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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37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8권

by Kay/케이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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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8

 

대반열반경 제38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2. 가섭보살품 ⑥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깨끗한 범행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온갖 법이 그것이다.”
“세존이시여, 온갖 법이라 함은 뜻이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혹은 선(善)과 불선(不善)을 말씀하시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씀하시고, 혹은 12입(入)을 말씀하시고, 혹은 선지식을 말씀하시고, 혹은 12인연을 말씀하시고, 혹은 중생이라 말씀하시고, 혹은 바른 소견과 삿된 소견을 말씀하시고, 혹은 12부경을 말씀하시고, 혹은 2제(諦)를 말씀하시더니 여래께서 이제는 온갖 법이 깨끗한 범행이라고 말씀하시니, 어떠한 온갖 법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이 미묘한 『대열반경』은 모든 선한 법의 보배 광이다. 마치 큰 바다가 여러 가지 보배의 광이듯이 이 『열반경』도 그와 같아서 온갖 글자와 뜻의 비밀한 광이다. 선남자야, 마치 수미산이 모든 약의 근본이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보살계(菩薩戒)의 근본이다. 선남자야, 마치 허공이 온갖 물건이 있는 곳인 것처럼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온갖 선한 법이 머무는 곳이다. 선남자야, 마치 맹렬한 바람을 붙들어 맬 수 없듯이 모든 보살로서 이 경을 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의 나쁜 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선남자야, 마치 금강을
깨뜨릴 수 없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외도나 나쁜 사람들이 깨뜨릴 수 없다. 선남자야, 마치 항하의 모래를 셀 수 없듯이 이 경의 뜻도 그와 같아서 셀 사람이 없다.
선남자야, 이 경전은 모든 보살에게 법의 깃발[法幢]이 되는 것이 제석의 깃발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열반의 성에 나아가는 장사꾼의 우두머리이니, 마치 길잡이가 장사꾼들을 데리고 큰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모든 보살들에게 법의 광명이 되는 것이 마치 세상의 해와 달이 어둠을 깨뜨림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병들어 고생하는 중생들에게 훌륭한 약이 되는 것이 마치 향산 속에 있는 미묘한 약왕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일천제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 마치 쇠약한 사람이 짚고 일어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모든 나쁜 사람에게 다리가 되는 것이 마치 세간의 다리가 모든 사람을 건너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25유(有)에 다니는 이로서 번뇌의 뜨거움을 만난 이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것이 마치 세간의 일산이 햇볕을 가리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두려움이 없는 큰 왕이어서 모든 번뇌의 악마를 깨뜨릴 수 있으니, 마치 사자 왕이 뭇 짐승을 항복시키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신기한 주문의 스승이어서 온갖 번뇌의 마귀들을 부수는 것이 마치 세간의 주문하는 사람이 도깨비를 쫓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더할 수 없는 우박이어서 모든 생사의 과보를 파괴하는 것이 마치 세간의 우박이 모든 과실을 부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계율의 눈[戒目]이 망가진 이에게 좋은 약이 되는 것이 마치 세간의 안사나(安闍那)1)약이 안질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모든 선한 법을 머물게 하는 것이 세간의 땅이 모든 물건을 머물게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계율을 깨뜨린 중생에게 밝은 거울이 되는 것이 세상의 거울이 모든 모양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이에게 의복이 되는 것이 마치 세간의 옷이 몸을 가리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선한 법이 부족한 이에게 큰 보물이 되는 것이 마치 공덕천(功德天)이 가난한 이를 이익되게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법에 목마른 중생에게 감로수가 되는 것이 마치 여덟 가지 맛을 가진 물이 목마른 이를 만족하게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법상(法床)이 되는 것이 세상의 궁핍한 사람이 편안한 평상을 만난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초지 보살로부터 10주 보살에 이르기까지 영락ㆍ향기 있는 꽃ㆍ바르는 향ㆍ가루향ㆍ사르는 향과 청정한 성품을 구족한 수레가 되어 모든 6바라밀로써 미묘한 즐거움을 받는 곳을 통과하는데, 마치 도리천의 파리질다라나무와 같다.
