의 업력으로
억지로 빼앗아 가져간 것인가.
혹시 그들끼리 친한 사이어서
저에게 주어 가져가게 했을까?
그렇지 않으면 부인이 화가 나서
이 사람에게 빼앗아서 저에게 준 것일까.
혹시 내가 애당초 희미하여
저 사람에게 잘못 주었던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저가 나에게 환술[幻]로
착란을 일으키도록 한 것일까?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저 사람에게 물었다.
“좋다, 사실대로 나에게 말해 보거라. 네가 업력을 믿는다기에 내가 일부러 너를 보내지 않았던 것인데, 어째서 네가 이런 좋은 옷을 얻었는가?”
저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업력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곧 어떻게 된 일인지를 갖추어서 왕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명령을 받들어 문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코피가 흘렀으므로 곧 이 포도장을 저에게 주어서 부인 곁으로 가게 하였기에 이 의복을 얻은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업보는 그림자와 메아리 같고
또한 저 장엄(莊嚴)과도 같으니
저가 자기의 업력이라고 말한
이 말은 진실로 허망하지 않으며
설법을 들은 힘 때문에
언설이 이치에 합당하며
저가 업력이라고 자칭하는 것도
이 말이 결정코 증험이 있구나.
나는 자부심이 많았고
그는 업력의 수승함을 믿었으므로
“업력이 강하다”고 말씀하신
부처님 말씀이 과연 진실이니
부처님께서는 좋은 마부[御乘]가 되시어
업력이 훌륭하시도다.
왕의 힘도 파괴하실 수 있구나.
시방의 불세존께서도
또한 업력을 따른다고 말씀하셨으니
네가 이제 업력에 의지해
스스로 몸을 장엄하였으므로
나의 힘을 막아 내었도다.
73
다음으로 지혜로운 자와 서로 원수가 되어 있어도 오히려 이익이 될 수 있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항상 친근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마돌라국(摩突羅國)의 어떤 바라문이 총명하고 지혜가 있기는 하였으나 부처님 법을 믿지 않고 또한 비구들과도 친하지 않았는데, 다른 바라문들과 과거에 투쟁한 일이 있었으므로 한 사람이 그 진심(瞋心) 때문에 승방(僧坊)으로 나아가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하였다.
“아무개 바라문이 내일 집에 여러 가지 공양거리를 준비해 큰 모임을 베풀어서 모든 비구들을 초청한다 합니다.”
이는 곧 여러 비구들이 이른 아침에 그 집으로 가서 음식을 얻지 못하게 함으로써 저 주인 바라문의 나쁜 소문이 세간에 두루 퍼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이른 아침에 그 집으로 가서 문지기에게 물었다.
“그대의 집주인이 음식을 준비해 우리를 청하였으니 그대는 가서 아뢰게.”
그러자 문지기가 곧 들어가서 주인에게 아뢰었다.
“지금 문 밖에 여러 비구들이 와서 ‘이 댁의 초청을 받아 일부러 왔노라’라고 합니다.”
주인이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무슨 일로 이런 일이 있는 것일까?’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마도 저 바라문이 나와 원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한 것이리라. 지금 비록 시간이 임박했지만 성읍(城邑)이 매우 크니, 사람을 저자에 보내어 여러 비구들에게 공양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사람을 보내어 비구들을 불러 집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게 하고
갖가지 음식을 베풀어 공양하였다.
어떤 한 비구가 먹기를 마치고서 단월(檀越)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좀 앉으시오. 비구의 법에는 먹기를 마치면 으레 단월을 위해 설법을 하니, 그대가 비록 부처님 법을 믿지 않는다 해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하오.”
그때 저 주인이 곧 작은 상을 가지고 왔으므로 상좌 비구가 그 앞에 앉아서 보시와 계율에 대한 말과 천상에 태어나는 의론을 설하였으며, 또한 욕심은 부정한 것이고 출세간은 안락한 것이며, 나아가 네 가지 진리의 법을 설하였으니, 이 바라문도 이미 과거에 여러 선근을 심었기에 곧 그 자리에서 네 가지 진리를 보고 수다원(須陁洹)의 과위를 얻어서 게를 설하였다.
쯧쯧, 어리석음의 힘이
바른 견해를 침해하니
어리석은 자는 분별하지 못하여
보배를 보배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나 이제 수승한 이익을 얻어
삼보(三寶)를 분별해 알았으므로
이것이 진실한 나의 보배이네.
부처님 법과 성인의 무리를
내가 이미 자세히 보았으니
세 가지 나쁜 갈래를 닫고
제석과 범천 등 여러 천왕들도
얻을 수 없었던 그 이익을
나 이제 다 갖추어 얻었네.
이제 이 바라문이야말로
범천이라 부를 수 있으며
해탈하여 생사 없는 곳으로
비로소 나아갈 수 있으니
바라문의 그 수승한 법도
나 이제 비로소 얻을 수 있다네.
내 본래의 성(姓)이 수도(輸都)이지만
오늘에서야 참된 수도로서
수승하고 미묘한 비타법(比陁法)1)을
이제서야 비로소 얻게 되었네.
나 이제 번뇌가 없어져
모든 비타에 뛰어나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진실로
큰 복밭에 제사지내리라.
나는 부지런히 큰 제사를 지낼 것이지만
제사지낼 것과 지내지 않을 것을
잘 분별할 수 없으므로
오늘부터는 하늘 중에 하늘이신
다타아가타(多陁阿伽陁)를 공양하리라.
다시 요약하여 말하자면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익을 얻었으며
사람 몸의 과보를 얻었으므로
오늘 이후로는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뿐
다시는 다른 천신(天神)을구하여 청하지 않겠네.
나는 지금 배운 이 법으로
바른 길을 향하여 수순(隨順)해서
법과 수순하는 법으로
반드시 그 과보를 얻으리라.
과거세부터 생사를 싫어하여
일찍이 법을 닦아 법에 귀향한 이에게
나 이제 정성껏 귀명함으로써
지금 그 과(果)의 이익을 얻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여
법의 이익까지도 자연히 이룩하리.
대비하신 이의 제자들을
내가 만약 친근히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삿된 소견에 떨어져
세 가지 나쁜 갈래를 돌아다닐 것이며
또 만약 나와 원수라고 하는
저 바라문이 아니었더라면
이와 같은 여러 성중들을
아예 친근히 할 수도 없었을 것이네.
저의 진심(瞋心)과 분노 때문에
내가 이 법을 얻게 되었으니
밖으로는 나쁜 벗 같지만
사실은 나에게 더없는 선지식이어서
그 은혜가 부모나 친척들보다 더하도다.
저 바라문으로 말미암아
여러 스님들이 내 집으로 와서
단비를 내려 부으니
착한 싹이 다 자라나며
그 법의 비가 매우 윤택하여
내 마음의 티끌도 씻어 줌으로써
티끌이 이미 일어나지 않아
진실한 법을 볼 수 있게 되었네.
그러므로 세간에서도 말하기를
“원수 때문에 큰 재물을 얻는다”고 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큰 이익을 얻어
곧 3귀의(歸依)를 받았으므로
저 바라문에게
큰 공양을 베풀어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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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정성껏 재물로 보시한다면 꽃처럼 재물의 업과(業果)를 얻으리니, 이러한 일을 앎으로 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해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계빈나국(罽賓那國) 사람으로서 부부가 함께 풀자리 위에 누워 있다가 새벽 하늘이 밝으려 할 즈음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나라에 있는 무량 백천의 사람들이 다 복을 닦으려고 스님들께 공양하는데, 우리들은 빈궁하여 이 보배 섬[寶渚]을 만났음에도 조그마한 보배도 가지지 못하였으니, 후세에 가서도 우리들의 가난이 그치지 않겠구나. 내가 지금 복이 없음으로 말미암아서 장래의 고통도 장구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슬프게 탄식하다가 더욱더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서 그 눈물이 부인에게 떨어졌다.
