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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282 불교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7권

by Kay/케이 202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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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7

 

대방광불화엄경 제17권

우전국(于闐國) 삼장(三藏)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이운허 번역

16. 범행품(梵行品)

이때 정념천자(正念天子)가 법혜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시여, 온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물든 옷을 입고 출가하였으면, 어떻게 하여야 범행(梵行)이 청정하게 되오며, 보살의 지위로부터 위없는 보리의 도에 이르리이까?”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범행을 닦을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법으로 반연을 삼고 뜻을 내어 관찰하여야 하나니, 이른바 몸과 몸의 업과 말과 말의 업과 뜻과 뜻의 업과 부처님과 교법과 승단과 계율이니라. 마땅히 관찰하기를 몸이 범행인가, 내지 계율이 범행인가 할 것이니라.
만일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선하지 않은 것이며 법답지 않은 것이며 흐린 것이며 냄새 나는 것이며 부정한 것이며 싫은 것이며 어기는 것이며 잡되고 물든 것이며 송장이며 벌레 무더기인 줄을 알 것이니라.
만일 몸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가는 것ㆍ머무는 것ㆍ앉는 것ㆍ눕는 것ㆍ왼쪽으로 돌아보는 것ㆍ오른쪽으로 돌아보는 것ㆍ구부리는 것ㆍ펴는 것ㆍ숙이는 것ㆍ우러르는 것이니라.
만일 말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음성ㆍ숨ㆍ가슴ㆍ혀ㆍ목구멍ㆍ입술ㆍ뱉고 삼킴ㆍ들고 놓음ㆍ고저(高低)ㆍ청탁(淸濁)일 것이니라.
만일 말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안부를 묻거나 대강 말하고 자세히 말하고 비유로 말하고 직설(直說)하고 칭찬하고 헐뜯고 방편으로 말하고[安立說] 세속을 따라 말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리라.
만일 뜻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깨달음[覺]이며 관찰이며 분별이며 가지가지 분별이며 기억함이며 가지가지 기억함이며 생각함이며 가지가지 생각함이며 요술이며 꿈이리라.
만일 뜻의 업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생각함[思]이며 생각[想]이며 추위며 더위이며 주림이며 목마름이며 괴로움이며 즐거움이며 근심이며 기쁨이리라.
만일 부처님이 범행이라면, 색온(色蘊)이 부처인가 수온(受蘊)이 부처인가 상온(想蘊)이 부처인가 행온(行蘊)이 부처인가 식온(識蘊)이 부처인가 상(相)이 부처인가 호(好)가 부처인가 신통이 부처인가 업행(業行)이 부처인가
과보가 부처인가.
만일 교법이 범행이라면, 적멸(寂滅)이 법인가1) 순종치 않음이 법인가 얻을 바 없음이 법인가 열반이 법인가 나지 않음이 법인가 일어나지 않음이 법인가 말할 수 없음이 법인가 분별 없음이 법인가 행할 바 없음이 법인가 모이지 않음이 법인가.
만일 승가가 범행이라면, 예류향(豫流向)이 승가인가 예류과가 승가인가 일래향(一來向)이 승가인가 일래과가 승가인가 불환향(不還向)이 승가인가 불환과가 승가인가 아라한향(阿羅漢向)이 승가인가 아라한과가 승가인가 삼명(三明)이 승가인가 육신통[六通]이 승가인가.
만일 계율이 범행이라면, 계단[壇場]이 계율인가 청정한가 묻는 것이 계율인가 위의를 가르침이 계율인가 갈마를 세 번 말함이 계율인가 화상이 계율인가 아사리가 계율인가 머리 깎는 것이 계율인가 가사 입는 것이 계율인가 걸식함이 계율인가 정명(正命)이 계율인가.
이렇게 관찰하면, 몸에 취할 것이 없고 닦는 데 집착할 것이 없고 법에 머물 것이 없으며, 과거는 이미 멸하였고 미래는 이르지 못하였고 현재는 고요하며,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을 이도 없으며, 이 세상은 이동하지 않고 저 세상은 바뀌지 아니하느니라.
이 가운데 어느 법이 범행인가, 범행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소유며 자체는 무엇이며 누구로 말미암아 지었는가. 이것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색인가 색이 아닌가, 수인가 수가 아닌가, 상인가 상이 아닌가, 행인가 행이 아닌가, 식인가 식이 아닌가.
이렇게 관찰하면, 범행이란 법은 얻을 수 없는 연고며, 삼세의 법이 다 공적한 연고며, 뜻에 집착이 없는 연고며, 마음에 장애가 없는 연고며, 행할 것이 둘이 없는 연고며, 방편이 자재한 연고며, 모양 없는 법을 받아들이는 연고며, 모양 없는 법을 관찰하는 연고며, 부처님 법이 평등함을 아는 연고며, 온갖 부처님 법을 갖춘 연고로 이렇게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느니라.
다시 열 가지 법을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아는 지혜, 지난 세상ㆍ지금 세상ㆍ오는 세상의 업과 과보를 아는 지혜, 모든 선정 해탈 삼매를 아는 지혜, 모든 근성의 승(勝)하고 열(劣)함을 아는 지혜, 가지가지 이해를 아는 지혜,
가지가지 경계를 아는 지혜, 온갖 곳에 이르는 길을 아는 지혜, 천안통이 걸림없는 지혜, 숙명통이 걸림없는 지혜, 습기(習氣)를 영원히 끊는 지혜니, 여래의 십력을 낱낱이 관찰하며, 낱낱 힘에 한량없는 뜻이 있는 것을 마땅히 물어야 하느니라.
둘은 뒤에는 크게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나니, 중생을 관찰하여 버리지 아니하며, 모든 법을 생각하여 쉬지 아니하며, 위없는 업을 행하고도 과보를 구하지 말며, 경계가 요술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변화와 같음을 분명히 알지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렇게 관행(觀行)함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면, 모든 법에 두 가지 이해를 내지 아니하여 온갖 부처님 법이 빨리 앞에 나타날 것이며, 처음 발심할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온갖 법이 곧 마음의 성품임을 알 것이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다른 이를 말미암아 깨닫지 아니하리라.”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그때 제석천왕이 법혜보살에게 여쭈었다.
“불자시여,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나이까?”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이 이치가 깊고 깊어서 말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우니라. 그러나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그대에게 말하리라.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모든 즐길거리로써 동방의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한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런 뒤에 가르쳐서 오계(五戒)를 깨끗이 갖게 하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또 이와 같이 하였다면,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옵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측량할 이가 없겠나이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견주어 보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렇게 억분의 일, 백억분의 일, 천억분ㆍ백천억분ㆍ나유타 억분ㆍ백 나유타 억분ㆍ천 나유타 억분ㆍ백천 나유타 억분ㆍ수분(數分)ㆍ
