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4권
대법거다라니경 제4권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7. 상호품 ②
“‘또한 마나바야, 여래에게는 영원히 빛나는 상호[常光相]가 있으니, 그 성취한 인연을 이제 설하리니 살펴서 들어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게 하라.
마나바야, 만약 모든 보살이 여래의 처소에서 업을 지음이 있다면 끝내 헛되지 않느니라. 가령 발심의 장엄(莊嚴)과 수행(修行)의 장엄과 자재(資財)의 장엄과 같은 온갖 장엄의 일들을 지으면, 마음을 발함[發心]이 갖추어져 여래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는 즉시 구족해질 수 있으니, 온갖 세간 가운데 더 뛰어난 것이 없고 모든 번뇌의 때[垢]가 더럽힐 수 없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여래ㆍ세존의 이와 같은 영원한 광명은 가령 세간의 온갖 해와 달의 광명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것이며, 나아가 모든 하늘의 광명으로도 역시 가릴 수 없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가령 대범천왕(大梵天王)이 큰 광명을 놓으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는데, 이와 같은 범왕의 광명은 세간의 모든 해와 달의 광명을 능히 릴 수 있어서 여래의 광명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다른 광명으로 능히 견줄 것이 없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이 한 범왕의 광명은 차치하고 가령 동방의 항하의 모래알 만큼 많은 세계의 모든 범천왕이 다 광명을 내고 그 뭇 범천왕의 광명을 하나의 광명으로 합치면 지극히 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큰 광명도 부처님 앞에 두면 여래의 영원한 광명이 모두 남김없이 능히 가릴 수 있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뭇 범천왕의 광명은 차치하고 가령 시방(十方)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의 모든 범천왕의 광명이라 하여도 여래의 영원한 광명이 모두 다 남김없이 가릴 수 있느니라.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일체시(一切時)에서 영원한 광명만이 있을 뿐 스스로 다른 기이한 광명[奇光]은 인연 없이는 내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어느 때나 기이한 광명을 내신다면, 세간에는 해와 달과 별과 별자리, 밤낮의 때와 그믐ㆍ초하루ㆍ초승달ㆍ보름달도 없고, 나아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과 세시(歲時) 등도 없게 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반드시 인연을 기다린 후에야 광명을 놓으시나니, 저 영원한 광명은 항시 있으면서 머물러 지니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여래의 광명은 넓고 커서 한량없고 공덕이 미묘하니, 선근을 수행해서 이런 안락함을 얻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어떤 보살이 마음을 발해 수행하려고 집을 버리고 출가해서 부처님ㆍ세존께 귀의하였다. 마침 여래께서 처음 도량(道場)에 앉아 장차 등정각(等正覺)을 이루려고 하실 때를 만나자 곧바로 부처님께로 나아가서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여래를 우러러보며 생각하기를, ‘세존께서 교시가 있으셔야 나는 비로소 앉으리라’고 하였느니라.
그 때 저 여래는 결가부좌한 채 앉으셨고 보살은 서 있으면서 칠 일 동안을 지냈으니, 미래의 위없는 도[無上道]를 위해서였느니라.
칠 일이 지나고 나자, 그 때 부처님ㆍ세존은 보리수 도량의 처소에서 일어나시어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참된 장부로다. 모든 부처님의 행을 배우려고 하느냐? 착한 장부야,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부처님의 말씀을 수순하고자 하여 너는 나의 자리 앞에서 칠 일 동안 서 있으면서도 도무지 잠을 자지 않았도다. 너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은 법을 버리고 항상 머묾이 허공과 같은 몸을 구하고자 하니, 이것을 능히 구할 수 있는 이가 참된 장부이다. 너는 이제 모든 불법 속에 든 것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의심의 그물을 결단하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배워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행하여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여래의 상광(常光; 영원한 광명)을 처음 수행하는 선근 인연이니라. 만일 어떤 보살이 보살지(菩薩地)에 있으면서 처음 여래를 뵈면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청하는 것이니, 청정한 모든 공덕을 수행하려고 하기 때문이요, 청정한 계행(戒行)을 수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청정한 선정(禪定)을 수행하려고 하기 때문이요, 청정한 보시(布施)를 수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이 수행한 모든 공덕은 온갖 중생이 수행한 선근보다 뛰어나느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여래 상광의 공덕에 관한 선근 인연이니, 나는 이제 해설하여 마쳤느니라.
마나바야, 비유하면 마치 요술쟁이가 손에 요술로 된 진주(眞珠)와 영락(瓔珞) 등의 보석을 가져다가 사람을 장엄하였을 적에 범부가 이를 보고 모두가 진실한 보석이라고 말하지 않음이 없지만, 오직 지혜 있는 이만이 그것이 진짜가 아님을 아는 것과 같으니라.
이처럼 마나바야, 여래의 상광(常光)의 선근 인연은 오직 모든 여래와 저 물러나지 않는[不退] 보살마하살 등만이 믿어서 이와 같은 선근을 성취할 수 있으며, 그 밖의 중생에게는 그 경계가 아닌지라 능히 믿는 이가 없느니라.
만일 사람이 이것에 대하여 게으르면 선근을 수행하여 성취할 수도 없거늘, 어떻게 위없는 보리의 큰 지혜의 상호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은 뭇 상호조차도 오히려 구하지 못하거늘 어찌 미묘하고 심히 깊은 무상의 법[無相法]을 깨달아 알 수 있겠느냐?
만일 모든 보살이 최후의 몸[最後身]에서 필경 심히 깊은 법을 통달할 때에는 곧 이 삼천대천세계의 대지(大地)를 여섯 가지로 진동시켜서 온갖 마궁(魔宮)과 모든 하늘ㆍ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며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게 하느니라.
여래는 옛날 도량에 앉아 계실 적에 손으로 땅을 눌러서 크게 진동시켜 소리가 나게 하셨으므로 온갖 악마 군사들이 모두가 다 파괴되었으며, 그리고 모든 외도의 삿된 소견으로 불ㆍ법ㆍ승을 훼방한 것과 나아가 온갖 그릇된 법[非法]으로 어기거나 다투던 언어와 심상(心想)을 모조리 다 갈아 없앴느니라.
