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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85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20권

by Kay/케이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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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20

 

 

대방광불화엄경 제20권

우전국(于闐國) 삼장(三藏)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이운허 번역

21. 십행품 ②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집착 없는 행[無著行]인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찰나찰나마다 아승기 세계에 들어가서 아승기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되 모든 세계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아승기 여래께서 계신 데 나아가 공경하고 예배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아승기 꽃과 아승기 향과 아승기 화만과 아승기 바르는 향과 가루향이며, 의복과 보배와 당기와 깃발과 일산과 모든 장엄거리를 각각 아승기로써 공양하나니, 이렇게 공양하는 것은 지음이 없는 법을 끝내기 위함이며 부사의한 법에 머물기 위한 연고입니다.
잠깐잠깐 동안에 수없는 부처님을 뵙되 부처님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 세계에도 집착이 없고, 부처님 잘 생긴 몸매에도 집착이 없고,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데도 집착이 없으며, 시방의 세계와 부처님과 보살과 모인 대중에게도 집착이 없고, 불법을 듣고는 환희한 마음을 내고 뜻과 힘이 광대하여, 모든 보살의 행을 능히 가지고 능히 행하면서도 부처님 법에 집착함이 없습니다.
이 보살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말할 수 없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흥하심을 보고, 낱낱 부처님 계신 데서 섬기고 공양하기를 말할 수 없는 겁이 다하도록 하더라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으며, 부처님을 뵈옵고 법을 듣고 보살과 모인 대중의 장엄을 보더라도 다 집착함이 없으며, 부정한 세계를 보고도 미워하는 생각이 없나니,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이 부처님 법과 같이 관찰하는 연고니, 불법 가운데는 때 묻음도 없고 깨끗함도 없고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고 다름도 없고 하나도 없고 진실함도 없고 허망함도 없고 편안함도 없고 험난함도 없고 바른 길도 없고 삿된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이렇게 법계에 깊이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되 중생에게 집착을 내지 않고, 모든 법을 받아 지니되 모든 법에 집착을 내지 않고, 보리심을 내어
부처님 머무시는 데 머물되 부처님 머무시는 데 집착을 내지 않고, 비록 말을 하나 말에도 집착함이 없고, 삼매를 알아서 들어가고 머무르되 삼매에 집착함이 없고, 한량없는 부처님 국토에 나아가 들어가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그 가운데 머물기도 하되 부처님 국토에 집착함이 없고, 버리고 갈 적에도 그리워하지 아니합니다.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렇게 집착함이 없는 연고로 불법 가운데 마음이 장애되지 아니하며, 부처님의 보리를 알고 법의 비니(毘尼)를 증득하고 부처님 정교(正敎)에 머무르며, 보살의 행을 닦고 보살의 마음에 머물고 보살의 해탈법을 생각하면서도 보살의 머무는 곳에 물들지 아니하고 보살의 행하는 데에 집착함이 없이, 보살의 도를 청정케 하여 보살의 수기를 받습니다.
보살은 수기를 받고는 생각하기를, ‘범부가 우치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신심이 없고 이해가 없고 총명하고 민첩한 행이 없으며, 완악하고 어리석어 생사에 헤매면서, 부처님 뵙기를 구하지 않고 밝은 곳으로 인도함을 따르지 않고 조어(調御)함을 믿지 않으므로 아득하고 잘못되어 험난한 길에 들어가는 것이며, 십력(十力)을 가지신 이를 공경하지 않고, 보살의 은혜를 알지 못하며, 머무른 곳에만 탐착하여 모든 법이 공하다 함을 듣고는 공포한 마음을 내며, 바른 법을 떠나고 삿된 법에 머물며, 평탄한 길을 버리고 험난한 길에 들어가, 부처님 뜻을 등지고 마군의 뜻을 따르면서 모든 있는 데서 굳게 집착하고 버리지 못한다’고 이렇게 중생을 관찰하고는 대비심을 증장하여 모든 선근을 내면서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그때에 또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한 중생을 위하여 시방세계의 낱낱 국토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내면서 교화하여 성숙케 할 것이며, 한 중생을 위하는 것 같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서도 그와 같이 할 것이요, 마침내 이것을 위하여 싫거나 고달픈 마음을 내어 그냥 버려 두고 다른 데 가지 아니할 것이며, 또 털 끝으로 법계를 두루 재면서 한 털 끝만한 곳에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며, 한 털 끝만한 곳에서와 같이 낱낱 털 끝만한 곳에서도 그와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내지 ‘손가락 한 번 튀기는 동안이라도 나라는 데 집착하여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란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낱낱
털 끝만한 곳에서마다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보살의 행을 닦아도 몸에 집착하지 않고 법에 집착하지 않고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소원에 집착하지 않고 삼매에 집착하지 않고 관찰에 집착하지 않고 고요한 선정에 집착하지 않고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는 데 집착하지 않으며, 다시 법계에 들어가는 데도 집착하지 않으리라’고 하나니, 무슨 연고인가. 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일체 법계가 요술과 같은 줄 관하며, 모든 부처님이 그림자 같고 보살의 행이 꿈과 같고 부처님의 법을 말함이 메아리 같은 줄 관하며, 일체 세간이 화현과 같으니 업보로 유지되는 연고며, 차별한 몸이 요술과 같으니 행의 힘으로 일으킨 연고며, 일체 중생이 마음과 같으니 가지가지로 물든 연고며, 일체 법이 실제(實際)와 같으니 변할 수 없는 연고임을 관하리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허공이 끝나고 법계에 두루한 시방의 국토에서 보살의 행을 행하며, 찰나찰나마다 일체 불법을 분명히 통달하고 바른 생각이 앞에 나타나 집착이 없으리라’고 합니다.
보살이 어떻게 몸이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관하고 부처님 보기를 걸림없이 하며, 중생을 교화하려고 법을 연설하여 그로 하여금 부처님 법에 한량없는 즐거움과 청정한 신심을 내게 하며, 모든 이들을 구호하되 고달프거나 싫은 생각이 없습니다.
