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36권
대보적경 제36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②
2) 금비라천수기품(金毘羅天受記品)
그때 세존께서 저 중도(中道)에 그곳을 옮기지 않으시고 여러 장자들로 하여금 거룩한 과위를 성취하게 하셨다. 여래의 위신력으로 왕사성에 들어가실 적에 사부대중에게 둘러 싸여 용모와 위의가 조용하였다.
그때 왕사성을 수호하는 여러 하늘과 약차(藥叉)의 대선신왕(大善神王)인 금비라(金毘羅)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여래의 형상이 미묘하여 세간에 가장 거룩하시어 만나기 어려우며, 인간․천상의 공양을 받으실 만하나니 우리들은 이제 갖가지 미묘한 공양거리로 여래께 받들어 올리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향기와 맛이 풍족하고 묘한 빛깔을 가진 가장 좋은 음식을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그러자 세존께서 그를 가상히 여겨 받아들이셨다. 그때 금비라왕이 거느린 대약차 대중 6만 8천이 허공 중에서 다들 기뻐하며 맑게 트인 음성으로 외쳐 말했다.
“거룩하셔라, 거룩하셔라.”
그때에 금비라는 곧 이 뜻을 그 무리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이미 부처님께 가장 묘한 공양을 올렸으니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여러 가지 공양으로 필추 스님들에게 베풀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긴 밤 가운데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리라.”
여러 약차들이 왕의 가르침을 받고는 곧 좋은 공양으로 필추 스님들에게 베풀었고 여러 스님 대중들은 그 공양을 받았다.
세존께서 걸식을 하려고 왕사성에 들어가셨다가 이미 밥을 얻고는 장차 머무시는 곳으로 돌아오시려 할 적에, 한량없는 1천의 대중들, 하늘․용․
약차․건달박(健達縛)․아소락(阿素洛)․게로다(揭路茶)․긴날락(緊捺洛)․모호락가(牟呼洛伽)며, 한량없는 1천의 사람인 듯하나 사람 아닌 무리들이며, 또 한량없는 구지 나유다의 백천 중생들이 부처님 뒤를 따라왔다.
그때 여래께서는 가장 좋고 평탄한 땅에 가서 자리를 펴고 그 위에 앉으셨다. 그때에 금비라와 그 대중들은 곧 갖가지의 하늘 만다라꽃․온발라꽃․발특마꽃․구무타꽃․분다리꽃과 또 갖가지 하늘 전단가루 등 모든 공양거리[供養具]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께 뿌렸으니, 말하자면 뛰어나게 뿌림․매우 뛰어나게 뿌림․묘하게 뿌림․매우 묘하게 뿌림이었다. 이렇게 은근히 뿌리고는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예경하였다.
여래께서는 금비라와 그 대중들의 생각을 아시고 빙그레 웃으셨다. 모든 부처님의 상법(常法)에서 미소를 나타내실 적에는 입에서 갖가지 한량없는 광명이 나오니, 이른바 푸르고 누렇고 빨갛고 희고 분홍색이며 은색 및 수정색이었다.
그 광명이 한량없고 가없는 일체 세계에 두루 비치어 해와 달의 위광(威光)이 가리워 나타나지 아니하며, 아래로 지옥에 비치어 그들을 즐겁게 하며 나아가 위로 솟아올라 범천에 이르기도 하며, 그 할 일을 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일곱 바퀴 에워싸고는 혹 세존의 정수리 위로 꺼지기도 하고 혹은 두 어깨로 혹은 두 무릎으로 꺼지기도 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상법(常法)에서 만일 지옥 중생을 수기(受記)하실 적엔 광명이 두 발 아래로 꺼지고, 만일 축생을 수기하실 적엔 광명이 등으로 쫓아 꺼지고, 만일 귀신을 수기하실 적엔 몸 앞으로 좇아 꺼지고, 만일 사람을 수기하실 적엔 왼편 옆구리로 좇아 꺼지며, 만일 하늘을 수기하실 적엔 오른편 옆구리로 좇아 꺼지며, 만일 성문을 수기하실 적엔 양 무릎으로 좇아 꺼지고, 만일
독각(獨覺)을 수기하실 적엔 두 어깨로 좇아 꺼지며, 만일 부처님 세존께서 여러 보살마하살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실 적엔 광명이 정수리로 좇아 꺼진다.
이때 장로 아난다가 이미 세존께서 빙그레 웃으시는 광경을 보고 7조가사[條衣]로 왼쪽 어깨를 덮고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발 아래에 예배하고는 게송으로 여쭈었다.
세상을 비추시는 의지처시여
무슨 까닭에 광명을 놓으셨나이까?
세간을 이익되게 하시는 어른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빙그레 웃으셨나이까?
누가 이제 성인의 씨앗을 심어서
부처 될 보리의 인(因)이 되었기에
이제 누구를 위하여 수기하시며
누가 장차 해탈에 머무르리까?
큰 영웅 용맹스러운 길잡이시여,
까닭 없이 웃지는 않으시리니
바라옵건대 모니(牟尼)께서는
광명 나타내신 까닭을 말씀해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아난에게 답하셨다.
금비라는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공양구를 받들어 올렸으니
세상을 구원하는 의지처기에
그러므로 미소를 나타내었도다.
그는 신왕(神王)의 업보를 버리고는
33천에 태어나리라.
그 하늘 복을 다 받고는
염마천(焰摩天)에 올라가 태어날 것이다.
또 도사다천(覩史多天)에 태어나서
하늘의 욕락을 받고는
복이 다하면 인간에 나서
일어서 지혜의 왕이 되어서
4주(洲)를 거느린 주인으로서
자재한 전륜 황제가 되리라.
