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6권
대장엄론경 제6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31
다음으로 진실한 공덕이 있다면 공양을 받을 수 있지만, 진실한 공덕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신심으로 올린 공양을 받을 수 없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구사종(拘沙種) 가운데 진단가니타(眞檀迦膩吒)란 왕이 있었는데, 동천축국을 토벌하여 평정하고 나서 위세를 떨치고 복록과 이익을 갖추어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평탄한 곳에서 임시로 묵게 되었다.
그때에 저 왕은 마음 속으로 항상 불법을 영락(瓔珞)으로 여기며 사랑하고 즐거워하던 차인지라, 쉬는 곳에서 멀리 어떤 탑이 있는 것을 보고는 불탑인 줄 생각하여 곧 시종 천 명을 거느리고 탑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탑 근처에 이르러서는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보배로 장식한 하늘관[天冠]을 써서 머리를 장엄하게 꾸미고 탑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귀명 예배를 드린 다음 게를 설하였다.
욕심과 모든 얽매임을 끊고
일체의 지혜를 구족하신 이
여러 선성(仙聖)들 가운데
가장 높아 견줄 이 없도다.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청하지 않아도 친구가 되시니
그 이름이 세간에 널리 들리고
삼유(三有)를 다 버리셨기에
삼계의 존중을 받으시네.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든 경론 가운데 가장 뛰어나서
삿된 의론을 다 꺾어버렸으니
나 이제 진실하신 아라한에게
정성껏 귀명례를 올립니다.
그때에 저 왕이 여래의 공덕을 염(念)하면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자, 마치 폭풍이 불어닥친 것처럼 탑이 곧 무너져 내렸다. 왕이 이 일을 보고 나서 매우 크게 놀라, 의심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이 탑은 아무도 닿거나 가까이 간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왜 이럴까? 아무 일 없이 무너지는 이 같은 변괴에는 반드시 어떤 인연(因緣)이 있으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제석장수천(帝釋長壽天) 같은
부처님을 존중하는 이가
불탑에 합장 예배하여도
도무지 다른 조짐[異相]이 없었고
십력을 가지신 대위덕께선
존중 받을 만한 뛰어난 분이기에
대범천이 와서 예배 공경하여도
부처님은 역시 아무런 다른 조짐이 없으셨었네.
내 몸은 저들보다 가벼워서
나로 인하여 무너질 리는 없으므로
아마도 어떤 주술의 힘이거나
불도를 싫어하는 것의 소행이리라.
왕이 게를 설하고 나서, 탑이 무너진 것이 아직도 마음에 놀랍고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이 변괴가 다른 재환(災患)을 일으키지 않고 상서로운 일이 되어서 중생들을 모두 안온하게 하소서. 제가 옛날부터 5체투지(體投地)하여 백천 불탑에 예배했으나 일찍이 먼지 하나도 떨어진 일이 없었는데, 이제 무슨 변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로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저 하늘과 아수라들이
함께 큰 전투를 벌여서
이 나라를 파괴하여
나의 명령이 다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큰 원적(怨敵)들이
나의 나라를 훼손하려는 것일까.
혹은 흉년ㆍ전쟁ㆍ전염병 등이 있거나
일체 세간의 재환을 일으키려는 것일까.
이것은 지극히 나쁜 변괴이니
장차 바른 법을 없애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그때에 탑 근처 마을 사람이 왕이 의심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는, 곧 왕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것은 불탑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이 탑은 저 어리석고도
삿된 소견이 치성한
니건자(尼揵子)들을 위한 탑이온대
왕께서 불탑으로 알고 예배하셨으니
이 탑은 공덕의 힘이 적을 뿐더러
사리(舍利)도 들어 있지 않으므로
대왕님의 공경을 감당하지 못하여
이 때문에 지금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가니타왕은 더욱더 불법에 대해 믿음과 공경을 더하여 몸의 털이
바로 선 채 기쁨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게를 설하였다.
이 일이 실로 그렇게 된 것이구나.
내가 불탑으로 생각하고 예배했기에
이 탑이 반드시 무너져 흩어지니
용이나 코끼리가 짊어지는 무게는
나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부처님은 세 종류의 사람에게만
탑묘(塔廟)를 세우라고 말씀하셨으니
석가는 우왕존(牛王尊)이시라.
그를 위해 탑을 세워 마땅하지만
니건자의 삿된 도는 없어져야 하므로
이 공양을 받을 수 없네.
청정하지 못한 니건자 따위는
나의 예배를 받지 못할 것이므로
이 탑이 무너질 때에
들리던 큰 음성이
마치 다자탑(多子塔) 같았구나.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가셨을 때
가섭이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이는 나의 바가바(婆伽婆)1)시며,
이는 나의 불세존이시다’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대답하시기를
‘만약 아라한도 아니면서
너의 예배를 받는 자는
머리가 일곱 쪽으로 갈라지리라’ 하셨으니
나 이제 이 탑으로 인해
부처님 말씀의 진실함을 증험하였네.
