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5권
대장엄론경 제5권
마명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23
다음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지혜 있는 착한 벗을 가까이하면 그 몸과 마음이 안팎으로 모두 깨끗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참되고 선한 대장부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비구가 차례대로 걸식하다가 큰 바라문의 집 앞에 이르렀는데, 도착하자마자 때마침 저 바라문의 집 기둥이 넘어져 물동이를 때려 부수고, 암소가 가슴걸이를 끊은 채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 때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다.
“이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일까? 불길한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서 이런 변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 말을 듣고 비구가 곧 답하여 말했다.
“그대는 생각해 보시오. 그대 집안의 어린아이들이 혹시 속병을 앓아 파리하거나, 배가 부풀어 오르거나, 얼굴에 종기가 돋았던 적은 없습니까?”
바라문이 말하였다.
“내가 저 번에 그런 일을 보았소.”
비구가 다시 말하였다.
“그대의 집 안에 야차귀(夜叉鬼)가 있어서 집을 의지해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기 때문에 집안의 어린아이들이 그런 질병을 앓았던 것이오. 그러다 이제 이 야차들이 나를 보고 두려워 도망가다가 그대의 집 기둥을 넘어뜨려 물동이를 부수고 암소가 가슴걸이를 끊은 채 달아난 것이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당신에게 무슨 힘이 있기에 그러합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내가 여래의 법교(法敎)를 친근히 하여 그 위력이 있기 때문에 야차가 나를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바라문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을 여래의 법교라 합니까?”
이에 비구가 차례대로 부처님의 법교를 설해 주니 바라문 부부가 듣고는 마음과 생각을 깨치어 함께 수다원(須陁洹)의 과위를 얻었다.
이때에 바라문이 곧 게를 설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상덕(上德)이시여,
진실한 법을 잘 설하시어
귀로 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마음의 집까지 들어왔습니다.
나의 집을 무사하고 편안하게 하여
나를 옹호해 주시니
바라건대 이제부터
나의 말 좀 들어주십시오.
나의 이 마음 집의
어리석음의 기둥을 꺾어버리시어
공덕을 빨아먹는 야차들을
밖으로 다 몰아내소서.
모든 삿된 견해의 나찰과
항아리 같은 미혹의 도적에
신견(身見)의 물이 가득찬 것을
이제 다 깨뜨려 버리시며
어리석음의 젖소가 달아나니
무명의 가슴걸이를 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몸에
모여 있던 모든 일이
거울에 비친 물질[色]처럼
그림자로 다 나타나니
시작도 없는 생사 중에
이러한 일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며
나 이제 그대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성제(四聖諦)를 보게 되니
지금 선지식을 만난 것은
인연이 모여 그렇게 된 만큼
내 마음에 탐심을 제거하고
집 안의 귀신을 몰아내었네.
세간에 오래도록 전해져 온
네 위타(圍陀) 경전의 하신 말씀에
마땅히 큰 제사를 지내야 하리니
장엄할 갖가지 물건들을
젯상 위에 갖추어 두고
항하 같은 큰 물에 목욕하여
허물을 깨끗이 씻어버리면
빨리 천상에 태어난다 하였네.
나 옛날부터 수행하였으나
그 과보를 아직 얻지 못하였고
정말로 얻을 것인지 못 얻을 것인지를
아직 분명히 알 수 없으므로
제사 지내고 목욕하는 것이
선지식을 가까이함만 못하다 생각했는데
나 이제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이미 그 과위를 증득하였으므로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해탈 열반의 길로 나아가네.
영원히 두려움을 벗어나는 곳이란
재물과 보배로 구할 수 있거나
왕의 힘을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니
설령 바위에 떨어지고 불에 뛰어들며
몹시 추운 겨울날에
얼음에 몸을 기대거나
불꽃처럼 뜨거운 여름에
오열(五熱)로 몸을 지지며
가시 나무로 엮어 만든 자리에
누워 잠자면서 온갖 쓰라림을 겪고
높은 산과 큰 바다를 넘어다니면서
불로 제사 지내고 주문을 외우는 등
이와 같은 고행을 모두 할지라도
열반만은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오직 선정의 지혜를 힘써 닦고
계율ㆍ다문ㆍ보시에 정진해야 하리니
이러한 법다운 일들을
어느 곳에서 얻을 수 있을까.
반드시 선지식을 친근히 한 뒤에라야
그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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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누구라도 나쁜 일을 저지르면 지옥에 떨어지기 마련이나, 선지식을 만나면 능히 그 죄를 소멸하고 인간과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바가리(婆迦利)란 사람이 중천축국(中天竺國)에 갔는데, 그 나라 국왕이 곧 그를 채용하여 한 고을[聚落]의 책임자[主]로 삼았다. 그때에 마을에 살던 많은 바라문들이 그와 친하고자 해서 라마연서(羅摩延書)를 설해 주기도 하고 혹은 바라타서(婆羅他書)를 설해 주었는데, ‘싸움터에서 죽은 자는 마침내 천상에 태어난다’든가, ‘불에 뛰어들어 죽은 자도 천상에 태어난다’, ‘천상에 가서 갖가지 쾌락을 누릴 수 있다’는 등의 교묘한 말을 되풀이하여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꼭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머지 곧 불구덩이를 파서 향나무 섶을 쌓아두고 바라문들을 초청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자 그가 불구덩이에 뛰어들려고 하였는데, 때마침 그와 알고 지내던 한 석종(釋種) 비구가 그곳에 와서 갖가지로 그 집을 장엄해 놓은 것을 보고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바가리가 말하였다.
“하늘에 태어나려고 합니다.”
비구가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가려고 하는가?”
바가리가 대답했다.
“내가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곧 천상에 태어나려 합니다.”
비구가 물었다.
“그대는 하늘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가?”
바가리가 대답했다.
“모릅니다.”
비구가 물었다.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간다는 말인가? 그대가 이제 길을 다닐 때도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려면 반드시 길잡이를 앞세워야 길을 알 수 있거늘, 하물며 저 천상의 길이란 길고도 멀어 도리천까지 가는데도 3백36만 리나 되는데, 인도해 주는 사람도 없이 어떻게 저 하늘까지 간다는 것인가? 만약 천상이 즐거운 곳이라면 저 상좌 바라문은 나이 이미 늙고 재물도 없을 뿐더러 그 부인 역시 늙어서 얼굴이
추악하거늘 무엇이 아까워서 함께 천상으로 가지 않는단 말인가?”
