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1권
대장엄론경 제11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61
다음으로 지혜가 적은 사람도 부처님 상호를 보면 오히려 착한 마음을 내거늘, 하물며 지혜로운 대덕으로서 어찌 착한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계실 때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91일 동안 여름 안거(安居)1)에 들어갔는데, 여러 소 떼들을 부처님 정사(精舍) 근처에 모아 두고 소 젖으로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그때 천 명의 바라문들이 우유를 탐내어 소먹이는 사람들과 함께 행동을 같이하니, 소먹이는 사람들이 바라문이 외우던 위타(韋陀)2) 경전을 듣고는 죄다 막힘 없이 두루 통달하여 잘 분별하게 되었으나, 어떤 바라문은 이름만 바라문일 뿐 실상 아는 것이 없었으며, 또한 주술(呪術)에 밝은 자는 위타경을 모르고, 위타경에 밝은 자는 주술을 알지 못하였다.
세존께서 여름 넉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시고 자자(自恣)3)할 때에 왕이 소먹이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셨다.
“이제 젖이 필요 없으니 물풀[水草]을 따라 너희들의 소를 놓아 주어라.”
그리고는 또 명령하셨다.
“너희들은 떠나갈 때 반드시 부처님께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고, 부처님께서 만약 법을 설해 주신다면 다 자세히 듣도록 하여라.”
그때 저 소먹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불세존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일까, 아닐까?’
그리고는 기타(祇陁)숲을 향해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나무 아래 앉아 계시다가 소먹이는 사람들이 숲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아시고 곧 그들을 위해 몸의 털구멍으로부터 모든 광명을 놓으시니, 그 빛이 비추는 것이 온 숲과 들을 두루 덮어 마치 녹아 내리는
금덩어리 같기도 하였고, 불 속에 소(酥)를 비내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소먹이는 사람들이 보고는 싫증내지 않고, 오히려 희유하여 보기 드문 것이라는 생각을 내어 서로가 말하였다.
“이 광명이 마치 첨복(瞻蔔)4)꽃 같이 온 숲 속에 두루 가득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빛일까?”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이 숲이 매우 화려하게 장엄되어
빛깔이 갑자기 전과 다르니
혹시 하늘의 보배 숲이
이 동산으로 옮겨진 것이 아닐까?
밝게 빛나는 것이 금으로 지은 다락 같기도 하고
제석천의 깃발[幢] 같기도 하며
번개보다 더 밝게 빛나고
소유(酥油) 불보다 더 이글거리니
혹 해와 달의 천자(天子)가
이 숲 속에 내려와 노는 것은 아닐까?
그때 소먹이는 자들이 이 게를 설한 뒤에 기타숲으로 향하여 세존의 처소에 이르러서는, 부처님의 둥근 광명이 마치 백천 개의 해와 같고 서른두 가지 대인의 모습이 환하고 밝게 비춤을 보고서 제각기 다 기뻐하며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각각 찬탄하고, 곧 게를 설하였다.
석가 종족의 왕자의 몸으로
단정하고 엄숙하며 매우 미묘하여
위광(威光)이 지극히 치성하므로
보는 이마다 환희심을 내어
몸과 마음이 다 쾌락하네.
훌륭하도다, 고요하고 맑으며
잠잠하여 두려움이 없으시며
그 색상(色相)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일체종지에 잘 들어맞으시니
세간 사람들이 다 전해 말하기를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으신 이가 바로 불타’라고
부처님을 일컫지 않는 이가 없으며
마음에 새겨서 붙잡아 기억하고
입으로도 또한 이렇게 말하네.
다 갖추어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한마디로 그 요지를 묶어서 말한다면
바로 석가 종족 중에서
태양과 같으신 이라.
이름과 실상이 모습[色像]에 걸맞고
모습도 또한 이름에 걸맞으며
상호와 복덕과 이익이
밝게 드러나 나타나매
마치 뭇 보배가 나열되어
스스로 장엄하고 꾸민 것 같으며
위덕(威德)이 매우 밝게 빛나서
둥근 광명이 한 길이나 가득하니
마치 진금으로 이루어진 산과 같이
뭇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아
볼수록 즐거워하며 떠날 줄 모르네.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음은
바로 일체종지의 몸 때문이니
사람들이 크게 외쳐
말한 것처럼
일체종지가 바로 이 몸 안에 있고
세간에 뛰어난 그 모든 지혜가
반드시 이 안에 있을진댄
어찌 공덕의 지혜가 있다면
이와 같은 지혜의 몸을 보지 않으랴.
