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3권
대장엄론경 제3권
마명 보살 지음
후진삼장 구마라집 한역
11
다음으로 만약 어떤 제자가 계율을 굳게 지켜 다른 사람들이 높이 우러르는 대상이 된다면 일체의 세상 사람들이 그의 스승까지 아울러 존경하기 마련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여러 비구들이 넓은 들 한복판을 지나다가 도적떼를 만나 입고 있던 옷을 다 빼앗겼는데, 이 도적떼는 비구들이 마을로 가서 고자질을 할까봐 두려워 모두 살해하려고 하였다. 그때 도적 가운데 일찍이 출가했었던 한 사람이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무엇 때문에 다 살해하려고 하는가? 비구의 법에는 풀[草]도 다치게 할 수 없으니, 이제 만약 풀로 여러 비구들을 묶어 둔다면 저들은 풀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해서 끝내 사방으로 달려가 고자질할 수 없을 것이네.”
그래서 도적들은 곧 풀로 묶어 놓고서 버리고 가버렸다.
여러 비구들은 이미 풀에 묶여 있으나 금계(禁戒)를 범할까 두려워서 풀을 당겨 끊지도 못하고, 몸에 의복이 없으므로 햇볕에 그을리며 모기나 등에, 파리, 벼룩에게 뜯기어 괴롭힘을 당하였다. 아침부터 묶여서 한낮이 지나고, 해가 저물어 캄캄한 밤중이 되니, 밤에만 다니는 날짐승 길짐승들이 서로 엇갈려 달려들고, 여우들이 떼지어 울며 올빼미가 꾸륵거리는 등 나쁜 소리로 울부짖는 통에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그때 어떤 늙은 비구가 젊은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잘 들으시오. 사람의 목숨이란 지극히 짧아서 빠르게 흘러가는 물과 같으니, 설령 천당에 있다 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닳아 없어지기 마련인데 하물며 인간 세상의 목숨이야 얼마나 보존할 수 있겠는가? 목숨이 오래 가지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목숨을 위해서 금계를 훼손한단 말인가?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야만 하오. 사람 몸을 얻기도 어렵지만 불법을 만나기가 더욱 어렵고, 모든 감관을 갖추기도 어렵지만 신심을 내기가 더욱 어려우니, 이 하나하나의 일들을 모두 만나기 어려운 것이,
마치 눈먼 거북이 떠 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네. 부처님의 바른 도는 저 아흔다섯 가지 외도들과는 같지 않으니, 저들은 삿된 소견에 전도되고 미혹되어 과보가 없다고 말하지만, 불도를 수행하는 자만이 반드시 바른 과를 얻거늘, 어찌 이처럼 위태롭고 연약하며 정해져 있지 않은 목숨을 아까워해서 성스러운 가르침을 헐어버리겠는가? 만약 부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현세(現世)에 이름을 떨치고 공덕을 구족하며, 후세(後世)에 가서 쾌락을 받는 것이 부처님과 같을 것이네.”
게를 설하였다.
만약 지혜 있는 이가
금계를 굳게 지킬 수 있다면
인간과 천상의 열반을 구하더라도
뜻대로 얻을 수 있으며
이름을 널리 떨치어
일체가 함께 공양(供養)함으로
반드시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또한 해탈의 과보를 얻기도 하네.
이나발(伊羅鉢) 용왕이
나뭇잎을 함부로 상해하여
금계를 훼손했기 때문에
죽어서 용(龍) 가운데 떨어져도
여러 부처님께서 모두
용에서 벗어날 때를 수기하지 않으셨으니
금계를 굳게 지키는
이 일이 매우 어렵고
계상(戒相)이 너무도 많아
분별하여 깨닫기가 어려운 것이
마치 칼같이 삐죽삐죽한 숲이나 가시덤불 속에 있으면
다치고 훼손됨이 많은 것처럼
어리석고 용렬한 자는 감당할 수 없어서
이와 같은 금계를 호지(護持)하지 못하네.
이 여러 비구들은 고통으로 시달려도 몸을 굽히거나 펴지 못하고, 움직이려고 해도 풀을 끊어서 다치게 하여 계를 범할까 두려워해서, 각자가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의 수행도 또한 저 저울이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더하고 덜함이 없게 해야 하니, 지금 비록 두렵고 겁이 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뜻을 가짐은 이지러짐이 없이 언제나 건전해야 하리라. 이 천한 목숨으로 귀한 법과 바꿔서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 및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는 것인 만큼 우리들은 이제 조금도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오직 계를 지키어 죽을 때까지 범하지 말아야 한다.”
곧 게를 설하였다.
우리들이 옛날부터
뭇 악업을 저질렀다면
혹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더라도
도둑질을 하거나 남의 처와 간통하여
국법에 따라 벌을 받거나 죽임 당하길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며
다시 지옥의 고통을 받아
이와 같이 또한 헤아릴 수 없고
혹은 축생의 몸을 받아
소나 양, 닭이나 개, 노루, 사슴 같은
날짐승, 길짐승으로 태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죽임 당해서
몸을 잃어버림에 끝이 없으니
일찍이 조그마한 이익도 없었을 것이네.
우리들은 이제
성인의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
미천한 목숨을 버리게 될지라도
반드시 큰 이익을 얻을 것이며
우리들이 이제 위험한 재난을 당해
결정코 몸과 목숨을 버린다면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에 태어나
온갖 쾌락을 다 받을 수 있지만
만약 이 금계를 범하여 무너뜨려서
현세에 나쁜 이름이 퍼지게 된다면,
남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 나쁜 갈래[惡道]에 떨어지리니.
이제 함께 서약하세.
이곳에서 목숨이 끝날 때까지
설령 햇볕에 쪼여 온몸이 타버려도
우리는 반드시 부처님의 계율을 지켜서
끝내 중도에서 범하여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며
설사 사나운 짐승들 따위가
우리의 손발을 찢어 가더라도
석사자(釋師子)의 금계만은
끝내 감히 범하여 무너뜨리지 않고
차라리 계율을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계를 범하면서까지 살기를 바라지 마세.
여러 비구들은 늙은 비구가 설한 이 게를 듣고 나서 각자 그 몸을 바르게 하여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니, 마치 큰 나무가 바람이 없을 때는 그 가지와 잎이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때에 그 나라 왕이 마침 사냥을 나왔다가 이 비구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왕이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마음 속으로 이상하게 여겨 생각하기를 ‘저 알몸뚱이의 사람들은 니건(尼揵)들일까, 아니면 사문(沙門)일까?’ 하고는,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들의 몸을 가리고 숨기고자 하였으나 심부름 간 사람은 그들이 다 석자(釋子) 사문인 줄 알게 되었으니, 왜냐 하면 오른쪽 어깨가 검었기 때문이었다. 심부름꾼이 곧 돌아와 보고하여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들은 니건이 아니라 바로 사문들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왕이시여, 지금 분명히 아십시오.