이때에 바가리가 이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천상에 태어난다면 저 바라문도 마땅히 나와 함께 가야 하리라. 왜냐 하면 저 바라문은 빈궁하고 곤고(困苦)해서 아무런 애착과 미련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괴로운 세간을 버리고 저 천상의 즐거운 곳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만약 그가 함께 가지 않는다면 이는 한갓 나를 속여서 죽이고자 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는 곧 상좌 바라문 앞으로 나아가 그의 손을 잡고서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천상에 가기를 요청하였다.
이때에 바라문은 함께 가기 싫어서 거절하고야 말았으니, 왜냐 하면 바라문들은 다만 돈과 재물을 위해 그 모임에 왔기 때문이었다.
이때에 바가리가 저 바라문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곧 게를 설하였다.
들은 그대로 천상 세계의
온갖 오락거리가 헤아릴 수 없다 해서
닿는 물질마다 탐착한다면
동쪽을 보면서 서쪽을 잊는 격이며
이 세간의 온갖 오락거리를
만약 천상과 비교한다면
마치 조그마한 겨자씨로
태산에 견주는 것과 같으리니
누구나 욕심을 적게 해야만
물질에 대한 탐착이 없어지거늘
내가 이제 그대를 관찰해 보건대
탐욕이 불꽃보다 더 치성하구나.
만약에 젊은 여자를 데려다가
늙은 아내를 보살피기 위해
이 모임에 온 것이 아니라면
자기 집 살림 비용을 대려고
돈과 재물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며
만약 그 자식을 사랑하여
천상에 가기 싫어한 것이라면
천상에 태어나고자 할 힘을 헤아려 볼 때
그대의 자식에 대한 애호가 더한 것이며
천상에 가는 길을 모른다면
어찌 나더러는 가라 하며
길을 알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함께 가기를 거절하고
어째서 남 시키기를 좋아하여
나를 불에 뛰어들게 하는가.
혹시 나의 재물을 탐낸 나머지
나눠 가지려고 계획한 일이라면
어찌 그리도 자비심이 없으며
이처럼 모질고 가혹한 것일까.
혹시 전생의 원한이 남아 있어
반드시 크게 속이려고 한 것일까.
생사를 함께할 반당(伴黨)이라면
나에게 천상에 태어날 것을 권유했을까.
아마도 나 홀로 죽어가게끔
불에 뛰어들기를 굳이 권한 것이리.
사람들에게 자기 집을 멀리하고
고행법(苦行法)을 닦게 하되
물에 뛰어들고 불을 뛰어넘으며
자기는 굶어서 단식(斷食)함을 보이니
그 가르침의 뜻을 살펴보건대
나의 가문을 단절시키려고
이 여러 바라문들이
살해하는 일만을 좋아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버리고
불법에 들어가 귀의하겠으니
부처님 법교이야말로 대자대비하사
끝내 중생[物]들을 상해하지 않으시네.
큰 불이 산과 들을 사를 때
사슴들도 모두 피해 달아나는 것은
그 목숨을 사랑하여
서늘한 곳을 찾아 구하기 때문이니,
이제 나도 또한 저 사슴들같이
성심으로 귀의하여 구호를 받으리라.
그때에 비구는 바가리의 마음이 이미 여러 바라문들을 싫어하고, 삼보에 대해 깊은 신심과 존경심을 낸 것을 보고는 칭찬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지혜로운 생명이여. 그대가 이제 비로소 천상으로 가는 길을 알았구나.”
곧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천상의 길을 말씀하시고
해탈의 길도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은 결정된 진리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릇됨이 없도다.
일체지(一切智)께서 말씀하신 길은
넓거나 간략한 차별된 상(相)이며
해침이 없는 진실한 말씀들로
모든 감관을 조복하나니
이 길과 천상 길은
고(苦)를 행하는 것이 아니어서
물에 빠지고 불로 뛰어드는 따위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죽음의 연(緣)은 될지언정
천상과 해탈의 인(因)은 아니네.
옛날 사람들은 장수를 누렸고
여러 선인들의 수명 또한 길어서
이 몸을 싫증 냈기 때문에
오래도록 세간에 머물고 싶지 않으면
먼저 모든 선정(禪定)을 닦아
욕계의 번뇌를 끊어서
이 몸을 버리면
반드시 범천(梵天)에 태어날 것을 스스로 알았으나
목숨을 버릴 길이 없어서
물에 빠지고 불에 뛰어들어
이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범천 가운데 태어날 수 있었네.
선정으로 번뇌를 끊었기 때문에
범천에 날 수 있었던 것이지,
바위에 떨어지거나 불에 뛰어들어
그것 때문에 천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었는데
저 동반(同伴)한 선인들은
이 사람 죽은 뒤에 어디에 태어났는지를
천안으로 관찰하여
범천 가운데 태어났음을 보고는,
먼저 물에 빠져 죽었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난 것이라 여기며
다른 이들은 어리석어 이것을 보지도 못하고
물에 빠지거나 불로 뛰어들어
범천에 태어날 수 있다고 여겨서
그 때문에 뒤바뀐 소견을 내네.
저 여러 바라문들은
어리석어 지혜가 없는 탓으로
부지런히 선정을 닦아
모든 번뇌를 없앤 것은 보지 못하고
다만 물에 빠지고 불로 뛰어든 것만 보고는
그것이 천상에 태어나는 길이라 여기니
이 뒤바뀜과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경론을 지어냈기에
어리석은 이들은 모두 믿어 지녀서
물에 빠지고 불로 뛰어들지만
지혜로운 이는 잘 관찰해서
던져버리고 하지 않을 뿐더러
모든 선법(善法)을 힘써 닦아
그것으로 천상에 가는 인(因)을 삼네.
물에 빠지거나 불에 뛰어드는 것이
선행을 닦는 일이 아닌 만큼
죽음을 벗어나는 연(緣)은 될지언정
천상에 태어나는 인(因)은 아니니
몸과 마음으로 불법에 귀의하는 것만이
적멸에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고
저 외도들의 하는 짓이란
과(果) 없이 한갓 고(苦)를 받을 뿐이니
제아무리 물을 짜서 제호(醍醐)를 구하여도
노력만 허비할 뿐 끝내 얻기 어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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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보시를 닦는 자는 여덟 가지 위난[八危]을 벗어날 수 있으나 재보(財寶)를 쌓기만 하는 자는 위난이 매우 많으리니, 지혜로운 이의 보시 닦는 그것이 가장 견고한 재산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한 나라의 왕이 장사꾼에게 벌를 주려고 불러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가진 모든 재산의 목록을 다 나에게 보이거라.”
