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38권
대보적경 제38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④
4) 여래부사의성품 ②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부사의한 힘을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게 되는가?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다 이러한 열 가지의 힘을 성취하였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였으므로 여래(如來)․응공(應供)․정등각(正等覺)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큰 법의 바퀴[大梵輪]를 굴리지만 일체 세간의 여러 사문․바라문이나 혹 하늘이나 마왕[魔]이나 범천 등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열 가지 힘이라 하는가? 이른바 이치에 맞고 맞지 아니함을 바로 아는 지혜의 힘[處非處智力]이며, 중생의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業報智力]이며, 갖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種種界智力]이며, 중생의 갖가지 견해를 아는 지혜의 힘[種種解智力]이며, 중생의 갖가지 근성을 아는 지혜의 힘[種種根智力]이며,
여러 갈래 길로 나가는 온갖 행위를 아는 지혜의 힘[一切遍行行智力: 遍趣行智力]이며, 정려(靜慮)․해탈(解脫)․삼마지(三摩地)․삼마발저(三摩鉢底)와 물들고 깨끗한 인연을 아는 지혜의 힘[雜染淸淨智力]이며,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隨念前世宿住作證智力]이며, 중생이 이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가서 나는 것을 증명하는 지혜의 힘[死生作證智力]이며, 번뇌가 다한 도를 증득한 지혜의 힘[漏盡作證智力]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러한 열 가지의 힘을 성취하였으므로 대중 가운데서 능히 법의 바퀴를 굴리거니와 일체 세간은 능히 굴리지 못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이치에 맞고 맞지 않음을 바로 아는 지혜의 힘이라 하느냐? 사리자야, 여래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이치에 맞고 맞지 아니함을 안다는 것은, 말하자면 옳은 것은 여실히 옳은 줄 알고, 그른 것은 여실히
그른 줄 아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이 옳은 것이며 어떤 것이 그른 것인가?
사리자야, 그르다는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뜻으로 나쁜 짓을 하고서 능히 기뻐할 만하고 즐거워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의미 있는 과보를 얻을 수 있다 한다면 올바른 것이 아니니라. 올바르다는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 말하자면 몸으로 나쁜 짓을 하고, 말로 나쁜 짓을 하고, 뜻으로 나쁜 짓을 하고서 기쁜 것이 못되고 즐거운 것이 못되고 사랑스러운 것이 못되며 의미 있는 과보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것이니라.
또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몸으로 묘한 짓을 하고, 말로 묘한 짓을 하고, 뜻으로 묘한 짓을 하고서 능히 기뻐할 것이 못 되고 즐거운 것이 못되고 사랑할 만한 것이 못되며 뜻 있는 과보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 말하자면 몸으로 묘한 짓을 하고, 말로 묘한 짓을 하고, 뜻으로 묘한 짓을 하고서 능히 기쁠 만하고 즐거울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뜻있는 과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다시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인색한 까닭에 능히 큰 부자가 되고, 계를 어긴 까닭에 인간․천상에 태어나고 성냄[瞋恚]으로 인하여 단정한 몸을 받아 나고, 게으른 까닭에 능히 관(觀)이 앞에 드러나고, 마음이 어지러운 자이기에 바른 선정(禪定)에 들어가고, 나쁜 지혜로 말미암아 길이 일체 상속(相續)하는 습기를 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 말하자면 ‘인색한 까닭에 능히 빈궁의 과보를 얻고, 계를 어긴 까닭에 지옥․축생․아귀의 세계에 떨어지고, 성냄으로 인해 못생긴 과보를 받고, 게으른 까닭에 관이 앞에 드러남을 얻지 못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까닭에 바른 선정에 들지 못하고, 나쁜 지혜로 인해 일체 상속하는 습기를 끊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또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보시하므로 빈궁해지고, 계를 지키므로 지옥․축생․아귀의 세계에 떨어지며, 견디어 참는 까닭에 못생긴 과보를 받고, 올바로 정진하므로 관이 앞에 드러나지 않으며, 마음을 한데 모으기 때문에 바른 선정에 들지 못하고, 성스러운 지혜로 인해 일체 상속하는 습기를 끊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 말하자면 ‘보시하므로 능히 큰 부(富)를 얻고, 계를 지니므로 인간․천상에 태어나고, 견디어 참는 까닭에 단정한 몸을 받고, 올바른 정진으로 말미암아 능히 관이 앞에 드러나게 되고, 마음을 한데 모으므로 바른 선정에 들어가고, 성스러운 지혜로 말미암아 길이 일체 상속하는 습기를 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다시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장수를 얻고, 남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큰 부자가 되고, 간음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정숙하고 어진 아내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 말하자면 ‘남을 죽이면 단명하게 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면 빈궁한 과보를 받고 간음하면 정숙하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 아내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또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 말하자면 ‘남을 죽이지 않으므로 단명(短命)의 과보를 받고,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않으므로 빈궁의 과보를 받고, 간음하지 않으므로 정숙하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 아내를 만났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 말하자면 ‘살생하지 않는 이는 장수를 얻고, 훔치지 않는 이는 큰 부자가 되고, 간음하지 않는 이는 정숙하고 어진 아내를 만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다시 사리자야, 이렇게 모든 착하고 착하지 못한 업의 길에 있어서
이치에 맞고 이치에 맞지 않음을 지금 마땅히 간략히 설하여 그 요점을 드러내어 보이리라. 말하자면 거짓말을 한 이가 남의 비방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비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거짓말을 여읜 이가 능히 비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능히 비방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이가 능히 화합한 권속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그런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이간질하는 말을 여읜 이가 권속이 갈라지는 과보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화합한 권속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거칠고 사나운 말을 하는 이가 만일 늘 남의 좋은 소리를 얻어듣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남의 나쁜 소리를 듣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거칠고 사나운 말을 여읜 이가 남의 좋지 못한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그런 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교묘하게 꾸민 말을 하고서 자기 말을 남이 믿는 과보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교묘하게 꾸민 말을 여의고서 그의 말을 남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믿어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탐착한 자가 재물이 흩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흩어져 버리는 과보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탐착을 여의면 재물이 흩어져 잃어버리는 과보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그런 과보를 얻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성냄의 마음을 쌓고서도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지옥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성냄을 여의고서도 좋은 곳에 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좋은 곳에 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삿된 소견을 일으켜 삿된 소견의 원인으로 능히 도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도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바른 소견을 지닌 이로서 바른 소견의 원인으로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능히 성인의 도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무간업(無間業)을 짓은 사람도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편히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계행이 청정한 이가 마음 편히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편히 머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얻을 것이 있다는 견해[有所得見]에 머물면서 능히 이치에 따르는 법인[順忍:順法忍]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공(空)한 이치를 알고서도 이치에 따르는 법인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나쁜 장난을 하면서 마음이 안식(安息)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능히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마음을 한곳에 집중한 이로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능히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여인이 전륜왕이 된다거나, 제석천왕이 된다거나, 범자재천왕(梵自在天王)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대장부로서 그런 왕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여인이 세상에 나와서 부처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여인의 몸을 바꾸어 세상에 나와서 부처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제8지(地)에 오른 사람이 아직 과(果)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定)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과를 증득하고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처음 성인의 유(流:初預流位)에 이르러서 제8 유(有:位)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이 사람의 몸[蘊:身蘊]으로 장차 반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일래과(一來果)의 사람으로서 제3유(有:不還果)를 증득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이 몸으로 장차 반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사람이 다시 인간에 돌아온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그곳에서 반열반에 든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만일 아라한(阿羅漢)이 다시 태어남을 계속한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다시 태어남을 계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여러 성인이 다 삿된 스승을 구하고 삿된 표치(標幟)를 전수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삿된 스승과 삿된 표치를 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은 보살이 후퇴하여 물러섬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결정코 보리를 얻어 후퇴하여 물러섬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만일 보살이 도량에 조용히 앉아서 보리를 증득하지 아니하고 중간에 일어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또한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도량에 앉아서 불도를 증득하고서야 일어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만일 ‘여래에게 습기의 상속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일체 여래에게 습기의 상속이 영원히 끊어졌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여래의 지혜가 걸림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걸림이 없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능히 여래의 정수리를 본다’라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능히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능히 여래의 마음이 머무는 것을 안다고 하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능히 알 수 없다고 하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여래께서는 정(定)하지 않은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마음이 항상 정에 들어 있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모든 여래가 실답지 않은 말을 한다고 하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만일 모든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이며, 실다운 말을 하는 이며,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이라고 하면
이치에 맞느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여래는 과실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과실이 없기 때문에 부처라 하고 박가범(薄伽梵)이라 한다고 하면 이치에 맞느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佛法]도 또한 마찬가지로 이렇게 넓게 분별하여 설해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나아가 여래가 현재 세상에서 막힘이 있고 걸림이 있는 지견(智見)에 끄달리게 된다고 하면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이치에 맞는다고 말한 것은 섭수할 바가 있는 것이니라. 부처님․박가범이 현재 세상에서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지견에 운영된다고 하면 이치에 맞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이치에 맞고 맞지 않는 것을 아는 지혜의 힘[處非處智力]이라 하나니, 불가사의하고 한량없고 경계가 없음이 마치 저 허공이 경계가 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여래의 이치에 맞고 맞지 않음을 아는 지혜의 힘도 경계가 없고 끝이 없음이 또한 그와 같으니라.