저들은 도적에게 모두 빼앗겨서
마치 갈고리에 걸린 큰 코끼리처럼
풀로 묶여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때에 대왕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 나서 더욱 이상하게 여겨 묵묵히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저 비구들이 있는 곳에 가보리라’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푸른 풀로 묶인 그 손
마치 앵무(鸚鵡)의 날개같이
또한 하늘에 바치는 양과 같이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으니
비록 어려움에 처한 줄은 알지만
묵묵히 앉아 풀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
마치 숲이 불에 타고 있는데
검은 소가 꼬리를 위해 죽어가는 것 같네.
이 게를 읊고 나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다시 게를 읊어 물었다.
신체는 씩씩하고 건장하며
병도 없고 힘도 있는 듯한데
무슨 인연 때문에
풀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가.
그대들은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어찌 알지 못하랴마는
어떤 주술에 미혹되어서
이런 고행을 하는 것인가.
자신의 몸을 싫어해서인 듯한데
빨리 그 뜻을 말해 주기 바라노라.
이에 비구들도 게로 답하였다.
이 풀은 연하고 약해서
아주 끊어버림도 어렵지 않지만
다만 불ㆍ세존의
금강계(金剛戒)에 묶여 있어
모든 법의 금계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감히 끌어당겨 아주 끊지 못하네.
부처님 말씀에
모든 초목이 다 귀신의 마을이라 하셨으니
우리들이 감히 어기지 못하기 때문에
이 풀을 끊을 수 없는 것이네.
흡사 주술하는 마당에다
독사 때문에 경계를 그어 두면
신비한 주술의 힘 때문에
독사가 넘어가지 못하듯이
모니존(牟尼尊)께서 그어 두신 경계를
우리들은 감히 넘어갈 수 없으니
우리들도 비록 목숨을 보호하긴 하지만
목숨이란 마침내 돌아가 없어지게 마련이므로
계율을 지키다 죽을지언정
살기 위해 범하지는 않을 것이오.
덕(德)이 있으나 덕이 없으나
목숨은 다 같이 버리는 것이지만
덕 있는 이에게는 지혜의 목숨과
아울러 이름이 남아 있고
덕 없는 이는 지혜의 목숨도
또한 명예도 잃어버린다네.
우리들 사문은
계율 지키는 것이 힘이 되고
계율 지키는 것이 좋은 밭이 되어
모든 공덕을 자라나게 할 수 있으니.
하늘에 태어나는 사다리이며
훌륭한 이름의 종자이고
성인이 되는 다리와 나루[津]며
모든 이로움의 머리와 눈이기도 하거늘
그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계율의 공덕병(功德甁)을 깨뜨리려 하겠는가.
그때에 국왕은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곧 비구들을 위해 풀로 묶인 것을 풀어 주고 게를 설하였다.
훌륭하도다,
석사자의 말씀을 굳게 지켜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법을 수호해 망가뜨리고 범하지 않으니.
나 또한 지금부터
이와 같이 큰 법에 귀의할 것이며
열뇌(熱惱)를 모두 여의신
석가모니 해탈존(解脫尊)께 귀의하며
금계를 굳게 지킨 이에게도
나 이제 귀의할 것이네.
12
다음으로 어떤 사람이건 마음이 어질고 착하면 일체의 안은(安隱)과 이익을 얻게 마련이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그 마음을 닦아 항상 어질고 착하게 해야만 한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여러 비구들이 장사꾼[估客]들과 함께 바다에 나아가 보물을 캐는데, 막상 바다 한복판에 이르자 배가 부서져 버렸다. 그때 어떤 한 젊은 비구가 판자쪽 하나를 잡았는데, 상좌 비구는 판자쪽을 잡지 못해 장차 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었다. 상좌 비구는 물에 떠내려 가게 될까봐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젊은 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에 ‘마땅히 상좌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대가 잡은 판자쪽을 나에게 주어야 할 것이네.”
그때에 젊은 비구가 생각하기를 ‘여래 세존께서 사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으니, 모든 이로움과 즐거움을 상좌에게 먼저 양보해야 할 것이다’ 하고, 또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이 판자쪽을 상좌에게 드린다면 나는 분명 물 속에 빠져 파도에 휩쓸릴 것이고, 바다는 깊고도 넓어 지극히 위험하니 나는 이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이 어리고 처음 출가해서 아직 도과(道果)를 얻지 못하여 이것이 근심거리이니, 내가 이제 몸을 버려 상좌를 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라고 생각하고 나서 게를 설하였다.
내 자신을 온전히 구제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수승하니
무량한 공덕을 쌓아
이름이 시방에 두루해야 하거늘
비천한 몸과 목숨을 위해
어찌 성스러운 가르침을 어기리요.
나 이제 부처님의 계율을 받았으므로
죽을 때까지 반드시 굳게 지켜야 하니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하여
판자쪽을 양보하고 몸과 목숨 버리겠네.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면
끝내 어려운 과(果)를 얻지 못하리니
내가 이 판자쪽을 계속 잡고 있다면
큰 바다의 어려움이야 반드시 건너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장차 생사의 바다에 빠지고야
내가 이제 물에 빠져 죽는다면
죽더라도 오히려 이름이 나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버린다면
인간과 천상의 이익은 물론
큰 열반의 더없는 즐거움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네.
이 게를 설하고 나서 곧 판자쪽을 양보하여 상좌에게 주었다. 상좌가 판자쪽을 받았는데, 때마침 바다의 신이 보고서 그 정성에 감동하여 젊은 비구를 이끌어 바닷가에 옮겨다 놓았다. 바다의 신이 합장하며 비구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제 계율을 굳게 지키는 이에게 귀의할 것이니, 당신이야말로 이 위태롭고도 어려운 일을 당해 부처님의 계율을 잘 지킨 이라 하겠습니다.”
게를 설하여 비구를 찬탄하였다.
그대는 참다운 비구로다.
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니
이른바 사문이란 그 명칭은
바로 당신을 두고 한 말이리라.
그대의 공덕의 힘으로 말미암아
도반들과 재보(財寶)가
큰 어려움을 면하고
모두 무사히 나가게 되었도다.
그대는 말과 맹세가 견고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공경하여 따르도다.
