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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38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9권

by Kay/케이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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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9

 

대반열반경 제39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3. 교진여품(憍陳如品) ①

그때 세존께서 교진여(憍陳如)에게 말씀하셨다.
“색법[色]은 무상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항상 있는 색[解脫常住之色]을 얻으며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도 무상하니, 식을 멸하면 해탈의 항상 있는 식을 얻는다. 교진여야, 색법은 괴로움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안락한 색[解脫安樂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법은 공한 것이니 공한 색을 멸하면 해탈의 공이 아닌 색[解脫非空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법은 나[我]가 없으니 이 색을 멸하면 해탈의 진실한 나의 색[解脫眞我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법은 부정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청정한 색[解脫淸淨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양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닌 색[解脫非生老病死相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무명의 인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무명의 인이 아닌 색[解脫非無明因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나아가 색법이 내는 인이니 색이 멸하면 해탈의 내는 인이 아닌 색[解脫非生因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곧 네 가지 뒤바뀐 인이니 뒤바뀐 색을 멸하면 해탈의 네 가지
뒤바뀜이 아닌 색[解脫非四倒因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한량없는 나쁜 법의 인이니 남자의 몸ㆍ여인의 몸ㆍ식욕ㆍ애욕ㆍ탐욕ㆍ성내는 일ㆍ질투ㆍ악한 마음ㆍ아끼는 마음ㆍ단식(揣食)ㆍ식식(識食)ㆍ 생각으로 먹음(思食)ㆍ즐겨 먹음(觸食)ㆍ알로 나는 것ㆍ태로 나는 것ㆍ습기로 나는 것ㆍ화하여 나는 것ㆍ5욕(欲)ㆍ5개(蓋) 이런 법들이 모두 색으로 인하는 것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이런 한량없는 악한 색[解脫無如是等無量惡色]이 없음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속박이니 속박인 색을 멸하면 해탈의 속박 없는 색[解脫無縛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흐름이니 흐름을 멸하면 해탈의 흐르지 않는 색[解脫非流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귀의할 데가 아니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귀의할 색[解脫歸依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부스럼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부스럼 없는 색[解脫無瘡疣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색은 고요하지 못한 것이니 색을 멸하면 열반의 고요한 색[涅槃寂靜之色]을 얻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교진여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알면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여 사문과 바라문의 법을 구족하였다고 한다.
교진여야, 만일 부처님 법을 여의면 사문도 없고 바라문도 없고 사문ㆍ바라문의 법도 없다. 모든 외도들은 비었고 거짓이고 속이는 것이어서 진실한 행이 없으며, 비록 모양을 지어서 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사문ㆍ바라문의 법이 없다면 어떻게 사문ㆍ바라문이 있다고 하겠느냐?
내가 항상 이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師子吼)를 하는 것이니 너희들도 대중 속에 있어서 사자후를 해야 한다.”
그때 한량없는 외도들이 이 말을 듣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말하였다.
“구담이 지금 말하기를 ‘우리 대중 가운데는 사문과 바라문이 없고 사문ㆍ바라문의 법도 없다’고 하니, 우리는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 구담에게 ‘우리 대중에도 사문이 있고 사문의 법이 있으며, 바라문이 있고 바라문의 법이 있다’고 하여야겠다.”
그때 그 대중 가운데 어떤 범지가 외쳐 말하였다.
“여러분이여, 구담의 말은 미친 이의 말이나 다름없는데 무엇을 탓할 것인가? 세상에 미친 사람은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울고 웃고 꾸짖고 칭찬하면서 원수도 친한 이도 분별하지 못하는데 사문 구담도 그와 같아서,
혹은 내가 정반왕의 궁전에서 태어났다 하고, 혹은 그렇게 나지 않았다 하며, 혹은 나면서 곧 일곱 걸음을 걸었다 하고, 혹은 걷지 않았다 하며, 혹은 어려서부터 세간 일을 배웠다 하고, 혹은 자신은 온갖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며, 혹은 어느 때에는 궁전에서 향락을 받고 아들을 낳았다 하고, 혹은 싫증나고 미워서 꾸짖고 천하게 여기며, 어떤 때는 친히 6년 동안 고행을 하였다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외도의 고행함을 꾸짖기도 하며,
어떤 때는 울두람불(鬱頭藍弗)ㆍ아라라(阿羅邏) 등을 따라가서 듣지 못하던 것을 배웠다 하고, 어떤 때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어떤 때는 보리수 밑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노라 말하고, 어떤 때는 나는 그 나무 밑에 가지 않았으며 얻은 것이 없노라 하며, 어떤 때에는 나의 이 몸이 곧 열반이라 하고, 어떤 때는 몸이 없어지는 것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구담이 말하는 것이 미친 사람이나 다름이 없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바라문들이
대답하였다.
“대사(大士)여, 우리가 어찌하여 걱정하지 않겠는가? 사문 구담이 먼저 출가하고 나서 말하기를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 하는 것을 나의 제자들이 듣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내기에 ‘중생이 어찌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부정하겠는가?’ 하고 그 말을 받지 않았다. 이제 구담이 다시 와서 사라숲 속에 있으면서 대중을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다’고 말하여 나의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를 버리고 가서 구담의 말을 듣지 않는가? 이런 인연으로 매우 걱정하는 것이다.”
그때 또 다른 바라문이 말하였다.
“여러분들 자세하게 들으시오. 사문 구담은 말로는 자비를 닦는다고 하지만 이는 허망한 말이고 진실이 아니오. 만일 자비가 있다면 어째서 우리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법을 받게 하겠소? 자비의 과(果)는 남의 뜻을 따르는 것인데, 지금 우리의 소원을 어기니 어떻게 있다고 하겠는가? 만약 사문 구담은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허망한 것이며, 만일 구담이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안다면 지금 어째서 우리의 이익을 빼앗겠소? 만일 가문이 훌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허망하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대사자왕이 조그만 쥐를 죽인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는데, 구담이 참으로 훌륭한 문벌이라면 어째서 지금 우리를 시끄럽게 하겠소? 만일 구담이 큰 세력을 갖추었다면 그것도 허망하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금시조왕이 까마귀와 싸운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기운이 세다면 우리와 함께 다투겠는가? 구담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갖추었다면 그것도 허망하다.
왜냐하면 그런 지혜가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여러분들이여, 내가 예전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는데, 100년 후에 이 세간에는 요망한 환술쟁이가 나타나리라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구담이오. 이와 같은 요망한 것이 이제 이 사라숲 속에서 오래지 않아 멸망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소.”
그때 또 어떤 니건자가 대답하였다.
“그대여,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자신과 제자의 공양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간이 어두컴컴하고 눈이 없어 복밭과 복밭 아닌 것을 알지 못하며, 오래 되고 지혜 있는 바라문을 버리고 젊은이에게 공양함을 걱정하는 것이오. 사문 구담은 주문의 술법을 알고 주문의 힘으로 인하여 한 몸이 한량없는 몸이 되기도 하고, 한량없는 몸이 도로 한 몸이 되기도 하며, 혹은 자기의 몸으로 남자나 여인의 모양이 되기도 하고, 소ㆍ양ㆍ코끼리ㆍ말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힘은 그런 주술을 소멸할 수 있으니 구담 사문의 주술이 소멸되면 당신들은 공양을 많이 얻으며 안락을 받을 것이오.”
