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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577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40권

by Kay/케이 2024.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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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40

 

대보적경 제40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⑥

4) 여래부사의성품 ④
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부사의한 불공법[不共佛法]을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나아가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게 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열여덟 가지의 불공법을 성취하였느니라. 이것을 성취하였으므로 여래․응공․정등각은 대중 가운데에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대범륜을 굴리지만 일체 세간의 사문․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열여덟 가지의 불공법이라 하는가 ? 사리자야, 여래는 세상에 처하여도 모든 과실이 없나니 과실이 없으므로 여래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과실이 없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몸으로 하는 행위[身業]에 과실이 없나니 과실이 없으므로 일체 세간의 어리석은 이나 슬기로운 이나 능히 법답게 이론을 세워 ‘여래의 몸에 과실이 있다’고 하는 자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 박가범(薄伽梵)은 몸으로 하는 행위가 끝내 과실이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세간에 걸어다닐 적에 바로 앞을 보며, 몸을 움직여 돌아보거나 혹 굽히거나 펴거나 승가지(僧伽胝)를 입고 옷과 발우를 감싸 가지고 나아가거나 그치거나 오고 가거나 걷거나 머무르거나 앉고 눕는데 여래는 그 가운데 위의를 잃음 없이 단엄하고 조용하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혹 성읍에 가거나 혹 돌아설 때에 두 발로 허공을 밟을 적에 천 폭의 바퀴 무늬[千輻輪:부처님 발]가
땅바닥에 나타나면 뜻을 기쁘게 하는 묘한 향기를 풍기는 발특마화(鉢特摩花)가 절로 솟아나서 여래의 발을 받드느니라. 만일 축생 세계의 온갖 중생이 여래의 발을 접촉하기라도 하면 만 7일 동안을 온갖 쾌락을 받으며, 목숨을 마친 뒤에 좋은 곳 즐거운 세계 가운데 태어나게 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가 입은 옷은 그 몸에 붙지 않음이 네 마디 만큼이며, 폐람바풍(吠嵐婆風)이 불어와도 능히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몸 빛은 아래로는 무간지옥까지 비춰 그 중생에게 닿으면 그들에게 즐거움을 받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도무지 몸에 허물의 모습이 없으므로 여래의 몸은 과실이 없다 말하느니라. 마치 스스로 증득한 몸이 과실이 없듯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길이 몸의 허물을 여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말로 짓는 업은 과실이 없나니 과실이 없으므로 세간의 어리석은 이나 슬기로운 이가 능히 법답게 여래의 말에서 과실을 찾아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여래는 가라시(迦羅時:實時)의 말을 하는 자이며, 여래는 실다운 말을 하는 자이며, 진리[諦]의 말을 하는 자이며, 삼마야시(三摩耶時)의 말을 하는 자이며, 말다운 말을 하는 자이며, 훌륭하고 자세한 말을 하는 자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는 말을 하는 자이며, 중복하여 설명하지 않는 자이며, 문맥의 뜻을 장엄한 말을 하는 자이며, 한 음성을 내지만 듣는 자가 다 믿어 알고 기쁘게 말하는 자이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일체의 말이 허물이 없으므로 여래의 말은 과실이 없다고 하느니라. 스스로 증득한 말에 과실이 없듯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길이 말의 과실이 없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마음은 과실이 없나니 과실이 없으므로 세간의 어리석은 자나 슬기로운 자나 능히
법답게 여래의 마음 과실을 찾아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여래는 매우 깊은 선정을 여의지 않고 능히 온갖 불사(佛事)를 발하여 일하지만 정신과 생각을 쓰지 않고 일체 법에 걸림없는 지혜로 마음대로 운용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마음은 과실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스스로 증득한 마음이 과실이 없듯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길이 마음의 과실을 끊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하는 행위가 과실이 없으므로 이것을 여래의 첫 번째 모든 행위에 과실 없는 불공법[如來第一諸業無有誤失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음성은 사납고 난폭함[卒暴]이 