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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58 불교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0권

by Kay/케이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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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10

 

 

대장엄론경 제10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55

다음으로 누구라도 부처님을 찬탄한다면 큰 과보를 얻고 뭇 사람들의 공경을 받으리니, 그러므로 항상 부지런히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가섭(迦葉)부처님1) 때에 어떤 법사 한 사람이 대중들을 위해 법을 설하면서 대중들 안에서 가섭부처님을 찬탄하였는데, 이 인연으로 목숨이 끝난 뒤에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 항상 쾌락을 받았으며,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백 년이 지난 아수가왕(阿輸伽王) 때에 큰 법사(法師)가 되어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으니, 3명(明)과 6통(通)과 8해탈(解脫)을 구족하여 항상 미묘한 향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때 저 법사가 아수가왕의 처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중들을 위해 법을 설하였는데, 입 안의 향기가 왕의 처소에까지 풍기니, 왕이 이 향기를 맡고, 마음으로 이상하게 여겨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비구가 어떤 묘한 향을 섞어 입에 물고 있는 것인가? 향기가 어떻게 이러할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비구에게 말하였다.
“입을 벌려 보시지요.”
그때 비구가 입을 벌렸으나 아무것도 없으므로, 왕이 다시 말하였다.
“입을 씻어 보시오.”
비구가 입을 씻었으나 향기는 여전하였다.
비구가 왕에게 아뢰었다.
“어째서 나더러 입을 벌리라 하고, 또 입을 씻게 하시나요?”
왕이 대답하였다.
“내가 향 냄새를 맡고 마음으로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대의 입을 벌려보라 하고, 또 입을 씻게 하였으나 향 냄새만 더욱 왕성할 뿐 입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왕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나를 위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비구가 미소를 지으며 곧 게를 설하였다.

온 국토에서 자재로운 이시여
이제 당신을 위해 설명하리니
이것은 침수향(沈水香)도 아니고

꽃이나 잎, 줄기로 만든 향이거나
전단(栴檀) 같은 등의 여러 향을
섞어서 만든 향도 아닙니다.

제가 일찍이 희유(悕有)한 마음을 내어서
이와 같이 말하여
옛날 가섭부처님을 찬탄했기 때문에
이런 향기를 얻은 것이니

저 부처님 때에 이미 화합되었으나
새 향과 다름이 없어서
밤낮으로 항상 향기가 있으며
잠시라도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이 향기를 얻은 지 얼마나 되었소?”
비구가 대답하였다.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왕께서는 이제 잘 들으시오. 지난 과거세에 가섭부처님께서 계셨는데, 내가 그때에 부지런히 닦아 모아서 이 향기를 얻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이 말을 듣고는 희유(希有)하다는 생각을 내어 비구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바라건대 풀어서 설명해 주시오.”
그때 저 비구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들으시오. 내가 가섭부처님 때에 설법하는 비구가 되어 대중들 앞에서 환희심을 내어 저 부처님을 찬탄했기 때문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금빛 나는 몸이 찬란도 하시기에
환희심을 내어 찬탄했더니
이 복덕의 힘으로 인하여
어디든 태어나는 곳에
몸마다 이 업력을 따라서
이와 같은 향기가 항상 있네.

이 향기는 우발라(優鉢羅)2)
첨복(瞻蔔)3)보다 뛰어나서
향기가 이미 사방에 가득하므로
맡은 사람마다 모두 기뻐하여
마치 감로의 맛을 마신 것처럼
아무리 맡아도 싫증내지 않네.

그때 대왕이 이 말을 듣고는 몸의 털이 곤두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호라,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이 과보를 얻었다는 말씀이구려.”
비구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이 결과로 이와 같은 과보를 받았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다시 게를 설하였다.

이름남[名稱]과 복덕(福德)
색력(色力)4)과 안락함 등
이 모든 공덕을 이미 지녔으므로
사람들이 함부로 깔보지 못하며

위광(威光)이 또 좋아할 만하고
의지가 매우 깊고도 넓어서
모든 허물과 악업을 여읠 수 있으니
다 부처님을 찬탄한 그 과보 때문이네.

이렇게 복된 과보는

현명한 지혜라야 말할 수 있으니
이 몸을 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늘 감로의 자취를 얻어 왔다오.

그때 대왕이 다시 비구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그 일이란 어떤 것인가요?”
비구가 게를 설하여 대답하였다.

내가 대중들 안에서
부처님의 실다운 공덕을 찬탄했기에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름이 시방에 가득하며

또 부처님의 선업(善業)을 설하여서
대중들이 듣고는 환희심을 내어
모두 기뻐하는 모습이 된 것은
먼저 부처님을 찬탄했기 때문에
얼굴빛에 위광(威光)이 있어서이며

법을 설하여 괴로움을 다하고
저 여래께서 말씀하신
선업을 닦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한 인연 때문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은 것이네.

무엇을 부처라 하는가 하면
10력(力)을 지닌 이라 말하니
누구나 이 법을 얻기만 하면
남에게 멸시 당하지 않으리라.

하물며 모든 법을 설하는 이들이
법좌(法座) 위에 올라가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모든 외도를 항복함에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했기 때문에
가장 미묘한 몸을 얻고
나아가 여러 사람들을 위해
즐겨 할 만한 바른 도를 말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마치 가을의 둥근 달처럼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처님의 진실한 공덕을 찬탄하기는
겁이 다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지만
설령 혀가 닳아 없어진다 해도
끝내 쉬거나 그만두지 않네.

이런 마음을 항상 가져서
세상마다 태어나는 곳에서
말을 솜씨 있게 잘할 수 있게 되어
부처님의 자연스런 지혜를 선설해
무리들의 지혜를 증장시켰으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수승한 지혜를 얻어
일체의 세간이 모두
이 업연으로 지어진 것임을 설하여
들은 이는 모든 선업을 얻어서
모든 악업을 여의기 때문에

태어나는 곳마다 모든 허물을 여의고
탐욕ㆍ진심ㆍ아견(我見) 등이
마치 뜨거운 쇠에 기름을 쏟아붓듯이
다 녹아서 사라지네.

이와 같은 모든 일들이
어느 곳엔들 뜻에 맞지 않으리요.
나 이제 인연의 화살로
그대의 그물과 활을 무너뜨리니
거듭해서 말하는 아버지 같고
생각해서 잘 말하는 어머니 같도다.

