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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적어보자 불교

[적어보자] #3139 불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40권

by Kay/케이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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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40

 

대반열반경 제40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3. 교진여품 ②

독자(犢子) 범지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물으려는데 허락하겠습니까?”
여래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렇게 하셨다.
독자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저는 오래 전부터 당신의 친구가 되었으며 당신은 나와는 둘이 아닌데 내가 묻는 것에 무엇 때문에 잠자코 계십니까?”
그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는 성품이 선비답고 아담하며 착하고 질직(質直)하여서 매양 알기 위하여 묻는 것이며 남을 시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물으면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독자여, 훌륭한 일이다. 의심나는 대로 물으면 내가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세상에 선(善)이 있습니까?”
“그렇다, 범지여.”
“불선이 있는가?”
“그렇다, 범지여.”
“구담이여,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말해서 저로 하여금 선과 불선의 법을 알게 해주십시오.”
“선남자야, 나는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할 수 있지만 이제 그대를 위하여 간략히 말하겠다. 선남자야, 탐욕을 불선이라 하고 탐욕에서 해탈함을 선이라고 하며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다. 살생을 불선이라 하고 살생하지 않음을 선이라고 하며 나아가 삿된 소견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으며, 또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다. 만일 나의 제자가 이러한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 나아가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능히 분별하면 이 사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다하였고 온갖 유를 끊은 것이다.”
“구담이여, 불법 가운데 한 비구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다한 이가 있습니까?”
“선남자야,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00에 이르기 까지 한량없는 비구들이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하였다.”
“구담이여, 한 비구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는 한 비구니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한 이가 있습니까?”
“선남자야,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00에 이르기 까지 한량없는 비구니들이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끊었다.”
“구담이여, 한 비구와 한 비구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한 우바새(優婆塞)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고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습니까?”
“선남자야,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00에 이르기 까지 한량없는 우바새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5하분결(下分結)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다.”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 한 우바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서 한 우바이(優婆夷)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습니까?”
“선남자야,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00에 이르기 까지 한량없는 우바이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5
하분결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다.”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가 온갖 번뇌를 다하거나, 한 우바새, 한 우바이가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을 끊은 이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우바새로 5욕락을 받으면서 마음에 의심이 없는 이가 있습니까?”
“선남자야, 이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00에 이르기 까지 한량없는 우바새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수다원을 얻었으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을 얻었으며, 우바새와 같이 우바이도 그러하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유를 말하려고 합니다.”
“좋은 말이다. 말하려거든 말하여 보아라.”
“세존이시여, 마치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 용왕들이 큰비를 내리듯이 여래의 법비[法雨]도 그와 같아서 우바새ㆍ우바이에게 평등하게 내립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들이 와서 출가 하고자 한다면 여래께서는 몇 달 동안이나 시험하십니까?”
“선남자야, 모두 넉 달씩 시험하지만 한결같지는 않다.
“세존이시여, 만일 한결같지 않다면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독자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대중 가운데서 갈마를 하였더니, 독자는 출가 후 보름이 찬 뒤에 수다원과를 얻었다. 수다원과를 얻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혜를 배워서 얻을 것은 내가 이미 얻었으니 이제는 부처님을 뵈올 만하다.’
곧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예경을 마치고 나서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배워서 얻을 모든 지혜를 제가 이미 얻었습니다. 바라건대 저를 위하여
다시 분별하여 말씀하셔서 저로 하여금 무학의 지혜를 얻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아야 한다. 첫째는 사마타(奢摩他)이며, 둘째는 비바사나(毘婆舍那)이다.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수다원과를 얻으려면 이 두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나 아라한과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4선정ㆍ4무량심ㆍ6신통ㆍ8배사(背捨)ㆍ8승처(勝處)ㆍ무쟁지(無諍智)ㆍ정지(頂智)ㆍ필경지(畢竟智)ㆍ4무애지(無礙智)ㆍ금강삼매ㆍ진지(盡智)ㆍ무생지(無生智)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10주지(住地)ㆍ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상법인(無相法忍)ㆍ불가사의법인(不可思議法忍)ㆍ성행(聖行)ㆍ범행(梵行)ㆍ천행(天行)ㆍ보살행ㆍ허공삼매ㆍ지인삼매(智印三昧)ㆍ공(空)삼매ㆍ무상(無相)삼매ㆍ무작(無作)삼매ㆍ지(地)삼매ㆍ불퇴(不退)삼매ㆍ수릉(首楞)삼매ㆍ금강삼매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ㆍ불행(佛行)을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한다.”
독자는 듣고 나서 예배하고 나와서 사라숲 속에서 이 두 법을 닦더니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때 또 한량없는 비구들이 부처님 계신 데 가려고 하는 것을 독자가 보고 물었다.
“큰스님들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 계신 데 가려고 합니다.”