고달픈 생각이 없으므로 모든 세계에서 중생이 성취하지 못하였거나 조복하지 못한 데가 있으면, 그곳에 나아가 방편으로 교화하여 제도하되, 그 가운데 중생이 가지가지 음성과 가지가지 업과 가지가지 집착과 가지가지 시설(施設)과 가지가지 화합이며, 가지가지로 헤매임[流轉]과 가지가지 지음[所作]과 가지가지 경계와 가지가지로 태어나고 가지가지로 죽는 것들을, 큰 서원으로 그 가운데 편안히 있어서 교화하되, 그 마음이 변동하거나 퇴전치 않게 하며, 잠깐이라도 물드는 생각을 내지 아니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집착함이 없고 의지한 데가 없으므로 자기를 기억하고 다른 이를 이익케 함이 청정하고 만족함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일곱째 집착 없는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얻기 어려운 행[難得行]인가.
이 보살이 얻기 어려운 선근과 굴복하기 어려운 선근과 가장 승한 선근과 깨뜨릴 수 없는 선근과 지나갈 이 없는 선근과 헤아릴 수 없는 선근과 다하지 않는 선근과 힘이 자재한 선근과 큰 위덕 있는 선근과 모든 부처님과 성품이 같은 선근을 성취하였으니,
이 보살이 모든 행을 닦을 적에 불법 중에서 가장 나은 이해를 얻고, 부처님 보리에서 넓고 큰 이해를 얻고, 보살의 서원에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일체 겁이 다하여도 게으른 마음이 없으며, 모든 고통에 싫은 생각을 내지 않고, 모든 마군이 동요하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바며, 모든 보살의 고행(苦行)을 구비하게 행하고, 보살의 행을 닦되 꾸준하여 게으르지 아니하며, 대승에 대한 소원이 퇴전하지 아니합니다.
이 보살이 이 얻기 어려운 행에 편안히 머물고는, 생각생각마다 아승기겁에 나고 죽음을 자주 변하면서도 보살의 대원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만일 어떤 중생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거나, 내지 보고 듣기만 하여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치 아니합니다.
이 보살이 비록 중생이 있는 것 아닌 줄을 알지만, 일체 중생들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마치 뱃사공이 이 언덕에 머물지도 않고 저 언덕에 머물지도 않고 중류(中流)에 머물지도 아니하면서, 이 언덕 중생을 건네어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나니 왕래하여 쉬지 아니하는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생사에 머물지도 않고 열반에 머물지도 않고 생사 가운데 흐름에 머물지도 아니하면서, 이 언덕 중생을 건네어 저 언덕의 편안하고 두려움이 없고 근심이 없고 시끄러움이 없는 곳에 두지만, 중생의 수효에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한 중생을 버리고 여러 중생에 집착하지도 아니하고, 여러 중생을 버리고 한 중생에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중생계가 더하지도 않고 중생계가 감하지도 않으며, 중생계가 나지도 않고 중생계가 멸하지도 않으며, 중생계가 다하지도 않고 중생계가 자라지도 않으며, 중생계를 분별하지도 않고 중생계를 둘로 하지도 않습니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보살이 중생계가 법계와 같은 데 깊이 들어가서 중생계와 법계가 둘이 없게 되나니, 둘이 없는 법에는 더함도 없고 감함도 없고 나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취함도 없고 의지함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둘도 없나니, 왜냐 하면 보살이 일체 법과 법계가 둘이 없음을 아는 연고입니다.
보살이 이렇게 좋은 방편으로 깊은 법계에 들어가고는, 모양이 없는 데 머물러서 청정한 모양으로 그 몸을 장엄하며, 법의 성품이 없음을 알지만 일체 법의 모양을 분별하며, 중생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중생의 수를 알며, 세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부처님 세계에 몸을 나타내며, 법을 분별하지 않으면서도 부처님 법에 잘 들어가며, 이치를 깊이 통달하고도 말로 가르침을 자세히 연설하며, 일체 법이 탐욕을 여읜 진실한 짬[眞際]을 알면서도 보살의 도를 끊지 아니하고 보살의 행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다함이 없는 행을 닦아서 자재하게 청정한 법계에 들어갑니다.
비유컨대 나무를 비비어 불을 내거든 불타는 일이 한량없으나 불은 꺼지지 아니하나니,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다함이 없으나 세간에 있어서 항상 머물고 멸하지도 않습니다.
구경(究竟)도 아니고 구경 아님도 아니며, 집착도 아니고 집착 아님도 아니며, 의지도 아니고 의지 없음도 아니며, 세상 법도 아니고 부처님 법도 아니며, 범부도 아니고 과를 얻은 것도 아닙니다.
보살이 이러한 얻기 어려운 마음을 성취하고 보살행을 닦을 때에 이승법(二乘法)도 말하지 않고 부처님 법도 말하지 않고 세간도 말하지 않고 세간법도 말하지 않고 중생도 말하지 않고 중생 없음도 말하지 않고 때 묻은 것도 말하지 않고 깨끗한 것도 말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보살은 일체 법이 물들지도 않고 집착도 없고 전변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음을 아는 연고며, 보살이 이렇게 적멸하고 미묘하고 매우 깊고 가장 승한 법 가운데서 수행할 때에 ‘내가 현재에 이 행을 닦고 이미 이 행을 닦았고 장차 이 행을 닦으리라’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온(薀)ㆍ계(界)ㆍ처(處)에 집착하지 않고, 안 세간ㆍ바깥 세간ㆍ안팎 세간과 일으킨 큰 소원의 바라밀과 일체 법에도 모두 집착이 없었으니, 왜냐 하면 법계 중에는 어떤 법이 성문승에 향한다, 독각승에 향한다 이름할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이 보살승에 향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한다 이름할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이 범부 세계에 향한다 할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이 물드는 데 향한다, 깨끗한 데 향한다, 생사에 향한다, 열반에 향한다 할 것이 없는 연고이고 모든 법이 둘도 없고 둘이 아님도 없는 연고입니다.
마치 허공을 시방에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나, 그러나 허공이 없는 것이 아니니, 보살도 그와 같아서 일체 법이 모두 얻을 수 없음을 관찰하거니와, 그러나 일체 법이 없지도 아니하여 실상과 같고 다르지 아니하며, 짓는 일을 잃지 않고 보살의 행을 수행함을 보이며, 큰 원력을 버리지 않고 중생을 조복하며, 정법의 수레를 운전하여 인과 과를 무너뜨리지 아니하여,
