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7권
대반열반경 제37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12. 가섭보살품 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에 ‘중생의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하시니, 어찌하여 허공과 같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허공의 성품은 과거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니, 불성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허공은 과거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법이 만일 현재한다면 과거를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현재가 없기 때문에 과거가 없다. 또한 현재도 없으니 왜냐하면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법이 만일 미래라면 현재를 말할 수 있겠지만, 미래가 없기 때문에 현재가 없다. 또한 미래도 없으니 왜냐하면 현재와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와 과거가 있다면 미래가 있을 것이지만 현재와 과거가 없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 이런 이치로 허공의 성품이 3세에 포섭되지 않는다.
선남자야, 허공이 없기 때문에 3세가 없는 것이며, 있음으로써 3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마치 허공화(虛空花)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3세가 없는 것처럼 허공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므로 3세가 없다. 선남자야, 물건이 없는 것이 곧 허공이니, 불성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허공은 없으므로 3세에 포섭되지 않았고, 불성은 항상하므로 3세에 포섭되지 않았다.
선남자야,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있는바 불성과 모든 부처님의 법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않는다. 이런 뜻으로 3세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
선남자야, 허공은 없기 때문에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불성은 항상하기 때문에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다. 그러므로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한다. 선남자야, 마치 세간에서 거리낄 것이 없는 데를 허공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나서 온갖 부처님 법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하며 이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ㆍ불성ㆍ열반은 3세에 포섭되지 않지만 있다고 이름합니다. 그런데 허공도 3세에 포섭되지 않았는데, 무슨 까닭에 있다고 이름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열반 아닌 것을 위하여 열반이라 이름하고, 여래 아닌 것을 위하여 여래라 이름하고, 불성 아닌 것을 위하여 불성이라고 이름한다. 어떤 것을 열반이 아니라고 하는가? 모든 번뇌의 함이 있는 법이니, 이러한 함이 있는 번뇌를 깨뜨리기 위하여 열반이라 이름한다.
여래가 아니라고 함은 일천제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이니, 이런 일천제로부터 벽지불까지를 깨뜨리기 위하여 여래라고 이름한다. 불성이 아니라고 함은 온갖 장벽과 질그릇과 돌 등의 무정물(無情物)이니, 이러한 무정물을 깨뜨리기 위하여 불성이라고 이름한다. 선남자야, 모든 세간에는 허공 아닌 것으로 허공을 상대할 것이 없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는 4대가 아닌 것으로 상대할 것이 없지만 4대가 있는 것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허공과 상대할 것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에 있는 것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열반이 3세에 포섭되지 않는 것처럼 허공도 그렇다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열반은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증득할 수 있으며 색이며 발자국이며 구절[章句]이며, 유(有)이며 모양이며 반연이며 귀의할 곳이며 고요[寂靜]하며 밝게 빛나며 편안하며 저 언덕이다. 그러므로 3세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허공의 성품은 이런 법이 없다. 그러므로 없다고 한다. 만일 이러한 법들을 여의고 다시 있는 법이라면 마땅히 3세에 포섭될 것이며, 허공이 만일 있는 법과 같다면 3세에 포섭되지 않을 수가 없다.
선남자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허공은 빛도 없고 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하는데, 만일 빛이 없고 대할 수가 없고 볼 수가 없으면 이것은 심수법(心數法)이다. 허공이 만일 심수법과 같다면 3세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할 수가 없으며, 만일 3세에 포섭된다면 곧 4음(陰)1)이다. 그러므로 4음을 떠나고는 허공이 없는 것이다.
또 선남자야, 외도들이 말하기를 ‘허공은 곧 광명이다’라고 하는데 만일 광명이라면 그것은 색법(色法)이다. 허공도 그와 같이 색법이라면 곧 무상이며, 무상하기 때문에 3세에 포섭될 것인데 어째서 외도들은 3세가 아니라고 하는가? 만일 3세에 포섭된다면 허공이 아닐 것이며 또한 허공이 항상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선남자야,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허공은 머물 곳이다’라고 하는데, 만일 머물 곳이 있다면 곧 색법일 것이다. 온갖 처소는 다 무상이어서 3세에 포섭되는 것인데 허공은 항상한 것이면서 3세에 포섭되지 않겠는가? 만일 처소라고 말한다면 허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허공은 곧 차례[次第]이다’라고 하는데, 만일 차례라면 이것은 셈하는 법이며, 만일 셀 수 있다면 3세에 포섭될 것이다. 3세에 포섭된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야, 또 말하기를 ‘허공은 세 법을 여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공함[空]과 실함[實]과
공하고 실함[空實]이다. 만일 공한 것이 맞는다면 허공은 무상한 법일 것이다. 왜냐하면 실한 곳에는 없기 때문이며 만일 실한 것이 맞는다면 역시 허공은 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공한 곳에는 없기 때문이며 만일 공하고 실한 것이 맞는다면 허공은 역시 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두 곳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공을 이름하여 없다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이는 허공이 만들 수 있는 것[可作法]이라 하여 말하기를 ‘나무를 치우고 집을 헐어서 허공을 만들며, 평탄하게 하여 허공을 만들고 허공의 빛을 그려 바닷물과 같이 할 수 있으므로 허공은 만들 수 있는 법이다’라고 한다면 온갖 만든 법은 모두 무상함이 질그릇과 같다. 허공도 만일 그러하다면 반드시 무상할 것이다.