없다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사납고 난폭하지 않은 음성을 내므로 일체 세간의 마왕이나 마의 권속 및 나머지 천자(天子)나 여러 외도들이 능해 여래의 틈을 엿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여래의 음성은 본래 사납거나 난폭하지 않나니 사납거나 난폭함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벌써 온갖 애착과 성냄을 길이 여읜 까닭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비록 나를 존경하더라도 마음에 우쭐하지 않고 비록 업신여기더라도 마음에 움츠림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하는 일에 허물을 만든다거나 또는 불완전한 일이 없으며 이런 일로 말미암아 뉘우치게 되거나 또는 그런 일로 인하여 갑작스러운 음성을 내는 일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사람과 다투어 송사하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갑작스러운 음성이 없느니라. 여래는 늘 다툼이 없는 깊은 선정에 들어 있어서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으며, 또한 무엇을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온갖 얽매임을 여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사나움과 난폭한 음성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한량없는 음성에 사납거나 난폭함 없는 것을 여래는 다 증득하고 그 증득한 것과 같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길이 사납거나 난폭한 음성을 끊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두 번째 말에 사납거나 난폭함 없는 불공법[如來第二言無卒暴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올바른 생각을 잃어버림이 없다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바른 생각을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에 한 가지 법에도 어리석거나 어지러운 생각을 내는 일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정려(靜慮:禪定)․해탈․삼마지․삼마발저 가운데에 머물러 있어 어리석게 잊어버리지 않는 까닭이며, 중생들의 마음 작용이 항상 굴러 움직이는 모양을 관찰하되 거리낌없는 까닭이며, 모든 법의 뜻을 해설하는 말솜씨의 걸림 없는 지혜 속에 착란하여 잃어버림이 없는 까닭이며, 과거․미래․현재를 훤히 보는 걸림 없는 지혜가 한량없지만 잃어버림이 없는 까닭이니라.
그리고 스스로 과거․미래․현재의 걸림 없는 지견의 잃어버림 없는 법을 증득하고는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잃어버림 없는 올바른 생각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세 번째 올바른 생각을 잃어버림이 없는 불공법[如來第三念無忘失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항상 선정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가 혹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혹 먹고 마시거나, 혹 말하고 잠잠하거나, 항상 깊은 선정 가운데 있어서 선정에서 나와 여의는 일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매우 깊은 삼마지의 가장 뛰어난 바라밀다를 증득하여 일체에 걸림 없는 깊은 선정을 성취한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어떤 중생이든 아직 여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는 혹 그 마음이 선정을 얻었거나 얻지 못했거나 여래의 마음 및 마음의 경계를 관찰하지 못하느니라. 오직 여래가 위신력을 빌려 알게 하는 것은 제외되느니라. 스스로
항상 선정에 처하여 있는 마음을 증득하듯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삼마지에 의지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길이 산란한 마음을 끊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네 번째 항상 선정에 머무르는 불공법[如來第四無不定心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차별 없는 생각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중생들은 차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불평등한 마음에 머물게 되지만 여래는 마음이 늘 평등하게 머무르므로 어디서나 차별의 생각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모든 불국토에 차별의 생각[異想]이 없나니 그 국토가 허공과 같은 까닭이니라. 여래는 중생들에게 갖가지의 생각이 없나니 그 중생의 성품이 나가 없는 까닭이니라. 여래는 모든 부처님에게 갖가지의 생각이 없나니 그 법성이 차별 없는 평등한 지혜인 까닭이니라.
여래는 일체의 법에 갖가지의 생각이 없나니 욕심 여읜 법성이 평등한 까닭이니라. 여래는 계 지니는 이에게 특별히 사랑함이 없고 계 범한 이에게 특별히 미워함이 없으며 은혜 입은 이에겐 갚지 않는 일이 없고 원수진 이에겐 해칠 생각이 없으며 조복 받아야 할 이에게도 불평등한 마음이 없고 삿된 선정에 머무른 이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모든 법에 평등하게 조용히 머무르므로 여래는 갖가지의 생각이 없다고 하느니라.
