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보적경(大寶積經) 35권
대보적경 제35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菩薩藏會) ①
1) 개화장자품(開化長者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께서 실라벌국(室羅筏國)에서 여름 안거[雨安居]와 3개월의 자자(自恣)를 마치시고 의복을 기워 입고 대필추(大苾蒭:대비구) 대중 1,250인과 함께 여러 나라로 유행하고 계셨다.
박가범께서는 광대하고도 미묘한 명호를 성취하셨으므로 세간에 출현하시자 모든 하늘․인간이 찬송하였다. 말하자면 여래(如來)․응공(應供)․정등각(正等覺)․명행원만(明行圓滿)․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장부(無上丈夫)․조어사(調御士)․천인사(天人師)․불(佛) 박가범(薄伽梵)으로서 스스로 증득한 깊은 경계에 머물러 신통을 구족하시며, 그 위덕이 모든 하늘과 세간․마왕․범왕․아소락(阿素洛) 등을 덮어 가리우며,
항상 중생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여 열어 보이시되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훌륭하며, 말과 뜻이 교묘하고 순일하고 원만하며 청정한 범행(梵行)이었다.
그때에 사부대중으로서 국왕․대신과 여러 외도와 사문․바라문과 장자며 하늘․용․약차․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人非人]들이 한량없고 가장 묘한 옷․음식․와구․의약 등 온갖 공양거리로 여래께 받들어 올렸다.
그때 세존께선 대중에게 둘러 싸여 공양․공경․존중․찬탄을 받으시면서 차츰 노닐어 마게타국(摩揭陁國)에 이르시어 왕사대성(王舍大城)의 취봉산(鷲峯山)에 머무셨다.
그때에 왕사성에 현수(賢守)라는 대장자는 이미 과거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여
선근을 심었으므로 그 복의 감응으로 대족성의 대부호로서 자산과 재보를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때 장자는 “대사문이 석씨의 궁전을 나와서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를 증득하시고 대중을 거느리고 이 나라에 오셨는데, 그 부처님 세존께서 이러한 광대한 명칭을 가지고 세간에 출현하여 10호(號)가 구족되시며, 신통 지혜를 성취하여 미묘한 법을 말씀하시며, 나아가 청정한 범행을 구족하셨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제 꼭 취봉산에 가서 여래를 뵈오리라. 만일 내가 여래를 뵈오면 반드시 좋은 이익을 얻으리라’고 생각하고는 5백 장자와 같이 왕사성을 나와서 부처님 계신 데로 나아갔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아침에 승가지(僧伽胝)를 입고 발우를 가지시고 필추 스님들에게 둘러 싸여 대중들 가운데에서 위의를 엄정히 하며, 조용히 걸으시되 바른 지혜로 돌아보고 거동함이 단엄하고 거룩하시며,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하여 걸식하는 법을 나타내어 보이셨다.
마침 성에 들어가시려 할 적에 현수 등 5백 장자가 멀리서 우러러보니 여래께서는 위의가 단엄하고 정연하시어 여러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며, 금색의 몸과 대장부의 32상을 성취하시어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정신이 말쑥하며, 가장 거룩한 길들임과 적정[寂止]을 얻어 모든 감관을 거두어 잡아 가지기가 큰 용․코끼리와 같고, 청정하여 흔들림 없기는 맑은 못물과 같으며, 7보로 이룩된 백천 억 잎의 붉은 연꽃을 밟으시며, 무수한 하늘 사람과 약차들은 큰 하늘꽃을 여래 위에 뿌리어 공양하는데 그 꽃은 흐르는 듯 땅에 가득하였다.
여러 장자들은 이미 세존께서 한량없는 백천 공덕으로 장엄하고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일찍이 없던 일이라 찬탄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여래 앞에 이르러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경례하고 한쪽에 물러섰다.
그때 현수 등 5백 장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없던 일입니다. 여래의 신력은 천선(天仙)․길상천[吉祥]․마왕․범천을 덮어가려 빼앗을 것이오며, 여래의 위덕은 큰 명칭을 갖추셔서 둥근 빛․묘한 빛깔이 여러 대중을 가리우며, 세존의 몸매는 큰 금산과 같사옵고 용모는 단엄하시기 무엇에 견줄 데 없사오며, 세존은 일체 세간에 매우 희유한 법을 성취하셨나이다. 저는 오직 세존의 위덕이 이러한 것만을 생각하오나 세존께서는 당초에 어떤 일을 보시고 집을 버리고 대보리를 깨달으셨나이까?”
그때 현수 장자는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저는 일찍이 들었습니다. 최승존(最勝尊)께서는
길상하고 묘한 형상과 대명호를 가지신 분임을.
이제 위광(威光) 뵈오니 듣던 것보다도 거룩하게
황금과 같은 형상에 온갖 덕 갖추셨네.
여래의 색상은 금산과 같은데
거룩하고 단엄하여 보아도 싫증 없네.
위덕이 장엄한 필추 무리에
마치 보름달이 별 가운데서 빛나듯 하네.
세존의 정수리는 볼 수가 없이
드높게 드러나기 산왕(山王)보다 뛰어나네.
정수리 살 상투는 둥그스름히 걷어 올라가
그 모양 평편하기 하늘 일산 같도다.
검푸른 털은 부드럽게 오른편으로 돌아
마치 안선색(安繕色)의 제청보(帝靑寶) 같고
선명하고 맑은 빛은 공작의 목인 듯
나는 이제 우러러 볼수록 만족할 줄 몰라라.
얼굴은 단엄하고 이마는 평평하며
맑게 빼어난 눈썹 모양 하늘 활 같고
흰 털은 투명하여 티 하나 없이
깨끗이 빛나기 태백성(太白星) 같네.
웃는 듯 맑은 눈 매우 미묘하여
이것을 보는 이는 다 기쁜 마음 생기네.
내 이제 우러러보기 잠시도 놓음 없이
깨끗한 눈 세간의 귀의처에 정례합니다.
코 모양 높으면서 길고 또 곧으며
차츰 넓고 둥근 것이 금을 부어 이룬 듯
입술 모양 붉게 빛나고 지극히 깨끗해
빈바라 과일과 마니 보배 같도다.
고운 치아는 선명하여 빛나고 윤택하기
흰 소 젖빛이나 연꽃 뿌리인 양
단단하고 조밀하고 쪽 고른 것은
잘 조련된 사마타(奢摩他)의 감응일세.
이[齒]와 이 뿌리가 깊고도 단단하고
치아의 위․아래가 다 꼭 맞으며
부처님 어금니는 하얗고 가장 뛰어나
기러기 행렬에 기러기 왕이 중간에 처한 듯하네.
선서(善逝)의 넓고 긴 혀 모양은
얼굴을 덮으며 깨끗하기 연꽃 같고
붉은 구리쇠나 마니 보배인 양
밝은 거울인 듯 돋아나는 해인 듯하네.
세존의 귀 모양은 극히 단엄해
범천이나 하늘이나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것
구담[喬答摩]의 종족으로 사자의 턱 모양
두려움 없음 마치 사자왕 같네.
내가 선서의 인후상(咽喉相)을 보건대
능히 세간의 감로(甘露) 맛을 이끌며
맑게 비치고 트여 한 점 티도 없으며
큰 신력을 갖추어 부사의하네.
목 앞의 줄대는 길고 또 곧으며
한 가운데 있되 잡된 무늬 없으며
사람 가운데 거룩하고 하늘 가운데 하늘이고
항상 맛 가운데 가장 맛있는 음식만 잡수시네.
어깨 둔덕은 둥글고 다 충만하여
가슴 모양 웅장하여 위용도 대단하시고
사람 가운데 높은 모습 세상에선 듣지 못해
마치 산머리에 햇빛이 비치듯 하네.
손발과 두 어깨며 목덜미
일곱 곳이 청정하게 빛나고 항상 평만하며
긴 팔 미끈하고 둥근 상왕(象王)의 코
두 손을 내려뜨리매 무릎에 이르네.
윗몸은 넓고 두텁기 금수의 왕 같이
니구류 나무[瞿陀樹]처럼 두루 원만하여라.
나라연(那羅延) 힘으로 이룩된 몸
큰 힘과 참는 힘을 다 갖추셨네.
때[垢] 없는 몸 털은 다 위로 쏠리어
하나의 구멍에 한 털씩만 났으며
연기와 티끌에 물들지 않음 연꽃 같은데
오른 편으로 말린 모습 가늘고 연하여라.
내가 옛적 듣자니 은밀한 모양[隱密相]의
음장상(陰藏相) 하늘의 마왕(馬王)과 같고
넓적다리와 종아리는 둥그스름히 걷어올린
그 모양 마치 하늘의 사슴 형상과 같네.