그때 부인이 곧 남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슬피 우십니까?”
곧 게를 설하였다.
무엇 때문에 매우 슬퍼하고
자주자주 한숨을 쉬면서
나의 팔이 젖도록 눈물 흘리기를
마치 물을 뿌린 것처럼 하시나요.
그러자 남편도 또한 게를 설하여 대답하였다.
나 조그마한 선근도 없이
이대로 후세에 갈 것 같아서
이 일을 생각한 나머지
스스로 슬퍼하고 탄식하는 것이네.
세간에 훌륭한 복밭이 있건만
나는 선근의 종자가 없으므로
지금의 몸처럼 후세의 몸에도
빈궁의 고통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네.
전생의 몸에 씨앗을 심지 않아
금생에도 이렇게 빈궁한 것이니
지금 만약 씨앗을 심지 않는다면
장래에도 또한 그 열매가 없을 것이네.
그때 그 부인이 이 게를 듣고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에게 속해 있으므로 당신은 제 몸에 대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만약 제 몸을 판다면 돈을 마련해서 당신 마음의 바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남편이 부인의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즐거워 얼굴에 화락한 기색을 띄우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살 수 없소.”
곧 게를 설하였다.
내 몸과 그대의 몸은
마치 저 원앙새와 같으니
함께 몸을 같이 팔아서
재물을 얻어 복을 닦읍시다.
두 부부가 어떤 장자의 집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에게 돈을 좀 빌려 주십시오. 한 달 뒤에 갚지 못하면 저희 두 사람이 당신에게 예속되겠으며, 다시 한 달 뒤에도 갚지 못한다면 저희들이 각각 노비가 되겠습니다. 왜냐 하면 한 달 중에 여러 비구 스님들을 공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장자는 곧 돈을 주었으며, 그들 부부는 이미 돈을 얻었으므로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이월사(離越寺)에서 스님들을 공양할 수 있겠다.”
부인이 남편에게 물었다.
“어느 날을 택할 것입니까?”
남편이 대답하였다.
“보름날이 좋을 것이오.”
부인이 또 물었다.
“어째서 보름날입니까?”
그러자 남편이 게로써 대답하였다.
“세간에서 보름날에는
구비(拘毘) 등의 천왕이
세간을 살피러 다닌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사람과 하늘이 다 알게 하려고
이 때문에 보름날을 택한 것이네.
그때에 두 부부는 있는 힘을 다해 준비해서 열사흘 만에 음식거리를 죄다 갖추어 사중(寺中)에 보내 두고는 일 맡은 사람에게 부탁하였다.
“오직 바라건대 대덕이시여, 이번 보름날에는 대중 스님들께서 외출하지 마시고 저희들의 초청을 받도록 하여 주십시오.”
일 맡은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지요.”
열나흘에는 두 부부가 절 안에서 자면서 서로 권유하며 게를 설하였다.
우리들 자신이 서로 경계하여
부디 피로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
그래도 지금 자유로울 때에
마땅히 힘껏 할 일을 해야 하리.
뒷날 남에게 예속된 뒤엔
전연 자유롭지 못할 뿐더러
헛되이 뭇 고통만 받게 되고
털끝만큼의 이익도 없을 것이네.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부부는 밤새도록 잠시도 자거나 쉬지 않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 다음날 아침까지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좋구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이미 끝냈으니 마음속 바람이 만족되었소. 이렇게 좋은 날을 얻어 이 한 몸을 팔았으니, 백천의 몸을 받을 때까지 항상 풍족할 것이오.”
그때 어떤 조그마한 나라의 왕이 음식을 준비해 두고는 사중(寺中)에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모든 스님들께서는 저의 공양을 받으시오.”
일을 맡은 사람이 대답하였다.
“우리들 모든 스님들은 먼저 다른 사람의 초청을 받았으니, 다시 다른 날을 찾아보시지요.”
그러나 그 작은 나라의 왕은 은근히 거듭 청하였다.
“제가 이제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니, 부디 저의 공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모든 스님들이 묵묵히 대답이 없자 국왕이 저들 부부에게 말하였다.
“내 스스로 건추(揵椎)를 칠 것이며, 그대들이 음식 만든 비용을 다 변상해 주겠노라.”
두 부부는 이 말을 듣고는 저 왕을 향해 온몸을 땅에 던져 엎드려 아뢰었다.
“저희 부부는 빈궁하여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 공양을 베풀기 위해 스스로 몸을 팔아 온 밤을 지새워서
공양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늘만이 자유롭게 공양할 수 있고 내일에 가서는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니, 바라건대 왕께서는 긍휼히 여기시어 저희들의 날짜를 빼앗지 마십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부부가 함께 원앙새처럼
공양 준비를 이미 다 끝냈으니
바라건대 내일이면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어 가는
저희들의 처지를 꼭 기억해 주소서.
부부가 각각 다른 곳에 예속된다면
다시는 복을 닦을 기회가 없으리니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팔아서
선업을 닦으려 하기 때문이네.
그때 저 국왕이 이 일을 모두 듣고는 훌륭하다고 찬탄하고서,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해
그 인과(因果)를 분명하게 알았기에
이제 허위의 몸을 가지고
견고한 재물인 목숨과 바꾸니
그대는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자유로이 그대의 소원대로 하여라.
내가 그대를 불쌍히 여겨
재물로써 그 값을 갚아 줄 것이니
그대는 이제 스스로 몸을 괴롭게 했지만
끝내 커다란 이익과 즐거움을 얻었도다.
그때 국왕이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저들 부부가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도록 허락하였고, 곧 재물로써 저들을 위해 남에게 빌린 돈을 갚아 주었으며, 또한 부부가 스스로 꾸려 나갈 수 있는 생업[産業]을 공급해 주었으니, 현생에 이 과보를 받아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75
다음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계율을 지킨다면 목숨이 끝날 때에 이르더라도 현생에 그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난제발제성(難提跋提城)에 어떤 우바새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함께 다섯 가지 계율을 지켜 오다가 때마침 그 아우가 협통(脇痛)을 앓아 숨이 곧 멎으려고 하였다.
그때 의사가 진단하였다.
“갓 잡은 개고기를 먹고 아울러 술을 마시게 한다면 반드시 병이 나을 것이오.”
병자가 말하였다.
“그 개고기는 저자에 가서 사먹을 수 있겠지만, 술 마시는 일은 차라리 이 몸과 목숨을 버릴지라도 끝내 계율을 범해 가면서까지 하지 않겠소.”
그 형이 아우가 매우 위태로운 것을 보고는 술을 사와서 아우에게 말하였다.
“계율을 버리더라도 술을 마셔서 그 병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우가 형에게 말하였다.
“내가 비록 병이 다급해져서 몸과 목숨을 버릴지라도 끝내 계를 범하여 이 술을 마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이상하구나. 목숨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해서
어찌 나의 계율의 영락(瓔珞)들을 깨뜨리리요.
계율로써 몸을 장엄한다면
시신을 꾸미느라 번거롭지도 않다네.
사람의 몸 얻기 어렵다 하지만
계율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우므로
백천의 목숨을 다 버릴지라도
계율만은 끝내 깨뜨리지 않겠으니
한량없는 백천 겁 동안에
지금 바로 계율을 만났기 때문이라.