선남자야, 이 경은 금강처럼 잘 드는 도끼이니 모든 번뇌의 나무를 찍으며, 잘 드는 칼이니 습기를 베며, 날쌘 장사니 원수를 부수며, 지혜의 불이니 번뇌의 섶을 태우며, 인연의 광이니 벽지불을 내며, 성문의 광이니 성문인을 내며, 모든 하늘들의 눈이며, 모든 사람의 바른 길이며, 모든 축생이 의지할 곳이며, 아귀가 해탈할 곳이며, 지옥의 위없는 어른이며, 모든 시방 중생의 위없는 그릇이며, 시방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러 부처님의 부모이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이 경은 모든
법을 포섭하였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이 경이 비록 모든 법을 포섭한다고 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범행은 곧 37조도법(助道法)이다.
선남자야, 만일 이 37품을 떠나면 끝내 성문의 바른 과(果)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얻지 못하며, 불성과 불성의 과를 보지 못한다. 이런 인연으로 범행이 곧 37품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37품은 성품이 뒤바뀐 것이 아니라서 능히 뒤바뀐 것을 깨뜨리며, 성품이 나쁜 소견이 아니라서 능히 나쁜 소견을 깨뜨리며, 성품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서 능히 두려움을 깨뜨리며, 성품이 깨끗한 행이라서 중생으로 하여금 끝까지 청정한 범행을 하게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법도 능히 무루법의 인을 지을 수 있는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유루가 청정한 범행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선남자야, 모든 유루는 곧 뒤바뀐 것이므로 유루는 청정한 범행이라고 하지 못한다.”
“세존이시여, 세제일법(世第一法)은 유루가 되는 것입니까, 무루가 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그것은 유루이다.”
“세존이시여, 비록 유루라고 하지만 성품은 뒤바뀐 것이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청정한 범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야, 무루의 인이므로 무루와 비슷하고 무루로 향하는 것이므로 뒤바뀌었다고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청정한 범행은 마음을 내어 서로 계속하여 필경까지 이르지만, 세제일법은 한 생각뿐이므로 청정한 범행이라고 하지 못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의 5식(識)도 유루이지만 뒤바뀌지 않았으며 또 한 생각도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청정한 범행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중생의 5식은
비록 한 생각은 아니지만 유루이고 또 뒤바뀐 것이라 모든 누(漏)를 더하게 하므로 유루라 하고, 자체가 진실하지 않고 생각에 집착하였으므로 뒤바뀐 것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자체가 진실하지 않고 생각에 집착하였으므로 뒤바뀌었다고 하였는가? 남녀가 아닌데 남녀라는 생각을 내고, 나아가 집과 수레와 질그릇과 옷에도 그와 같으므로 뒤바뀌었다 고 한다.
선남자야, 37품은 성품이 뒤바뀌지 않았으므로 청정한 범행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이 37품에 대하여 근본을 알고 원인을 알고 섭취함을 알고 증장함을 알고 주인 됨을 알고 인도함을 알고 훌륭함을 알고 진실함을 알고 필경을 안다면, 이런 보살은 청정한 범행이라고 할 수 있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러 근본을 알며 나아가 필경을 안다고 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훌륭한 말이다. 보살이 묻는 것이 두 가지 일을 위해서이니, 첫째는 스스로 알기 위함이며, 둘째는 다른 이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 이미 알았지만 한량없는 중생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묻는 것이므로 내가 그대를 찬탄하는 것이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37품의 근본은 욕망이며 원인은 밝은 촉[明燭]이며 섭취함은 수(受)라 하며, 증장함은 잘 생각함이라 하고 주인 되는 것은 억념(憶念)이라 하고 인도함은 선정이라 하고 훌륭함은 지혜라 하고 진실함은 해탈이라 하고 필경은 대반열반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선한 욕망은 처음 도심(道心)을 내는 것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내가 욕망이 근본이라고 한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세간에서 말하기를 ‘모든 번뇌는 애가 근본이며 모든 병은 잠자고 먹는 것이 근본이며 모든 결단하는 일은 투쟁(鬪諍)이 근본이며 모든 악한 일은
허망함이 근본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 경에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한 법에는 방일하지 않음이 근본이 된다’고 하시더니, 이제 욕망이라고 말씀하시니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내는 인[生因]을 말하면 선한 욕망이며, 나타내는 인[了因]을 말하면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세간에서 ‘모든 열매에는 씨가 인이 된다고 말하거나 혹은 씨는 내는 인이며, 땅은 나타내는 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뜻도 그와 같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전에 다른 경에서는 ‘37품은 부처가 근본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뜻은 어떠합니까?”
