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4권
대장엄론경 제4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17
다음으로 만약에 싸울 일이 있더라도 번뇌를 끊은 이의 명호(名號)를 듣는다면 싸울 일이 자연히 해결되며, 남에게 공양과 공경을 받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번뇌를 끊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한 노모(老母)가 숲속에 들어가 바라수(波羅樹)1) 잎을 따 그것을 팔아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 다니는 길이 관문(關門)을 경유해야 했는데, 관문을 지키는 나인(邏人)이 노모에게 세물(稅物)을 받으려고 하자, 이때에 노모는 세물을 내놓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를 국왕에게 데려다 준다면 세물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끝내 주지 않겠다.”
이에 나인은 서로 싸우던 끝에 노모를 데리고 왕의 처소로 갔는데, 왕이 노모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왜 관세(關稅)를 내지 않느냐?”
노모가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께서는 저 아무개 비구를 알고 계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알고 있다. 그는 큰 아라한(阿羅漢)이다.”
또 물었다.
“그러시다면 두 번째 비구 아무개도 알고 계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알고 있다. 그도 또한 아라한이다.”
또 물었다.
“세 번째 비구 아무개도 또한 알고 계십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알고 있다. 그도 또한 아라한이다.”
노모가 큰소리치며 왕에게 말하였다.
“이 세 아라한이 모두 나의 아들입니다. 이 아들들이 대왕의 공양을 받아 대왕으로 하여금 한량없는 복을 받게 하니, 이것이 곧 대왕에게 세물을 바치는 것인데 어째서 다시 세물을 빼앗아 가려고 하십니까?”
왕이 이 말을 듣고는 전에 없던 일이라고 감탄하였다.
“훌륭하도다. 노모여, 이 성스러운 아들을 낳은 노모인 줄을 나는 사실 몰랐으나, 이제 그 아라한들이 노모의 아들인 줄 알았으므로 노모에게도 공양과 공경을 올리겠소.”
이에 노모가 곧 게를 설하였다.
내가 낳아 기른 세 아들이
다 용감하고 건장한 비구로서
삼계를 벗어나 아라한을 증득하여
세간을 위한 복밭이 되었으니.
대왕께서 공양하실 때 얻은 복으로
이미 다 세물을 받은 것이어늘,
또 나에게 무슨 방편으로
거듭 세물을 빼앗아 가려 하십니까?
왕이 이 게를 듣고는 몸의 터럭이 모두 쭈뼛해져서 삼보에 대해 더욱 믿음과 공경심을 내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이러한 노모에게는 공양을 올려야 마땅하거늘, 하물며 세물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서 왕은 게를 설하여 말하였다.
오늘 이후로
이와 같은 노모는
삼계를 벗어난 아들을 낳았으므로
공양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니
세물을 면제할 뿐만 아니라
다 함께 공양을 올려야 마땅하며
설령 노모와 동반한 자가
낙타ㆍ나귀ㆍ수레 따위에
많은 값진 보물을 운반하더라도
이 노모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세물을 받을 수 없는데
하물며 이 노모 한 사람이
혼자서 나뭇잎을 팔 뿐
그 밖에 다른 돈 되는 물건이 없는데
어떻게 세물을 받을 수 있겠는가.
저 산속의 암굴(巖窟) 같은
경행(經行)하는 수도처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
모든 번뇌를 다 끊었다면
그 수도처도 공경해서
존중하여 공양함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이 노모와 같이
성스러운 아들을 낳은 이를
어떻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8
다음으로 방일(放逸)에 대한 과보를 보여 주어서 중생들을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큰 장사꾼의 우두머리에 억이(億耳)라는 이가 있었다. 바다에 나아가서 보물을 채취해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과 떨어져 따로 묵었다가 동료들을 잃어버렸다. 당황하여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인 나머지 멀리 어떤 성(城) 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곳에 물이 있을 것이라 여겨 곧 성으로 가서 물을 찾아 마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성은 바로 아귀들의 성이었으므로, 성에 이르러 사방 길어귀의 사람들 모이는 곳을 보아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기갈(飢渴)이 더욱 심해져 ‘물, 물’ 하고 외치니, 모든 아귀의 무리들이 이 ‘물’ 소리를 듣고는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어떤 자비로운 이가 우리에게 물을 주려 하는가?”
몸이 촛대같이 마른 아귀들이 머리털을 싸매고
다가와서는 합장한 채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건대 저희들에게 물을 주십시오.”
억이가 말하였다.
“나도 목이 말라 물을 구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때에 아귀들은 억이가 목이 말라 물을 구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자기들의 희망이 모두 허사가 되자 제각기 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여기가 아귀의 성인 줄 몰랐단 말인가? 어떻게 여기 와서 물을 찾을 수 있는가?”
곧 게를 설하여 말하였다.
우리들의 이 성안에서는
백천만 세가 지나도록
아직 물이란 이름조차 듣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물을 얻어 마실 수 있겠는가.
마치 저 다라수(多羅樹)2) 숲이
치성한 불에 타 버린 것처럼
우리들 또한 이와 같아서
팔ㆍ다리는 다 타 버리고
머리털은 쑥부쟁이같이 흐트러졌네.
