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95권
대보적경 제95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27. 선순보살회(善順菩薩會)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모든 대중 5백 명의 성문과 1만 명의 보살들에게 공경을 받아 빙 둘러싸여 계셨다.
그때에 사위성에 선순(善順)이라는 한 보살이 있었는데 이미 과거 세상에 한량없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였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서 물러나지 않음[不退轉]을 얻었고, 대자(大慈)에 머물러서 마음에 성을 내지 않았으며, 대비(大悲)에 머물러서 널리 구제하되 게을리 하지 않았고, 대희(大喜)에 머물러서 법의 세계를 잘 안위시켰으며, 대사(大捨)에 머물러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평등하게 하였고, 양을 조절하여 때맞추어 먹고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알았으며, 언제나 중생들이 보기를 좋아하게 하였고, 항상 오계(五戒)와 팔재(八齋)의 법을 가지고 그 성 안에서 사람들을 가엾이 여겨 교화하였다. 그런 뒤에는 다시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및 자(慈)․비(悲)․희(喜)․사(捨) 등의 청정한 범행을 권유하였다.
그때에 선순 보살은 중생들이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게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부처님께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마침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써 이 보살이 최상의 정진에 머물러서 두타행(頭陀行)을 실천하고 청정한 시라(尸羅)를 갖추어 널리 구제함이 견고한 것을 보고 곧 생각하였다.
‘지금 이 선순은 모든 범행(梵行)에 있어서 일찍이 게을리 함이 없었는데, 장차 제석(帝釋)의 자리를 구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또는 왕위와 욕락(欲樂)을 탐해서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곧 변화로 네 남자의 몸을 만들어서 보살 앞에 가서 갖가지
나쁜 말로 보살을 헐뜯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또 칼․몽둥이․기와 조각․돌 따위로 때리고 던지고 하면서 해를 끼쳤다.
그때에 보살은 자비와 인욕의 힘에 머물러서 모두 참고 받았으며, 조금도 성을 내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때 제석천왕은 다시 네 남자의 몸을 변화로 만들어서 보살에게 가서 말하게 하였다.
“애달프구나. 선순이여, 저 나쁜 사람들이 좋지 못한 말로써 당신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것도 모자라서 기와 조각․칼․몽둥이로 마구 당신을 때리고 있는데, 어찌 우리들이 당신을 위하여 원수를 갚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지금 당신을 위하여 저 사람들을 죽여버리겠습니다.”
그때 보살이 그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만일 저들을 살해하게 되면 나쁜 업이 성취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의 이 몸을 마치 대추나무의 잎사귀처럼 갈가리 찢는다 해도 나는 끝내 살해하겠다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남을 살해하는 사람은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람의 몸이 된다 하더라도 그를 낳은 부모조차도 오히려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항상 여러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남자들이여, 모든 법에는 무릇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착한 법이요, 다른 하나는 착하지 않은 법입니다. 착하지 않은 법은 나쁜 길[惡趣]에 떨어지게 되지만, 만일 착한 법에 의지한다면 복과 이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선순 보살은 이 뜻을 거듭 펴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선과 악은 마치 종자를 심는 것과 같아서
모두가 업(業)을 따라 나게 되는 것이라네.
어찌 쓴 종자의 씨[因]를 가지고서
단 열매가 달려 익기를 바라겠는가?
실제로 나타나는 법이 이러하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생각해야 한다.
고통의 과보는 나쁜 인연으로 받고
착한 일을 하면 항상 안락해지느니라.
그때 제석천왕이 변화로 만든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저 보살로 하여금 살해하는 업을 짓게 할 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홀연히 없어져 버렸다.
그때 제석천왕은 다시 금(金)과 은(銀)의 보배 덩어리를 변화로 만들어서 여러
장부들을 시켜 보살에게 가져가게 하고는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당신이 방법만 있다면 이 값진 보배들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십시오.”
그때에 보살은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도둑질하는 업을 지으면 중생으로서 가난하고 못난 사람이 되며, 의지할 데도 없고 믿을 데도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설령 내가 가난하여 살아갈 수 없다고 해도 끝내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不與取]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범부는 어리석어서 탐내고 구하는 일에 가려지겠지만 어찌 지혜 있는 사람이 도둑질을 하겠습니까?”
그때 선순 보살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쌓인 재물이 비록 천억이라 하더라도
탐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혜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을 말하여
세상에서 항상 가난한 고통을 받는 이라 합니다.
