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94권
대보적경 제94권
후진 삼장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
26. 선비보살회 ②
“선비야, 어떤 것을 보살이 단(檀) 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어 행한다고 하는가?
보살은 눈으로 빛깔을 보면서도 그 모양을 취하지 않고, 간혹 어떤 때 눈이 바깥의 연(緣)에 끌리더라도 마땅히 바른 행으로 수호하여 바깥 조건을 따르지 않게 하며, 마음을 무명(無明)에 머물러 세간 일을 탐착하지 않고 이 계율을 수호하고 지녀야 하느니라. 그렇게 하면 그것이 눈의 계율[眼根戒]을 두루 갖추고 지니는 것이니라.
귀가 소리를 듣고 코가 냄새를 맡으며, 혀가 맛을 맛보고 몸이 접촉을 느끼며 뜻이 법을 아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이 보살은 가고 서고 앉고 눕거나 설법하거나 잠자코 있거나 간에 끝끝내 고요한 선정[寂定]의 마음을 멀리 떠나있지 않고, 손발을 잘 단속하고 보호하여 산란함이 없으며, 항상 부끄러워함[慚愧]을 간직하고 입으로 짓는 업[口業]을 잘 보호하며 편안한 자세로 자세하게 똑바로 보고 마음은 항상 고요하게 가지며, 실없이 웃지 않고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잘 다스려서 그로 하여금 고요하게 하느니라.
또 으슥한 곳이든 드러난 곳이든 간에 삿된 마음이 없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복․음식․침구․의약 등 물건에 대하여 마음에 항상 만족할 줄을 알며, 부양하기도 쉽고 만족하기도 쉽고 심부름하기도 쉽게 하며, 고요함을 잘 수행하고 시끄러움을 멀리 여의며, 이익[利]․손해[衰]․뒤에서의 비방[毁]․뒤에서의 칭찬[譽]․앞에서의 칭찬[稱]․앞에서의 비방[譏]․괴로움[苦]․즐거움[樂]에 대해서도 마음에 조금도 달리 함이 없으며, 뽐내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느니라.
또 목숨이 있는 것이나 목숨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며, 성냄도 없고 좋아함도 없으며 원수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보아 마치 갓난아이처럼 여기며, 참는 이거나 참지 못하는 이에 대해서도 마음에 항상 평등하게 보며, 성현의 소리난 범부의 소리, 조용한 소리나 어지러운 소리에 대해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며, 미운 색이나 좋은 색에 대해서도 마음에 높낮이가 없으며, 물듦․성냄․사랑․사랑하지 않음을 다 여의며, 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법(法)에 대해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느니라.
이 보살은 욕심[欲]은 마치 뼈가 엇섞임과 같다고 관(觀)하나니, 삿된 기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욕심은 마치 살덩이와 같다고 관하나니 원한과 미움이 많기 때문이며, 욕심은 마치 횃불과 같다고 관하나니 괴로움의 법에 물들어 집착하여 즐거움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요, 욕심은 마치 나무에 달린 열매와 같다고 관하나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니라.
욕심은 마치 빌린 것과 같다고 관하나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요, 욕심은 마치 꿈과 같다고 관하나니 생각마다 사라지기 때문이며, 욕심은 마치 종기와 같다고 관하나니 괴로움이 있는 뒤바뀐 가운데 즐겁다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요, 욕심은 마치 갈고리와 같다고 관하나니 온갖 나쁜 법을 행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지기 때문이며, 욕심은 마치 잿빛 강물[灰河]과 같다고 관하나니 욕심은 더하면 더할수록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보살은 이와 같이 관하고 나서는 욕심 세계의 나쁜 법, 즉 불선(不善)한 법을 여의고, 크게 관찰[覺]하기도 하고 세밀하게 관찰[觀]하기도 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 내는 것도 여읜 초선(初禪)의 행을 이루게 되며, 크게 관찰하는 것과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여의고 안으로 청정하게 믿는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며, 크게 관찰하는 것도 없고 세밀한 관찰도 없는 선정에서 기쁨이 생기는 2선(禪)의 행을 이루게 되느니라.