마나바야,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도량에 있으면서 땅을 진동시켜 악마를 파괴하고 모든 어김과 다툼을 없앤 후에야 비로소 생사지명(生死智明)을 증득하였느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두려움이 없는 힘[無畏力]으로 땅을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것이며, 아직 성불하지 못하였을 적에는 이미 머물러 지니는[住持] 법과 본래 서원한 힘[本願力] 때문에 시방에 계신 부처님 모두가 역시 도량에 있는 보살을 호지(護持)하시느니라.
또 마나바야, 여래의 복덕과 선업(善業)의 인연 때문에 몸의 터럭이 위로 치우치면서 그 빛깔은 짙고 산뜻한 남빛[紺靑]인 것이 마치 공작(孔雀)의 목과 같으니, 이와 같은 공덕의 불가사의함을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제 해설하겠느니라.
마나바야, 온갖 중생이 마음의 맑고 흐림에 따라서 만일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성취한 모든 상(相)과 수호(隨好)의 갖가지 공덕을 듣고 아울러 모든 원행(願行)을 지극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으면, 저 모든 중생들은 생각생각 사이마다 공덕이 더욱 자라면서 줄어듦이 없느니라.
마나바야, 과거의 세상에 어떤 벽지불(辟支佛)은 이미 과(果)를 증득한 뒤에도 아란나(阿蘭拏)의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보고 듣는 것을 멀리 여의고 욕심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벽지불은 몸에 부스럼이 나서 괴로워하고 있었느니라.
그 때에 어떤 재가(在家)의 보살이 벽지불에게 나아가서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합장하고 아뢰었느니라.
‘원컨대 대덕이여, 제가 내일 아침에 베푸는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그 때에 벽지불은 보살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온몸에 부스럼이 났거늘, 어찌 당신에게 가서 내일의 공양을 받을 수 있겠소?’
재가 보살은 이 말을 듣고 다시 말하였다.
‘대덕이여, 옷을 벗으십시오. 제가 잠깐 보겠습니다.’
벽지불은 듣고 나서 곧 옷을 벗으면서 말하였다.
‘어진 이여, 나의 이 몸을 보십시오. 나는 전생에 지은 남은 업보(業報) 때문에 지금의 몸에 부스럼이 나서 이와 같은 괴로움을 받고 있습니다. 어진 이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몸의 부스럼이 이와 같은데 공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대덕이여, 이 부스럼은 약을 지어서 발라야 합니다. 지금 써야 할 약 이름은 전타라나(旃陀羅那)인데 이 약은 드물고 짓기도 어렵지만 제가 이제 직접 가서 마련해 보겠습니다. 만일 이것을 얻기만 하면 부스럼은 반드시 나을 것이고 피부와 살이 생기면서 몸도 빨리 회복될 것입니다.’
그 때에 벽지불이 대답하였다.
‘어진 이여,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의 도움을 받게 되겠구려. 나를 위하여 빨리 구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보살은 곧 집으로 돌아와서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 만든 후 보배 그릇 안에 넣어서 벽지불의 처소로 가지고 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는 아뢰었다.
‘대덕이여, 이 미묘한 약을 이제 바칩니다. 원컨대 받아들이셔서 빨리 바르십시오.’
벽지불은 말하였다.
‘어진 이여, 무명(無明)이 뭇 고통의 근본이 되는 줄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그 때 몸소 약을 가져다 벽지불의 몸에 정성스럽게 발라 주었기 때문에 벽지불의 고통은 이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사홀 동안에 세 번을 바르자 뭇 병이 나으면서 예전대로 회복되었느니라.
마나바야, 저 보살은 이런 인연 때문에 이제 몸의 터럭이 위로 치우치고 그 빛깔은 짙고 산뜻한 남빛의 과보를 받은 것이니라.
마나바야, 이것이 바로 여래의 몸의 터럭이 위로 치우진 선근 인연이니 이제 설명하여 마쳤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는 눈썹 사이의 백호 상호[眉間白毫相]에 큰 공덕 더미[大功德聚]가 있다. 그 선근 인연을 그대를 위하여 해설하겠느니라.
마나바야, 비유하면 마치 캄캄한 밤에 달빛이 없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밤이 몹시 어두운데 달의 광명이 없다면 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
무외가 아뢰었다.
‘잘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그러하느니라. 여래의 눈썹 사이의 백호 상호는 마치 달의 광명이 널리 비추는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큰 공덕의 더미라 하느니라. 공덕의 더미라 함은 세간을 만족하게 하고 이롭게 하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이것을 이름하여 큰 짐[大擔]이라고도 하느니라. 어찌하여 큰 짐이라고 하는가? 큰 자비[大慈悲]로 평등하게 짊어지므로 큰 짐이라고 하느니라. 또한 짐이 아니라고도 하느니라. 무슨 이치 때문에 짐이 아니라고 하는가? 비록 능히 짊어진다 하더라도 짊어지는 모양[荷負相]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짊어지는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실상(實相)은 무위(無爲)라서 유위의 모양[有爲相]을 여읜 까닭이니, 이 때문에 짊어지는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짊어진다고 하느냐 하면, 그것은 유위(有爲)이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유위라는 것은 곧 하늘ㆍ사람ㆍ지옥ㆍ축생ㆍ아귀와 아수라의 모두가 바퀴 돌듯 돌아다니는 것을 말하느니라.’
무외가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 때문에 이들은 바퀴 돌듯 돌아다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갈애(渴愛) 때문에 모든 유[諸有]의 생(生)을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갈애는 무명을 근본으로 삼으니, 이 때문에 나는 ’탐애(貪愛)가 어머니가 되고 무명이 아버지가 되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오가면서 바퀴 돌듯 하고 갖가지 고통을 받으면서 근심과 슬픔이 함께 모인다’고 말하느니라.