선남자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든 법 가운데 걸림이 없는 곳을 허공이라 이름한다’고 한다면 이 걸림 없는 곳이 일체 법 있는 곳에 구족하게 있는가? 부분적으로 있는가? 만일 구족하게 있다면 다른 곳에는 허공이 없을 것이며, 부분으로 있다면 곧 이것과 저것이 셀 수 있는 법일 것이다. 만일 셀 수 있다면 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어떤 이는 말하기를 ‘허공의 걸림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과 나란히 합해진다’라고 하며, 또 말하기를 ‘허공이 물건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안의 과실과 같다’라고 하는데, 두 가지가 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함께 합해진다고 말한다면 곧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다른 업이 합해진다면 나는 새가 나무에 모이는 것 같을 것이며, 둘째는 같은 업이 합해진다면 두 양(羊)이 서로 받는 것과 같을 것이며, 셋째는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해진다면 두 쌍의 손가락이 한곳에 합해져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일 다른 업이 함께 합해진다면 다르다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건의 업이며, 둘째는 허공의 업이다. 만일 허공의 업이 물건에 합해진다면 허공은 무상한 것이며, 물건의 업이 허공에 합해진다면 물건은 두루하지 못한 것이다. 두루하지 못하다면 그것도
무상한 것이다.
만일 말하기를 ‘허공은 항상하고 성품이 동하지 않는 것인데, 동하는 물건과 합해진다’라고 한다면 그 이치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허공이 만일 항상하다면 물건도 마땅히 항상할 것이며, 물건이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도 무상할 것이며, 만일 허공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면 옳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같은 업이 합해진다면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허공은 두루하다고 하는 것인데, 업과 더불어 합해진다면 업도 마땅히 두루할 것이며, 만일 두루하다면 온갖 것에 두루할 것이며, 온갖 것에 두루하다면 마땅히 온갖 것에 합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합해지고 합해지지 않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해진다면, 두 쌍의 손가락이 합해진다는 것과 같을 것이니, 뜻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먼저 합해짐이 없다가 뒤에 바야흐로 합해지는 까닭이니, 먼저 없다가 뒤에 있다면 이는 무상한 법이다. 그러므로 허공이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세간법이 먼저는 없다가 뒤에 있다면 그 물건은 무상한 것과 같아서 허공이 그렇다면 역시 무상할 것이다.
만일 허공이 물건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안의 과실과 같다고 말한다면 그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허공이 처음에 그릇에 없었을 때에는 어디에 있었던가? 만일 있는 곳이 있다면 허공이 여럿일 것이다. 만일 여럿이라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고 하나라고 말하고 두루하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허공이 허공을 떠나서 있는 데가 있다면 다른 물건도 허공을 떠나서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허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머무는 데를 가리켜 허공이라고 한다면 허공이 무상한 법임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가리키는 것은 사방이 있으니, 만일 사방이 있다면 허공도 사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항상한 법은 모두 방소가 없는데, 방소(方所)가 있기 때문에 허공이 무상할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5음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5음을 떠나려 하면 있는 데가 없을 것이다.
선남자야, 어떤 법이 인연을 따라 머문다면
이 법은 무상하다고 할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모든 중생이나 나무가 땅으로 인하여 머무는 것처럼, 땅이 무상하기 때문에 땅으로 인한 물건도 차례로 무상하다. 선남자야, 땅은 물로 인하여 머무는데 물이 무상하기 때문에 땅도 무상하며, 물이 바람으로 인하였다면 바람이 무상하기 때문에 물도 무상하며, 바람이 허공으로 인하였다면 허공이 무상하기 때문에 바람도 무상하다.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 항상하여 온갖 곳에 두루한다고 하겠는가?
허공이 없는 것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니, 마치 토끼뿔이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불성은 항상하기 때문에 3세에 포섭된 것이 아니며, 허공은 없기 때문에 3세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한다. 선남자야, 나는 세간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면 나도 없다고 말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세상 법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신심이며, 둘째는 계율이며, 셋째는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것이며, 넷째는 안으로 잘 생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정진을 구족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바른 생각[正念]을 구족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지혜를 구족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바른 말을 구족하는 것이며, 아홉째는 바른 법을 좋아하는 것이며, 열째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이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세상 법에 더럽혀지지 않음이 우발라꽃과 같을 것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면 나도 없다고 말한다’ 라고 하시니, 어떤 것을 일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 없다 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으며 나아가 식도 그렇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은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없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고 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지혜 있는 이는 곧 부처님과 보살과 모든 성인이시니, 모든 성인이 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색신이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고 하십니까?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는바 없다는 법을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있다고 하십니까? 여래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찌하여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세상의 법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여래께서는 세 가지 뒤바뀜을 여의셨으니, 생각이 뒤바뀜[想倒]ㆍ마음이 뒤바뀜[心倒]ㆍ소견이 뒤바뀜[見倒]입니다. 마땅히 부처님의 색신이 무상하다고 말씀하셔야 할 것인데 지금은 항상하다고 하시니, 어떻게 뒤바뀜을 여의시고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다고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범부의 색신은 번뇌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지혜 있는 이는 색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다고 말하지만 여래의 색신은 번뇌를 여의었다. 그러므로 항상하고 변역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색이 번뇌로부터 생긴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번뇌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이 3루의
허물을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허물을 알고 나서 멀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의사가 먼저 병자의 맥을 짚어보고 병난 데를 알고 나서 약을 주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어떤 이가 소경을 데리고 가시덤불 속에 갔다가 버리고 돌아온다면 소경은 그 뒤에 헤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며, 설사 헤어나더라도 몸이 모두 찢겼을 것이다. 세간의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세 가지 번뇌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다면 따라다닐 것이고 만일 보았으면 멀리 여읠 것이며, 허물을 알고 나서 과보를 받더라도 과보가 가벼울 것이다.