가라분(歌羅分)ㆍ산분(算分)ㆍ유분(諭分)ㆍ우파니사타분(優波尼沙陀分)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차치하고, 가령 어떤 사람이 온갖 즐길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백 겁 동안 공양하고, 그런 뒤에 가르쳐서 십선도(十善道)를 닦게 하고, 이렇게 천 겁 동안 공양한 뒤에 사선(四禪)에 머물게 하고, 백천 겁을 지낸 뒤에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머물게 하고, 억 겁을 지낸 뒤에 사무색정(四無色定)에 머물게 하고, 백억 겁을 지낸 뒤에 수다원과(須陀洹果)에 머물게 하고, 천억 겁을 지낸 뒤에 사다함과(斯陀含果)에 머물게 하고, 백천억 겁을 지낸 뒤에 아나함과(阿那含果)에 머물게 하고, 나유타억 겁을 지낸 뒤에 아라한과(阿羅漢果)에 머물게 하고, 백천 나유타억 겁을 지낸 뒤에 가르쳐서 벽지불도(辟支佛道)에 머물게 하였다면,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제석천왕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법혜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할 때에 다만 온갖 즐길거리로써 시방의 열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백 겁 동안이나 내지 백천 나유타억 겁 동안을 지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며, 다만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가르쳐서 오계와 십선업도를 닦게 하거나, 사선ㆍ사무량심ㆍ사무색정에 머물게 하거나, 수다원과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아라한과ㆍ벽지불도를 얻게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고, 여래의 종성(種姓)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이룸과 무너짐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때 묻고 깨끗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세계의 성품이 청정함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마음의 즐거움과 번뇌의 습기를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 나는 것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근성과 방편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마음과 행을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알기 위한 연고며,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함을 알기 위한 연고로 위없는 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으로 아승기 세계를 능히 지나가는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끝나도록 하였다면, 이 여러 세계는 그 끝간데를 찾을 수 없느니라.
또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지나간 세계를 능히 지나가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또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고, 차례차례로 더하고 더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 가운데 모두 백 사람이 있어서 낱낱이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세계를 지나갔다면, 이 모든 세계는 오히려 끝간데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서 얻은 선근은 그 끝간데를 알 사람이 없으리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 지나간 것만을 알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기로 제한한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를 분명히 알기 위하여 보리심을 낸 것이니, 이른바 묘(妙)한 세계가 곧 추(麤)한 세계요 추한 세계가 곧 묘한 세계며, 잦힌[仰] 세계가 곧 엎은[覆] 세계요, 엎은 세계가 곧 잦힌 세계며, 작은 세계가 곧 큰 세계요 큰 세계가 곧 작은 세계며, 넓은 세계가 곧 좁은 세계요 좁은 세계가 곧 넓은 세계며, 한 세계가 곧 말할 수 없는 세계요 말할 수 없는 세계가 곧 한 세계며, 말할 수 없는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가고 한 세계가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며, 더러운 세계가 곧 깨끗한 세계요 깨끗한 세계가 곧 더러운 세계임을 알고자 하며, 한 터럭 끝 가운데가 일체 세계의 차별한 성품이요 일체 세계 가운데가 한 터럭 끝의 한 성품임을 알고자 하며, 한 세계 가운데서 일체 세계를 내는 것을 알고자 하며,
일체 세계가 자체의 성품이 없음을 알고자 하며, 잠깐 동안 마음으로 모든 광대한 세계를 다 알아서 장애가 없고자 하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에 있는 아승기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를 능히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이 모든 겁의 수효를 끝 간 데까지 능히 알 수가 없으리라. 또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의 아승기 겁 동안에 안 겁의 수효를 능히 알며, 이와 같이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고,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또한 이와 같았느니라.
불자여, 이러한 시방의 아승기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는 그 끝간데까지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 낸 공덕과 선근은 끝간데까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의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의 수효만을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로 제한한 것이 아니고, 일체 세계의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을 모두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이른바 긴 겁이 짧은 겁과 평등하고 짧은 겁이 긴 겁과 평등하며, 한 겁이 무수한 겁과 평등하고 무수한 겁이 한 겁과 평등하며, 부처님 있는 겁이 부처님 없는 겁과 평등하고, 부처님 없는 겁이 부처님 있는 겁과 평등하며, 한 부처님 겁 가운데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있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겁 가운데 한 부처님이 있으며, 한량 있는 겁이 한량없는 겁과 평등하고 한량없는 겁이 한량 있는 겁과 평등하며, 다함 있는 겁이 다함 없는 겁과 평등하고 다함 없는 겁이 다함 있는 겁과 평등하며, 말할 수 없는 겁이 한 찰나와 평등하고 한 찰나가 말할 수 없는 겁과 평등하며, 일체 겁이 겁 아닌 데 들어가고 겁 아닌 것이 일체 겁에 들어가는 것을 알기 위함이며, 잠깐 동안에 앞 세상 뒤 세상과 지금 세상의 일체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을 죄다 알고자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처음 발심하고 큰 서원으로 장엄하여 일체의 겁을 분명히 아는 신통한 지혜라 하느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아승기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차별한 이해를 능히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고, 또 둘째 사람은 한 생각 동안에 앞의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아는 중생들의 여러 가지 차별한 이해를 능히 알아서, 이와 같이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으며, 이렇게 차례차례로 그렇게 하여 열째 사람에 이르렀고,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그러하였다면, 불자여, 이 시방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지혜를 끝까지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간데까지를 알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은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이해를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고,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이해를 모두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이른바 일체 차별한 이해의 그지없음을 알려는 연고며, 한 중생의 이해가 무수한 중생의 이해와 평등함을 알려는 연고며, 말할 수 없이 차별한 이해를 아는 방편 지혜 광명을 얻으려는 연고며, 중생들의 제각기 차별한 이해를 죄다 알아서 남음이 없으려는 연고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선하고 선하지 못한 가지가지 한량없는 이해를 죄다 알려는 연고며, 비슷한 이해와 비슷하지 아니한 이해를 모두 알려는 연고며, 일체 이해가 곧 한 이해요 한 이해가 곧 일체 이해임을 모두 알려는 연고며, 여래의 이해하는 힘을 얻으려는 연고니라.
