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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84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9권

by Kay/케이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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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9

 

대방광불화엄경 제19권

우전국(于闐國) 삼장(三藏)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이운허 번역

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

그때 여래의 위신력으로 시방 일체 세계 낱낱 사천하의 염부제와 수미산 꼭대기에서 모두 보니, 여래께서 대중들이 모인 가운데 계시는데 그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써 법을 연설하면서 제각기 생각하기를, 자기가 항상 부처님을 대하였다고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를 떠나지 않으시고 야마천궁의 보배로 장엄한 궁전[寶莊嚴殿]을 향하시었다.
야마천왕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즉시 신통한 힘으로써 그 전각 안에 보련화장(寶連華藏)사자좌를 변화하여 만들었는데, 백만 층으로 장엄하고 백만의 황금 그물이 서로 얽히었고 백만 꽃 휘장ㆍ백만 화만 휘장ㆍ백만 향 휘장ㆍ백만 보배 휘장이 그 위에 덮이었고, 꽃 일산ㆍ화만 일산ㆍ향 일산ㆍ보배 일산도 각각 백만이니 두루 벌였는데, 백만 광명이 찬란하게 비치고, 백만 야마천왕은 공경하여 정례하고, 백만 범천왕은 환희하여 뛰놀고, 백만 보살들은 소리 높여 찬탄하며, 백만 가지 하늘 풍류가 각각 백만 가지 법 음악을 연주하여 계속하여 끊이지 아니하며, 백만 화만 구름ㆍ백만 장엄거리 구름ㆍ백만 가지 옷구름이 두루 덮이었고, 백만 가지 마니 구름에서 광명이 찬란하니 백만 가지 선근으로 생긴 것이며, 백만 부처님의 두호하심이며, 백만 가지 복덕으로 자라는 것이며, 백만 가지 깊은 마음과 백만 가지 서원으로 깨끗이 장엄함이며, 백만 가지 행으로 일어난 것이며, 백만 가지 법으로 건립한 것이며, 백만 가지 신통으로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므로, 항상 백만 가지 음성을 내어 모든 법을 보이었다.
때에 야마천왕이 사자좌를 차려 놓고는 부처님 세존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고 합장하며 공경하고 존중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잘 오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잘 오시나이다,
선서시여. 잘 오시나이다, 여래ㆍ응ㆍ정등각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를 가엾이 여기사 이 궁전에 계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청을 받으시고 보배 궁전에 오르시니, 모든 시방에서도 모두 이와 같았다.
천왕은 지난 세상에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 심은 것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위신을 받들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명칭(名稱)여래 시방에 소문 퍼지니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마니전(摩尼殿)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보왕(寶王)여래 세간의 등불이시니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청정 궁전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희목(喜目)여래 보는 일 걸림이 없어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장엄전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연등(然燈)여래 세상을 밝게 비추매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승한 궁전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요익(饒益)여래 세상을 이익케 하매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때 없는 전[無垢殿]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선각(善覺)여래 스승을 섬긴 일 없어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보향전(寶香殿)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승천(勝天)여래 온 세상의 등불이시매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묘향전(妙香殿)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무거(無去)여래 논란 중의 영웅이시매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보안전(普眼殿)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무승(無勝)여래 모든 덕을 구족하시니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선엄전(善嚴殿)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고행(苦行)여래 세상을 이롭게 하니
여러 가지 길상 중에 위가 없으며
그 부처님 보엄전(普嚴殿)에 일찍 드시니
그러므로 이곳이 가장 길상해.


이 세계의 야마천왕이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받들어 옛날의 모든 부처님 공덕을 생각하고 찬탄하는 것처럼, 시방세계의 야마천왕들도 모두 그와 같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마니보배 장엄전에 드시어 보련화장 사자좌에서 결가부좌하시니, 그 전각이 넓어져서 하늘 대중들이 있는 처소와 같았으며, 시방세계들도 모두 그와 같았다.

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

그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시방에 각각 큰 보살이 있었는데, 낱낱 보살이 제각기 부처 세계의 티끌 수효처럼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십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국토 밖에 있는 세계로부터 와서 모였으니, 그 이름은 공덕림(功德林)보살ㆍ혜림(慧林)보살ㆍ승림(勝林)보살ㆍ무외림보살(無畏林)보살ㆍ참괴림보살(慚媿林)보살ㆍ정진림(精進林)보살ㆍ역림(力林)보살ㆍ행림(行林)보살ㆍ각림(覺林)보살ㆍ지림(智林)보살 들이었고, 이 보살들이 떠나 온 세계는 친혜(親慧) 세계ㆍ당혜(幢慧) 세계ㆍ보혜(寶慧) 세계ㆍ승혜(勝慧) 세계ㆍ등혜(燈慧) 세계ㆍ금강혜(金剛慧) 세계ㆍ안락혜(安樂慧) 세계ㆍ일혜(日慧) 세계ㆍ정혜(淨慧) 세계ㆍ범혜(梵慧) 세계 들이었다.
이 보살들이 각각 부처님 계신 데서 범행을 닦았으니, 이른바 상주안불(常住眼佛)ㆍ무승안불(無勝眼佛)ㆍ무주안불(無住眼佛)ㆍ부동안불(不動眼佛)ㆍ천안불(天眼佛)ㆍ해탈안불(解脫眼佛)ㆍ심체안불(審諦眼佛)ㆍ명상안불(明相眼佛)ㆍ최상안불(最上眼佛)ㆍ감청안불(紺靑眼佛)이었다.
이 여러 보살이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떠나 온 방위를 따라 제각기 마니장 사자좌를 변화하여 만들고 그 사자좌 위에서 결가부좌하였다.
이 세계의 야마천상에 보살들이 모인 것처럼, 일체 세계에서도 그러하였으며, 그 보살들의 세계와 여래의 이름도 모두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 두 발등으로 백천억 묘한 빛 광명을 놓아 시방으로
모든 세계를 비추니, 야마천궁의 부처님과 대중이 모두 나타났다.
공덕림(功德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 큰 광명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천상 인간의 높은 어른 뵈옵기
환히 트이어 걸림이 없네.

