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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955 불교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7권

by Kay/케이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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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7

 

대장엄론경 제7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41

다음으로 이끗[利養]1)은 수행하는 도를 어지럽히니, 이끗을 끊으려면 성냄[瞋]을 잘 관찰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비구가 어떤 동산에 머물고 있을 때 그 부근 성(城)ㆍ읍(邑)의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공양을 올렸다. 함께 출가한 비구가 이것을 보고서 미워하고 질투하여 비방하니, 비구의 제자들이 이 비방하는 말을 듣고 그 스승에게 고하였다.
“아무개 비구가 화상(和上)을 비방한다고 합니다.”
그 화상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비방하는 비구를 불러 좋은 말로 위로하며 옷을 주기도 하였다. 여러 제자들이 다시 그 스승에게 고하였다.
“저 비방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의 원수이거늘 무엇 때문에 화상께선 그를 위로하고 또 옷까지 주시는 겁니까?”
스승이 대답하였다.
“저 비방하는 이가 나에게는 은인이므로 응당 공양해야 하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만약 우박이 벼농사를 해칠 때
어떤 사람이 막아줄 수 있다면
밭 주인은 너무 기뻐서
재물과 비단으로 보답하리니

이와 같이 나를 비방하는 사람은
원수가 아니라 친절한 사람으로서
나의 이끗의 우박을 막아 주는 것인즉
마땅히 그 은혜를 갚아야 하리라.

우박의 피해는 한 해에 그치지만
이끗의 피해는 여러 생에 미치고
우박은 재물만을 해치지만
이끗은 수행하는 도를 무너뜨리며

우박의 해를 입은 밭농사는
그래도 조금 남음이 있겠지만
이끗의 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공덕이 모두 소멸되는 것이라.

저 제바달(提婆達) 같은 이가
바로 이끗 우박의 해를 입었으니
자신의 탐착하는 마음 때문에
선법이라곤 터럭만큼도 없고
온갖 악업만이 매우 치성하여
죽자마자 악도(惡道)에 떨어졌네.

이끗이란 사나운 불보다 더하고
악독한 사자나 호랑이보다도 더한 것이니
지혜로운 이는 잘 관찰하여서
차라리 저들의 해를 입을지언정

이끗의 피해는 당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이끗을 탐하여
그 허물을 살피지 못하고서
이끗으로 거룩한 도를 멀리하여
선한 행이 없어져 생기지 않네.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 끊으시고
3유(有)의 얽매임도 다 벗어나서
공덕을 이미 원만히 갖추셨건만
그래도 오히려 이끗을 피하시기에
대중들 가운데서 사자후로
일찍이 이런 말씀 일러 두셨네.

제발 이끗을 가까이하지 말라.
나 역시 저것을 멀리하노니
마음에 밝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이끗을 탐하랴.

이끗은 안정된 마음을 어지럽혀서
피해가 원수보다 더하니,
마치 털끈으로 사람을 묶어
피부가 갈라지고 골육이 무너져
골수가 다 끊어져야 그치는 것처럼

이끗은 털끈보다 더하여
지계(持戒)의 피부를 끊어 버리고
선정의 살을 부서 버리며
지혜의 뼈를 꺾어 버리고
착한 마음의 골수를 없애 버리니

마치 어린아이가
불을 잡아서 먹으려고 하는 것 같고
물고기가 미끼를 삼킨 것 같으며
나는 새가 그물에 덮인 것 같고
뭇 짐승들이 함정에 빠진 것 같도다.

이 모두가 탐욕의 맛 때문이니
비구가 이끗을 탐내는 것도
저것과 또한 다름이 없어서
그 맛은 매우 적다 하더라도
환란만은 깊고도 무거운 것이네.

거짓으로 속이고 아첨하는 자
스스로가 이끗 속에 머무는가 하면
그 시끄러운 세간에 친근하여
환란의 종자를 길러내는 것이

마치 옴[疥]같이 피부가 헌 데를
긁을수록 더욱 가려운 것과 같아서
온갖 교만과 방일과 탐욕이
모두 이끗으로 인하여 생겨나거늘

이제 나를 비방하는 이 사람은
이끗이라는 원수를 막아 주는 이인 만큼
나 이러한 뜻에서
마음을 다해 공양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선지식을
어찌 원수라 하겠는가.

이끗을 탐함으로 말미암아
고요한 곳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마음이 항상 이끗을 반연해
밤낮 쉴 새 없이 흔들리며

내지 어떤 곳에 의복과 음식이 있으면
아무가 나의 친한 사람인 만큼
반드시 나를 초청할 것이라고
마음과 뜻이 반연함이 많나니

고요한 마음 깨뜨려서
고요한 곳 싫어함은 물론
항상 세간에 살기를 좋아하여
이끗에 따라 모든 것을 파괴하며

고요한 법을 좋아하지 않아서
고요한 선정까지 버리기 때문에
이는 비구라고 할 수 없고
또한 속인이라고도 할 수 없네.