또 위가 있는 이해와 위가 없는 이해와 남음이 있는 이해와 남음이 없는 이해와 평등한 이해와 평등치 아니한 이해의 차별함을 모두 알려는 연고며, 또 의지 있는 이해와 의지 없는 이해와 함께하는 이해와 함께하지 않는 이해와 끝 있는 이해와 끝없는 이해와 차별 있는 이해와 차별 없는 이해와 선한 이해와 선하지 못한 이해와 세간의 이해와 출세간의 이해가 차별한 것을 죄다 알려는 연고며, 또 일체의 묘한 이해ㆍ큰 이해ㆍ한량없는 이해ㆍ정위(正位)의 이해 가운데서 여래 해탈의 걸림없는 지혜를 얻으려는 연고며, 또 한량없는 방편으로 시방의 일체 중생계에 있는 낱낱 중생의
깨끗한 이해ㆍ물든 이해ㆍ자세한 이해ㆍ간략한 이해ㆍ세밀한 이해ㆍ거친 이해를 죄다 알아서 남음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또 깊고 비밀한 이해ㆍ방편의 이해ㆍ분별한 이해ㆍ자연의 이해ㆍ인(因)을 따라 일어나는 이해ㆍ연(緣)을 따라 일어나는 이해를 죄다 알아서 일체 이해의 그물을 끝까지 다하여 남음이 없게 하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의 근성이 차별함을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러하여 아승기 겁을 지내었고, 또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생각생각마다 아는 모든 근성의 차별함을 알며, 이렇게 하여 내지 열째 사람에 이르렀고,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근성이 차별함을 끝까지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 사람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 중생들의 근성을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일체 세계 가운데 있는 일체 중생의 근성이 가지가지로 차별한 것을 모두 알기 위한 것이며, 더 말하면 내지 일체 근성의 그물을 죄다 알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을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였고, 차례로 이렇게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이 시방 중생들이 가진 욕망은 그 끝간데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간데를 능히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욕망을 알기 위한 것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니,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을 죄다 알려는 연고며, 자세히 말하면
일체의 욕망 그물을 모두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방편을 알며, 이렇게 모두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고,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이 시방 중생들의 가지가지 방편을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공덕과 선근은 그 끝간데를 알 사람이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방편을 모두 알기 위한 것이며, 자세히 말하면 내지 일체의 방편 그물을 죄다 알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마음을 능히 알며, 널리 말하여 내지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마음은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공덕과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온 법계 허공계의 끝없는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모두 알기 위하며, 내지 일체의 마음 그물을 죄다 알기 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업을 능히 알며, 자세히 말하여 내지 시방 중생들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업은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업을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삼세 일체 중생들의 업을 모두 알기 위하여, 내지 일체 업의 그물을 죄다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가지가지 번뇌를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한다면, 이 모든 번뇌의 가지가지로 차별한 것을 그 끝까지 능히 알 사람이 없고, 둘째 사람은 한 생각 동안에 앞엣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아는 바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능히 알고, 이와 같이 하여 다시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며, 차례차례로 이와 같이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되,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은 그 끝간데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선근은 끝까지 알지 못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 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모두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니, 이른바 가벼운 번뇌ㆍ무거운 번뇌ㆍ자는[眠] 번뇌ㆍ일어나는 번뇌와 낱낱 중생의 한량없는 번뇌와 가지가지 차별을 모두 알고, 가지가지 각관(覺觀)으로 온갖 물든 것을 깨끗하게 다스리는 연고며, 또 무명을 의지한 번뇌와 애(愛)와 서로 응하는 번뇌를 모두 알아서 모든 유(有)와 갈래의 번뇌 결박을 끊으려는 연고며, 또 탐하는 성품[貪分]의 번뇌와 성내는 성품[瞋分]의 번뇌와 어리석은 성품[癡分]의 번뇌와 평등한 성품[等分]의 번뇌를 모두 알아서 일체 번뇌의 근본을 끊으려는 연고며, 또 나[我]라는 번뇌와 내 것[我所]이라는 번뇌와 아만의 번뇌를 모두 알아서, 일체의 번뇌를 깨닫고 남음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또 뒤바뀜과 분별로부터 근본 번뇌와 따르는 번뇌[隨煩惱]가 생기고, 몸이란 소견[身見]으로 인하여 육십이견[六十二見]이 생기는 것을 모두 알아서 일체 번뇌를 조복하려는 연고며, 또 덮는[蓋] 번뇌와
막는[障] 번뇌를 알고, 큰 자비로 구호하려는 마음을 내어 일체 번뇌의 그물을 끊고, 온갖 지혜로 하여금 청정케 하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가지가지 맛 좋은 음식과 향ㆍ꽃ㆍ의복ㆍ당기ㆍ깃발ㆍ일산과 절과 훌륭한 궁전ㆍ보배ㆍ휘장ㆍ그물과 가지가지로 장엄한 사자좌와 여러 가지 보배로써 동방의 무수한 부처님과 또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찬탄하며, 몸을 굽혀 우러르기를 서로 계속하여 무수한 겁을 지내며, 또 저 중생들을 권하여 모두 이렇게 부처님께 공양하게 하고,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는 각각 탑을 세우되, 그 탑이 높고 크고, 무수한 세계의 여러 보배로 이루어 가지가지로 장엄하였으며, 낱낱 탑 가운데 각각 무수한 여래의 형상을 모시고, 광명이 무수한 세계에 두루 비치며, 이렇게 수없는 겁을 지내었고,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ㆍ하방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면, 불자여, 그대의 뜻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의 공덕이 얼마나 많겠는가?”
제석천왕이 대답하였다.
“이 사람의 공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요, 다른 이는 헤아릴 수 없겠나이다.”
“불자여, 이 사람의 공덕을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불자여, 또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령 둘째 사람이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과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무수한 겁 동안에 공양하던 일을 능히 지으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가지가지의 공양거리로써, 한량없는 부처님 여래와 한량없는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며 한량없는 겁을 지내었고, 셋째 사람도, 내지 열째 사람도 모두 이와 같이 하여 한 생각 동안에 앞에 사람이 공양하던 일을 능히 지으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끝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공양거리로써, 끝없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과 그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끝없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나도록 하였으며,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는 각각 탑을 조성하는데, 그 탑이 높고 크며, 내지 여러 겁 동안 머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았느니라.
