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93권
대보적경 제93권
후진 삼장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
26. 선비보살회(善臂菩薩會) ①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때 어떤 보살마하살 선남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선비(善臂)였다. 그는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였다. 예배를 마치고는 물러나 한 쪽에 가서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 선비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을 보살은 늘 완전하게 갖추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고 하면 단(檀) 바라밀․시(尸) 바라밀․찬제(羼提) 바라밀․비리야(毘梨耶) 바라밀․선(禪) 바라밀․반야(般若) 바라밀이니라.
선남자야, 이 여섯 가지 바라밀을 보살은 늘 완전하게 갖추어야 하느니라.
선비야, 어떤 것을 보살이 단(檀) 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어 행한다고 하는 는가? 선비야, 보살이 온갖 마을에서 바른 생활[正命]을 위하여 재물을 구하고 삿된 생활[邪命]을 위하여 재물을 구하지 않는 것이며, 순하게 따라서 거스르지 않고 중생들을 핍박하지 않고 구한 재물을 가지고 보시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시를 실천하는 것은 공경(恭敬)을 받고자 해서거나, 공양(供養)을 받기 위함이거나, 명성(名聲)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때문도 하는 것도 아니요 과보(果報)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며, 하늘에 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요 아첨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니라.
또 계율을 잘 지키거나 계율을 범하거나 간에 비방도 하지 않고 칭찬도 하지 않으며, 혹은 지식이 있는 이에 대해서나 지식이 없는 이에 대해서 그들을 평등한 마음을 가지고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며, 또한 계율을 잘 지키는 이거나 계율을 범한 이거나, 친한 사람이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잘 아는 사람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원한이 있는 이거나 원한이 없는 이거나 간에 항상 매우 존중하고 공경하며 사랑하고 믿고 좋아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곧 지니고 있는 대로 항상 은혜를 베풀어 보시해야 하나니, 가진 것이 적으면 적게 보시하고,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이 보시하며, 거친 것이 있으면 거친 것을 보시하고, 부드러운 것이 있으면 부드러운 것을 보시하며, 묘한 것이 있으면 묘한 것을 보시하고, 묘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묘하지 못한 대로 보시하며, 또 값어치가 십만쯤 되는 최상의 찬(饌)과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가 남에게 보시하기도 하고, 혹은 1전(錢) 어치를 열 여섯 등분한 것에서 한 몫을 가져다가 보시하면서도 그 마음은 기뻐하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이 보살은 모든 걸식(乞食)하는 이들이 밥을 필요로 하면 밥을 보시하나니 온갖 지혜의 힘을 두루 갖추기 위함이요, 마실 것을 필요로 하면 마실 것을 보시하나니 중생들의 갈애(渴愛)하는 힘을 끊기 위해서이며, 옷을 필요로 하면 옷을 보시하나니 더 이상 부끄러워 할 것이 없는 옷을 얻기 위함이며, 탈 것을 필요로 하면 탈 것을 보시하나니 보살승(菩薩乘)과 불승(佛乘)을 얻기 위함이요, 향을 필요로 하면 향을 보시하나니 바르게 깨달아 계율 지니는 향[持戒香]을 얻기 위해서이니라.
꽃을 필요로 하면 꽃을 보시하나니 여래의 칠각화(七覺花)를 얻기 위함이요, 가루 향이 필요하다 하면 가루 향을 보시하나니 온갖 중생들의 착하지 않는 향을 없애주기 위함이며, 바르는 향이 필요하다고 하면 바르는 향을 보시하나니 결함이 없는 계향(戒香)의 몸을 얻기 위함이요, 일산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산을 보시하나니 중생들의 번뇌의 불을 끊게 하기 위함이며, 가죽신이 필요하다고 하면 가죽신을 보시하나니 한량없는 지혜의 즐거움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평상이 필요하다고 하면 평상을 보시하나니 중생들에게 제석(帝釋)과 범왕(梵王)의 거룩한 평상에서 누리는 쾌락의 힘을 얻게 하기 위함이요, 앉을 곳이 필요하다고 하면 앉을 곳을 보시하나니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앉으면 모든 악마와 번뇌가 그 앉은자리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집이 필요하다고 하면 집을 보시하나니 중생들이 가리고 보호받을 곳을 얻어서 두려운 것이 없고 나라고 고집함이 없는 힘[無我力]을 얻게 하기 위함이니라.
경치 좋은 공원과 누각[園觀]을 부처님과 스님들께 보시하나니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한 선정의 힘을 얻기 위함이요, 묘한 공양거리를 가져다가 갖가지로 장엄하여 모든 부처님의 탑묘(塔廟)에 보시하나니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지닌 대장부의 힘을 얻기 위함이며, 또 부처님의 탑에나 까깜한 어두운 길에
등불을 켜서 광명을 보시하나니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의 밝은 눈을 얻기 위함이요, 온갖 음악을 삼보(三寶)에 공양하나니 한량없는 천이(天耳)를 얻기 위함이니라.
