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법거다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5권
대법거다라니경 제5권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9. 사성제품(四聖諦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방광(放光)여래는 다시 미간백호(眉間白毫)범천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범천아, 너는 이제 스스로 두루 갖춘 변재(辯才)로써 이런 뜻을 묻는 것이 아니냐? 네가 어찌 이 보리문(菩提門)이 모든 성제(聖諦)에 수순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성제에 수순한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조도법(助道法)들로써 저 성제와 화합하고 상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성제란 곧 모든 부처님께서 수순하시면서 차례로 말씀하신 것으로 일체의 보리각법(菩提覺法)과 다르지 않사옵니다.’
부처님은 다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부처님이 설한 사성제를 아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도 조금은 사성제의 뜻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너는 어떻게 사성제의 뜻을 아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는 바로는 고성제(苦聖諦)ㆍ고집성제(苦集聖諦)ㆍ고멸성제(苦滅聖諦)ㆍ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를 말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사성제의 뜻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네가 말하는 고제(苦諦)는 그 뜻이 어떤 것이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친히 부처님으로부터 이렇게 설하시는 걸 들었사온데, 이 오음(五陰)을 고제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성인(聖人)은 관찰하여 아견(我見)을 끊어 없애서 저 무아(無我)를 증득하며, 증득하여 알기 때문에 이 오음을 마치 도적[賊]이나 원수[怨]처럼 보아서 문득 다섯 종류의 나는 곳[五有生處]을 버리고 여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고성제의 뜻을 아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끝내 이와 같은 설명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해 알지, 저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모든 의혹은 오직 부처님만이 끊을 수 있을 뿐이오니, 왜냐하면 오직 부처님만이 일체의 모든 법을 장애 없이 알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저는 이와 같이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사성제의 이치를 듣고자 하오니, 원하옵건대 저를 위하여 해석하여 주소서. 무엇 때문에 성(聖)이라고 하오며, 어찌하여 제(諦)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제(諦)라 함은 진실함[實]을 이르는 것이니, 진실함이란 일체(一體)를 이르는 것이다. 성(聖)이란 방편을 말하는 것이니, 방편으로 증득하여 알기 때문에 성제라고 하느니라.’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진실하다[實]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이른바 진실하다 함은 이치에 수순한다는 것이니, 너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할지니라. 이제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설하겠느니라.
범천아, 너는 모든 아라한이 번뇌가 다하게 될 때 버리는 것에 대해 아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모든 아라한이 번뇌가 다하게 될 때 버리는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옵니다.’
‘범천아, 살펴 들어라. 너를 위하여 설하겠느니라. 유루의 법[有漏法]을 일심으로 싫어하고 여의어서 생사(生死)를 받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버린다[捨]고 하고 번뇌가 다한다[漏盡]고 하며 필경(畢竟)이라 하느니라. 필경에는 버리기 때문에 그 진실함[實] 안에 머무르며, 일체를 버리기 때문에 진실이라 하느니라.
범천아, 이른바 성제(聖諦)는 곧 오음(五陰)이니, 오음이 바로 괴로움의 인연[苦因緣]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오음을 원적(怨賊)이라고 한다. 온갖 성인들은 사실대로 관하여 알기 때문에 능히 버리는 것이요, 이런 이치 때문에 고성제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세존은 이 오음이 뭇 괴로움의 근본[本]이라고 말하고 원수[怨家]라고 하며 또한 속이는 것이라고도 하나니, 성인은 관찰하여 사실대로 알기 때문에 성제라고 하느니라.
또한 범천아, 집제(集諦)라고 함은 바로 멸(滅)을 앎이 없다는 것이니, 이 고(苦)의 집(集)이 사라진다[集滅]고 함은 바로 부처님ㆍ세존이 모든 성현을 위하여 방편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이 만일 진실이라 한다면 옳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범천아, 이른바 집(集)이란 곧 허망한 것이기 때문이니, 만일 이것이 허망하다면 사라진다고 하지 않느니라.
이른바 사라진다고 함은 곧 허망한 것이 아니요. 허망한 것이 아니기에 이것이 바로 성제이며, 성제라 함은 아리야(阿利耶)를 말하는 것이고, 아리야라 함은 오음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성인은 진실로 모든 음(陰)이 진실이 아님을 아나니, 이 때문에 능히 버리는 것을 성제라 하고, 집착을 버리기 때문에 큰 원수를 죽인다고 하느니라.
모든 집(集)이란 진실이 아닌 줄 알아야 하나니, 만일 집(集)이 생긴다고 보면 이것은 상견(常見)이 되고, 만일 집(集)이 소멸한다고 보면 이것은 단견(斷見)이 되느니라.
모든 부처님ㆍ여래가 이르시길, ‘집(集)도 아니요, 멸(滅)도 아닌 이것이 성제이다’라고 말씀하시나니, 이것을 곧 도(道)라고 하느니라. 도라고 함은 이른바 진실의 도[眞實之道]로서 모든 성인들은 깊이 오온을 통달하나니, 의당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범천아, 이치[義]에 나아가 구하기 때문에 도[道]라고 하느니라.
범천아, 의당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나는 과거에 어떠한 몸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이러한 몸이었으리라’는 두 가지를 생각하면, 바로 이것은 허망한 것이요, 다시 ‘나는 과거에 일찍이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과거에 일찍이 이와 같이 왔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허망한 것이니라.
범천아, 일체의 모든 법이 분별인 줄 알아야 하고 진실함이 없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니, 이것을 곧 청정한 도[淸淨道]라고 한다.’”