그때 또 어떤 바라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들, 사문 구담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니 당신들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대중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무엇으로 사문 구담이 대공덕을 갖추었다고 하는가? 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것을 복덕이 있는 모양이라고 하겠는가?”
바라문은 이렇게 대답했다.
“꾸짖어도 성내지 않고 때려도 앙갚음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복덕이 있는 모양이다. 몸에는 32상과 80종호와 한량없는 신통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으로 복덕의 모양을 알 것이며, 마음에는 교만이 없어 먼저 문안하고 말이 부드러워 거칠지 않으며 나이와 의지는 성대함을 갖추었고 마음은 졸렬하거나 사납지 않고, 국왕의 부귀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버리고 출가하기를 침 뱉듯 하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사문 구담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대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좋은 말이오. 그대여, 사문 구담이 진실로 말씀과 같이 참으로 한량없는 신통과 변화를 성취하였다면, 우리는 그와 더불어 이런 일을 겨루지는 않겠소만 사문 구담이 성품이 유순하여 고행을 견디지 못하며, 깊은 궁궐에서 생장하여 바깥일에 능란하지 못할 것이요, 다만 말만이 부드러울 것이나 기술과 공부와 논의하는 일을 알 수 없는 터이니, 그와 더불어 바른 법의 요령을 토론하여 보아서 그가 우리를 이기면 우리가 그를 섬길 것이고 우리가 그를 이기면 그가 우리를 섬겨야 할 것이오.”
그때 한량없는 외도들이 함께 모여서 마가다(摩伽陀)의 왕 아사세(阿闍世)에게 가니 왕이 보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들, 어디에서 왔소? 당신들은 제각기 성인의 도를 닦는 출가한 사람들이며 재물과 집에서 살림하는 일을 멀리 버렸으므로 이 나라 인민들이 모두 공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르며 범접하지 못하는데 무슨 일로 함께 여기까지 오셨는가?
여러분들, 당신들은 각각 다른 법과 다른 계율을 받으며 출가하는 일도 같지 않으며 또 각각 자기의 계법을 따라서 출가하고 수도하는 터인데, 이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화합함이 마치 떨어지는 잎이 바람에 불려서 한곳에 모이듯이 무슨 인연을 말하려고 여기 왔는가? 나는 매양 출가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나아가 몸이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소.”
그때 모든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대왕께서는 지금 대법의 다리이며 대법의 숫돌이며 대법의 저울이며, 모든 공덕의 그릇이며 모든 공덕의 진실한 성품이며 바른 법의 길이시니, 곧 종자의 좋은 밭이며
모든 국토의 근본이며 모든 국토의 거울이며 모든 천인의 형상이며 온 나라 사람의 부모입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세간에서 공덕의 보배 광이 곧 대왕의 몸이십니다.
공덕의 보배 광이라고 함은 대왕께서는 나라 일을 판단하시되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않으시며, 마음이 평등하심이 땅ㆍ물ㆍ불ㆍ바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대왕을 일러 공덕의 광이라고 합니다. 대왕이시여, 현재의 중생들은 비록 장수하기도 하고 단명하기도 하지만 대왕의 공덕은 옛적에 장수하고 안락하던 때의 임금과 같습니다. 또한 정생왕(頂生王)ㆍ선견왕(善見王)ㆍ인욕왕(忍辱王)ㆍ나후사왕(那睺沙王)1)ㆍ야야제왕(耶耶帝王)ㆍ시비왕(尸毗王)2)ㆍ일차구왕(一叉鳩王)3) 들과 같으니, 이런 임금들은 선한 법을 구족하였습니다.
지금 대왕도 그와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인연으로 나라가 태평하고 인민이 번성하니, 모든 출가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사모하여 계율을 지니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바른 도를 닦습니다. 대왕이시여, 우리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출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계율을 지니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바른 도를 닦으면 그 임금도 선한 일을 닦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모든 도둑을 이미 정리하셨으니 출가한 사람들이 조금도 두려움이 없으나 지금 오직 한 명 나쁜 사람인 구담 사문이 있습니다. 대왕께서 아직 단속하지 않으시니 저희들이 매우 두렵습니다. 그 사람은 세력 있는 집안의 자손이며 문벌이 훌륭하고 몸이 잘생긴 것을 믿고 있으며, 또 과거에 보시한 과보로 공양하는 이가 많으며 이런 일을 믿고 교만이 대단하며, 혹은 주문의 힘으로 인하여 거만한 생각을 내며, 이런 인연으로 고행을 하지 못하고 부드러운 의복과 와구를 많이 받아 축적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세간의 나쁜 사람들이 이익을 위하여서 그에게 모여 가서 권속이 되었지만 고행을 하지 않으며, 주문을
외워서 가섭ㆍ사리불ㆍ목건련 등을 조복하더니 요사이는 저희들이 있는 사라숲에 와서 있으면서 이 몸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선전하여 저희의 제자들을 유혹합니다. 대왕이시여, 구담이 전에는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을 저희들이 참았으나 지금 와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저희들이 구담과 더불어 논란하는 일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러 대사들, 당신들은 지금 누구의 부추김을 받고 마음이 광란하여 진정하지 못하는가? 마치 물의 파도 같으며, 불 바퀴[旋火輪] 같으며, 원숭이가 나무를 던지는 것 같으니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오. 지혜 있는 이가 들으면 가엾은 마음을 낼 것이며, 어리석은 사람이 들으면 빈정거릴 것이오. 당신들이 하는 말은 출가한 사람답지 못하오. 당신들이 풍병(風病)이나 황수(黃水)병에 걸렸다면 내게 좋은 약이 있으니 치료할 수 있고, 만일 귀신이 준 병이라면 나의 형 기바(耆婆)가 고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이 지금 하려는 것은 손톱으로 수미산을 헐려는 것이며 이빨로 금강을 씹으려는 것이오.
여러 대사들, 비유하면 어떤 바보가 사자가 굶어서 자는 것을 보고 깨우려는 것 같으며 손가락을 독사의 입에 넣는 것 같으며 재를 덮어 놓은 불을 손으로 헤치려는 것과 같이 당신들도 지금 그러하오.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여우가 사자의 소리를 하려는 듯, 모기가 금시조와 달음박질 내기를 하려는 듯, 토끼가 바다의 밑바닥을 밟고라도 건너려는 듯이 당신들도 지금 그와 같소
. 당신들이 만일 꿈에라도 구담을 이겼다면 그 꿈은 허망하여 믿을 수 없을 것이오. 여러분이 지금 그 생각을 낸 것은 마치 나비가 불더미에 뛰어드는 격이니, 당신들은 내 말을 따르고 다시 말하지 마시오. 당신들이 나를 칭찬하기를 평등하기가
저울 같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시오.”