42

다음으로 다같이 번뇌는 끊었을지라도 그 교학(敎學)에는 차별이 있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목련(目連) 존자가 두 제자를 가르치는데, 두 사람 모두 한결같이 선정을 배우기는 하나 증득한 것이 없었다.
이때에 사리불(舍利弗) 존자가 목련에게 물었다.
“저 두 제자는 수승한 법을 얻었는가?”
목련이 대답하였다.
“아직 얻지 못하였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무슨 법을 가르치기에 그러한가?”
목련이 대답하였다.
“한 사람에게는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마음들이 막혀 있어서 깨닫지 못하였다네.”
이때에 사리불이 목련에게 물었다.
“저 두 제자는 본래 어떤 종성이었는데 여기에 와서 출가한 것인가?”
대답하였다.
“하나는 옷 빠는 집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대장간 집 아들이네.”
이때에 사리불이 목련에게 말하였다.
“대장장이 아들에게 수식하는 법을 가르치고, 옷 빠는 집 아들에게 부정관을 가르쳐 주어야 마땅할 것이네.”
목련이 그 법대로 제자들을 가르치니 제자들 역시 그 법에 따라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마침내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미 아라한과를 이루었으므로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곧 게를 설하여 사리불을 찬탄하였다.

두 번째로 법 바퀴를 굴리는
불법의 대장으로서
모든 성문들 가운데
최상의 지혜를 얻으셨도다.

아, 깨달으신 사리불이여
그 수승한 지혜의 힘으로
이끌어서 해탈의 길을 보여 주시되
본래 익힌 바를 따라가게 하시니

나를 이끌어 깨우치시고
둘 다 빨리 해탈하게 하셨으니
모든 것이 자신의 경계로부터
얻어야 할 것을 얻는 것이고
다른 경계를 행하는 것은
뭍에 떨어진 물고기와 같다네.

저는 늘 강가에서
깨끗이 옷을 씻던 그 습관으로
흰 뼈에 마음을 둠에
서로 비슷하여 깨닫기가 쉬웠나니
크지 않은 공력으로도
그 법이 빨리 제 마음에 들어왔으며

대장장이는 항상 풀무질을 하였기에
들숨과 날숨은 바람의 기운이라
그 누구보다 힘들이지 않고
수식하는 법에 기꺼이 들어갔습니다.

중생들이 좋아하여 익힌 바에 따라
각자 뛰어난 힘이 있는 것을
이제 사리불께서
불법의 채찍으로 이끌어 주시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리불이야말로 두 번째로
법의 바퀴를 굴릴 이라 하셨으니
그 진실한 말씀이 바로 맞았네.

마음의 자유를 얻으신 이로서

우리들 두 사람으로 하여금
본래의 습성 그대로 닦아
선정의 빠른 길을 알게 하시니

길들지 않은 코끼리 같은 저희들을
불법의 대장께서 언교(言敎)를 베푸사
안온한 처소에 이르게 하셨기에
저희들 크게 환희심을 냅니다.

43

다음으로 선근(善根)이 성숙된 자는, 비록 또 도피해도 대비하신 여래께서 끝내 놓아 버리지 않으신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여래는 더없이 어질고 후한 복밭이어서 다니거나 머무는 곳마다 항상 복과 이로움이 되시므로 세간에 있는 밭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 복밭이 세간의 밭과 다름을 보이고자 해서, 복밭을 행하는 이로서 하천한 단월의 집에 가시되 사위성(舍衛城)에 들어가 걸식하시고, 내지는 보살들을 위해 때때로 왕사성(王舍城)에 들어가 걸식하시니, 성안의 남녀노소와 대인ㆍ소인 할 것 없이 여래의 모습과 위의를 보고서 모두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나머지는 『불본행(佛本行)』 중에 설한 것과 같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는 중생들이 모두 생사를 싫어하여 그 선근의 종자가 매우 싹트기 쉬웠으므로 부처님께서도 그 여러 중생들 중에 교화하고 제도해야 할 자를 위해 일부러 성에 들어가 걸식하시면서 곧 다음과 같은 게를 설하셨다.

만약 깊은 신심으로
부처님 발에 예경한다면
이 사람은 생사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것이며

또 선한 복밭을 만나
정성껏 공양함으로써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큰 과보를 얻으리니

과연 이러한 사람으로서
신심과 공경심을 다한다면
부처님 발우에 흙을 담아 바치더라도
끝내 과보가 없을 수 없네.

이와 같이 여래께서 성안에 들어가 신족(神足)을 나타내실 때에 일체의 인민들이 각각 서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성으로 들어오셨도다”라고 하였으니, 나머지는 여러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성안에 들어가실 때에 그 위의와 거둥이 갖가지 장엄을 다 구족했으므로, 부처님 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성안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체가 기뻐 날뛰어 요동하는 것이 마치 큰 바다의 파도가 바람에 휩쓸려 울렁거리는 것처럼 굉장한 음성을 내었으며, 염부제에 있는 모든 세계가 또한 전에 없던 이러한 형상이었다.
그때에 성안에서 오물[糞穢]을 제거하던
니제(尼提)라는 자가 있었는데, 머리는 길어 쑥대머리같이 어지럽고 더러운 때가 온 얼굴을 덮었으며 입은 옷은 다 떨어져, 만약에 길에서 해진 누더기라도 주으면 곧 기워 입었다. 전생의 선하지 못했던 업을 보여주기 위해서 등에 똥장군을 지고 멀리 버리러 가다가 길에서 부처님의 존안을 우러러보게 되었는데, 마치 큰 바다를 보는 것 같았으니, 한 길이나 되는 둥근 광명으로 장엄하시어 몸이 진금(眞金) 덩어리같이 조그마한 더러움도 없으시고, 입으신 가사도 마치 붉은 전단(栴檀)2)과 같고 보배로 꾸민 누각 같아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기에, 곧 게를 설하였다.