옷과 발우를 보시하나니 더할 나위 없이 단정하고 엄숙함을 얻고 계율을 지니기 위함이요, 부채와 세숫대야를 사람들에게 보시하나니 중생들로 하여금 시원하고 청정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종이와 붓과 먹과 높은 자리를 보시하나니 위없는 큰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함이요, 병든 이에게 약을 보시하나니 중생들의 번뇌의 병을 없애 주기 위함이며, 땅을 다른 이에게 보시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3승(乘)의 몫의 감로계(甘露界)를 얻게 하기 위함이니라.
탑과 형상을 조성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법을 듣게 하기 위함이요, 가지고 있는 물건을 속히 사람들에게 보시함은 신통의 민첩하고 빠른 힘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보시가 청정함은 위없는 도 가운데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함이요, 항상 끊임없이 보시하는 것은 끊임없는 변재(辯才)의 힘을 얻게 하기 위함이며, 뜻에 따라 맞추어서 보시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대비(大悲)를 얻게 하기 위함이요, 남을 괴롭히지 않고 구한 재물을 가지고 보시하는 것은 모든 악마와 외도로 하여금 어지럽게 하지 못하게 하고 저절로 위없는 도를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보살의 보시는 마땅히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은혜를 베풀어 보시를 행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위와 같은 보시를 하고자 하면, 혹 자신에게 재물이 없어도 보시하려는 마음을 내어야 하며,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힘이 있거나 힘이 없거나 간에 위에서와 같이 보시할 때 이것이 곧 나의 착한 행이요 나의 이 묘하고 훌륭함이 바로 나의 보물이니, 세간의 중생들로 하여금 있는 모든 쾌락을 성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른바 화합의 즐거움을 얻고 온갖 것을 능히 버리면서도 추호만큼의 의심도 없게 하며, 온갖 소원이 모두 성취되어 안락한 행을 얻게 하리니, 만일 모든 세간에 있는 중생들이 필요한 물건 얻기를 희망하면 나는 당연히 그에게 주어 만족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값진
보배와 금은과 의복과 금전과 재물은 마치 산처럼 쌓이게 하고 음식 거리는 마치 큰 바다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게 많게 해주어야 한다.
이 보살은 낮과 밤의 각각 세 때[三時] 중에 자기가 지은 재물의 보시와 법의 보시로 인하여 얻게 될 과보를 모든 중생들과 같이하기를 서원하며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온갖 행(行)이 있는 중생들로 하여금 묘한 나라의 경계와 세간을 벗어나는 즐거움을 내게 하느니라.
이 사람이 비록 이와 같이 보시를 한다 하더라도 끝내 그 과보를 바라거나 구하지 않으며, 이러한 방편을 열어 보임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착한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한 것이니라.
이 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제도되고 해탈되기를 바라고,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게 하기 위해서이며, 또 보시하거나 보시하고 나서도 역시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되기를 바라고,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와 같은 보시를 만일 힘이 없어서 그것을 배우지도 못하고 재물을 버릴 수도 없으면, 이 보살은 마땅히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시시 때때로 점점 간탐(慳貪)과 인색의 번뇌[垢]를 끊어 없애리라. 이제 나는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시시 때때로 차츰차츰 재물을 버리고 베풀어주는 것을 배우며, 항상 보시하는 마음을 더욱 자라게 하고 넓혀나가며, 내지 살아 있는 동안은 끝끝내 게을리 하지 않고 마음으로 늘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보살은 보리의 마음[菩提心]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염(念)하며, 보리의 마음을 닦고 보리를 희망하며 보리 구하기를 원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한량없는 아승기(阿僧祗)의 큰 보시[大施]․큰 버림[大捨]․큰 냄[大出]이라고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와 같은 보시는 모든 보시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첫째가는 것이므로 나로 하여금 미래 세상에서 온갖 세간에 있는 모든 중생들 가운데에서 법의 비[法雨]를 내리게 하고 감로의 비[甘露雨]를 내리게 하며,
법의 비를 베풀고 감로의 비를 베풀며, 법의 비를 내고 감로의 비를 내게 하기 때문이니라.