이와 같이 나무나 돌에는 심식(心識)이 없지만 니건자를 위해 세워진 것임을 분명하게 증험하여, 일체지(一切智)를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님을 알았으니, 왕이 이것을 보고 나서 대중들 앞에서 기뻐 펄쩍펄쩍 뛰면서 몇 배로 더 신심을 내었고 화락한 낯빛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바가바께 귀의합니다. 일체가 존경하는 해탈한 스승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자후로 말씀하시길 ‘이 법 이외에 다시 무슨 사문이 있고, 바라문이 있으랴’ 하셨는데, 부처님 말씀이야말로 진실되어 어긋남이 없도다. 이 모든 중생들이 발이 하나거나 둘이거나 혹은 없거나 많거나 간에, 유색(有色)이거나 무색(無色)이거나, 유상(有想)이거나 무상(無想)이거나 내지는 비상(非想)ㆍ비비상(非非想)이거나 간에, 이 중생들 가운데 오직 여래만이 가장 높고 뛰어나도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여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날 모두 그대로 나타나므로 저 일체의 외도들은 풀과 지푸라기보다도 더 못하거늘 하물며 니건자인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따위겠느냐?”
곧 게를 설하였다.
나는 사람의 왕일 뿐인데
나의 예배도 감당할 수 없으면서
하물며 전륜왕이나
아수라왕 등의 예배이겠는가.
이 탑이 오늘날
마치 큰 코끼리왕의
어금니와 발의 위력에
밟히어 부서지는 것 같네.
몸에 네 가지 번뇌를 갖추었기에
이름이 니건타(尼揵陀)이고
크게 더울 때에
그 열을 제거해 주기에
이름이 니타가(尼陁伽)인 것처럼
여래 불세존만이
일체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진실한 니타가이니
그러므로 오늘날
니건타의 여러 제자들이나
그 밖에 하늘ㆍ사람의 무리들은
모두 부처님께 공양해야 하니
부처님의 종족과 지혜와 명칭은
매우 넓고도 크다네.
이와 같은 탑묘는
하늘과 사람, 아수라들이
만약 예배하고 공경한다면
조금도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이는 마치 모기의 날개로
아무리 수미산을 부채질 해도
그 힘만 소진할 뿐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부처님의 탑묘에 가서 예배드려야 한다.
32
다음으로 학문을 닦은 사람이라면 비록 수행에 잘못이 있더라도 학문의 힘으로 도를 찾아가 얻을 수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학문에 힘써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학문을 많이 닦은 어떤 한 비구가 아란야(阿練若)2)에 머물고 있을 때 과부 한 사람이 자주 이 비구의 처소에 왕래하면서 그의 설법을 들었다. 그런데 학문을 많이 닦은 비구가 이 과부에 대해 염착심(染着心)을 일으켰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선한 법이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범부의 마음이 되어 번뇌에 말려들었다.
비구가 그 과부에게 함께 살기를 요청하니, 과부가 말하였다.
“당신이 이제 도를 닦는 것을 그만두고 환속한다면 저는 함께 살 용의가 있습니다.”
그때에 비구는 곧 도를 닦는 것을 그만두었으나 세간의 고뇌를 감당할 수 없어서 몸이 수척해지고, 생활의 길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쉬운 일을 하고서도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문득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무슨 계책을 세워야 생활해 갈 수 있을까?’
또 생각하기를,
‘양을 죽일 수 있다면, 드는 공은 매우 가볍지만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하고서 이런 곳을 구해 찾았으니, 범부의 마음이란 썩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업을 짓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푸주한[屠兒]들과 함께 친구가 되어서 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때마침 과거에 서로 알고 지냈던 한 걸식하는 도인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보고는 곧 서로 알아보았으나, 봉두난발에 푸른색 옷을 입고 몸에는 피칠을 하고 있는 것이 마치 염라(閻羅)ㆍ나찰(羅刹)과 같았으며, 손에 잡고 있던 고기 저울마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고기를 저울에 달아 사람들에게 팔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서 비구가 길게 탄식하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 말씀이 진실이로구나. ≺범부의 마음은 가볍고 조급해서 머물러 있지 않고 매우 변동되기 쉽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 사람이 그러하도다. 지난 날 이 사람을 보았을 때엔 학문을 부지런히 닦아 금계를 잘 지켰었는데, 오늘날 졸지에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 어찌 생각인들 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는 마치 길들지 않은 말처럼
방일하여 많은 악을 저지르면서도
어찌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조복하는 법을 다 버리고야 말았는가.
그 모든 위의와 행동이
사람들에게 즐겁게 보이고
나는 새나 달리는 짐승도
보고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니다 개미라도 다칠까 조심하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어여삐 여기더니
지난날 닦은 그 마음이
이제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범부로서 그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을 사문이나 바라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여래께서도 표상(標相)을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만약 진리 그대로를 볼 수 있다면 이런 이라야 사문이나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게를 설하였다.
사납고 거칠면서 스스로 칭하기를
‘나는 참된 사문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마음을 조복하지 못한 것이기에
졸지에 이런 큰 악업을 짓게 되네.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어떤
방편으로 그를 깨우칠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을 교화할 때엔 먼저 그로 하여금 4불괴(不壞)에 대해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라≻고 하셨으니, 이 4불괴는 중생들에게 4제(諦)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인즉, 이제 저 사람에게도 업을 짓게 되는 그 근본을 말해주어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저울질을 참 잘하는구려.”