부처님 야마천궁에 앉아서
시방세계에 두루하시니
이런 일 매우 기특하여
세간에서 드물게 보리.

수야마천왕 게송으로
열 부처님 찬탄하나니
이 모임에서 보는 것처럼
온갖 곳에 모두 그러해.

저 여러 보살 대중들
모두 우리 이름 같은 이
시방의 모든 곳에서
위없는 법 연설하나니.
떠나 온 여러 세계들
이름도 다르지 않고
제각기 그 부처님 계신 데서
범행을 깨끗이 닦네.

저 여러 부처님들
명호도 모두 다 같고
국토가 다 풍년 들고 즐거워
신력이 모두 자재하시어

시방세계 모든 곳마다
부처님 여기 계시다지만
혹은 인간에 계시고
혹은 천궁에 계시고.

여래는 모든 국토에
두루 편안히 계시지만
우리는 부처님이 지금
이 천궁에 계심을 보네.

옛적 보리를 이루려는 소원
시방세계에 두루하였으매
그리하여 부처님 위신력
가득 차서 헤아릴 수 없고,

세상의 탐욕 멀리 떠나고
그지없는 공덕 구족하시매
신통한 힘 얻으신 일
중생들 못 보는 이 없네.
시방세계 다니시기
허공처럼 장애 없으니
한 몸인가 한량없는 몸인가
그 모양 찾을 길 없고,

그지없는 부처님 공덕
어떻게 헤아릴 수 있으랴.
머물지 않고 가지 않지만
온 법계에 두루 드시네.

혜림(慧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에 가장 크신 길잡이
때[垢] 없고 위없는 세존
부사의한 겁을 지나도
만나뵈올 수 없네.

부처님 큰 광명 놓으시니
세간에 못 보는 이 없고
대중에게 널리 연설하시어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며,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은
세상 사람 어둔 데서 뛰어나도록
이러한 세상의 등불
희유하여 보기 어렵네.

보시ㆍ지계ㆍ인욕
정진 그리고 선정
반야바라밀을 이미 닦아
이것으로 세간을 비추며,

여래는 동등할 이도 없고
짝을 구해도 얻을 수 없나니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고는
아무도 보지 못하나니,

부처님의 몸과 신통
자재하심 헤아릴 수 없어
가는 일 없고 오는 일 없지만
법을 말하여 중생 건지네.

청정한 천상 인간의 길잡이
누구라도 뵙기만 하면
나쁜 갈래에서 영원히 나와
모든 고통을 여의게 되리.

한량없고 수없는 겁 동안
보리의 행을 닦으셨으매
이 이치 알지 못하고는
부처를 이룰 수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한량없는 부처님 공양했나니
이런 뜻 만일 안다면
공덕이 저보다 뛰어나리.

한량없는 국토 가득찬 보배
이것으로 부처님 공양했나니
이러한 이치 알지 못하면
끝까지 보리를 이룰 수 없네.

승림(勝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초여름[孟夏月]의
구름 없는 깨끗한 허공
붉은 볕 광명이 퍼져
시방에 가득 차거든,

그 빛이 한량이 없어
헤아려 알 수 없나니
눈 뜬 사람도 그렇거든
하물며 소경들이랴.

부처님들도 그와 같아서
끝단 데 없는 크나큰 공덕
부사의한 겁을 지나면서도
분별하여 알 수 없느니,

모든 법이 온 데도 없고
누가 지은 이도 없으며
어디로부터 난 데도 없나니
어떻다고 분별할 수 없네.

온갖 법이 온 데가 없으니
그러므로 난 것이 아니요
이미 난 것이 아닌지라
멸한다고 할 수도 없네.

온갖 법이 난 일도 없고
또 멸함도 없나니
이렇게 이해한다면
이 사람 여래를 보게 되오리.

모든 법이 난 일이 없으매
제 성품도 있는 것 아니니
이렇게 분별하여 알면
이 사람 깊은 이치 이르리.

법이 제 성품이 없으므로
능히 알 이도 없는 것이니
이렇게 법을 이해하면
필경에 이해할 것 없으리.

나는 것 있다고 말하는 이는
국토가 지금 있지 않느냐 하거니와
국토의 성품을 능히 알면
그 마음 미혹하지 않으리.

세간과 국토의 성품을
관찰하면 실상과 같나니
만일 여기에서 알면
일체 이치를 잘 말하리라.

무외림(無畏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의 넓고 크신 몸
끝없는 법계에 가득하매
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온갖 곳에 두루하도다.

만일 이러한 법을 듣고
공경하여 믿고 좋아하는 이는
세 가지 나쁜 갈래와
모든 고난(苦難)을 길이 여의리.

한량도 없고 셀 수도 없는
모든 세계를 두루 다니더라도
여래의 자재하신 힘을
지극한 정성으로 들으려 하라.

이러한 부처님 법들은
참으로 위없는 보리니
설사 잠깐만 듣고자 하여도
능히 들을 이 없느니라.

지난 세상에 누구나
이런 부처님 법을 믿은 이는
이미 양족존(兩足尊)을 이루어
세간의 등불 되었느니라.