이와 같이 묘한 몸의 그릇은
솜씨내어 그림을 그린다 해도
진실한 이라야만 감당할 수 있을 뿐
일찍이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니
끝내 다시 의심을 내거나
일체지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이처럼 미묘한 형용(形容)을 지닌 이라면
공덕이 반드시 충분할 것이니
이 미묘한 형용을 지니신 만큼
끝내 공덕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우리는 결정코 알아서
음성만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네.
그때 소먹이는 사람들이 거듭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결정코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우리가 소나 먹이면서 무슨 지혜의 힘이 있다고 결정코 알겠는가? 하지만 우리도 결정코 알아야 하겠으니,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
그리고는 또 말하였다.
“우리가 비록 소를 먹이고는 있지만 분별하여 알 수는 있지 않은가? 저 세존께서는 왕궁에서 태어나 지능(知能)이나 기술 같은 일체 모든 것은 다 배우셨을지라도 이 소먹이는 법만은 알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이제 소먹이는 일을 물어 본다면 반드시 대답하지 못하실 것이다.”
곧 게를 설하였다.
위타경과 활 쏘는 기술
의술의 처방과 제사 지내는 법
천문(天文)과 아울러 소리에 대한 논리
문필의 근본이 되는 논리
천사(天祀)를 세우는 논리
모든 논리의 근본이 되는 이치와
공교로운 언사를 통한 논리
방탕한 짓을 잘 배워 아는 논리
재물과 이익을 구하여 찾는 논리
청정한 종성에 대한 논리
일체 만물에 대한 논리
열 가지 명자(名字)에 대한 논리
산수(算數)로 계교하는 논리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논리
근본이 되는 서학(書學)의 논리
음악과 창기(倡伎)에 대한 논리
피리를 불고 노래하는 법에 대한 논리
춤추는 법, 웃는 법에 대한 논리
속임수와 점잖은 행동으로
거동할 때 꽃다발로 장엄하는 논리 등
이와 같은 모든 논리를
두루 다 잘 통달하셨을 것이며
피로를 제거하는 안마하는 법
마니(摩尼)의 값을 잘 구별하는 법
의복 및 비단을 잘 분별하는 법
채색 및 도장[臘印]을 분별하는 법
기관(機關)과 물건을 만드는 법
활 쏘는 기술과 더하고 빼는 산수
그 외에 옷 마르는 모든 법과
조각하여 뭇 형상들을 만드는 법
글을 쓰거나 글씨를 쓰는 법 등
이러한 모든 법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으시며
또한 향을 섞거나 꽃다발을 만드는
이러한 법도 잘 아시고
점을 치거나 꿈을 풀이하는
이러한 법도 잘 아실 것이며
나는 새소리도 잘 아시고
여자와 남자의 상(相)도 잘 아시며
코끼리나 말을 타는 법도 잘 아시고
북 소리 또는 북을 두드리는 법과
싸우는 법 또는 싸우지 않는 법 등
이러한 법도 잘 아실 것이며
말을 길들이고 창을 쓰며
뛰고 던지는 법을 잘 아시며
달아나는 법과 건너뛰는 법도 잘 아셔서
이와 같은 등의 모든 법을
다 능숙하게 연마하지 않음이 없으시네.
“이러한 모든 수승한 뭇 지능과 기술을 왕자로서 환히 통달했다 하여도, 이러한 일은 그가 배워서 안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기이할 것도 못 되겠지만, 만약에 이 서민들이나 배우는 소먹이는 법 따위의 미천한 일까지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참다운 일체종지의 사람인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소먹이는 사람들이 곧 부처님께 질문하였다.
“소를 먹임에 있어서 몇 가지 법을 성취해야 소들을 늘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열한 가지 법을 성취해야 소 떼를 불려서 줄어들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색(色)을 알지 못하거나, 상(相)을 알지 못하거나, 일찍 일어나서 털어 주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부스럼이 난 데를 덮어 주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연기를 피우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큰길로 이끌어 주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소가 잘 따라오도록 즐겁게 해주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건너가는 곳을 알지 못하거나, 풀어 놓기 좋은 곳을 알지 못하거나, 소의 젖을 남겨두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소가 주인과 도적을 잘 분별하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이러한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자라면 소 먹이는 법을 안다고 할 수 없으니, 이 법을 안다면 잘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소먹이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모두 환희심을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나이 많은 소먹이는 사람도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우리들이 이 열한 가지 법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래 세존께서 일체종지를 구족하셨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
소먹이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믿고 알아서 부처님께 출가시켜 주시길 구하므로, 부처님께서 곧 비구로서 마땅히 배워야 할 열한 가지 법을 말씀하셨으니, 수다라에서 자세하게 설하신 것과 같다.