염부(閻浮) 세계 가운데
사람의 몸은 지극히 얻기 어렵고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다 해도
바른 법 만나기는 더욱 어려우며
때로는 또 법보(法寶)를 만나더라도
어리석은 자는 가질 줄을 모르고
잘 분별할 수 있는 자도
이 일이 또한 어렵나니
계율의 보배가 내 손에 들어왔거늘
어째서 다시 빼앗아 가려 하는가.
이는 바로 나를 미워하는 원수일 뿐
조금도 나를 친애하는 이가 아니네.
형이 이 게를 듣고서 그 아우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친애하기 때문이지, 계율을 깨뜨리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우가 형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친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쇠잔하여 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제가 수승한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데
계를 훼손하여 떨어지게 하면서
저를 이같이 손상시키는 것을
어떻게 친애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부지런히 계율의 근본을 닦았건만
이제 겁탈을 당하게 되었구나.
지켜야 할 5계(戒) 중에서도
술에 대한 계율이 가장 중하거늘
이제 저를 억지로 훼손하려 하시니
이를 어찌 친애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형이 아우에게 물었다.
“어째서 술을 계율의 근본이라 하는가?”
아우가 곧 게를 설하여서 형에게 대답하였다.
만약 금계 가운데
마음을 다하여 보호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곧 부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니
“풀잎에 묻어 있는 술찌끼도
오히려 감히 입에 대지 말라” 하셨기에
술이 바로 나쁜 갈래의 원인이 되는 줄을
제가 이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집에 있는 수다라(修多羅)에서
말하고 있는 술의 나쁜 과보는
오직 부처님만이 분별해서 아실 수 있으니
그 누가 능히 측량할 수 있으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몸ㆍ입ㆍ뜻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의 악행은
오직 술이 그 근본이 되어서
다시 악행으로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옛날에 우바이가 술을 마신 인연으로
마침내 나머지 네 계율도
훼손하고 말았으니
이를 일러 악행수(惡行數)라 하였으며
또한 다섯 가지 큰 보시에 있어서나
다섯 가지 두려움 없음에 있어서도
술이 방일의 근본이 된다 하였으니
마시지 않으면 나쁜 갈래를 닫아 버리고
마침내 믿어 즐거운 마음을 얻어서
간탐을 버리고 재물을 희사할 수 있네.
수라(首羅)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한량없는 이익을 얻은 것처럼
저도 도무지 다른 뜻으로
계율을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으려 합니다.
간략하게 다시 말하면
차라리 백천의 목숨을 버릴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하거나 범하지는 않을 것이며
차라리 몸이 말라 비틀어지더라도
끝내 이 술은 마시지 않을 것이니
설령 계율을 범하고 훼손해서
수명이 백천 년이 된다 하여도
금계를 보호하고 지키다가
즉시 몸과 목숨이 사라지는 것만 같지 못하며
결정코 이 병이 낫는다 해도
나로서는 술을 마실 수 없거늘
하물며 지금 나을지 낫지 않을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없음에랴.
이렇게 마음을 결정하고 나니
큰 환희심이 나며
곧 참된 진리를 얻어 보아
앓던 병도 즉시 사라질 것이네.
76
다음으로 만약 부처님 말씀을 믿는다면 다른 외도들의 논란은 마치 어린아이나 미치광이 말처럼 들릴 것이니, 그러므로 정성껏 부처님 법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석가라(釋伽羅)라는 나라에 노두타마(盧頭陁摩)라는 왕이 있었으니, 자주자주 절에 나아가 설법을 들었는데, 때에 저 법사가 술의 과실(過失)에 대해 말하자 왕이 높은 자리에 있는 법사의 말을 비난하였다.
“술을 보시한다면 다 미치고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제 술 마시는 자로서도 그 미치고 어리석은 과보를 받지 않은 이도 또한 많지 않은가?”
그때 법사가 외도들을 예로 들어 보이니, 그 왕도 “훌륭하도다, 훌륭해”라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어떤 외도는 자기들끼리 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 설법하는 사람도 아무런 지견(知見)이 없으면서 공연히 우리를 지적했을 뿐이고, 왕도 법사를 위해
자기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공연히 좋다고 했을 뿐이다. 잘 알아서 이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 대중들 가운데는 크게 총명하며 수승한 사람이 있을 것인데 어째서 대답하지 않는 걸까?”
왕이 곧 게를 설하였다.
법사께선 총명과 변재가 있어
이 이치를 잘 대답할 수 있지만
그대들을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옹호하여 아끼고 말하지 않은 것이네.
여러 외도들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이 법사를 위해서 ‘도리에 통달했다’고 잘못 선전하고 계십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어떤 다른 뜻이 있을 게요.”
그리고는 법사에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풀이하신 이치를 지금 그대로 나타내어 말씀하시지요.”
법사가 대답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외도를 지적한 까닭은 여러 외도들이 제각기 다른 소견을 내어 뒤바뀐 마음이 있는지라, 이 때문에 미치고 어리석은 자들이라 한 것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반드시 몸에 귀신이 들어가야만
뒤바뀐 미치광이라 일컫는 것이 아니고
삿된 소견과 야차(夜叉)의 마음이 있으면
이것을 바로 뒤바뀐 미치광이라 하는 것이네.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의 허물이란
그 일을 이해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니
그대들의 미치고 어리석은 허물도
일체종지의 말씀을 어기고
삿된 소견을 따르기 때문이네.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큰 선인(仙人)을 욕되게 하고
또 그 금지하는 한계를 벗어나서
뒤바뀌고 미친 병을 먼저 이미 이루었으니
백천 가지 미친 병의 원인을
내가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굳이 분별하여 말한다면
연못에 빠지고 불에 뛰어들고
스스로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며
보시와 계율을 다 버리고서
삿됨과 뒤바뀜에 미혹되어
바른 행을 닦지 않는가 하면
미치광이처럼 바위와 불에 떨어지고
소금을 팔아 청정한 행을 파괴하며
항하의 물을 마구 마시기도 하면서
이것을 일러 바른 행을 세운다고 하니
이러고서야 청정함을 잃거나 바름을 얻는 것에
그 무슨 원인이 되는 이치가 있겠는가.
고기를 파는 등 뭇 악업을 쌓으면서
세 가지 신족(神足) 변화를 나타내고
이 세 가지 변화를 제외하고도
다시 어떤 신통 변화가 있는가 하면
스물여섯 가지 법이 있기도 하고
이것을 떠나면 또 다른 법으로서
선인(仙人)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는
열세 가지 법이 있다고 하니
이렇게 뒤바뀌고 미치광이 같은 일의
그 수가 무려 백에까지 이르네.
연못에 빠지거나 불에 뛰어들고
스스로 높은 바위에서 떨어져
이것으로 천상에 태어나려 하지만
이는 다만 삿된 소견일 뿐
천상에 태어나는 인(因)이 아니니
계율과 보시로서 마음을 잘 조복하는
그것이 바로 천상에 태어나는 인(因)이네.
소금 파는 것을 선행(善行)을 파괴한다 하고
강물에 닿아 뭇 악을 제거한다 하지만
소금 파는 것에 무슨 큰 잘못이 있으며
강물에 닿는 것에 무슨 큰 선행이 있어서
이러한 것에 무슨 이치가 있기에
선행이라 하고 악행이라 하겠는가.
바라문으로서 고기를 파는 것은
곧 잘못된 법에 떨어지게 되니
칼을 잡는 것도 잘못된 법이고
고기를 파는 데 있어서
서른여섯 근(斤)을 가득 채우는 것도
바라문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네.