선남자야, 네 가지 사람이 있으니 첫째는 업을 지을 때는 중하고 과보를 받을 때에는 가벼우며, 둘째는 업을 지을 때에는 가볍고 과보를 받을 때에는 중하며, 셋째는 업을 지을 때도 중하고 과보를 받을 때도 중하며, 넷째는 업을 지을 때도 가볍고 과보를 받을 때도 가볍다. 선남자야, 사람이 만일 번뇌의 허물을 관찰하다면 이 사람은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 것이 모두 가볍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마땅히 이런 번뇌를 멀리 여의고 다시는 이러한 나쁜 일을 짓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업보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며 내가 만일 도를 닦으면 그 힘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괴로움을 파괴할 것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이 미약하여질 것이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가벼워짐을 보고 나서 마음이 기뻐지며 다시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되는 것이 모두 도를 닦은 인연의 힘이니, 나로 하여금 불선한 법을 여의고 선한 법을 친근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에 바른 도를 보게 될 것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부지런히 도를 닦은 힘으로 한량없는 나쁜 번뇌를 멀리 떠나며,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과보를 떠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계경(契經)에서 말하였다.
‘마땅히 모든 유루의 번뇌와 유루의 인을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만일 유루만 보고 유루의 인을 보지 않으면 모든 번뇌를 끊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 있는 이는 관찰하기를 ‘번뇌는 이 인으로부터 생기는데 내가 이제 인을 끊으면 번뇌가 생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의사가 먼저 병의 원인을 끊으면 병이 생기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 있는 이가 먼저 번뇌의 인을 끊는 것도 그와 같다.
지혜 있는 사람은 먼저 인을 관찰하고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선한 인으로부터는 선한 과보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나쁜 인으로부터는 나쁜 과보가 생긴다는 것을 알며, 과보를 관찰하고 나서는 나쁜 인을 멀리 떠난다. 과보를 관찰하고 나서 다시 번뇌의 가볍고 무거움을 관찰하며 가볍고 무거움을 관찰하고 나서는 먼저 무거운 것을 떠난다. 무거운 것을 떠나면 가벼운 것은 스스로 물러간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만일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면 이 사람은 부지런히 도를 닦아서 쉬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선지식을 친근하고 지성으로 법을 들을 것이니, 이러한 모든 번뇌를 멸하기 위한 까닭이다. 선남자야, 마치 병자가 자기의 병이 가벼워 반드시 나을 것을 안다면, 비록 쓴 약을 먹더라도 먹고 후회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부지런히 성인의 도를 닦으면서 기뻐하고 근심하지 않고 쉬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만일 사람이 번뇌ㆍ번뇌의 인ㆍ번뇌의 과보ㆍ번뇌의 경중을 알면 번뇌를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인의 도를 닦을 것이니, 이 사람은 번뇌로부터 색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다. 만일 번뇌ㆍ번뇌의 인ㆍ번뇌의 과보ㆍ번뇌의 경중을 알지 못하면 부지런히 닦지 않아서 이 사람은 번뇌로부터 색이 생길 것이며 수ㆍ상ㆍ행ㆍ식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고, 번뇌를 끊기 위하여 도를 닦는 이는 곧 여래이다. 이런 인연으로 여래의 색은 항상하며 나아가 식도 항상하다. 선남자야, 번뇌ㆍ번뇌의 인ㆍ번뇌의 과보ㆍ번뇌의 경중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지 못하는 이는 곧 범부이다. 그러므로 범부의 색은 무상하며 나아가 수ㆍ상ㆍ행ㆍ식도 모두 무상하다.
선남자야, 세상의 지혜 있는 모든 성인과 보살과 부처님은 이 두 가지 이치를 말하였고 나도 그와 같이 두 가지 이치를 말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지혜 있는 이와 더불어 다투지 않으며 세상의 법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가섭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유루란 것은 어찌하여 욕루ㆍ유루ㆍ무명루라고 합니까?”
“선남자야, 욕루라고 하는 것은 안으로의 나쁜 각관(覺觀)이 바깥 인연으로 인하여 욕루를 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전에 왕사성에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아난아, 너는 지금 이 여인이 말하는 게송2)을 들으라. 이 게송은 과거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다. 그러므로 모든 안으로의 나쁜 각관과 밖으로의 모든 인연을 일러 탐욕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욕루이다.