발바닥은 두텁고 발등은 풍성하게 부풀었으며 뒤꿈치는 둥글며
손의 그물은 안왕(雁王)과 같네.
쪽 고르고 곱고 긴 스무 개의 손․발가락
붉은 구리쇠 손․발톱은 연꽃과 같네.
두 발바닥엔 천 폭(輻)의 금바퀴 모양
청정하게 빛나고 미묘하여 장엄을 갖추었네.
여래께서 세간에 유행하실 적에
발꿈치를 참으로 땅에 대지 않으셨나니
땅에서 4지(指) 정도로 뜨시어 허공을 딛으시니
온갖 보배 홍련(紅蓮)이 발을 따라 나타나네.
둘러보시며 조용히 걸어가기 상왕(象王)과 같고
가는 모양 단엄하기 천왕과 같네.
대성(大聖)의 위엄은 두려울 것 없나니
대중에 처하기 사자왕보다 뛰어나며
묘한 빛은 비사문(毘沙門)을 덮어 가리고
위엄의 광명은 백천 해[日]를 뛰어넘네.
범천과 하늘과 사람 가운데 견줄 이 없나니
그 누가 여래를 능가할 이 있으리.
다니시건 머무시건 법을 설해 중생을 제도하사
천선(天仙)이나 용신(龍神)이나 다 공경하여
하늘꽃을 뿌리고 천악(天樂)을 울리며
호화롭게 어우러져 허공에 가득 차네.
오늘에 세존의 대신변을 뵈옵고
내 그윽이 의혹심을 품나니
본래 어떠한 뛰어난 공덕 보셨기에
출가하여 위없는 도에 나아가셨나.
그때 세존께서 현수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장자야, 알아두어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 괴로운 일에 핍박되는 것을 보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남[生]의 괴로움에 핍박됨이요, 둘째는 늙음의 괴로움에 핍박됨이요, 셋째는 병의 괴로움에 핍박됨이요, 넷째는 죽음의 괴로움에 핍박됨이요, 다섯째는 근심의 괴로움에 핍박됨이요,
여섯째는 원한의 괴로움에 핍박됨이요, 일곱째는 괴로움의 느낌[苦受]에 핍박됨이요, 여덟째는 걱정의 느낌에 핍박됨이요, 아홉째는 고통․번민에 핍박됨이요, 열째는 나고 죽음으로 유전(流轉)하는 큰 괴로움에 핍박되는 것이니라.
장자야, 나는 이러한 열 가지 괴로운 일이 중생을 핍박하는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이러한 핍박되는 일을 벗어나기 위하여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범부들이
유전하는 굳은 감옥에 갇혀
항상 나고 늙고 병드는
온갖 괴로움에 핍박되며
근심․걱정과 원한과
죽음의 괴로움에 끌려감을 보고
이러한 굳은 감옥을 없애고
벗어나는 법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로다.
“또 장자야, 내가 세간의 일체 중생을 보건대 열 가지 원한심[惱害]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나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일찍이 내 몸에 이롭지 못한 일을 했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둘째는 현재에 내 몸에 이롭지 못한 일을 했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셋째는 장차 내 몸에 이롭지 못한 일을 하리라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넷째는 일찍이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이롭지 못한 일을 했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다섯째는 현재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이롭지 못한 일을 한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여섯째는 장차 내가 사랑할 이에게 도움되지 못할 일을 하리라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일곱째는 일찍이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도움될 일을 하였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여덟째는 현재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도움될 일을 한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아홉째는 장차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에게 도움될 일을 하리라 하여 원한심을 냄이요, 열째는 모든 허물을 잘 덮어 주지 않았다 하여 원한심을 냄이니라.
장자야, 내가 이러한 열 가지 원한심이 세간의 일체 중생을 괴롭히고 해치는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이러한 괴로운 일을 벗어나려는 까닭에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들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함은
다 열 가지 원한으로 생겨남이니
나와 나의 친애하는 이에게
3세에 함께 원한을 품도다.
혹은 나와 친하지 않은 이에게
모든 도움될 일을 한다 하여
증오심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
3세에 함께 원한을 품도다.
열 번째 모든 허물이
원망과 미움의 괴로움을 길러 내나니
나는 이러한 허물을 보고
싫어하고 걱정하여 집을 나왔노라.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 악견(惡見)의 좁은 숲에 들어가서 그 다른 견해로 말미암아 능히 벗어나지 못함을 보았노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아견(我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둘째는 유정견(有情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셋째는 수명견(壽命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넷째는 삭취취견(數取趣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다섯째는 단견(斷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여섯째는 상견(常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일곱째는 무작견(無作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여덟째는 무인견(無因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아홉째는 불평등인견(不平等因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요, 열째는 사견(邪見)이라는 악견의 좁은 숲이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 열 가지 악견의 좁은 숲에 들어가서 능히 나오지 못함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길이 이러한 모든 악견을 끊기 위하여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 어리석은 범부들은
악견의 좁은 숲에 들어가나니
아견과 유정견과
수명견과
단견과 상견과
무작견에 의지하는 등이로다
바른 소견을 세워주기 위하여
나는 출가하였노라.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저 헤아릴 수 없는 겁에 백천 나유다(那庾多) 구지(拘胝)의 허물을 갖추어 지어서 항상 열 가지의 큰 독화살에 맞는 것을 보았느니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사랑[愛]의 독화살이요, 둘째는 무명(無明)의 독화살이요, 셋째는 욕심[欲]의 독화살이요,
넷째는 탐욕[貪]의 독화살이요, 다섯째는 과실(過失:瞋恚)의 독화살이요,
여섯째는 어리석음[愚癡]의 독화살이요, 일곱째는 거만함[慢]의 독화살이요, 여덟째는 사견[見]의 독화살이요, 아홉째는 유(有)의 독화살이요, 열째는 무[無有]의 독화살이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 열 가지 독화살에 중상 입은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길이 이러한 모든 독화살을 끊으려고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랑의 화살에 중상 입은 중생
구지의 큰 겁을 지나가도
무명에 눈이 멀어서
어두운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간다네.
욕심의 화살은 5온(蘊)을 꿰뚫으며
물듦을 빨아들임을 탐욕의 화살이라 하며
과실의 화살에 제 정신 잃고
어리석음의 화살을 둘러 쓰도다.
업신여겨 생겨나는 아만의 화살
제 주장․제 고집의 견해의 화살
유라 무라 하는 화살로 인하여
유와 무의 구렁에 떨어지도다.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은
그 입으로 말미암아서 칼날이
번갈아 쟁론을 일으키어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한다네.
이러한 독의 화살을 뽑아 주고자
여래가 세간에 출현하여서
모든 화살에 중상 입은 자 구원하려고
출가하여 거룩한 도를 성취하였네.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 사랑[愛]으로 말미암아 근본을 삼는 것을 보았노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사랑을 인연하여 구하게 되고, 구함을 인연하여 얻게 되고, 얻음을 인연하여 내 것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내 것을 인연하여 집착을 일으키고, 집착을 인연하여 탐욕을 일으키고,
탐욕을 인연하여 깊은 탐착심을 일으키고, 깊은 탐착심을 인연하여 아끼고 인색한 마음을 일으키고, 아끼고 인색한 마음을 인연하여 모으고 거두어들이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으고 거두어들이는 마음을 인연하여 지키어 보호하게 되고, 지키어 보호하기 위하여 칼과 몽둥이를 잡고, 다투고 송사하고 욕질하고 비방하며 갖가지 괴로움을 일으키며, 또 이것을 인연하여 원한의 말을 맺으며 온갖 나쁜 짓을 길러 내느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 열 가지 사랑의 근본으로 이룩된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사랑의 뿌리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는 법을 얻으려고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랑에 먹힌 중생들이
온갖 욕심을 찾아 쫓아다니며
이익을 얻으면 내 것이라 하여
이에 집착심 일으키도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꼭 해야 하겠고
탐욕이 더욱 늘어나며
탐착하고 아끼고 인색한 것 등
서로 잇달아 나도다.
간탐의 허물은 세간에 애착하여
언제나 굳게 모아 쌓으며
거두어 쌓고는 지키어 보호하고자
그 마음 잠깐 쉴 사이 없나니
지키고 보호하려 어리석은 사람들은
칼과 몽둥이로 서로 해치며
온갖 불선업을 심어서
이것으로 인하여 갖가지 괴로움을 내도다.