10. 인교량품(忍校量品)
“아난아, 그 때에 그 방광부처님은 다시 미간백호범천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범천아, 이 다라니 법문(陀羅尼法門)은 넓고 커서 끝이 없느니라. 이제 너를 위하여 처음에 물었던 보살행법(菩薩行法)의 약간을 열어 드러내리니, 여래의 방편밀교(方便密敎)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범천아, 비유하면 마치 장사꾼 우두머리가 보물을 구하기 위하여 큰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면 먼저 갖가지 자재와 장비를 모으는 것과 같으니라. 이른바 배ㆍ노ㆍ돛대며 날것과 익힌 양식으로서 무릇 바다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물건을 모두 갖추어 해안에다 놓아두고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가 오늘 큰 바다에 들어가서 모든 필요한 것들을 구해 와서 궁핍함 없애겠습니까? 만일 어떤 이라도 하시겠다면 마땅히 동행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그 때에 여러 사람들이 이익을 구하기 위하여 열 명, 스무 명 내지 백천 명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기를 원하느니라.
그 때에 그 장사꾼 우두머리는 대중이 이미 많아진 것을 보자 스스로 생각했다.
‘이 대중 가운데 어떤 이는 몸이 파리하고 힘이 없으며 겁약하고 소심(小心)해서 위험을 견뎌내지 못하겠고 일을 끝마치기도 어렵겠구나. 나는 의당 돌려보내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마침내 널리 알렸다.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지금 이 큰 바다는 깊고 넓고 끝이 없어서 어느 세월에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또 바다 가운데는 여덟 가지의 큰 재난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험악한 파도요, 둘째는 소용돌이치는 흐름이며, 셋째는 마갈어(摩竭魚)요, 넷째는 상어이며, 다섯째는 모든 그 밖의 큰 물고기들이요, 여섯째는 야차(夜叉)와 나찰(羅刹)이며, 일곱째는 사나운 바람[惡風]이요, 여덟째는 악한 용[惡龍]입니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재난은 지나쳐버리기 어려우며 소홀히 여기다간 배가 파괴되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능히 견딜 수 있고 두려움이 없는 이면 누구든 오늘 함께 이 배를 타고 가시고, 만일 의심스러워 위험을 무릅쓰지 못하겠다면 저마다 뜻대로 돌아가십시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은 듣고 나서 대부분 물러가 흩어졌느니라.
이처럼 범천아, 지금 이 대중 가운데 한량없는 사람들이 이 다라니의 심히 깊은 법문이 넓고 크고 가없음을 듣고는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내면서 ‘이 다라니의 한 구절만을 해설하여도 한량없는 세월 동안 오히려 다할 수 없거늘, 만일 자세히 해설한다면 그 누가 듣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으니, 이처럼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들은 혹은 물러서는 마음을 내기도 하고 혹은 갖가지의 어리석고 나쁘고 삿된 번뇌의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면서 생사에 유전하느니라.
이처럼 범천아, 여래ㆍ세존께서 저들 중생의 모든 근기와 욕력(欲力)을 더 자라게 하고자 함은 또한 물러서지 않는 마음[不退轉心]을 성취하게 하려 함이니, 마치 저 장사꾼 우두머리가 온갖 장사꾼들이 겁약하여 감당하지 못할 것을 보고는 그 패괴(敗壞)를 염려하여 바다의 재난에서부터 목숨을 잃게 되는 모든 두려운 일들까지 분명히 말해 주어서 본래 있던 데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으니라.
범천아, 저 큰 장사꾼 우두머리는 이와 같은 비밀한 계책과 깊은 지혜와 큰 방편의 힘을 능히 지닌 줄 알아야 하나니, 여래도 역시 마찬가지라서 큰 방편으로 이 억수(億數)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저 한량없고 가없는 나유타(那由他)의 불가사의한 큰 지혜의 인(忍)을 개발코자 하고, 모든 세존이 지니신 불가사의한 큰 지혜의 인이 행해진 곳은 단지 아비발치(阿毘跋致)9)보살마하살만을 위하여 물러서지 않는 인[不退轉忍]을 성취할 수 있게 하나니, 이와 같이 심히 깊은 큰 공덕의 인(忍)은 일체 중생도 능히 아는 이가 없으며, 오직 대승의 법[大乘法]을 깊이 좋아하는 이만 제외되나니, 그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인(忍) 가운데에 능히 머물 수 있느니라.’
그 때에 미간백호범천은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인을 무엇 때문에 한량없고 가없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인의 공덕은 수효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한량없다고 하며, 다하여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가없다고 하느니라.
살펴서 들어라. 범천아, 비유하면 마치 이 염부제(閻浮提)에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뭇 보배들이 두루 가득 차 있고 저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또한 위화(威花)라는 하나의 마니주(摩尼珠)가 있는 것과 같다. 이 염부제에 가득 찬 귀중한 뭇 보배들과 저 산꼭대기에 있는 하나의 위화주(威花珠)와는 본래 서로 달거나 잴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느냐?
또한 범천아,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보배는 차치하고 가령 이 위화 보주가 사천하에 가득 차 있고 저 수미산 꼭대기에 다시 석가비릉가(釋迦毘楞伽)라는 하나의 보배가 있다고 하자. 사천하에 가득 찬 위화 보주들은 역시 저 하나의 비릉가를 대적하지 못하느니라.