그때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구담 사문이 짓는 환술이 왕에게까지 이르렀습니까? 대왕의 마음을 의심하게 하여 이런 성인들을 믿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이와 같은 대사(大士)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달이 둥글었다 이지러졌다 하고, 바닷물이 짜고, 마라연산(摩羅延山) 같은 것이 누가 하는 일입니까? 우리의 바라문이 아닙니까? 대왕이시여, 아갈다(阿竭多) 신선이 12년 동안 항하의 물을 귀 속에 넣어 둔 일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대왕이시여, 구담 선인이 큰 신통으로 12년 동안 제석의 몸으로 변화하였고, 아울러 제석의 몸으로는 숫양[羝羊]의 모양을 만들고, 천 개의 여근(女根)이 제석의 몸에 있게 한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대왕이시여, 기누(耆) 선인이 하루 동안에 4해의 물을 마셔 땅이 마르게 된 일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대왕이시여, 바수(婆藪) 선인이 자재천을 위하여 세 개의 눈을 만들었던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대왕이시여, 아라라(阿羅邏) 선인이 가부라성(迦富羅城)을 변화하여 개펄로 만든 일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대왕이시여, 바라문들 가운데는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진 선인들이 많아 지금도 살펴볼 수 있는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멸시하시는 것입니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내 말을 믿지 않고 기어이 겨루어 보고자 한다면 여래 정각께서 지금 사라숲 안에 계시니 당신들이 가서 마음대로 질문하여 보시오. 여래께서는 당신들을 위하여 분별하며 당신들의 뜻에 맞도록 대답할 것이오.”
그때 아사세왕이 외도들의 무리를 데리고 부처님 계신 데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예경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외도들이 마음대로 질문하고자 하니 여래께서
뜻을 따라 대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만두시오. 나는 스스로 때를 압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한 바라문이 있었으니 이름이 사제수나(闍提首那)였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은 열반이 항상한 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소, 대바라문이여.”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열반이 항상하다고 말한다면 그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법은 종자에서 열매가 생기며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니 마치 흙 반죽에서 질그릇이 생기고 실에서 옷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항상 말하기를 ‘무상한 생각을 닦아서 열반을 얻는다’라고 하였는데, 인이 무상인데 결과가 어떻게 항상하겠습니까?
당신은 또 말하기를 ‘욕계의 탐[欲貪]에서 해탈하면 곧 열반이며, 색계의 탐과 무색계의 탐에서 해탈하면 곧 열반이며, 무명 등의 모든 번뇌를 멸하면 곧 열반이다’라고 하였으니, 욕계의 탐으로부터 무명 번뇌에 이르기까지가 다 무상한 것입니다. 인(因)이 무상하면 얻는 열반도 반드시 무상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또 말하기를 ‘인으로 말미암아 천상에 나고 인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지고 인으로부터 해탈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다 인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으니, 만일 인으로부터 해탈을 얻는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또 말하기를 ‘색은 인연으로부터 났으므로 무상하다고 하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러하다’라고 하였으니, 해탈이 만일 색이라면 무상할 것이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러할 것입니다. 만일 5음을 여의고 해탈이 있다면 해탈은 마땅히 허공과 같을 것이며 만일 허공이라면 인연으로부터 생겼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공은 항상하고 하나이고 온갖 곳에 두루한 까닭입니다. 당신은 또 말하기를 ‘인연으로 생긴 것은 괴로움이다’라고 하였으니, 만일 괴로움이라면 어찌하여 해탈이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또 말하기를 ‘무상한 것이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이면
나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다면 곧 부정한 것이므로 모든 인으로부터 난 모든 법이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나가 없으며 부정한 것이라면 어떻게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말하기를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고 내가 없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다면, 이런 것은 두 가지 말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일찍이 옛날 지혜 있는 이에게 들었는데 부처님께서 만일 세상에 나시면 말씀에 두 가지가 없다고 하였소. 당신은 지금 두 가지 말을 하면서 부처님이 곧 내 몸이라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말과 같이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물을 것이니, 마음대로 대답해보시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구담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성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내 성품은 항상합니다.”
“바라문이여, 그 성품이 모든 안팎 법의 인이 되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바라문이여, 어떻게 인이 되는가?”
“구담이여, 성품으로부터 대(大)4)가 생기고 대로부터 아만[慢]이 생기고 아만으로부터 16법이 생기니, 이른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과, 5지근(知根)인 눈ㆍ귀ㆍ코ㆍ혀ㆍ몸과, 5작업근(作業根)인 손ㆍ다리ㆍ입ㆍ소리ㆍ남녀이근(男女二根)ㆍ심평등근(心平等根)이오. 이 16법은 5법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이오. 이 21법의 근본은 셋이니 물드는 것[染]과 거친 것[麤]과 검은 것[黑]인데, 물드는 것은 탐애[愛]라 하고 거친 것은 성내는 것이라 하고 검은 것은 무명이라고 합니다. 구담이여, 이 25법5)은 모두 성품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이 대(大)라는 법들은 다 항상한가, 무상한가?”
“구담이여, 나의 법에는 성품은 항상하고, 대라는 등의 모든 법은 무상한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법에서 인은 항상하고 과는 무상한 것처럼, 나의
법에서 인은 무상하나 과는 항상한 것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바라문이여, 그대의 법에 두 가지 인이 있는가?”
“있습니다.”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내는 인[生因]이고, 둘째는 나타내는 인[了因]입니다.”
“어떤 것을 내는 인이라 하고 어떤 것을 나타내는 인이라고 하는가?”
“내는 인이라 하는 것은 흙 반죽에서 질그릇을 내는 것과 같고, 나타내는 인이라고 하는 것은 등불로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 인이 인 되는 성품은 하나인가? 만일 하나라면 내는 인으로 하여금 나타내는 인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나타내는 인으로 내는 인이 되게 할 수도 있는가?”
“그렇지 못합니다, 구담이여.”
“만일 내는 인으로 나타내는 인이 되게 할 수 없고 나타내는 인으로 내는 인이 되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록 서로 될 수는 없지만 인의 모습은 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타내는 인으로 나타낸 것이 내는 인과 같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구담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비록 무상으로부터 열반을 얻지만 무상한 것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나타내는 인으로부터 얻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며, 내는 인으로부터 얻었으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 그러므로 여래의 말이 두 가지가 있으나, 이 두 가지 말은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를 일러 두 말이 없다고 한다.
그대의 말과 같이 옛날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 들었는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면 두 말이 없다고 한 것은 진실로 훌륭한 말이다. 모든 시방 3세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것은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두 말이 없다고 하신다. 어찌하여 차별이 없다고 하는가? 있는 것은 동일하게 있다 말하고 없는 것은 동일하게 없다고 말하므로 한 가지 뜻이라고 한다.