“선남자야, 여래가 전에는 ‘중생이 처음 37품을 아는 데는 부처가 근본이다’라고 하였는데 스스로 증득하는 것은 욕망이 근본이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밝은 촉[明觸]이 원인[因]이 된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여래가 어떤 때에는 밝은 것을 지혜라고 말하고, 어떤 때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선남자야, 믿는 인연으로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데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친근히 하는 인연으로 바른 법[正法]을 듣게 되는데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바른 법을 들음으로 인하여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해지는데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3업이 깨끗함으로 인하여 바른 생명[正命]을 얻는데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바른 생명으로 인하여 근을 깨끗하게 하는 계율[淨根戒]을 얻고, 근을 깨끗하게 하는 계율로 인하여 고요한 곳을 좋아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함으로 인하여 잘 생각하고, 잘 생각함으로 인하여 법답게 머물게 되고, 법답게 머무름으로 인하여 37품을 얻어서 한량없는 나쁜 번뇌를 깨뜨리는데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수(受)를 섭취라고 한다. 중생이 수할 때에 선과 악을 짓는데 그러므로 수를 일러 섭취라고 한다. 선남자야, 수하는 인연으로 모든 번뇌를 내는데 37품이 능히 깨뜨린다. 그러므로 수하는 것을 섭취(攝取)라고 한다. 잘 생각함으로 인하여
능히 번뇌를 깨뜨린다. 그러므로 증장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지런히 닦기 때문에 이러한 37품을 얻는 것이다. 만일 관찰하여 나쁜 번뇌를 깨뜨리려면 반드시 오로지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으로 주인을 삼는다. 마치 세간에서 네 가지 군대들이 주장(主將)의 뜻을 따르듯이 37품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는 주장을 따른다.
선남자야, 이미 선정에 든 뒤에 37품이 모든 법의 행상(行相)을 잘 분별한다. 그러므로 선정으로 인도를 삼는다. 37품이 법의 행상을 분별함에는 지혜가 가장 뛰어나므로 지혜를 훌륭하다고 한다. 이렇게 지혜가 번뇌를 안 뒤에는 지혜의 힘으로 번뇌가 소멸된다. 마치 세상의 네 가지 군대가 원수를 하나든 둘이든 파괴하려면 용맹한 이라야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37품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지혜를 훌륭하다고 한다.
선남자야, 37품을 닦음으로 인하여 4선정의 신통과 안락을 얻더라도 진실하다고 하지 않으며 번뇌를 깨뜨리고 해탈을 증득할 때라야 진실하다고 한다. 이 37품에 마음을 내고 도를 닦아서 세상의 즐거움이나 출세간의 즐거움이나 네 가지 사문의 과나 해탈을 얻더라도 필경이라고 하지 못하며 만일 37품으로 행하는 일을 끊어 버려야 열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필경이란 것은 곧 대열반이다’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잘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愛念]이 곧 욕망이니 잘 사랑하고 생각함으로 인하여 선지식을 친근하므로 촉이라고 하며 이것을 인이라고 한다. 선지식을 친근함으로 인하는 까닭에 수라고 하며 이것을 섭취라고 한다. 선지식을 친근함으로 인하여 잘 생각하므로 증장이라고 한다.
이 네 가지 법으로 인하여 도를 생장하게 하며 이른바 욕망과 생각과 선정과 지혜이며, 이것을 일러 주체[主]ㆍ인도[導]ㆍ훌륭함[勝]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법으로 인하여 두 해탈을 얻는다. 애를 끊어 버리므로 마음의 해탈을 얻고 무명을 끊어 버리므로 지혜의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진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덟 가지 법으로 필경에 과를 얻는 것을 일러 열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필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여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내어 출가하는 것이며 촉은 곧 백사 갈마(白四羯磨)이니 이것을 인이라고 한다. 섭취한다고 하는 것은 곧 두 가지 계를 받는 것이니, 첫째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이며, 둘째는 정근계(淨根戒)이다. 이것을 수라고 하며 이것을 섭취라고 한다.
증장한다고 하는 것은 4선을 닦음이며, 주인이라 하는 것은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이며, 인도라고 하는 것은 아나함과이며,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아라한과이며, 진실하다고 하는 것은 벽지불과이며, 필경이라고 하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이다.
또 선남자야, 욕망은 식이라고 하며 촉은 6입이라 하고 섭취는 수라고 하고 증장함은 무명이라 하고 주인은 명색(名色)이라 하고 인도함은 애라고 하고 훌륭함은 취라고 하며 진실함은 유라고 하고 필경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라고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근본과 인과 증장하는 이 세 가지 법이 어떻게 다릅니까?”