불자여, 이 사람들의 공덕으로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다만 저러한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요, 온 법계 허공계의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시방에 계시는 한량없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이니라.
이런 마음을 내고는 앞 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정각을 처음 이루시는 것과 열반에 드시는 것을 능히 알며, 뒷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가지실 선근을 능히 믿으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를 능히 아느니라.
저 부처님들이 소유하신 공덕을 이 보살이 능히 믿고 능히 받고 능히 닦고 능히 얻고 능히 알고 능히 증득하고 능히 성취하며 여러 부처님과 더불어 한 성품이 평등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이 일체 여래의 종성(種姓)을 끊지 않으려고 발심하며, 일체 세계에 가득하려고 발심하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려고 발심하며, 일체 세계의 이룸과 무너짐을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중생의 때 묻고 깨끗함을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세계의 삼유(三有)가 청정함을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중생의 욕락(欲樂)과 번뇌와 습기를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는 것을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중생의 모든 근성과 방편을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중생의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알려고 발심하며, 일체 중생의 삼세 지혜를 모두 알려고 발심하였느니라.
발심하였으므로 항상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생각하심이 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를 얻을 것이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묘한 법을 주실 것이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성품이 평등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도를 돕는 법을 이미 닦았으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힘과 두려울 것 없음을 성취하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법문 말씀하는 지혜를 모두 얻을 것이니, 왜냐 하면 이렇게 발심함으로써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인 연고니라.
이 사람이 곧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과 평등하리니, 삼세의 부처님 여래의 경계와 평등하며, 삼세의 부처님 여래의 공덕과 평등하며, 여래의 한 몸과 한량없는 몸이 끝내 평등하고 진실한 지혜를 얻으리라.
발심하자마자, 곧 시방 모든 부처님의 함께 칭찬 받음이 될 것이며, 곧 능히 법을 말하며, 온갖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를 진동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를 비출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에서 나쁜 갈래의 고통을 멸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국토를 깨끗이 장엄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에서 성불함을 보일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게 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법계의 성품에 들어갈 것이며,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종성을 지닐 것이며,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얻을 것이니라.
이 처음 발심한 보살은 삼세에 대하여 조금도 얻음이 없나니, 이른바 부처님이나 부처님 법이나 보살이나 보살 법이나 독각이나 독각 법이나 성문이나 성문 법이나 세간이나 세간 법이나 출세간이나 출세간 법이나 중생이나 중생의 법 들이니라. 오직 온갖 것 아는 지혜를 구할 뿐이므로 모든 법계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때에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시방에 각각 일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이른바 흔들흔들ㆍ두루 흔들흔들ㆍ온통 두루 흔들흔들ㆍ들먹들먹ㆍ두루 들먹들먹ㆍ온통 두루 들먹들먹ㆍ울쑥불쑥ㆍ두루 울쑥불쑥ㆍ온통 두루 울쑥불쑥ㆍ우르르ㆍ두루 우르르ㆍ온통 두루 우르르ㆍ와르릉ㆍ두루 와르릉ㆍ온통 두루 와르릉ㆍ와지끈ㆍ두루 와지끈ㆍ온통 두루 와지끈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하늘 꽃ㆍ하늘 향ㆍ하늘 가루향ㆍ하늘 화만ㆍ
하늘 옷ㆍ하늘 보배ㆍ하늘 장엄거리를 내리며, 하늘 풍류를 잡히고, 하늘 광명을 놓으며, 하늘 음성을 지었다.
이때 시방으로 각각 열 부처 세계의 티끌 수 세계 밖에 일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부처님이 계시니, 명호가 같아서 모두 법혜(法慧) 부처님이라, 각각 법혜보살의 앞에 몸을 나타내고 이렇게 말씀하였다.
“잘하는 일이다, 법혜여. 그대가 지금 이 법을 능히 말하나니, 시방에 각각 일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같은 우리 부처들도 이 법을 말하며, 일체 부처님들도 다 이렇게 말하느니라.
그대가 이 법을 말할 때에 일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보살들이 보리심을 내었으며, 우리들이 지금 그 보살들에게 수기를 주노니, 이 다음 세상에 일천 곱 말할 수 없고 그지없는 겁을 지나고, 같은 겁 가운데서 부처를 이루어 세상에 나거든, 모두 청정심(淸淨心)여래라 이름할 것이며 머물러 있는 세계는 각각 차별하리라.
우리들이 모두 이 법을 보호하여 가지고 오는 세상 모든 보살의 듣지 못한 이들로 하여금 다 듣게 하리라.
이 사바세계 사천하의 수미산 꼭대기에서 이런 법을 말하여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듣고 교화를 받게 하는 것같이, 시방의 백천억 나유타 수없고, 한량없고, 끝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온 법계 허공계의 모든 세계 가운데서도 이 법을 말하여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그 법을 말하는 이는 모두 법혜보살이라 이름하나니, 다 부처님의 신통한 도력인 연고며, 세존의 본래 원력인 연고며, 부처님 법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연고며, 지혜 빛으로 두루 비추려는 연고며, 실상의 이치를 천명하려는 연고며, 법의 성품을 증득케 하려는 연고며, 모든 대중을 다 환희케 하려는 연고며, 불법의 인연을 열어 보이려는 연고며,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얻으려는 연고며, 법계가 둘이 없음을 알게 하려는 연고로 이런 법을 말하느니라.”
그때 법혜보살이 온 허공계의 시방 국토에 있는 모든 대중들을 두루 관찰하고, 모든 중생을 다 성취하려는 연고로, 모든 업과 과보를 다 깨끗이 다스리려는 연고로, 청정한 법계를 모두 나타내려는 연고로,
더럽게 물드는 근본을 모두 뽑으려는 연고로, 넓고 큰 신심과 이해를 증장케 하려는 연고로, 한량없는 중생의 근기를 다 알게 하려는 연고로, 삼세의 법이 평등함을 다 알게 하려는 연고로, 모두 열반계를 관찰케 하려는 연고로, 스스로의 청정한 선근을 증장케 하려는 연고로,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에 이익 주려 큰 마음 내고
그 마음 시방세계 두루 퍼지니
중생과 국토들과 삼세의 법과
부처님과 보살의 수승한 바라,