만일 여래․응공․정등각의 이치에 맞고 맞지 않는 것을 아는 지혜의 힘의 경계를 구하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끝을 구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여래의 불가사의한 이치에 맞고 맞지 않음을 아는 지혜의 힘이 허공 같다는 말을 들으면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시방 허공이 끝간 데 없듯이
이치와 이치 아님 아는 지혜도 경계가 없어라.
이치와 이치 아닌 것을 여실히 알고는
대중을 위하여 미묘한 법 널리 편다네.
해탈도의 근기를 갖춘 사람에겐
부처가 알아보고 그를 위해 방법을 설하지만
만일 해탈도의 근기를 갖춘 이가 아니라면
이치 아님 알고는 놓아 버린다네.
가령 허공을 옮겨 놓으면
시방 대지를 한꺼번에 찢을 수 있다 해도
세간․출세간에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의
이치와 이치 아닌 것을 아는 지혜는 여실하다네.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첫 번째 이치에 맞고 맞지 않음을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一處非處智力]이라 하느니라. 이것을 성취하므로 여래․응공․정등각께서 대중 가운데에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세간의 여러 사문․바라문이나 또는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 등은 모두들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중생의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業報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無上智力]으로 여실히 능히 과거․미래․현재의 지은 업과 그 받는 업[業受]을 알아서 그 원인과 태어날 처소와 그 밖의 모든 과보를 다 능히 환히 아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어떻게 여래가 여실히 아는가? 말하자면 여래․응공․정등각은 과거에 받은 업을 여실히 능히 알아서 착한 원인을 짓고 착하지 못한 것을 멀리 여의었다면 오는 세상에 마땅히 선근의 원인을 심는 것이요, 만일 과거에 받은 업이 착하지 못한 원인을 지어서 착한 것을 멀리 여의었다면 오는 세상에 불선근(不善根)의 원인을 심는 것이니라.
이러한 모양들을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한 모든 받는 업이 오는 세상에 장차 변변치 못한 편[劣分]을 따를는지, 또는 모든 받는 업이 오는 세상에 훌륭한 편[勝分]을 따를는지 이러한 모양을 여래는 다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모든 받는 업이 현재 세상에서 변변치 못한 편을 따를지라도 오는 세상에는 장차 훌륭한 편을 따를는지, 현재 세상에는 훌륭한 편을 따르더라도 오는 세상에는 변변치 못한 편을 따를는지, 현재 세상에서 변변치 못한 편을 따르고 오
는 세상에서도 변변치 못한 편을 따를는지, 혹 모든 받는 업이 현재 세상에서 훌륭한 편을 따르고 오는 세상에서도 훌륭한 편을 따를는지 등 이와 같은 모양들을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모든 받는 업이 과거 세상에는 변변치 못한 방편을 지었더라도 오는 세상에는 대단한 방편을 지을는지, 혹 모든 받는 업이 지은 것은 적은데 크게 승진(勝進)을 얻기도 하며 혹 모든 지은 업은 크지만 승진한 것은 적은지, 이러한 모양들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받는 업이 장차 성문성(聲聞性)을 얻을 원인이 될지, 장차 독각성(獨覺性)을 얻을 원인이 될지, 장차 불성(佛性)을 얻을 원인이 될지, 이러한 모양들을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받는 업이 현재 세상에는 괴롭더라도 능히 오는 세상에는 즐거운 과보를 얻을지, 혹은 현재 세상에는 즐겁더라도 오는 세상에는 괴로움의 과보를 얻을지, 혹은 받는 업이 현재 세상에도 괴롭고 오는 세상에도 괴로운 과보를 얻을지, 혹은 받는 업이 현재 세상에도 즐겁고 오는 세상에도 즐거운 과보를 얻을지 이러한 모양들을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능히 과거․현재․미래의 일체 중생의 업과 그 원인과 그 밖의 모든 과보와 또한 서로 융화[卽]하고 여읨[離]과 또는 수순하고 다른 편으로 갈라지지 않는 등 이러한 모양들을 여래는 알고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여실히 말씀을 펴시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변지가 과거․미래․현재의 업과 받는 업․원인․처소․과보를 아는 지혜는 한량없고 경계가 없으며 불가사의하나니 마치 허공이 경계가 없고 끝이 없듯이 이와 같이 여래의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도 경계가 없고 끝이 없나니, 만일 여래․응공․정등각의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와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여래의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이 허공과 같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래는 인․과의 업보를 잘 알아서
밝은 눈으로 여실히 모든 업을 아나니
거룩하여라, 3세에 걸림이 없이
중생의 모든 행위 여실히 아네.
모든 중생이 저 다섯 가지 갈래 길에
고락(苦樂)의 인과를 받게 되나니
만일 원인을 돌려놓으면 괴로움도 바뀔 것을
환히 비추는 선서(善逝)는 여실히 아네.
선악[黑白]의 과보가 다른 온갖 업이
그에 상응하는 인에 따라 과보가 다르네
손바닥 가운데 여의주를 보듯이
선서는 환히 관하고 여실히 아네.
모든 과보에 지은 인은 적으나
장차 얻는 과는 한량이 없을지
혹 지은 인은 많으나 얻는 과는 적을지
선서는 두루 다 여실히 아네.
어떤 인으로 장차 성문과를 얻을지
혹은 장차 독각과를 얻을지
능히 위없는 묘한 지혜의 힘을 얻을지
선서는 남김없이 여실히 아네.
혹은 업을 익혀 가는 인행시(因行時)에는 괴로우나
이 업으로 장차 낙(樂)의 과를 얻을지
혹은 업을 익혀 가는 인행시에 즐거우나
장차 얻을 과는 괴로울지 여실히 아네.
또는 업의 인과가 모두 괴로운지
또는 업의 인과가 모두 즐거운지
또는 업의 자체(自體)가 인의 자체인지
선서께서는 모양을 응당 여실히 아네.
괴로움의 과보가 3세에 빙빙 돌고
중생들이 다섯 세계[五趣]로 흘러가는 것을
거룩하고 원만한 보리의 지혜로
사실과 다름없이 능히 안다네.