금빛의 몸은 피어오르는 꽃 같고
입으신 옷은 붉은 전단 같으며
의복과 위의가 단정하시어
깨끗하기가 동경(銅鏡) 같네.

대중들 속에 계시는 그 모습
마치 가을날 맑은 허공 중에
높이 솟아 오른 태양 같고
장엄하고 청정하기가 가을달 같네.

그때에 중생들이 세존을 보고 크게 환희심을 내었으니, 축생들도 부처님을 보고 안근이 기뻤거든 하물며 다시 인간임에랴.
곧 게를 설하여 찬탄하였다.

견줄 데 없는 몸의 빛을 보고
마음 깊이 사랑하고 공경함은
선정의 그릇을 이룩하시어
위광이 더욱 빛나기 때문이라.

삿된 소견과 나쁜 마음 지닌 자도
부처님 뵙고는 기뻐할 뿐더러
그 모든 형체를 관찰하여
눈에 닿는 것마다 싫증 남이 없어서
볼수록 마음이 즐거워지며

온몸에서 비추는 광명이
바라볼수록 더욱 치성하여
형체가 두루 원만하기에
헐뜯거나 비웃을 곳이 없어
종성의 아름다움을 찬탄할 만합니다.

책망하고 논란할 자 없는
밝은 지혜의 선장부들이
계속 이 종성에서 나오기에
세인들이 아무리 장엄하게 꾸며서
비슷하게 용모를 갖춘다 해도

외모를 장엄함에 의지하지 않으신
부처님 몸매의 구족한 상호를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만 같지 못하며

부처님이 지니신 그 상호는 언제나 몸을 따르지만
세간 사람들은 제아무리 영락을 갖추어도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니

연꽃이 모두 다 피어나고
아수가(阿輸伽)3)가 피어나서
대지를 장엄하여 꾸미더라도
부처님이 지니신 상호만큼 좋지는 않을 것이네.

맑으신 눈과 모든 좋은 모습으로
빛나게 그 몸을 장엄하시니
마치 저 마니(摩尼) 갑옷에
뭇 보배로 장식한 것 같고


연못 물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꽃으로
장엄한 것 같지만
이와 같은 비유로도
여래의 몸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선서(善逝)4)의 형체는
상호가 빛나게 나타나는 것이
마치 구름 없는 깨끗한 허공에
뭇 별들이 달을 장엄한 것 같고

그 선행의 미묘한 그릇을
우러러보아도 싫증 나지 않으니
마치 감로수를 마신 것 같으며
마치 깨끗한 보름달처럼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네.

미묘한 상호로 장엄하시어
잘 조복한 위덕이시라
공덕이란 공덕은 모두 구족하시고
온갖 허물을 이미 무너뜨리신 이를
그 누가 이루 다 찬탄할 수 있으랴.

비유하자면 생사 가운데
뭇 기예로 형상을 변화해 나타내도
영원히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처럼
부처님과 비슷하여 알아볼 수 없는 자가
비록 온갖 묘한 상을 짓는다 해도
부처님의 위의와 모습에는 미칠 수 없으니

부처님의 미묘하신 상호(相好)는
하늘이나 사람 중에 견줄 것이 없네.

또 세존의 비교할 수 없는 상호가 감탄할 만하고 모든 행(行)과 공덕을 다 갖추셨으므로 게를 설하여 찬탄하였다.

여래께서 하신 말씀은
지혜로운 이가 흠앙(欽仰)하는 것이며
위의와 거둥에
끝내 과실이 없으시니

모니(牟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사
일마다 전에 없던 것이니 만큼
깨달으신 지혜 흔들림이 없어서
칭찬하거나 헐뜯거나 간에 뜻이 다르지 않으시네.

열 가지 힘을 지니셨기에
그 표상(標相)이 고요할 뿐더러
만족하고도 정직하시기에
모든 공덕과 이익의 덩어리며

걸음걸이가 매우 조용하시어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말씀하신 이치가 깊고도 넓어서
모든 것을 매우 자세히 보시며

조용하지만 차례가 있고
일체를 다 버려 여의시며
음식에도 탐착하지 않으시니
요점만 들어 말하자면
사랑하지 않을 만한 것이 없으시네.

그때에 니제(尼提)는 위없는 조어사(調御師)의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비구들의 감관도 산란스럽지 않으며 둘러싸고 있던 시종들을 보고서 몇 배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다시 게를 설하였다.

모든 감관이 고요하신 데다가
감관을 조복한 이들이 둘러싸고
또한 새 옷을 입은 시종들이
앞뒤에서 따르며 모시니

뭇 석종(釋種) 중에 가장 뛰어나신
그 흔들림이 없는 금빛의 몸을

사부대중이 항상 에워쌈이
마치 태양을 두른 붉은 구름 같네.