유루라고 하는 것은 색계ㆍ무색계의 안으로의 나쁜 법들과 바깥의 인연들이니, 욕계 중의 바깥 인연들과 안의 각관들을 없앤 것을 유루라고 한다. 무명루라고 함은 나와 내 것을 알지 못하며, 안과 밖을 분별하지 못함을 무명루라고 한다.
선남자야, 무명은 모든 번뇌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이 무명의 인연으로 5음ㆍ6입ㆍ18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모양을 짓는 것[作相]을
중생이라고 한다. 이것이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모든 번뇌를 내므로 내가 12부경 중에서 말하기를 ‘무명이란 것은 곧 탐욕의 인이며 성내는 인이며 어리석음의 인이다’라고 하였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예전에 12부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잘 생각하지 못하는 인연으로 탐욕ㆍ성내는 일ㆍ어리석음이 생긴다’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무슨 인연으로 무명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선남자야, 이 두 가지 법은 서로 인이 되고 과가 되어서 서로서로 증장하게 하는데, 잘 생각하지 못하므로 무명을 내고 무명의 인연으로 잘 생각하지 못함을 내는 것이다. 선남자야, 능히 모든 번뇌를 자라게 하는 것은 모두 번뇌의 인연이라 하고, 이 번뇌의 인연을 가가이 하는 것을 무명이며 잘 생각하지 못함이라고 한다. 종자가 싹을 내는 것과 같아서 종자는 가까운 인이며 4대는 먼 인이니, 번뇌도 그와 같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이 곧 누이다’라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다시 말씀하시기를 ‘무명으로 인하여 모든 누를 낸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내가 말한바 무명루라고 하는 것은 안의 무명이며, 무명으로 인하여 모든 누를 낸다는 것은 안과 바깥이다. 만일 무명루라고 말하면 이는 안으로 뒤바뀜[內倒]이라고 하는데,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내가 없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만일 모든 번뇌의 인연이라 하면 이는 바깥의 나와 내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며, 만일 무명루라고 하면 이는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 하는데 무명으로부터 5음ㆍ6입ㆍ18계 등을 낸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번뇌의 인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을 일러 번뇌의 인을 안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무슨 인연으로 이 번뇌를 내며 무슨 행을 지어서 이 번뇌를 내며
어느 때에 이 번뇌를 내며 누구와 함께 있으면 이 번뇌를 내며 어디에 있으면 이 번뇌를 내며 무슨 일을 관찰하면 번뇌를 내며 누구의 집과 와구와 음식과 의복과 탕약을 받았기에 번뇌를 내며, 무슨 인연으로 하품이 변하여 중품을 만들고 중품이 변하여 상품을 만들며, 하품 업으로 중품을 짓고 중품 업으로 상품을 짓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하면 번뇌를 내는 인연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 생기지 않은 번뇌는 막아서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는 없애서 멸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계경 중에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번뇌를 내는 인을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한 몸으로 어떻게 가지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마치 한 그릇에 여러 가지 씨가 있는데, 물이나 비를 얻으면 제각기 싹이 나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와 같다. 그릇은 하나이지만 탐애의 인연으로 가지가지 번뇌를 생장시킨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혜 있는 이는 어떻게 과보를 관찰하여야 합니까?”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관찰하기를 ‘번뇌의 인연으로 지옥ㆍ아귀ㆍ축생을 내며, 번뇌의 인연으로 인간과 천상의 몸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곧 무상이며 괴로움이며 공함이며 내가 없는 것이다. 이 몸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괴로움3)과 세 가지 무상4)을 얻는 것이며, 이 번뇌의 인연이 중생으로 하여금 5역죄를 짓고 나쁜 과보를 받게 하며, 선근을 끊고 4중죄를 범하고 3보를 비방하게 한다’고 할 것이며,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내가 이미 이런 몸을 받았으니 이런 번뇌를 다시 일으켜 나쁜 과보를 받지 말아야 한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루과(無漏果)가 있는데, 다시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모든 과보를 끊는다’고 하시니, 무루의 과보도 끊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까? 도를 얻은 사람은 무루의 과가 있으며 지혜 있는 이는 무루의 과를 구할 것인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지혜 있는 이는 모든 과보를 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까? 만일 끊을 것이라면 지금 성인들은 어찌하여 있게 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여래가 어떤 때에는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고,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세상 사람이 진흙 반죽을 질그릇이라 말하고, 실[縷]을 옷이라고 하는 것 등을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는 것은, 소를 보고 여물이라 하고, 사람을 보고 밥이라고 하는 것이니 나도 그와 같이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다. 먼저 경에서 말하기를 ‘나는 마음과 몸[마음으로 인하여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라고 하였다]으로 좇아 범천의 곁에 이른다’고 한 것은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 것이다.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고 하는 것은, ‘6입은 과거의 업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을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고 한다. 선남자야, 모든 성인이 진실로 무루의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모든 성인의 도를 닦는 과보에는 다시 누가 생기지 않으므로 무루의 과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사람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 곧 번뇌의 과보를 영원히 멸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관찰하고 나서는 이런 번뇌의 과보를 끊기 위하여 성인의 도를 닦나니, 성인의 도는 곧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이다. 이 도를 닦고 나서 모든 번뇌의 과보를 멸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온갖 중생들이 다 번뇌로부터 과보를 얻는데, 번뇌는 악이라고 하며 악한 번뇌로부터 생긴 번뇌도 악이라고 합니다. 이런 번뇌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因)이며, 둘째는 과(果)입니다. 인이 악하므로 과가 악하고 열매가 좋지 않으므로 씨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마치 임파(紝婆) 열매는 씨가 쓴 까닭에 꽃과 열매와 줄기와 잎이 모두 쓴 것과 같으며, 독한 나무는 씨가 독하므로 열매도 독한 것과 같습니다.