장사꾼은 이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예전에 남에게 보시한 일들을 낱낱이 다 기억해 내되 저 구걸하는 이들에게 한 끼 밥을 준 것과, 내지 날짐승 길짐승들에게 먹이로 준 곡식이나 풀까지 죄다 기록하여 왕에게 보였다.
왕이 보고 나서 물었다.
“이따위 일들을 무엇하러 기록해 왔느냐?”
장사꾼이 대답하였다.
“왕께서 지난번에 분부하시기를 ‘모든 재산의 목록을 다 보여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가진 재산이라곤 이 책자에 기록된 것이 전부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오가(五家)들의 공동 소유는
지금 모두 집안에 있을 것이지만
이제 이 책자에 기록된 나의 재산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으니
국왕이나 도적, 물이나 불일지라도
여기에 기록된 것만은
다 빼앗을 수 없으리.
설령 일곱 해가 한꺼번에 나와
수미산과 큰 바다를
모두 다 녹여버리더라도
이 보시한 물건만은
한 터럭만큼도 태울 수 없으리라.
부모나 형제 자매
그 밖의 친한 벗들에게
재물을 맡겨 두더라도
모두 실패하여 잃어버리지만
오직 보시한 물건만은
끝내 실패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으니
보시로 남겨 둔 보배만이
대대로 항상 사람을 따르고
보시로서 남겨 둔 친한 벗만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네.
빈궁의 거대한 바다가
아무리 크고 넓어서 겁이 나도
보시가 튼튼한 배이므로
보시한 이만은
저 언덕에 오를 수 있으리.
나는 보시의 과보가 이러함을 알기에
이 책자에 기록된 것만이
저의 재산이라 말씀드리오며
집안에 있는 재보는
오가(五家)의 공동 소유이므로
책자에 기록하지도 않았고
감히 제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서 칭찬하여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네가 바로 복이 뛰어난 사람이로구나. 나는 이제부터 네가 가진 물건을 쓰지 않겠노라. 과연 네 말처럼 보시가 너의 재산이고 다른 재물은 모두 공동의 것이리라.”
국왕이 곧 게를 설하였다.
만약 보시를 행하는 이가
손수 지나치게 주었더라도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응당 환희심을 내야 하리니
왜냐 하면 미래세에 가서
인간과 천상의 쾌락을 얻기 때문이네.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을
자기의 것으로 보지만
결국은 흩어져 여러 사람에게 갈 것인데
어찌 빨리 보시하지 않고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인색하여 보시하지 않으면
끝내 남에게 빼앗길 뿐더러
현재세에 나쁜 명칭을 듣게 되고
미래세에는 매우 빈궁하리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다른 이의 가옥과 재보를 보아라.
그 아무리 호화롭고 많았더라도
죽은 뒤엔 다 남의 것이 되고
털끝만큼도 자기를 따라오지 않으니
눈으로 이런 일을 보고서도
어찌 싫증을 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재물을 빨리 희사하면
오가(五家)의 공동 소유가 되지 않으니
오직 보시를 닦은 것만이 남고
죽을 때엔 일체를 다 버려서
어느 것 하나도 자기를 따르는 것 없는데,
결정코 반드시 버리고 여의지만
그렇다고 과보가 있는 것도 아니네.
이러한 일을 보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보시하나니
죽어서 버리는 것도 보시라 하겠지만
응당 스스로 보시해 주어야만 하리라.
단월(檀越)1)은 큰 코끼리와 같아서
항상 향내와 기름기가 흐르니
이처럼 지혜로운 단월도
보시의 공덕과 이익이 충만하기에
세간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이며
재보가 넉넉해도 인색하여 보시하지 않으면
세간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며
재물과 돈이 있는데도
걸인을 보고 등돌리고 간다면
비록 재보는 풍부할지언정
마음이 가난한 자라 부를 것이니
보시하는 이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항상 부자라고 부르며
간탐(慳貪)한 자는 비록 재물이 많아도
마음의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네.
단월은 물을 보시하여
탐심의 때를 씻어버리니
인색하면 좋은 과보가 없을 뿐더러
죽음의 지름길로 나아가
반드시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리라.
갖가지 많은 보물은 물론
코끼리ㆍ말ㆍ소ㆍ양까지도
정신이 가고 기운이 끊어질 때엔
일체를 다 버리고 가야 하는데
죽음에 다다라 고뇌가 생겨나고
권속에 대한 애착 때문에
두려움의 큰 열뇌(熱惱)에 허덕이지만
보시를 닦은 이가 임종할 때엔
아무런 회한이 없이 기쁘고 즐거워하네.
간탐과 질투는 지혜로운 이가 꾸짖는 바니
보시하는 이는 가난하건 부자건 간에
항상 쾌락을 받으나
인색한 이는 무덤 속의 송장처럼
보는 사람마다 피해 달아나고
간탐하는 사람은 비록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 실상은 아귀와 다름없으며
보시하는 이는 이름을 남겨서
일체가 모두 흠앙하고
지혜로운 이의 사랑을 받으며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에 태어나니
진실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왜 보시를 닦지 않겠는가.
보시야말로 좋은 벗이고
수승하고 미묘한 자량(資粮)이지만
수레나 말 또는 시종과 호위 등
일체의 모든 것이 필요하지 않으며
보시는 언제나 따라다니는 보물 창고라서
후세로 가는 나루와 다리가 되어
온갖 환란을 다 벗어날 수 있으므로
오가(五家)도 침탈하지 못하거늘
자기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보시를 닦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천만금을 보시하고서
조그마한 과보를 받는다 해도
힘써 보시를 닦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조그마한 보시를 닦고서
큰 복의 과보를 받는 것이니
지혜로운 이라면
마땅히 보시를 닦을 것이네.