그가 비록 한 물건도 없다고 해도
버리고 여의는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
지혜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을 말하여
세간에서 가장 부귀한 이라고 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모든 악을 여읜지라
모두가 단정하고 엄숙하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온몸이 누추하게 됩니다.
지혜 있는 이는 선(善)을 닦으라 권하는데
어리석은 범부는 항상 악을 짓습니다.
차라리 지혜있는 이의 욕설을 받을지언정
어리석은 이의 칭찬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제석천왕이 변화로 만든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창연(悵然)한 빛을 띠면서 떠나갔다.
그때 제석천왕은 다시 자신이 직접 가서 시험하여 보려고 억만의 금을 가지고서 보살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먼저 이 사위대성(舍衛大城)에서 바사닉왕(波斯匿王)과 그 밖의 장부들과 함께 다투던 일이 있었으므로 나를 위하여 거짓으로 증언하여 줄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나를 위하여 증인이 되어 주신다면 이 금을 모두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때에 보살이 제석천왕에게 말하였다.
“어진 이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착하지 못한 업을 짓는 것입니다. 이미 제 자신을 속였을 뿐더러 하늘․용․야차(夜叉)․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까지도 속이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온갖 악의 근본이 되고 착하지 않는 길에 나가게 되며, 청정한 계율을 허물고 육신을 무너뜨리게 되며 입에서는 항상 악취가 나고 말을 하면 남들이 미워하게 됩니다.”
그때 보살은 거듭 게송으로 말하였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입에서는 항상 악취가 나며
고통 받는 악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를 구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무릇 거짓말이란
자기 자신을 속일뿐더러
또한 하늘과 용과
마후라가 등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이란
모든 악의 근본이 되고
청정한 계율을 헐어버리며
죽으면 3도(塗)에 들어가게 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하오.
당신이 설령 나에게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찬 금을 준다 하여도
나는 끝내 당신을 위하여
거짓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제석천왕이 이 말을 듣자마자 홀연히 없어져 버렸다.
그때 제석천왕은 다시 사지부인(舍支夫人)과 일광부인(日光夫人)과 그리고 오계(五髻)의 여러 부인들이 보살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듭 시험하여 그의 계율을 깨뜨리게 하였다.
사지(舍支)는 곧 5백여 명의 아리따운 성인 여자 등에게 향을 몸에 바르게 하고 꽃으로 장식하게 하여 함께 늦은 밤에 보살에게 가서 말하였다.
“우리들 여인은 나이 젊고 예쁩니다.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서로 즐기게 하여 주십시오.”
그때 보살은 음심이 없는 눈으로 그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지옥과 축생과 염라왕(閻羅王)의 세계의 미쳐서 어지러운 이와 마음이 바르지 않은 이들과 더럽고 냄새나고 피고름이 있는 부정(不淨)한 것을 좋아하여 빠져 헤매는 악한 나찰(羅刹)은 바로 그대들의 친한 벗이요, 모든 하늘 사람으로서 청정한 권속들은 그대들의 벗이 되지 못합니다.”
그때 보살은 거듭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혼미하고 생각이 부정하여
더럽고 피고름 나는 몸을 즐기거니와
모든 욕심 빨리 없애 항상한 데 돌아가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과 염라의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가령 변화로 그대들과 같은
예쁜 이들이 세간에 가득 찼다 하여도
나는 찰나 동안도 음행을 탐하는 마음이 없으며
언제나 꿈과 같고 원수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 사지 등은 갖은 변태(變態)를 다 부려 보았으나 그 보살은 음행을 탐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각기 하늘 궁전으로 돌아가서 제석천왕에게 말하였다.
“저희는 선순의 뜻과 서원의 견고함을 보았습니다. 장차 틀림없이 정각(正覺)을 이룰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저희들에게 조그마한 탐애(貪愛)도 없었고 모든 것을 싫어하여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석천왕은 이런 말을 들었으면서도 그래도 근심하고 괴로워함이 마치 몸에 화살을 맞은 것과 같았으므로 한결같이 생각하기를 ‘그 사람은 반드시 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함이 틀림이 없다. 나는 이제 그에게로 가서 그가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거듭 시험하여 보아야겠다’고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보살에게로 가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게송으로 물었다.
어진 이시여, 당신은 지금 청정한 범행을 힘써 닦고 계신데
당신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해나 달이나 제석이나 범천(梵天)을 구하는 것입니까?
3유(有)의 모든 왕위를 구하는 것입니까?