62
다음으로 공양과 공경을 구하지 않는 이러한 대인(大人)은 오직 계행(戒行)을 지키는 것만 구할 뿐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여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5)에 계시다가 90일 동안의 여름 안거를 마치시고 떠나가려 하시니, 수달다(須達多)6)가 곧 세존께 이곳에 더 머무르시길 청하였으나, 여래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비사가녹자모(毘舍佉鹿子母)7)와 여러 우바이(優婆夷)8)들이 또한 부처님께 청하였으나, 여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사위국 온 나라의 우바새(優婆塞)9)들과 아울러 나이 많은 대신, 재상들도 역시 부처님께 청하였으며, 가비리왕(迦毘梨王)의 여러 형제들과 기타(祇陀)의 여러 아들들, 바사닉왕(波斯匿王) 등도 또한 부처님께 청하였으나, 세존께서는 각기 다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때 수달다는 부처님의 허락을 받지 못해 소원을 이루지 못하자 집으로 돌아와서는 근심과 괴로움에 눈믈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여래께서 옛날에 보살이었을 때 가란타(迦蘭陀)의 울두람불(鬱頭藍弗)에게 가셨었는데, 저를 따르던 무리들도 부처님과 이별할 때에는 크게 괴로워하였거늘, 하물며 수달다는 진제(眞諦)를 본 부처님의 우바새로서 오랫동안 받들어 섬기다가 세존과 이별하는 것이니, 마땅히 슬프고 괴롭지 않겠는가? 이 사실은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 자세하게 말한 그대로이다.
그때 수달다의 계집종인 복리가(福梨伽)가 밖에서 물을 가지고 수달다의 처소에 들어와서 가지고 온 물을 커다란 그릇에 붓다가 미처 물을 다 붓기도 전에 장자가 슬피 우는 것을 보고는, 물병을 땅에 놓고 장자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슬피 우는 것입니까?”
장자 수달다가 계집종에게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다른 곳으로 가려 하시므로 여러 큰 장자들과
국왕과 대신들이 모두 다 만류했으나, 더 머물려고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내가 슬퍼서 우는 것이다.”
계집종이 장자에게 아뢰었다.
“그렇게도 부처님께 청하여 이 나라에 더 머무시도록 할 수 없단 말입니까?”
장자가 말하였다.
“우리들이 힘껏 청하였고, 온 성안의 모든 사람들과 수승한 바라문들도 다 함께 청하였으나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시므로, 국왕과 대신들까지도 여래를 청하다가 모두가 극도로 지쳐 머무시게 할 수 없었느니라. 세간의 진제(眞濟)께서 지금 꼭 가고자 하시니, 내가 연모(戀慕)하기 때문에 근심되고 괴로워서 즐겁지 않노라.”
장자가 다시 복리가에게 말하였다.
“나만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위국 사람들이 모두 다 즐거워하지 않느니라.”
곧 게를 설하였다.
온 사위국 안에 있는
남녀노소 인민들이
모두 다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마치 월식(月蝕)이 일어날 때면
사람마다 다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으니
모두 함께 구하여 청해야만 하리라.
그때 복리가가 이 게를 듣고는 얼굴빛이 밝아지며 마음에 환희심이 생겨서 장자에게 아뢰었다.
“더 이상 근심하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기뻐하십시오. 제가 부처님께 청하여 이 나라에 더 머무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수달다가 곧 계집종에게 말하였다.
“이 나라의 왕을 비롯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청했어도 여래를 머무시게 할 수 없었거늘, 네가 지금 자신 있게 ‘부처님께 청하여 더 머무시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하니, 너의 말을 믿지 못하겠노라.”
복리가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제 꼭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수달다가 복리가의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기뻐 펄쩍펄쩍 뛰면서 곧 계집종에게 물었다.
“너에게 무슨 힘이 있느냐?”
복리가가 말하였다.
“저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만, 세존 자신께 대비하신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일체종지에 의지해 머무시어
마치 송아지를 생각하는 어미소처럼
자비로써 자식들을 교화하시는
그 마음 피로함도 싫증냄도 없으시며
깊은 번뇌의 바다에 빠진 중생들을
여래께선 항상 구제해 주시려고
마치 송아지를 잃은 어미소가
도로 찾아 구하기 위해 머무르듯 하시니
제가 대비하신 그 옷자락을 잡는다면
반드시 도로 계시게 할 수 있으리라.