사랑의 인연을 관찰하면
온갖 괴로움이 생기지 않나니
뿌리 없고 머무름 없는 깨달음은
깨달음 가운데도 최상이로다.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의 삿된 성질로 말미암아 삿된 정[邪定]을 성취함을 보았노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삿된 소견[邪見]이요, 둘째는 삿된 생각[邪思惟]이요, 셋째는 삿된 말[邪語]이요, 넷째는 삿된 짓[邪業]이요, 다섯째는 삿된 생활[邪命]이요,
여섯째는 삿된 정진[邪精進]이요, 일곱째는 삿된 억념[邪念]이요, 여덟째는 삿된 선정[邪定]이요, 아홉째는 삿된 해탈[邪解脫]이요, 열째는 삿된 해탈지견[邪解脫智見]이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러한 열 가지 삿된 성질로 말미암아 삿된 정을 성취하는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이러한 모든 삿된 성질을 벗어나게 하려고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삿된 소견을 품은 중생은
삿된 생각의 경계로
삿된 말을 떠벌리며
온갖 삿된 짓을 행하도다.
삿된 생활․삿된 정진이며
삿된 억념․삿된 선정으로
삿된 해탈을 성취하여
삿된 해탈지견으로 나아가도다.
삿된 성질의 결정취(決定聚)는
어리석은 사람의 의지하는 것이라
바른 성질에 머무르게 하려고
그래서 무상도에 나아갔노라.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 착하지 않은 업의 길[不善業道]로 말미암아 삿된 길에 처하여 많이 악도에 떨어짐을 보았노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요, 둘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요, 셋째는 삿된 음행이요, 넷째는 거짓말함이요, 다섯째는 이간하는 말이요, 여섯째는 사나운 말이요, 일곱째는 꾸밈말이요, 여덟째는 탐착함이요, 아홉째는 성냄이요, 열째는 삿된 소견이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 열 가지 불선업으로 말미암아 삿된 도를 타고 악도로 많이 달려 나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여 일체의 모든 삿된 도보다 뛰어나고자 하므로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의 목숨을 해치는 중생과
다른 재물을 빼앗고 도둑질하거나
삿된 음행을 행하면
이 사람은 빨리 지옥에 떨어지리라.
사나운 말․이간질하는 말
거짓말은 적정에 어긋나는 것
꾸밈말 하는 범부는
어리석음에 얽매이게 되리라.
남의 재물에 탐착하고
자주 성내는 마음 일으키며
온갖 삿된 소견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악도에 떨어지리라.
세 가지는 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네 가지는 어업(語業)으로 나며
뜻은 능히 세 가지 악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악행이라 하느니라.
온갖 나쁜 짓 행하고는
악도 가운데로 끌려가나니
내가 이제 세간에 나타남은
그들을 건져내어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니라.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 물들어 더럽혀지는 법으로 말미암아 번뇌에 얽혀 번뇌의 때[垢] 속에 떨어짐을 보았노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간탐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둘째는 나쁜 계법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셋째는 성냄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넷째는 게으름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다섯째는 산란한 마음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여섯째는 나쁜 지혜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일곱째는 어른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때에 더럽혀짐이요, 여덟째는 삿된 의혹의 때에 더럽혀짐이요, 아홉째는 믿고 알지 못하는 때에 더럽혀짐이요, 열째는 공경하지 아니하는 때에 더럽혀짐이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러한 열 가지 때에 물들어 더럽혀짐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물듦 없는 무상법을 증득하기 위하여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상에 많은 중생들이
열 가지 물듦에 핍박되어서
유위의 번뇌업을 좋아하여
일찍이 싫증내어 떠날 줄을 모르도다.
간탐의 때에 물들어 더럽혀진
일체의 어리석은 범부며
계를 범함은 적정이 아니니
삼마지를 익히지 않도다.
성냄의 때는 인욕을 등지고
게으름은 정진에서 물러가며
그 마음이 오롯하게 머무르지 못함은
나쁜 지혜의 우둔한 자로다.
부모와 스승과 어른[師長]의
교훈을 받들고 따르지 아니하며
의혹과 삿된 소견의 그물에 얽힌 중생은
세상을 비추는 깨달음을 구할 줄 모르도다.
매우 깊고도 미묘한
부처님의 묘법을 비방하며
무명의 껍질을 둘러쓰고
성인의 법을 가볍게 여기나니
이러한 물듦의 더러움을 보고
누가 유위에 처하기를 즐기리요.
마땅히 빨리 적멸을 증득하여
함이 없고 물듦이 없어야 하리라.
“또 장자야, 나는 세간의 일체 중생이 열 가지 올가미에 얽매임을 보았노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간탐․질투의 올가미에 얽매임이요, 둘째는 무명의 껍질에 덮어 가리움이요, 셋째는 번뇌에 미혹되어 어리석음의 구렁에 떨어짐이요, 넷째는 애욕의 폭포수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함이요, 다섯째는 말마사절(末摩死節)의
삿된 화살에 맞음이요,
여섯째는 분한(忿恨)의 검은 연기에 그을림이요, 일곱째는 탐욕의 치열한 불길에 불태워짐이요, 여덟째는 과실(過失:瞋恚)의 독약에 기절함이요, 아홉째는 5개(蓋)의 독한 가시에 가로막힘이요, 열째는 항상 나고 죽음에 유전하며 굶주림의 광야에서 허덕이며 고달프고 지침이니라.
장자야, 나는 중생들이 이러한 열 가지 올가미에 얽매임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여 얽매임 없고 잡아맴 없는 법을 증득하려고 깨끗한 신심으로 석씨의 가문을 버리고 위없는 도에 나아갔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늙음이란 한창 시절을 집어삼키고
늙음이란 깨끗하고 묘한 모양을 부수어 버리며
늙음이란 염(念)․정(定)․혜(慧)를 훼손하고
마침내 죽음에 먹힘이 되도다.
병듦은 능히 한창 때 세력을 꺾어 버리고
용맹심을 앗아가며
모든 감관의 부락을 헐어 버리고
파리하고 지쳐 의지할 데 없도다.
죽음은 나찰의 계집과 같이
사납고 억세어 매우 겁나며
항상 세간을 쫓아다니며
중생의 목숨을 삼켜 버리네.
내 이미 세간의
늙고 병듦과 죽음의 핍박을 싫어하여
늙고 죽음 없기를 구하려고
청정하고 안락한 법을 찾아 집을 나왔네.
세상이 세 가지 불에 불태워지는데
나는 그를 구원할 자 없음을 보고
감로의 법비[法雨]를 내려
3독의 불꽃을 꺼버렸네.
저 길 잃어버린 사람인
장님과 어리석은 자를 보고
세간의 눈이 되어서
인도하려고 집을 떠났네.
중생은 의혹의 젖으로 길러져서
5온의 덮개에 덮여 막혔으니
그들의 뉘우침과 괴로움 없애기 위하여
법을 설하려고 집을 떠났네.
어리석은 사람은 서로 틀어져서
틈을 찾아 해치려 하나니
원한과 미움을 화합시켜
세상을 이익되게 하려고 집을 떠났네.
부모와 스승과 어른에게
거만스러워 공경할 줄 모르므로
그 교만의 당기를 꺾으려고
그러므로 나는 집을 떠났네.
탐욕이 세간을 가로막아서
재물로 말미암아 서로 해침을 보고
일곱 가지 성재(聖財)를 얻어서
법에 가난한 자를 끊어 없애기 위함이었네.
혹은 서로 죽이고 해치면서
저만 이롭고자 하지만 끝내 이익 됨 없나니
나는 이것을 보고 결정코 몸을 버려
삼계의 감옥 여의기 구하였노라.
삼계의 중생은 일찍이
참다운 이익을 알지 못하니
참다운 이익을 열어주기 위하여
그러므로 나는 집을 떠났네.
저 지옥 세계로 가는 자를 보건대
나쁜 짓의 인연이 불타듯 하며
끝없는 괴로움 받게 되나니
벗겨주려고 집을 떠났네.
저 축생의 길로 가는 자를 보건대
서로 죽이고 해치기 때문이니
의지함 없는 데 의지처를 짓고자
불쌍히 여겨 집을 떠났네.
저 염마귀(焰魔鬼)의 세계를 보건대
주리고 목마름의 큰 괴로움에 시달리므로
묘한 보리를 증득하여서
죽지 않는 감로수(甘露水)를 베풀기 위함이었네.
인간은 쫓아가며 구하는 괴로움
하늘에는 목숨을 버리는 괴로움
괴로움이 삼계에 두루 하므로
이것을 건지려고 집을 떠났네.
내가 욕심에 탐착하는 자를 보건대
부끄러움[慙愧] 멀리 여의고
높은 어른에게 함부로 하면
방탕하고 음란하기 개․돼지보다 심하리.
또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건대
계집의 아양에 걸려들어
방일하여 옳지 못한 짓 하므로
그것을 버리게 하려고 집을 떠났네.
또는 저 말세의 중생들을 보건대
나쁜 법으로 마군에게 부림당하리니
나는 그것을 꺾기 위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나아갔도다.
세속에 있는 것은 온갖 허물의 근본
집을 떠남은 보리에 나아가는 것
그러므로 대지(大地) 등을 버림은
나고 죽음의 끝을 다하기 위함이네.