기쁨을 여의고 버림을 실천하려는 생각[捨念]을 하고, 바른 지혜로 한 마음이 되고 몸으로 즐거움을 행하되 모든 성인이 행할 능력도 있고 버릴 능력도 있는 3선(禪)의 행을 이루게 되며, 괴롭거나 즐거운 뜻을 버리고 먼저 있던 근심과 기쁨이 없어지며 평등함을 행하여 생각이 청정해지는[行捨念淨] 4선(禪)의 행을 이루게 되느니라.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즐겁다는 생각[樂想]을 사유(思惟)하면 한량없고 그지없는 인자한 마음[慈心]을 성취하게 되고, 중생들에 대해서 괴롭다는 생각[苦想]을 사유하면 한량없고 그지없이 가여운 마음[悲心]을 성취하게 되며, 중생들에 대하여 기쁘다는 생각[喜想]을 사유하면 한량없고 그지없이 기뻐하는 마음[喜心]을 성취하게 되고, 중생들에 대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린다는 생각[捨苦樂想]을 사유하면 한량없고 그지없는 평등의 마음[捨心]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보살이 물질이라는 생각[色想]을 사유(思惟)하지 않으면 공처(空處)의 고요한 행[寂靜行]을 성취하게 되고, 공하다는 생각[空想]을 사유하지 않으면 식처(識處)의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며, 의식이라는 생각[識想]을 사유하지 않으면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고,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無所有想]을 사유하지 않으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의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은 들이쉬는 숨[入息]과 내쉬는 숨[出息]에 대해서 따라가거나 머무르거나 간에 길 때에는 길다는 것을 알고 짧을 때에는 짧다는 것을 알면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의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몸은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不淨想]을 사유하고 관하면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고, 이 보살이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無常想]과 나고 늙고 병드는 허물에 대해 사유하면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의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며, 음식은 사유하되 한량없는 허물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음식은 깨끗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의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고, 모든 세계의 성읍(城邑)과 마을을 갖가지로 장엄하고 꾸민 것에 대하여 사유하고 분별하되 반드시 파괴되어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壞敗想]을 가지면 세간은 즐거운 곳이 아니라는[不可樂] 고요한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에는 색(色)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內有色想], 밖으로 색을 조금 관하여[外觀色少], 만약 아름답거나 추한[好醜] 그 생김새를 취하면 첫 번째 승처[初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있으므로[內有色想], 이 탐심을 없애기 위하여 바깥의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모든 색을 많이 관하여[外觀色少] 아름답거나 추한 그 생김새를 취하면, 두 번째 승처[第二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만약 죽으면 불에 태워지고 바람에 불리고 햇빛에 그을려 한 줌의 재와 흙으로 되고 만다는 것과 물에 떠내려간다는 것과 부서져 없어지고 닳아서 없어진다는 것과 또 3유(有)를 끊는 것 등을 관하는 것을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없고[內無色想], 바깥의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모든 색(色)을 적게 관한다[外觀色少]고 하는데, 만약 그 아름답거나 추한 생김새를 취하면, 세 번째 승처[第三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있으므로[內有色想] 이 탐심을 없애기 위하여 바깥의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모든 색을 많이 관하여[外觀色少] 아름답거나 추한 그 생김새를 취하면, 네 번째 승처[第四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없고 바깥으로 푸른 빛깔[靑色]의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 생김새를 취하면, 다섯 번째 승처[第五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없고 바깥으로 붉은 빛깔[赤色]의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 생김새를 취하면, 여섯 번째 승처[第六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없고 바깥으로 누런 빛깔[黃色]의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 생김새를 취하면, 일곱 번째 승처[第七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안으로 색욕을 탐하는 생각이 없고 바깥으로 흰 빛깔[白色]의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 생김새를 취하면, 여덟 번째 승처[第八勝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땅[地]의 온갖 곳에 들어가서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으면, 첫 번째 모든 곳[初一切處]의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은 한량없고 그지없는 물[水]․불[火]․바람[風]․푸른 빛[靑]․누런 빛[黃]․붉은 빛[赤]․흰 빛[白]․허공[虛空]․의식[識]의 온갖 곳에 들어가서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으면, 열 가지 온갖 곳[十一切處]에 들어가는 행을 성취하게 되느니라.
이 보살이 괴로움의 법[苦法]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으로 온갖 선근(善根)을 조건으로 삼느니라. 이른바 크게 사랑하고[大慈], 크게 가엾이 여기며[大悲], 바른 법을 거두어 지니고, 삼보(三寶)를 끊지 않으며, 부처님의 몸을 장엄하고, 범음(梵音)을 청정하게 하며, 본래 옛날에 세운 서원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보리수 아래 앉아 묘한 법륜(法輪)을 굴리며, 온갖 중생의 번뇌[結使]를 없애주는 것이니, 저 보살이 마음으로 조건을 삼는 경계는 이와 같은 것이니라.
이 보살이 선정에 들어갈 때에는 4식주처(識住處)를 여의고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공대(空大) 및 식대(識大)에 의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금세(今世)와 후세(後世)에도 의지하지 않나니, 이와 같은 선정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느니라.
이 보살이 선정에 들어가서 그의 마음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위없는 해탈의 선정에 들어가기 위해서이고, 이 보살이 선정을 수행하는 것은 온갖 중생들이 제도되어 해탈하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이니라.
또 사유(思惟)하고 사유하여 마친 뒤에도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제도되어 해탈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게 되기를 원하였느니라.
이 선정에 대해서 만일 힘이 없어 배울 수 없으면 이 보살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제 때때로 차츰차츰 부지런히 정진하여 산란한 마음을 멀리 여의리라. 때때로 점점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한 마음[一心]을 배우고,
이 한 마음이 더욱 늘어나고 광대해져서 구족하게 할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은 끝끝내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요,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보살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염하며, 보리의 마음을 닦고 보리를 희망하면서 보리 구하기를 서원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선근의 선정이라고 한다. 세간에 어디든지 존재해 있는 모든 중생들이 무루(無漏)의 선정을 일으키고 무학(無學)의 선정을 일으키며 무루의 선정을 내고 무학의 선정을 내게 하기 위해서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선정(禪定)을 수행하면서 어렵다고 여기지도 않고 기뻐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면 빠른 시간에 선정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선비야, 어떤 것을 보살이 단(檀) 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어 행한다고 하는가?