“선남자야,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곧 처음 마음을 내는 것이며, 인은 비슷하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며, 증장함은 비슷한 것을 멸하고 나서 능히 비슷한 것을 내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근본은 곧 짓는 것이며, 인은 곧 과이며, 증장함은 곧 쓸 수 있는 것이다. 선남자야, 미래의 세상에 과보가 있더라도 받지 못하였으므로 인이라고 하였다가 받을 때에는 증장한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근본은 곧 구함이며, 얻으면 곧 인이며, 작용은 곧 증장이다. 선남자야, 이 경에서 근본은 도를 보는 것이며, 인은 도를 닦는 것이며, 증장은 무학의 도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근본은 정인(正因)이며, 인은 방편인(方便因)이니, 이 두 인으로부터 과보를 얻는 것을 증장이라고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필경이 곧 열반이라면 이러한 열반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ㆍ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열 가지 생각을 닦아 익히면 이 사람은 열반을 능히 얻을 것이다. 무엇을 열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무상하다는 생각이며, 둘째는 괴롭다는 생각이며, 셋째는 내가 없다는 생각이며, 넷째는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이며, 다섯째는 모든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며, 여섯째 죽는다는 생각이며, 일곱째는 죄가 크다는 생각이며, 여덟째는 여의려는 생각이며, 아홉째는 멸한다는 생각이며, 열째는 사랑할 것 없다는 생각이다.
선남자야, 만일 보살마하살ㆍ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 열 가지 생각을 닦으면 이 사람은 필경에 열반을 얻어서 다른 이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능히 선한 것과 선하지 못한 것을 분별할 것이니 이것을 일러 진실하게 비구의 뜻에 적합하며 나아가 우바이의 뜻에 적합하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러 보살로부터 우바이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는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처음 마음을 낸 이며, 둘째는 이미 도를 행하는 이다. 무상하다는 생각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거친 것이며, 둘째는 미세한 것이다. 처음 마음을 낸 보살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관찰할 때에 생각하기를 ‘세간의 물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의 것이며, 둘째는 바깥 것이다. 이 안의 물건이 무상하게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보건대 태어날 때ㆍ어렸을 때ㆍ컸을 때ㆍ장성하였을 때ㆍ늙은 때ㆍ죽을 때, 그런 시절들이 각각 같지 않다. 그러므로 안의 물건이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라고 한다.
또 생각하기를 ‘내가 보건대 중생이 어떤 이는 비대하고 얼굴빛과 기운을 구족하였으며, 가고 오는 행동이 자재하여 장애가 없으며, 혹은 병들어 시달리고 얼굴빛과 기운이 쇠약하고 얼굴이 초췌하여 자재하지 못하며, 혹은 재물이 많아서 창고에 가득하고 혹은 빈궁하여 간 데마다 궁색하며 혹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고 혹은 한량없이 나쁜 법을 구족한다. 그러므로 안의 법이 반드시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라고 한다.
또 밖의 법을 보건대 종자 때ㆍ싹틀 때ㆍ줄기 때ㆍ잎이 필 때ㆍ꽃필 때ㆍ열매 때, 그런 시절들이 각각 같지 않다. 이러한 바깥 법들을 혹은 구족하고 혹은 구족하지 못하므로 온갖 바깥 것이 반드시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는 법이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하고 나서 다시 듣는 법을 관찰한다. 모든 천신들은 묘한 쾌락을 구족하게 성취하고 신통이 자재하지만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바깥 법이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
또 듣건대 겁이 처음 생길 때의 중생들은 훌륭한 공덕을 각각 성취하여 제 몸의 광명으로 비추고 일월을 빌리지 않다가 무상한 세력으로 광명이 없어지고 덕이 감손하였다고 한다. 또 들으니 옛적에는 전륜성왕이 있어 4천하를 통솔하고 7보를 성취하여 크게 자재하였지만 무상한 모양을 깨뜨리지 못했다 하며,
또 땅을 보더라도 옛적에는 한량없는 중생들을 평안히 널리 퍼져서 살게 하되, 수레바퀴 둘 만한 빈곳도 없었으며 온갖 기묘한 약이 모두 생장하고 숲과 나무에는 과실이 무성하였는데, 중생이 점점 박복하게 되어 이 땅도 다시 세력이
없어지고 나는 물건들도 저절로 소모되었다고 한다. 이런 것으로 안팎의 물건들이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러 거친 무상이라고 한다.
거친 것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미세한 것을 관찰한다. 무엇을 미세하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온갖 안팎의 물건들과 나아가 티끌까지도 미래의 세상에 있어서 벌써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한다. 왜냐하면 파괴되는 모양을 구족하게 성취했기 때문이다. 만일 미래의 색신이 무상하지 않다면 색신에 열 가지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액체이던 때[膜時], 둘째는 망울질 때[泡時], 셋째는 껍질 생겼을 때[疱時], 넷째는 살덩이 때[肉團], 다섯째는 사지가 생겼을 때[肢時], 여섯째는 갓난아이 때[嬰孩時], 일곱째는 어린이 때[童子時], 여덟째는 소년 때[少年時], 아홉째는 장년 때[盛壯時], 열째는 늙은이 때[衰老時]이다.