바라문이여, 여래 세존이 비록 두 말이라고 하나 한 가지 말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어떤 것을 말하여 두 말이 한 가지 말을 나타낸다고 하는가? 마치 눈이나 빛이라고 하는 두 말이 식(識)이라는 한 가지 말을 나타내는 것이며 나아가 뜻이나 법이라고 하는 것도
그와 같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이러한 말과 뜻을 잘 분별하시나, 지금 말씀하신바 두 말이 한 말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그를 위하여 4진제법(眞諦法)을 말씀하셨다.
“고제(古諦)란 것은 둘도 되고 하나도 되며, 나아가 도제(道諦)도 둘도 되고 하나도 된다.”
“세존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선남자야, 어떻게 알았는가?”
“세존이시여, 고제를 범부들은 둘이라 하고 성인은 하나라고 하며, 나아가 도제도 그와 같습니다.”
“훌륭한 일이다, 이미 알았구나.”
바라문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법을 듣고 바른 지견을 얻었으며, 이제 불보ㆍ법보ㆍ승보에 귀의하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저의 출가를 허락해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사제수나(闍提首那)의 머리를 깎아 주고 출가하게 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명령을 받고 머리를 깎으려고 손을 댈 때 두 가지가 떨어졌으니, 첫째는 수염과 머리카락이며, 둘째는 번뇌였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또 범지가 있었다. 성은 바사타(婆私吒)였는데 그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열반이 항상하다고 말하는가?”
“그렇소, 범지여.”
“구담이여, 번뇌가 없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소, 범지여.”
“구담이여, 세상에는 네 가지를 없다고 합니다. 첫째는 아직 나오지 않은 법을 없다고 하는데, 마치 질그릇이 흙 반죽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를 질그릇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고, 둘째는 이미 소멸한 법을 없다고 하는데, 마치 병이 깨어진 후를 병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고,
셋째는 다른 모양이 서로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데, 마치 소에게는 말이 없고 말
에게는 소가 없는 것 등과 같은 것이며, 넷째는 끝까지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데,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 등과 같은 것입니다. 구담이여, 만일 번뇌를 없애 버린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면 열반은 곧 없는 것이니, 만일 없다면 어떻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열반은 먼저 없었던 것이 흙 반죽 때의 질그릇과 같지 않고, 멸하여 없어진 것이 병이 깨어진 때와 같지도 않고, 끝까지 없는 것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도 같지 않고 다른 모양이 서로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이 소에게는 말이 없어도 소까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말에게는 소가 없어도 말까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열반도 그와 같아서 번뇌 가운데는 열반이 없고 열반 가운데는 번뇌가 없는 것이므로 다른 모양이 서로 없다고 한다.”
바사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면 다른 모양이 없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도 없을 것인데, 구담이여, 어떻게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는 다른 모양이 없다는 데는 세 가지 없음이 있다. 소나 말은 다 먼저는 없다가 뒤에 있는 것이니 이것은 먼저 없다고 하며, 이미 있다가 도로 없어지는 것은 무너져서 없다고 하며, 다른 모양이 없다는 것은 그대가 말한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세 가지 없음은 열반 가운데는 없다. 그러므로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예를 들자면 세상에서 병든 사람이 첫째는 열병(熱病), 둘째는 풍병(風病), 셋째는 냉병(冷病)이라면 이 세 가지 병은 세 가지 약으로 다스리는 것과 같다. 열병을 앓는 이는 소(蘇)로 다스리고, 풍병은 기름으로 다스리고, 냉병은 꿀로 다스리는데 이 세 가지 약으로 세 가지 나쁜 병을 다스린다.
선남자야, 풍병에는 기름이 없고 기름에는 풍병이 없으며,
나아가 꿀에는 냉병이 없고 냉병에는 꿀이 없다. 그러므로 능히 다스리는 것이다. 모든 중생도 이와 같아서 세 가지 병이 있으니, 첫째는 탐욕이며, 둘째는 성내는 것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다. 이 세 가지 병에도 세 가지 약이 있으니, 부정관(不淨觀)은 탐욕에 약이 되고, 자심관(慈心觀)은 성내는 데 약이 되고, 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는 어리석은 데 약이 된다.
선남자야, 탐욕을 없애기 위해서는 탐욕이 아닌 관찰[非貪觀]을 하고, 성내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내지 않는 관찰[非瞋觀]을 하고,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리석지 않은 관찰[非癡觀]을 한다. 세 가지 병 가운데는 세 가지 약이 없고, 세 가지 약 가운데는 세 가지 병이 없으니,
선남자야, 세 가지 병 가운데는 세 가지 약이 없으므로 항상함이 없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지만 세 가지 약 가운데는 세 가지 병이 없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일컫는 것이다.”
바사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저를 위하여 항상함과 무상함을 말씀하시니, 무엇을 항상하다 하고 무엇을 무상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색은 무상하고 해탈의 색은 항상하며, 나아가 식은 무상하고 해탈의 식은 항상하다. 선남자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식이 무상하다는 것을 관찰하면 이 사람은 항상한 법을 얻을 것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항상하고 무상한 법을 알았습니다.”
“선남자야, 그대는 항상한 법과 무상한 법을 어떻게 알았는가?”
“세존이시여, 지금 저의 색은 무상하고 해탈을 얻는 것이 항상함을 알았으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습니다.”
“선남자야, 그대는 이제 잘 되었구나. 이미 이 몸에 과보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 바사타가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니, 너는 3의(衣)와 발우를 주어라.”
교진여는 부처님의 명령에 따라 가사와 발우를 주었다.
바사타는 가사와
발우를 받고 이렇게 말하였다.
“대덕 교진여시여, 제가 지금 추악한 몸으로 선한 과보를 얻었습니다. 원컨대 큰스님께서 저를 위하여 뜻을 굽히시고, 세존 계신 데 가서 저의 마음을 여쭈어 주십시오. 제가 나쁜 사람이 되어서 여래의 존엄을 모독하고 구담이란 성을 일컬었으니 바라건대 이 죄를 참회하여 주십시오. 저는 또 이 독한 몸을 오래 머물러 둘 수 없으니 이제 열반에 들겠나이다.”
그때 교진여는 부처님 계신 데 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사타 비구가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스스로 말하기를 ‘무지하고 악한 자가 되어서 여래의 존엄을 모독하고 구담이란 성을 일컬었습니다. 이 독사 같은 몸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어 지금 몸을 멸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저에게 위탁하여 참회를 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야, 바사타 비구는 지난 세상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을 성취하였고 이제 내 말을 듣고 법답게 머물렀으며, 법답게 머물렀으므로 바른 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그의 몸에 공양하여라.”
교진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사타의 몸이 있는 데로 와서 공양을 베풀었다. 바사타는 몸을 화장할 때에 가지가지 신통을 지었다. 외도들은 이것을 보고 외치며 말하였다.
“바사타가 이미 구담 사문의 주문하는 술법을 얻었으니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서 구담보다 뛰어날 것이다.”