부모, 처자, 권속, 종친(宗親)이 죽어서 이별하는 때에는 뭇 괴로움에 얽매여서 벗어날 수 있는 이가 없으니,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이 절박한 것은 무명의 탐애에 가려서 오랜 세월 동안 바퀴 돌듯 하면서도 깨달아 알지 못한 탓이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모든 보살들은 저 중생이 항시 큰 고통을 받고 또한 무명 때문에 온갖 사견(邪見)을 일으켜 끝없는 생사의 과보를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을 본다. 보살은 이를 알고 나서는 대비(大悲)의 마음을 일으켜 그를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드디어 이와 같은 큰 지혜 방편을 구하니, 몸과 마음이 용맹스럽게 큰 정진을 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됨은 취착이 없는 법[無取著法]으로 온갖 모든 중생들을 성숙(成熟)시키기 때문이니라.’
무외가 다시 물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취착이 없는 법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취착이 없는 법이란 대열반(大涅槃)을 말하느니라. 만일 취착이 있으면 곧 언제나 생사에 바퀴 돌듯 오가면서 갖가지 고통을 받지만, 만일 취착을 여의면 고통의 근원[苦源]을 능히 없애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취착하지 않기 때문에 삼십이상을 두루 성취하며 다시 사람들을 위하여 머묾이 없는 법[無住法]을 설하느니라.
마나바야,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바르게 대답해야 하느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달의 광명은 무엇에 의지하면서 머무르느냐?’
무외가 말하였다.
‘대지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물으셨다.
‘대지는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대지는 물[水]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물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물은 불[火]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불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불은 바람[風]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바람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바람은 허공[空]에 의지하여 머무르나이다.’
‘그 허공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르느냐?’
‘허공은 형상[相]이 없어서 의지하여 머무르는 데가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이런 이치 때문에 저 달의 광명도 역시 머무르는 데가 없느니라.’
무외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성인의 가르침처럼 달의 광명은 실로 의지하여 머무르는 데가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그러하느니라. 마나바야, 모든 법은 머무르는 데가 없는데도 모든 중생들은 멋대로 이와 같이 머묾이 없는 법 가운데서 망령되이 머무른다는 생각[住想]을 내느니라.
그는 이와 같은 소견으로 색(色)에 머묾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모두 머묾이 있다고 생각하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음(陰)에는 머무르는 형상[住相]이 있다고 하기 때문에 십이입(十二入)과 십팔계(十八界)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머무르는 형상이 있으며, 마치 음ㆍ입ㆍ계와 같이 머무르는 형상이 있기 때문에 땅ㆍ물ㆍ불ㆍ바람ㆍ허공ㆍ의식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머무르는 형상이 있고, 땅ㆍ물 등과 같이 머무르는 형상이 있기 때문에 저 몸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머무르는 형상이 있느니라. 이와 같이 색(色)과 몸에 취착하여 모두 머무른다는 생각[住想]을 내므로 이미 온갖 몸이 있는 곳에서 모두 머무른다는 생각이 있으며, 마치 색과 몸에서처럼 일체의 모든 법에서도 모두 머무른다는 생각이 있느니라.
마나바야, 만일 어떤 보살이 능히 배워 이와 같이 머무른다는 생각을 여의면 진실한 지혜[實慧]가 더욱 자라고 지혜의 광명이 두루 비추는 것이 마치 달이 성대하게 밝은 것과 같으리니, 그러면 눈썹 사이의 백호 상호를 성취하여 자기 몸을 장엄할 수 있고 또한 일체의 모든 상호를 능히 원만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진실한 이치를 설하리라. 만일 이 집착을 여의어 청정하면 곧 일체의 온갖 상호를 원만하게 얻을 수 있다면, 이 법을 얻기 때문에 마음에 높낮이가 없고 이 업연(業緣)으로 말미암아 이 눈썹 사이의 백호 상호의 광명을 얻는 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리라.
마나바야, 너는 바르게 생각[正念]해야 하느니라. 이제 너를 위하여 무명을 끊는 지혜[斷無明智]를 말하리라. 너희들이 만일 무명을 끊는 지혜를 알면 모든 행(行)을 짓지 않을 것이요, 모든 행을 일으키지 않으면 명색(名色)이 생기지 않으며, 명색이 생기지 않으면 어떤 모양도 모두 얻을 수 없느니라.
마나바야,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자에게 다른 이가 ‘그대는 혹시 전륜성왕의 천주전(千柱殿)을 본 일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런 질문이 있다 한들 그 소경이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그가 만일 대답하기를,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있다’고 하면 아주 거짓말을 하는 것이니, 이미 태어날 적부터 소경이어서 본래 보았던 것이 없거늘 어떻게 천주전의 색깔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가 만일 대답하기를, ‘나는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에게 물었던 것도 역시 허망한 것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그가 만일 눈이 있다면 ‘그것을 보았느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그는 이미 눈이 없거늘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마나바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자에게 이 두 가지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이라 하겠느냐?’
무외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해한 바로는 저 소경이 말한 ‘보지 않았다’고 한 것이
바로 진실한 말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너는 이미 알았구나. 본래 색깔을 보지 못한 이를 소경이라 하는데, 눈이 있는 이가 소경에게 묻기를, ‘그대는 전각을 보았느냐?’고 하였으니 어찌 허망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령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면 실로 이런 질문이 있었다 하여도 그 소경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겠느냐?
마나바야, 앞에서 이미 너에게 설한 것을 이제 다시 비유로 인용하였으니, 너희들은 여래 방편의 미묘하고 비밀스러운 말[密語]을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또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두 가지의 상호[相]는 나타나 있지 않나니, 이른바 숨겨져 있는 남근[陰藏]과 혀[舌根]이니라. 이 두 가지 상호는 공덕의 더미[功德聚]가 되는데, 이제 나는 두 가지 상호의 공덕과 선근의 인연을 설하겠느니라.
이처럼 마나바야, 만약 모든 보살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큰 서원을 세운다면, 이와 같은 모든 중생 중에 태어나서 그 중생을 대신하여 갖가지 고통을 받으면서 혹 사자나 사나운 호랑이나 나쁜 코끼리 가운데에 나기도 하고 기러기나 공작과 같은 모든 새들 안에 나기도 하느니라.
