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9권
대장엄론경 제9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51
다음으로 성내고 미워하는 인연은 부처님으로서도 충고할 수 없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그 성내고 미워하는 인연을 끊어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구섬미(拘睒彌)에서 비구들이 투쟁으로 인하여 두 패로 나뉘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시일에 걸쳐 각각 도리(道理)를 경쟁하고 있었는데, 그때에 세존께서 위없는 대비심을 내어 바퀴 무늬가 있는 손으로 여러 비구들을 말리시면서 곧 게를 설하셨다.
비구여, 투쟁하지 말아라.
투쟁하면 허다히 깨지고 부서지니
승부를 다투면 쉴 사이 없이
계속해서 싸움이 끊어지지 않아
온 세상의 비웃음을 받을 뿐
조금도 이익될 것이 없도다.
비구가 수승한 이로움을 구하려면
먼저 애욕을 멀리 여의고
가정과 처자까지 다 버리고서
오로지 해탈만을 힘써 구하되
마땅히 출가법에 의지하여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마땅히 지혜의 갈고리[鉤]로써
자기의 교만한 마음을 돌리고
원망하고 해치게 되는
투쟁의 근본을 없애되
출가법에 의지하여
아예 좋지 않은 생각은 일으키지 않아야 하리.
맑고 차가운 물 속에서도
치성한 불길이 나올 수 있듯이
이미 법복을 입었으니만큼
선한 법을 닦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법복 입고는 항상 고요하게
스스로 조복하고 유화해야 하거늘
어찌 이 법복을 입고서
눈을 흘기거나 이마를 찌푸리며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리요.
이 법복을 입고 머리 깎은
그 표상(標相)을 생각해서라도
일체를 다 버려야 하겠거늘
어찌 다시 싸움을 일삼으랴.
이러한 표상을 갖춘 이로선
투쟁을 끊어 버려야 마땅하리라.
그때 저 비구가 합장하고서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 비구들이 저희를 경멸하는데, 어찌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곧 게를 설하였다.
저 비구는 조복하기 어려워서
참을수록 더욱 멸시하는가 하면
상대가 겸손하게 인욕하려고 할 때
그는 보다 더 기를 높여 성내는 자입니다.
악한 자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마치 도끼로 돌을 부수는 것과 같으니
저가 나를 업신여기는만큼
저도 또한 반드시 갚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인자한 아버지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가한 사람은 마땅히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그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끊어야만 한다. 만약 성내는 마음을 따라간다면 지극히 이치에 어긋나리니, 성내고 미워하는 것은 허물이 많으니라.”
곧 게를 설하셨다.
성냄은 저 예리한 칼과 같아서
가깝고 친한 이들을 베어 끊어 버리고
심지어는 저들을 살해하기도 하느니
법답게 계율에 수순하는 이는
성냄의 근심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므로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마치 도살하는 형틀처럼 미워하고 싫어해야 하리라.
성냄이 바로 두려운 것이고
남을 멸시하는 본거지[屋宅]며
성냄이 바로 추루(醜陋)한 종자이고
추악한 말씨의 벗이기도 하며
뜻의 숲[意林]을 사르는 맹렬한 불이고
나쁜 길을 보여 주는 길잡이라네.
투쟁은 원망하고 해치게 되는 시작[門]이고
나쁜 명칭의 온상[床褥]이며
눈 깜짝할 새에 악을 저지르게 되는 근본이니라.
“모든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비웃음과 꾸짖음과 헐뜯음을 받는 것이니, 너는 이제 우선 이와 같은 허물을 잘 관찰해야 하리라.”
곧 게를 설하셨다.
성냄은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건드리기 어려운 악성 종기 같으며
보기 싫은 독사와 같으니
성내고 미워함은 이와 같아서
잠잘 때까지도 사람을 괴롭히고
훌륭한 명칭을 훼손시키네.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한 자는
마침내 자기가 저지르는 일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재물과 이익을 나눌 때에도
그 수(數)에 들지 못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는 곳에도
뭇 사람들이 들어오라 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모든 이로운 곳에
성냄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한다면
성냄은 애락할 것이 못 되느니라.
허다한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항상 부끄럽고도 뉘우치게 될 것이니
비록 백 사람의 혀로 말하더라도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구나.
간략하게 말하자면
지옥에서 받는 고통과 같아서
갖추어 말하여도 부족하니
성내고 미워해서 악업을 짓고는
회한으로 몸과 마음에 열뇌를 일으키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성냄의 경쟁을 끊어야 하리라.
그때 여래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셨으나 그들의 성냄과 분노는 오히려 그치지 않았으므로, 이런 인연 때문에 여러 하늘의 착한 신들까지 모두 화를 내어 게를 설하였다.
마치 더러운 물 속에다
마니(摩尼) 구슬을 안치해 두면
그 물이 곧 맑고 깨끗해져
다시 더러운 상(相)이 없는 것처럼
사람 가운데 보배이신 여래께서도
여러 비구들을 위해 수순하는 방편으로
갖가지 묘법을 설하셨건만
이 비구들의 더러운 마음은
오히려 깨끗해지지 않는구나.
차라리 깨끗하지 못한 물은
구슬의 힘으로 깨끗하게 될지언정
부처님의 갖가지 설법 듣고도
그 마음 속이 여전히 더러운
이 비구만은 어쩔 수 없겠네.