그때 5백 장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비로소 여래가 참으로 깨달은 분인 줄 알고 부처님 앞에서 이구동성으로 게송을 말하였다.
우리들은 늙고 죽음의 핍박을 두려워하오니
바라건대 묘한 법 말씀하사 그 경계 다하게 하소서.
세존은 세간에서 청정한 데 나아가시어
존재[有]를 여읜 깨끗한 성품 모든 존재를 초월하셨네.
모든 존재에서 건져내어 존재함이 없도록
잡아 갇혀 집에 있는 자도
세웅(世雄)께선 물듦 벗어나 최고 해탈 얻으셨으니
먼지․때 여의신 마음 청정하셔라.
길들이는 법 가운데서도 크게 길들임
미묘한 감로(甘露) 법문 열어 주소서.
묘한 빛깔 갖추신 거룩한 어른
하늘이나 사람이나 세간에선 견줄 이 없네.
세간에 견줄 이 없는 가장 거룩한 어른
묘한 법 말씀하여 중생을 건지시어
3독의 때 길이 멸해 없애고 온갖 허물 뱉어내
지혜의 눈 깨끗하여 가려진 장애 없어지이다.
티끌 맑고 어둠 여의며 번뇌 그물 열리도록
가장 높은 어른은 미묘한 법을 베푸소서.
중생의 괴로움 덩어리 의지할 데 없으며
존재의 못[池]에 빠져 건져줄 이 없나니
바라건대 자비로써 널리 구제하려는 마음 일으키시어
속히 건져내어 안온한 저 언덕에 오르게 하소서.
교만․어리석음의 물굽이가 휘도는 생사의 하수에
투쟁과 병고(病苦)의 파도가 용솟음치는데
중생들 빠져 흘러가되 구원할 이 없나니
자비로운 마음 내시어 그 흐름에서 건져주소서.
천억(千億)의 밝은 해가 금산에 빛나도
부처님 몸의 광명은 그보다 성하여라.
바라건대 미묘한 범음(梵音)의 소리로
장엄한 최상의 법을 선포하소서.
온갖 법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서
밝은 구슬과 같이 체상(體相)이 트여
지은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남의 지식 빌림 없이 두루 비쳐 깨닫도다.
저절로 두려움 없는 힘[無畏力] 갖추었으니
미묘하고 깨끗한 행만 행하면 끝없는 데 칭합하리니
끝없는 지혜로 허공에 노닐듯이
바라건대 법왕은 미묘한 법 펴소서.
그때 세존께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5백 장자가 선근이 이미 성숙하여 법의 교화를 견디어 받을 만하니 내가 이제 그들을 위하여 알맞도록 설법을 하여 장자들로 하여금 이 자리에서 세속의 형상을 버리고 믿음으로써 집을 떠나 번뇌를 끊고 번뇌가 다한 지혜를 얻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허공에 오르시어 가부좌를 틀고 앉으셨다. 여러 장자들은 이 신통을 보고 처음 있는 일임을 찬탄하고, 여래께 갑절이나 공경하고 믿는 마음을 내었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들어라. 세상에 열 가지 핍박하는 괴로운 일이 있나니, 이른바 나는 괴로움[生苦]․늙는 괴로움[老苦]․병드는 괴로움[病苦]․죽는 괴로움[死苦]․근심의 괴로움[愁苦]․원한의 괴로움[怨苦]․괴로움의 느낌[苦受]․걱정의 느낌[憂受]․아픔에 시달림[痛惱]․나고 죽음[生死]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핍박하는 괴로운 일이 중생을 핍박하나니,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또 장자들아, 세상에는 열 가지 원한심이 있느니라. 일찍이 내 몸에 대해 해로운 일을 했던 것, 지금 내 몸에 해로운 일을 하는 것, 장차 내 몸에 해로운 일을 할 것, 일찍이 나의 사랑했던 이에게 해로운 일을 했던 것, 지금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해로운 일을 하는 것, 장차 나의 사랑할 이에게 해로운 일을 할 것, 나의 일찍이 사랑하지 않았던 이에게 이로운 일을 했던 것, 나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것, 나의 장차 사랑하지 않을 이에게 이로운 일을 할 것, 또는 여러 가지 해로운 일에 대하여 원한심을 내는 것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원한의 일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또 장자들아, 세상에는 열 가지 다른 견해와 악견의 좁은 숲이 있나니, 이른바 아견(我見)․중생견(衆生見)․수명견(壽命見)․삭취취견(數取趣見)․단견(斷見)․상견(常見)․무작용견(無作用見)․무인견(無因見)․불평등견(不平等見)․사견(邪見)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악견의 좁은 숲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또 장자야, 세상은 열 가지 큰 독화살에 중상 입으니, 사랑[愛]의 독․무명(無明)의 독․욕심[欲]의 독․탐욕[貪]의 독․과실(過失:瞋恚)의 독․어리석음[愚癡]의 독․거만함[慢]의 독․사견[見]의 독․유(有)의 독․무[無有]의 독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큰 독화살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다시 장자들아, 세상에는 열 가지의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법이 있나니, 이른바 사랑으로 인연하여 구하게 되고, 구함으로 인연하여 얻게 되고, 얻음으로 인연하여 내 것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내 것으로 인연하여 모든 집착을 일으키고, 집착으로 인연하여 탐욕을 일으키고,
탐욕으로 인연하여 깊은 탐착심을 일으키고, 깊은 탐착심으로 인연하여 아끼고 인색한 마음을 일으키고, 아끼고 인색한 마음으로 인연하여 모으고 거두어 들이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으고 거두어 들이는 마음으로 인연하여 지키어 보호하게 되고, 지키어 보호하기 위하여 칼과 몽둥이를 잡고
서로 흉보고 비방하고 다투고 송사하며 서로 이간질하는 말을 일으키며, 온갖 괴롭고 나쁜 짓이 아울러 일어나나니 이러한 열 가지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법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다시 장자야, 세상에는 열 가지 삿된 성질이 있나니 삿된 소견․삿된 생각․삿된 말․삿된 짓․삿된 생활․삿된 정진․삿된 억념․삿된 선정․삿된 해탈․삿된 해탈지견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삿된 성질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다시 장자들아, 세상에는 열 가지 착하지 않은 업의 길[不善業道]이 있나니, 말하자면 남의 목숨을 해치는 것․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삿된 음행하는 것․거짓말하는 것․이간질하는 말․사나운 말․꾸밈말․탐심․성냄․삿된 견해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불선업도를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또 장자들아, 세상에는 열 가지 더러운 때[垢]에 물든 법이 있으니, 간탐의 때․나쁜 계법의 때․성냄의 때․게으름의 때․산란한 마음의 때․나쁜 지혜의 때․어른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때․삿된 의혹의 때․믿고 알지 못하는 때․공경하지 않는 때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 더러운 때에 물든 법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또 장자들아, 세상에는 열 가지 나고 죽음에 유전하는 크게 두려운 일이 있나니, 말하자면 간탐․질투의 그물에 얽매이며, 무명의 껍질에 덮이며, 어리석음의 깊은 구렁에 떨어지며, 애욕의 폭포수에 흘러 떨어져 헤어나지 못하며, 말마사절[末摩]의 삿된 화살에 중상 입으며, 분한의 검은 연기에 그을리며, 탐욕의 치열한 불에 불태워지며, 과실(過失:瞋恚)의 독약에 기절하며, 5개(蓋)의 독한 가시에 가로막히며, 굶주리며 광야에 유전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열 가지로 나고 죽음에 흘러 구르는 크게 두려운 일을 너희들은 이제 벗어나지 않겠느냐?”
그때 5백 장자는 한 마음 같은 소리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말씀하신 열 가지 핍박하는 괴로운 일, 이른바 나고․늙고․병들고․죽는 것과 근심․원한․걱정․괴로움․시달림․나고 죽음이며, 이렇게 널리 말하여 나아가 유전하면서 광야에 굶주리는 등의 온갖 핍박하는 일을 저희들이 다 벗어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자 세존께서 5백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들어라. 내가 이제 바른 법의 요체를 말하리라. 장자들아, 눈은 해탈을 구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눈은 스스로의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눈은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여러 장자들아, 눈은 나[我]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 지닐지니라.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에 있어서, 뜻도 해탈을 구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뜻은 스스로의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뜻은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뜻도 또한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또 장자들아, 빛깔[色]도 해탈을 구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빛깔은 스스로의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빛깔은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빛깔도 또한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이와 같이 소리․냄새․맛․감촉․법에 있어서, 법도 해탈을 구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법에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법은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치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법도 또한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또 장자들아, 색온(色蘊)이 해탈을 구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색온은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색온은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치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색온은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이와 같이 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에 있어 식온도 해탈을 구하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식온은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식온은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치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식온은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또 장자들아, 지계(地界)가 해탈을 구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지계가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지계는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치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지계는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이와 같이 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공계(空界)․식계(識界)에 있어서 식계도 해탈을 구하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식계가 작용이 없는 까닭이니라. 식계는 능히 생각하지 못하며 능히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장자들아, 식계는 나가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알아 지닐지니라.