형체는 모두 이지러지고 파손되어
밤낮으로 음식만을 생각하며
온 세상을 다 헤매다녀도
목마름과 굶주림에 쪼들리어
입만 벌리고 돌아다니는데.
어떤 사람은 회초리 들고 따라와
마침내 온갖 매질을 가하고
귀로는 항상 나쁜 소리만 듣고
착한 말은 들어본 적도 없거늘
하물며 한 방울이라도 물을 얻어
내 목구멍을 적실 수 있었으랴.
혹여 산골짜기 사이에 있는
천룡들이 감로(甘露)를 내려 주어도
그 감로가 모두 뜨거운 불로 변하여
우리들 몸뚱이 위로 쏟아지며
강이나 시냇물을 보아도
그 물이 다 흐르는 불로 변하여
강이나 시내ㆍ연못ㆍ샘 할 것 없이
죄다 바짝 말라 보이기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피고름으로 변해
지독하게 더럽고 냄새 나는데,
그것이라도 달려가 마시려 해도
야차(夜叉)들이 쇠뭉치로 내려치며
때리려 해서 가까이 갈 수 없거늘
우리들이 이러한 고통을 받는데
어떻게 물 한 방울이라도
그대에게 베풀 수가 있겠는가.
우리들은 과거세 때에
인색하고 욕심 많고 질투가 심하여
물이나 다른 음식으로
한 사람에게도 보시한 일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보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보시하지 못하게 한
그 무거운 업보로 말미암아
지금 이 고뇌를 받는 것이며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하듯이
보시야말로 큰 과보를 얻는 것이건만
우리들은 씨를 뿌리지 않았기에
오늘날 이 고뇌를 받는 것이네.
게으르고 인색하며 남을 시기함으로 인해서
이 끝없는 고뇌를 받게 되었으니
일체 모든 고뇌의 씨앗으로
탐욕과 질투보다 더한 것이 없도다.
마땅히 방편을 부지런히 하여
이와 같은 환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보시만이 가장 좋은 씨앗이어서
모든 이로움과 즐거움을 자라나게 하므로
우리들처럼 고뇌를 받지 않으려면
응당 보시를 힘써 닦아야 하네.
사람들은 다 같아 보여서
몸의 형체에는 차별이 없지만
지은 업이 같지 않기에
과보도 또한 다르니
부귀하여 재보가 많기도 하고
가난하여 구걸하는 이도 있으며
여러 하늘들이 같은 그릇에 먹어도
그 음식의 빛깔이 각각 다르고
같은 축생(畜生) 중에 떨어졌어도
지은 업보가 또한 같지 않기에
뒷날 복락을 받는 자와
고뇌를 받는 자가 있기 마련이라.
이 모두가 간탐의 독 때문이니
사람이나 하늘이나 축생이나
간탐과 질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태어나는 곳마다 손멸(損滅)하게 되나니.
아귀들의 고통은 더 심하여
팔과 다리에 불꽃 연기가 일어나는 것이,
마치 나무에 붉은 꽃이 핀 듯하고
취한 코끼리의 코 끝 같기도 하며
멀리 허공에서 떨어지는 꽃들이
온몸에 덮여 붉은 것 같네.
모든 현성(賢聖)들께서 말씀하시길,
간탐과 질투가 가장 나쁜 고통의 그릇이라 하셨으니
구걸하는 자를 보고서
그 마음이 곧 번뇌로 혼탁해지면
혼탁해지는 그 찰나에
인색한 번뇌를 일으키게 마련이라.
어리석은 자는 인색하여 보시하지 않아
빈궁의 뿌리를 심어 두고
탐심이 쌓이고 쌓여서
곧 나쁜 갈래[惡道]에 떨어지나니
이와 같이 간탐하는 어리석은 자야말로
뭇 고뇌의 근본이 되는 것이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간탐의 뿌리를 먼저 제거하거늘
그 누가 이름뿐인 공경을 좋아하여
바른 길 버리고 삿된 길을 따라가리요.
이 몸의 고뇌 받는 것이
금세 뿐만 아니고 내세에도 그러할진대
어느 세계에서나 이 번뇌의 업이
청정한 보시의 과보를 막으리니
이른바 이 간탐과 질투가
많은 원수들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네.
이 몸은 큰 종기[臃腫]인데
의복ㆍ음식ㆍ탕약 등과
일체의 안락함을 위한 도구들을
탐욕과 질투가 다 끊어 버리네.
탐욕과 질투는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도
한번 들어오면 막아내기 어려우므로
마땅히 보시의 견고한 문으로
마음의 집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저 탐욕과 질투라는 원수로 하여금
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네.
간탐과 질투가 마음에 들어온다면
바다나 강, 시내 할 것 없이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하리니
억이여, 이 방일함의 과오를 보았다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돌아가는 대로 출가하기를 구하되,
출가해서는 부지런히 선정과 지혜를 닦아
속히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시라.
19
다음으로 자기에게 허물이 없는 이라면 남을 꾸짖을 수 있겠지만, 만약 자기에게 허물이 있는데도 남을 꾸짖는다면 그는 도리어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벌거숭이 바라문이 여러 사문들과 함께 길을 가는데, 젊은 비구 한 사람이 그 벌거숭이 바라문을 보고서 그의 부끄러워할 줄 모름을 비웃었다.