또한 범천아, 위화 보주는 차치하고 가령 다시 저 비릉가를 위로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쌓아 두었다 하여도 오히려 보처보살(補處菩薩)10)에게 있는 보정(寶精)이라는 묘한 보배보다는 못하나니, 이 보배는 보처보살을 위한 갖가지 장엄구(莊嚴具)로서 그 보살이 무릇 수용하는 바를 따르느니라. 태(胎)에 들어가려 할 때는 어머니의 배에 먼저 궁택(宮宅)이 되는데, 보살은 그런 뒤에야 하늘에서 내려와 최후의 몸을 들어가 받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보살의 복덕의 힘 때문에 이 보배를 감응해 얻는 것이며, 태어난 몸이 항상 쓰면서 보살의 몸이 크면 보배도 또한 따라서 크느니라. 이 보배는 한량없는 복 더미[福聚]를 능히 이루었나니, 처음 발심(發心)에서부터 10지(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덕의 더미는 이 보배에서 생긴 바이니라. 범천아, 마땅히 위와 같은 수승한 보배는 일체 세간을 지나쳐서 출세간의 수승한 공덕의 힘으로 생겨난 보배란 걸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또한 범천아, 저 출세간(出世間)의 값을 따질 수 없는 공덕의 큰 보배는 큰 선근(善根)을 모아서 개발(開發)하고 교화하여 뭇 보배를 수승하게 내는데, 어떤 것을 큰 공덕의 더미[大功德聚]이고 큰 선근이라 하느냐? 그러하느니라. 범천아, 저 가장 수승하고 으뜸가는 공덕의 선근이란, 내가 먼저 너희에게 이 법문 한 구절의 뜻을 해설할 적에 값어치로 헤아릴 수 없고 수효로 계산할 수 없는 출세간의 수승한 보배라고 차별하여 설해 마쳤느니라.
또한 범천아, 값을 따질 수 없는 가장 수승한 보배이기 때문에 이제 다시 비유를 인용하리라.
범천아, 비유하면 마치 이 염부제에서 모든 산과 뭇 기와며 돌을 제거하면 땅이 평평하고 반듯해서 언덕이 없는데, 그 염부제의 땅으로부터 위로 삼십삼천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가득 찬 모든 사람이 모두 초선(初禪)을 얻어서 일심(一心)을 성취하면 이름하여 상범부(上凡夫)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범천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초선을 얻은 상범부들이 마음으로 염(念)한 지혜와 알게 된 곳을 무엇이라고 이름하겠느냐?’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世間)의 지혜 경계라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수다원(須陀洹)의 사람이 마음으로 염한 지혜와 알게 된 곳을 다시 무엇이라고 이름하겠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출세간(出世間)의 지혜 경계라고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가령 염부제에 가득 찬 뛰어난 상범부들이 그 마음의 힘을 다한다 하면 한 수다원 사람의 마음과 지혜의 경계를 능히 알겠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범부는 출세간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하느니라. 범천아, 온갖 범부는 오히려 알 수 없거늘 어떻게 헤아리거나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 이 때문에 비록 이 염부제에 이미 초선을 얻은 뛰어난 상범부가 가득 찼다 하더라도 끝내 하나의 수다원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실로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저 모든 범부는 오직 초선을 얻었을 뿐 아직은 이선(二禪) 이상 내지 네 가지의 공한 세간[四空世間]의 수승한 법을 얻지 못했거늘, 어떻게 수다원 등이 아는 출세간 법을 알 수 있겠나이까?’
‘범천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제일의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뭇 보배[無價衆寶]로 비유하는 차별이니라.
또한 범천아, 한 천하의 뛰어난 상범부는 차치하고, 가령 사천하에 모두 수다원이 가득 차서 그 지혜의 힘을 다한다 하여도 역시 한 사다함(斯陀含)이 마음으로 행하는 바와 지혜로 증득한 바를 능히 알지 못하며, 나아가 사소한 부분[少分]의 가장자리[邊際]까지도 사유하거나 헤아릴 수 없느니라.
범천아, 이것이 바로 제이의 수승한 보배로 비유하는 차별이니라.
또한 범천아, 사천하에 가득히 찬 수다원은 차치하고, 가령 사천하에 모두 사다함이 가득 찼다 하여도 끝내 한 아나함(阿那含)이 마음으로 반연하는 바와 지혜로 증득하는 바를 능히 알지 못하며, 나아가 사천하에 모든 아라한이 가득히 찼다 하여도 역시 한 벽지불(辟支佛)의 마음과 지혜의 경계와 행을 알 수 없느니라.
범천아, 이것이 바로 제삼ㆍ제사ㆍ제오의 보배로 비유하는 차별이니라.
또한 범천아, 아라한은 차치하고, 가령 사천하에 모든 벽지불이 가득 차서 함께 그 지혜의 힘을 다한다 하여도 일생보살(一生菩薩)이 어머니의 태(胎)에 들어갈 때의 마음과 지혜의 경계, 그리고 증득하여 들어가는 차례와 큰 서원과 깊은 인(忍)과 문답과 연설 및 모든 위의를 헤아려 보려 하면 끝내 알 수 없으니, 헤아릴 수도 없고 분별할 수도 없고 듣거나 말할 수도 없고 나아가 저 법의 조그마한 부분도 얻지 못하느니라. 오직 예외적으로 여래ㆍ응공ㆍ정변각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니라.
범천아, 이것이 바로 보살의 제육의 수승한 보배로 비유하는 차별이니라.