인간의 왕을 버린 뒤에는
곧 범천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천상과 인간에
자주 오가기 끊임없이
20구지 겁을 지나도록
항상 온갖 묘한 쾌락을 받으리라.
최후에 왕위를 버리고
집을 떠나 불도를 구하여
뭇 인연을 구족하고는
구경(究竟)의 보리를 이루리라.
3만 여러 약차들은
부처를 공양한 까닭에
약차의 업보를 버리고는
33천에 태어나리라.
나중에 자씨존(慈氏尊) 뵙고는
다시 아라한을 얻으며
이미 도의 감화를 입고는
곧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리라.
1천 약차의 무리가
대보리에 머물기 위한다면
이 선근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쁜 세상에 나지 않으리라.
혹은 1천 약차가 있어서
부처님 길잡이를 공양하리니
위없는 보리(菩提)를 구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함이로다.
혹은 2․3천의 약차가
향과 꽃꾸러미[花鬘] 등을 가지고
장차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리니
불보리(佛菩提)를 얻기 위함이니라.
혹은 1천 구지의 약차들이
장차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자체의 청정행을 닦고는
뒤에 보리를 증득하리라.
금비라의 아들 세라(世羅)는
큰 신통력을 갖추었으며
또한 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되
‘나는 장차 등각(等覺)을 이루리라’라고 하였고
일찍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두루 넓은 서원을 일으켰나니
이제 다시 나를 공양하고
무상도에 나아가기를 마음먹었도다.
이 선근의 힘으로 말미암아
온갖 험악한 세계를 버릴 것이고
장차 자씨존을 뵙고는
또 구지의 일산을 바치리라.
구지의 일산을 바치고는
다시 구지의 옷을 바칠 것이요
구지의 옷을 바치고 나서는
그때에 바로 출가하리라.
5백 세가 갖추어 차도록
오롯하게 범행을 닦아서
최상의 보리를 구하리니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함이니라.
그 서원을 이루려고
보시와 계행을 닦아 행하되
긍가사(殑伽沙) 겁을 지나도록
부지런히 닦되 중단함이 없으리라.
이렇게 너는 마땅히 알라.
나타내 보이기 위해 설한 것일 뿐
그는 갑절보다 더한 엄청난 수효의
거룩한 행을 닦으리라.
위에서 비유로 말한
긍가사 겁 수를 지나서
그 모든 부처님을 뵙고는
항상 큰 공양을 닦으리라.
기특하다, 뛰어나고 묘한 지혜여.
기특하다, 위없는 마음이여.
중생의 큰 길잡이로서
이름으로는 능히 드러내지 못하리.
뒤에 장차 정각(正覺)을 이루어
일체 중생의 높은 이로서
그 이름은 의왕(醫王)이라
시방 세계에 두루 들리리라.
70구지의 세월을 두고
법을 설하여 중생을 건지고
그 인간과 천상에 높은 이는
오랜 뒤에야 적멸에 들리라.
스무 차례 큰 모임에서
중생의 마음을 길들이리니
맨 나중의 한 큰 모임에
2백억 세를 지나리라.
위에서 말한 큰 모임에서
한량없는 성문을 제도하리니
성문의 수와 같이
보살 무리도 그러하리라.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를 마치고
여래는 바야흐로 열반에 들고
바른 법이 세간에 머무르기를
백천 세를 지나가리라.
5백 겁이 찬 뒤에
이 필추가 부처가 되리라.
저 낱낱 겁 가운데
1천 여래가 출현하리라.
모든 슬기로운 이는
법수(法水)에 목욕하기를 생각하고
마땅히 용맹심 내어
바른 이치 많이 듣기 힘써라.
바른 이치 아니거든 멀리하고
항상 바른 법 닦아 행하며
마땅히 많이 들음 닦아 익히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자라나리라.
네 가지의 근본 법의(法義)로
모든 보살을 제도할지니
보시․지계․다문․버려 여읨의 법은
어질고 착한 보리의 도이니라.
대중 위하여 이 법을 설하리니
가장 훌륭한 위없는 대승이니라.
성문의 도를 설하여 유포하면
온갖 의심의 그물을 끊으리라.
누구나 청하여 묻는 자에겐
내가 이제 다 열어 허락하여
능히 깊고도 묘한 법 설하리라.
세간을 비추는 이는 만나기 어려우니라.
그때 금비라의 아들 세라(世羅)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의 수기하심을 듣고 기뻐 펄쩍펄쩍 뛰며 일찍이 없던 일이라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세존께서 장차 취봉산(鷲峯山)에 가시리니, 내가 마땅히 다시 여래께 작으나마 선근을 심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그의 대중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알아 두라. 여래께서 왕사성을 떠나시어 취봉산에 오르려 하시니 그대들은 마땅히 용맹심을 내어 그 능력에 따라 공양을 준비하라.”
세라는 곧 권속과 함께 왕사성에서 취봉산에 이르기까지 중간 도로에 풀이며 기와․돌․자갈․나무 그루터기․가지 덩굴을 제거하여 매우 깨끗하게 하기를 맑은 거울과 같이 하고, 또 그 땅에 향수를 뿌리고 뛰어나게 묘한 천을 펴서 길을 덮고, 이름난 꽃을 뿌리며 묘한 향을 살라서 길 따라 향기가 풍기며, 당기와 번기를 늘어 세우고 보배 일산을 달며, 허공 가운데 비단 수술을 드리워 가닥가닥 그 위에 폈다. 또 갖가지 하늘 음악을 울리니 앞뒤에 가득 찼다.