이미 여러 종류의 날짐승ㆍ길짐승의 몸을 받은 뒤에는 곧 가장 수승한 불가사의한 힘을 얻게 되며, 수승한 힘을 얻은 뒤에는 뭇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니, 이른바 속박되기도 하고 매를 맞으며 모진 고초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살해되기도 하느니라.
이 모든 날짐승ㆍ길짐승은 사람들 사이에 있기도 하고 혹은 산이나 들에 살기도 하면서 사냥꾼이나 가축을 놓아기르는 사람[放牧人]들을 만나기도 하고 혹은 갖가지로 죽이기를 좋아하는 이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들은 악(惡)을 행하는 중생이라 항시 업을 짓기를 구하면서 온갖 악을 짓거나 갖가지 고통 주는 기구[苦具]의 인연을 통해 방편으로 해를 끼치느니라.
혹은 칼ㆍ창ㆍ활ㆍ화살로써 해치기도 하고, 혹은 기와ㆍ돌ㆍ방망이ㆍ막대기로 해치기도 하며, 혹은 그물과 굴레로 해치기도 하고, 혹은 노끈과 덫으로 해치기도 하며, 혹은 대로 만든 우리로 해치기도 하고, 혹은 구덩이에 빠뜨려 해치기도 하며, 혹은 독약으로 해치기도 하고, 혹은 요술을 부리거나 나아가 갖가지 사나운 바람이나 폭우까지 내리면서 두렵게 하기도 하고 또는 놀라게도 하니, 이와 같은 모든 고뇌 가운데서도 그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모두 참고 견디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은 이런 크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서도 더욱 뛰어난 정진을 일으켜 훈습해 수행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남근의 상호[陰相]가 나타나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혀를 성취하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어떤 사람이 서원을 세워서 아직 능히 행하지 못하였어도 이와 같은 보살의 원행(願行)이 따르면서 본래의 원행이 모두 구족하기 때문에 비록 갖가지 축생의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뭇 고통을 능히 견디고 참으면서 정진을 버리지 않으며, 모든 같은 무리들을 위하여 갖가지로 설법하고 교화하여 편히 있게 하면서 법의 행[法行]에 머무르게 하니, 이 때문에 혀의 상호[舌相]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숨겨져 있는 남근의 상호를 성취하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여래의 정수리 상호[頂相]에는 살상투[肉髻]가 원만한데 온갖 하늘ㆍ사람이 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비유하면 마치 뭇 벌들이 이른바 우발라(優鉢羅)꽃ㆍ발두마(鉢頭摩)꽃ㆍ구물두(拘物頭)꽃ㆍ분타리(分陀利)꽃과 같은 갖가지 꽃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탐내고 집착해서 버리거나 여의지 못하다가 해가 져서 꽃이 다물어지면 온갖 벌들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마나바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정수리의 원만한 상호는 비밀스럽고 극히 오묘하여 하늘과 사람으로서는 볼 수 없으니, 그 선근의 인연을 이제 설하리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부모께 공양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섬기며, 또 모든 부처님과 법과 승가와 삼승(三乘)의 성인들의 높은 형상[尊像]과 탑묘(塔廟)를 깊이 공경하면서 온몸[五體]을 땅에 던져 지극한 마음으로 머리 조아려 예배하면, 이런 인연으로 이와 같이 볼 수 없는 정수리의 상호를 획득하여 원만함을 구족하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여래의 정수리 위의 살상투 광명을 이제 설하여 너로 하여금 알게 하리라.
마나바야, 비유하면 마치 가을 하늘의 보름달 빛이 원만하여 온갖 구름으로 가려짐이 없으면, 이를 본 중생 중에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처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정수리 위의 광명이 밤낮으로 항시 나타나서 햇빛과 달빛을 가리는 것이니, 이런 이치 때문에 여래의 머리카락은 빛나는 소라[螺]가 오른편으로 말리듯 하여 단정ㆍ엄숙하며 사랑할 만하느니라.
마나바야, 정수리에서 광명이 나는 상호의 공덕과 선근을 이제 설하겠느니라.
옛날에 보살에게는 세 가지 착한 업[善業]이 있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질투를 멀리 여의고 함께 기뻐하면서 가르쳐 나타내 보인 것이요, 둘째는 다른 이를 위하여 일을 하였을 때 과보를 구하지 않은 것이며, 셋째는 다른 이를 손괴(損壞)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선(善)을 이룩한 것이니라.
보살은 옛날에 스스로 이런 업(業)을 행하였고 또한 언제나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이와 같이 수행하였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이와 같은 과보를 얻었으니, 이른바 하늘과 사람으로서는 보지 못하는 정수리의 상호와 도량에 앉아 보리의 과위[菩提果]를 증득해서 악마의 군사들을 꺾어 부수고 모든 외도들을 조복하였느니라.
마나바야, 보살은 옛날에 다른 서원의 업[願業]도 있었으니, 첫째는 법을 보호한 것[護法]이요, 둘째는 잘 설한 것[善說]이니라. 법을 보호한다는 말은 이른바 법이 소멸하려 할 때 보살은 그 가운데서 방편으로 호지(護持)해서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했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다시 정수리의 상호를 얻었느니라.
잘 설했다는 것은 보살이 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하여 법을 널리 설할 때에 그 사중(四衆)이 한 생각[一念]에 이르기까지도 모든 번뇌에 가려진 인연으로 바르게 듣지 못하고 바르게 받아들일 수 없거나 혹은 듣고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다시 잊어버리면, 이런 보살은 그 사중에 대하여 간혹 수순하면서 거듭 다시 설하여 기억해 지니도록 하고, 때로는 꾸짖으면서 ‘어찌하여 마음이 흩어져서 내가 설한 바를 잊어버리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방편으로 인도하여 반드시 이해해 알게 하였고, 또한 시절(時節)이 없이 무릇 태어나는 곳마다 다 이렇게 중생을 제도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었고 또한 용맹스러우면서 정진을 버리지 않았으니, 이런 선근을 반연하여 사념처(四念處)를 얻었느니라.