26
다음으로 만약에 바른 말을 듣는다면 얽매임을 풀어버릴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덕차시라국(德叉尸羅國)에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이 승방(僧坊)에 갇혀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대중 스님들이 법을 설하니 그 갇혀 있던 이가 스님들 가운데로 와서 돌아가며 법을 들었다. 한 비구가 생사와
역순(逆順)에 대한 경전의 말씀을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길 ‘법을 듣지 못한 어리석은 범부들은 색(色)2)을 알지 못한다. 색을 알지 못하므로 색의 습기[習氣]3)를 알지 못하고, 색의 맛[味]을 알지 못하며, 색의 허물과 근심을 알지 못하고, 색에서 벗어남[出要]을 알지 못하며, 색의 싫증 남을 알지 못한다. 일체 중생이 이와 같은 허물과 근심을 여실히 알지 못하니, 만약 색에 얽매인다면 이것은 정말로 얽매인 것[眞縛]이다. 무엇을 색에 얽매였다고 하는가? 색을 단정하다고 보는 그것이 바로 색에 얽매인 것이니, 색에 얽매인 자는 속속들이 얽매임을 당하게 된다. 이 색이라는 것은 생사 가운데 있으나 그 근본을 알지 못하므로 생사의 큰 바다에서 제도할 곳이 없고, 생사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지 못해 그 가운데서 모든 얽매임을 당하니, 이 얽매임이 후세의 몸에까지 미치게 된다’고 하셨느니라.”
때에 저 갇혀 있던 죄인이 이 법을 설함을 듣고는 그 뜻을 생각하고 기억해 잊지 않으며 읽고 외워서 통달하였다.
이때에 왕이 사람을 보내 그 묶여 있던 몸을 풀어주니, 친지와 권속들이 풀려남을 기뻐해 모두들 달려와서 문안하였다. 그러자 묶여 있던 이가 곧 게를 설하였다.
그대들은 내 몸이 풀려난 걸 보고
위문하며 기뻐하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언제나 얽매여서 풀려날 때가 없다네.
색(色)에 얽매인 범부에게는
오음(五陰)4)이 다 속박이고
살아서 물질에 얽매인 것이
죽어서도 또한 그러하니
이 몸 후세에 가서도
얽매임을 벗어나지 못해
그 속을 윤회하면서
자주자주 생사를 받는 것이네.
나 이제 저 법사로부터
일체종지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으니
모든 번뇌가 내 마음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
마치 멍에에 묶인 소와 같아라.
이러한 얽매임 속에서
나 아직 벗어나지 못하였거늘
어째서 그대들은 나를 보고
풀려났다 말하는가.
그대들이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면
마땅히 국왕께 말씀드리어
나로 하여금 바른 소견 얻어서
적멸(寂滅)의 언덕에 이를 수 있도록
출가하게 해다오.
만약 이와 같은 일을 얻는다면
그 때야 비로소 벗어났다 할 수 있으니
출가한 몸이 되기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얽매임을 여의고
진실한 해탈을 얻은 것이네.
그때에 권속들이 이 말을 듣고 나서 사실 그대로 왕에게 고하여 곧 출가하게 되었고, 출가한 뒤에는 부지런히 도를 닦아 아라한과를 얻었다. 저 죄인도 승방에 갇혀 있는 동안 우연히 설법을 들었기 때문에 해탈할 수 있었거늘, 하물며 일부러 설법을 듣는 사람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탑사(塔寺)에 가서 마땅히 법을 들어야 한다.
27
다음으로 병이 위독할 때는 가르침을 제대로 행할 수 없으니,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빨리 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법을 좋아하던 아육왕(阿育王)이 중병에 걸리자 가지고 있던 모든 재물을 다 스님들께 보시하고, 여러 신하들에게도 갖가지 보물을 찾아내게 하였으나 신하들은 더이상 보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왕이 암마륵(菴摩勒)5) 과일 반쪽을 얻어 그것이나마 스님들께 받들기 위해 곧 신하들을 불러 모아 물었다.
“이제 누가 국왕을 위해 국왕의 명령을 그대로 시행하겠는가?”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의 위덕(威德)으로 통치되는 염부제(閻浮提)6)에서는 명령이 시행될 것입니다.”
왕이 게를 설하였다.
너희들이 나를 왕이라고 하면서
명령이 시행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나의 뜻에 순종하여
짐짓 이렇게 말하는 것이니
너희들의 이런 말은
모두 다 망령된 말일 뿐인지라.
나의 언교(言敎)는 이미 무너져
일체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 암마륵 과일 반쪽만은
내 마음대로 하겠네.
부귀는 평범하고 천한 것이라,
쯧쯧, 책망할 만하지만
마치 산꼭대기 폭포수가
잠시도 쉬지 않고 떨어지는 것처럼
내가 비록 사람들의 왕이기는 하지만
빈궁이 홀연히 나에게도 이르니
빈궁은 온 세간이 겁내는 것이거늘
어쩌다 나에게 빨리 다가왔는가.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또다시 찬탄하였다.
“세존께서 하신 말씀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도다.”
다시 게를 설하였다.
부귀가 아무리 치성하여도
모였다간 반드시 쇠멸(衰滅)하는 것인 만큼
부귀한 사람을 좋아하다가도
쇠멸하면 세간이 모두 싫어하니
이 진실되어 허망하지 않은 말씀은
구담(瞿曇)께서 설하신 것이네.
내가 지난 시절엔
설령 언교(言敎)를 내렸다 해도
마음으로 생각하여 한 말이었기에
말이 반드시 버려지지 않아서
귀신들이 그 명령 받들어
사해(四海) 안에 널리 퍼뜨리고
들은 이는 모두 받아들여
그 누구도 어기는 이가 없었건만
마치 강물이 큰 산에 부딪혀
부딪힌 물이 되돌아 흐르는 것처럼
큰 산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나를 가로막아 도무지 갈 수 없네.
옛날에는 내가 명령을 내리면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었고
간악한 무리들과 원수ㆍ도적도
아예 어길 생각을 내지 못해서
마치 큰 땅덩어리로 눌러 덮은 듯이
그 누구도 거역할 자 없어
남녀노소 일체 인민들이
다 공경하여 따르기만 하였고
설사 명령을 어기는 자 있더라도
내가 모두 굴복시킬 수 있었으며
고난에 허덕이는 이에겐
편안하게 위무하여 구제해 주었고
병고에 시달리는 이나 빈궁한 사람은
약이나 재물로 치료해 주었는데
이제 나의 복덕이 다 되었기에
빈궁이 홀연히 찾아와서
곤고로움[困厄]이 이와 같으니
아육왕인 내가
어쩌다 이런 고통을 만났을까.
마치 저 아수가(阿輸伽)나무7)의
뿌리를 잘라 끊어버리면
꽃이나 잎, 가지, 줄기가
모두 다 시들어 마르듯이
나도 지금 또한 이와 같구나.
“부귀란 허깨비 같아서 오래 머물지 않는구나.”