그 길은 매우 넓어 1전도(箭道)나 되었으며
올발라꽃․발특마꽃․구물타꽃․분다리꽃 등 물에서 난 꽃을 두루 덮었다. 또 원앙 등의 빼어난 새들을 그 꽃 사이사이에 섞어 길 옆에 늘어 있고 그 길 위에 또한 금실로 섞어 짠 비단 자리를 폈으며, 위에는 7보로 꾸민 미묘한 그물을 베풀어 두루 길을 덮었다.
세라가 부처님께서 다니는 길에 이러한 큰 장엄을 꾸미고는 스스로 그 몸을 변화하여 매우 곱고 크게 나타내고는 여러 권속과 함께 기뻐 뛰며, 갑절이나 경사스럽게 여기고 온갖 거룩한 마음을 냈다.
이른바 시원하고 안온한 마음․고르고 착한 마음․부드럽고 연한 마음․청정한 마음․덮임을 여읜 마음․아름다움에 충만한 마음․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법에 귀의하는 마음․스님 대중에 귀의하는 마음․보리에서 동요되지 않는 마음․물러나지 않는 마음․견줄 바 없는 마음․견줄 데 없이 거룩한 마음․
삼계를 뛰어넘은 마음․일체 중생에게 크게 사랑함 일으키는 마음․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크게 기뻐하는 마음․크게 놓아버리는 마음․온갖 불법의 그릇이 되겠다는 마음․굳은 마음․여문 마음․파괴할 수 없는 마음․썩지 않는 마음․성문과 독각의 지위를 놓아버리는 마음․일체 보살의 지위를 성취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이러한 온갖 거룩한 마음에 머무르고는 여래 앞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한쪽에 물러서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이미 세상의 의지처[世依] 위하여
위없는 공양을 갖추었으니
부처님께선 세간의 높으신 이로서
최상법을 연설하셨나이다.
열 가지 힘을 다 성취하여
두려움 없는 자리에 편안히 머무르며
중생 이익되게 하는 일
길잡이께서 하신 것과 같아지이다.
서른두 가지 대인의 형상과
여든 가지 미묘한 모습을 갖추어
세상이 믿기를 마치 저 해가
세상에 두루 하게 빛을 펴듯 하여지이다.
미묘한 법륜의
가장 훌륭한 12행(行)을 굴리어
깊고 묘한 법을 선포함은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까닭일세.
온갖 신변 나타내 보이기를
부처님의 거둥[儀式]과 같으며
많은 구지 무리를 위하여
온갖 이익될 일 하여지이다.
미래의 모든 부처님[大雄]께서
세간 돕기를 저 해와 같이
성인의 법을 선양하여서
위없는 지혜 깨쳐 이룩하도록 하여지이다.
집이 되고 구호자가 되며
길이 되며 돌아갈 곳이 되며
모든 장님의 무리를 위하여
인도하는 지혜의 눈을 베풀어 주소서.
다섯 갈래 길 중생의 무리에
내가 마땅히 의지처 되어
온갖 괴로움을 벗겨주기를
먼저 부처님께서 여읨과 같아지이다.
제가 양족존(兩足尊)
천중천(天中天)처럼 해와 달
제석천이며 용․아수라 대중이
다 받들어 공경하여지이다.
베푼 모든 공양거리가
세상에 견줄 데 없으며
나는 가장 묘한 행 닦되
서로 같을 이 없어지이다.
저 법왕 세존과 같이
서른두 가지 대인의 형상과
미묘한 복덕의 모습 갖추어
세상에 비길 이 없어지이다.
그때 세존께서 금비라의 아들 세라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큰 스승을 공양하는 이는
최상법의 인(因)이 되나니
그는 중생 가운데 훌륭한 자라
보리 얻기 어렵지 않으리라.
세간을 비추는 이에게 공양할지니
광명은 세상이 의지해 믿는 것
모든 하늘과 용과 사람들이
마땅히 공양해야 할 것이니라.
제일 묘한 보리를 깨닫고
가장 거룩한 보리 도량[道樹]에 앉아
모든 악마를 꺾어 엎고
중생 위하여 설법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한량없는 백천 하늘․용․약차․나찰․건달박․긴날락․모호락가․사람인 듯하나 사람 아닌 것과 다시 한량없는 백천 나유다 구지의 모든 중생에게 앞뒤에 둘러싸였는데, 그 가운데 부처님께서 맨 앞에 자리하셨다. 부처님의 대위덕 때문에, 대신통 때문에, 큰 세력 때문에, 갖가지 자재로운 대변화 때문에, 큰 광명을 놓아 대지가 진동했으며, 큰 연꽃이 비 내리듯 허공에 가득했으며, 백천 나유다 구지의 온갖 하늘 풍악이 울렸다.
대중들이
전에 없던 것임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신변을 보고는 갑절이나 공경심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발로 연꽃을 밟고 가셨는데 크기가 수레바퀴만 하였다. 이렇게 장엄한 길을 따라 취봉산에 이르셨다.
그곳에 도착하시자 장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를 위하여 최상의 자리․법의 자리․미묘한 자리․삼계를 뛰어나는 자리․높고 거룩한 자리․부처의 자리․여래의 자리 등 훌륭한 자리를 펴라. 내가 이 자리에서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대승 보살행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을 설하리니, 이름은 ‘미묘길상대보살장(微妙吉祥大菩薩藏)’이니라.
이 경은 능히 일체 중생의 의심의 산을 무너뜨리며, 이 경은 능히 일체 중생의 의심의 그물을 끊어버리며, 이 경은 능히 일체 중생의 의심의 뿌리를 없애버리나니, 이 대승경전은 모든 중생을 이익 안락하게 하며 대중과 모든 하늘․사람을 불쌍히 여기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너희를 위하여 열어 밝히겠노라.”