보살이 관찰하기를, 액체이던 것이 무상하지 않다면 망울지는 데 이르지 못하고 나아가 장년 때가 무상하지 않다면 마침내 늙은이때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이 여러 시절이 찰나찰나 멸하지 않는다면 점점 자라지 않고 일시에 성장할 것이나 이런 일이 없으므로 찰나찰나 미세하게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모든 근이 구족하고 안색이 충실하였다가 나중에 초췌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찰나찰나 동안에 무상하였을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4대와 4위의(威儀)를 관찰하고 또 안팎의 각각 두 가지 괴로움의 인을 관찰하는데,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움이다. 또 이 네 가지를 관찰하되, 만일 찰나찰나 미세하게 무상하지 않으면 이 네 가지 괴로움을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만일 보살이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을 일러 보살이 미세하게 무상함을 관찰한다고 한다. 안팎의 색법과 같이 마음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여섯 군데[六處]2)에 행하기 때문이다. 여섯 군데에 행할 때에 기쁜 마음도 내고 성내는 마음도 내고 사랑하는 마음도 내고 생각하는
마음도 내서 여러 가지 다른 마음이 생겨 한결같지 못하다. 그러므로 온갖 색법과 색법 아닌 것이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 선남자야, 보살이 한 생각 가운데서 온갖 법의 나고 멸함이 무상한 것을 본다면 이것을 일러 보살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갖추었다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익히고 나서 항상하다는 교만과 항상하다는 뒤바뀜과 생각의 뒤바뀜을 멀리 떠난다.
다음에 괴롭다는 생각을 닦는다.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괴로움이 있는가? 이 괴로움이 무상을 인하여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무상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받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연으로 무상하다 고 하는 것이며, 무상한 인연으로 안팎의 괴로움을 받으니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덥고 채찍으로 때리고 꾸짖고 욕하는 이런 괴로움이 모두 무상으로 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음에 지혜로운 이는 이 몸이 무상한 그릇이니, 그릇이 곧 괴로움이며 그릇이 괴로움이기 때문에 담는 법도 괴롭다는 것을 관찰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또 나는 것이 괴로움이며 멸하는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관찰한다. 괴로움이 나고 멸하는 것이므로 무상한 것이며, 나와 내 것이 아니라 하여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는다. 지혜 있는 이는 다시 관찰하되 ‘괴로움이 곧 무상이며, 무상이 곧 괴로움이니, 만일 괴롭고 무상하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괴로움이 내가 아니며 무상도 그러하여 이와 같이 5음도 괴로움이며 무상한데 중생이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는가?’라고 한다.
다음에는 온갖 법이 다른 화합이 있다고 관찰하는데 ‘한 화합으로부터 모든 법이 나는 것이 아니고 한 법이 모든 화합의 과(果)도 아니며, 모든 화합은 다 제 성품이 없고 한 성품도 없고 다른 성품도 없으며 물건의 성품도 없고 자재함도 없다. 모든 법이 만일 이러한 모양이라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라고 한다.
또 생각하기를 ‘온갖 법 가운데 한 법도 능히 지을 이가 없으니, 만일 한 법도 지을 이가 없다면 모든 법이 화합하는 것도 짓지 못할 것이다. 온갖 법의 성품은 마침내 홀로 났다가 홀로 멸하지 못할 것이며, 화합하기 때문에 멸하고 화합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 법이 난 뒤에는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이 화합도 화합으로부터 날 것이라고 하여 중생의 생각이 뒤바뀌고 진실함이 없는데 어찌하여 진실한 내가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없다는 것을 관찰한다.
또다시 자세하게 관찰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중생들이 나라고 말하는가? 내가 만일 있다면 하나인가, 여럿인가? 내가 만일 하나라면 어떻게 찰리(刹利)ㆍ바라문ㆍ비사(毘舍)ㆍ수타(首陀)ㆍ인간ㆍ천상ㆍ지옥ㆍ아귀ㆍ축생과 크고 작고 늙고 장성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만일 여럿이라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중생의 나란 것이 하나이며 두루하여 가[邊際]가 없다 하겠는가? 하나거나 여럿이거나 모두 내가 없다’라고 한다.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없다고 관찰하고 나서 다시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을 관찰하면서 생각하기를 ‘만일 온갖 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면 어찌하여 먹는 것을 위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일으키는가? 만일 중생이 먹는 것을 탐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일으킨다면 얻는 재물은 여럿이 다 한가지로 하는데, 뒤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은 함께 나누지 않는가?’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음식을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괴로움을 받는데, 만일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음식을 얻는다면 내가 어찌하여 먹는 데에 탐착을 내겠는가? 그러므로 먹는 데에 탐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또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음식으로 인하여 몸이 증장함을 관찰하되 내가 지금 출가하여