햇빛이 세간을 비추면
모든 어둠은 다 소멸되지만
부처님의 태양이 그대를 비춤에도
어두컴컴한 마음은 더욱 심해져만 가는구나.
여래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을 이같이 호되게 꾸짖으시고, 다시 자비하신 마음으로 장수왕(長壽王)의 인연을 예로 들어 설하셨으나, 이 비구들은 여전히 눈썹과 이마를 찡그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법왕(法王)이시니, 우선 잠시만 기다려 주신다면 우리들끼리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때 여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는, 곧 이곳을 버리고 12유순(由旬)1)쯤 떨어진 사라(娑羅)숲으로 자리를 옮기셔서 한 나무 아래 앉아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이제 구섬미에서 투쟁하는 비구들과 떨어져 있어야겠다.’
그때 마침 어느 한 코끼리 왕도 역시 뭇 코끼리들을 피해 부처님 계신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무 아래에 와서 눈을 지그시 감고 서서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뭇 코끼리들을 피해 온 것은 지극히 청정하도다.’
부처님께서 저 코끼리의 마음을 아시고 곧 게를 설하셨다.
저 코끼리나 이 코끼리나 어금니가 너무 길어
무리들과 멀리 떨어져 적정함을 즐기네.
저도 혼자 있길 좋아하고 나 또한 그러하여
투쟁하는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은 멀리 피하도다.
이 게를 설하시고는 깊은 선정(禪定)에 드셨는데, 그제서야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뒤늦게 뉘우치고 후회하였으며, 천신(天神)들이 또 화를 내었고, 온 나라의 듣는 이마다 모두 진심[瞋恚]을 내어서 큰 소리로 외쳐 꾸짖으니, 때에 여러 비구들은 각자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부처님을 다시 뵐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합장하고 다 함께 부처님을 청해야만 할 것이다.”
곧 게를 설하였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삼계(三界) 세존의 말씀을 어겼으므로
성내고 미워하는 나쁜 죄과가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기에
후회하고 원망하는 치성한 불이
뜻의 숲[意林]을 마구 사르네.
거룩하도다, 자비하신 이여
바라건대 다시 우리를 위해 설해 주소서.
우리도 이제 최상의 원(願)을 세워
반드시 해탈하길 구하되
오늘 이후로는
차라리 몸의 살을 버릴지라도
끝내 부처님의 가르침만은 어기지 않으리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는 곧 게를 설하셨다.
성내고 미워함을 금(禁)하고
고민으로 어지러움[惱亂]을 따르지 않고자 한다면
나도 이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시 그 고난을 구제해 주리로다.
어리고 어리석어 저지른 잘못을
지혜로운 이는 참고 받아 주나니
마치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품안이 갖가지 더러운
똥이나 오줌으로 더럽혀져도
그 아이를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음이네.
이 게를 설하시고는 풀자리에서 일어나 곧 승방(僧坊)으로 돌아가고자 하시니, 그때에 하늘ㆍ용ㆍ야차ㆍ아수라 등도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서 게를 설하였다.
아, 대비하신 큰 선인[大仙]이시여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길잡이시여
저 비구들이방일에 눈이 어두워져
다투고 성내는 마음을 쉬지 않아
심지어 세존까지 괴롭게 하거늘
여래께선 항상 대비하신 마음으로
여전히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네.
자비하신 마음으로 조금도 꺼리지 않으시어
끝까지 그들을 맞추어 따르게 하시니
마치 굳세고 사나운 말을
채찍질하여 길들이듯 하시는구나.
그때 여래께서 승방에 도착하시자마자 광명이 온 승방을 밝게 비추니,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돌아오신 줄 알고서 곧 나아가 맞이하여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투쟁하여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진심(瞋心)과 분심(忿心)을 내게 하였고, 뭇 사람들에게 지독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였으므로 저희들은 이제 모두 타락한 중이기는 합니다만, 바라건대 세존께서 다시 법을 설하시어 저희들을 화합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때 여래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해 여섯 가지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는 법[六和敬法]을 설하시어 비구들을 다시 화합하게 하셨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끊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2
다음으로 음식을 잘 관찰할지니, 세존께서도 음식을 바르게 관찰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존자 흑가류타이(黑迦留陁夷)란 이의 음식에 대한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셨다.
부처님께서 갖가지 인연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계율을 칭찬하시되, 특히 계율을 지키는 이로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며 두타(頭陁)를 행하는 것을 칭찬하셨으며, 비구승들을 모아 놓고 하루에 한끼만 먹는 법[一食法]을 칭찬하시고, 이에 한끼만 먹는 법을 제정하려 하셨다.
그때 비구승들은 마치 큰 바다가 고요하여 아무 소리도 없는 것처럼 모두 잠잠히 있었는데, 마침 대중들 가운데 바다리(婆多梨)란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계율을 제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계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다리 비구에게 타일러 말씀하셨다.
“과거세의 생사(生死)도 이 음식 때문이니, 생사 가운데 끝없는 고통을 받아 지금까지 돌고 도는 것이니라.
과거로 돌아가서 한량없는 세간 때에 네 마리의 날짐승, 길짐승과 선인(仙人)까지 다섯이 있었는데, 그때에 까마귀가 ‘모든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굶주리고 목마른 것이다’라고 말하였느니라.