“사리자야, 이것을 두 번째 여래의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第二如來業異報智力]이라 하느니라. 이것을 성취하므로 여래․응공․정등각은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大梵輪)을 굴리지만 모든 세간의 여러 사문․바라문이나 또는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 등은 모두들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갖가지 견해를 아는 지혜의 힘[種種解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저 유정의 무리와 삭취취(數取趣:補特迦羅)에 대하여 한 가지 견해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견해를 모두 다 사실대로 아실 뿐더러, 여래는 이에 대해 명료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내가 다시 너를 위하여 크게 분별하여 말하리라. 저 삭취취라는 것은 탐욕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냄[瞋恚]의 견해를 일으키며 혹은 성냄에 머물러 있으면서 탐욕의 견해를 일으키며, 나아가 어리석음[愚癡]에 머물러 있으면서 탐욕․성냄의 견해를 일으키나니 이러한 모양을 여래는 여실히 다 능히 환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삭취취는 혹 착하지 못한 법에 머물면서 착하지 못한 견해를 일으키며 혹 착한 법에 머물면서 착하다는 견해를 일으키나니 이런 것을 여래는 또한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삭취취는 하열한 방편에 머물러서 훌륭한 견해를 내기도 하며, 혹 훌륭한 방편에 머물면서 하열한 견해를 내기도 하며, 혹 이 하열한 방편을 앎으로 말미암아 장차 앞으로 나아감[勝進]에 머물며, 혹 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편을 앎으로 말미암아 장차 하열한 곳에 머물 것임을 여래는 또한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장차 삿된 선정[定]의 종자를 심을 것인지, 이 견해로 말미암아 장차 바른 선정의 종자를 심을 것인지,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장차 바른 선정의 해탈 종자를 심을 것인지를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장차 욕계(欲界)로 나아갈지, 혹 색계로 나아갈지,
혹 무색계로 나아갈지, 혹은 이 견해로 말미암아 두루 삼계에 나아갈지를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하열한 곳을 따르다가 장차 수승한 곳으로 나아갈지, 혹 수승한 곳으로 나아가다가도 장차 하열한 곳에 머물지를 여래는 또한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장차 오는 세상에 갖가지의 태어남을 받으며 갖가지 종류의 수용(受用)을 받을 것을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장차 타락할지, 혹 이 견해로 말미암아 해탈의 종자를 심을지 이것을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이미 환히 알고는 그에게 맞도록 널리 중생을 위하여 법답게 연설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는 하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를 아는 지혜의 힘은 헤아릴 수 없으며 경계가 없고 끝이 없는 것이 허공과 같으니라.
이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갖가지 견해를 아는 지혜의 힘이 허공과 같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을 말씀하셨다.
세간의 갖가지 견해가
과거와 현재에 한량없는 것
그 가지가지 아는 마음을
길잡이는 능히 모두 알도다.
만일 탐욕의 견해가 있는 자로서
다시 장차 성냄에 머무르거나
혹 현재 성냄에 머물면서
어리석음의 견해를 내는 것도 여실히 알도다.
어리석음에 머물며 탐욕의 견해를 내거나
마음이 부사의에 머물러서
온갖 망상이 얽혀 일어나더라도
길잡이는 능히 모두 알도다.
저 하열한 방편으로
훌륭한 견해를 내거나
혹 증상(增上)하는 방편인가를
길잡이는 능히 모두 알도다.
삿된 성품에 따라 들어가서
다시 갈래 길에 들지 아니하고
삼계를 벗어나는 견해를
여래는 능히 모두 알도다.
온갖 태어남과 종류의
모든 수용의 차별과
혹 아래로 타락하는 것을
양족존(兩足尊)은 능히 알도다.
갖가지의 견해를 알고는
길잡이는 법답게 설한다네.
이것이 세 번째 부처님의 힘이니
거룩한 불자만이 능히 믿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세 번째 갖가지 견해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三種種解智力]이라 하느니라. 이것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여래․응공․정변지가 저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능히 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세간의 사문․바라문과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 등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한 것이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갖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種種界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일체 세간의 갖가지 경계를 아느니라. 이 경계로 말미암아 세간 중생이 복될 짓을 하는지, 복되지 못할 짓을 하는지, 죄도 복도 아닐 짓[不動行]을 하는지, 혹은 이 경계로 말미암아 세간을 벗어나는 종자를 심을 것인지, 이러한 경계를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안계(眼界)와 색계(色界) 및 안식계(眼識界)를 아나니, 이런 경계를 어떻게 아는가? 여실히 안다는 것은 내공(內空)․외공(外空)․내외공(內外空)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라. 나아가 이렇게 여실히 의계(意界)와 법계(法界) 및 의식계(意識界)를 아나니, 이러한 경계를 어떻게 아는가? 여실히 안다는 것은 내공․외공․내외공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라.
또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를 여실히 아나니 이러한 경계를 어떻게 아는가? 여실히 안다는 것은 공계(空界)와 같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욕계(欲界)와 색계(色界) 및 무색계(無色界)도 여실히 아나니 모두 분별로 일어난 까닭이니라. 또 유위계(有爲界)는
인연으로 조작된 까닭이며 무위계는 조작된 것 없는 모습인 까닭이며, 모든 혼잡하게 오염된 세계는 번뇌로 인연된 모양인 까닭이요, 깨끗한 세계는 그 자체가 빛나고 깨끗한 모양인 까닭임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여실히 모든 조작된 경계[行界]는 이치를 따르지 않는 무명(無明)의 모양인 까닭이며 열반계는 이치를 따르는 밝은 모양이므로 이러한 모든 경계를 다 능히 밝게 아느니라.
그러므로 사리자야, 혹은 어떤 경계[界]가 능히 중생 세간을 건설하여 이 경계에 중생들이 의지해 머물 것인지, 이와 같이 어떤 경계가 능히 중생의 선의 종자를 끌어낼지, 어떤 경계가 능히 선의 공덕을 일으켜 세울지, 어떤 경계가 능히 선의 방편을 일으킬지, 어떤 경계가 능히 선의 의욕을 내게 할지, 어떤 경계가 능히 선의 공덕을 불타오르게 할지, 어떤 경계가 능히 모든 공덕의 의지할 곳이 될지 사리자야, 이러한 경계는 한량없고 끝이 없거늘 이것 또한 여래는 여실히 밝게 아느니라. 이미 환히 알고는 그에 맞도록 유정들을 위하여 법답게 연설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한 경계뿐 아니라 갖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끝이 없는 허공과 같으니라. 만일 여래의 갖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의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갖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이 허공과 같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의 모든 중생들은
갖가지 경계에 의지하나니
그 유전하는 곳을
거룩한 이는 다 능히 아느니라.
복․복 아닌 것․복과 복 아님도 아닌 것과
세간을 벗어나는 것을 따라
이러한 경계에 머물고는
적정 열반을 증득하느니라.
혹 안계․색계와
안식계와
이계․비계․설계․신계․의계 등
이러한 경계를 다 능히 아느니라.
또 법계(法界)와
의식계에 대한 것과
안과 밖의 경계가 다 공임을
부처는 능히 여실히 아느니라.
지계(地界)와 수계(水界)며
화계(火界)와 풍계(風界) 등
네 경계가 같이 공한 모양[空相]임을
이렇게 다 능히 아느니라.
혹 욕계와 색계와
아울러 무색계가
두루 분별로 일어난 것임을
부처는 능히 여실히 아느니라.
저 허공이 끝없듯이
경계의 끝없음도 그러하나니
부처는 다 능히 비추어 알지만
나는 능히 안다고 이르지 않느니라.