선비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하되 조금도 어렵다고 여기지 않고 즐겁게 여기면 빠른 시간에 단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자기의 몸과 팔다리를 구걸하는 이에게 보시할 때에는 자신이 직접 베거나 다른 이를 시켜서 베게 할 수는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만일 이런 업(業)이 성럽되면 구걸하는 이로 하여금 큰 지옥에서 한량없이 많은 죄를 받게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자기의 몸과 팔다리를 아까워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 까닭은 구걸하는 이로 하여금 매우 크게 불선(不善)한 업을 멀리 여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어떤 구걸하는 이가 보살에게로 와서 필요한 것을 구걸할 때에 보살은 만일 자기에게 재물이 없으면 부모․처자․권속․친척․노비를 억지로 핍박하여 그 재물을 취하여 저 가난한 이들이 물건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보시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온갖 중생들 가운데 평등한 자비의 마음을 행해야 하기 때문이니, 만일 보살마하살이 부모․처자․권속․친척 및 노비 등을 핍박하지 않고 얻은 재물을 가져다 보시한다면 보살은 그때 중생들 가운데에서 자비의 마음을 얻은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다른 중생들에게 간탐하는 마음과 인색하게 구는 마음을 지니거나 다른 중생들을 핍박하여 취한 재물을 가지고 보시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런 일에 대해서도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찬탄하지 않으셨는데 더구나 제 자신이 팔다리를 베어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이겠느냐? 이것을 보살이 단바라밀을 완전히 갖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선비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시(尸) 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하는 것이냐?
선비야, 이 보살은 온갖 중생들에게 그 몸이 다하는 날까지 제 자신이 직접 살생(殺生)하지도 않고 다른 이를 시켜서 살생하게 하지도 않으며 살생하지 않겠다고 서원(誓願)해야 하느니라. 제 자신이 직접 도둑질[偸盜]을 하지도 않고 다른 이를 시켜서 도둑질을 하게 하지도 않으며 도둑질을 하지 않겠노라고 서원해야 하느니라. 제 자신이 직접 삿된 음행[邪婬]을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삿된 음행을 하게 하지도 않으며 삿된 음행은 하지 않겠노라고 서원해야 하느니라.
제 자신이 직접 거짓말[妄語]을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거짓말을 하게 하지도 않으며 거짓말은 하지 않겠노라고 서원해야 하느니라. 나아가 목숨을 마칠 때가지 제 자신이 직접 술을 마시지도 않고 다른 이를 시켜서 술을 마시게 하지도 않으며 술은 마시지 않겠노라고 서원해야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 다섯 가지 계율[五戒]을 항상 굳게 지키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하고 해이해지지도 않고 잊어버리는 일도 없이 부지런히 정진에 박차를 가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두렵게 하거나 결박하여 가두거나 채찍질하고 죽이는 따위의 일들은 영원히 끊고 아주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또 이간질[兩舌]․나쁜 말[惡口]․거짓말[妄語]․꾸며서 하는 말[綺語] 등도 역시 그와 같이 다 여의어야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는 마땅히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 내기를 마치 부모가 외아들을 사랑하듯 하리라. 만일 나의 부모님이 갖가지 화살․칼․몽둥이 등으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써 나에게 해를 가하더라도 나는 이런 가운데에서도 끝내 갚으려는 생각을 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마치 부모가 외아들을 생각하듯이 하리라.’
비유하면 마치 부모와 처자를 이별한지 오래였는데 어느 날 아침에 서로 만나게 되면 그 마음이 기뻐서 한량없이 펄쩍펄쩍 뛰는 것처럼 이와 같이 보살도 온갖 중생들을 보고서 그 마음에 기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이 보살이 살생하지 않는 계율[不殺生戒]을 지니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살생하지 않는 계율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요, 이 보살이 도둑질하지 않는 계율[不盜戒]을 지니는 것은 중생들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이의 도둑질하지 않는 계율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계율[不邪婬戒]을 지니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음행하지 않는 계율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요, 이 보살이 거짓말하지 않는 계율[不妄語戒]을 지니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진실한 말만 하는 계율[實語戒]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술을 마시지 않는 계율[不飮酒戒]을 지니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술 마시지 않는 계율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두렵게 하지 않는 계율[不恐怖戒]을 지니는 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금강정(金剛定)을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요, 이 보살이 결박하지 않는 계율[不擊縛戒]을 지니는 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結使]의 결박을 끊게 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가두지 않는 계율[不囚執戒]을 지니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 세계[道]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요, 이 보살이 채찍질하지 않는 계율[不鞭杖戒]을 지니는 것은 모든 악마의 번뇌의 장애를 멀리 여의고 법다운 선정[法定]을 얻으려고 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형벌로 죽이지 않는 계율[不刑戮戒]을 지니는 것은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지켜 보호하지 못하게[不護業]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이간질을 하지 않는 계율[不兩舌戒]을 지니는 것은 화합한 대중[和合衆]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계율[不惡口戒]을 지니는 것은 다섯 가지 범음성(梵音聲)을 얻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꾸밈말을 하지 않는 계율[不綺語戒]을 지니는 것은 말을 하고 설법하는 데에 장애가 없음을 얻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중생을 구하는 계율[求畏死衆生戒]을 지니는 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시름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두려움을 