이 겁(劫)의 처음에 광음천(光陰天)이 내려올 때, 어떤 한 천신이 맨 먼저 손가락으로 지미(地味)를 맛보고는 이미 그 맛을 알았기에 마침내 취하여 먹기 시작하였으니, 그 때의 저 천신이 바로 지금의 바다리 비구니라. 그때 저 바다리는 맨 먼저 지미를 맛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또다시 그러하여 음식만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니라.”
저 바다리는 법을 행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의복을 정돈하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발 한끼만 먹는 법을 제정하지 마십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세존의 한끼만 먹는 계법을
저로선 지킬 수 없사오니
한 사람이라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계법을 제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모든 비구들이 이 게를 듣고는, 모두 다 머리를 숙이고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쯧쯧, 단식(揣食)2)의 허물과 근심을 보지 못하였구나. 단식 때문에 대중들에게 헐뜯고 욕보임을 당하는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차라리 사슴처럼 풀을 먹고
독사처럼 바람을 호흡할지언정
부처님과 스님들 앞에서
음식 때문에 부처님을 거스르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네.
부처님께서 바다리를 타이르셨다.
“네가 시주의 집에서 음식을 반쯤 먹고, 그 나머지를 절에 가지고 와서 먹는 것만은 허락해 주겠노라.”
그때 바다리는 여전히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고, 부처님께서 이 한끼만 먹는 계율을 제정하려 하시자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그만두시길 청하였으나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끝내 계율로 제정하셨다. 바다리는 곧 부처님 곁을 떠나 매우 후회하면서 게를 설하였다.
내가 부처님 말씀을 어겼는데도
어찌 이 혀가 끊어지지 않으며
어찌 이 땅이 꺼지지 않고
여전히 나의 몸을 실어 주는 것일까?
저 나찰(羅刹), 비사사(毘舍闍)와
나쁜 용, 도적 따위도
이 음식 때문에
감히 부처님 말씀을 어기는 자 없거늘
나는 완악하게 부처님 말씀 어겼으니
차라리 칼로 배를 갈라 버리거나
벌레를 삼키고
흙으로 배를 채울지언정
어쩌자고 이 음식을 먹기 위해
10력(力)의 가르침을 어겼단 말인가?
나 이제 스스로 뉘우치고 꾸짖으니
마치 무심(無心)한 자와 같네.
그때 바다리는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부끄러워 스스로를 꾸짖었으며, 석 달 동안 부처님을 뵙지 못하다가, 자자(自恣)3)할 때가 가까워오자 밤낮으로
근심하고 괴로워해서 온몸이 파리하고 초췌해져 위덕(威德)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인자한 여러 비구들이 그를 매우 가엾이 여겨서 곧 게를 설하였다.
이제 여러 비구들이
옷을 꿰매고 빨래를 마치면
이내 다 흩어져 갈 것이니
그대는 뒤늦게 후회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빨리 부처님을 향해
연꽃 같은 발에 예경해야 하리라.
존중하는 곳을 향하여
힘껏 애원하여 청하길 구하되
그 공력을 부지런히 한다면
참회할 길을 얻을 수 있으리니.
바다리가 이 게를 듣고는 목이 메여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게를 설하였다.
세존께서 하신 말씀이라면
세간에선 누구도 어기는 자 없거늘
나는 어리석음 때문에
감히 부처님 말씀을 어겼네.
나는 지극히 경솔하고 조급하여
무리들 가운데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뒷날의 비웃음을 예측하지 못하고서
이제 대중들의 미움과 천대를 받는구나.
이러한 나쁜 허물을 생각하지 못하고서
문득 망령된 말을 하였으므로
이 일은 스님들이 해야 마땅하고
내가 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나의 정심(定心)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이런 말을 한 것이네.
범행(梵行)4)을 같이하던 이들이 이 게를 듣고는 곧 부처님께 참회를 청하려 했으나, 바다리가 다시 게를 설하였다.
나 이제 은근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참회할 수 있기를 애원하여 구해야겠지만
이 부끄러움을 어찌 차마 무릅쓰고서
눈을 들어 세존을 뵈올 수 있겠는가?
여러 비구들이 바다리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만약 번뇌가 남아 있으시다면 그대가 겁을 내야 하겠지만, 이제 세존께선 모든 번뇌를 끊으신 지가 이미 오래 되었거늘 그대는 지금 무엇이 겁나고 어려워서 가지 못하는 것인가?”
바다리가 다시 게를 설하였다.
스스로 자신의 죄과를 의심하노라.
마치 청정한 보름달을 보듯이
성냄이 없는 용모는 빼어나서
삼계에 자애(慈哀)한 얼굴이시니
나 이제 세존을 뵙기를 원하네.
자비로 나를 위해 말씀하셨으나
어리석음 때문에 눈이 멀어
부처님 말씀을 받들지 않았으니
마치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에
병에 맞는 약을 먹으려 하지 않는 것처럼
자비하신 가르침을 어긴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하고 뉘우칠 뿐이네.
범행을 같이하던 이들이 다시 바다리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들과 같이 부처님 처소로 가세.”
그리고는 함께 부처님을 뵙고서 잘못을 말씀드릴 것을 권하였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다시 다짐해 물었다.
“그대는 지금 결정코 참회하는가?”
이에 바다리가 게를 설하였다.
만약 내가 지금 부처님께 예배할 수 있다면
설령 이 몸이 흩어지고 부서져
부처님께서 나를 일으키지 못하시고
나 또한 끝내 일어날 수 없다 해도
부처님께서 나에게 한 말씀만 해주신다면
그것으로 몸과 마음이 다 만족하겠네.