그대야말로 매우 수승한 사람이어서
뭇 근심과 어려움 제거할 수 있으니
우리들이 이제 어찌
옹호하지 않겠는가.
진리를 보고서 계율을 지키는
이런 일이야 어렵다 할 것이 없지만
범부로서 금계를 허물지 않는
이러한 일은 희유하다 하겠으며
비구가 안은한 곳에서
청정하게 스스로 근신하여
금계를 훼손하지 않는 것은
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아직 도(道)의 흔적도 얻지 못한 이가
너무도 겁나고 두려운 상황에 처해서
자신의 아까운 목숨까지 버리면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계율을 호지(護持)하는
이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이야말로
가장 희유하다고 하겠네.
13
다음으로 만약 도의 흔적[道跡]을 보지 못하였다면 아무리 다문(多聞)이라 하여도 생사의 괴로움을 뽑아 버릴 수 없으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으레 진리를 보고자 갈구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형제 두 사람이 모두 함께 출가하여 형은 아라한을 얻고 아우는 삼장(三藏)1)을 외웠는데, 그때에 저 아라한인 형이 아우인 삼장에게 말하였다.
“너도 좌선을 해야 한다.”
삼장이 대답하였다.
“저도 앞으로 좌선을 하겠습니다.”
아라한 비구가 다시 말하였다.
“너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지 못했느냐? 무릇 도를 행하는 자는 머리에 난 불을 끄듯이 하라고 하셨다.”
곧 게를 설하였다.
오늘 이 일을 하지만
내일까지 가리라 확신할 수 없나니
사람의 목숨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어서
빨리 착한 업을 닦아야만 하네.
죽음의 거대한 군사가 다가오면
아무데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그 목숨이 끝날 때면
어느 곳으로 가야할 지 알지 못하며
캄캄한 어둠 속에 업의 인연을 따라가서
그 길의 멀고 가까움도 모를 뿐더러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 같아서
언제 꺼질지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내일 하겠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매우 허망한 것이니
죽음의 호랑이는 지극히 포악하고 급해서
도무지 용서가 없는지라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이르르면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으며
죽음의 왕은 잔해(殘害)함이 많으므로
너는 응당 두렵게 생각하여
몸의 위태로움과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움을 알아야만 하고
부지런히 자신의 마음을 관찰할 뿐
다문(多聞)의 업을 버려야 하느니라.
세간을 떠나 해탈을 구하되
생사의 뿌리를 뽑아버릴 것이니
죽음이 창졸간에 닥쳐올 때에는
후회하며 괴로워해도 어쩔 수 없지만
이제 만약 도의 흔적을 본다면
뒷날 뉘우치며 괴로워함도 없을 것이네.
불법 가운데 견실한 것은
이른바 도의 자취를 얻는 것이고
다문(多聞)의 업은 허망하고 거짓되니
조금도 아낌없이 버려야 하리라.
제아무리 다문박식(多聞博識)일지라도
도의 자취를 얻지 못한 자는
소경이 등불을 잡고 저것을 비추어도
자신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만약 자신이 이롭고자 한다면
반드시 도의 자취를 보아야 하네.
무리 중에 처하여 사자의 울음 소리 같은
훌륭하고도 교묘(巧妙)한 말씨로
모든 법상(法相)을 알기 쉽게 설명해서
의심과 어려움을 분별하여 해석할 때
그 설법을 듣는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환희심을 내게 하며
또 일체의 사람을
모두 조복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비록 이런 일이 있었다 해도
죽을 때에는 마음이 착란(錯亂)을 일으켜서
나쁜 갈래에 떨어지게 되니
지혜로운 이의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네.
네가 설하는 법은
교묘한 말과 글귀로 가득 차서
차례차례 인과를 설하여
좋은 맛[美味]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니
달기가 저 설탕물[甘蔗漿] 같지만
이런 일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조복하고 따르게 하지 못해
삼악도(三惡趣)를 끊지 못하는가.
스스로 해탈을 구해야 할 텐데
쓸데없이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범부는 미덥지 못하도다.
빨리 진리를 알고자 갈구해야 하리라.
네가 이제 크게 유명하여
모두들 설법을 잘한다 말해도
헛된 명예에 지나지 않는데
장차 너에게 무슨 이익이 있으랴.
마땅히 안의 몸[內身]을 관찰하여
묵묵히 선정을 닦을 것이니.
옛날부터 다문(多聞)한 이는
그 수가 매우 많았지만
덧없이 모두 이리저리 사라졌을 뿐,
남아 있는 이는 지극히 적고
애써 명예를 구했어도
얻었다가 다시 잃어버리고 말았네.
부처님께서 설하시길 유위법(有爲法)이란,
일체가 다 무상(無常)하다 하셨고
과거의 항하사 부처님들도
3달(達)2)의 지혜를 성취하시어
3장(障)3)을 소멸하고서
한 찰나에 삼세를 두루 관찰하셨지만
이러한 등의 과거세 여러 세존들의
이름이 시방에 가득했더라도
이제 모두 열반에 드셨으므로
이름[名字]마저 사라졌으니
그러므로 네가 오늘부터라도
부지런히 정진을 닦아야만 함에 있어서
명칭(名稱)은 던져 버리고
오로지 해탈만을 구해야 하리라.
아우 삼장(三藏)이 대답하였다.
“정말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아 몸에 중병을 얻었는데, 목숨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 깊이 후회하고 한탄하면서 게를 설하였다.
이상하도다, 내가 오늘날
부처님의 성스러운 법 가운데
계율과 다문은 구족했지만
진리를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이제 만약 죽는다면
저 개[狗]와도 다름이 없어
생사의 바다에 빠져 돌아 흐르기를
저 옹기쟁이의 물레같이 할 것이네.
나 이제 가엾기 짝이 없게도
아직 도의 자취를 얻지 못하였으니
스승과 어른들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에게 선정을 배우기를 권하셨건만
나 그 법교(法敎)를 받들지 않아
도무지 조금도 익히지 않았기에
그러므로 지금까지
진리를 볼 수 없었네.
나는 석가모니부처님의
크고 밝은 법의 등불을 잡고도
무명의 우두머리가 되어
스스로를 비출 수 없었으니
비출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생사의 괴로움에 빠지고야 말리라.
그의 여러 동학(同學)들이 그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와서 위문하였는데,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가 다 놀라서 각각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하였는가. 다문(多聞)한 사람은 지혜의 힘이 있어서 무상(無常)의 이치를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근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네.”
이때 병든 삼장 비구가 곧 게를 설하여 동학들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일찍이 가르침 받은 대로
좌선법을 익혔어야 마땅할 것인데,
오늘 내일 게으름만 피우다가
마침내 나 자신을 내가 속여서
이 일생 가운데
얻은 것 없이 헛되이 지냈네.