나찰[羅差]과 꿀을 먹는 것을
모두 잘못된 법이라 하여
나찰과 꿀을 맛보는 것을 보면
둘 다 허물이 된다 하면서도
저울로 사람을 속이는 것은
그것을 도적이라 하지 않으며
고기 파는 것은 살생이라 하지만
양과 벼가 모두 생명이 있다고 하면서
벼를 먹는 것은 살생이 아니라고 하니
양도 벼도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벼는 먹고
양은 먹지 않는 것인가.
그대들은 말하기를
“자살하면 끝내 천상에 태어나지 못한다”고 하면서
바위에 떨어지고 물이나 불로 뛰어들며
다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 하니
자기를 죽이는 것은 죄가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몸을 먹여 기르는 것은
어째서 복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가.
관찰하건대 이치에 맞지 않아서
모두 어리석고 뒤바뀐 것이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그대들을 어리석다 부르는 것이며
바로 이 어리석음이
나찰의 표상이므로
이 때문에 그대들을 지적해
뒤바뀌고 미친 법을 성취한다 한 것이네.
이 모든 허물이
다 술을 주거나 마신 인과(因果)이니
성냄과 어리석음의 인(因)이 되고
진심(瞋心)과 무명(無明)의 원인도 되어서
마침내 얼굴빛을 변하게 하며
나아가 이 인연 때문에
성냄은 얼굴빛을 검게 만들고
음주는 안색을 탁하게 하며
이 두 가지가 모두 여위게 만드니
목련(目連)이 보던 아귀이라.
그대들이 먼저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까지도 술을 마시게 하면서도
“죄의 과보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현재 벌써 아귀의 몸을 얻었으니
꽃의 과보는 이미 이와 같고
열매의 과보는 바야흐로 뒤에 있을 것이네.
모든 바라문들이 이 말을 듣고 있을 때 많은 외도들이 즉시
출가하였다.
77
다음으로 잘 분별하여 공덕을 공경할 뿐 문족(門族)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화씨성(花氏城)에 있던 어떤 두 왕자가 말투라국(末投羅國)으로 도주하여 의탁해 있었는데, 저 나라의 내관(內官)인 발라바약(拔羅婆若)이란 자가 그 속국[附庸國]의 주인이 되어 대중 스님들을 공양하되 손수 음식을 돌렸으며, 대중 스님들의 식사가 끝나면 사람을 보내어 풀 위에 남아 있던 음식을 거두어 궁중으로 가져오게 해서 음식을 향해 예배한 후에 그 음식을 먹었고, 남은 음식은 친애하는 이들에게 나눠 주었으니, 이 남은 음식을 먹는 이는 다 자신의 환란을 면하게 되었으므로 서로들 먼저 먹으려고 하였다.
두 왕자들에게도 주었는데, 왕자들은 먹고 나서 마음속으로 싫어하고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 곧바로 토해 버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출가한 사람들은 갖가지 잡된 종성이거늘 우리가 이제 그들이 남긴 음식을 먹었으니, 먹은 것을 토해 버린 뒤에라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때 저 속국의 주인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두 왕자야말로 어리고 어리석으며 지극히 무지하도다.”
곧 게를 설하였다.
이 남긴 음식을 얻기만 하면
지혜로운 이도 허물과 근심이 제거되거늘
저들은 의심하여 싫어하나니
이야말로 어리고 어리석은 자들이네.
불법에선 음식을 관찰하지만
외도에는 도무지 이런 일이 없으니
사문은 음식을 관찰하여
번뇌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네.
모니(牟尼)들이 닿았던 음식이라면
마땅히 받들어 공경해야 하며
손으로 그 남긴 음식을 잡거나
또는 물로 씻기만 하여도
이미 모든 허물이 제거되네.
속국의 주인이 뒷날 다시 음식을 주지 않으므로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저 두 왕자에게는 음식을 나누어 주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주인이 곧 게를 설하였다.
사문들이 남긴 음식을
저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들의 종족만을 믿기 때문에
닿은 것을 부정하다 말하면서
환희심을 내지 않으므로
내가 이제 주지 않는 것이다.
사문의 종성을 모른다 해서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나의 종성도 그들은 모르므로
나의 음식도 먹지 않아야 할 것이며
사문은 곳곳에서 태어났으므로
나의 종족보다 못하다고 한다면
나는 사문보다 못하니만큼
나의 음식도 먹지 않아야 할 것이네.
말하자면 종성도 없고
또한 나이의 많고 적음도 없으니
마치 저 말에 종족이 없는 것처럼
내관(內官)도 또한 이와 같도다.
내관이란 정해진 방향과 장소 없이
어느 곳에서나 올 수 있거늘
그들은 나의 부귀만을 보고
나의 종성은 보지 않았으니
나의 부귀만을 보았기 때문에
곧바로 내가 남긴 음식은 먹어도
사문이 남긴 음식은 먹지 않기에
이를 일러 어리고 어리석다 하는 것이네.
사문은 마음이 자유로워서
일곱 가지 재물을 구족하였거늘
어찌 사문의 음식은 먹지 않고
내가 남긴 것을 먹는단 말인가.
마치 우물에 반쯤 올라와 있으면
제대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내가 세력이 있는 것만을 보고
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내가 남긴 음식만을 먹는 것이네.
감자(甘蔗) 종족에서 태어난
수두왕(輸頭王)의 태자와 같은
그런 종족에서 왔으니
어찌 나보다 수승하지 않겠는가.
그의 뛰어난 지혜는
같은 이도 짝할 이도 없는데
그 종성을 취하지 않고
오직 그 덕행만을 취하였으니
종족으로서 악업을 저지른다면
이것이 바로 하천한 이들이고
계율을 갖추고 지혜가 있다면
이것이 바로 존귀한 이들이네.
그때 두 왕자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바른 길을 보여 주시니 바로 저희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이제부터는 공경히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당신이 이제 종성이라 한 것은
자못 법다운 말씀이 아니고
인행(因行)도 일정하지 않을 뿐더러
아는 것도 방소(方所)가 없다고 하지만
당신이 바로 분명하게 안 것이어서
치우친 말씀이 아니니만큼
당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가
곧 존귀한 종성입니다.
78
다음으로 만약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관찰해 알려면 여러 탑사(塔寺)에 나아가서 불탑에 공양하여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아리차비가국(阿梨車毘伽國)의 저 성문(城門)에 부처님의 머리털과 손톱을 모셔 둔 탑이 있었고, 탑 근처에는 니구타(尼俱陀)나무가 있었으며, 그 옆에는 우물이 있었다.
그때 바라문이 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
유행(遊行)하실 때에 저 탑을 보십시오. 이는 사문의 무덤으로서 왕의 복덕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온 땅을 덮어 주는 하나의 일산[盖] 같은 주인이시니, 이 탑을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
왕은 바라문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곧 신하들에게 빨리 이 탑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였다.
“내일 내가 나올 때까지 다시는 보이지 않게 하라.”
그러자 저 성을 지키던 신과 여러 민중들이 다 함께 슬피 울었으며, 한편 어떤 우바이는 공양을 베풀고 등불을 켜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지금 올리는 공양이 바로 마지막 공양입니다.”
또 어떤 우바새는 탑을 안고 슬피 울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 탑의 발을 안으니
마치 수미산이 무너져
오늘 다 파괴되는 것처럼
10력이신 세존의 탑도
이제 마침내 허물어지고 마는구나.
제게 만약 허물이 있다면
저의 참회를 들어 주소서.
부처님께서 지으신 업을
중생들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 우바새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 사람들이 이 불탑을 파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네.”