그때 바다리는 여러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 처소로 갔는데, 때마침 부처님께서 대중들 가운데 계셨으므로, 바다리가 곧 부처님 앞에서 온몸을 땅에 던져 예를 올리고, 게를 설하였다.
저의 참회를 들어 주소서.
사람들의 조어사(調御師)시며
본 성품이 자비하신 이여.
제가 거세고 사나운 말처럼
맞추어 따르[調順]는 길을 뛰어넘어 잃어버렸으나
설령 음식을 얻지 못해
눈이 들어가 광대뼈가 드러나고
몸이 말라 비틀어져 죽음에 이르는
차라리 이런 고통을 받을지라도
성스런 가르침만은 어기지 않으리다.
제석이나 범천 같은 존귀하고 뛰어난 천왕들도
모두 부처님 말씀을 공경히 받들거늘
저만이 이 어리석음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여래께선 때와 때 아님을 잘 아시고, 또 호되게 꾸짖는 방편을 모두 통달하셨으므로 바다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어떤 아라한(阿羅漢)이 더러운 똥이나 진흙 속에 누워 있을 때 내가 그 등 위로 다닌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저 아라한에게 고뇌가 있겠느냐?”
바다리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아라한ㆍ아나함(阿那含)이나 사다함(斯陀含)ㆍ수다원(須陀洹)을 얻었다면 끝내 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았겠지만, 너는 범부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마치 파초 속이 알맹이 없이 비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자세한 말씀은
수다라(修多羅)에 있는 것과 같다.
그때 사람들은 바다리가 아라한을 얻었는 줄 알고 있다가 부처님 말씀을 듣고는 바다리가 아직 번뇌에 얽매인 범부라는 것을 알았으며, 여러 비구들도 믿어지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였다.
“듣자 하니 그가 아라한을 얻지 못하였다는데, 이와 같은 귀족이 출가하여 아라한을 얻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니제(尼提) 같은 낮고 천한 종성이 출가하여 아라한을 얻었을까? 아마도 부처님께서 번뇌를 다하게 하고자 하시면 곧 번뇌가 다하여지고, 번뇌를 다하게 하지 않으시면 곧 그렇게 되기 때문인가 보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을 타이르셨다.
“누구나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를 닦으면 반드시 번뇌를 다할 수 있고, 만약에 그것을 닦지 않는 자라면 번뇌를 다할 수 없으며, 또 이미 그것을 보았거나 알았다면 비록 비천한 종성에 태어났더라도 아라한의 과위를 얻을 수 있느니라. 이제 바다라와 같은 자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으므로 비록 수승한 종족에 태어났더라도 아라한을 얻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래는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치우침이 없느니라.”
53
다음으로 탐욕보다 더 난폭하고 방자한 것은 없으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탐욕을 끊어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옛날에 세존께서 보살도를 닦으실 때에는 세간이 텅 비어서 부처님이나, 현자(賢者)나, 성인(聖人)들이 세간에 출현하지 않았었다. 그때에 광명(光明)이라는 왕이 잘 길들여진 코끼리를 타고서 밖으로 유람하였는데, 노래하고 춤추는 창기(唱妓)들이 앞뒤에서 따라왔다. 산의 험난한 곳에 이르러 왕이 타고 있던 코끼리가 멀리 있는 암코끼리를 보고는 욕심이 치성하여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날뛰고, 구름을 몰아가는 바람처럼 험난한 구비구비를 피하지 않고서 마구 내달아 가려고 하였다.
그때 코끼리 다루는 사람[調象師]이 갖가지 갈고리와 쇠끈으로 제지하려 했으나 끝내 멈추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광명왕이 매우 놀라고 겁이 나서 말하길, “갈고리와 쇠끈으로도 막을 수 없으니, 마치 못된 제자가 스승을 따르지 않는 것 같구나”라고 하였다. 코끼리가 마침내 빠르게 내달리니, 왕은 더욱 놀라고 위급하여 반드시 죽을 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이 괴로워져 곧 게를 설하였다.
마치 허공이 움직이면서
재빨리 사방을 잡아당겨
한 군데로 모으는 것처럼 보이고
또 널리 보면 마치 수레바퀴가 움직여서
온 땅이 회전하는 것 같으니
이 코끼리는 달아나다 마침내 내달아
마치 산 길을 급하게 가다 보면
모든 산들이 따라오는 것 같이
바위 골짜기 산골물 가운데 모래톱에
온갖 나무들이 몸뚱이를 상하게 하네.
나는 왕이지만 매우 겁나고 괴로워서
산신(山神)에게 발원하여 구하길
“이 갈고리와 쇠끈으로 코끼리를 멈추어
저를 안전하게 하여 주소서” 하였건만
욕심이 치성하여 괴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코끼리는 달아나다 더욱 내달리니
마치 폭풍이 불 때의 가시덤불처럼
갈고리와 쇠끈이 몸을 상하게 하며
또한 산의 돌에 몸을 상하고
머리카락은 모두 쑥대머리 같으며
몸뚱이가 먼지로 뒤범벅이 되고
의복이 다 풀어 헤쳐지며
영락과 팔찌와 패물들이
깨어져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말았구나.
그때 대왕이 코끼리 다루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같아서는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 같구나.”