인도 중생이고 과도 중생이며 인도 번뇌이며 과도 번뇌이니, 번뇌의 인과 과가 곧 중생이며, 중생이 곧 번뇌의 인과 과입니다. 이러한 뜻을 따른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먼저 비유하시기를 ‘설산에 독한 풀과 미묘한 약왕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만일 번뇌가 곧 중생이며 중생이 곧 번뇌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중생의 몸속에 묘한 약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야,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두 이와 똑같이 의심하는데, 그대가 능히 물어서 해답을 구하였고 나도 능히 결단하겠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지금 분별하여 해설하겠다.
선남자야, 설산이라 비유한 것은 곧 중생이며 독한 풀은 곧 번뇌이고 미묘한 약왕은 곧 깨끗한 범행이다.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이렇게 깨끗한 범행을 닦으면 이것을 일러 몸에 묘한 약왕이 있다고 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에게 깨끗한 범행이 있다고 하십니까?”
“선남자야, 마치 세상에 씨로부터 열매가 나는데, 이 열매가 씨에게 인이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능히 인이 되는 것은 열매인 씨[果子]라 하고 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열매라고만 하며, 씨라고는 하지 못한다.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모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인 것이며, 둘째는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이 아닌 것이다. 이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이 아닌 것을 깨끗한 범행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중생은 수(受)를 관찰하여 이것이 온갖 번뇌의 가까운 인이라는 것을 아는데 이른바 안팎의 번뇌이다. 수의 인연이기 때문에
온갖 번뇌를 끊지 못하고 또한 3계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중생은 수로 인하여 나와 내 것에 집착하며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뀜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먼저 수를 관찰해야 한다. 이 수는 온갖 애(愛)에게 가까운 인이 되므로 지혜 있는 이가 애를 끊고자 한다면 먼저 수를 관찰해야 한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의 12인연으로 짓는 선과 악은 모두 수(受)하는 때를 인한 것이므로 내가 아난에게 말하기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짓는 선과 악은 모두 수하는 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먼저 수를 관찰해야 하며, 수를 관찰하고 나서 다시 관찰하되 ‘이러한 수는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가? 만일 인연으로 생긴다면 이런 인연은 무엇으로 생기는가? 만일 인이 없이 생긴다면 인이 없는 것이 무슨 까닭으로 수가 없는 것은[無受] 내지 않는가?’라고 한다.
또 관찰하기를 ‘이 수는 자재천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장정[士夫]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미진(微塵)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시절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생각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성품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자기로부터 나지도 않고, 다른 이로부터 나지도 않고, 자기와 다른 이로부터 나지도 않고, 인이 없이 나는 것도 아니며, 이 수는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 인연은 곧 애이다. 이 화합 중에는 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화합을 끊을 것이며 화합을 끊으면 수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인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과보를 관찰한다. 중생은 수로 인하여 지옥ㆍ아귀ㆍ축생과 나아가 삼계의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으며, 수의 인연으로 무상한 즐거움을 받으며, 수의 인연으로 선근을 끊으며, 수의 인연으로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수의 인을 짓지 않는다. 무엇을 일러 수의 인을 짓지 않는다고 하는가?
수를 분별하되 ‘어떠한 수가 애(愛)의 인을 지으며, 어떠한 애가 수의 인을 짓는가?’라고 한다. 선남자야, 중생이 능히 이렇게 애의 인과 수의 인을 깊이 관찰하면 능히 나와 내 것을 끊는다.
선남자야, 어떤 이가 이렇게 관찰을 하면 마땅히 애와 수가 어디에서 멸하는가를 분별할 것이니, 애와 수가 조금 멸하는 곳을 본다면 역시 끝까지 멸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면 해탈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낼 것이며, 믿는 마음을 내고 나서 ‘이 해탈하는 곳은 무슨 인연으로 얻는가?’라고 하여, 8정도로부터인 것을 알고 곧 닦을 것이다.
무엇을 8정도라고 하는가? 이 도로 수를 관찰하는 데 세 가지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괴로움이며, 둘째는 즐거움이며, 셋째는 괴로움도 아니며 즐거움도 아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몸과 마음을 증장하는데, 무슨 인연으로 증장하는가? 촉(觸)하는 인연이다.