탄식하고는 옆에 있던 의사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쯧쯧, 미워하고 천하게 여길 만하도다. 부귀는 번개처럼 잠깐 머무르며, 아지랑이처럼 빨리 사라지고, 또 코끼리 귀가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것 같으며, 독사의 혀가 쉴새 없이 날름거리는 것 같고, 아침 이슬이 해만 나오면 사라지는 것 같구나. 내가 일찍이 어떤 이에게서 들은 것이 있도다.”
다음과 같은 게를 설하였다.
부귀는 날래어 그대로 있지 않고
방정맞고 급해서 잠시도 머물지 않으므로
지혜로운 자는 잘 알아서
교만하거나 방일하지 않아야 하니
이 몸이나 후세의 몸을 위해
마땅히 자기의 이익을 구해야 하지만
만약 부귀를 얻는다 하여도
다시 인색하게 지키기만 한다면
백방으로 다 무너져 흩어지리라.
부귀가 다니는 모습이란
독사의 걸음처럼 바르지 않으니
만약 잘 관찰하는 이라면
자기가 건강할 때에
재빨리 복덕을 지어야만 하네.
만약 다시 병고를 만난다면
마음으로는 복덕을 닦고 싶어도
몸과 기력이 허락하지 않고
일가친척이나 권속들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알게 되면
자기에게 비록 재물이 있어도
마음대로 보시할 수 없게 되니
편안하고 이로울 때 얻은 돈과 재물을
복밭을 만난 바로 그곳에서
주저하지 말고 빨리 보시할지니,
몸이 건강하거나
병고가 있을지라도
언제나 보시를 닦아서
항상 다름이 없이 하여라.
이 모든 재물이란
한갓 허물과 근심거리일 뿐이니
만약 죽을 때를 당하면
친척과 부인, 아이들 때문에
비록 자기의 재물일지라도
마음대로 보시하여 주고자 하면
모두들 가로막고 좋아하지 않아서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지만
소원은 자유롭지 못하네.
그때에 아육왕은 오랫동안 깎지 않은 더벅머리에 때 묻은 옷을 입은 채 정돈되지 못한 차림과 파리한 얼굴로 온몸을 떨고 기침을 콜록거리면서 여래께서 열반하신 곳을 향해 겨우 자기의 힘으로 합장하고는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서 게를 설하였다.
이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니
이것이 저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세 가지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한 법으로 바꾸라고 하셨는데
제가 이제 두 손 모아
견고한 법으로 바꾸려 하니
마치 돌산을 녹여내
진짜 금을 구하듯이
견고하지 않은 재물 가운데서
밤낮으로 견고한 법을 취하고자 함입니다.
제가 이제 남아 있는 복덕으로
최상존께 받들어 올림은
이 복된 업으로 말미암아
제석천의 자리를 구하려거나
범천의 과보를 구함이 아니거늘
하물며 염부제의 왕이겠습니까.
이 보시하는 반조각 과일과
공경하며 믿고 따르는 것으로
그 누구도 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성스럽고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어서
길이길이 온갖 괴로움을 여읠 것입니다.
아수가왕8)은 반쪽의 암마륵 과일을 여러 스님들께 보시하기 위해 측근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과거에 내가 너를 길러 준 것을 혹시 기억하느냐?
그것을 안다면 이제 나의 최후 명령에 따라 이 반 조각 과일을 가져가서 저 계두말사(鷄頭末寺)에 계시는 스님들께 받들어 올리되 나의 명자(名字)를 일컬으면서 이렇게 말하라. ‘아수가왕이 마지막으로 비구 스님들께 엎드려 예배드립니다. 염부제에서 자유를 누렸으나 과보가 쇠패(衰敗)되어 자재한 힘을 다 잃어버리고 오직 이 반조각 과일만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스님들께서 가엾이 여기시어 저의 마지막 반 조각 과일 공양을 받으사 제가 미래세엔 광대한 과보를 얻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저처럼 최후의 시간에 이르러 자유롭지 못한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라고.”
이때에 시종이 곧 왕의 명을 받들어 그 반 조각 과일을 싸가지고 승방으로 가서 일체의 스님들을 모이게 한 다음 엎드려 예배하고, 또 합장하며 대중 스님들께 말하였다.
“아수가왕이 대중 스님들께 예배드립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목이 매인 채 그 반 조각 과일을 대중 스님들께 보이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하나의 일산으로 하늘ㆍ땅을 덮어
온 국토를 호령하니
마치 한낮의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온 대지를 두루 가까이하였건만
복된 업이 이미 소멸되어
무너져 내림이 홀연히 다가옴에
업에 속고 농락당해
부귀영화마저 다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저물어가는 해와 같지만
그래도 신심으로 예배드리고 공경하며
또한 이 반 조각 과일을
받들어 대중 스님들께 보시하여
덧없는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호귀(豪貴)란 움직여 옮겨가는 것임을 보여드립니다.
그때에 여러 상좌들이 이 게를 듣고 나서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겨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반 조각 과일을 받아 대중들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도 이제 싫증내어 여의는 마음을 내야 겠네. 바가바(婆伽婆)9) 부처님께서 수다라(修多羅)에 말씀하시길, ‘다른 사람이 늙고 병들어가는 것을 본다면 응당 깊이 싫어 여의는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하셨으니,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일을 보고서 어찌 가엾이 여겨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리요.”
곧 게를 설하였다.
용감하게 보시하는 자
모든 왕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자며
모리(牟梨) 가운데 큰 코끼리는
바로 아수가왕이라.
염부제를 모두 가져서
일체를 모두 마음대로 했건만
이제 여러 신하들이 가로막아
스스로 명령에 따르지 않으니
일체를 다 제지 당해
암마륵 과일 반쪽만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그것이라도 대중 스님들께 받들어 보시하네.
광대한 국토를 모두 차지하여
일체가 다 자유로울 적에
스스로 높은 체하던 그 마음이
오늘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을 관찰하여
빨리 마음을 바꿔야 하리라.
부귀와 이로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오직 이 과일 반쪽만 남았으니
이제 모든 비구 스님들이
다 싫증내어 여의는 마음을 내네.
이때에 어떤 상좌 스님이 말하였다.
“이 반쪽의 과일을 가루로 만들어 스님들 국에 고루 넣어야 하리라.”
또 이렇게 말하였다.
“큰 단월이신 아육왕이 마지막으로 공양하면서 왜 ‘일체의 재보는 모두 견고하지 못하다’라고 하는 것일까? 바가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견고하지 않은 재물을 견고한 재물과 바꾸고,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꾸며, 견고하지 않은 목숨을 견고한 목숨과 바꿔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단월이 환희심을 낸 것이다. 견고하지 않은 재물이 마침내 자기를 따라와 후세에까지 이르니 항상 보시를 닦아 끊어지지 않게 해야만 한다.”