선비야, 만일 어떤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배우고 나서 잘 지니고 듣고 나서는 외워 익히며, 모든 법의 매우 심오한 모양과 이치를 잘 배우고 또 잘 분별하며, 이러한 법을 들은 뒤에 이치를 생각하는 이가 있으면 보살은 그때 곧 그를 친근하게 하여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심지어는 칼과 몽둥이의 재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멀리 여의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배우고 묻기 때문에 이치를 또렷하게 알게 되고, 이치를 생각하기 때문에 스승과 화상(和上)을 공경하게 되며, 죽음이 닥쳐도 끝내 어려움이나 모든 괴로운 일들을 피하지 않는 것이니, 그 괴로운 일이란 이른바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고 더운 일과 모기와 등에 따위가 독을 쏘는 일이나 바람이 불고 햇빛에 그을리는 따위의 모든 나쁜 접촉과 욕설과 비방을 받는 그러한 것이니라.
이 보살은 바른 법에 대하여 보배 덩어리라는 생각[寶聚想]을 일으키고 설법하는 이에 대해서는 보물창고라는 생각[寶藏想]을 일으키며, 법을 듣는 이에 대해서는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難遭想]을 일으키고 이치를 묻는 이에 대해서는 혜명(慧命)을 일으켜주는 이라는 하며, 많이 배우는 이에 대해서는 무명(無明)을 끊어 없애고 지혜를 일으키는 이라는 생각[智慧想]을 하고 모든 법을 분별하는 이에 대해서는 백천의 생(生) 동안
지혜 눈이 생기리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보살은 이런 모든 법을 듣고 받아 지니며, 또 닦아 배우고 널리 분별한 뒤에는 음(陰)․계(界)․입(入)을 알고 4성제(聖諦)와 12인연(因緣)과 삼세(三世)와 삼승(三乘) 등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계(界)를 아는 것이냐 하면, 2계(界)를 아는 것이니, 유위계(有爲界)와 무위계(無爲界)를 곧 2계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유위계냐 하면, 만일 법이 생기고[生]․머무르고[住]․소멸하면[滅] 이것을 유위계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무위계인가 하면, 만일 법이 생기거나 머무르거나 소멸함이 없으면 이것을 무위계라 하느니라. 이것을 알면 유위계와 무위계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또 3계(界)를 아는 것이니, 선계(善界)와 불선계(不善界)와 무기계(無記界)이니라. 어떤 것이 선계인가 하면, 혼자 탐내지 않고 같이 탐내지 않으며, 또 혼자 성내지 않고 같이 성내지 않으며, 또한 혼자 어리석지 않고 같이 어리석지 않은 것이니, 이것을 선계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불선계인가 하면, 혼자서 탐하기도 하고 같이 탐하기도 하며, 혼자 성내기도 하고 같이 성내기도 하며, 또 혼자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하고 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하는 것이니, 이것을 불선계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무기계인가 하면, 선과 불선을 제외한 그 밖의 것이 있으면 이것을 무기계라고 하느니라.
또 3계(界)를 아는 것이니, 이른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이니라.
어떤 것이 욕계인가 하면, 지옥(地獄)․축생(畜生)․아귀(餓鬼)․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사천왕천(四天王天)․삼십삼천(三十三天)․야마천(夜摩天)․도솔타천(兜率陀天)․화락천(化樂天), 그리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니, 만약 이 안에서 욕심[欲]에 물들고 탐내고 집착하며 성을 내는 것을 어리석게 희망하여 마음이 짓는 업(業)을 얻고자 하면, 이것을 욕계를 안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색계인가 하면, 범천(梵天)인 범보천(梵輔天)․범중천(梵衆天)․대범천(大梵天)과 광천(光天)인 소광천(少光天)․무량광천(無量光天)․광음천(光音天)과 정천(淨天)인 소정천(少淨天)․무량정천(無量淨天)․변정천(遍淨天)과 과실천(果實天)인 소과천(少果天)․광과천(廣果天)․무량과천(無量果天)과 무상천(無想天)․무열천(無熱天)․무뇌천(無惱天)․선견천(善見天)․묘선견천(妙善見天) 및 아가니타천(阿迦膩陀天)이니,
만약 이 세계 안에서는 색질[色]에 물들기를 어리석게 희망하여 마음이 짓는 업(業)을 얻고자 하면, 이것을 색계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무색계인가 하면, 공처천(空處天)․식처천(識處天)․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니, 만약 이 세계 안에서 형상이 없는 것[無色]에 물들기를 어리석게 희망하여 마음이 짓는 업(業)을 얻고자 하면, 이것을 무색계라 하느니라.
이상 세 곳을 3계(界)라고 말하느니라.