그러자 장로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법좌(法座)를 폈다. 그때에 그 대중 가운데 68구지의 천자가 각기 웃옷을 벗어 여래를 위하여 법좌 위에 폈다. 부처님께서는 그 위에서 평상시대로 여러 천자를 돌아보시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여러 하늘이 의복을 폄이여
가장 훌륭하고 미묘하도다.
세상을 구하는 큰 길잡이는
이 법좌에 편히 앉으리.
모든 법 피안에 이르렀을 때
여래가 이 자리에 오르자
대지가 여섯 가지로 움직이며
대중을 다 기쁘게 하도다.
빛을 놓아 부처님 세계를 비추며
모든 산왕을 빛내었도다.
세존이 신통을 나타냄은
법 좋아하는 자를 구제하기 위함이니
모든 하늘과 용과 사람이며
구반다․아귀며
포달나(布怛那:보특가라) 무리들이
서로 보되 걸림이 없도다.
백천 나유다 구지의
여러 하늘들이
부처님의 광명 놓음 보고는
‘이 때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네’라고 하였다.
빈비사라왕은
여러 대신에 둘러 싸여
세상이 의지하여 믿을 분인
가장 거룩한 여래 앞에 나왔도다.
부처님께서는 하늘․용․사람 등
대중이 모두 앉은 것 아시고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고
사방을 돌아보며
의심 있는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양족존께 물어보아라.
내가 장차 세간을 인도하여
온갖 의심 그물을 끊어주리라’라고 하셨네.
그때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중생이 법을 듣기 위하여 다 와서 모였다. 이미 여래가 이 법 설함을 듣고는 법을 들었으므로 고요히 바깥 인연을 쉬고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러서 생각을 거두고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 장로 대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필추가 먼 곳에 있어서 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거든 마땅히 불러 모이게 하여라.”
그때 장로 대가섭은 대설산(大雪山) 남쪽에 머물러 있었다. 대목건련은 기억하여 알고는 신통력으로 그곳에 가서 말했다.
“여래께서 이제 취봉산에 계시어 대중 앞에서 모든 하늘․마군․범천․사문․바라문․하늘 사람․아소락 등을 위하여 장차 묘한 법을 설하시려 하여 인자(仁者)를 기다리시니 같이 가서 우리들이 법에 방해되지 않도록 합시다.”
대가섭이 대목건련에게 말했다.
“그대는 앞서 가시오. 저는 뒤따라 가겠습니다.”
이 말을 하고는 대가섭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신통력으로 왕사성에 들어가, 사부대중에 인도되어 취봉산으로 가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대중 가운데서 부처님 앞에 멀지 않게 앉았다.
이때 대목건련이 그러한 변화를 보고서 신통력으로 부처님 처소에 이르자, 가섭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가섭에게 말하였다.
“존자께서는
매우 빠른 신통력을 성취하셨습니다. 능히 원래 자리를 일어나지 않고 이 신통변화를 나타냄이여.”
대가섭이 말했다.
“세존께서는 그대가 신통이 제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조금 나타낸 것에 불과하니 말할 것이 못 됩니다.”
3) 시험보살품(試驗菩薩品)
그때 장로 사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울다라승(鬱多羅僧:7조가사)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공손하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여래․응공․정변지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허락하시고 저를 위하여 해설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물어라. 여래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해설하여 기쁘게 하리라.”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함으로써 몸의 업[身業]에 허물이 없으며, 말의 업[語業]에 허물이 없으며, 뜻의 업[意業]에 허물이 없겠습니까? 몇 가지 법을 성취함으로써 몸의 업이 청정하며 말의 업이 청정하며 뜻의 업이 청정하겠습니까?
몇 가지 법을 성취함으로써 뜻의 업이 동요되지 않으며, 말의 업이 동요되지 않으며, 뜻의 업이 동요되지 아니하여 천마와 마군의 방해와 흔들림에 빠지지 않으며, 처음 온갖 지혜의 마음을 발함을 좇아 올바른 행을 닦아 행하여 지위마다 뛰어난 선교방편을 더욱 길러 내어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거룩한 길잡이가 되며, 두루 길잡이가 되며, 큰 횃불이 되며, 큰 사다리가 되며, 다리가 되며, 배가 되며, 건져 주는 자가 되며, 저 언덕으로 건네주는 자가 되며, 집이 되며, 구호자가 되며, 돌아갈 곳이 되며, 나아갈 곳이 되도록 일체 지혜의 마음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때에 사리자는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여쭈었다.
보살이 어떠한 뜻으로
능히 큰 보리에 머무르며
어떤 이름의 덕행과 법으로
위없는 보리를 깨닫게 되나이까?
또 어떤 행을 닦아서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어떤 법을 닦아 익히므로
사람 가운데 거룩한 이 되나이까?
어떻게 악마를 항복받아
가장 거룩한 보리에 머무르며
구지의 세계를 진동하여
위없는 정각을 깨닫겠나이까?
보살이란 어떠한 뜻이며
이러한 법구(法句)는 어떠한 것이며
어떤 것을 보리라 하며
또 위없는 불법이 되겠나이까?
어떻게 세간에 나아가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되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구지의 무리를 벗어나게 하겠나이까?