그때 대왕이 이 게를 듣고는 곧바로 일어나 합장하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하신 말씀이 지극히 미묘하여 제 마음에 쏙쏙 들어옵니다.”
왕이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을 찬탄한 공덕의 과보임을
말씀을 듣고서야 이해하였으니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하자면
항상 부처님을 찬탄해야 한다는 것이네.

무슨 인연으로 이 일을 말해 두는가 하면, 설법하는 이가 큰 과보를 얻어서 모든 설법에 대하여 마땅히 환희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56

다음으로 큰 공덕이 있어도 오히려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거늘 하물며 복덕이 없는 자가 게으르거나 교만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존자 마하가섭(摩訶迦葉)이 모든 선정의 해탈삼매(解脫三昧)에 들어가 복을 닦는 중생들로 하여금 선근(善根)의 씨앗을 심어 한량없는 복을 얻게 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부처님께서 주신 승가리(僧伽梨)5) 옷을 입고서 걸식하러 갔는데, 때마침 어떤 사람이 존자를 보고서 곧 게를 설하였다.

여래의 옷을 입은
저 수승한 이를 찬탄하노니
사람ㆍ하늘ㆍ팔부중생 앞에
부처님께서 자리를 나누어 앉게 하셨네.

그러자 부처님께서도 가섭을 칭찬하시면서 곧 게를 설하셨다.

그대가 이제 선행을 닦는 것은
마치 달이 점점 차오르는 것 같고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면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과 같으며
몸은 청정한 물과 같아서
조그마한 더러움도 없도다.

나는 항상 대중들 앞에서
그 공덕을 칭찬하노니
나아가 미래세에 가서도
미륵이 성불할 때에

역시 그를 찬탄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고하되
“이이가 바로 모니 세존의
고행을 닦은 제자이니,

열두 가지 두타(頭陁)6)를 갖추어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이들 중에
제일이란 최고의 이름을 얻은
마하가섭이다”라고 하면서
사람ㆍ하늘ㆍ팔부중생 앞에
그 공덕을 찬탄하리라.

그때 제석이 저 가섭의 걸음걸이가 조용하고도 여유 있음을 보고 멀리 궁전에서 합장하여 공경하자, 그의 부인 사지(舍之)가 제석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보고 그렇게 공경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제석이 곧
게를 설하여 대답하였다.

탐욕의 불 속에 처해 있어도
생각을 묶어 항상 앞에 두니
금빛 같은 부인과 한집에 살아도
애착하는 마음이 전혀 없도다.

몸을 선정에 의지하니
마음과 뜻도 쾌락하며
성에 들어와 마을로 가서
걸식을 다니려 하는구나.

지혜로 땅을 갈아
나쁜 풀들을 뽑아 버리니
이야말로 훌륭한 복밭이어서
심어 놓은 과보가 헛되지 않으리.

그때 그의 부인 사지도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제석을 우러러보고 말하였다.
“당신은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서 방일한 곳에 처하여 있지만 오히려 착한 마음이 있어서 복덕을 닦으시는군요.”
제석이 게로써 대답하였다.

보시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는 가장 자재로움을 얻었기에
하늘ㆍ사람ㆍ아수라들이
모두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공경하네.

밤낮 보시할 것만 생각하므로
나는 이와 같음을 얻었으니
허다한 복장(伏藏) 속에서
뭇 보배들이 가득 차 흘러넘치네.

존자 가섭이 가난한 마을의 거리에 이르러 가난한 이들의 보시를 즐거이 받았다. 그때 제석은 옷감 짜는 가난한 노인으로 변화하고, 부인 사지도 다 떨어진 옷을 입은 노모(老母)로 변화하여 부부가 함께 길가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존자가 해진 옷을 입고 있는 하천(下賤)한 모습의 저들 부부를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간에서 이들보다 더 빈궁하고 하천한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위안하려고 하였는데, 옷감 짜는 노인이 빨리 일어나 존자의 발우를 받아서 천상의 수타(須陀)들이 먹는 음식을 발우에 가득 담아 받들었다. 존자가 그 음식을 얻어서 먹기는 하였으나 마음 속으로 이상하게 여겨서 곧 게를 설하였다.

저들 부부는 지극히 빈천하거늘
음식은 어찌 이리도 수승하고 미묘할까?
이 일은 놀랍고도 의심할 만한
심하게 전도된 모습이로다.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또 생각하기를 ‘이제 누구에게 물어 볼 것인가? 내 스스로 관찰해 보아야겠다’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바로 선근의 씨앗이므로
다른 사람의 의혹을 끊어 주고
하늘이나 사람이 하는 일들을
당연히 해석해야 마땅하거늘
하물며 내게 지금 있는 의심을
어떻게 다른 이에게 물을 수 있으랴.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 지혜의 눈으로 이가 바로 제석인 줄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호라, 복 닦기를 즐겨 하는 이가 방편으로 존귀하고 수승함을 구하는 게로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자신의 존귀하고 수승한 모습을 버리고
일부러 빈천(貧賤)한 사람으로 변화하여
파리하고도 노약한 모습으로
이 떨어진 옷을 입고서
편안한 비사연당(毘闍延堂)을 버리고는
변화하여 길가에서 쉬고 있구나.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존자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게를 설하였다.

나는 복 없는 이에게
훌륭한 복업(福業)을 이루게 하려는 것인데
그대의 복업은 이미 성취되었거늘
무엇 때문에 이리도 귀찮게 구는가.
음식을 나에게 보시한 것으로
수승한 다섯 가지의 미묘한 욕망을 갖추었도다.

세존께서 오랫동안 그대를 위해
세 가지 나쁜 갈래를 끊어 없애 주셨거늘
그대는 아직 만족할 줄 모르고
이제 다시 복업(福業)을 구하는 것인가.

그때 제석이 도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와 뭇 사람들 앞에서 존자의 발 아래 예배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 가섭이시여,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제가 보시로써 과보를 얻되
모든 수승한 이익을 얻어서
밑천[資業]이 이미 광대해졌음을 보고
몇 배의 신심을 내고 있거늘
이제 대덕께선 무엇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을 막으려 하시나요?

그리고 제석이 거듭해서 다시 게를 설하였다.

사람들은 보시라는 말만 듣고도
오히려 보시할 줄 알거늘
하물며 저같이 보시의 과보를 얻어
분명하게 스스로 증험(證驗)해 아는 자이겠습니까?