또한 범천아, 앞서 비유로 설명했듯이 이 염부제의 안에 가득 찬 하늘의 보배, 나아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위화(威花)라는 보배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제 이 보배의 위광(威光)과 공덕의 작용을 설명하리니, 다시 온갖 비유를 인용하여 그 적은 부분을 드러내리라. 이 말은 오직 증득한 이를 제외하곤 믿기 어려운 것이니라.
범천아, 만일 위화의 수승한 보배를 가져다 수미산의 꼭대기에 둔다면, 이 큰 바다의 물 깊이 팔만 사천 유순(由旬)의 아래에 살고 있는 모든 용(龍)의 궁전과 아수라ㆍ가루라 등이 살고 있는 궁전의 온갖 보배와 큰 바다 안의 갖가지 보배 구슬은 저 큰 덕이 있는 용의 신통력 때문에 진기한 보배와 영락 모두가 광명이 있고, 모든 아수라는 비록 아첨과 속임수가 많다 하더라도 신통으로 영락 역시 광명이 있는데, 이와 같은 온갖 광명이 만일 위화를 만나면 그 뭇 보배의 광명은 모두 소멸하여 나타나지 않느니라.
범천아, 마치 해가 나왔을 때 모든 반딧불의 빛이 상실되면서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나니, 그 일도 이와 같으니라.
범천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해의 광명이 수미산을 돌면서 다른 방소(方所)에 나타날 적에 그 산꼭대기에 있는 보배는 염부제에 큰 광명을 비추어 주느니라.’
그 때에 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위화보배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누구의 덕(德)으로 얻은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큰 바다의 맨 아래에 금강(金剛)의 경계[際]가 있고 그 경계 아래에 다일(多日)이라고 하는 한 불더미[火聚]가 있어서 광명이 치성한데, 이것이 곧 대철위산(大鐵圍山)의 근본이 나온 곳이요, 거기에 해탈(解脫)이라는 금지(金地)가 있는데 이 위화보는 이로부터 생겼느니라.’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위화보는 어찌하여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천하에 있는 일체의 작고 큰 모든 산과 수목과 우거진 숲, 그리고 모든 약초가 모두 다 훨훨 타서 욕계(欲界)를 두루 태우는 것이 마치 겁이 다 할[劫盡] 때와 같은데, 그 불이 왕성할 적에 만일 범궁(梵宮)에서 하나의 위화보를 가져다 그 불 속에 던져 놓으면 일념 사이에 그 큰 불이 이내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마치 큰 비가 조그마한 불을 꺼버리는 것과 같나니, 이 보배의 위신력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범천아, 이 보배가 나타날 때에는 누구의 복(福)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냐?’
범천이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먼저 이런 뜻을 물었사오나 이 위화보의 위력이 머무른 곳을 모르옵니다. 원하옵건대 잘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알 수 있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겁(劫)이 다할 때처럼 삼천세계의 백억 천하가 저마다 본래 처소에 따라 일체가 불에 타서 환해지는데, 바로 이때에 위화보를 가져다 범궁에 놓아두면 이 보배의 위엄 있는 광명은 욕계의 모든 하늘 궁전과 아래로는 지옥에 미치기까지 이르는 곳마다 맹렬한 불을 이내 꺼지게 해서 모두 청량하게 된다. 마치 가을의 구월 밤 후분(後分) 때와 같나니, 겁화(劫火)가 모두 꺼져서 청량해지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범천아, 이때의 중생들은 복이 다된 까닭에 모든 마니보(摩尼寶)는 숨어버려 나타나지 않느니라. 하지만 중생으로서는 이 보배를 얻을 수 있는 계책이 없고 저 위화보도 얻어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벽지불이 세간에 아주 드물게 출현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범천아, 바다 밑으로부터 제사의 풍계(風界)에 이르면 거기에는 극결(極駃)이라는 풍륜(風輪)이 있고, 그 풍륜 위에는 불괴(不壞)라는 화륜계(火輪界)가 있어서 항상 훨훨 타면서 맹렬한 불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 화륜 위에 하나의 위화가 하나의 마니보 위에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데, 그 두 보배의 위광과 덕의 힘으로 화륜을 능히 유지하면서 훨훨 타며 끊어지지 않게 하고, 또한 다시 능히 제어하여 그 화륜으로 하여금 대지(大地)의 모든 방소(方所)와 큰 철위산과 수미산왕 및 큰 바다의 물을 태워 파괴되지 않게 하느니라. 이처럼 일체가 다 저 위화 보주와 수승한 마니보의 광명과 덕의 힘에 의지해야 비로소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느니라.
또한 범천아, 이른바 비릉가보(毘楞伽寶)는 순금빛이요, 선근에서 생긴 바이며, 저절로 아로새겨져서 빛이 나는데, 이에 수미산 꼭대기와 도리천(忉利天)의 처소와 야마천(夜摩天)의 처소와 도솔천(兜率天)의 처소를 지나서 범궁(梵宮)에 머물 수 있다. 보살이 염부제로부터 도솔천에 난 뒤에 선근의 힘 때문에 이 보배는 저절로 상자 속에서 생겨나 악마를 조복하는 일을 하느니라.
왜냐하면, 범천아, 만일 어떤 악마나 악마의 권속이 몹시 나쁜 마음을 일으켜 도솔천으로 가서 모든 장애를 부리며 보살을 파괴하고 어지럽히면, 비록 함께 힘을 다했다 하더라도 동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마니보의 장엄구가 보살의 목에 있어서 보주의 위력 때문에 모든 악마의 일이 저절로 파괴되고 소멸되어 마왕 파순(波旬)이 몹시 근심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이니라.