만일 오는 세상에라도
여래의 자재한 힘을 듣고
그런 후 신심을 내는 이 있으면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라.

만일 지금 세상에서도
이런 부처님 법을 믿으면
마땅히 정각을 이루고
법을 말하기 두렵지 않으리라.

한량없고 수없는 겁 동안에
이 법은 만나기 어려운 것이니
만일 들은 이 있다면
본래의 원력인 줄 알아라.


이러한 부처님의 법을
누구나 능히 받아 지니고
또 다른 이에게 널리 말하면
이 사람 마땅히 부처 이루리니,

하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견고한 마음 버리지 않으며
이러한 사람은 결정코
보리를 성취할 줄 알아라.

그때 참괴림(慚媿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희유하고 자재한 법을 듣고
능히 기쁜 마음을 내면
모든 의심을 빨리 제하리.

일체를 알고 보는 사람
스스로 이렇게 말하되
여래는 모르는 것이 없다 하나니
그러기에 헤아릴 수 없나니,

지혜 없는 데서는
지혜가 날 수 없나니
세간은 항상 어둔 것이매
지혜를 낼 수 없느니라.

빛과 빛 아닌 것
이 둘이 하나 될 수 없나니
지혜와 무지(無智)도 그러하여
그 자체 각각 다르고,

모양 있는 것 모양 없는 것과
나고 죽는 것과 열반도
차별하여 각각 다르니
지혜와 무지도 그러하며,

세계가 처음 생길 적에는
파괴되는 모양 없나니
지혜와 무지도 그러하여
두 모양이 한 때가 아니고,

보살의 처음 마음은
나중 마음과 함께하지 않나니
지혜와 무지도 그러하여
두 마음이 동시 아니네.

말하자면 모든 식[識身]들이
각각 화합하지 않나니
지혜와 무지도 그러하여
끝까지 화합이 없고,

마치 아가타 약이
온갖 독을 멸함과 같이
지혜도 그와 같아서
무지를 능히 멸하느니라.

여래는 위가 없고
같을 이도 없으며
온갖 것이 짝할 이 없나니
그래서 만나기 어렵느니라.

그때 정진림(精進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법 차별이 없고
능히 알 사람도 없으나
부처님들만이 아시나니
지혜가 끝까지 이른 까닭.

마치 금과 금빛이
그 성품 차별 없나니
법과 법 아닌 것도 그러해
성품이 다르지 않네.

중생과 중생 아닌 것
둘이 다 진실치 않아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성품
진실한 뜻이 모두 있지 않네.

마치 오는 세상에는
지나간 세상의 모양이 없듯이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온갖 모양이 있지 않네.

마치 나고 멸하는 모양
가지가지가 진실치 못해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제 성품 없는 것이니,

열반을 취할 수 없지만
말하는 데 두 가지 있는 것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분별하느라 다른 것이니,

셀 수 있는 물건 있으므로
능히 셈하는 것 있거니와
그 성품 모두 없는 것이니
이렇게 법을 알아야 하네.

저 셈하는 법이
하나씩 더하여 한량이 없나니
산수의 법이 제 성품 없거늘
지혜로 차별을 내느니라.


말하자면 모든 세간들
겁 불이 탈 때는 끝나거니와
허공은 망그러지지 않나니
부처님 지혜도 그러니라.

마치 시방의 중생들이
제각기 허공의 모양 말하듯이
모든 부처님도 그와 같거늘
세상에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

역림(力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중생 세계는
다 삼세 가운데 있고
삼세의 중생들은
모두 오온(五蘊) 중에 있나니,

모든 온(蘊)은 업이 근본이요
모든 업은 마음이 근본이니
마음의 작용 요술 같으매
세간도 그러하니라.

세간은 스스로 지음도 아니요
다른 이가 지음도 아니지마는
이루어짐이 있으매
역시 파괴함도 있는 것.

세간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세간이 파괴도 되거니와
세간을 분명히 통달하는 이는
이 둘을 말하지 않네.

어떤 것을 세간이라 하고
어떤 것을 세간 아니라 하는가.
세간과 세간 아닌 것
이름만이 다를 뿐,

삼세와 오온 법을
말하여 세간이라 하고
저가 멸한 것을 세간 아니라 하니
이와 같이 이름만 빌렸을 뿐.

무엇을 여러 가지 온이라 하며
온은 무슨 성품이 있는가
온의 성품 멸할 수 없으며
그래서 남이 없다[無生] 하느니,

이 온을 분별하여 보면
그 성품 본래 공적해
공적하므로 멸할 수 없어
이것이 남이 없다는 이치,

중생이 이미 이러하면
부처님도 역시 그러할 것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
그 성품 있는 것 아니네.

이런 모든 법이
진실하여 뒤바뀌지 않은 줄 알면
온갖 것을 알고 보는 이
그의 앞에 항상 나타나리.

행림(行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하면 시방의 세계가
모든 지대(地大)의 종성이라.
제 성품 있는 것 아니지만
두루하지 않은 곳 없듯이,

부처님 몸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계에 두루 했으나
가지가지 빛과 모양
머문 곳도 온 곳도 없네.

다만 모든 업인 연고로
중생이라 말하거니와
역시 업을 떠나서는
업을 찾아볼 수 없네.

업의 성품 본래 공적한 것
중생들이 의지한 바며
여러 가지 모양 두루 짓지만
온 곳은 역시 없어라.

이러한 모든 빛깔과
업의 힘 헤아릴 수 없어
근본을 분명히 알면
그 가운데는 볼 것도 없네.