부모와 친한 벗들을
구제하여 이익되게 하려면
생사의 괴로움을 여의게 하는
보시에 미칠 것이 없으니

보시의 과보는 그림자와 같아서
곳곳마다 안락함을 주므로
생사의 그 험난함 속에서도
보시만은 서로 따르게 되고
비바람과 추운 눈보라 속에서도
보시만이 안락하게 해줄 수 있으며

험악한 길을 다닐 때에도

보시로써 방비의 밑천[資嚴]을 모두 갖추고
피로하거나 궁핍할 때에는
보시가 안온한 탈 것이 되어 주며

사나운 도적의 소굴에 처해 있어도
보시가 바로 선한 벗이고
보시가 모든 두려움을 제거해 주는
많은 구제들 중에 가장 친후(親厚)하며
보기 싫은 원수를 만나서도
보시가 곧 예리한 칼이 되어 주며

보시는 가장 미묘한 약이어서
중병을 다 낫게 할 수 있고
평평하지 않은 길을 갈 때에는
보시가 훌륭한 지팡이가 되네.

그때 제석은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존자에게 공양하고 도로 천궁(天宮)으로 올라갔다.
무슨 인연으로 이 일을 설하는가 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보시의 복에 분명하게 수순(隨順)할 것이니,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복업을 닦도록 하려는 것이다. 제석처럼 빼어난 사람도 오히려 복업을 닦거늘 어찌 하물며 세간 사람으로서 보시를 닦지 않을 것이며, 성문(聲聞)에게도 제석이 공양을 올리는데 하물며 세존이시겠는가?

57

다음으로 비록 적은 선(善)을 심을지라도 반드시 부처님께 구해야 할 것이니, 적은 선으로라도 부처님께 구하면 마치 단 이슬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부처님께 구해야 하리라.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인연의 힘 때문에 발심해서 출가하여 해탈을 구하려고 곧 승방(僧坊)으로 나아갔으나, 마침 부처님께서는 교화하러 가셔서 승방에 계시지 않았다. 저 사람은 생각하기를, ‘세존께서 비록 계시지 않더라도 나는 마땅히 법의 대장인 사리불에게 나아가리라’ 하였다.
그때 사리불은 저 사람의 인연을 관(觀)하여 과거세 때에 조금이라도 악을 싫어하여 선근을 닦은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찰해 보았으나 조그마한 선근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그 한 생의 몸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백천 생의 몸에도 도무지 선근이 없었다. 다시 1겁(劫)을 관하여도 선근이 없었고, 나아가 백천 겁에도 또한 선근이 없었다.
존자 사리불이 저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로서는 그대를 제도할 수 없네.”
저 사람이 다시 다른 비구들에게로 가니, 한 비구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에게 가서 출가할 것을 구하였던가?”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존자 사리불에게 나아갔으나
저를 제도해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사리불이 제도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대에게 반드시 허물이 있어서 일 텐데, 우리들이 어떻게 그대를 제도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이리저리 여러 비구들에게 돌아다녔으나 도무지 제도해 주려고 하지 않았으니, 마치 병자를 큰 의사가 치료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 나머지 조그마한 의사들로선 치료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는 이미 자기 소원을 이룩하지 못한 채 승방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얼마나 박복하기에 제도해 줄 이가 없을까? 네 가지 종성이 모두 다 출가할 수 있거늘 나는 무슨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제도를 받지 못한단 말인가. 만약 제도를 받지 못한다면 나는 반드시 죽어야 마땅하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저 맑고 깨끗한 물을
모두가 다 마실 수 있는 것처럼
전다라(旃陁羅) 따위도
각자 모두가 출가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불법 중에
나를 용납해 받아 주지 않는 것은
나는 길들여져 따를 수 없는 사람이라
이대로 살아서 무엇하리.

이 게를 읊고 나자, 그때에 세존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교화하려 하시니, 마치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같았고, 금으로 된 산을 다니는 것처럼 그 빛이 햇빛을 덮어 가렸다. 승방 문 앞에 이르러 곧 게를 설하셨다.

모든 지혜의 씨앗이 되는 몸은
큰 자비로움을 뼈대로 삼나니
부처는 삼계(三界) 중에
교화받을 이를 찾아다니되
마치 어미 소가 새끼를 찾듯이
사랑하기를 쉬지 않네.

그때 세존께선 마치 활짝 핀 꽃처럼 맑고 깨끗하여 때가 없으시며, 손에는 광명이 치성하고 손바닥엔 수레바퀴 무늬와 그물 같은 갈퀴가 있는 이런 신묘한 손으로 저 사람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느냐?”
저 사람이 슬퍼하면서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출가하려 했으나 모든 비구들이 다 허락하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모든 비구들이 허락하지 않다니, 그 누가 너의 출가를 막아 허락하지 않았단 말이냐?”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셨다.

그 누가 일체의 지혜를 지녀서
미리 알고 측량하려 하는가?
업의 힘은 지극히 미세하거늘

뉘라서 깊고 얕음을 알 수 있으리요.

그때 저 사람이 이 게를 듣고서 세존께 아뢰었다.
“불법의 대장이고 비구들 가운데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이 저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깊고도 먼 우레 같은 음성으로 저 사람을 위로해 말씀하셨다.
“이는 사리불의 지혜의 힘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셀 수 없이 오랜 겁(劫) 동안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행하여 지혜를 닦아 익혔기에 이제 너를 위해 제도해 줄 수 있느니라.”
곧 게를 설하셨다.

나의 제자 사리불은
일체종지(一切種智)도 아니고
또한 바탕의 본성을 이해하지도 못하며
그 중간과 아래도 모두 알지 못한다네.

그의 앎은 한계가 있어서
깊이 깨닫지 못했으므로
미세한 업보를 알 만한
그런 지혜는 없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우리 불법에 따라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겠다. 내가 법의 가게[法肆]에서 너같이 믿고 즐거워하는 사람을 사들이는 것은 법대로 교화하고 제도해서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부드럽고도 미묘하며 수레바퀴 무늬가 있는 손으로 저 사람의 팔을 당겨 승방으로 들어가셨다.
부처님께서 대중들 앞에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느냐?”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 사람의 미세한 선근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곧바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게를 설하셨다.

내가 이 사람의 선근을 관찰해 보건대
너무나도 미세하여
마치 저 산의 돌이나 모래를
녹여야만 금이 나오는 것과 같도다.

선정과 지혜는
풀무에 달린 가죽 주머니 같으므로
내가 공력(功力)으로 불어댄다면
반드시 진짜 금이 나올 것이니
이 사람도 또한 그러하여
미세한 선근이 저 금과 같으니라.