이때에 고기 팔던 이는 생각하기를 ‘이 비구는 고기를 사보지도 않고서 어찌 나를 보고 저울질을 잘한다고 하는 것일까?’라고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이 사람은 분명 자비심이 있어서
나를 구제하려고 여기에 온 것이니
이런 청정 비구야말로
장사하는 법을 여읜 지 오래지만
내가 악업을 짓는 것을 보고는
일부러 와서 제도하려고 하니
진실로 어지신 성인(聖人)이라
나를 위해 이익을 베풀어 주시네.
이 게를 설하고 나서는 옛날에 비구로 있을 때 하던 모든 행동을 더듬어 기억해 냈으며, 과거에 외웠던 경전에 ‘괴로움의 덩어리는 탐욕의 허물이고 탐욕의 맛이다’라는 구절을 기억해 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곧 고기 저울을 멀리 땅에 던져버리고, 생사를 싫어하는 깊은 마음을 일으켜서 저 비구에게 “대덕이시여, 대덕이시여”라고 외치며, 게를 설하였다.
탐욕의 맛과 탐욕의 허물 중에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를,
나 부끄러움을 끈으로 삼아
지혜의 저울을 붙잡아 매어
이와 같은 일을 달아 보고는
마음에 이미 통달하였으니
이로움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한갓 탐욕의 근심거리만 보이므로
나 이제 마땅히 탐욕을 버리고 여의기 위해
다시 승방으로 찾아가
도로 출가할 길을 구해야 겠네.
내가 지금 탐욕으로 지은 일은
몸이 괴롭고 가장 천한 일이어서
비록 현재를 살고 있는 몸이지만
바로 나쁜 갈래에 떨어진 것과 같도다.
내가 옛날에 출가했을 때엔
마시는 물도 걸른 뒤에 마시고
자비심으로 다른 생명들을 보호하며
조금도 해치려는 마음이 없었건만
오늘날엔 저 악귀들이
사람들의 정혈(精血)을 빨아먹는 것처럼
나 이제 함부로 죽이기를 좋아하여
습관처럼 굳어져 버리지 못할까.
훌륭하도다, 부처님 하신 말씀.
‘탐욕을 가까이하는 자는
짓지 않는 악업이 없을 것이로다’라고 하셨으니
나도 또한 탐욕의 부림을 당하여
이 지경의 고통을 겪는 것이라.
일체종지께서 설하신 사제(四諦)를
나는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므로
오늘 이후부터는
끝내 다시 방일하지 않으리.
10력존(力尊)께서 말씀하시길
‘지난날 방일했던 사람도
뒤에 멈추고 다시 짓지 않으면
마치 달이 구름을 헤치고 나와
세간을 밝게 비춤과 같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나 이제 마땅히
오롯한 마음으로 금계를 지키되
설령 머리 위에 불이 붙고
의복이 또한 타버리더라도
굳은 정진만은 그대로 계속하여
조순(調順)하는 법을 수행하리.
조복하기 어려운 번뇌를 끊어
반드시 적멸의 길을 얻되
설사 힘줄과 맥이 저절로 늘어지고
형체가 여지없이 다 마르더라도
4제(諦)를 보지 못하고서는
끝내 쉬지 않으리니
먼저 번뇌의 원수를 없애 버리고
수승한 과보를 얻어 은혜를 갚으리라.
그러자 비구가 그 사람의 마음에 지혜의 불길이 바야흐로 타오르려고 하는 것을 알고서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가 이제라도 출가한다면
반드시 해탈을 얻으리니
옛날에 가리(迦梨) 비구를 비롯해
승겸(僧鉗)과 질다라(質多羅) 등
이러한 비구들도
모두 일곱 번이나 환속하였다가
뒷날 다시 출가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네.
십력을 갖추신 세존의 계율을
그대 또한 훼손하거나 범하지 않고
삿된 소견을 일으키지도 않는다면
그대가 지니고 있는 학문의 지혜로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려는 선한 마음을 내어
적정한 즐거움을 닦아 얻을 것이며
그대가 밝힌 학문의 등불이
번뇌의 바람에 꺼지기는 했지만
이제 다시 학문을 닦는다면
반드시 두려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리니
번뇌에 끄달리는 몸은
선정을 닦는 힘에 의지해야만 하고
선정을 닦아 수승한 힘을 얻으면
분명하게 번뇌를 보리라.
그대가 늘 닦아 모은 힘으로 말미암아
출가하는 법을 즐거워하고
마음에 선한 공덕을 가까이한다면
번뇌로 파괴된 지금의 그대가
다시 바른 길을 닦아 모아서
마침내 번뇌를 제거할 것이니
마치 코끼리가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게 마음대로 가는 것과 같네.
이때에 도를 닦는 것을 그만두었던 비구가 곧 악업을 버리고 다시 출가하여 부지런히 정진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33
다음으로 만약 자신을 장엄하고자 한다면 허물이 없는 선업(善業)이 제일이니, 그러므로 누구나 모든 선업을 부지런히 닦아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총명하고도 영리한 농부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다가, 때마침 한 사람이 단정한 용모에 장엄한 의복을 입고 갖가지 영락을 둘렀으며 화려한 수레에 타고 가는데 데리고 다니는 시종들까지 모두 다 그런 장엄을 갖추어 매우 가관인 것을 보았다.