그때에 저 벌거숭이 바라문의 동행 가운데 불법을 조금 이해하고 있는 바라문이 있어 비구에게 말하였다.
“장로여, 그대는 출가한 그 표식으로 남을 깔보거나 속일 수 없는 것이고, 또 출가한 그 모습만으로 번뇌를 끊을 수도 없는 것이니, 만약 아직 끊지 못하였다면 생사에 유전하여 벗어날 때가 없어서 그대는 후신(後身)에 가서 벌거숭이를 면하지 못하겠거늘, 어째서 보고 웃는단 말인가. 그대가 지금 생사 중에 있는 것이 마치 도라수(兜羅樹) 꽃이 바람을 따라 동서로 정처없이 흩날리는 것과 같으니, 그대는 마땅히 스스로를 비웃어야지 남을 비웃을 수 없는 것이네. 그대는 뒷날 어느 갈래에 떨어질 것인지 알고나 있는가?
마치 재가 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번뇌가 마음을 덮고 있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보장할 수 없으니, 그대는 이제 자신은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말하지 말고 그대가 하는 일이 아직 모든 ‘견(見)’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똑똑히 보아야 하네. 진정으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이라면 결정코 모든 ‘견’의 그물에 들어가지 않으니, 만약 나쁜 지각[惡覺]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 하겠네. 그대 자신이 아직 결정된 수(數)에 들어가지 못했거늘 어찌 다른 사람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
그때에 그 비구는 벌거숭이 바라문의 이 법다운 말을 듣고는 묵묵히 대답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비구들은 듣고 나서 찬탄하였다.
“바르신 말씀입니다. 번뇌를 끊은 이야말로 부끄러움을 안다고 할 수 있으니, 만약 번뇌를 끊지 못하였는데도 비구라 이름한다면 저 머리털 깎은 기인(伎人)들도 비구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인들이 아무리 머리털을 깎았다 해도 비구라 하지 않으니, 4진제법(眞諦法)을 보아야만 진정한 사문이라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경전에 있는 말씀처럼 네 가지 진리를 보지 못한 자는 삿됨과 바름을 결정하지 못하고, 삿됨과 바름을 결정하지 못한 자는 그 소견이 그릇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제를 부지런히 닦아야만 하니, 진리를 본 이라야 소견이 바르고 진실되어서 삿된 갈래를 아주 여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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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잘 관찰하는 이는 아름다운 여색을 보더라도 아무런 욕심이 없고 싫어하는 생각을 더 많이 내나니, 그 아름다운 여색을 보았을 때에 아예 사랑하거나 미워함을 일으키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한 사묘(寺廟)에 많은 비구들 가운데 3명(明)과 6통(通)을 갖추어 언사(言辭)가 교묘하고 변재(辯才)를 구족한 법사(法師)가 있었다. 그는 자타의 의론을 알아 문답에 거리낌이 없을 뿐더러 그 임기응변의 설법이 뭇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며, 능히 법의 등불을 켜서 어리석음과 어둠을 비추어 주어 그 성(城) 안팎의 인민들로 하여금 날마다 와서 모두 설법을 듣게 하였는데, 듣고 나서는 비록 나이가 젊은 이라도 다 방일하지 않았다.
그때 저 성안에는 나이먹은 음녀(婬女)들이 있었는데, 모두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우리들에게 아무도 왔다 가는 사람이 없으니 이와 같은 고통을 얼마동안 받겠구나.”
그 음녀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나이 한창이고 얼굴이 단정하며, 지혜가 비범하여 세론(世論)을 잘 알고,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순 네 종류의 기예를 다 통달하였다.
딸이 어머니가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을 보고서 곧 어머니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까?”
어머니가 딸에게 고백하였다.
“이제 이 성안에 사는 일체의 인민들은 모두 설법 듣기를 좋아하여 내 옆에는 아무도 오가는 이가 없으므로, 자재(資財)가 텅 비어도 얻을 길이 없으니, 내가 이 때문에 근심할 뿐이다.”
딸이 이 말을 듣고는 자기의 자태가 단정함을 믿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제가 지금 몸을 꾸미고 저 법회에 가서 모여 있는 일체의 인민들이 다 저를 따라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바로 스스로 목욕하고는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갖가지 영락을 걸었으며 머리엔 화관(花冠)을 쓰고 발에는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한
신발을 신었다. 오른손에 지팡이를 잡고서 아장거리는 걸음과 실룩거리는 자태로 갖가지로 꾸미고 나서니, 마치 꽃 나무가 걸어다니는 것 같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화관과 영락으로 몸을 꾸민 여러 시종들을 거느렸는데 그들 역시 미묘하였으며, 이들에게 혹은 금병(金甁)을, 혹은 총채[拂]와 부채를, 혹은 향이나 꽃을 잡고 앞뒤에서 호위하게 하였다. 또 여러 기인(伎人)들을 데려다 주위를 둘러싸게 하고는 함께 말하고 웃으며, 혹 오른손을 들어 길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다시 어린아이를 골라 많은 꽃들을 귀에 꽂고 온갖 색깔의 비단을 몸에 둘렀으며, 깔깔거리고 웃으며 장난치고 갖가지 웃음을 짓고, 또다시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앞뒤를 가리켰다. 그 가는 길 사방에 온통 향내를 풍기고, 음악을 울리고 노래하면서 마침내 그 절에 들어가 한 빈 방에 자리를 잡고 대중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설법할 시간이 다가오자 무려 수천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때에 희디흰 머리털에 긴 눈썹이 눈을 덮은 법사가 모든 감관이 잘 조복된 두려움이 없는 마음으로 마치 사자왕(師子王)처럼 곧 높은 자리에 올라게를 설하였다.