끊게 하기 위해서요, 이 보살이 다른 이의 물건을 애호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계율[不令漏失戒]을 지니는 것은 위없는 보리의 깨달음의 선정[覺定]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며, 어떤 다른 중생의 부녀와 처자가 혹 구속당하면 그때에 보살이 그 속에 들어가서 구원하는 것은 이지러지지 않는 법의 선정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다른 이에게 권하여 놓아주게 하는 것은 마음이 자재(自在)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자기 자신이 직접 놓아주거나 다른 이에게 권하여 놓아주게 하는 것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앉아 온갖 악마의 번뇌를 파괴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옥에 갇힌 중생을 보고 자기 자신이 석방하거나 다른 이에게 권하여 석방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자재함에 장애가 없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매를 맞는 중생을 보고 자기 자신이 직접 석방하거나 다른 이에게 권하여 석방하게 하는 것은 4무소외(無所畏)를 얻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형벌로 죽게 된 중생을 보고 자기 자신이 직접 석방하거나 다른 이에게 권하여 석방하게 하는 것은 네 가지의 법신(法身)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속이지 않는 계율[不誑戒]을 지니는 것은 보리수 아래의
사자좌(師子座)에 앉아 온갖 악마의 번뇌로 장애를 받지 않고 법다운 선정[法定]을 얻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싸움을 잘 화해시켜 오로지 기쁨만 내게 하는 것은 큰 성인의 대중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사랑스런 말의 계율[愛語戒]을 지니는 것은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좋은 말만 듣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사랑스런 말만 따라 하는 것은 말이 거짓되지 않게 하려는 때문이며, 이 보살이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는 계율[讚佛文詞戒]을 지니는 것은 성인의 위덕(威德)으로 대중들을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세 때[三時] 동안에 이 세간 어디에나 늘 계시는 과거․미래․현재의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비구승과 보살에게 온 몸을 던져 귀명(歸命)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보리수 아래의 사자좌(獅子座)가 파괴되지 않고 오로지 믿음[信]과 정진(精進)과 기억[念]과 선정[定]과 지혜[慧]에만 머무는 법다운 선정을 얻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세 때 동안 탑을 쓸고 물을 뿌리고 탑을 도는 계율[掃灑遶塔戒]을 받아 지니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족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법을 찬탄하는 계율[讚法戒]을 지니는 것은 위없는 법륜(法輪)을 굴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승가를 찬탄하는 계율[讚僧戒]을 지니는 것은 대중들에게 에워싸임을 얻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세 때에 삼보에 귀의하는 계율[歸依三寶戒]을 지니는 것은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곳에 귀의(歸依)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세 때에 모든 세간에 항상 불(佛)․법(法)․승가대중[僧]과 보살이 있어 비지 않기[不空]를 원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위없는 보리의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함이니라.
이 보살이 세 때에 모든 부처님께 설법해주시기를 권청(勸請)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10주(住)의 법의 비[法雨]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세 때에 모든 죄를 참회하면서 온갖 더러운 것을 버리고 벗어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온갖 애욕의 습기(習氣)를 끊어 없애기
위해서이다.
이 보살이 세 때에 온갖 선근(善根)을 화합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온갖 바라밀(波羅蜜)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세 때에 세간 어디에나 늘 계시는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성문․연각의 성현들과 보살들로부터 아래로는 여섯 갈래 세계[六趣]의 중생에 이르기까지 지니고 있는 모든 선근의 서원을 염(念)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위없는 보리에 소용되는 자량[資]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세 때에 보리 구하기를 서원(誓願)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위없는 보리에서 바른 결정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세 때에 온갖 선근의 위없는 도의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마지막에는 반드시 여래의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所畏]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부모와 사장(師長)에게 공급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보다 수승함이 없는 법다운 선정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두려워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보면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보시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파괴하거나 따지고 논란을 벌이는 일이 없는 방편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관청이나 도둑의 재난과 물과 불의 재앙을 구호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은 모든 역바라밀(力波羅蜜:十力)을 얻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부처님과 연각과 성문과 보살의 신족(神足)의 변화를 보고 그것을 따르고 계율을 잘 지니는 것은 위없는 신족의 힘을 얻기 위해서이며, 이 보살이 다른 이의 마음과 몸[身]․입[口]․뜻의 업[意業]을 보호하는 계율을 지니는 것은 여래께서 한량없이 많은 다른 이의 마음을 아시는 힘을 얻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만일 방일(放逸)하여 현재와 미래의 3승(乘)의 이치에 대한 생각을 상실한 이를 보고는 기억하고 잘 지녀서 상실하지 않게 되기를 서원하고, 이 보살이 법을 듣고 법을 쌓고 법을 설하는 계율을 지니는 것은 네 가지의 걸림 없는 변재[無礙辯]를 구족하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몸과 입과 뜻, 이 세 가지 업으로 지은 선근을 잘 지니고. 또 섭수하여 받들어 행하는 것은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제도를 받고 해탈하게 하려는 것이며, 온갖 지혜와 부처님의 법을 구족하게 하기 위해서니라.