28
다음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저 어진 사람을 깔보고 헐뜯더라도 어진 사람은 끝내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고, 그 헐뜯고 욕하는 것을 참아가면서 수순하는 말을 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음식을 장만해 두고 손님을 초청했는데, 화관[花鬘]을 많이 만들어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니, 사람들이 모두 화관을 머리 위에 얹어 놓았다. 그러나 손님들 가운데 매우 빈궁한 이로 알려진 한 어진 사람은 화관을 얻어서 머리 위에 얹지 않고 앉은 자리 옆에 그대로 두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 이렇게 말하였다.
“이 빈궁한 사람은 이 화관을 팔기 위해서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이리라.”
이때에 우바새가 이 말을 듣고서 대답하였다.
“사실이오.
그렇지만 내가 이 꽃다발을 팔 때엔 매우 비싼 값을 받아야만 팔 것이오.”
곧 게를 설하였다.
옛날에 수만(須鬘) 같은 이는
일찍이 꽃 한 송이를 팔았기에
91겁이란 긴 세월 동안
천상에서 온갖 쾌락을 받고
오늘날엔 최후의 몸으로
열반의 즐거움까지 얻었으며
저 소먹이던 여인 같은 이는
나쁜 냄새가 나는 풀꽃을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 여인이 팔았기에
도리천에 태어났으니
저 여인이 꽃을 판 것처럼
나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기 위해
이 화관을 팔려고 하니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도
드물어 만나기 어렵고
이와 같은 꽃을 파는 사람도
삼계 중에 견줄 것이 없네.
그때에 여러 사람들이 우바새에게 물었다.
“그 누가 조그마한 보시를 하고서 큰 복의 과보를 얻을 수 있겠는가?”
우바새가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들을 위해 가장 견고한 법을 일러주겠소. 이 화관은 시들어 말라버리면 곧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께서 왕위를 버리심도 이 시들어버린 화관을 버리는 것과 같다네.”
그리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전륜왕의 지위를 버리심도
시든 이 화관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
일곱 가지 깨달음으로 그 마음을 장엄하여
더러운 때 없이 청정하게 할 뿐이네.
장엄을 이미 다 갖추었는데
무슨 꽃이 또 필요하랴.
다만 나의 이 전일한 마음으로
화관을 불탑에 보시하리라.
이제 화관을 팔아 부처님께 올림도
이 세간에선 드문 일이니
이와 같이 법을 파는 장사꾼이라면
끝내 빈궁할 때가 없으며
이런 거래는 가장 수승해서
공덕이 있다고 말해지리니
나 이제 이 화관을 팔아
정성껏 불탑에 공양하려 하네.
29
다음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요술쟁이가 이 몸[陰身]으로 갖가지 재주를 부려서 지혜로운 이로 하여금 보면 곧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떤 한 요술쟁이가 믿어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주암산(晝闇山)에 이르러 스님들을 위해 음식을 베풀었다. 공양을 마친 다음에 요술을 부려 시다라(尸陁羅)나무로 용모가 단정하고 아주 예쁜 한 여인을 만들어서는 대중들 앞에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함께 음행[欲事]을 하였다.
이때에 여러 비구들이 이 일을 보고 나서 모두 싫어하고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부끄러움이 없는 자의 하는 짓이야말로 더럽고 천하기 그지없구나. 이런 자인 줄 알았더라면 그 공양을 받지 않았을텐데.”
이때에 저 요술쟁이는 이미 음행을 끝내고 나서, 저 여러 비구들이 꾸짖고 욕하며 싫어하는 소리를 듣고는, 곧 여인의 몸을 칼로 베어 팔ㆍ다리를 찢고, 눈을 뽑고, 코를 베는 등 갖가지 악행으로 여인을 죽이고야 말았다.
여러 비구들이 또 이 일을 보고는 더욱 싫어하고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우리들이 만약 네가 이런 놈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독약을 마실지언정 이 공양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에 저 요술쟁이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여러 비구 스님들은 내가 음행을 하는 것을 보고는 곧 진심을 내어 분개하였고, 내가 음행을 끊으려고 저 여인을 죽이는 것을 보고는 더욱 싫어하며 꾸짖으니, 내가 어찌 대중 스님들을 받들어 봉양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에 비구들이 이 말을 듣고서 이러니저러니 시끄럽게 술렁거리며 안정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요술쟁이가 그 시다라 나무를 잡아 대중 스님들에게 보인 뒤에 합장하고 말하였다.
“제가 아까 여인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다가 무슨 음행을 하고, 죽이고 하겠습니까? 제가 여러 스님들의 몸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음식을 베풀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이 요술을 부렸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여러 비구 스님들께서는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어찌 부처님께서 수다라(修多羅) 중에 설하시길 ‘일체의 법은 허깨비와 같다’라고 하신 것을 들어 보지 못했단 말입니까? 제가 이제 부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이런 요술을 부린 것입니다. 이런 허깨비 같은 몸은 수명도 없고 의식도 없는 것인 만큼, 다만 요술쟁이가 인형[機關]을 운전하여 그 인형들로 하여금 바로 보고 옆으로 보고 굽어 보고 쳐다보게 하며, 다니고 멈추고 나아가고 물러나게 하며, 말하고 웃고 잠잠하게 할 뿐이니, 이러한 일들로 미루어서 이 몸이란 진실로 ‘내가 없음[無我]’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먼저 저 허깨비 모습을 보고
뒤바뀌고 미혹된 생각을 일으켜서
멋대로 여인이란 생각을 내어
음욕의 그물에 끌어들였지만
사물을 깊이 관찰하는 이라면
몸에는 도무지 나[我]가 없음을 알 것이네.
저 재주 좋은 요술쟁이처럼
나무로 여인을 만들어서
마음대로 뒤바뀐 짓을 행하면
어리석은 이는 이를 중생이라 여겨
이 허깨비 놀음 중에
망령되이 남녀의 생각을 일으키지만
지혜로운 이는 잘 관찰하여
음계(陰界)와 여러 감관[入]의 화합인 줄 알 것이네.
연(緣)을 빌려 중생을 이루었으니
몫몫이 각각 다르기는 해도
여러 몫들이 화합되었기 때문에
모든 업을 지을 수 있다네.