그때에 니제가 이미 부처님을 보았으므로 ‘이 더러운 냄새 나는 내가 등에 똥통을 지고서 어떻게 부처님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다른 길로 피해 부처님을 보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마음이 매우 슬프고 괴로웠다.
‘내가 전생에 복된 업을 짓지 못했기에 나쁜 것에 끌리어 지금 이러한 고통을 받는 것이니, 내가 지금 이 천한 업을 근심할 것이 아니지만, 뭇 사람들은 다 부처님 앞에 나아가거늘 나만이 이 더러운 냄새 때문에 그 앞에 설 수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괴로워 곧 게를 설하였다.

세간에 부처님 출현하시기 매우 어렵고
출현하신 부처님을 뵙는 것도 어렵거늘,
사람ㆍ하늘ㆍ아수라와 팔부 중생이
모두 함께 앞뒤로 둘러쌌네.

나 비록 이제 만나기는 했으나
더러운 냄새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으니
분명히 전생에 악업이 있어서
그 죄의 과보로 나를 버린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다시 다른 거리를 따라 멀리 피해 있었으나, 세존께서는 대자비하신 평등한 마음으로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따라가서 곧 저 거리에 나타나셨다. 니제 앞에 서시니 니제가 보고서 다시 놀라고 두려운 마음에 ‘내가 아까 부처님을 피하였으나 이제 또 뵙게 되니, 어느 곳으로 피해야 할까?’ 하고는, 놀라고 두렵고 걱정스런 마음에 스스로 책망하였다.
‘나는 매우 박복하고, 부처님은 향기롭고 청정하시거늘 내 어찌 이 더러운 몸으로 부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 만약 너무 가까이 간다면 그 죄가 더욱 깊고도 무거우리니, 전생의 악업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하늘이 전단향(栴檀香)과
가장 미묘한 만다화(曼陀花)와
그 밖의 갖가지 공양거리를
가지고 와서 세존께 바치네.

부처님이 성안에 들어오실 때
향수를 땅에 뿌리고
사람ㆍ하늘이 다 공양하는
참다운 응공자(應供者)시거늘

나 어찌 똥장군을 짊어지고서
부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랴.

다시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어느 곳으로 가야 피할 수 있을까?’ 라고 하고는
또다시 부처님을 피해 다른 거리로 들어갔으나, 여래께서는 여전히 그 거리에 계셨다. 니제가 부처님을 뵙고는 다시 더 이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여 게를 설하였다.

둥근 광명은 둘레가 한 길이고
타오르는 빛깔도 갖가지인데,
온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합장하고서 둘러싸 있네.

제석(帝釋)은 불자(拂子)를 가지시고
사람ㆍ하늘이 모두 공양하는데
나 아까 다른 거리로 피했거늘
다시 이 길을 따라 오셨네.

이 게를 읊고 나서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 세존께선 사람과 하늘 가운데 최상이시고, 나는 비천하고 더러워서 중생들 중에서도 가장 낮으니, 어찌 이 냄새 나는 더러운 몸으로 세존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하고는, 곧 다시 다른 거리로 피하여 들어갔다.
그때에 세존께서 먼저 저 거리에 가서 계시므로 이미 부처님을 보았기에 부끄러워서 뒷걸음을 치다가 똥장군을 벽에 부딪치니, 곧 부서져 똥물이 흘러나와 옷을 다 더럽혔다. 니제 자신이 그 더러운 똥물을 보고는 부끄러움과 괴로움에 못 이겨서 얼굴빛이 변해지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전에는 비록 냄새 나고 더러웠어도 똥장군에 담겨져 있었으나, 이젠 똥장군마저 부서져 이 추악한 더러움이 다 드러나고야 말았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로다’ 하고서, 더욱 자신의 비루함을 책망하면서 게를 설하였다.

아, 이상하기도 하여라.
나 이제 죽을 것만 같으니
이 온통 냄새 나고 더러운 몸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삼계 중에 가장 높으신 이께서
이제 나를 가까이하기 위해
이곳으로 와서 내 앞길을 막으시니
마침내 달아날 곳마저 없어졌네.

이상하고도 매우 딱하도다.
안팎이 다 부정한 탓으로
너무나 부끄럽고 괴로우니
마치 늙음이 다가온 것만 같네.

그때에 대중들 모두가 세존께서 니제의 뒤를 따라다니시는 것을 보았다. 저 대중들 가운데 어떤 한 비구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성으로 들어오셔서 호귀(豪貴)한 집이나 또는 빈천한 집에 가시어 걸식하지 않으시고, 다만 니제의 뒤를 따라 다니시니, 무엇 때문에 그러실까? 여기에는 반드시 연유가 있으리라.’
다시 생각하기를 ‘이 일은 알아보아야 할 일이로다’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이는 필시 공덕의 그릇이기에
부처님께서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니
마치 더러운 똥에 떨어진 구슬을
흔들어서 찾아내는 것과 같네.

여래께선 그 마음을 취하실 뿐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으시고
종성의 어떠함도 구하지 않으시어
일찍이 수승하고 미묘한 이런 말씀하셨으니

마치 의사가 병을 진찰할 때
아픈 배의 단단하고 무름을 보고서
병에 따라 약을 투여하지
종성을 보지는 않는 것처럼

여래도 평등하게
마음의 굳고 부드러움을 관찰할 뿐
그 종성을 가리지 않고
약을 주어 번뇌를 없애느니라.