허공의 끝단 데가 법계와 평등
거기 있는 한량없이 많은 세간에
부처님 법과 같이 모두 나아가
이렇게 발심하고 퇴전치 않아,

중생을 사랑하여 버리지 않고
시끄럼을 여의고 이익케 하며
세상을 밝게 비춰 의지가 되니
십력으로 염려함이 부사의로다.

시방의 모든 국토 다 들어가서
모든 빛과 모양을 다 나타내며
부처님의 복과 지혜 그지없거든
따라서 인을 닦고 집착치 않네.

어떤 세계 잦혀 있고 혹은 엎쳤고
크고 작고 묘하여 한량없거늘
보살이 가장 좋은 마음을 내고
곳곳마다 나아가 걸림이 없네.

보살의 승한 행은 말할 수 없어
모두 다 닦아 익혀 머물지 않고
모든 부처 뵈옵고 기뻐하면서
깊고 깊은 법 바다 다 들어가고,

다섯 갈래 중생들 딱하게 여겨
더러운 때를 씻어 깨끗게 하며
부처님 종성 끊이지 않고
마군 궁전 부수어 남음이 없게,

평등한 여래 성품 이미 머물고
미묘한 방편 도를 좋이 닦아서
부처님의 경계에 신심을 내며
부처님 관정 얻고 집착이 없네.
양족존의 은혜를 갚으려는 맘
금강 같아 저해할 수가 없으며
부처님의 행할 일 비치어 알고
자연히 보리행을 닦아 익히네.

모든 갈래 차별과 수없는 망상
업과 과와 마음도 하나 아니며
근기와 성품들도 제각기 달라
큰 마음 한 번 내면 밝게 본다네.


그 마음 크고 넓어 법계와 같고
의지 없고 변함 없기 허공 같으며
부처 지혜 향해도 취함이 없어
실상을 잘 알아서 분별 떠났네.

중생 마음 알아도 중생 없으며
모든 법 알지마는 법 생각 없고
분별을 하면서도 분별 없으매
억 나유타 세계에 모두 나아가

한량없는 부처님 묘한 법장에
따라서 관찰하며 다 들어가고
중생의 행과 근성 모두 아나니
이런 곳에 이르러 세존과 같네.

청정한 큰 서원과 서로 응하여
여래께 공양하기 퇴전치 않고
천상 인간 보는 이 싫은 줄 몰라
부처님의 호념을 항상 받나니.
그 마음 청정하여 인한 데 없고
깊은 법 보더라도 취하잖으며
이렇게 오랜 세월 생각하여도
삼세 가운데서 집착이 없네.

그 마음 견고하여 제어 못하고
보리에 나아가기 장애 없으며
묘한 도리 구하여 의혹 없으매
법계에 두루 다녀 피로타 않네.

말로 하는 법이란 모두 고요해
진여에 들어가서 딴 생각 없고
부처님의 경계를 따라 살피니
삼세를 아는 마음 걸림이 없다.

보살이 광대한 맘 처음 내고는
시방의 모든 세계 두루 나아가
한량없는 저 법문 말은 못하나
지혜로 비치어서 밝히 다 아네.

자비로 건져주심 비길 데 없고
인자한 맘 허공처럼 두루했지만
중생에게 조금도 분별이 없어
청정하게 온 세계 다니시도다.

시방세계 중생을 위안하느라
일체의 짓는 일이 다 진실하고
언제나 깨끗한 맘 다른 말 없어
부처님의 가피를 항상 받나니.
지난 세상 있던 일 다 기억하고
미래세의 온갖 것 모두 분별해
시방의 세계 중에 두루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네.

보살이 묘한 지혜 광명 갖추고
인연법을 잘 알아 의심 없으며
온갖 미혹 모두 다 끊었으므로
이렇게 온 법계에 두루 다니고,


마왕의 궁전들을 부서 버리고
중생의 어둔 무명 모두 제멸해
분별을 떠났으매 마음이 부동
여래의 묘한 경계 분명히 알고,

삼세의 의심 그물 이미 제하고
여래에게 깨끗한 신심을 내어
부동하는 지혜를 이루었으며
지혜가 청정하매 이해도 진실.

중생들 생사에서 뛰어 나와서
오는 세상 끝나도록 이롭게 하며
오랜 세월 애를 써도 싫은 줄 몰라
지옥에 이르러도 평안히 받고,

한량없는 복과 지혜 모두 갖추고
중생의 근성 욕망 모두 다 알며
모든 업과 행동을 죄다 보고서
그의 욕락 따라서 법을 말하며,

온갖 것이 나[我]가 없어 공한 줄 알며
중생들을 생각하여 버리지 않고
한 가지 자비하고 미묘한 음성
세간에 들어가서 연설하도다.