“큰스님들, 부처님께 가시거든 원컨대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하여 반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독자
비구가 저희들에게 부탁하기를 ‘세존이시여,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하여 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독자 범지는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함께 가서 그 몸에 공양하여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그 시신이 있는 데로 가서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납의(納衣) 범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의 말과 같이 ‘한량없는 세상에서 선과 불선을 지었으므로 오는 세상에서 선한 몸과 불선한 몸을 얻는다’라고 하였으나,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담이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이 몸을 얻는다’라고 하였으니, 번뇌로 인하여 몸을 얻는다면 몸이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다면 누가 지었으며, 어디 머물러 있었던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면 어떻게 번뇌로 인하여 얻는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번뇌가 먼저 있었다고 하는 것도 옳지 못하고, 몸이 먼저 있었다고 하는 것도 옳지 못하고, 한꺼번에 있었다고 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먼저 있었다, 나중에 있었다, 한꺼번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모두 옳지 못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는 것이고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또 구담이여, 굳은 것은 땅의 성품이며, 젖는 것은 물의 성품이며, 더운 것은 불의 성품이며, 동함은 바람의 성품이며, 걸림이 없는 것은 허공의 성품이다. 이 5대의 성품은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만일 세간에서 한 가지 법의 성품이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만일 한 가지 법이라도 인연으로 있는 것이라면 무슨 까닭에 5대의 성품은 인연을 따르지 않는가?
구담이여, 중생들이 선한 몸으로나 불선한 몸으로나 해탈을 얻는 것은 모두 자기의 성품이며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들이 제 성품으로 있는 것이며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구담이여, 세간의 법들은 일정하게 쓰는 곳이 있으니, 마치 목수가 말하기를 ‘이 나무로는 수레를 만들고, 이 나무로는 창호나 책상을 만들 것이다’라고 하며, 금사(金師)가 만드는 것도 이마에 두르는 것은 화만[鬘]이라 하고 목에 늘어뜨리는 것은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은 팔찌라 하고, 손가락에 끼는 것은 가락지라 하듯이, 쓰는 곳이 일정하기 때문에 결정된 성품이라고 합니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도의 성품이 있으므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연을 따른다고 하겠습니까?”
또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성품이 제각기 다르므로 온갖 가지 제 성품이라고 합니다. 구담이여, 거북은 육지에 나서도 스스로 물에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젖을 먹을 수 있고,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보고 스스로 삼키며, 독사는 태어나서 자연히 흙을 먹는데 이런 것은 아무도 가르치는 이가 없는 것이며, 가시는 나면서 끝이 뾰족하고, 나는 새는 털빛이 제각기 다르니,
세간의 중생들도 그러하여 영리한 이도 있고 둔한 이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고, 잘난 이도 있고 못난 이도 있으며,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해탈을 얻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온갖 법 중에는 제각기 제 성품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구담이여 구담이 말씀하기를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인연으로 생기고 이 3독(毒)은 5진(塵)을 인연한다’라고 하였는데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들이 잘 때에는 5진을 멀리 여의었지만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태속에 있을 때도 그러하며, 태에서 처음 나와서는 5진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신선이나 성현들이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5진이 없지만 그래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어떤 이는 5진으로 인하여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제 성품이 있는 까닭입니다.
또 구담이여, 제가 보건대 세상 사람들이 5근을 구족하지 못하고도 재물이 많고 자재한 이가 있으며, 5근을 구족하고도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재하지 못하고 남의 하인이 되는 이가 있으니, 만일 인연이 있다면 무슨 까닭으로 이러합니까?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며, 인연을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또 구담이여,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을 분별할 줄 모르면서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웃을 때에는 기쁜 줄 알고, 울 때에는 걱정하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모두 제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습니다.
또 구담이여, 세상 법이 두 가지이니, 첫째는 있는 것이고, 둘째는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허공이며, 없는 것은 토끼의 뿔이니 이 두 가지 법에서 첫째는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고, 둘째는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5대의 성품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러하다’라고 하였는데,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그대의 법에서 5대가 항상한 것이라면 무슨 인연으로 온갖 법이 모두 항상하지 않으며 만일 세상 물건이 무상하다면 5대의 성품은 무슨 인연으로 무상하지 않은가?
만일 5대가 항상하다면 세상 물건도 항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5대의 성품은 제 성품이 있으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고 온갖 법으로 하여금 5대와 같게 하리라’라고 한 것은 옳지 않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쓰는 곳이 일정하므로 제 성품이 있다’라고 한 것도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모두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기 때문이다. 만일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면 역시 인연으로부터 뜻을 얻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을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고 하는가? 마치 이마 위에 있는 것을 화만이라 하고 목에 있는 것을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을 팔찌라 하고 수레에 있는 것을 바퀴라 하고 초목에 불이 있는 것을 초목의 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나무가 처음 날 때에는 화살이나 창대[槊]의 성품이 없었지만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살을 만들고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창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거북은 육지에서 났으나 성품이 물로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먹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의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물에 들어가는 것이 인연이 아니라면 함께 인연이 아닌데 어찌하여 불에는 들어가지 않는가? 송아지가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빨 수 있는 것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함께 인연이 아닌데 어찌하여 뿔은 빨지 않는가?