내가 지혜 얕은 자들을 보니
그들이 이 자리에 오르지 못함은
겁약(怯弱)하기가 야간(野干)3) 같아서
스스로가 편치 못해 떨리기 때문이라.
나 이제 이 자리에 올라
대중들을 앞에 두고도 두려움이 없으므로
저 뭇 짐승들 가운데 왕과 같이
큰 소리로 외쳐 삿된 의론을 부수리.
그리고서 법사는 곧 대중들을 위하여 차례대로 법을 설하였다. 그때에 저 음녀가 대중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려고 문(門) 한가운데서 그 몸을 나타내는가 하면, 데리고 온 시종들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각각 음녀를 가리키면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여인은 자태가 단정하고 위엄이 있어서 사랑할 만하니, 그대들도 이 여인을 좀 보고 난 다음 설법을 들으시오.”
그때에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서 서로 돌아보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는데, 법사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다만 이상하게 여겨 대중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왜 보통 때와 달리 서로 돌아보면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가? 그대들은 죽음이 달려오는 것이 마치 달리는 말처럼 빠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어서 부지런히 모든 선행을 닦아야만 하네.”
곧 게를 설하였다.
10력(力)의 큰 법등(法燈)이
두루 온 세계를 비추어
지혜의 광명이 사라지기 전에
속히 선업(善業)을 닦아야 하고
굳은 뜻으로 선한 행을 모아
밤낮으로 게으르지 말아야 하리니.
일체 지혜의 말씀 등불이
오래지 않아 사라지게 되면
그 사라진 뒤에는
중생들은 모두 어둠 속을 헤맬 것이므로
비록 태양의 광명이 비친다 하여도
오히려 어둠을 깨뜨리지 못하리라.
그때에 모인 대중들이 이 게를 듣고 나서 법의 가르침을 공경히 받들어 정성껏 설법을 들었다. 그러자 저 음녀가 이 사람들이 마음을 바로잡고 조용히 설법을 듣는 것을 보고는 다시 온갖 교태를 부리니, 대중들이 이에 현혹되어 마음이 도로 산란해졌다. 그때에 법사가 다시 게를 설하였다.
저 음녀의 온갖 자태가
무리들의 애욕을 자라나게 해서
그 욕정에 이끌리어
정일한 마음을 빼앗으려 하지만
나의 가르침을 공경하는 이를 위해
끝까지 막아내어 그치게 하리라.
어쩌자고 저 요망한 계집이
뭇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킬까.
마치 푸른 연꽃 송이가
물결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대중들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렁일렁 잠시도 머물지 못하네.
그때에 사람들은 이 묘한 여색을 보았으므로, 이미 욕정에 현혹되어 부끄러운 마음도 잃어버리고 서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게를 설하여 말하였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용모
이제 볼수록 좋고도 좋아
마치 저 허공의 초승달이
이 지상에 떨어져 있는 듯
온 세간을 초월한 용모
맑은 눈은 미묘하기도 하여라.
혹시 제석천이 보낸
람바녀(藍婆女:나찰녀)는 아닐까.
공덕천이 놓쳐버린
꽃은 아닐는지.
또 어떤 사람이 게를 설하였다.
아, 이 여인은
용모가 매우 기이하고도 미묘하니
눈은 푸른 연꽃 같고
코는 반듯하고 눈썹은 그림 같으며
두 뺨은 원만한데다
붉은 입술에 가지런한 이며
보들보들 고운 살결
너무나 장엄하고도 빼어나
위엄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즐거워
찬란하기가 금산(金山) 같도다.
이때에 여러 우바새들이 그녀의 용모를 사랑하여 마음에 착란을 일으키니, 저 음녀와 좌우의 시종들은 이것을 보고 스스로가 매우 경사스럽고 다행스럽게 여겨 낄낄거리며 말하였다.
“우리들이 지금 꾸민 일이 매우 잘되어서 모인 대중들의 마음을 쏠리게 하였네.”
그때에 법사는 사부대중이 평상시보다 유달리 소란스러운 것을 이상하게 여겨 손으로 눈썹을 헤치고 두루 살펴 보았다. 모여 있던 무리들 가운데서 저 음녀를 보았는데 위의와 용모가 단정하였고, 그 시종들도 모두 장엄하였으며, 그들 가운데 있는 음녀는 자태가 마치 밝은 별과 같아서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바른 생각을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에 법사는 그 음녀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를 관(觀)하기 위해 곧 잠잠히 선정에 들어, 그녀가 삿된 유혹으로 설법을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법사는 비록 성냄[瞋心]을 끊기는 했으나 밖으로 화난 기색을 나타내어 큰 소리로 음녀를 꾸짖었다.