촉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명촉(無明觸)이며, 둘째는 명촉(明觸)이며, 셋째는 명도 무명도 아닌 촉[非明無明觸]이다. 명촉은 곧 8정도이며, 다른 두 촉은 몸과 마음과 세 가지 수를 증장한다. 그러므로 내가 두 가지 촉의 인연을 끊을 것이니 촉이 끊어지면 세 가지 수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수는 인이라고도 하고 과라고도 하는데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인도 되고 과도 되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무엇을 인이라고 하는가? 수로 인하여 애를 내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무엇을 과라고 하는가? 촉으로 인하여 생기므로 과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수를 인도 되고 과도 된다고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이와 같이 수를 관찰하고 나서 다시 애를 관찰하는데 과보를 받으므로 애라고 한다.
지혜 있는 이가 애를 관찰하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잡식(雜食)이며, 둘째는 무식(無食)이다. 잡식애(雜食愛)라고 하는 것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유로 인하는 것이며, 무식애(無食愛)라고 하는 것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유를 끊고 무루의 도를 탐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이는 다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만일 잡식애를 내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지 못할 것이며, 내가 비록 무루의 도를 탐하지만 수의 인을 끊지 못하면 무루의 도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촉을 먼저 끊어야 하며 촉이 끊어지면 수가 스스로 멸하며 수가 멸하면 애도 따라서 멸할 것이니, 이것을 8정도라고 한다.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이렇게 관찰하면 비록 몸에 독이 있으나 미묘한 약왕도 있다. 마치 설산에 독한 풀이 있지만 미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런 중생은 비록 번뇌로부터 과보를 얻더라도 이 과보는 다시 번뇌의 인이 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범행이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수와 애의 두 가지가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가를 관찰하면, 생각으로 인하여 생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이 색을 보아도 탐심을 내지 않고 수를 관찰할 때에도 탐심을 내지 않지만 만일 색에 대하여 뒤바뀐 생각을 내어 색이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수가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고 하면 이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생각을 관찰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을 관찰하는가?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이 바른 도를 얻지 못하면 모두 뒤바뀐 생각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뒤바뀐 생각이라 하는가? 항상하지 않은데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즐거움이 아닌데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깨끗하지 않은데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고 공한 법에 나라는 생각을 내고 남자ㆍ여자ㆍ큰 것ㆍ작은 것ㆍ낮ㆍ밤ㆍ해ㆍ달ㆍ의복ㆍ집ㆍ와구가 아닌데 남자ㆍ여자, 나아가 와구라는 생각을 내는 것이다.
이 생각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작은 것, 둘째
큰 것, 셋째는 그지없는 것이다. 작은 인연으로 작은 생각을 내고, 큰 인연으로 큰 생각을 내고, 그지없는 인연으로 그지없는 생각을 낸다. 또 작은 생각이 있으니 선정에 들지 못하는 것이며, 큰 생각이 있으니 이미 선정에 드는 것이며, 한량없는 생각이 있으니 열 가지 온갖 곳[一切處]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 작은 생각이 있으니 욕계의 모든 생각들이며, 큰 생각이 있으니 색계의 모든 생각들이며, 그지없는 생각이 있으니 세 가지 생각이 멸하므로 수가 스스로 멸하고 생각과 수가 멸하므로 해탈이라고 이름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온갖 법이 멸한 것을 해탈이라고 하는데 여래께서 어찌하여 생각과 수가 멸한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여래가 어떤 때에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는데 듣는 이는 법이라고 이해하며, 어떤 때에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는데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한다.
어떤 것을 일러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는데 듣는 이는 법이라고 이해한다’고 하는가? 내가 예전에 대가섭에게 말하기를 ‘가섭아, 중생이 멸할 때에 선한 법이 멸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는데 듣는 이는 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이러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는데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한다’고 하는가? 내가 전에 아난에게 말하기를 ‘나는 온갖 법을 가까이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또 온갖 법을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만일 법을 친근히 하여서 선한 법이 쇠약하고 불선한 법이 치성하면 그런 법은 친근히 하지 말아야 하고, 법을 친근히 하여서 불선한 법이 쇠약하고 선한 법이 증장하면 그런 법은 친근히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일러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는데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여래가 비록 생각과 수 두 가지가 멸함만을 말하였으나 이미
온갖 것을 끊는다고 총체적으로 말한 것이다. 지혜 있는 이는 이러한 생각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생각의 일을 관찰하는데 ‘이 한량없는 생각이 무엇을 인하여 생기는가?’라고 하여, 촉으로 인하여 생긴다는 것을 안다. 촉은 두 가지이니, 첫째는 번뇌의 촉이며, 둘째는 해탈의 촉이다. 무명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을 번뇌의 촉이라 하고 명(明)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을 해탈의 촉이라고 하는데, 번뇌의 촉으로 인하여서 뒤바뀐 생각이 생기고 해탈의 촉으로 인하여 뒤바뀌지 않은 생각이 생긴다. 생각의 인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과보를 관찰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번뇌의 생각으로 인하여 뒤바뀐 생각이 생긴다면 모든 성인이 실로 뒤바뀐 생각이 있으면서도 번뇌가 없으니, 이 이치는 어떠하겠습니까?”