사념처를 얻은 뒤에는 환희지(歡喜智)를 얻었고, 이 지혜를 얻은 뒤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에 닦은 삼세의 선근과 나아가 온갖 생사(生死)의 인연을 능히 깨닫고 살폈느니라.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으로 설하고, 간략하게 설하고[略說] 자세하게 설하며[具說], 간략하고 자세함을 평등히 설하면서[等說] 모든 인연에 따라 저마다 차별되게 설하였느니라. 또한 갖가지의 모든 일과 한량없이 지은 업을 평등하거나 또는 수승하게 상품ㆍ중품ㆍ하품으로 모두 설하였으며, 나고 죽는 처소의 온갖 하늘과 인간, 지옥ㆍ아귀ㆍ축생과 같은 온갖 상ㆍ중ㆍ하의 업(業)은 그 업이 지은 바에 따라 과보가 있고, 이런 업과(業果)를 여래는 일념(一念)으로 남김없이 깨달아 알고 그에 따라 설하시느니라.
마나바야, 여래는 이와 같이 중생의 업, 그 가운데서 다시 갖가지 한량없는 미세한 업이 있다는 것도 아시느니라. 한 순간에 신(身)ㆍ구(口)ㆍ의(意)를 일으켜서 가령 십이인연에서 생기는 행업(行業)과 갖가지 중생의 한량없는 심수(心數), 분별심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굴리는 것도 역시 분별하여 알아서 그에 따라 능히 설하시느니라.’
아난아, 그 방광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을 마치시자 무외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는 옛날에 또한 어떠한 업을 닦았기에 열반하시어 몸을 태울 때 큰 불이 훨훨 타는데도 오직 뼈만은 타지 않고 색깔도 변하지 않으면서 갖가지 수승한 신통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즐겨 보는 바에 따라 크고 작은 신통을 나타나게 되었나이까?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이 견고한 선근의 인연을 말씀해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얻어 듣게 하소서.’
아난아, 그 때에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마나바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여래에 대해 바른 믿음[正信]이 파괴되지 않으면, 이와 같은 보살은 믿음이 두루 갖추어진 뒤에 저 한량없는 탐욕(貪欲)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법요(法要)를 설해서 탐욕의 마음을 제거하게 하니, 그 모든 중생들은 법문을 듣고 나서 탐욕하는 일을 버리고 범행(梵行)을 닦되 부지런히 힘써 호지(護持)하면서 헐거나 범하지 않으니, 범행을 닦기 때문에 항시 병고(病苦)가 없느니라.
마나바야, 너희들은 응당 알아야 한다. 탐욕이 많은 사람은 몸이 파리하고 여위면서 얼굴빛이 샛노랗고, 뭇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좋아하는 생각을 내지 않고, 수명이 짧아져서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즐거움이 없게 하고, 탐욕 때문에 범행을 멀리 여의고 나아가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지도 못하거늘 하물며 상계(上界)의 선정(禪定)의 미묘한 곳에 태어나게 되겠는가? 대부분 지옥ㆍ축생ㆍ아귀의 착하지 않은 세계[不善趣]에 태어나 생사를 따라 유전하면서 오고가고 윤회하는데 언제나 그 탐(貪)과 함께 하게 되느니라.
마나바야, 만일 어떤 중생이 범행을 닦아 지니면 몸에 즐거움이 나타나고 얼굴에는 기쁜 모습이 있으며, 몸과 살은 충실해지고 힘줄과 뼈는 강건해진다.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범행을 닦아 탐욕을 꿇어 없어지게 하니, 이런 인연 때문에 여래의 온몸에는 큰 힘이 생겨 견고해지기에 사비(闍毘:茶毘)하는 날에 오직 뼈만은 타지 않는 것이니라. 본래의 서원[本願]이 원만해지기에 유신(遺身)에 뼈가 남으면서 오히려 갖가지 불사(佛事)를 두루 나타내느니라.’
아난아, 그 때에 그 무외보살마하살 등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느니라.”
8. 사념처품(四念處品)
“아난아, 그 때에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이 법을 말씀하시고 나서 사자좌(師子座)로부터 조용히 일어나셨다. 그리고는 곧 불안(佛眼)으로 시방을 관찰하시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오셔서 결가부좌하신 후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6)에 들어서 큰 광명을 내어 시방의 한량없고 가없는 온갖 세계를 두루 비추셨느니라.
그 때에 시방의 한량없고 가없는 온갖 세계의 대범천왕(大梵天王)과 모든 범신(梵身)ㆍ범보(梵輔)ㆍ범중천(梵衆天) 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희유하시구나. 세존께서는 지금 갑자기 이 사자분신삼매에 드셔서 큰 광명을 놓으셨으니, 우리들 하늘 대중은 모두가 함께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로 나아가서 그 인연을 여쭈어보아야겠다’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모든 범천왕은 각각의 범중(梵衆)들과 함께 해서 위로는 정거천(淨居天)에 이르고 아래로는 육욕천(六欲天)에 이르렀으며, 아울러 모든 마천(魔天)은 악마들을 거느리고 저마다 살고 있는 데서 사치(闍致) 대마왕(大魔王)에게로 가서 이른 뒤에 물었느니라.
‘사치대왕이여, 지금 어떠한 변이(變異)로 이런 광명이 있습니까?’
사치는 대답하였다.
‘어진 이들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바로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 큰 사자분신삼매에 드셔서 하신 일이시다.’
이와 같이 말할 때에 지거천(地居天)으로부터 위로는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그 소리를 들었으며 그 소리를 들은 뒤에는 모두가 함께 방광 부처님께로 나아갔었느니라.
그 때에 다시 제화광(祭火光)이라는 전륜성왕은 앞뒤로 이끌고 따르는 대중에게 에워싸인 채 팔만의 수령(首領)과 팔만의 코끼리에 타고 허공으로 올라서 방광부처님께로 갔으며, 그곳에 도달한 뒤에는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머물렀느니라.