“개미둑[蟻封] 같은 네가 저 수미산과 높고 낮음을 견주려 하는구나. 너는 들어 보지 못하였느냐? 옛날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 저 여섯째 천왕이 자기의 힘을 요량하지 못하고 감히 부처님을 괴롭히려 하는 것을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그의 목에 죽은 시신을 매달아 주어 마침내 부끄러워 낯을 못 들고 하늘과 사람의 비웃음을 받았노라. 네가 이제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곧 부처님의 교법을 사라지게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이 정근하는 성문들을 다 없애 려고 하는 것인가. 또는 모든 훌륭한 장부들을 모두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인가? 네가 만약 그러하다면, 네 나름대로 굳게 견뎌 보아라.”
그리고 나서 법사가 곧 신통력으로 이 음녀를 변화시키니, 피부와 살이 떨어져 나가 흰 뼈만 남아 있고 오장육부를 다 밖으로 드러나게 하고는, 곧 대중들 앞에 나아가 저 음녀를 불러내어 말하였다.
“네가 조금 전에 나쁜 마음을 일으켜서 감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대로 경쟁하려 하였더냐?”
이때에 이 음녀는 뼈가 드러난 몸뚱이로 무리들 앞에 서 있었는데, 법사가 곧 게를 설하였다.
네가 아까 대중들에게 보여 준
그 묘한 얼굴 빛은 어디로 가고
이제 피부와 살이 다 떨어져 나가
덩그라니 해골만 남아 있느냐.
네가 먼저는 희디흰 것을 좋아하더니
이제 비로소 그 실상을 보게 되었구나.
이마 뼈는 마치 흰 옥과 같고
형색은 마치 연뿌리 같으며
눈자위는 움푹 파이고
양쪽 뺨은 깊은 도랑 같으며
모든 기관은 다 풀어져 버리고
근맥(筋脈)만 겨우 연결되어 있어서
안에 있던 모든 장부(臟腑)까지
다 밖으로 드러나 허공에 달려 있네.
네가 데려온 시종들조차
이것을 보고는 모두 싫어하거늘
하물며 나머지 대중들이
즐겁게 보려고 하겠느냐.
그때에 음녀는 법사의 신통력으로 해골[骨人]로 변하게 되자, 몸과 마음이 다 지치어 스스로 몸을 펼 수가 없어서 곧 뼈만 남은 손을 모은 채 법사에게 귀의하였다. 이때에 법사가 해골에게 말하였다.
“너의 얼굴 빛에다가 몸을 영락으로 장식하여 갖가지로 꾸민 것은 다만 범부들을 현혹시켜 그들로 하여금 3유(有)4)의 못에 깊이 빠지게 하려는 것이지만, 네가 만약 지금이라도 그러한 자태를 제거하고 장엄한 장신구들을 버린다면 나 또한 너에게 적정(寂淨)하고 신묘한 몸을 보여 부정(不淨)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겠다. 이 몸이란 얇은 살이 위에 덮여 있을 뿐 그 속엔 온갖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밖을 연지와 분으로 가장하여 어리석은 이의 눈을 현혹하니, 범부들이야 이에 탐혹하여 욕심에 눈이 멀어서 염착심(染着心)을 내겠지만 자기 몸을 잘 관찰하는 지혜로운 이라면 어찌 그 따위를 좋아하여 희롱하겠느냐?”
이때에 모임의 대중들이 이 일을 보고는 다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각각 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존의 말씀은 과연 신실(信實)하여 헛되지 않으니, 일체의 법이 눈속임 같고 허수아비 같고 물거품 덩어리 같고 금을 칠한 돈 같아서, 다만 사람을 속이고 미혹시킬 뿐이구나. 아까는 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과 모든 동작이 볼 만했는데, 이제 홀연히 뼈 덩어리만 보이다니.
그 단정한 용모에 여러 자태를 부리어 모양이 고도(蠱道)5) 같더니 이와 같은 일들이 이제 어디로 갔는가?”
어떤 한 우바새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이 여인을 자세히 보면서 게를 설하였다.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시길
중생은 애욕에 눈이 어두워
지혜의 눈이 없기 때문에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하셨으니
마치 임파(任婆) 나무의 잎에 맺힌 꿀을
탐낸 벌레가 빨아먹듯이
탐욕에 미혹된 중생도 그러하여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느니라.
모든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몸을 자세히 관찰하여
애욕의 느낌을 일으키지 않으니
마치 백학(白鶴)의 왕처럼
항상 맑은 못에 처해 있을 뿐
무덤 사이는 좋아하지 않는다네.
또 어떤 우바새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여인의 얼굴과 자태를 보고 애욕의 생각을 내었다 하더라도, 이 흰 뼈를 본다면 그 생각이 곧 사라질 것이다.”
게를 설하였다.
저 해골 덩어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일으키지만
이는 흡사 비타라(毘陁羅)의
주술로 된 망석중이 같은 것인데,
어리석은 이는 실재라 여겨
집착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네.