그때 존자 사리불이 울다라승(鬱多羅僧)7)을 정돈하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세존을 향해 게를 설하였다.

모든 의론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시니
바라건대 저를 위해 설하셔서
지혜의 크신 광명으로
모든 어둠을 제거해 주소서.

저 사람이 어느 때에
이 미세한 선근을 심어서
어떠한 복밭을 얻었기에
종자의 자라남이 이렇게도 빠릅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너를 위해 말하여 주리라. 저 사람의 선근은 너무나도 미세하기 때문에 벽지불이 볼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지난 과거세에 어떤 가난한 사람이 아련야(阿練若)8)의 산에 들어가 땔나무를 하다가 호랑이에게 쫓겨 겁이 났기 때문에 ‘나무불(南無佛)’을 불렀으니, 이 종자로 말미암아서 해탈의 인연을 얻은 것이다.”
곧 게를 설하셨다.

‘나무불’을 일컬은 이 인연만 본다면
지극히 미세하다 하겠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고제(苦際)를 다하니
이 또한 장한 일이라 하겠네.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면
반드시 해탈을 얻을 것이니
이러한 비슷한 과보를 얻는 것도
별로 따를 이가 없다네.

그때 바가바(婆伽婆)께서 곧바로 저 사람을 제도하여 출가하게 하시고, 부처님께서 몸소 교화를 베푸시니, 저 비구가 마음으로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과위를 얻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세존께 적은 선근을 심은 것도 한량없는 과보를 얻거늘 하물며 불상이나 탑묘를 세우는 것이겠는가.

58
다음으로 선근이 이미 익었다면 해탈의 과보를 얻기 마련이니, 이 때문에 부지런히 선근을 닦아야만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세존께서 도(道)를 배워 보살이 되었을 때였다. 6년 동안 고행을 하시면서 하루에 깨 한 톨 쌀 한 톨을 먹고 지내셨으나 성취한 것이 없고 또한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 그래서 저 보살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므로 곧 백 가지 맛난 우유죽을 먹었는데, 때에 다섯 사람들이 보살에게 따져 물었다.
“먼젓번에 닦은 고행으로도 오히려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우유죽을 먹고서야 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는 곧 그곳을 버리고 바라나(波羅捺)로 가 버렸다.
그때 세존께선 이미 성불하셨으므로
이렇게 생각하고 계셨다.
‘어떤 중생을 먼저 제도해야 할까?’
다시 생각하시기를, ‘저 다섯 사람이야말로 도를 얻는 데 인연이 있었으니, 나에게는 은인이로다’ 하셨다.
이렇게 생각하시고는 바라나에 가셔서 다섯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곧 게를 설하셨다.

묘하고도 좋은 위의(威儀)의 빛으로
온몸에다 장엄을 모두 갖추고
홀로 뛰어난 뭇 상호들을 갖추니
가슴의 넓은 모습이 빛나기도 하고
그 위덕(威德)이 또한 가득하여라.

눈은 우왕(牛王)의 눈보다 더 아름답고
용의(容儀)가 지극히 단정하며
걸음걸이는 큰 상왕(象王)과 같아서
빠르고 정교하기가 독보적이며

할 일을 이미 다 끝냈으므로
지혜와 수행이 모두 만족하여
깊은 지혜로 하늘 관[天冠]을 삼고
해탈의 비단으로 머리를 매었네.

두 발 가진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하며
법륜왕 가운데 최상이니
모든 천신들이 기악을 연주하며
앞뒤로 에워싸고 따르는구나.

비록 모든 뛰어난 왕들이
네 가지 군사로 둘러싼다 해도
어찌 온 세계에서 홀로 노니는
부처의 장엄한 행차를 따를 수 있으랴.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코끼리 병사ㆍ기마 병사ㆍ수레 병사들을 거느리고서
아주 미묘한 하늘 관을 쓰고
비단 일산으로 그 위를 덮은 것과 같구나.

그렇지만 이처럼 위대한 전륜성왕이
복덕과 이익을 모두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부처의 장엄에는 따르지 못하리니

저보다 더욱 수승하여
비교할 것이 없을 만큼 제일이고
위덕이 뭇 성인들보다 뛰어나므로
중생들이 그 용의를 우러러보며

햇빛보다 더욱 밝게 빛나서
사람이나 길짐승, 나는 새들까지도
부처 몸의 모습을 우러러보고는
다니던 발걸음을 모두 멈추어 서네.

그때 저 다섯 사람이 부처님의 빛나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위덕(威德)을 구족하시고 지덕(智德)이 성취되어 전과는 같지 않으셨으므로 다섯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저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나머지 네 사람을 향하여 게를 설하였다.

누가 이 미묘한 광명을 내어
온 숲과 산골짜기를 비추는가.
마치 무수히 많은 해가
땅에서 한꺼번에 솟아오른 것처럼
빛의 그물 같은 밝음이 널리 가득하여
두루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니

마치 진금으로 만든 누각에
가사(袈裟)로 그 위를 덮은 것 같고
또 진금을 불에 녹여서
땅에 어지러이 흩뿌린 것 같구나.

뭍으로 다니는 모든 가축들과
우왕(牛王) 등과

사슴ㆍ꿩ㆍ토끼들까지
부처님을 보면 모두 멈추어 서고
풀을 먹던 것들은 그것을 토해 내고서
자세히 보기를 잠시도 쉬지 않으며

공작은 날개깃을 펼치니
마치 푸른 연꽃 다발 같은데
멋대로 게으르던 때를 벗어나
모두 함께 기뻐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즐거워서 미묘한 음성을 내기도 하는구나.

부처님께서 도로(道路)에서 노니실 때엔
거기에 있던 중생들의 마음과 눈이 쏠리어
곧 그 두 가지 감관을 빼앗겨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가서 보게 되며

부처님께서 도로에 다니실 때엔
누구든지 부처님 다리에 닿았던 자는
이레 동안 낮밤으로 즐거워해서
가장 잘 도행(道行)을 따르게 되니

깊고 고요해서 가볍게 튀지 않으시고
신체가 지극히 부드러우시며
허공을 밟고 땅을 밟지 않으셔서
아무리 걸어도 지칠 줄 모르시네.

또 다른 한 사람이 나머지 네 사람을 향하여 게를 설하였다.

내가 저의 용모[相貌]를 보건대
마음에 또한 의혹이 생기니
이것이 누구의 위광(威光)이기에
햇빛보다 더 밝게 비추는 것일까?