또 장자들아, 모든 법이 실답지 못한 분별에서 일어난 것이라 여러 가지 인연에 의지함이요, 능히 짓는 자도 없고 짓는 힘도 없으며 여러 인연을 좇아 구르게 될 뿐, 만일 여러 인연이 있으면 모든 법이 임시로 시설될 뿐이지만 만일 여러 인연이 없으면 곧 임시로 이룩된 법이 없느니라.
장자들아, 온갖 법이 오직 임시로 시설된 것이요, 그 가운데 도무지 나는 것도, 늙는 것도, 죽는 것도, 다하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없고, 오직 길이 모든 갈래 길을 끊고 청정하고 적멸한 것만이 가히 돌아가 의지할 곳이 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장자들아, 온갖 법은 실답지 못한 분별로 생긴 것이라, 여러 인연에 의지하여 아무런 힘이 없이 인연 좇아 구를 뿐이니라. 만일 여러 가지 인연이 있으면 모든 법이 임시로 이룩되겠지만 여러 가지 인연이 없으면 임시로 이룩된 법이 없느니라.
장자들아, 온갖 법이 오직 임시로 이룩되었나니, 그 가운데에는 도무지 나는 것도, 늙는 것도, 죽는 것도, 다하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없고, 오직 길이 모든 갈래 길을 끊고 청정하고도 적정한 것만이 가히 귀의할 곳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장자들아, 만일 실답지 못한 분별이 있으면 곧 올바르지 못한 생각[不正作意]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실답지 못한 분별이 없다면 곧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임시로 세울 수 없느니라. 만일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있으면 곧 무명(無明)을 임시로 세울 수 있겠지만,
만일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없으면 무명을 임시로 세울 수 없느니라. 만일 무명이 있으면 모든 행(行)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무명이 없으면 모든 행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모든 행이 있으면 곧 식(識)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모든 행이 없으면 식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임시로 식이 있으면 곧 명색(名色)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식이 없으면 명색을 임시로 세우리 못하리라. 만일 명색이 있으면 6처(處)를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명색이 없으면 6처를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6처가 있으면 곧 감촉[觸]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6처가 없으면 감촉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감촉이 있으면 느낌[受]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감촉이 없으면 느낌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느낌이 있으면 곧 애착[愛]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느낌이 없다면 애착함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애착함이 있다면 취(取)를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애착함이 없다면 임시로의 취를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취가 있다면 곧 유(有)를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취가 없다면 유를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유가 있다면 남[生]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유가 없다면 남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만일 남이 있다면 늙고 죽음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만일 남이 없다면 늙고 죽음을 임시로 세우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장자들아, 어떤 것을 늙음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정신이 혼미하고 머리가 희고 털이 빠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얼굴이 주름살지며, 수명이 줄어들고 모든 기관이 쇠하고 한도에 이르며, 행동이 나약해지나니 이것을 늙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넋을 잃고 몸이 멸하며 한 세상을 바꾸어 모든 것을 쉬어버리고, 네 가지 요소가 떨어져나가며 5온이 흩어져 무너져서 다 땅에 버려지며, 온갖 업을 다 놓아 버리나니 이것을 죽음이라 하느니라. 혹 늙거나 혹 죽거나 하는 것을 합하여 늙고 죽음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만일 남이 있다면 임시로 늙고 죽음이 있겠지만 만일 남이 없다면 임시로의
늙고 죽음이 없으리라.
어떤 것을 남[生]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이 남의 동등한 인연이 동시에 화합하여 태위(胎位)가 성립되며, 5온의 덩어리가 이룩되어 6처(處)가 갖추어지므로 다른 중생과 같은 업의 과보를 받아 나게 되나니 이것을 남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유(有)가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남이 있게 되겠지만 유가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남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유(有)라 하는가? 이른바 욕으로 있는 것[欲有]․색으로 있는 것[色有]․무색으로 있는 것[無色有]․복(福)과 복 아닌 것․움직이지 않는 업[不動業] 등이니, 이것을 유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취(取)가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유가 있겠지만 취가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유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취라 하는가? 이른바 욕취(欲取)․견취(見取)․계금취(戒禁取)․아취(我取)이니, 이것을 취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애착[愛]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취가 있겠지만 만약 애착이 없다면 임시로의 취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애착이라 하는가? 이른바 빛깔에 대한 애착․소리에 대한 애착․냄새에 대한 애착․맛에 대한 애착․감촉에 대한 애착․법에 대한 애착이니, 이것을 애착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느낌[受]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애착이 있겠지만 느낌이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애착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느낌이라 하는가? 이른바 눈의 접촉으로 생겨난 느낌과 귀의 접촉․코의 접촉․혀의 접촉․몸의 접촉․뜻의 접촉으로 생겨난 느낌이니, 이것을 느낌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접촉[觸]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느낌이 있겠지만 접촉이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느낌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접촉이라 하는가? 이른바 눈의 접촉․귀의 접촉․코의 접촉․혀의 접촉․몸의 접촉․뜻의 접촉이니, 이것을 접촉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6처(處)가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접촉이 있겠지만 만일 6처가 없다면 곧 임시로의 접촉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6처라 하는가? 이른바 눈의 당처[眼處]․귀의 당처[耳處]․코의 당처[鼻處]․혀의 당처[舌處]․몸의 당처[身處]․뜻의 당처[意處]이니, 이것을 6처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명색(名色)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6처가 있겠지만 만일 명색이 없다면 곧 임시로의 6처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명색이라 하는가? 이른바 감각[受]․지각[想]․사고[思]의 접촉으로 생겨난 정신작용[作意]과
4대(大)의 영역[界]과 4대의 영역에서 지어진 색(色)이니, 이것을 명색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식(識)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명색이 있겠지만 식이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명색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식이라 하는가? 이른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니, 이것을 식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행(行)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식이 있겠지만 행이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식도 없느니라. 어떤 것을 행이라 하는가? 이른바 빛깔에 대한 생각[色思]․소리에 대한 생각[聲思]․냄새에 대한 생각[香思]․맛에 대한 생각[味思]․감촉에 대한 생각[觸思]․법에 대한 생각[法思]이니, 이것을 행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무명(無明)이 만일 있다면 곧 임시로 행이 있겠지만 무명이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행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무명이라 하는가? 이른바 앞 경계[前際]도 앎이 없고 뒤 경계[後際]도 앎이 없고 앞․뒤 경계[前後際]도 다 앎이 없으며, 안도 앎이 없고 밖도 앎이 없고 안팎도 다 앎이 없으며,
괴로움[苦]도 앎이 없고 괴로움의 원인[集]도 앎이 없고 괴로움 없는 이치[滅]도 앎이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도 앎이 없으며, 인연도 앎이 없고, 인연하여 일어나는 이치도 앎이 없으며 인연으로 나는 법이 검은지 흰지,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 빛과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 죄가 있는지 없는지, 가히 친근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를 앎이 없고, 봄도 없으며, 마주봄도 없고, 통달하여 앎도 없나니, 이런 것을 무명이라 말하느니라.
장자들아, 올바르지 못한 생각[不正作意]이 만일 있다면 곧 무명을 임시로 세움이 있겠지만 만일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없다면 곧 무명을 임시로 세움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내가 과거에는 어떤 성품․어떤 곳․어떤 부류였던가? 내가 미래에 가서는 어떤 성품․어떤 곳․어떤 부류일까?
다시 내 몸에 있어서 많은 의혹을 일으키나니 어떤 것을 나[我]라고 하는가? ‘나라는 것은 누구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헛된 것인가, 실다운 것인가? 그것이 어떤 성질의 것이며 어느 곳에 있으며 어떤 종류의 것인가? 내가 전엔 어느 곳에서 어떤 곳에 머물렀던가?’라고
이러한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일으키므로 여섯 가지 견해 가운데 멋대로 한 가지 견해를 일으키느니라. 혹은 내가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고 혹은 내가 없다는 견해에 집착하느니라. 혹은 나[我]에 의지하므로 나라는 견해를 보기도 하고 혹은 나에 의지하지 않고 나라는 견해를 보느니라.
다시 허망하게 이러한 견해를 일으켜 ‘내가 곧 이 세계이다’라고 하거나 혹은 ‘응당 연기하더라도 나는 항상하다’라고 하거나, ‘나는 항상하여 전변(轉變)되지 않으며 길이 머무른다’라고 생각하나니, 이러한 여러 가지 견해를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실답지 못한 분별[不實分別]이 만일 있다면 곧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임시로 세움이 있겠지만 실답지 못한 분별이 만일 없다면 곧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임시로 세움이 없느니라. 어떤 것을 실답지 못한 분별이라 하는가?