그 때에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들은 저 하늘의 소리를 듣고 모두가 함께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싫어하고 여의는[厭離] 마음을 내어 저마다 말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이런 음성이 있을까? 반드시 저 모든 범천들이 말한 것과 같이 방광여래께서 사자분신삼매에 드신 것이리라’고 하였느니라.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께서는 모든 세계의 하늘과 사람의 대중이 다 모인 것을 아시고는 이 다라니경(陀羅尼經)을 설하고자 생각해서 곧 무외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지금 온갖 세계의 대중들이 모두 모여서 다 함께 한마음일 뿐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을 아느냐?’
무외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대중이 모두 다 모여서 다 함께 한마음일 뿐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남김없이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대중이 한마음일 뿐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아느냐?’
무외가 아뢰었다
‘저는 세존의 위신력(威神力)을 이어받고 있는 까닭에 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즉 하늘과 사람과 용 또는 아수라ㆍ건달바 등의 대중이 여기에 모여서 다른 일은 생각지도 않고 다른 업은 짓지도 않은 채 오직 한마음으로 이 대중의 모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나이다. 저희들 모두는 그들을 보고 그들도 저희들을 보아서 피차 서로 알기에 마음의 생각이 어지럼지 않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먼저 사자분신의 큰 삼매에 드실 때는 부처님의 신력으로 온갖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과거에 지었던 업연(業緣)을 보게 하십니다. 이 모든 중생들은 전생에 닦은 복으로 천상에 나거나 혹은 인간에 나기를 원하기도 하고, 혹은 나쁜 업을 지었으면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세간을 벗어나는[出世] 선근을 능히 닦아 모았다면 이른바 성문의 과위[聲聞果]와 벽지불의 과위[辟支佛果]를 구하기도 하고, 혹은 때로 위없는 보리의 모든 부처님의 큰 과위를 원하고 구하면서 갖가지 한량없는 선근을 짓기도 하며, 혹은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수행하기도 하나니, 이른바 단(檀)바라밀 내지 반야(般若)바라밀이옵니다. 이와 같은 갖가지 한량없는 선근을 이 모든 대중은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 아나이다.’
그러하느니라. 아난아, 그 때에 그 사치마왕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일심으로 합장하고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 모든 악마들은 대부분 물러서지 않는 보살[不退菩薩] 들이옵니다. 마치 세존께서 과거의 모든 부처님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때의 일을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사실대로 아나이다. 마치 세존께서 옛날에 닦으셨던 공덕과 선근을 말씀하신 것처럼 또한 사실대로 아오며, 마치 세존께서 과거에 일으켰던 큰 서원의 장엄을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생각해 알면서 모두 망실한 것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모든 부처님ㆍ세존의 일체지(一切智)의 처소에서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면서 공양하였고 낮추는 마음[卑下心]을 일으키면서 큰 보시[大施]를 장엄하였나이다. 저는 이와 같은 것을 기억하고 있사옵고 이와 같은 것을 보고 아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에서 얼굴의 형상을 분명하게 보는 것과 같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과거의 일을 분명히 보는 것도 역시 그와 같나이다.’
아난아, 그 때에 그 대중 가운데에 이름이 미간백호(眉間白毫)라는 범천왕이 있었다. 그가 부처님 앞에 머무르면서 법을 듣기 위하여 다시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이 마왕이 말하는 불가사의하고 희유한 일을 듣고 마왕에게 물었느니라.
‘사치여, 당신은 이제 혹시 자신이 옛날에 닦았던 행원(行願)과 선근을 알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닦았던 선근과 계행(戒行)이 반드시 청정하였다면 어떻게 오늘날에 다시 악마의 궁전에 나서 악마의 업을 하겠습니까?’
사치가 대답하였다.
‘나의 과거의 인연으로 금생에 악마 세계에 나서 마왕이 된 것을 당신은 모르십니까?
범천이여, 그러나 나는 스스로 옛날에 닦은 복이 정묘하지 못하고 지닌 계율도 깨끗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닦은 것이 구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악마의 경계에 살고 있고 마왕이 되었을 뿐입니다. 옛날의 모든 인연 같은 것은 부처님의 신력을 받았기 때문에 명료하게 모두 보고 있습니다.
어진 이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나는 이제 해설하겠습니다.
범천이여, 지나간 과거의 한량없는 겁[無量劫] 때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는데 명호는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이셨습니다.
그 때에 그 세존께는 사만억의 큰 성문(聲聞) 대중이 있었는데 모두가 아라한이었고, 또한 한량없는 대중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는 학인(學人)이었으며, 또한 십사억의 대보살 대중이 있었습니다.
범천이여, 나는 그 때에 법을 구하기 위하여 한 비구 법사(法師)를 섬겼었는데 그 법사는 진실한 보살이었습니다. 지금 이 대중에 있으면서 똑똑히 나를 보고 있고, 나도 역시 그를 보고 있습니다.
범천이여, 나는 그때 그의 도중(徒衆)이 되어서 뒤따라 다니며 함께 했고, 그 법사는 자비를 완전히 구족하여 마음으로 언제나 찰리(刹利)ㆍ바라문(波羅門)ㆍ비사(毘舍)ㆍ수타(首陀)의 온갖 대중들을 가엾이 여겼기 때문에 나라와 도시와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갖가지 법요를 두루 널리 폈습니다. 그곳에 있는 대중은 법음(法音)을 듣고는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지극만 마음으로 모든 불ㆍ법ㆍ승을 공경히 믿었으며, 그 법사에 대하여 다시 존중을 더하였습니다.
또 존중했기 때문에 큰 공양을 일으켰으니, 이른바 갖가지 의복ㆍ음식ㆍ탕약ㆍ방사(房舍)ㆍ침구ㆍ평상ㆍ깔개ㆍ장막과 내지 온갖 살림 도구로서 무릇 필요한 것이면 모두 다 받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법사는 모두 받지 않고 오직 음식과 의복만을 받아들여서 자신에 맞게 만족을 취할 뿐 지나치게 받지 않았습니다.
그 때 대중은 또한 우리 처소에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서 전송하여 보내고, 마중하러 나오며, 예배하고 받들고, 섬기면서 공경을 다하여 공양하였지만, 오직 내게만 살림 도구를 보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때에 마음으로 질투와 원한을 품고 법사의 처소에 이러한 마음을 냈습니다.