어떻게 하늘이나 용이나
사람 아닌 것들에게 공양 받을지
제가 청하여 묻는 것을
자비로 말씀해 주시길 바라나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내 이제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을 성취하면 곧 능히 네가 묻는 법과 나머지 한량없고 가없는 불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한 가지 법인가? 보리심과 믿음의 욕구[信欲]를 구족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한 가지 법을 성취하면 능히 가없는 불법을 거두어 잡아 지닌다고 하느니라.”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믿음의 욕구가 구족하다고 말하며 어떤 뜻을 보리심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믿음의 욕구가 구족하다는 것은 이것이 견실하여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며, 굳건하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니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엎어지거나 잃어버림이 없는 까닭이며, 엎어지거나 잃어버림이 없다는 것은 잘 머무르는 까닭이며, 잘 머무른다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 까닭이요,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을 관찰하는 까닭이요,
중생을 관찰한다는 것은 크게 가상히 여기는 마음이 근본이 된 까닭이요, 크게 가상히 여기는 마음이 근본이 되었다는 것은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은 까닭이요,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을 성숙시키는 까닭이요, 중생을 성숙시킨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움을 잘 아는 까닭이요, 스스로 즐거움을 잘 안다는 것은 다른 희망이 없는 까닭이요, 다른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살림살이에 애착하지 않는 까닭이요, 살림살이에 애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의 의지가 되는 까닭이니라.
중생의 의지가 된다는 것은 하열한 중생을 관찰하여 대우하는 까닭이요, 하열한 중생을 관찰하여 대우한다는 것은 구제자가 되는 까닭이요, 구제자가 된다는 것은 귀의처가 되는 까닭이요, 귀의처가 된다는 것은 사납고 난폭하지 않은 까닭이요, 사납고 난폭하지 않다는 것은 잘 관찰하는 까닭이요, 잘 관찰한다는 것은 원한과 미움이 없는 까닭이요,
원한과 미움이 없다는 것은 믿음의 욕구를 잘 길들인 까닭이요, 믿음의 욕구를 잘 길들인다는 것은 마음에 아무것도 둠이 없는 까닭이요, 아무것도 둠이 없다는 것은 청정한 까닭이요, 청정하다는 것은 미묘하고 결백한 까닭이요, 미묘하고 결백하다는 것은 안으로 때를 여읜 까닭이요, 안으로 때를 여의었다는 것은 밖으로 청정한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이렇게 단단하고 여물어서 무너뜨리기 어려우며 나아가 안으로 때를 여의고 밖으로 매우 청정하면 이것을 믿음의 욕구가 구족하다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보리심이란 어떤 모습이고, 어떤 형상인가? 사리자야, 보리심은 허물이 없나니 일체 번뇌의 물듦이 되지 않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서로 이어 끊어지지 않나니 나머지 승(乘) 가운데 증득할 것이 아닌 까닭이요, 보리심은 견고하여 움직이기 어렵나니 외도의 이론(異論)에 끌려가지 않기 때문이요, 보리심은 파괴하지 못하나니 일체 천마(天魔)가 기울여 무너뜨리지 못한 까닭이요,
보리심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나니 선근의 자량이 쌓여 모인 까닭이요, 보리심은 흔들어 움직일 수 없나니 반드시 홀로 모든 부처님 법을 증득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묘하게 잘 머무르나니 보살 지위에 잘 머무르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중간에 끊어짐이 없나니 나머지 법으로 대치(對治)할 것이 되지 않는 까닭이니라.
보리심은 마치 금강(金剛)과 같나니 능히 부처님의 깊은 법을 꿰뚫어 통달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장 훌륭한 평등이니 모든 중생의 갖가지 욕구와 인식이 고르지 않음이 없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장 훌륭한 청정이니 성품이 물들지 않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티끌과 때가 없나니 지혜를 발명한 까닭이요, 보리심은 너그럽고 넓어 걸림이 없나니 일체 중생의 성품을 머금어 지니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넓고 크기가 끝이 없나니 허공과 같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장애됨이 없나니 걸림 없는 지혜로 일체에 인연 없이 가상히 여기는 마음[無緣大悲] 끊이지 않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친근할 만한 것이니 모든 슬기로운 이가 칭찬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종자와 같으니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을 내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능히 건립함이 되나니 일체 기쁘고 즐거운 일을 건립하는 까닭이요,
보리심은 모든 원(願)을 발생하나니 계(戒)가 깨끗한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히 꺾어 없애기 어렵나니 참음에 머무름으로 말미암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억누를 수 없나니 바른 노력[正勤]으로 말미암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가장 적정함이니 일체의 대정려(大靜慮)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은 까닭이요, 보리심은 궁핍함이 없나니 지혜의 자량이 원만한 까닭이니라.
또 사리자야, 보리심은 곧 여래의 계율[尸羅蘊]․삼마지[三摩地蘊]․지혜[般羅若蘊]․해탈[解脫蘊]․해탈지견[解脫智見蘊]의 근본이니라.
또 보리심은 곧 여래의 10력(力)․4무소외(無所畏)․18불공법[不共佛法]의 근본이니라.”
사리자가 말하였다.
“보리심이란 것은 이 마음이 보리로써 이룩될 바탕을 삼으므로 보리라 이름하는 것입니까?”