이 몸뚱이는 물거품과도 같은 것인데,
나는 깊이 관찰하지도 않고
견실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여
죽음이 갑자기 닥칠 줄은 깨닫지도 못하고
오로지 법을 많이 듣는 것에만 집착해서
그것만을 가장 수승하다 생각하다가,
홀연히 죽음의 뱀에게 먹히게 되니
뉘우치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수다라(修多羅:經)의 말씀처럼
마땅히 좌선을 닦아 익히되,
오로지 해서 게으르지 않아
모든 번뇌를 소멸해야 할 것을.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데도
수순하여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뉘우치고 괴로워하는 불에 타서
나의 마음만을 초조하게 하였으니.
나의 이 어둡고도 용렬함이
마치 저 어리석은 어린아이 같아서
저 6도(道)4) 가운데
어느 길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네.
다시 미래세에 가서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3유(有)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다가
어떠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는지.
또 미래세에 가서
어떤 업을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혹 본심을 잃어버리고
3독(毒)을 일으키지나 않게 될는지
모든 선업을 닦지 않고
그저 많은 악업만을 지었으니.
아, 너무 괴롭구나.
나 스스로를 속이고 말았도다.
이미 모든 어려움을 여의었더라면
마땅히 출세간의 도를 얻었을 텐데
어쩌다 어리석고 그릇되어서
방일하여 스스로 자만하였던고.
이때에 여러 동학들이 이 게를 듣고 나서 거듭 위로의 말을 하였다.
“그대는 이미 다문하였고, 또한 계율을 굳게 지켰으니, 응당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야 할 텐데, 왜 근심하고 두려워해서 급기야는 이렇게 병까지 들었는가?”
삼장 비구가 말하였다.
“나는 이제 병들었으므로 여러 어진 이들에게 버림을 당하여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라한인 형에게 말하였다.
“조금만 저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제가 어리석고 미혹되어 형님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병이
위독해져서 반드시 뒷세상으로 가야만 하게 되었으니, 형님께서 불쌍하게 여기시어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제하여 주십시오.”
곧 게를 설하였다.
같이 불법 가운데 있으면서도
형님은 사문의 보배로 불리시어
자주자주 저를 가르치고 경계해 주셨건만
어리석고 용렬하여 받들어 따르지 못했으니.
저는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마치 한여름에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사나운 불꽃이 모든 것을 사르는 것처럼,
몇 배나 더 뉘우치고 괴로워합니다.
제가 은혜로운 가르침을 저버리고
저 한여름보다 더 뜨거운 후회를 하지만
그러나 이제 의지할 곳이 없어서
오직 형님께 귀의할 뿐이오니
뒷세상에서 몸을 받을 때에
저를 잊지 마시고 관찰하시어
다시금 불법 들을 기회를 만나
다시 출가할 수 있게 하소서.
그때 가선 법복을 헛되이 입지 않고
반드시 도과(道果) 얻기를 발원하여
학문과 그 밖의 모든 다른 업을
죄다 버리고는 다시 하지 않겠으며
오로지 해탈을 힘써 구할 뿐
다시는 다른 것에 뜻을 두지 않으리다.
만약 미래세에 가서
진리를 구해 볼 수만 있다면
피부ㆍ근육ㆍ골수 등 온 몸뚱이가
모두 마르고 녹아지더라도
몸과 목숨을 자재하게 해서
끝내 해탈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며
또한 미래세의 몸을 받을 때엔
항상 부지런히 선한 법을 닦아
밤낮으로 여섯 때5) 가운데
정진하여 초발심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때에 병든 비구가 이 게를 설하고 나서 마음에 두려움을 품었으므로, 그 형이 보고서 크게 걱정하고 가엾이 여겨 이렇게 말하였다.
“장하구나, 장해. 네가 이제서야 깊이 뉘우치고 서원(誓願)을 내었구나. 그러나 앞서 내가 가르쳐준 말을 네가 따르지 않았다 해서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를 설하였다.
질병이 위독함에 이르면
큰 목숨도 멀지 않았나니
팔다리가 다 늘어지고
칼바람[刀風]이 그 형체를 흩어 버리기 마련이라.
탕약으로도 낫게 하지 못하고
의사도 버리고 가버리니
좌우 사람들 모두 말하기를,
‘괴이쩍도다, 분명히 죽겠구나’ 하며
여러 친척들과 부녀(婦女) 등이
마주 보고 슬프게 곡(哭)을 하니
죽음에 가까워져서 겁나고 두려움이란
이루다 형언할 수 없네.
만약 평상시 건강할 때에
죽음의 고통이 이런 줄 알았다면
누군들 도심을 내어
해탈의 과(果)를 얻으려 아니할까.
씩씩한 나이에 병 없을 때
게으름 피우며 정진하지 않고
여러 잡된 일만을 도모할 뿐
보시ㆍ지계ㆍ선정을 닦지 않았기에
뒷날 무거운 병에 걸리어
모든 감관[根]이 불에 타는 듯 하다가
급기야 죽음에 먹히게 되어서야
비로소 뉘우치며 선한 업 닦기를 구하네.
저 병든 비구는 곧 목숨이 다하였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이때에 아라한이 천안(天眼)으로 관(觀)하여 그가 태어난 곳을 알고는 자주 그 집에 가보았다. 이 아이가 점점 자라자 유모가 안고서 승방(僧坊)의 아라한 처소를 방문했는데, 그만 아이를 꼭 잡지 못하고 손을 놓쳐 땅에 떨어뜨려서 머리가 돌에 부딪혔다. 아이가 크게 진심[瞋恚]을 내었기 때문에 몸을 버리고 목숨을 마쳐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에 아라한이 다시 천안으로 관찰하여 그가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난을 받는 곳에 태어난 것을 보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아, 큰 낭패로다.
이번에 태어난 곳은 구제하기 어렵겠구나.
부처님의 힘으로도 오히려 어려울 텐데
하물며 내가 구제할 수 있을까.
번뇌 없는 지혜에 마음을 묶어 놓기란,
고통에 허덕이는 자로선 닦을 수 없고
지옥에서 겪는 그 고뇌란,
잠시도 즐거운 마음 가질 수 없는데.
잠시도 즐거운 마음 없으면서
어떻게 생각을 묶어둘 수 있으며,
생각을 묶어둘 수 없는데
어떻게 번뇌 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요.