그리하여 스스로 차별의 생각 없음을 증득하고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길이 갖가지 차별의 생각을 끊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다섯 번째 차별의 생각이 없는 불공법[如來第五無諸異想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가려 선별함 없는 놓아버림이라 하는가? 왜냐하면 사리자야, 여래는 이미 성스러운 도를 닦아서 이 놓아버림[捨]을 증득한 것이요 도를 닦지 않고 증득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이미 마음을 닦았으며
이미 계를 닦았으며 이미 지혜를 닦아서 이 놓아버림을 증득하였으니 닦지 않고 증득한 것이 아니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놓아버림이란 것은 지혜를 따라 행하고 어리석음을 따라 행하지 않느니라. 여래의 놓아버림이란 세간을 벗어난 것이요 세간에 떨어진 것이 아니니라. 여래의 놓아버림이란 이 성인의 도이며 벗어남의 도요 성인의 도가 아니거나 벗어남의 도가 아닌 것이 아니니라. 여래의 놓아버림이란 능히 범륜을 굴리며 중생을 불쌍히 여겨 항상 놓아버리지 않느니라. 여래의 놓아버림이란 절로 성취되는 것이니 대치(對治)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놓아버림이란 높거나 높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하열(下劣)한 것도 없으며 움직임 없는 자리에 머물러서 멀리 양쪽 끝을 여의고 온갖 생각으로 헤아리고 가려 선택하는 것을 초월하고 일체를 놓아버리되 그 때를 잘 맞추어서 때를 지나치지 않으며 움직임도 없고 생각함도 없으며 분별함도 없고 차별하는 생각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덜어버릴 것도 없으며, 교만하여 방일함도 없고 나타내어 보일 것도 없으며, 진․여의 자성이 허망한 성질이 아니며 여여하지 않은 성질이 아니니 이렇게 한량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렇게 크게 놓아버림을 성취하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놓아 버림의 법을 원만하게 하려고 이러한 법을 말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섯 번째 가려 선별함 없이 놓아버리는 불공법[如來第六無簡擇捨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의욕[志欲]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의욕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다고 하는가? 말하자면 여래의 좋은 법에 대한 의욕을 말하느니라. 또 무슨 뜻에서 의욕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크게 사랑하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여래는 크게 불쌍히 여기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여래는 법을 설하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일어나 멀리 여의겠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보살을 가르쳐 이끌겠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3보의 종자를 이어서 끊이지 않게 하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는다.
일체의 여래는 욕심을 따라 다니지 않고 여래의 의욕은 지혜로 앞잡이를 삼아서 스스로 증득한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위없는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원만히 하려는 의욕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일곱 번째 의욕이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六志欲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정근(正勤)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정근에서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다고 하는가? 말하자면 교화할 만한 중생을 버리지 않는 정근이며 법 들으려는 대중에게 물리쳐 보내기를 생각하지 않는 정근이니, 이러한 일들에 물러나거나 지치지 않으므로 여래의 정근은 줄어듦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가령 여래를 만나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법 듣기를 좋아하고 법의 그릇의 소임을 감당할 만하여 만일 법을 듣고 능히 겁(劫)이 지나도록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여래도 또한 따라서 겁을 지나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일로 인하여 계속하여 설법하기를 중단하는 일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가령 긍가사(殑伽沙:항하사)보다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오직 한 중생만이 이 부처님의 교화할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그때 여래는 몸소 그곳에 가서 법을 설하여 그를 깨우쳐 들어오게 하되 정근하기를 싫증냄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몸으로 지치거나 싫증냄이 없고 또한 말과 마음으로도 지치거나 싫증냄이 없나니, 왜냐하면 여래의 몸과 말과 마음은 항상 조용히 쉬고 있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오랜 겁 동안을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켰고 정진을 칭찬하였으며 중생들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정진을 부지런히 닦게 하므로 성스러운 해탈(解脫)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덟 번째 정근이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八正勤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모든 법․온갖 종류의 모든 생각[念]에 대해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다 하는가? 왜냐하면 모든 여래는 생각에서 물러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끊임없이 일체 중생의 과거․미래의 온갖 마음이 잇달아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여 아나니, 여래는 그 가운데 마침내 환히 알아 잊어버림이 없느니라. 또 여실히 중생의 행하는 바를 알고는 여래가 그 가운데 다시 지혜를 부림이 없이 여래의 생각은 일찍이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세 가지 종류[三聚]의 중생을 구별하여 모든 근성과 깨달아 들어가는 것과 그 의욕과 견해․실행하는 일을 살피어 관찰하고는 다시 기억하지도 않고 거듭 생각함이 없으며, 다시 관찰하지 않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되 끊임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생각은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스스로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 생각을 증득하고는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서 길이 모든 생각의 물러나거나 줄어듦을 끊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아홉 번째 생각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九念無退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부처님의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부처님의 삼마지는 일체 법과 그 성품이 평등하여 평등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법[一切一法]과 일체종법(一切種法)은 평등하지 않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의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가? 사리자야, 진여가 평등하므로 곧 삼마지가 평등하며 삼마지가 평등하므로 곧 여래가 평등하나니, 능히