그때 대중 가운데 다시 한 범지가 있었는데 이름이 선니(先尼)6)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나[我]라는 것이 있습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구담이시여, 나라는 것은 없습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두 번 세 번 이렇게 물었으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선니는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만일 온갖 중생이 나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곳에 두루하였을 것이며, 하나일 것이며, 짓는 이일 것인데 구담이시여, 무슨 까닭에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니여, 그대는 나라는 것이
모든 곳에 두루하다고 말하는가?”
“구담이시여, 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지혜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말합니다.”
“선남자야, 만일 나라는 것이 모든 곳에 두루하다면, 마땅히 5도(道)에서 한꺼번에 과보를 받을 것이며, 만일 5도에서 한꺼번에 과보를 받는다면 그대 범지들은 무슨 인연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음은 지옥을 막기 위함이며, 선한 법을 닦는 것은 천상의 몸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는가?”
“구담이시여, 우리의 법 가운데는 두 가지 나라는 것이 있으니, 첫째는 짓는 몸인 나[作身我]이며, 둘째는 항상한 몸인 나[常身我]이다. 짓는 몸인 나를 위해서는 악을 떠나는 법을 닦아서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선한 법을 닦아서 천상에 나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이 내가 온갖 곳에 두루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내가 짓는 몸 가운데는 항상함이 없을 것이니, 만일 짓는 몸에 없다면 어떻게 두루하다고 하겠는가?”
“구담이시여, 내가 세우는 나라는 것은 짓는 몸 가운데 있으면서도 역시 항상한 법입니다. 구담이시여, 어떤 사람이 실수로 불을 내어 집이 탈 때에 주인은 밖으로 나갔다고 하면, 집이 탈 때에 주인도 타고 집도 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라는 법도 그와 같아서 이 짓는 몸이 비록 무상하지만 무상할 때에는 나라는 것은 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나는 두루하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한 것입니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에 내가 두루하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하다는 말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두루함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항상함이며 둘째는 무상함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색이며 둘째는 무색이다. 그러므로 만일 온갖 것에 있다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며 색이기도 하고 무색이기도 할 것이며,
만일 집 주인이 나갔으므로 무상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집은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주인은 집이라고 하지 않아서 타는 것이 다르고 나가는 것이 다르므로 그럴 수가 있지만 나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곧 색이며 색이 곧
나이며, 무색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무색인데 어떻게 색이 무상할 때에 나라는 것이 나갔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그대가 만약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동일한 나라고 한다면 이것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간법으로는 아비ㆍ어미ㆍ아들ㆍ딸이라고 하는데, 만일 나라는 것이 하나라면 아비가 곧 아들이며 아들이 곧 아비일 것이며, 어미가 곧 딸이며 딸이 곧 어미일 것이며, 원수가 곧 친한 이며 친한 이가 곧 원수일 것이며, 이 사람이 곧 저 사람이며 저 사람이 곧 이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동일한 나라고 한다면 이것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어기는 것이다.”
선니가 말하였다.
“저도 모든 중생이 같이 동일한 나라고 말한 것이 아니며, 한 사람마다 하나의 내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한 사람마다 하나의 나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나라는 것이 여럿이니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나라는 것은 온갖 것에 두루하다’라고 하였으니, 만일 온갖 것에 두루하다면 모든 중생의 업과 근이 같을 것이다.
천신[天]이 볼 때에는 부처도 보게 되며, 천신이 지을 때에는 부처도 짓게 되며, 천신이 들을 때에는 부처도 들을 것이니, 온갖 법이 모두 그와 같다. 만일 천신이 보는 것을 부처가 보지 못한다면 나라는 것이 온갖 곳에 두루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만일 두루하지 않다면 그는 곧 무상한 것이다.”
“구담이시여, 모든 중생의 나라는 것은 온갖 것에 두루하고, 법과 법 아닌 것은 온갖 것에 두루하지 않다. 이런 뜻으로 부처의 지음이 다르고 하늘의 지음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구담이여, 부처가 보는 때에는 하늘도 보아야 하고 부처가 들을 때에는 하늘도 들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선남자야, 법과 법 아닌 것이 업으로 짓는 것이 아닌가?”
“구담이여, 업으로 짓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법과
법 아닌 것이 업으로 짓는 것이라면 곧 같은 법인데, 어찌하여 다르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부처가 업을 얻는 데에서 천신이 나를 얻고 천신이 업을 얻는 데에서 부처가 나를 얻는다. 그러므로 부처가 업을 지을 때에 하늘도 지을 것이며, 법과 법 아닌 것도 마땅히 이와 같다. 선남자야, 그런 까닭에 온갖 중생의 법과 법 아닌 것이 만일 그러하면 얻는 과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종자로부터 열매가 나지만 이 종자가 생각하고 분별하기를 ‘나는 다만 바라문의 과만 짓고 찰리나 비사나 수타의 과는 짓지 않을 것이다’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자에서 열매를 낼 때에 이러한 네 계급을 장애하지 않으니, 법과 법 아닌 것도 그와 같아 능히 분별하기를 ‘나는 다만 부처의 과만 짓고 하늘의 과는 짓지 않겠다거나, 하늘의 과는 짓되 부처의 과는 짓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업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선니는 말하였다.
“구담이여, 마치 하나의 방에 백천 개의 등불이 있는데 심지는 비록 각각이나 광명은 차별이 없는 것과 같으니 등잔과 심지가 각각인 것은 법과 법 아닌 데 비유하고 광명이 차별 없는 것은 중생의 나에 비유하는 것이오.”
“선남자야, 그대가 등의 광명을 나에 비유하는 것은 이치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방이 다르고 등이 다르므로 이 등의 광명은 또한 심지에도 있고 방 안에도 두루한다. 그대가 말하는 내가 이와 같다면, 법과 법 아닌 데 모두 내가 있어야 하고 나에도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법과 법 아닌 데에 내가 없다면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모두 있다면 어떻게 심지와 광명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선남자야, 그대의 생각에 심지와 광명이 진실로 다르다고 한다면 무슨 까닭에 심지가 커지면 광명이 성하고 심지가 마르면 광명이 꺼지는가? 그러므로
법과 법 아닌 것으로 심지에 비유하고 광명이 차별 없는 것으로 나에 비유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과 법 아닌 것과 나의 이 세 가지가 곧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이 인증(引證)하는 등불 비유는 불길한 것이오. 왜냐하면 등불 비유가 길하다면 내가 먼저 끌어 온 것이며 만일 불길하다면 어찌하여 다시 말하는가?”