그리고는 다시 게를 설하였다.
그대는 부디 훌륭한 방편으로
코끼리를 억제하여 멈추게 하라.
나는 지금 저울대에 앉은 것처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죽을 곳으로 떨어질 것 같구나.
그때 코끼리 다루는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갈고리와 쇠끈을 당겼으나 멈추도록 막을 수가 없었으므로 자주자주 한숨을 쉬었으며, 부끄러운 낯빛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흘렀고, 얼굴을 돌려 왕을 피해 차마 서로 보지 못한 채 다시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옛 선인[仙]들이 말씀하신 코끼리 주문을
있는 힘을 다하여 외워 보아도
갈고리와 쇠끈을 힘껏 잡아당겨도
도무지 멈추도록 막을 수 없으니
마치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는
주술이나 묘약도 소용이 없으며
훌륭한 의사도 구제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것 같기만 합니다.
그때 대왕이 코끼리 다루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이곳에 떨어질 텐데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코끼리 다루는 사람이 왕에게 아뢰었다.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오직 나무를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서 손으로 나무를 붙잡으니, 코끼리는 그냥 달아나
암코끼리를 쫓아갔다.
코끼리가 이미 가 버린 뒤에야 곁에서 모시는 사람들이 비로소 왕이 있는 곳에 이르렀고, 왕은 곧 천천히 걸어서 군중(軍中)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코끼리 다루는 사람은 곧 코끼리의 발자국을 따라가 여러 날이 지난 뒤에 코끼리를 찾아서 군중으로 돌아오니, 마침 왕이 무리들 가운데 있다가 코끼리 다루는 사람이 코끼리를 타고서 왕이 있는 곳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지난번에 말하기를, ‘코끼리가 길들여졌으므로 탈 수 있습니다’라고 하더니, 어째서 이 미친 코끼리로 나를 속였느냐?”
코끼리 다루는 사람이 합장하고서 왕께 아뢰었다.
“이 코끼리는 정말로 길들여졌습니다. 왕께서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이제 코끼리의 길들여진 모습을 나타내어 왕께서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코끼리 다루는 사람이 곧 쇠뭉치를 불에 달구어 그 앞에 두고는 코끼리에게 명령하여 쇠뭉치를 머금게 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고서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말한 길들여진 코끼리가 어째서 그렇게 미쳐 날뛰었던 것이냐?”
코끼리 다루는 사람이 장궤(長跪)하고 합장하고서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이러한 광일(狂逸)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왕이 되물었다.
“네가 길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이것은 누구의 허물이란 말이냐?”
그가 곧 왕에게 아뢰었다.
“이는 코끼리에게 탐욕이 있어서 그 마음을 병들게 한 것이므로 저로선 다스릴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이러한 병은 몽둥이나 채찍, 갈고리, 쇠끈 따위로는 다스릴 수 없으니, 탐욕이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탐욕은 마음의 독화살이 되나
어디로부터 자라는지 알 수 없고
무엇을 인하여 늘어나는지도 알 수 없거늘
어떻게 없애 버릴 수 있겠습니까?
왕이 탐욕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서 다시 코끼리 길들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 탐욕이라는 병은 치료할 수 없는 것인가?”
코끼리 길들이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이 탐욕이라는 병은 옹호(擁護)할 만한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버려 두고 치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마땅히 모든 방편을 다하여
애써 탐욕의 병을 끊을 것이지만
탐욕이 오는 곳을 알 수 없으니
부지런히 물리칠 것을 생각할 뿐입니다.
다섯 가지 욕락을 버리려고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것도
탐욕이란 번뇌를 끊기 위함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도를 닦아야 하건만
혹은 다섯 가지 욕락에 방종하면서
제 입으로 번뇌를 끊었다 말하고
갖가지 행동을 함부로 지으면서도
탐욕을 멀리 여의기를 바람에랴.
이러한 업을 짓는 곳곳에서
탐욕의 뿌리를 뽑으려고 하기에
탐욕의 숲을 뽑아 버리기 어려운 것이니
하늘ㆍ사람ㆍ아수라와
야차ㆍ구반다 등 모든 중생이
모두 미세한 탐욕의 그물에
얽매이고 묶여 있는 중생들이므로
항상 탐욕의 숲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뿌리를 뽑아 버리지 못하네.
왕은 탐욕을 끊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서 매우 이상하고 의심스러워 곧 게를 설하였다.
이와 같은 탐욕이란 원수를
아주 끊어 버릴 이가 없다 하지만
과연 어느 한 사람도
탐욕을 끊어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온 하늘과 사람들 중에서도
이 탐욕을 끊어 버릴 이가 없을까?
그때 코끼리 길들이는 사람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는데, 오직 부처님이신 세존만이 세계의 위대한 스승으로서 대자비심이 있으시어 모든 중생들을 다 자식처럼 여기시며, 진금(眞金) 같은 대인(大人)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장엄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지혜가 있어서 탐욕이 일어나는 것과 그것을 멸하는 인연을 아시어 걸림이 없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들을 다 가엾이 여기신다고 합니다.”
그때 왕은 부처님이 바로 대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곧 일어나 마치 아직 피지 않은 꽃송이처럼 합장하고 대중들 앞에서 큰 서원을 세웠다.
“제가 바른 법으로 국토를 옹호하고 또 재물로 보시하겠으니, 바라건대 이 공덕으로 제가 미래세엔 반드시 성불하여 중생들의 탐욕이란 근심을 끊게 하여 주십시오.”