이러한 평등성을 증득하여 들어갔으므로 삼마지를 등정(等定)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탐냄의 끝[貪際]이 평등하듯이 탐심의 끝을 여읨도 평등하며, 성냄의 끝[瞋際]이 평등하듯이 성냄의 끝을 여읨도 평등하며, 어리석음의 끝[癡際]이 평등하듯이 어리석음의 끝을 여읨도 평등하며 함이 있음의 끝[有爲際]이 평등하듯이 함이 없음의 끝[無爲際]도 평등하며, 나고 죽음의 끝[生死際]이 평등하듯이 열반의 끝[涅槃際]도 평등하나니, 여래가 이러한 평등성을 증득하여 들어가므로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평등의 성품은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이 부처님의 삼마지는 눈으로 서로 응하지 않으며 또한 귀․코․혀․몸․뜻으로 서로 응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모든 감관은 이지러짐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여래의 삼마지는 지계(地界)에 의지하지 않으며, 수계․화계․풍계에 의지하지 않으며,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의지하지 않으며,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 의지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의지함이 없는 까닭에 물러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스스로 증득한 모든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듯이 또한 중생들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모든 삼마지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 번째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 불공법[如來第十三摩地無有退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지혜가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지혜라 하는가? 말하자면 온갖 법을 환히 알되 다른 힘을 빌리지 않는 지혜며,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는 지혜며, 다함이 없는 교묘하고 걸림이 없는 지견(知見)의 지혜며, 일체 법구의 뜻을 잘 분별하는 지혜며, 한 법구의 뜻을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백천 대겁을 연설하여도 다함이 없는 지혜며,
그 듣는 대로 의혹의 그물을 끊게 하는 지혜며,
어디서나 걸림이 없는 지혜며, 성스러운 3승의 법을 연설하여 모두 제자리에 서도록 하는 지혜며, 능히 두루 8만 4천 중생의 마음으로 하는 짓을 훤히 아는 지혜며, 그 근성에 맞도록 8만 4천 모든 법장(法藏)을 열어 보이는 지혜니라.
사리자야, 이것이 여래의 지혜에 경계가 없고 끝이 없으며 다함이 없는 것이니라. 이 지혜가 다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지혜를 따라 설함이 다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지혜는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스스로 증득한 지혜의 줄어듦이 없듯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다함 없는 지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한 번째 지혜의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十一智慧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해탈의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해탈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성문승은 4제법 설하는 음성을 깨달으므로 해탈을 얻고 독각승은 12인연법을 깨달으므로 해탈을 얻었다 하지만, 부처님 박가범(薄伽梵)께서는 양 극단[二邊]의 집착을 버려 여의므로 해서 해탈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여래의 해탈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이러한 해탈은 과거에 속박됨이 없고 미래에는 따로 흘러 구를 것이 없으며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는 까닭이니라.
또 사리자야, 눈과 더불어 빛깔의 경계, 두 가지의 집착에서 해탈하였나니 이와 같이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의 두 가지 집착에서 해탈하였느니라. 집착할 것 없는 법을 섭수하고 해탈에 의지하는 까닭이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과 더불어 지혜의 자성이 빛나고 깨끗하여 그 자체가 티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찰나의 마음과 서로 응하는 지혜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나니, 이 여래가 증득한 깨달음대로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법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두 번째 해탈의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十二解脫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일체 신업(身業)에서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주고 지혜를 따라 구른다고 하는가? 왜냐하면 사리자야, 능히 신업(身業)을 성취하였으므로 모든 중생들이 만일 여래를 보기만 하면 곧 조복되고 혹은 설법을 듣기만 하여도 모두 조복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혹은 침묵을 보이더라도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먹고 마시는 것을 보여도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위의를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여러 가지 뛰어난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미묘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볼 수 없는 정수리를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볼 수 있는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 신비한 광명을 나타내 비추어 몸에 부딪침으로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유행할 적에 발을 내딛는 일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 성․읍․촌락에 가고 돌아오는 일을 보여 중생을 조복하느니라.