부처님 몸도 그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거니와
가지가지 모든 빛과 모양
시방세계에 두루 나타나,

몸도 부처 아니고
부처도 몸 아니지만
다만 법으로 몸을 삼아
온갖 법을 통달하도다.

만일 부처님 몸이
청정하여 법의 성품 같음을 보면
이 사람 부처와 법에
조금도 의혹 없으리.


만일 온갖 법들의
본 성품 열반 같음을 알면
이런 이는 여래가
끝까지 머문 데 없음을 보리.

만일 바른 생각을 닦아
분명하게 정각을 보면
모양도 없고 분별도 없어
이름을 법왕자(法王子)라 하리.

각림(覺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치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채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 그리지마는
대종(大種)은 차별이 없으며,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마음 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도 없나니,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온갖 빛깔 나타내지만
각각 서로서로 알지 못하나니,

마치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니라.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내는데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네.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 없네.

마음이 모든 세간 짓는 줄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몸도 마음에 있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알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보라.

그때 지림(智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집착할 것도 집착할 수 없고
볼 것도 볼 수 없고
들을 것도 들을 수 없어
한 마음이라 헤아릴 수 없네.

분량 있거나 분량 없거나
둘 다 집착할 수 없는 것
어떤 이가 집착하려 하여도
끝까지 얻지 못하리.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
자기 일을 성취 못하니
다른 이를 기쁘게 할 수 없으리.

여래의 그지없이 묘한 색신(色身)
찬탄하려는 이가 있어
무수겁이 끝나도록 하여도
모두 다 말할 수 없으리.

마치 여의주가
온갖 빛을 나타내지만
빛 없는 데서 빛을 내는 것
부처님들도 그러하니라.

또 마치 청정한 허공은
빛이 아니어서 볼 수 없으며
비록 온갖 빛을 나타내더라도
허공을 볼 이는 없나니,

부처님들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빛 나타내지만
마음으로 미칠 수 없으매
온갖 것을 볼 수 없네.

비록 여래의 음성을 듣지만
음성은 여래가 아니며
또 음성을 떠나서
정등각을 아는 것도 아니니,


보리는 오고 감이 없어
온갖 분별을 떠난 것인데
어떻게 이런 가운데서
능히 보노라 말하겠는가.

모든 부처님 법 있는 것 아닌데
부처님 어찌 말씀이 있겠는가.
다만 자기의 마음을 따라
이런 법을 말한다 하네.