여러 빛깔 찬란한 광명 놓아서
중생을 두루 비춰 암흑 제하며
광명 속에 보살이 연꽃에 앉아
대중에게 청정한 법 선양하나니,

한 털 끝에 나타내는 많은 세계에
수없는 큰 보살들 가득 찼는데
모인 대중 지혜들이 각각 다르나
모두들 중생 마음 분명히 알고,

시방세계 말할 수 없이 많지만
한 생각에 두루 다녀 안 간 데 없고
중생에 이익 주며 부처께 공양
부처님 처소마다 깊은 뜻 묻고,

여래께 아버지란 생각을 내고
중생에 이익 주려 보리행 닦고
지혜가 공교하여 법장을 통달
깊은 지혜 들어가 집착이 없네.

따라서 생각하고 법계 말하니
한량없는 겁에도 다할 수 없고
지혜로 들어가나 처소 없으며
고달픈 맘도 없고 집착도 없어,

삼세의 부처님들 가문에 가서
여래의 묘한 법신 증득하였고
중생 위해 여러 몸을 나타내나니
요술쟁이 온갖 모양 다 만드는 듯,

처음 닦는 좋은 행을 나타도 내고
태어나고 출가하는 일도 보이고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도 하며
중생에게 열반함도 나타내더라.


보살들이 머무는 희유한 법은
부처님의 경계요 이승(二乘) 아니니
몸과 말과 뜻과 생각 다 제(除)했지만
온갖 것을 적당하게 다 나타내고,

보살들이 얻은 바 부처님 법을
중생이 생각하면 발광하지만
실상에 든 지혜는 걸림이 없어
여래의 자재한 힘 다 나타내고,

이런 일 세상에는 짝이 없는데
하물며 수승한 행 더할까보냐
온갖 지혜 구족하지 못하였지만
여래의 자재한 힘 이미 얻었고,

구경(究竟)의 일승도에 머물렀으며
미묘하고 최상법에 깊이 들어가
중생들의 제때와 제때 아님을 알고
이익 주려 신통을 나타내나니
분신(分身)이 모든 세계 가득히 차서
깨끗한 광명 놓아 어둠 제하니
용왕이 큰 구름을 일으키어서
좋은 비 흡족하게 내림과 같네.

중생들이 요술 같고 꿈 같은 업력
언제나 삼계에서 헤맴을 보고
대자비로 슬피 여겨 구하시려고
하염없는 법의 성품 위해 말하니.

한량없는 부처님 힘 역시 그러해
허공이 끝단 데가 없음과 같이
중생들로 해탈을 얻게 하려고
억 겁 동안 수행하여 게을지 않네.

가지가지 생각과 미묘한 공덕
위없는 제일의 업 훌륭히 닦아
온갖 뛰어난 행 버리지 않고
오로지 일체지를 이루려 하네.

한 몸에서 한량없는 몸을 보이며
모든 세계 간 데마다 두루하여도
그 마음 청정하여 분별이 없고
한 생각 부사의한 힘도 그러해.

여러 가지 세간에 분별이 없고
온갖 법에 대해서도 망상 없으며
모든 법을 보지마는 취하지 않고
중생을 구원해도 건진 것 없어,
일체의 세간들도 오직 망상뿐
그 가운데 각가지로 차별하거늘
망상 경계 험하고 깊은 줄 알고
신통을 나타내어 해탈케 하니,

요술장이 자재한 힘과 같아서
보살의 신통 변화 또한 그러해
법계와 허공계에 가득한 몸을
중생이 마음 따라 모두 다 보네.


분별하고 분별할 것 둘이 다 없고
물들고 깨끗함을 취하잖으며
속박이다 해탈이란 지혜도 잊어
중생에게 안락 주기 원할 뿐이다.

일체의 세간들이 망상의 힘뿐
지혜로써 들어가 두려움 없고
모든 법 생각함도 또한 그러해
삼세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네.

지난 세월 끝까지 능히 들었고[入]
끝없는 미래까지 다 들어가고
현재의 온갖 곳에 능히 들어가
부지런히 늘 살펴도 있는 것 없네.

열반의 고요한 법 따라 가면서
다툼 없고 의지 없는 곳에 머무니
실상과 같은 마음 짝할 이 없어
보리를 향해 나가 퇴전치 않고,

훌륭한 행을 닦아 물러가잖고
보리에 머물러서 동요 않으며
부처님 보살이나 여러 세간들
법계의 끝 간데를 분명히 아네.

가장 좋고 제일가는 길을 얻어서
온갖 지혜 해탈왕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내어서
모든 번뇌 다 끊고 중생 이익케,

보리를 향해 가는 마음이 청정
크고 넓은 공덕을 말 못하지만
중생에 이익 주려 말하는 터니
어지신 그대들은 잘 들으시오.

그지없는 세계를 티끌 만들고
낱낱 티끌 속에 있는 무량한 세계
그 가운데 부처님 한량없나니
모두 다 환히 봐도 취함이 없고,

중생을 잘 알아도 그 생각 없고
말하여도 말이란 생각 없으며
온 세계에 마음이 장애 없으며
모두 다 알면서도 집착치 않아,

그 마음 넓고 크기 허공과 같아
삼세의 모든 일을 죄다 통달해
갖가지 의혹들을 제해 버리니
불법을 바로 보매 취할 바 없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국토에
잠깐 동안 나아가 집착이 없고
세간의 괴로운 법 분명히 통달
생멸 없는 실제에 모두 머물며,

한량없고 부사의한 부처님 처소
그 회상에 나아가 모두 뵈옵고
우두머리 되어서 항상 여래께
보살의 닦는 행을 여쭈어 보며,


마음으로 시방 여래 늘 생각하나
의지함도 취함도 아주 없으며
중생을 권하여서 선근을 심고
국토를 장엄하여 청정케 하네.