저 빛나는 모습 때문에
숲의 나무가 다 금빛이 되었도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가까이 오시는 부처님을 보고는 곧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바로 석가 종족의 어린 애이다. 고행을 무너뜨려 버리고 도로 욕락(欲樂)으로써 멋대로 그 몸을 길렀구나. 이미 고행을 내버렸으면서 우리들을 향해 오다니.”
곧 게를 설하였다.

우리들 모두 일어나지 말고
부디 그에게 경배하여 예를 올리지 말며
다만 멀리서 지적해 말하되
‘저곳에 앉으시게’라고 해야 하리라.

부처님께서 도착하시자, 때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일어나 곧 게를 설하였다.

얼굴이 깨끗한 보름달 같아서
보고는 나도 모르게 일어났으니
마치 큰 바다에 달이 차면
조수가 밀어닥치는 것과 같도다.

우리들은 자연히 일어났으나
마치 다른 사람이 붙들어 일으킨 것 같으니
이 모두가 부처님의 위덕이
자연히 그렇게 시킨 것이라네.

또한 제석천왕의 깃발[幢]을
다른 천왕들은 움직일 수 없지만
제석 자신이 이르렀을 때에는
자연히 홀로 일어서는 것처럼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부처님께서 오시자 저절로 일어나는구나.

연유[酥] 기름에 불을 켜면
불이 빠르게 타오르는 것처럼
우리들이 부처님의 덕을 보고서
빨리 일어남도 저 불과 같도다.

무수히 많은 겁(劫) 이래로
교만을 다 부수어 없앴기에
온몸을 받들어 존중하기를
마치 스승과 어른, 부모처럼 하였네.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
귀신ㆍ용ㆍ야차 등도
그 누가 부처님을 만나 보고서
감히 공경하여 예배하지 않을 자가 있으랴.

지혜로운 이는 의심할 것 없이
마땅히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니
부처님께서 만약 발을 올리거나 내린다면
땅도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모든 산도 또한 가벼운 풀과 같아서
부처님을 보면 다 다투어 움직이기 마련이네.

그때 저 다섯 사람은 부처님을 보자마자 일어나서 다 함께 나아가 맞이하였고, 부처님을 위해 발우를 들어 드리고 자리를 펴며 물을 가져오는 자도 있었고, 부처님을 위해 발을 씻어 드리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곧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의 그 치성한 위덕을
우리 다섯 사람이 함께 보고
모두 마음속으로 기뻐했기 때문에
본래 약속한 말을 파괴했도다.

다리가 셋 달린 물동이를
자세히 보고는 깨질까 두려워
모두 말하지 않는 법[不語法]을 받으니
열 가운데 또한 절반이네.

그때 세존께서 이 게를 들으시고는 곧 빙그레 웃으시며 타일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로다. 어찌하여 너희들이 약속한 말을 깨뜨린단 말이냐?”
부처님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공경히 모시고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혜명(慧命)이신 구담(瞿曇)이시여!”
부처님께서 미워하심도 사랑하심도 없으시고 다만 인자하신 마음 그대로이시므로 게를 설하셨다.

이제 나 이미 도를 얻어
모든 번뇌를 멀리 여의었으므로
너희들은 옛날처럼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리라.

마치 진흙이나 나무로 불상을 만들더라도
아직 그 불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엔
발로 밟거나 도끼로 깎을 수 있지만
이미 불상이 성취되고 나면
향과 꽃으로 공경하고 예배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너희들도 지금부터는
친구라는 생각을 아예 버리고
나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낼 뿐
가벼이 여기거나 교만을 부리지 말아야 하네.

찬탄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고
헐뜯는다고 해서 성내지도 않으며
나 이제 너희들을 가엾이 여겨
해탈을 얻도록 하고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며
모든 이익되는 일을 얻게 하려 하노라.

어리석음ㆍ애욕(愛欲)ㆍ성냄 따위는
각각 자기의 모양새가 있으며
헐뜯으려고 나쁜 말을 내는 것은
마치 재[灰]를 종기에 바르는 것과 같은 짓이네.

나 이제 보리를 성취했는데도
나를 일컬어 구담이라 하는 것은
비록 내가 사랑함도 미워함도 없다지만
마땅히 공경하는 모습을 내야지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이런 말은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하리라.

그때 저 다섯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세존께서 아직 보리를 얻지 못했으리라 여기고, 곧 게를 설하였다.

당신이 지난번에 고행을 닦을 때도
오히려 보리를 얻지 못했거늘
이제 욕락의 진흙 속에 빠져서
어떻게 도를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마치 산에 있는 돌을 짊어진 자가
큰 배를 내버리고
깊은 강물을 건너려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때 세존께서 저 다섯 사람의 마음이 고행에 집착되어 고행을 바른 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음을 아시고는 곧 그들을 위해 다섯 가지 욕락을 여의는 것이 바른 길이고, 고행을 여의는 것이 또한 바른 길임을 설하셔서 양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제거하게끔 그 중도(中道)를 일러 주셨으며, 또한 자비하신 마음을 으뜸으로 삼아 게를 설하여 타이르셨다.

지혜 없는 어리석음의 장애는
지혜만이 제거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지혜로써만이
신명(身命)을 보호할 수 있기에
신명이 있는 자는 지혜를 얻어야 하네.

침대나 이불, 의복 등과
음식이나 탕약은
이것들로 신명을 보전하는 것인만큼
만약 이러한 물자가 없다면
신명도 곧 무너지기 마련이니

이것으로 신명을 보호하여
금계(禁戒)를 굳게 지키고
금계를 지켜서 선정과 지혜를 얻을 뿐
고행을 닦아 얻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굶어 단식하는 법으로도
반드시 도를 얻는 것이 아니라네.

몸이 무너지면 목숨이 없어지고
목숨이 무너지면 몸도 없어지듯이
계를 훼손하면 선정이 없어지고
선정이 없으면 지혜도 없으니

그러므로 신명을 보호해야만
금계를 지킬 수도 있고
금계를 지킴으로 인하여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네.

또한 법의 몸을 파괴하는
고뇌를 멀리 여의어야 하고
다섯 가지 욕락을 여의어서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하니

만약 탐욕을 좋아하여 집착한다면
그것이 곧 금계를 훼손하는 일이며

다시 애욕을 자라나게 하고
어리석어 고행에 집착하게 되며

스스로가 단식하는 법을 좋아해서
혹 풀 잎 따위를 먹기도 하고
재나 가시 위에 눕기도 하지만
이 같은 고행은 신명을 손상시킬 뿐
선정과 지혜는 얻을 수 없도다.