이와 같은 선근을 모든 중생들을 위해 받아 행하기를 서원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하게 되기를 원하고 온갖 지혜를 얻으며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보살은 계율을 지니되 이지러지지도 않고 깨뜨리지도 않으며 폐기하지도 않느니라.
만일 힘과 세력이 없어서 닦아 배울 수 없는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이제 나는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시시 때때로 차츰차츰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멀리 여의어 없애고자 하며, 나는 다시 갑절 더 정진하여 시시 때때로 차츰차츰 계율 지니는 일을 잘 배워서 더욱 자라게 하고 만족하게 하겠으며, 살아 있는 동안 죽을 때까지 끝끝내 게을리 하지도 않고 근심하거나 시름하지 않으리라.’
선비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생각하며, 보리의 도를 닦고 보리를 희망하고 보리 구하기를 서원하나니, 이것을 한량없고 그지없도록 계율을 잘 지키는 선근(善根)이라고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와 같이 지니는 계율은 온갖 착한 계율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첫째가 되기 때문이며, 이 계율을 받아 지님으로써 세간에 있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무루의 계율[無漏戒]을 일으키게 하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계율[無學戒]을 일으키게 하며, 무루의 계율을 내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계율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선비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이런 계율을 잘 지니면서도 어렵다고 여기지도 않고 기뻐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면 빠른 시간에 시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선비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찬제(羼提) 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하는 것이냐?
이 보살은 자기의 권속이나 또는 다른 중생이 와서 보살의 목숨을 빼앗는다 해도 보살은 그때를 당하여 이런 일에 대하여 끝내 성을 내거나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혹은 어떤 다른 사람이 와서 보살의 재물이나 심지어는 처자까지 빼앗아가거나, 또는 이간질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며
거짓말을 하고 꾸밈말을 하거나, 또는 두렵게 하거나 결박하거나 가두거나 채찍질을 하거나 형벌을 가하는 따위의 갖가지 고통을 주는 일을 보살에게 가하여도 보살은 역시 되돌려 갚으려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만일 목숨을 빼앗고 온갖 재물과 처자까지 빼앗는다거나, 또는 이간질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며 거짓말을 하고 꾸밈말을 하거나 또는 두렵게 하고 결박하고 가두고 채찍질하고 형벌을 가하면, 이 보살은 이러한 모든 일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느니라.
‘이는 내가 나쁜 행을 했고 착하지 않은 업을 지은 과보이다. 내 스스로 지어서 내 자신이 받는 것이다. 혹 과거 세상에서나 혹은 현재의 세상에서 먼저 지었던 것에 대한 과보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인데, 내가 지금 당연히 받아야 할 과보에 대하여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낸단 말인가?’
또 선비야, 보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만일 다른 어떤 사람이 나의 목숨을 빼앗고, 또 모든 재물과 처자까지 빼앗으며, 또는 이간질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며 거짓말을 하고 꾸밈말을 하며, 또는 두렵게 하고 결박하고 가두고 채찍질하고 형벌을 가하더라도 나는 이러한 일에 대하여 성을 내어 해치거나 원수가 맺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조그마한 고통을 받는 것조차도 오히려 기쁘지도 않고 맘에 맞지도 않는데 어떻게 성을 내어 다른 이를 해친단 말인가? 장차 다음 세상에서 받을 모든 죄의 과보는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백천만 억의 고통이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기쁘지도 않고 좋아할 만한 것도 아니며, 뜻에 맞을 수 없는 온갖 과보이기 때문이다.’
또 선비야, 보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목숨이 있기 때문에 목숨을 끊어지게 되고 재물이 있기 때문에 재물을 빼앗기게 되며, 처자가 있기 때문에 처자를 빼앗기게 되고 귀가 있기 때문에 이간질하는 말․나쁜 말․거짓말․꾸밈말을 듣게 되며, 이 몸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결박․갇힘․채찍질 따위의 형벌이 따르는 것이다. 지금 나 자신이 목숨과 귀와 몸을 받고 있으므로 고통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것인데 어떻게 성을 내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친단 말이냐?’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눈은 곧 땅의 요소[地大]이니, 이것은 자기의 물건이요, 이것은 또 법의 경계이며, 이것은 제 성품이다. 축축한 성질은 물[水]이고, 더운 성질은 불[火]이며, 움직이는 성질은 바람[風]이니, 이것은 자기의 물건이요, 이것은 법의 경계이며, 이것은 제 성품이다.