총명한 농부가 같이 가던 여러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좋지 않구나, 좋지 않아.”
동료들이 말하였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위덕(威德)이 단정하여 매우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한데, 무엇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인가?”
총명한 농부가 말하였다.
“나 자신을 생각해서 좋지 않다는 것이지, 저 사람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네. 내가 전생에 공덕을 짓지 못하여 금생에 이르러 이렇게 천한 몸을 받았으니, 위의도 세력도 없어서 사람들이 존경하지도 않는다네. 만약 전생에 복을 닦았더라면 어찌 이러한 사람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제 부지런히 선업을 닦아서 반드시 미래세에는 저 사람보다 뛰어나겠네.”
곧 게를 설하였다.
저 사람은 방일하지 않고서
선업을 닦아 복된 이익을 얻었고
나는 방일하였기 때문에
공덕의 업을 닦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지금 빈천한 몸 받아
하열(下劣)하여 위의도 세력도 없으므로
나 이제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좋지 않다고 꾸짖었을 뿐이네.
나 이제 스스로 관찰해 보니
빈천이란 매우 불쌍한 것이라
번뇌에 속았기 때문이고
방일함에 파괴되었기 때문이네.
나는 오늘 이후로부터
보시ㆍ지계ㆍ선정을 부지런히 닦아
반드시 미래세에 가서는
훌륭한 종성의 권속으로 태어나
단정한 용모에 위덕을 갖추고
많은 재보와 시종들을 거느리며
많은 일에 모자람이 없어서
온 세간의 존경을 받음으로써
오늘날의 이 몸처럼
후회함이 없게 하려네.
나쁜 마음이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속여 빈천하게 만든 것인 만큼
내 마음 스스로 후회하고 책망하여
선업 닦아 쾌락을 얻어야 하겠으니
설령 악업을 저지를 때에
선한 마음이 도무지 나지 않더라도
그 마음 가다듬어 선업을 닦는다면
영화와 안락을 모두 갖출 수 있다네.
선악의 과보에 차별이 있다는
세간의 말도 빈말은 아니지만
부처님이 설하신 여덟 가지 바른 길은
바로 열반에 이르는 길이니
만약에 마음이 재보나 이로움
부귀와 영화에 집착되어서
후세의 몸만을 구하려 한다면
늙어 쇠약해지는 근심을 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부지런히 정진을 오로지해서
두려움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리라.
마치 술에 취한 화사(畵師)가
온갖 형상을 함부로 그렸다가
술 깬 뒤에 그 잘못을 깨닫고서
지워버리고 다시 훌륭하게 그리듯이
과거세의 어리석음 때문에
금생에 이 나쁜 몸을 받았지만
이제 악업을 다 소멸해 버리면
미래세엔 수승한 과보를 받으리니
악업의 과보를 보고 나서는
지혜로운 이는 깊이 자신을 꾸짖는다네.
34
다음으로 선한 말을 듣고서 잘 생각하는 이는 반드시 뜻과 이익을 얻으니,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는 항상 선묘(善妙)한 법을 받아 들어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계실 때 아난(阿難)과 함께 넓은 들판을 지나시다가 어느 한 밭두둑에 감춰진 광[伏藏]이 있는 것을 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큰 독사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독사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독사입니다.”
그때에 밭 가운데 있던 어떤 농부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사문들이 무엇을 가지고 흉악한 독사라고 하는지 내가 가서 보리라.’
곧 그곳으로 가서 진금(眞金)덩어리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들이 말한 독사라는 것이 바로 이 좋은 금이로구나.”
곧 이 금을 가지고 돌아와 집 안에 두었다. 그 농부는 지난날 가난하여 의식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었는데, 이 금을 얻었기 때문에 갑자기 부자가 되어 의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소문이 퍼져 나가자 왕실의 책사(策伺)는 그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잡아다 감옥에 가두니, 지난번에 얻은 금을 다 쓰고도 옥살이를 면하지 못했을 뿐더러 장차 사형을 받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농부가 큰소리로 말하였다.
“독사로다, 아난이시여, 흉악한 독사로다. 세존이시여.”
곁에 있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서 그 진상을 왕에게 일러바치니, 왕이 그 농부를 불러다 물었다.
“왜 큰소리로 ‘독사로다, 아난이시여, 흉악한 독사로다, 세존이시여’라고 하는 것이냐?”
농부가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예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가 부처님과 아난이 ‘독사다, 흉악한 독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제가 이제야 비로소 이것이 진실로 독사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큰 독사라고 경계하신
부처님 말씀 틀림없고
진실로 흉악한 독사라고 말한
아난의 대답도 사실이니
이같이 흉악한 독사의 세력을
이제서야 비로소 경험해 알았습니다.