“선남자야, 어찌하여 성인이 뒤바뀐 생각이 있다고 하는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성인들이 소[牛]에 소라는 생각을 내고 나서 소라고 말하고, 말이라는 생각을 내고 나서 말이라고 말하며, 남자ㆍ여인ㆍ큰 것ㆍ작은 것ㆍ집ㆍ수레ㆍ가고 오는 데도 그러하니, 이것을 뒤바뀐 생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모든 범부는 두 가지 생각이 있으니, 첫째는 세간에 퍼지는 생각이며, 둘째는 집착하는 생각이다. 모든 성인들은 세간에 퍼지는 생각만 있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다. 모든 범부들은 나쁜 각관(覺觀)이므로 세간에 퍼지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만 모든 성인들은 좋은 각관이므로 세간에 퍼지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부는 뒤바뀐 생각이라 하고, 성인은 비록 알지만 뒤바뀐 생각이라 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의 인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나쁜 생각의 과보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에서 받는다고 한다. 만약 내가 나쁜 각관을 끊음으로 인하여 무명과 촉이 끊어지면 그 때문에 생각이 끊어지며 생각이 끊어짐으로 인하여 과보도 끊어진다.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의 인을 끊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는다. 선남자야, 만일 이러한 관찰을 하는 이가 있으면 청정한 범행이라 할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중생의 독한 몸에 미묘한 약왕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설산에 독한 풀이 있지만 미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
또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탐욕을 관찰하는데 탐욕은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이다. 선남자야, 이것이 곧 여래가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로부터 탐욕을 내는 것이며 실제로는 탐욕이 아니다.
선남자야,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것을 받으려고 탐하여 구하기 때문에 이 빛에 대하여 뒤바뀐 생각을 내며 나아가 촉에 대하여서도 뒤바뀐 생각을 내고 뒤바뀐 생각의 인연으로 수(受)를 낸다.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기를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열 가지 생각을 낸다’고 한다.
탐욕의 인연으로 세간에서 나쁜 과보를 받고, 나쁜 것을 부모와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가하기도 하고, 짓지 않아야 할 일을 짐짓 지으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나쁜 생각의 인연으로 탐욕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을 관찰한다.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탐욕의 인연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과보를 관찰한다. 이 탐욕으로 모든 나쁜 과보가 많으니,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이라고 하며 이것을 이름하여 과보를 관찰한다고 한다. 만일 나쁜 생각을 제멸(除滅)하면 욕심이 생기지 않고 욕심이 없으므로 나쁜 수를 받지 않으며, 나쁜 수가 없으므로 나쁜 과보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나쁜 생각을 끊어야 하며 나쁜 생각이 끊어지면 이런 법이 자연히 없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나쁜 생각을 없애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는데 이것을 일러 청정한 범행이라고 하며, 이것을 일러 중생의 독한 몸 가운데 묘한 약왕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도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탐욕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업을 관찰한다. 왜냐하면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수와 생각과 촉의 탐욕이 곧 번뇌이며, 이 번뇌는 능히 나는 업은 지으나 받는 업은 짓지 못한다’라고 한다. 이러한 번뇌가 업과 함께 행해지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는 업을 짓는 것이며, 둘째는 받는 업을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업을 관찰해야 한다. 업에 세 가지가 있으니, 몸과 입과 뜻이다.
선남자야, 몸과 입의 두 업은 업이라고도 하고 업의 과보라고도 하는데, 뜻은 업이라고만 하고 과보라고는 하지 않으니, 업의 인이므로 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몸과 입의 두 업은 바깥 업이라 하고 뜻의 업은 안의 업이라 하며, 이 세 가지 업이 번뇌와 함께 행해지므로 두 가지 업을 짓는데 첫째는 나는 업이며, 둘째는 받는 업이다.
선남자야, 정업(正業)은 뜻으로 짓는 업이요, 기업(期業)은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이다. 먼저 나는 것이므로 뜻의 업이라 하고, 뜻으로부터 생기므로 몸과 입의 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뜻의 업을 정업이라고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업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업의 인을 관찰하는데, 업의 인은 무명과 촉이다. 무명과 촉으로 인하여 중생은 유(有)를 구하고 유를 구하는 인연은 곧 애(愛)이다. 애의 인연으로 몸ㆍ입ㆍ뜻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업의 인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과보를 관찰한다. 과보에 넷이 있으니, 첫째는 흑흑과보(黑黑果報)이며, 둘째는 백백(白白)과보이며, 셋째는 잡잡(雜雜)과보이며, 넷째는 불흑불백불흑불백(不黑不白不黑不白)과보이다. 흑흑과보라고 함은 업을 지을 때도 더럽고 과보도 더러운 것이며, 백백과보라고 함은 업을 지을 때도 깨끗하고 과보도
깨끗한 것이다. 잡잡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섞였고 과보도 섞인 것이며, 불백불흑불백불흑과보라 함은 무루의 업을 말한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먼저 말씀하시기는 무루는 과보가 없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불백불흑과보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야, 이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과도 되고 보도 되며, 둘째는 과뿐이며 보는 아니다. 흑흑과보는 과도 되고 보도 되는데, 검은 인으로 생겼으므로 과라 하고 능히 인을 지으므로 보라고 하며, 깨끗함과 섞인 것도 그러하다. 무루의 과라고 함은 유루로 인하여 생겼으므로 과라 하고 다른 인을 짓지 않으므로 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라고 하고 보라고는 하지 않는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루의 업은 흑법이 아닌데, 무슨 인연으로 백(白)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선남자야, 보가 없으므로 백이라고 하지 않고 흑(黑)을 다스리므로 백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말하기를 ‘과보를 받는 것을 백이라고 하는데, 무루의 업은 보를 받지 않으므로 백이라고 하지 않고 적정(寂靜)이라고 한다. 이러한 업은 반드시 보를 받는 곳이 있다.