그러므로 중도(中道)에 처하여
이와 같은 법에 의지해서
탐욕의 진흙 속에 빠지지 않고
몸을 괴롭게 하지도 말아야 하니

이러한 두 가지 허물과 근심을
지혜 있는 자는 잘 분별하므로
마치 뭇 사람들이 달을 좋아하듯이
중도에 처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도다.

탐욕의 깊고 더러운 진흙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모두 다 빠져 버리거나
고행으로 몸과 마음을 불사르기에
이러한 근심을 면하지 못하나니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던져 버리고
중도에 처해야만 열반에 이를 수 있다네.

그때 지혜의 생명을 얻은 교진여(憍陳如)9)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번뇌를 끊고자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정직하고 선한 법을 찬탄하여 곧 게를 설하였다.

만약에 지혜를 사용한다면
어리석음의 얽매임이 저절로 풀릴 것이니
이런 이치로 미루어 본다면
몸을 괴롭히는 건 아무런 이익이 없고

계율과 선정, 지혜로써만이
도의 자취를 얻을 수 있으니
마치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자가
모든 허물과 근심을 소멸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네.

그러한 이치 때문에
의복이나 음식, 침구 따위를
버리는 것도 옳지 않으며
이런 물건들을 너무 좋아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도 말지니

불덩이와 눈더미를
그대들은 모두 버려야 하지만
불덩어리 속에 있고
눈더미 옆에 머물러 있더라도
두 가지 모두 쉴 만한 곳이라
다시 멀리 떠나갈 필요는 없다네.

그때 교진여가 이 일을 따라서 깨닫게 되자, 부처님께서 관찰하시고는 “착하도다”라고 칭찬하시고서 곧 게를 설하셨다.

음식과 의약품, 거처할 곳과 침구 등은
몸과 목숨을 사랑하고자 하는 자들이
때에 따라 알맞게 사용할 뿐이지

이 많은 아름다운 물자에 대하여
염착하는 마음을 낼 것도 아니며
또한 전부 다 내버릴 것도 아니니

마치 커다란 불덩어리는
본바탕의 성품을 태워 버리기도 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때에 맞게 사용해서
갖가지로 이익을 낼 뿐
그 불에 타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네.

그때 존자 교진여가 듣는 지혜[聞慧]를 얻고 나서, 생각하는 지혜[思慧]에 들어가고자 하여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음식과 그 밖의 뭇 오락거리를 다 버리는 것이 바로 도를 닦는 법이 아닙니까?”
그러자 세존께서 곧 게를 설하셨다.

부처가 교진여에게 이르나니
너는 오로지 나만을 믿고서
어떤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그 일에 따라 물어야 하리라.

네가 의심의 그물 숲에 걸려 있다면
내가 지혜의 불로 태워 주리라.

그때 교진여가 이 말씀을 듣고는 매우 환희심에 넘쳐 얼굴빛이 편안하고 즐거워지면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건대 제가 말씀드리는 모든 의심스러운 일들을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악업을 싫어하여 처음 발을 디딘 곳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이었지만
행하기 어렵다고 고행을 버린다면
다섯 가지 욕락에만 집착하게 될 것이니

비구가 어떻게 해야만
탐욕을 여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의 진리[苦聖諦]를 관찰해야만 생사를 등질 수 있느니라.”
그러자 교진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바라건대 부처님께서 저를 위하여 방편으로 풀어서 설명해 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다섯 가지 욕락에서 벗어나 괴로움의 진리를 관찰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교진여가 이미 듣고 생각하는 지혜[聞思慧]를 얻었음을 관하시고, 지금이 바로 닦는 지혜[修慧]의 법을 설해 줄 때라고 생각하셔서 곧 법의 바퀴를 굴려 수다라(修多羅)를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 괴로움의 진리라는 것은 옛날에는 일찍이 들어 보지 못했던 것이며, 내가 비로소 바르게 관찰하는 지혜의 눈을 얻어 밝게 깨달은 것이니, 『전법륜경(轉法輪經)』에 자세하게 말해 둔 것과 같으니라.”
비구들이 물었다.
“교진여를 위해 법을 설하시면서, 왜 부처님께서 얻으신 법을 스스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스승 없이 홀로 법을 깨달았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니라.”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과거에는 들어 보지 못했던 법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아란가란(阿蘭迦蘭)10)과 울두람불(鬱頭藍弗)11) 등에게서 법을 듣고 깨달았을 것이라는 이런 의심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
내가 ‘과거에는 들어 보지 못했던’이라고 말한 것이며, 지금 나타내 보이는 것은 나 자신의 힘으로 중도(中道)를 설한 것임을 드러내기 위함 때문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중도를 닦을 수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듣지 않더라도 진제(眞諦)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네 가지 진리를 나타내 보이시니, 아야교진여가 곧 진리를 보고 중도를 따랐으며, 마침내 네 가지 진리를 모두 보아서 즉시 도과(道果)를 얻었다. 얻고서는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개가 머리에 부스럼을 앓을 때
구더기들이 빨아먹는 것을
훌륭한 의사가 기름으로 치료해 주어도
개는 그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서
도리어 그를 향해 짖어대는 것처럼

부처님께서 선정의 기름과
지혜의 위덕으로써 뜨겁게 하시어
우리들의 번뇌라는 벌레를 제거해 주셨건만

우리는 무명 때문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를 이익되게 해주는 줄도 모르고
대비하기 때문에 스스로 오신 이에게
도리어 촉뇌(觸惱)만 일으켰다네.

일체의 모든 하늘들도
오히려 마땅히 공양을 올리는
법에 자재하신 이여
이제 저희들의 참회를 들어 주소서.

저희들이 과거에 이르기를
“고행으로 일체종지를 얻으리라”라고 한 것은
어리석음에 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가리워져 이런 마음을 내었던 것이나

이제 부처님 말씀을 듣고는
무지(無智)의 꺼풀을 벗어 버려서
스스로 굶는 것이 참된 법이 아님을
이제야 비로소 진실되게 알았습니다.

세존께선 이 세간을 위해
해탈의 길로 나아감을 보여 주시는데
외도들의 의론은 이치가 적고
말들만을 장엄하니

언사가 아름답고 미묘한 반면
간사스럽고 아첨하며 거짓이 많아서
세간을 속이는 것뿐이므로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얽매이지만
선서(善逝)의 언사는 널리 비추어서
듣고서 이해하지 못하는 자 없도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설하였는가 하면 다섯 비구들 때문이니, 그들의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제거하고 중도를 수행하여 진리를 보고서 도과(道果)를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59

다음으로 중생들은 업(業)을 지은 그대로 각각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한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천사(天祠)에 나아가서 현재에 요익(饒益)한 재보(財寶)를 구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아우에게 말하였다.