평등하고 묘한 법에도 어기지 아니하며, 삼세의 여래들과 더불어 평등하여 부처의 종성을 끊지 않고 실상을 깨뜨리지 아니하며, 법에 깊이 들어가 변재가 다하지 않으며, 법을 듣고 집착하지 않으나 법의 깊은 데까지 이르러 잘 열어 연설하매 두려운 마음이 없으며, 부처님 머무는 데를 버리지 아니하고 세상 법을 어기지 아니하며, 세간에 두루 나타나되 세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이렇게 얻기 어려운 지혜의 마음을 성취하고는 모든 행을 닦으면서, 세 삼악취(三惡趣)에서 중생들을 뽑아내어 교화하고 조복하여 삼세의 부처님 도에 편안히 두고 동요치 않게 하며, 생각하기를 ‘세간의 중생들이 은혜 갚을 줄을 알지 못하고 원수로 상대하며, 삿된 소견에 집착하여 미혹하고 뒤바뀌며,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신심이 없고 나쁜 벗을 따라 나쁜 생각을 일으키며, 탐욕과 애착과 무명과 가지가지 번뇌가 모두 가득하였으니, 이것이 내가 보살행을 닦을 만한 곳이로다. 설사 은혜를 알고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선지식이 세간에 가득하다면 나는 이 가운데서 보살행을 닦지 아니할지니, 왜냐 하면 나는 중생에게 대하여 친하고 섬길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으며, 내지 실 한 오리, 풀 한 졸가리를 구하거나 칭찬하는 말 한마디를 구함도 아니며,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보살행을 닦으면서도 한 번도 내 몸을 위하지 아니하였고, 다만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청정케 하고 영원히 뛰어나게 하려는 것이로다’라고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중생들을 지도하는 이는 으레 그러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구하는 것도 없으며, 다만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의 도를 닦으며, 그들로 하여금 편안한 저 언덕에 이르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여덟째 얻기 어려운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법을 잘 말하는 행[善法行]인가.
이 보살은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마군ㆍ범천ㆍ사문ㆍ바라문ㆍ건달바 들을 위하여 청량한 법 못[法池] 이 되어 바른 법을 거두어 지니어서 부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합니다.
청정한 광명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법을 말하고 수기하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뜻을 구족한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뜻을 말하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실상 법을 깨닫는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법을 말하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훈고하여 해석하는 말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언사[辭]의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끝이 없는 글 구절과
다함 없는 뜻의 걸림없는 문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걸림없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부처님의 관정 다라니를 얻어 정수리에 물을 부었으므로 환희케 하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남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광명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같은 말 하는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같은 말을 하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가지가지 뜻과 구절과 글을 훈고 해석하는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훈고하는 변재가 다함이 없으며, 끝이 없이 돌아가는 다라니를 얻었으므로 끝이 없는 변재가 다함이 없습니다.
이 보살은 대비심이 견고하여 중생들을 널리 거두어 주는데, 삼천대천세계에서 몸을 금빛으로 변하여 불사를 지으며, 중생들의 근성과 욕락을 따라서 길고 넓은 혀로써 한 음성에 한량없는 소리를 나타내어 때에 맞추어 법을 말하여 환희케 합니다.
가령 말할 수 없는 가지가지 업보로 생긴 무수한 중생들이 한 곳에 모였으며, 그러한 모임이 엄청나게 말할 수 없는 세계에 가득하였거든, 보살이 그 모인 이들 가운데 앉았을 적에, 그 모임에 있는 중생들이 낱낱이 말할 수 없는 아승기 입을 가졌고, 그 입마다 백천억 나유타 음성을 내어 한꺼번에 말하는데, 말이 각각 다르고 묻는 일이 각각 다른 것을, 이 보살이 한 생각 동안에 모두 알아 듣고 따로따로 대답하여 그들의 의혹을 덜어주며, 한 모임에서와 같이 말할 수 없는 모임에서도 모두 그와 같이 합니다.
또 가령 한 털 끝만한 곳에서, 잠깐잠깐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도량에 모인 대중을 내듯이, 일체의 털 끝만한 곳에서도 그와 같이 내기를, 오는 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저 겁은 다한다 하여도 대중의 모임은 다함이 없나니, 이러한 모임의 대중들이 잠깐잠깐마다 제각기 다른 말로써 제각기 다르게 질문하더라도, 보살은 한 생각 동안에 모두 다 알아 들으면서, 두려움도 없고 겁도 아니 나고 의심도 없고 잘못 아는 일도 없어, 이렇게 생각 합니다.
‘가령 일체 중생이 모두 이와 같은 말로써 한꺼번에 나에게 묻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법을 말하되 끊임도 없고 다함도 없으며, 그로 하여금 환희하여 선한 도[善道]에 머물게 하며, 또 그들로 하여금 온갖 말을 잘 알아서 중생에게 가지가지 법을 말하되 말에 대하여 조금도 분별함이 없을 것이며, 가령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가지가지 말로써
와서 문난하더라도, 한 생각에 다 알고 한 음성으로 모두 대답하여 모두 깨닫게 하고 남음이 없게 하리라’고 하나니, 온갖 지혜로 관정(灌頂)함을 얻은 연고며, 걸림없는 장(藏)을 얻은 연고며, 온갖 법의 원만한 광명을 얻은 연고며, 온갖 지혜의 지혜를 구족한 연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선법행에 편히 머물고는, 능히 스스로 청정하고, 역시 집착이 없는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면서도, 중생이 벗어나는 일이 있음을 보지 아니하며, 이 삼천대천세계에서와 같이, 내지 말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서 몸을 금색으로 변하고 묘한 음성을 구족하여 온갖 법에 장애함이 없이 불사를 짓습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몸을 성취하는데, 이른바 그지없는 법계에 들어가는 모든 갈래가 아닌 몸이니 일체 세간을 멸하는 연고며, 그지없는 법계에 들어가는 모든 갈래의 몸이니 일체 세간에 나는 연고며, 나지 않는 몸이니 남이 없이 평등한 법에 머무는 연고며, 멸하지 않는 몸이니 일체의 멸함을 말로 할 수 없는 연고며, 진실하지 않은 몸이니 실상과 같음을 얻은 연고며, 허망치 아니한 몸이니 마땅한 대로 나타내는 연고며, 변천하지 않는 몸이니 여기서 죽어 저기 나는 일을 여읜 연고며, 무너지지 않는 몸이니 법계의 성품이 무너짐이 없는 연고며, 한 모양 몸이니 삼세의 말할 길[語言道]이 끊어진 연고며, 모양 없는 몸이니 법의 모양을 잘 관찰하는 연고입니다.
보살이 이러한 열 가지 몸을 성취하고는, 일체 중생의 집이 되나니 모든 선근을 기르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구호함이 되나니 그로 하여금 크게 편안함을 얻게 하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돌아갈 데가 되나니 그들의 의지할 곳이 되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지도자가 되나니 위없이 벗어나게 하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스승이 되나니 진실한 법에 들게 하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등불이 되나니 그들로 하여금 업보를 환히 보게 하는 연고며, 일체 중생의 빛이 되나니 깊고 묘한 법을 비추게 하는 연고며, 일체 삼세의 횃불이 되나니 실상 법을 깨닫게 하는 연고며, 일체 세간의 비침이 되나니 광명한 땅 속에 들게 하는 연고며, 일체 갈래의 밝음이 되나니 여래의 자재함을 나타내는 연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아홉째 법을 잘 말하는 행이라 하나니,