경계가 본디 난 것이 없으니
또한 사라질 것도 없는 것
이것을 열반계라 하나니
거룩한 장부만이 능히 알리라.
저 허공을 헤아리기란 끝이 없듯이
모든 부처님의 지혜도 그러하며
모든 경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혜로 말미암아서만 능히 알 수 있다네.
갖가지 경계를 환히 알고는
모든 중생을 잘 다룬다네.
이것이 부처의 네 번째 힘이니
거룩한 불자만이 능히 믿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네 번째 하나의 경계뿐만이 아닌 갖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四非一界種種界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말미암아 여래․응공․정등각이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능히 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세간의 사문․바라문과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은 능히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하나의 근기뿐 아니라 갖가지의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非一根種種根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능히 아느니라. 또 어떤 다른 유정이나 삭취취(數取趣:補特迦羅)의 갖가지 근기의 차별적인 모양을 여래는 다 능히 분별하여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양을 어떻게 아는가? 말하자면 둔한 근기인지, 보통의 근성인지, 영리한 근기인지, 뛰어난 근기인지 열등한 근기인지를 환히 아나니 두루 근기를 분별하는 까닭이니라.
능히 중생이 매우 무거운 탐욕을 일으키는지, 매우 무거운 성냄을 일으키는지, 매우 무거운 어리석음을 일으키는지, 이러한 여러 근기를
여래는 여실하게 환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두루 근기를 분별하는 까닭에 여래는 능히 아나니 혹은 허망한 분별로 탐․진․치를 일으키는지, 혹은 미약하게 탐․진․치를 일으키는지 혹은 뒤바뀐 탐․진․치를 일으키는지 혹은 탐․진․치를 꺾어 엎을 마음을 일으키는지 이러한 모양을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혹은 착하지 못한 원인으로 생긴 근기인지, 착한 원인으로 생긴 근성인지, 혹 착함도 착하지 않음도 아닌 원인으로 생긴 근기인지, 혹 세간을 벗어날 원인으로 생긴 근기인지를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눈의 감관[眼根]․귀의 감관[耳根]․코의 감관[鼻根]․혀의 감관[舌根]․몸의 감관[身根]․뜻의 감관[意根]인지, 여자의 근기[女根]인지, 남자의 근기[男根]인지, 목숨의 근기[命根]․즐거움의 근기[樂根]․괴로움의 근기[苦根]․근심의 근기[憂根]․기쁨의 근기[喜根]․버림의 근기[捨根]인지, 믿음의 근기[信根]․부지런함의 근기[正勤根]․생각의 근기[念根]․지혜의 근기[慧根]․삼마지의 근기[三摩地根]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장차 알 근기[未知當知根]인지, 알 것을 이미 안 근기[知根知已根]인지 이러한 모든 근기의 차별적인 모양을 이것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저 모든 근기를 알고는 눈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귀의 감관에 머물러 코․혀․몸의 감관에는 머물지 아니하며 혹 귀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코의 감관에 머물고 혹 코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혀의 감관에 머물고 혹 혀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몸의 감관에 머물고 혹 몸의 감관으로 인하여 장차 눈의 감관에 머무나니 이러한 근성을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만일 중생이 보시의 근기를 지니고서 계 지키는 방편을 닦는다면 여래는 어느 편이 더 우수하고 하열한 근기인지를 아는 지혜로써 보시를 설하며, 만일 계의 근기를 지니고서 보시하는 방편을 닦는다면 계를 설하며, 만일 참는 근기[忍根]를 지니고서 정진[勤]의 방편을 닦는다면 참는 법[忍法]을 설하며,
정근(正勤)의 근기를 지니고서 참는 방편을 닦는다면 정근을 설하며, 정려(靜慮:禪定)의 근기를 지니고서 지혜의 방편을 닦는다면 정려를 설하며, 만일 지혜의 근기를 지니고서 선정(禪定)의 방편을 닦는다면 바른 지혜를 설하느니라. 이렇게 일체의 보리분법(菩提分法)에 모든 근기의 차별을 여실히 알고 그에 맞도록 설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중생이 성문의 근기를 지니고서 도리어 독각(獨覺)의 방편을 닦는다면 여래가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써 성문승[下乘]을 설하며, 독각의 근기를 지니고서 성문(聲門)의 지혜 방편을 닦는다면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써 독각승[中乘]을 설하며, 대승의 근기를 지니고서 2승(乘)의 지혜 방편을 닦는다면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써 대승을 설하며, 열등한 근기를 지니고서 대승행을 닦는다면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로 이승을 설하느니라.
만일 중생이 견뎌낼 만한 근기가 없고 견뎌낼 만한 모양이 없으면 여래가 여실히 견뎌 낼 수 없고 법의 그릇이 아닌 줄을 알고 곧 버려두느니라. 만일 중생이 견뎌낼 만한 근기가 있고 견뎌낼 만한 모양이 있으면 여래는 여실히 견뎌 낼 수 있는 법의 그릇인 줄을 알고 곧 은근히 법을 설하여 깨달아 들어가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는 일체 중생의 근기가 잘 성숙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과 모든 근기가 세간을 벗어날 것인지 벗어나지 못할 것인지를 아느니라. 사리자야, 중생들의 근기를 여래는 여실히 알고 이러한 모양을 지니고 이러한 방편이며, 이러한 믿음과 이해며 이러한 본래의 인행[本因]이며 이러한 인연이며 이러한 번뇌며 이러한 마지막 결과[究竟]임을 환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갖가지 근기를 아는 지혜는 불가사의하며 경계가 없고 끝이 없어 허공과 같나니, 만일 여래의 모든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으려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끝을 찾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들은
이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이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근기의 피안에 이른 세간의 높은 이
중생들의 뜻과 성품의 행 잘 통달하여
중생들의 근기에 견딜 만한 것을 따라
사람 가운데의 사자가 설법하였네.
하․중․상품의 근기가 견딜 만한 것
선서(善逝)의 뛰어난 지혜도 그 속에서 일어났네.
해탈할 그릇이고 마음인가를 관찰하고는
그 슬기에 맞추어 법을 설하네
어떤 사람이 모든 근기를 능히 일으켜
부지런하고 쉼 없어 번뇌 적으면
그 사람의 근기를 잘 통달하여
알고 행함에 수순하여 법을 설하네
만일 장부로서 착한 근성 있으면
근(勤)․신(信)․욕(欲)에 따라서 열어 보이며
또 근기와 행위의 차별 상(相)에 따라서
여러 훌륭한 뜻과 정혜(定慧) 등을 설하네.
그 사람이 믿음의 욕구 일으켰으면
지혜로운 이는 근기를 따라 정도(淨道)를 설하며
저들이 행하는 온갖 행위 알고는
거룩한 법 설하여 괴로움을 벗겨 주며
결정코 불보리(佛菩提)의 근기에 안주하게 하며
거꾸로 성문의 지혜 익히는 이는
대승법을 설하여 정각을 이루게 하나니
이것이 부처의 굴복시키기 힘든 다섯 번째 힘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다섯 번째 갖가지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五種種根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여래가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능히 범륜을 굴리지만 모든 세간의 사문․바라문과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여러 갈래 길로 나가는 온갖 행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遍趣諸行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러 갈래 길로 나아가는 온갖 행위를 능히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양을 어떻게 아는가? 말하자면 중생의 성품에 있어서 정정취(正定聚)의 성품인지, 부정취[不正定聚]1)의 성품인지, 사정취(邪定聚)의 성품인지를 환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정정취의 성품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지나간 세상에 닦아 익힌 방편으로 인하여 깨우친 지혜와 예리한 근기가 생긴 것이다. 또한 모든 여래가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든 설하지 아니하든 여래는 여실히 그 중생이 전세의 인과로 견뎌 낼 만한 법의 그릇인지 알고 그에 맞도록 설법하여 빨리 해탈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부정취의 성품이라 하는가? 그는 바깥 인연의 힘으로 말미암아 성숙되는 모습이니 만일 법답게 가르쳐 지도하면 해탈을 얻을 것이고 법답게 가르쳐 지도하지 않으면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니 여래는 인연 따라 서로 맞는 법을 설하여 그 중생들이 바른 법을 듣고는 이치에 맞게 수행하여 해탈의 과를 얻게 하느니라. 이러한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사정취의 성품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중생의 성품이 번뇌에 가리워 깨끗한 업을 닦지 않고 식성(識性)이 박약하며 어리석음이 깊고 두터워서 삿된 소견의 그물에 걸려 바른 법의 그릇이 아닌 것은 만일 여래가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든 법을 설하지 아니하든 간에 결코 견뎌 내어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니라. 여래는 여실히 저 중생이 법의 그릇이 아닌 줄을 알고는 곧 놓아두느니라.