‘어찌 혼자만 갖가지 이로운 공양을 받는데도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희망한 것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할까?’
또한 대중과 사배(四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치우친 마음으로 모든 필요한 것을 한 사람에게만 공양하고 나에게는 보시하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옛날 법사의 처소에서 오직 이 업만 있었을 뿐 다른 나쁜 마음이나 모든 부처님을 헐뜯은 일이 없었음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성을 내고 질투한 업의 인연으로 금생에 악마의 세계에 나서 마왕이 된 것입니다.
범천이여, 내가 옛날에 만일 방광 세존을 만나 큰 서원을 세워 보리를 구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지옥ㆍ축생ㆍ아귀를 오가며 유전(流轉)하면서 끝남이 없었을 것이리다.
범천이여,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옛날의 인연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미간백호 범천이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이 수다라(修多羅)의 한 구절 법문[一句法門]의 본원(本願)의 인연을 설하여 주소서.
세존이시여, 만일 이 한 구절 법문을 얻어 듣는다면 곧 이미 한량없는 억수(億數)의 수다라 뜻을 말씀하신 것이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모두 부처님의 입으로 말씀하실 한 구절 법의 이치를 듣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대중이 다 함께 모여서 즐거이 법을 듣고자 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은 여래께서 저 사자분신삼매에 드신 위신력 때문입니다.’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곧 백호범천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범천아, 너는 이 한 구절의 이치를 듣고 싶으냐? 범천아, 이 일은 차치하고 너는 먼저 이 네 번째 문(門)인 보살행의 법을 물어야 하느니라.
범천아, 너는 혹시 일찍이 삼십칠조보리법(三十七助菩提法)을 들은 적이 있느냐?’
범천이 아뢰었다.
‘들었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너는 어떻게 들었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저는 일찍이 사념처(四念處)의 법이 있음을 들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다시 말하지 말지어다. 내가 바야흐로 사념처의 법을 해설하려 하는데, 너는 마음속으로 결정코 이 사념처를 안다고 하니, 너는 어떻게 알고 있고 어떻게 닦았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사념처라 함은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이 아니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범천아, 너는 다시 어떻게 하면서 신행(身行)을 관찰하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몸을 보건대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아홉 구멍[九孔]에서 늘 더러운 것과 미워할 만한 것이 흘러나오는데 똥ㆍ오줌보다 더 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몸을 관(觀)하면서 오직 이런 것만을 볼 뿐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네가 관한 바처럼 바로 그것이 신념처(身念處)이니라.’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이 어리석고 어두워서 아는 것이 적은데다 광명이 없어서 널리 살피지를 못하나이다. 이 때문에 오늘 여래께 다시 자문(諮門)을 구하옵니다.’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곧 오른팔의 진금빛 손을 펴시어 그 대중 안에 있는 한 동자(童子)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셨는데, 이 동자는 주술사의 아들로서 나이 겨우 여덟 살이었으나 총명함이 보통을 넘었느니라.
정수리를 어루만지시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여래 앞으로 나아가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오늘 여래께서 친히 저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셨으니 인연이 없지 않사옵니다. 반드시 저를 인도하여 깊고 수승한 큰 이로움이 있게 할 터이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는 손으로 저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셨나이다.’
이와 같이 묻자마자 아난아, 그 때에 방광부처님은 동자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사람에 대해 아느냐?’
동자가 아뢰었느니라.
‘저는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동자야, 네가 만일 안다면 나는 것[生]을 아느냐, 죽는 것[死]을 아느냐?’
‘나고 죽는 것을 다 같이 아나이다.’
‘동자야, 만일 그렇다면 무릇 저 남자와 여인이 수명이 끝난 뒤에 하루 내지 이레가 지난 뒤의 그 죽은 시신에서 나는 향내나 구린내는 어떠하느냐?’
‘그 냄새는 지독한 악취가 나서 차마 냄새를 맡을 수조차 없나이다.’
‘동자야, 그와 같은 나쁜 냄새는 누가 가지고 오는 것이냐? 어디서부터 이르는 것이냐?’
‘이 미워할 만한 냄새는 가지고 오는 이도 없고 오는 데도 없나이다.’
이처럼,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범천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범천아, 너는 동자가 아까 말하는 바를 보았느냐? 이와 같이 물으면 무엇으로써 대답해야겠느냐? 이와 같이 대답하는 것은 진실한 것이냐, 거짓된 것이냐?
범천아, 너는 앞서 역시 말하기를, ‘이 몸은 깨끗하지 못하고 오직 악취만이 있을 뿐이어서 보거나 냄새를 맡기조차 어렵다’고 하였느니라.
범천아, 나도 이 가운데서 역시 그런 생각이 있으며, 동자의 말처럼 너희 설명도 역시 그러하리니,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범천아,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염처(念處)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니라.’
아난아, 그 때에 그 백호 범천은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일체의 모든 법은 부처님이 근본이 되고, 부처님은 바로 법의 어머니[法母]로서 온갖 선법(善法)을 부처님께서는 이미 얻으셨나이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구절의 뜻[句義]을 저희 모두는 듣기 바라오니, 원하옵건대 해석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그와 같이 지니겠사오며 지금 이 대중도 역시 모두 믿고 받아들일 겁니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사념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사념처냐 하면, 이른바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이니라. 어떤 것이 신념처(身念處)이냐? 신념처라 함은 사대(四大)가 화합한 것을 임시로 몸[身]이라 관(觀)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사대라 하느냐 하면, 곧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의 사대가 화합하여 함께 이루는 것이니라.