이와 같은 온갖 목숨은 곧 무너지는 법이요, 사라지는 법이며, 다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감관은 바로 고통의 법이요, 또한 고통이 접촉의 법이며, 바로 고통을 받는 법이다. 온갖 몸 이것은 곧 고통의 법이요, 이것은 고통이 접촉하는 법이며, 이것은 고통을 받는 법이다. 이것은 자기 물건이요, 이것은 법의 경계며, 이것은 자기의 성품이다. 나의 지금 이 목숨은 바로 무너지는 법이요, 사라지는 법이며, 다하는 법이요, 고통의 법이다.
이 여섯의 감관도 고통이 접촉하는 법이요, 이것은 곧 나쁜 접촉과 닿게 되는 것인데, 내가 지금 어떻게 무너지는 법이요, 사라지는 법이며, 다하는 법인 이런 목숨에 대하여 성을 내며 다른 이에게 침략하고 해를 가하며 결박하여 저들과 원수를 맺는단 말인가? 왜냐 하면 이것은 자기의 물건이요, 이것은 법의 경계이며, 이것은 제 성품이기 때문이다.’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안[內]의 눈․귀․코․혀․몸․뜻은 내[我]가 아니요 나의 것도 아니며, 바깥[外]의 눈․귀․코․혀․몸과 뜻도 낸가 아니요 나의 것도 아니거늘 어떻게 지혜가 밝은 사람으로서 나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닌 이 여섯 감관을 장엄하게 꾸미고 애착할 것이며, 또 성을 내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단 말인가?’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인간 세계의 고통은 그래도 적은 것이다. 아귀(餓鬼)의 세계에는 고통이 더 많고 축생(畜生)의 세계는 고통이 더욱 더 많으며, 지옥(地獄) 세계의 괴로움은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몇 배나 더 많다. 인간에서의 조그마한 고통조차도 오히려 받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미래 세상에서 받아야 할 3악도(惡道)의 한량없는 괴로움이겠는가?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 성을 내며 다른 이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는 지금 한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조차도 오히려 성을 내며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거나 원수를 맺어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나는 장차 매우 심오한 법의 이치로써 모든 세간의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큰 장엄을 일으키고 크게 장엄한 뒤에는 기별(記別 : 授記)을 받게 될 것이며, 대승에 나아가 위없는 부처님의 법을 구족하게 될 사람이겠는가? 이 부처님의 법에서는 참지 못하고 다른 이를 침략하고 가해하거나 미워하고 질투하며 싸우거나 송사를 벌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안에서는 마땅히 인욕을 행하여 다른 이들에게 이익을 주고 싸우거나 송사를 벌이는 일에는 잘 화해시키며 질투를 품지 않아야 한다.’
선비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비지옥(阿鼻地獄)에서 모든 고통을 받을 적에도 원수에게 오히려 성을 내고 해를 끼치거나 헐뜯지 않아야겠거늘 하물며 인간 세상의 조그마한 고통을 받으면서 성을 내며 다른 이를 해쳐서야 되겠느냐?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다른 이가 성을 내면서 욕설을 퍼붓고 꾸짖고 비방하고 업신여기고 나쁜 이름을 들추어낸다 하여도 이러한 모든 악한 일을 다 참아내면서 자비심을 일으키고 순수하고 깨끗하여 때[垢]가 없어야 하나니, 그것은 여래가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모든 채찍질로 매를 맞는 두려움과 결박당하여 갇히는 일을 당한다 하여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다 참아내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야 하나니, 그것은 한 생각 깜빡하는 사이에 온갖 무명(無明)의 어두운 장애의 껍질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인욕과 자비로운 마음을 받아 행하는 것은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애욕과 성내는 것을 끊게 하려고 하는 때문이니라.
또는 귀를 베어낼 때에도 역시 인욕을 행하며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법을 듣고 믿게 하려고 하는 때문이고, 또 코를 베어낼 때에도 역시 인욕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단정하고 엄숙한 위없는 계율 지니는 향[持戒香]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며, 또 발을 자를 때에도 역시 인욕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여래의 4신족(神足)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또 손이 잘릴 때에도 역시 인욕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온갖 중생들을 섭취하여 고요함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요, 또 팔다리를 갈가리 찢길 때에도 역시 인욕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6바라밀을 두루 갖추게 하기 위해서이며, 또 눈을 후빌 때에도 역시 인욕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지혜의 눈을 얻기 위해서이고, 또 머리를 베어낼 때에도 역시 인욕하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여래의 온갖 지혜의 머리를 얻기 위해서이니라.
이 보살이 이와 같이 인욕으로 향하여 나아가며 생각하기를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제도를 받아 해탈하게 되기를 서원(誓願)하고 일체지(一切智)와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 나는 이제 이와 같은 인욕으로 더욱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제도 받고 해탈하게 되기를 서원하며 일체지를 얻고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게 하기 위하여 정진하느니라. 이와 같은 인욕으로 깨뜨리지 않고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황폐하게 하지 않으나, 만일 힘과 세력이 없어서 배울 수 없으면 이때에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때때로 점점 참지 못하는 법을 멀리 여의고 끊어 없앨 것이다. 지금 나는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때때로 점점 힘써 인욕을 배워서 이 인욕이 더욱 늘어나고 커져서 구족하게 할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끝내 게으르지도 않고 근심하거나 시름하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염하며 보리의 마음을 닦고 보리를 희망하고 보리 구하기를 서원하느니라.