부처님께서는 종족(種族)이나
부귀, 단정함, 재색(財色), 좋고 싫음,
그 어느 것도 취하지 않으시고
오직 뛰어난 신심만을 관찰하시니
선근이 이미 무르익은 이로서
만약 이 중생들을 본다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구제하기 마련이므로
제가 이제 부처님을 만류한다면
나라 안의 모든 인민들이
다 함께 환희심을 낼 것이네.
그때 복리가는 물을 지고 온 젖은 옷을 말리지도 않고 곧바로 동무들과 함께 기원정사로 갔다. 그러자 저 국왕과 대중들이 모두 기원에 있다가 길을 터 주어서 복리가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복리가는 본래 심었던 선근을 다 드러내어 큰 소리로 부처님께 청하며 게를 설하였다.
국왕과 대신,
찰제리, 바라문 등
일체의 모든 수승한 사람들이
부처님을 공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저도 이제 원을 세워
마음껏 즐거이 공양하고 싶어서
지금 부처님께 청하오니
바라건대 이 청을 들어 주소서.
비록 모든 수승한 사람들이
세존께 청한 줄은 알고 있으나
여래께서는 대자비로서
마땅히 저의 청만은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선 마음이 평등하시어
지극히 미천한 사람에게나
고귀한 제석 같은 이에게나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네.
제가 빈궁(貧窮)의 바다에 떨어져
모든 고통의 파도에 휩쓸려
끝없이 헤매고 있는 동안
항상 고뇌의 소리를 들었사오니
세존께선 마땅히 가엾이 여기시어
빈궁에 시달리는 자들을 건져 주소서.
무리들 가운데 견고하고도 수승하신 이를
제가 이제 깊이 공경하며 믿사오니
대비하신 이께선 증명해 아시리라.
큰 땅과 허공
이 일체 세계 가운데
모든 것을 다 알아보시어서
분명하게 아시지 못할 것이 없네.
오직 부처님만이 구족하신 눈으로
일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니
제가 이제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해
공양한 일은 아직 없지만
믿고 받아 지녀 이해하는 마음만은 있습니다.
이 몸이 저의 것이 아니라
남에게 매여 자유롭지 못해서
부처님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오직 바라건대 저의 청을 들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만약 멀리 가신다면
제 마음은 술에 취하여 주정하듯 할 것이며
육신[色身]은 이미 공양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 만약 더 머무르신다면
제가 법신(法身)도 공경할 수 있으리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도
제가 다 받아서 행하겠사오니
훌륭하신 이여, 오직 바라건대 여기 머무시어
빨리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소서.
귀하거나 천하거나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며
중생 가운데 가장 견실하셔서
일체 세간과 함께 하시어
청하지 않아도 친한 벗이 되어 주시니
그물 같은 갈퀴가 손가락을 덮고
바퀴 같은 모양으로 장엄하신 손으로
일체의 모든 공포를 위안하여 주신다면
그 누가 이보다 더 대비심이 있겠으며
인자하신 명칭 세간에 가득하사
모두가 다 ‘참된 제도자’라 일컬으니
6사(師)들이 스스로를 종지(種智)라고 칭하다가
먼저 이미 조복되었으므로
그 누가 이같이 대중들 앞에서
두려움 없는 사자후를 외칠 수 있으며
삼계에 두루 이름을 떨치시어
움직이고 다니고 머무는 것을
온 세계가 다 듣고 아나니
그 누가 허물이 없겠습니까만은
오직 세존만이 능하십니다.
착하신 이여, 바라건대 기뻐하소서.
3보(寶)에 귀의하는 마음이
마치 송아지가 어미소를 생각하듯 합니다.
이미 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닦기 어려운 고행을 닦으시고
피로함에도 여기까지 오셔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말씀하시어
감로의 길을 열어 보여 주시니
인웅(人雄)의 그릇이라야 감당할 것입니다.
그때 복리가의 선근이 이미 익었으므로, 부처님께서 범음성(梵音聲)을 내시어 게(偈)로써 복리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미 훌륭한 방편으로
나를 도로 머물게 하였으니
너는 그 말의 갈고리로
모든 용과 코끼리도 다스릴 수 있겠도다.
너는 견고한 뜻을 지녔고
도량이 매우 너그럽고도 넓어서
그 정성스럽고 근실한 마음으로
나에게 머물도록 간청하거늘
내 이제 어찌 너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랴.