보살이 이 행에 머무르면, 일체 중생을 위하여 청량한 법 못[法池]이 되어 일체 불법의 근원을 다하는 연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진실한 행[眞實行]인가.
이 보살이 제일되는 진실하고 참된 말을 성취하여 말한 대로 능히 행하고 행하는 대로 능히 말합니다.
이 보살이 삼세 부처님들의 진실한 말을 배우며, 삼세 부처님들의 종성에 들어가며, 삼세의 부처님들과 선근이 동등하며, 삼세 부처님들의 두 가지 없는 말을 얻으며, 여래를 따라 배워서 지혜가 성취하였습니다.
이 보살이 중생의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아는 지혜와, 근성이 이롭고 둔함을 아는 지혜와 가지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와 가지가지 이해[解]를 아는 지혜와, 온갖 곳에 이르러 갈 길을 아는 지혜와,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의 때 묻음과 깨끗함이 일어나는 때와 때 아님을 아는 지혜와 온갖 세계에서 지난 세상에 머물던 일을 기억함에 따라 아는 지혜와, 천안통의 지혜와 누진통(漏盡通)의 지혜를 성취하고도 일체의 보살행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청정케 하려는 연고입니다.
이 보살은 이러한 더 나아가는 마음[增上心]을 다시 냅니다.
‘내가 만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해탈도에 머물게 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면, 이것은 나의 본래의 소원[本願]에 어기는 것이니, 마땅하지 못한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와 무여열반을 얻게 한 뒤에 성불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중생들이 나에게 청하여서 발심한 것이 아니고, 내가 중생에게 청하지 않은 벗이 되더라도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만족하여 온갖 지혜를 이루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승하니 일체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연고며, 내가 가장 높으니 위없는 지도하는 지위에 있는 연고며, 내가 가리움을 여의었으니 중생의 끝이 없음을 아는 연고며, 내가 이미 찬탄하였으니 본래의 소원을 성취한 연고며, 내가 잘 변화함이니 보살의 공덕으로 장엄한 연고며, 내가 좋은 의지가 되나니 삼세의 부처님들이 거두어 주시는 연고니라.’
이 보살마하살이 본래의 소원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위없는 지혜의 장엄에 들어가서, 중생들을 이익하여 만족케 하며 본래의 소원을 따라 모두 끝까지 이르게 하였으며,
일체 법 가운데서 지혜가 자재하며 모든 중생을 두루 청정케 하며, 찰나찰나마다 시방세계에 두루 노닐며, 찰나찰나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에 두루 나아가며, 찰나찰나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장엄과 청정한 국토를 다 보며, 여래의 자재하신 신통의 힘을 나타내어 법계와 허공계에 두루 가득합니다.
이 보살이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어 세간에 두루 들어가되 의지함이 없으며, 그 몸 가운데 모든 세계와 모든 중생과 모든 법과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며, 이 보살이 중생의 가지가지 생각과 가지가지 욕망[欲]과 가지가지 이해와 가지가지 업보와 가지가지 선근을 알고, 적당한 대로 몸을 나타내어 조복하며, 모든 보살이 요술과 같고 온갖 법이 변화와 같고 부처님의 출세하심이 그림자와 같고 일체 세간이 꿈과 같음을 관찰하며, 뜻[義身] 과 소리[文身] 들이 무진장함을 얻고 바른 생각이 자재하여 일체 법들을 결정적으로 알며, 지혜가 가장 승하여 모든 삼매의 진실한 모양에 들어가니, 한 성품이요 둘이 아닌 자리에 머무름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이 모두 둘에 집착함을 말미암아, 대비에 머물러서 이렇게 적멸한 법을 닦아 행하며, 부처님의 십력을 얻어 인다라 그물 같은 법계에 들어가고, 여래의 걸림없는 해탈을 성취하여 사람 중에 영특한 이로서 큰 사자후로 두려움이 없어 걸림없고 청정한 법 수레를 운전하며, 지혜의 해탈을 얻어 일체 세간의 경계를 알고, 생사의 소용돌이를 끊고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 모든 중생을 위하여 삼세 부처님들의 바른 법을 보호하여 지니고 일체 부처님 법 바다의 실상인 근원에 이르릅니다.
보살이 이 진실한 행에 머물고는,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ㆍ마군ㆍ범천ㆍ사문ㆍ바라문ㆍ건달바ㆍ아수라들로서 친근하는 이는 모두 마음이 열리어 깨달아 환희하고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째 진실한 행이라 합니다.”
이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시방에 각각 부처 세계의 티끌 수 세계들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이른바 흔들흔들ㆍ두루 흔들흔들ㆍ온통 두루 흔들흔들ㆍ들먹들먹ㆍ두루 들먹들먹ㆍ온통 두루
들먹들먹ㆍ울쑥불쑥ㆍ두루 울쑥불쑥ㆍ온통 두루 울쑥불쑥ㆍ우르르ㆍ두루 우르르ㆍ온통 두루 우르르ㆍ와르릉ㆍ두루 와르릉ㆍ온통 두루 와르릉ㆍ와지끈ㆍ두루 와지끈ㆍ온통 두루 와지끈이며, 하늘 꽃ㆍ하늘 향ㆍ하늘 가루향ㆍ하늘 화만ㆍ하늘 옷ㆍ하늘 보배ㆍ하늘 장엄거리를 비내리며, 하늘 음악을 연주하고 하늘 광명을 놓고 하늘의 미묘한 음성으로 화창하게 연설하였다.
이 세계의 야마천궁(夜摩天宮)에서 십행(十行)의 법을 말하면서 나타내는 신통 변화와 같이, 시방세계에서도 다 그러하였다.
다시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시방으로 각각 십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세계 밖에 있는 십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보살들이 함께 이 국토에 와서 시방에 가득 차 있으면서, 공덕림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시여, 잘 하십니다. 보살의 행을 잘 연설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름이 같으니 공덕림(功德林)이요, 우리가 있는 세계의 이름은 모두 공덕 당기[功德幢]요, 그 세계의 여래께서는 다 명호가 보공덕(普功德)이신데, 우리들의 부처님 계신 데서도 이 법문을 말씀하며, 모인 대중과 권속과 말과 이치가 모두 여기서와 같아서 더하거나 덜함이 없습니다.
불자시여, 우리들은 다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고 이 회상에 와서 당신들을 위하여 증명하는 것이며, 시방세계에서도 다 그와 같습니다.”
이때 공덕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의 일체 회중과 법계를 두루 관찰하고는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보살의 종성이 청정케 하고자, 서원의 종성이 퇴전하지 않게 하고자, 행의 종성이 항상 계속케 하고자, 삼세의 종성이 다 평등케 하고자, 삼세 일체 부처님의 종성을 거두어 붙들고자, 심은 바 모든 선근을 연설하고자, 모든 근성과 욕망과 이해와 번뇌와 습성과 마음으로 행하고 짓는 일을 관찰하고자, 일체 부처님의 보리를 비치어 알기 위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열 힘 가진 높은 이와, 때 여의고
청정하여 걸림없이 보시는 이와
경계가 깊고 멀어 짝할 이 없고
공한 도에 머문 이께 경례합니다.