그러므로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런 중생을 민망히 여기어 이익을 주기 위한 까닭에 넓은 서원의 갑옷을 입고 삿된 소견의 군사 가운데 들어가서 교화하여 꺾어 굴복시키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세 가지의 탐욕 행위를 여실히 훤히 아느니라. 혹은 제 몸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탐욕 행위를 일으키거나, 혹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탐욕 행위를 일으키거나, 혹은 전세의 인연으로 탐욕 행위를 일으키는 것 등이니라.
또
능히 세 가지의 성내는 짓을 훤히 아느니라. 혹은 저에게 손해 된다는 생각으로 성내거나, 혹은 제 욕심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성내거나, 혹은 전세의 습성으로 번뇌를 일으키는 것 등이니라.
또 세 가지의 어리석은 짓을 훤히 아느니라. 혹은 어리석은 짓이 무명으로 인하여 나는지, 혹은 어리석은 짓이 망령되이 몸이 있다는 견해로 인하여 나는지, 혹은 어리석은 짓이 의심으로 인하여 나는지, 이러한 일체를 여래는 여실히 다 능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는 모든 행이 괴로움과 즐거움, 두 가지의 행위에 모두 능히 빨리 통달함은 근기가 영리한 까닭이며, 괴로움과 즐거움의 두 가지의 행위에 모두 느리게[遲] 통달함은 근기가 우둔한 까닭임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느린 행위에 느리게 통달함은 반연한 것을 버린 까닭이며, 느린 행위에 빨리 통달함은 도중에 쉬지 아니한 까닭이며, 느린 행위에 빨리 통달함은 도중에 쉬지 아니한 까닭이며, 재빠른 행위에 느리게 통달함은 용맹스럽게 결단을 내려 정진한 까닭이며, 재빨리 행하여 재빨리 통달하려 함은 그 근기가 아닌 까닭임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한 혹 어떤 행위는 간택하는 힘[簡擇力:智力]은 충분하지만 닦아 익히는 힘은 부족하며, 혹 어떤 행위는 닦아 익히는 힘은 충분하지만 간택하는 힘이 부족하며, 혹 어떤 행위는 간택과 닦아 익힘의 두 가지 힘이 함께 충분하며, 혹 어떤 행위는 간택과 닦아 익힘의 힘이 모두 충분하지 못한 줄을 아나니, 이러한 모든 모양을 여래는 여실히 다 능히 아느니라.
또한 혹은 어떤 행위는 믿음의 욕구는 두루 갖추었지만 방편은 두루 갖추지 못하며, 혹 어떤 행위는 방편은 갖추었지만 믿음의 욕구가 부족하며, 혹 어떤 행위는 믿음의 욕구와 방편이 함께 만족하게 갖추어지지 못하며, 혹 어떤 행위는 믿음의 욕구와 방편이 둘이 다 만족하게 갖추어지는 이러한 것을 여실히 능히 다 아느니라.
또 혹 어떤 행위는 몸으로 하는 짓[身業]은 청정하지만 말과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며, 어떤 행위는 말로 하는 짓[語業]은 청정하지만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며, 혹 어떤 행위는 마음으로 하는 짓[心業]은 청정하지만 몸과 말은 그렇지 아니하며,
혹 어떤 행위는 몸과 말과 마음이 다 청정하지 아니하며, 혹 어떤 행위는 몸과 말과 마음이 함께 청정한 줄을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나아가 모든 중생이 지닌 온갖 행위는 혹은 흘러 옮겨가는 것에 인한 것인지, 흘러 옮겨가지 않는 것에 인한 것인지, 혹은 흘러 옮겨가는 것과 혹은 옮겨가지 않는 것에 인한 것인지를 여래는 걸림 없는 지견[無碍智見]으로 이러한 일체 것을 통달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가 두루 갈래 길로 나아가는 행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遍敎行智力]은 불가사의하며 경계가 없고 끝이 없는 것이 허공과 같나니, 보살마하살들은 이러한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선서(善逝)는 여실히 온갖 행위 알아서
능히 결정된 유정(有情)의 근기를 알고
또 부정취 중생의 성숙될 모양을 알며
모든 근기에 서로 맞는 법을 아나니
모든 행위가 세 가지의 탐욕과 상응하는 것과
세 가지의 성냄․어리석음과 합하는 것
끝없이 넓은 미혹과 상응하는 행위며
그 인연을 큰 스승[大師]은 여실히 안다네.
어떤 고행을 하면 근기가 영리해지고
어떤 이는 이런 행을 해도 근기가 둔하며
어떤 즐거운 행으로 근기가 영리하고 둔한지
세상의 큰 의지처는 여실히 아네.
어떤 둔한 행위와 둔한 닦음과
혹은 행은 둔해도 닦기에는 영리하며
혹 행은 재빨라도 닦기는 느리며
혹 함께 재빨라도 그 성품이 아니며
혹 어떤 행위는 간택으로 난 것이요,
닦아 익힌 도력으로 일어남이 아니며
혹은 닦음으로 난 것이요, 간택이 아니며
함께 차별과 공통됨이 상응하여 생겨남이며
혹 어떤 행은 믿음의 욕구는 갖추었지만
그 청정함이 방편정(方便淨)이 아니며
혹 그 반대로 함께 함과 함께 하지 아니함을
온갖 지혜 갖춘 부처님께서는 다 훤히 아네.