이른바 나[我]니, 유정(有情)이니, 명자(命者)니, 장부(丈夫)니, 삭취취(數取趣)니, 나는 자[生者]니, 뜻으로 나는 것[意生]이니, 마납바(摩納婆)니, 짓는 자[作者]니, 받는 자[受者]니 하는 것이니, 이것을 실답지 못하다고 하느니라.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은 망령되이 이러한 나라는 분별이며 유정이라는 분별․명자라는 분별․장부라는 분별․삭취취라는 분별․나는 자라는 분별․뜻으로 나는 것이라는 분별․마납바라는 분별․짓는 자라는 분별․받는 자라는 분별 등을 일으키느니라. 이것을 실답지 못한 분별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이러한 실답지 못한 분별이 만일 있다면 곧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임시로 세움이 있겠지만 실답지 못한 분별이 만일 없다면 곧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임시로 세움이 없느니라.
장자들아,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만일 있다면 곧 무명을 임시로 세우겠지만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 만일 없다면 곧 무명을 임시로 세움이 없느니라. 무명이 만일 있다면 곧 모든 행을 임시로 세움이 있겠지만 무명이 만일 없다면 곧 모든 행을 임시로 세움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나아가 남이 만일 있다면 곧 늙고 죽음을 임시로 세움이 있겠지만 남이 만일 없다면 곧 늙고 죽음을 임시로 세움이 없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 다시 장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아 두라. 온갖 법이 실답지 못한
분별로 일어났나니, 여러 인연[衆緣]에 의지하여 되었을 뿐 따로 억센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연으로부터 구르느니라. 여러 인연이 만일 있다면 임시로 법이 있겠지만 여러 인연이 만일 없다면 곧 임시로의 법도 없느니라.
장자들아, 온갖 법이 오직 이 임시로 세워졌을 뿐이요, 그 가운데에는 도무지 나는 것․늙는 것․죽는 것․다하는 것과 일어나는 것이 없고 오직 모든 갈래 길이 영원히 끊어진 청정하고 적멸한 것만이 가히 귀의처가 될 뿐이니라.
장자들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유하면 큰 못에 살고 있는 여러 고기들과 같으리니 그 물 속의 족속들은 어떤 힘에 의지하여 살고 있느냐?”
장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고기들은 물 힘에 의하여 살고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장자야, 네 생각에는 이 물이 힘이 있다고 보느냐?”
장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물은 힘이 없고 내가 능히 한다는 것이 없사오니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장자야, 실답지 않은 분별로 일어나는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여 다만 임시로 시설되었을 뿐, 힘도 없고 능히 한다는 것도 없으며 여러 인연으로부터 구를 뿐이니, 여러 인연이 있으면 곧 임시로 법이 있겠지만 여러 인연이 만일 없으면 임시로의 법도 없느니라.
장자야, 온갖 법이 오직 임시로 이루어진 것이요, 그 가운데에는 도무지 나는 것․늙는 것․죽는 것․다하는 것․일어나는 것이 없고 오직 모든 갈래 길이 영원히 끊어진 청정하고 적멸한 것만이 가히 귀의처가 될 뿐이니라.
그러므로 장자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바로 이러한 여러 인연이 안온한 곳이 아니며 보호하여 지니기 어려운 줄을 관찰하고 깊이 공포심을 내어 도망쳐서 멀리 피할지니라.
다시 마땅히 ‘이것이 어떤 법인가? 어떤 법을 두려워하여 이에 이르렀는가?’라고 관찰하라. 너희들이 이와 같이 바르게 관찰할 적에, 아무 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으며 두려움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온갖 법이 다 얻을 것이 없으며 온갖 것을 구하여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모든 법이 나가 없나니 번뇌의 때[塵垢]를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이 중생이 없나니 나를 멀리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이 목숨이 없으니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걱정․괴로움․번민의 핍박을 벗어난 까닭이며, 모든 법이 삭취취가 없나니 3세가 끊어진 까닭이며,
모든 법이 문자가 없나니 일체 말과 소리로는 가히 말할 수 없는 까닭이며, 모든 법이 집착함이 없나니 인연할 것이 없는 까닭이며, 모든 법이 적정하나니 적멸한 모습인 까닭이며, 모든 법이 일체에 두루 하였나니 허공의 성품인 까닭이며, 모든 법의 자성이 공(空)하나니 일정한 소속이 없는 까닭이며, 모든 법이 움직임이 없나니 의지할 것이 없는 까닭이며, 모든 법이 실제(實際)에 의지하여 머무르나니 움직임이 없는 경계에 잘 머물러 서로 응하는 까닭이며, 모든 법은 열어 밝힐 수 없나니 형상의 파도를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은 나타내어 보일 수 없나니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빛과 그림자도 없어 모든 행(行)을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은 내 것이 아니니 내 것을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을 가히 분별할 수 없나니 마음[心]․뜻[意]․의식[識]을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은 애착의 갈무리[愛藏]가 없나니 눈․귀․코․혀․몸․뜻의 길을 초월한 까닭이며, 모든 법을 들어 옮길 수 없나니 나고 머무르고 무너짐이 없는 까닭이며, 모든 법이 작용이 없나니 마음․뜻․의식을 여읜 까닭이며, 모든 법이 인연에 속하였나니 자성이 억센 힘이 없는 까닭이니라.
장자들아, 나는 이 눈이 네 가지 요소[四大]로 이룩된 것이라 항상함이 없고 머무름이 없으며, 늘 그러함이 없고 견고하지 못한 법이며, 힘없고 속히 무너져서 보존하여 믿기 어려우며, 여러 가지 괴로움이 모인 것이라 병이 많고 해로움이 많다고 말하나니, 너희들의 눈은 이렇게 의지할 것이 못 되느니라. 귀․코․혀․몸․뜻도 이와 같이 의지할 것이 못 되느니라. 마땅히 이렇게 관해야 하느니라.
또 장자들아, 눈은 물보라와 같아서 만질 수 없으며, 눈은 물거품과 같아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며, 눈은 아지랑이와 같아서 혹업(惑業)․애욕으로 생겨난 것이며, 눈은 파초와 같아서 자성이 단단하지 않으며, 눈은 요술과 같아서 뒤바뀐 생각으로 일어난 것이며, 눈은 꿈과 같아서 오직 허망하게 보는 것이며, 눈은 메아리와 같아서
여러 인연에 속한 것이며, 눈은 빛과 그림자와 같아서 업의 그림자로 나타난 것이며,
눈은 뜬구름과 같아서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는 형상이며, 눈은 번갯불과 같아서 찰나에 곧 꺼지는 것이며, 눈은 주장이 없나니 마치 땅과 같으며, 눈은 나[我]가 없나니 마치 물과 같으며, 눈은 유정이 아니니 마치 불과 같으며, 눈은 수명이 아니니 마치 바람과 같으며, 눈은 삭취취가 아니니 마치 허공과 같으며, 눈은 실다운 것이 아니니 네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갈무리된 것이며, 눈은 허공과 같아서 나와 내 것을 여의었으며,
눈은 앎이 없는 것이 초목․흙․돌과 같으며, 눈은 스스로의 동작이 없는 것이 기관의 바람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눈은 허망한 것이라 썩고 더러운 물질의 모임이며, 이 눈은 헛된 것․무너져 없어지는 법이며, 눈은 구렁과 같아서 항상 늙음에 핍박되며, 눈은 머무르는 경계가 없어서 마침내 마멸되어 없어지느니라.
장자들아, 눈의 허물 많음을 마땅히 이렇게 관해야 하느니라. 나아가 뜻과 온갖 법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러하니라.
또 장자들아, 온갖 법에 오직 헛된 욕심만 있으므로 어리석은 범부가 헛된 욕심인 줄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이것은 눈이다’라고 하고, 망령되이 ‘이것은 귀다’라고 하며, 나아가 혹은 망령되이 ‘이것은 뜻이다’라고 말하느니라.
장자들아, 다만 헛된 욕심이 있으므로 어리석은 범부들이 헛된 욕심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이것은 빛깔이다’라고 하고, ‘이것은 소리다’라고 하느니라.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도 또한 그러하니라.
장자들아, 다만 헛된 욕심이 있으므로 어리석은 범부들이 헛된 욕심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이것은 색온(色蘊)이다’라고 하고, ‘이것은 수온(受蘊)이다’ 하나니, 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도 또한 그러하니라.