지난 세상 인간 중에 가장 승하고
공덕이 한량없고 집착 없으며
용맹하고 제일이고 짝이 없으니
티끌을 여읜 이가 이 길[道] 행하고.


지금 세상 시방의 여러 국토에
첫째 뜻을 잘 펴서 연설하시며
모든 허물 여의고 가장 청정해
의지한 데 없는 이가 이 길 행하고.
오는 세상 인간 중에 사자이신 이
온 법계에 두루 돌아다니시면서
부처님의 대비심을 이미 냈으니
이익하는 저 이가 이 길 행하고.

삼세에 계시는 비길 이 없는 분
저절로 어리석음 제해 버리고
온갖 법에 모두 다 평등하시니
큰 힘을 얻은 이가 이 길 행하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모든 세계의
온갖 것과 모든 갈래 두루 다 보며
보고는 그 마음에 분별 없나니
동요하지 않는 이가 이 길 행하고.

법계에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제일가는 이치가 가장 청정해
진심(瞋心)ㆍ교만ㆍ어리석음 길이 파하니
저 공덕 갖춘 이가 이 길 행하고.

여러 가지 중생을 잘 분별하고
법계의 참 성품에 모두 들어가
다른 이 의지 않고 제가 깨달아
허공과 평등한 이 이 길 행하고.

온 허공에 널려 있는 모든 국토에
모두 가서 법을 말해 알게 하시매
말씀이 청정하여 깰 이 없나니
승하고 고요한 이 이 길 행하고.
구족하고 견고하여 퇴전치 않아
가장 좋고 존중한 법 성취하나니
원력이 그지없고 저 언덕에 가
수행을 잘하는 이 행하시는 길.