21. 십행품(十行品) ①

이때 공덕림(功德林)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잘 생각하는[善思惟] 삼매에 들었다.
이 삼매에 드니, 시방으로 각각 1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처럼 많은 세계 밖에 1만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들이 계시니, 명호가 다 같이 공덕림불이라, 공덕림보살 앞에 나타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다. 불자여, 그대가 능히 잘 생각하는 삼매에 들었도다. 선남자여, 이것은 시방으로 각각 1만 세계의 티끌 수처럼 많은 명호가 같은 부처님들이 그대에게 가피하려는 것이니, 역시 비로자나여래의 지난 세상의 서원하신 힘과 위신의 힘과, 모든 보살들의 선근의 힘으로써 그대로 하여금 이 삼매에 들어서 법을 연설케 하려는 것이니라.
부처의 지혜를 증장하려는 연고며, 법계에 깊이 들게 하려는 연고며, 중생세계를 분명히 알게 하는 연고며, 들어가는 데 걸림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행하는 일이 장애가 없게 하려는 연고며, 한량없는 방편을 얻게 하려는 연고며, 온갖 지혜의 성품을 거두어 지니려는 연고며, 모든 법을 깨닫게 하려는 연고며, 모든 근성을 알게 하려는 연고며, 온갖 법을 가지고 말하게 하려는 연고니, 이른바 모든 보살의 열 가지 행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법을 연설하라.”
이때 모든 부처님께서 공덕림보살에게 걸림없는 지혜ㆍ집착 없는 지혜ㆍ끊이지 않는 지혜ㆍ스승 없는 지혜ㆍ어리석지 않은 지혜ㆍ다르지 않은 지혜ㆍ허물 없는 지혜ㆍ한량없는 지혜ㆍ이길 이 없는 지혜ㆍ게으름 없는 지혜ㆍ빼앗을 수 없는 지혜를 주었으니, 이 삼매의 힘은 법이 으레 그러한 까닭이었다.
그때 여러 부처님이 각각 오른손을 내밀어 공덕림보살의 정수리를 만지니, 공덕림보살은 삼매로부터 일어나 모든 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보살의 행은 헤아릴 수 없어서 법계와 허공계로 더불어 평등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은 삼세의 부처님들을 배워서 행을 닦는 연고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행이라 합니까?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행이 있으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즐거운 행[歡喜行]이요, 둘은 이익하는 행[饒益行]이요, 셋은 어기지 않는 행[無違逆行]이요, 넷은 굽히지 않는 행[無屈撓行]이요, 다섯은 우치와 산란을 여의는 행[無癡亂行]이요, 여섯은 잘 나타나는 행[善現行]이요, 일곱은 집착 없는 행[無著行]이요, 여덟은 얻기 어려운 행[難得行]이요, 아홉은 법을 잘 말하는 행[善法行]이요, 열은 진실한 행[眞實行]입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즐거운 행[歡喜行]인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큰 시주가 되어 가진 물건을 모두 다 보시하는데, 그 마음이 평등하여 후회하거나 아까워함이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 아니하며, 이름을 구하지 아니하며, 이양(利養)을 탐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일체 중생을 구호하며 일체 중생을 거두어 주며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려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배우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생각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좋아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청정히 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증장하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에 머물러 지니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나타내며,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을 연설하여, 모든 부처님의 닦으시던 행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고 낙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 행을 닦을 때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고 즐겁게 하려 하나니, 어느 지방에나 가난한 곳이 있거든 원력으로써 그곳에 태어나되 호사스럽고 크게 부귀하여 재물이 다함이 없으며, 가령 잠깐잠깐 동안에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들이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진 이여,우리는 몹시 가난하여 끼니를 이어갈 수 없으며 굶주리고 곤고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어 나에게 살을 보시하여 먹고 살아나게 하소서’ 한다면, 보살은 곧 보시하여 주어 그로 하여금 환희하고 만족케 합니다.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 중생이 와서 구걸하더라도 보살은 조금도 퇴타하거나 겁약한 기색이 없고, 다시 자비한 마음이 증장하나니, 그래서 중생들이 모두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살이 보고는 더욱 환희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좋은 이익을 얻었도다. 이 중생들은 나의 복밭이며 나의 선지식이니, 구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와서 나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 들게 하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렇게 배우고 닦아서
모든 중생의 마음을 어기지 아니하리라.’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미 지었거나 지금 짓거나 장차 지을 모든 선근으로써, 오는 세상에는 일체 세계의 일체 중생 가운데서 엄청나게 큰 몸을 받고, 그 살로써 모든 굶주린 중생들의 배를 채워 만족케 하되, 단 하나 조그만 중생까지라도 배가 차지 않은 이가 있으면, 나는 목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며, 내 몸에서 베어내는 살도 다하지 말아지이다’고 원할 것이며, 이러한 선근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대열반을 증득하기를 원하며, ‘나의 살을 먹은 중생들도 역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불법을 갖추어 불사를 널리 짓다가 무여(無餘)열반에 들어지이다’라고 원하고, 만일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않겠나이다’고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중생을 이익케 하지만, 나[我]라는 생각ㆍ중생이란 생각ㆍ있다는 생각[有想]ㆍ목숨이란 생각ㆍ여러 가지란 생각ㆍ보특가라란 생각[補伽羅想]ㆍ사람이란 생각ㆍ마납바란 생각[摩納婆想]ㆍ짓는 이란 생각ㆍ받는 이란 생각이 모두 없고, 다만 법계와 중생계의 끝없고 짬이 없는 법[無邊際法]과 공한 법과 있는 것 없는 법과 형상 없는 법과 자체가 없는 법과 처소가 없는 법과 의지가 없는 법과 지음이 없는 법을 관찰합니다.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제 몸도 보지 않고, 보시하는 물건도 보지 않고, 받는 이도 보지 않고, 복밭도 보지 않고, 업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고, 작은 결과도 보지 않고, 큰 결과도 보지 않습니다.