또 4계(界)를 아는 것이니,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무위계(無爲界)를 알면 곧 4계를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6계(界)를 아는 것이니, 이른바 욕심의 세계[欲界]․성냄의 경계[恚界]․해침의 경계[害界]․벗어남의 경계[出界]․성내지 않음의 경계[不恚界] ․해치지 않음의 경계[不害界]를 알면 곧 6계의 세계를 안다고 하느니라.
또 6계(界)를 아는 것이니, 이른바 땅[地]․물[水]․불[火]․바람[風]․허공[空]․의식[識]의 요소[界]를 바로 6계라 하느니라.
땅의 요소[地大]는 무상(無常)한 것이고, 변하고 파괴되며 견고함이 없고 굳은 모양이 없는 것이다.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운 것이요, 만일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면 곧 나(我)라고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물․불․바람․허공․의식의 요소도 다 무상한 것이고, 변하고 파괴되며 견고함이 없고 굳은 모양이 없는 것이다.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운 것이요, 만일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면 곧 나(我)라고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아는 것을 곧 육계를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며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곧 오음(五陰)을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색음(色陰)․수음(受陰)․상음(想陰)․행음(行陰)․식음(識陰)이니라.
색음은 마치 물거품과 같아 곧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수음은 마치 물거품과 같아 곧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느니라. 상음은 마치 아지랑이와 같아 곧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행음은 마치 파초(芭蕉)와 같아 곧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며 식음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 곧 나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아는 것을 오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며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곧 안의 입(內入)을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안입(眼入)․이입(耳入)․비입(鼻入)․설입(舌入)․신입(身入)․의입(意入)이니, 이것을 곧 안의 6입(入)이라 하느니라.
안입은 곧 그것이 괴로움의
법이요 늙음의 법이요 죽음의 법이며, 공한 것이라서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다. 3독(毒)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이 훨훨 불타오르듯 치성하며, 또한 모든 고뇌의 법도 훨훨 불타오르듯 치성하다. 이․비․설․신․의 또한 그와 같아서 삼독, 그리고 나아가 모든 고뇌가 훨훨 불타오르듯 치성하다. 이렇게 아는 것을 안(內)의 6입을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또 다음에는 바깥[外]의 6입을 아는 것이니, 눈으로 보는 빛깔을 곧 바깥의 6입이라고 하고, 귀로 듣는 소리․코로 맡는 냄새․혀로 맛보는 맛․몸으로 깨닫는 접촉․뜻으로 아는 느낌을 곧 바깥의 6입이라고 하느니라.
눈으로 보는 빛깔이 곧 바깥의 입(入)인데, 이것은 그 성질이 견고하지 않고 의지할 수도 없으며, 세력도 없고 일체가 다 무상한 것이며, 여실(如實)하지도 않고 여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마치 요술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 귀로 듣는 소리․코로 맡는 냄새․혀로 맛보는 맛․몸으로 느끼는 접촉․뜻으로 아는 법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이렇게 아는 것을 바깥의 육입을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며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곧 4성제(聖諦)를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괴로움[苦]의 거룩한 진리․쌓임[集]의 거룩한 진리․사라짐[滅]의 거룩한 진리․도(道)의 거룩한 진리이니, 이것을 사성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苦聖諦]인가 하면, 가령 5음(陰)․6계(界)․내육입(內六入)․외육입(外六入)이니, 이것을 괴로움이라 하는데, 이 괴로운 것은 무상한 것이라서, 마치 원수와 같고 종기와 같으며 화살과 같고 감옥에 갇힌 것과 같으며 그릇이 깨진 것과 같다. 이것은 자유자재하지 못하니 곧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렇게 아는 것을 곧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쌓임의 거룩한 진리(集聖諦)인가 하면, 탐냄․성냄․어리석음․뽐냄․젠체하는 것과 오로지 나[我]만을 집착하고 결정코 나는 항상 머무르며 무너지지 않는다고 헤아려서 나는 곧 물질[色]이다, 나는 물질과는 다르다, 나는 곧 생각[想]이다, 나는 생각과는 다르다, 나는 생이기도 하고 생각이 아니기도 하다, 나는 생각인 것이기도 하고 생각이 아닌 것이기도 한 것과는 다르다, 나는 곧 음(陰)이다, 나는 음과 다르다, 나 안에 음이 있다, 음 안에 나가 있다, 나는 곧
계(界)와 입(入)이다, 나는 계와 입과 다르다, 나 안에는 계와 입이 있다, 계와 입 안에 나가 있다, 나는 곧 느낌[受]이다, 나는 느낌과 다르다, 나는 곧 아는 것[知]이다, 나는 아는 것과 다르다, 나는 곧 느낌이 없다, 나는 느낌이 없는 것과 다르다, 나는 적은 물질이다, 나는 적은 물질과 다르다, 나는 많은 물질이다, 나는 많은 물질과 다르다, 나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끝이 있다, 나는 끝이 없다, 나는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나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죽은 뒤에는 마치 가는 것과 같다. 죽은 뒤에는 가는 것과 같지는 않다. 죽은 뒤에 떠나가 버리는 것과 같기도 하고 떠나가 버리지 않는 것과 같지 않기도 하다, 죽은 뒤에는 가는 것과 같은 것도 아니고 가는 것과 같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몸은 곧 목숨이다, 이 중생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모든 중생은 아주 끊어져 없어지고 상속(相續)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지은 것은 자기 자신이 받고 다른 이가 지은 것은 다른 이가 받는다’라고 하면서 나라는 것이 있으면 곧 내 것[我所]도 있고 내 것이 있으면 곧 나라는 것도 있다고 헤아리느니라.