그때 선순 보살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해와 달과 제석과 범천이나
3유의 과보인 세간의 왕위 따위는
모두 덧없고 견고하지 않다고 보거늘
어찌 지혜 있는 이가 그런 원을 하겠습니까?
그때 제석천왕은 이런 게송을 들은 뒤에 다시 보살에게 아뢰었다.
“만일 그렇다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보살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본래 세간의 즐거움을 탐내지 않고
다만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몸을 구할 뿐이며
힘써 방편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여
함께 저 보리(菩提)의 길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그때 제석천왕은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안락해져서 보살이 제석의 자리를 구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에 기뻐 뛰면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당신은 널리 중생은 제도하기 위함이라 하시니
그 마음 광대하여 견줄 데 없습니다.
악마 군사 깨뜨리고 감로(甘露)를 증득하여
항상 뛰어난 법륜(法輪)을 굴려 주소서.
그때 제석천왕은 이런 게송을 말하고 난 뒤 공경하여 주위를 돌고 보살의 발에 예배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 선순 보살은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사위성(舍衛城)으로 들어가서 교화하며 돌아다니다가 겁초(劫初) 때에 염부금(閻浮金)으로 만든 방울을 얻었다. 그 방울의 값어치는 염부제(閻浮提)보다 더한 것이었다.
그때 보살은 이 금방울을 가지고 네거리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사위성에서 누가 가장 가난한가? 이 방울을 그에게 주겠다.”
그러자 가장 나이 많은 어느 장자(長者)가 이 말을 듣고 달려 와서 보살에게 아뢰었다.
“제가 이 성에서 가장 가난합니다. 그 방울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때 보살은 장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가난한 이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이 성 안 선남자(善男子) 중에가장 가난한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울은 그에게 주어야 합니다.”
장자가 물었다.
“누가 그런 사람입니까?”
보살이 대답하였다.
“바사닉왕이 이 성 안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장자가 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왜냐 하면 바사닉왕은 부하고 귀하며 재물이 많아서 창고마다 가득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기한 재물은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겠거늘 어떻게 가난한 이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때 보살은 대중 가운데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설령 천억여 개의 창고가 있다 해도
탐애(貪愛)하는 마음으로 만족함이 없으면
마치 큰 바다가 여러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 같나니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가장 가난합니다.
이 때문에 또한 탐욕(貪慾)은 더욱 자라고
차츰차츰 무성한 덩굴이 서로 잇닿아 생겨나니
현재의 세상이나 미래의 세상에서
그 지혜 없는 이는 항상 가난합니다.
그때 선순 보살이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모든 대중들과 함께 곧 바사닉왕에게로 갔다. 그 왕은 지금 한창 장자 5백여 명과 함께 창고 안의 재물과 보배를 계산하고 있던 참이었다. 보살은 그때에 그 왕의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내가 이 성에 와서 이리저리 다니며 교화하다가 겁초 때에 염부금으로 만든 방울을 얻었는데 그 방울의 값어치는 염부제보다 더한 것입니다. 나는 그때 가만히, ‘이 성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이가 있으면 이 방울을 그에게 보시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해보니 ‘성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이는 왕보다 더한 이가 없다’고 여겨, 이제 이 방울을 가지고 와서 왕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왕은 이미 가난한 사람이니, 나를 위하여 이것을 받으십시오.”
그때 보살은 이렇게 말한 뒤에 거듭 게송으로 말하였다.
사람이 탐내어 구함이 많고
재물을 쌓아두어도 만족함이 없으면
이러한 미치고 어지러운 사람을
가장 가난한 이라 말한답니다.
왕은 항상 세금을 많이 부과하고
허물없는 사람들을 멋대로 처벌하며
나라와 성에 애착하면서
오는 세상의 업을 살펴보지 않습니다.
세간에서는 자재로우면서도
중생에게 음덕을 베풀지 않으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고도
가없이 여기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여인들에게 흠뻑 빠지고
악도(惡道)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삿되고 산란하여 깨어 있지 못하거늘
어찌 가난한 이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사람이 청정한 믿음으로
부처님․교법․승가대중에 귀의하고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하여는
항상 견고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견고하지 않음을 알고 나서는
그것에 대하여 미혹되지 않으면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해서
영원히 견고함을 얻습니다.
만일 4념주(念住)를 부지런히 닦아서
방일하지 않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을 귀한 자라고 하며
좋은 재물에 언제나 안락합니다.
마치 불이 붙어 타고 있을 때
숲과 나무들을 싫어하지 않듯이
왕도 지금 역시 그와 같아서
탐애에 만족해함이 없습니다.