또한 이 보살이 처음 하늘에서 내려와 어머니 태 안에 들어갈 때도 그 장엄구는 역시 늘 뒤따라 다녔으며, 이에 처음 탄생하고 출가하여 도량의 보리수 아래 앉기까지 그 보배는 항시 존재하였느니라.
이때에 마왕과 한량없는 억수의 그 군사들이 백천 가지로 큰 두려운 일을 나타내면서 그 위력과 용맹을 떨치며 모든 싸움을 걸었을 때도 보살은 단정히 앉아서 고요히 동요하지 않고 악마의 군사를 깨뜨린 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느니라.
범천아, 알아야 하느니라. 저 석가비릉가라는 수승한 마니보는 이와 같은 세력이 있거늘, 하물며 보살이 도솔천에 있을 적에 마왕이 혼자서 장애가 될 수 있었겠느냐? 설령 그 밖의 하늘과 도솔천이라 해도 역시 손상시킬 수 없으니 보배가 언제나 보살의 몸에 따라다니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그 범천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석가비릉가 마니보에는 오직 이 공덕만이 있나이까? 다시 그 밖의 다른 힘도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그 보배의 위력이야말로 한량없이 없어서 이것뿐만이 아니니라.
범천아, 이 염부제의 세로와 너비는 칠천 유순이요, 그 땅의 형상은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은 것이 마치 바라문(婆羅門)의 수레와 같으니라.
당시 그 천하에는 네 왕이 다스리는 처소가 있었으니, 어떤 것이 넷인가? 첫째는 사람의 왕[人王]이요, 둘째는 독사의 왕[蛇王]이며, 셋째는 나쁜 말의 왕[惡馬王]이요, 넷째는 나쁜 용의 왕[惡龍王]이었느니라.
범천아, 이 염부제에는 독사가 두루 가득 차 있었는데 다 함께 성을 내고 모두가 독의 불을 토하면서 다시 서로 울부짖으며 깨물었으므로 서로의 몸은 모두 재와 불탄 끄트머리가 되었느니라. 그러할 때에는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사람은 이 독의 불에 닿기만 하여도 이내 죽고 말았으니, 이처럼 성내는 독[瞋毒]은 모든 나쁜 용들도 저절로 타서 없어지게 하였거늘 하물며 다시 그 밖의 무리이겠느냐?
범천아, 이 염부제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 차 있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와 같은 독사의 무리를 많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심히 많고도 많나이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나쁜 용과 모든 용왕(龍王)은 큰 신통이 있는지라 허공에서 크고 무거운 구름을 일으켜 큰 번갯불을 떨치고 몹시 험한 우레 소리를 내며 큰 벼락을 치고 큰 우박의 비를 내리는 등 갖가지 소리를 내면서 갖가지 위력을 나타내느니라.
범천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와 같은 용의 무리를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심히 크고도 크나이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나쁜 사람ㆍ나쁜 말[馬]ㆍ모든 악한 독 등이 삿된 도[邪道]에 머무르고 난 뒤에는 저 나쁜 독사와 나쁜 용과 나쁜 말[馬], 나아가 나쁜 사람까지 접촉해서 모두가 성내는 마음ㆍ나쁜 마음ㆍ악한 힘ㆍ악한 행ㆍ악한 일을 일으키게 하고 나아가 악도(惡道)까지 두루 갖추어지게 해서 이와 같은 모든 두려움이 있을 때, 이 보살은 도솔천에서 저 마니보를 열어 나타내서 저 악독한 중생들로 하여금 보게 하면, 중생들은 보자마자 나쁜 일이 소멸하게 되고 세계는 청정해지며, 나쁜 마음은 저절로 수그러들게 되고 부드러우면서 온순하여 인자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기뻐하게 되나니, 모두가 저 마니보를 보았기 때문이니라.
범천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 석가비릉가보는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큰 위덕의 힘이 있나니, 만일 자세하게 해설한다면 끝내 다할 수 없느니라.’
그 때에 그 범천은 다시 방광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것처럼 보살의 몸의 보배[身寶]인 보정(寶精)에는 어떠한 공덕이 있나이까? 원하옵건대 열어 보이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듣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이런 큰일은 묻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생보살의 선근은 심히 깊기 때문이니, 무릇 모든 과보는 저 세간에서 알아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러한 보살이 태(胎)에 들어가려 할 적에 이 보배는 앞서 인도하면서 보살의 몸을 따르며 불사(佛事)를 짓기 때문이요, 나올 때도 역시 그러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보배는 보배 중에서도 가장 수승하여서 이와 같은 한량없는 세력이 있느니라.
너희들 범천은 만일 보배가 있는 곳을 알면 가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배할지언정 나에게 어떠한 공덕이 있느냐고 묻지 말아야 하느니라.’