사리자야,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처님 박가범은 어떤 위의(威儀)든 중생들을 조복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에 여래의 온갖 신업은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주고 지혜를 따라 구르며,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지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세 번째 신업을 지혜로 이끌어주는 불공법[如來第十三身業智導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온갖 말로 짓는 업[語業]을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 주고 지혜를 따라 구른다고 하는가? 왜냐하면 사리자야, 부처님 박가범은 헛되이 법을 설하지 않으므로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 줌으로써, 어떤 기별(記莂:授記)이든지 원만하게 갖추지 않음이 없고 말씨가 미묘하게 드러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말은 표현에 따라 변화됨이 불가사의하나니, 이제 대략 말하리라. 사리자야, 여래의 말은 이해하기 쉬운 말이며, 분명하게 인식하기 쉬운 말이며, 과장하지 않은 말이며, 비열하지 않은 말이며, 뛰어난 말이며, 삿되고 왜곡되지 않은 말이며, 어눌하지 않은 말이며, 번잡하지 않은 말이며, 난삽하지 않은 말이며, 거칠지 않은 말이며, 숨기지 않는 말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만한 말이며, 허약하지 않은 말이며,
경솔하지 않은 말․너무 빠르지 않은 말․되풀이하지 않는 말․갑작스럽지 않은 말․잘 끊고 맺는 말․잘 해석하는 말․매우 묘하고 아름다운 말․가장 미묘한 음성의 말․잘 지도하는 말․크고 맑고 명랑한 말․큰 우레 치듯 하는 말․흩어져 없어짐이 없는 말․감로(甘露)를 마시는 듯한 말․
뜻과 맛이 있는 말․친애할 만한 말․넓고 큰 말․자애롭고 소중한 말․티끌에 더럽혀지지 않은 말․번뇌를 여읜 말․지저분함 없는 말․혼탁하지 않은 말․미련하지 않은 말․위엄이 있는 말․거리낌없는 말․능히 가르쳐 인도하는 말․밝고 깨끗한 말․정직한 말․겁내고 거리낌없는 말․
모자람 없는 말․가볍고 급하지 않은 말․기뻐하고 즐거워할 만한 말․몸을 온화하게 하는 말․마음을 한 단계 도약하게 하는 말․탐욕이 없어진 말․성냄이 없어진 말․어리석음이 없어진 말․마군을 삼켜 버리는 말․사나운 이를 항복 받는 말․외도들의 이론을 꺾어버리는 말․무엇이든 드러내어 보이는 말․하늘 북소리 같은 말․슬기로운 이가 즐거워할 말․
갈라빈가(羯羅頻迦)새 소리 같이 아름다운 말․범천의 음성 같은 말․바다의 파도소리 같은 말․우레 소리 같은 말․땅덩이와 산이 우루루 진동하는 말․홍학왕(鴻鶴王) 소리 같은 말․공작왕(孔雀王) 소리 같은 말․꾀꼬리 소리 같은 말․공명새 소리 같은 말․큰 거위와 기러기 소리 같은 말․큰 사슴 소리 같은 말․공후(箜篌) 소리 같은 말․벌락가(伐洛迦) 소리 같은 말․발라바(鉢拏縛)소리 같은 말․
큰 고동 소리 같은 말․
긴 피리[笛] 소리 같은 말․속 트이게 하는 말․깨달아 알기 쉬운 말․시원하게 깨우쳐 주는 말․뜻을 기쁘게 하는 말․들을 만한 말․깊고 멀리 울리는 소리의 말․벙어리처럼 어눌함이 없는 말․귀를 즐겁게 하는 말․선근이 생기게 하는 말․
문구에 결함이 없는 말․문구를 잘 설명하는 말․뜻과 문구가 서로 맞는 말․법과 문구가 서로 맞는 말․때맞추어 하는 말․때맞추어 민첩하게 대답하는 말․때가 지나지 않는 말․상대방의 근기가 수승한지 하열한지를 잘 알아 하는 말․보시를 찬탄하는 말․계행을 청정하게 하는 말․인욕을 가르치는 말․정근을 단련하는 말․선정을 즐기게 하는 말․바른 지혜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말․
사랑스러운 말․불쌍히 여기되 지침이 없는 말․청정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말․평등한 마음에 증득해 들어가는 말․3승을 제자리에 세우는 말․3보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는 말․3취(聚) 중생을 제자리에 서도록 하는 말․3해탈을 깨끗이 하는 말․두루 4제법을 닦게 하는 말․두루 지혜를 닦게 하는 말․슬기로운 이가 비방하지 않을 말․성자가 칭찬할 말․허공의 분량에 따르는 말․온갖 종류를 묘하게 성취한 말이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한량없고 끝없이 미묘하고 청정한 여래의 말이므로 여래의 온갖 말로 짓는 업은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주고 지혜를 따라 구른다고 말하느니라. 스스로 이러한 말로 짓는 업을 성취한 것과 같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말을 증득하여 들어가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네 번째 말로 짓는 업을 지혜로 이끌어 주는 불공법[如來第十四語業智導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일체 의업(意業)을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 주고 지혜를 따라 구른다고 하는가? 사리자야, 무릇 여래는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識]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무릇 여래는 마땅히 지혜로써 구할 것이요 지혜가 뛰어나므로 여래라 이름하나니,