모든 갈래 중생과 삼유(三有)의 세계
장애 없는 눈으로 모두 살펴서
그들의 습성(習性)이며 근기와 지혜
한량없는 차별을 모두 다 보고,

중생들의 욕락을 분명히 알고
그 근성에 맞추어 법을 말하며
물들고 깨끗함을 다 통달하여
그들이 행을 닦아 도에 들도록,

한량없고 수없는 모든 삼매에
보살이 잠깐 동안 능히 들었고
생각하는 지혜와 반연할 것을
분명히 잘 알아서 자재하게 돼,

크고 넓은 지혜를 보살이 얻고
보리에 나아가기 장애가 없어
중생에 이익하려 가는 곳마다
큰 어른 깨닫는 법 선양하더라.

세간의 긴 겁이나 짧은 겁이나
한 달 반달 밤낮을 모두 잘 알고
국토는 각각이나 성품이 평등
부지런히 관찰하여 방일치 않고,

시방의 모든 세계 두루 나아가
그러나 어느 지방 취함이 없고
국토를 장엄하여 남김 없지만
깨끗하단 분별을 내지 아니해,

중생의 옳은 것과 그른 것이며
업 지어 과보 받기 다 다른 것을
생각하고 부처님 힘에 들어가
여기서 온갖 것을 모두 다 알고,

온갖 세계 가지가지 성품이 달라
여러 가지 행으로 삼계에 나며
근성의 상품임과 중품 하품과
이러하게 온갖 것 다 관찰하며,

깨끗하고 부정하고 모든 이해와
승하고 열한 것을 분명히 보고
온갖 중생 행으로 이르러 갈 곳
삼유(三有)가 계속함을 능히 말하며,

선정과 해탈이며 모든 삼매의
물들고 깨끗한 인(因) 각각 다르고
전세의 고와 낙이 같지 않음을
부처님 힘을 닦아 능히 다 보고 ,

중생의 혹업으로 육취[趣]가 계속
끊으면 모든 갈래 고요해져서
가지가지 번뇌가 나지 않으며
습기와 종자 번뇌 다 아느니라.


여래는 모든 번뇌 다 제멸하여
지혜 광명 세상에 밝게 비추니
보살이 부처님의 열 가지 힘에
증득하지 못했으나 의심은 없네.

보살이 한 털구멍 좁은 가운데
시방의 무량 세계 나타내나니
어떤 세계 물들고 혹은 청정해
가지가지 짓는 업 능히 다 알고,

한 티끌 속에 있는 무량한 세계
수많은 부처님과 여러 불자들
세계가 다 달라도 섞이지 않아
하나처럼 일체 티끌 분명히 보며,

한 터럭 구멍에서 시방을 보니
온 허공에 가득한 수많은 세계
부처님 안 계신 덴 한 곳도 없고
이러한 세계들이 모두 청정해,
털구멍서 부처님의 세계를 보고
또 다시 온갖 가지 중생을 보니
삼세의 여섯 갈래 같지 않으며
밤낮으로 속박하고 풀림이 있네.

이렇게 큰 지혜인 여러 보살들
전심(專心)으로 법왕 지위 향해 나아가
부처님 머무신 곳 따라 생각코
그지없는 큰 환희를 지금 얻었네.

보살의 분신들이 한량없는 억
온 세계 모든 여래 공양하오며
신통 변화 나타냄이 비길 데 없어
부처님 행하는 곳 모두 머물고,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부를 쌓아
많은 법장 모두 다 맛들여 알며
부처 뵙고 법 들어 닦아 행하니
감로를 먹은 듯이 마음이 환희,

여래의 승한 삼매 이미 얻었고
모든 법을 잘 알아 지혜가 증장
믿는 마음 동치 않고 수미산처럼
중생들의 공덕장 잘도 짓도다.

인자한 맘 넓고 커서 중생에 두루
온갖 지혜 이루기 원하면서도
집착하고 의지한 데 항상 없어서
모든 번뇌 여의어 자재 얻었고,
중생을 사랑하는 넓고 큰 지혜
모든 이를 거두어 내 몸과 같게
모양 없고 진실찮고 공한 줄 아나
그 마음 행하여서 게을지 않네.

보살들의 발심한 공덕더미는
억 겁을 칭찬해도 못 다하나니
수없는 여래들을 내게 되어서
독각이나 성문이 안락한 까닭.


시방의 모든 국토 중생들에게
수없는 겁 보시하여 편안케 하고
오계 십선 권하여 가지게 하며
사선과 사무량심 선정 얻게 해.

또다시 많은 겁에 안락을 보시
번뇌 끊고 아라한을 이루게 하면
저러한 복더미가 한량없으나
발심한 공덕과는 비길 수 없고,

억만 중생 교화해서 연각 이루며
번뇌 없는 묘한 도를 얻게 하여도
그 공덕을 보리심에 비교한다면
산수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어,

한 생각에 티끌 수의 세계 지나고
이와 같이 무량 겁을 지나도
이 모든 세계는 셀 수 있으나
초발심 공덕은 알 수가 없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지금 세상에
그 많은 겁의 수효 그지없거든
이런 겁의 수효는 안다 하여도
초발심한 공덕은 측량 못하리.

보리심이 시방에 두루하여서
여러 가지 분별을 모두 다 알고
한 생각에 삼세를 밝게 통달해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한 까닭.

시방세계 중생의 모든 욕망과
이해와 방편이며 뜻하는 바와
허공의 짬까지를 측량한대도
초발심한 공덕은 알지 못하리.

보살의 뜻과 원이 시방 같아서
자비한 맘 중생에게 흡족하였고
부처 공덕 닦아서 이루게 하매
그러므로 그 힘은 끝이 없나니,

중생들의 이해와 마음의 욕락
근성과 방편과 행 각각 다름을
한 생각에 모두 다 분명히 아니
온갖 지혜의 지혜 마음과 평등,

그지없는 중생의 혹과 업으로
삼유가 계속되어 끊일 새 없어
이것의 끝간데는 안다 하여도
초발심한 공덕은 부사의니라.
발심으로 업과 번뇌 능히 여의고
일체의 여래에게 공양하나니
업과 번뇌 여의어 계속 안 되면
삼세에서 해탈을 널리 얻으리.