선남자야, 만일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으므로 가르칠 필요도 없고 증장할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은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보건대 가르침이 있으며 가르침으로 인하여 증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바라문들이 마땅히 청정한 몸을 위하여 양을 잡아서 제사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일 몸을 위하여 제사한다면 그 때문에 제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세간의 말하는 법[語法]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하고자 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는 때이며, 셋째는 끝마친 때이다.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무슨 까닭에 세상에
세 가지 말이 있겠는가? 세 가지 말이 있으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법이 각각 일정한 성품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사탕수수라는 한 물건이 무슨 까닭으로 즙이 되고 꿀이 되고 얼음사탕[石蜜]이 되고 술이 되고 초[苦酒]가 되는가? 만일 한 가지 성품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여러 가지 맛이 되는가? 만일 한 물건 가운데서 이런 것들이 난다면 모든 법은 일정하게 각각 한 성품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온갖 법이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성인이 무슨 까닭에 사탕수수 즙이나 얼음사탕이나 흑설탕은 먹고 술이었을 때에는 먹지 않다가 초가 된 뒤에는 다시 먹는가? 그러므로 일정한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비유를 말하겠는가? 만일 비유할 것이 있다면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며,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비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간에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비유를 말하는 터인즉,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으며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몸이 먼저 있는가, 번뇌가 먼저 있는가?’라고 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고 말하였다면 그대가 그렇게 문난(問難)할 수 있지만, 그대도 나와 같아서 몸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닌데 무슨 인연으로 그런 문난을 짓는가?
선남자야, 모든 중생의 몸과 번뇌가 다 먼저 있던 것도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에 있는 것이며 일시에 있더라도 반드시 번뇌로 인하여 몸이 있는 것이며, 마침내 몸으로 인하여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생각하기를 ‘마치 사람의 두 눈이 일시에 있던 것이며 서로 인한 것이 아니니, 왼쪽 눈이 오른쪽 눈을 기다리지 않았고, 오른쪽 눈이 왼쪽 눈을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번뇌와 몸도 그와 같다’라고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심지와 광명이 비록 일시이지만 광명이 심지로 인하여 있고 광명으로 인하여 심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먼저 있지 않았으므로 인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몸보다 먼저로서 인연이 없으므로 없다고 한다면 그대도 온갖 법이 다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하였으므로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병(甁) 등이 인연으로 생긴 것을 보는데, 어찌하여 병과 같이 몸보다 먼저의 인연도 그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선남자야, 보거나 보지 않거나 온갖 법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며 제 성품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온갖 법이 다 제 성품이 있고 인연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왜 인연으로 5대를 말하는가? 이 5대의 성품이 곧 인연이다.
선남자야, 5대의 인연이 비록 이러하지만 역시 모든 법이 다 5대의 인연과 같다고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출가한 이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지는데 전다라들도 그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그대는 5대가 결정코 굳은 성품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성품이 변하는 것이어서 일정하지 않다고 본다. 선남자야, 소랍(酥蠟)과 호교(胡膠)를 그대의 법에서는 지대라고 하지만 이 지대[地]란 것이 일정치 않아서 혹은 물과도 같고 혹은 땅과도 같으므로 제 성품이 굳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선남자야, 백랍(白鑞)ㆍ납ㆍ주석ㆍ동ㆍ철ㆍ금ㆍ은을 그대의 법에서는 화대[火]라고 말하지만 이 화대가 네 가지 성품이 있으니, 흐를 때에는 물의 성품이며 동할 때에는 바람의 성품이며 더울 때에는 불의 성품이며 굳을 때에는 땅의 성품인데 어떻게 결정코 화대의 성품이라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물의 성품은 흐르는 것이라고 하는데 물이 얼었을 때에도 땅이라고 하지 않고 물이라고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파도가 동할 때를 바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만일 동하는 것을 바람이라 하지 않는다면, 얼었을 때도 물이라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 두 가지 뜻이 인연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까닭에 온갖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야, 만일 5근의 성품이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감촉하는 것이므로 모두 제 성품이며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제 성품이라는 성품은 변동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눈의 성품이 보는 것이라면 항상 보아야 할 것이며, 보는 때도 있고 보지 못할 때도 있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연을 따라서 보는 것이며,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5진의 인연으로 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쁜 각관(覺觀)이기 때문에 탐욕을 내고 선한 각관이기 때문에 해탈을 낸다. 선남자야, 안의 인연으로 탐욕과 해탈을 내고 바깥 인연으로 증장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각각 제 성품이 있는 것이며,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모든 근을 구족하고도 재물이 없어 자재하지 못하기도 하고, 모든 근을 구족하지 못하였는데도 재물이 많고 자재하기도 한다’고 하며, 이런 것으로써 제 성품이 있는 것이며,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중생들은 업을 따라서 과보를 받는데 이 과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현재에 받는 과보이며, 둘째는 다음 생에 받는 과보이며, 셋째는 후생에 받는 과보이다.
빈궁하거나 부자거나 근을 구족하였거나 구족하지 못한 것은 업이 각각 다른 까닭이다.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근을 구족한 이가 마땅히 재물이 부유하고 재물이 부유한 이는 마땅히 근을 구족할 것이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므로 결정코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며, 모두 인연을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그대는 말하기를 ‘세상의 어린아이들은 아직 5진의 인연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의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제 성품이라면 웃는 이는 항상 웃고 우는 이는 항상 울어야 할 것이며, 한 번 웃고 한 번 울지 않을 것이다. 만일 한 번 웃다가 한 번 운다면 이것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어서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범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이 인연으로 있다면 이 몸은 무슨 인연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몸의 인연은 번뇌와 업이다.”
“세존이시여, 이 몸이 번뇌와 업을 따른 것이라면 이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셔서 제가 듣고 이 자리에서 모두 끊게 해주십시오.”
“선남자야, 만일 두 끝과 중간이 장애되지 않는 것을 알면 이 사람은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고 바른 법의 눈을 얻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알았느냐?”