이 보살은 바른 행을 일으켜 이러한 등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만큼의 기간동안 잘 인욕하는 것은 온갖 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들이 무루(無漏)의 인욕을 일으키고 무학(無學)의 인욕을 일으키며 무루의 인욕을 내고 무학의 인욕을 내게 하려고 하는 때문이니라.
선비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이런 인욕을 잘 행면서도
어렵다고 여기지 않고 기뻐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면 빠른 시간에 찬제(羼提) 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선비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비리야(毘梨耶) 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었다고 하는 것이냐?
선비야, 이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하느니라.
‘지금 이 시방 세계에 낱낱의 방면마다 한량없이 많은 세계가 있고 그 하나하나의 세계마다 또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중생들이 모여 있어서 그 끝과 한계가 없다. 나는 지금 장엄을 일으켜 이 중생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고 또한 쾌락을 얻게 할 것이다.
또 한량없이 많은 중생이 유익하고 쾌락이 되는 조건의 법에 대하여 잘 관찰하여 알고 선근의 법을 일으키기 때문에 나는 한량없이 많은 날을 지내는 동안 마음이 방일하기도 하였고, 혹은 다른 생각을 내기도 하였으며, 혹은 잠을 자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늘 생각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복덕이 더욱 자라나고 있었으므로 이 하나 하나의 생각 동안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선근으로 보리에 소요되는 자량[資]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제 낱낱의 생각 동안에 한량없이 많은 선근을 일으키고 더욱 늘어나게 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루기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지금 나는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매우 얻기 쉬운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나니, 그런 까닭에 위없는 도를 얻고자 하면 이 몸이 다하도록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세계의 중생들 중에서 어느 한 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여읠 수 있게 하는 것조차도 나는 오히려 낱낱의 생각 동안에 한량없는 선근을 일으켜서 더욱 늘어나게 하는데 더구나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일, 원수끼리 서로 만나는 일, 3악도(惡道)에서 고통 받는 일들을 멀리 여의고 끊어 없어지게 하는 것이겠느냐?’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한 생각 동안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고통을 멀리 여의고 끊어 없애게 하려고 하면 이 보살도 또한 한 생각 동안에 한량없는 선근을 일으키고 더욱 늘게 할 수 있거늘 하물며 미래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겁 동안의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과 사랑하는 사람을 이별하는 일, 원수끼리 서로 만나는 일, 3악도에서 고통 받는 일들을 멀리 여의고 끊어 없어지게 하고자 하는 것이겠느냐?’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성문과 연각의 법을 얻고자 하면, 이런 사람조차도 오히려 하나 하나의 생각 동안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선근을 일으키고 더욱 늘려나가야 하겠거늘 하물며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 법의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위덕(威德)과 세력을 성취하고 구족하려고 하는 것이겠느냐?
선남자와 선여인은 네 가지 인(因)과 네 가지 연(緣)과 네 가지의 경계에서 밤낮 없이 때로는 마음이 방일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생각을 내기도 하며, 혹은 잠을 자기도 하나 그때에도 하나 하나의 생각 동안 4무량(無量)의 그지없는 선근을 쌓아 모으므로 보리에 소요되는 자량을 일으켜 더욱 늘어나게 하고 있다.
내가 장차 하나 하나의 생각 동안에 사무량의 선근을 일으켜 더욱 늘려만 나간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인연 때문에 나는 보리는 매우 얻기 쉬운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보리의 도를 얻고자 하면 이 몸이 다하도록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4대해(大海)의 남쪽과 북쪽과 위와 아래의 그 끝은 얻기 쉽거니와 이러한 4무량의 선근의 큰 바다는 보리에 소요되는 밑천이라서 그 끝까지 다 얻기가 어려운 것이거늘 나는 이제 무엇 때문에
하나 하나의 생각 동안에 4무량의 선근의 큰 바다에서 보리에 소요되는 자량을 일으켜 더욱 늘리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위없는 도를 이루고자 하면 이 몸이 다하도록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사자․여우․이리․독수리․까치․까마귀․새․모기․등에․파리․이 따위의 이러한 무리들조차도 오히려 위없는 도를 증득하거늘, 하물며 나는 지금 인간 세계에 태어나 살면서 게으름을 피워서야 되겠느냐? 그러므로 위없는 도를 이루고자 하면 이 몸이 다하도록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심지어는 일백 사람 일천 사람도 오히려 모두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하였는데 지금 내 혼자만 성취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시방의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불 세존께서도 이미 성취하셨고 또 장차 성취하실 것이 분명함이겠느냐?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 이 몸이 다할 때까지 마땅히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다.’