한 생각에 끝없는 부처님들과
수없는 중생들에 공양하는데
향과 꽃과 미묘한 화만들이며
보배 당ㆍ번 일산과 좋은 의복들,


좋은 음식 좋은 상좌(牀座) 거니는 곳과
가지가지 궁전이 다 훌륭하고
비로자나 기묘한 보배 구슬과
여의주 마니보배 빛이 찬란해,

생각생각 이렇게 공양하기를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낸다 하면
그 사람의 복덕이 비록 많으나
초발심한 공덕에는 미치지 못해,

말한 바 가지가지 비유들로도
보리심은 비유할 수가 없나니
삼세 인간들의 높은 이들이
발심으로부터 나신 연고라.

발심은 걸림없고 제한도 없어
그 분량 구하여도 얻지 못하니
온갖 지혜의 지혜 결정코 이뤄
많은 중생 길이길이 제도하리라.
발심은 크고 넓기 허공과 같고
모든 공덕 내기는 법계 같으니
행하는 바 두루하여 다름없나니
모든 집착 여의어 부처와 평등.

온갖 법문 들어가지 못한 데 없고
온갖 국토 모두 다 나아갔으며
온갖 지혜의 경계 통달하였고
온갖 공덕 이루지 못한 것 없네.

일체를 버리면서 항상 쌓으며
계율이 청정해도 집착이 없고
위없는 큰 복덕을 구족하고도
부지런히 정진하여 퇴전치 않아,

깊은 선정 들었어도 항상 생각해
크고 넓은 지혜와 서로 응하니
이것은 보살들의 최승(最勝)한 지위
일체의 보현도(普賢道)를 내는 데니라.

삼세의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초발심한 사람을 모두 보호해
삼매와 여러 가지 다라니들과
신통과 변화로써 장엄하나니,

시방의 중생들이 한량이 없고
세계와 허공들도 그러하거든
발심의 한량없기 저보다 더해
일체의 부처님을 능히 내더라.
보리심은 십력의 근본이 되고
네 변재[四辯]와 두려움 없는 근본도 되며
열여덟 가지 함께하지 않는 법들도
모두 다 발심으로부터 얻나니,

부처님의 색상(色相)으로 장엄한 몸과
평등하고 미묘한 법신들이나
집착 없는 지혜의 공양할 바가
다 같이 발심으로 있게 되오며,


일체의 독각승과 성문승이며
색계의 모든 선정 삼매의 낙과
무색계의 여러 가지 삼매들까지
발심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라.

천상과 인간들의 자재한 낙과
여러 갈래 가지가지 즐거운 일과
정진ㆍ선정ㆍ근(根)과 역(力) 모든 낙들이
발심으로 생기지 않는 것 없어,

크고 넓은 마음을 일으키므로
여섯 가지 바라밀 닦아 행하고
중생에게 바른 행 권함으로써
삼계에서 안락을 받게 되나니,

걸림없고 진실한 부처 지혜에
머물러서 묘한 업 열어 보이며
한량없는 중생들 능히 시키어
업과 번뇌 다 끊고 열반 향하게,
지혜의 밝은 광명 햇빛과 같고
모든 행을 갖추기 보름달 같고
공덕은 바다처럼 항상 가득해
때 없고 걸림없어 허공과 같네.

옛날에 무량 공덕 원을 내어서
모든 중생들에게 낙을 주려고
오는 세상 끝나도록 원을 행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혀 중생을 제도.

한량없는 큰 원력 부사의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청정케 하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의지 없으나
서원의 힘으로써 밝게 나타나,

법의 성품 허공과 같은 줄 아니
온갖 것 고요하여 다 평등하고
수가 없는 법문을 말 못하지만
중생 위해 말하매 집착이 없네.

시방의 여러 세계 모든 여래들
초발심을 다같이 찬탄하나니
이 마음 한량없는 덕으로 장엄
저 언덕 이르러서 부처 같으리.

중생의 수효 같은 그러한 겁에
그 공덕 말하여도 다할 수 없고
여래의 크고 넓은 집에 머물매
삼계의 법으로는 비유 못하네.
일체의 부처님 법 알고자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내시오.
이 마음은 공덕 중에 가장 승하니
여래의 걸림없는 지혜 얻는다.

중생의 마음과 행 세어서 알며
세계 부순 티끌도 역시 그렇고
허공의 끝까지를 헤아린대도
초발심한 공덕은 측량 못하리.


삼세의 모든 부처 내기도 하고
세간의 모든 낙을 성취도 하고
모든 승한 공덕을 증장하면서
일체의 의혹들을 영원히 끊고,

일체의 묘한 경계 열어 보이고
일체의 장애들을 제해 없애고
일체의 청정 세계 성취하여서
일체의 여래 지혜 출생하나니,

시방의 부처님들 보고자 하고
한량없는 공덕장 베풀려 하고
중생의 모든 고통 없애려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내어라.
혼탁(渾濁) : 앞글자는 호(戶)와 곤(昆)의 반절이다.
사시(死屍) : 뒷글자는 식(式)과 지(之)의 반절이다.
충취(蟲聚) : 앞글자는 치(直)와 궁(弓)의 반절이다.
굴유(屈由) : 앞글자는 구(區)와 물(勿)의 반절이다.
흉설(胷舌) : 앞글자는 허(許)와 용(容)의 반절이다.
후문(喉吻) : 앞글자는 호(戶)와 구(鉤)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무(武)와 분(粉)의 반절이다.
억종(抑縱) : 앞글자는 음이 억(億)이다.
갈마(羯磨) : 앞글자는 거(居)와 갈(竭)의 반절이다.
산개(傘蓋) : 앞글자는 소(蘇)와 한(旱)의 반절이다.
재발(纔發) : 앞글자는 작(昨)과 재(哉)의 반절이다.
예막(翳膜) : 앞글자는 어(於)와 계(計)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음이 막(莫)이다.
제저(制沮) : 뒷글자는 자(慈)와 려(呂)의 반절이다.
근알(覲謁) : 앞글자는 음이 근(僅)이고, 뒷글자는 어(於)와 헐(歇)의 반절이다.
찬앙(鑽仰) : 앞글자는 차(借)와 관(官)의 반절이다.
탐미(耽味) : 앞글자는 정(丁)과 함(含)의 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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