“세존이시여, 두 끝은 색과 색의 해탈이고 중간은 8정도(正道)이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러합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야, 두 끝을 잘 알아서 번뇌와 업을 끊었구나.”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제가 출가하여 계를 받을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잘 왔구나, 비구여” 하시니, 즉시에 3계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때 다시 홍광(弘廣)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아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열반은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며 곧은 것은 성인의 도이다.”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선남자야, 그대가 항상 생각하기를 ‘걸식은 항상하고 별청(別請)1)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자물쇠[戶鑰]이며, 곧은 것은 제석의 깃발이다’라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열반이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이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8정도니라’ 하였나니, 그대가 먼저 생각하던 것은 법에 맞지 않는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진실로 제 마음을 아십니다. 이 8정도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멸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께서는 이미 저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무슨 까닭으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그때 교진여가 말하였다.
“대바라문이여, 만일 세상의 가가 있고 가가 없음을 물으면, 여래께서는 항상 잠자코 계시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8정도는 곧은 것이며, 열반은 항상한 것이니 8정도를 닦으면 곧 멸진(滅盡)함을 얻지만, 닦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바라문이여, 비유하자면 큰 성이 있는데, 4면 성벽에는 모두 구멍이 없고 오직 하나의 문이 있으며, 그 문지기가 총명하고 지혜 있게 잘 분별하여서 출입할 이는 출입하게 하고 거절할 이는 거절하였습니다.
출입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모든 출입하는 이는 반드시 이 문으로만 드나드는 것처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습니다. 성은 열반에 비유한 것이고 문은 8정도에 비유한 것이며, 문지기는 여래에게 비유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여래께서 지금 그대에게 멸진하고 멸진하지 않음을 대답하지 않으셨으나 멸진하는 이는 모름지기 8정도를 닦아야 합니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대덕 교진여시여, 여래께서는 미묘한
법을 잘 말씀하셨으며, 저는 지금 성(城)을 알고 도(道)를 알며 스스로 문지기가 되려고 합니다.”
교진여가 말하였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대 바라문은 능히 위없고 넓고 큰마음을 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교진여야. 이 바라문은 오늘에만 이런 마음을 낸 것이 아니다.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겁에 부처님 세존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광명(普光明)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시다. 이 사람이 그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이 현겁에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며 오래전부터 법의 행상을 통달하여 분명하게 알았지만 중생을 위해서 현재 외도에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척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진여야, 그대는 ‘훌륭한 일이오. 그대가 능히 이러한 큰마음을 내었습니다’라고 칭찬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시면서도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아난 비구는 지금 어디 있느냐?”
교진여가 여쭈었다.
“아난 비구는 사라숲 밖에 있는데, 이 대회에서 12유순이 되며 6만 4천억 마군에게 어지럽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마군들은 모두 여래의 형상처럼 몸을 변화하여, 혹은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온갖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며,
혹은 온갖 인연이 다 항상한 법이며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고, 혹은 5음이 진실한 것이라 하고 혹은 허망한 것이라 하며, 6입과 18계도 그러하다 하고, 혹은 12인연이 있다 하고,
혹은 네 가지 인연이라 하고, 혹은 모든 법이 환술 같고 변화한 것 같고 아지랑이 같다 하고, 혹은 들음[聞]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생각함[思]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닦음[修]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부정관(不淨觀)하는 법을 말하고, 혹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법을 말하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관하는 뜻과 일곱 가지 방편을 말하고, 혹은 난법(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제일법(世第一法)ㆍ학지(學地)ㆍ무학지(無學地)와 보살의 초주(初住)로부터 10주까지를 말하고,
혹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을 말하고, 혹은 수다라(修多羅)ㆍ기야(祇夜)ㆍ비가라나(毗伽羅那)ㆍ가타(伽陀)ㆍ우타나(憂陀那)ㆍ니타나(尼陀那)ㆍ아파타나(阿波陀那)ㆍ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ㆍ사타나(闍陀伽)ㆍ비불략(毗佛略)ㆍ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ㆍ우바제사(優波提舍)를 말하고, 혹은 4념처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ㆍ5력ㆍ7각분(覺分)ㆍ8성도를 말하고,
혹은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무시공(無始空)ㆍ성공(性空)ㆍ원리공(遠離空)ㆍ산공(散空)ㆍ자상공(自相空)ㆍ무상공(無相空)ㆍ음공(陰空)ㆍ입공(入空)ㆍ계공(界空)ㆍ선공(善空)ㆍ불선공(不善空)ㆍ무기공(無記空)ㆍ보리공(菩提空)ㆍ도공(道空)ㆍ열반공(涅槃空)ㆍ행공(行空)ㆍ득공(得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대공(大空)을 말하고,
혹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몸에서 물과 불을 내되, 몸 위로는 물을 내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몸 아래로는 물을 내고 몸 위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왼쪽 옆구리가 아래 있고 오른쪽 옆구리에서 물을 내며, 오른쪽 옆구리가 아래 있고 왼쪽 옆구리에서 물을 내기도 하며, 한 옆구리로는 천둥을 내고 한 옆구리로는 비를 내리며,
혹은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고, 혹은 보살이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걷는 때와, 깊은 궁궐에서 5
욕락을 받는 때와, 처음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때와, 보리수 아래 나아가 삼매에 들던 때와 마(魔)의 군중을 항복받고 법수레를 굴릴 때와, 대신통을 보여 열반에 들 때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세존이시여, 아난 비구는 이런 일들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통 변화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인데 누가 짓는 것인가? 석가세존께서 지으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며, 일어나려 하여도 말을 하려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난 비구는 마군의 그물에 들었기 때문에 ‘여러 부처님의 말씀이 각각 같지 않으시니 나는 이제 누구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아난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아무리 여래를 생각해도 구원할 이가 없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중 가운데 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중 속에 있는 모든 보살들은 이미 한 생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나아가 한량없는 생에서 보리의 마음을 내어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며, 마음이 견고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까지를 구족하게 수행하여 공덕을 성취하였으며, 오래전부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았으며, 물러나지 않는 보리의 마음을 얻었으며, 불퇴인(不退忍)과 불퇴전지(不退轉持)를 얻었으며, 여법인(如法忍)과 수릉엄(首楞嚴) 등의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습니다.