제가 지금 위난(危難)을 당했기에
거룩하신 불ㆍ세존께
몇 배의 신심과 존경심을 내어
부처님의 말씀을 외친 것이니
독사에 물리면 그 해독이
바로 내 한 몸에 미칠 뿐만 아니라
친척과 처자, 노비와 동복(僮僕) 등
일체가 다 고뇌를 받아서
재보라는 독사의 해독이
온 집안의 권속들에까지 미침으로써
제가 이제 재보는 물론이려니와 친척들까지
흉악한 독사처럼 보이기만 합니다.
성냄과 분노가 일어날 때
지혜로운 이는 빨리 떠나서
마치 흉악한 독사를 버리듯이
속히 출가하기를 구하여
산림에 나아가야 하리니.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이런 일을 보고 듣고서도
재보에 탐착하여 그 마음을 미혹케 하리까.
제가 큰 이익을 얻었다고 여긴 것이
오늘날 도리어 화가 되었습니다.
왕이 이 게를 듣고서 그 사람이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었음을 깊이 알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네가 지금 믿고 존경하는
자비로우신 큰 선인(仙人)께서는
하신 말씀이 진실되어서
일찍이 두 말씀이 없으셨도다.
지난날 광 속의 그 재보를
이제 너에게 다 돌려주어
다시 그 재보를 가지고
너의 한 몸을 공양하게 하리니
이는 네가 조어사(調御師)ㆍ선서(善逝)의
진실한 말씀을 존경하고 믿기 때문이니라.
대범천왕이 믿는 것을,
발리(拔梨) 아수라왕과 천왕과 제석천
나와 같은 여러 왕들과
성안의 모든 호족들,
바라문, 찰제리, 그 밖에 슬기로운 이들도
믿고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내가 믿는 것을 같이 믿기 때문에
현재의 과보를 얻은 것이니
이제 가장 믿을 만한 이를 믿는다면
제일가는 과보를 받게 되리라.
35
다음으로 모든 이익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혹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하는데, 진실되고 착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실리를 얻고, 진실되고 착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익에 탐착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니, 그러므로 진실되고 착한 마음을 닦아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한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그때에 재상의 아들이 그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서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받지 못한 채 재산이 이미 다되었으나, 아무도 그 사실을 왕에게 알려 주는 이가 없었다. 곤궁하게 스스로 생활을 꾸려 나가다 점점 장대(長大)해지니, 재상의 재주가 있어 백성을 다스리고 일을 해결하는 일체의 것을 잘 알았다. 나이가 서른 살이 되어 한창일 때에는 생김새가 아름답고 몸이 크며, 용맹하고 힘이 세며, 재예(才藝)를 다 갖추고는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빈궁한데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그렇다고 천한 업을 할 수도 없으니, 이제 내가 복이 없어서 재주가 있다 해도 펴볼 수가 없구나. 하천(下賤)한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이렇게 말하고는 게를 읊었다.
업이 이르러 나를 변화시켜
이렇게도 빈궁하게 만드니
부모님이 남기신 가업(家業)은
이제 써먹을 곳이 없고
하천한 일거리는
내가 할 일이 아닌데.
만약 나에게 복된 업이 없다면
차라리 하천한 집에 태어날 것을.
태어난 곳은 비록 귀하지만
곤고(困苦)하기가 이와 같도다.
천한 업은 매우 알기 쉽지만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
차라리 도적질을 업으로 삼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도무지 알 수 없으리니,
정말로 도적질을 업으로 한다면
가리고 숨겨서 못 알아보게 하고
허리 양쪽에 화살통 차고
아울러 예리한 칼을 지니며
손을 싸매고 활을 잡아드는 등
갖가지로 스스로를 무장하여
마치 사자 새끼처럼
도무지 두려움이 없어야 하리라.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기왕에 남의 재산을
겁탈할 바에야 빈궁한 사람보다는 국왕을 겁탈하리라.’
그리고는 왕궁으로 가서 왕이 누워 있는 처소에 이르니, 왕이 도적이 든 줄은 알았으나 두려워 감히 말을 못하므로 왕의 의복과 모든 영락을 가져다 한곳에 모아 두었다. 이때에 왕의 머리맡에 물 그릇이 있고 또 재(灰)가 있었는데,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여 재를 밀가루로 여기고 물에 타서 마셨다. 마시고 나서 배가 부르니, 그제서야 그것이 재인 줄을 알게 되었다.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재도 먹을 수 있거늘 하물며 다른 것이겠는가. 내 차라리 풀을 뜯어먹을지언정 어찌 도적질을 하겠는가. 선친 때로부터 이런 업은 하지 않았노라.’
곧 훔친 모든 물건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왕이 빈몸으로 나가는 그를 보고서 찬탄하여 말하였다.
“착하도다.”
다시 그를 불러 말하였다.
“너는 지금 무슨 까닭에 이미 훔친 이 물건들을 도로 땅에 내려놓고 빈손으로 가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왜 나쁜 짓을 했느냐 하면
배고프고 목마르기 때문이었으나
재를 탄 물로도 기갈이 멈추었기에
도적질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이제 견디기 어려운 기갈도
쉽게 그칠 수 있음을 알았으니
내가 잿물을 마시고 나서
그릇을 던져 땅에 놓고는
부끄러워서 뉘우친 나머지
다시는 악업을 짓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대왕님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는 평범한 서민이 아니고
재상의 아들이었는데
집안이 빈궁함으로 인하여
일부러 이 왕궁에까지 들어와
법에 맞지 않은 일을 저질렀으나
오늘 이후부터는
잿물을 마시고
풀을 뜯어먹더라도
도적질을 업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선친 때부터 저의 집에는
가문에 예의와 가르침이 있으니
차라리 제 몸을 스스로 없앨지언정
오래된 법의 가르침은 훼손하지 않으렵니다.