이와 같이 어려운 처지는
누구도 구제하기 어려우니
지옥에서 받는 큰 고뇌는
어느 것에도 비유할 수 없고
설령 다시 억지로 비유한다 해도
인간 세상에서 죽음의 고통은
조금 비유라도 할 수 있지만
저 지옥의 고통은 항상 이보다 더한지라.
마치 마른 땔나무에 불이 붙으면
잠시도 차가울 때가 없는 것처럼
지옥의 고통도 또한 그러하여
잠시도 쉴 사이가 없네.
지옥의 중음신(中陰身)6)은
모두 녹아 내리는 쇳덩이 같아서
뜨거운 번뇌에 타는 고통이야말로
이루 말하거나 헤아릴 수 없도다.
마땅히 게으름을 없애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바른 도를 닦아야만
그 고통의 짬을 다할 것이니.
바른 도를 먼저 닦아서
해탈의 과(果)를 얻어 놓고서
그 뒤에 다문하는 것으로
미묘한 영락(瓔珞)을 삼을지니라.
14
다음으로 이러한 사실을 보고 나선 응당 놀라서 깨달아야만 하리니, 존귀하고 호화로우며 영광스러운 지위도
항상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전단계니타왕(栴檀罽尼吒王)이 장차 계니타성으로 가려고 하는데, 도중에 5백 명의 구걸하는 아이들이 한소리로 구걸하며 말하였다.
“보시하십시오. 우리처럼 되리다.”
왕이 이 말을 듣고는 곧 깨달아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들이 나를 깨우쳐 주는구나. 나도 과거세엔 가난하여 괴로웠으니, 이제 만약 보시하지 않는다면 뒷날 또다시 저들처럼 되리라’ 하고는, 곧 게를 설하였다.
그 과거세에 있어서
돈과 재보가 많았음에도
보시할 것이 없다고 말했기에
금생에 이 빈천한 몸을 받았으니
나도 이제 보시하지 않는다면
뒤에 저들처럼 되리라.
이때에 천법(天法)이란 재상[輔相]이 말에서 내려 합장하고 왕께 아뢰었다.
“이 구걸하는 아이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와 같이 되리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대답하였다.
“나도 그 말을 들었네. 그러나 내가 이해한 것과 그대가 이해한 것이 다르네. 그대는 소위 돈이나 재보, 잡다한 물건들 따위를 구걸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지만, 내가 이해한 것을 그대에게 설하리니 그대는 이제 잘 듣게나.”
곧 게를 설하였다.
이 여러 구걸하는 아이들이
일부러 나를 깨우치기 위해
이렇게 빈천한 모습으로 다가와
내가 보도록 하고는
스스로 말하기를, 이러한 몸 받음은
인색하여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방일하여 속고 속아서
이러한 고뇌의 형상을 받았다 하네.
어리석고 용렬한 구걸하는 아이들이지만
나에게 이런 뜻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일찍이 왕이었을 때
마치 뭇 별들 가운데 달과 같아서
보배 일산으로 머리를 덮고
좌우에 기녀들을 거느리며
시종을 모두 장엄하여
듣는 자는 모두가 길을 비킬 정도로
그러한 갖가지 일을
다 갖추었으나
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가난하고 천한 고통을 받나니
복락이 당신의 마음을 미혹하여
후세의 괴로움을 깨닫지 못하게 하므로,
인간 세상의 왕이시여, 마땅히 아소서.
우리는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후세에 우리처럼 되지 않기 위해
마땅히 보시를 닦아야만 합니다.
재상 천법(天法)이 이 게를 듣고 나서 깊이 환희심을 내어 합장하고
왕께 아뢰었다.
“부처님 말씀에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 것을 보거든 자신을 관찰해야만 한다’고 하신 것처럼, 왕께서도 이제 부처님 뜻에 부합하여 저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고서 자신에 대한 일을 깨달았으니 훌륭하십니다, 대왕님. 생각이 찬찬하시어 능히 이 일을 깨달으시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분별해 이해하시니, 대왕님께서는 진실로 큰 땅을 지니신 그 땅의 주인이라고 불러도 허망하지 않겠습니다. 왜냐 하면 불법의 깊은 이치를 잘 분별하시어 총명한 지혜에 통달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대왕님을 큰 땅의 주인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지주는 언제나 그래야 하리니
이 뜻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나이다.
이 뜻이 한결같기도 어렵고
스스로를 이롭게 하기도 또한 어려우며
사람의 몸 얻기도 매우 어렵고
신심을 내는 것 또한 어려운 것이며
재보를 구족하기도 어렵고
복밭을 만나는 것은 더욱 어려우며
이러한 낱낱의 일을
한꺼번에 만나기란 지극히 어려운지라
마치 큰 바다에 사는 눈먼 거북이가
뜬 나무의 구멍을 만나기 어려운 것과 같은데
이러한 모든 어려운 일을
대왕께서는 다 구족하셨으니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마음과 뜻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몸이란 번개 같아서
잠시 번쩍하고 오래 머물지 않으므로
비록 사람의 몸을 다시 얻더라도
위태롭고 약해서 보전할 수 없으니
죽을 때는 두 어깨ㆍ팔ㆍ다리가
모두 다 늘어지게 마련이라.
비록 네 가지 위의를 갖추었던 이라도
나아가고 머무름에 자유롭지 않아서
눈은 이미 위로 박혀
장차 죽음의 독을 받게 되며
여러 친척, 그 옆에 모여 앉아
보고는 함께 슬피 울면서
그 몸을 어루만지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지만
친척들의 위안을 받는 이로선
슬픈 마음이 더욱 더하다가
자기의 죽음이 결정되었음을 알고는
죽음의 기나긴 길을 떠나가니
아무리 많은 재보가 있다 한들
무엇 하나 자기의 자량(資粮)이 될 수 없어
맥(脈)이 전부 끊어질 때엔
낯빛이 모두 다르게 변하고
마지막 숨을 재촉하는 것이
마치 기름 다된 등불 같네.
이러한 때를 당하게 되면
뉘라서 능히 보시와 지계, 인욕
정진과 선정, 지혜를 닦을 수 있으리요.
이러한 때가 이르기 전에
마음 쓰는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만 하리다.
15
다음으로 만약에 목숨이 끝날 때에 이르러 재보를 싸서 후세에까지 가져가려 한다면 그럴 이치가 없을 것이나, 오직 보시하여 지은 모든 공덕만은 예외이니, 후세에 빈궁하게 될까봐 두려운 사람은 마땅히 보시를 닦아야 할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나라에 난타(難陁)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진귀한 보물을 긁어 모아서 후세에까지 가져 가려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온 나라 안의 진귀한 보물을 모아들여서 밖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게 하리라.’