이와 같이 나라는 견해[我見]와 몸에 대한 견해[身見]로 결(結)과 사(使), 나와 내 것을 포섭하는지라, 나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받는 근본이며, 또한 통틀어 몸[身]․입[口]․뜻[意]이 짓는 업(業)과 복업(福業)․죄업(罪業)․욕계의 업[欲界業]․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업이 있나니, 이것을 쌓임의 거룩한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사라짐의 거룩한 진리[滅聖諦]인가 하면, 만일 탐냄․성냄․어리석음이 다하고 나와 내 것이라 하던 것도 다하고 욕망[愛]․집착[取]․존재[有]가 다하면 이것을 사라짐의 거룩한 진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도의 거룩한 진리[道聖諦]인가 하면, 만일 괴로움과 괴로움의쌓임이 다한 것을 보고 온갖 유위(有爲)에서의 허물을 생각하면 열반의 고요함을 보아 할 일을 다 마치게 되나니, 이와 같은 법에 머무르게 될 때에 바른 소견[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이 있게 된다. 이것을 도의 거룩한 진리라 하는데, 이와 같은 것을 알면 그것을 사성제를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이 사성제를 분별하여 사유(思惟)할 때에
유위법(有爲法)은 곧 괴로운 것이고 무상한 것이며 공한 것이고 나라는 게 없는 것이라고 보며, 무위법(無爲法)은 가려 주고 보호해주는 집이요 의지처[依]라고 보나니, 비록 이런 관(觀)을 짓는다 하더라도 열반을 증득하지는 못하느니라. 이러한 것을 사성제를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며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곧 12인연(因緣)을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의 연(緣)이 되고 지어감은 식(識)의 연이 되며, 의식은 이름과 물질[名色]의 연이 되고 이름과 물질은 여섯 감관[六入]의 연이 되며, 여섯 감관은 접촉[觸]의 연이 되고 접촉은 느낌[受]의 연이 되며, 느낌은 욕망[愛]의 연이 되고 욕망은 잡음[取]의 연이 되며, 잡음은 존재[有]의 연이 되고 존재는 나는 것[生]의 연이 되며, 나는 것은 늙어 죽음[老死]의 연이 되나니, 이것을 십이 인연이라 하느니라.
만일 4성제와 12인연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 이것을 무명이라 하고, 몸․입․뜻의 업과 복업․죄업․욕계의 얽매임[欲界繫]․색계(色界)와 무색계의 얽매임[無色繫]이 있는 것을 곧 지어감이라 하며, 마음과 뜻과 의식[心意識]이 있는 것을 바로 의식이라 하느니라.
또 느끼고 생각하고 짓고 아는 것을 바로 이름[名]이라 하며, 사대(四大)가 있고 사대로 만들어진 물질인 가라라(歌羅羅)로부터 변화로 나는 것[化生]에 이르기까지 형상으로 되었거나 형상으로 되지 않았거나 이 모든 것을 물질[色]이라 하나니, 이름과 물질이 합하였기 때문에 이름과 물질이라 하는 것이니라.
또 눈․귀․코․혀․몸․뜻을 곧 여섯 감관이라고 하고, 눈이 빛깔을 연(緣)으로 하여 안식(眼識)을 내는 등 이 세 가지의 법이 화합하기 때문에 접촉을 내는데 이것을 접촉이라 하며, 괴로운 느낌[苦受]과 즐거운 느낌[樂受]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을 바로 느낌이라 하고, 애욕에 물드는 것을 바로 욕망이라 하느니라.
소견[見]과 계금[戒]을 좋아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곧 잡음이라 하고, 물질․느낌․생각․지어감․의식[色受想行識]이 있는 것을 곧 존재라고 하며, 또 이것이 생기게 되는 것을 곧 나는 것이라 하고, 이것이 쇠퇴하고 변하는 것을 곧 늙음이라 하며, 이것이 사라지고 무너지는 것을 곧 죽음이라 하나니, 보살은 이와 같이 십이 인연을 분별하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見聞覺知] 저 땅[地]은 곧 나라는 것이 아니라서 애착을 내지 않고, 나라는 것도 또한 땅이 아닌지라
애착을 내지 않으며, 또 희망하지도 않는다. 물[水]․불[火]․바람[風]․허공[空]․의식[識]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열반(涅槃)도 나라는 것이 아닌지라 애착을 내지 않고, 나도 열반이 아닌지라 애착을 내지 않으며, 또 희망하지도 않느니라.
이 보살이 모든 법은 인연(因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보고는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아나니, 널리 닦고 배워서 모든 법은 공(空)한 것이요 모양[相]이 없는 것이며 지음[作]도 없는 것임을 아느니라.