이런 무리들은 대승 경전을 듣고도 의심을 내지 않을 것이며, 3보가 한 가지 성품과 모양이어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음을 잘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며, 부사의한 것을 듣고도 놀라지 않을 것이며, 가지가지 공(空)함을 듣고도 마음으로 무서워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성품을 분명하게 통달하고 모든 12부경을 능히 지니고 뜻을 자세히 해설하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12부경이라도 능히 받아 지닐 것인데 이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야 무엇이 근심되겠습니까? 무슨 인연으로 교진여에게 아난이 있는 데를 물으십니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선남자야, 나는 성불한 지 20년쯤 지나서 왕사성에 있었다.
그때 내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 대중 가운데서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여래의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좌우에서 필요한 일을 공급하여 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좋은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그때 교진여가 대중 속에 있다가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능히 12부경을 받아 지니며 좌우에서 시봉하면서 저에게 이익될 일을 잃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교진여야,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느냐?’
그때 사리불이 또 말하였다.
‘제가 능히 부처님의 온갖 말씀을 받아 지니며, 필요하신 대로 시중들고 저에게 이익된 일을 하는 것도 잃지 않겠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느냐?’
이리하여 나아가 500아라한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모두 받지 않았다.
그때 목련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이제 500비구들이 시중하려는 것을 받지 않으시니, 부처님 뜻에 누구를 시중을 들게 하시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문득 선정에 들어서 여래를 관하니, 마음이 아난에게 있는 것이 마치 해가 처음으로 뜰 때에 빛이 서쪽 벽에 비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선정에서 일어나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제가 여래를 뵈니 아난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시중들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때 교진여는 500아라한과 함께 아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이 이제 여래의 시중을 들어야 하겠으니, 이 일을 승낙하라.’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큰스님들이시여, 저는 참으로 여래의 시중을 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존귀하고 소중하시기가 사자왕과 같고 용과 불과 같은데, 저는 더럽고 미약하니 어떻게 책임을 감당하겠습니까?’
비구들은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은 우리의 말을 듣고 여래를 모시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오.’
두 번 세 번 이렇게 말하였으나 아난은 말하였다.
‘여러 큰스님들이여, 저는 큰 이익을 구하는 것도 아니며, 진실로 좌우에서 시중드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때 목련은 또 아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그대는 아직 모르는구나.’
‘큰스님, 바라건대 말씀하십시오.’
‘여래께서 저번에 대중 가운데서 시중 들 사람을 구하시기에 500아라한이 모두 시중을 들려고 하였으나 여래께서 허락하지 않았소. 내가 정에 들어서 여래의 뜻을 살펴보니 그대로 하여금 시자를 삼으려 하시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받들지 않는가?’
아난은 이 말을 듣고 나서 합장하고 꿇어앉아 말했다.
‘여러 대덕들이시여, 일이 그러하여 여래 세존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승가의 명령을 받들어 좌우에서 모시겠습니다.’
목련이 말하였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인가?’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는 여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저에게 주셔도 제가 받지 않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둘째는 여래께서 단월(檀越)의 별청(別請)을 받게 될 때에 제가 따라가지 않을 것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셋째는 저의 출입이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승가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교진여 등 500비구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아난 비구에게 권하였더니,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서 부처님께서 들어주시면 대중의 명을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그때 아난을 이렇게 칭찬했다.
‘훌륭하구나.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여, 원망하고 싫어할 것을 예견하였구나.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의식을 위하여 여래의 시중을 드는 것이냐?’라고 하겠으므로 먼저 낡은 옷이라도 받지 않고 별청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교진여야,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였으니 들고 나는 시간이 한정되면 4부 대중을 이익 되게 하는 일을 널리 지을 수 없으므로, 출입하는 시간이 제한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다.
교진여야, 내가 아난을 위하여 그 세 가지 일을 허락하여 그 소원을 따르리라.’
그때 목련은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말대로 세 가지 일을 여쭈었더니, 여래께서 대자비로 모두 들어 주셨다.’
아난이 대답하였다.
‘큰스님이여,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으면 가서 모시겠습니다.’