그때에 니제는 좁은 거리에서 세존과 맞닥뜨리자 부끄러움에 몸을 웅크렸으나 숨거나 피할 곳이 없어서 합장하고 땅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일체 중생들을 다 도와줄 수 있으니, 바라건대 조그마한 틈이라도 열어서 저의 몸을 숨기게 해 주십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여래께서 지금 다시
저를 가까이하려고 오셨지만
저의 몸 너무나 더러워서
세존께 가까이 갈 수 없사오니
바라건대 이 몸을 숨길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열어 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일체 중생을 다 안락하고 이익되게 하는 그 대자비하신 마음에서 화락하신 얼굴빛으로 니제 옆으로 가셔서는, 부드럽고도 고운 우레 같은 음성으로 위로하시어 그의 몸과 마음을 다 기쁘고 즐겁게 하신 뒤에, “니제야” 하고 부르셨다.
니제가 이 음성을 듣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며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음성 같기는 하나 삼계의 지존께서 어찌 나처럼 비루한 사람을 부르셨겠는가? 혹시 나의 이름과 같은 어떤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였다.
한편 부처님께서는 사랑과 미움을 다 끊으신 평등한 마음으로 손을 들어 니제를 가리키시니, 그 손가락은 가늘고 길며, 손톱은 마치 붉은 구리쇠 같고, 손가락 사이의 그물 같은 망으로 그 위를 덮었으며, 손바닥은 연꽃처럼 보드랍고 깨끗한 바퀴 모양의 손이었다. 니제에게 용기를 주시고자, 곧 니제에게 게를 설하여 주셨다.


네가 선근의 인연이 있었기에
내 일부러 이곳에 온 것이고
내가 이미 이곳에 와 있거늘
너는 왜 달아나려 하느냐.

마땅히 여기에 있어야 하니
네가 지금 비록 몸이 더럽다 해도
마음에는 최상의 선한 법이 있어
수승하고도 미묘한 향기가
이제 너의 몸에서 풍겨 나고 있으니
스스로 비천하게 여기지 말지어다.

이때에 니제는 부처님의 부르심을 듣고 나서 눈을 들어 부처님을 보고는 그 마음에 용기를 얻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귀의할 데 없는 이에게 귀의처가 되어 주시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중생들을 자식처럼 생각하시니, 그 평등하신 마음이 진실로 구세주이십니다. 지금 세존께서 저와 더불어 함께 말씀하시니, 마치 감로수로 저의 몸과 마음을 씻어 주는 것 같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설령 저 대범천왕이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제석천왕이 존중하여
굽히고 와서 돌보아 주며

또한 전륜대성왕이
함께 앉아 한 그릇으로 같이 먹더라도
삼계의 높으신 이께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한 말씀 일러 주심만 같지 못하네.

이제 제가 자비하신 은혜를 입어
기쁘기가 저들보다 더하니
온갖 더러움을 다 골라내 버리고
좋지 않은 모습도 이미 없어져

좋은 모습만 구족히 자라남은
이 모두가 자재하신 이께서 구제하시어
저에게 쾌락을 받게 하셨기 때문이네.

세존의 발에 있는 먼지를
제석이 받들어 모셔도
오히려 가호하시는 복을 받거늘

하물며 저같이 비루한 자가
부처님께서 직접 이름을 불러 주시는
음성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찌 기뻐하고 경사롭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니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 출가할 수 있겠느냐?”
이때에 니제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에 환희심이 생겨 곧 게를 설하였다.

저같이 미천한 종류로서도
출가할 수 있겠나이까.
세존께서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설령 출가할 수 있게 해주신다 해도
이는 마치 지옥에 있던 사람을 건져
천상에 안치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니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게를 설하였다.

여래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종족과 부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중생들의 업에 있어서
과거의 착한 종자만을 보니

일체의 번뇌에 얽매임을
다 해탈하지 못하고서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고락(苦樂)이 모두 다 같거늘

어찌 바라문이라 해서
홀로 해탈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얻을 수 없겠는가.

또한 문자(文字)와 음성을
어찌 바라문들과
다른 종성들만이 알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강을 건너는 나루에는
바라문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체의 모든 해야 할 일들을
나머지 종성들도 할 수 있으니
왜 바라문만 할 수 있고
나머지 종성들은 할 수 없다는 것인가.

너는 이제 다만
나를 믿기 때문에 출가해야 하니
우리 불법에는
자비심에 치우침이 없어서
숨기고 감춰둔 법이 있다는
저 외도들과는 같지 않으니라.

모두 다 평등하게 제도해도
불법에는 덜어지거나 잃어버림이 없고
법을 설함에 치우침이 없어서
평등하게 바른 길을 보이되
일체 중생을 위하여
안온한 바른 길을 마련하는 것이네.