이 보살은 모든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보고 적멸락(寂滅樂)을 아나니,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하고 나면 곧 무명이 소멸되느니라.
무명이 소멸되면 지어감이 소멸되고 지어감이 소멸되면 의식이 소멸되며, 의식이 소멸되면 이름과 물질이 소멸되고 이름과 물질이 소멸되면 여섯 감관이 소멸되며, 여섯 감관이 소멸되면 접촉이 소멸되고 접촉이 소멸되면 느낌이 소멸되며, 느낌이 소멸되면 욕망이 소멸되고 욕망이 소멸되면 잡음이 소멸되며, 잡음이 소멸되면 존재가 소멸되고 존재가 소멸되면 나는 것이 소멸되며, 나는 것이 소멸되면 늙어 죽음이 소멸되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비록 12인연의 생김과 소멸되는 것을 관한다 하더라도 사라짐[滅]을 증득하지 않으며 보살은 이와 같이 12인연을 아는 것이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며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곧 삼세(三世)를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과거 세상이라 하는가 하면, 가령 법이 이미 생겼다가 이미 소멸하였으면 이것을 과거의 세상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미래의 세상이라 하는가 하면, 법이 아직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미래의 세상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현재의 세상이라 하는가 하면, 법이 생기고 나서 아직 없어지지 않았으면 이것을 현재의 세상이라 하느니라.
이 보살은 과거 세상의 모든 착하지 않았던 뿌리는 헐뜯고 미워하여 다 버리고 여의며, 미래 세상의 착하지 않은 뿌리는 장차 착하지 않은 과보를 받게 될 것이므로 기뻐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으며 뜻에 맞추려고 하지도 않으며, 현재 세상의 착하지 않은 뿌리는 마땅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보살은 몸․입․뜻이 짓는 업(業)과 여섯 가지 감관을 잘 거두어 보호하여 항상 착한 업만 일으키고
과거 세상의 선근에 대해서는 중단함이 없느니라. 이 보살은 보리(菩提)의 마음을 일으켜 오로지 보리만 생각하고 보리만을 희망하면서 보리를 얻고자 하여 몹시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며, 모든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와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기를 원하느니라. 미래 세상에서나 현재 세상에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나니, 항상 이런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끝끝내 게으름을 피거나 생각을 잃어버리거나 방일하지 않느니라.
과거 세상의 음(陰)․계(界)․입(入) 등은 곧 그것이 없어지고 다하여 실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으므로 나라 할 것도 내 것이라 할 것도 없으며, 미래 세상의 음․계․입 등은 아직 생기지도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았으므로 나라 할 것도 내 것이라 할 것도 없으며, 현재 세상의 음․계․입은 생각마다 머물러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세간의 법은 한 생각 동안도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일 한 생각이라도 있다면 그 한 생각 동안에도 역시 생기고[生] 머무르고[住] 소멸함이 있을 것이니, 이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것도 역시 또 머무르지 않느니라. 마치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가운데 안팎의 음․계․입이 있는 것처럼 이 안팎의 음․계․입에도 역시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것이 있느니라. 만일 이와 같이 머무르지 않는다면 곧 그것은 나라 할 것도 아니고 내 것이라 할 것도 아니니라.
만일 과거의 세상이 소멸하고 다하여 실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나라는 것이 아닐 것이요 내 것이라 할 것도 아닐 것이며, 만일 미래의 세상이 아직 생기지도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았다면 나라는 것이 아닐 것이요 내 것이라 할 것도 아닐 것이며, 만일 현재의 세상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라는 것이 아닐 것이요 내 것이라 할 것도 아닐 것이니라. 만일 삼세(三世)를 나라 할 것도 아니요 내 것이라 할 것도 아니라고 본다면 이것이 진실한 지혜를 지닌 이라 할 것이요, 나와 내 것을 곧 나와 내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곧 모든 존재[諸有]에서 나라 할 것도 없고 내 것이라 할 것도 없는 것임을 실천하는 것이요 욕심을 여읜다는 생각[離欲想]을 행하는 것이며, 끊는다는 생각[斷想]을 행하는 것이요 없앤다는 생각[滅想]을 실행는 것이니, 비록 이런 행을 한다 해도 열반을 증득하지는 못하느니라. 이것을 삼세를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며 닦고 배워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곧 삼승(三乘)을 알아야 하나니, 이른바 천승(天乘)과 범승(梵乘)과 성승(聖乘)이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천승이라 하는가 하면, 초선(初禪)
․2선(禪)․3선(禪)․4선(禪)을 곧 천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범승이라 하는가 하면, 자(慈)․비(悲)․희(喜)․사(捨)를 곧 범승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성승이라 하는가 하면, 바른 소견[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이니, 이것을 성승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때때로 천승․범승․성승을 닦아 쌓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삼승에 머무르게 하고서도 그때에 정작 자신은 해탈을 증득하지 않나니, 이것을 삼승을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또 그 다음은 삼승을 아는 것이니, 이른바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과 대승(大乘)이니라.