멀리서 너의 맘을 관찰하기만 해도
내가 오히려 달려와야 할 것인데
하물며 너를 직접 보고서야
어찌 버리고 갈 수 있겠느냐.
나는 무슨 재물이나 이익
부귀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너의 견실한 마음 때문에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겠다.
너의 청정한 마음을 관찰하건대
마치 어질고 뛰어난 말이
안장과 언치[韀]로 장엄한 것 같으니
누군들 타고서 유람가지 않겠는가.
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해탈의 인연을 만들어 주려고
이 때문에 집을 떠났을 뿐이지
이끗[利養]에 얽매여 그런 것이 아니니
마치 큰 용과 코끼리를
실로 잡아 매는 것처럼
이끗도 또한 그와 같아서
나를 막고 가둘 수는 없느니라.
내가 본래 뱃속에 있을 때
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중생들을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하였거늘
하물며 정각을 이룬 지금이겠는가.
헤아릴 수 없는 고행을 쌓아
항상 스스로가 마르고 탔으니
모든 중생들을 위하지 않았다면
나는 마땅히 열반에 들었을 것이지만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세간에 머무는 것이니라.
내가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바위에 떨어지고 불로 뛰어들었으며
내가 그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모든 고뇌를 피하지 않고
지치고 싫증남도 견뎌냈으니
이제 또한 복리가를 만족케 하려고
도로 이곳에 머무르려 하느니라.
복리가야, 알아 두어라.
내가 이제 너의 바람을 이루어 주고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 독사 덩어리를 메고 있겠노라.
내가 복리가 때문에 머무는 것을
사위성의 중생들은
모두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서
제각기 이렇게 외칠 것이니
“아, 부처님께서는 희유하시도다.
국왕의 청을 받지 않으시고
대신의 말도 듣지 않으시며
온 성안의 사람들과 여인들의
부드럽고 미묘한 말도 듣지 않으시더니
부처님께서는 다만 교화하시는 이로서
복리가의 착한 마음을 보셨기 때문에
도로 머물 것을 허락하셨도다.”
일체 다니거나 머무르는 이들이
부처가 복리가를 위해서 머무르는 것일 뿐
무슨 이끗과 명예를 위해서나
재물을 위해서가 아님을 알 것이니
부처는 모든 번뇌가 없으므로
일체의 교화받을 이들을 위해서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고 눕기에
항상 중생들을 관찰한 끝에
그 교화받을 중생을 위함 때문에
가야 하면 곧 가고
머물러야 하면 머무르는 것이니라.
63
다음으로 금계(禁戒)를 지켜 지니기 위해선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라도 끝내 그 금계만은 허물거나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비구가 차례로 걸식하다가 구슬 꿰는 사람의 집에 이르러 문 밖에 서 있었다. 때마침 저 구슬 꿰는 사람이 국왕을 위하여 마니(摩尼) 구슬을 꿰고 있었는데, 비구의 옷 빛깔이 저 구슬에 비쳐 그 구슬 빛깔도 같이 붉게 보였으므로, 구슬 꿰는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 비구를 위해 밥을 가지고 나오는 동안
뜻밖에 거위 한 마리가 그 구슬의 붉은 빛깔이 마치 고기 덩어리 모양 같음을 보고 곧 구슬을 삼켜 버렸다. 구슬 꿰는 사람이 가지고 온 밥을 비구에게 보시하고서 곧 구슬을 찾았으나 구슬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 구슬은 값어치가 귀한 것일 뿐더러 왕의 소유였다.
저 가난한 구슬 꿰는 사람이 왕의 귀중한 구슬을 잃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여 비구에게 말하였다.
“내 구슬을 돌려주시오.”
이때 비구는 생각하였다.
‘이 구슬은 거위가 먹어 버렸는데 만약 저 사람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면 반드시 거위를 죽이고서 그 구슬을 꺼낼 것이며, 말을 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이제 고뇌가 닥칠 것이니, 무슨 방편으로써 이 화를 면할 수 있을까?’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이제 남의 목숨을 보호하려면
곧 이 몸이 고뇌를 받을 것이니
다시 다른 방편이 없을진댄
나의 생명으로써 대신할 뿐이네.
내가 만약 저 사람에게 말하기를
“거위가 삼켰다”고 한다면
저 사람이 꼭 믿지도 않으려니와
도리어 거위의 목숨을 해치게 되리니
어떤 방편을 써야만
내 몸을 온전히 보전하겠으며
또 저 거위도 해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갔다고 말한다면
이 말도 옳지 못한 것이니
설령 몸에는 허물이 없을지라도
허망한 말을 해서는 안 되리라.