길에다 깊은 함정을 파 놓고
풀로 그 위를 덮어둔 것처럼
이 몸도 또한 그러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하여
실상을 자세히 알고 나면
그 누가 애욕의 생각을 일으키리요.
그때에 미혹되어 탐착했던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자는 이 게를 듣고 나서 머리를 숙이고 피하면서 끝내 달갑게 듣지 않았고, 저 여인도 자기의 몸을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5체투지(體投地)하여 게를 설하였다.
제가 일찍이 어리석고 무지하여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설법 듣는 대중을 돌이켜서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으나
이제 비로소 석자(釋子)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세력이
저의 묘한 자태를 변화시켜
보는 이마다 싫어하게 만들었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어리석은 어린아이처럼
하는 일이 너무나 경솔하여
감히 소 발자국 만한 물을 갖고서
큰 바다와 견주려 하였으니
원컨대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정성 어린 참회를 들어주십시오.
그때에 대중들은 저 여인의 뼈가 마치 갈대집[葦舍]처럼 서로 엉켜 있는 것을 보고서 매우 놀라고 이상하게 여긴 나머지 ‘저 뼈 덩어리 속에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또한 5장(臟)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 마치 도살장 시렁에 달린 것 같고, 그것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마치 개고기 같으며, 거기에서 뒷간처럼 더러운 냄새가 풍기는 것을 보고는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보게 되었나’라고 생각하면서, 곧 게를 설하였다.
이제 여인의 몸을 관찰해 보면
힘줄로만 마른 뼈들이 이어져 있는데
빈 뼈 덩어리가 화합된 그 속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 오니
여인 속에 뼈가 있는 것인가,
뼈 속에 여인이 있는 것인가.
마치 넓은 늪 한가운데
우거진 갈대숲이
바람 때문에 서로 부딪쳐
큰 소리를 내는 것 같구나.
이러한 가법(假法) 때문에
여인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만약 여인의 자체가 없다고 한다면
여인의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모든 법을 두루 다 찾아보아도
옛날부터 있지 않았다네.
내가 신상(身相)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고 가고 나아가고 멈추고
굽히고 펴고 굽어 보고 올려다보고
돌아보고 옆을 보고 말을 할 때에
마디마디가 서로 버티어 받쳐 주며
갈비뼈는 매우 얼기설기한데
힘줄로 연결되어 기관을 이루어
그것을 빌려 움직이고 굴러가는구나.
이와 같은 하나하나 가운데
도무지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으니
이상하도다. 이제 이 법이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우리가 미치고 어리석으며 미혹되어
보는 눈이 산란해서 그러한가.
어찌 이런 뼈나 힘줄 가운데서
망령되이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일까.
갈대를 묶어 인형을 만들어서
많은 실[線縷]들로 연결한 것 같기도 하고
진금(眞金)을 녹여 물을 부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네.
그때에 법사가 여러 사부대중이 모두 싫증 내고 미워하는 것을 알고는 음녀에게 타일러 말하였다.
“너는 이제 무엇이 하고 싶으냐?”
음녀가 법사에게 고백하였다.
“원컨대 사불(舍不:呪)을 거두어 주십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대두선(大頭仙)이 사불로
천녀 람바(藍婆)를 변화시켜
꼬박 12년 동안
초마(草馬)로 만들어 두더니
법사께선 이제 사불을 써서
저를 해골로 만드셨군요.
세간에선 이와 같은 사불을
일찍이 보지 못하였으니
훌륭하고 자재하신 대덕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제거하여 주소서.
그때에 법사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게를 설하였다.
선여인이여, 일어나거라.
나는 본래 진에심(瞋恚心)이 없으며
머리 깎고 가사를 입었으니
끝내 사불의 법도 없노라.
애욕의 집착이 있으면
그로부터 고뇌가 생겨나고,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되어
진심(瞋心)을 일으키며
진심으로 사불을 짓게 되니
나는 진심의 번뇌를 끊어
무명을 다 제거하였으므로
본래의 성품 그대로라 번뇌가 없는데
중생을 건지고자 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사불을 일으킬 것이며
생로병사 등으로 인하여
고뇌에 허덕이는 중생들인데
어찌 지혜로운 이로서
부질없이 사불을 일으키리요.
마치 지독한 종기 위에다
뜨거운 재를 얹어 놓은 것처럼
얇은 피부가 기관을 덮은 것일 뿐인데,
어리석은 범부는 애욕으로 미혹되니
내 이제 신족(神足)의 힘으로
너의 깨끗하지 못한 궤짝을 열어 보인 것이니라.
이 게를 설하고 나서 신족을 거두어들이니, 여인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때에 법사가 모여 있던 무리들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그대들은 착한 업을 부지런히 닦아야만 하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뒤집힌 애욕의 행위는
바람 따라 일어나는 먼지와 같으니
애욕을 여읜 모습을 바로 보려면
그 먼지를 씻어내야 하리라.
애욕이 있거나 애욕을 여의거나
처한 곳이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은 만큼
탐혹(貪惑)에서 애욕이 늘어나는 것임을
잘 관찰해서 해탈을 얻어야 하네.