장자들아, 다만 헛된 욕심이 있으므로 어리석은 범부가 헛된 욕심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이것은 지계(地界)다’라고 하고, ‘이것은 수계(水界)다’라고 하나니, 화계(火界)․풍계(風界)․공계(空界)․식계(識界)도 또한 그러하니라.
장자들아, 모든 법이 오직 헛된 욕심만 있으므로 어리석은 범부가 헛된 욕심인 줄을 알지 못하고 ‘이것은 함이 있는 것[有爲]이다’라고 하고, ‘이것은 함이 없는 것[無爲]이다’라고 하느니라. 나아가 온갖 법도 또한 그러하니라.
장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마땅히 헛된 욕심을 버리고 욕심 없는 데로 나아가야 하느니라. 저 처자와 가택․재물이 다 허망한 것인 줄을 깊이 알고 집착하지 말지니라.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한 신심으로 살림살이를 여의어 버리고 집 아닌 데로 나아가 욕심 없는 법을 얻느니라.
장자들아, 어떤 것을 집을 떠나 욕심 없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시라별해탈계(尸羅別解脫戒)에 머물러서 위의행처(威儀行處)를 갖추어 거두어 잡아 지니며 조금이라도 범(犯)하는 것을 보면 크게 두려워하여 율의를 받아 배워 계온(戒蘊)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장자들아, 너희들이 능히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는 이 6근(根)․6경(境)․5온(蘊)․6계(界)가 허망한 줄을 깊이 알아서 다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집을 떠나 욕심 없는 법이라 하느니라.
장자들아, 만일 눈과 나아가 식계(識界)에까지 집착하지 아니하면, 집착하지 않으므로 곧 보호하지 아니하리라. 어떤 것을 보호하지 않는가? 눈을 보호하지 아니하며, 귀․코․혀․몸․뜻을 보호하지 아니하며, 빛깔을 보호하지 아니하며 소리․냄새․맛․감촉․법도 보호하지 아니하며, 색온(色蘊)을 보호하지 아니하며, 수온․상온․행온․식온도 보호하지 아니하며, 지계(地界)도 보호하지 아니하며 수계․화계․풍계․공계․식계도 보호하지 아니하느니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가 없느니라. 만일 번뇌가 없다면 곧 가볍다[輕]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가볍다고 하는가? 이른바 보는 것이 없는 것이니 만일 보는 것이 없으면 곧 사물에 따라 성내고 해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성내고 해치는 마음이 없으면 스스로 해치지 아니하고 남 해치기를 생각지 아니하며 함께 해치기를 생각지 않으리라. 해침이 없으므로 곧 무여대열반계(無餘大涅槃界)를 증득하여 들어가리라.
장자들아, 너희들은 알아 두라. 무엇이 저 적멸에 증득하여 들어가는가? 장자들아, 눈이 적멸에 들어감도 아니며 귀․코․혀․몸․뜻이 적멸에 들어감도 아니니라. 그러나 저 눈에 여러 가지 망집(妄執)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혹
나라고 헤아리고, 혹 내 것이라고 헤아리나니, 만일 그것을 멀리 여읜다면 곧 이것이 적멸이니라. 무엇을 멀리 여의므로 적멸이 되는가? 탐욕을 멀리 여의면 곧 적멸이며, 성냄을 멀리 여의면 곧 적멸이며,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면 곧 적멸이며, 무지(無智)를 멀리 여의면 곧 적멸이니라.
또 장자들아, 과거의 무지(無智)를 멀리 여의지 못하며 미래의 무지를 멀리 여의지 못하며 현재의 무지를 멀리 여의지 못하는 것이니, 그러나 무지를 멀리 여읨으로 인하여 바른 지혜가 일어나느니라.
장자들아,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이른바 다함의 지혜[盡智]를 말함이니라. 어떤 것이 다함의 지혜인가? 과거도 다함의 지혜가 아니요, 미래도 다함의 지혜가 아니요, 현재도 다함의 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장자들아, 무지를 여읨으로 인하여 이 지혜가 나오나니, 이 지혜는 지혜를 멀리 여의지 아니하고 눈의 무지를 여읨으로 인하여 이 지혜가 나느니라.
또 장자들아, 눈이 내 것이 아니니 만일 내 것이 아니라면 집착하지 않을 것이요, 만일 집착하지 않으면 곧 이것이 최상이요, 만일 이것이 최상이라면 곧 이것이 해탈이니라. 어느 곳에서 해탈하는가? 내가 집착한 곳에서 해탈하며, 유정의 집착한 곳에서 해탈하며, 수명의 집착한 곳에서 해탈하며, 삭취취의 집착한 곳에서, 단견․상견의 집착한 곳에서, 일체의 집착한 곳에서, 나아가 분별의 집착한 곳에서 해탈을 얻느니라.
행자가 만일 능히 저 집착에서 해탈하면 곧 분별하지 않을 것이요, 만일 분별하지 않으면 곧 분별도 아니요 분별 아님도 아니니라. 무엇을 분별하지 않는다 하는가? 이른바 나와 내 것을 분별하지 않음이니라.
행자가 그 때에는 온갖 법을 다 털어 버려 쌓아 두지 않으며, 놓아 버리어 취하지 않나니, 놓아 버리므로 적멸 해탈로써 없애 버리며[除遣], 최승 해탈로써 온갖 얽매임을 여의느니라. 어느 곳을 없애 버린다고 하는가? 온갖 괴로운 곳에서 없애 버림을 얻느니라.
너희들 장자야, 만일 벗어나기를 구하거든
한 가지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일 집착이 있으면 곧 두려움이 있겠지만 만일 집착이 없으면 곧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장자들아, 눈은 적멸이 아니며, 귀․코․혀․몸․뜻도 또한 적멸이 아니며, 빛깔이 적멸이 아니며, 나아가 식계(識界)도 또한 적멸이 아니니라. 그러나 장자들아, 저 식계로 인하여 실답지 못한 집착을 일으키어 혹은 나라거나 내 것이라 헤아리나니 만일 이것을 여의면 곧 적멸이니라.
어떤 것을 멀리 여의고 적멸을 얻는가? 이른바 탐욕을 멀리 여의고 적멸을 얻으며 성냄을 여의고 어리석음과 무지를 여의고 적멸을 얻느니라.
다시 장자들아, 과거의 무지를 멀리 여의지 못하며, 미래의 무지를 멀리 여의지 못하며, 현재의 무지를 멀리 여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무지를 여의므로 지혜가 나느니라.
장자들아,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는가? 이른바 다함의 지혜를 말함이니라. 어떤 것을 다함의 지혜라 하는가? 과거도 다함의 지혜가 아니요, 미래도 다함의 지혜가 아니요, 현재도 다함의 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장자들아, 무지를 여읨으로 인하여 지혜가 생겨나느니라. 이 지혜는 지혜를 멀리 여의지 아니하고 식(識)의 무지를 여읨으로 인하여 지혜가 생겨 나오나니 이 식계는 내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것이 아니라면 곧 집착하지 아니하고 만일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최상이요, 만일 이것이 최상이라면 이것이 곧 해탈이니라.
어디서 해탈하는가? 나의 집착한 곳에서 해탈하며, 유정과 수명 나아가 일체 분별의 집착한 곳에서 해탈을 얻느니라. 행자가 만일 능히 저 집착에서 해탈하면 곧 분별하지 않으리라. 만일 분별하지 아니하면 곧 분별도 아니요 분별 아닌 것도 아니니, 무엇을 분별하지 않는다 하는가? 이른바 나와 내 것을 분별하지 않음이니라.
행자는 그때에 다 털어 버려 쌓아 두지 않으며, 놓아버리어 취하지 않나니, 놓아 버리므로
적멸 해탈로써 없애 버리며[除遣], 최승 해탈로써 온갖 얽매임을 여의느니라. 어느 곳을 없애 버린다고 하는가? 온갖 괴로운 곳에서 없애 버림을 얻느니라.
너희들 장자야, 만일 벗어나기를 구하거든 한 가지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왜냐하면 만일 집착이 있으면 곧 두려움이 있겠지만 집착이 없으면 두려움이 없는 까닭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집착하므로 공포심 일으키어
이로 인하여 악도에 나아가네.
이 공포심 있음을 보고
슬기로운 이는 마땅히 집착하지 않으리.
너희는 여러 성자의 도를 닦되
마땅히 잘 관찰할지니라.
이렇게 관찰하면 곧 얻으리니
이것과 달리하면 얻을 수 없으리라.
온갖 것이 다 공한 것이니
헛되이 움직임이요 견실(堅實)한 것 아니라
애욕이란 세간을 속여 미혹시킴이니
이것에 어지러운 마음 내지 말라.
나는 이미 공한 법[空法]을 알고
모든 법이 단단치 않은 줄 깨달아
담담히 태연함 얻어서
동요됨 없는 묘한 즐거움 증득하였네.