계를 받고 도를 닦는 것은 몸을 버리기 위해서 인데, 지금 음식을 탐한다면 어떻게 이 몸을 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비록 음식을 받더라도 마치 빈 벌판에서 아들의 살을 먹듯이 마음에 싫고 미운 생각이 나서 조금도 달게 여기지 않으며 단식(摶食)이 이런 허물이 있음을 관찰한다. 다음에는 촉식(觸食)을 관찰하되, 벗겨진 소가 무수한 벌레에게 먹히는 것과 같다고 하며, 다음에는 사식(思食)이 큰 불더미 같고, 식식(識食)이 300자루 창과 같다고 관찰해야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네 가지 먹는 것을 관찰하고 나서 음식에 대하여 마침내 탐하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탐심이 생기면 마땅히 부정하다고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식애(食愛)를 여의기 위하여 모든 음식에 부정하다는 생각을 잘 분별하고 나서 모든 부정한 것과 같이 여긴다.
이렇게 관찰하면 좋은 음식이나 나쁜 음식을 만나더라도 받을 때에는 창병에 붙였던 고약과 같이 여기고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일러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지혜 있는 이가 음식을 관찰하고 부정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진실한 관찰입니까, 빈 생각만의 관찰입니까? 만일 진실한 관찰이라면 관찰하는 음식이 실제로 부정한 것이 아니며, 빈 생각만이라면 이런 법을 어떻게 잘하는 생각이라고 하겠습니까?”
“선남자야, 이런 관찰은 진실한 관찰도 되고 빈 생각만이기도 하는데, 능히 음식에 대한 탐욕을 없애기 때문에 진실하다고 하고, 벌레가 아닌 것을 벌레라고 보기 때문에 빈 생각뿐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온갖 유루(有漏)는 모두 빈 생각이라고도 하고 진실한 것이라고도 한다. 선남자야, 어떤 비구가 걸식하려는 마음을 낼 때에 미리 생각하기를 ‘내가 걸식하는데 맛좋은 음식을 얻고 험악한 것을 얻지 말며, 많이 얻고 적게 얻지 말며, 빨리 얻고
더디게 얻지 말기를 원한다’라고 한다면, 이 비구는 음식에 싫어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하지 못하며, 수행하는 선한 법은 밤낮으로 소모되고 선하지 못한 법은 점점 증장된다.
선남자야, 비구가 걸식하려 할 때에는 먼저 원하기를 ‘여러 걸식하는 이가 모두 배가 부르게 되고, 밥을 주는 이는 한량없는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밥을 얻으면 독한 몸을 치료하고 선한 법을 닦아서 시주를 이익되게 하리라’라고 하여야 한다. 이렇게 원할 때에 닦는 선한 법은 밤낮으로 증장되고 선하지 못한 법은 점점 소멸한다.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이렇게 수행하면 이 사람은 온 나라 안 시주들의 보시를 부질없이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이 네 가지 생각을 갖추면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온갖 세간에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지 않는 데가 없으며 내 몸은 태어나지 않는 데가 없으니, 이 세간에서 한 곳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떠날 데가 없다면 나는 어찌하여 세간을 좋아하겠는가? 모든 세간은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 데가 없으므로 세간은 반드시 무상한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 세간을 즐거워하겠는가? 낱낱 중생들은 모든 세간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갖추어 받으니 비록 범천의 몸이나 나아가 비상비비상천의 몸을 받더라도 목숨을 마치면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며 설사 사왕천이나 나아가 타화자재천에 나더라도 목숨을 마치면 축생 중에 태어나서 혹은 사자 혹은 범ㆍ들소ㆍ이리ㆍ늑대ㆍ코끼리ㆍ말ㆍ소ㆍ나귀 따위가 되리라’라고 한다.
다음에는 관찰하기를 ‘전륜성왕은 사천하를 통솔하여 호화롭고 귀하여 자재하지만 복이 다하면 빈곤하여져서 의식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하며,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깊이 관찰하고 나서 세간은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낸다.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세간에 있는 집이나 의복이나 음식이나 와구ㆍ의약ㆍ향ㆍ꽃ㆍ영락이나 가지가지 풍류ㆍ재물ㆍ보배 등이 모두 괴로움을 떠나려는 것이지만 이런 물건 자체가 괴로운 것이니 어떻게 괴로움으로 괴로움을 떠날 것인가?’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세상 물건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몸에 중병이 생겼을 때에는 아무리 여러 가지 음악과 연극과 향과 꽃과 영락이 있더라도 탐애를 내지 않는 것과 같이 지혜 있는 이가 물건을 관찰하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온갖 세간을 깊이 관찰하되 ‘귀의할 곳이 아니며 해탈하는 곳이 아니며 고요한 곳이 아니며 사랑할 만한 곳이 아니며 저 언덕이 아니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곳이 아닌데, 내가 만일 이런 세간을 탐한다면 어떻게 법을 떠나겠는가? 어두운 데를 좋아하지 않아서 광명을 구하면서 도리어 어두운 데로 가는 것과 같다.