마치 물이 구름을 싫어하지 않고
바다가 물을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왕도 지금 역시 그와 같거늘
어찌 만족해하는 때가 있겠습니까?
해와 달이 항상 돌면서
동․서․남․북을 싫어하지 않듯이
왕도 지금 역시 그와 같아서
죽을 때까지 쉬는 일이 없을 겁니다.
마치 불이 붙어서 타고 있을 때에
풀과 나무를 싫어하지 않듯이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선(善)을 행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마치 물이 구름을 싫어하지 않고
마치 바다가 물을 싫어하지 않듯이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선이 더욱 자람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왕위가 비록 자재하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덧없음에 돌아가고 말며
모두가 청정하지 않나니
지혜 있는 이라면 버리고 여의어야 합니다.
그때 바사닉왕은 이런 말을 들은 뒤에 속으로 부끄러워하면서 보살에게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어진 이여, 당신이 비록 잘 권하기는 하나 나는 오히려 믿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당신은 그런 말을 하시는데 당신 자신이 하는 말씀입니까? 증명할 이가 있는 것입니까?”
보살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듣지 못했습니까? 여래(如來)․응공(應供)․정등각(正等覺)께서는 온갖 지혜를 갖추신 분이시며 현재 한량없는 하늘 사람과 건달바․아수라 등과 사위대성(舍衛大城)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시는데 대왕이 바로 가난한 사람임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진 이여, 만일 당신의 말씀과 같다면 나는 함께 가서 여래를 뵈온 뒤에 가르침을 듣고 귀의하여 공경하고 싶습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대왕은 아셔야 하십니다. 여래의 경계는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이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번뇌와 교만을 깨뜨리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이미 거룩한 지혜로서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잘 아시므로 만일 선근(善根)으로서 의요(意樂)를 지닌 이가 있으면 비록 극히 먼 곳에 있다 하더라고 부처님께서는 항상 가호(加護)하십니다. 만일 저의 마음을 아시면 대왕이 저에게 믿음을 내게 하려고 반드시 여기에 오셔서 저를 위하여 증명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때 보살은 곧 왕의 앞에서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게송으로 여래께 청하였다.
여래께서는 진실한 지혜로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원컨대 저의 깊은 마음을 아셔서
가엾이 여겨 증명하여 주소서.
그때 보살이 게송으로 청하여 마치자마자 대지(大地)가 갑자기 진동하더니 갈라져 터지면서 5백 명의 성문과 1만 명의 보살과 범왕․제석의 모든 하늘들과 그리고 용과 귀신 등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에워싸인 여래께서 땅으로부터 솟아 나오셨다.
선순 보살은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먼저 이 사위성 안을 돌아다니며 교화하다가 겁초 때에 염부금으로 만든 방울을 얻었는데, 그 방울의 값어치는 염부제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만일 중생으로서 사위성에서 가장 가난한 이가 있으면 이 방울을 그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바사닉왕이 이 성 안에서는 가장 가난한 이이다. 왜냐 하면 왕위를 믿고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는 일도 없을뿐더러 잔학하게 굴고 속이고 빼앗고 하면서 멋대로 침탈을 자행하고 있으며, 탐욕과 애욕이 가려 덮어서 만족할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왕이 가장 가난한 이라 여기고서 금방울을 가지고 와서 주려고 하였더니, 왕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누가 증명한단 말이오?’
저는 또 대답하였습니다.
‘여래․대사(大師)․응공․정등각께서는 번뇌를 여의고 성내는 번뇌[垢]를 모두 버려서 남음이 없으며, 모든 중생들을 다 평등하게 여기시므로 당신을 위하여 증명하여 주실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이롭게 하시어 기쁘게 해주십시오.”
그때에 세존께서 바사닉왕을 조복하시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셔야 하십니다. 혹 어떤 법에서는 선순은 가난하고 왕은 부하고 귀한 이가 되지만, 혹 어떤 법에서는 왕은 가난하고 선순은 부하고 귀한 이랍니다. 왜냐 하면 몸은 왕위에 올라서 세간에서는 자재(自在)하여 금(金)․은(銀)․마니(摩尼)․자거(車磲)․산호(珊瑚) 따위가 창고에 가득히 차 있는 이런 때를 당해서는 선순은 가난하고 왕은 부하고 귀한 이이겠지만, 부지런히 범행을 닦고
청정한 시라(尸羅)를 좋아하며 집을 버리고 불법을 많이 들어 모든 방일함을 여의고 8재(齋)와 5계(戒)로 널리 제도하면서도 고달파하지 않는 일에 있어서는 왕은 실로 가난한 이요 선순은 부하고 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왕은 이제 아셔야 합니다. 교살라국(憍薩羅國)의 모든 중생들이 지닌 재물과 창고를 가지고 이 선순의 견고하고 청정한 5계와 8재에 비교한다면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구지(俱胝)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때 바사닉왕은 몸소 여래의 진실한 가르침을 듣고서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합장하고 은근히 선순 보살을 우러러 쳐다보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저의 교만을 꺾어 조복하셨으니
장차 여래의 가장 훌륭한 몸이 되실 것입니다.