왕이 이 일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며 종성자(種姓子)를 칭찬하였다.
“진실되어 허망하지 않도다. 비록 한때의 허물이 있기는 했지만, 곧 뉘우치고 고쳤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빈궁은 인내심을 무너뜨리고
아울러 부끄러움까지 버리게 하니
하천하고 비루하며 악한 사람은
이내 곧 악업을 저지르기 마련이거늘
자기 가문의 법의 갈고리로써
비법의 코끼리를 제어하였기에
네 스스로가 그 마음을 억제하여
가문의 교법(敎法)을 어기지 않았도다.
이런 어진 행동이 있으므로
다시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받으리니,
너는 이제 어리석은 마음을 제거하고
어려운 일을 해냈기에
내 마음이 너무 기뻐서
너를 재상으로 삼을 것이니,
다시 관찰할 필요 없이
내 이미 너의 행동을 다 보았노라.
마음이 굳고 뜻이 용건(勇健)하며
아울러 지혜와 재능을 겸비한 것은
내 자신이 이제 보고 알았으니
이러한 일은 실로 있기 어려운 것이라.
재업(才業)이 아버지보다 배로 뛰어남은
오로지 네 마음이 진실하고 착하기 때문이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진실해야만 하고 거짓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36
다음으로 현재 비록 번뇌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만약 그 번뇌를 아주 끊지 않는다면, 번뇌가 세력을 얻어 치성하게 되리니, 그렇게 되면 마치 냉수를 열탕(熱湯) 속에 던지는 것과 같으리라.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스승이 제자와 함께 겨울날 따뜻한 방에 있으면서 불덩어리에 연기와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스승이 제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이 불덩어리에 연기와 불꽃이 없는 것을 보았느냐?”
제자가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네가 마른 섶을 그 불덩어리에 넣으면 즉시 연기가 일어날 것이고, 또 입으로 분다면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제자를 위해 게를 설하였다.
이 불덩어리에 연기와 불꽃이 없음은
자비한 마음으로 부정관(不淨觀)을 하였기 때문이니,
현재 번뇌가 일어나지 않아서
불덩어리에 연기도 불꽃도 없는 것 같지만
만약에 마른 섶을 불덩어리에 넣는다면
연기와 불꽃이 한꺼번에 일어나듯이
마음의 불덩어리도 그와 같아서
어떤 인연을 만나거나 나쁜 벗을 만나면
진심(瞋心)의 연기가 곧 일어나네.
아름다운 색(色)을 볼 때면
탐욕의 불길이 치성하게 타오르니
그 연기와 불꽃을 끄기 위해서는
3명(明)3)을 원만히 성취해야 하며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끊기 위해선
더욱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
명행족(明行足)4)의 굳센 힘으로
아예 번뇌의 풀을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하네.
마치 사람들이 항상 다니는 길에는
온갖 잡초들이 자라날 수 없듯이
탐욕과 진심도
그 근본을 아주 다 끊지 못했기에
인연을 못 만나면 일어나지 않다가
인연을 만나면 또다시 일어나니
마치 학질에 걸리게 되면
나흘 뒤에는 반드시 발작하고
이틀이나 사흘에는
연을 만나면 도로 다시 발작하는 것처럼
또한 세속에서 닦은 선정은
아무리 번뇌를 덮어 못 일어나게 하고
도무지 근심ㆍ걱정을 없애려 해도
지독한 저 나무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으면 움이 다시 돋아나는 것과 같네.
사람들이 흰 머리털을 싫어하여
검은 머리털까지 다 깎아 버려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흰 머리털이 다시 자라듯이
아주 끊어 버리지 못한 번뇌도
그 자라남이 또한 이와 같도다.
이러한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가
계행(戒行)을 더럽히는 기관(機關)이므로
그것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다스리려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니
번뇌를 끊기 어렵다는 생각을 낼 때,
번뇌가 뒤에 다시 일어나서
계행을 마구 헐뜯고 범하여
다섯 가지 욕심에 탐착케 하는 것이
마치 저 구멍에 숨어 있는 독사가
도로 나와서 사람을 무는 것과 같네.
37
다음으로 보시란 해탈을 위한 것이지 재물을 위한 것은 아니다. 만약 재물을 위해서라면 보시라 할 수 없고, 해탈을 위한 것이라야 곧 생사 없는 법(法)과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되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해탈을 위해서만 보시를 행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단월(檀越)이 승방에 나아가 공양을 베풀었는데, 그 단월의 친구인 한 도인이 상좌 비구에게 말하였다.
“오늘 이 단월의 음식이 아주 찬찬하니[精細] 흐뭇한 마음으로 설법하여 주십시오.”