다시 깨끗이 몸의 행위[身業]를 닦으나
말과 마음의 업은 청정하지 않으며
혹 다시 말과 몸은 청정하지만
그 마음 바탕은 청정하지 않으며
혹 속마음은 항상 청정하지만
몸과 말 두 행위는 청정하지 않으며
혹 다시 말과 마음은 청정하지만
그 몸의 행위는 청정하지 않으며
혹 몸․말․마음의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음과
모든 행의 유전함과 적멸함을
두루 알고 보는 이는 여실히 아나니
이것이 여래의 여섯 번째 힘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섯 번째 두루 갈래 길로 나아가는 행위를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六遍趣行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말미암아 여래는 스스로 말하기를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다른 이는 법답게 굴리는 자가 없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정려(靜慮)․해탈(解脫)․삼마지(三摩地)․삼마발저(三摩鉢底)와 물들고 깨끗한 것을 일으키는 인연을 아는 지혜의 힘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나나 남이나 일체의 정려․해탈․삼마지․삼마발저와 물들고 깨끗한 것을 일으키는 법을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양을 어떻게 아는가? 말하자면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이 능히 물들게 됨을 여실히 아느니라. 또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이 능히 청정하여짐을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으로 능히 물들게 되는가? 사리자야, 이치에 맞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인이 되고, 무명(無明)이 연이 되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물든 번뇌를 일으키게 하느니라. 이렇게 무명이 인이 되고 행(行)이 연이 되며, 행이 인이 되고 식(識)이 그 연이 되며, 식이 인이 되고 명색(名色)이 연이 되며, 명색이 인이 되고 6처(處)가 연이 되며, 6처가 인이 되고 모든 감촉[觸]이 연이 되며,
감촉이 인이 되고
느낌[受]이 연이 되며, 느낌이 인이 되고 애착[愛]이 연이 되며, 애착이 인이 되고 집착[取]이 연이 되며, 집착이 인이 되고 유(有)가 연이 되며, 유가 인이 되고 남[生]이 연이 되며, 남이 인이 되고 늙고 죽음[老死]이 연이 되며, 번뇌가 인이 되고 행위[業]가 연이 되며, 모든 견해[見]가 인이 되고 애착이 연이 되며 번뇌[隨眠]가 인이 되고 얽매임[纏]이 연이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모든 인과 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물든 행위를 일으키게 하느니라. 이러한 모습을 또한 여래가 여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는가? 사리자야,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 연으로 능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느니라. 두 가지의 인연은 다른 교훈의 음성을 잘 따르는 것과 안으로 이치답게 생각하는 것이니라. 또는 사마타(奢摩他)의 관행(觀行)으로 마음을 한 경계에 모으는 것과 비발사나(毘鉢舍那)의 선교방편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말하자면 오지 않는 지혜[不來智]와 가지 않는 지혜[不去智]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생사가 없는 관법[無生觀]과 정정(正定)을 증득함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행의 두루 갖춤과 명(明)과 무명(無明)에서 해탈하는 도를 얻음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해탈문(解脫門)을 닦는 것과 해탈지(解脫智)의 성품이니라. 다시 두 가지의 인과 두 가지의 연으로 능히 청정하게 하나니 따라서 진실을 깨침과 진실을 얻음이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인과 연으로 능히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또한 여래는 여실히 아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히 모든 중생의 물든 경계를 알며 모든 중생의 청정한 경계를 아느니라. 혹은 물든 경계에서 청정한 경계에 들어가며 혹은 청정한 경계에서
물든 경계에 들어가기도 하나니, 이러한 것은 다 여실한 관찰로 말미암은 까닭이니라.
혹 물든 경계에서 물든 경계로 들어가며 혹 청정한 경계에서 청정한 경계로 들어가는 이러한 것이 다 증상만(增上慢)의 집착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 여래가 그 가운데 여실한 지혜로 인도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여실한 지혜로 모든 정려를 사이사이 바꾸어 온갖 단계적인 차별을 경험하며 초월하였느니라. 말하자면 욕심의 나쁜 법을 여의고 찾아 생각함이 있어 욕계의 삶을 여읜 기쁨[離生喜樂]으로 고요히 초정려(初靜慮)에 머무느니라. 여래는 초정려에 머물고 나서 멸진정(滅盡定)으로 좇아 나오며 나아가 이와 같이 멸진정에 들고 나서는 초선정으로 좇아 나오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가 여실한 지혜로 저 8해탈(解脫)에 혹은 순차(順次)로 들어가고 혹은 거슬러 들어가며 혹은 다시 순으로 역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사이사이 바꾸어 들어가느니라.
사리자야, 이러한 해탈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말하자면 마음으로 색욕(色欲)의 생각이 있으면서 밖으로 몸의 모든 것을 관찰하나니 이것은 초해탈(初解脫)이니라. 마음으로 색욕의 생각이 없지만 밖으로 몸의 모든 것임을 관찰하나니 이것은 제2의 해탈이니라. 안과 밖이 다 깨끗하게 해탈되고 혹 그 깨끗한 성질에서 깨끗하다는 견해를 일으키나니 이것이 제3의 해탈이니라. 모든 경계가 허공에 들어간 선정[虛空想處定], 이것이 제4의 해탈이니라.
오직 식(識)의 생각만이 존재하는 선정[識想處定], 이것이 제5의 해탈이니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 들어간 선정[無所有處定], 이것이 제6의 해탈이니라. 생각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 없는 것도 아닌 곳에 들어간 선정[非有想非無想處定], 이것이 제7의 해탈이니라. 만일 생각의 느낌이 다 소멸한 경계에 들어간 선정[想受滅定], 이것이 제8의 해탈이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가 여실한 지혜로 하나의 삼마지에 고요히 머물러서 다시 나머지 삼마지와 삼마발저를 나타내어 보이며 또 다시 온갖 관해(觀解)를 나타내어 보이지만 여래는 모든 등지(等持) 등에 일찍이 혼란된 적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삼마지에
인연하지 않는 까닭에 삼마지에 들어가며 혹은 하나의 삼마지에 의지하므로 나머지 모든 삼마지를 성취하며 혹은 하나의 삼마지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능히 두루 모든 삼마지에 들어가느니라.
또 모든 여래는 마음이 항상 정(定)에 머물러서 되풀이하는 인연이 없으며, 또 모든 여래는 부정(不定)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며 모든 부처님 여래는 선정의 깊고 묘한 데 머물러서 능히 여래가 얻은 삼마지를 볼 자가 없느니라.
사리자야, 성문이 얻은 삼마지는 독각(獨覺)의 삼마지에 가려져 있으며, 독각이 얻은 삼마지는 보살의 삼마지에 가려져 있으며, 보살이 얻은 삼마지는 부처님의 삼마지에 가려져 있지만 여래가 얻은 삼마지는 가릴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여래는 가려질 수 없는 지혜로 항상 나타나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도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이렇게 가르쳐 주며 이렇게 교훈하여 능히 성문․독각의 삼마지를 열어 인도하느니라. 또 이러한 가르침과 교훈으로 능히 여러 보살의 미묘한 삼마지를 열어 인도하느니라. 모든 여래는 여실히 알고는 곧 이러한 가르침과 교훈을 드리우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정려․해탈․삼마지․삼마발저와 물들고 청정함을 일으키는 인연을 아는 지혜의 힘은 가히 헤아릴 수 없으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나니, 만일 여래의 선정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와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 모든 선정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런 까닭에 중생이 번뇌를 일으키고
이런 까닭에 중생이 청정함 얻는 것을
대웅(大雄)은 이렇게 훤히 알고는
널리 미묘한 법을 선양하네.
그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이 인이 되고
무명이 연이 되어 물든 번뇌를 내며
다시 무명은 인이 되고 행은 연이 되어
이렇게 잇달아 온갖 괴로움 내나니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과 무명은
저 12유지(有支:緣起)의 근본이 되나니
모든 부처님은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그에 맞도록 묘한 법 연설하네.
모든 번뇌의 근본은
업행(業行)과 무명이니
다시 이로 인연하여 식을 내며
이렇게 잇달아 모든 괴로움 일으키도다.
그 말씀한 교법의 음성을 따라
마음으로 이치답게 생각한다면
이 두 가지 인과 두 가지 연으로 말미암아
온갖 중생이 다 청정을 증득하리라.
사마타(奢摩他)는 이치다운 원인이 되고
비발사나(毘鉢舍那)는 연이 되어서
이렇게 중생이 해탈을 얻는 것
큰 스승은 여실히 다 능히 아느니라.
행자가 조용히 깨끗한 시라(尸羅:戒)에 머물러
모든 법이 다 공적(空寂)한 줄을 관찰하고
이미 해탈문을 잘 닦아 익히면
세간의 핍박과 고통 멀리 여의리니
이것을 부처님은 여실히 알아
모든 중생의 청정한 행위와
공․무상․무원의 해탈문을
선서(善逝)는 근기 따라 나타내 보이네.
독각이란 성자와 성문의
순으로 역으로 노니는 모든 정려를
여래는 그들의 증득한 것이
독침과 원수 같다 선언하였네.