문수사리여, 아난이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 만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것을 구족하였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 동안에 한 번도 나를 따라서 별청식(別請食)을 받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한 번도 나의 옷을 받지 않은 것이고, 셋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마침내 때 아닌 때에 나에게 온 적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번뇌를 구족하였으면서도 나를 따라서 임금과 찰리와 훌륭한 대갓집에 드나들면서 여러 여인과 천녀ㆍ용녀들을 보았지만 탐욕을 내지 않은 것이고, 다섯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내가 말한 12부경을 받아 지니되, 한번 들은 것은 다시 묻지 않고도 병에 든 물을 다른 병에 붓듯이 한 것이다. 다만 한 번 물은 적이 있었으니,
선남자야, 유리(琉璃) 태자가 석씨들을 모두 죽이고 가비라성을 파괴할 때에 아난이 걱정하여 울면서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여래와 제가 함께 이 성에서 태어났고 같은 석가 종족인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화평한 얼굴이 평상시와 같은데 저는
초조한 것입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난아, 나는 공정(空定)을 닦았으므로 너와는 같지 않은 것이다.’
3년이 지난 뒤에 다시 와서 나에게 물었다.
‘제가 지난번 가비라성에 있을 때에, 여래께서 공삼매를 닦으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일이 진실입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아난아, 그렇다. 네가 말한 바와 같다.’
여섯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으나 여래가 드는 선정을 항상 안 것이다. 일곱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소원대로 아는 지혜[願智]는 얻지 못하였으나 여러 중생들이 여래에게 와서는 현재에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기도 하고, 나중에 얻는 이도 있고, 사람의 몸을 얻을 이와 천인의 몸을 얻을 이들을 분명하게 안 것이다. 여덟째는 나를 시봉한 이후로 여래의 비밀한 말을 다 안 것이다.
선남자야, 아난 비구가 이렇게 여덟 가지 부사의한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들어 저장한 이[多聞藏]라고 칭찬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아난 비구는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여 12부경을 갖추어 지녔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신심이 견고한 것이고, 둘째는 마음이 질직(質直)한 것이고, 셋째는 몸에 병고가 없는 것이고, 넷째는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기억하는 마음을 구족한 것이고, 여섯째는 교만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일곱째는 선정과 지혜를 성취한 것이고, 여덟째는 들음을 따라 생기는 지혜를 구족한 것이다.
문수사리여,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아숙가(阿叔迦)인데, 역시 이런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고, 시기(尸棄)여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차마가라(差摩迦羅)이며, 비사부(毗舍浮)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우파선타(優波扇陀)이며, 가라구촌타(迦羅鳩村馱)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발제(跋提)이며, 가나함모니(迦那含牟尼)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소지(蘇坁)이며, 가섭(迦葉)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섭파밀다(葉婆蜜多)인데, 모두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다. 지금 나의 아난도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들어 저장한 이라고 칭찬한다.
선남자야, 그대의 말과 같이 이 대중 가운데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있으나 이 보살들은 다 중대한 책임이 있으니 이른바 대자대비이다. 이 대자대비한 인연으로 각각 일이 바쁘고 권속을 조복하고 몸을 장엄하여야 한다. 이런 인연으로 내가 열반한 뒤에 12부경을 선전하고 유통할 수 없으며, 어떤 보살이 혹시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는 나의 동생이고, 나를 시중한 지 20여 년에 들을 만한 법은 모두 구족하게 지닌 것이 마치 물을 부어 한 그릇에 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내가 지금 아난이 어디 있는가를 물은 것은 이 『열반경』을 받아 지니게 하려는 것이다.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후에 아난 비구가 듣지 못한 것은 홍광(弘廣)보살이 유포할 것이며, 아난이 들은 것은 스스로 유통하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가 지금 다른 곳에 있는데, 이 회상에서 12유순이 된다고 하며 6만 4천억 마군에게 시달린다고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
‘모든 마군들은 자세히 들으라. 여래께서 지금 대다라니(大陀羅尼)를 말씀하실 것이다. 모든 천인ㆍ용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사람ㆍ사람 아닌 이[非人]와 산신ㆍ목신ㆍ수신ㆍ해신ㆍ가택신들이 이 지명(持名)을 듣고 나서 공경하여 받아 지니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 다라니는 10항하사
부처님 세존들이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어서 여인의 몸을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스스로 숙명(宿命)을 알게 한다.
만일 다섯 가지 일을 받되, 첫째 범행, 둘째 어육을 끊는 것, 셋째 술을 끊는 것, 넷째 5신채(辛菜)를 끊는 것, 다섯째 고요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인데, 이 다섯 가지를 받고 지성으로 이 다라니를 믿으며 읽고 외우고 쓰면 이 사람은 즉시에 77억 더러운 몸을 초월하게 된다.’”
그때 세존께서 다라니를 말씀하셨다.

아마례 비마례 녜마례 몽가례혜 마라야갈비 사만나발디 사바라타사단니
阿摩隷 毗摩隷 涅磨隷 瞢伽隷醯 摩羅若竭鞞 三慢那跋提 娑婆羅他娑檀尼
바라마타사단니 마나사아보뎨 비라기 암라래디바람미 바람마사례 부라
婆羅磨他娑檀尼 磨那斯阿步提 毗羅祇 菴羅賴低婆嵐彌 婆嵐摩莎隷 富囉
니부라나마노래뎨
泥富囉那摩奴賴綈

문수사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다라니를 받고 아난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마군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마군의 권속들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다라니주를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으라.”
마왕들이 이 다라니를 듣고 나서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의 업을 버리고 아난을 놓았다.
문수사리가 아난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니, 아난은 부처님을 뵙고 지성으로 예경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이 사라숲 밖에 수발타라는 범지가 있는데, 그의 나이는 아주 오래 되어 120세이다. 비록 5통(通)을 얻었으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고 나서 일체지(一切智)라는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는 생각을 일으켰다.