재보를 모으려는 탐욕 때문에 자기의 딸을 음녀(婬女)들의 누각에 두고 시종들에게 명령하였다.
“어떤 사람이든지 보물을 가지고 와서 딸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보물과 함께 나에게 보내라.”
이러한 방법으로 온 나라의 돈과 보물을 거두어 모아 죄다 국왕의 창고에 저장하였다.
그때에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 왕녀의 몸가짐과 옥을 두른 비범한 차림을 보고서 마음으로 매우 사랑하고 탐스럽기는 하나 집에 재물이 없어 자기로선 통해 볼 길이 막막한 나머지 그것이 곧 병이 되어 몸이 파리해지고 숨까지 미약해졌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물었다.
“네게 무슨 근심이 있느냐?”
이에 아들은 그 사정을 어머니에게 자세히 고하였다.
“제가 만약 저 왕의 딸과 교제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나라 안에 있는 일체의 돈과 보물은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어디 가서 보물을 구하겠느냐? 다시 생각해 보니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금전 하나를 입안에 넣어 두었으니, 네가 무덤을 파헤쳐서 그 돈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곧 어머니 말에 따라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의 입을 벌려 금전을 취하였다. 돈을 얻었으므로 바로 왕녀에게 갔는데, 그때에 왕녀는 이 사람을 그가 가진 돈과 함께 왕에게 보냈다.
왕이 보고 나서 이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라 안의 금은 보화는 모두 내 창고 안에 있는데 너는 어디에서 이 돈을 구해 왔느냐? 네가 이제
숨겨진 보물[伏藏]을 얻은 것이 틀림없구나.”
그리고는 갖가지로 때리면서 금전을 얻은 곳을 따져 물었다.
이 사람이 왕에게 고백하였다.
“저는 사실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 금전을 입 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일러 주었기에 제가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치고 이 금전을 꺼내었을 뿐입니다.”
그때에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하게 하여, 그 죽은 아비의 입에서 금전을 꺼냈다는 증거를 보고 받은 뒤에야 비로소 믿게 되었다. 왕이 이 일을 듣고 나서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이전에 일체의 보물을 거두어 모아 둔 것은 이 보물들을 후세에까지 가져가기를 바라서였는데, 저이의 죽은 아비는 금전 하나도 오히려 갖고 있을 수 없거늘 하물며 이 많은 보물이겠는가.’
곧 게를 설하였다.
지난날 내가 부지런히
일체의 진귀한 보물을 모아 둔 것은
모든 금전과 보물들이
후세에까지 나를 따라오길 바라서였는데.
이제 아비의 무덤을 파헤쳐
금전을 빼앗아온 자를 관찰해 보니
한 닢도 오히려 따라오지 않거늘
하물며 이 많은 값진 보물이겠는가.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모든 진귀한 보물들을
나를 따라 후세까지 이르게 하는
어떤 방편 있으리요.
옛날에 정생왕(頂生王)은
많은 군중(軍衆)들을 거느리고
코끼리ㆍ말ㆍ7보(寶)까지 아울러
모두 천상에 이르니
나마(羅摩)7)가 풀로 다리를 놓아
능가성(楞伽成)에 도달했지만
나는 이제 하늘에 오르고 싶어도
사다리 층계 하나 없고
능가성에 가고 싶어도
나루도 다리도 없으니
내게 무슨 계책이 있어
보물을 가지고 후세에 이르리요.
그때에 총명하고 지혜로운 한 재상이 이미 왕의 뜻을 알아 차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왕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진리이니, 설령 후세에 몸을 받아 반드시 재보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지금의 값진 보물과 코끼리ㆍ말 등을 후세에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왕께서는 지금의 이 몸뚱이조차도 후세에까지 이르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재보와 코끼리ㆍ말 따위이겠습니까? 만약에 이 진귀한 보물들을 후세에까지 이르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문이나 바라문, 빈궁하여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보시하는 길뿐이니, 사람에게 심어둔 복된 과보라야 반드시 후세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자신의 면목(面目)을 장엄한 이는
물에 비추면 훌륭한 모습을 보게 되리니
아름답고 추한 그 얼굴을 따라
그림자가 모두 물 속에 나타나기 때문이네.
장엄한 이는 그림자도 아름답고
더러운 이는 그림자도 추하듯이
금생의 몸이 얼굴 모습이라면
후세에 받을 몸은 그림자이네.
계율과 지혜로 모습을 장엄하면
후세에 가서 훌륭한 과보를 받겠지만
악행을 일삼았다면
과보를 받되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니
그러므로 신심의 재물로써
부모와 스승,
사문, 바라문과
빈궁하고 곤란에 빠진 자를 공양한다면
즉시 후세의 물에서
얼굴 모습을 보게 되고
보시ㆍ지계ㆍ지혜의 업(業)의 그림자도
또다시 그 속에 나타날 것이네.
대왕님을 둘러싼 뭇 시종들과
궁인과 채녀(婇女),
그 밖의 신하와 백성들
내지 음악 등을 하는 창기(倡妓)들이
대왕의 목숨이 끝날 때에 가서는
모두들 슬피 사모하여 무덤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집으로 가니
누구 하나 대왕님을 따를 이 없으며
후궁에서 시중들던 무리들과
창고에 가득한 온갖 진귀한 보물과
코끼리ㆍ말ㆍ보석으로 장식한 수레 따위와
오락에 쓰이던 일체의 도구
국토와 성읍, 모든 백성들과
동산의 유희하던 곳까지
모두 버리고 홀로 떠나가도
무엇 하나 따라가는 것 없지만
오직 평소에 지은 선악의 업만은
끝내 따라가서 없어지지 않으리.
재상이 다시 왕께 고하였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숨이 거칠어지고 목구멍과 혀가 타들어가 물도 넘기지 못하며, 말이 분명하지 못하고, 쳐다보는 눈이 단정하지 못하며, 근육과 맥이 끊어지고, 칼바람이 몸을 저며 팔다리가 늘어져서 모든 기관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마침내 온몸이 쓰라리기가 마치 침으로 찌르는 듯하다가, 마지막으로 그 목숨이 다할 무렵에는 커다란 어둠만이 보이는데, 마치 깊은 구덩이에 떨어져 홀로 넓은 들판을 헤메는 것 같아서 누구 하나 함께하는 이 없지만, 오직 평소에 닦은 복만은 친구가 되어 옹호해 주니, 만약 후세를 위해서라면 빨리 복을 닦아야 마땅합니다.”
곧 게를 설하였다.