어두운 데는 세간이며 밝은 데는 출세간이니, 만일 내가 세간을 좋아하면 어둠은 증장되고 밝은 것을 멀리 여의리라. 어둠은 무명(無明)이며 밝음은 지혜의 광명이며, 밝은 지혜의 인은 곧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온갖 탐욕의 번뇌가 비록 속박한다 하여도 이제는 지혜의 밝음을 탐하고 세간은 탐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 있는 이는 이런 법을 깊이 관찰하고 나서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구족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사람은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고 나서 다음에는 죽는다는 생각을 닦되, 이 목숨이 항상 한량없는 원수에게 둘러싸여서 찰나찰나 줄어들고 증장하지 못함이 마치 산에 있는
홍수가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것과 같고, 아침 이슬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과 같고, 사형수가 저자로 나아감이 걸음마다 죽음에 가까워지듯 하며, 소나 양을 끌고 푸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지혜 있는 이가 찰나찰나 멸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마치 네 사람이 활을 잘 쏘는데, 한곳에 모여서 제각기 한 방위씩 쏘면서 모두 생각하기를 ‘우리들의 네 화살이 함께 나가서 함께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네 개의 살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내가 한꺼번에 손으로 살을 잡으리라’라고 한다면, 선남자야, 이런 사람을 빠르다고 하겠느냐?”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땅으로 다니는 귀신[地行鬼]은 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날아다니는 귀신은 땅으로 다니는 귀신보다 더 빠르고, 사천왕은 날아다니는 귀신보다 더 빠르고, 해와 달은 사천왕보다 더 빠르고, 행견질천(行堅疾天)은 해와 달보다 더 빠르고, 중생의 수명은 행견질천보다 더 빠르다.
선남자야, 한 번 숨 쉬고 눈 한번 깜짝할 동안에 중생의 수명이 400번 났다 없어졌다 한다. 지혜 있는 이가 수명을 관찰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을 찰나찰나 멸함을 관찰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목숨이 사왕(死王)에게 매인 것을 관찰하고 내가 능히 이런 사왕을 여의기만 하면 무상한 수명을 영원히 끊을 것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관찰하기를 ‘목숨이란 것은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으며, 큰 역적죄를 지은 사람이 사형을 당할 때에 불쌍히 여길 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사자왕이 오래 굶었을 때와 같으며, 독사가 큰 바람을 삼켰을 때와 같으며, 목마른 말이 물을 아끼는 것과 같으며, 악한 귀신이 성낼 때와 같으니, 중생의 사왕도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만일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일러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내가 지금 출가하여 수명이 7일 7야가 된다 하여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하여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되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을 일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고 한다. 다시 7일 7야도 많다 하여 ‘설사 엿새ㆍ닷새ㆍ나흘ㆍ사흘ㆍ이틀ㆍ하루ㆍ한 시간, 나아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만이라 하여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하여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되게 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을 일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잘 닦는다고 한다.
지혜 있는 이가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일곱 가지 생각의 인이 된다. 무엇을 일곱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항상 닦는다는 생각, 둘째는 닦기를 좋아하는 생각, 셋째는 성내는 일이 없는 생각, 넷째는 질투함이 없는 생각, 다섯째는 선하게 원하는 생각, 여섯째는 교만이 없는 생각, 일곱은 삼매에 자재한 생각이다.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일곱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이를 일러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고, 고요함이라 하고, 깨끗함이라 하고, 해탈이라 하고, 지혜 있는 이라 하고, 바른 지견이라 하고,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라 하고, 큰 의원이라 하고, 큰 상단의 주인이라 하고, 여래의 비밀을 잘 안다 하고, 모든 부처님들의 일곱 가지 말을 안다 하고, 바른 소견으로 안다 하고, 일곱 가지 말에 생기는 의심을 끊었다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이 사람은 능히 3계를 꾸짖으며 3계를 멀리 여의며 3계를 없애 버리며 3계에 대하여 애착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러 지혜 있는 이가 열 가지 생각을 구족하였다고 한다. 만일 비구가 열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사문의 모습에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그때 가섭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세상을 연민(憐愍)하는 큰 의왕[大醫王]이시며
몸과 지혜 모두 다 고요하시고
내가 없는 법 가운데 참나 있나니
그러므로 위없이 존귀하신 분께 예배합니다.