그때 보살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중생의 받아 난 몸이 멸하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하되 ‘이상하다, 중생이여.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생사(生死)하는 속에서 수없는 몸을 받지만, 위태하고 연약하여 머물러 있지 못하고 속히 멸하는데, 이미 멸하였거나 지금 멸하거나 장차 멸할 것이어늘, 마침내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써 견고한 몸을 구하지 못하는구나. 내가 마땅히 모든 부처님께서 배우신 것을 모두 배우며, 온갖 지혜를 얻어 온갖 법을 알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삼세가 평등하고 고요하며 무너지지 않는 법의 성품을 말하여 주어, 그로 하여금 편안한 쾌락을 얻게 하리라’ 하나니, 불자들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첫째 즐거운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이익케 하는 행[饒益行]인가.
이 보살이
깨끗한 계율을 수호하여 가지며, 빛[色]과 소리[聲]와 냄새[香]와 맛[味]과 촉(觸)에 대하여 집착하지 아니하고, 중생들을 위하여서도 이렇게 말하여, 권세를 구하지도 않고, 문벌을 구하지도 않고, 부귀를 구하지도 않고, 몸매를 구하지도 않고, 임금의 지위를 구하지도 아니하여, 이러한 온갖 것에는 조금도 집착이 없고, 다만 청정한 계율을 견고하게 가지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청정한 계율을 가지는 것은 반드시 온갖 얽힘[纏]과 속박[縛]과 탐심과 시끄러움과 모든 재난의 핍박과 훼방과 탁란함을 버리고 부처님께서 찬탄하시는 평등한 정법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렇게 청정한 계율을 가질 적에, 하루 동안에 가령 수없는 백천억 나유타 큰 악마가 보살이 있는 곳에 나오면서, 저마다 각각 한량없고 수없는 백천억 나유타 천녀를 데리고 왔는데, 모두 오욕(五欲)에 대하여 방편을 잘 행하며, 단정하고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홀리게 하며, 갖가지 훌륭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보살의 도심(道心)을 의혹하고 어지럽게 합니다.
이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되 ‘이 오욕은 도를 장애하는 것이며, 위없는 보리까지도 장애하는 것이라’ 하여 잠깐도 탐욕을 내지 아니하고 깨끗한 마음이 부처님과 같지만, 오직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일만은 제할 것이니, 온갖 지혜의 마음을 버리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은 탐욕으로 인하여서는 한 중생도 시끄럽게 하지 아니하나니,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중생을 시끄럽게 하는 일을 짓지 아니합니다. 보살이 부처님을 뵈온 후로는 일찍이 잠깐도 탐욕 생각을 내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실제로 일을 행하겠습니까. 혹시라도 그런 일을 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나니, ‘일체 중생이 오랜 세월에 오욕을 생각하고 오욕으로 향하여 나아가고 오욕을 탐착하면서, 그 마음에 결정하여 물들고 빠져서 그를 따라 헤매고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내 이제 마땅히 이 마군과 천녀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계율에 머물게 할 것이며, 청정한 계율에 머문 뒤에는 온갖 지혜에 마음이 퇴전하지 아니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내지 무여열반에 들게 하리니, 왜냐 하면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사업이므로 부처님을 따라서 이렇게 배워야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배우고는 모든 나쁜 행동과 나라고 고집하는 무지(無知)를 여의고, 지혜로 일체 부처님 법에 들어가서
중생에게 법을 말하여 전도(顚倒)를 버리게 하거니와, 그러나 중생을 떠나서 전도가 있지도 않고, 전도를 떠나서 중생이 있지도 않으며, 전도 속에 중생이 있지도 않고 중생 속에 전도가 있지도 않으며, 전도가 곧 중생도 아니고 중생이 곧 전도도 아니며, 중생이 내법(內法)도 아니고 중생이 외법(外法)도 아닌 줄을 압니다.
온갖 법이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하여 잠깐 일어났다 잠깐 없어지는 것이요, 견고하지 못하여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요술 같고 변화함과 같아서 어리석은 이를 의혹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면 곧 모든 행을 깨달아 나고 죽는 일과 열반을 통달하며, 부처님의 보리를 증득하며, 스스로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스스로 해탈하고 남을 해탈케 하며, 스스로 조복하고 다른 이를 조복케 하며, 스스로 고요하고 다른 이를 고요하게 하며, 스스로 안은(安隱)하고 남을 안은케 하며, 스스로 때를 여의고 남도 때를 여의게 하며, 스스로 청정하고 남도 청정케 하며, 스스로 열반하고 남도 열반케 하며, 스스로 쾌락하고 남도 쾌락케 합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하되 ‘나는 마땅히 일체 여래를 따르며, 일체 세간의 행을 여의며, 일체 부처님 법을 갖추며, 위없이 평등한 곳에 머물며, 중생을 평등하게 보며, 경계를 밝게 통달하며, 모든 허물을 여의고, 모든 분별을 끊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공교하게 뛰어나며, 마음은 항상 위없고 말할 수 없고 의지한 데 없고 변동이 없고 한량없고 한없고 끝나지 않고 모양이 없고 깊고 깊은 지혜에 머물리라’ 하나니, 불자들이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둘째 이익하는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어기지 않는 행[無違逆行]인가.
이 보살이 항상 인욕(忍辱)하는 법을 닦아 겸손하고 공경하여 스스로 해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둘 다 해하지 않으며, 스스로 탐하지 않고 남을 탐하게 하지 않고 둘 다 탐하지 아니하며, 스스로 집착하지 않고 남을 집착하게 하지 않고 둘 다 집착하지 아니하며, 또한 명예와 이양(利養)도 구하지 아니하고, 이런 생각을 하나니 ‘내가 마땅히 중생에게 법을 말하여 그로 하여금 모든 나쁜 짓을 여의고,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ㆍ교만ㆍ감추는 일ㆍ간탐ㆍ질투ㆍ아첨ㆍ속임을 끊게 하고, 부드럽게 화평하여 참고 견디는 데 항상 머물게 하리라’고 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렇게 인욕함을 성취하면 가령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중생이 그곳에 오는데, 중생마다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입[口]을 변화하여 가지고 낱낱 입으로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말을 내나니, 이른바 기쁘지 못한 말, 선하지 못한 말, 반갑지 않은 말, 사랑할 수 없는 말, 어질지 못한 말, 성인의 지혜가 아닌 말, 성현과 상응하지 않는 말, 성현에게 친근할 수 없는 말, 매우 역한 말,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들입니다. 이런 말로 보살을 헐뜯어 욕하거나, 또 이 중생들이 저마다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손을 가졌고, 손마다 각각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병장기를 들고 보살을 박해하기를, 아승기겁이 지나도록 쉬지 아니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극심한 고초를 당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생명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생각하기를, ‘내가 이만한 고통으로 마음이 흔들리면, 자기를 조복하지 못하고, 자기를 수호하지 못하고, 스스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스스로 닦지 못하고, 스스로 바르게 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끼지 못하여 스스로 집착을 내리니, 어떻게 다른 이의 마음을 청정케 하랴’고 합니다.
보살이 이때에 또 생각하기를 ‘내가 끝없는 옛적부터 생사 속에 있으면서 모든 고통을 받았도다’ 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마음이 청정하여 환희하여지고, 스스로 조화하고 잠들어 불법 가운데 편안히 머물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이런 법을 얻게 합니다.