“너는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여 집안에 부족한 것이 없게끔 생활의 계획을 잘 세우거라.”
그리고 곧 그 아우를 데리고 밭으로 가서 “이곳엔 깨를 심어야 하고, 이곳엔 보리와 밀을 심어야 하며, 이곳엔 벼와 콩을 심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낱낱의 심을 곳을 보여 준 뒤에, 자기는 천사에 나아가 천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곧 큰 재(齋)를 베풀어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향으로 된 진흙을 땅에 바르며 밤낮으로 예배를 올리면서 은혜를 구하고 복을 청하되, 바로 현재세에 재산이 늘어나기를 희망하였다.
그때 천신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가난한 사람을 관찰하건대 전생에 어떤 보시 공덕의 인연이 있을까? 조금이라도 그런 인연이 있다면 방편을 다하여 그를 요익하게 하겠지만, 저 사람을 관찰해 보니 보시의 인연이라곤 조금도 없구나.’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사람은 이미 인연이 없는데도 지금 나에게 부지런히 은혜를 구하고 복을 청하니, 헛되이 수고로움만을 더할 뿐 장차 아무런 이익도 없고 도리어 나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곧 그의 아우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천사를 향해 오니, 때에 형이 말하였다.
“너는 밭에 무엇을 심었으며, 무엇하러 이곳에 왔느냐?”
변화한 아우가 대답하였다.
“저도 또한 여기에 와서 천신에게 은혜를 구하고 복을 청하되, 천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의복과 음식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제가 비록 씨앗을 뿌리지는 않았으나 천신의 힘으로 밭 가운데서 곡식이 저절로 풍족하게 될 것입니다.”
형이 아우를 꾸짖어 말하였다.
“어떻게 밭에 씨앗을 뿌리지 않고서 수확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온 천하 큰 땅덩리 안에
그 어느 곳에서든지
어찌 씨앗을 심지 않고도
열매를 얻는 자가 있으랴.

그때 변화한 아우가 그 형에게 따져 말하였다.
“세간에서는 과연 씨앗을 심지 않는다면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까?”
형이 아우에게 대답하였다.
“실로 그러하다. 씨앗을 심지 않으면 열매도 없는 것이다.”
그때 저 천신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가 이제 스스로 말하기를
“심지 않고는 열매가 없다”고 하였듯이
전생에 보시한 인연이 없거늘
어떻게 지금 과보를 얻을 수 있을까?

그대가 이제 비록 애를 써서
곡기를 끊어 가면서 나를 공양하지만
헛되이 스스로 수고롭기만 하고
또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일 뿐
어떻게 지금 당장 그대를
요익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에 재보를 얻으려 하거나
처자와 권속을 거느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몸과 입을 깨끗하게 하고서
보시의 업을 닦아야 할지니

심지 않고도 복과 이익을 얻는다면
해와 달과 별들의 광명이
이 세계를 비추지 않아야 마땅할 것이지만
저들의 광명이 세간을 비추고 있으므로
모두가 업연(業緣)인 것임을 알아야만 하네.

천상의 여러 천신들 중에도
또한 각각 차별이 있어서
복도 많고 위덕도 성하거나
복도 적고 위덕도 적은 이들이 있으니
그러므로 세간의 모든 것이
일체가 업연으로 된 것임을 알아야 하네.

보시로 재부(財富)를 얻고
계를 지켜 천상에 태어나는 만큼
만약 보시의 인연이 없다면
위덕이 죄다 덜어져 줄어들기 마련이며

선정과 지혜로 해탈을 얻으니
이 세 가지로 과보를 얻는 것은
10력(力)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 종자가 모두 인(因)이기 때문이라.

이제 너도 나를 괴롭힐 것 없이
모든 선업을 부지런히 닦아서
그것으로 좋은 과보를 구해야 하네.

60

다음으로 씨를 심어 열매를 얻는 것은 상서로운 힘 때문이 아니니, 그러므로 상서로운 모양에 의심을 내어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한 비구가 단월(檀越)의 집으로 갔는데, 때에 저 단월은 이미 갯버들 가지[楊枝]로 양치질을 하고 우황(牛黃)을 그의 이마에 발랐으며, 부는 조개[吹貝]를 머리 위에 얹고서 비륵과(毘勒果)를 손으로 받들어 이마 위에 붙이고는 공경하였다.
비구가 이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인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상서로운 모양을 만든 것입니다.”
비구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상서로운 모양을 만든다니, 무슨 복이 되고 이익되는 것이 있는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큰 공덕이니, 그대도 지금 시험삼아 해 보시오. 이른바 상서로운 모양이란 죽을 자를 죽지 않게 하고 매를 맞거나 형틀에 묶일 자들도 다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비구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상서로운 모양이 과연 그러하다면
매우 훌륭한 일일 것이네. 이와 같이 상서로운 모양은 무엇에서 유래된 것이며,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인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이 우황은 소의 심장과 폐장 사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구가 물었다.
“만약에 우황이 그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째서 저 소는 사람들에게 끈으로 붙들려 매이고 코를 꿰이기도 하며, 밭을 갈거나 짐을 싣고도 갖가지 채찍질과 꼬챙이에 찔리면서 기갈에 허덕이고 피로에 지쳐 조금도 쉴 새가 없는 것인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비구가 다시 물었다.
“저 소에게 황(黃)이 있다 해도 오히려 자신을 구제하지 못해 그와 같은 괴로움을 받거늘, 어떻게 그대를 상서롭게 할 수 있겠는가?”
곧 게를 설하였다.

우황이 온전히 심장에 있다 해도
자기도 구호할 수 없거늘
하물며 그것을 조금 갈아서
이마 위에 발랐기로서니
어떻게 그대를 옹호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마땅히 잘 관찰해야 하네.

그때 저 단월이 한참 동안 생각하였으나 대답하지 못하므로, 비구가 또 물었다.
“이 물건은 무엇이기에 희기가 마치 눈덩어리 같으며, 어디에서 나온 것이기에 물에 적시어 불면 소리가 나는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조개라는 것인데,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비구가 물었다.
“그대의 말대로 이 조개가 바다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것을 그대로 육지에 버려 두면 햇빛에 쪼여 고뇌를 받다가 시간이 지나면 죽을 것이 아닌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비구가 말하였다.
“이것은 상서로움이 될 수 없네.”
곧 게를 설하였다.