내가 바라문에게 듣기를
목숨을 위해서는 허망한 말도 할 수 있다 하였지만
나는 선성(先聖)의 말씀을 들을 것이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허망한 거짓말은 하지 않으리.
부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길
“죽이려는 나쁜 사람이
톱으로 내 몸을 베더라도
그러한 고통을 받을지언정
끝내 법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하셨으니
허망한 말로써 몸을 보전하는 것도
오히려 해서는 안 될 것일진댄
차라리 금계를 호지하는 마음으로
몸과 목숨을 버리리라.
내가 만약 허망한 말을 한다면
범행(梵行)을 같이 닦던 모든 사람들이
계를 깼다고 나를 비웃을 뿐더러
모두들 깔보고 헐뜯기만 하리니
아무리 나의 마음을 괴롭히더라도
어찌 이러한 인연 때문에
함부로 금계를 훼손하여서
이제 큰 고통 속으로 들어가리요.
내가 이제 배워야 할 것은
마치 거위가 물에 탄 젖을 마실 때
그 젖만 다 마시고
물은 남겨두듯이
나도 이제 또한 그와 같이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해야 하겠네.
경에서 이와 같이 설하되,
“지혜로운 이는 어리석은 자와 함께
비록 그 일을 같이할지라도
끝내 그 나쁜 것은 따르지 않으며
선한 사람은 악을 버리기를
마치 거위가 물에 탄 젖을 마시듯이 하라”고 하였으니
이제 나의 몸과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 거위의 생명을 위함 때문인즉
금계를 지킨 이 인연으로써
나 해탈의 길을 이루리라.
그때 구슬 꿰는 사람이 이 게를 듣고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내 구슬을 돌려주시오.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대는 한갓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끝내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오.”
비구가 대답하였다.
“누가 그대의 구슬을 가져갔는가?”
그리고는 묵묵히 서 있었다.
구슬 꿰는 사람이 말하였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없었으니 누가 이 구슬을 훔쳤겠소?”
그리고 나서 구슬 꿰는 사람은 곧 문을 닫고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오늘 잘 견디어 보시게.”
비구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 데도 믿을 곳이 없었으니, 마치 우리에 갇힌 사슴이 나갈 곳을 모르는 것처럼 비구의 신세도 또한 그러하였다.
그때 비구가 곧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옷을 정돈하자, 저 사람이 또다시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나와 함께 한 번 싸워보려는 것인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그대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 저 번뇌의 적과 싸우는 것이네. 왜냐 하면 혹여 매맞을 때에 몸의 형체가 드러날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니, 우리 비구들은 설사 어떤 곤욕을 당한다 하더라도 임종할 때에는 오히려 항상 옷으로 자기를 덮어서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네.”
그리고는 비구가 다시 게를 설하였다.
세존께서는 부끄러워함도 갖추셨으니
나도 이제 세존을 따라 배웠으므로
목숨이 다할 때에 이르더라도
끝내 형체를 드러내지 않으리라.
그때 저 구슬 꿰는 사람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어찌 몸과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우리의 출가법에서는 해탈할 때까지 항상 몸과 목숨을 보호하여 비록 험난한 지경에 처해 있더라도 몸과 목숨을 보전해야 하지만, 내가 이제
결정코 이 몸을 버리는 것은 출가한 대중들에게 나의 이름을 아름답게 일컫도록 하려는 것이네.”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몸과 목숨을 버릴 때엔
마치 마른 섶처럼 땅에 떨어질 것이지만
거위를 위해 몸을 버린 나의 이름을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게 부를 것이며
또한 후세 사람들에게는
모두 근심과 고뇌를 일으켜
버리기를 이 몸과 같이 하게 하여
듣는 이들이 부지런히 정진해서
참된 도를 힘써 수행함으로써
모든 금계를 굳게 지키도록 하며
나아가 금계를 무너뜨리는 자에게는
계율 지키기를 바라고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네.
그때 구슬 꿰는 사람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앞서 말한 것도 아첨하고 곡해해서 진실되지 않거늘, 다시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운 이름을 부르게 하려고’라고 말하는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지금 법복을 입는 것은 허망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왜 아름다운 이름을 나타내는가 하면, 아첨하거나 곡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가 기뻐할 뿐이며, 또한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을 칭탄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존께서 나의 이 지극한 마음을 아시도록 하려는 것이네.”
곧 게를 설하였다.
큰 선인(仙人)의 제자가
금계를 지키기 위해
버리기 어려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온 세간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출가자들에 대하여
전에 없던 일이라는 생각을 내게 하며
지금 비록 이 생각을 못 내더라도
장래에는 반드시 내게 하려는 것이네.