만일 이렇게 온갖 법이
오직 공한 줄 깨달아 알면
그는 온갖 괴로움 벗어나서
시비와 쟁론을 멸하리라.
온갖 것을 섭수하고자
온갖 죄악에 재앙을 내는 자는
섭수하려 하므로 취착하나니
집착하므로 3유(有)에 나게 되도다.
유(有)로부터 중생으로 태어나면
태어나므로 적멸과 멀어지나니
나는 이는 늙음․병듦․죽음
이러한 큰 괴로움이 핍박하리라.
욕심이 없으므로 집착[取]이 없고
집착이 없으므로 유(有)가 없나니
유가 없으므로 남이 없으며
늙고 병들고 죽음도 또한 그러하다네.
쌓아 두었던 살림살이를
일시에 다 던져버리고
사랑하는 처자도 놓아버리며
필추(苾芻:비구)의 위의에 나아갈지니
친척과 재산을 탐내지 말고
툴툴 털어 버리고 만족할 줄 알아서
저 전다라(旃茶羅)와 같이
비루한 마음으로 오고 가지 말지니라.
스스로 계 지님을 믿고
계를 범한 자를 깔보지 말라.
계 지님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면
이것이 참으로 계를 파한 것이니
마치 사슴이 화살을 맞아서
혹 얽매거나 혹 죽듯이
악마의 올가미인 거만함에 처하여
얽매어 박해됨도 또한 그러하다네.
거만함은 착한 마음을 부수며
또한 나와 남의 착함을 무너뜨린다네.
그러므로 계 범한 이도 업신여기지 말지니
하물며 계와 범행 지니는 자이랴.
마땅히 큰 선인(仙人)을 본받아
항상 조용한 곳에 거처하여
몸과 목숨을 돌아보지 말고
적정 해탈에 나아갈지어다.
뜻 없는 학설을 근본으로 삼는
순세외도[順世尼乾]의 이론을 여의고
공(空)과 서로 응하는 묘한 법
연설하는 이를 공경할지니라.
안팎 12처(處)가
나는 마음이 근본이라 말하나니
그것은 다시 업으로 인하여 나며
업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오래 머물도다.
눈과 빛깔이 함께 인연이 되어
인식작용[識]을 일으키나니
인연이 없으면 나지 못하는 것
마치 섶이 없는 불과 같다네.
이렇게 모든 법 나는 것이
인연이 어울리어 서로 나는 것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나니
작용 나타냄도 요술과 같도다.
온갖 안팎의 법을
내가 이미 공하여 요술인 줄 아나니
어리석은 사람은 전도되어 집착하여
나와 내 것을 분별하도다.
눈 속에는 유정이 없으며
밖의 여러 곳도 그러하도다.
나도 수명을 지은 자도 아니니
모든 법도 이렇게 알아야 한다네.
눈은 해탈을 생각함도 아니며
귀․코․혀도 또한 그러하도다.
몸과 뜻도 지음이 없나니
모든 법을 이렇게 관할지어다.
마치 큰 바다 가운데
물결이 쳐서 물보라를 이루면
눈 밝은 이는 관찰하고는
그것이 견실한 것 아님을 알 듯이
이와 같이 5온의 바탕[體]을
통달한 이는 견고한 것 아닌 줄 알고
마땅히 나고 늙고 근심․걱정 등
재앙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네.
나의 법 가운데로 출가하여
온갖 법이 요술 같은 줄 알고
저 신심의 베풂을 헛되이 아니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다 하리라.
그때 5백 장자는 이 법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번뇌의 티끌을 멀리 여의고 모든 법 가운데 깨끗한 법의 눈을 얻었다. 마치 희고 깨끗한 옷을 물감 그릇 속에 두면 빨리 물들 듯이 이 장자들의 법의 눈 깨끗함도 그러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장자를 위하여 묘한 법을 선설하여 가르쳐 보이셨다.
“장자들아, 나는 이 눈의 자성이 괴로움이며 다시 불타는 것이라 말하노라. 어떻게 불타는가? 이른바 탐욕의 불․성냄의 불․어리석음의 불에 타는 것이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근심․탄식․걱정․괴로움․불안 등에
불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장자들아, 나는 이 귀․코․혀․몸․뜻의 자성이 괴로운 것이며 다시 불타는 것이라고 말하노라. 어떻게 불타는가? 이른바 탐욕의 불․성냄의 불․어리석음의 불,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근심․탄식․걱정․괴로움․불안 등에 불타는 것이니라.
장자들아, 나는 이 빛깔[色]의 자성이 괴로운 것이며 다시 불타는 것이라 말하노라. 어떻게 불타는가? 이른바 탐욕의 불․성냄의 불․어리석음의 불에 타는 것이며, 나아가 소리․냄새․맛․감촉․법도 또한 그러하니라.
장자들아, 나는 색온(色蘊)의 자성이 괴로운 것이며 다시 불타는 것이라 말하노라. 어떻게 불타는가? 이른바 탐욕의 불․성냄의 불․어리석음의 불에 타는 것이며 나아가 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식온(識蘊)도 또한 그러하니라.
장자들아, 나는 지계(地界)의 자성이 괴로움이며 다시 불타는 것이라 말하노라. 어떻게 불타는가? 이른바 탐욕의 불․성냄의 불․어리석음의 불에 타는 것이니라. 이렇게 나아가 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공계(空界)․식계(識界)의 자성도 괴로움이며 다시 불타는 것이니라. 어떻게 불타는가? 이른바 탐욕의 불․성냄의 불․어리석음의 불이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근심․탄식․걱정․괴로움․불안 등의 법에 불타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장자들아, 나는 지금 눈․귀․코․혀․몸․뜻에 집착하지 않나니, 너희들도 또한 이와 같이 따라 배울지니라. 나는 지금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나아가 색온 등의 모든 온(蘊)이며 지계 등의 모든 계(界)이며 이 세상․저 세상을 집착하지 않나니, 너희들도 또한 이와 같이 따라 배울지니라.
장자들아, 너희들이 만일 눈․귀․코․혀․몸․뜻에 집착하지 않으면 곧 눈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하며, 귀․코․혀․몸․뜻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하리라. 너희들이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에 의지하지 아니할 때에 너희들은 곧
온갖 법에 의지하여 머물지 아니하리라. 너희들이 색온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나아가 식온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곧 색온에서 나아가 식온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하리라. 너희들이 지계․수계․화계․풍계․공계․식계에 의지하지 않을 때에 곧 지계에서 나아가 식계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않으리라.
너희들이 이 세상․저 세상과 일체 세간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함도 그러하니라. 너희들이 온갖 법을 취하지 아니할 때에 곧 온갖 법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하나니, 만일 능히 온갖 법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아니한다면 이것이 곧 마땅히 있을 것도 아니며 마땅히 있지 않을 것도 아니다 하리라. 너희들이 만일 마땅히 있을 것도 아니요, 마땅히 있지 않을 것도 아님을 깨달으면, 나는 너희들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온갖 괴로움을 벗어났다고 말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고 죽음의 불 치성하여
모든 세간을 불사르므로
괴로움 받아도 구원할 이 없어
성스러운 길 잃어버렸도다.
세상을 비추어 주시는 여래께서
이에 한번 출현하셨으니
찰나라도 여의지 말고
굳은 정진의 마음 일으킬지어다.
올바른 행위 닦아 익혀
슬기롭게 관하여 살펴 알지니
슬기롭게 관하면 마땅히 얻으려니와
이와 달리하면 얻을 것 없으리라.
만일 이것을 닦아 익히려면
마땅히 온갖 법이 공한 줄 알라.
공한 법을 깨달아 통달해도
마음조차 공한 보리는 아니니라.
탐냄․성냄 및 어리석음
이 3독(毒)의 큰불이
세간의 어리석은 자를 불살라도
깊이 잠들어 깨닫지 못하도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며
근심․탄식의 온갖 괴로움 등이
세상을 핍박하는 줄을 알아
모든 법에 의지하여 머무르지 말라.
그때 5백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부처님 처소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청정행을 닦고자 하오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허락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다, 필추여.”
그러자 곧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필추법을 성취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가사(袈裟)를 받아 지니자
그 머리털이 절로 끊겼도다.
모두가 발우를 가지며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도다.
아라한이 된 줄 알고는
필추의 무리 앞에서
여러 하늘에 대하여
큰 스승[大師]은 물음 없이 말하노라.
옛적 세상의 의지처가 되어
널리 온갖 보시를 행하였으므로
그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많은 안락을 얻었노라.
그들이 이제 나를 만나 보고는
다시 청정한 마음을 내었으니
그 마음이 청정하므로
그들을 위하여 묘한 법 설하노라.
설법을 듣고는 아라한 되어
길이 아견(我見)을 여의고
공법의 드러남을 얻어
나고 죽음 벗어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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