한량없고 그지없는 이 땅덩이의
넓고 크고 깊고깊은 미묘한 경계
모두 다 알고 보고 남음 없나니
논리의 사자왕이 행하시는 길.

일체의 구절과 뜻 분명히 알고
여러 가지 논리를 모두 굴복하고
교법(敎法)에 결정하여 걸림없나니
저 크게 고요한 이 이 길 행하고.

세간의 모든 걱정 멀리 여의고
중생들께 편안한 낙 널리 주어서
같을 이 없이 크신 도사 능히 되나니
승한 공덕 가진 이 이 길 행하고.

두려움 없으므로 중생에게 주어
모든 이로 하여금 기쁘게 하되
그 마음 청정하여 혼탁 없나니
동등할 이 없는 이가 이 길 행하고.


마음이 청정하여 조화 잘 되고
모든 희롱 여의어 말이 점잖고
위의가 원만하여 대중이 흠앙하니
가장 훌륭한 이가 이 길 행하고.
진실한 뜻에 들어 저 언덕 가고
공덕에 머물러서 마음도 고요
부처님 호념하사 잊지 않나니
모든 유(有)를 멸한 이 이 길 행하고.

나를 멀리 여의어 시끄럼 없고
항상 큰 음성으로 바른 법 말해
시방의 모든 국토 두루했으니
비유할 수 없는 이 이 길 행하고.

보시바라밀을 이미 만족하고
백 가지 복된 상호로 장엄했으매
중생들 보는 이가 모두 기뻐해
가장 승한 지혜가 이 길 행하고.

지혜의 깊은 곳에 들기 어려워
묘한 지혜로서야 잘 머무나니
그 마음 필경까지 동요치 않아
수행 견고한 이가 이 길 행하고.

법계에 간 데마다 다 들어가며
들어가는 곳에는 끝까지 가서
신통이 자재하여 다 포함하니
법의 광명 가진 이 이 길 행하고.

같을 이 없이 같은 대모니(大牟尼)께서
부지런히 삼매 닦아 두 모양 없고
마음은 정에 들어 적정 즐기니
두루 다 보는 이가 이 길 행하고.
미세하고 광대한 여러 국토가
서로서로 들어가도 각기 차별해
그러한 경계들을 모두 아나니
저 지혜의 산왕(山王)이 이 길 행하고.

뜻은 항상 깨끗하여 때를 여의고
삼계에서 조금도 집착이 없어
모든 계율 지니고 저 언덕 가니
마음 깨끗한 이가 이 길 행하고.

지혜가 끝이 없고 말할 수 없어
법계와 허공계에 가득하거늘
잘 닦아 배우고서 거기 있나니
금강 지혜 있는 이 이 길 행하고.

삼세 일체 부처님 깊은 경계에
지혜로 잘 들어가 두루하고서
잠깐도 피로한 맘 내지 않나니
가장 수승한 이가 이 길 행하고.

열 가지 지혜의 힘 잘 분별하고
온갖 곳에 이를 길 분명히 알며
몸으로 하는 일이 자재하나니
공덕 몸 이룬 이가 이 길 행하고.


시방에 한량없고 끝없는 세계
거기 있는 수없이 많은 중생들
내가 다 구호하여 버리잖나니
두려움 없는 이가 이 길 행하고.
부처님 모든 법을 닦아 익히되
언제나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고
모든 세간 깨끗이 다스리나니
크나큰 저 용왕이 이 길 행하고.

중생들의 근성이 같지도 않고
욕망과 이해들도 제각기 차별
가지가지 세계를 밝게 아나니
널리 들어간 이가 이 길 행하고.

시방에 한량없는 모든 세계에
태어나는 수효가 그지없건만
한 생각도 피로한 마음 없나니
즐거워하는 이가 이 길 행하고.

한량없는 광명 그물 두루 놓아서
일체의 세계들을 환히 비추고
비치는 광명 따라 법성(法性)에 드니
선한 지혜 얻은 이 이 길 행하네.

시방에 한량없는 억 나유타의
국토들을 낱낱이 진동하여도
중생들을 놀라지 않게 하나니
세상에 이익 준 이 행하시는 길.

일체의 말하는 법 잘 해득하여
묻고 대답함이 끝까지 총명해
현철한 변재 지혜 모두 아나니
두려움 없는 이가 행하시는 길.
엎고 잦힌 모든 세계 잘 이해하여
분별하고 생각하여 끝까지 얻고
다함이 없는 땅에 머물게 하니
좋은 지혜 있는 이가 행하시는 길.

공덕이 한량없는 나유타인데
부처님도 구하려고 모두 닦았고
무엇에나 저 언덕에 이르렀으니
다함 없는 행 닦은 이 행하시는 길.

세상에 논사(論師)들을 초출하였고
제일가는 변재로 사자후하여
많은 중생 저 언덕에 이르게 하니
마음 깨끗한 이가 행하시는 길.

부처님들 관정(灌頂)하는 제일가는 법
그 법으로 정수리에 물을 부었고
마음이 바른 법문 항상 머무니
광대한 맘 가진 이 이 길 행하고.

일체 중생 한량없이 차별하거늘
그 마음 통달하여 두루하였고
결정코 부처 법장 수호하나니
수미산 같은 이가 이 길 행하고.


하나하나 말하는 소리 가운데
한량없는 음성을 나타내어서
중생들이 종류 따라 알게 하나니
걸림없이 보는 이 이 길 행하고.
갖가지 문자들과 말하는 법을
지혜로써 들어가나 분별치 않고
진실한 경계 속에 머물렀으니
성품을 보는 이가 행하시는 길.