범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이치에 대하여 다시는 의심이 없사오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짐짓 이런 질문을 일으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기뻐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세존께 묻사오니, 이와 같이 묻는 것은 장래에 두루 불사를 행하고 보리(菩提)를 더욱 자라게 할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의 보배가 염부제에 내려왔을 때 위덕의 힘 때문에 해와 달의 광명도 오히려 모두 소멸되었거늘 하물며 별이나 모든 불빛 등이 소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그러므로 이 보배야말로 가장 특수하며 언제나 보살마하살의 처소에 의지하고 있나이다. 온갖 범천들은 이 보배를 가져다 범궁(梵宮)에 안치하고서 존중하고 공경하며 예배하고 공양하면서 희유한 일을 지어야 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이 보배의 광명은 해와 달과 별과 불빛을 능히 가려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는데도 저 해와 달과 별과 불 등의 광명이 소멸하여 없어지지 않는 것은 모두 여래의 신력으로 하시는 바라서 세간으로 하여금 언제나 어둠에 처하지 않게 하나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여래ㆍ세존은 큰 자비를 지니신 분이라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가피(加被)하시기 때문이오니, 만일 여래 위신력의 가피가 없다면 일체의 범천의 광명까지도 역시 모두 상실해 없어지리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가호(加護)한다는 뜻은 무엇을 말하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가호한다는 뜻은 윗분이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입히고 하열한 이가 수승한 이에게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옵니다. 모든 부처님ㆍ세존의 일체 모든 일은 세간의 모든 사람과 하늘들보다 수승하고 뛰어나시옵니다. 비유하면 마치 햇빛이 나왔을 때 모든 반딧불이 모두 다 빛을 잃고 없어지는 것처럼 여래의 위력이 만일 가호하지 않는다면 온갖 인간과 천상의 광명이 상실하고 소멸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의 위신력과 덕의 힘에 대하여 다시는 의심이 없사오니, 왜냐하면 저는 여래를 뵈면서 마음에 더 바랄 것이 없기 때문이옵니다. 그래서 이제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감히 이 일을 묻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혹시 모든 외도(外道)와 오통신선(五通神仙)이 얻는 사선(四禪)11)과 사공(四空)의 삼마발제(三摩跋提)12)로 들고 나는 심행(心行)을 아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조금은 외도와 모든 신선이 얻는 선정과 삼마발제를 아옵니다. 그러나 이 대중 가운데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이가 있고 오는 세상의 중생들도 다시 알지 못하리니, 이 때문에 저는 이제 이와 같은 뜻을 물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모르는 이는 알게 하고 또한 장래의 이해하지 못한 이를 위하여 이해하게 하려 하나이다.’
‘범천아, 세간의 언어와 뜻과 문구와 명칭으로서 이 다라니문의 수다라를 능히 여읠 수 있는 것은 없느니라.
범천아, 일체의 모든 수다라나 기야(祇夜)나 혹은 수기(授記) 등 온갖 다른 이가 묻는 것, 그리고 이 삼십칠조보리법(三十七助菩提法)에 포섭된 것과 나아가 설하고 행함을 드러내는 것은 모두 다 이 미묘한 다라니의 깊은 법문 가운데에 들어가나니, 그래서 지금 이 다라니문은 곧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미 설하셨고 장차 설하실 것이며 내가 지금 현재도 또한 설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설한 바대로 이 다라니를 능히 기억하고 받아 지난다면, 미래에 다시 내가 설한 그대로 이와 같은 법을 얻으리라. 나는 옛날에도 역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였으며, 저 모든 부처님도 역시 이 다라니의 수다라 법문으로써 한량없는 억수(億數)의 모든 큰 보살마하살들을 교화하여 성취시켰느니라.’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하느니라. 과거의 한량없는 억 겁에 부처님ㆍ세존이 계셨는데, 그 명호는 승삼매(勝三昧)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이셨느니라. 세간에 출현하실 때 그 최후의 몸이 나신 곳은 그 아버님이 대정진(大精進)이라는 전륜성왕으로서 칠보가 완전히 갖추어졌고 사천하를 통솔하였으며, 보살은 곧 이 보후(寶后)에서 태어나신 첫 번째 태자이었느니라.
언제나 깊은 궁전에 거처하면서 팔만 사천의 뭇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하였는데, 이와 같은 여인들은 모두 갖가지 이름난 보배 영락과 마니의 천주(天珠)로써 장식하고는 그를 앞뒤로 둘러싼 채 동산의 숲에 구경 가서 한량없는 묘한 음악으로 보살을 즐겁게 하는 것은 마치 제석천왕(帝釋天王)의 환희원(歡喜園)과 같았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에게 있는 대인상(大人相)은 온갖 세간에서는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느니라.
범천아, 보살은 뒷날 여러 여인들에게 물었느니라.
‘너희들 중에 누가 붉은 박달나무로 된 공후(箜篌)를 갖고 있느냐? 가지고 있으면 지금 앞으로 나오너라.’
그 때에 한 여인이 박달나무로 된 공후를 보살에게 바쳤느니라. 보살은 그것을 타고 난 뒤에 ‘이와 같은 소리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 줄에서 생기는 것이냐, 기러기발[柱]에 나오는 것이냐. 동여맨 데[棍]에 있는 것이냐, 박달나무에서 만드는 것이냐?’고 생각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서는 소리가 정해진 곳이 없음을 알고는 다시 ‘내가 만일 손대지 않으면 곧 나오는 소리가 없으니, 이와 같은 소리는 의당 손으로부터 나와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한 뒤에 곧 손으로 허공을 대어 보았으나 소리는 역시 나오지 않았으니, 이로 인하여 비로소 손에도 정해진 소리가 없음을 알았느니라. 정해진 것이 없음을 안 뒤에는 곧 다시 ‘지금 이 소리라는 것은 허망하고 진실하지가 않다. 임시로 뭇 인연이 화합하면서 존재하는 것인데 중생들은 아주 어리석고 무명(無明)의 미혹에 가려서 알지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며, 이 소리에 탐착하여 그로 인해 방일하면서 뭇 악을 두루 짓다가 세 가지 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였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깊이 싫증을 내어 여읠 때 곧 삼매(三昧)에 들어갔으며, 삼매에 든 뒤에는 세간의 오욕(五欲)에 관한 모든 것을 버릴 뿐 아니라 무릇 소중한 것도 마치 콧물과 침을 버리듯 하고는 몸은 허공으로 올라갔으며, 허공에 머무른 뒤에 다시 ‘나는 이제 이 몸으로 반드시 성불하리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할 때 곧 대승삼매(大勝三昧)를 획득하였고 그 삼매의 힘 때문에 발로 허공을 걸어서 보리수로 나아갔으며, 나무 아래 이르러서는 가부좌(跏趺坐)하고 단정히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느니라.