이 왕위를 당신에게 바치오니
항상 당신의 보리 대중이 되게 하옵소서.
나는 실로 가난하고 당신은 부자라는
이 말씀이 거짓말이 아님을 이제 알았습니다.
왕위는 한갖 고통의 인(因)이요
청정한 법[白法]을 저버리고 나쁜 곳에 날 뿐입니다.
그때 바사닉왕은 이 게송을 말한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위없는 큰 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고 생사(生死)의 결박에서 해탈하게 되기를 원하옵니다. 저는 이제 재물과 창고에 있는 금은 등의 보배를 세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은 여래․세존과 비구승에게 보시할 것이요, 한 몫은 사위성 안에 사는 가난하고 고통 받으며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보시하겠으며, 나머지 한 몫의 재물은 그대로 두어 나라의 밑천으로 쓰게 하겠습니다. 무릇 제가 소유했던 동산과 못과 꽃과 열매들은 모두 다 가장 뛰어나신 여래와 비구 대중들에게 바치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가엾이 여기셔서 받아들여 주시옵소서.”
그때 교살라국의 5백 명의 장자들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모두가 위없는 큰 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때 선순 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모든 대중들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말씀하시어 여래를 만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헛되이 지나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그때 세존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세 가지 한량없는 공덕의 자량(資糧)이 있나니, 모든 여래에 대해 비록 찬탄하는 말을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다할 수 없거늘 하물며 성문(聲聞) 등 모든 이승(二乘)에 있어서이겠느냐?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니는 것이요, 둘째는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위없는 서원을 일으키도록 권하는 것이니라.
또 서른 두 가지 법이 있나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법을 부지런히 닦게 되면 여래를 뵈온 일이 헛되이 지나치고 말지 않을 것이니라. 그 첫째는 모든 여래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내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녀서 오래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상가[僧]를 존중하고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공경하고 친근히 하는 것이니라. 다섯째는 사랑하는 이나 미운 이에 대해 마음이 항상 평등한 것이요, 여섯째는 항상 바른 법 듣기를 좋아하고 공경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고요한 곳에 안주(安住)하여 시끄러움을 여의는 것이요, 여덟째는 여래승(如來乘)을 연설하되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만일 설법을 하게 되면 명예나 이익을 위하지 않는 것이요, 열째는 마음으로 진실을 구하고 이치대로 부지런히 닦는 것이니라. 열한 째는 다 버려서 보시하는 것이요, 열두째는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며, 열 셋째는 인욕(忍辱)하는 것이요, 열 넷째는 힘써 정진하는 것이며, 열 다섯째는 선정을 닦는 것이니라. 열 여섯째는 바른 지혜를 지니는 것이고, 열 일곱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그들의 좋아함을 따라 보호하여 주는 것이고, 열 여덟째는 중생들을 성숙시켜서 법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며, 열 아홉째는 항상 자기의 몸을 잘 조복하는 것이고, 스무 번째는 착한 법요(法要)로써 다른 이들을 조복하는 것이니라. 스물 한 번째는 번뇌에 물들지 않는 것이요, 스물 두 번째는 항상 집 떠나기를 좋아하는 것이며, 스물 세 번째는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르는 것이고,
스물 네 번째는 성종(聖種)에 대하여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이니라. 스물 다섯째는 부지런히 두타(頭陀)행을 실천하는 것이니라. 스물 여섯째는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리는 것이요, 스물 일곱째는 큰 서원을 굳게 지키는 것이며, 스물 여덟째는 아란야의 수행에 게을리 함이 없는 것이요, 스물 아홉째는 선(善)의 근본을 많이 심는 것이며, 서른째는 항상 방일하지 않는 것이며, 서른 한 번째는 이승(二乘)의 견해를 멀리 하는 것이요, 서른 두 번째는 대승을 찬탄하는 것이니라.”