어떤 사람이건 목숨이 끝날 때엔
벗 없이 홀로 가는 것이므로
사랑하던 모든 친구들을
끝내 다 버리고 떠나가네.
홀로 캄캄한 어둠 속의
그 두렵고 겁나는 곳을 지나
친애하던 모든 것 다 버려서
쓸쓸하고 외롭기만 하니,
그러므로 후세의 자량(資粮)이 되는
선한 법으로 장엄해야 하리라.
이 뜻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해 바라유지(婆羅留支)가 여섯 게송으로 왕을 찬탄하였다.
아무리 많은 값진 보물이
설산(雪山)처럼 쌓여 있고,
코끼리와 말과 보석으로 장식한 수레
그 밖에 모신(謀臣)과 주술 등
온갖 것을 다 갖추어 있다 해도
죽음의 때가 다가오면
면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여
모든 선한 법을 닦는 것이
자신을 위한 이익과 즐거움이 되네.
청련(靑蓮) 같은 눈을 가진 이라면,
부지런히 지계와 보시를 닦아야 하니
죽음이란 그 큰 두려움을
듣는 이마다 다 겁을 내지만
일체의 모든 세간에서
끝내 죽지 않는 이 없으므로
우리 대왕님께선
죽음의 고통을 잘 관찰하셔야만 합니다.
청련 같은 눈을 가진 이라면,
선한 업을 닦아야만 하며
자신을 위한 이익과 즐거움을 얻으려면
부지런히 지계와 보시를 행해야 하니
사람의 목숨이 끝날 때엔
재보가 끝까지 따라오지 않고
씩씩한 모습과 젊은 나이도
끝내 다시 돌아 오지 않네.
청련 같은 눈을 가진 이라면,
선한 업을 닦아야만 하며
자신을 위한 이익과 즐거움을 얻으려면
부지런히 지계와 보시를 행해야 하니
미력나후사(彌力那候沙)
야야제대왕(耶耶帝大王)
둔두마라(屯豆摩羅)
사가질리불(娑伽跌利不)
교리사세부(翹離奢勢夫)
유월빈세파(踰越頻世波) 등
이와 같이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여러 잘난 대왕들도
급기야 목숨이 끝날 때에 가선
군중(軍衆)과 신하들을 다 버리고
근심이 상속해 생겨나
슬픈 생각만이 차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청련 같은 눈을 가진 이라면,
마땅히 선한 업을 닦아야만 하며
자신의 쾌락을 받으려면
부지런히 지계와 보시를 행해야 하니,
재보와 부귀영화도
매우 만나기 어려운 일이고
복록(福祿)도 항상 있는 것 아니며
몸의 힘도 더하고 덜함이 있어서
일체 일정한 상(相)이 없고
땅의 주인도 또한 덧없는 것이지만
이와 같이 가장 어려운 일들을
이제 대왕께서는 다 갖추어 얻으셨습니다.
청련 같은 눈을 가진 이라면,
마땅히 선한 업을 닦아야만 하며
자신의 쾌락을 받으려면
부지런히 지계와 보시를 행해야 하니
굳세고 용감한 힘을 가진 이는
큰 바다를 넘어 건널 수 있고
한 가지에만 전념한 굳센 장부는
모든 산을 뛰어오를 수 있지만
설령 이런 일을 행한다 해도
어려운 일을 한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후세를 이익되게 하는 일만이
가장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라 하리라.
16
다음으로 이 몸이란 본래 견고하지 않은 것이므로 지혜로운 이는 응당 분별하여 웃어른[尊長]을 공양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견고하지 않은 법을 견고한 법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모니(牟尼)의 종성(種姓) 중에 아육(阿育)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삼보(三寶)를 믿고 좋아해서, 고요한 곳에 부처님 제자가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말에서 내려 발에 대고 예배 하였다.
그때에 저 왕에게는 야사(耶賖)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삿된 소견 때문에 삼보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왕이 여러 비구들에게 예배 공경하는 것을 보고는 깊이 비방하고 헐뜯는 마음이 생겨서 왕에게 아뢰었다.
“이 여러 사문들은 모두 잡된 종성에서 출가하였으니, 찰리(刹利)8)도 바라문9)도 아니고 또한 비사(毘舍)10)도 수타라(首陁羅)11)도 아니며, 또 그들 중에는 가죽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옷감을 짜거나, 벽돌과 기와를 찍어 내거나, 수염과 버리털을 깎던 자들도 있으며, 가장 천한 전다라(旃陁羅)12)도 있는데, 대왕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자들에게 예를 올리십니까?”
왕이 이 말을 듣고도 묵묵히 대답하지 않다가, 그 뒤에 따로 여러 대신들을 모아 놓고 명령을 내렸다.
“내가 지금 갖가지 동물의 머리가 필요하지만 죽이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 그대들은 자연히 죽은 것만을 구해오너라.”
그리고 거듭 대신들 각각에게 ‘누구는 무슨 동물의 머리를, 또 누구는 무슨 동물의 머리를 구해 오라’고 다짐하되 각기 다른 종류의 머리를 구하게 하여 공동으로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한편 야사에겐 ‘자연히 죽은 사람의 머리를 구해오라’고 명하였다.
이와 같이 각종으로 구해 드린 머리를 각자 시중(市中)에 가서 팔아 오게 하였는데, 다른 머리들은 다 매매가 되었으나
사람의 머리만은 보는 사람마다 싫어하고 천히 여겨서 멀리 피해 달아날 뿐 사려고 하는 이가 없었으며, 이것을 본 뭇 사람들이 모두 다 꾸짖고 욕하였다.
“너는 전다라도 아니고 야차나 나찰도 아니면서 왜 죽은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다니느냐?”
대신 야사는 이런 꾸지람과 욕설을 듣고는 왕에게 돌아와 고하여 말하였다.
“제가 사람의 머리를 팔려고 했으나 사는 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꾸지람과 욕설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다시 말하였다.
“값을 받을 수 없거든 거저라도 주고 오너라.”
이때에 야사는 곧 왕의 가르침을 받들어 시중에 들어가 외쳤다.
“이 사람의 머리를 거저 주겠노라.”
시중의 사람들은 보고는 다시 꾸짖고 욕할 뿐 가져가려는 이가 없었다. 야사는 무안하고 부끄러워서 왕의 처소에 돌아와 합장하고는 게를 설하여 말하였다.
소ㆍ나귀ㆍ코끼리ㆍ말과
돼지ㆍ염소같은 가축의 머리는
다 쓰일 데가 있는 것이어서
모두들 앞다투어 사려고 하므로
누구나 그 값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의 머리만은 더럽고도 흉하여
쓰일 곳이 하나도 없는 것이어서
거저 주어도 가져가려 하지 않고
도리어 꾸짖고 욕하거늘
하물며 살 사람인들 있겠는가.