이 여래의 지혜는 온갖 중생의 마음을 따라 이르며 온갖 중생의 뜻에 따라 들어가며 온갖 중생의 의식을 여의지 않으며 온갖 법을 불살라 버리는 모든 삼마지는 다른 인연을 좇지 않고 일체의 인연할 바의 경계를 초월하여서
인연 따라 나고 꺼지는 3유(有)의 세계를 멀리 여의고 모든 교만의 근성을 뛰어넘어서 마군의 업을 벗어났으며, 아첨하고 속이는 일을 여의고 나와 내 것을 놓아버리며 무명의 어리석고 어두운 껍질을 부수어 없애고 거룩한 도를 잘 닦아서 허공과 같이 분별이 없으며 법계와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러한 의업을 증득하여 이러한 모습을 하고는 지혜를 이끌어내어 중생의 마음에 따라 알맞은 법을 설하여 그들에게 여래의 의업을 증득하여 들어가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다섯 번째 의업을 지혜로 이끌어주는 불공법[如來第十五意業智導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과거 세상을 아는 집착 없고 걸림 없는 지혜의 굴림[轉]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찌하여 이 지혜를 굴림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걸림 없는 지혜로 능히 이러한 한량없고 끝없는 과거 세상의 온갖 불국토가 이룩되거나 무너지는 것 등의 한량없고 무수한 일을 여래의 방편으로 다 능히 헤아려 알며 이렇게 나아가 모든 불국토 가운데 있는 온갖 풀과 나무와 숲․약초 등의 일에 이르기까지도 여래는 다 능히 훤히 알며, 이렇게 나아가 모든 불국토 가운데 온갖 중생의 몸과 중생이 임시로 세운 모든 모습들을 능히 다 아느니라.
또 능히 그 가운데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의 성품․갖가지의 빛깔을……(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여래는 다 능히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와 같이
그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일이며 그 낱낱 여래께서 연설하신 바른 법을 여래가 다 능히 분별하여 훤히 알며 이렇게 그곳 중생이 성문승으로 제도를 받을 사람인지, 혹 독각승으로 제도를 받을 사람인지, 혹 대승법으로 제도를 받을 사람인지, 이것을 또한 여래는 다 능히 알며, 또는 모든 불국토의 차별의 모양이며 필추승 무리의 수명(壽命)이며 그 법의 세상에 머무는 것이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음식을 수용하는 이러한 차별의 모양을 여래는 모두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일체 중생의 지나간 세상의 모습에 있어서 혹 죽거나 혹은 나는 것과 그 세계와 갈래를 여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능히 분별해 여실하게 아느니라. 또 모든 중생의 갖가지의 근성․갖가지의 행위․갖가지의 견해와 이러한 한량없는 형태를 모두 훤히 알며, 또 능히 모든 마음의 상속, 말하자면 이러이러하게 마음이 끊임이 없다든가, 이러이러하게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는 그 모든 마음의 모양이 여러 가지라서 한결같지 않지만 여래는 방편으로 모두 헤아려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혹은 현량지(現量智)나 혹은 갖가지의 지혜로 이렇게 과거에 지나간 모든 마음의 상속을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지혜를 갖추고 있어서 중생의 마음에 따라 법을 설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지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이 여래의 열여섯 번째 과거 세상을 아는 걸림 없는 지혜의 불공법[如來第十六過去無礙智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미래세를 아는 집착 없고 걸림 없는 지혜의 굴림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찌하여 이 지혜를 굴림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미래 세상에 여래가 혹
장차 출현하거나 혹 열반에 들거나 혹 장차 부처님께서 존재할 것이라거나 아니라거나 하는 모양을 여래는 모두 훤히 아느니라. 이렇게 장차 불로 세상이 끝날지, 장차 물로 끝날지, 장차 바람으로 무너질지, 나아가 모든 불국토가 장차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지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상이한 일들을 여래는 모두 다 훤히 아느니라.