네가 거기 가서 수발타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과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드실 것이다. 만일 하려는 일이 있다면 이때에 해서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아난아, 너의 말이면 그가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지나간 옛적 500세 동안에 수발타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 사랑하는 애정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인연으로 너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때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수발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어진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시는 것이 우담바라꽃과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드실 것이니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때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마십시오.”
수발타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아난이여. 제가 지금 여래께서 계신 곳에 가겠습니다.”
아난은 수발타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이때 수발타는 문안을 여쭙고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지금 묻고자 하니, 제 뜻을 따라 대답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발타여,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그대의 마음대로 물으라. 나는 방편으로 그대의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은 모두 지난날에 지은 업의 인연이니, 만일 계행을 지니고 정진하여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받으면 본래의 업이 없어지고, 본래의 업이 다하면 모든 고통이 멸하고, 고통이 멸하면 곧 열반을 얻는다’라고 하니, 이 이치가 어떻습니까?”
“선남자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에게 갈 것이며, 가서 물을 것이다.
‘당신이 참으로 이런 말을 하였는가?’
그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구담이여, 내가 보니
중생들이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재물이 넉넉하고 몸이 자재한 이가 있으며, 또는 선한 일을 닦으면서도 빈궁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갖은 애를 써서 재물을 구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얻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않아도 도리어 단명한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살생을 좋아하여도 장수하는 이가 있다. 또 어떤 이는 범행을 깨끗이 닦고 정진하며 계행을 지니면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중생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지난날의 본래 업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수발타여, 나는 다시 묻을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과거의 업을 보았는가? 만일 과거의 업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가? 현재의 고행으로 얼마나 깨뜨릴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하고 다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한다면 온갖 것이 다하느냐?’
저 사람이 ‘나는 진실로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비유를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았을 때에 집안 권속들이 의사를 청하여 살을 뽑게 하였고, 살을 뽑은 후에 몸이 편안해졌다면 10년 후에도 이 사람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오. 이 의사가 나의 독한 살을 뽑고 약을 붙여 주었으므로 나의 살 맞은 자리가 나아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은 과거의 본래 업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의 고행으로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아는가?’
그가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당신도 지금 과거의 본래 업이 있다고 하면서 무슨 까닭으로 나의 과거 업을 책망하는가? 구담의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호화롭게 자재함을 보거든,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하였으니, 이런 것이 과거의 업이 아닌가?’라고 한다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대여, 그렇게 아는 것은 비겨서 아는 것[比知]이며,
참으로 아는 것[眞知]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의 불법에는 혹은 인으로 말미암아 과를 알기도 하고 혹은 과를 따라서 인을 알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불법 중에는 과거의 업도 있고 현재의 업도 있지만 그대는 그렇지 않아서 오직 과거의 업뿐이며 현재의 업은 없다. 그대들의 법에는 방편을 따라서 업을 끊지 않지만 나의 법은 그렇지 않으며 방편으로 끊는다. 그대는 업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다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번뇌가 다하여야 업과 고가 다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그대의 과거의 업을 책망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나는 실로 알지 못하지만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며, 스승이 이런 말을 한 것이므로 나는 허물이 없다’라고 한다면,
나는 ‘그대의 스승이 누구냐?’ 하겠고,
그가 대답하기를 ‘부란나입니다’라고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은 과거의 업을 아느냐고 낱낱이 묻지 않았느냐? 그대의 스승이 만일 나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의 말을 믿으며, 만일 내가 안다고 하거든, 다시 묻기를 〈하품 고[下苦]의 인연으로 중품과 상품의 고도 받습니까? 중품 고의 인연으로 하품과 상품의 고도 받습니까? 상품 고의 인연으로 중품과 하품의 고도 받습니까?〉라고 하지 않았느냐? 만일 아니라고 하거든,
다시 묻기를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는 오직 과거의 업뿐이며, 현재가 아니라고 합니까?〉라고 할 것이며, 또 묻기를 〈이 현재의 괴로움이 과거에 있었습니까? 만일 과거에 있었다면 과거의 업은 다 없어졌을 것이며,
만일 다 없어졌다면 어찌하여 또 오늘의 몸을 받습니까? 만일 과거에는 없었고 현재에만 있다면 어찌하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과거의 업이라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할 것이다.
그대여, 만일 현재의 고행이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안다면 현재의 고행은 또 무엇으로 깨뜨리겠는가? 만일 깨뜨리지 못한다면 괴로움이 항상할 것이며, 괴로움이 만일 항상하다면 어떻게 괴로움에서 해탈함을 얻는다고 하겠는가? 만일 다른
행이 고행을 깨뜨릴 수 있다면 과거에 이미 다하였을 것인데 어찌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그대여, 이런 고행은 즐거운 업으로 하여금 괴로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또 괴로운 업으로 하여금 즐거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업으로 하여금 받지 않는 과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업보로 하여금 다음 생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다음 생의 업보로 하여금 현재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업보로 하여금 없는 보[無報]를 짓게 할 수 있는가? 결정된 보로 없는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없는 보로 결정된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라고 할 것이다.’
그가 만일 ‘구담이여, 그럴 수가 없다’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여, 만일 그러할 수 없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 고행을 받는가? 그대는 결정코 과거의 업과 현재의 인연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업을 내고, 업으로 인하여 보를 받는다〉고 했다. 그대여,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현재의 인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중생이 비록 과거에 장수할 업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현재에 음식의 인연을 힘입어야 한다.