이때 5백 명의 비구는 이 법을 듣자마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遠塵離垢] 법안이 깨끗해짐[法眼淨]을 얻었고 1만 2천 명의 중생들도 다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법으로써 교화하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좋은 이익을 얻게 한 뒤에 여러 비구들과 그밖에 같이 온 대중들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리셨다.
그때 바사닉왕은 이러한 일을 보고 기뻐 뛰면서 곧 백천(百千) 냥의 값어치가 되는 두 벌의 옷을 선순 보살에게 보시하고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어진 이여, 가엾이 여기셔서 받아주소서.”
선순 보살이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꼭 아셔야 합니다. 나는 이 옷을 받지 않겠습니다. 왜냐 하면 나에게는 온통 기운 누더기 옷이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나뭇가지를 상자로 삼아 걸어 놓고 있으니 중생들은 속이거나 중생들의 것을 빼앗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벌써 인색한 마음이 없어졌고, 또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내지 않게 하면 바로 그러한 보시를 청정한 보시라고 합니다.”
바사닉왕이 다시 말하였다.
“당신이 만일 받지 않으시겠다면 나를 위하여 그 옷을 발로 밟고 지나가셔서 저로 하여금 오랜 세월동안 안락하고 이익되게 하여 주소서.”
보살은 그때에 왕을 위하여 곧 두발로 이 두 벌의 옷을 밟고 자나갔다.
바사닉왕이 보살에게 말하였다.
“지금의 이 옷은 당신이 몸소 나를 위하여 밟으신 것이거늘 내가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선순 보살이 왕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옷을 가져다가 이 성 안에 가난하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보시하십시오.”
그때 바사닉왕은 보살이 가르쳐 준 대로 이 두 벌의 옷을 가져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보시하였다.
그러자 그 가난한 사람들이 이 옷에 닿기만 하면 미치광이는 마음이 되돌아오고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소경은 눈을 뜨게 되었고 감관이 완전하지 못한 이는 모두 완전하게 되었으니, 보살의 위신력(威神力) 때문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다 같이 소리를 내어 말하였다.
“저희들은 이제 무엇으로써 보살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오릿까?”
그러자, 때맞추어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은 꼭 아셔야 합니다. 선순 보살에게는 꽃이나 향이나 음식으로써 은혜를 보답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속히 보리의 마음만을 내어야 합니다.”
이때 5백 가난한 사람들은 공중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다 함께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희들은 이제
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장차 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어서
모든 뛰어난 법을 연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베풀어주겠사오니
그것은 저희들이 보리를 좋아하여
부처님의 법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때 바사닉왕이 보살에게 아뢰었다.
“장하십니다. 어진 이여, 당신이 만일 여래를 뵈려고 그 곳으로 가시게 되거든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 저도 따라 가겠습니다.”
선순 보살이 말하였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모든 부처님은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은 듣기가 어렵거늘 어찌 대왕 혼자만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중생들을 위하여 착한 벗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왕은 마땅히 이 사위성 안의 모든 인민들에게 명하여 모두 다 같이 따라가게 하셔야 하며, 왕의 명을 어기는 이는 국법으로 다스리십시오. 왜냐 하면, 무릇 모든 보살에게도 오히려 권속이 있어서 에워싸고 장엄하거늘 더구나 왕이겠습니까?”
그때 바사닉왕이 보살에게 아뢰었다.
“어떤 이들이 그
보살의 권속입니까?”
보살이 대답하였다.
“보리의 마음을 권하는 이가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깨달아 알게 하기 때문이요, 여래를 뵙도록 권하는 이가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거짓말을 하거나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며, 바른 법을 듣도록 권하는 이가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불법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요, 성인 대중들을 만나도록 권하는 이가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착한 벗을 얻기 때문이며, 네 가지로 거두어 주는 이[四攝]가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중생들을 거두어 주기 때문이요, 6바라밀이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보리를 더욱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서른 일곱 가지 품(品)이 바로 보살의 권속이니 도량(道場)을 향하여 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에게는 이러한 권속이 있어서 장엄하고 호위하며, 악마의 군사를 꺾고 사자후(師子吼)를 외치기에 이르며 가장 수승한 곳에 오르게 한답니다.”
그때 바사닉왕과 모든 대중들은 기뻐 뛰고 구천(九天)의 중생들은 번뇌의 때[垢]를 여의고 청정한 눈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자, 선순 보살
과 바사닉왕과 모든 하늘․사람․건달바․아수라 등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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