“선남자야, 내가 인증하는 비유는 길하고 불길함과 관계된 것이 전혀 아니고 그대의 뜻을 따라 말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심지를 여의고 광명이 있다 할 수도 있고 심지에 즉(卽)하여 광명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대의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여서 심지로는 법과 법 아닌 데 비유하였고 광명으로는 나에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그대를 책망하되 ‘심지가 곧 광명이냐, 심지를 여의고 광명이 있느냐, 법이 곧 나이냐, 내가 곧 법이냐, 법 아닌 것이 곧 나이냐, 내가 곧 법 아닌 것이냐?’ 하는 것인데, 그대는 무슨 이유로 한쪽만을 인정하고 한쪽은 인정하지 않는가? 이런 비유는 그대에게 불길한 것이므로 내가 도로 그대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비유는 잘못된 비유이니 잘못된 비유이므로 내게는 길하고 그대에게는 불길하다. 선남자야,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게 불길하면 당신에게도 불길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 이치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이 자기의 칼로 자기를 해쳐서 자기의 짓는 일이 남에게 소용됨을 보는데, 그대가 끌어 온 비유도 그와 같아서 내게는 길하지만 그대에게는 불길하다.”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이 먼저는 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책망하더니,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도 평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담이시여, 지금 길한 것은 자신에게 돌리고 불길한 것은 내게 돌리니,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진실로 평등하지 못합니다.”
“선남자야, 나의 불평등으로 그대의 불평등을 깨뜨리므로 그대의 평등과 나의 불평등은 모두 길한 것이다. 나의 불평등으로 그대의 불평등을 깨뜨려서 그대로 하여금 평등을 얻게 하는 것이 곧 나의 평등이다. 왜
냐하면 여러 성인들과 같이 평등을 얻기 때문이다.”
“구담이여, 나는 항상 평등한데 당신은 어찌하여 나의 불평등을 깨뜨린다고 하는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내가 있는데, 어찌하여 내가 평등하지 않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그대도 말하기를 ‘마땅히 지옥을 받고 마땅히 아귀를 받고 마땅히 축생을 받고 마땅히 인간과 천상을 받는다’라고 하였으니, 나라는 것이 이전부터 5도에 두루하였다면 어찌하여 마땅히 모든 갈래를 받으라고 말하는가? 그대도 말하기를 ‘부모가 화합하여 아들을 낳는다’라고 하였으니, 만일 아들이 먼저부터 있었다면 어찌하여 화합한 뒤에야 있다고 하는가?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다섯 갈래의 몸이 있는 것이니, 만일 다섯 곳에 먼저부터 몸이 있었다면 무슨 인연으로 몸을 위하여 업을 짓겠는가? 그러므로 평등하지 못하다.
선남자야, 그대가 생각하기를 ‘나라고 하는 것은 짓는 것[作者]이다’라고 한다면 그 뜻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짓는다면 무슨 까닭에 스스로 괴로운 일을 짓겠는가? 그러나 지금 중생들이 실로 괴로움을 받고 있으니, 이런 까닭에 내가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말하기를 ‘이 괴로움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니며 인으로부터 나지도 않는다’라고 한다면, 온갖 법이 모두 그러하여 인으로부터 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인연으로 내가 짓는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실로 인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은 능히 근심과 기쁨을 지어서 근심할 때에는 기쁨이 없고 기쁠 때에는 근심이 없으며, 혹은 기뻐하고 혹은 근심한다. 지혜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이것을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나는 항상하다’라고 하지만 만일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열 가지 시절의 다름이 있겠는가? 항상한 법이라면 가라라 시절로부터 늙은 시절까지가 있지 않을 것이며, 허공은 항상한 법이므로 한 때도 없는데 하물며 열 가지 시절이 있겠는가?
선남자야,
나라고 하는 것은 가라라 시절도 아니고 나아가 늙은 시절도 아닌데, 어찌하여 열 가지 시절의 차별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만일 나라는 것이 짓는 것이라면, 이러한 나에는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고 중생도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으니, 만일 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내가 만일 짓는 것이라면 어째서 한 사람에게 영리하고 둔함이 있는가? 선남자야, 내가 만일 짓는 것이라면 이러한 나가 능히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과 뜻으로 짓는 업을 짓는데, 만일 이런 것이 내가 짓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입으로 내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어찌하여 스스로 있느냐 없느냐를 의심하겠는가?
선남자야, 그대가 생각하기를 ‘눈을 떠나서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치가 옳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눈을 떠나고 따로 보는 것이 있다면 왜 눈을 필요로 하는가? 나아가 몸도 그와 같다. 그대의 생각에 ‘내가 능히 본다’고 하지만 반드시 눈으로 인하여 본다면 그것 또한 그렇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만나꽃[須曼那花]이 큰 마을을 태운다. 어떻게 태우는가 하면 불을 일으켜 태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그대가 말하는 내가 본다고 하는 것도 그와 같다.”
“구담이여, 마치 사람이 낫을 들고 풀을 베는 것처럼 내가 5근(根)으로 인하여 보고 듣고 나아가 감촉하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사람과 낫은 각각 다르므로 낫을 들고 작용할 수 있지만 근을 떠나고는 따로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내가 근으로 인하여 작용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야, 그대가 생각하기를 ‘낫으로 풀을 베듯이 나라는 것도 그와 같다’라고 하면 이러한 나에는 손이 있는가, 손이 없는가? 만일 손이 있다면 어째서 제가 들지 못하는가? 만일 손이 없다면 어떻게 내가 짓는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능히 풀을 베는 것은 곧 낫이고, 나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다. 만일 나나 사람이 능히 벤다면 어찌하여 낫을 필요로 하는가? 선남자야, 사람에게 두 가지 업이 있다. 첫째는 풀을 잡고 둘째는 낫을 든다. 이 낫은 능히 끊는 공만 있다. 중생이 법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눈이 능히 빛을 보는 것은 화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만일 인연이 화합함으로 인하여 본다면 지혜 있는 사람이 어찌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짓고 내가 받는다’고 한다면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천신이 업을 짓고 부처가 과보를 받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말하기를 ‘몸으로 짓는 것이 아닌데, 내가 인이 아닌 것으로 받는다’라고 한다면, 그대들은 어찌하여 인연으로부터 해탈을 구하는가? 그대의 몸이 인연이 아닌 것으로 났다면, 해탈을 얻고 나서도 역시 인연이 아닌 것으로 다시 몸이 나야 할 것이며 몸과 같아서 모든 번뇌도 그와 같을 것이다.”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앎이 있고, 둘째는 앎이 없습니다. 앎이 없는 나는 능히 몸을 얻지만 앎이 있는 나는 능히 몸을 버립니다. 마치 아직 굽지 않은 질그릇을 가마에 구우면 본래의 빛을 잃고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과 같으니, 지혜 있는 이의 번뇌도 그와 같아서 한번 멸하고 나서는 다시 생기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안다고 하는 것은 지혜가 아는 것인가, 내가 아는 것인가? 만일 지혜가 아는 것이라면 무슨 까닭에 내가 아는 것이라고 말하며, 만일 내가 안다면 무슨 까닭에 방편으로 지혜를 구하는가?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가 지혜로 인하여 안다’고 하면 꽃이 태운다는 비유와 같다.