그때 구슬 꿰는 사람이 비구를 잡아 묶고 매질을 가하면서 물었다.
“구슬이 어디에 있느냐, 도로 나에게 내놓아라.”
비구가 대답하였다.
“내가 구슬을 훔친 것이 아니오.”
구슬 꿰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으로 후회하였으나, 또한 국왕의 구슬이기 때문에 더욱 고뇌스러워하며, 곧 게를 설하였다.
아, 이 빈궁이여
나도 선악의 업을 알기에
마음으로 어찌 후회하지 않으랴.
아, 이 빈궁이여
끝내 이 빈궁 때문에
악업을 짓고야 말았구나.
그때 구슬 꿰는 사람이 곧 울면서 비구의 발 아래 예배하고는 말하였다.
“나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라도 구슬을 돌려주시오. 그대가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또한 나를 희롱하지도 마시오.”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는 정말 가지지 않았소.”
구슬 꿰는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이 비구야말로 매우 꿋꿋하구나. 이런 고뇌를 받으면서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다니.”
그러나 저 구슬 꿰는 사람은 가난했기 때문에 구슬을 달리 구할 길이 없었으므로, 다시 성을 내어 때리기 시작했다.
그때 저 비구는 두 손과 목이 다 묶여 있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헛되이 죽을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생사의 괴로움을 받는 것도 모두 이럴 것이니, 마땅히 꿋꿋하게 계율을 범하지 않아야 하리라. 만약 계율을 범한다면 지옥에 가서 받는 죄가 지금의 고통보다 더할 것이다.’
곧 게를 설하였다.
대비로 몸을 삼으신
일체종지를 생각하노니
이이가 바로 내가 존경하는 스승이시네.
부나가(富那伽)에게 일러 주신
부처님 말씀을 기억하고
또 숲 사이에서 인욕선인(忍辱仙人)이
팔ㆍ다리를 끊고 베이고
귀와 코를 깎였는데도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은 것을 기억하리라.
또한 비구로서 기억해야 할 것은
수다라(修多羅)에 있는 말씀이니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시길
“만약에 쇠톱으로 팔과 다리
손이나 발 등을 잘라내더라도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다만 오로지 부처님만을 염하거나
모든 출가한 이들을 염하며
나아가 모든 금계만을 기억하라” 하셨네.
내가 과거세엔
음행ㆍ투도 때문에 신명을 버린
그런 일이 수도 없이 많았고
양이나 사슴 같은 여섯 가지 가축10)으로
몸을 버린 것도 헤아릴 수 없으나
그 때에는 헛되이 고통만 받았지만
계율을 위해 신명을 버림은
계율을 허물어뜨리고 사는 것보다 나으니
아무리 스스로 옹호하려고 해도
언젠가는 없어지기 마련이기에
계율을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네.
남의 신명을 보호하기 위해
이 위태롭고도 약한 몸을 버려서
해탈의 목숨을 구해야 하지만
비록 다 같이 신명을 버리더라도
공덕을 갖추는 이도 있고
얻는 것이 없는 자도 있으니
지혜로운 이는 신명을 옹호하더라도
명성과 공덕이 갖추어지고
어리석은 자는 신명을 버리더라도
헛되이 잃을 뿐 얻는 것이 없네.
그때 저 비구가 구슬 꿰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자비심을 버리지 마시오. 너무나 고통스럽구려.”
그러자 구슬 꿰는 사람이 울면서 괴로워하며 게를 설하였다.
내가 비록 그대를 때리고는 있지만
내 마음도 너무나 고통스럽소.
하지만 국왕이 나를 책망할 것을 생각하면
다시 그대를 아프게 때리고 싶소.
이제 그대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또한 나도 악업을 여읠 수 있도록
그대 바로 출가한 사람으로서
부디 그 탐욕을 끊어 주시오.
탐애하는 마음을 버리기만 한다면
도로 나의 구슬을 돌려주지 않겠는가.
비구가 빙그레 웃으면서 게를 설하였다.
내게 비록 탐심이 있더라도
끝내 이 구슬을 훔치지는 않으리니
그대는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지금 탐내는 것은
지혜로운 이에게 칭찬받는 이름이요
또한 탐내는 것은
금계와 해탈의 법이며
내가 가장 탐내는 것은
단 이슬 같은 도의 자취일 뿐
그대의 마니 구슬에는
사실 탐내는 마음이 없다네.