마치 큰 시장 한가운데서
일체의 물건들을 다 사는 것처럼
우리 불법의 시장도 또한 그러하여
어떤 종성이거나
부귀와 빈천을 가리지 않으며

또 마치 깨끗이 흐르는 물을
찰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 등이
아무도 가로막고 지키는 이 없으므로
사람이건 사람이 아니건 간에
일체가 모두 마실 수 있듯이
우리 불법의 물도 그와 같나니

나는 이제 비구ㆍ비구니만으로
제한하지 아니하고
널리 이 세간을 위하는
사람과 하늘의 위대한 의사이니라.

“나는 반드시 귀한 사람이나 어진 왕들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저 하천한 우바리(優婆離)들도 제도하며, 큰 부자인 장자 수달다(須達多) 같은 이에만 제한되지 않고 저 빈궁한 수뢰다(須賴多) 등을 제도하기도 하며, 나는 다만 큰 지혜가 있는 사리불(舍利弗) 같은 이에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근기가 둔한 주리반특(周利槃特) 같은 이들을 위해 제도하기도 하느니라.
나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마하가섭(摩訶迦葉) 같은 이에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저 욕심 많은 바난타(婆難陁) 등을 위해 제도하기도 하며, 나는 나이 많고 덕이 있는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에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 어린 수타야(須陁耶) 등을 위해 제도하기도 하며, 나는 교만한 바가뢰(婆迦賴) 등에게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극악한 앙굴마라(鴦掘摩羅)처럼 손에 칼을 잡은 이를 위해 제도하기도 하는 것이니라.
나는 지혜가 많은 남자들에게만 제한하여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지혜가 얕은 여인들을 위해 법을 설하기도 하며, 나는 출가한 무리들에게만 제한하여 진정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극악한 재가인들을 위해 법을 설하기도 하며, 나는 욕심이 적은 사람에게만 제한하여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집에 있는 어린 사람으로서 마음껏 5욕락(欲樂)을 누리는 아이를 위해 4진제(眞諦)를 설하는 것이다.
나는 세간의 온갖 책무들을 놓아버린 포다리(逋多梨) 같은 이만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나라의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서 세무(世務)가 많은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같은 이를 위해 설하기도 하며, 나는 술을 끊은 사람만을 위해 설하는 것이 아니고 술에 만취한 욱가(郁伽) 같은 이를 위해 설하여서 도의 자취를 얻도록 하며, 나는 선정을 즐겨 닦는 이월(離越) 같은 이만을 위하여 생사를 여의는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자식을 잃고서 마음이 광란(狂亂)해진 파사타(婆私吒)를 위해 설하기도 하느니라.
나는 어진 덕이 있는 우바새(優婆塞) 종족에 태어난 이만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삿된 소견을 지닌 아수발제(阿須拔提) 같은 제자를 위해 설하기도 하며, 나는 장성한 라타화라(羅吒和羅) 같은 이만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노쇠한 라구라(羅拘羅) 같은 이들을 위해 설하기도 하며, 나는 장로 바구라(婆拘羅) 같은 이만을 위해 설하여 아라한을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일곱 살짜리 사미 수타연(須陁延)을 위해 설하여서 아라한을 얻도록 하는 것이니라.
나는 16바라연(婆羅延)들의 마음 속에 있는 어려운 문답을 위해서만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60개 마을의 어리석고도 탐욕이 많은 사람들이 여인을 구하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설하기도 하며, 나는 만원자(滿願子) 등이 크게 우왕(牛王)을 논란하는 그 다함 없는 변재를 위해서만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지혜가 얕은 달마지나(達摩地那) 비구를 위해 설하여서
어려운 문제를 능히 이해할 수 있는 대장부의 깊은 지혜를 얻도록 하느니라.
나는 부귀한 대왕의 부인인 미발제(彌拔提) 등만을 위해 설하여서 도과(道果)를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하천한 노복인 구숙다라(鳩熟多羅) 등을 위해 설하여서 도의 흔적을 얻도록 하며, 나는 정숙한 부인인 비사가(毘舍佉)만을 위해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음녀(婬女)인 연화(蓮華) 등을 위해 설하기도 하며, 나는 큰 덕과 변재를 갖춘 구담미(瞿曇彌) 같은 이만을 위해 설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일곱 살 사미니인 지라(至羅)를 위해 능히 외도를 꺾어 조복할 수 있도록 설하기도 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곧 게를 설하였다.

나의 불법에 의지하여
빨리 출가해야만 하리니,
지혜로 인해 감로를 얻는 것이지
종성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네.

4대(大)가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똑같지만
불법은 지혜가 없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지
반드시 종성에 있는 것은 아니네.

이에 니제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바로 출가해서 아라한을 얻었다.
이때에 사위성(舍衛城)의 장자와 바라문들은 니제가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가 비웃고 화를 내며 미워하고 질투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더럽고 천한 니제라는 자가 이제 출가했다 하니 만약 모임을 열었을 때 니제가 온다면 우리집의 평상이나 담요를 다 더럽힐 것이다.”
이렇게 온 나라가 시끄러워서 마침내 위로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때에 바사닉왕이 듣고 나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제 시끄럽게 굴지 말라. 내가 지금 세존의 처소로 나아가 여래께 말씀드려서 이 하천한 자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시게 하리라.”
곧 시종들을 거느리고 기원정사[祇洹]로 갔다. 때마침 한 비구가 큰 돌 위에 앉아서 분소의(糞掃衣)5)를 꿰매고 있었는데, 그 좌우에 7백 범천이 있어서 혹은 합장 예배하고 혹은 실을 받들고 혹은 바늘을 꿰기도 하는 것을 보았으니, 수다라(修多羅)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때에 여러 하늘들이 게를 설하여 찬탄하였다.