그 뒤에 왕이 사람을 보내어 삽을 잡고서 불탑을 헐기 위해 그곳에 이르렀는데, 탑과 나무가 모두 없어졌으므로 곧 게를 설하였다.
아, 이상하기도 하구나.
마치 바다의 큰 파도 소리처럼
온 성안에 큰 소리가 들릴 뿐
10력 세존의 탑은 보이지 않고
니구타나무와 우물까지도
그 있던 곳을 알 수가 없구나.
바라문들은 이것을 보고서
마음 깊이 부끄럽게 여기고
저 왕도 이 일을 듣고는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서
그때 왕이 생각하기를
‘누가 이 탑을 가지고 갔을까?’ 하고
왕이 스스로 탑에 가서 보아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네.
그때 저 왕은 천여 명의 사람들을 보내어 코끼리를 타고, 말을 달리면서 사방으로 수색하게 하였는데, 때마침 어떤 노모(老母)가 길가에 있다가 여러 사람들이
빠르게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이오?”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탑과 나무를 찾고 있습니다.”
저 노모가 말하였다.
“제가 아까 길에서 희유한 일을 보았는데, 어떤 니구타나무와 탑이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우물만은 기억나지 않으나, 여러 사람들이 머리에 하늘 갓[天冠]을 쓰고 목에는 꽃다발을 드리웠으며 몸에는 온갖 꽃을 띠고서 탑을 모시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가는 것을 보았을 때 희유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가던 곳을 일러 주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돌아가 들은 대로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왕은 또 이 말을 듣고서 곧 환희심을 내어 게를 설하였다.
저 탑이 스스로 날아갔다니
천상으로 간 것일까?
나 이제 마음으로 믿어 공경하여
매우 큰 환희심을 내나니
만약 내가 저 탑을 파괴했더라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네.
그때 왕은 저 탑이 있던 곳을 향하여 크게 공양을 베풀었으니, 이 탑의 지금 이름은 스스로 옮겨간 탑[自移塔]이며, 나무와 우물은 비가성(毘伽城)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
79
다음으로 불탑에는 큰 위신(威神)이 있으니, 그러므로 불탑을 공양해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축차시라국(竺叉尸羅國)에 어떤 탑사(塔寺)가 있었는데,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불을 놓아 태워 버렸으며, 부처님께서 다시 한 채를 지으셨으나 썩어서 무너지고야 말았다.
그 뒤에 어떤 비구가 구사타나(拘沙陀那) 국왕에게 구하여 청하였다.
“제가 이제 탑을 세우고 문설주를 만들겠으니, 바라건대 왕께서는 큰 나무 있는 것을 아끼지 마시고 저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왕이 곧 대답하였다.
“나의 궁궐 안에 있는 나무를 제외하고는, 어떤 나무라도 다 사용하시오.”
왕이 허락하였으므로 여러 비구들이 곳곳에서 찾아 구하였는데, 어느 한 마을 변두리에 큰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가에 수가수(首伽樹)라고 하는 큰 나무가 있었으니, 용이 보호하며 지켜서 근처에 악룡(惡龍)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감히 그 나무를 손댈 수 없었기에 그 나무가 매우 컸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지나 잎을 건드린다면 용이 그 사람을 죽여 버렸기 때문에
누구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기에 큰 나무가 있소”라고 하므로, 때에 비구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고 도끼 따위의 기구를 갖추어 가지고 가서 막상 나무를 베려고 하자, 다시 어떤 사람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이 용은 매우 악독한 용입니다.”
비구가 말하였다.
“내가 불사를 위해서는 이 악룡도 두려워하지 않소.”
그때 봉사하던 바라문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저 용이 매우 악독한 용인 만큼 만약 이 나무를 벤다면 많은 사람들이 상해를 입을 것이니, 부디 이 나무를 베지 마십시오.”
바라문이 곧 게를 설하였다.
당신은 저 사나운 용이
간탐 때문에 온갖 것에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나요.
당신은 이 사실을 기억하여
반드시 스스로 옹호하고
부디 이 나무로 말미암아
악룡에게 상해를 입지 마십시오.
비구도 역시 게를 설하였다.
그대는 독룡을 위하기 때문에
스스로 훌륭하다 생각하지만
나는 사람 가운데 용이신 분을 의지하여
그를 믿기에 또한 스스로 높다네.
그대의 힘이 수승해 보이지만
그만큼은 나도 세력이 있으니
뭇 사람들이 다 보게 해 보자.
나는 부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이제 여러 독룡들 가운데서
몸과 목숨을 버릴 것이지만
그대는 용왕이 되기 위해서
매우 공경하는 생각을 내는구나.
부처님께서는 부드럽고도 고요하시어
바로 중생들 가운데 왕이시므로
나도 이제 여래 바가바를 공경하노니
누가 독한 용을 항복시켜서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이냐.
그때 비구는 바라문과 함께 각각 도리를 주장하여 마침내 투쟁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때에 비구가 곧 그 나무를 베었으나 구름도, 우레도, 아무런 변이(變異) 형상도 없었다.
그러자 바라문이 이러한 사실들을 보고 나서 게를 설하였다.
과거에는 가지나 잎을 만지기만 하여도
구름이 일고 우레와 번개가 치더니
용, 너는 주술의 힘에 눌려서
죽어 저승으로 가 버린 것이냐.
그때 바라문이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 잠이 들었는데, 꿈에 독룡이 나타나
그를 향해 게를 설하였다.
그대는 화내거나 미워하지 마시오.
이것은 공양을 위해서지
나를 경멸해서가 아니니
내 몸으로 탑을 받들어야겠거든
하물며 나무로 탑의 설주를 만듦에랴.
10력 세존의 탑을
내가 어떻게 옹호해야 할까?
이 숲에서 저절로 나무가 자라는 것은
불탑에 쓰이기 위해서이니
이렇게 저절로 자라난 나무를
내 어찌 아깝게 여길 수 있겠소.
다시 다른 인연이 있으므로
이제 말하리니 잘 들으시오.
나도 또한 세력이 없습니다.
덕차가(德叉迦)용왕이 직접 와서
이 나무를 취한다면
내가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으며
이라발(伊羅鉢)용왕과
비사문(毘沙門)이
몸소 이곳으로 온다면
내게 어떤 세력이 있어서
저들 위덕 있는 천룡들을 막아 내겠소.
여래께서 현재세에 계실 때나
또 멸도하신 후세에 가서라도
탑묘(塔廟)를 만들어 세우는 자는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으니
모든 도를 얻은 자들은
사람이나 하늘, 야차이거나
명칭이 두루 시방에 유포되어
온 세계에 짝할 만한 이가 없을 것이네.
이와 같이 이름나는 것 때문에
탑 설주에 보배 방울을 다는 것이니
그 소리가 매우 조화롭고 아름다워
멀거나 가깝거나 다 듣고 안다네.
그때 바라문은 이 게를 들었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 곧 출가하였다.
80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노모(老母)가 소(酥) 항아리를 등에 지고 길을 가다가 암마륵(菴摩勒)나무를 보고서 곧 그 열매를 먹었으나, 먹고 나서는 갈증이 심하여 이내 우물로 달려가 물을 얻어 마시려고 하였다.
그때 물을 긷고 있던 사람이 곧바로 물을 주었는데, 먼저 암마륵과를 먹었기 때문에 물 맛이 마치 석밀(石蜜)처럼 감미로우므로 노모가 물 긷던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이 소 항아리와 그대의 물 항아리를 바꾸면 어떻겠소?”
그때 물 긷던 사람이 곧 그 말을 따라서 한 항아리의 물을 주었으므로, 노모는 얻어서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집으로 왔을 때는 먼저 먹은 암마륵과의 맛이 이미 다하였으므로 물을 떠서 아무리 마셔도 오직 물맛일 뿐 다시 다른 맛이라곤 없었다.