범천아, 보살이 이와 같이 가부좌하고 앉아 있을 때 구지사(拘知舍)라는 한 마왕이 보살 앞에 머물면서 게송으로 찬탄하였느니라.’
장부(丈夫)께서는 속히 성불하시리니
세간의 안락을 위해서이며
근심 없는[無憂] 감로의 구절[甘露句]로써
모든 번뇌를 다 없애 주시네.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 바라문으로서 이름은 속질신(速疾身)이었느니라. 그 보살이 도수(道樹) 아래 앉아 장차 정각(正覺)을 이루시려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나는 이제 반드시 보살 앞에서 일심으로 합장한 채 공경하며 서 있다가 그 분이 성불하시면 그 때서야 쉬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레 낮[七日] 이레 밤[七夜]을 서서 자세히 관하면서 다시 다른 생각이 없었고, 배고픔과 목마름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고달픔도 깨닫지 않았고, 또한 잠도 자지 않았느니라. 이레가 지난 뒤에야 보살은 비로소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고 큰 법륜(法輪)을 굴리셨느니라.
범천아, 나는 그 때에 부처님의 법 가운데에 뛰어난 믿음을 일으켜 집을 버리고 출가하면서, ‘원컨대 제가 미래에 역시 정각을 이루되 지금과 다름이 없게 하여지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범천아, 그 부처님ㆍ세존께서는 내가 발심하여 용맹스럽게 정진해서 위없는 보리를 감당해 내고 짊어질 수 있음을 아시고 곧 나에게 수기(授記)하시며 말씀하셨느니라.
‘너는 미래에 한량없는 겁을 지나 부처님이 되리니, 명호는 방광(放光)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이라 하리라. 네 최후의 몸을 낳아 주실 아버지는 제화광(祭火光)이라는 전륜성왕이니, 곧 태어난 세상에서 출가하여 수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변각을 이루리라.’
범천아, 나는 그 때에 보살 대중 십사 인과 함께 있었느니라. 우리는 십사 년 동안 함께 하면서 오로지 이 다라니의 저 수승만 삼매를 독송하였고, 여래가 십사 년 동안에 널리 연설한 바는 오직 한 법의 구절만이 있었을 뿐이니라. 우리들은 이 법구(法句)의 뜻을 듣자마자 바로 물러서지 않는 인[不退轉忍]을 얻게 되었으며, 이 인 때문에 다시는 온갖 번뇌의 두려움이 없어졌느니라.
범천아, 그 때에 그 여래는 십사 인의 보살들을 위하여 십사 년 동안 교화하고 성숙시키어 물러서지 않는 지위[不退轉地]에 머무르게 하였으며, 파괴되지도 않고 동요되지도 않음이 마치 금강(金剛)처럼 그 마음이 견고하였고, 뭇 선(善)으로 마음을 훈수(熏修)하였으므로 모든 법 가운데서 물러서지 않음[不退轉]을 얻었느니라.’
그 때에 그 범천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이미 저 모든 보살의 물러서지 않는 행(行)을 알았사오나 아직도 이 다라니의 수다라에서 말씀하시는 한 구절 문[一句門]은 자세히 알지 못하옵니다. 그 뜻이 어떤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수다라의 한 구절 문이란 곧 여래장(如來藏)이니라. 이 한 구절 문을 만일 자세히 설한다면,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소리와 음악이라 하여도 이른바 사천왕(四天王)의 소리ㆍ도리천(忉利天)의 소리ㆍ야마천(夜摩天)의 소리ㆍ도솔천(兜率天)의 소리ㆍ화락천(化樂天)의 소리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소리 내지 마왕 궁전의 일체 모든 소리가 모두 법음(法音)이 되어서 이 한 구절을 연설한다 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한 구절 문을 말미암아서 불장(佛藏)의 깊고도 넓고 큰 것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니라.