다시 생각하기를 ‘이 몸은 공한 것이어서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진실하지 아니하고 성품이 공하여 둘이 없으며, 괴롭고 즐거움이 모두 없는 것이며, 모든 법이 공한 것을 내가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널리 말하여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이런 소견을 없애게 할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비록 이런 고통을 당하여도 참고 견디어야 할 것이라, 중생을 염려하는 연고며, 중생에 이익 주려는 연고며, 중생을 안락케 하는 연고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연고며, 스스로 깨달으려는 연고며, 다른 이를 깨닫게 하려는 연고며, 마음이 퇴전하지 않는 연고며, 부처님 도에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연고니라’고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셋째 어기지 않는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굽히지 않는 행[無屈橈行]인가.
이 보살은
모든 정진을 수행하나니, 이른바 제일가는 정진과 큰 정진과 승한 정진과 특별히 승한 정진과 가장 승한 정진과 가장 묘한 정진과 상품의 정진과 위없는 정진과 같을 이 없는 정진과 두루한 정진입니다.
성품에 삼독(三毒)이 없고 성품에 교만이 없고 성품에 덮어 숨김이 없고 성품에 간탐과 질투가 없고 성품에 아첨과 속임이 없고 성품이 스스로 부끄러워함이요, 마침내 한 중생이라도 시끄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합니다.
오직 일체 번뇌를 끊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의혹의 근본을 뽑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습기(習氣)를 제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세계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 나는 것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에 좋아함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경계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근성이 승하고 열함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오직 일체 중생의 마음으로 행함[心行]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합니다.
또 일체 법계를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근본 성품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평등한 성품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삼세의 평등한 성품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지혜 광명을 얻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지혜를 증득하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한결같은 실상[一實相]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끝단 데 없음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광대하고 결정하고 공교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고, 일체 불법의 구절과 뜻을 분별하여 연설하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정진을 행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정진행을 성취하고는, 가령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능히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위할 적에, 하나하나의 중생을 위하여 아비지옥에서
수없는 겁 동안에 모든 고통을 두루 받으면서, 저 중생들로 하여금 낱낱이 수없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을 만나게 하고, 부처님을 뵈온 연고로 여러 가지 낙을 받으며, 내지 무여열반에 들게 하고야, 그대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한량없는 아승기 큰 바닷물을 그대가 한 털 끝으로 찍어내어 다하게 하고,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를 모두 부수어 티끌을 만들어서 그 물방울과 그 티끌을 낱낱이 세어 그 수효를 알고는, 중생을 위하여서 그렇게 많은 겁을 지나면서 찰나찰나마다 고통받기를 간단 없이 하라’고 하더라도, 보살이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잠깐이라도 후회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다시 환희용약(歡喜踊躍)함을 더하며 스스로 다행하게 생각하고 큰 이익을 얻노라 하면서, ‘나의 힘으로써 저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고통에서 길이 벗어나게 하리라’고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행하는 방편으로 일체 세계에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내지 무여열반을 끝까지 얻게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넷째 굽히지 않는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우치와 산란을 여의는 행[離癡亂行]인가.
이 보살이 바른 생각을 성취하여 마음이 산란치 않고 견고하여 동하지 아니하며, 최상이고 청정하고 넓고 크고 한량없어 미혹하지 않은 것입니다.
생각이 바름으로써 세간의 온갖 말을 잘 알고, 출세간법의 말을 능히 지니나니, 이른바 색법(色法)과 색 아닌 법의 말을 능히 지니며, 색의 성품을 건립하는 말을 능히 지니고, 내지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성품을 건립하는 말을 능히 지니어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세간에 있어 여기서 죽고 저기 나는 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태에 들고 태에서 나오는 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보리심을 내는 데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선지식을 섬기매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불법을 부지런히 닦는 데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마군의 일을 알아서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마군의 업을 여의어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으며,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닦으매 마음이 우치하고 산란치 않습니다.
이 보살이 이렇게 한량없는 바른 생각을 성취하고는,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부처님과 보살과 선지식에게서 바른 법을 듣나니, 이른바 매우 깊은 법, 넓고 큰 법, 장엄한 법, 가지가지 장엄한 법, 가지가지 낱말 구절 소리의 굴곡을 연설하는 법, 보살의 장엄하는 법, 부처님 신력과 광명의 위없는 법, 바른 희망으로 결정한 이해인 청정한 법, 일체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법, 일체 세간을 분별하는 법, 매우 깊고 광대한 법, 어리석음을 떠나 일체 중생을 분명히 아는 법, 일체 세간이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는 법, 보살 지혜의 위없는 법, 온갖 지혜로 자재한 법들입니다. 보살이 이런 법을 듣고는 아승기겁을 지내어도 잊지 않고 잃지 않고 항상 기억하여 간단함이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겁 동안 모든 행을 닦을 때에 한 중생이라도 시끄럽게 하여 바른 생각을 잃게 하지 아니하며, 바른 법을 파괴하지 않고 선근을 끊지 아니하여 마음에 항상 광대한 지혜를 증장하는 연고입니다.