곧
친척들을 불러 모아 물맛을 보게 하였으나 모두들 이렇게 말하였다.
“이 물은 썩어 문드러졌으며 끄나풀과 진흙이 뒤섞인 냄새나고 더러운 물이거늘 그대는 이제 무엇 때문에 이런 물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가?”
노모는 이 말을 듣고 다시 스스로가 물맛을 보고는 깊이 후회하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 좋은 소를 이 냄새나는 물과 바꾸었을까? 일체 중생의 범부들도 또한 이와 같으니, 어리석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미래세의 공덕이 될 소 항아리를 더럽고 냄새나는 네 가지 뒤바뀜의 항아리와 바꿔서 처음에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진실이 아님을 알고는 모두 깊이 후회하리라. 아, 무엇 때문에 내가 공덕의 소 항아리를 뒤바뀌고 더러운 냄새가 나는 물과 바꾸었을까?’
그리고는 게를 설하였다.
아, 내가 무엇 때문에
3업(業)의 청정한 행으로
모든 유(有)에 집착된 것과 바꾸었을까?
마치 맑고도 좋은 소를 가지고
저 냄새나고 더러운 물과 바꾼 것과 같으니
암마륵과를 먹었기 때문에
혀가 뒤바뀌어 맛을 알지 못하고
냄새나는 물을 감로수로 여겼다네.
81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장자의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미움을 받아서 집을 떠나 숲 속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그럴 수도 없어서 이내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나무 밑의 못 물 가운데 그녀의 몸 그림자가 나타나 비추므로 때마침 계집종이 항아리를 이고 와서 물을 긷다가 물 속의 그림자를 보고는 자기의 그림자인 줄 착각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였다.
“내 얼굴이 이렇게 단정하거늘 무엇 때문에 남을 위해 항아리를 이고서 물 심부름을 할 것인가?”
그리고는 곧 항아리를 두들겨 부수고 집으로 돌아와서 주인에게 말하였다.
“지금 제 얼굴이 이렇게 단정한데 어째서 저에게 항아리를 이고 물이나 긷게 하시는 겁니까?”
이때 주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 계집종에게 혹시 귀신이 달라붙었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는 다시 항아리를 주고서 못으로 가 물을 떠오게 하였으나, 계집종은 오히려 그 그림자를 보고 다시 항아리를 부수었다.
그때 장자의 며느리가 나무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곧 빙그레 웃으니, 계집종이 그림자가 웃는 것을 보고
스스로 깨달아 어떤 부인이 나무 위에서 미소짓고 있는 것을 우러러보고는 비로소 그 단정한 여인의 얼굴과 의복이 자기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곧 부끄럽게 여겼다.
어떤 인연으로 이 비유를 말하는가 하면, 뒤바뀐 소견 때문에 어리석고 미혹된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이니, 마치 담복(薝蔔) 향유를 머리카락에 발라 두고도 어리석고 미혹된 중생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향내가 바로 자기 이마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곧 게를 설하겠다.
가루향을 몸에 바르면
그 향내가 의복과 영락에도 스며드니
뒤바뀌고 미혹된 마음도 그러하며
향내가 자기의 몸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마치 저 더럽고 어리석은 계집종이
그림자를 보고서 자기 얼굴이라 하는 것과 같네.
82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그 작은 새끼가 점점 커지자,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에게 물었다.
“무엇을 먹어야 합니까?”
어미 고양이가 새끼에게 대답하였다.
“사람들 스스로가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밤이 되자 새끼 고양이가 어느 집에 가서 항아리들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고는 서로가 이렇게 경계하였다.
“소(酥)와 젖과 고기 등의 매우 좋은 것들은 덮개로 덮어 두고, 닭이나 병아리 같은 것은 높이 얹어 두어 고양이가 먹지 못하도록 하여라.”
이에 새끼 고양이는 곧 닭이나 소, 젖, 타락이 다 자기의 먹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비유를 들어서 말하는가 하면, 부처님께서 삼먁삼보리의 도를 성취하시어 10력을 구족하시고, 마음속 바람이 이미 만족하시어 대비심으로 많은 중생들을 구제하셨는데, 그때에 세존께서 이렇게 염언하셨다.
‘무슨 법으로 교화하고 제도해야 할까?’
그러자 대비심(大悲心)이 대답하였다.
“일체 중생들의 마음과 행동에 그대로 드러날 것이니, 타심통의 지혜로 마음속 번뇌와 일체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라.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 등은 긴 밤에 늘어나고 자라나며, 항상 있다[常]는 생각과 즐겁다[樂]는 생각, 나[我]라는 생각, 깨끗하다[淨]는 생각은 거듭 되풀이되어 서로 꼬리를 문다.”
항상됨이 없는[無常] 고(苦)나 공(空), 내가 없는[無我] 법은 늘어나고 자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나서 중생들을 위하여 모든 뒤바뀜에 대한 대치법(對治法)을 설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래의 설법은 미묘하고 매우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우므로 이른바 도를 해설하신 것이니, 어떻게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설하셨는가 하면, 모든 중생들에게 있는 뒤바뀐 견해의 생각을 관찰하여 알고 난 뒤에 그에 따라
알맞게 법의 요체를 설하셨다.
중생들 스스로 갖가지 행이 있기 때문에 여래께서 대치법을 설하시어 뒤바뀐 생각을 깨 버리셨으니, 마치 고양이 새끼를 위해서 고기와 소, 젖을 덮어 둔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83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나라의 한복판에 아주 높고도 큰 돌기둥을 세우고서 사다리, 도르래, 동아줄 따위를 죄다 치워 버리고 그 기둥 머리에 석공(石工)을 안치해 두었으니, 왜냐 하면 저 석공이 만약에 살아 있을 경우 혹시 다른 곳에 또 이런 돌기둥을 세워 이보다 더 훌륭하게 할까 염려해서였다.
그때 저 석공의 권속과 친척들이 밤중에 기둥 옆으로 모여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그대가 내려올 수 있겠는가?”
그때 석공은 여러 가지 방편이 많았으나, 곧 옷의 올을 풀어서 두 가닥을 기둥 아래까지 드리웠고, 그러자 그 권속들이 곧 굵은 실을 옷의 올에 매어 주었으며, 석공은 그 굵은 실을 당겨 기둥 위에 올린 다음 손으로 그 실을 잡고서 여러 친족들에게 부탁하였다.
“그대들은 이제 다시 조금 굵은 줄을 매어 다오.”
이에 친족들이 곧 그 말에 따라 계속 줄을 올려줌으로써 최후에 큰 동아줄을 만들 수 있었고, 그제서야 석공이 줄을 타고서 내려왔다.
말하자면 돌기둥은 생사를 비유한 것이오, 사다리와 도르래는 과거 부처님들께서 이미 열반하신 법을 비유한 것이고, 친족들은 성문 대중을, 옷의 올은 과거 부처님들의 선정과 지혜를 비유한 것이다. 옷의 올을 푼 것은 애욕에 대한 허물을 관찰하여 맛 따위의 법을 버리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옷의 올을 위에서 내려 줌은 신심에, 굵은 실을 매어 올려 주는 것은 착한 벗을 가까이 하여 다문(多聞)을 얻음을 비유한 것이니, 가는 실을 다문의 실에 매달고, 다문의 실을 계율의 실에 매달며, 계율의 실을 선정의 실에 매달고, 선정의 실을 지혜의 실에 매달아 이러한 굵은 줄로써 굳게 묶는 것은 생사를 묶는 것에 비유한 것이며, 기둥 위에서 내려옴은 생사의 기둥에서 내려옴을 비유한 것이다.