“그러하니라.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믿음의 욕구인 보리심을 성취하였으므로 보리살타(菩提薩埵)라 이름하며, 광대살타(廣大薩埵)라 이름하며, 극묘살타(極妙薩埵)라 이름하며, 승출일체삼계살타(勝出一切三界薩埵)라 이름하며,
몸의 업이 잃음이 없고 말의 업이 잃음이 없고 뜻의 업이 잃음이 없다 이름하며, 몸의 업이 청정하고 말의 업이 청정하며 뜻의 업이 청정하다 이름하며, 몸의 업이 움직임 없고 말의 업이 움직임 없고 뜻의 업이 움직임 없다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모든 업의 깨끗함을 갖추므로 천마와 마군의 동요하거나 어지럽힐 대상이 되지 않으며, 처음 온갖 지혜의 마음을 냄으로부터 바른 행을 닦아서 지위마다 뛰어난 선교방편을 더하여 일체 세간법에 움직이지 아니하며, 능히 중생을 위하여 큰 길잡이가 되며, 거룩한 길잡이가 되며, 두루 길잡이가 되며, 큰 횃불이 되며, 큰 사다리가 되며, 다리가 되며, 배가 되며, 건져 주는 자가 되며, 저 언덕으로 건네주는 이가 되며, 집이 되며, 구호자가 되며, 귀의처가 되며, 나아갈 곳이 되나니,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온갖 지혜의 마음을 내므로 악마와 마군이 능히 기울여 움직이지 못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깨끗한 믿음의 욕구를 갖춤으로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고는 마음으로 깨끗한 믿음이 많으며, 성현 보기를 즐기며, 바른 법 듣기를 즐기며, 간탐하고 인색하지 않기를 즐기며, 마음과 손을 열어 펴서 큰 보시를 행하며,
크게 놓아 버리기를 즐기며, 고루 널리 베풀기를 즐겨 모든 중생에 마음의 걸림이 없으며, 마음에 더러운 찌꺼기가 없으며, 마음의 시끄럽고 어지러움이 없으며, 마음에 틈나고 잡됨이 없어서 저 업과 업보에 깊은 마음으로 받들어 공경하여 의심함 없고 생각함 없이 검고 흰 법의 과보가 무너지지 않는 줄을 알며, 나아가 목숨이 위험함에 이를지라도 사나운 마음을 내지 아니하며,
산 목숨 죽이는 일․주지 않는 것 가지는 일․삿된 음행․거짓말․이간질하는 말․거칠고 사나운 말․꾸밈말․탐욕․성냄․어리석음과 삿된 견해를 길이 여의느니라. 이러한 착하지 않은 업의 길[不善業道]을 끊기 위하여
열 가지 착한 업의 길을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하느니라.
믿음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문과 바라문에 바로 이르고 바로 행하며, 덕을 갖추고 계를 갖춘 이에게 그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여 길들이는 법을 이룩하며, 많은 지식을 갖추고 부지런히 묻기를 좋아하며, 바른 생각을 닦아 마음이 잘 고르고 고요하여 적멸에 가까우며, 다투어 송사하는 일을 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말을 하지 아니하며,
믿음의 욕구를 잘 알아서 잘 알지 못함이 아니며, 착한 법과 서로 응하여 나쁜 법을 멀리 여의며, 들뜨지 않고 교만하지 아니하여 성품이 조급하게 움직임을 여의며, 성품이 거친 말을 여의어 말이 뜨고 잡됨이 없으며, 생각을 지키어 올바로 머물러서 마음이 묘한 선정[定]에 편안하며, 번뇌의 근본을 잘 끊어서 독화살에 중상을 입지 아니하며, 무거운 짐을 놓아버리고 의심의 생각과 뒤에 받아 남을 뛰어 건너며,
모든 부처님 세존과 보살마하살․성문․독각 등 이러한 선지식에게서 여실히 알고는 친히 뵙고 공경하며 우러러 받들어 섬기고 행자가 이와 같이 선지식에게 몸으로 받들어 섬기며, 다시 법으로 베풀어 거두어 주되 묘한 법을 선설(宣說)하여 가르쳐 보이며 찬탄하여 기쁘게 하느니라.
이를테면 만일 보시[拕那]를 행하면 큰 재물을 얻고 계[尸羅]를 행하면 하늘에 나는 즐거움을 얻고, 많이 듣기를 좋아하면 큰 지혜를 얻고, 온갖 선정을 닦으면 얽매임을 여의느니라.
또 온갖 미묘하고 청정한 법을 열어 보이되 ‘이것은 보시요, 이것은 보시의 과보이다. 이것은 간탐이요, 이것은 간탐의 과보이다. 이것은 계요, 이것은 계의 과보이다. 이것은 계를 범함이요, 이것은 계 범함의 과보이다. 이것은 욕됨 참음[忍辱]이요, 이것은 욕됨 참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성냄이요, 이것은 성냄의 과보이다. 이것은 부지런히 닦음[正勤]이요, 이것은 부지런히 닦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게으름이요, 이것은 게으름의 과보이다. 이것은 고요히 생각함[靜慮]이요, 이것은 고요히 생각함의 과보이다. 이것은 어지러운 마음이요, 이것은 어지러운 마음의 과보이다. 이것은 지혜요, 이것은 지혜의 과보이다. 이것은 나쁜 지혜요, 이것은 나쁜 지혜의 과보이다.
이것은 몸의 묘한 행위요, 이것은 몸의 묘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몸의 나쁜 행위요, 이것은 몸의 나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말의 묘한 행위요, 이것은 말의 묘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말의 나쁜 행위요, 이것은 말의 나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뜻의 묘한 행위요, 이것은 뜻의 묘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뜻의 나쁜 행위요, 이것은 뜻의 나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착함이요, 이것은 착하지 못함이다. 이것은 마땅히 할 것이요, 이것은 마땅히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렇게 하면 긴 밤에 뜻 있고 이익되고 안락함을 얻을 것이요, 이것을 만일 하면 긴 밤에 뜻 없고 이익 없고 안락하지 못한 결과를 얻으리라’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행자가 이렇게 여러 좋은 벗을 위하여 이런 법을 선설하여 가르쳐 보이고 찬탄하여 기쁘게 하느니라. 이미 큰 법을 감당할 그릇임을 깨달아 알고는 곧 그를 위하여 매우 깊고 미묘한 공(空)의 이치와 서로 응하는 법을 열어 보이나니, 이른바 공한 법[空法]․형상 없는 법[無相法]․원함 없는 법[無願法]․지어감 없는 법[無行法]․남이 없는 법[無生法]․일어남 없는 법[無起法]․나 없는 법[無我法]․삭취취 없는 법[無數取法]․수명 없는 법[無壽命法]․중생 없는 법[無衆生法]이니라.