이때에 상좌 비구는 이미 3명(明)ㆍ6통(通)ㆍ8해탈(解脫)을 얻었기에 남의 마음을 잘 알았으므로, 저 단월이 무슨 일을 위해 이 공양을 베풀었는지를 관찰하여, 곧 재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상좌는 이 단월을 위해 3악도(惡道)의 고통을 설명해 주려고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단월이여, 그대가 지금 베푼 이 공양이야말로 때에 딱 들어맞는 보시로다. 색과 향, 맛난 맛을 모두 다 구족하였고, 또한 매우 청정하니 3악도 중에 조금도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도다.”
이때에 단월의 친구 도인이 상좌에게 말하였다.
“어째서 그를 위해 주원(呪願)5)하기를 ‘3악도에 조금도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상좌 비구가 저 친구 도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비록 나이가 많아서 설법이
헷갈리긴 했지만, 그러나 이 단월이 계율을 익히지 못해 번뇌에 사로잡혀 있음을 내가 관(觀)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오. 이 단월은 5욕락(欲樂)과 재보 때문에 축생이 될 것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보시하는 이가 태어나는 곳에서
재보가 지극히 광대하여
그 재보를 믿는 까닭에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고
교만하여 법도를 벗어나면
눈멀어 어두운 어리석은 범부는
법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곧 3악도에 떨어지며
3악도에 처하기를
마치 자기 집인 양하게 되고
혹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더라도
잠깐 동안 머무는 손님처럼 되네.
그러므로 계율을 동반한 보시만이
열반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니
계율로써 천상에 태어나고
보시로써 온갖 도구를 다 갖추어
하는 일마다 해탈하게 되어서
반드시 고통의 짬[苦際]을 끊는 것이네.
마치 연뿌리를 심어 두면
꽃과 잎을 다 함께 얻고
그 뿌리도 먹을 수 있듯이
보시와 계율을 수행하는 이라야
해탈의 숲에 가까이 갈 수 있으니
쾌락은 꽃이나 잎과 같고
해탈은 뿌리와 같으므로
보시와 계율을 함께 닦되
반드시 해탈을 위해서이지
세간의 이익을 위해서는 안 되네.
38
다음으로 모든 고난을 여의는 것도 어렵지만 사람의 몸을 얻기가 더욱 어려우니, 이미 모든 고난을 여의었다면 항상 부지런히 정근(精勤)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어린아이가 경전에 있는 이른바 ‘눈 어두운 거북이 떠 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라는 말씀을 듣고는, 이 아이가 일부러 나무판자를 뚫어 머리가 들어갈 만한 구멍을 만들어 연못에 던져 두고, 스스로 연못 속에 들어가 머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나무 구멍에 맞추려고 했으나, 물 위에 떠 있는 판자이기 때문에 맞출 수가 없었으므로,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매우 어려운 일이로구나. 사람의 몸 얻기가 어려운 것을 부처님께서는 큰 바다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으니, 떠 있는 나무의 구멍은 작고 눈먼 거북은 볼 수도 없는데, 백 년에 한 번 나와서 구멍을 만난다는 것은 진실로 어려운 일이로다. 나는 지금 연못은 작으며 나무판자의 구멍은 크고 게다가 두 눈도 있으며, 하루에 백 번이라도 머리를 내밀 수 있는데도 오히려 만날 수가 없었거늘, 하물며 저 눈먼 거북이
만날 수 있겠는가?’
곧 게를 설하였다.
큰 바다는 매우 광대하고
떠 있는 나무의 구멍은 작으니
백 년에 한번 나오는 거북으로서는
그 구멍 만나기 너무 어려워라.
나는 지금 연못 물도 적고
떠 있는 나무의 구멍도 크며
자주자주 머리를 내미는데도
나무 구멍을 만날 수 없도다.
눈먼 거북이 떠 있는 나무를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인 것처럼,
나쁜 갈래에 떨어진 몸으로
다시 사람 몸 만나기 어려움도 이와 같으니
나 이제 사람 몸을 만났으므로
마땅히 방일하지 않으려네.
항하사(恒河沙) 같은 부처님들을
일찍이 만나지 못했다가
10력(力) 세존께서 하신 말씀을
오늘에서야 받아 들었으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미묘한 법을
내 반드시 수행하리라.
만약 잘 닦아 익힌다면
아주 큰 구제를 받는 것인 만큼
남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정근해야 하네.
혹시 여덟 가지 고난에 떨어지면
그 고난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세간의 업을 따라 헤매다간
나쁜 갈래에 떨어지리니
나 이제 도피하여
3유(有)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하거늘
만약 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을 것이며
축생 따위의 갖가지 갈래는
다 오랜 겁을 겪기 마련이고
지옥과 아귀의 갈래도
어둠 속에서 깊은 고뇌를 받으니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갈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요.
이 험난한 모든 갈래에서
오늘날 사람의 몸을 얻었지만
그 고뇌의 짬을 다하지 않고서는
3유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응당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서
반드시 3유의 감옥을 여의어야 하니
내 이제 출가하길 구하여
기필코 해탈을 얻을 것이네.