이렇게 장차 도래할 모든 불국토의 지상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티끌이며 풀․나무․숲․약초 등의 일이며 나아가 장차 별[星宿]의 빛깔 등도 여러 가지 모양이 한결같지 않은 것 등을 여래는 모두 훤히 아느니라. 이렇게 모든 불국토에 충만한 미래 모든 부처님과 독각․성문 및 보살이 세상에 출현하여 수용하는 마실 것․먹거리․들숨과 날숨․다니고 머무는 위의(威儀) 등 한량없는 모양을 여래는 여실히 모두 훤히 아느니라.
이렇게 모든 여래의 교화하는 행위의 차별로써 중생의 성품을 관찰하여 장차 해탈을 증득하되 혹 성문승을 타야[乘] 할지, 혹 독각승을 타야 할지, 혹 대승을 타야 할지를 해탈을 증득한 여래는 모두 훤히 아느니라.
이렇게 미래 세상의 일체 불국토에 충만한 그 때의 중생들이 나는 곳의 차별이며 모든 중생의 마음과 마음의 소유[心所有]하는 법을 여래는 다 능히 훤히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와 같이 여실히 알기 때문에 여래의 마음은 미래세에 상속(相續)됨이 없으나 여래는 미래세를 관찰하여 여실하게 훤히 알고는 또한 중생들에게 이 법을 연설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지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일곱 번째 미래를 아는 걸림 없는 지혜의 불공법[如來第十七未來無礙智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현재 세상을 아는 집착 없고 걸림 없는 지혜의 굴림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찌하여 이 지혜를 굴림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현재세의 시방 일체 불국토에 있는 것을 세 가지의 방편으로 여실하게 훤히 아나니, 현재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과 모든 성문들과 독각들의 갖가지의 차별된 모습을 모두 훤히 아느니라.
또 능히 현재 세상의 별의 빛깔과 모양이며 풀․나무․온갖 약초와 숲 등의 일이며, 나아가 현재 시방 일체 지계(地界)의 티끌의 분량까지도 여래는 여실히 방편으로 헤아려 아느니라.
사리자야, 시방 국토 일체 수계(水界)는 불가사의하지만 여래는 한 털끝에 묻은 물방울까지 이처럼 한량없는 물을 모두 명확히 방편으로 헤아려 아느니라. 또 시방 국토 일체 화계(火界)가 불타는 차별된 모습을 여래는 이 방편으로 헤아려 알며, 또 시방 국토 일체 풍계(風界)의 곳에 따라 일어나는 것을 여래는 또한 능히 방편으로 훤하게 알며, 또 시방 국토 허공계가 설령 털끝 만한 분량이 갖가지로 다르다 할지라도 여래는 방편으로 여실히 헤아려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와 같이 현재의 세 가지의 중생계를 훤히 알며 나아가 현재의 지옥계의 중생이 그곳에 나게 된 원인과 그 지옥에서 벗어날 인연을 훤히 알며, 또 현재의 축생계 중생이 그곳에 나게 된 원인과 그곳에서 벗어날 인연을 함께 능히 훤하게 아느니라. 염마계(焰魔界)의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능히 현재 인간계의 모든 중생들이 그곳에 태어나게 된 원인과
그 죽을 인연을 함께 잘 알며, 또 능히 현재 천상의 중생들이 그곳에 태어나게 된 원인과 그 죽을 인연을 함께 잘 알며, 또 능히 현재 중생의 온갖 마음이 상속하여 번뇌가 있게 되는 성품과 번뇌를 여의는 성품 및 현재의 교화할 중생의 근성의 차별된 모습과 교화되지 않을 중생들 근성의 차별된 모습 등 이렇게 한량없음을 여래는 여실히 다 훤하게 아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렇게 현재의 일체 법이 여래의 지혜가 아니요, 두 가지의 식(識)에 따르는 행위임을 훤히 알고 중생이 둘이 없는 법을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지혜를 깨닫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여덟 번째 현재를 아는 걸림 없는 지혜의 불공법[如來第十八現在無礙智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는 이러한 열여덟 가지의 불공법을 성취하므로 원만하게 남음 없이 시방 세계를 두루 하게 광명이 모든 대중에게 비치느니라. 또한 이 법은 희유하고 기특한 위광(威光)과 명칭의 공덕법에 말미암은 까닭에 모든 하늘이나 마군의 무리의 빛을 빼앗아 가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불공법[不共佛法]은 불가사의하며 경계와 끝이 없기가 허공과 같나니, 만일 여래의 일체 불공법의 경계를 찾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허공의 경계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사리자야, 이처럼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불공법이 불가사의하기가 허공과 같다는 말을 듣고는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길잡이는 몸과 말과 뜻의 행위에