무슨 이유로 이 일을 말하는가 하면, 중생들이 탐욕의 인연과 그것을 대치(對治)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수다라(修多羅)를 설한 것이다.
54
다음으로 부처님께서는 오랜 뒷세상까지 관찰하시어 신심을 얻게 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졸속하게 처리하지 않으셨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존자 우바국다(優波鞠多)가 나무 아래서 좌선(坐禪)하고 있을 때,
마왕 파순(波旬)이 꽃다발을 그의 머리 위에 얹어 두었다.
그때 존자가 선정(禪定)에서 일어나 그 꽃다발이 머리 위에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선정에 들어가 누가 한 짓인지를 관하여 마왕 파순의 소행인 줄을 알고서 곧 신통의 힘으로 세 가지 죽은 시체를 마왕의 목에 매어 두었다.
그때 저 마왕도 자기 목에 시체가 매어져 있는 것을 깨닫고, 멀리 존자가 있는 것을 보고서 이것이 존자의 짓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존자가 곧 게를 설하였다.
꽃다발 같은 장엄거리는
비구가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이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시체는
애욕을 탐하는 자도 싫어하는 것이라.
불자와 함께 힘을 다투어
싸운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나는 이제 불자로서
그대의 꽃다발쯤은 떼버릴 수 있으니
그대가 만약 힘이 있다면
그 목의 시체나 제거해 보구려.
큰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를
막아 낼 수는 없다지만
오직 이 철위산(鐵圍山)이 있기 때문에
물이 부딪쳤다 곧 되돌아가는 것이네.
그때 마왕이 이 게를 듣고 나서 죽은 시체들을 제거하기 위해 신통력을 다 써 보았으나 제거할 수 없었으니, 마치 모기나 개미 같은 것이 수미산을 움직이려고 아무리 온갖 힘을 다하여도 끝내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자 마왕 파순은 시체를 떼버리지 못한 채 곧 날아가면서 게를 설하였다.
만약 내가 풀어 버릴 수 없다면
다른 여러 수승한 천왕들 가운데
위덕(威德)이 자재로운 이에게서
반드시 풀 수 있을 것이네.
그때 존자가 다시 게를 설하였다.
제석천왕이나 범천왕도
이것을 풀 수는 없으며
설사 타오르는 불 속이나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타지도 않고 썩지도 않을 것이네.
이와 같은 시체가 그대에게 붙어
마르거나 썩어지지 않은 채
그대가 있는 곳마다 따라다니지만
그 누구도 풀어 줄 이 없구나.
마혜수라천을 비롯해
그 밖에 세 천왕과 비사문(毘沙門)천왕
나아가 범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든 천왕들이
비록 각자의 신통력을 다한다 해도
이 시체만은 풀어 줄 수 없을 것이네.
그때 범천왕이 있는 힘을 다하여도 이 시체를 떼버리지 못하는 마왕 파순을 보고서 이렇게 타일렀다.
“그대도 이제부터는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아라.”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10력(力)을 갖추신 이의 제자가
자기의 신통한 힘으로써
그대가 경솔하게 희롱했기 때문에
이제 일부러 그대를 욕되게 한 것이니
그 누가 이 신통력을 감당하여
그대를 위해 풀어 주겠는가?
마치 큰 바다 물결의
그 파도는 막아 낼 수 없는 것과 같고
연뿌리의 약한 실로
설산을 달아매는 것과 같구나.
비록 나의 신통력을 다하더라도
그대를 위해 풀어 주지 못할 뿐더러
내가 비록 큰 힘이 있다고는 하나
저 사문에게는 미칠 수 없으니
마치 촛불의 밝음이
큰 불덩어리에는 미치지 못하고
큰 불덩어리가 비록 밝기는 하여도
햇빛의 밝음에는 미칠 수 없는 것과 같네.
마왕이 이 게를 듣고는 범천에게 말하였다.
“내가 누구에게 귀의하면 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범천이 게를 설하여 마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는 빨리 그이를 향하여
간절히 구하여 귀의할 것이니
신통이 있고 이름나는 것을 좋아해서
그대가 다 잘못했더라도
마치 넘어지고 거꾸러진 사람을
부축해 땅에서 일으켜 주듯 할 것이네.
그러자 마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의 제자는 범천 같은 수승한 천왕도 그 힘에 미칠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 범천들이 받들어 공경하는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범왕의 존경을 받거늘
하물며 여래의 공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요.
내가 지독하게 괴롭혔는데도
여전히 참고 가엾게 여기실 뿐
이 때문에 나를 괴롭히지 않으시니
인내하며 옹호하고 아껴 주신 은혜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나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나니
부처님만이 진실로 대비하신 이로서
바탕의 성품이 지극히 자비하시어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시며
몸이 금산(金山) 같으시어
광명이 햇빛보다 더 밝으시네.
어리석음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하여
온갖 어지럽히는 일을 저질렀으나
그분의 정진(精進)은 견실하여서
일찍이 거친 말은 하지도 않으시고
항상 자비하게 보아 주셨건만
내 마음에 기쁘게 여기지 않았었네.
그때 욕계(欲界)에서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마왕도 이렇게 말하였다.
“삼계(三界)를 두루 관찰해 보아도 이 시체들을 풀어 줄 이가 없으니, 나 이제 오직 존자에게 도로 귀의해야만 벗어날 수 있겠구나.”