선남자야, 마치 찔레나무의 성질이 찌르는 것을, 나무가 가시를 잡고 찌른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지혜도 그와 같아서 지혜가 스스로 아는 것인데, 어떻게 내가 지혜를 가지고 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그대의 법에서는 내가 해탈을 얻는 것을 앎이 없는 내가 얻는다고 하는가, 앎이 있는 내가 얻는다고 하는가? 만일 앎이 없는 것이 얻는다면 예전대로 번뇌를 구족하였을 것이며, 만일 앎이 있는 것이 얻는다면 이미 5정(情)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근을 떠나서는 따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근을 갖추었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었다고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나의 성품이 청정하여 5근을 여의었다’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5도(道)에 두루하였다고 하며, 무슨 인연으로 해탈하기 위하여 선한 법을 닦겠느냐?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서 가시를 뽑는다는 것처럼 그대도 그러하니, 내가 만일 청정하다면 어찌하여 번뇌를 끊는다고 말하는가? 그대가 또 생각하기를 ‘만일 인연을 반연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라고 하면 모든 축생들은 어찌하여 얻지 못하느냐?”
“구담이시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능히 기억합니까?”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잊어버리는가? 선남자야, 만일 기억하는 것이 나라면 무슨 인연으로 나쁜 생각을 기억하며, 기억하지 않을 것은 기억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지 않는가?”
선니가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보고 누가 듣습니까?”
“선남자야, 안으로는 6입(入)이 있고 밖으로는 6진(塵)이 있으며 안과 밖이 화합하여 여섯 가지 식을 낸다. 이 여섯 가지 식이 인연으로 이름을 얻는 것이다. 선남자야, 다 같은 불이지만 나무로 인하여 생겼으면 장작불이라 하고 짚으로 인하여 생겼으면 짚불이라 하고 겨로 인하여 생겼으면 겻불이라 하고 쇠똥으로 인하여 생겼으면 쇠똥불이라 하듯이, 중생의 알음알이도 그와 같아서 눈으로 인하고 빛으로 인하고 밝음으로 인하고 의욕(意欲)으로 인한 것은 안식(眼識)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안식은 눈에 있지도 않고 나아가 의욕에 있지도 않고 네 가지가 화합하여서 이 식이 생긴 것이며 나아가 의식도 그와 같다. 만일 인연이 화합하여서 지혜가 생겼으면 마땅히 보는 것이 나라거나, 나아가 감촉이 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안식으로부터 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이 다 환(幻)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환이라고 하는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고 이미 있다가도 도로 없어지기 때문이다. 선
남자야, 마치 소면(蘇麵)ㆍ밀강(蜜薑)ㆍ후추ㆍ필발(蓽茇)ㆍ포도ㆍ호도ㆍ석류ㆍ유자(桵子)가 화합한 것을 환희환(歡喜丸)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화합한 것을 떠나고는 환희환이 없는 것처럼, 안팎 6입을 중생ㆍ나ㆍ사람ㆍ사내라고 한다. 이 안팎 6입을 떠나고는 따로 중생ㆍ나ㆍ사람ㆍ사내라거나 할 것이 없다.”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만일 내가 없다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괴롭다, 내가 즐겁다, 내가 근심한다, 내가 기쁘다’라고 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만일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고 해서 내가 있다고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네가 짓는 죄를 나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라고 하는가? 선남자야, 마치 네 가지 병사가 화합한 것을 군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병사를 하나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하기를 ‘우리 군대가 용맹하다, 우리 군대가 이겼다’라고 하는데, 안팎 입(入)이 화합하여 짓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괴롭다, 내가 즐겁다’라고 한다.”
“구담이여, 당신의 말과 같이 안팎이 화합하였다면, 누가 소리를 내어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선니여, 애와 무명의 인연으로 업이 생기고 업으로부터 유(有)가 생기고 유로부터 한량없는 심수(心數)가 생기고 심수로부터 각관(覺觀)이 생기고 각관이 풍(風)을 동하고 풍이 마음을 따라서 목구멍[喉]과 혀와 이와 입술을 접촉하는데, 중생의 생각이 뒤바뀌어서 소리가 나는 것을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고 말한다.
선남자야, 마치 깃발 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의 인연으로 소리를 낼 때에 바람이 크면 소리가 크고 바람이 작으면 소리가 작지만 짓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마치 뜨거운 쇠를 물속에 넣으면 여러 가지 소리가 나지만 그 가운데는 소리를 짓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범부들은 이런 일을 생각하고 분별하지 못하므로
내가 있고 내 것이 있고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말한다.”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가 없고 내 것이 없다면 무슨 까닭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나도 안팎 6입과 6식(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안팎 6입으로 생긴 6식을 멸한 것이 항상하다고 하고 항상하므로 나라고 하고 항상하고 내가 있으므로 즐겁다고 하고 항상하고 나이고 즐거우므로 깨끗하다고 한다고 말하였다. 선남자야, 중생들은 괴로움을 싫어하고, 괴로움의 인을 끊어서 자재하게 떠나는 것을 나라고 하지만 이런 인연으로 내가 지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한다.”
선니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저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제가 어찌하면 그러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온갖 세간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큰 교만을 구족하고 교만을 증장하였으며, 또 교만한 인과 교만한 업을 지었으므로 지금 교만의 과보를 받느라고 모든 번뇌를 여의지 못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 만일 모든 중생들이 온갖 번뇌를 멀리 떠나려거든 먼저 교만을 떠나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진실로 성인의 가르침과 같이 저는 전에 교만이 있었습니다. 교만한 인연으로 여래를 일컬어 ‘당신, 구담’이라고 불렀으나, 저는 이미 이런 교만을 여의었습니다. 정성된 마음으로 법을 구하기를 청하오니, 어떻게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겠습니까?”
“선남자야, 자세히 들어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야, 만일 능히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라면 이 법을 멀리 떠나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이해하여 바른 법의 눈[正法眼]을 얻었습니다.”
“선남자야, 너는
어떻게 알고 이해하여 바른 법의 눈을 얻었느냐?”
“세존이시여, 말한바 색이란 것이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관찰하고 바른 법의 눈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출가하여 수도하기를 지극히 원합니다. 바라건대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잘 왔구나, 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 즉시에 청정한 범행을 구족하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외도들 중에 또 성(姓)이 가섭씨(迦葉氏)인 범지가 있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몸이 곧 수명입니까,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릅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와 같이 하셨다.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몸을 버리고 아직 뒤의 몸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그동안을 말하여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다르다면 구담은 어찌하여 잠자코 대답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야, 나는 말하기를 ‘몸과 수명은 모두 인연으로 있는 것이며 인연 아닌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몸이나 수명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와 같다.”
범지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저는 세간에서 인연을 따르지 않는 법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범지여, 그대는 세간의 어떤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았는가?”
“저는 큰불이 나서 개암나무를 태울 때에 바람이 불면 불길이 끊어져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런 것은 인연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선남자야, 나는 이 불길도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이라 말하고, 인연이 없이 생겼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구담이여, 불길이 끊어져 갈 때에는 섶이나 숯을 까닭으로 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인연을 인하였다고 하겠습니까?”