신심으로 실마리를 삼고
다문과 계율은
마치 저 굵은 실마리와 같으며
계율과 선정은 작은 줄과 같으니
지혜로써 굵은 줄을 만들어
생사의 기둥에서 내려오네.
84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나라에 왕위를 이어받을 후손이 끊어지려 하였는데, 때마침 한 왕족이 먼저 산으로 들어가 도를 배워서 신선을 구하였으므로 곧 억지로 그를 데려다가 왕위에 세웠다.
이 왕이 침구를 맡은 사람에게 의복과 음식까지도 책임을 지게 하므로, 때에 침구를 맡은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 왕께서는 이제 일일이 다 저에게 책임지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침구에 대한 일을 알 뿐이고, 목욕이나 의식과 같은 다른 일은 다 맡은 사람이 따로 있으므로 제가 감당할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로써 일체의 모든 업도 저 왕의 침구를 맡은 사람이 각각 전담하여 맡은 바가 있다고 한 것처럼 업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각각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얼굴이 단정하거나 병이 없거나 재물을 좋아하거나 지혜롭거나 등등 모든 업이 각각 달라서 어떤 업은 병이 없음을 얻고, 어떤 업은 단정한 모습의 힘을 얻는 것이다. 마치 저 선인이 침구 맡은 사람에게 갖가지 물자를 요구하여도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만약 훌륭한 종족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반드시 재물이 풍부한 것은 아니며, 모든 업에 따라 과보를 받음이 각각 달라서 한 가지 업으로 갖가지 과보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단정한 업을 짓는다면 단정한 용모의 힘을 얻을 것이며, 재물이 넉넉한 것은 마땅히 다른 업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갖가지 깨끗한 업을 닦아 익혀서 갖가지 과보를 얻는 것이다.
병이 없거나 얼굴이 단정하거나 귀한 종성이거나
지혜롭거나 능력이 있음에는 각각 다른 원인이 있으니
마치 저 선인(仙人) 왕이
침구를 맡은 이에게서 갖가지를 찾아 갖추려는 것과 같도다.
85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한 나라의 왕이 좋은 말들을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일찍이 이웃 나라의 왕과 더불어 전투를 벌이매 이 나라 왕에게 좋은 말들이 있음을 알고는 곧바로 물러나 흩어져 버렸다.
그때 국왕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앞서 말을 기른 것은 바로 이웃 나라에 대적하려고 한 것이나, 이제 다 물러나 흩어졌으니 말을 길러 무엇을 하겠는가. 마땅히
이 말들로 사람들의 힘에 보태어 준다면 말도 줄어들지 않을 뿐더러 사람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유사(有司)에게 명을 내려 모든 말들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항상 연자방아를 돌리는 데 사용하게 하였다.
여러 해가 지나서 그 이웃 나라가 다시 국경을 침범해 왔으므로 곧 말을 모아들이게 명령하였다. 저들과 전투를 벌였으나 이 말들은 연자방아 돌리는 데에만 사용했기 때문에 그냥 돌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으며, 설령 매와 채찍을 가하더라도 역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 만약 해탈을 얻으려면 반드시 마음부터 닦아야 할 것이지만, 5욕락(欲樂)을 누린 뒤에 해탈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는 죽음의 적이 이미 다가왔는데, 마음은 아직 다섯 가지 욕망의 즐거움을 사모하고 집착하는 것과 같아서 곧장 해탈의 과(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곧 게를 설하였다.
지혜로써 마음을 조복하여
5욕락에 집착하지 말 것이니
본래 마음을 조복하지 않았기에
임종할 때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네.
마음이 이미 길들여져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적정(寂靜)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항상 5욕락을 탐내어서
미혹되고 황망하여 깨달을 수 없으니
마음이 이미 길들여져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적정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항상 5욕락을 탐내어서
미혹되고 황망하여 깨달을 수 없으니
마치 저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말이
적과 싸울 때 돌기만 하는 것과 같네.
86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한 나라의 왕이 몸에 병이 들었으나 나라 안의 모든 의사들이 아무도 치료할 수 없었다.
그때 어떤 훌륭한 의사가 먼 곳에서 와서 왕의 병을 치료해 낫게 하였으니, 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의사의 힘을 입었으니 반드시 후한 보답을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가만히 시신(侍臣)을 보내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저 의사가 살던 곳으로 가서 가옥을 비롯한 생활 도구와 인민, 논과 밭, 코끼리와 말, 소와 양, 부리는 종들과 심부름꾼 등 일체를 다 갖추어 놓게 하고는 그제서야 왕이 의사를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저 의사는 왕이 자기의 눈앞에서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가면서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였는데, 집에 다 와 갈 무렵에 길에서 소, 양, 코끼리, 말 등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만나서는 “이것이 누구 것이냐?”라고 물으니, 모두들
저 의사의 이름을 일컬으면서 “이것은 바로 아무 의사의 소유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드디어 자기 집에 이르러서는 그 가옥의 장엄이 화려함과 평상, 장막, 담요, 금, 은 따위의 기물들과 나아가 그 부인의 갖가지 영락과 의복을 보고는 마치 하늘의 궁궐과 같음에 매우 놀랐다.
그 부인에게 물었다.
“이와 같이 성대한 일들이 무엇 때문에 얻어진 것인가?”
부인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어찌 모르고 계신가요? 당신이 저 국왕의 병을 치료하여 병이 나았기 때문에 왕께서 당신께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남편이 이 말을 듣고는 깊이 환희심을 내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에게 지극한 덕이 있어서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은 것이 내가 본래 바라던 것보다 더하거늘, 나의 뜻이 모자라기 때문에 처음 떠나올 때 아무런 소득도 없다고 여겨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도다.’
이 비유를 들어 말하려는 그 근본 이치를 이제 설명하자면, 의사는 모든 선업을 비유한 것이며, 왕이 직접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은 현재의 과보를 얻지 못해 그 소득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저 의사가 처음에는 물자를 보지 못하여 소득이 없는 줄 알고 마음이 섭섭했던 것은 현재의 몸이 선업을 닦기는 해도 아직 과보를 얻지 못해 마음이 섭섭하게 여기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며, 소득이 없는 그대로 집으로 가는 것은 마치 몸을 버리고 후세를 향해 가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며, 도중에 소, 염소, 코끼리, 말들의 무리를 본 것은 마치 중음(中陰)에 이르러 몸소 갖가지 좋은 모양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내가 선업을 닦았기에 이 좋은 과보를 얻는 것인 만큼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며, 이미 천상(天上)에 이른 것은 자기 집에 가서 갖가지 성대한 일을 보고서야 비로소 왕에게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는 것에 비유하였다. 은혜를 갚을 줄 안다는 것은 단월(檀越)인 시주(施主)가 하늘에 태어나고 나서 바야흐로 보시와 계율을 알아, 이와 같은 과보를 받고서야 비로소 부처님 말씀이 진실되어 허망하지 않음을 알고, 적은 선업을 닦고서도 무량한 과보를 얻음을 비유한 것이다.
곧 게를 설하겠다.
보시의 과보를 못 보았을 때엔
마음에 의심이 있고 후회스러워
한갓 헛되이 피로하기만 할 뿐
끝내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여기지만
이미 중음(中陰)에 태어나
비로소 좋은 모양을 보게 되면
마치 의사가 자기 집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네.
87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두 여인이 함께 암라과(菴羅菓)를 얻었는데, 한 여인은
씨를 남겨 두지 않고 다 먹어 버렸고, 다른 한 여인은 씨를 남기고서 과일만 먹었다.