그러므로 항상 전일한 마음을 닦아
애욕의 생각을 벗어나야 하되
그것을 벗어나는 첫 번째 방편은
적정(寂靜)한 모든 선정을 얻는 것이니
이때에 설법을 듣는 대중들 중에
혹 부정관(不淨觀)을 얻은 이는
수다원(須陀洹)을 얻었고
닦아서 애욕을 여읜 이는
아나함(阿那含)을 얻었으며
출가한 이는
부지런히 수행하여 게으르지 않아서
마침내 아라한을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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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못내 애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일체를 보시할 수 있고 큰 이름을 얻어서 현재세에 바로 그 과보를 얻나니, 그러므로 아끼거나 애착하는 마음이 없이 보시해야 마땅하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불갈나위국(弗羯羅衛國)에 한 화사(畵師)가 있었는데 이름이 갈나(羯那)였다. 그가 무슨 인연이 있어서 석실국(石室國)에 갔는데, 그곳에 가서는 여러 탑사(塔寺)에 나아가서 한 정사(精舍)를 그려 주고 서른 냥을 받아 본국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여러 사람들이 반차회(般遮會)를 베푸는 것을 보았는데, 신심과 공경심이 나서 그 일을 맡은 비구에게 물었다.
“내일은 누가 이 모임에 음식을 베풀 것입니까?”
비구가 대답했다.
“아직 정해진 사람이 없습니다.”
화사가 다시 물었다.
“저 비구들의 하루치 음식을 준비하려면 얼마 만큼의 물자가 필요합니까?”
비구가 대답했다.
“서른 냥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화사는 곧 그림 값으로 받은 서른 냥을 그 일을 맡은 비구에게 주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지금 밖에서 무엇을 얻어 오셨습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서른 냥을 얻기는 했으나 그것을 모두 복된 모임에 보시하였소.”
아내는 이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여러 친척들에게 ‘얻어 온 돈을 모두 모임에 보시하여 집안 살림을 꾸려 가기 위해 쓸 것은 조금도 남겨 두지 않았다’라고 남편의 잘못을 말하여 퍼뜨렸다.
그때에 여러 친척들이 곧 그를 데리고 재판소[斷事處]로 가서 이 일을 고발하였다.
“전재(錢財)를 되찾을 수 없을까요? 노력의 댓가로 얻어진 돈을 가업을 영위하거나 친척을 위해 쓰지 않고 몽땅 복된 모임을 위해 보시하고 말았답니다.”
재판관이 이 사실을 듣고 나서 화사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하였는가?”
화사가 대답하였다.
“사실입니다.”
그때에 재판관은 이 일을 듣고 나서 아주 드문 일이라 생각하여 곧 그를 칭찬하였다.
“훌륭하도다, 대장부여.”
자기의 의복과 영락ㆍ타던 말을 모두 그에게 내려 주고서 게를 설하였다.
오랫동안 가난과 괴로움에 처해 있으면서
노력의 댓가로 얻은 돈과 재물을
생계를 유지하는데 쓰지 않고
모두 보시하기는 매우 어려우니
비록 재물이 풍부하여
넉넉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할지라도
그 몸을 잘 관찰하지 못한다면
속히 보시할 수 없거늘.
멀리 후세의 몸까지 관찰하여
보시의 과보가 있음을 알고
용감하게 재물을 버려서
간탐의 때를 벗었으니
법을 행한 이 사람이야말로
길이 보시의 공덕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때에 저 화사가 이 게를 듣고는 기뻐 뛰면서 그 주는 옷을 입고, 말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옷을 잘 차려입고 말을 탄 채 문 앞까지 온 이 귀인이 누구인가’라고 말하며, 두렵게 느껴서 문을 닫고 피하였다.
화사가 말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의 남편이오.”
그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본래 빈궁한 사람인데, 어디에서 이 좋은 옷과 말을 얻었단 말입니까?”
그때에 그 남편이 게를 지어 대답하였다.
선여인이여, 이제 잘 들어 보오.
내가 사실대로 말해 주리다.
지금 비록 스님들께 보시하였지만
아직 음식을 지어 먹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씨앗을 미처 뿌리기도 전에
싹과 줄기가 벌써 자라난 것과 같나니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복밭이기에
그 과보가 뒷날 있으리라.
이 스님들의 청정한 복밭에
그 누가 씨앗을 뿌리지 않으랴.
씨앗을 뿌리려는 생각만 하여도
모든 사람들이 그 싹트는 것을 보게 되리니.
이때에 그 부인이 듣고는 청정한 신심을 얻어서 곧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스님들께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으니
이제 당신이 보시한 곳은
참으로 마땅한 보시처입니다.
정성껏 보시한 한 방울의 물로
큰 바다보다 더한 과보를 받게 되니
일체의 모든 복밭들 중에
부처님과 스님들이 가장 으뜸이라.