깊고 깊은 큰 법바다에 머물러 있어
온갖 법을 능히 다 인정했으며
모양 없고 진실한 법 분명히 아니
실상을 보는 이가 행하시는 길.

하나하나 불국토에 모두 나아가
한량없는 무변 겁이 다할 때까지
관찰하고 생각하기 쉬지 않나니
게으르지 않은 이 행하시는 길.

한량없고 수없는 모든 여래의
가지가지 명호가 같지 않거늘
한 털 끝에 모두 다 밝게 보나니
깨끗한 복 가진 이 행하시는 길.

털 끝만한 곳에서 보는 부처님
그 수효 한량없어 말할 수 없고
일체의 법계에도 다 그러하니
저 여러 불자들이 이 길 행하고.

한량없고 끝없고 수없는 겁을
한 찰나 가운데서 밝게 보고서
길고 짧아 일정하지 않음을 아니
해탈행을 얻은 이 행하시는 길.
보는 이로 하여금 헛되지 않고
불법에 좋은 인연 심게 하지만
하는 일에 마음이 집착없나니
모든 것 승한 이가 행하시는 길.

나유타 겁 동안 부처님 만나
잠깐도 싫은 마음 내는 일 없고
그 마음 환희하여 더욱 증장해
공하지 않게 본 이 행하시는 길.

한량없고 끝없는 겁 다할 때까지
일체의 중생 세계 관찰하지만
한 중생 있는 줄도 보지 않나니
견고한 사람들이 행하시는 길.

그지없는 복과 지혜 닦아 익혀서
서늘한 공덕 못을 널리 만들고
일체의 중생들에 이익 주나니
첫째가는 사람이 이 길 행하고.

온 법계에 여러 종류 많은 중생들
허공에 두루 가득 한량없는데
모두 말을 의지해 있는 줄 아니
사자후하는 이가 행하시는 길.


하나하나 삼매의 어디서든지
수없는 모든 삼매 두루 들어가
법문의 깊은 곳에 다 이르나니
달을 논하는 이[論月者]가 이 길 행하고.
부지런히 인욕(忍辱) 닦고 저 언덕 가서
가장 승한 적멸법 능히 참으며
그 마음 평등하여 동요 않나니
그지없는 지혜의 행하시는 길.

한 세계에 한 자리 앉아 있으며
그 몸이 고요하여 동하잖지만
온갖 곳에 몸을 두루 나타내나니
그지없는 몸 가진 이 이 길 행하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모든 국토가
한 티끌 속에다가 모두 넣되
두루 다 포용하여 장애 없나니
그지없이 생각하는 이 이 길 행하고.

옳은 곳과 그른 곳 분명히 알고
모든 힘에 골고루 능히 들어가
여래의 최상력을 성취하나니
제일 힘 가진 이가 행하시는 길.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의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업보를
언제나 지혜로써 모두 아나니
통달하여 아는 이 행하시는 길.

온 세간의 제때거나 제때 아니거나
조복할 중생들을 분명 통달해
적당함을 따라서 잃지 않나니
이것은 잘 아는 이[善了者] 행하시는 길.
몸과 말과 마음을 잘 지키어서
언제나 법에 따라 행을 닦으며
모든 집착 여의고 마군을 눌러
슬기로운 사람이 행하시는 길.

모든 법 가운데서 공교함 얻고
진여(眞如)의 평등한 데 능히 들어가
변재로 연설함이 다하잖나니
부처님 행 닦는 이 행하시는 길.

여러 다라니문을 원만하였고
걸림없는 장 속에 편히 머물러
모든 법계 모두 다 통달하나니
깊이 들어간 이의 행하시는 길.

삼세에 나 계시는 모든 부처님
모두 다 맘도 같고 지혜도 같아
한 성품 한 모양이 다름 없나니
걸림없는 종성의 행하시는 길.

일체 어리석음의 막(膜)을 긁었고
광대한 지혜 바다 깊이 들어가
중생에게 청정한 눈 보시하나니
이것은 눈 있는 이 행하시는 길.


일체의 모든 도사(導師) 구족했으며
평등한 신통으로 두 행이 없고
여래의 자재한 힘 얻으셨으니
이것은 잘 닦은 이 행하시는 길.
온 시방 모든 세계 두루 다니며
그지없이 묘한 법비 널리 내리어
이치에서 결정함을 얻게 하나니
이것은 법 구름이 행하시는 길.

부처님의 지혜와 모든 해탈에
깨끗한 신심 내어 퇴전치 않고
신심으로 지혜 뿌리 내는 것이니
이것은 잘 배운 이 행하시는 길.

한 생각에 일체 중생 능히 다 알고
한 중생도 남기지 아니하면서
저 중생의 마음 성품 분명히 아니
무성(無性)을 통달한 이 행하시는 길.

법계에 수가 없는 모든 국토에
이 몸을 변화하여 두루 가는데
가장 묘한 그 몸 짝할 이 없나니
비길 데 없는 행의 행하시는 길.

부처 세계 끝없고 수가 없는데
한량없는 부처님 속에 있거늘
보살이 그곳마다 앞에 나타나
친근하고 공양하고 존중하시네.

보살들이 오로지 한 몸으로써
삼매에 들어가서 고요하지만
수가 없는 그 몸의 하나하나가
삼매에서 일어남을 보게도 하고.
보살의 머문 데가 깊고 묘하여
행하고 짓는 일이 희론(戱論)을 초월
그 마음 청정하고 항상 기쁘매
중생들을 모두 다 환희케 하고.

모든 근(根)과 방편이 각각 다른데
지혜로 분명하게 능히 다 보고
근들이 의지한 데 없음을 아니
생먹이[調難]를 조복한 이 행하는 도라.

교묘한 방편으로 잘 분별하여
일체 법에 자재함을 능히 얻었고
시방세계 제각기 같지 않거늘
그 가운데 있으면서 불사를 짓네.