또 그를 위하여 매우 깊은 연기(緣起)를 열어 보이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나므로 저것이 나나니 무명(無明)은 지어감[行]을 반연하고, 지어감은 의식[識]을 반연하고, 의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고, 명색은 6처(處)를 반연하고, 6처는 접촉[觸]을 반연하고, 접촉은 느낌[受]을 반연하고, 느낌은 애착[愛]을 반연하고, 애착은 취(取)를 반연하고, 취는 유(有)를 반연하고, 유는 남[生]을 반연하고, 남은 늙고 죽음과 근심․탄식․걱정․괴로움․몸과 마음이 타는 듯한 시달림을 반연하나니 이러한 갖가지가 큰 괴로움의 무더기를 내느니라.
또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나니, 이른바 무명이 멸하므로 지어감이 멸하고 지어감이 멸하므로 의식이 멸하며 나아가 남이 멸하므로 늙고 죽음이 멸하며 이렇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느니라.
사리자야, 또 설하나니 이 가운데 한 가지 법도 ‘이것이 가히 얻을 것이다, 가히 없앨 것이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그 온갖 법이 인연으로 좇아 생겼으므로 주재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지은 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지음을 받은 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 인연 따라 구를 뿐이기 때문이니라.
또 한 가지 법도 유전하여 다시 돌아오는 것도 없으며 또한 따라 구름[隨轉]도 없건만 어리석고 망령됨으로 말미암아 임시로 삼계를 세웠을 뿐이니, 번뇌의 괴로움을 좇아 유전하는 것, 다만 임시로 시설하여 나타날 뿐이니라. 행자가 이렇게 여실히 어리석고 망령됨을 관찰할 때에 한 가지 법도 능히 나머지 법을 지음이 없느니라.
만일 이 가운데 지은 자가 없다면 지은 자를 가히 얻지 못하리라. 나아가 한 가지 법도 유전하거나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없나니 유전하고 다시 돌아옴을 가히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행자가 만일 이렇게 깊은 법을 듣고 의심함 없고 생각함 없이 모든 법의 걸림 없는 성품에 잘 들어가면 이 사람은 물질[色]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며,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에도 사로잡히지 아니하며, 눈의 빛깔[眼色] 및 눈의 의식[眼識]에도 사로잡히지 아니하며, 귀․코․혀․몸․뜻․법과 의식(意識)에도 사로잡히지 아니하리니, 다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다시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성품이 공(空)한 법을 믿어 받아들이면 부처님을 뵙는 데서 물러나지 아니하며, 법을 듣는 데서 물러나지 아니하며 스님 대중[僧] 받듦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나는 곳마다 부처님 뵙기를 여의지 아니하며 법 듣기를 여의지 아니하며 스님 대중 받들기를 여의지 아니하고 부처님 앞에 나서 용맹스레 정진[正勤]하여 착한 법을 뜻하여 구하리라.
이 사람은 정근에 머무르고는 집에 있어서 남녀․권속․종과 온갖 살림살이를 돌아보지 않고 음욕에 시달림 되지 않고 곧 이 세상에서 한창 나이의 욕락을 버리고 깨끗한 신심으로 불법 가운데로 출가하여 도에 입문할 것이요, 이미 출가하여서는 선지식과 좋은 도반과 좋은 벗을 만나 고요한 생각에 잘 머무르며 믿음의 욕구에 잘 머무르느니라.
믿음의 욕구에 잘 머무르므로 법을 잘 듣고 견고하게 받들어 수행하고 다만 말만으로 목적을 삼지 아니하며, 지혜의 깨달음을 성취하여
많이 들음을 구하되 싫증냄 없으며, 들은 법대로 물든 마음 없이 남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되 이익․공경․명예를 바라는 뜻이 없으며, 바른 뜻을 버리고 망령되이 남을 위하여 말하지 않느니라.
그 들은 대로, 그 머무른 대로 위하여 법을 설하며 법 듣는 무리에게 크게 사랑한 마음을 일으키며 모든 중생을 크게 가상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사리자야, 행자가 이렇게 많이 들으므로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고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쉽게 만족하고 쉽게 장양하며, 비고 조용한 데 있기를 좋아하여 들은 법대로 그 뜻을 관찰하여 참뜻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않으며, 모든 하늘 사람․아소락 세계의 의지처가 되어서 오로지 나를 위함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대승을 구하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지혜․비등함 없는 지혜․무엇으로 견줄 수 없는 지혜․삼계를 뛰어넘는 지혜이니라.