또 이 보살마하살은 가지가지 음성으로도 산란케 하지 못하나니, 이른바 높고 큰 음성, 거칠고 탁한 음성, 사람을 공포케 하는 음성, 뜻에 기쁜 음성, 기쁘지 않는 음성, 귀를 시끄럽게 하는 음성, 육근을 망그러뜨리는 음성입니다.
이 보살은 이렇게 한량없고 수없는 좋고 싫은 음성이 아승기 세계에 가득함을 듣더라도, 잠깐 동안도 마음이 산란치 아니하나니, 이른바 바른 생각이 산란치 않고, 경계가 산란치 않고, 삼매가 산란치 않고, 깊은 법에 들어감이 산란치 않고, 보리행을 닦음이 산란치 않고, 보리심을 내는 것이 산란치 않고, 부처님들을 생각함이 산란치 않고, 진실한 법을 관찰함이 산란치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가 산란치 않고, 중생을 청정케 하는 지혜가 산란치 않고, 깊은 이치를 결정적으로 아는 것이 산란치 아니합니다.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하므로 악업의 장애가 없고, 번뇌를 일으키지 아니하므로 번뇌의 장애가 없고, 법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므로 법의 장애가 없고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므로 과보의 장애가 없습니다.
불자들이여, 위에 말한 음성들이 낱낱이 아승기 세계에 가득하여 한량없고 수없는 겁에 잠깐도 끊이지 않으면서 중생의 몸과 마음과 모든 근을 무너뜨리더라도 이 보살의 마음은 무너뜨리지 못하며,
보살이 삼매에 들어 성인의 법에 머물고, 일체 음성을 생각하고 관찰하며, 음성의 나고 머물고 멸하는 모양을 잘 알며, 음성의 나고 머물고 멸하는 성품을 잘 압니다.
이렇게 듣고는 탐심을 내지 아니하고 성을 내지 아니하고 생각을 잃지 아니하며, 그 모양을 잘 취하여서 물들지 아니하며, 온갖 음성이 다 없는 것이어서 실로 얻을 수 없으며, 지은 이도 없고 근본의 짬[本際]도 없어서 법계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나니, 보살이 이렇게 적정한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행을 성취하고는 온갖 지혜에 이르도록 영원히 퇴전치 아니하고, 온갖 선정의 문에 잘 들어가서 모든 삼매가 동일한 성품임을 알며, 일체 법이 끝이 없음을 알며, 일체 법의 진실한 지혜를 얻으며, 음성을 여읜 깊은 삼매를 얻으며, 아승기 삼매문을 얻어서 한량없이 광대한 대비심(大悲心)을 증장합니다. 이때에 보살이 잠깐 동안에 수없는 백천 삼매를 얻어서 이런 음성을 들어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삼매로 하여금 점점 더 커지게 하며, 생각하기를 ‘내가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이 청정한 생각에 편안히 머물러 온갖 지혜에 퇴전치 아니하고 필경에 무여 열반을 성취케 하리라’ 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다섯째 우치와 산란을 여의는 행이라 합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잘 나타나는 행[善現行]인가.
이 보살의 몸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말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뜻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여, 얻은 것 없는 데 머물러서 얻을 것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보이나니, 삼업(三業)이 모두 없는 것인 줄을 아는 것이며, 허망함이 없으므로 얽매임이 없으며, 무릇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 성품도 없고 의지함도 없습니다.
실제와 같은 마음에 머물러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을 알며 온갖 법의 성품을 알지만, 얻은 것도 없고 형상도 없고 매우 깊어 들어가기 어려우며, 바른 자리[正位]인 진여의 법성(法性)에 머물러서 방편을 내지만 업보가 없는 것이어서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열반계에 머물고 고요한 성품에 머물고 진실하여 성품이 없는 성품에 머무르며, 말로 할 수도 없고 세간을 초월하여 의지한 데가 없습니다. 분별을 여의어 속박이 없는 법에 들어갔으며, 가장 나은 지혜의 진실한 법에 들어갔으며,
세간으로는 알 수 없는 출세간 법에 들어갔나니, 이것이 보살의 교묘한 방편으로 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성품 없음으로 성품을 삼았고, 일체 법이 함이 없음으로 성품을 삼았고, 일체 국토가 형상 없음으로 모양을 삼았으며, 일체 삼세가 오직 말뿐이니, 모든 말이 여러 법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고 모든 법이 말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다 합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모두 깊고 깊음을 알며, 모든 세간이 다 고요하고, 모든 불법이 더함이 없고 불법이 세간법과 다르지 않고, 세간법이 불법과 다르지 않고, 불법과 세간법이 섞이지 아니하며 또 차별도 없음을 이해하나니, 법계의 자체 성품이 평등하면 삼세에 두루 들어감인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며, 큰 보리심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이 항상 퇴전하지 않으며, 큰 자비심이 더욱 증장하여 일체 중생의 의지할 데가 됩니다.
보살이 이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중생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누가 성숙시키며, 내가 중생을 조복하지 않으면 누가 조복하며, 내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누가 교화하며, 내가 중생을 깨우치지 않으면 누가 깨우치며, 내가 중생을 청정케 하지 않으면 누가 청정케 하겠는가. 이것은 나에게 마땅한 일이니 내가 하여야 하리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만일 나만 이 깊은 법을 알면 나 한 사람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해탈할 것이니, 다른 중생들은 캄캄하고 눈이 없어 큰 험난한 길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번뇌에 속박이 되어 중병에 걸린 사람이 항상 고통을 받는 것 같을 것이며, 탐애의 옥에 떨어져 나오지 못할 것이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고통을 멸하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데 항상 있으면서 진실한 이치를 보지 못하고, 생사에 헤매면서 뛰어나지 못하고, 팔난에 있으면서 더러운 때에 물들고 가지가지 번뇌가 마음을 가리워서 삿된 소견에 빠져 바른 도를 행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중생을 관찰하고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중생들이 성숙되지 못하고 조복되지 못한 것을 그냥 버려두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니, 내가 먼저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보살의 행을 행하되, 성숙하지 못한 이를 먼저 성숙케 하고 조복하지 못한 이를 먼저 조복케 하리라.’
이 보살이 이 행에 머물러 있을 때에 모든 하늘ㆍ마군ㆍ범천ㆍ사문ㆍ바라문과, 모든 세간의 건달바와 아수라들이 만일 만나 보거나 잠깐이라도 함께 있거나 공경하고 존중하고 섬기고 공양하거나, 잠깐 귀에 들었거나 마음에 한번 거치기만 하여도, 이런 일이 헛되지 아니하여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여섯째 잘 나타나는 행이라 합니다.”
굴요(屈橈) : 뒷글자는 노(奴)와 교(巧)의 반절이다.
자섬(資贍) : 뒷글자는 시(時)와 염(燄)의 반절이다.
기리(飢羸) : 뒷글자는 력(力)과 위(爲)의 반절이다.
위취(危脃) : 앞글자는 어(魚)와 위(爲)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차(此)와 예(芮)의 반절이다.
주려(姝麗) : 앞글자는 창(昌)과 주(朱)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랑(郞)과 계(計)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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