행(行)에는 남녀가 없고
또한 수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색욕과 매끄러운 촉감과
위의(威儀)와 아울러 처소(處所) 등의
이러한 네 가지 욕심이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회전시키며
허깨비 놀음으로 세간을 속인다고
일체지(一切智)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저와 같은 허깨비 그물 속에서
모든 빛깔과 모양을 만들어 내니
생사의 그물도 또한 그러하여
다섯 갈래의 차별을 나타내네.
근심하고 기뻐하고 성내고 분노하며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다투고 싸우는
그와 같은 온갖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온몸에 귀신이 붙어 있는 것 같고
마음이 모든 업을 일으키는 것이
저 귀신과 다르지 않아서
마음으로부터 바람이 일어나고
바람으로 인해 업을 조작하는데
중생들은 이 조작된 업에서
갖가지 빛깔과 모양을 보며
이러한 업행(業行) 중에
위의와 형색을 일으킬 뿐
정작 해야 할 일은 알지도 못한 채
멋대로 ‘나’라는 생각을 낸다네.
이 몸을 하나의 허깨비라 한다면
기름과 골수ㆍ가죽ㆍ살ㆍ터럭 등
서른 여섯 가지의 물질들이
서로 화합하여 몸을 이룬 것인데
어리석은 자는 이를 중생이라 계교하니,
실상 몸이란 주재(主宰)하는 것이 없고
다만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굽히고 펴게 되며
또 몸이란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오식(五識)10)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 마음의 알음알이[識]란 것도
찰나찰나에 다 변해 사라지는데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깨달음을 일으켜
이 몸에 ‘나’가 있다고 계교해서
갖가지 구업(口業)을 짓는가 하면
신업(身業)을 지음도 또한 그러하네.
말하고 웃는 그 모든 거동이
다 요술로 지은 것 같아서
그 중에 도무지 ‘나’가 없음은
주재(主宰)를 떠났기 때문이니
이러한 허위(虛僞)의 법에는
수명도 알음알이도 소견도 없는데
망령되게 어떤 생각을 일으킨다면
범부의 함정 속에 빠지는 것이라네.
저 요술쟁이가 말한 것이 바로 진실이었기에, 그때
여러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모두 진리를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모든 법이 허깨비 같으니, 이것을 알 수 있는 이는 곧바로 모든 행(行)의 근원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30
다음으로 보시와 지계, 그 일의 얕고 속됨만을 말해 주어도 선근이 성숙된 이는 깊은 법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아육왕(阿育王)이 처음 신심을 내었을 때 자주 스님들을 궁중으로 초청하여 공양하고 날마다 설법을 들었는데, 부녀자들만은 장막을 가린 채 듣게 하였다. 이때에 설법하는 비구가, 모든 부녀자들은 흔히 세간의 즐거움에만 탐착한다고 여겨서 보시와 지계의 법을 찬탄하였는데, 근기가 무르익어 있던 한 기녀(妓女)가 왕의 명령을 어겨서 그 죄를 받게 될 것을 겁내지 않고, 곧 장막을 거두고는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설법하던 비구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는 오직 보시와 지계만 있습니까? 그 밖에 다른 것도 있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자매여, 내가 지금까지 설법을 하였지만 그대처럼 근기가 영리한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 것이니, 만약 다른 것을 듣고 싶다면 그대를 위해 깊은 법을 설해 주겠소. 부처님께서는 일체 세간에서 들어 보지 못했던 법을 설하셨으니, 이른바 4제(諦)라는 것이오.”
곧 여인을 위해 분별해서 설해 주니, 여인은 듣고 나서 수다원(須陁洹)의 도를 얻었다.
그때에 여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국왕의 법을 어기기는 했지만 큰 뜻의 이로움을 얻었습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네 가지 진리의 말씀 듣고서
법안(法眼)이 청정해졌으니
이 위태롭고도 약한 목숨을
불법의 견고한 목숨으로 바꾸렵니다.
설령 사람의 왕이
지금 나를 해치러 온다 해도
나는 지혜의 목숨을 얻었기에
끝내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이때에 모든 궁중 사람들은 이 기녀가 감히 국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보고 그 죄를 같이 받게 될까봐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러자 기녀는 이 광경을 보고 나서 손수 칼을 잡고 왕 앞에 나아가 온몸을 땅에 던져 엎드려
죽기를 청하며 다시 게를 설하였다.
왕의 법제는 너무도 준엄해서
감히 어길 자 없지만
제가 이제 설법을 듣기 위해
죽을 죄를 범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너무 법에 목마른 나머지
당돌하게 스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감은,
마치 봄철에 목마른 소가
물을 찾아, 몽둥이를 겁내지 않고
시원한 강물로 뛰어들어서
실컷 마시고서야 돌아오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대왕님께서 응당 아시겠지만
불법 들을 기회를 만나기 어려움이
저 우담발화처럼
만나기 어려움과 같으니
삼계(三界) 중에 크게 제도하시는 이의
말씀하신 모든 묘법을
제가 듣고서
제가 어찌 기뻐 뛰지 않겠습니까.
그 말씀하신 모든 법은
바로 어둠을 깨뜨리는 등불이고
번뇌를 소멸하는 큰 북소리이고
하늘과 사람의 다리와 나루이고
또한 해탈의 방울 소리를 들음이며
환희심을 일으키는 즐거운 음악입니다.
보살들이 옛날에
고행하며 부지런히 법을 구하되,
바위에 떨어지고 살을 도려내며
위없는 도(道)를 구하여서
얻은 뒤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설법하지만
이런 기회를 만나기가 매우 어렵거늘
제가 이제 이 법을 만났으니
어찌 받아 듣지 않겠습니까.
이 몸이란 물거품 덩어리 같고
파초나 아지랑이 같으며
4대(大)11)라는 독사에 묶여 흔들리니
지금의 이런 법회는
참으로 만나기 어렵거늘
어찌 더러운 몸을 아까워해서
설법을 듣지 않겠습니까.
이 위태롭고 허깨비 같은 몸이
비록 나아가고 멈추고 돌아보고
오고 가고 앉고 눕고
보고 보이고 말을 하지만
실상은 중생이 아니면서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
갖가지 모든 위의(威儀)가
일체 모두 허깨비 같아서
오래지 않아 반드시 무너져 흩어지고
무덤들 사이에 내버려져서
시신과 해골이 목석(木石)과 같아지매
새들이 쪼아먹고
빗물에 썩기도 하여
마치 진흙 사람이 허물어진 것 같습니다.
그때에 저 국왕이 이 게를 듣고 나서 일러 말하였다.