첫 발심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지만
이 가운데 첫 발심이 더욱 어려워
자기 제도 못하고도 남을 제도하시니
그러므로 첫 발심에 예배합니다.

첫 발심으로 천상 인간 스승이 되니
성문보다 연각보다 뛰어나시며
이런 발심 삼계보다 훨씬 뛰어나
그러므로 가장 높다 이름합니다.

세상의 구원은 반드시 구한 뒤에 얻어지지만
여래께선 청하지 않아도 스승이 되어
세상을 따르시기 송아지처럼
그러므로 대비의 소[大悲牛]라고 합니다.

여래의 크신 공덕 시방에 가득
범부들은 지혜 없어 찬탄 못하나
내가 지금 자비한 맘 찬탄하여서
몸과 입의 두 가지 업 갚으렵니다.

세상사람 제 이익만 좋아하지만
여래께선 끝내 이런 일을 하시지 않고
중생들의 세간 업보 끊어주시니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이께 예배합니다.

세상사람 친한 이만 이익되게 하나
여래께선 친한 이도 원수도 없어
세상처럼 그런 차별 아니하실새.
그 마음 평등하여 둘이 없습니다.

세간에선 말 다르고 업도 다르나
여래께선 말도 업도 차별이 없어
행을 닦아 모든 행을 끊으셨으니
그러므로 여래라고 이름합니다.

번뇌 허물 미리부터 아시지만
중생들을 위하여서 거기 계시며
오래 전에 세간에서 해탈을 얻으시고도
생사에 나시는 건 자비하시기 때문.

천상 몸과 인간 몸을 나타내지만
자비로 따르시기 송아지 같네,
여래는 중생들의 어머니시며
자비하신 마음은 송아지 같으시네.

모든 고통 받으시며 중생을 염려하시고
가엾이 여기는 맘 뉘우침 없고
자비심이 많으셔서 괴로움도 몰라
고통 구해 주는 이께 예배합니다.

여래께서는 무량한 복 지으시지만
몸과 입과 마음이 늘 청정하시고

항상 중생들만 위하시고 당신을 몰라
그러므로 청정한 업에 예배합니다.

여래께선 괴로움 받으셔도 괴로운 줄 몰라
중생들의 괴로움을 내가 당한 듯
중생을 위하여선 지옥에 가도
괴로운 생각 후회하는 생각도 내지 않으시네.

온갖 중생들이 받고 있는 갖가지 고통
모두 다 부처님의 괴로움이라
깨닫고 나서 마음 더욱 견고해
부지런히 위없는 도 닦으시는구나.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 갖추고
중생들을 아들처럼 사랑하지만
중생들은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여래와 법보와 승보 비방만 하네.

세상사람 모든 번뇌 구족하였고
한량없는 죄와 허물이 있지만
이렇게 많은 번뇌 많은 죄악도
부처님 첫 맘으로 이미 소멸되었네.

부처만이 부처님을 찬탄하시고
다른 이는 찬탄할 줄 아는 이 없어
제가 지금 한 가지 법 찬탄하오니
자비하신 마음으로 세간에 오신 것이라네.

여래는 대자비가 큰 법의 덩어리
자비로써 많은 중생 제도하시며
이것이 위가 없는 진실한 해탈이며
해탈이 곧 대열반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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