그대가 만일 말하기를, 〈중생이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음이 결정코 과거의 본래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는다〉라고 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대여,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을 위하여 원수를 없애고, 그 인연으로 재물을 많이 받았다면 이 재물로 인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현재에 즐거운 인을 짓고 현재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왕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그 인연으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이 사람은 현재에 괴로운 인을 짓고 현재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대여,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 4대(大)와 시절과 토지와 인민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으로 인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만일 업을 끊는 인연의 힘으로 해탈을 얻는다면, 모든 성인이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의 과거의 본래 업은 처음과 나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성인이 도를 닦을 때에 이 도가 능히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업을 막는다고 말했다. 만일 고행을 받는 것으로 도를 얻는다고 하면 온갖 축생들이 모두 도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며 몸을 조복할 것이 아니다. 이런 인연으로 나는 경전에서 숲을 찍을 것이언정 나무를 찍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숲으로부터 공포가 생길지언정 나무로부터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몸을 조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조복하여야 하니, 마음은 숲에 비유한 것이고 몸은 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마음을 조복하였습니다.”
“선남자야, 그대는 어떻게 마음을 먼저 조복하였는가?”
수발타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먼저 생각하기를, 욕계는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하지 않고 색계는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하다고 관찰하였습니다. 이렇게 관찰을 하여 마치니 욕계의 결박이 끊어졌고 색처(色處)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또 색계를 관찰하니, 색계는 무상하여 등창과 같고 창질과 같고 독약과 같고 화살과 같으며, 색이 항상하지 않음을 보고 청정하고 적정하다.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색계의 결박을 단절하고 무색처(無色處)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또 생각[想]을 관찰하니, 곧 무상하고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았으며,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비상비비상처를 획득하였습니다. 이 비상비비상처는 곧 일체지이며 고요하며 청정하여 타락함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어찌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다고 하겠느냐? 그대가 얻은 비상비비상정도 오히려 생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열반이라야 생각이 없는 것인데, 그대가 어떻게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겠느냐? 선남자야, 그대가 먼저는
능히 거친 생각을 꾸짖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미세한 생각에 애착하느냐? 이 비상비비상처를 꾸짖을 줄을 알지 못하므로 생각을 이름하여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그대의 스승인 울두람불은 영리하고 총명하지만 그래도 이 비상비비상처를 끊지 못하고 나쁜 몸을 받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느냐?”
“세존이시여, 어찌하면 모든 유를 능히 끊겠습니까?”
“선남자야, 만일 실상(實相)을 관찰하면 이 사람이 능히 모든 유를 끊게 된다.”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실상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之相]을 실상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양이 없는 모양이라고 합니까?”
“선남자야, 온갖 법이 제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저와 남의 모양도 없고 인이 없는 모양도 없으며, 짓는 모양도 없고 받는 모양도 없고, 짓는 이의 모양도 없고 받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법의 모양도 없고 법 아닌 모양도 없으며, 남녀 모양도 없고 장정 모양도 없으며, 티끌 모양도 없고 시절 모양도 없으며, 자기를 위하는 모양도 없고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고, 자기와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으며, 있는 모양도 없고 없는 모양도 없으며, 나는 모양도 없고 내는 이 모양도 없으며,
인(因) 모양도 없고 인의 원인 모양도 없고, 과(果) 모양도 없고 과의 결과 모양도 없고, 낮과 밤의 모양도 없고 어둡고 밝은 모양도 없으며, 보는 모양도 없고 보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듣는 모양도 없고 듣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깨닫는 모양도 없고 깨닫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보리의 모양도 없고 보리를 얻은 이의 모양도 없으며, 업의 모양도 없고 업의 주인 모양도 없으며, 번뇌의 모양도 없고 번뇌 주인의 모양도 없으니, 선남자야, 이런 모양들이 멸한 곳을 진실한 모양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니,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고 한다.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 필경지(畢竟智)라 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이 실상ㆍ법계ㆍ필경지ㆍ제일의제ㆍ제일의공을 하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성문보리(聲聞菩提)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연각보리(緣覺菩提)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는다.”
이 법을 연설할 때, 10천 보살이 1생에 실상을 얻었고, 1만 5천 보살이 2생에 법계를 얻었고, 2만 5천 보살이 필경지를 얻었고, 3만 5천 보살이 제일의제를 깨달았으니, 이 제일의제를 제일의공이라고도 하고 수릉엄삼매라고도 한다.
4만 5천 보살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이 허공삼매를 광대(廣大)삼매라고도 하고 지인(智印)삼매라고도 한다. 5만 5천 보살이 불퇴인(不退忍)을 얻었으니 이 불퇴인을 여법인(如法忍)이라고도 하고 여법계(如法界)라고도 한다.
6만 5천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으니, 이 다라니를 대염심(大念心)이라고도 하고 걸림 없는 지혜라고도 한다. 7만 5천 보살이 사자후(師子吼)삼매를 얻었으니, 이 사자후삼매를 금강삼매라고도 하고 오지인(五智印)삼매라고도 한다. 8만 5천 보살이 평등삼매를 얻었으니, 이 평등삼매를 대자대비라고도 한다.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연각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내었고 세간의 여자와 천상의 여자 2만억 사람들이 현재에서 여인의 몸을 변하여 남자의 몸을 얻었고 수발타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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