모든 근이 미묘하고 행도 그러해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니
듣는 이는 기뻐하지 않는 이 없어
허공과 평등한 이 행하는 도요.

지혜 눈 청정하여 같을 이 없고
온갖 법을 모두 다 밝게 보나니
공교한 지혜로써 이러한 분별
같을 이 없는 이가 행하시는 길.


그지없이 광대한 복을 갖춘 이
온갖 것 수행하여 끝까지 가고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케 하니
비길 데 없는 이가 행하시는 길.
도를 돕는 여러 법 닦기 권하여
그들이 방편 지위 머물게 하여
중생을 제도함이 그지없지만
중생이란 생각이 조금도 없고,

온갖 근기 인연을 다 관찰하여
저의 뜻 보호하여 다투지 않게
중생에게 편안한 곳 널리 보이니
방편을 얻은 이의 행하시는 길.

가장 높고 제일가는 지혜 이루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지혜 구족해
사부대중들에게 두렵잖으니
방편 지혜 갖춘 이 행하시는 길.

일체의 세계에나 모든 법에나
두루 다 들어가서 자재를 얻고
모든 대중 모인 데 또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기 셀 수가 없고,

시방에 널려 있는 국토 가운데
큰 법고 둥둥 울려 중생 깨우고
법으로 보시하여 가장 높으니
멸하지 않는 이가 행하시는 길.

한 몸이 가부 틀고[結跏趺] 앉아 있는 데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하지만
그 몸은 비좁지도 아니하나니
법신을 증득한 이 행하시는 길.
한 이치와 한 글자 가운데서도
한량없고 끝없는 법 연설하지만
그래도 끝단 데를 얻지 못하니
그지없는 지혜가 행하시는 길.

부처님의 해탈을 닦아 배우고
부처님 지혜 얻어 장애 없으며
두려움 없어지고 세상의 영웅
방편을 얻은 이의 행하시는 길.

시방의 세계해를 분명히 알고
일체의 불찰해(佛刹海)도 다 알았으며
지혜 바다 법 바다 모두 다 아니
중생들 보는 이는 모두 좋아해.

혹은 태에 들어가고 처음 나오고
도량에 나타나서 정각을 얻어
이런 일을 세간들이 보게 하나니
이것은 끝없는 이 행하시는 길.

한량없는 억천만 국토 가운데
열반에 드는 몸을 나타내지만
서원을 모르는 체 멸도(滅度) 않나니
영웅스런 논사가 행하시는 길.


견고하고 비밀하고 묘한 이 몸이
부처님과 평등하여 차별 없건만
중생들 나름으로 다르게 보니
한결같이 진실한 몸 행하시는 길.
법계가 평등하여 차별 없으나
한량없고 끝없는 뜻 구족하였고
한 모양 보는 마음 이동 않나니
삼세의 지혜론 이 행하시는 길.

모든 중생에게나 부처님 법에
건립(建立)하고 가지(加持)하기 모두 끝까지
가지하는 힘을 얻어 부처 같으니
최상 가지 받은 이가 행하시는 길.

신족통(神足通) 걸림없어 부처님 같고
천안통 걸림없어 가장 청정코
천이통 걸림없어 잘 들리나니
걸림없는 뜻 가진 이 행하시는 길.

여러 가지 신통을 모두 갖추고
그의 지혜 따라서 모두 성취해
온갖 것을 잘 알아 짝이 없나니
지혜 있고 어진 이 행하시는 길.

그 마음 정에 들어 동요치 않고
그 지혜 넓고 커서 끝이 없어서
온갖 경계 다 밝게 통달하나니
일체를 보는 이의 행하시는 길.

일체 공덕 언덕에 이미 이르고
차례차례 따라서 중생 건지되
그 마음 필경까지 만족 없나니
늘 부지런한 이의 행하시는 길.
삼세에 있는 바 부처님 법을
여기서 일체 것을 알고 보아서
여래의 종성으로부터 나나니
저 모든 불자들의 행하시는 길.

순하게 따르는 말 이미 이루고
어긋장 치는 언론 꺾어버리고
부처님의 보리로 능히 향하니
끝없이 지혜론 이 행하시는 길.

한 광명 비치는 일 끝단 데 없어
시방의 모든 국토 두루 가득해
세상으로 큰 광명 얻게 하나니
어둠 깨뜨린 이 행하시는 길.

공양하고 볼 수 있는 그들을 따라
여래의 청정한 몸 나타내면서
백천억 중생들을 교화하시니
부처 세계 장엄함도 그와 같더라.

중생들을 세간에서 벗어나도록
갖가지 묘한 행을 닦아 익히니
이런 행 넓고 커서 그지없거늘
뉘라서 이런 것을 능히 알리요.


가령 그의 나눈 몸[分身] 말할 수 없어
법계와 허공계와 같은 이들이
한 가지로 그 공덕 찬탄한대도
백천만 겁 지내도 못다 하리라.
보살들의 공덕은 그지없어서
갖가지 닦을 행을 모두 갖추니
한량없고 끝이 없는 부처님들이
무량 겁에 말해도 못다 하거든

하물며 이 세상의 천상ㆍ인간들
일체의 성문이나 모든 연각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그러한 겁에
찬탄해도 끝까지 다할 수 없네.
완은(頑嚚) : 앞글자는 오(五)와 환(還)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어(語)와 건(巾)의 반절이다.
비해(匪懈) : 앞글자는 부(府)와 미(尾)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고(古)와 애(隘)의 반절이다.
연저(淵底) : 앞글자는 오(烏)와 현(玄)의 반절이다.
수대(讎對) : 앞글자는 시(市)와 류(流)의 반절이다.
적막(適莫) : 앞글자는 도(都)와 력(曆)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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