왕이 야사에게 물었다.
“네가 사람의 머리를 팔려고 하는데 왜 사람들이 사지를 않았는가?”
야사가 대답하였다.
“보는 사람마다 싫어하고 천하게 여겨서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머리만이 아니라 일체의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다 싫어할 것이 아닌가?”
야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 한 사람만이 아니고 일체 사람들의 머리를 죄다 싫어할 것이 분명합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의 머리도 역시 사람들이 다 싫어할 것이 아니겠는가?”
야사가 이 말을 듣고는 두려워서 감히 대답을 못하고 잠잠히 서 있었다.
왕이 계속해서 말하였다.
“내가 지금 너를 겁주려는 것이 아니니 사실대로 말해보아라. 나의 이 머리도 또한 사람들이 싫어하겠느냐?”
야사가 대답하였다.
“대왕님의 머리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왕이 거듭 물었다.
“과연 그렇겠느냐?”
야사가 다시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왕이 야사에게 타일러 말하였다.
“만약
이 사람의 머리가 귀하거나 천하거나 상관 없이 다같이 싫어한다면, 너는 이제 어째서 네가 부유하고 귀한 종성(種姓)임을 내세우며, 위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서, 내가 저 여러 사문 석종자(釋種子)들에게 예배 공경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느냐?”
곧 게를 설하여 말하였다.
사람의 머리만은
보는 이마다 꾸짖어
팔려고 해도 값이 없고
거저 주려 해도 싫어하여 가까이 오지 않아,
멀리서 보고는 모두 진심(瞋心)을 내어
상서롭지 못하다 말하며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네.
이 머리는 피고름 덩어리라,
더럽고 천하여 싫어할 만하다지만
이 하천(下賤)한 머리를
공덕(功德)의 머리와 바꾸어서
비록 그들을 향하여 몸을 굽히더라도
털끝만큼도 잃어버릴 것이 없으니
나 왕으로서 야사에게 이르노라.
네가 비록 비구들을
잡된 종성으로 비천하게 보더라도
그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진실한 도덕은 보지 못한 것이다.
너는 어리석고도 삿된 소견으로
미혹되어 마음을 착란시켜서
자기의 바라문 종성에만
해탈의 몫이 있고
나머지 다른 종성에는
해탈할 수 있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만약에 혼인을 맺고자 한다면
마땅히 종족을 구해야 하겠지만
선한 법을 구하고자 한다면
어찌 종족이 필요하겠는가.
만약 법을 구하는 이라면
종성을 따지지 않을 것이니
비록 높은 종성으로 태어났더라도
극악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뭇 사람들이 모두 꾸짖으리니
이것이 곧 하천(下賤)한 종성일 것이며
종성은 비록 하천할지라도
마음 속에 진실한 도행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존귀한 종성일 것이네.
덕행이 이미 충만하다면
무엇 때문에 예경하지 않겠는가.
마음이 악하면 모습도 천하고
마음이 선하면 몸도 귀하게 되니
사문은 모든 선업을 닦아서
신심ㆍ보시ㆍ계율ㆍ다문을 구족하였으므로
존경하고 숭상할 만하기에
깊이 사모하고 공경해야만 하리라.
악행을 짓는 자여,
그대는 이제 정녕 들어 보지 못하였는가.
대비심을 갖춘 석종(釋種)이시고
바른 도를 닦은 우왕(牛王)께서
말씀하신 법을 말이네.
세 가지 위태로운 법을
세 가지 견고한 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부처님께서도 다르게 말하지 않으셨기에
나는 감히 어기지 않으리라.
만약 세존의 가르침을 어긴다면
선한 법을 가까이한다고 할 수 없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사탕수수를 눌러서
즙만 짜내고 찌꺼기는 버리듯이
사람의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죽음에 눌리어
시신과 뼈를 땅에 버리고
다시는 몸을 움직여
모든 선한 법을 닦는 이들을 공경할 수 없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이 허물어질 몸뚱이를
견고한 법으로 바꾸어야 하니
마치 집에 불이 나면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먼저 꺼내고,
홍수로 땅 속의 광이 잠기게 되면
또한 속히 보물을 꺼내는 것처럼
이 몸도 마침내 허물어질 것인즉
마땅히 견고한 법으로 바꾸어야 하건만
견고한 법과 견고하지 않은 법을
어리석은 사람은 분별하지 못하기에
죽음의 군졸이 갑자기 다가오면
마치 마갈어(摩竭魚)의 입에 들어가듯이
이러한 죽음의 때를 당함으로써
매우 놀라고 두려워하게 마련이라.
낙(酪)13)으로 소(酥)14)를 만들고
또 제호(醍醐)15)까지 만들지만
만들고 난 뒤에는 낙이 담겼던 병(甁)이 깨지더라도
크게 고뇌하지 않는 것처럼,
이 몸도 또한 그와 같아서
견실한 선법(善法)을 얻었다면
훗날 목숨이 다했을 때라도
끝내 후회함이 없을 것이네.
모든 선행을 닦지 않고
교만하여 방일하다가
죽음의 법이 갑자기 다가와
몸이라는 병(甁)을 깨뜨리매
그 마음이 극도로 초조하여
마치 뜨거운 불에 타는 것 같으니
근심은 비유하자면 불과 같고
낙이 담긴 병은 비유하자면 몸과 같네.
그대는 내가 선한 법을 닦아
견고한 법 가지려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고 어두운 자만이
스스로 존귀하다 말하는 것이네.
나는 십력(十力)을 가지신 세존의 말씀을
등불로 잡아 지녀서
자기의 몸을 비춰 살핌에
귀하고 천함의 차별은 없으니,
피부나 근육 등 서른여섯 종류가
귀하거나 천하거나 모두 동등한데
어떤 차별된 상(相)이 있으리요.
이름난 옷이나 좋은 의복
많은 도구들에 다름이 있을 뿐이네.
지혜로운 이는 몸을 삼가서
선한 행을 닦아 견고한 법을 가지는
그런 이에게 공경 예배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견고한 법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네.
왜 이것을 설하느냐 하면,
이 몸뚱이는 번개처럼 빠르기도 하고
물거품ㆍ모래 무더기ㆍ파초처럼
견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위태로운 몸이라도
선법을 닦아 백 겁을 지난다면
저 수미산보다 견고하고
대지(大地)처럼 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니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이와 같아서
견실한 법으로 바꾸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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