“선남자야, 비록 섶이나 숯은 없으나 바람을 인하여 날아간 것이니, 바람의 인연으로 불길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구담이여, 사람이 몸을 버리고 뒤의 몸을 얻지 못하였을 동안의 수명은 무엇이 인연이 됩니까?”
“범지여, 무명과 애가 인연이 되는데, 무명과 애의
두 가지 인연으로 수명이 머물게 된다. 선남자야, 인연이 있으므로 몸이 곧 수명이며 수명이 곧 몸이며 인연이 있으므로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니, 지혜 있는 이는 한결같이 말하여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범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시고 해설하셔서 인과 과를 분명히 알게 해주십시오.”
“범지여, 인(因)도 5음(陰)이며, 과(果)도 5음이다.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불을 사르지 않으면 연기가 없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알았으며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세존이시여, 불은 곧 번뇌인지라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을 사르는 것이며, 연기는 곧 번뇌의 과보인지라 무상하고 부정하고 냄새가 더러워서 싫어 할 만하기 때문에 연기라고 합니다. 만일 중생이 번뇌를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은 번뇌의 과보가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불을 사르지 않으면 연기가 없다’라고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바르게 보았으니, 원컨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한다.”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대중을 모으고 그로 하여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였더니 닷새를 지나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다시 범지 중에 부나(富那)라는 범지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구담이여, 당신은 세간에 항상한 법을 보고 항상하다고 말하였습니까? 그런 이치가 진실합니까, 헛됩니까, 항상합니까, 무상합니까,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합니까,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닙니까, 가[邊]가 있습니까, 가가 없습니까, 가가 있기도 하고 가가 없기도 합니까, 가가 있음도 아니고 가가 없음도 아닙니까, 몸입니까, 수명입니까,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릅니까, 여래가 멸도한 후에는 여여하게 갑니까[如去],
여여하게 가지 않습니까[不如去], 여여하게 가기도 하고 여여하게 가지 않기도 합니까,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나여, 나는 세간의 항상함이 헛되다, 진실하다,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가가 있다 가가 없다, 가가 있기도 하고 가가 없기도 하다, 가가 있음도 아니고 가가 없음도 아니다, 몸이다 수명이다,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 여래가 멸도한 후에 여여하게 간다 여여하게 가지 않는다, 여여하게 가기도 하고 여여하게 가지 않기도 한다,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부나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지금에 무슨 허물을 보고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부나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세간이 항상하니 이것만이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소견이라 하고 소견으로 보는 곳은 견의 행[見行]이라 하고 견의 업이라 하고 견의 집착이라 하고 견의 속박이라 하고 견의 괴로움이라 하고 견의 취[見取]라 하고 견의 공포[見怖]라 하고 견의 열[見熱]이라 하고 견의 얽힘이라고 한다. 부나여, 범부는 견의 얽힘이 되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여의지 못하고 6취(趣)로 돌아다니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나아가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이와 같다.
부나여, 나는 소견이 이러한 허물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집착하지 않고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구담이여, 만일 이러한 허물을 보고 집착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무엇을 보고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선남자야, 보고 집착함은 나고 죽는 법이라고 하는데 여래는 나고 죽는 법을 이미 떠났으므로 집착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여래는 능히 본다, 능히 말한다 하고, 집착한다고 하지 않는다.”
“구담이여, 어떤 것을 능히 본다 하고 어떤 것을 능히 말한다고 하는가?”
“선남자야, 나는 고ㆍ집ㆍ멸ㆍ도를 능히 보았고 이러한 4제를 능히 분별하여 해설한다. 나는 이런 것을 보았으므로
모든 소견과 모든 애와 모든 흐름[流]과 모든 교만을 멀리 여의었다. 그러므로 나는 청정한 범행과 위없이 고요함을 갖추어 항상한 몸을 얻었으며 이 몸은 동ㆍ서ㆍ남ㆍ북이 아니다.”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항상한 몸은 동ㆍ서ㆍ남ㆍ북이 아니라고 합니까?
“선남자야,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을 것이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그대의 마음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남자야, 그대 앞에서 불더미를 사른다면 한창 탈 때 그대가 타는 줄을 아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불이 꺼질 때 그대가 꺼지는 줄을 아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부나여, 만일 어떤 이가 묻기를 ‘그대 앞에서 불더미가 타는데, 그것은 어디서 왔으며 꺼져서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구담이여, 그렇게 묻는 이가 있으면 나는 대답하기를 ‘이 불이 생길 때에는 모든 인연을 말미암았고 본래의 인연이 이미 다하고 새 인연이 오지 않으면 불이 꺼진다’라고 하겠소.”
“또 묻기를 ‘이 불이 꺼져서 어느 방면에 이르는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구담이여, 저는 대답하기를 ‘인연이 다해서 꺼지는 것이므로 어느 방소에도 이르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선남자야,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무상한 색으로부터 무상한 식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은 애로 인하여 타는 것이니, 타는 것은 25유(有)를 받는 것이므로 탈 때에는 불의 동ㆍ서ㆍ남ㆍ북을 말할 수 있지만, 현재의 애가 멸하면 25유의 과보가 타지 않는다. 타지 않으므로 동ㆍ서ㆍ남ㆍ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선남자야, 여래는 무상한 색으로부터 무상한 식에 이르기까지를 이미 멸하였으므로 몸이 항상하며, 몸이 항상하므로 동ㆍ서ㆍ남ㆍ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부나는 말하였다.
“하나의 비유를 말할 것이니 바라건대 들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일이다. 마음대로 말하여라.”
“세존이시여, 마치 큰 마을 앞에 사라나무숲이 있고 그 가운데 한 나무가 숲보다 먼저
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때 숲 주인은 물을 주면서 철을 따라 가꾸었는데, 그 나무가 오래되어서 껍질과 가지와 잎은 다 떨어지고 굳은 고갱이만 남아 있습니다. 여래께서도 그와 같아서 낡은 것은 모두 제하여 없어지고 온갖 진실한 법만 남아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출가하여 수도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잘 왔구나, 비구여” 하고 말씀하시니, 이 말을 마치자 곧 출가하여 번뇌가 다하였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또 청정부(淸淨浮)라는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이렇게 말하였다.“구담이여, 모든 중생들은 무슨 법을 알지 못하여서 세간이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나아가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색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범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중생들이 무슨 법을 알면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보지 않겠습니까?”
“선남자야, 색을 알기 때문이며, 나아가 식을 알기 때문에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하게 가는 것도 아니고 여여하게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보지 않는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세간이 항상함과 무상함을 분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선남자야, 만일 사람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이 항상하고 무상함을 아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보았습니다.”
“선남자야,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보았는가?”
“세존이시여, 낡은 것은 무명과 애라 하고, 새것은 취(取)와 유(有)라 하는데 사람이 만일 무명과 애를 멀리 여의고 취와 유를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은 진실하게 항상함과 무상함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바른
법의 깨끗한 눈을 얻어 3보에 귀의하오니, 바라건대 여래께서는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대중에게로 데리고 가서 갈마(羯磨)를 행하여 출가하게 하였더니, 보름 후에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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