“네가 지극한 뜻으로 이와 같은 법을 들었다는 것을 이제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기녀가 곧 게를 설하였다.
이제 가리고 감출 때가 아니므로
제가 마땅히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여
응당 환희심을 발한 것이며
지극한 마음으로 잘 들어서
나 이제 스스로 법을 보았기에
마침내 남을 따라 믿지 않고
마음에 의심의 그물도 있지 않습니다.
이미 3악취(惡趣)를 막아
생사의 경계를 여의었으니
나는 이미 존재의 감옥을 벗어났으며
예순두 가지 삿된 소견의
굳센 결박에서도 풀려 나왔기에
오래지 않아 멀리 떠나서
10력존(力尊)이 계시는
감로성(甘露城)을 향해 나아가렵니다.
모든 5음(陰)과 18계(界)와 6입(入)을
제가 다 어떻게 보았는가 하면
몸은 독사가 들어 있는 상자처럼 보고
쌓임은 칼을 뽑아든 도적처럼 보며
욕심은 원수나 사기꾼처럼 보고
모든 감관은 빈 덩어리처럼 보아
6진(塵)12)의 마을 도적을 부수고
애욕의 강을 떨어버렸으니
이미 이러한 일을 깨달았기에
저 안온한 곳을 구했습니다.
왕이 듣고 나서 불법에 대하여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아, 불법이여. 큰 힘을 지니신 세존께서도 생사의 길을 싫어하셨도다. 아, 불법이여. 믿어 귀의하는 이는 모두 해탈을 얻을 것이니,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느냐 하면, 여인의 얕은 지혜로도 오히려 깨달을 수 있어서 6사(師)13)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아뇩다라(阿耨多羅) 조어장부(調御丈夫)께서 계신 곳을 향해 귀의하는 마음을 내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비하신 이께 귀의하여 감로법(甘露法)을 열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수행하리라.”
곧 게를 설하였다.
만약 여인의 깨달음을
얕고 속되다고 말한다면
그 밖의 깊은 지혜 있는 사람은
더욱 믿고 공경해야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니
이같이 깊고 깊은 이치는
지혜로운 이라면 존경하는 것이며
바로 석가모니 세존께서
가장 수승하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말씀이라.
말씀하신 묘법을
들은 이는 매우 기뻐하며
생각을 오로지 하고 마음을 거둬들여
방일하지 않게 하네.
또 그 말씀은 논쟁을 하거나
꺾어 부수려고 하지 않아도
외도의 모든 의론이
일체 저절로 파괴되며
일찍이 스스로를 칭찬하진 않으셨지만
이름이 온 세간에 두루하고
진실한 공덕을 말씀하셨지만
자기의 공덕은 찬양하지 않으셨으며
위덕(威德)이 치성하셨지만
담담하게 적멸을 갖추셨고
이미 일체의 지혜를 구족하셨지만
그것을 믿고 훌륭한 체하지 않으셨으며
하시는 일이 용건(勇健)하셨지만
그래도 다시 잘 조율하여 따르고
모든 자만심에서 벗어나셨지만
비열(鄙劣)하지는 않으셨으며
설법이 오랫동안 유포되었지만
누구도 비웃거나 헐뜯는 자 없고
남을 해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기에
갖가지 차별이 많이 있어도
일체의 모든 사람들은
그 허물을 말할 수 없으며
말씀이 비록 풍부하고 광대하지만
싫증 내어 미워하는 이 없고
말씀이 비록 세속과 같아도
그 이치는 세간을 벗어났으니
잘 가신 이[善逝]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문자로 세상에 유포되었으나
항상 전에 없던 일이라서
교화하여 제도함에 늘 신기하기만 하네.
이처럼 오묘한 말씀에 대해
합장 예배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잘 말씀하시는 위대한 스승 세존께
뉘라서 찬탄을 올리지 않으리요.
마치 봄과 여름의
흐리고 개임이 모두 만물을 이롭게 하듯이
부처님 말씀도 또한 그러하여
갖가지로 중생을 이롭게 하시네.
모든 사람들의 의심을 제거하되
대치법(對治法)14)으로 잘 풀이해 주시고
3유(有)를 여의게 하되
편안히 쉴 곳을 나타내 보이시며
때로는 중생들로 하여금
기뻐하게도 놀라 두려워하게도 하고
또한 그 실정에 알맞게
근심하게도 슬퍼하게도
이익을 얻어 즐거워하게도 하며
번뇌를 끊은 이가 설하신 법은
때로는 진실되고
때로는 무궁무진하게 변화하여
설법해 주어야 할 이에게는 반드시 설법해 주시며
사람의 정의(情意)를 애석해하지 않으시고
굳세게도 거칠게도 말씀하시되
법상(法相)을 어기지 않으시니
가장 수승하고 지혜로운 이시라.
마치 저 큰 바닷물이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나
똑같이 하나의 맛인 것처럼
불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처음과 중간, 끝이 모두 좋으므로
들으면 다 청정해지네.
부처님 말씀을 들은 지혜로운 이는
기운이 용감해지고 뜻이 만족되니
그 누가 이 말씀 듣고 나서
저 외도의 서적을 좋아하리요.
언사(言辭)가 모두 갖추어져 있고
재변(才辯)이 매우 미묘하지만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고
또한 그 말씀이 겁약(怯弱)하지도 않으니
일체 가운데 가장 수승하시며
이치를 다 원만히 나타내셨기에
진실로 일체지(一切智) 그대로시네.
외도들은 체(體)와 의(義)가 보잘것없어서
지혜를 언사로 장엄하였으니
언사는 매우 미묘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고
거짓되며 사악하고 아첨하는 말이네.
세간은 어리석음의 어둠으로 덮여 있으니
그대의 법의 횃불을 잡고서
진리의 처소에 들어가길
마치 자기 집에 들어가듯이 하라.
잘 가신 이[善逝]의 여러 제자들을
나 힘껏 옹호하리니
이 여러 제자들은
모든 감관을 잘 조복했기 때문이며
저 설법하는 제자를
나 이제 깊이 믿어
여러 대중들 앞에서
이 말을 널리 설하노니,
오늘 이후로
여러 석자(釋子)들을 초청하여
수시로 내 궁에 들게 하고
그 밖에 신심 있는 사문들도
오늘부터 마음대로 들어오게 하리라.
능히 감로법(甘露法)으로
여인의 마음을 만족시켜서
마음이 이미 적정(寂靜)하게 되어
해탈의 경지에 들어갔으니
이 깊고깊은 사제(四諦)를
모두들 항상 들어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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