모든 부처님이 증득한 선정․해탈은
마침내 원수 없고 독침 없나니
일곱 번째 여래의 힘은
다른 깨달음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음을 알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일곱 번째 모든 선정 지혜의 힘[如來第七諸定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말미암아 여래가 스스로 말하기를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다른 이는 법답게 굴리는 자가 없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如來宿住隨念作證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생각하는 대로 여실하게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가 이렇게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저나 남이나 모든 중생의 한량없는 숙명[宿住]을 혹 1생․100생․1,000생에서 나아가 한량없는 구지 나유다(那庾多) 백천 생의 일을 다 생각하는 대로 능히 아느니라.
또 생각하는 대로 겁이 무너지고 겁이 이룩되거나, 혹 한 겁이 이룩되고 무너지는 것이나 혹 한량없는 겁의 무너지고 이룩되는 것이며, 혹 생각하는 대로 백 구지 겁 나아가 한량없는 백천 구지 나유다 겁을 다 능히 훤히 아느니라.
또 능히 생각하는 대로 내가 지나간 세상에 일찍이 저곳에서는 이러한 이름, 이러한 성씨, 이러한 종족, 이러한 음식, 이러한 빛깔, 이러한 형상, 이러한 모양, 이러한 수명, 이러한 머묾,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이며, 내가 저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났으며 다시 저곳에서 죽어서 이곳에 태어난 것에 대해, 이렇게 저나 남이나 온갖 형상, 처소, 종류의 한량없는 숙명을 다 능히 생각하는 대로 단번에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일체 중생이 그 과거의 인을 따라서 이 인으로 이곳에 와서 났다는 것을 여실히 아느니라. 이러한 원인을 알고는 그에 맞도록 법을 설하느니라. 또 능히 일체 중생이 과거세에 여러 가지 마음이 서로 이어서 끊임없이
이러한 경계에 반연하여 이러한 마음이 생기며 이 반연한 인연이 갖추어지지 못하므로 이러한 마음이 소멸하였다는 이러한 일체를 여래가 여실히 생각하는 대로 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만일 한 중생이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켜 이 마음이 끊임없이 잇달아 나감을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겁에 갖가지로 말하더라도 능히 다할 수 없느니라. 한 중생의 마음 모양이 이렇듯이 일체 중생의 마음도 그러하나니, 여래가 그 온갖 마음 모양을 따라서 생각난 대로 다 능히 여실히 훤히 아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나 모든 중생의 모든 마음이 서로 되풀이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구지 겁 수만큼 말하여도 다할 수 없듯이 여래의 지혜도 또한 다함이 없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여래가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고 동등한 데 없으며, 견줄 데 없고 한량없고 무수하며, 이루 다 형언할 수조차 없으며 또한 경계가 있고 끝이 다함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써 모든 중생을 가피하여 숙명을 생각하게 하리니, 너는 이제 마땅히 과거세에 이미 이러한 모든 착한 법의 종자를 심은 것을 생각하라. 혹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혹은 성문의 처소에서 혹은 독각의 처소에서 혹은 바른 법 가운데서 모든 선근을 심고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다 생각하라. 저 모든 중생이 여래의 힘으로 생각하는 대로 다 알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여래가 부처님의 신통력을 가피함으로써 저 중생에게 전세에 한량없는 선근의 인연한 경계를 알게 하고는 그에 맞도록 위하여 법을 설하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음을 얻어서 그 욕구와 견해에 따라 벗어나기를 구한다면,
혹 성문승(聲聞乘)에 의지하거나 혹은 독각승(獨覺乘)에 의지하거나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면 이와 같이 여래는 따라 생각하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하게 훤히 아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여래가 전생 일을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한량없고 무수하고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나니, 그 누가 여래의 숙명을 따라 생각하는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와 끝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 숙명을 아는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생각하지 못할 나유다 구지 겁을
세상을 비추는 등불은 다 기억하도다.
또한 지나간 세상에 나와 남의 생(生)을
손바닥 안의 암라과[五菴果]2) 보듯 한다네.
생각대로 이름 성씨․형색의 구별이며
그 수명과 여러 갈래 길에 나는 것
중생이 이러한 원인을 두루 갖추는 것을
알고는 그에 맞도록 법을 설하네.
지난 과거의 경계와 끝이 없는 세상에
중생들이 지닌 마음[心]과 심법(心法)
이 마음이 끊임없이 이 마음으로 생겼나니
거룩한 큰 지혜로 능히 다 아시느니라.
선서(善逝)는 한 중생이 지나간 세상에
끊임없이 마음이 잇달아 남을 아심은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구지 겁에
그 경계와 끝을 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나아가 오는 세상의 구지 겁이 다하도록
모든 중생의 지난 세상 숙명을 연설함과 같아서
견줄 데 없는 지혜는 다함이 없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지혜 바다라 하도다.
일체 중생이 착한 믿음의 욕구를 내어
일찍이 모든 세존을 공양했나니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에 힘입어
과거에 정행(淨行)을 닦음을 반연케 하느니라.
큰 스승[大師]은 그 받은 것을 다 기억하나니
과거에 일찍이 온갖 복행 닦은 것과
그 3승에 머문 지혜며
해탈의 소의처(所依處)에서 물러나지 않음 등이니라.
선서의 숙명지는 끝이 없는 것
모든 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나니
다함 없는 명칭을 여덟 번째의 힘이라 한다네.
거룩한 장자는 능히 믿어 받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덟 번째 숙명을 아는 지혜의 힘[如來第八宿住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스스로 말하기를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다른 누구도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천안통으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天眼通作證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깨끗한 천안(天眼)이 사람보다 뛰어나서 모든 중생이 이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나되 혹은 못나고 혹은 잘났으며, 혹은 좋은 용모이고 나쁜 용모이며, 그 익힌 업대로 혹은 좋은 곳에 가거나 혹 나쁜 곳에 가는 이러한 형상을 여래는 밝게 보고 여실히 훤히 다 아느니라.
또 능히 여실히 모든 중생의 지은 업의 행위를 아나니 이러한 중생이 몸으로 나쁜 짓을 하였는지, 말로 나쁜 짓을 하였는지, 뜻으로 나쁜 짓을 하였는지, 성현을 비방하고 온갖 삿된 소견을 일으켰는지, 그는 이러한 삿된 소견의 원인으로 몸이 무너지고 숨이 멈추면 나쁜 곳에 떨어지되 혹은 지옥에 나거나 혹은 축생에 나거나 혹은 귀신 세계에 나거나 하는지를,
여래는 또 이러한 중생이 몸의 묘한 짓을 성취하며, 말의 묘한 짓을 성취하며, 뜻의 묘한 짓을 성취하고 성현을 비방하지 아니하고 바른 소견을 닦아서, 그가 이러한 바른 소견의 원인으로 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좋은 세계에 가서 혹은 천상의 즐거운 세계에 가 나는 것을 아느니라.
또한 여래는 깨끗한 천안으로 시방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허공 끝을 다하고 법계의 양(量)을 다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의 형상을 보느니라.
혹은 다시 모든 부처님 세계[刹土]가 치열하게 불타는 것을 보며 혹은 어떤 세계는 막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며 어떤 세계는 막 이룩되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또 다시 일체 중생의 죽는 것과 나는[生] 것을 보며, 혹은 다시 여러 큰 보살이 도사다천(覩史多天)을 좇아 어머니 태에 강신(降神)하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어머니 태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혹은 사방으로 각기 일곱 걸음씩 걷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내전(內殿)에 들어가 처하는 것을 보며,
혹은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것을 보며, 혹은 모든 부처님이 큰 보리를 깨닫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대법륜(大法輪)을 굴리는 것을 보며, 혹 다시 수명을 버리고 대열반에 드는 것을 보며, 혹은 다시 성문들이 할 일을 마치고 반열반에 드는 것을 보며, 혹은 모든 독각이 온갖 신통을 나타내어 깨끗한 시주들의 복을 갚고 열반에 드는 것을 보느니라.