마음을 열어 보시하려고만 하면
꽃은 이미 눈 앞에 피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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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무릇 보시를 닦는다는 것은 그 뛰어난 신심에 달려 있으므로, 비록 단돈 두 닢일지라도 정성껏 보시한다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여인이 주암산(晝闇山)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저 산중에서 반차회(般遮會)를 베푸는 것을 보았다. 마침 그 여인은 모임에서 걸식하던 터라, 여러 스님들을 보고는 환희심이 나서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성스러운 스님들은 마치 큰 바다 속에 숨어 있는 보물창고 같아서 뭇 사람들이 다 공양하는데 나만 홀로 빈궁하여 보시할 물건이
아무것도 없구나.”
이렇게 말하고 나서 온몸을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먼젓번에 분뇨더미 속에서 동전 두 닢을 얻은 것이 생각 나, 곧 이 돈을 가지고 뭇 스님들께 받들어 보시하였다.
이때에 아라한과를 얻은 어떤 상좌(上座) 스님은 사람의 마음을 미리 알아 항상 스스로 진중(珍重)하였는데, 그 여인에게 깊은 신심이 있음을 알아보고는 그 공덕을 증장시켜 주기 위해서 유나(維那)6)를 기다리지 않고 몸소 일어나 주원(呪願)하며, 곧 오른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덕 높으신 스님들, 잘 들으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온 땅과 온 바다에 있는
모든 값진 보물일지라도
이 동녀(童女)라면
모두 스님들께 보시하리니.
마음 속으로 잘 관찰하시오.
도를 행하여 복을 닦으려 하는 이라면
해탈의 길을 얻게 해서
빈궁의 쓰라림을 벗어나게 해야 하네.
이때에 저 동녀는 아주 큰 마음을 내어서 ‘상좌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다 하리라’ 하고는, 마치 일체의 재산과 값진 보물을 다 희사한 것이나 다름없이 슬픔과 기쁨을 모두 모아 5체투지(體投地)하여 모든 스님들께 귀명(歸命)한 다음, 이 두 닢을 상좌 스님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게를 설하여 말하였다.
바라건대 제가 이 나고 죽는 가운데서
영원히 빈궁함을 벗어나
항상 기쁘고도 경사로우며
친척들과도 이별함이 없게 하소서.
제가 지금 스님들께 보시한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분별해 주시리니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빨리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보잘것없는 선근을 심는 것이지만
신근(身根)을 속히 벗어나길 바라네.
이때에 여인이 그 산에서 나와 한 나무 아래 앉아 있었는데, 나무 그늘이 옮겨가지 않았고 위에는 구름이 덮고 있었다. 마침 그 나라의 국왕이 부인을 잃은 뒤 궁성을 나와 유람하다가 구름이 덮여 있는 곳을 보고는 나무 아래에 이르렀다. 그곳에 있던 이 동녀를 보고서 염착심(染着心)이 생겨나 데리고 궁으로 돌아와 제 부인으로 삼으니, 여인이 곧 생각하기를 ‘내가 먼젓번에 발원한 것이 벌써 마음대로 되었구나’ 하고는,
국왕에게 고하였다.
“많은 보물들과 보시할 공양구를 가지고 주암산에 가서 여러 스님들을 공양하겠습니다.”
보배 구슬과 영락 등 갖가지 재물을 가지고 가서 받들어 보시하였으나, 그때에 상좌는 그녀를 위하여 주원(呪願)해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중들이 그 이유를 이상히 여겨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빈궁하여 두 닢을 보시하였을 때에는 몸소 일어나 주원을 해 주시더니, 이제 왕의 부인이 되어 진귀한 보물과 영락 등 갖가지 재물로 보시하는데도 주원해 주시지 않으십니까?”
이때에 그 상좌가 뭇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난번에 그녀를 위해 주원한 것은 재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녀의 마음이 착란(錯亂)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네.”
곧 게를 설하였다.
돈이나 재물이 많다고 해서
큰 과보를 얻는 것이 아니니
뛰어난 선심(善心)만 있다면
곧 큰 과보를 얻을 수 있네.
저 여인이 지난번에 보시할 때에
일체를 모두 희사한 것은
부처님 지혜만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이라,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네.
이제 아무리 재보가 많아도
그 때의 마음과는 같지 않으니
16분의 1이라도
혼탁한 마음으로 보시한다면,
마치 저 장사꾼들이
조그마한 물건을 보시해 두고서
마음으로 큰 과보를 바라는 것과 같네.
보시하는 물건이 비록 적더라도
마음이 수승하고 광대하다면
그 마음 때문에 미래세에는
무량한 과보를 받을 것이니
저 아수가왕(阿輸迦王)이
청정한 마음으로 흙을 보시함과 같고
또한 사위성(舍衛城)의
가난하고 천한 계급의 여인이
쌀뜨물을 가섭에게 보시함과도 같아서
흙을 보시하여 국토를 얻었고
쌀뜨물을 보시하여 천상의 쾌락을 받았네.
이같이 마음만 청정하고 광대하다면
적은 보시로도 큰 과보를 받으니
마치 희고 깨끗한 옷 위에다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온 옷에 기름기가 번지는 것과 같고
또 물에 떨어진 기름 방울처럼
기름 한 방울은 미미하지만
온 연못 물 위에 퍼지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수승하기 때문에 큰 과보를 받는
이 이치를 마땅히 알아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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