과실이 없고 또한 동요됨도 없으며
이 법으로 중생을 인도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그 마음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며
마침내 성냄과 애착 멀리 여의고
언제나 다툼 없이 시비가 영원히 꺼졌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길잡이는 법과 지혜에 대해
해탈의 행법(行法) 잊어버림 없으며
걸림 없는 견해도 잃어버림 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혹 머물거나 먹거나 거닐거나
혹 앉고 눕거나 마음 항상 고요해
어지러움도 없고 중생이란 생각도 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선서(善逝)는 저 모든 부처님 국토의
중생과 부처에 차별함 없이
평등한 성품 큰 지견에 머무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거룩한 이는 간별하여 택함 없는 버림으로
훌륭한 결정도(決定道)를 잘 닦은 까닭에
분별함도 없고 차별하는 생각도 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큰 스승의 좋은 의욕 물러나 줄어듦 없이
항상 자비․방편과 함께
중생을 교화하기 한량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선서는 정진의 힘 감퇴됨 없이
중생계 관찰하기 한량이 없고
3업으로 중생들을 조복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모든 부처님의 바른 생각 감퇴됨 없이
보리좌에 앉아서 정각을 이룩하시어
이미 모든 법 깨달아 더 이상의 깨달음 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온갖 차별의 법 분별함 없이
스스로 평등한 삼마지에 머물러
고요히 모든 법에 의지할 것이 없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길잡이의 지혜는 가장 길상하여
중생들의 하는 일 훤히 알고는
묘한 법 연설하여 깨닫게 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소리 듣고 깨치거나 인연법을 깨달은 독각
모든 부처님의 거룩한 해탈

걸림 없고 티 없기가 허공 같나니
선서의 크게 버리심 헤아리기 어려워라.

모든 부처님 본래 마음에
자성이 없이 해탈하여 마음의 상속
해탈하는 법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중생들 눈으로 부처님의 위의를 보나니
머물거나 가거나 성읍에 들거나
상호(相好) 광명의 나타냄 보고는
모두들 조복되어 잘 닦게 되도다.

진실한 살타(薩埵)가 광명을 놓으면
많은 구지(拘胝)의 중생이 안락을 얻나니
광명을 나타내 중생을 건진다네.
이것이 거룩한 이 불공법이로다.

자연 성스러운 이께서 법을 연설하면
중생이 듣는 대로 깨닫나니
들리는 법의 음성 메아리 같네.
이것이 거룩한 이 불공법이로다.

선서이신 길잡이께서 무심히 행하는 업
온갖 행하는 업이 지혜대로 되는 것
지혜가 중생들의 마음에 깃드나니
이것이 거룩한 이 불공법이로다.

모든 삼마지와 정려
잘 닦아 성취하여 희론 여의고
평등성에 머물기 허공 같나니
이것이 거룩한 이 불공법이로다.

과거 세상의 모든 법이며
온갖 중생계와 해탈 지혜를
선서의 묘지(妙智)로 걸림 없이 아나니
이것이 거룩한 이 불공법이로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미래세에
세계가 이룩되고 없어지는 일이며
중생계와 국토와 가장 뛰어난 일을
남김없이 바로 환히 알도다.

선서는 미래세를 관찰하여
마음이 늘 고요하며 흩어진 적 없어
중생과 법을 여실히 아나니
이것이 거룩한 이 불공법이로다.

모두가 흘러가는 현재 세상을
거룩한 이 걸림 없이 능히 다 알고
길잡이의 경계는 허공 같나니
이것이 여래의 불공법이로다.

이미 여래의 불공법 말하였나니
열여덟 가지의 부사의한 것이네.
진여의 실성은 허공과 같나니
슬기로운 보살은 능히 믿어 받으리.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가 열여덟 가지의 불공법을 성취하였다 하느니라. 이것을 성취하였으므로 여래․응공․정변지는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후를 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대선존(大仙尊)의 자리에 처하여 능히 범륜을 굴리지만 일체 세간의 사문․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왕이나 범천은 능히 법답게 굴리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깨끗한 믿음에 머무른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열 가지 부사의와 열 가지 불가사의한 법을 믿어 지니고 잘 받들어서 깨끗한 마음으로 의심함 없이 한층 더 펄쩍펄쩍 뛰며 매우 기뻐하여 드물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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