나는 누더기 옷을 입고
걸식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나무 아래 머물러 있어도
이것으로 나는 만족하게 여기거늘
내가 무슨 까닭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이 되겠는가.
그대는 마땅히 잘 관찰해 보시게.
구슬 꿰는 사람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무슨 말이 많은가?”
마침내 온몸을 묶고 몇 배로 다시 구타하였는데, 끈으로 급하게 졸라매어 귀와 눈, 입, 코로부터 다 피가 흘러나왔다. 때마침 저 거위가 와서 그 피를 마시니, 구슬 꿰는 사람이 화가 나서 거위를 때려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다.
비구가 말했다.
“이 거위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구슬 꿰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거위가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무엇 때문에 묻는가?”
그러나 저 비구는 곧 거위가 있는 곳을 향하여 이미 죽었음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온갖 고뇌를 받으면서도
이 거위가 살기만을 바랐는데
이제 나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거위는 내 앞에 죽어 있네.
내가 너의 목숨을 보호하려고
이 호된 고통을 받은 것이거늘
어찌 네가 먼저 죽어서
나의 과보가 이루어지지 않을 줄 생각이나 했겠느냐.
구슬 꿰는 사람이 비구에게 물었다.
“거위가 지금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렇게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인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의 바람을 이루지 못했기에
좋아하지 않는 것이오. 내가 먼저 마음먹기를 거위의 목숨을 대신하기 바랐는데, 지금 이 거위가 죽었으니 바람을 만족시킬 수 없소.”
구슬 꿰는 사람이 물었다.
“무슨 바람을 이루고자 하였는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보살이었을 때 중생을 위해서 손발을 잘려도 신명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니, 나도 그것을 배우려고 한 것이네.”
곧 게를 설하였다.
보살이 옛날에
몸을 버려 비둘기를 살렸으므로
나도 또한 그런 생각으로
목숨을 버려 거위를 대신하려 하였네.
나는 가장 수승한 마음을 내어
이 거위의 목숨을 보전하려 했건만
그대가 거위를 죽였기 때문에
내 마음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네.
구슬 꿰는 사람이 물었다.
“그대의 이 말을 나는 아직 이해할 수 없으니, 그대는 마땅히 나를 위해 그 이유를 자세히 말해 주어야 하네.”
그때 비구가 게를 설하여 대답하였다.
내가 입은 붉은색 옷이
구슬에 비치어 흡사 고기 빛깔 같았기에
거위가 이것을 고기라 여겨
곧바로 삼키어 먹어 버렸으므로
내가 이 고뇌를 받으면서도
저 거위를 보호하기 위해
혹독한 고통을 다 참아 견디며
거위의 목숨을 보전하기 바랐다네.
일체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부처님께서는 다 자식으로 생각하시어
도무지 공덕이라곤 없는 자도
부처님께서는 역시 가엾이 여기시니
나의 스승 구담미(瞿曇彌)께서
어떤 물건도 해치지 않으셨거늘
나 어찌 그의 제자로서
살생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그때 저 구슬 꿰는 사람이 이 게를 듣고는 곧 거위의 배를 갈라 도로 구슬을 찾게 되자, 소리 높여 울면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거위의 목숨을 보호하려고 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법 아닌 일을 저지르게 하였소.”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가 공덕의 일을 감춘 것은
재[灰]로 불을 덮은 것 같으나
나는 이 어리석음 때문에
수백의 몸을 괴롭혀 왔으며
그대가 하는 일은
부처님 표상에 딱 들어맞건만
나는 어리석음 때문에
스스로 잘 관찰하지 못하고서
어리석음의 불에 타 버리기만 하네.
바라건대 잠시 동안 머무르면서
조금이나마 나의 참회를 들어 주시며
마치 넘어진 사람이
땅을 잡고 다시 일어나듯이
나를 기다려 적은 공양이나마 받아 주소서.
그때 저 구슬 꿰는 사람이 합장하고서 비구를 향해 거듭 게를 설하였다.
청정한 계행(戒行)에 귀의하고
굳세게 계를 지키는 이께 귀의하나니
이 극심한 고난을 당해서도
계행을 끝내 허물지 않았기 때문이네.
이와 같은 악연을 만나지 않았다면
계를 지키는 것이 희유한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고난을 만나서도
금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진실로 어렵다 하리니
거위를 위해 몸소 고난을 받으면서
금계를 범하지 않은
이 일이야말로 어려운 것이네.
그때 구슬 꿰는 사람은 이미 참회를 마쳤으므로 곧 이 비구를 그의 처소로 돌려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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