범천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와 같은 지대(地大)에는 향내나 악취가 나느냐?’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향내도 악취도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그 밖의 모든 대(大)에는 향내나 악취가 나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마치 저 지대(地大)에 향내가 없고 악취도 없는 것처럼 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풍대(風大)에도 역시 향내도 악취도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너는 지금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느냐? 이 몸이 그와 같이 갖가지 것으로 깨끗하지 못하고 악취가 가득히 찼다는 것은 전도된 설명이 아니냐?’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구는 어떻게 신념처를 관해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나 역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이러한 설명은 하지 않느니라.’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말한 사념처의 법이 수순(隨順)한 것이 아니라면, 비구는 어떠한 연(緣)으로 몸을 관하여 깨끗하지 않다고 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비구는 몸의 형상[身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니, 몸을 취하기 때문에 바른 생각[正想]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범천아, 만일 사대가 취합하여 하나의 모양[一相]을 이룬다면 이것은 바로 거짓된 생각[假想]이기 때문이니, 만일 거짓된 생각이 있다면 곧 올바른 생각이 아니요, 만일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면 이를 이름하여 복가라(福伽羅: pudgala, 補特伽羅)7)의 생각이라 하느니라.
범천아, 그러므로 나는 이 사념처의 뜻을 그와 같이 설명하지 않느니라. 지금 내가 설명한 것은 그 괴로움[苦]의 가없음이 사대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사대가 한군데로 화합하여 함께 이 몸을 이룬다고 보면 이것 역시 신견(身見)이니, 그는 반드시 사실대로의 생각과 소견을 얻지 못하느니라.
범천아,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이라고 보고 몸이라고 생각[念]하며 몸이라고 지각하는 것이 바로 몸이라 한다면, 보고 기억하기 때문에 그는 세간과 유정처(有頂處)를 해탈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만일 신념처를 관한다면 몸은 몸이 아니라[非身]고 보는 것이니라.
범천아, 여래도 또한 말하느니라. 너희 모든 비구들이 이 몸을 관찰하는 것이 바로 열반을 수순하는 도(道)이니, 이것을 일컬어 몸을 관하여 염처가 바른 이라고 하느니라.
범천아, 대저 염처라고 함은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염(念)이라는 뜻이요. 둘째는 머무르는 처(處)라는 뜻이니라. 이 염은 어기거나 다툼이 없으면서 법대로 수순하여 평등으로 나아가며, 삿된 생각[邪念]을 멀리 여의고 이전(移轉)과 갖가지 차이가 없으며, 오직 이 한마음만으로 부동정(不動定)에 들어가는 것인 줄 알아야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 염의 뜻이라 하느니라. 머무르는 처(處)라는 말은 마음이 의지하는 법으로서 이는 안으로 증득한다[內證]는 뜻이다. 신업(身業)의 일에 따라 현전(現前)하여 알기 때문에 무명의 그물[無明網]을 파괴하기를 마치 몸의 형상[身相]을 관하는 것처럼 하니, 이와 같이 신념처의 법을 보게 되거늘 어떻게 몸을 관하면서 몸의 형상에 집착하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몸을 관하면서 만일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치 신증(身證)을 깨달은 것과 같나니, 신증을 깨달은 이면 몸의 형상을 알 수 있느니라. 신념처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체의 문(門)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역시 마찬가지니라. 만일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서 몸의 모양을 관할 적에 몸이라는 생각[身想]을 내지 않으면 평등하게 첫 번째 염처에 들어가나니, 이와 같은 염처에 의당 의지해야 하느니라.
또 수(受)ㆍ심(心)의 두 가지의 염(念)은 하나의 뜻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이 마음[心]을 염하면 곧 이 느낌[受]을 알며, 만일 이 느낌을 염하면 역시 마음을 여의지 않느니라.
어떻게 염하게 되는가?, 이른바 염(念)이란 뜻(意)이 일[事]을 행함이니, 이와 같은 느낌의 염[受念]은 곧 마음의 업[心業]이니라. 이 때문에 느낌의 염은 마음의 업의 일을 하는 것이니, 이 마음이 일을 짓되 한량없는 종류가 있어서 헤아릴 수 없으며, 화합의 인연으로 세간을 수순하면서 함께 일을 행하느니라.
거두어 들어가게[攝入] 되는 것은 일체가 다 다섯 가지 유(有)의 처소[五種有處]를 내며, 그 다섯 가지 유[五有]의 생겨남이 화합에 들어가고 나면 이름하여 거칠고 껄끄럽다고 하고, 또한 단단하고 강하다고 하며, 또한 괴로운 짐[苦擔]이라고도 하느니라. 이와 같은 갖가지 접촉과 느낌[觸受]이 서로 의지하며 유(有)를 지어 일[事]을 낳으니, 응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범천아, 이것을 바로 세간을 수순하는 심행(心行)이라고 하는데, 차례대로 십이인연을 의지하면서 생각 생각이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느니라.
또한 범천아, 여래가 말한 바른 염처[正念處]란 곧 세간을 벗어나는[出世] 수승하고 묘한 광명이고, 또한 여래의 분별지(分別智)의 뜻이 한량없고 가없는 허공에서 생겨나서 수순하고 취향(趣向)하는 큰 열반의 길이며,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삼보리(三菩提)8)를 증득해서 갖가지 뜻에 수순하는 정진(精進)을 능히 내고 원만한 지혜로 업행(業行)을 짓는 바라서 모든 법의 평등함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범천아, 그러므로 두 가지 염처[二念處]의 뜻을 알아야 하나니, 나는 이제 해설하여 마쳤느니라. 범천아, 네 번째 법념처(法念處)는 열반의 성[涅槃城]을 여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여래의 감로 범문(甘露法門)이요, 또한 이것은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법장(法藏)이며, 또한 광명으로 캄캄한 어두움을 부수어 없앤다고 하나니, 법상(法相)이 평등하고 성품[性]은 허공과 같으니라.’
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떻게 허공과 똑같은 성품[同虛空性]을 증득하여 아나이까?’
‘범천아, 어떤 법을 수순하면서 능히 생각을 일으키는 곳에는 이와 같은 언어가 없느니라.’
범천이 다시 아뢰었다.
‘그 뜻은 어떠한 것이옵니까?’
‘범천아, 내가 먼저 일체의 모든 법은 허공과 같다고 말하지 않더냐?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이와 같이 능히 아는 이면 이것을 곧 법념처를 관한다고 하느니라.
범천아, 만일 사람이 안팎의 모든 법에 대하여 허공과 같이 머무르면,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유[諸有]에서 해탈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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