10악법은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나고 10선업은 인간과 천상에 난다. 10불선업에 상품ㆍ중품ㆍ하품이 있으니 상품의 인연으로는 지옥의 몸을 받고, 중품의 인연으로는 축생의 몸을 받고, 하품의 인연으로는 아귀의 몸을 받는다.
인간의 업인 10선업에 또 네 가지가 있으니, 하품ㆍ중품ㆍ상품ㆍ상상품이다. 하품의 인연으로는 울단월(鬱單越)5)에 나고, 중품의 인연으로는 불바제(弗婆提)6)주에 나고, 상품의 인연으로는 구다니(瞿陀尼)7)주에 나고, 상상품의 인연으로는
염부제(閻浮提)8)주에 태어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어떻게 이 과보를 끊을 것인가?’ 하고, 또 생각하기를 ‘이 업의 인연이 무명과 촉으로 생겼으니, 내가 만일 무명과 촉을 끊어 버린다면 이런 업과는 멸하고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지혜 있는 이는 무명과 촉을 끊으려는 인연으로 8정도를 닦는데 이것이 곧 청정한 범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일러 중생의 독한 몸속에 묘한 약왕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에 독한 풀이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
또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업을 관찰하며 번뇌를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이 두 가지로 얻게 되는 과보를 관찰하는데, 두 가지의 과보는 곧 고통이다. 이미 고통인 것을 알고 나서 온갖 것에 태어나는 일을 버리는 것이다.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되 ‘번뇌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고, 업의 인연으로도 번뇌를 내고, 번뇌의 인연으로 다시 업을 내며, 업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고, 괴로움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며,
번뇌의 인연으로 유(有)를 내고, 유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며, 유의 인연으로 유를 내고, 유의 인연으로 업을 내며, 업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고, 번뇌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며, 괴로움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낸다’라고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능히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 사람은 능히 업과 괴로움을 관찰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것은 곧 나고 죽는 12인연이니, 만일 사람이 나고 죽는 12인연을 관찰하면 이 사람은 새로운 업은 짓지 않고 낡은 업은 깨뜨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사람은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는데, 한 지옥으로부터 136지옥까지 낱낱 지옥에 가지가지 고통이 있는 것이 모두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나는 것을 관찰한다. 지옥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아귀와 축생 등의 고통을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고통을 관찰하기를 이런 고통들이 모두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난다고 본다.
선남자야, 천상에는 크게 괴롭고 시끄러운 일은 없지만 그러나 몸이 보드랍고 매끄러워서 다섯 가지 모양을 보게 될 때에는 지극히 괴로운 것이 지옥의 고통과 같아서 차별이 없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삼계의 모든 고통이 다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생기는 것을 관찰한다. 선남자야, 마치 굽지 않은 그릇이 부서지기 쉽듯이 중생이 몸을 받는 것도 그와 같다. 이미 몸을 받으면 이는 괴로움의 그릇이니, 마치 큰 나무에 꽃과 열매가 번성하면 새의 무리가 쪼아 먹듯이, 마른 풀 무더기를 조그만 불이 태울 수 있듯이 중생이 받는 몸이 괴로움 때문에 부수어지는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가 여덟 가지 괴로움을 관찰할 때에 성인의 행과 같이 하면 이 사람은 능히 모든 괴로움을 끊을 것이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을 깊이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괴로움의 인을 관찰하는데, 괴로움의 인은 곧 애와 무명이다. 애와 무명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을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재물을 구하는 것이다. 몸을 구하는 것과 재물을 구하는 것이 모두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애와 무명이 괴로움의 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 이 애와 무명이 곧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이며 둘째는 밖이다. 안의 것은 능히 업을 짓고 바깥 것은 능히 증장케 한다. 또 안의 것은 업을 짓고 바깥 것은 업의 과보를 짓는데 안의 애를 끊으면 업이 끊어지고, 바깥의 애를 끊으면 과보가 끊어진다. 안의 애는 오는 세상의 괴로움을 내고 바깥의 애는 지금 세상의 괴로움을 내며 지혜 있는 이는 애가 괴로움의 인임을 관찰한다. 이미 인을 관찰하고 나서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는데, 괴로움의
과보는 곧 취(取)이다. 애의 과보를 취라고 하는데, 취의 인연이 곧 안팎의 애이므로 애의 고가 있다.
선남자야,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애는 취의 인연이며 취는 애의 인연임을 관찰해야 한다. 만일 내가 애와 취의 두 가지를 끊으면 업을 짓고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애의 괴로움을 끊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는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깨끗한 범행이라고 하며, 이것을 일러 중생의 독한 몸속에 묘한 약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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