저 벌레가 조개와 함께 자라나
밤낮으로 조개 속에 있다가도
그 벌레가 죽을 때에 이르면
조개도 구호해 줄 수 없거늘
하물며 이제 그대가 잠시 잡고 있었다 하여
어떻게 상서로운 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일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여도
그대는 이제 잘 분별해야만 하니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어리석은 길로 다니는 것인가.

그때 단월은 머리를 숙이고 말없이 생각하였으나 대답하지 못하였으므로, 비구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단월이 이제 깨달으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으니, 내가 지금 다시 물어 보리라.’

그리고는 단월에게 말하였다.
“세간 사람들이 여환희환(如歡喜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물건인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비륵과를 이르는 것입니다.”
비구가 말하였다.
“비륵과라는 것은 나무 위에 달린 과일인 만큼 사람들이 그 과일을 딸 적에 돌을 던지면 과일이 나무와 함께 떨어지기 마련이니, 그렇다면 이 과일로 말미암아 그 나무의 가지와 잎이 모두 함께 떨어질 것이네. 그렇지 않겠는가?”
단월이 대답하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비구가 말하였다.
“만약 그러하다면, 어째서 그대는 그 과일을 갖고서 상서로움을 얻기를 바라는 것인가?”
곧 게를 설하였다.

이 과일은 나무를 의지해 자라났기에
자신을 온전히 구호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돌을 던져 딸 적엔
가지와 잎이 따라서 함께 떨어지며

또 따서 쓰다가 땔감으로 만들어
마르면 불을 지피는 데 쓰이지만
저는 자신도 구호할 수 없거늘
어떻게 그대를 구호할 수 있겠는가.

그때 단월은 묻는 것을 모두 듣기만 하고 대답할 수 없었다.
단월이 비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앞에서 물으신 대로 사실 상서로운 모양이라곤 없습니다만, 제가 의심되는 것이 있으니, 바라건대 저를 위해 설명해 주십시오.”
비구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물어 보는 대로 내가 설명해 주겠네.”
그때 저 단월이 게를 읊어 질문하였다.

옛날에 모든 훌륭한 사람들도
다 이것을 상서롭다 말했으나
이제 사실 그대로를 관찰해 볼 때
도무지 상서로운 모양이라곤 없는데

어째서 서로 전해 주고 익히며
상서롭다고 횡설수설한 걸까?
바라건대 저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그 무슨 까닭인지 해설하여 주십시오.

그때 비구가 저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일체의 모든 소견이 생기는 데에는 모두 인연과 본말(本末)이 있네.”
곧 게를 설하였다.

과거에 겁(劫)의 처음 때엔
일체가 모두 애욕을 여의었으나
그 뒤에 애욕의 일이 일어나자
애욕을 여의려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네.

숲에 있으면서도 애욕을 좋아하던 자들은
도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소리 높여 이렇게 말했네.
“애욕도 없고 처자도 없으면
천상에 태어날 수 없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으므로
이 말을 진실이라 여기고
이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곧 모두들 아내를 구하였네.

애욕의 일이 이미 널리 퍼지고
각자의 장엄을 갖추기 위해
서로 속이고 의심하여
마침내 다시 교만한 마음을 내었으며

교만에 가득한 자들은
장엄하려는 욕심 때문에
이 상서롭다는 글을 지었는데
남들이 비웃으며 말하기를
“어떻게 부녀자들처럼
이렇게 장엄한단 말인가” 하니

저 사람이 핑계를 대며 말하기를
“나는 상서로운 일을 하는 것이지
자신을 장엄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고 하였지만
우황이나 조개, 과일 등은
모두가 장엄에 쓰이는 도구라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상서롭다는 일은 점점 늘어났지만
하나하나의 인연이 일어나는 것이
모두 부인들의 장엄에서 유래된 것이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여
진실로 상서롭다고 여긴다네.

그때 단월은 이 게를 듣고 옷의 털이 모두 설 만큼 매우 놀라서 곧 게를 설하였다.

사람은 마땅히 좋은 벗을 가까이하고
수승한 장부를 찬탄할지니
저 수승한 사람으로 말미암아서
좋고 나쁨을 잘 분별할 수 있으므로
마땅히 온순하게 따라야 하리라.

모든 세계 가운데서
부처님 말씀만이 다 진실하나니
길고 짧음을 구하지 않으시고
이기고 지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으시어
말씀마다 인연이 있고
일마다 근본이 있다네.

나도 또한 이제
복업(福業)은 모두 상서로운 것이고
악업(惡業) 중에는 상서로움이 없어서
상서롭고 상서롭지 않음이
다 인연의 과보인 줄을 알겠네.

그제서야 비구가 단월을 칭찬하였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그대가 바로 선장부(善丈夫)요, 이제서야 바른 길을 알았구나.”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일체 세간의 중생들은
모두 선업과 악업으로 말미암아서
선악(善惡)으로 다섯 갈래에 태어나고
업(業)으로 중생의 목숨을 부지하나니

업연(業緣)으로 해와 달을 지었기에
백월(白月)이 열닷새요
흑월(黑月)이 열닷새인데
악업은 비록 미세하더라도
흑월의 시작이라 부르고
선업은 백월이라 부르니

업 때문에 백월이라 부르며
업으로 분별한 것이기 때문에

흑월과 백월이 있는 것이네.

복업(福業)이 있는 모든 이들은
선하지 않은 것도 다 길하게 되니
마치 저 수미산에서는
검거나 희거나 간에 모두 금빛이 되는 것 같고

복업이 없는 모든 이들에게는
길한 것도 불길하게 되나니
마치 저 큰 바닷물에서는
좋거나 나쁘거나 간에 다 짠맛인 것과 같네.

이와 같이 일체 세간이
모두 업연을 따라 있는 것이므로
지혜로운 이는
악업을 버리고

삿됨을 멀리 여의는 것으로 길함을 삼으며
부지런히 선업을 닦으니
마치 씨앗을 밭에 심는 이가
좋은 밭을 골라 심는 것과 같다네.

만약 씨앗을 심지도 않고서
과보를 얻으려고 한다면
이것을 어찌 길하다 하겠는가.

무엇 때문에 이것을 말하는가 하면, 항상 부지런히 법을 듣되, 그 법을 들음으로써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마음으로 모든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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