또 모든 중생들이 현재 보지 못하는 것을 여래의 천안으로 보나니, 또한 다른 외도의 5통의 선안(仙眼)으로는 능히 보지 못하고 또한 성문․독각․보살들의 눈으로는 능히 보지 못하는 것을 모든 여래들의 천안으로 다 능히 보느니라. 이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중생들을 수레바퀴만큼 크게 여래는 천안으로 보느니라.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인간․천상 등 이러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여래는 다 능히 여실히 훤히 보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깨끗한 천안으로 한량없는 세계의 모든 중생의 성품을 관찰하되 어떤 중생을 여래가 교화할 것이며 어떤 중생이 여래를 보면 비로소 조복될 것인가를 관찰하고 여래는 그때에
곧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깨우쳐 알게 하나니 다른 중생은 능히 알 바가 아니니라.
이렇게 사리자야, 여래가 천안으로 생각하는 대로 증명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으니라. 그 누가 여래의 천안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와 끝을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이러한 힘의 불가사의함이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며 나아가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선서의 천안은 티 없이 깨끗하여
맑은 도업[淨業] 한량없는 겁 동안 닦았으니
거룩한 이 이로 말미암아 시방 세계의
티 없고 생각하기 어려운 모든 불국토를 관하네.
혹 무너지고, 이룩되고, 이룩되고 무너짐이며
나아가 머물거나 불타고 있는 것
혹 부처가 계시거나 아니 계심을
저절로 존귀한 눈은 모두 본다네.
중생 성품 각기 달라 헤아릴 수 없나니
빛깔이 있거나 빛깔이 없거나
혹 나쁜 곳에 나는 것과 좋은 곳에 나는 것
저절로 존귀한 눈은 모두 본다네.
혹 많은 구지(拘胝) 부처님께서 현재 계시거나
혹 여래가 열반에 드시거나
아울러 연각 및 성문을
저절로 존귀한 눈은 모두 본다네.
혹 중생을 건지려는 모든 보살과
혹 미묘한 보리행을 닦거나
여래의 걸림 없는 곳에 머무는 것을
길잡이는 저절로 모두 본다네.
선서의 이러한 티 없는 눈으로
극히 자세하게 모든 중생 능히 보나니
아홉 번째 눈의 능력[眼力] 부사의 함을
거룩하고 총명한 이만이 깨달아 능히 믿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아홉 번째 천안의 지혜의 힘[如來第九天眼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일체 세간의 누구도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번뇌를 다한 도를 증득한 지혜의 힘[如來流盡作證智力]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응공․정등각은 위없는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모든 번뇌[流]를 다하여 번뇌가 없으며 마음이 해탈되고 지혜가 해탈되어 저절로 통달한 지혜로써 도를 증득하여 다 갖추어진 자리에 머무는 줄을 훤히 알며, 또 나의 남[我生]이 이미 끝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미리 판단하여 뒤의 태어남을 받지 않을 줄을 여실하게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번뇌를 다한 지혜의 힘은 깨끗하고 티가 없으며 순수한 빛이 뚜렷이 비치어 일체의 상속하는 습기(習氣)를 영원히 끊느니라. 모든 성문승은 비록 번뇌가 다하였다 하지만 오직 능히 어느 부분의 습기를 끊을 뿐이며, 모든 독각승은 비록 번뇌가 다하였다 하지만 또한 능히 어느 부분의 습기만 끊었을 뿐, 대비(大悲) 및 모든 변재(辯才)를 멀리 여의었느니라.
오직 여래만이 모든 번뇌를 길이 다하여 온갖 미묘한 불법을 두루 갖추었으며 일체의 상속하는 습기를 끊어 버리며, 대비로 감싸주는 것이며 두려움 없는 변재로 일체 세간의 모든 중생을 보살펴 주나니 일체 세간의 모든 중생은 너무 빛이 나서 바라볼 수 없으며 한 찰나 동안이라도 항상 구족하게 서로 응하여 다름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업이 없고 번뇌가 없으며 잘못된 거동의 모든 습기가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마치 깨끗한 허공이 일체의 연기와 먼지․구름․안개와 함께 머물지 않듯이 여래가 번뇌를 다한 지혜의 힘은 모든 번뇌의 습기와 함께 머물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이러한 번뇌가 다한 지혜에 머물고는 다시 능히 저 유의 번뇌[有流]와 유의 집착[有取]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번뇌가 다하는 법 및 길이 일체의 집착을 끊는 법을 설하느니라.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와 집착함이 다 허망한 분별을 좇아 일어났음을 여래는 여실히 관찰하고는
그 모든 것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에 맞도록 여러 가지 비유로 법을 설하여 여실히 모든 번뇌의 허망함을 알게 하느니라. 이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을 집착하지 않게 되나니 집착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마침내 반열반에 들어가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모든 중생이 모든 번뇌를 일으키거나 모든 번뇌를 멸하여 열반을 향해 가는 길을 훤히 여실히 아느니라. 이렇게 알아서 모든 중생에 맞도록 법을 설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여래의 번뇌가 다한 도를 증득하는 지혜의 힘은 불가사의하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으니라. 만일 어떤 이가 여래의 번뇌가 다한 지혜의 힘의 경계와 끝을 찾으려 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끝을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번뇌가 다한 도를 증득하는 지혜의 힘이 불가사의하여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을 말씀하셨다.
길잡이[導師]의 번뇌를 다한 지혜, 티 없음이여
한량없이 드넓고 청정하여 장애 없나니
이러한 열 번째의 힘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적정(寂淨)하고 미묘한 보리 설하네.
모든 성문승의 번뇌 다한 지혜는
한량 있고 습기에 얽매이지만
사람 가운데 가장 거룩한 위대한 길잡이는
한량없는 번뇌[結]의 습기 타고 남은 재[灰]와 같네.
연각(緣覺)의 보리를 증득한 이는
대비(大悲)와 변재(辯才)를 멀리 여의었지만
오직 박가범만이 모든 번뇌 다하여
대비와 변재가 한량없어라.
모든 부처님은 번뇌 다한 지혜에 조용히 머물러서
중생의 번뇌에 집착한 모습이
다 허망한 모든 법으로 좇아 난 줄 아나니
그들은 이 진리의 뜻을 알지 못하네.
여래는 대비심을 일으켜 그들을 위하여
무상하고 청정하지 못하며 무아인 법을 연설하며
그들에게 모든 법은 공하여 자성이 없음을 보게 하여
마땅히 여래의 적정한 경지 증득하게 하네.
나도 없고 목숨[壽]도 없고 삭취취도 없으며
사람이나 마납(摩納)3)도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나니
허망으로 둘러싸인 모든 법 가운데
대비심 일으켜 벗어나게 한다네.
선서의 자비심 싫증냄 없고
참된 지혜 항상 흘러 놓아버림 없이
이 거룩하고 항상한 방편으로
중생을 위하여 묘한 법 설하네.
능히 다른 의론 굴복시키는 열 번째의 힘
끝간 데 없기 허공 같나니
세존은 항상 10력에 머무르므로
견줄 수 없는 법륜 항상 굴리네.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 번째 번뇌가 다한 지혜의 힘[如來第十流盡智力]이라 하느니라. 이 힘을 성취하므로 말미암아 여래․응공․정등각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의 자리에 처하여 대중들 가운데에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대범륜을 굴리지만 일체 세간의 사문․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공덕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여래의 열 가지 힘을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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