이렇게 말하고는 존자가 있는 곳을 향하여 온몸을 땅에 던져 발 아래 예배하고서, 또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제가 지난날 보리수 아래에서 온갖가지 짓거리로 부처님을 어지럽혔지만,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나를 괴롭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바라문의 취락과
바라문들 마을에
구담께서 걸식하러 오셨을 때
나 빈 발우로 그냥 가게 하여
그날 먹을 음식을 못 얻게 하였지만
구담께서는 나를 헐뜯지 않으셨으며
또 때로는 못된 소가 되고
때로는 독사의 몸이 되기도 하며
5백 대의 수레로 물을 흐려 놓아
부처님께서 마시지 못하게 하였으나
이 모두가 내 짓인 줄을 아시면서도
일찍이 나쁜 말은 내지도 않으셨네.
그에 비하면 지금 한 짓은 보잘것이 없는데
그대는 지독하게도 나를 욕되게 하니
사람과 하늘, 아수라 등
일체가 모두 나를 경멸할 뿐더러
내 이름을 헐뜯어 무너뜨리도록
시체를 목에 매달아 괴롭히는 것인가.
그때 존자가 마왕을 꾸짖어 말하였다.
“이제 그대야말로 착하지 못한 못된 물건이로다. 어떻게 성문을 세존께 견주어 말하는가?”
곧 게를 설하였다.
어떻게 겨자씨를 가지고
저 수미산과 비교하고
반딧불의 보잘것없는 밝음을
햇빛과 견줄 수 있으며
한 주먹의 적은 물을
큰 바다와 비교하리요.
부처님께서는 대비심이 있으시지만
성문은 대비심이 없으나
여래께서 대비심으로
그대의 갖가지 허물을 용서하신 만큼
나 또한 부처님의 뜻을 따라서
그대의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려 하네.
그때 마왕이 이 말을 듣고는 다시 게를 설하였다.
내가 말하는 부처님 공덕 들어 보소.
복리(福利)와 위광(威光)이 융성하셔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몫만으로도
모든 애욕을 끊으시며
욕됨을 참아내어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시는데
나는 어리석음 때문에
날마다 항상 부딪쳐 괴롭게 하였으나
마치 외아들 사랑하는 어머니 같으셨네.
우바국다가 파순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 말을 들어 보아라. 그대가
여래께 자주 저지른 그 모든 악업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선근을 자라나게 하고자 한다면 부처님을 염(念)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세존께서는 가장 높으신 분이니라.”
곧 게를 설하였다.
이러한 인연 때문이니, 알아 두시게.
부처님께서는 오랜 뒷세상까지 보시어
일찍이 그대에게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내신 적이 없으셨으니
제일의 지혜이신 세존께서
그대의 신심을 이루어 주시려고
항상 친하고 사랑하는 말만 하셨기에
지혜로운 이라면 조금만 신심을 내어도
곧 열반의 즐거움을 얻었을 것이네.
이제 나 또한 그대를 위해
간략히 어리석음의 허물을 말해 주었고
그대도 이제 신심을 내었기 때문에
곧 지난 허물을 다 씻어 버릴 수 있으리로다.
그때 마왕은 온몸의 털이 곧게 일어섰으며 파담화(波曇花)5)처럼 변하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갖가지로 괴롭혔으나 마치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는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지(大地)보다도 더 크게 참아서 아예 그 허물을 꾸짖지 않는 것과 같으니, 저이야말로 선인[仙]들 가운데 뛰어난 이로구나. 만약 조금이라도 부처님을 믿는다면 지난날의 허물은 다 씻어 버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는 저 마왕이 존자 앞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염(念)하면서 존자의 발에 예배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여, 나를 구제하여 나로 하여금 존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면 그대는 마땅히 마음을 내어 내 목에 매달린 것을 풀어 주어야 하오. 내가 비록 괴롭히려고 집적이긴 했지만 바라건대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서 나를 위해 이 시체들을 제거해 주시오.”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대에게 다짐을 받은 뒤에라야 풀어 줄 것이네.”
마왕이 말하였다.
“어떤 다짐인가요?”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오늘 이후부터 비구들을 괴롭히지 말아야 하네.”
마왕이 곧 아뢰었다.
“나는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존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아다시피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지 백 년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세간에 출현하였네.”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나는 삼계(三界)를 진실로 구제하신
부처님의 법신(法身)만을 보았을 뿐
금빛의 몸은 보지 못하였으니
괴롭히지만 말고 나를 위해 나타나
나에게 부처님 형상을 보여 준다면
나는 이제 지극한 희망을 가지고
여래의 모습을 사랑하리라.
그때 마왕이 존자에게 말하였다.
“나도 또한 당신께 약속을 하나 받아야겠으니, 당신이 어떤 형상을 보더라도 함부로 예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체종지로서 나에게
예배할 수는 없으므로, 내가 비록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절대로 예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겸손히 공경하며 부처님을 염(念)하는
그 마음으로 나에게 예배한다면
이는 곧 나를 태워 없애려는 것이니
마왕인 내게 무슨 힘이 있어서
욕심 여읜 이의 공경을 받을 수 있으랴.
마치 이란(伊蘭)나무6)의 싹이
코끼리의 코에 눌려서
파괴되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처럼
내가 만약 공경을 받는다면
그 일이 또한 이러할 것이네.