자세히 살펴보건대,
모든 감관이 다 고요하고
용모와 위덕이 왕성하며
이미 3명(明)을 구족하여
영리한 근기에서 물러나지 않고
뭇 선행을 다 갖추었으면서도
분소의를 입으시니.

위덕이 있는 7백 범천들이
범천궁(梵天宮)에서 내려와
저 언덕에 도달하신 이에게
공경하며 예를 올려 귀명하옵니다.

이때에 바사닉왕은 그가 바로 니제인 줄을 알지 못하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나를 위해 세존께 가서 ‘바사닉왕이 지금 문밖에 부처님을 뵙고자 왔습니다’라고 아뢰시오.”
니제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곧 돌에서 사라져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몸을 솟구쳐 부처님 앞에 나타나 고하였다.
“바사닉왕이 지금 문밖에서 세존을 뵙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본래의 길을 따라가서 불러오너라.”
니제가 명을 받들어 다시 돌을 통해 나와서 바사닉왕을 불렀다.
이때에 바사닉왕이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문안을 올린 다음 세존께 물었다.
“아까 저 비구는 어떤 대덕이기에 여러 범천들이 공양하며 좌우에서 받들어 모시고, 또 아무런 걸림이 없이 돌을 드나들 수 있습니까?”
게를 설하여 질문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는 청정하여 걸림이 없어서
모든 일에 다 통달하셨으므로
제가 묻고자 하는 일쯤이야
부처님은 이미 먼저 알고 계시겠지만

지나간 일은 우선 미루어 놓고라도
제가 이제 묻고자 하는 것은
아까 본 비구가 어떤 대덕이기에
돌 위에서 거리낌없이 드나들며
마치 물 속의 갈매기처럼
마음대로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입니까.

그때에 세존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아까 본 비구를 만약 알고자 한다면, 이는 왕이 의심하셨던 비루하고 천한 니제 바로 그 사람이오.”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기가 막혀 땅에 쓰러진 채 곧 스스로 뉘우치고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내 자신을 망쳤도다. 어쩌자고
이런 대덕에게 비웃고 헐뜯는 마음을 내었던가?”
이 일을 보고 나서 불법에 대하여 전에 없던 것을 얻었으며, 몇 배의 신심을 내어 곧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서 게를 설하였다.

저 수미산은
모든 보배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기에,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도
산에 이르면 모두 금색이 된다고
옛날부터 그런 말을 듣기는 했으나
이제야 비로소 증험해 알게 된 것처럼

부처님도 수미산과 같아서
한량없는 공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부처님께 와서 귀의하는 자는
모두 귀한 종족으로 변하게 마련이네.

부처님께서 종성과
부귀, 명예를 따지지 않는 것은,
마치 의사가 병을 진찰하는데
종성이 무엇인지 상관하지 않고
다만 좋은 약을 주어서
그 병이 낫게 하는 것과 같으니

귀하고 천함이 자질은 똑같아
모두 부정(不淨)에서 나온 것이고
도과(道果)를 성취해 얻음은
누구나 차별 없이 동등해서
일체의 종성이 똑같으므로
도과를 증득하면 도무지 다를 것이 없네.

그때에 세존께서는 바사닉왕의 순수한 신심을 더욱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네 종성이 청정해질 수 있음을 설하셨으니, 만약 장가 들고 시집 갈 때 네 종성에서 취한다면 이 네 종성이 모두 청정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고하셨다.
“만약 며느리를 데려오거나 딸을 시집 보냄에 있어서는 종성을 선택하지만, 우리 불법에서는 오직 과거세의 선악의 인연만을 관찰하고 종성은 가리지 않으며, 오직 신심으로 보시하는 것만을 보지 값진 보물인지는 상관하지 않으며, 계율의 청정함만을 따질 뿐 가문(家門)이 청정한지는 따지지 않으며, 다만 선정의 자재로움만을 따질 뿐 종성의 단엄(端嚴)함은 따지지 않으며, 그 지혜를 관찰할 뿐 태어난 곳은 보지 않기 때문이오.”
곧 게를 설하셨다.

마치 산에 있는 돌을 녹여서
그 안에 있는 진금(眞金)을 골라냄과 같고
이란(伊蘭) 나무가 서로 부딪쳐서
바로 불이 일어남과 같고

저 더러운 진흙 속에서
푸른 연꽃이 피어남과 같으니
태어난 곳을 보지 않고
오직 그 덕행만을 본다네.