씨를 남겨 둔 여인은 저 과일의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좋은 밭에 씨를 심어 뿌리를 굳게 하고서 때에 맞추어 물을 주었기에 아주 훌륭한 과일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이는 마치 저 세간 사람들이 착함의 뿌리를 위하여 착한 업을 많이 닦았기에 뒷날 과보를 얻는 것과 같으며, 씨까지 먹은 여인은 마치 사람들이 선업을 알지 못하고서 끝내 선을 닦거나 짓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후회하는 것과 같다.
곧 게를 설하겠다.
암라과를 얻어 먹은 여인이
끝내 씨를 남기지 않았다가
뒷날 남들이 과일 먹는 것을 보고는
비로소 후회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다른 한 여인이
씨를 심어 다시 과일을 얻어서
크게 기뻐하는 것과도 같네.
88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옛날에 수미라(須彌羅)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우스갯소리[戱笑]를 잘하였는데, 어떤 한 나라의 왕과 더불어 풍자와 농담을 즐겨 해서 왕의 뜻에 맞추어 주었다.
그때 비구가 왕에게 땅을 얻어 승방(僧坊)을 지으려 하자, 왕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빨리 쉬지 않고 달려서 갈 수 있는 곳까지의 땅을 그대에게 주겠소.”
그러자 비구가 다시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서 곧바로 빠르게 달렸으니, 비록 피로하더라도 땅을 탐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멈추어 쉬지 않았다. 결국 이 때문에 병을 얻어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자 곧바로 땅에 누워 뒹굴어 갔는데, 잠시 후 다시 피로해졌으므로, 곧 지팡이 하나를 앞질러 던져 가게 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지팡이가 있는 곳까지 모두 다 내 땅이다.”
이미 비유에 걸맞는 이치를 말하였지만, 내가 이제 다시 설명하겠다.
수미라 비구가 땅 때문에 아무리 피로하여도 쉬지 않은 것처럼 부처님도 그와 같이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생각하시길 ‘어떻게 해야 일체 중생들이 사람과 하늘의 즐거움 얻어 해탈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하시며, 또 수미라 비구가 달려서 쉬지 않은 것처럼 부처님 바가바께서도 또한 이와 같으시어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과 앙굴마라(鴦掘摩羅) 같은
이런 사람들을 다 조복시키고 그 밖에 중생들 가운데 교화하여 제도할 자가 있으면 곧바로 가서 그들을 모두 다 교화하여 제도하신다.
또 수미라 비구가 이미 피로해졌으므로 곧바로 땅에 누워서 뒹굴러 가는 것처럼 부처님께서도 또한 이와 같으시어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시느라 이미 피곤해졌으므로 이 음신(陰身)을 사라쌍수(娑羅雙樹)에 의지해 누이시니, 마치 가시가(迦尸迦)나무는 그 뿌리를 잘리어 죄다 타락되었지만 오직 이 쌍수에 몸을 의지해 누워 계셨기 때문에 오히려 정진할 마음을 버리지 않고 구시라(拘尸羅)의 모든 역사(力士)들과 수발타라(須跋陁羅)를 제도하신 것이다.
또 수미라 비구가 땅을 더 얻기 위해 지팡이를 던져 가게 한 것처럼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으시어 열반에 드실 때에도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몸의 사리를 여덟 휘[斛] 네 말[斗]이나 내셔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시니, 그 몸을 부순 사리가 비록 겨자씨만큼 아주 작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부처님과 다름없이 공양함은 그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곧 게를 설하였다.
우루빈라가섭 등
그의 권속과 도당들과
우가(優伽)와 앙굴마 무리들을
여래께서 몸소 제도하시고
정진과 선정의 힘으로
마지막으로 기대어 누워 계실 때에도
오히려 구시라 역사(力士)들을 비롯해
수발타라 등을 제도하시며
나아가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몸의 사리를 흩으시어
법을 남겨 두고 열반하셔서
부처님께 다 공양하니
마치 저 수미라 비구가
지팡이를 던져서 멀리 가게 하는 것과 같도다.
89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축차시라국(竺叉尸羅國)의 박라우라(博羅吁羅) 마을에 칭가발타(稱伽拔吒)라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가 스님들을 위해 절을 지었으니, 지금 그 절의 이름은 가발타(伽拔吒)이다.
과거에 칭가발타는 장자의 아들로서 본래 부유하게 살다가 뒤에 쇠잔해져서 드디어 빈궁함에까지 이르게 되자, 그의 친척과 권속들이 다 경멸하며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그는 마음이 우울하고 괴로워서 곧 집을 떠나 동반(同伴)들과 함께 대진국(大秦國)으로 갔으며, 거기에서 많은 재보(財寶)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서야 친척과 권속들이 이 사실을 듣고는 각각 음식과 향, 꽃, 기악을 베풀어서 길에까지 나와 맞이하였다.
그때 칭가발타는 몸에 미복(微服)을 입고서 동반들 앞에서 걸어왔는데, 그가 과거에는 빈궁하였지만 나이가 젊었고, 현재는 재보는 얻었지만 나이가 좀 늙었으므로, 맞이하던 여러 친척들이 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 있소?”
칭가발타가 이내 대답하였다.
“지금 아직 뒤에 있을 거요.”
친척들이 다시 동반들 가운데로 와서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소?”
동반들이 대답하였다.
“앞에 가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오.”
그때 종친들이 그곳으로 다시 와서 말하였다.
“그대가 바로 칭가발타이면서 왜 우리에게 ‘뒤에 있다’고 하였는가?”
칭가발타가 종친들에게 말하였다.
“내 몸이 칭가발타가 아니고 저 동반들 가운데 있는 낙타 등에 실은 재보가 바로 칭가발타요. 왜냐 하면 과거에 여러 친척들께서 나를 멸시할 적엔 아예 말을 서로 하지도 않다가, 이제 재보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이렇게 맞이해 주니, 그러므로 칭가발타는 뒤에 오는 낙타의 등 위에 있소.”
종친들이 말하였다.
“그대가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인지 그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네.”
칭가발타가 곧 대답하였다.
“내가 빈궁할 때엔 당신들과 말을 하여도 대답조차 하지 않다가 이제 재보가 많은 것을 보고는 이렇게 공양거리를 베풀어 친절하게 와서 나를 맞이하니, 이는 재보를 위해 온 것이지, 나의 몸을 위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이 비유를 꺼낸 것은 세존께서 하신 일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말하자면, 칭가발타가 재물을 얻었기 때문에 시골 친척들이 공양거리를 갖추어 와서 맞이한 것처럼 부처님께서도 그와 같으셔서 이미 성불하셨기 때문에 사람, 하늘, 귀신, 모든 용왕들이 다 와서 공양한 것이니, 이는 부처님의 육신을 공양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부처님의 공덕을 공양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도를 얻지 못했거나 공덕이 없을 때엔 중생들이 함께 말도 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공양이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공덕을 공양할 뿐 육신을 공양하는 것이 아니며, 또 아무리 일체의 하늘과 사람들의 공양을 널리 받는다 하여도 늘거나 주는 것이 없음을 잘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늘, 사람, 아수라와
야차, 건달바 무리들이
다 와서 널리 공양하여도
부처님께서는 기뻐하는 마음이 없으시니
이는 바로 공덕을 공양하는 것이지
나를 공양하는 것이 아님을
잘 관찰하시기 때문이네.
마치 저 칭가발타가
여러 권속들에게 지시하기를
“나는 뒤에 있다”고 한 것처럼
그 비유도 또한 이와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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