존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귀명(歸命)하지 않을 것이니, 그대도 또한 약속한 말을 어기지 말아야 하오.”
마왕이 다시 존자에게 말하였다.
“잠시만 나를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곧 빈 숲으로 들어가 게를 설하였다.
내가 예전에 수라(手羅)를 미혹하려고
금빛이 치성한 몸으로 변하여
부사의(不思議)한 부처님 몸을 나투었는데
내가 이러한 형상을 나타내매
그 광명이 해와 달보다도 뛰어나서
뭇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감로를 마신 듯 환하게 되었네.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이제 나를 위하여 지난번과 같은 모습을 지어 보아라.”
마왕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그러한 형상을 나타내겠으니, 당신도 나를 위해 이 시체들을 풀어 주십시오.”
그때 마왕이 곧 빈 숲으로 들어가서 부처님 형상을 지어 나타내었는데, 마치 재주꾼[作伎家]과도 같이 여래의 색(色)과 용모를 갖가지로 스스로 장엄하여 대인(大人)의 형상과 적멸한 눈을 나타내니, 마치 새로 그린 것 같았다. 새로운 형상이 개발될 때에 온 숲을 함께 장엄하여 보는 이마다 싫증냄이 없었으니, 한 길이나 되는 둥근 광명으로 부처님의 형상을 화작(化作)하였으며, 오른편에서는 사리불(舍利弗)이 왼편에서는 목건련(目犍連)이 모시고, 아난(阿難)이 뒤를 따르면서 부처님의 발우를 잡고 있었다.
존자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니로두(阿尼盧頭), 수보리(須菩提) 등 이러한 큰 성문(聲聞) 1천2백50인이 부처님을 좌우에서 모시고, 마치 반달처럼 부처님 형상을 나타내어 존자 우바국다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존자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지극한 환희심을 내어 곧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화작된 부처님 형상을 관(觀)하고는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 밉도다, 무상(無常)이여! 자비한 마음 없이 미묘한 색의 금산왕(金山王)을 어찌 파괴해 버렸단 말이냐? 모니(牟尼)의 몸이 이와 같이 무상에게 꺾이고 말았구나.”
그때 존자가 관(觀)하는 마음을 지었으나 그 뜻이 산란해지려 하면서 ‘나는 지금 진짜로 부처님 손바닥이 연꽃 같음을 보았노라’ 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 아. 거룩하고도 미묘한 모습을 어찌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곧 게를 설하였다.
얼굴은 연꽃송이보다 더 아름답고
눈은 푸른 연잎 같으며
몸의 형상은 수승한 꽃 숲이고
상호(相好)는 달보다 더 뛰어나며
심오한 깊이는 바다와 같고
편히 머무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며
위덕(威德)은 태양보다 더하고
다니는 것은 사자 왕보다 더 늠름하며
눈매는 우왕(牛王)과 같으며
색(色)은 진금(眞金)보다 더 빼어나시네.
그때 존자는 더욱더 환희심과 공경심을 내었으며, 큰 기쁨으로 가득 차 흘러 넘쳐서 곧 게를 설하였다.
아, 청정한 업으로 말미암아
이 미묘한 과보를 얻은 것이니
업연(業緣)을 따라 얻은 이 과보는
현재세에 지은 업이 아니고
백천억의 오랜 겁 동안
몸과 입으로 청정한 행을 닦았기 때문이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선정ㆍ지혜를 닦아
결정코 바른 행을 지어서
이것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셨기에
그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행을
뭇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구나.
이러한 형상을 나타낼 때면
원수들도 모두 기뻐하거늘
하물며 내가 오늘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존자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다만 부처님이라고 생각할 뿐 마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땅에 던져 마왕에게 예배하였다.
그러자 마왕이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어째서 약속을 어기십니까?”
존자가 말하였다.
“약속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마왕이 말하였다.
“먼저는 예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는,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예배하는 것입니까?”
존자가 땅에서 일어나 곧 게를 설하였다.
눈에 사랑스럽고 좋아 보이므로
마음을 따라 부처님께 예배했을 뿐
내가 이제 진실로 그대의 발 아래 엎드려
공경하거나 예배한 것은 아니라네.
그때에 마왕이 말하였다.
“당신이 온몸을 땅에 던져 나에게 예배해 놓고, 어떻게 ‘내가 너를 공경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존자가 마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공경하여 예배한 것도 아니고, 또한 약속을 어기지도 않았네. 마치 진흙이나 나무로 부처님 모습을 만들어 놓으면 온 세간의 하늘과 사람들이 다 함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과 같으니, 그 때는 진흙이나 나무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공경하여 예배하고자 해서라네. 그러므로 나도 부처님의 색상(色像)에 예배한 것이지 그대 마왕의 형상에게 예배한 것이 아니네.”
마왕이 이 말을 듣고는 도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 존자의 발 아래 예배한 뒤 다시 천상으로 올라갔다.
무슨 인연으로 이 일을 말해 두는가 하면, 여러 큰 성문들이 모든 단월(檀越)들로 하여금 널리 대중 스님들께 부족함이 없도록 공양하게 하고, 또 비구들로 하여금 법을 들은 그대로 받들어 행하게 하기 위해서니, 그러므로 사부 대중들에게 법을 설함에 있어서 만약 부처님을 찬탄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비록 욕심의 번뇌를 끊었다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는 새에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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