“그러므로 훌륭한 종족에 태어나 덕행이 있는 이라면 응당 공양을 해야겠지만, 비록 하천한 종성에
태어났더라도 덕행만 있다면 역시 공양해야 하오. 모든 지혜로운 이들은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성이 다르더라도 덕행에 다름이 없다면 마땅히 공양해야 하니, 마치 이란(伊蘭) 나무나 전단(栴檀) 나무가 다같이 불을 낼 수 있는데 그 불의 열기와 광명이 다르지 않은 것과 같소.”
부처님 말씀이 진실하여 아무런 잘못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 왕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니, 바사닉왕은 곧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온몸을 땅에 던져 예를 올리며 이와 같이 간략히 말하였다.
“조어장부(調御丈夫)이신 일체종지(一切種智)께 귀명합니다. 일체의 이치에 막힘이 없으시고, 열 가지 힘이 용맹하시며, 네 가지 두려움이 없으신 바가바(婆迦婆)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께서는 일체 중생들에게 청하지 않은 친한 벗이 되시어 네 종성에 도무지 치우침이 없으십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일체종지의 바다에서
청정한 뜻으로 저 언덕에 오르사
이 세계에서 부처님 홀로 자비로우시며
마음과 뜻에 더러움이 없으시도다.

일체 중생을 위해
가장 친한 벗이 되시어
오로지 해탈만을 설하시지만
갖가지 길을 보여 주시고
지혜의 많은 방편에 의지하시는데

외도들은 미치고 뒤바뀌어서
온갖 추잡한 고행을 일삼고
오로지 종성에만 집착한다네.

바사닉왕은 부처님과 니제 비구의 발에 예를 올리고 나서 사위성으로 돌아갔다.

44

다음으로 비록 진리를 보는 경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해도 학문을 닦아 많이 보고 들은 힘이 있으면 마군들도 그를 동요시킬 수 없으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학문에 힘써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마군이 비구로 변화하여 승방(僧坊)에 와서 대중들 가운데서 설법하던 법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니 누구라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다 물어보시오.”
이때에 대중 스님들이 법사에게 말하였다.
“그의 말을 한번 들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법사가 변화한 비구에게 물었다.
“번뇌를 끊음이란 어떤 것이고, 선정에 들어감이란 어떤 것입니까?”
변화한 비구가 뒤바뀐 설법을 하므로, 법사가 대중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이는 아라한이 아닙니다. 그 말이
부당하오.”
이때 변화한 비구가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열여덟 가지 변화를 나타내니, 모임의 대중들이 법사를 비웃고 꾸짖었다.
“이와 같은 사람을 법사는 지금 왜 아라한이 아니라고 합니까?”
그때에 법사는 비록 비웃고 꾸지람을 당했지만 많이 들은 학문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아라한이 아님을 설하였다.
“만약 이가 아라한이라면 어째서 뒤바뀐 설법을 하는가? 그렇지만 날아다닐 수 있으니, 내가 지금 알지만 무어라 말하겠는가?”
곧 게를 설하였다.

나는 공덕이 있는 곳에
도무지 질투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다만 이 아비담(阿毘曇) 돌을 가지고
갈고 시험하여 옳고 그름을 아니

겉에만 금을 바른 것은
갈면 그 빛이 나타나지 않듯이
금이 만약 진짜가 아니라면
돌로 갈아보면 곧 알기 마련이라.

부처님이 지혜의 도장으로 찍어보면
그 도장과 서로 맞지 않으리니,
감로의 성(城)은 매우 깊어서
도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데
그가 감로의 성에 들어가려 하므로
나는 그를 비웃는 것이네.

여러 사람들이 물었다.
“만약 아라한이 아니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이때 법사가 다시 게를 설하였다.

혹시 인타라(因陁羅)6)의 짓일까,
아니면 요술로 지은 것일까,
불법 가운데 가시 같은
마군이 지은 것이 틀림없네.

변화한 비구는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 깊이 환희심을 내어 찬탄하였다.
“아, 불법이야말로 지극히 정밀하고 교묘하도다. 들음에 의지하여 능히 이와 같이 나를 틀림없이 분별해 내는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수라(首羅) 거사 등도
이미 법의 눈이 청정해져셔
동요시킬 수 없나니
이런 일은 그다지 기이한 일이 아니네.

자기 지혜의 힘 때문에
그대 지금 진리는 못 보았지만
마음이 견고해 움직일 수 없으니
이런 일은 실로 드문 것이며

성스러운 지혜의 힘은 없지만
내가 그대를 움직일 수 없으니
이 일이 또한 드문 것이네.

부처님의 열반에 귀의하여
그 말이 진실되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동요하지 않고
일체종지이신 부처님께서


아라한 관찰하는 법을 설하시어
끝내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마치 저 큰 바다의 조수가
끝내 그 한계를 넘어가지 않는 것과 같으니

설령 불기운을 차갑게 만들고
바람의 성품을 확연히 머물게 할지라도
여래께서 설하신 말씀만은
도무지 변하거나 다름이 없도다.

그러므로 부처님 말씀이
모든 논의 가운데 최상이어서
마치 일체의 어둠을 제거하는
태양의 광명과 같다네.

응공(應供)7)께서는 매우 진실하시며
임기응변의 변설로 분명하게 드러내시지만
잘 관찰하는 이라야 분별할 수 있고
잘 관찰할 수 없는 이는
이와 같은 이치를 볼 수 없으니

진실한 말씀과 허망한 말의
서로 어긋남이 너무나 먼 것처럼,
부처님 말씀과 외도들의 논란도
그 어긋남이 또한 이와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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