어떤 것이 성문승인가 하면 하근기[軟根]로 해탈하는 것으로써 한 생각 동안에 세 가지 유(有)의 굴과 집을 여의고 즐거이 세간을 벗어나려 하면서 열반을 증득하고자 하며 적멸처(寂滅處)를 보면서 부지런히 더욱 정진함은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느니라. 만일 그가 아직 4성제(聖諦)를 이해하지 못한 이면 지혜의 화살로써 사성제의 과녁을 쏘려 하고 증득하려 하고 이해하려 하고 깊이 정진하려 하나니, 이것을 성문승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벽지불승(辟支佛乘)이며, 중근기[中根]로 해탈하는 것인가 하면, 적정(寂靜)을 얻기 위하여 혼자서 한곳에 앉아 있으면서 자기만의 이익을 위하여 고요한 선정에 들어가며, 방편으로 삽이 인연을 분별하여 연각(緣覺)의 도를 얻으려 하고 연각을 증득하려고 하면 이것을 연각승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대승이며 상근기[上根]로 해탈하는 것인가 하면, 온갖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되게 하려고 일체지(一切智)와 모든 부처님의 법과 6바라밀(波羅蜜)을 두루 갖추며, 모든 세계를 유익하게 해 주려고 하고 모든 중생들의 고뇌를 끊어주려고 하며, 모든 세계의 다섯 가지 욕락(欲樂)에 대하여도 오히려 천하고 보잘것없이 여기거늘 하물며 세간의 한량없는 모든 고통이겠느냐? 중생들에게 위없는 계율을 지니도록 하고 싶어서이며, 대승경전(大乘經典)을 듣고 보게 하려고 받아 지니어 닦고 배우며 생각하고 분별하며 읽고 외워서 환히 통달하고 부지런히 더욱 박차를 가해 정진하느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4섭법(攝法)을 닦는 이가 있으면 당연히
가서 친근히 해야 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진실한 지혜를 섭수(攝受)하여 4섭법에 편히 머무르게 하고, 항상 온갖 심오한 법요(法要)를 들어 받아 지니고 분별하게 하려고 하며,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선정에 들어가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중생들에게 유익하게 하고자 하며, 자기의 힘으로써 다른 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삼승에 머무르게 하려고 하느니라.
비록 이런 교화를 한다 하더라도 항상 자기 자신은 위없는 도(道)에 편히 머물러서 파괴되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마음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으며, 항상 위없는 보리를 얻고자 소원하고 보리 구하기를 바라나니, 이것을 대승이라 하느니라. 이것을 삼승을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런 법을 듣고 나서 받아 지니고 닦아 배워서 자세히 분별하고 나면 곧 방편(方便)을 아는 것이니, 부처님․법․승가대중에 대하여 온 몸을 땅에 던지고, 이것으로 업(業)을 삼아 그 짓는 일을 서원하되 위없는 도를 원하느니라. 이와 같이 귀의하고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되 가고 서고 앉고 눕거나 또는 음식을 먹고 목욕을 하거나 이런 일을 하는 동안에도 다시는 다른 마음은 없으며, 다만 위없는 보리만을 원하면서 항상 이와 같이 널리 닦고 배울 뿐이니라.
이 보살은 처음 선정에 들거나 또는 선정에 이미 든 뒤에도 언제나 온갖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기를 원하며, 세계 중에서 가장 높은 이가 되기를 바라고, 온갖 중생들을 조복(調伏)하고자 하며, 온갖 중생들 중에서 보다 나을 수 있는 이가 없기를 바라고 가장 뛰어난 이가 되고자 하며, 온갖 중생을 가르쳐 경계하기를 바라고, 온갖 중생들이 적멸(寂滅)을 얻게 하고자 하며, 온갖 법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기 위하여 일체 불법을 구족하고자 하며, 보리심을 내어 항상 이와 같이 널리 두텁게 닦아 배움을 짓느니라.
이 보살은 지은 모든 선근(善根)으로 중생들에게 두려움이 없고 3악도(惡道)에서 벗어나며, 한량없이 많은 고통이 없어지고 모든 번뇌를 다 끊기 바라며, 현재 세상에서나 미래의 세상에 연각승(緣覺乘)을 얻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그 원을 두루 충족되게 하고, 현재 세상에서나 미래의 세상에 대승(大乘)을 얻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그 원을 두루 충족시켜 주며, 세간에 계신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존께 1겁 동안 세간에 계시면서 설법하기를 청하고 성인 대중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따라 세간에 남아 있으면서 화합하게 되기를 원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곳곳마다 살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닦은 선근으로 만일 인간 세상이나 천상에 태어나서 성문승에 머무르고자 하거나 벽지불승에 머무르고자 하며, 사랑하는 말[愛語]을 하고, 보시(布施)하고, 이익(利益)되게 하고, 일을 같이[同事]하고자 하면, 그 소원을 원만하게 충족시켜 주리라.’