39
다음으로 재물과 돈은 희사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지혜로운 이는 비록 조그마한 보시를 닦더라도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수화다국(須和多國)에 살다부(薩多浮)라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사냥하러 나갔다가 마침 탑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곧 5전(錢)을 그 탑에 보시하였다. 그 탑에 있던 한 전다라(旃陁羅)6)가 멀리서 이것을 보고는 “훌륭하도다”라고 외치니, 왕이 곧 사람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하였다.
이때에 왕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지금 나의 보시한 돈이 너무 적다고 비웃는 것이냐?”
그 사람이
왕에게 고하였다.
“왕께서 저를 벌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감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험한 길에서 겁탈하여 빼앗는 도적이 되어 길가는 사람 하나를 잡았는데, 그 사람이 손을 급히 감추므로, 제가 그 사람의 손 안에 금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손을 펴라’고 말하였으나, 그 사람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활을 당겨 그 사람을 위협하면서 손을 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제가 그 금전에 대한 탐심이 있었기 때문에 곧 그를 쏘아 죽이고서 동전 하나를 얻었으니, 어찌 동전 한 닢이 아까워 몸과 목숨을 버린단 말입니까? 이제 대왕님께서는 어느 누가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데도 5전을 불탑에 보시하기에, 제가 지금 ‘훌륭하도다’라고 찬탄한 것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수레바퀴같이 둥글게 활을 당김은
장차 그의 목숨을 해치려고 한 것이지만
그는 차라리 목숨을 잃을지언정
동전 한 닢을 버리지 않았으니
내가 보건대 이런 사람은
목숨은 버려도 돈은 버리지 않을 터인데
이제 돈을 버려 보시하는 이를 보고서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하기 어려운 일이라 찬탄했을 뿐입니다.
활이나 칼을 가진 이가
대왕님을 핍박하는 것도 보이지 않고
또한 두렵거나 꺼릴 것도 없는데
뜻을 열어 어려운 희사를 하셨으니
애써 구해야만 얻어지는 돈인데
제가 이제 오늘날
재물을 보시하는 이를 보았으니
어찌 전에 없던 마음을 내지 않으리까.
어떠한 고통에도 희사하기 싫어하는
그 증거를 제 자신이 보았으니
대왕께서는 이제 아셔야만 합니다,
아까워하는 마음으론 희사하기 어려움을.
40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잘 관찰하는 이는 그 당시에는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뒷날 반드시 큰 이익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 비구가 자주 도둑을 맞았기에 하루는 문을 굳게 닫고 있었는데, 도적이 다시 또 와서 문을 두드리고 부르니, 비구가 대답하였다.
“내가 너를 볼 때마다 너무나 놀랍고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으니, 네가 저 북쪽 창에 손을 넣으면 너에게 물건을 주겠노라.”
도적이 곧 손을 넣어 북쪽 창에 두므로, 비구가 기둥에다
끈으로 묶고서 몽둥이를 가지고 문을 열고 나와 때렸다.
한 대 때리고 나서 말하기를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하니, 도적이 두려움 때문에 곧 따라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했다. 다시 또 때리고 나서 말하기를 “법에 귀의합니다”라고 하니, 도적이 죽을까봐 겁이 나서 “법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했다. 세 대째 때릴 때엔 다시 말하길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하니, 도적이 두려움 때문에 “승가에 귀의합니다” 하였다.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 이 도인에게 얼마나 더 귀의할 데가 있는 것일까? 만약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면 기필코 다시는 이 염부제를 보지 못한 채 목숨이 끝나리라’ 하였다.
그때에 비구가 곧 풀어 주고 가게 하였으나, 맞았기 때문에 몸이 아파서 한참이 지난 뒤에 일어나서는 곧 출가하기를 구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먼저는 도적이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더니, 무슨 일로 출가하여 도를 닦으려 하느냐?”
그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도 또한 불법의 이익을 관찰했기에 출가하려는 것이네. 내가 오늘날 선지식을 만나 몽둥이로 세 대를 맞고 목숨이 거의 끊어질 뻔 하였으니, 만약 일체지(一切智)이신 여래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4귀의(歸依)를 가르치셨다면 나의 목숨은 곧 끊어졌을 것이네. 부처님께서 혹 이런 일이 있을 줄을 미리 아시고서 비구들에게 도적을 때릴 때는 세 대만 때리라고 가르쳐 두시어 나를 죽지 않게 하신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오직 3귀의만을 설하셨지 4귀의는 설하지 않으셨으니, 이는 부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3귀의를 설하시고 4귀의는 설하지 않으신 것이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분명히 일체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3귀의만을 말씀하시고
네 번째는 설하지 않으신 것이니
3유(有)를 위하여
3귀의를 설하셨지만,
만약 네 번째가 있었더라면
나는 귀의할 수 없었을 것이네.
여래께서 가엾이 여기신 때문에
나 이제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으니
미리 관찰하신 이러한 일 보고서
내 어찌 전에 없던 마음을 내어
도적질하던 그 마음을 버리지 않으랴.
혹은 추악한 일 때문에 깨닫고
혹은 미세한 일 때문에 깨닫지만
추악한 자는 추악한 일을 깨닫고
미세한 자는 미세한 일을 깨닫기 마련인데
나의 마음이 추악함으로 말미암아
추악한 일 때문에 깨달았으니
이 깨달은 인연으로
출가하기를 구한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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