사리자야, 나는 이 사람이 제일가는 방일하지 않은 법[不放逸法]을 얻었다고 하리라. 사리자야, 어떤 것을 방일하지 않은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감관의 적정함이니라. 어떤 것을 모든 감관이 적정하다 하는가? 이른바 눈으로 빛깔을 보되 겉모양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답게 빛깔의 맛과 빛깔의 근심과 빛깔의 벗어남을 깨달아 아느니라. 이렇게 귀로 듣는 소리와 코로 맡는 냄새와 혀로 보는 맛, 몸으로 깨닫는 접촉과 뜻으로 알아내는 법에도, 겉모양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답게 법의 맛․법의 근심과 법의 벗어남을 깨달아 아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마음의 방일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또 방일하지 않음이란 제 마음을 잘 길들이며 남의 마음을 잘 보호하여 번뇌에 따르는 마음을 제거하고 바른 법 좋아하는 데 나아가며, 욕심의 생각․분함의 생각․해칠 생각을 내지 않고 탐냄의 착하지 못한 뿌리․성냄의 착하지 못한 뿌리․어리석음의 착하지 못한 뿌리를 그냥 두지 않으며, 몸의 나쁜 짓․입의 나쁜 짓․뜻의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이치답지 못한 생각을 내지 않으며, 온갖 나쁘고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하지 않나니 이것을 방일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들이 이미 방일하지 않다면 능히 이치다운 생각[如理作意]을 부지런히 닦아 익힐 것이니라. 만일 법이 있는 것이면 여실히 있는 줄을 알고 만일 법이 없는 것이면 여실히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있는 것이며 어떤 것이 없는 것인지를 관찰하여 곧 지혜의 힘으로 여실히 능히 알고 올바로 닦아 익히는 이는 성스러운 해탈이 있지만 잘못 닦아 익히는 이는 성스러운 해탈이 없느니라. 업보가 없는 이는 이것이 곧 있지만 업보가 있는 이는 이것이 곧 없느니라.
또 눈을 있는 것이라 하여 눈을 두는 것은 없으며, 귀․코․혀․몸․뜻이 있다고 하여 뜻을 두는 것은 없느니라.
또 물질[色]이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여 달라지는 법이라 하면 이것은 곧 있지만, 물질이 항상 머물러 있으며 변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면 이것은 곧 없느니라.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여 달라지는 법이라 하면 이것은 곧 있지만, 느낌․생각․지어감․의식이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하면 이것은 곧 없느니라.
또 무명이 인연이 되면 지어감이 곧 있지만 만일 무명이 없으면 지어감이 곧 없느니라. 나아가 남[生]이 인연이 되면 늙고 죽음이 있지만 만일 남이 없으면 늙고 죽음이 또한 없으리라.
또 보시로 큰 재물의 감응은 있지만 보시로 빈궁의 감응을 얻는다는 것은 없느니라. 계를 지니면 하늘에 난다는 것은 있지만 계를 범하고서 하늘에 난다는 것은 없느니라. 많이 들으면 큰 지혜가 생긴다는 것은 있지만 온갖 나쁜 지혜로써 능히 큰 지혜를 낸다는 것은 없느니라. 선정을 닦으면 얽매임을 여읜다는 것은 있지만 선정을 닦으면 얽매인다는 것은 없느니라.
또 만일 이치답게 생각하면 얽매임이 있고 이치답지 않게 생각하면 얽매임을 여읜다면 이 둘은 모두
없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부지런히 닦으면 보리가 곧 있지만 만일 게으르면 보리가 곧 없느니라. 만일 교만함이 없이 출가하면 도를 얻는 것은 있다고 하지만 교만한 자는 적멸의 도가 없느니라.
또 일체처에 충만한 공성(空性)은 이것이 있지만 일체처에 충만하여 나와 삭취취와 중생과 수명과 장부 등의 부류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없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만일 여러 보살마하살이 방일하지 않음을 행하면 능히 이치다운 생각을 닦아 익힐 것이니, 세간의 슬기로운 이와 같이 이 있는 것을 유(有)라 한 줄을 알고, 세간의 슬기로운 이와 같이 이 없는 것을 무(無)라 한 줄을 아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결정코 있다고 말하면 올바르게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요, 만일 결정코 없다고 말하면 이것도 또한 올바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말씀하신 실다운 뜻은 능히 따라 깨달으라고 한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큰 지혜의 힘을 갖추어서 모든 법을 거두어 잡아 네 가지 오타남(鄔拕南:法印) 가운데 안치(安置)한 까닭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일체의 행(行)은 항상됨이 없고, 일체의 행은 괴로움이며, 온갖 법은 나가 없고, 열반은 적멸하다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일체의 행이 항상됨 없다고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항상 하다고 생각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항상하다는 생각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일체의 행이 다 괴로움이라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즐겁다고 생각하는 중생을 위하여 즐겁다는 생각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온갖 법이 나가 없다고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나라고 생각하는 중생을 위하여 나라는 생각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적멸이 열반법이라 말한 것은 여래가 모든 얻을 것이 있다는 데 머무른 뒤바뀐 중생을 위하여 얻을 것이 있다는 뒤바뀐 마음을 끊어주기 위함이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들이 만일 여래가 일체의 행이 항상됨 없다고 말함을 들으면 곧 능히 마침내
항상됨 없는 이치에 잘 들어가게 되며, 만일 일체의 행이 괴로움이라고 말함을 들으면 곧 능히 싫증을 일으켜 바람[願] 여읠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만일 모든 법이 나가 없다고 말함을 들으면 곧 능히 삼마지(三摩地)의 묘한 해탈문을 닦아 익히리라. 만일 적멸한 열반을 말함을 들으면 곧 형상 없는[無相] 삼마지를 닦아 익혀서 얼마 되지 않아 진제(眞際)에 나아가게 되리라.
이와 같이 사리자야, 만일 여러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러한 법을 잘 닦아 익히면, 끝까지 일체의 착한 법에서 물러나 잃지 않고 속히 일체 불법을 원만히 성취하리라.”
'매일 하나씩 > 적어보자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보자] #3575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38권 (2) | 2024.01.11 |
---|---|
[적어보자] #3574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37권 (4) | 2024.01.11 |
[적어보자] #3572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35권 (2) | 2024.01.11 |
[적어보자] #3571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34권 (5) | 2024.01.11 |
[적어보자] #3570 불교 (대보적경/大寶積經) 33권 (2) | 2024.0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