이 보살은 이런 법 때문에 세 때[三時]에 읽고 외워 환히 통달하며, 또 이 법을 생각하나니, 이른바 ‘나는 이제 모든 세간의 곳곳에 계신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비구승과 보살에게 귀의하리라’라고 하면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위엄 있는 덕은 그보다 더 나은 이가 없고, 그 몸매[相]는 너무도 절묘하기 때문에 보살은 항상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이 세간의 곳곳마다 없는 곳이 없게 하고 온 방면마다 항상 모든 부처님이 계시어 저로 하여금 ≺1겁 동안 머물러 계시면서 미묘한 법을 설하시고 이미 지었거나 또는 지금 짓고 있는 모든 악(惡)을 꾸짖어 주소서≻라고 간청하게 하기를 원하옵니다. 저는 이제 이미 모든 악을 여의게 되었으므로 한 생각 동안이라도 마땅히 온갖 선근으로써 모든 중생들의 수명이 한량없기를 바라며, 착한 법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보살들처럼 속히 법륜(法輪)을 굴리게 하옵고, 모든 성현(聖賢)들의 계율․선정․지혜․해탈․해탈지견을 얻게 되기를 원하옵니다. 또 부처님의 법이 항상 세간에 머물러 있어서 중생을 유익하게 하고, 다섯 갈래 세계[五道]에 태어나는 이는 모두가 선근을 얻게 하며, 모든 부처님께 공경하고 예배하기를 원하옵니다.’
보살은 항상 이런 서원을 짓는 것이니라.
이 모든 보살이 지니고 있는 착한 원은 다른 중생들과 자기의 몸으로 묘하고 착한 위엄 있는 덕을 얻게 하는 것이요, 미래와 현재의
온갖 세간의 불보․법보․승보가 한 겁 동안 머물러 있어도 장애가 없게 하는 것이며, 모든 보살보(菩薩寶)도 속히 6바라밀을 두루 갖추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빨리 이루게 하되 역시 장애가 없게 하는 것이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고뇌와 두려움을 끊어 없애고 기쁨과 즐거움을 짓게 하며, 온갖 착하지 않은 뿌리를 끊고 온갖 선근을 성취하게 하며, 그들의 소원대로 삼승을 성취하고 속히 모든 바라밀을 성취하게 하며, 한량없는 수명을 누리면서 해탈을 얻고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 결국에는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것이니라. 보살은 항상 이런 서원을 짓느니라.
이 보살은 온갖 중생들의 모든 고뇌를 끊게 하려 하며, 또 온갖 세간 곳곳마다 계신 모든 부처님과 법신(法身)에게까지 자기의 몸을 그 부처님들께 바치기를 원하며, 온갖 중생들을 제도하여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 태어나는 곳마다 삼보(三寶)를 믿고 공경하여 하늘의 향과 꽃을 항하강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 받들어 공양하고,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와 모든 보살에게도 공양하느니라. 그렇게 바친 보배들이 마치 수미산과 같게 하며, 온갖 세간의 곳곳마다 있는 모든 중생들이 만일 7보(寶)로 된 방사(房舍)와 의복․음식․의약 및 침구류 등을 구하면 모두 베풀어주어 모자람이 없게 하느니라.
만일 인욕․정진․계율 지니기를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그들을 위하여 해설해 주어서 뛰어난 법을 성취하게 할 것이며, 삼보가 두루 갖추어지고 6바라밀을 닦아 속히 부처님의 도를 이루게 할 것이며, 모든 나쁜 법을 여의고 진실한 이치를 잘 수행하게 하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 때문에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고 보리를 좋아하게 하리라’고 하면서, 있는 곳마다 부처님과 보살을 뵙고 항상 선근을 배우며, 중생들을 착한 법 안에 편히 머무르게 하느니라.
이 보살은 자신이 다른 이에게 미칠 모든
선근을 알고는 지혜를 향해 나아가고 지혜를 생각하여 온갖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기를 원하느니라. 이 보살은 향해 나아가고 생각한 뒤에도 온갖 중생들이 제도되고 해탈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얻고 온갖 부처님의 법을 원만하게 갖추기를 원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지혜를 만일 힘이 없어서 배울 수 없으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는 이제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시시 때때로 점차 무명을 끊겠으며, 나는 이제 다시 갑절로 정진하여 시시 때때로 점차 지혜를 배워서 그 지혜가 더욱 광대해지고 구족(具足)하게 하겠으며, 이 목숨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내 게을리 하거나 근심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보리의 마음을 염하며, 보리의 마음을 닦고 보리의 마음을 희망하나니, 이것이 보살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착한 지혜이니라.
왜냐 하면 이 지혜는 그 밖의 다른 착한 지혜 가운데에서도 가장 수승하고 첫째가기 때문이요, 온갖 세간의 중생들이 한량없이 많은 지혜를 일으키고 무학(無學)의 지혜를 일으키며, 무루(無漏)의 지혜를 내고 무학의 지혜를 내게 하기 때문이니라.
선비야, 이와 같이 보살이 이 지혜를 행하면서도 어렵다고 여기지도 않고 기쁘게 생각하면 속히 반야바라밀을 완전히 갖추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자, 선비 보살은 기뻐하면서 “거룩하시고 거룩하시옵니다”라고 찬탄하며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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