또 선비야,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어떤 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며, 또는 성문이 설한 것이기도 하며, 또는 보살의 말씀이기도 하고 나아가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을 부처님이 되게 하기 위하여 설한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단(檀) 바라밀․시(尸) 바라밀․찬제(羼提) 바라밀․비리야(毘梨耶) 바라밀․선(禪) 바라밀․반야(般若) 바라밀이라면 이 보살은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려 하고 위없는 도를 이루고자 하며 온갖 지혜를 얻고자 하여 이 법 안에서 부지런히 정진을 더함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여 힘써 배우고 지니어 환히 통달하며 생각하고 분별하여 다른 이들을 위하여 해설하며 지혜롭게 정진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생각하리라.
이러한 보살은 만일 온갖 중생들의 설법하는 곳이 있으면 심지어는 칼과 몽둥이의 재난을 당한다 해도 반드시 그곳에 가서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며, 혹 어떤 중생은 현재 세상의 즐거움과 다음 세상에 즐거움을 받을 과보의 업(業)을 닦기도 하나니, 보살은
그때 곧 착한 법의 묘한 이치로써 법답게 이 착한 법을 돕고, 또한 부지런히 정진을 힘쓰느니라.
이 보살은 자기의 몸을 다른 중생에게 보시하여 저들로 하여금 자재함을 얻게 하는데, 마치 4대(大)를 온갖 중생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몸을 남에게 보시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자유로워지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또 지혜와 정진을 하면서도 심지어 칼과 몽둥이의 재난이 있다 하여도 항상 부처님․법․승가대중과 모든 사장(師長)들과 파리하게 늙은 이와 병들어서 괴로워하는 이와 가난한 이와 보호할 이가 없는 이에게는 더욱 더 공양하고 공경하고 그들이 부지런히 정진을 하는 것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는 것과 같다.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보시하고 사랑하는 말만 하고 유익하게 해주며 일을 같이하여 그들에게 잘 맞추어주며 거두어 주느니라.
성문승을 얻고자 하는 이는 조복하여 성문승에 안치(安置)하고, 연각승을 얻고자 하는 이는 조복하여 연각승에 안치하며, 보살승을 얻고자 하는 이는 조복하여 보살승에 안치하여 지혜롭게 정진하게 하되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느니라.
이 보살은 착한 법을 위하기 때문이며, 또 6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춥고 덥고 배고프고 목마르며, 모기와 등에의 독에 쏘이거나 바람에 날리고 햇빛에 그을리거나 나쁜 접촉과 비방과 욕설을 당하거나 간에 아무 상관도 하지 않고 갖가지의 고뇌와 고달픔과 잠을 자는 이런 일에 대하여도 따지지 않으며, 그 몸이 다하도록 끝내 기억하지도 않고 지혜롭게 정진하기를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며 심지어는 칼과 몽둥이의 재난이 있다 하여도 역시 게을리 하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위없는 도의 인연을 위하는 까닭에 갖가지 고통을 잘 견디어 내나니, 이른바 아수라와 사람과 3악도의 괴로움을 어렵다 여기지 않고 지혜롭게 정진하되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느니라.
이 보살은 용감하게 정진하고 의지가 견고하며, 세간을 벗어나는 부처님의 위없는 정진의 힘을 이루고자 하느니라.
이 보살이 비리야바라밀을 얻고자 하여
비리야바라밀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중생이 제도를 받고 해탈하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요, 온갖 지혜와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기 위하는 것이므로 ‘나는 이제 비리야바라밀을 향하여 나아간 뒤에도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하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요, 온갖 것을 아는 지혜와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기 위한 까닭에 이와 같이 정진하여 깨뜨리지도 않고 이지러뜨리지도 않으며 폐기하지도 않는 것이다.’
만일 세력이 없어서 구족하게 배울 수 없으면 이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이제 나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시간마다 점점 게으름을 끊어 완전히 없애리라. 나는 이제 힘써 정진하여 시간마다 점차로 정진을 잘 해서 이 정진을 더욱 광대하게 넓혀나가고 원만하게 갖추어야 하겠으며 살아있는 동안에는 끝끝내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겠고 근심하거나 시름하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보살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염하며 보리의 마음을 닦고 보리를 희망하나니, 이것을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의 훌륭한 정진(精進) 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정진은 다른 착한 법의 정진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첫째가는 것이기 때문이며, 일체 세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무루(無漏)의 정진을 일으키고 무학(無學)의 정진을 일으키며 무루의 정진을 내고 무학의 정진을 내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
선비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정진(精進)을 잘 하면서도 어렵다고 여기지도 않고 기뻐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면 빠른 시간에 시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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