범천아, 이 여래장은 넓고 크고 한량없고 끝이 없고 가없고 다할 수 없나니, 만일 널리 설한다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청정하고 안온하고 즐겁게 해서 옛날에 얻지 못한 것을 이제 모두 얻게 하나니, 이것은 모두가 여래장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11. 삼승교품(三乘敎品)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대중 가운데서 한 바라문의 아들 비사거(毘舍佉)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너 비사거야, 만일 성문의 사람[聲聞人]이 무릇 교화하려 할 적에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뻐하게 할 수 있겠느냐? 먼저 마땅히 스스로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을 청정하게 하고 서원을 세워 정진하면서 법의 이치[法義]를 잘 배우며 언제나 깊이 사유해 지혜를 성취해야 하나니, 그러한 뒤에야 남을 교화하면서 기뻐하게 하고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느니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로 하여금 그 이치 가운데서 분별하게 해설할 수 없나니, 응당 이와 같이 머무르고 이와 같이 기억하며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일 지혜가 없으면 곧 훌륭히 배운 것이 아니니, 오히려 자기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다른 이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비사거야, 비유하면 마치 세간의 뿔을 베어 버린 황소는 싸우는 일이 없나니, 이미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또한 다른 것도 지키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싸울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비사거야, 만일 사문과 바라문 등 모든 중생들은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이치를 사유할 수도 없고 설한 대로 행하지도 못하며 다른 이를 위하여 담설(談說)하거나 의론(議論)할 수도 없나니, 왜냐하면, 지혜가 없기 때문이니라. 다만 교만만이 있고 아소(我所)의 마음만을 더할 뿐이어서 자신과 남의 선법(善法)이 모두 다 손상되고 줄어드느니라.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는 교만을 일으키지도 않고 아소의 마음도 없으며, 아상(我想)이 생기지도 않고 또한 집착도 없어서 자기 몸을 탐하지도 않느니라. 왜냐하면 성제(聖諦)를 보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지 않고, 악한 독[惡毒]이 소멸하였기 때문에 쟁론(諍論)도 없으며, 원적(怨賊)을 여의었기 때문에 아소의 마음도 없고, 자신을 칭찬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의 번뇌가 제거되어서 다른 생각 없이 오직 인연을 관할 뿐이며,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십이인연의 온갖 나고 없어지는 것을 관하게 하느니라.
비사거야, 이것을 곧 성문의 행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신업ㆍ구업ㆍ의업을 잘 보호하고 지키며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세 가지 허물[三過]을 멀리 여의게 한다고 하느니라.
또한 비사거야, 벽지불의 사람은 곧 그렇지 못해서 설하는 생각[說想]이 없어서 다만 자기 자신만이 깨달을 뿐 다른 이를 가르칠 수 없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이 사람은 큰 서원[大願]과 심오한 행[深行]을 끓고 오직 고요함[寂靜]만을 좋아하면서 중생 교화하기를 원하지 않는 탓에 한결같이 모든 법을 널리 연설하지 못하고 또한 선악의 업보[善惡業報] 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생사의 허물이나 우환, 열반의 안락함도 모두 해설하지 못하고 오직 다른 이의 마음만을 관(觀)해서 원하고 구함[樂欲]이 있는 것만을 알 뿐이다. 그래서 신통 변화를 널리 나타내고 장애 없이 자재해서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이해하게 하고, 만물의 복전(福田)이 되어 큰 공덕을 낳아서 그 원하는 바에 따라 즉각 능히 이루고 원만하게 하나니, 성문의 사람보다 수승한 것은 자재한 신통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니라.
비사거야, 그도 역시 장부(丈夫)라서 과거의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욕심 부리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少欲知足]을 닦아 익혔기 때문에 지금 이와 같은 행(行)과 이와 같은 업(業)과 이와 같은 원(願)이 있나니, 본래의 서원 때문에 불법에서는 다만 조그마한 부분을 취했을 뿐이고 오직 신통만을 나타내서 마땅함에 따라 이롭게 할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설법하여 사람을 제도해서 남을 기뻐하게 할 수는 없느니라.
비사거야, 이 사람은 다만 저 법을 스스로 깨달았을 뿐이니, 이 때문에 설법하거나 교화할 수가 없느니라. 그러나 그도 역시 이와 같은 방편이 있는지라 중생을 가엾이 여겨 신통을 나타내 보여서 선근을 낳으니, 세간에 만일 부처님이 없으면 세간에 머무르거니와 만일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면 곧 멸도(滅度)를 취하느니라. 이 사람이 세간에 나와 있을 때에는 스승의 가르침[師敎]이 없으므로 오직 자기 힘만으로 출가하여 수행하였으며, 오직 마음속으로 사유하다가 스스로 증득하고 깨닫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저 성문의 복전보다는 수승하느니라.
비사거야, 이것이 바로 벽지불이 행한 바의 일이니라.
또한 비사거야, 중생을 교화하겠느냐? 나는 이제 보살이 배우는 처소[學處]를 간략하게 해설하겠느니라. 모든 보살은 스스로 배우게 된 곳에서 먼저 세간에 있는 모든 번뇌의 법[漏法]은 곧 유위(有爲)로서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일어나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생각 생각 스스로 소멸하지만 그 본래의 성품[本性]은 공하고 고요하다[空寂]고 보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알고 나서는 온갖 중생을 기뻐하게 하기 위하여 응당 먼저 자신이 육바라밀을 행하여야 하고, 또한 중생의 교화는 육바라밀을 행하게 하고 간탐과 집착을 버리게 하는데, 그가 만일 보살에게 줄 물건이 없다면 권하여 보시를 행하게 해서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게 해야 하느니라.
또한 지계(持戒)로써 타이르면서 열어 보이는데, 이처럼 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의 모든 바라밀 등을 보살마하살은 언제나 부지런히 행하여야 하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보살행(菩薩行)을 닦아 배우게 한 뒤에는 몸과 마음이 기쁘고 또한 중생의 몸과 마음도 기뻐하게 하나니, 저 보살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와 같이 부지런한 정진의 마음을 버리지 않느니라.
또한 저 보살은 자비가 많고 정진하는 힘 때문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그로부터 배우기를 원하면서 모두가 ‘우리들은 언제 이와 같은 행(行)을 얻게 될까?’라고 생각하느니라.
비사거야, 위로 모든 하늘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모두가 저 장부의 행을 즐거워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그러므로 너희들은 응당 부지런히 대장부(大丈夫)의 행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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